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서울 시내에 남아 있는 성곽따라 돌기 (삼청공원에서 청운대 북악산, 인왕산 그리고 사직공원까지)
산행날자 : 2008년 10월 26일 (일요일)
산행날씨 : 맑고 화창한 가을 날씨
산행인원 : 총9명, 3450온누리산악회 회원
산행코스 : 안국역 2번 출구 - 감사원(02번 마을버스) - 삼청공원 - 삼청공원 말바위 전망대 -
숙정문(신분증 필요) - 와룡공원 - 청풍암문 - 청운대 - 백악산(백악마루) - 창의문(신분증 필요) -
기차바위 갈림길 - 인왕산 - 독립문 공원 갈림길 - 사직공원
산행거리 : 약 11 Km
산행시간 : 약 5시간 30분 (널널하게 쉬면서)
가까운 곳에 있기에 멀리했던 서울 성곽 탐방을 마치고
지난 이틀 동안 남도 산행과 여행 그리고 맛 기행을 하고 새벽에 올라와 이슬이 한잔 마신 후 잠자리에 들었기에 오늘만큼은 편안하게 집에서 쉬려고 했으나 아침에 눈을 뜨니 8시 30여분이다.
잠자리에서 뒤척이다 잠시 컴퓨터에 들어가니 마침 점심 준비도 필요없는 서울 성곽 탐방 공지가 올라와 있어 갑자기 급한 마음으로 과일과 음료수만 준비하여 집을 나선다.
잠시 집 근처 빵집에 들려 빵 몇개를 사서 넣으니 시간은 잘도 흘러 10시를 넘기려 하고 있다.
삼청공원 이정석
문자를 보내고 안국역에 도착하니 10여분 지체되였고 2번 출구 밖에서 02번 마을버스를 타고 감사원 앞에서 하차하니 8명의 온누리 산우님들이 기다리고 있다.
미안해 멋적은 인사 나누고 곧바로 삼청공원으로 들어가 벤취에서 간단히 배낭 정리한 다음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서울 성곽 탐방길에 나선다.
늘 한번쯤 걸어보고 싶었던 길이기에 꼼꼼히 체크해 놨지만 급하게 나오다 보니 준비한 자료는 모두 잊고 몸만 빠져 나온듯 하다.
많은 나무 데크와 계단을 타고 오르며
삼청공원
서울시 삼청동에 있는 공원으로 면적은 38만 735 m2이다.
공원은 경복궁 북동쪽의 북악산 기슭을 차지하며 북악 동쪽 기슭의 능선을 따라 허물어져 없어진 부분을 복원한 성벽이 뻗어내리고 도성의 북문이었던 숙청문도 1976년 10월 복원되어 단장되었다.
노송을 비롯한 울창한 수림과 청계천의 상류인 삼청천의 계곡이 공원의 주된 경관을 이룬다.
골짜기의 물이 모여드는 삼청동 남동쪽의 영수곡에는 병풍 같이 늘어선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에 인조 때의 서예가 김경문의 휘호라고 전해지는 三淸洞門이라는 큰 글씨가 새겨져 있다.
또 공원 안 일청교 옆의 산책로변에는 포은 정몽주와 그의 어머니의 시조를 새긴 시조비가 있다.
공원에는 도로가 잘 정비되어 성북동 쪽으로 쉽게 통할 수 있으나 현재는 삼청동과 성북동을 잇는 삼청터널이 공원 옆으로 뚫려 있다.
이 공원의 이름은 도교의 삼청(三淸 : 신선이 사는 세 궁전인 太淸, 上淸, 玉淸)에서 유래한다.
말바위 전망대쪽에서 바라 본 올라야 할 북악산과 인왕산이 뚜렷이 나타나고
나무 계단을 타고 호젓한 산책로를 따라 오르니 조망명소인 말바위와 감사원 갈림길이 나타나고 말바위쪽으로 방향을 틀어 오르니 다시 와룡공원쪽에서 시작되는 탐방로와 만나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에서 좌측 말바위와 삼청터널쪽으로 방향을 바꿔 조금 더 진행하니 말바위 전망대에 도착한다.
