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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산행(완료)/낙남정맥(완료)

낙남정맥 제7차 담티재에서 오곡재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2.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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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남도 고성군, 마산시, 진주시 및 함안군의 낙남정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2년 03월 03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많은 구름이 끼고 쌀쌀한 기온이였지만 산행하기 좋았던 날씨

산행온도 : 영하 01도에서 영상 10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담티재(1002번 지방도로)-바위 전망대(일출)-용암산(399.5봉)-송전탑-임도 같은 등로-옥녀봉(338봉)-남성치(선동마을)-소나무

             조림지-분봉없는 묘지봉-벌밭들(420.4봉)-밤나무 밭 민가-선동치 비포장 임도-깃대봉(520.6봉)-깃대봉(520봉, 국가삼각점)-

             준봉산(520봉)-전망바위(만수산 갈림 삼거리)-전망바위-동물이동통로(2번 지방도로)-구 2번 지방도로-옛 발산재 폐허 건물-

             장승 들머리(오곡재 8.8 Km 이정표)-묘지지대-벤취봉-송전탑-우측에 시멘트 포장 임도-영봉산 1.6 Km 이정표-묘지공터-

             큰정고개-523봉-오봉산 갈림 이정표(여항산 5.2 Km)-삼계봉(523봉)-524.4봉 삼각점-산성터-오곡재(비포장 임도)-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6.00 Km (접속구간 00.00 Km)

산행시간 : 산행하기 좋은 날씨에 사진 찍으며 여유롭게 07시간 25분 (06시 40분부터 14시 05분까지)

 

낙남정맥이란?

지리산 세석평전을 품고 있는 영신봉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내려온 마루금이 삼신봉에서 외삼신봉을 지나 묵계치와 고운재를 거쳐 옥산까지의 산줄기는 서쪽 섬진강으로  그 물줄기를 가르고 있으나 이후 산줄기는 인위적으로 잘라 만든 진양호 물이 사천만으로 흘러들게 만든 거대한 가화강을 지나 백운산 대곡산 무량산 여항산 서북산 광려산 대산 무학산 천주산 봉림산 대암산 용제봉 김해의 신어산을 거쳐 낙동강하구인 김해시 매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그 긴 줄기를 낙동강에 묻는 약 224 Km의 산줄기를 낙남정맥이라 한다. 

이 산줄기에는 특이하게도 인공 호수와 강줄기가 마루금을 가르고 있기에 피치 못하게 가화강을 건너야 하는 산자분수령과는 다른 산행이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틀 연속 이어진 종주 산행을 무탈하게 진행하며 환상의 조망에 취한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어제 오랫만에 내려 와 길게 낙남정맥 한구간을 마무리하고 지난 밤 손님을 만나 조금은 과하게 한잔 나누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오늘 산행이 걱정은 되지만 지금까지 해온 산행이니 초반 컨디션만 잘 조절하면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새벽 4시에 일어나 잠자리 주위의 식당들을 둘러 보지만 아직도 한밤중 어둠이다.

한동안 돌아 다니다 어쩔 수 없이 마산 시내로 이동해 어렵게 24시간 운영하는 감자탕집에 들려 들어가지 않는 아침 식사 한끼 마치고 점심 도시락을 챙겨 다시 어제 내려온 1002번 청심목장 옆 담티재 산행 들머리에 도착하니 아침 6시 30여분을 넘기고 있다.

생각보다 한시간 여를 넘겨 오늘 예정된 산행이 걱정되는 시간이지만 어짜피 시작해야 하는 산행이니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도로 위 시멘트 옹벽을 타고 넘으며 또 한구간 산행을 시작해 본다.

특히나 아직도 중환자실에 누워 계시는 어머님의 병환이 호전되고 있다는 소식에 몸은 무거워 오지만 마음은 새털처럼 가볍게 시작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주 어렵게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등줄기와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지난 밤 마신 이슬이를 빼내고 나니 첫번째 암봉인 바위 전망대에 올라 잠시 찬바람에 흐르는 땀방울을 식혀 본다.

잠시 쉬고 있으니 구름사이로 숨었던 아침 일출이 바로 앞 용암산 줄기 넘어 둥글게 떠 오르고 있다.

기대하지 못했던 일출에 가슴이 뻥 터지며 오늘 하루의 산행이 왠지 모를 즐거움으로 가득 찰 것 같다는 생각이다.

어머님 병환 후 오랜만에 본 일출이기에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그곳에 서서 아름답게 떠오르는 일출을 감상하며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고자 해 본다.

 

새벽잠도 설치며 서둘렀지만 아침식사와 점심 도시락 준비 문제로 다시 마산시내를 다녀 오다 보니 산행 시간도 많이 지체되어 어제 내려 온 개천면과 구만면을 이어주는 1002번 2차선 포장도로인 담티재 지방도로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아침 6시 40여분을 지나고 있다.

구만면과 개천면 도로 이정표와 모래적사함이 있는 콘크리트 옹벽을 넘어 어둠이 서서히 엷어지는 시간에 둘째날 낙남정맥 산행을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여유롭게 진행하기에 장점이 있지만 이렇게 식사 문제에 부딫히다 보면 많은 아쉬움도 남는 홀로 오르는 맥 잇기 산행이다.

 

능선으로 오르니 초반 들머리에서는 일반 잡목과 소나무들이 적당히 혼재된 평이한 등로로 이어지다가 갑자기 가파라지기 시작하며 빽빽한 소나무들이 등로를 가득 메운 마루금으로 변하는 장소에서 등로 좌측은 철조망이 쳐져 있고 그 철조망 넘어로 드넓은 초지밭이 조성되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잠시 그곳으로 바라보니 어제 내려온 마루금이 살짝 올려다 보이고 바로 좌측 아래에는 오늘 아침 방금 전 오르기 시작한 청심목장의 파란 지붕이 빤히 내려다 보인다.

그 넘어 저 멀리에는 어제 진행한 낙남마루금이 올려다 보이며 천천히 어둠이 물러가고 있다.

 

방금 전 올라 온 담티재의 파란 목장지붕을 바라 본 후 조금 더 진행하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개천면 청광리 마을이 새벽 안개를 걷어내며 조용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청동마을과  청남마을로 이뤄진 청광리에서 청동마을은 맨 먼저 육이재라는 마을이 생겼다고 전하고 있는데 이는 가난한 선비 6형제가 의좋게 열심히 일하며 살았다고 부쳐진 이름으로 전하고 있으며 지금의 청동 마을명은 1984년 고성군의 이동명칭 및 행정구역 확정시 청광리를 분동(행정동)하면서 청동마을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남마을은 뒷산이 소뿔처럼 생겼다고하여 소뿔담이라고 불리어 오기도 하였으며 1984년 고성군의 이동명칭 및 행정구역 확정시 청광리를 분동(행정동)하면서 청남으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취락으로 소뿔담, 마당몰이, 웃담, 청광물로 형성되어 있다.

