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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강원도 산

구룡령에서 갈전곡봉 지나 조침령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08.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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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자 : 2008년 07월 04일부터 05일까지(무박2일 산행)

산행일자 : 맑고 바람부는 좋은 날씨였으나 박무로 인한 시야가 제한되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새벽 영상 12도에서 낮 최고 영상 18도

참가인원 : 3450 온누리 산악회 회원 총 27명(존칭생략) 칠갑산, 솜이, 청목, 왕언니, 산바람, 운산, 나마스테, 월척, 이철주, 풀뿌리, 진석이네, 여리, 고산자, 인연, 돌소리, 사강, 현우, 은지, 설총, 사하라, 도롱골, 석불산, 자우롬, 겨울애, 잼마, 인연2, 달구지

산행코스 : 구룡령-갈전곡봉-왕승골 안부-연가리골 샘터-바람불이 삼거리-쇠나드리 고개 (옛 조침령)-조침령-산행종료

산행거리 : 20.30 Km, 접속구간 00.00 km

산행시간 : 선두 08 시간 30분, 후미 09 시간 50분

준비물 : 물 2.0 리터, 이온음료 0.8 리터, 아이스 커피 0.5 리터, 아침과 점심 밥, 반찬 3종류, 

빵, 수저 및 젖가락, 계절용 방수방풍의, 여름용 모자 2개, 땀수건, 목수건 3 개, 헤드렌턴 및 예비 건전지, 가위, 칼, 압박붕대, 에어파스, 구급약, 디카 및 예비 건전지, 무전기 3대, 스틱 2개, 모발폰 및 예비 건전지, 상세 지도 및 산행 자료, 쓰레기 봉투 1개.

버스에 두고 간 준비물 : 갈아 입을 옷 한 벌, 슬리퍼, 산행 후 먹을 삼겹살 및 야채 등 일체

교통수단 : 40인승 버스 1대

          신평고속관광 양기중 기사님

산행시간

7월 4일

23:00 사당역 출발

23:30 복정역 출발

7월 5일

00:35 홍천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

02:47 구룡령 도착

03:30 구룡령 (산행들머리)에서 산행 시작

03:51 구룡령옛길정상

04:01 샘물 (산행팁-1100.3봉과 1121봉 사이의 좌측에 식수 구할 수 있는 샘물)

04:10 명지리 갈림길(길주의-좌측 명지리쪽 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04:23 1063봉

04:59 갈전곡봉(1204봉, 길주의-좌측 가칠봉쪽 능선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05:14 여명이 밝아 옴

05:20 일출 시작

05:30 1107.4봉

05:58 1016봉

06:33 왕승골안부(산행팁-좌측에 샘물, 길주의-우측 갈천리 왕승골 길 버리고 좌측이 대간길)

06:53 후미 기다렸다 함께 왕승골 출발

07:11 948봉

07:23 968봉 직전에서 아침식사

07:58 968봉 및 전망대

08:28 1020봉 및 헬기장

08:45 연가리골 샘터(산행팁-좌측에 샘물, 길주의-좌측 연가리골 하산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08:55 연가리 계곡에서 식수 구한 후 연가리골 샘터 출발 (등로에서 3분 거리로 풍부한 수량)

09:17 951봉 및 헬기장

09:23 연가리골 갈림 삼거리(산행팁-좌측에 샘물, 길주의-좌측 연가리골 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09:41 1059봉(길주의-좌측 연가리골 및 우측의 연내골 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길)

09:49 1080봉 및 전망대

11:04 바람불이 삼거리(산행팁-좌측에 샘물 및 야영장)

11:13 황이리 갈림길(길주의-우측 황이리 길 버리고 좌측이 대간길)

11:24 830봉

11:37 암봉 및 전망대

11:53 쇠나드리고개(옛 조침령, 길주의-좌측 민박촌 하산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12:14 802봉

12:22 796봉

12:33 조침령 전 임도

12:38 옛 조침령 이정석

12:40 조침령(산행 날머리) 산행 종료

13:51 조침령 터널 앞 도로

16:00 조침령 터널 앞 계곡에서 점심식사 및 알탕 후 서울로 출발

 

 

굴곡진 인생과 닮아 있는 백두대간 대장정의 쉽지 않은 산행

 

 

에필로그

 

아홉마리 용이 뒤엉켜 있는 듯이 험하고 가기 힘들다는 구룡령 고갯마루에 힘들게 도착하니 어둠의 정적만이 백두대간 종주대를 맞이하고 도심속의 열대야와는 달리 아직 한기가 남아 옷깃을 여미게 만들고 있다. 

이름없는 무명의 등로이지만 오대산과 설악산을 이어주는 중요한 길목에 위치한 이번 구간은 순수하고 정겨운 우리 한글의 지명이 옛날 그대로 남아 있어 백두대간 산행의 의미를 더욱 깊이 가슴속에 담아 두는 구간으로 남아 있다. 

