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날짜 : 2008년 02월 29일부터 03월 01일까지 (무박2일)
산행날씨 : 하루종일 맑았으나 너무 많이 내린 눈으로 산행이 어려워 갈미봉 하산길에서 탈출하며 너무 고생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새벽 영하 08도에서 낮 최고 영상 04도
참가인원 : 3450온누리산악회 회원 총 22명(존칭생략) 칠갑산, 솜이, 사하라, 청목, 왕언니, 베짱이, 석불산, 산바람, 이철주, 풀뿌리, 진석이네, 자우롬, 고산자, 설총, 하이킹, 운산, 피그, 나마스테, 드래곤, 드래곤투, 태평천하, 월척
산행코스 : 댓재-햇댓동-명주목이-통골재-두타산(1355.2봉)-박달령-문바위재-청옥산(1403.7봉)-연칠성령-망군대-고적대(1353.9봉)-갈미봉(1260봉)-전망대-정선군 임계면 장아리 림도-내도전-산행종료
산행거리 : 21.50 Km, 접속구간 06.50 Km (전망대에서 정선군 임계면 내도전까지)
산행시간 : 선두와 후미 없이 다함께 대형 알바하며 18시간 30분(백두대간 11시간 40분과 접속구간 06시간 50분 포함, 새벽 04시 30분부터 밤 23시 00분까지)
준비물 : 물 2.3 리타, 이온음료 0.6 리터, 아침과 점심 밥, 반찬 3종류, 과일(단감, 귤, 사과), 이슬이 0.2 리터, 쵸코렛, 빵, 수저와 젓가락, 1회용 커피 5스틱, 라면 3개, 콩나무, 파와 청양고추 썰은 것, 코펠과 버너, 가스통 1개, 겨울 방수방풍의, 겨울용 모자 2개, 땀수건, 목수건 2개, 얼굴마개, 겨울장갑 2족, 헤드렌턴과 예비 건전지, 가위, 칼, 압박붕대, 에어파스, 구급약, 디카 및 예비 건전지, 무전기 3대, 스틱 2개, 모발폰과 예비 건전지, 상세지도와 산행자료, 컵, 휴지 2봉, 쓰레기 봉투 1개
버스에 두고 간 준비물 : 갈아 입을 옷 한 벌, 겨울 방풍의, 예비 헤드헨턴과 예비 건전지
교통수단 : 40인승 대형버스 1대
신평고속관광 양기중 기사님
산행시간 : 2월 29일(금요일)
23:10 사당역 출발
23:30 복정역에서 사하라 대장님 마지막 탑승
3월 01일(토요일)
04:11 댓재(산행 들머리)
05:01 햇댓동(길주의-직진길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 가파른 내리막 길이 대간길)
05:21 930봉(길주의-우측으로 우회하여 진행)
05:32 명주목이
05:54 1024봉(이정표-통골 1.8 Km, 햇댓동 1.8 Km)
05:59 1028봉
06:04 1016봉(이정표-통골 1.1 Km, 햇댓동 2.5 Km)
06:27 통골재(이정표-두타산 2.2 Km, 햇댓동 3.6 Km)
06:48 1243봉(산행팁-1243봉 또는 우측으로 우회길 존재)
07:39 두타산(1355.2봉, 길주의-우측 두타산성 또는 쉰음산길 버리고 좌측길로 진행)
08:40 아침식사
09:06 1156봉(이정표-박달령 0.9 Km, 두타산 1.3 Km)
09:28 박달령(이정표-청옥산 1.4 Km, 두타산 2.2 Km, 무릉계 8 Km, 길주의-우측 무릉계곡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길)
09:43 문바위(길주의-좌측 문바위골 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길)
09:46 문바위재(길주의-로프지역 지나 좌측 능선길 버리고 우측 사면길이 대간길)
10:28 학등 갈림길(길주의-우측 학등 및 무릉계곡 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길)
10:29 청옥산(1403.7봉)
11:42 연칠성령(길주의-우측 칠성폭포 및 무릉계곡 길 버리고 좌측길이 대간길)
11;58 망군대
12:51 고적대(1353.9봉, 길주의-좌측 중봉산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14:09 용추폭포 갈림길(길주의-우측 용추폭포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길)
15:05 암봉 및 암릉지대(산행주의)
15:42 갈미봉(1260봉)
16:01 전망대(백두대간 산행 종료)
17:32 임도
20:10 능선길로 하산
21:25 장아리 계곡
22:29 내도전 임도
23:00 내도전(산행종료)
사선을 넘나들며 두타 청옥의 심설 산행에서 살아 돌아 온 온누리 백두대간 종주대들 이야기
에필로그
종주대를 이끌고안전하게 아무 사고 없이무사히 하산할 수 있을까 ???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극심한 공포와
생사를 넘나드는 짧은 순간 그래도 능선에서 계곡으로 내려가야만
살 수 있다는 확신으로 무작정 길도 없는 심설을 헤치며
러쎌를 시작한다.
지치고 체력이 고갈되어 생사가 불분명해지는 순간
계곡물이 나오고 날짐승이 다닌 길이 보이면서
삶에 대한 확신을 가져 본다.
벌써 5 시간 이상을 자신도 모르는 위치에서
탈출구를 못찾아 헤매이다 만난 임도와 상수원 탱크
곧이어 반짝이는 써치라이트 불빛.
짧은 시간 사선을 넘나 들던 순간이 떠오르며
긴장이 풀리면서 순간적인 패닉현상이 일었다.