맥 산행을 하면서 이 산객이 가장 좋아하는 조용한 마을과 높지 않은 산그리메들 그리고 하늘엔 검은 먹구름이 띠를 두르고 있는 그런 풍경이며 조망이다.

 

이제 좌측의 목장 초지 지대를 지나 소나무가 빽빽하게 조림되어 있는 군락지를 타고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로 들어 선다.

습도가 높은지 금새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온 몸의 옷을 적시고 있고 내쉬는 숨소리는 천지를 울리듯 그렇게 요동치고 있다.

한발 두발 급하지 않게 초반 페이스를 유지하며 오르니 서서히 암봉들이 나타나면서 잡목지대로 변하더니 바위 전망대에 도착을 한다.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과 풍경에 잠시 홀로 환호성을 지른 후 일출을 감상하기 위해 동쪽 하늘을 바라보니 이미 해가 떠올랐을 시간이지만 구름속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잠시 기다리며 주위 풍경과 조망을 사진에 담는 사이 지금부터 올라야 할 용암산 좌측 산자락을 타고 붉고 둥근 햇살이 눈부시게 떠오르고 있다.

늘 자주 보던 일출이지만 근래 들어 오랫만에 만나는 광경에 환호성이 절로 나오며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한동안 머물러 있다.

하루에 한번씩 일년이면 365일을 볼 수 있는 일출이건만 왜 이리 산상에 올라 만나는 새벽 일출은 이 산객의 가슴에 특별함을 안겨 주는지...

말로 표현은 못하지만 그저 가슴에 남겨지는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묘한 기분이 좋아 또 이렇게 오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남서쪽으로는 어제 힘들게 올랐다 내려 온 낙남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우측 끝으로 필두봉이 우뚝 솟아 있고 좌측으로 내려가며 개터재로 가라 앉았다가 봉광산과 탕근재를 지나 신고개로 이어지는 높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산줄기가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오는 아침이다.

그 좌측으로는 구만면 저련리의 마을과 작은 저수지들이 어둠을 몰아내며 밝은 하루 해를 기다리는 고요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미암산 지나 끝없이 구비쳐 흐르는 고성군 개천면과 진주시 이반성면 쪽 산그리메가 우측의 낙남정맥과 평행을 이루며 북으로 북으로 달려가고 있다.

우측의 용암산 자락으로 떠 오른 일출의 빛을 받아 더욱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풍경이자 끝없는 멋진 조망이다.

바로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개천면 나선리는 본래 창원군 진전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시 나동리와 선동리를 병합하여 나선리로 하여 고성군 개천면에 편입되었으며 1983년 2월 15일자 대통령령 제11027호로 나선리 선동이 구만면 화림리로 편입되고 지금은 나선리 나동마을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동마을은 면소재지에서 11Km 동북쪽으로 면내에서 가장 오지에 위치한 마을로 만수산을 경계로 북쪽은 진주시 이반성면과 동쪽은 마산시 진전면과 접하고 있으며 산록지에 조성된 농경지는 천수답이 많으나 수원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홀로 올라 본다는 것이 무척 아쉽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다시 진행하며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삼각점과 삼각점 안내도 그리고 좌측 나뭇가지에 용암산 정상 이정표가 붙어 있는 용암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삼각점 번호가 함안 442번으로 표기되어 있고 해발고도는 399.8미터로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 이외에는 잡목들로 둘러 쌓여 있어 조망이나 풍경을 볼 수 있는 조건은 전혀 없다.

잠시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고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용암산 정상을 출발한다.

 

용암산 정상을 출발해 잠시 진행하니 등로 옆에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 하나가 보이고 잠시 더 전진하니 이제 등로는 송전탑 설치를 위해 임도같이 만들어진 넓은 도로같은 마루금으로 변하고 그 중간 중간에 작은 잡목들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한동안 그 넓은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잡목들이 무성하게 자랐다가 말라붙은 안부에 도착하고 혹시나 특이한 이름이 있을까 싶어 지도와 자료를 찾아 보지만 특이한 특징은 없는 평이한 안부이다.

이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억새풀과 소나무가 조화를 이루는 등로로 이어지다가 등로만 남기고 온통 소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 환상의 마루금을 타고 진행하게 된다.

그 소나무 군락지 저 앞에는 동쪽에서 막 떠오른 밝은 했살이 밝게 비추며 소나무 사이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다시 조금 더 완만한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오르니 펑퍼짐한 봉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 옥녀봉 정상 이정표가 붙어 있다.

 

오래전 알고 지내던 다올님이 붙여 놓은 옥녀봉 정상 이정표가 눈에 들어 와 더욱 반가운 봉우리가 되였다.

그 옥녀봉을 지나 계속 전진하니 잡목들이 등로를 가득 메우고 조금 더 내려가니 묘지들이 등로를 차지하고 있는 곳에 도착해 앞에 올려다 보이는 올라야 할 마루금을 바라 본다.

남성치로 내려 앉았다 올라야 할 깃대봉 넘어 이어지는 낙남정맥 마루금이 햇살에 반짝이며 이 산객의 마음을 조여 오지만 그것을 즐기기 위해 내려 왔기에 큰 부담없이 진행을 이어가 본다.

 

묘지 있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배낭을 메고 임도 같은 넓은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곧바로 포장도로가 지나는 삼거리 갈림길의 남성치에 도착해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본다.

하지만 커다란 빗돌에는 남성치 그리고 선동마을 들어가는 입구의 안내판에는 남성재란 글씨가 눈에 거슬리며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는 순간이다.

같은 지명 이름으로 적어 놨으면 더욱 좋았을 것을...

남성치는 구만면 화림리에서 개천면 나선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좌측으로 들어가는 선동마을의 입구이기도 하다.

화림리는 본래 고성군 구만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시 내원(화촌)과 외원(당산)마을을 병합하여 화림리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행정리로 신계, 화촌, 당산과 선동의 4개 마을이 있다.

그 중 이곳 남성치가 마을입구인 선동마을은 마을 뒤의 선박골의 풍경이 아름답고 자연용수가 약수로 이름나 있어 옛날에 선인이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다녀갔다는 유래로 마을명을 선동이라 하였으며 고려조 현종때(서기1018년)에는 진주군 양전면에 속하였으며 1895년(조선조 고종 32년)의 지방제도개정시 고성군 개천면의 나선리로 평입되었다가 1983년 2월 15일자 대통령령 제11027호로 구만면 화림리(선동)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마을이다.

선동마을은 구만면의 가장 오지마을로 면소재지에서 3km 거리이나 높은 재 너머에 있는 산골 마을로 동쪽은 가남산, 남쪽은 필두봉, 북쪽은 마봉산으로 둘러 싸여 있으며 동북쪽의 깃대봉(해발 520.6미터)을 경계로 마산시 진전면과 경계를 하고 있고 마을 주변의 산록지에 조성된 농경지는 천수답이 많으나 수원은 좋은 편이다.