일제시대 자원 찬탈의 목적으로만들어진 임도를 포장한 구룡령의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그옛날 민초들의 애환이 담겨있고 급경사 산악 지형을 넘나들기 위한선조들의 지혜가 남아 있는 구룡령옛길을 향해 오르다 보면속도의 경쟁이 아닌 여유로운 느림의 삶이고스란히 남아 있어 후대에게 그 배움을 전해주고 있다.  

된비알 올라 갈전곡봉에 도착하면서쪽으로 장쾌한 큰가지 하나를 보내고그 줄기를 따라가 보면 오지중의 오지인 삼봉약수로 유명한가칠봉을 지나 개인산과 침석봉 그리고 숫돌봉으로 보내고그 줄기 하나가 주억봉을 지나 방태산과 수리봉을 일으켜내림천에서 그 생명을 다하게 하는마루금을 만난다.  

화전민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곳이지만 춘궁기에는 갈근(칡뿌리)으로 연명했다는 갈근리이기에 더욱 청정지역으로 남아 있고 수많은 유명 약수터가 자리하여 지금이야 웰빙 바람을 타고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얼마나 고된 삶의 연속이였는지를 그 마을 이름에서 부터 배워 보며 이렇게 입산하는 것 자체가 풍요로운 우리네 삶이란 것을 깨달아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세상과 단절된 오지로 이름없는 산들만을 주웠지만 그 아래 깊은 골짜기엔 3둔 4가리라 하여 최고의 피난처로 꼽히며 지금껏 오지의 대명사로 불리워지는 계곡을 주웠다. 

유심한 골짜기로 이어지는 깊은 곳에 사람 몇이 숨어살 만한 작은 은둔처를 가리키는 3둔과 화전을 일구어 한나절 밭갈이 할만한 곳으로 난세를 피해 터붙이로 살아갈 만한 곳이라는 뜻의 4가리가 바로 그곳으로 3둔은 살둔(생둔)과 달둔(월둔) 그리고 귀둔의 세 곳을 지칭하고 4가리(곁가리를 포함하여 5가리라고도 하나 4기리라 함이 정설이다)는 아침가리(조경동), 연가리, 적가리, 명지가리를 말하며 그 핵심에는 살둔과 아침가리 그리고 진동계곡이 자리하고 있다. 

잠시 연가리 계곡에 들려 마루금에 생명을 심어주는 시원한 계곡물에 손을 담그고 약수보다 더 맛있는 물한모금 떠 마시며 힘든 종주 산행중에도 이렇게 함께 숨쉬며 가슴으로 우리의산하를 느껴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을 잠시 만들어 보기도 한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오지이기에 이곳에는 또한 많은 약수터가 있는데 방동리의 방동약수, 가칠봉의 삼봉약수, 방태산의 개인약수, 명지가리의 명지약수, 갈전곡봉의 갈전약수, 응복산의 불바라기약수와 구룡령의 구룡약수 등이 산재해 있어 언젠가는 다시 들려 그 약수맛을 음미해 보는 것으로 이곳 산행의 대미를 장식하고자 하는 의욕도 담아보는 시간이다. 

다시 푸른 등로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사이 황소도 날려 보낸다는 바람으로 그 지명 이름까지 얻은 쇠나드리(옛 조침령)에 도착해 타는 목 한번 축이고 백두대간 산행의어려움과 묘미를 한껏 살려주는 마지막 된비알 치고 오르니 저 멀리 날머리 포장도로가 종주대를 반기고 나무 데크를 타고 조침령 임도에 도착해 다시 한번 가슴 아픈 조침령의 역사를 배워 본다. 

영동에서 영서로 소금을 나르기 위해 만든 소로가 일제 강점기를 지나며 목재 자원 찬탈의 수단으로 변질된 후 근대에 오면서 고관대작들의 정원수를 나르기 위한 도로의 변천사에 그저 한숨만 크게 흘러 나오지만 그 조차도 이제는 터널이 개통되어 백두대간 마루금을 걷는 몇몇 산꾼들에게만 환영 받는 한적한 도로가 되어 버린 역사에 잠시나마 그 아품을 함께 나눠 본다. 

넓은 임도따라 내려와 조침령 터널 앞 계곡속에 몸을 담그고 어린시절 추억으로 뒤돌아가 멱을 감으며 소금끼 씻어낸 후 준비한 삼겹살로 우리들만의 파티를 펼치니 이곳이 바로 우리들의 무릉도원이 되였다.

 

이 한장의 사진이 먼 훗날 추억이 되어 그리운 산우님들을 찾아 나서겠지요

 

일출 바로 직전의 하늘이 참으로 예쁘게 붉어오고

 

산행후기

 

중단없이 이어져 올라온 백두대간 종주도 이제 서서히 그 마지막 끝자락으로 향하고 그 속박에서 벗어난다는 시원함보다는 벌써 지난 세월의 아쉬움이 깊게 배어오는 시간을 타고 그 옛날 고통과 어려움속에 영서로 이어주던 구룡령에 인사를 건넨다.

