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날짜 : 2008년 05월 02일부터 03일까지 (무박2일)
산행날씨 : 하루종일 맑고 화창했으나 박무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새벽 영상 16도에서 낮 최고 영상 27도
참가인원 : 3450온누리산악회 회원 총 19명(존칭생략) 칠갑산, 솜이, 청목, 왕언니, 산바람, 운산, 월척, 이철주, 풀뿌리, 진석이네, 자우롬, 고산자, 인연, 은수, 돌소리, 설총, 사강, 현우, 은지
산행코스 : 백복령-생계령-931봉-고병이재-석병산 일월봉-일월문-두리봉-삽당령
산행거리 : 18.31 Km, 접속구간 00.00 Km.
산행시간 : 선두 11시간 00분, 후미 11시간 00분 (알바 1시간과 날머리 약 30여분 포함)
준비물 : 물 2.0 리타, 이온음료 0.8 리터, 아이스 커피 0.5 리터, 아침과 점심 밥, 반찬 3종류, 빵, 수저와 젓가락, 계절용 방수방풍의, 여름용 모자 2개, 땀수건, 목수건 3개, 헤드렌턴과 예비 건전지, 가위, 칼, 압박붕대, 에어파스, 구급약, 디카 및 예비 건전지, 무전기 3대, 스틱 2개, 모발폰과 예비 건전지, 상세지도와 산행자료, 쓰레기 봉투 1개
버스에 두고 간 준비물 : 갈아 입을 옷 한 벌, 슬리퍼, 하산 후 먹을 삼겹살과 기타 야채 및 불판과 버너 등 일체
교통수단 : 40인승 대형버스 1대
신평고속관광 양기중 기사님
산행시간 : 5월 2일(금요일)
23:00 사당역 출발
23:35 복정역 출발
5월 3일(토요일)
03:30 백복령(산행 들머리)
03:34 백복령 0.1 Km 이정표
03:42 철탑 42번(길주의-우측 자병산길 버리고 좌측으로 90도 꺽어 내리막이 대간길)
03:47 철탑 43번
03:51 임도 만나는 지점(길주의-임도 만나 좌측으로 임도 따라 진행)
03:53 42번 국도
03:54 능선 갈림길 (대형 알바-임도 만나자 마자 사거리에서 공사 차량이 있는 직진으로 가 능선으로 올라야 될 것 같았음)
05:26 45번 철탑, 철탑에는 번호가 없고 전기줄에 걸려 있는 철탑 번호 45번 확인
05:31 철탑 46번(길주의-좌측 등갈산길 버리고 우측 생계령 방향이 대간길)
05:35 카르스트 지형 설명판
05:37 묘1기 지나 임도 만나는길(길주의-임도 만나 좌측 임도 따라 진행)
05:53 능선 갈림길(길주의-임도 따라 진행하다 오른쪽 대간 능선길로 진행)
05:50 796봉 및 헬기장
06:02 765봉
06:26 생계령(길주의-좌측 임도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길)
06:55 서대굴 안내판
06:58 829봉(길주의-좌측 민둥산과 등갈산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07:09 노송지대
07:14 우측절벽 지대(산행주의)
07:43 능선삼거리(길주의-좌측 민둥산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07:44 잡목지대와 931봉
07:54 아침식사
08:23 아침 식사 후 출발
08:30 야생 드릅 솎아 줌
08:48 900.2봉
08:51 잡목 및 산죽지대
09:03 고병이재(길주의-우측 옥계석회동굴 및 절골 하산길 버리고 좌측이 대간길)
09:15 910봉 및 헬기장
09:17 산죽지대
10:09 묘1기
10:13 헬기장
10:16 석병산 갈림길(길주의-우측 석병산 일월봉 들렸다 뒤돌아 나옴)
10:18 석병산 일월봉(1055.3봉, 산행팁-두개의 암봉 및 일월문 그리고 고사목)
10:41 석병산 갈림길로 뒤돌아 내려 옴
10:58 헬기장
11:06 산죽지대
11:19 두리봉(1034봉, 길주의-우측 마덕산길 버리고 좌측이 대간길)
11:43 949봉(길주의-진행 방향에서 우측길이 대간길)
12:06 866.4봉
12:20 능선 삼거리, 삽당령 2.2. Km 이정표(길주의-좌측 큰골쪽 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12:42 헬기장 (왕산 38호지)
12:56 삽당령 기도원 갈림길
13:29 삽당령 기도원
13:30 35번 지방도로
13:31 삼림종자연구소 강릉지소
13:37 버스 탑승하여 삽당령으로 이동
13:41 삽당령(산행 날머리, 산행 종료)
14:10 강릉 왕산 들꽃마을 묵계교에서 삼겹살 파티
15:40 점심 식사 후 출발
18:26 중부고속도로 이천 휴게소
19:30 사당역 도착 후 해산
백두대간 등로에서 본 너무나 아름다운 엘리지
에필로그
산불예방과 백두대간 산행에 대한 열망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백복령 입구에서 그 이름만큼이나 납작 엎드려 도둑고양이 신세로 시작한 이번 산행은
장장 40여일의 기다림끝에 이뤄진 산행이라 더욱 의미가 깊어진다.
