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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경기도 산

설봉산 산행 후기 (경기도 이천, 2008년 3월 6일)

by 칠갑산 사랑 2008.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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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기도 이천시 설봉산

행날자 : 2008년 3월 6일

산행날씨 : 진눈개비 후 맑음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치킨대학 - 화두재고개 - 365계단 - 오백년송 및 백운봉 - 청운봉 -

              도드람산 갈림길 - 부학루기 - 부학봉 - 설봉산 희망봉 (394봉) -

              사기막골 갈림길 - 서희봉 - 연자봉 - 만남의 쉼터 2.3 Km 지점 -

              활공 비행장 - 남장대지 - 새천년 탑 - 사직단 - 성화봉 및 봉화대 -

              칼바위 - 설봉산성 - 다시 치킨대학으로 원점 회귀

산행시간 : 1시간 42분 (12시 45분부터 14시 27분까지)

 

 

잊혀져 가는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다녀 온 설봉산에서의 시간들

 

 

그 옛날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되였다는 이천 쌀밥과 청국장으로 거나하게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연락하니 특별한 일이 없다기에 도드람산에서의 너무나 짧은 산행을 아쉬워하며 다른 산 하나를 더 오르자 마음 먹어 본다.

 

이천 및 설봉산 안내도 

 

도드람산 산행 시 중부고속도로 건너편으로 바라다 보이던 설봉산, 최근 많은 역사적 유적지와 이천시의 채화 장소로서 진산으로 대접 받고 있는 설봉산, 산세는 얕으막하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귀한 대접을 받고 잇는 산이기에 충분한 곳이란 생각이다.

 

들머리 오르며 바라본 치킨 대학 및 주차장 원경 

 

12시 30분, 식당 주인 아저씨에게 물어 치킨대학 뒤쪽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오르면 쉽게 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그쪽으로 애마를 몰아 달려 간다.

혹시 몰라 가는 길에 평화공원 정문에서 다시 한번 등로 확인한 후 치킨대학 뒤쪽으로 나 있는 차도로 끝까지 올라가니 넓은 주차장이 있고 그곳에 애마를 세워둔 후 넓은 등로 따라 오른 시간 12시 45분.

 

화두재고개 이정표 

 

차가 다닐만큼 넓은 임도를 따라 조금 오르자 나무 가로막이 쳐져 있고 등산객 보호를 위해 더 이상 차량운행을 금지한다는 안내판이 서 있다.

그 길을 따라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고갯마루에 오르자 이정표가 서 있고 화두재고개라 적혀 있다.

 

살펴보니 다시 도드람산으로 이어진 등로도 있고 정상으로 나 있는 등로 그리고 학소정과 구암약수로 갈 수 있다는 자세한 안내판이 산객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준다.

 

등로 옆엔 이런 싯귀들이 많이 달려 있고 

 

이곳에서 좌측 도드람산과 정상을 가리키는 화살표를 따라 오르니 방금 전 올라 온 치킨대학 건물이 햇살에 환히 내려다 보이고 나무계단이 시작되며 등로 양편엔 마음의 양식을 쌓아 준다는 싯귀들이 걸려 있다.

 

생각보다 많은 등산객들이 오르고 내림을 반복하고 그속에 섞여 오르니 썩어가는 고목나무 속의 벌래를 잡기 위한 딱다구리 한마리가 고요한 산정을 깨우고 있다.

 

고사목을 쪼고 있는 딱다구리 한마리 

 

나무 계단을 밟으며 낙엽길을 따라 오르니 이곳도 중간에 많은 벤취가 놓여 있고 등산객들이 쉬어 갈 수 있도록 많은 편의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다.

자연 그 상태로 보존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르는 산이다 보니 안전을 위한 쉼터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으리란 생각이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라 오르자 화두재 365계단이란 안내판이 있고 이정표엔 설봉산성이란 글귀가 실려 있다.

 

화두재 365계단 설명 판 

 

화두재 365계단 이야기

이 화두재는 과거의 마장면에서 이천 읍내로 통과하던 고개로써 설화에 의하면 중국사신이 효양산(부발읍소재)에 금송아지를 찾기위하여 오던중 마장면 오천리에  와서  어느 노인네에 앞으로 갈 길을 물으니 노인이 대답하기를 오천역(5,000驛)을 지나 화두(火頭)재 고개를 넘어 이천읍(2,000邑)을 거쳐, 억억다리(億億橋)를 건너서 구만리 뜰(90,000里 뜰)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하자 그 사신은 너무 멀리 느껴져 되돌아 갔다는 전설이 깃든 고개이며, 그 노인은 바로 효양산을 지키는 산신령이었다고 함, 여기서 부터 1년을 상징하는 365계단이 시작된다.