말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와 남산타워(좌)와 말바위 유래 설명판(우)
저 멀리 서북쪽으로 북악산과 인왕산 암봉이 서울 도심의 빌딩 숲 사이로 우뚝 솟아있고 서쪽 정면으로는 남산 타워와 그 아래 조선시대 궁궐의 중심지였던 종묘, 창경궁, 창덕궁 등 유명한 건물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그 옆으로 고층 빌딩들이 들어 차 또 다른 스카이 라인을 만들고 생각보다 아름답고 멋진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성곽 탐방로 말바위 안내소, 이곳에서 신분증 제시한 후 탐방표를 받아야 한다
한동안 그곳에서 머물며 사진 남긴 후 이제부터 신분증을 제시하고 본인 확인을 한 후 탐방표를 목에 걸고 서울 성곽 탐방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도심과 주요 건물들 특히 대한민국 대통령이 기거하고 있는 청와대를 지키기 위한 군부대가 성곽 주요 부분에 들어가 있어 사진 찍는 것조차 허락된 곳에서만 가능한 특이한 곳으로 남겨진 곳이기에 40여년만에 처음 개방되는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잠시 이곳이 혹시 휴전선 근방 최전선은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철조망으로 인해 잠시 젊은 시절 군대 생활하던 추억에 고소를 지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좌측 상단의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과 가운데에 과거 요정에서 현재 전통 한식 전문점으로 변신한 삼청각 모습
성곽 탐방 안내소를 빠져 나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성곽을 따라 옛선조들의 정취도 느끼고 역사적인 유물과 삶에 대한 공부도 하며 그동안 많이도 변해 있는 서울 시가지의 풍경도 감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외침을 막기 위한 성곽 또는 고관대작과 서민을 가르는 척도로 지어진 성곽, 조선초기 태조 이성계가 집권하자마자 새로운 국가에 걸맞는 새로운 수도를 물색하여 한양으로 천도를 계획하고 정도전이 주도적으로 실행에 옮긴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서울 성곽의 일부, 이 성곽을 따라 등산과 도보는 이어지나 주위에 철조망이 있어 사진도 조심스럽다.
총 길이 약 18.2 Km로 평지는 토성으로 산지는 산성으로 축조하였으며 주요 산군들로는 북악산(342봉), 낙산(125봉), 목멱산(남산, 262봉) 그리고 인왕산(338봉)을 꼽을 수 있다.
이때 동시에 4대문과 4소문을 준공하였고 세종때 전면 석성으로 대대적인 보수를 하였으며 이후 숙종 때에 이르러 서울성곽을 재정비하였으나 도성을 방비하는 제구실을 하지 못해 전란으로 부터 큰 피해를 보지 않은 성곽으로 남아 있다.
북악스카이웨이 아래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 부촌중의 부촌 성북동도 보이고, 대사관이 특히 많이 몰려 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와 근대화 사회가 되면서 전차와 전철 그리고 도로 건설을 위해 헐리며 사실상 서울 평지 성곽은 모두 사라지고 현재는 10여 Km의 산지 성곽만이 남아 있다.
그 역사적인 서울 성곽 탐방을 이제서야 하게 되였으니 참으로 무심한 자신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언제 시간되면 아이들과 함께 자연의 성곽을 탐방하며 한국 심장부의 내부를 속속들이 설명해 줄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며 탐방을 시작해 본다.
팔각정까지 쭉 이어진 북악스카이웨이 주변으로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높은 바위에 올라 바라보니 북쪽으로 자하문 터널에서 시작되는 북악산길을 정비해 만들어 놓은 북악스카이웨이가 한눈에 들어오고 산책로 정상부근에 팔각정과 건물들도 보인다.
가끔 다녔던 길이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완전히 다른 곳으로 착각이 들정도로 달라져 있음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과거 밀실 정치 1번지란 오명을 벗어 던지고 전통 하식 전문점으로 탈바꿈한 삼청각의 모습
그 아래 숲이 우거진 명당 자리에 우리나라 밀실 정치의 요람이였던 고급 식당인 삼청각이 들어 앉아 고풍의 멋을 선사하고 있다.
이제는 밀실 정치가 아닌 기업가들과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외국 손님들에게 우리 고유 식사를 접대하기 위해 찾는다고 하니 이 또한 격세지감이 아닐련지...
성곽과 철조망
잠시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어느 시골 마을에 부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전원주택 단지처럼 녹지를 사이에 두고 부촌이 형성되어 있는 성북동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많은 대사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 성북동, 고관대작들의 집들도 가끔 눈에 들어 오지만 프라이버시를 침해할까 두려워 사진은 올리지 않는다.