개발과 자연보호라는 양립될 수 없는 자병산 자락에서
백두대간 산행의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기며 순조롭게 출발했지만
2년이란 짧은 기간에도 많이 변해버린 등로를 찾아 어둠속에서 2시간을 헤매인 끝에
시원하게 불어주는 마루금에서 환한 웃음을 지어본다.
등로는 벌써 하얀 순백색이 푸르름으로 변해
마음을 편안하고 순하게 만들며 평탄한 길을 따라가니 언뜻 좌측으로 보이는 파헤쳐진 자병산 자락과는 대조적으로
수많은 야생화가 산객들의 매말라 가는 마음을 달래준다.
그 동안 잘 정비된 이정표와 등로의 변화에 백두대간 사랑이 커가고
한겨울의 모진 추위를 이겨낸 여심을 담은 철쭉꽃과 독야청정했을 노송들이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고 깊어가는 추억속에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아간다.
이번 산행의 백미인 카르스트 지대를 지나
2년전 수풀이 무성했던 생계령이 깔끔하게 변해 있는 넓은 공터에서 잠시 숨한번 들이 마시고
서대굴 안내판을 지나니 백두대간 산행의 진면목을 알리는 가파른 된비알 931봉이
산객들의 숨을 멈추게 만들고 있다.
그래도 그곳에 올라 시원하게 불어주는 봄바람을 맞으며
시야를 넓혀주는 푸르른 산하가 있기에 그 어려움 금새 잊어 버리고 푸른 초원에서
벌어진 산상 부페에 모두 하나가 된다.
등로 주변에 자생하는 산나물과 드릅을 솎아주며
낭만과 여유로운 발걸음 이어가니 거대한 암봉으로 이뤄진 병풍의 모양을 한
거대한 암봉 석병산이 그 동안의 수고를 보상해 주듯 우리들을 반긴다.
사방으로 탁 트인 일월봉에서의 조망과 자연이 빗어준 선물인
일월문에서의 여유는 잠시 시간의 흐름을 멈추게 만들고 모두 모여
화이팅을 외치며 하나가 된 시간으로 남긴다.
떠나는 아쉬움을 바위병풍가 보상해 주고 진달래와 철쭉이 피어난
등로의 산죽밭이 친구되어 벌써 머리위에 이글거리는 태양을 피해 완만한 능선을 진행하니
벌써 마지막 봉우리인 두리봉에 안착한다.
노래와 춤이 어우러졌던 옛추억을 회상하고
남아 있는 배낭속 간식을 모두 비우며 하루의 마감을 알리는
삽당령으로 향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산죽밭을 원없이 걸으며
마지막 목계단을 버리고 연초록으로 변해있는 낙엽송 능선을 타고
다시 도둑고양이가 되어 산행을 종료하니 삽당령 이정석이 다음을 기약하며
백두대간 종주대를 배웅해 준다.
강릉 왕산의 들꽃마을 진입로에 위치한 목계교 밑에서
우리들이 영원히 잊지 못할 삼겹살 파티로 하루의 피로를 풀고
어린 시절 발가벗고 멱을 감았던 추억속으로 빠져 들며 또 한구간 무사 완주를 축하하고 축하 받으며
다음 구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해 본다.
사라지는 자병산에 울부짖으며 방심과 자만을 용서하지 않았던 백두대간 산행
산불예방과 자연보호 그리고 백두대간 종주, 지금까지 계속된 입산에서 진정 백두대간 산행을 이어온 산우님들에 의한 자연 파괴는 보지 못했기에 선별적이라도 대간길을 열어주고 필요하면 공단직원을 붙여 함께 그 길을 걸으며 자연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것이 더욱 좋지 않을까하는 개인적인 생각에 마음이 아팠던 시기이다.