그래도 말없이 묵묵히 따라주는
21인의 종주대가 있기에 강한 척 앞서 나갔지만
가슴으로 전해오는 극도의 두려움은 어쩔 수 없이
사나이 가슴을 적시고 있다.
드디어 구조대가 보이고 버스에 오르니
안도의 한숨이 나오면서깊은 잠으로 빠져든다.
이번 산행의 에필로그는
장호 시인의 두타산으로 갈무리 한다.
두타산 - 장호
주는 자는 안다저에게 있는 것이 무엇이며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인간을 떠나는 자는 안다
인간이 가진 것이 무엇이며 안 가진 것이 무엇인가를
두타산에 오르면 내게 줄 것도 깨칠 것도 없다는 깨침
그것은 삼화사 뒤 무릉계에 앉아서는 모른다
미로천변 천은사 터전에서 쳐다 보기만 해서도 모른다
땀 흘리며 인두컵을 벗으며 용추폭을 거슬러
신령스런 나비의 주검도 보고 문간재를 기어올라
망군대, 청옥산,박달령을 건너 질러 두타산 정수리에
머리카락을 날려본 자의 눈에만 보인다.
발아래 구비구비 푸샛 것들을 보듬고
정선골 누비며 아리아리 아라리 젓줄을 물려주는,
주는 자의 기쁨
깨친 자의 비어 있음
청옥산 정상에서 찍은 단체 사진
산행후기
찌는듯한 무더위 속에 처음 백두대간 산행에 발길을 들여 놨던 두타, 청옥산 구간이고 또한 최근 산행기를 읽어 보니 고적대까지는 러쎌이 되어 있어 그렇게 어렵지 않게 진행되리란 굳은 믿음으로 시작한 제24차 백두대간 산행길.
다만 지난 회차에 너무 많은 눈이 쌓여 계획대로 진행하지 못한 산행으로 인해 참가 참가 인원이 적어 많은 걱정은 되였지만 그래도 가야 되는 길이기에 준비를 시작 해 본다.
산행 참가 인원 총 22명, 많지 않은 인원이지만 그래도 예상보다 높은 참여율에 안도하며 사당으로 나가니 보름 전만 해도 한가하던 사당역 주변이 많은 버스들로 붐비고 바야흐로 산행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음을 실감해 본다.
백두대간 산행 중 이동 거리가 가장 멀고 산행 자체도 가장 힘들고 긴 두타 청옥산 구간, 복정역에서 마지막으로 사하라 선등대장님 모시고 룰루랄라 여유로운 좌석을 친구 삼아 동계스포츠의 메카라 불리우는 평찬 휴게소에서 새벽 참을 들고 다시 잠을 청해 마지막 동해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해 본다.
동해 휴게소에 걸려 있던 동해시 관광 안내도
2년전 백복령에서 이기령 구간 산행을 위해 당일 코스로 왔을 때 보았던 드넓은 바다와 해변 그리고 피서 인파들를 상기 시키며 그 아름다웠던 추억을 잡으려 애써 어둠속에 잠겨 있는 동해 바다엔 정적과 달빛을 반사 시키는 한가로움만이 모진 겨울 바람을 맞이해 주는 듯 하다.
댓재 조형물
새벽 4시를 막 넘기며 오늘의 산행 들머리 댓재에 도착 해 도로 주변을 살피니 허리까지 빠지는 눈더미가 사방에 쌓여 있어 산행의 어려움을 예견하는 듯 하다.
다만 기온은 많이 상승하여 불어오는 겨울 찬바람이 매섭게 다가오지 않음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란 생각이다.
댓재에 있던 두타산 등산 안내판
댓재
댓재라는 이름은 곧 큰 산줄기의 고개라는 의미로 일컬은 ‘대고개’ 라는 뜻의 말이라 생각된다. 대동여지도에는 이를 죽치(竹峙)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는 대고개·댓재를 뜻옮김한 표기다. 여기서의 대는 곧 대들보·대보름 등과 같은 크다는 의미로서 竹의 훈을 빌려 표기한 것이다.
선답자가 만들어 놨을 눈사람만이 휭하니 겨울 찬바람이 불고 있는 댓재를 지키고
잠시 사진 몇장 찍고 산행 전 스트레칭을 하려 했으나 모두 귀찮은 표정이기에 각자 짧은 시간 몸 풀고 4시 30분 드디어 장도의 길을 떠나 본다.처음 백두대간 산행을 하였던 기억을 더듬어 보려 하지만 등로를 가로막은 깊은 눈으로 이미 새로운 등로가 생겼고 그 등로를 따라 간이 화장실 뒤쪽으로 진행하여 첫번째 이정표를 만나지만 곧바로 새로운 등로를 찾아 잠시 주춤거리다 간신히 정상적인 등로를 따라 이제 여유로운 산행을 이어가 본다.
햇댓등 이정표를 배경으로 어둠속에서도 추억 만들고, 나마스테님과 솜이 총무님
계절의 변화에 따라 특히 눈에 덮혀 있는 등로가 얼마나 다른 길로 인식되는지를 절감하면서 완만한 오름길을 한참 오르니 드디어 햇댓동 이정표가 반긴다.
백두대간 길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90도 각도로 꺽여 무척 가파른 하산길로 내려가는 길이기에 무척 알바하기 쉬운 곳이지만 오늘은 어짜피 러쎌한 발자국을 따라 진행하니 그럴 염려는 줄어든 것 같다.