 

 

동물이동통로 건너편에 서 있던 옛날 이정석 

 

이제 고속도로도 끝이 나고 들머리 찾아가는 길엔 길손에게 따뜻한 물한모금 나눠주지 않는 첩첩산중 꼬부랑 길만이 남아 있기에 들머리인 구룡령에 잠시 쉬며 허기진 뱃속을 채우는 시간, 어둠속 온누리 백두대간 종주대만이 그 고요한 정적을 깨우고 있다.

 

오늘 처음으로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하신 겨울애님도 구룡령 이정석 앞에서 찍어 드리고

 

자연에 도전하며 인간의 편리한 삶을 위해 만들어진 도로 위에 원래 주인인 동물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만든 동물이동통로 조차도 인간의 무지한 욕심으로 만들어 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그 통로 지나 잠시 작은 이정석에 입맞춤하고 뒤돌아 내려오니 더욱 거세지는 구룡령 바람이 살갗에 소름을 돋게 만든다.

 

언제나 다시 구룡령과의 만남이 이루워질지 기약도 없이

구룡령

구룡령 옛길은 백두대간에서도 가장 산림이 울창한 지역인 설악산과 오대산의 허리에 위치한 대표적인 옛길이다.

홍천군 내면 명개리와 양양군 서면 갈천리를 연결하는 구룡령은 영동과 영서 사람들이 설악산, 점봉산, 오대산 등 백두대간 장벽으로 나뉘어 산지와 해안 지역을 오가는 것이 힘들었던 시절 두 지역을 연결해주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대부분이 구룡령 하면 지금 차가 다니는 56번 국도가 넘나드는 고개를 원래의 구룡령길이라 생각한다.

이 도로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자원 수탈 목적으로 구룡령 고개에서 1km가량 떨어진 곳에 개설한 비포장도로가 지난 1994년 포장된 것이다.

일제 당시 일본인들이 지도에 원래의 구룡령의 위치가 아닌, 차가 다니는 비포장도로를 구룡령으로 표기하면서 사람들은 구룡령의 위치를 잘못 알기 시작했다.

더욱이 94년 이후에는 모든 지도와 행정 표기에서 구룡령의 위치가 현재 차가 다니는 지점으로 정리됐다.

백두대간을 연구하고 관리하는 정부나 민간단체, 학자들조차 구룡령길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구룡령 옛길에는 조상들이 어떻게 길을 다녔는지를 보여주는 원형이 남아 있다.

요즈음 사람들은 영서와 영동을 차로 넘으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백두대간의 험한 지형을 실감한다.

그래서 이런 급경사의 산지에서 말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길을 걸어보면 구룡령 옛길에서 노새와 조랑말 등이 큰 등짐을 지고 다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게 된다.

그만큼 옛길은 힘겨운 고개를 가장 힘이 덜 드는 형태로 만들어놓았다.

 

구룡령을 뒤로 하고 이 나무 계단을 타고 또 하루의 새벽을 열어본다

 

비탈길이어도 최대한 경사를 누인 길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은 누군지도 모를 옛사람들의 지혜가 세월과 함께 쌓인 덕분이다.

어떤 빼어난 등산로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자연 속에 파고드는 절묘한 흐름이 길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숲과의 조화가 자연스럽고 깊다는 점은 걸어보면 단박에 느껴진다.

똑같은 고도의 등산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여유가 길에 묻어 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 큰 산의 등산로를 오르다 보면 주변의 숲을 감상하기 어려운 비탈과 고빗길이 수없이 펼쳐진다.

그래서 산쟁이들 가운데서도 발품이 노련하고 옹골진 이가 아니면 대부분 숲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하고 정상으로 오르기에 바쁘다.

하지만 구룡령 옛길은 숲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다.

옛사람들은 요즘 일부 등산꾼들처럼 싸우는 듯이 산길을 걷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차피 갈 길이니 최대한 여유 있고 천천히 걸음이 이어지도록 길을 냈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숲의 원형이 훼손되지 않으면서도 다니기에 편안한 길이 되었다.

선조의 경험과학이 녹록지 않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언제 저 먼길을 거어가야 하고 걱정을 하지만 걷다보면 그 길도 짧은 거리로 남아 있고

 

새벽 밤바람이 옷깃을 여미고 바람따라 춤추는 밤이슬이 살갗에 붙으며 하얀 꽃을 만들어 내는 시간, 스트레칭으로 굳어 있는 근육을 풀어보며 긴 산행의 시작을 알린다.

새벽 3시 30분, 모두 잠들어 있는 시간에 무엇이 그리도 좋아 이 먼곳까지 달려와 땀방울을 흘리려 하는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서로가 가슴으로 느끼는 마음은 동일하기에 말없이 나무 계단을 타고 어둠속 푸른 숲으로 몸을 숨겨본다.

 

구룡령옛길정상에 서 있는 옛길 안내도

 

윙윙거리는 새벽 바람이 나뭇잎에 걸려 잠시 주춤거리며 종주대 앞길을 막고 있는 새벽 안개를 치워보지만 그것도 잠시 일순간일뿐, 이리저리 마구 몸을 흔들며 추워대는 춤사위에 그저 무심으로 두발만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조침령까지 21 Km 남아 있고 약 10시간의 산행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정표를 찍고 다시 완만한 등로를 따라 오르니 금새 구룡령옛길 정상 이정표에 닿는다.