또한 북쪽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나선리는 본래 창원군 진전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시 나동리와 선동리를 병합하여 나선리로 하여 고성군 개천면에 편입되었으며 1983년 2월 15일자 대통령령 제11027호로 나선리 선동이 구만면 화림리로 편입되고 지금은 나선리 나동마을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많은 자료를 찾아 남성치에 관한 내용을 알고 싶었지만 알지 못하니 아쉽기만 하다.

 

많은 사진을 남기고 이제 포장도로에서 선동마을 들어가는 입구 우측에 박혀 있는 빗돌 우측 넓은 임도를 타고 오르니 등로는 좌측으로 꺽여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지는데 잠시 올라 뒤돌아 보면 방금 전 내려온 옥녀봉쪽 봉우리가 아침 햇살을 받아 참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곧이어 나타나는 묘지지대를 통해 오르니 다시 넓은 임도같은 마루금이 펼쳐지는데 마루금 주위에는 너무나 멋진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하늘 높이 올라가 있다.

그 빽빽한 소나무 숲 앞 저 멀리에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도록 들어 와 또 다른 산행의 재미를 더해 주는 시간이다.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한동안 행복한 산행을 진해하니 이제 소나무가 점점 줄어 들면서 등로도 조금씩 가파라지기 시작하고 이제 코가 땅에 닿을듯 심한 오르막으로 변해간다.

힘이 들어 등로만 내려다 보며 걷고 있는데 오랫만에 거꾸로 깃대봉에서 내려오는 산님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늘 새벽 대구에서 홀로 내려와 낙남정맥 산행을 하고 계신 산객이다. 

서로에게 안전 산행을 빌어주고 다시 가쁜 숨 몰아쉬며 오르니 385봉에 올라 잠시 쉬어 간다.

어제 저녁에 마신 이슬이가 이제 완전히 몸밖으로 빠져 나간듯 술로 인한 어려움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시간이 되였다.

 

봉분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보이지 않는 묘지봉인 385봉을 지나 잠시 나즈막한 안부로 내려갔다 오르기 시작하니 등로 좌측으로 몇그루의 낙엽진 가시만 가득한 탱자나무들이 보이고 의아한 마음에 몇장 남겨 본다.

다시 이어지는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조금은 여유롭게 진행을 하니 420.4봉의 삼각점 봉우리가 나타난다.

혹시나 하여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벌밭들이다. 

왜 벌밭들일까 궁금하여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해 그 아래 마을인 주평리를 살펴 본다.

주평리는 본래 고성군 구만면의 지역으로서 단일 법정리로 형성된 마을로 옛날에는 원평동이라 하였는데 조선조 말엽에 유명한 학자인 박완천당선생과 노묵재선생 두분이 취석정(바위)에서 술잔을 취석 아래 찬샘에 띄어 놓고 대작하면서 서로 우정과 시흥을 돋우며 세상을 걱정하면서 심금의 회포를 펼친 곳으로 이 샘을 주천이라 하였으며 동명 또한 주천으로 고쳐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주평리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마을 이름들이지만 이렇게 정맥 상에 있는 고개나 봉우리 이름에 관한 자료는 부실해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벌밭들을 지나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바위지대가 나타나는데 그곳에 한현우님이 붙여 놓은 띠지에는 풀국새산이란 이름으로 되어 있다.

참으로 정겨워 보이는 산 이름인데 그 유래나 전설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계속 진행하며 등로 우측을 보니 우측의 깃대봉과 좌측의 적석산을 사이에 두고 저 멀리 고성군 회화면쪽 자수지와 골짜기가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저 끝자락 어딘가에는 늘 그리움을 묻고 사는 거제지맥도 보일 것인데 오늘은 너무나 강렬한 햇살로 인해 그 모습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나즈막한 그 봉우리를 넘어 전진하니 갑자기 등로 앞에 밤나무 단지가 펼쳐져 있고 등로는 그 밤나무 한가운데로 나 있다.

밤나무 단지 좌측 아래에는 예쁜 민가 한채도 보이는데 아마도 이 밤나무 단지의 주인이 살고 있는 집인듯 하다.

그 민가가 보이는 등로 좌측으로는 방금전 남성치에서 봤던 선동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잠시 다가가 바라보지만 길게 나 있는 골짜기이다 보니 자세한 모습은 아니다.

선동마을은 이미 위에서 자세한 내용을 기술했기에 여기에서는 생략하고 가기로 한다.

 

밤나무밭과 민가 그리고 등로 좌측으로 길게 뻗어 있는 선동마을을 바라보며 내려가니 민가 우측으로 등로가 열려 있고 조금 더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와 만나는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임도 좌측으로는 민가와 선동마을로 가는 길이고 정상 정맥 등로는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진행하면 되는데 아무래도 이상해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선동치이다.

혹시나 하고 선동치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하고 다시 천천히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한동안 진행하니 임도가 우측으로 약간 휘어져 가는 길목에 정상 낙남정맥 마루금은 좌측 능선쪽으로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은 곳으로 오르게 되어 있다.

 

이제부터 제법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된비알을 오르며 고도를 높혀야 하기에 땀방울이 비오듯 솟아지기 시작한다.

소나무가 빽빽히 들어찬 군락지를 타고 오르니 어느새 등로에 제법 큰 바위들이 박혀 있는 능선으로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게 된다.

그러다 다시 나타나는 아름다운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걸어가는 기분은 이 세상 최고의 시간이다.

세상사 시름 모두 버리고 잊으며 그저 발길 닿는대로 바람부는대로 무념으로 걸어 보는 시간이기에 또 시끄러운 세상으로 내려가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조금 더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범상치 않은 봉우리와 산줄기가 보이고 찾아보니 바로 적석산이다.

고성군 구만면과 마산시 진전면 일암리가 경계를 이룬 곳에 있는 적석산(해발 497미터)은 산의 형세가 마치 돌을 쌓아 올린 듯한 모양이어서 적석산으로 불리우며 쌓을 적자를 써서 적산이라는 별명도 있다. 비록 해발은 낮지만 오르는 곳마다 바위 전망대가 솟아 있어 산을 오르는 진정한 맛을 느끼게 하고 정상에 서면 첩첩이 쌓인 넓은 바위들이 산이름을 연상케 하며 고성 앞바다와 당항포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산이기도 하다. 솔잎이 무성한 소나무숲의 하산길을 걸으면 상쾌함이 온 몸을 감싸는 듯하며 인근 양촌리에는 온천단지가 조성돼 온천욕으로 산행피로를 풀 수 있다.
정상은 크게 3개의 봉우리로 나뉘어 지며 모두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데 커다란 암반으로 이루어진 정상 주위는 급경사를 이루고 있지만 대부분의 산능은 단순한 흐름과 더불어 부드럽다. 적석산의 머리는 넓은 반석으로 되어 있고 남북이 바위로 까마득하게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으며 벼락바위, 양산바위, 마당바위, 벽바위, 문바위, 알봉 등 갖가지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언젠가는 여유롭게 올라 오늘을 회상하며 즐긴 후 양촌온천에 들려 쉬었다 갈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래 본다. 