 

365계단, 10 계단 마다 표시가 되어 있다 

 

한참을 한계단 두계단 밟고 올라가니 다시 등로 양편에 밴취가 들어 서 있고 365 계단을 오르며란 싯귀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365계단을 오르며.....

오늘도 365계단(階段)을 오른다.

일년은 삼백예순닷새

한계단 한계단 오르듯

우리의 일생도 그러한 과정이다.

 

화두재에서 오르는 365계단

산자락에는 도자비엔날래가 열리고

호수 주변의 남녀노소 발걸음도 분주한데

숨을 몰아쉬며 인생의 계단을 오른다

 

그대여!

365계단의 의미를 아는가

험한 파도 뒤에 오는 평화(平和)

땀 흘린 만큼 보람도 있나니

한계단이라도 소홀히 하지 말게나

 

드디어 365계단 언덕위에는

풍상(風霜)을 이겨낸 오백년송(松)

저 하늘의 유유한 흰구름(白雲)

우리 인간(人間)과 더불어 삼우(三友)일세

 

365계단 옆에 마련된 벤취에 앉아 시를 감상도 해 보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등산객과 외지 산객들에게 손짓하는 모습에서 지자체의 수고에 고개가 숙여진다.

 

아름다운 싯귀를 감상하며 오전에 내린 눈이 녹으며 촉촉히 적셔 놓은 등로의 낙엽을 밟으며 오르니 큰 소나무 한그루가 주위에 몇그루의 작은 나무들에 둘려쌓여 있고 다가가 바라보니 오백년송이란 이정석이 앞에 놓여 있다.

 

오백년송이다 

 

정말 오백년이 되였는지 알 수 없지만 이천 지자체에서 공식적으로 세워 놓은 안내석이니 믿을 수 밖에.

그리고 그 옆으로 이 봉우리 이름이 백운봉이라 적혀 있는 정상석 하나가 또 서 있다.

 

백운봉 이정석 

 

왜 백운봉인지 그 의미를 적어 놓지 않아 자세히 모르겠지만 한문 표기를 봐서는 하얀 구름이 머물다 간 다는 뜻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본다.

그곳 풍경을 사진에 담고 다시 완만한 능선을 오르니 곧바로 청운봉이 반기고 이곳도 역시 설명이 없기에 혼자 생각으로 파아란 구름이 쉬었다 가는 봉우리인가 보다 하고 지나쳐 본다.

 

청운봉 이정석 

 

청운봉 지나 다시 얕으막한 능선을 타고 넘자 도드람산으로 이어지는 이정표 하나가 눈에 들어오고 그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 주었으나 박무로 인해 보이는 것은 없다.

아마도 도드람산과 이곳 설봉산을 연계해 산행할 때 이용되는 등로일 것이라는 추측만 할 뿐이다.

 

부학루 또는 도원정이란 현판이 달려 있다 

 

이제 저 멀리 등로 좌측에 붙어 서 있는 팔각정 하나가 보이고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니 이곳이 부학루 또는 도원정이란 현판이 앞뒤로 달려 있다.

부학루기란 이름으로 설명되어 있는 해설판을 읽어 보니

 

부학루기

 

부학루기 설명 판 

 

다시 부학루를 지나 로프가 걸려 있는 등로를 타고 가자 이섭대천이란 간판이 등로 주위에 걸려 있어 그 글귀를 옮겨 본다.

 

이섭대천

 

십이대천 설명 판 

 

이 이섭대천을 지나자 다시 부학봉이 나오고 이곳에서 다른 등산객에게 부탁해 처음으로 사진 한장 남긴다.

이 부학봉이 바로 우측으로 영월암과 삼형제 바위로 이어지는 삼거리로서 그곳에 다녀오고 싶었지만 포기하고 정상을 향해 다시 발걸음 돌린다.

 

부학봉에서 한컷 

 

짧막한 된비알 오르니 주위에 아름다운 기암들이 산객을 즐겁게 만들고 그 바위군을 지나자 다시 로프가 매달려 있는 나무 계단이 나타나고 곧바로 설봉산 정상인 희망봉에 다다른다.

 

설봉산 정상석 앞에서 

 

정상 좌측엔 간단한 스트레칭용 운동 기구들이 서 있고 칼바위로 이어진 능선에 설봉산이란 이정석과 희망봉이란 각기 다른 정상석이 서 있다.

 

설봉산

설봉산(394m)은 이천시가지를 서쪽에서 북동방향과 남동방향으로 둘러싸고 있는 이천의 진산으로 북악산(北嶽山)이라 부르기도 하였고, 마치 학이 날개를 편 형상을 닮았다하여 무학산(舞鶴山), 부학산(浮鶴山)이라고도 하였다.
산세가 험준하지 않으나 힘이 있고 삼형제 바위, 연자바위, 희망바위 등 기암괴석이 많다.