 

늘 백두대간 종주대를 리딩하며 멋진 산행을 보여주시는 사하라 리딩대장님.

 

생각보다 산행하기 좋은 기온과 날씨,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약간 내린다는 일기 예보에 걱정을 했지만 지금의 조건으로 봐서는 최상의 등로와 산행 조건이 되어 주리란 확신이 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슬을 머금은 등로가 축축히 젖어 있고 푸른 산하가 피로도를 감소시키는 백두대간길, 그 위에 족적 하나를 다시 덮으며 깨어있는 우리는 분면 복받은 사람들이리라.

 

벌써 갈전곡봉에 도착하고

 

후미까지 기다려 잠시 증명사진 남기듯 몇장의 사진으로 그 어둠을 밝히고 이제부터 중간으로 빠져 아름다운 등로를 만끽하며 진행해 본다.

언제 지나쳤는지도 모르게 완만한 능선따라 1100봉과 1121봉을 지나 다시 내렸다가 오르막 치고 오르니 1063봉 정상에 당도한다.특별히 보이는 것이 없기에 다시 내리막 타고 진행하니 금새 갈전곡봉 정상이다.

 

백두대간 여전사들, 왕언니님만 빠지셨네요

 

갈전곡봉(1174봉)

강원 인제군 기린면과 양양군 서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가칠봉(1240봉), 사삼봉(1322봉), 응봉산(1016봉) 등과 함께 태백산군의 일부를 이룬다.

또한 소양강의 지류인 방대천을 비롯하여 계방천, 내린천 등의 발원지를 이루고 있다.

 

이제보니 2년전 오를때와는 달리 많은 나무계단이 등로에 깔려 있고 정비된 등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좀더 많은 등산객들을 위하고 또한 무너지는 등로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라지만 굳이 필요없는 등로에까지 이렇게 인공적인 길을 만든다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방치하는 것보다는 낳겠다 싶은 마음으로 견디며 올라 본다.

새롭게 만들어 놓은 이정표가 눈에 들어오지만 변변한 이정석 하나 없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동녘하늘에선 꾸미지 않은 자연의 마술이 시작되고

 

다시 사진 몇장 남기고 이제 우측 동녘으로 부터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는 용트림을 바라보며 헤드렌턴을 접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늘 맞이하는 여명과 일출이지만 산상에서 보는 그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더욱 찬란하고 운치있게 가슴에 와 박힌다.

 

잡목사이로 잡아 본 첫 일출 장면

 

재빨리 갈전곡봉 내려와 1107봉쯤에서 일출을 기대하며 빠르게 진행하지만 벌써 잡목 사이로 둥근 일출이 시작되고 그저 일출이 보이는 곳 아무곳이나 들어가 그 모습 디카에 잡아 보지만 너무나 아쉬운 마음에 자꾸만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며 좀 더 진행해 본다.

오르막 오름길에 잠시 잡목이 쉬어 가는 길목에 서서 영롱하게 밝아오는 찬란한 하루의 빛을 담으며 오늘도 무사히 완주를 할 수 있도록 소원을 빌어 본다.

 

줌으로 당겨도 보고

 

몇장의 새로운 빛을 담은 후 이제부터 그저 푸르른 산하의 평이한 등로를 따라 홀로 무심으로 걸어가 본다.

된비알이 있어 땀방울이 맺힐쯤 되면 어느새 무명봉에 도착하여 땀 식혀주고 다시 내려가는가 하면 어느새 안부 지나 된비알 오르는 구간들, 진행하는 도중 시간을 보니 생각보다 햇살도 강하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으며 간간히 불어주는 산바람에 무척 빠른 진행으로 여겨진다.

 

저 멀리 구룡삼봉과 방태산 주걱봉을 잡아보지만 구름에 가려 그 늠름함을 감추고

 

1107봉에서 잠시 휴식 취한 후 내려가다 바라보니 좌측으로 구룡덕봉과 방태산 주걱봉의 모습이 잠시 안개를 헤치고 도도히 서 있고 그 모습 재빨리 디카에 담은 후 다시 올라야 할 1016봉도 잡아 본다.

행운이라 생각하며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안개속을 비집고 당당한 모습 드러낸 방태산 능선이 더욱 나를 부르는 것 같아 조만간 다시 저곳에 올라 오늘 걸어 간 이길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1016봉 넘어 쭉 이어진 내리막 길 따라 내려가니 어느새 왕승골 안부에 도착되고 이곳에서도 잠시 배낭 내려 놓고 쉬면서 목마름을 달래 본다.

 

왕승골 삼거리 이정표

 

갈천리 왕승골

 강원도 양양군 서면에 위치한 리이다.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지역이다.

농촌경제가 향상되지 못하였을 때 화전민의 생활이란 극히 궁한면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춘궁기에는 갈근(칡뿌리)으로 근근이 호구하여 오는 실정에서 전천이 갈분일색이었다고 하는데서 갈천 또는 속칭 “치래”라고도 한다.