명주목이에 서 있던 이정표
잠시 휴식 취하며 후미 기다려 다시 진행하니 명주목이인듯 하나 이정표는 없고 단지 일정한 간격마다 두타산까지의 거리를 표시한 이정표가 보이지만 이미 거리 표시는 지워져 그저 길안내판으로 사용하며 전진하니 하늘이 열리면서 우측 동해바다의 불빛이 아른거리는 1024봉에 도착한다.이 시간 새벽 5시 54분
1024봉에서 동해 바다와 오징어배를 배경으로 미니 단체 사진
한여름에 왔을 때 미니 단체 사진을 남겼던 추억을 뒤살리며 이곳에서 다시 한번 선두 단체 사진 남기고 작은 봉우리 몇개를 오르락 내리락 하니 어느덧 통골재에 도착한다.
정상적인 시간에 통골재에 도착하고
한여름에 왔을 때 이곳에서 보았던 일출을 회상하며 다시 후미 기다려 이제 본격적인 된비알 오르막을 타고 두타산과의 만남을 기약하며 재빨리 발걸음 옮겨 보지만 눈속에 빠지는 발자국이 짐이 되어 생각보다 발걸음이 더디다.
다만 오늘 처음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하신 드래곤투님이 사하라 선등대장님 바짝 뒤어 붙어 밀어 붙히는 힘이 대단하시고 두분만의 데이트를 방해 하는 것 같아 잠시 사진 몇장 찍는 사이 두 분의 모습도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동해 바다위에 솟아 오른 마루금 형상의 구름을 붉게 물들이는 여명이 밝아오고
1243봉 오름길에 대간 마루금처럼 웅장한 동해 바다 위에 떠 있는 구름 사이로 붉은 여명이 어둠을 몰아내고 곧 있을 환상의 일출을 보기 위해 좀 더 속도를 내 보지만 발걸음 붙잡는 심설에 두타산 오름길에 환히 세상을 밝히는 햇살을 맞이해 본다.
언제나 가슴 설레이게 만드는 일출도 잡목 사이로 시작되고
잡목 사이로 피어나는 한송이 장미보다 더 붉고 선명한 자태로 드넓은 세상을 밝히는 일출, 또 다른 느낌과 경험으로 흥분된 마음 간신히 가라 앉히고 등줄기에 땀이 나도록 오르막 오르니 이제는 눈에 들어오는 심설과 바람이 빗어 논 또 다른 대자연의 숨결이 종주대의 작은 가슴을 터질듯 부풀려 주고 있다.
심설과 바람이 빗어 논 신비스런 자연 현상도 보이고
생각보다 늦지 않은 산행 속도에 아직은 편안한 마음으로 오름짓 계속 이어가자 이내 다시 하늘이 열리면서 지나온 대간 마루금과 가야할 청옥산과 고적대의 능선이 너무나 아름답게 종주대를 맞이해 준다.
두타산 오르막에 청옥산과 고적대를 배경으로 드래곤님도 찍어 드리고
2년전 여름과 비교하여 약 1 미터 이상 쌓인 눈으로 인해 산행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일망무제 거칠것 없는 조망에 압도되어 전진하기 조차 힘이 든다.같이 가는 산우님들 사진도 찍어 드리고 다시 못 볼 그 장엄한 마루금에 사랑 노래 실어 보다 보니 어느새 새하얀 눈속에 덮혀 있는 두타산 정상이다.
두타산 정상에서 찍은 단체 사진
두타산(1355.2봉)
두타산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릉계곡이다.무릉하면 생각나는 것은 이상향, 즉 파라다이스를 일컷는다.서양의 파라다이스는 에덴동산이요 동양의 파라다이스는 무릉도원이다.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최초에 원죄를 짓기 전에는 인류의 낙원이였다.그러나 선악과를 따먹은 뒤로 인류의 영원한 낙원은 사라지고 현실의 고통이 상존하는 인간 세상이 되고 말았음은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동양의 파라다이스는 어떤가 ???이곳은 신선이 사는 곳, 사시사철 외부의 세력으로 부터 보호 받으며 도화가 만발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고 안락한 곳 먹고 마시는 것으로 부터 자유로워서 근심과 걱정이 없는 곳이 바로 무릉도원인 것이다.
두타산 정상에서 먹는 아침 식사는 천하 일품이고
두타산은 불교에서 인용된 명칭으로 즉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수련하는 것을 범어로 두타라고 되어 있다.
세속의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말이다.
속세를 버렸다는 사람들도 요즘같이 물질이 풍부한 세상에서 이 번뇌를 완전히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그 어려운 번뇌를 위해 오늘 하루 그리도 고통스런 사선을 우리에게 주웠나 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를 설파하신 성철 스님과 같이.
한여름의 푸르름과 대별되는 산, 같은 장소 같은 이름의 산이지만 이렇게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산이기에 사계절 어느 때 오르더라도 그 느낌은 모두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 본다.
두타산 정상에서 바라 본 가야 할 청옥산과 고적대
무성한 나뭇잎으로 덮혀 있던 두타 정상이 거칠 것 없는 전망을 내주면서 심설에 고생했다며 보상이라도 해주듯 넓은 가슴을 열어 주고 있다.이 시간 아침 7시 39분.
이곳 양지밭에 옹기 종기 모여 아침밥을 먹고 잠시 휴식 취하며 단체 사진 한장 찍는데 사하라 선등대장님이 배탈이 나신듯 하다.지난 회차에 비해 따뜻한 날씨이지만 1300고지가 넘는 두타산 정상에 불어 오는 겨울 바람이 어디 그냥 바람과 같겠는가.