지난 4월초 역시 새벽 여명이 열리기도 전에 이곳 백복령에 도착했으나 경방기간을 지키는 공단 지원의 만류와 법을 어기면서까지 강행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으로 정동진 바닷가로 발길을 돌린지 정확히 한달만에 다시 찾은 정상은 어둠과 고요속에 잠겨있고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도둑고양이가 되어 버린 산우님들의 거칠은 숨소리만이 흔적을 남기고 있다.새벽 3시 30분.
백복령 정상에 서 있던 정선을 알리는 이정석
백복령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강릉에 48개, 삼척에 40개의 소금가마가 있었다고 한다.서해에서 올라오는 남한강의 소금 길은 충북의 단양에서 다시 육지로 올라와 영월에서 멈추었고 정선 땅은 곧바로 강릉과 삼척에서 올라오는 동해의 소금을 의지하여 살았다.백복령은 바로 그 삼척에서 소금이 넘어오는 소중한 길목이었다.
백복령은 지금은 2차선 도로가 말끔하게 포장을 하고 국도 42호선이 통과하게 되는 백두대간의 한 고개길이였다.
옛날에는 대관령에 정체가 생기면 곧잘 우회도로로 이용되곤 하였으나 대관령에 여러 개의 터널이 뚫어지고 4차선으로 확포장이 된 후로는 백복령의 명성도 많이 퇴색되였지만 그래도 정선에서 동해안으로 넘어오게 되는 관문으로서 백복령은 아직 교통상 매우 중요한 곳이다.
솜이 총무님에게 배운 하얀 각시붓꽃
정상에는 아라리의 고장 정선을 알리는 정선군의 홍보문안으로 정선아리랑의 가락에도 등장하는 애절하고 끊어 질 듯한 가락으로 등장하고 있는 유서깊은 고개길로서 백복령의 지금은 자동차가 순식간에 넘어다니는 길로 변하고 말았지만 우리네 조상들은 소금을 사러 갈 때도 지금처럼 돈을 지니고 가는게 아니라 산간지방에서 생산되고 있는 특산물인 콩이나 팥을 지고는 백복령을 넘어서 동해의 해변에서 한 시도 먹지 않고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소금을 비롯하여 생선을 물물교환으로 구입를 하고는 오던 길을 되돌아 넘어야 하는 한 많은 고갯길로서 그 역활이 중요했던 백복령이다.
버스에 불도 밝히지 못한채 너무나 급하게 서두르고 또한 들머리에 세워진 목책으로 인해 잠시 삽당령이 아닌 이기령쪽 들머리로 올랐다 내려와 우측 목책 끝 작은 등로로 바람보다 빠르게 몸들을 숨긴다.이렇게 푸르름으로 변해 버린 산하를 생각하면 봄철 산불 예방기간을 단축시켜도 좋을 것을 정해진 기간을 채우려는 융통성 없는 행정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배어나오는 순간이기도 하다.
푸르게 푸르게 변해가는 등로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그렇다고 나와 우리 대간 종주대가 잘한 것은 없지만 진정 산을 아끼고 사랑하며 그속에 숨쉬는 자연을 배우려는 백두대간 종주대에게만이라도 사시사철 그 등로만이라도 열어 주길 간절히 바라는 심정은 나만의 이기심이련지...
이번 산행에선 리딩대장님과 후미대장님도 모두 참여를 못한 상황이기에 아침식사 할때까지만이라도 리딩을 해 드리고자 앞장서 진행해 본다.후미에선 설총님과 인연님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함께해 주시니 생각보다 마음은 편안하게 출발한 제25차 백두대간 산행, 어둠속에서도 42번과 43번 철탑을 지나 목계단 타고 오르자 2년전 안개속에 심하게 알바한 넓은 임도가 나타난다.
잘려져 나간 자병산의 처참한 모습, 개발과 자연보호의 양립할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한 가슴만이...
자병산 파괴
10여전 전만 해도 백두대간 마루금은 자병산 정상을 지났다. 그러나 1978년부터 라파즈한라시멘트가 공장을 설립하고 석회석을 채굴한 탓에 지금은 석회석 채굴로 살벌한 내장만 남긴 채 자병산 정상 자체가 사라져 버리고. 백두대간은 부득이 자병산 앞에서 서쪽으로 틀어 진행해야 하는 서글픈 현장이 되였다.