북악산 자락에도 어김없이 가을은 다가오고
서쪽으로는 앞으로 올라야 할 백악산 (북악산, 342봉)이 온몸에 다양한 원색의 물감을 들인 치마를 입고 정상부에 암봉을 반짝이며 위풍당당히 서 있고 그 아래 수많은 고층빌딩들을 품에 안고 서 있다.
그 아래 남쪽으로 성곽과 사대문이 높은 빌딩숲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고 저 멀리 남산타워가 방향 지시자로서의 역활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마냥 머물 수 없어 아쉬운 발걸음 돌려 성곽을 따라 숙정문으로 향한다.
숙정문, 한양의 북문으로서 역활을 했으나 험준한 산속에 있어 제 기능은 다하지 못한듯 하다
성곽을 따라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색깔의 변화를 느끼며 고풍스런 성곽을 따라 걸으니 이내 숙정문이 보인다.
벌써 많은 인파가 모여 깨끗한 가을 날씨에 조망마저 환상으로 트여있는 서울 곳곳을 둘러보며 자신이 과거 살았던 곳을 무용담 삼아 이야기도 하고 또 자신이 어린 시절 얼마나 낙후되였던 곳인가를 열심히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지만 아이들은 별 무관심 속에 먼 동화의 나라 이야기를 듣는 듯한 표정들이다.
격세지감을 느끼는 시간이다.
촛대바위 전망대쪽에서 본 모습(좌)과 저 멀리 청운대에서 줌으로 당겨 본 촛대바위(우)
숙정문에 올라 다시 서울의 스카이 라인을 담은 후 조금 더 진행하니 촛대바위와 전망대가 나타난다.
잠시 들려 사진 한장 남기고 성곽 안쪽 등로를 따라 무심으로 걸어보지만 많은 인파들로 인해 편안한 산행이나 도보는 불가능해 진다.
숙정문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의 북악산과 동쪽 고갯마루에 있는 조선시대 성문으로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였으며 서울 종로구 삼청동 산 2-1번지를 부여 받았다.
숙정문 안에도 이미 많은 탐방객들로 붐비고
서울 성곽을 이루는 사대문 가운데 하나로 도성의 북쪽 대문이다.
1396년(조선 태조 5) 9월 도성의 나머지 삼대문과 사소문이 준공될 때 함께 세워졌다.
원래 이름은 숙청문으로 도성 북쪽에 있는 대문이라 하여 북대문 또는 북문 등으로도 부른다.
1413년 풍수지리학자 최양선이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상소를 올린 뒤에는 문을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
이후 숙청문은 음양오행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음에 해당하는 까닭에 나라에 가뭄이 들 때는 기우를 위해 열고 비가 많이 내리면 닫았다고 한다.
성곽과 탐방로 그리고 소나무 군락들
숙청문이 숙정문으로 바뀐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숙정문이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1523년(중종 18)이다.
숙정문 외에 북정문이란 표현도 나오는데 숙청문과 숙정문이 혼용되다가 뒤에 자연스럽게 숙정문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1504년(연산군 10)에 연산군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기라고 명령한 기록이 보이는데 실제로 문을 옮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지금의 숙정문은 1976년에 복원한 것이다.
숙정문과 소나무
도성 북문이지만 서울성곽의 나머지 문과는 달리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위치해 실질적인 성문 기능은 하지 않았다.
1968년 1·21사태 이후 청와대 경비를 위해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하다가 2006년 4월부터 서쪽 성곽 0.5㎞, 북쪽의 진입로 0.6㎞ 구간과 함께 다시 일반에 개방하기로 하였다.
1963년 1월 21일 서울성곽에 포함되어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촛대바위 전망대에서 바라 본 경복궁과 광화문 그리고 서울 시내 전경
성곽과 오솔길을 따라 심하지 않은 등로를 오르니 좌측으로 촛대바위와 전망대가 나타난다.
잠시 들려보니 우측으로 길게 누운 바위 끝자락에 촛대를 닮아 있는 형상의 바위 부분이 보이고 그곳으로 오르지 못하도록 나무데크를 만들어 출입금지를 시키고 있다.
잠시 사진 한장 남기고 전망대로 다가서지만 소나무와 기타 잡목들로 인해 시야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래도 소나무 사이로 높게 보이는 남산 타워와 발 아래 펼쳐진 경복궁과 그 앞을 시원하게 뚫어 놓은 광화문 대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막장에서 바라 본 북악산으로 이어진 성곽
다시 그 전망대를 빠져 올라와 성곽따라 걸어가니 곡장이다.
