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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경상도 산

남해 금산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09.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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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남 남해군 금산 일대

산행일자 : 2009년 4월 26일

산행날씨 : 맑고 화창한 초여름 날씨

산행온도 : 영상 14도에서 영상 25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남해지맥 가마봉 갈림길인 666.4봉-보리암-쌍홍문-제석봉-금산산장-좌선대-상사바위-단군성전-

               금산 망대-단군성전-화엄봉-보리암-666.4봉

산행거리 : 약 4.0 Km

산행시간 : 놀며 쉬엄 쉬엄 사진 찍고 약 3시간

 

 

남해의 보물 금산과 보리암에서 즐긴 시간들

 

 

남해지맥이란 멀고도 힘든 산행을 하면서 그 옆자락으로 살짝 비켜 서 있는 남해의 진산인 금산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666.4봉에서 금산으로 향한다.

산행기를 읽어 보니 널널하게 쉬면서 즐긴다 해도 2시간에서 3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계산이 있기에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만들어 본 것이다.

처음에는 남해지맥 완주 후 다시 이곳으로 돌아 와 올라 보리라 마음 먹었지만 여의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며 또한 남해지맥이 바다에 빠지는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금산 둘러보는 재미가 반감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작용한 탓도 있다

 

남해지맥의 금산 분기점인 666.4봉에서 바라 본 금산의 기암괴석과 보리암

 

새벽같이 일어나 보리암 제1주차장으로 애마를 몰아 달렸지만 예상보다 늦게 먹은 아침밥으로 인해 넓은 임도를 타고 남해지맥 분기점에 도착하자 벌써 일출은 시작되고 그 찬란한 빛을 뒤로한채 어둠속 능선 위 잡목 사이로 몸을 숨기기에 바쁘다.

한동안 순천바위를 지나 등로를 가득 메운 잡목을 헤치며 등산복이 찢겨지는 아품속에 드디어 금산 분기점인 666.4봉에 안착해 바라보는 금산과 남해안 성주 해수욕장 그리고 미조항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좁은 등로를 타고 진행하다 갑자기 나타나는 방화선 같은 넓은 임도를 타고 언덕에서 바라 본 금산과 보리암

 

좁은 등로를 타고 진행하다 앞을 보니 조금 더 가까워져 있는 금산의 기암절벽 위에 고즈넉하게 앉아 있는 보리암이 산객의 발길을 붙잡고 잠시 쉬어가라 재촉한다.

벌써 머리 위에서 쏫아지는 햇살이 온몸에 땀방울을 적시고 갈증을 해소할 겸 잠시 바위에 앉아 그 아름다운 절경에 취해 본다.

 

남해지맥 금산 분기점인 666.4을 뒤돌아 본 모습

 

그러다 문득 뒤돌아 보니 지나온 등로를 밝히는 아침 햇살은 온세상을 향해 그 넓이를 넓혀가고 전신주 위에도 그 햇살을 비추고 있다.

푸르름은 이제 성하의 계절을 향해 줄달음 치듯 빠르게 변해가고 그 변해가는 푸르름 속에 내마음도 살짝 내려 놓아 본다.

힘들거나 어렵다는 생각보다는 금산에서 바라보는 미조항의 모습은 또 어떤 모습일지 더 궁금증을 자아내는 시간이다

 

한동안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이런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남해의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좁은 등로를 지나니 이제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흡사 방화선처럼 생긴 그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작은 언덕을 넘어 금산이 눈앞에 보이는 장소에 도착한다.

이제보니 이곳은 넓은 공터로 좌측 가장자리로 자리를 옮기니 그곳에 또 하나의 천상의 아름다움이 내려다 보인다.

남해의 다도해가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흡사 그림을 그려 놓은듯 절경이다.

 

이제 금산 입구에 있는 보리암 가는 시멘트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초파일이 얼마 남아있지 않은 듯 등이 길게 걸려 있다.

 

그 비포장 임도를 한동안 진행하니 산객 앞에 철조망이 굳게 잠겨 있고 그곳을 우회하여 조금 더 전진하니 우측 시멘트 임도와 만나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자세히 보니 보리암 제2주차장과 연결되는 시멘트 임도로서 많은 여행객들이 그곳 산중턱의 주차장까지 애마를 몰아 오른 후 걸어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부처님 오신날이 얼마 남지 않아 그런지 생각보다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인파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보리암 가는 길에 처음으로 만난 금산의 기암괴석들 

 

가파른 언덕을 넘어 땀방울이 다시 이마에 맺힐쯤 한려해상국립공원 입간판이 보이고 살펴보니 좌측으로 보이는 남해바다의 상세 안내도가 실려있다.