두타산에서 하산하며 바라 본 청옥산
추위에 떨면서 급하게 식사한 것이 탈이 되어 걱정이지만 참을만 하다는 소식에 다시 가파른 내리막 타고 박달령를 향해 브레이크도 없는 발썰매를 타고 넘어지고 엎어지며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고 조심하며 내려간다.
이곳에서 부터 후미는 다시 산바람님이 맡아 수고해 주시고 피그 후미대장님은 서두로 나서 길 찾아 러쎌하는데 도움을 주고 계신다.햇살이 비추는 동쪽과 남쪽 사면엔 그동안 쌓인 눈들이 굳어져 발목이 빠지지 않는 좋은 등로를 만들어 주고 있지만 햇살이 비껴가는 북쪽 사면의 눈길은 흡사 하얀 백설탕을 등로에 깔아 놓은듯 반짝이며 모이지 못해 허리까지 눈속에 파묻히기 일수이다.
엄청 쌓여 있는 눈길이 이제 무서워지기까지 하고
무척 더디고 힘은 가중되는 산행 조건, 특히 두타산까지 산행했다 너무 많이 쌓여 있는 눈 때문에 산행을 포기한듯 지나간 발자국도 현저히 줄어들고 희미한 발자국 몇개가 있지만 러쎌하다시피 하며 진행하는 겨울 산행의 참 어려움과 맛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깊은 눈밭 산행으로 인해 무릎이나 관절에 이상을 느끼는 산우님들이 없기에 진행할 수 있다는 믿음 뿐이다.어떻게 1156봉을 넘었는지 조차 모르게 진행하니 드디어 박달령 이정표가 보이고 이곳에서 다시 후미 기다려 얼굴 한번 보고 다시 전진을 외쳐 본다.
박달재에서 오늘 처음 대간 산행에 참여하신 드래곤투님도 찍어 드리고
다만 후미로 쳐져 힘들게 뒤따라 올라오는 사하라 선등대장님이 아직도 배탈에 고통을 호소하시면서 구급약을 찾으시고 준비한 한방 소화제를 월척님께 당부하고 떠나려는데 월척님이 한마디 남기고 그 여운이 오래토록 귓전에서 맴돈다.
어려움 속에서도 러쎌하시며 수고해 주신 사하라 선등대장님
월척님 '제가 구급약 들고 사하라 선등대장님께 전달해 드릴께요'칠갑산 '왜요 (속으로는 월척님도 힘드신데 그냥 일찍 청옥산으로 오르시지요. 구급약은 이정표 어딘가 놔두고 찾으라면 찾으실건데)'월척님 '지난 번 제가 폭탄이였을 때 응원 보내신 사하라 선등대장님이 후미에서 힘겹게 오르시는 모습을 꼭 한번 보고 말씀 드릴게 있어서요'칠갑산 '그러세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영원한 선등대장님으로 생각되였던 사하라대장님의 후미 산행에 기대가 한껏 부풀어져 있었던 모양이네)'
아직도 왜 이곳이 문바위재인지 몰라 궁금해하며
기록을 남기기 위해 선두에서 거침없이 내달리시는 드래곤투님을 배경 삼아 디카에 모습 담아 드리고 선두를 양보해 중간에서 천천히 전진하니 곧바로 문바위재에 당도한다.
왜 문바위인지 알길이 없기에 더욱 궁금증만 많아지고 이정표 위에 서 있는 바위를 자세히 뚫어 보지만 알길 없기는 매 마찬가지이기에 사진으로 남기고 다시 등로 따라 오르니 바위 너덜구간이라 생각되였던 지점도 모두 눈속에 파묻혀 심설 산행이 되고 등로 옆에 세워둔 철봉과 로프는 산우님들이 손으로 잡을 수 없을 만큼 발바닥과 같은 수평 위치에 존재하며 그저 등로가 이곳인 것을 알려주고 있다.
계단도 로프도 철봉까지도 모두 눈속에 파묻혀 있고
계단도 없고 너덜구간도 사라진 겨울 심설 산행, 또한 등로에서 1미터 이상 쌓여 있는 눈으로 인해 많은 잡목들고 발아래 숨을 죽이고 더없이 깨끗하고 시원한 조망을 안겨줌에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땀 흘려 본다.가끔 오른쪽 동해를 바라보니 박무에 쌓여 있는 파아란 동해 쪽빛바다가 넘실거리고 그 넘어 삶의 터전을 잡은 몇척의 배들이 한가롭게 떠 있다.
무릉계곡과 그 넘어 동해바다도 보이고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에 있는 계곡.
시 중심지에서 서쪽으로 10㎞ 지점에 있으며, 계곡입구의 삼화사에서 상류쪽으로 약 2㎞ 구간에 걸쳐 있다.
1977년 국민관광지 제77호로 지정되었다.
산수의 풍경이 중국 고사에 나오는 무릉도원과 같다 하여 무릉계곡이라 부르며, 소금강이라고도 한다.
시의 동쪽에 솟아 있는 두타산(1,353m)·청옥산(1,404m)·고적대(1,354m) 등에서 발원한 소하천들이 계곡을 흘러 전천을 이룬다.
계곡에는 태암·미륵암·반학대·능암·쌍현암 등의 기암괴석과 시인·묵객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무릉반석(武陵盤石) 및 금란정(金蘭亭)이 있다.
이 계곡 위쪽에는 3단으로 되어 있는 용추폭포가 있다.