능이나 원 또는 묘 같은 무덤 뒤에 쌓은 작은 담을 말하는 곡장에서 바라보니 서쪽으로 성곽따라 북악산과 저 멀리 인왕산이 뚜렷이 보이고 그 반대 동쪽으로는 북악스카이웨이의 팔각정과 건물들과 막힘없이 가깝게 보인다.
약간은 박무가 있지만 남산타워와 서울 강북 중심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며 멋진 가을 하늘을 수놓고 있다.
이제부터 우측으로는 성북동이 아닌 종로쪽 마을이 북악스카이웨어 넘어 조용히 앉아 있다.
종로 뒷편으로 삼각산의 비봉과 보현봉까지 암봉 능선도 시원하게 조망되고
북쪽 저 멀리에는 지금까지 수없이 올랐던 삼각산의 향로봉과 비봉능선 그리고 보현봉까지의 암릉들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지만 처음 보는 이쪽 조망에 한동안 무슨 산일까 하고 찾을 정도로 다른 모습이다.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조망이다.
다시 북악스카이웨이를 좌측에 두고 동쪽을 바라보니 고관대작들과 많은 대사관들이 있는 성북동 마을이 보이고 그 중에 제일 위쪽 명당 자리에 삼청각이 고고하게 앉아 굽어보는 형상이다.
내시들이나 궁녀들의 비밀 통로였던 청풍암문
성곽을 따라 한동안 내려가니 성곽을 남에서 북으로 넘으며 청풍암문이란 한자가 걸려 있다.
조선시대 내시들이나 궁녀들이 비밀리에 출입하던 비상문으로 많은 사연을 품고 있을 문이다.
한동안 성벽을 따라 걷다보니 우측 뒤편으로 다시 삼각산이 보이고 좌측 성벽에는 성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 넝쿨이 진붉은 색으로 변해가며 지나는 인파들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고 있다.
내렸다가 다시 완만한 경사를 타고 오르니 이내 청운대에 도착한다.
청운대 이정석
북악산 자락의 동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청운대, 경복궁과 광화문 대로가 시원하게 보이고 그 넘어 서울의 명산인 남산 타워가 하늘을 향해 높게 치솟아 있는 모습이 참으로 멋들어진다.
잠시 후 올라야 할 북악산 정상부도 알록달록 단풍에 물들며 아름다운 자태를 내보이고 동북쪽으로 방금 전 지나온 촛대바위가 하얀 암봉의 모습으로 그대로 들어나 있다.
한동안 머물며 과일과 식수를 마시고 다시 성벽을 따라 북악산으로 향하는 짧은 된비알을 오른다.
청운대에서 바라본 경복궁과 광화문 그리고 남산타워 및 고층빌딩들
오르는 도중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1.21 사태 당시 무수한 총알 세례를 맞고도 아직 위풍당당 살아 쉼쉬고 있는 소나무 한그루가 역사의 씁쓸함을 전해 주는 듯 하다.
언젠가는 저 상처들도 아물어 지겠지만 속살까지 완전히 아물지는 못할 역사의 비극으로 남아 있을 것이리라...
좌측으로 백악마루란 입간판이 보이고 그곳으로 올라가니 북악산 정상석과 정상 한가운데에 큰 암봉이 자리하고 있다.
북악산 가는 이정표, 북악마루란 단어가 친숙하다
북악산 (342봉)
서울 경복궁 북쪽에 솟아 서울의 진산을 이루어 온 산으로 높이는 342봉이다.
옛날부터 백악산 이라고도 한다.
기반암은 화강암으로 인왕산, 낙산, 남산 등과 더불어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다.
이들 산지 능선을 연결한 옛 서울의 성곽은 이 산을 기점으로 축조되었다.
북악산이라 불리우는 백악산 정상석
산 능선에는 옛 성벽이 원형대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서쪽 산기슭과 인왕산과의 사이의 안부에는 서울 4소문의 하나인 창의문(일명 자하문)이 남아 있다.
북악산은 노송이 울창한 경승지를 이루고 그 남쪽 기슭에 청와대가 있다.
창의문에서부터 정릉 입구에 이르는 북악스카이웨이가 북악산 주봉 북쪽 사면을 끼고 돌면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달리고 남동쪽 산기슭에는 삼청공원이 있다.
북악산쪽에서 바라 본 지나온 성곽과 저 멀리 삼각산 원경
넓은 공터에 북악산 정상 이정석이 서 있지만 그 보다 조금 더 올라간 지점에 큰 바위 하나가 놓여있고 아마도 저 바위 위가 최정상이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너무 협소하여 정상석을 이곳에 만들었나 생각된다.