월산 박영윤님이 쓴 금산 상사바위에 관한 시문도 있고 시인 이성복님이 적어 놓은 남해 금산이란 싯귀도 보이는 곳에서 보리암 뒷편으로 서 있는 기암괴석을 처음으로 잡아 본다.

많은 여행객들도 이곳에 모여 사진 찍으며 추억 만들기에 분주한 시간이다.

 

금산 보리암 가는 임도에서 내려다 본 남해지맥 마지막 미조항쪽 능선이 아름답다 못해 가슴 시리도록 만든다.

 

풍경 사진 몇장 남기고 보리암쪽으로 진행하니 이제 좌측으로 미조항 넘어 남해 바다에 촘촘히 떠있는 호도와 애도를 비롯한 많은 섬들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사람 사는 평화로운 모습을 한 상주 해수욕장도 보인다.

잠시 디카에 그 아름다움을 담아 보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것만큼은 아님을 알기에 그저 추억거리로 남길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다.

 

보리암과 그 뒤에 서 있는 촉대봉 및 대장봉이 환상의 풍경으로 산객을 맞이해 주고

 

많은 여행객들로 붐비는 보리암 종무소와 만불전을 돌아보며 바라 본 보리암과 그 뒤에 버티고 서 있는 대장봉과 촉대봉이 멋지다.

대장봉은 금산 보리암 바로 뒤에 우뚝 솟은 큰 바위로서 웅장하고도 위엄있게 창공을 찌르고 서 있는 모습이 대장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대장봉 왼쪽에 용호농주형의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있으면 반드시 별 넷의 대장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향로봉 옆에 있는 촛대 모양의 작은 바위는 원효, 의상, 윤필 세 대사가 기도를 올릴 때 촛대로 사용했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이다.

 

만불전 앞에서 바라 본 풍경 또한 절경이다.

 

 

 

보리암을 둘러보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기암괴석을 둘러볼 차례이다.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금산 남쪽 봉우리에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다.

683년(신문왕 3) 원효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 초암의 이름을 보광사라 지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연 것에 감사하는 뜻에서 1660년(현종 1) 왕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 이름을 금산, 절 이름을 보리암이라고 바꾸었다.

1901년과 1954년에 중수하였고, 1969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전국의 3대 기도처의 하나이며 양양 낙산사 홍련암(강원문화재자료 36), 강화군 보문사와 함께 한국 3대 관세음보살 성지로 꼽힌다. 
현존하는 건물로 보광전, 간성각, 산신각,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있고, 문화재로는 보리암전 삼층석탑(경남유형문화재 74)이 있다.

이외에 큰 대나무 조각을 배경으로 좌정하고 있는 향나무 관세음보살상이 있으며 그 왼쪽에는 남순동자, 오른쪽에는 해상용왕이 있다.

일설에 따르면 이 관세음보살상은 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발췌)

 

보리암을 떠 받치고 있는 바위 넘어 저 멀리 금산 분기점인 666.4봉의 인공물이 보인다.

 

 

 

거대 불상 뒤로 보리암 건물과 바위가 보이고

 

천인단애 위에 보리암전 삼층석탑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탑이 서 있어 이 절벽을 탑대라 한다.

보리암 바로 밑에 있으며 전망이 좋아 봄철의 푸른 나뭇잎과 가을 단풍 경치는 천하절경이라 할 만하다.

가장 탐방객들이 많이 모여드는 자리다.

보리암전 삼층석탑은 지방유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되어 있다.

 

 

쌍홍문

상주 쪽에서 금산 상봉에 이르는 암벽에 두 개의 둥글고 큰 구멍이 문 모양으로 나란히 있는 돌문이다.

이 속에 들어가 보면 속이 비어 있고, 천장 벽에도 구멍이 뚫어져 있어 파란 하늘이 잡힐 듯이 보인다.

옛날 세존이 돌배를 만들어 타고 쌍홍문으로 나가면서 앞바다에 있는 세존도의 한복판을 뚫고 나갔기 때문에 세존도에 해상동굴이 생겼다고 전해온다.