 

등로 좌측에 식수를 구할 수 있는 샘이 있으나 오늘은 모두 사양하고 그저 쉬었다 오르는 것으로 만족한다.

여기에서 약 20여분간 쉬면서 후미 기다렸다 함께 948봉을 빠르게 오른다.

이제 서서히 뱃속의 허기란 놈이 좀 먹을 것을 달라며 보채는 시간, 선두의 사하라대장님과는 이미 968봉 근처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하였기에 고민하지 않고 등로 따라 발길 옮겨본다.

 

948봉 오름길 우측의 묘 1기 있는 곳에서 간신히 뒤돌아 본 1016봉과 그 능선

 

오르다 보니 우측에 묘한기가 있고 비석이 세워져 있으나 그저 지나치며 뒤돌아 보니 방금 올랐다 내려온 1016봉이 처음으로 그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재빨리 작은 고사목에 올라 몇장을 찍은 후 느긋한 마음으로 오르막 타고 산우님들 따라 진행한다.

크게 높은 고도는 아니지만 아침식사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무척 가파르게 생각되는 무명봉, 저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968봉이라 생각하고 오르면 다시 나타나는 봉우리에 몇번의 야속함을 뒤로하고 드디어 선두팀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상차림한 우리들만의 식당에 도착한다.

 

968봉 바로 직전에서 먹은 아침, 이 시간이 참으로 행복하다

찬이 없으면 없는대로 또 적으면 적은대로 그저 펼쳐진 그것이 만찬인것을, 한입 두입 뱃속을 채우고 시원한 물한모금으로 입안까지 행구니 이제 다시 기력이 보충되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였음을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배낭 챙겨 잠시 잡목을 헤치고 오르니 968봉 삼각점과 전망대가 나타난다.

 

968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백두대간 마루금

 

2년전 가랑비에 맞으며 사진 한장 남겼던 기억이 뒤살아 나고 그때와는 많이 달라진 등로의 모습에서 세월의 변화에 따른 백두대간 마루금의 새로운 모습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올라야 할 1020봉과 저 멀리 쇠나드리로 연결되는 마루금이 푸른 산하에 안개를 드리우고 멋들어지게 누워있다.

 

서쪽으로 좌측의 조봉쪽 능선도 잡아보고

 

우측으로는 양양의 조봉과 고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서서 강원도 산악의 진면목을 알려주려는듯 장쾌한 맛을 전해 준다.

좌측 미천골을 찾아보지만 잡목들의 시샘으로 그저 머릿속 상상으로만 그려 본다.

 

암산과 그 가운데에 깊은 미천골 계곡

 

미천골 계곡

설악산국립공원 남쪽 미천골자연휴양림 안에 있는 계곡이다.

사람의 발길이 적어 산천어 등 희귀어가 살고 원시림이 무성하다.

옛날 큰 절에서 밥을 짓기 위해 쌀 씻은 물이 계곡으로 하얗게 흘러내려 미천골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설악산국립공원 남쪽 미천골자연휴양림 안에 있는 계곡이다.

계곡 입구에 신라 법흥왕 때 창건된 선림원지가 있으며, 특히 불바라기약수터와 토종꿀이 유명하다.

찾아가려면 양양터미널에서 황이리간 완행버스를 탄다.

승용차로 가려면 31번 국도로 운두령, 홍천군 내면을 지나 구룡령을 넘은 뒤 56번 국도를 타고 양양군 서면 갈천리, 황이리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계곡으로 가는 다리가 나오고 미천골자연휴양림 표지판이 나온다.

 

산죽밭도 지나고

 

다시 나무계단과 로프를 타고 내렸다 오르기를 반복하니 산죽밭이 나타나고 그 끝자락에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지도를 살펴보니 1020봉과 전망대라 적혀 있지만 무성한 잡목들로 인해 전망은 전혀 없다.

다시 세상풍파에 시달리며 요상하게 생긴 고목들을 벗삼아 급경사면을 내려가니 저 멀리 산우님들이 모여 쉬고 있는 연가리샘터 안부이다.

좌측으로 그 유명한 3둔 4가리를 숨겨 놓았으며 또한 진동계곡이란 천혜의 골을 간직한 오지중의 오지 연가리골에 도착한 것이다.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아침가리 계곡(일명 조경동 계곡)

 

3둔 4가리

정감록에서는 강원도 인제의 후미진 일곱 곳을 '3둔 4가리'라 하여 최고의 피난처로 꼽았는데, 지금껏 오지의 대명사로 불린다.

둔(屯)이라 함은 유심한 골짜기로 이어지는 깊은 곳에 사람 몇이 숨어살 만한 작은 은둔처를 가리키고 가리(갈이:耕)는 화전을 일구어 한나절 밭갈이 할만한 곳으로, 난세를 피해 터붙이로 살아갈 만한 곳이라는 뜻이다. 