이곳에도 수많은 인파가 머물며 특히 정상 암봉에도 많은 사람들이 올라 내려올 기미가 보이질 않아 주위 풍경을 바라보곤 곧바로 내려온다.
서울 전역이 돌아가며 한눈에 보이는 명소중의 명소로서 특히 이 산자락 남쪽에 위치한 청와대가 자리하고 있어 지금까지 더욱 엄격하게 통제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삼각산 원경이 아름답다
이제부터 성벽을 따라 아주 가파른 계단을 수없이 내려가 본다.
많은 등산객들과 인파로 인해 어느 부분은 부분 정체까지 일어나지만 서두르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좌우측을 바라보며 많은 사진을 남겨 보지만 초소를 지키는 사병들에 의해 일부는 삭제를 당하기도 한다.
한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머물고 있는 장소이니 이해가 가면서도 왠지 모를 불쾌감이 솟아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리라.
백악산에서 급경사 계단을 타고 내려가다 바라본 인왕산과 기차바위 원경
이제 인왕산이 한눈에 건너다 보이고 성곽 따라 무한정 내려가니 북악쉼터와 돌고래 쉼터를 지나니 인왕산 우측으로 기차바위도 그 웅장한 암봉의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한다.
많은 사진을 찍어 보지만 몇장이나 올릴 수 있을지 미지수의 사진이기에 가능하면 많이 찍어 본다.
오후 1시를 넘기는 시간에 드디어 창의문 안내소에 도착하여 말바위 안내소에서 받았던 탐방표를 제출한 후 창의문으로 올라 깊어가는 가을을 마음껏 즐겨본다.
돌고래 쉼터의 돌고래 바위
창의문
서울종로구 청운동에 있으며 1396년(태조 5) 조선조에 만들어 졌다.
북문 또는 자하문으로도 불린다.
1396년(태조 5) 서울 성곽을 쌓을 때 세운 사소문(4개의 작은 문)의 하나로 창건되어 창의문이란 문명을 얻었다.
북한, 양주 방면으로 통하는 교통로였으나 1416년(태종 16) 풍수지리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이 곳의 통행이 왕조에 불리하다 하여 폐문한 채 일반의 통행이 금지되었다가 1506년(중종 1)에 다시 열어놓았다.
1623년 인조반정 때는 능양군(인조)을 비롯한 의군들이 이 문을 부수고 궁 안에 들어가 반정에 성공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창의문 전경
문루는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740년(영조 16) 다시 세우고 다락 안에 인조반정 공신들의 이름을 판에 새겨 걸었다.
1958년 크게 보수하였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의 우진각 기와지붕으로 서울 사소문 중에서 유일하게 완전히 남아 있는 문이다
창의문에서 포장도로를 건너 인왕산쪽으로 계단을 타고 오르는 산우님들
성문에서 내려와 쉼터를 지나 그 자하문을 통과하니 좌측으로 쉼터 하나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다시 간식을 먹으며 노랗게 물들어 가는 은행나무 앞에서 추억 한장씩 남긴다.
잠시 휴식 후 도로를 건너 청운 어린이집 옆 임도를 따라 얕으막한 능선을 넘으니 다시 포장도로가 보이고 좌측으로 팔각정 하나도 서 있다.
지나온 북악산이 아스라이 멀어지고 포장도로를 타고 잠시 서쪽으로 진행하니 그 포장도로 건너편에 인왕산 산행 들머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북악산 전경
그곳으로 건너 나무계단을 타고 한동안 낙엽길을 걸어 오르니 다시 성곽이 나타나고 그 성곽을 따라 좌측으로 진행해 간다.
이 성벽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서민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을까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져 옴을 느낀다.
다시 좌우로 멋진 조망 바라보며 꾸준히 오르자 드디어 우측으로 기차바위 이정표가 보이지만 그곳을 들리는 것은 포기하고 얼마남아 있지 않은 인왕산 정상으로 향한다.
오르다 보니 완전 암봉으로 이루워진 인왕산, 보는 것 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한 절벽 옆으로 좁은 등로가 나 있다.
인왕산 오름길에 바라본 삼각산과 마을들
다시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특히 청와대와 경복궁 그리고 광화문이 시원스레 조망되며 그 앞으로 층층이 쌓여있는 고층 빌딩들이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반영하듯 반듯이 서 있다.