 

 

 

 

 

상사바위는 장한 바위도 볼거리지만 바위 위에서 보는 남해 다도해의 풍광은 천하일품이다. 주인 딸을 사랑하다 죽은 슬픈 사랑이야기, 과수댁이 총각의 상사를 풀어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들려오는 곳이다.

 

상사바위 입구 오른쪽에 있는 여덟 개의 바위를 팔선대
서 있는 모습이 여덟 신선들이 춤추는 모양이라고 한다.

 

구정바위 

상사암에 구정암이 있다. 상사암에 이어진 바위에 아홉 개의 확(홈)이 있어 빗물이 고이면 마치 아홉 개의 샘처럼 보인다 하여 생겨난 이름이다. 세어보면 실제 동글동글한 구멍이 아홉 개도 더 되는 듯 싶다. 구정암의 물은 바로 상사풀이할 때 썼던 물이라고 한다. 이 물로 세수를 하면 그 날 재수가 좋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숙종 때 남해로 귀양왔던 약천 남구만 선생은 이 구정암을 보고 몇 해 동안 이 아홉 개 샘을 팠으랴"하고 감탄했다.

 

 

일월봉 

화엄봉 왼쪽에는 세 개의 바위가 층암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제석봉 가는 길에서 가깝게 보면 맨 위의 바위가 보이지 않아 일(日)자형이고 탑대에 올라 전체를 멀리서 보면 월(月)자형으로 보여 일월봉이라 한다.

 

 

대장암

금산 보리암 바로 뒤에 우뚝 솟은 큰 바위로서 웅장하고도 위엄있게 창공을 찌르고 서 있는 모습이 대장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대장봉 왼쪽에 용호농주형(龍虎弄珠形)의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있으면 반드시 대장(大將)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만장대

탑대 서남쪽 깎아 세운 듯 천인 단애를 이루고 있는 절벽.
높이가 만장이나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쌍홍문의 오른쪽에 있다.

 

 

향로봉

삼사기단 왼편에 있으며 마치 향로와 같다고 해서 향로봉이라 부르며 원효, 의상, 윤필 세 대사가 촉대와 함께 향로로 썼다는 전설이 있다.

 

 

 

 

망대를 오르는 계단을 마주하고 있는 정상 길목을 지키는 바위다. 명필바위라고도 한다. 문장암은 남해금산의 정상에 있다. 조선 중종 때 대사성을 지낸 한림학사 주세붕선생이 전국을 다니며 풍류를 즐기다가 남해에 있는 금산이 명산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금산의 쌍홍문을 통하여 이곳 정상까지 올라와 보니 과연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신비로운 전설이 가득함으로 감탄하여 자연암
자연암에다 '유홍문 상금산 由虹門 上錦山' 이라는 글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주세붕(1495-1554)은 조선전기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본관은 상주(尙州)이고 자는 경유(景游)이며 호는 신재(愼齋). 1522년(중종17) 생원시에 합격하고 같은해 별시문과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로 관직을 시작했다. 1541년에 풍기군수가 되어 풍기지방의 교화를 위하여 향교를 이전하고 사림 및 그들의 자제를 위한 교육기관으로 1543년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 : 소수서원)을 건립했다. 이 서원이 우리나라 서원의 시초이다. 홍문관, 성균관 등 학문기관에서 관직을 맡았고 지방관으로 나가서는 교학진흥을 통한 교화에 힘썼다.

 

금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이며 이 곳에 오르면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인 금산과 남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와 그 광활한 경치가 황홀하다. 장엄한 남해의 일출을 보러 수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 오르면 일망지하(一望之下)에 금산 삼십팔경과 금산을 에워싼 만경창파를 한 눈으로 굽어 볼 수 있다. 이곳에는 고려시대부터 사용했던 봉수대(熢燧臺)가 그대로 남아 있다. 사방조망(四方眺望)이 비길 데 없이 넓고 아름답다

 

 

대장봉과 농주암의 왼쪽에 있는데 바위 모양이 화엄 두 글자 모양이라고 해서 화엄봉이라 하고 원효대사가 이 바위에서 화엄경을 읽었다고 전하나, 화엄종은 의상대사가 포교한 것으로 의상대사일 것으로 추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