현재 자병산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조차 없고 이미 산 정상이 70m나 사라지고 말았다. 더구나 예정된 추가개발 사업이 완료되면 산은 또 다시 130m 넘게 사라진다니 이미 자병산은 백두대간의 일부로서 안타까울 만큼 파괴되였고 생태계의 건강성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솔나리, 백리향 등 고유한 식생을 간직하고 있어 가치가 높고 백두대간보호법을 제정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던 백두대간의 허리인 자병산은 오늘도 이렇게 허물어져 가고 있다. 내가 아니 우리가 이렇게 가슴만 쓸어 내리고 아파하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사이에 말이다.
보여주기 싫다며 어둠속에 숨어 있다 잡목 사이로 살짝 모습 드러낸 잘려진 자병산
자주빛 병풍을 펼쳐놓은 듯 아름다웠던 산이며 자병유화로 불리기도 했던 자병산은 수병산, 괘병산,석병산 등과 함께 아름다운 산군을 형성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자병산의 모습을 영원히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언제나 저처럼 처참한 몰골의 아픈 과거를 치유하고 새로이 공존하는 날이 뒤돌아 올 것인가.우리 모두의 숙제이며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자병산 석회암을 채취하기 위한 차량도로와 트럭 세척 시설이 갖춰진 이곳이기에 잘려나간 자병산을 보지는 못하지만 마음이 쓰리고 아파옴을 느낀다.인간 이익을 위한 개발과 자연보호란 병립될 수 없는 현실 앞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알바하며 등로가 아닌 길을 오르며 땀흘리고 계신 산우님들
한번 알바한 구간이였기에 자신만만하게 좌측으로 돌려 한참 인도를 따라가니 이전에 보지 못했던 인공 시설물들과 차량세척을 위한 차단막으로 인해 잠시 허둥대다 그 끝자락에서 우측으로 나 있는 임도를 따라 한참을 진행해 본다.하지만 기대한 이정표나 산행 띠지는 보이지 않고 단지 라파즈 한라시멘트 회사에서 심어 놓은 발파위험 지역이란 표시판만이 아픈 가슴을 더욱 쓰라리게 파헤치고 있다.
선두에서 등로 찾아 헤매이던 시간, 잠시 멈춰 서서 올라오라는 신호만 기다리고 계신 산우님들, 얼마나 답답했을꼬. 그 옆으로 자병산 석회암 채취를 위한 위험 표시판과 접근금지 표시판이 보인다
몇몇 산우님들과 들머리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이다 시간을 보니 벌써 30여분 넘게 이곳 42번 지방도로와 자병산 차량 입구에서 맴돌뿐 정상적인 등로를 찾기가 쉽지 않다.산행지도를 펼쳐 방향을 확인하곤 곧바로 희미하게 나 있는 우측 등로를 따라 능선으로 오르니 거대한 철탑 하나가 서 있고 번호를 확인하니 222번이다.
이제 마지막 철탑 넘어 정상적인 대간 능선으로 향하니 여명이 밝아오고
다시 많은 시간 허비하며 날이 밝기를 기다릴까 생각하다 방향을 점검한 후 지도상 맞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다시 길도 없는 산행을 진행한다.한참을 우측 능선을 바라보며 진행하자 223번 철탑이 보이고 직진 앞 능선상에 또 다른 철탑 하나가 보이기 시작한다.
45번 철탑 옆 정상적인 등로를 찾아 한숨을 내쉬고 있는 산우님들
잠시 숨 한번 들이 쉬고 능선을 향해 오르니 이제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며 정상적인 백두대간 등로상의 45번 철탑을 만난다.이 시간 5시 25분.
넓은 임도에서 이곳까지 약 1시간 넘게 알바를 하면서 찾은 등로, 너무나 반갑고 기쁜 마음에 후미를 기다리며 잠시 쉬어 간다.어느 누구 한사람 불평불만 없이 잘 따라 준 산우님들과 거친 가시밭길 헤치며 함께 등로 찾아 고생한 산우님들에게 감사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가슴속 깊이 느끼며 흐른 땀 흠치며 아주 편안한 등로를 따라 이제부터 본격적인 제25차 백두대간 산행을 시작해 본다.