 

하산길에 희망봉 이정석에서 

 

맑은 물이 샘솟는 약수터가 8개소나 있으며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을 위해 작전을 세웠다는 설봉산성(남천정지)과 신라문무왕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 영월암 등의 유적이 곳곳에 있고 잘 조성된 등산로와 2001세계도자기엑스포를 통해 새롭게 조성된 설봉공원, 시립박물관 등 유익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하여 이천시민은 물론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명산이다.

 

설봉산 정상석과 희망봉이 서 있는 설봉산 정상 모습 

 

정상에서 보면 설봉산이 높이에 비해서는 꽤 큰 산임을 알 수 있다.

북쪽은 여전히 숲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조금가면 큼직한 바위(고깔바위)가 있다.

이 바위위에 올라가면 설봉산 일대의 경관을 바라볼 수 있다.

이 바위에는 하켄도 몇 개 박아 놓아 간단한 록 클라이밍도 가능하다.

정상에서 내려와 북릉을 따라 363m봉에 닿으면 시야가 트인 조망을 즐길 수 있다.

 

서쪽으로 마을과 중부고속도로 그리고 도드람산이 보인다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이 북쪽으로 가까이 보이는 천덕봉(630m)과 원적봉(563m)이다.

남동쪽 장호원일대의 넓은 이천들판과 동으로 여주 아래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복하천변 들도 광활하다.

서쪽으로는 중부고속도로 저쪽에 도드람산이 지근 거리에 보인다.

 

설봉산 정상석 

 

이곳에서 잠시 머물며 공모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강희현님의 설봉산에 오르면이란 시 한수를 읊조려 본다.

시인도 아니요 예술가는 더욱 아닌 사람도 이렇게 대자연과 하나되어 산정에 오르면 저절로 읊조려지는 시 한수들, 바로 이런 즐거움이 있기에 땀 흘리며 힘들어도 다시 또 산정을 찾아 오르는가 보다.

 

희망을 키우라는 뜻인지 

 

설봉산에 오르면

                    - 강희현(공모 최우수작)

골안개 헤치며
솔내음 가득한 설봉길
굽이 굽이 걷다 보면

청솔모
다람쥐
정겨웁게 뛰놀고

높이 솟은 칼바위
하늘을 우러러

떡갈나무
산벚나무
설봉호에 드리우고

太古의 精氣
계곡 따라
고을져 흐른다.

 

 칼바위로 가는 길에 우측에 서 있던 이상하게 생긴 바위

 

여기에서 잠시 고민하다 0.92 Km 남았다는 칼바위 즉 설봉산성을 들렸다 하산하기로 하고 다시 갈길 서둘러 본다.

설봉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진행하자 우측으로 아름다운 괴암이 서 있고 디카에 담은 후 등로에 쌓아 둔 돌탑을 지나자 사기막골로 하산하는 갈림길에 도착한다.

 

사기막골 갈림길을 알리는 이정표 

 

좌측 사기막길 버리고 우측 칼바위쪽 화살표를 따라 진행하자 정상에 바위들이 모여 있고 잠시 올라 보지만 큰 의미도 없고 전망도 없기에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 가 본다.

 

서희봉 이정표 

 

내려가다 보니 서희봉이란 이정표가 서 있고 정상 우회길과 직접 정상으로 오르는 갈림길이 나온다.

내가 내려온 길은 우회하지 않고 직접 설봉산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를 타고 내려온 듯 싶다.

 

연자봉 이정석 

 

그 갈림길 지나 다시 나타나는 얕으막한 봉우리에 오르자 이번에는 연자봉이란 이정석이 앉아 있고 그 봉우리 넘어가자 가까이에 산불 감시 초소가 모습을 나타낸다.

 

어느곳 어느산엘 올라도 있는 흉물스런 산불감시초소, 정말 산불 감시나 예방에 도움이나 줄지 의심스럽지만 없는 것보다는 등산객들에게 다시 한번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것만으로도 그 역활을 할 수 있으련지.

 

영월암 갈림길에 서 있던 만남의 쉼터 2.37 Km 지점 이정표 

 

다시 능선 따라 내려가니 많은 바위들과 함께 만남의 쉼터 2.37 Km 지점이란 이정표가 서 있고 자세히 살펴보니 이곳에서 영월암 하산길이 있는 모양이다. 영월암까지 0.4 Km 남았다는 글귀가 마음을 자극하지만 포기하고 칼바위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공군 군부대가 이용하고 있는 활공장(?) 

 

다시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진행하니 오후 1시 30여분, 드디어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칼바위에 닿는다.

 

남장대지 터, 군 막사를 지어 지휘소 역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 됨 

 

이곳이 바로 설봉산성으로서 많은 유적물들이 출토되고 또 보존되고 있으며 이천시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채화도 하고 봉수대도 재현해 놓은 이천 지자체의 진산처럼 보이는 곳이다.