그 정 중앙에 남산 타워가 높게 하늘을 향해 치솟아 방향을 알려주며 등대 구실을 하고 있는듯 보인다.
언뜻 옆으로 덕수궁 돌담길도 보이며 지금까지 소홀했던 역사와 선조들이 남겨 준 소중한 문화 유산에 대한 애정을 느껴본다.
인왕산 오름길 우측에 있는 기차바위 원경
안전 로프를 타고 암봉을 오르니 이곳도 넓은 공터 위에 큰 암봉 하나가 놓여 있고 많은 등산객들이 정상에 머물며 사지을 찍고 있다.
그 정상을 넘어 나무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장소로 이동해 남아 있는 간식거리와 물 한모금 마시며 이곳에서 오늘 산행을 종료하기로 한다.
개인적으로 안산을 들이지 못해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여유있게 새로운 서울의 명소를 찾아 즐거운 시간 보냈다는 사실로 대신해 본다.
인왕산 정상부 암봉
인왕산(338봉)
서울특별시 종로구와 서대문구 홍제동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338m이다.
전체가 화강암으로 구성된 서울의 진산 중 하나이다.
이 산의 능선을 따라 성곽이 이어지며 동쪽 산허리로 북악산과 연결되는 인왕산길이 지난다.
조선 초에 도성을 세울 때 북악산을 주산, 남산을 안산, 낙산을 좌청룡, 인왕산을 우백호로 삼았던 조선조의 명산이다.
봄에는 진달래가 만발하고 곳곳에 약수와 누대가 있었다.
경치가 아름다워 이를 배경으로 한 산수화가 많은데 특히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인왕산의 표기를 仁旺이라 하였으나 1995년 仁王으로 옛지명이 환원되었다.
군사적인 이유로 통제되었다가 1993년부터 개방되었다.
기차바위 넘어로 삼각산의 원경이 아름답다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안산이 신비롭기까지 하게 보인다.
내려 가기전 정상 암봉에 올라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가파른 안전로프 지대를 따라 사직공원쪽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내리막길에 세워진 안전로프가 이국적인 풍경을 자극하고 그 가파른 내리막을 조심하며 내려가니 넓은 마당바위 전망대가 나타난다.
이곳에서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추억 한장 남긴다.
인왕산에서 바라 본 하산 등로
다시 가파른 하산로를 따라 내려왔다 사다리를 타고 작은 무명 암봉에 올랐다 평이한 등로를 타고 좌측 사직공원쪽으로 내려가 본다.
한동안 내려가니 넓은 공터에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고 이곳에서 부터 시작되는 시멘트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금새 인왕산 산행 들머리 만남의 장소가 나온다.
잠시 휴식 취하고 산행 들머리쪽으로 오르다 우측 철문을 넘어 사직공원 우측으로 내려가니 드디어 포장도로가 보이고 사지터널 앞 큰 도로에서 좌측으로 꺽어 내려가다 시장통 허름한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하루의 즐겁고 보람있는 등산을 마무리 한다.
마지막 전망대에서
사직공원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공원으로 면적은 18만 8710 m2이다.
서울 사직단(사적 121)을 중심으로 하여 인왕산 남동쪽 기슭에 펼쳐져 있다.
조선시대 까지만 해도 성역이었던 그 일대는 일제 강점기에 공원을 조성한다는 구실 아래 훼손되기 시작했는데 부지를 분할하여 학교를 신설하고 우회도로를 개설하였다.
사직단의 수난은 8 ·15광복 후에도 계속되어 1897년 고종이 황제가 되면서 태사, 태직이라고 높여 부르게 했던 사직단의 정문(보물 177, 건평 57.4 m2)이 1962년의 도로확장공사 때 본래의 위치에서 14 m 가량 뒤쪽으로 밀려났다.
현재 공원 내에는 종로 도서관, 시립어린이도서관을 비롯하여 몇몇 공공건물이 들어서 있고 그 밖에 활터인 황학정과 단군성전 등이 있으며 이이, 신사임당의 동상 등이 있다.
인왕산길의 진입로가 가까이 있고 도심지에 위치한 아담한 휴식처로 산책객이 많이 찾는다.
사직공원으로 하산길에 만난 마지막 헬기장
앞으로 자주 들리고 싶은 서울의 도보여행지로 남기며 오늘 함께한 산우님드도 만나 반가웠답니다.
수고들 많이 하셨구요 다음 기회를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