3둔은 살둔(생둔)과 달둔(월둔), 귀둔을 세 곳을 지칭하고, 4가리는 아침가리(조경동), 연가리, 적가리, 명지가리를 말한다.

점봉산, 구룡덕봉, 방태산 등, 크고 작은 산들의 안과 밖으로 사방에 있는곳을 말하며 3둔 4가리의 핵심은 조경동과 진동계곡이다.

 

연가리 계곡의 최상류에서 목을 축이고 있는 나마스테님과 여리님

 

잠시 머뭇거리며 연가리골을 다녀오고 싶어하시는 산우님들 모시고 잠시 좌측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2년전 가을보다 수량이 풍부한 맑고 깨끗한 연가리계곡이 시원한 물소리로 반겨주고 잠시 목 축이고 얼굴 씻은 후 뒤돌아 올라온다.

이곳에 어느 산객인지 몰라도 야영하기 좋은 장소로 터를 닦아 놓고 아궁이까지 만들어 구들장처럼 집의 형태를 갖춰 놓은 쉼터가 보인다. 집의 뼈대는 없지만 야영하며 쉬어가지 좋은 장소라 생각 되였다.

 

청정지역이면서 오지인 살둔계곡의 모습

살둔계곡 

강원도 홍천군 내면 율전2리에 있는 계곡이다

내린천 상류와 계방천 하류가 만나는 곳으로 개인산(1341봉)과 문암산(1146봉) 사이를 20㎞에 걸쳐 흐른다.

입구에서부터 원시림에 둘러싸여 오지의 비경을 잘 간직한 곳이다.

맑고 깨끗한 계곡에는 어름치(천연기념물 259)와 열목어가 서식하고 있으며 계곡이 넓어 물놀이를 즐기기에 알맞다.

계곡 초입에 푸르다 못해 검은 물빛의 모래소가 있는데 너무 깊어 수영과 낚시가 금지되어 있다.

계곡 끝 지점에 임지왜란과 6.25전쟁 때도 난리를 겪지 않을 만큼 깊은 오지마을이라 하여 살둔이라 불리게 된 마을이 있는데, ‘삶둔’이라고도 하고 한자로는 생둔이라고도 한다.

정감록을 보면 강원도에서 난리를 피해 숨을 만한 곳으로 3둔 4가리를 꼽았는데 3둔은 홍천군 내면의 살둔, 월둔, 달둔이고, 4가리는 인제군의 아침가리, 적가리, 연가리, 명지가리를 말한다.

둔은 산기슭의 평평한 땅을 말하고, 가리는 계곡가의 사람이 살 만한 곳을 말한다. 

찾아가려면 홍천읍에서 내면 율전리행 버스를 탄다.

승용차로 가려면 홍천 수타사 앞을 지나 풍암리를 거쳐 율전, 창촌을 지나 양양 방면 56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광원리에서 모래소를 알리는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해서 들어가면 계곡이 나온다.

 

1080봉에 올라 잠시 휴식 취하며

 

다시 한참을 머물며 3둔 4사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가리로 내려가지 못하는 아쉬움만 남긴채 된비알 타고 올라본다.

잠시 오르니 951봉 정상의 공터와 삼각정이 보이고 디카에 담은 후 다시 산죽밭을 통과해 진행하니 1059봉 넘어 1080봉에 안착한다.

우측으로 꺽여 넘어져 있으면서도 끈질긴 생명력 보여주는 나무 한그루의 강인함에 경의를 표하고 잠시 더 진행하니 나무 쉼터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다시 잠시 휴식 취하며 아쉬움에 자꾸만 좌측 가리쪽을 찾아보지만 보이는 것은 그저 푸르름이 우거진 잡목 숲뿐이다.

 

아침가리 계곡의 또다른 모습

 

아침가리(조경동)

구룡덕봉(1388봉) 기슭에서 발원하여 20㎞를 흘러 방태천으로 들어간다.

상류는 월둔, 명지거리, 방동약수를 잇는 도로와 인접해 있지만 하류로 갈수록 한적하며 원시림을 느끼게 하는 골짜기를 간직하고 있다.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아 맑은 물에서는 열목어가 살고 있고, 수달(천연기념물 330), 족제비,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328) 등 희귀동물을 볼 수 있다.  

정감록에 삼둔사가리라는 글귀가 나오는데, 둔이란 펑퍼짐한 산기슭을, 가리(거리)란 사람이 살 만한 계곡가로서 난리를 피해 숨을 만한 피난처를 뜻한다.

홍천군 내면의 살둔(생둔), 월둔, 달둔과 인제군 기린면의 아침가리, 연가리, 적가리, 명지거리(결가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침가리란 아침에 밭을 간다는 뜻으로 아침갈이라고도 하며 지도에는 한자어로 조경동이라 표기되는 곳이다.

한때 화전민들이 살았지만 지금은 폐교된 방동초등학교 조경분교와 텅빈 마을만이 옛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주변에 설피밭, 방동약수, 방태산 휴양림, 점봉산 등 관광명소가 많다. 찾아가려면 현리에서 버스를 타고 진동2교 앞에 하차한다.