백복령에서 도둑 고양이가 되어 능선으로 올라온 첫지점 이정표
조금 더 지나니 46번 철탑이 보이고 이곳부터 헤드렌턴 불빛이 필요 없을만큼 길어진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며 조금 더 진행하니 좌측으로 등갈산과 민둥산으로 갈라지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지만 이미 그곳엔 출입을 금지한다는 로프가 잘 설치되어 있어 길잃을 염려는 없을 것 같다.잠시 정상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전엔 보이지 않던 카르스트 지형에 대한 설명판이 서 있고 잠시 쉬어 읽다보니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백복령 카르스트 지형에 속한다는 사실을 깨닭게 된다.
카르스트 지형에 대한 해설판
카르스트 지형
석회암이 용식되어 형성되는 오목한 와지로서 가장 흔한 카르스트 지형 중의 하나이다. 평면형태는 대체로 원형 또는 타원형이며 지름은 수미터에서 수백미터까지이며 깊이도 1m 미만에서 백미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돌리네는 집단적으로 발달하는 것이 보통이며, 돌리네의 가운데에는 빗물이 빠져나가는 배수구인 낙수혈(sinkhole)이 존재한다.
카르스트 지형의 하나
돌리네는 형성되는 원인으로서 2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단순히 토양층 밑의 석회암이 용식을 받아 천천히 형성된 용식 돌리네(solutino doline)와, 지하의 석회암 동굴 천장이 무너져 내려 함몰되어 형성된 함몰 돌리네(collapse doline)가 있다. 일련의 돌리네가 성장하여 인접한 2개 이상의 돌리네가 결합되어 형성된 와지를 우발라라고 하며 와지안에는 한 개 이상의 낙수혈(sinkhole)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단양·영월·삼척의 일부 지역에 돌리네가 집중적으로 발달되어 있다. 돌리네는 일반적으로 밭으로 이용되며 단양에서는 '못밭', 삼척에서는 '움밭'이라고 부른다.
철쭉 앞에서 이철주님과 돌소리님
짧은 2년 동안 잘 정비된 백두대간 등로를 바라보며 관심을 가져준 지자체에 감사 드린 후 오른쪽 능선으로 오르니 약간의 된비알이 나오고 그곳을 빠르게 오르니 돌소리님과 이철주님이 바로 뒤따르고 계신다.사진 한장 찍어 드리고 잠시 있으니 계속 산우님들이 올라오고 좌측 갈고개 가는 길 확인하고 765봉으로 오른다.
나무로 이뤄진 계단을 타고 오르니 자꾸만 파헤쳐져 피를 토하며 두 봉우리가 깍여 흘러내리는 좌측의 자병산 자락이 산객의 마음을 뒤흔들며 뒤돌아 보게 만든다.잡목사이로 그 안타까운 현실을 디카에 담고 계속 진행하니 드디어 생계령이다.이 시간 6시 25분.
몇년전에 비해 말끔히 정비된 이정표와 생계령 모습이 이채롭다
박무로 인해 보이지 않던 해가 이미 동쪽 하늘에서 반짝이고 잠시 배낭 내려놓고 쉬면서 이야기 나누다 보니 후미까지 도착하여 다시 우리는 하나가 된다.이제 이곳에서 부터는 중간과 후미로 쳐져 급할 것 없이 잘 정비된 등로를 타고 완만한 능선 오르며 야생화와 철쭉을 감상해 본다.산우님들 사진도 찍어 드리며 즐기다 보니 서대굴 안내판이 나타나고 잠시 서서 그글을 읽어 본다.
강릉 서대굴 해설 판
서대굴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 석병산 중턱에 있는 석회암 동굴로 1980년 2월 26일 강원도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었다. 주굴의 길이 800m, 전체길이 약 1.5km이다.
험준한 산 벼랑 밑에 있어 접근이 곤란하며 입구를 찾기조차 어려워 잘 알려지지 않은 동굴의 하나이다. 내부 구조는 대체로 3층 굴로 이루어진다. 북쪽 방향으로 발달한 상층굴은 웅장, 영롱한 종유석, 석순, 석주 등의 발달과 함께 특히 섬세하고 절묘한 곡석(helictites), 석화 등의 발달이 현저하다.
서대굴 내부 모습
복잡한 가지굴에 의해 형성된 중간층의 굴은 바닥에 제석소와 석순의 발달이 양호하며, 막장부에서 두 가닥으로 갈라지는데 작은 호수의 발달도 보인다. 수직 18m 밑에 전개되는 하층굴은 대체로 남쪽 방향을 이루는데 바닥과 벽면은 건조한 점토로 형성되어 있고, 종유석이나 석순, 석주의 발달은 거의 없다. 삼척시의 관음굴과 대조되는 귀중한 존재이기도 하며 현재 비공개 영구 보존동굴로 지정되어 있다.