다른 각도에서 바라 본 무릉계곡과 동해바다
산곡을 따라 나 있는 도로 양안에 취락이 밀집해 있으며, 시내 버스가 삼화사 입구까지 수시로 운행된다.
동해시의 유명한 관광지로서 4계절 경치가 아름다워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 동해바다로 연결된 무릉계곡에 있는 모든 폭포들은 얼음으로 뒤덮혀 폭포의 기능을 상실한채 바위를 의지 삼아 모진 겨울의 찬바람을 이겨내는듯 보이지만 무릉계곡 우측으로 보이는 거대한 바위군들로 이뤄진 산성터가 남미에 있는 잉카문명의 고대 유적지처럼 가슴을 파고 드는 것이 인상적이다.
남미의 잉카 문명을 옮겨다 놓은듯한 사원터 원경
다시 좀 더 전진하니 잡목으로 인해 조망이 없던 청옥산 정상이 환하게 열리면서 높아진 고도로 인해 가야할 마루금이 선명하고 뚜렷하게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청옥산(1403.7봉)
높이 1,404m. 태백산맥에 솟아 있다.
주위에는 고적대(1,354m)·망지봉(1,210m)·중봉산(1,284m)·두타산(1,353m) 등이 있다.
동쪽 능선을 따라 약 4㎞ 떨어져 있는 두타산과는 연봉을 이룬다.
청옥산에서의 단체 사진
전사면이 급경사이나, 특히 동쪽 사면은 서쪽 사면보다 경사가 더 급하여 태백산맥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인다.
서쪽 사면을 흐르는 계류는 골지천에 흘러들며, 동쪽 사면을 흐르는 계류는 동해시 삼화동에서 전천에 유입하여 동해로 흘러든다.
청옥산과 두타산 사이 전천의 지류가 이루어 놓은 무릉계곡은 1977년 국민관광지 제1호로 지정되었다.
계곡을 따라 무릉반석·금란정·삼화사·학소대·용추폭포 등이 이어져 있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청옥산 주봉에 있던 소나무는 조선시대에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한 대들보용 목재로 사용되었다.
일대에서 생산되는 토종벌꿀은 약효가 좋기로 이름나 있다.
무릉반석-문간재-사원터-연칠성령(連七星嶺)-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비롯한 여러 개의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다.
무릉계곡 입구까지 포장된 도로가 나있다.
이곳의 정상석도 모두 눈에 묻혀 간신히 표식만 찍고
두타산은 현재 최고봉인 1,404m봉이 청옥산, 그 동쪽 1,353m봉이 두타산이라 불리고 있으나,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본래는 최고봉인 청옥산이 두타산, 현 1353m봉인 두타산이 청옥산으로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곧 산경표에서는 태백산을 향하여 남하하는 백두대간 상의 산 이름 순서를 백봉령→두타산→청옥산→죽현(竹峴·댓재)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대동여지도에도 백봉령 남쪽에 두타산이 있고, 그 동남쪽에 청옥산이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으며, 두타산과 청옥산의 산줄기 사이에 무릉계가 위치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청옥산 샘물을 찾아 떠났다 허리까지 빠지는 눈 때문에 엉금 엉금 기어 나오고
정상석도 눈속에 묻혀 있고 샘물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청옥산 정상,다시 가파른 오르막 힘겹게 오르자 시원한 조망을 보여주는 청옥산 정상이다. 이 시간 10시 29분.
이곳에서 다시 후미 기다리는 동안 샘터 찾아 주변을 다녀 보지만 찾을길 없고 뒤돌아 오는길에 허리까지 빠지는 눈속에 걸을 수 조차 없어 엉금엉금 기면서 간신히 다시 청옥산 정상으로 뒤돌아 나온다.
청옥산에서 바라 본 고적대 전경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 간단히 정상주 한잔과 간식으로 시간을 보낸 후 이제부터 후미와 함께 후미대장이 되어 하이킹님과 짝을 이뤄본다.아마 이곳부터 러쎌이 되어 있지 않아 선두에서 길내며 산행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던듯 하나 후미에서 가다 보니 그것도 모르고 그저 생각보다 등로가 잘 나 있다고 오판하기 시작한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 찍은 무릉계곡과 동해바다
이것이 잘못되였음을 알게 된 것이 너무나 늦었고 그것으로 인해 사경을 헤매이게 된 원인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다시 뾰쪽하게 솟아 올라 종주대의 마음에 부담을 배가 시키는 고적대를 바라보며 가파른 하산길을 따라 내려가니 끝도 없이 이어지는 심설이 낭만이 아닌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 되면서 자꾸만 산행 속도를 느리게 만든다.
연칠성령에서 자우롬님
연칠성령
넘나들기가 너무 험난하여 난출령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눈이 없었다면 약 40분이면 도착할 연칠성령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43분, 예상보다 훨씬 더디게 진행되는 산행 속도를 좀 더 일찍 알아 차리지 못한 우둔함을 탓해 보지만 이미 엎어진 물인 것을.
망군대 지나 서 있던 이정표, 망군대는 눈속에 묻혀 보이지도 않고
망군대
인조 1년(1623) 택당 이식이 중봉산 단교암에서 기거를 했다고 한다.그래서 이곳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랬다 하여 망경대 또는 망군대라고 부른다고 전해진다.고적대에서 서쪽으로 흐른 산줄기에 중봉산이 있지만 단교암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최고의 난코스인 고적대 오름길에 왕언니님
다시 망군대를 지나 난코스중 하나인 고적대 오름길을 따라 사투를 벌여 본다.좁은 등로에 쌓여 있는 심설이 가파른 고적대까지 연결되면서 자칫 잘못하면 천길 낭떨어지로 떨어질지도 모를 아찔한 구간을 그래도 서로 잡아주고 끌어주며 무사히 전망대에 오르자 나마스테님이 기다리며 오르는 산우님들 한분 한분 소중한 추억을 담아 드리고 계신다.