승용차로는 44번 국도로 홍천으로 가서 철정을 지나 451번 지방도로 고석평을 지나 31번 국도로 상남, 현리교, 진동2교를 지난다.

진동2교 앞의 보호수면지정 안내판 뒤로 돌아 농수로를 따라 걸으면 나타나는 수중보를 건너면 계곡으로 이어진다

 
 

전에 보지 못하던 잘 정비된 이정표들이 세워져 있고

 

언제나 다시 저 계곡에 들려 빽패킹이나 한번 즐겨 볼 수 있으려나 아쉬움만 커진다.

중간에 가리골로 빠지는 안부를 지나며 더욱 커지는 그리움, 아마도 조만간 이 여름이 다 가기전에 다시 한번 들려보자 마음 먹으니 그래도 좀 참을 만 하다.

 

 

연가리계곡의 아름다운 물줄기

 
적가리골

방태산 자연 휴양림 안으로 6㎞에 걸쳐 흐르다 내린천으로 들어간다.

지도에는 적가리골로 표기되어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 석청을 진상품으로 올렸던 곳인 만큼 길 곳곳에 벌통이 놓여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인적이 드물었던 곳이었으나 1997년 5월 계곡을 중심으로 방태산자연휴양림이 조성되면서 접근하기 쉬워졌다.


주변은 참나무, 젓나무, 박달나무, 피나무 등으로 울창하며, 계곡을 따라 2단폭포, 이폭포, 저폭포, 마당바위 등 크고 작은 폭포와 소가 빼어난 절경을 이룬다.

5㎞ 정도의 산책로가 있어 삼림욕도 겸할 수 있다.

주변에 방태산자연휴양림, 아침가리(조경동), 방동약수 등 관광지가 많이 있다.
찾아가려면 현리터미널에서 방동교행 시내버스를 타거나, 승용차로는 홍천 방면 44번 국도를 타고 철정검문소에서 451번 지방도로 고석동까지 가서 다시 31번 국도를 타고 현리로 간다.

 

 

이제 이곳 안부부터 단풍나무 군락지로 이어지고

 

이제부터 가을이면 단풍 군락지인 안부를 넘어 산죽과 단풍이 어우러진 그 길에 혼자만의 채색으로 곱디 고운 단풍밭을 만드어 본다.

2년전 지날때의 아름다웠던 단풍이 벌써 추억이 되어 뒤살아나고 좌측으로 진동계곡이 부르는 소리에 그 하산길을 한참동안 떠나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다.

 

바람불이 삼거리, 제대로된 이정표 하나 세워져 있으면 좋으련만

 

욕심이 생기는 산행, 버리려 오른 산행에서 자꾸만 커가는 욕심을 주체 못하는 자신이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절실히 절감하면서 가던 산행을 이어가 본다.

한참을 진행하니 다시 바람불이 삼거리에 도착되고 여기에서 산우님들 만나 잠시 이야기 나눈 후 잠시 빠르게 전진하니 황이리 갈림길에 도착한다.

 

황이리 갈림길의 이정표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미천골 자연휴양림과 계곡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우측에 미천골과 좌측의 진동게곡, 어느곳을 가더라도 한여름 더위를 식혀주는 자연미가 살아 있는 곳이거늘 이렇게 인사만 나누고 지나침이 서운하다.

그래도 가야할 길이 정해진 산행이기에 이제부터 빠르게 진행하여 830봉을 넘어 무명봉의 전망대에 오르자 조침령 터널과 연결된 418번 포장 지방도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오늘의 산행도 이제 막바지 종착역에 다다른 모양이다.

작은 산죽밭을 지나 한없이 내려가는 내리막을 타고 걸으니 드디어 옛조침령인 쇠나드리고개이다.

 

황소까지 날려 버린다는 쇠나드리 바람이 오늘은 잠잠하다. 진석이네님, 석불산대장님 그리고 잼마님

쇠나드리(옛조침령)

10분 정도 내려가면 나오는 쇠나드리 '황소까지 날려 보낸다' 해서 유래했다는 '쇠나드리'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봄에는 땅을 메마르게 하는 흙바람, 여름에는 길을 가로막는 비바람, 가을에는 억새를 뒤흔드는 낙엽바람, 겨울에는 눈보라에 살을 에는 칼바람이 부는 곳.
진동리는 동쪽과 북쪽으론 해발 1천미터가 넘는 백두대간 줄기가 뻗어있고, 점봉산(1424m)에서 가칠봉(1165m)으로 뻗은 줄기는 서쪽을 막고 있어 산 높고 골 깊기로 유명한 인제에서도 오지중의 오지마을이다.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불었으면 황소도 날려보낸다는 쇠나드리 고개, 하지만 오늘은 등줄기에 흐르는 땀조차 식히지 못하는 바람 한점 없는 무명 안부가 되어 버린다.

물 한모금 마신 후 이제부터 호락 호락하지 않는 백두대간 산행의 마지막 된비알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옮기며 톱날같은 능선을 오르락 내리락 해 본다.