우측으로 펼쳐진 너무아 아름답고 멋진 적석산과 우측의 또 다른 깃대봉 그리고 그 사이로 나 있는 작은 저수지와 마을들을 조망하며 여유롭게 오르니 금새 520.6봉의 깃대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그 정상에서 조금 더 주위 풍경을 살펴보니 그저 환상이란 말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멍하니 한동안 머물다 어렵게 셀카 놀이를 하며 사진 한장 얻어 본다.

이곳은 실질적인 깃대봉이 아니고 그냥 520.8봉으로 불려야 옳다는 설이 많은 곳이고 실질적인 깃대봉 정상은 낙남 마루금을 타고 조금 더 진행해 만나는 봉우리가 520봉의 깃대봉이라는데 지도를 찾아보면 이곳의 해발고도가 528미터로 되어 있어 헷깔리는 곳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곳은 또한 우측으로도 띠지가 붙어 있지만 그곳은 적석산 가는 방향이니 낙남정맥을 이어가는 산꾼들은 좌측의 등로를 타고 진행해야 맞는 길주의 장소이기도 하다.

 

잠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다 보니 적석산 좌측 능선을 타고 내려가다 동쪽 저 멀리에 햇살이 비추는 남해바다가 보이고 지도를 꺼내 살펴보니 마산 앞바다쪽 당항만인 듯 하다.

박무가 드리워지기 시작해 줌으로 당겨보니 조금 더 선명한 풍경이 다가오고 그 아름다움에 취해 많은 사진에 담은 후 다른 풍경을 둘러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앞에 병풍처럼 가리고 있는 적석산에 오르면 더욱 선명한 그림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조금은 아ㅜ시운 마음이지만 그렇기에 다음에 다시 내려 와야 할 기회가 생긴듯도 하여 참아 본다.

적석산에 다녀오면 좋겠지만 이곳까지만 해도 오늘 여항산을 넘어 한치재까지 산행이 계획되어 있었기에 그냥 지나치기로 하지만 먼 훗날 반드시 다시 내려와 적산산을 중심으로 한바퀴 돌고 올라가리라 마음 먹어 본다.

 

이제 적석산과 남해바다를 조망한 후 지나온 낙남 마루금인 남서쪽을 바라보니 아스라히 멀어져 간 지나온 낙남정맥 산그리메가 아련하다.

벌밭들을 지나 남성치로 가라 앉았던 산세가 옥녀봉으로 올랐다 용암산으로 이어지고 다시 오늘 산행 들머리인 담티재로 내려 앉았던 산세가 필두봉으로 오르며 조금은 남성미 넘치는 풍경으로 변하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온다.

지나갈 등로는 멀고 두렵기만 하지만 지나온 마루금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우리의 산하이자 자연과 함께하는 이런 시간은 정말 꿈결같다는 생각이다.

 

북쪽으로는 이제부터 타고 올라야 할 암릉길과 함께하는 실질적인 깃대봉과 준봉산 산줄기가 시원하게 뻗어 있고 어서오라 이 산객을 부르고 있다.

준봉산을 넘으면 좌측으로 만수산 줄기가 잠시 정맥 등로와 헷깔리지만 독도에 주의하고 띠지를 잘 살피면 진행하는데에는 큰 어려움을 없을 듯 하다.

산행의 재미를 주려는지 진행하는 곳곳에 암릉과 전망바위가 있어 산행의 재미를 더해 주지만 늘 홀로가는 길이기에 언제나처럼 안전 산행에 대한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기도 하다.

이제 많이도 쉬었으니 다시 내려 놓은 배낭 둘러메고 520.8봉의 깃대봉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에서 우측의 적석산 방향의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낙남정맥 마루금을 타고 천천히 진행을 해 보는 시간이다.

 

좌측 등로를 타고 조금 더 전진하니 암봉이 등로를 가로막고 그 마위를 좌측으로 우회하며 조심스레 내려가니 다시 평이한 등로가 열려 있다.

하지만 금새 다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올려다 보는 실질적인 528봉의 깃대봉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와 있고 그 뒤로 머리만 내밀고 있는 준봉산이 또한 저 멀리 보이지만 진행하면 금새 도착해 이곳을 바라보며 추억하는 시간은 짧을 것이다.

이제 북동쪽 저 멀리로는 함안의 진산인 여항산이 아스라히 멀어 보이고 그곳으로 이어진 낙남정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넘실거리고 있다.

남동쪽으로는 여전히 마산 앞바다인 당항포쪽 은빛 물결이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고 늘어지지만 오늘 걸어야 할 거리가 제법 멀기에 아쉬움을 달래며 진행을 한다.

다시 등로 우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전망바위에 올라 바라보니 저 멀리 여항산을 지나 고봉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낙남마루금이 병풍처럼 다가와 있고 그곳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마루금이 산객을 부르고 있다.

바로 발 아래에는 마산시 일암리와 어젯밤 하루 묵었던 양촌리의 온천단지가 내려다 보인다.

일암리는 적석산 국수봉 자락에 위치한 마을로 뒤로 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으며 앞으로는 진전천이 흐르는데 그곳에는 일암제1소류지, 일암제2소류지가 있으며 벼농사를 주로 하는 배산임수형의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일암, 대방, 들땀(남안), 삼산동, 안땀, 안뻘(내평) 등이 있는데 들땀은 일암리에서 중심되는 마을로 들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남안이라고도 부른다.

그 뒤로 보이는 양촌리는 김포쪽에도 있는 마을 이름인데 이런 산촌에 온천지역이 크게 번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것도 큰 공부가 되였다. 

 

이제 등로 좌측으로는 다시 지나온 낙남정맥 마루금이 시원헤게 뻗어 멋진 조망을 제공하고 있다.

418.5봉 지나 남성치와 옥녀봉 그리고 용암산이 보이고 우측으로 내려가던 산줄기가 담티재를 넘어 좌측으로 올라쳐 내려가고 있다.

그러다 다시 우측 산줄기를 타고 사천땅으로 들어가며 희미한 박무로 인해 그 모습이 사라지는 장면에선 눈물이 날 정도로 지나온 추억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가슴에 떠오른다.

 

참으로 멋진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한동안 진행하다 전망바위에서 잠시 쉬며 우측 저 멀리 뒤돌아 보니 이제사 적석산의 본모습이 드러나며 그 위에 자리하고 있는 구름다리와 그 좌우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암봉들이 강렬하게 내려쬐는 태양의 빛을 받아 더욱 환상으로 빛나고 있다.