고적대 오름길에 지체되는 시간을 이용하여 후미를 봐주고 있는 하이킹님도 찍어 드리고
이곳 전망대에서 바라 본 고적대 정상엔 아직도 많은 종주대가 남아 휴식 취하며 지나온 장엄한 마루금을 따라 꿈속에서나 소리칠 법한 탄성들을 자아내고 있다.
다시 거대한 암릉으로 이뤄진 고적대 정상 오름길을 조심하며 오르자 로프가 있지만 눈속에 묻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스틱과 스스로의 몸으로 어렵게 균형을 잡으며 마지막 힘을 모아 본다.
사하라 선등대장님이 달아 놓은 3450온누리 띠지
그래도 그 어려운 산행중에 언뜻 보니 선등 사하라 대장님이 달아 놓은 3450온누리 띠지가 바람에 나풀거리고 여기에서 멋진 띠지를 디카에 담으며 처음으로 우리들 산악회 이름을 걸고 산행 한다는 자부심에 마음까지 들떠 있다.
후미까지 사진 찍어 주시고 고적대로 향하고 계신 나마스테님과 청목님
오늘 구간중 가장 난코스중 난코스인 고적대 정상을 발아래 두고 바라 본 두타 청옥산 마루금이 나마스테님이 이야기했듯이 부드러운 여인의 앞가슴에 두 봉우리 모양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품에 안겨 잠들고 싶은 마음까지 들 정도로 쾌청한 날씨에 환상의 로드이다.
부드러운 여인의 앞가슴을 덮고 있는듯한 두타산과 청옥산 마루금
고적대(1353.9봉)
고적산이라고도 한다. 높이 1,354 m. 태백산 줄기인 해안산맥에 속하며, 부근에 수병산(1202봉), 중봉산(1284봉), 청옥산01,403.7봉) 등이 솟아 있는데, 이들 산은 영동과 영서 지방의 분수령을 이룬다.
고적대 정상에서 나마스테님
동쪽으로 흐르는 수계는 전천으로, 북쪽으로 흐르는 수계는 임계천으로, 남서쪽으로 흐르는 수계는 골지천으로 각각 흘러든다. 동쪽 비탈면은 급경사를 이루나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무릉계곡으로 이어져 경관이 수려하고, 서쪽 비탈면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다.
고적대 정상석도 눈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고 간신히 눈을 치워 모습만 디카에 담은 후 잠시 서서 영원할 것 같은 백두대간 산행중 가장 힘들고 어려운 두타 청옥을 가슴에 안아 본다.
산행내내 이런 등로를 따라 진행하고
좋은 계절에 올라도 힘들고 먼 산행 구간인 두타 청옥, 자옥이란 노래 가사를 바꿔 청옥아를 불러보며 아쉬운 여인의 두 봉우리와 이별하고 다시 등로를 따라 내려오니 이곳이 분명 계단이였건만 눈속에 계단은 간곳 없고 그저 미끌거리는 눈속에 몸을 맡긴채 하염없이 길게 이어진 내리막을 내려간다.
로프구간이란 도상 표시를 보지만 그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선답자 아니 선두가 만들어 놓은 좁은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갈미봉 가기전 쉼터 의자에서 중간 팀들이 모여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는 모습이 보인다.
암릉과 갈미봉으로 이어진 마루금
그 너머로 너무나 멋들어진 암릉이 우측으로 펼쳐져 있고 그 암릉 사이마다 생명력의 끈질김을 보여주는 주목인지 소나무인지 몇 그루가 다시 암릉과 신비스런 풍경으로 조화를 이루고 그 아름다움에 이끌려 다시 디카를 돌리기 시작한다.
어느덧 후미도 쉼터 나무 벤취에 도착하여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띠지 달아 놓으며 익살스런 표정으로 추억을 담아 본다.하지만 이곳에서 산바람님과 이철주님이 길을 잃고 헤매이고 있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사하라 선등대장님과 공조하여 간신히 인원 점검 후 좀 더 진행하니 저 멀리 한무리의 산우님들이 모여 시끌벅적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고적대 갈림길 가기전 전망대 벤취에서 잠시 휴식 취하며
다가가 보니 3450온누리 백두대간 종주대가 고적대 삼거리 즉 산성터 갈림길에 모두 모여 후미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고 다시 후미가 도착하자 마자 선두는 앞서 나아간다.
이곳에서라도 우리가 러쎌하며 진행한다는 사실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차라리 우측 무릉계곡 산성터 쪽으로 탈출이나 했으면 좋았을 것을...이곳에서 부터 자유 산행을 알려 드리고 다만 띠지 확인을 잘 하면서 원방재까지 가자 말씀 드리고 후미 모시고 제일 마지막으로 진행하다 보니 어쩐일인지 선두의 산행 속도가 자꾸만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고적대 삼거리, 이곳에서 사원터로 탈출했으면 금상첨화였을 것을, 아쉬움만 남는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계속 진행하다 암릉 구간을 지나며 앞을 바라보니 저만치 앞에 선두의 모습이 보이고 제일 앞으로 재빨리 전진해 가니 제일 앞에서 이철주님이 허리까지 빠지는 등로를 찾아 러쎌을 하고 계신것이 아닌가.