 

418번 지방도로가 포장된 상태로 보이기 시작하고

 

이제 다 왔다고 생각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무명봉이 앞을 가로막으며 종주대를 시험에 들게하고 그 어려운 된비알 오르면 잠시 고도를 낮췄다가 다시 땀방울을 요구하는 마루금, 그래도 한걸음 두걸음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 걸음에 길고도 멀었던 조침령이 눈앞에 다가선다.

나무데크를 타고 임도로 빠져나와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이 되어 버린 작은 조침령 이정석에 다가가 조침령을 회상해 본다.

 

솜이 총무님의 개구쟁이 포즈도 나무데크 위에서 살아나고

조침령

처음에는 소금지고 오르던 길, 일제강점기에는 자원찬탈하는데 이용된 도로, 유신시대 고관대작의 정원 조경수와 원석을 실어 나르던 도로, 김재규가 3공수 장병들을 동원해서 정비를 했고, 현재는 그 아래로 터널이 뚫려 지난다.

이곳은 마을사람들이 반평고개라 부르는 곳으로 조침령은 북으로는 점봉산, 남으로는 갈전곡봉으로 이어지며,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에서 양양군 서면 서림으로 넘어가는 고개 '새도 자고 넘는다'는 뜻의 조침령(鳥寢嶺)으로 표기해 놓았으나 산경표에는 조침령(曹寢嶺)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곳은 마을사람들이 반평고개라 부르는 곳으로 조침령은 북으로는 점봉산, 남으로는 갈전곡봉으로 이어지며,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에서 양양군 서면 서림으로 넘어가는 고개 '새도 자고 넘는다'는 뜻의 조침령(鳥寢嶺)으로 표기해 놓았으나 산경표에는 조침령(曹寢嶺)으로 표기되어 있다.

'고갯길이 험하여 무리지어 자고 넘는 고개'라 풀어 쓴 산경표의 해석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한자까지 넣으려고 했으면 고증을 통해 제대로 된 이름으로 세웠으면 하는 바램은 이 작은 산객 혼자만의 바램일련지 ...

 

 

김재규가 3공수 장병들과 닦아 놓은 임도에 세운 조침령 이정석,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것이 유일한 이정석이였는데

 

다시 그 임도 따라 조침령 정상에 올라 최근에 새로 세운듯한 커다란 이정석에 인사 드리고 나무 데크를 타고 시작해야 될 다음 구간 들머리에서 잠시 후미 기다리며 쉬어 본다.

평범하지만 알고 지나면 평범함속에 더욱 큰 우리 산하에 대한 애착심이 커지는 구간, 그 구간을 무사히 종주하였음을 자축하며 다시 인제쪽 터널 입구로 내려와 맑고 깨끗한 강원도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어린 시절 추억하며 멱을 감으니 하루의 피로가 씻기며 자연의 품에 안긴 편안한 시간을 만끽해 본다.

 

 

최근에 새로 세운 커다란 조침령 이정석과 다음구간 들머리 나무데크

 

늘 선두에서 멋진 리딩 보여주시는 사하라대장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후미에서 고생 많이하는 설총님과 인연님의 수고에도 큰 박수 보내 드림니다.

여러 대원들이 도와주고 이끌어 주며 뒤에서 밀어주는 힘으로 여기까지 무탈하게 잘 진행하였음을 부인하지 않으며 남아 있는 구간에도 잘 부탁 드려 봅니다.

 

 

산행 후 계곡물에 몸을 담그는 이 시간이 최고의 시간이였다 

 

없는 살림 아끼고 쪼개가며 굿은 일 도맡아 처리하시는 솜이 총무님, 말은 못했지만 총무님이 계시기에 어려운 조건에서도 여기까지 잘 올라왔겠지요.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구간도 잘 부탁 드림니다. 

처음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하신 겨울애님과 인연2님, 너무나 잘하시는 산행에 그저 감탄하며 찬사 보내 드림니다.

몸 관리 잘하시고 다음부터는 쭉 백두대간 종주대와 함께하는 산행이길 바래 봅니다. 

가장 미안하고 궁금한 달구지님, 몸은 어떠하신지 이 후기글을 읽으면 상황이나 전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불의의 일로 인해 산행도 못하시고 또 몸도 불편하시던 모습, 자꾸만 눈에 어른거려 많이 걱정이 됩니다.

큰일이 아니길 바라며 건강 빨리 회복하셔서 다음 구간에선 웃는 얼굴로 함께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 봅니다.

 

 

2주 후 다시 몸을 담그고 멱을 감아야 할 인제 계곡

 

마지막으로 함께한 27인 백두대간 종주대 여러분, 늘 이 후기글을 쓰면서 한분 두분 얼굴을 떠올려 봅니다.

무엇이 그리도 이렇게 끈끈한 산우애로 만들었을까 생각해 보면 어렵고 힘든 고통을 함께 이겨낸 동지들이기에 더욱 강해지는 산우애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합니다.

고생 많이 하셨구요 앞으로 남아 있는 구간도 늘 변함없이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다려 봅니다.

 

감사합니다.

 

백두대간 산행대장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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