노송지대에서 정열적인 인연님
좌측으로 희미한 민둥산 가는 길을 확인하고 다시 가던 길 재촉하니 얕으막한 829봉 넘어 멋진 노송지대가 펼쳐져 가슴으로 그 아름다움을 담아 본다.이곳 또한 전형적인 강원도 지형을 나타내는 서고동저의 지형으로 우측으로는 절벽을 이루며 깊은 골짜기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여기에서 부터 오늘의 가장 험난한 오르막이 시작되고 지난 2년전 쉬지 않고 아침 식사 자리 찾아 그 된비알을 땀흘리며 달렸던 기억이 새롭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며 여산우님들을 철쭉 꽃속에 밀어 넣고 작품도 만들며 뒤돌아 보고 지나온 파아란 능선도 감상하며 고사목과 멋진 소나무 몇그루 앞에서 장난도 쳐 본다.힘들고 어려운 산행 조건에서도 남는 것은 결국 사진이기에 다시 디카 들이대며 함께하는 후미 산우님들과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드디어 좌측 민둥산으로 이어지는 삼거리인 능선삼거리에 도착한다.
능선 좌측으로 민둥산도 가깝게 보이고
잠시 쉬면서 물 한모금 마시는 산우님들 뒤로 하고 짧은 오르막 오르니 바위 전망대가 나타나고 그 정상에서 잠시 사방을 조망해 본다. 남쪽으로 풍만한 여인의 가슴을 닮은 민둥산이 미끈하게 솟아 있고 북쪽으로 밋밋한 능선상에 표나지 않은 봉우리 몇개가 길게 뻗어 고생했노라 위로하듯 누워있다.
931봉에서 바라 본 가야할 대간 마루금
선두에서는 이미 자리잡고 아침 식사중이라며 어서 오라 무전기의 울림이 계속되고 잠시 그 전망바위 지나 작은 봉우리 넘으니 푸른 초원에 산상 아침을 차리고 옹기종기 모여 허기를 달래는 산우님들의 모습이 정겹다.
식사하는 주위엔 온통 엘리제와 이름모를 야생화가 뒤덮고 그 향기가 밥맛을 더욱 돋우고 있다.입맛을 배가시키는 봄나물이 다양하게 나와 있고 체력 보강을 위한 고기류까지,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 세상 무엇도 부러움이 없는 이 시간인 것이다.
식사 시간은 언제나 정겹고 즐거워
느긋하게 즐기며 담소 나누며 시간을 보니 알바까지 한 오늘의 산행이 매우 순탄하게 빨리 진행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최고의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천천히 등로 따라 전진하니 갑자기 앞에 가던 선두에서 소란이 일어나고 다가가 바라보니 좌측 드릅나무 군락지에서 빠쁜 손길 놀리며 점심에 있을 삼겹살 파티를 생각하며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후미를 부른 것이다.
드릅 공부를 하고 계신 산우님들
급경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완만하지도 않은 등로를 타고 진행하며 야생화 공부를 하다보니 다시 짧은 된비알인 900.2봉을 넘고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산죽밭을 걸으니 고병이재에 당도한다.백두대간과 석병산에 대한 해설판이 세워져 있고 우측 석계석회 동굴로 이어지는 이정표가 서 있다.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오르막 따라 오르니 조금씩 석병산 암벽들이 시선에 들어오고 드디어 헬기장이다.
백두대간과 석병산 해설 판
뜨거워지는 태양을 피해 사진만 남기고 다시 숲속으로 몸을 숨기니 다시 등로 따라 길게 펼쳐진 산죽밭이 반기고 지루하지 않게 그길을 이리저리 찾아 진행하니 작은 오르막 넘어 우측으로 상황지미골 갈림길 이정표가 나타난다.산우님들과 사진 찍으며 즐긴 후 다시 좀 더 진행하니 곧바로 석병산 직전 헬기장에 오른다.이 시간 10시 13분.
처음 이곳을 오랐을때를 회상하며 가던 길 이어가니 두리봉과 일월봉 갈림 이정표가 나타나고 이곳에서 우측 일월봉으로 향하니 저 멀리 석병산 정상에서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하는 산우님들의 모습이 보인다.