갈미봉 오르기전 바라본 암릉과 소나무 몇그루, 중국 황산이 부럽지 않은 모습이다
암릉, 로프 지대를 지나 잠시 선두에서 러쎌하며 진행하니 한참 전 지났다고 생각한 갈미봉이 눈앞에 서 있다.대구 K2산악회에서 나무 사이에 매달아 놓은 이정표를 보곤 이제사 갈미봉에 도착했음을 알아 차린 후 시간을 보니 오후 3시 45분.
갈미봉 이정표
갈미봉(1260봉)
높이 1260 m이다. 황병산, 주봉, 발왕산 등과 함께 태백산의 등줄기를 이루며, 한강의 지류인 송천이 이곳에서 발원한다. 가까이에 정선아리랑(강원유형문화재 1)의 발상지인 아우라지가 있다.
산우님들 먼저 보내고 이곳에서 양기중 사장님과 전화 통화하면서 처음으로 탈출을 생각해 본다.가장 확실한 탈출로는 우측 무릉 계곡이지만 그곳까지 하산하려면 족히 4시간 이상 걸릴 것이라는 자체 판단으로 양기중 사장님에게 좌측 정선 임계의 장아리나 부수베리쪽 이장님께 전화 연락하여 임도에 차량 통행이 가능한지 확인을 부탁한 후 좌측을 바라보니 가까운 곳에 임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정선쪽으로 보이는 저 임도 때문에 사지로 몰리고
잠시 후 양기중 사장님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오고 임도로 차량 통행이 가능하도록 눈이 치워져 있다는 소식을 접한 후 급하게 선두에 연락하여 좌측 임도로의 탈출을 이야기 한다.
한참을 뒤따라 내려가니 전망대 부근 눈이 적은 곳에 종주대가 모여 있고 모두 모인것을 확인 후 탈출을 공식적으로 전한 후 남아 있는 간식으로 아무 걱정없이 이세상 최고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이 시간 오후 4시경
백두대간 마루금을 탈출하여 임계쪽 임도로 내려오고 있는 종주대들
서쪽 사면을 통해 더욱 깊어지는 눈속을 헤치며 1시간 30여분간 사투를 벌여 임도에 도착하니 오후 5시 30여분, 하지만 도상에 나와 있는 수많은 임도중 어느 임도의 어느 지점에 도착해 있는지를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전화까지 불통이니 이제부터 육감과 직감만을 믿고 하산하는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곧 임도를 벗어나 마을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임도 좌측을 타고 진행하기 시작하니 이곳도 눈이 전혀 치워지지 않은 백두대간 마루금과 동일한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사 무엇인가 잘못되였음을 직감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기에 계속 그 임도를 따라 진행하여 약 2시간 30여분이 지난 후 간신히 양기중 사장과 연락이 닿으니 우리가 타고 있는 임도가 잘못되였음을 알게 된다.
마루금도 임도도 모두 하얀 설원 뿐
처음 임도에 도착했을 당시만 해도 아직 날이 어두워지지 않고 그 임도가 분명 이기령과 연결된 도로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하산길이 아닌 오르막으로 오르는 기분이라 오후 8시 다시 헤드렌턴 불빛으로 길을 밝히며 러쎌을 하고 있는 선두를 잡아 잠시 멈추게 한 후 119와 경찰서에 연락하고 3450온누리 산악회 산안개 총대장님께 연락하니 불통이라 풍운 카페지기님께도 상황 보고한 후 사하라 리딩대장님과 최후 결정을 하기로 한다.
죽지 못해 임도를 따르는 종주대들
갈증이 심해지면서 정신적인 피로도가 극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지만 내 결정만을 기다리며 불평불만 하나 하지 않는 21인의 종주대가 있기에 강한척 많은 고민을 해 본다.
하지만 119 구조대도 늦은 밤이라 헬기를 띄우기도 불가능하며 우리들 위치 추적을 부탁하지만 기지국 위치만 확보될 뿐 정확한 종주대 위치를 알길이 없다는 소식에 이제부터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하산하기 힘들다는 판단에 이른다.
끝없이 이어진 저 능선 자락을 붙잡고 6시간 가까이 사투를 벌였던 마루금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우리가 탔던 임도는수병산쪽 임도가 아닌 중봉산쪽 임도로서 갈미봉에서 동쪽이 아닌 서쪽 능선을 타고 다시 고적대 방향으로 근 2시간 이상 올라 왔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 상황이 밤 8시를 넘긴 시간.이제 서서히 능선으로 불어오는 겨울 찬바람에 종주대의 체온 저하도 걱정이 되고 또한 체력 고갈에 따른 사고의 위험도 있기에 몇몇 산우님들이 그대로 임도를 따르자는 의견을 무시하고 무조건 계곡쪽 능선을 타고 하산을 결심한다.
올랐던 임도를 근 한시간 가까이 다시 뒤돌아 내려와 그나마 조금 완만해진 능선을 타고 다시 허리춤까지 빠지는 눈속을 헤매이며 하산을 서둘러 본다.이제 체력적인 한계가 다가오며 발걸음 옮기는 것이 천근만근 그 자리에 주저 앉고 싶지만 나약한 대장의 모습을 보여주면 안된다는 일념 하나로 정신적으로 계속 진행해 본다.