적석산의 머리는 넓은 반석으로 되어 있고 남북이 바위로 까마득하게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다.

깃대봉에서 적석산 주봉까지 약 1시간30분이 걸리는데 적석산은 이름 그대로 납작바위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처럼 보이는 산으로 그래서 쌓을 적자를 써서 적산이라는 별명도 있다.

온 산이 바위로 되어 있으며 기이하고 괴상한 바위와 돌들이 널려 있어 신기롭기만 한데 온 산의 바위가 수평으로 결(수평절리)을 이루고 있는 산이어서 결에 따라 넓은 너럭바위가 곳곳에 있어 또 신기하다.
적석산에서의 조망은 마산의 앞바다가 보이는가 하면 북쪽에 오봉산 동북쪽으로 여항산 서북산이 보이고 동쪽으로 광려산이 보이며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있는 마산의 무학산도 볼 수 있다.

서쪽으로는 고성의 연화산 학남산 무량산 대곡산이 줄줄이 보이고 남쪽으로 거류산 구절산 응암산이 보이며 통영의 벽방산도 보인다. 

다음에 반드시 내려와 적삭산을 가우데 두고 환종주를 하면서 저 구름다리를 걸어 보리라 마음먹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적석산 좌측으로 이제 조금 더 선명하게 내려다 보이는 마산 앞 남해바다가 산객을 부르고 있다.

몇년전까지 일 때문에 자주 내려와 이름없는 바닷가 횟집에서 잡어와 할머니가 내주는 시골된장 하나를 놓고 수많은 이슬이를 비웠던 시간들은 이미 먼 추억이 되어 버린 곳이다.

저 곳을 지나면 거제지맥이 자리허며 몇년전 고생한 무용담을 들려줄 것 같은 그런 착각에 잠시 더 쉬어 간다.

갈길이 먼 오늘 산행인데 이렇게 쉬며 놀며 진행해도 되는지 약간은 걱정도 되는 시간이지만 홀로 오르기에 부담없이 진행하기로 마음 먹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마음으로 인해 결국 오늘 산행은 기획. 테마 산행처럼 짧게 즐긴 산행으로 남겨졌지만 말이다. 

 

그렇게 즐기며 주위 풍경과 조망을 바라보며 진행하니 전혀 속도가 나질 않는다.

이제 마음속으로는 계획된 한치재까지 가야할 것인지 아니면 중간에서 끊어야 할 것인지 조금은 고민이 되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여항산을 오르게 되면 무조건 한치재까지 가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오곡재나 미산령에서 끊어야 할 것이다.

천천히 걷다보니 금새 진짜 깃대봉이 자리한 넓은 바위 전망봉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는 좌측 하산 등로로 이어지지만 우측 바위 지나 깃대봉 정상을 잠시 들려 본다.

잡목을 헤치고 들어가니 삼각점도 없고 아무 표식도 없는 정상에 단지 국가삼각점 함안-23호란 안내판만 잡목사이에 서 있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서는 삼각점을 봤기에 찾아 보지만 아쉽게도 오늘 이 산객의 눈에는 들어 오지 않는다. 

 

다시 전망바위로 나와 이제 우측 소나무 한그루 옆의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 낙남정맥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빛바랜 억새밭이 펼쳐져 있다.

그 억새밭을 지나니 다시 앞으로 올라야 할 아름다운 낙남정맥 마루금이 펼쳐져 있고 그 중앙 저 멀리 함안의 진산인 여항산이 길게 뻗어 있고 그 좌측으로 미산령도 보인다.

북쪽 바로 발아래에는 2번 지방도로가 지나고 그 넘어 좌측으로는 발산저수지가 푸른 물을 가득 머금은채 조용히 내려다 보인다.

그 넘어 우측으로는 다시 낙남정맥 마루금이 멋들어지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으로 돌아 지나가는 풍경이 멋지게 다가온다. 

 

그렇게 한동안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도 정맥 등로 만큼이나 멋진 산줄기 하나가 흘러 가고 있다.

처음에는 그 좌측 산줄기가 혹시 정맥 등로가 아닐까 생각해 봤지만 지도를 놓고 독도를 해보니 그곳은 서쪽으로 돌아 남쪽으로 내려가는 별 특징없는 이름없는 산줄기였다.

평이한 등로에서 갑자기 바위들이 등로를 가로막고 있는 지대를 넘으니 큰 바위 하나가 보이고 그 위에 준봉산이란 정상석 하나가 박혀있다.

준봉산 우측 아래에 있는 봉암리는 깃대봉(기대봉) 자락에 위치하여 고도가 높은 편이며 마을 앞으로 진전천이 흐르고 봉암소류지가 있으며 벼농사를 주로 하는 배산임수형의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봉암(봉바우) 등이 있는데 봉암은 봉황처럼 생긴 봉바우가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으로 봉바우 또는 봉암이라 하였으며 후에 봉암리가 되었다.

준봉산이란 이름은 있는데 그 산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으니 아쉬운 시간이다.

 

준봉산에서 많은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등로 좌측으로 서쪽을 바라보니 만수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중천에 떠 있는 햇살을 받아 아름답다.

그 뒤 우측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타고 진행하면 진주시 이반성면이 나올 것이지만 오늘 이 산객에게는 그저 상상의 등로가 되어 있는 곳이다.

처음에는 혹시 저 산줄기는 아닐까 생각해 봤지만 역시 독도를 해 보니 정상 정맥 등로는 직진하다 우측으로 꺽여 진행하는 것이 맞다는 결론이다.

그저 아름다운 풍경을 친구 삼아 이렇게 자연의 품에 안겨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다.

 

조금 더 위치를 바꿔 등로 좌측인 서쪽을 다시 바라보니 이제 만수산이 시원하게 조망되고 그 뒤로 펼쳐진 끝없이 이어진 산그리메가 환상이다.

우측으로는 발산리가 그리고 좌측으로는 나선리가 보이는 풍경이지만 좁고 짧은 평야를 제외하면 온통 넘실거리는 산줄기에 파란 물을 간직한 작은 저수지가 전부이다.

저 멀리 희미하게 지나 온 낙남정맥 마루금도 보이는 듯 한데 그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니 안타까운 시간이기도 하다.

 

만수산 줄기 좌측으로는 나선리 수동마을이 바로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이고 그 마을 상부에는 민가와 함께 작은 저수지가 조용히 앉아 있는 풍경이 보인다.

좌측의 용암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우측의 만수산 산줄기를 두고 그 사이에 위치한 수동마을, 이 산객이 태어나 자란 시골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은 광경이다.