제1봉에서 바라본 석병산 일월봉과 고사목 그리고 산우님들
석병산 일월봉 (1055.3봉)
석병산은 동해안의 옥계 해수욕장에서 서쪽길로 약 12km 되는 지점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과 옥계면에 위치하며 이름 그대로 바위로 병풍을 두른 듯 정상일대의 암벽이 특출하게 생겼고 주능선의 길이도 20km가 넘는 규모를 이루고 있다.
석병산은 백두대간이 동해안을 끼고 남하하여 오대산과 황병산을 일구고 청옥산 두타산으로 뻗어내려가 강릉시 왕산면에 안착한 산이다.
깍아지른 듯 솟아있는 기암괴석의 바위들이 마치 산아래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석병산이라 이름붙여졌는데 정상에 서면 강릉시가 한 눈에 들어오며 멀찍이 동해의 수평선이 바라보이는 광경이 일품이다.
주위에 만덕봉(1035봉), 대화실산(1010봉), 자병산(873봉) 등이 있다.
북쪽과 동쪽 사면은 급경사이며 남쪽과 서쪽 사면은 저기복의 평탄면을 이룬다.
동쪽과 남쪽에서는 각각 주수천과 임계천의 지류가 발원한다.
남동쪽 사면에는 석회동굴인 석화동굴이 있다.
남동쪽에 있는 생계령은 과거 산계리와 정선군 임계면 임계리를 연결하는 주요통로였으며 지금은 백복령으로 정선과 동해를 연결하는 국도가 지난다.
남서쪽 기슭에 있는 삽당령으로 강릉과 태백을 연결하는 국도가 지나며, 임업시험장, 동부육종장 등이 있다.
제1봉에서 바라 본 암봉과 절벽
제1봉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며 가야할 능선과 일월봉과 맞닿아 있는 고사목을 사진 몇장에 남긴 후 우측 우회길을 따라 석병산 정상인 일월봉에 오르기 직전 상황지미골 하산로 쪽으로 내려가 일월문에서 산우님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석병산 일월문
석병산 일월문
봉우리를 돌아가면 제단이 나온다. 이 곳에서 소망을 비는 산악인들을 만나는 일 또한 어렵지 않다. 제단 밑으로 조금 내려가면 바위 한 가운데 둥근 구멍이 뚫린 일월문이 나오는데, 건너편에서 떠오른 달빛이 일월문의 둥근 문을 비추면 장관이라고 한다. 일월문 주위에는 활엽수림대와 철쭉꽃들이 집단으로 서식하여, 꽃들이 만발할 때면 이 일대의 산이 온통 불붙은 것 같다고 한다.
석병산 정상에서 바라 본 가야 할 대간 마루금
뒤돌아 올라와 일월봉에서 다시 사방을 전망한 후 사진 찍고 제1봉으로 나와 단체사진 한장 남긴다.시간도 충분하고 등로도 좋았으며 무엇보다 깊은 눈속에서 단련된 산우님들의 보강된 체력과 몰라보게 향상된 산행 실력으로 인해 여유있게 진행했다 생각했는데도 무척 빠르게 이곳 석병산까지 왔기에 좀 더 즐거운 시간을 가져본다.
석병산이란 이름을 갖게 된 병풍 바위 모습
다시 두리봉 가는 이정표로 뒤돌아 내려와 우측 두리봉으로 가면서 석병산이라 이름 붙은 이유를 알게되는 포토 라인에서 바위병풍을 배경으로 잊지 못할 추억을 다시 만들어 본다.한참을 머물며 석병산의 병풍바위를 감상 한 후 고지가 높아 이제사 만개한 진달래와 몽우리가 부풀어 오른 철쭉을 친구삼아 산죽밭을 지나니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헬기장에 도착되고 이곳에서 물 한모금 마신 후 가던 길 이어간다.
끝없이 이어진 산죽밭
잡목으로 전망없는 산죽밭을 끝없이 진행하니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 두리봉에 도착한다.많이도 변해버린 두리봉 정상에서 나머지 간식 꺼내 배낭 무게 줄이며 한참을 쉬면서 모두가 만족한 표정으로 느긋한 봄의 향연을 즐겨본다.어린아이가 되어 장난도 쳐보고 어릴적 친구들과 보냈던 산상에서의 즐거운 추억도 만들어 보며 피로를 푼 다음 마지막 삽당령을 향한 마지막 투혼을 이어간다.