솜이 총무님 감사합니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가파른 경사길을 근 한시간 가까이 내려왔는데도 보이는 것은 그저 산 능선과 심설 그리고 가끔 보이는 산짐승들이 만들어 놨다 끊어진 등로들 뿐.하늘의 별빛도 달빛도 숨어 버린 한밤중에 그것도 이길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르는 길을 무작정 내려가니 서서히 고도가 낮아지면서 계곡이 보이기 시작한다.
운산님께도 감사한 마음 전하고요
지금까지의 산행 경험으로 봐서 계곡을 따르면 깊은 러프같은 눈속에 빠질 위험 부담은 크지만 민가로 내려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기에 무모한 실행을 감행했지만 묵묵히 대장을 따라주는 종주대들이 있기에 그나마 그 어려운 사선에서 생사를 넘나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보다는 이런 종주대와 함께라면 이 세상 끝까지라도 갈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기기 시작한다.다시 얼마를 내려 왔을까.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 다시 이철주님과 산바람님이 선두를 교대해 주고 그 발자국 아니 점을 따라 내려가니 바람소리인지 물소리인지 분간조차 힘들지만 생명력을 잃지 않도록 거대한 소리가 귓전에 들려 온다.
산바람 친구, 언제나 듬직해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이게 눈길인지 빗길인지 모를 축축한 몸둥아리 이끌고 좀 더 하산하니 계곡이 만나면서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것이 보인다.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이 생기지만 아직도 어둠속에 확실한 등로도 없고 불빛도 없으며 더욱이 인기척도 없는 그 시냇물을 따라 다시 무심으로 내려 간다.
이제 시간을 밤 10시를 향해 달려가고 얼마를 내려 왔을까? 희미하지만 넓은 임도가 보이면서 선답자들이 오래 전 지나간 흔적들이 흐미하게 남아 있다.아무곳에나 널려 있는 눈으로 갈증 해소하고 흐르는 시냇물에 얼굴 박고 물로 배채우며 한참을 내려오니 좌측에 상수도 보호를 위한 조그만 물탱크가 보이고 그제서야 안심이 되면서 다리가 풀려옴을 느낀다.
이철주님 수고 많이 했습니다
옆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앞에 무엇이 있는지 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생과 사의 극한 상황으로 몰리면서도 이렇게 따라주는 종주대를 생각하니 가슴이 울컥하며 보이지 않는 눈물이 사나이 가슴을 적시고 있다.그 눈물이 가슴을 타고 하체를 거쳐 발끝에 모이면서 백두대간 산행의 어려움과 짧은 인생속에 배움의 끝없음을 스스로에게 자문자답해 본다.
다시 그 임도를 따라 내려가자 성황당 같은 장소가 나오고 이제야 진짜 살았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이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쳐 본다.'이제 살았다'
조금 더 진행하자 앞에서 서치라이트가 비추고 그 불빛에 헤드렌턴으로 답을 주면서 작은 시냇물을 건너니 정선 임계 파출소의 소장님 이하 경찰 직원들이 나와 반갑게 인사 주시고 배낭을 사륜 구동차에 실어 놓고 빈 몸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버스로 향한다.버스에 오르자 오후 11시.
내린 눈으로 1미터 이상 높아진 고도
장장 18시간 30분간의 생사를 넘나드는 사선에서 모두 무사함을 확인하니 온 몸의 기운이 빠지면서 정신이 몽롱해 진다.간단히 인사말 하고 버스가 떠나는 시간 11시 30분, 임계 경찰서와 119 구조대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후 우리와 똑같이 가슴 태웠을 양기중 사장님의 버스에 오르니 하루의 피곤함이 몰려오며 눈껍풀이 사정없이 두눈위를 덮으며 꿈속으로 떠난다.
깊은 러프같은 심설을 헤치며 러쎌해 주신 사하라 선등대장님과 이철주님, 산바람 친구님 그리고 운산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또한 후미에서 수고해 주신 피그대장님과 하이킹 아우님께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노심초사 그 고생한 후 밥도 제대로 못 먹였다며 안타까워 하시던 솜이 총무님,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저 이 작은 지면을 빌어 감사의 뜻만 전하게 됨을 용서해 주시길 바람니다.
처음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하여 가장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을 안겨 드린 드래곤님과 드래곤투님, 그저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다시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 하신다면 사선이 아닌 즐거운 산행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정선 임계 파출소와 119 소방대 여러분의 수고에 진심으로 고개숙여 감사 드리며 양기중 사장님의 수고에도 고마운 마음 전해 드림니다.
그리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3450온누리 백두대간 종주대 여러분,이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마르지 않는 눈물이 앞을 가려 견딜 수가 없을 정도로 공포와 환희가 공존하고 있답니다.
백두대간 대장으로서 처음 확실하게 알고 있는 탈출로가 아닌 다른 길로의 진행이 얼마나 무모하고 황당한 것인지 그 책임을 통감합니다.
또한 산행 대장으로서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불확실한 정보로 잘못된 판단을 하였을 경우 어떠한 결과가 초래되는지 다시 한번 등골이 오싹해 짐을 느낌니다.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이 못난 대장을 말없이 묵묵히 따라주신 우리 종주대가 있기에 그 긴 시간 사투를 벌이면서도 아무 탈없이 무사히 하산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산행 그러나 잊어서는 안되는 산행으로 남기며 다음부터는 좀 더 충분한 산행 지식과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철저한 사전 준비를 약속 드리는 것으로 마무리 할까 합니다.
사랑합니다 3450온누리 백두대간 종주대 여러분그리고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백두대간 산행대장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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