나선리 수동마을은 본래 창원군 진전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시 나동리와 선동리를 병합하여 나선리로 하여 고성군 개천면에 편입되었으며 1983년 2월 15일자 대통령령 제11027호로 나선리 선동이 구만면 화림리로 편입되고 지금은 나선리 나동마을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동마을은 나동과 수동(산수가 좋아 장수한다하여 지어진 이름임) 마을로 형성되어 있으며 나동은 밀성박씨 선조께서 갑자사화(1504년)때 참판으로 내직하다가 이곳에서 피신중 정착하여 그 후손이 지금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수동은 전주이씨 선조께서 같은 시기에 이곳에 피신하여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수산은 마을 북쪽에 있는 기암괴석이 많은 명산으로 옛날 천지가 개벽할때 산이 물에 다 잠기고 산 정상만 남아 이곳에서 만명의 생명을 구하였다하여 만수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참으로 좋은 산이지만 다시 내려 와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기약없는 만남이 되여 버렸다.

 

한동안 준봉산 정상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배낭 메고 전진하니 잡목지대가 나타나고 어렵게 그 잡목지대를 통과하니 바위 전망대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잠시 등로가 헷깔려 지도를 펴 놓고 주의깊게 독도를 해보며 마루금을 살펴보니 정상 등로는 바위전망대에서 우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는 방향이다.

이곳 바위 전망대가 삼거리 갈림길로서 등로 좌측으로도 뚜렷한 등로가 나 있고 특히나 그쪽으로도 몇개의 띠지들이 달려 있어 더욱 헷깔렸던 전망대였다.

북동쪽을 바라보니 이제부터 다시 진행해야 할 마루금 좌측으로 발산저수지가 보이고 그 저수지 우측의 나즈막한 마루금을 타고 진행해 좌측으로 흐르고 사진의 중앙부에서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크게 꺽여 오늘 이 산객이 산행을 종료한 오곡재 넘어 미산령을 통과하면 우측 중앙의 평퍼짐한 산처럼 보이는 여항산이 시원하게 보인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다시 잠시 더 쉬어 간다.

   

이제 바위전망대를 출발해 우측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활엽수와 잡목들이 어우러진 등로가 이어지고 조금 더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바위 전망대가 나타나 들어가 보니 등로 좌측으로 2번 지방도로를 타고 들어 가 저 멀리 진주시 이반성농공단지쪽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바로 눈 앞으로는 2번 지방도로 지나 발산저수지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또한 그 발산저수지 넘어 저 멀리로는 여항산까지 이어지는 낙남정맥 마루금이 아스라히 펼쳐져 있다.

다시 정상 등로로 복귀해 내려가니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계속 진행하니 다시 나즈막한 봉우리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우측 능선을 올려다 보니 방금 전 지나온 준봉산과 깃대봉쪽 마루금이 멋지게 펼쳐져 있다.

 

잠시 더 주위 조망과 깃대봉 능선을 담은 후 내려가니 거대한 암봉이 있는 전망대에 도착해 다시 급한 마음과는 달리 여유있는 발걸음은 쉬어가지 자리를 잡는다.

등로 우측으로는 2번 지방도로쪽 봉암리가 내려다 보이고 북동쪽으로는 이제 진행해야 할 멋진 낙남정맥 마루금이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바위 위에 다시 올라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주위 풍경과 진행해야 할 낙남 마루금을 바라보니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스스로도 믿기지 못하는 시간이다.

그러다 바위를 보니 마치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지도를 닮은듯 보이기도 한다. 

 

그 전망바위에서 많은 시간 보내며 다시 멋진 조망과 풍경을 담은 후 바위를 내려 와 조심하며 전진하니 다시 멋진 등로가 열리면서 등로 주위로는 아름다운 활엽수가 자라고 있다.

조금 더 전진하니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지나 앞으로 올라야 할 326봉쪽 봉우리를 바라보며 내려가게 된다.

조금 더 내려가니 차량 통행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2번 지방도로와 그 좌측 저 멀리 발산저수지가 아주 가깝게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더 내려오니 어느 선답자들은 2번 지방도로를 건너기 위해 지하통로를 통해 건넜다는 산행 후기를 읽었는데 이제는 2번 지방도로 위로 동물이동통로가 생겨 지하통로로 내려가 건널 필요없이 그냥 통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려가다 앞을 보니 326봉이 가깝게 올려다 보이는데 보기보다는 제법 가파른 등로이기에 굵은 땀방울을 흘려야 오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려가 콘크리트 수로를 만나고 그곳을 건너 내려가니 다시 초록 철조망을 타고 내려가 동물이동통로 위를 통해 2번 지방도로를 무탈하게 건넌다.

 

동물이동통로를 통해 4차선 2번 지방도로를 건너니 옛날 2번 지방도로로 내려서고 그곳에서 도로 좌측의 비포장 임도 끝자락에 있는 발산저수지를 담은 후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더 오르니 전봇대 몇개가 서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옛발산휴게소 들어가는 도로 갈림길이 보인다.

계속 도로를 타고 직진으로 전봇대를 지나 걸어가니 마산시와 진주시의 경계를 표시하는 표지석이 서 있고 도로 좌측으로 흉물스럽게 비어 있는 옛날 발산휴게소 건물이 나타난다.

잠시 옛 영광이 그리워 안타까움을 표하는 듯 무심하게 널부러져 있는 의자며 탁자를 바라보며 조금 더 진행하니 다시 휴게소 건물 뒤로 나 있는 도로를 만나 우측으로 도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본다.

 

도로를 타고 진행하니 다시 도로 좌측으로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 주위에는 많은 띠지들이 붙어 나풀거리고 있다.

예전에 그곳에는 화장실 건물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그 화장실 건물은 사라지고 조금 더 진행해 들어간 곳에 두개의 장승이 서 있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좌측 능선을 타고 마루금이 열려 있다.

그곳 장승에는 깃대봉 3.7 Km 걸어 왔고 또 오곡재까지 8.8 Km 남았다는 이정표 밑에 발산재란 글씨가 눈에 들어 온다.

발산리는 1914년 진주군 가수개면 돈두동과 계룡동 각 일부와 마산부 양전면 발산리로서 발산리라 하였는데 외동, 내동, 시동 등으로 구분되며 주된 성씨는 상산 김씨, 진양 정씨, 양 성이 300년 전부터 자리 잡고 살고 있으며 김씨는 우사정의 재실이 있어 조선 시대 서당으로 존립하다 소실되고 그 후 맞은편에 복원하여 근방 젊은이들이 많이 배웠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때 업적을 남긴 김준민 장군의 업적이 담긴 신도비각을 70년 전 후손들이 뜻을 모아 건립하였는데 70년대 초에 문공부의 지원으로 복원, 합천군 가희면 목골에는 초혼장의 무덤이 있고 배위는 진양 강씨로 의령에 있는 묘지를 70년 초 비각 중수 시 장군 옆으로 옮겨 그 내용의 비문을 비각 경내에 별도로 추가하였다.
발산마을은 창원군과 경계 지점이고 국도가 고개를 넘는 곳으로 동명을 발산이라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전쟁이 일어나면 크게 발대를 막고 승패를 짓는 곳이라고 하여 인위적으로는 대단위 호수를 막고 살아야만 지명과 전설이 일치한다고 하였다.
지금은 맞은 산과 산 사이를 높게 제방을 쌓아 대단위 저수지를 축조하여 농업용수 및 항구적인 한해 대책으로 인근 길성, 가산, 대천, 반성, 사봉, 진성면에 이르기까지 큰 혜택을 보고 있다.