많이도 변해 버린 두리봉 정상과 맛난것을 들고 와 건네주시는 은수대장님의 모습
좀 더 파아란 잎새를 달고 나풀거리는 산죽밭을 끝없이 걷다보니 중간에 진분홍 진달래와 철쭉이 칼라의 조화를 이루고 비 맞으며 낙엽을 찍었던 왕산38호지인 헬기장에 안착한다.여기에서 양사장과 연락하여 삽당령에 빨간모자들이 보인다는 소식에 후미 기다려 함께 모여 목계단 바로 직전에서 좌측 삽당령 기도원쪽으로 방향을 틀어 낙엽송이 우거진 등로에서 삽당령에서 약 300여미터 떨어진 기도원쪽 35번 지방도로에 무사히 안착한다.이 시간 13시 31분.
정상적인 대간길을 버리고 약 300미터 전 목계단 앞에서 옆길로 내려오면 만난 멋진 낙엽송
삽당령
삽당령은 산 정상의 생김새가 삼지창처럼 세 가닥으로 생겨 이름이 붙여졌다. 강릉시와 정선군 임계면을 오가기 위한 길로 만들어졌다.
삽당령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강릉부의 서쪽 60리에 있는 정선으로 가는 길이라 하였고, 증보문헌비고에는 삽당령이라 썼는데 현재에 쓰고 있는 삽당령이란 한자는 언제부터 쓴지 확실하지 않다.
삽당령 이정석
삽당령의 오른쪽에 있는 가지는 화심형으로 생긴 대화실산 밑을 돌아 대기리 벌말로 이어지고, 가운데 있는 가지는 송현을 지나 정선으로 이어지고, 왼쪽에 있는 가지는 동쪽으로 뻗어 이어지면서 두리봉, 석병산으로 가는 줄기가 된다.
삽당령은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줄기에 있는 고개로 정상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대화실산 옆 석두봉으로 이어지고, 동쪽으로 가면 두리봉, 석병산으로 이어진다.삽당령은 목계리와 송현리 사이에 있는 높이 721m의 고개로 강릉과 정선을 잇는 35번 국도가 지나간다. 삽당령 정상에는 임간도로와 동물이동 통로가 있다.
삽당령 고개와 이정석 그리고 다음 구간 들머리
삼림종자연구소 강릉지소에 심어져 있는 너무나아름다운 낙엽송의 연두색 잎들 사이에 추억 다시 만들고 버스를 타고 삽당령으로 올라가 이정석에 입맞춤을 해 본다.경방기간 동안 수고하는 감시요원들에게 미안함과 함께 사시사철 등로만이라도 열어 주지 않는 당국에 아쉬움을 남겨 본다.삽당령 성황당과 동물이동 통로 그리고 삽당령 고개 및 이정표를 디카에 담은 후 우리들만의 시간인 삼겹살 파티장을 찾아 떠나 본다.
삽당령 성황당 모습과 그 앞에 놓인 이슬이 한병과 술잔이 이채롭고
삽당령 성황당
삽당령 성황당은 삼백년의 역사를 지닌 곳으로 왕산면 송현리 사람들이 매년 8월에 소를 잡아 제를 지낸다고 백두대간 휴게소 주인이 전한다. 고갯마루에서 왕산면 목계리쪽으로 조금만 가면 물을 구할 수 있다.
삼겹살 파티를 열었던 목계교 앞 계곡물 전경
내려오다 강릉 왕산의 들꽃마을 목계교에서 하루를 마감하며 우리들만의 영원한 추억을 가슴에 담는다.오랫만에 다시 만난 은수대장님과 돌소리님, 정말 반가웠으며 저 멀리 남해에서 대간 산행을 위해 한걸음에 달려오신 고산자님과 가족 나들이까지 연기하고 참여해 준 인연님께 감사한 마음 전해 드림니다.
추위에 떨었던 기억은 벌써 추억이 되고 새생명이 탄생하는 푸르름이 가득한 산하
밤길 길찾기에 고생하신 현우님과 산바람님, 늘 뒤치닥거리 해주시는 솜이 총무님께도 감사를 드리며 리딩해 주신 이철주님 그리고 후미에서 수고해 주신 설총님과 마지막으로 함께 대간길 걸어주신 19인의 종주대 여러분에게 고마움 마음 한가득 전해 드림니다.
늘 건강하시고 다음 회차엔 더 많은 산우님들과 즐기는 시간이길 바래 봅니다.
감사합니다.
백두대간 산행대장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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