 

새천년 탑 

 

설봉산성

설봉산일대는 넓은 이천들판을 배후에 두고 한강유역으로 전진하려는 신라와 이를 저지하려던 고구려, 백제가 쟁패를 벌이던 요충지였다.

기치미고개 위쪽 넋고개를 시발로 좌우로 펼쳐진 산맥은 전선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긴 능선에서 능선으로 이어진 산맥이면서 설봉산을 중간에 두고 병풍처럼 펼쳐지는 산세다.

 

성화봉 봉화대 전경 

 

그래서 설봉산에는 산성터가 여러군데 보인다.

360m봉우리 북쪽 사면에도 산성터가 있다.

성터는 많이 무너져서 남아 있는 곳이 몇곳 안된다.

최근에 한부분을 복원하여 성의 모습을 일부 되찾았다.

그러나 성의 정확한 모습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설봉산성 모습 


설봉산은 이천의 진산이며, 칼바위를 중심으로 경사진 고원지대가 옛 산성터이다.

설봉산성 성벽은 대부분 토축으로 되어있고 부분부분 석축을 혼합한 포곡식 산성이다.

석축은 대부분 무너져 내렸거나 흙속에 묻혀 있으며 현재 비교적 잘 남아있는 곳은 6곳으로 높이가 2-3m안팎이다.

치성(稚城)은 7곳이 남아 자연지세를 그대로 이용하거나 성벽을 이루고 있고 모서리쪽에 돌과 흙을 쌓아 만든 것이 독특하다.

 

설봉산성 설명 판 

 

산 정상 남쪽과 등산로 입구쪽의 평평한 곳에는 3줄의 주출돌이 잘 남아 있다.

장대지로 추정되고 칼바위 옆에는 군기를 꽂았던 바위, 돌싸움에 사용되었던 3곳의 돌 무더기가 있다.

한편 성문터는 뚜렷이 드러난 곳이 없지만 관고리로 내려가는 완경사 계곡에서 찾아질 가능성이 높으며 우물터는 3곳이 남아있다.

 

설봉산성 이정표 


설봉산성을 쌓은 연대는 고구려가 백제를 정복하여 한강이남을 차지하고 이천지역에 남천현을 설치한 475(장수왕 63년)년에서 신라, 백제 세력이 이 지역을 다시 점령한 551년(진흥왕 12년)사이로 추정된다."

 

설봉산성 안내 해설 판 

 

이곳에 머물며 많은 역사적 유적지를 둘러보고 해설판을 읽어보며 그 옛날 삼국이 치열하게 싸웠을 국경지대로서 설봉산의 중요성을 뒤돌아 보는 계기가 되였다.

군영막사 및 지휘 통제소 역활을 담당했을 남장지대 터, 최근에 이천 지자체에서 세운 새천년의 탑, 최근 복원 시킨 제를 지내던 사직단, 채화를 하고 나라의 변고를 알렸던 성화봉의 봉화대, 거대한 설봉산성과 그 해설판을 돌아 보며 전국 곳곳마다 살아 쉼쉬는 역사를 배워본다는 사실에 산행도 잊은 채 한참을 머물러 본다.

 

칼바위 이정표 

 

산행의 즐거움 못지 않게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를 받은 기분으로 룰루랄라 맑아지는 날씨처럼 상쾌한 마음으로 뒤돌아 설봉산 정상으로 복귀한다.

이 시간 오후 2시경.

우측 설봉산 정상석 뒤쪽으로 나 있는 등로를 따라 약 20여미터 내려가지 하늘이 열리면서 희미하지만 조망이 잘되는 암봉 위 전망대가 보인다.

 

설봉산 뒤 전망대에서 바라본 중부고속도로와 도드람산 원경 

 

그곳에서 마장면과 중부고속도로 그리고 저 멀리 가물거리는 오전중 다녀 온 도드람산을 바라보며 서산으로 떨어지는 햇살을 받는다.

날씨가 쾌청했다면 정말 좋았을 전망에 아쉬움 남기고 설봉산 정상으로 뒤돌아 올라 와 사진 한장 다시 남기고 올랐던 화두재 고개로 회귀하여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2시 27분 여.

 

화두재고개에서 치킨대학 주차장으로 내려오던 등로 위에 쌓여 있던 낙엽들 

 

쉬면서 널널하게 다시 1시간 40여분 동안 알지도 못했던 이천 설봉산에서 많은 역사 공부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니 하늘에선 다시 진눈개비를 뿌리며 가는 겨울의 아쉬움을 토로한다.

 

가볍지만 길고 보람 있게 보낸 실속 있었던 하루에 감사한 마음으로 지는 해에 합장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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