다양한 그 고장 전설과 유래를 찾아 보는 재미 역시 쏠쏠하기 그지 없다.

 

발산재의 장승이 서 있는 공터에서 능선으로 오르며 다시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이 이어지는데 산 전체는 온통 멋진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 차 있는 산이였다.

숨이 가빠올 정도의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다시 굵은 땀방울을 흘리다 보니 어느새 능선 안부에 도착을 하고 조금 더 오르니 몇기의 묘지들이 줄지어 늘어선 지역에 도착을 한다.

그 묘지 지역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 다시 무명봉을 오르락 내리락하니 정상이 평평한 무명봉의 벤취가 보이는 정상에 올라 잠시 쉬어 간다.

그 벤취봉을 지나 평이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짧은 가파른 등로를 타고 올라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무명봉을 지나 다시 약간의 잡목 지대를 지나니 봉분이 없는 묘지공터에 도착해 물 한모금 마신 후 출발한다.

 

봉분이 없는 공터 묘를 지나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이 서 있고 다시 빼곡히 들어 선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무심으로 전진한다.

그렇게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묘지가는 길을 막아 놓은 테이프 금지선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니 다시 너무나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가 열려 있다.

그 아름다운 등로를 지나 진행하다 등로 우측 앞을 바라보니 이제 여항산이 제법 가깝게 다가와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 우측 아래로는 평암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저수지 주위로 민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도 정겹기만 하다.

평암리 미천마을은 마산시에서 25km 지점에 있으며 마을 앞 당산에 평바위가 있어 평암리라 불리며 아름다운 냇가가 있어 미천이라 불린다.

마을 앞에는 커다란 평암 저수지가 있고 동쪽으로 는 서북산, 남쪽으로는 인성산, 북쪽으로는 여항산이 병품처럼 둘러싸인 산촌마을이다.

보는 거만으로도 참으로 아름다운 마을인데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다시 사면길로 나 있는 마루금을 타고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평암저수지가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고 사진 한장 남기고 계속 전진해 걸어간다.

진행하다 등로 우측을 보니 바로 아래에 비포장 임도가 마루금과 평행을 그리며 계속 따라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조금씩 고도를 높여 진행하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온 마루금이 환상이다.

그렇게 계속 전지하니 바로 우측 아래로 따라오는 비포장 임도와 나란히 하는 마루금 위에는 너무나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소나무 오솔길이 나 있고 무심으로 그 마루금을 따라 걸어 간다.

   

그 오솔길 같은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는 마루금을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 소나무 가지 사이로 지나온 등로가 시원하게 조망되기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 그 아름답게 빛나는 지나온 마루금을 담아 본다.

등로를 따라오던 임도가 시원하게 보이고 그 임도 우측 능선으로 지너온 마루금이 이어지며 저 멀리 깃대봉까지 조망된다.

두발로 걸어 온 마루금이기에 머릿속에 기억된 등로를 꺼집어 내 다시 복귀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말로 표현은 안해도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한 마루금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다시 이어지는 넓은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게속 완만한 오르막을 오른다.

그러다 다시 나타나는 멋진 소나무 등로와 잡목이 어느정도 어우러진 등로를 타고 지루하다 싶은 등로를 타고 계속 걸어 본다.

그렇게 진행하다 외곡고개는 언제 지났는지도 모르게 지나쳐 계속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한다.

그렇게 진행하니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갑자기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나고 그 가운데에 좌측 등로를 가리키며 영봉산 1.6 Km란 이정표가 서 있다.

좌측으로 들어가면 영봉산 가는 등로이고 정상 정맥 마루금은 우측 능선쪽으로 오르며 진행해야 하는 길주의 장소이다.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적당한 억새와 잡목 그리고 소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등로를 타고 오르게 되고 벌목된 나무들이 등로에 너부러져 썩어가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나즈막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363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를 넘어 계속 북동진으로 진행되고 다시 봉우리 하나를 우측에 두고 좌측 사면 등로를 타고 진행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계속해 봉우리 두개가 연이어 서 있는 영봉산이 따라 온다.

다시 무명봉을 넘어 진행하여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몇기의 묘지들이 있지만 이장을 하였는지 모두 파헤쳐진 모습으로 볼썽 사나운 풍경이다.

 

다시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특별한 특징이 없는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대로 나타나는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한다.

무명봉을 넘고 잡목지대를 지나며 다시 만나는 소나무 군락지를 통과해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 언젠가부터 다시 비포장 임도가 따라오고 잠시 가까워진 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가 그 임도를 담아 본다.

아마도 우측으로는 마산지 진전면의 고사리 마을이고 좌측으로는 진주시 이반성면의 하곡리가 있는 가운데 등로를 타고 진행하는 듯 그런 느낌이다.

 

다시 잡목과 소나무가 적당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등로를 타고 사면길도 걸으며 지루한 걸음을 이어가니 고사목들이 등로 주변에 너부러진 풍경을 지나 너무나 붉고 아름다운 적송 지역을 통과한다.

제법 넓은 공터에 올라 잠시 숨한번 크게 쉰 다음 많은 띠지들이 등로 위에 매달려 나풀거리는 풍경도 담으며 걷다보니 별 특징 없는 큰정고개 넘어 눈 앞에 갑자기 거대한 봉우리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이제 막 527봉 넘어 오곡재 지난 557봉이 눈 앞에 다가왔는가 보다 하고 생각을 했지만 527봉을 넘은 기억이 없기에 갑자기 두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오늘 산행은 오곡재에서 마무리 하기로 결정을 해 버린다.

 

이제부터 527봉 오르는 된비알로 들어서며 온 몸의 기와 힘이 쭉 빠짐을 감지한다.

조금은 가파라진 오르막 등로를 타고 코가 땅에 닿을 듯 오르니 금새 무명봉에 도착을 해 우측 사면 등로를 타고 이어가게 된다.

잠시 그림같은 소나무 군락지가 열리는가 싶더니 봉분이 없는 무명 공터에 도착해 잠시 쉰 다음 잡목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등로를 타고 전진한다.

한동안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소나무 군라기로 들어가 그 나무들 사이로 진행하다 보니 다시 등로는 더욱 가파른 경사된비알로 변하며 군데 군데 바위 암릉들도 나타난다.

거대 암봉이 등로를 막고 있어 우측 사면 등로를 이용해 오르는 시간은 참으로 야속하고도 너무나 고통스런 시간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한동안 올라 527봉 정상부 직전 바위 전망대에 도착을 하고 이제 허기가 지기 시작해 시간을 보니 오후 1시 10여분을 넘기고 있다.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전망 바위에 앉아 준비한 도시락과 복분자 한잔으로 허기를 달래며 많은 시간 쉬어 간다.

 

맛난 점심식사를 즐기며 내려다 본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의 유래는 인조대왕이 능양군으로 있을 때 고성에 있는 심부원군 배알차 미복으로장안산을 지날때 산세가 수려하여 산중 암자에 국난을 타개하기 위한 기도를 올리게 된 것이다.
그 후 동명을 임금이 머물던 곳이라 하여 장안리하고 하였고 1914년 진주군 이반성면 후촌동, 장안동, 반덕동, 사령동, 평촌동 각 일부로서 장안리라 하였다가 장안리는 사령, 반덕, 검정마을로 분리되었다.

아름답게 펼쳐진 장안리의 구석 구석을 사진으로 남긴 후 다시 배낭 둘러메고 출발하니 벌목되어 썩어가는 나무들이 너부러져 있고 약간의 바위들이 섞여 있는 오르막 등로르 타고 오르니 여항산까지 5.20 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이정표를 지나자마자 약간의 공터 옆 나뭇가지에 한현우님이 삼계봉 523봉 삼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띠지를 달아 놓았다.

이곳이 바로 지도상에 나타나 있는 527봉 직전의 삼거리 갈림길로서 등로는 북쪽으로 진행하던 방향을 급하게 90도 바꿔 동쪽으로 진행하게 되는 장소이다.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바위가 있는 등로를 지나니 군북면 오곡리 방향으로 수확을 끝낸 제법 넓게 보이는 황톳빛 농토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잠시 더 조망을 즐겨 보지만 잡목에 가려 조금은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꼬부랑 도로와 오곡리마을 그리고 그 우측 뒤로 미산령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 마루금이 시원하다.

 

그렇게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전진하니 낙엽진 잡목 사이로 등로가 열려있고 완만한 오르막 경사로가 이어진다.

나즈막한 봉우리로 오르며 등로 좌측을 바라보니 오곡재 들판 좌측 넘어로 진주의 오봉산 줄기가 시원하게 다가온다.

이제부터 다시 능선에 자라고 있는 거대한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나름 운치있는 등로를 타고 전진하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시작되고 다시 그 등로는 잡목이 채우고 있다.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걷다보니 삼각점번호 함안 414란 안내판에 해발고도 524.4미터라 적혀 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한다.

이 봉우리에는 삼각점이 박혀있고 삼각점 안내판이 서 있으며 그 옆에는 나무 벤취가 설치되어 있다.

지도를 꺼내 살펴보니 이곳이 지도상에 나와있는 527봉이 아닐까 생각되는 장소이다.

  

잠시 524.4 봉에서 쉰 다음 다시 출발해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오곡재를 넘나드는 지방도로가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에는 다음 구간 올라야 할 557봉과 미산령 그리고 그 우측 능선을 타고 743.5봉 지나 함안의 진산인 여항산이 아주 가깝게 올려다 보인다.

이곳에서 잠시 고민을 해 보지만 어짜피 오곡재에서 끝내려고 마음 먹으니 갑자기 두 다리에 힘이 빠지며 더 진행하려는 의지도 꺽이고 만다.

무리를 한다면 지금부터 4시간 정도 더 걸려 계획된 한치재까지 갈 수는 있을 듯 하지만 너무 무리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또한 많이 호전은 되였지만 병상에 누워계신 어머님이 이 산객을 찾는다는 소식에 시간은 이르지만 이곳 오곡재에서 오늘 산행을 접기로 하고 택시를 부른다.

 

능선상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그 등로 주변으로 멋진 소나무들이 도열해 반겨주고 그 아름다움에 취해 아무 생각없이 걷다보니 이 산객이 자연에 동화된 듯 그런 느낌이다.

계속 눈에 들어 오는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낙남 마루금을 바라보며 이제부터는 느긋하게 걷다보니 지난 시절 사업으로 인한 함안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피식 웃어 본다. 

다시 생각보다 먼 오곡재를 향해 소나무 숲 사이를 걸어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드디어 차량 소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잃어가는 두 다리에 힘을 주며 마지막 투혼을 불사른다.

 

다시 잡목과 소나무가 적당히 혼재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돌담이 쌓여 있는 집터같은 곳을 지나니 곧바로 여항산 3.74 Km 및 오봉산 3.6 Km란 이정표가 서 있는 비포장 임도의 오곡재에 도착해 배낭 정리하고 몇장의 사진을 찍은 후 콜한 택시를 기다려 본다.

아마도 다음 구간 산행은 다음주나 아니면 그 사이에 조만간 내려와 다시 함안의 진산인 여항상과 마산의 진산인 무학산을 함께 넘어 걸어갈 것이다.

 

오곡은 오실이라 불리워 졌는데 신라말엽 고운 최치원선생이 어린시절 어머님을 모시고 이곳을 지나던중 피로하고 배가고파 뒷산에서 쉬고있는데 어디선가 까마귀가 날아와 하늘위로 빙돌돌다가 선생앞에 닭고기를 물어주고 갔다하여 오곡이라 불리웠다고하며 오곡 마을 뒷산의 생김새가 까마귀 두 마리가 깃을 펴고 나는듯한 형상을 하고있다하여 한강 정구선생이 오곡이라 이름지었 다고도 하는 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오곡의 자연부락중 골말은 먼저 형성된 마을로서 원래 고마을(고촌)이었다고 하며 새말은 맨 나중에 형성된 마을이라 새말(신촌)이라 불러진다.

 

오곡재 우측 임도를 타고 300여 미터 내려가면 그곳부터는 포장된 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타고 내려가면 마산시 합포구 진전면의 양촌리 대정마을에서 여양리 둔덕마을까지의 골짜기 안 10개 마을을 통칭하는 산서가 있으며 6.25 한국동란 때 인민군 6사단 보급창고가 있었고 한때 양민 학살이 자행되였던 유래를 알 수 없는 둔덕마을의 옛 이름인 비실이란 마을이 있는 곳이다.

다만 자료를 찾다보니 이곳의 행정구역도 이제 많이 변해 그 변화된 행정 구역에 맞게 이정표도 바꿔야 이곳을 지나다니는 행인들이나 산을 타는 산꾼들에게 옳바른 정보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 산서와 비실 마을을 통해 산행 들머리인 담티재로 돌아가 애마를 회수한 다음 양촌 온천마을로 가 샤워를 하고 서울로 복귀하니 또 하루가 지나고 있다.

 

다음 구간도 멋지고 아름다운 산행을 꿈꾸며 산행 후기를 마무리 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