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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충청도 산

광덕산 산행 후기(2007년 12월 6일)

by 칠갑산 사랑 2007.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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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날자 : 2007년 12월 6일

산행지 : 충남 천안 및 아산의 광덕산과 광덕사

산행지 날씨 : 흐리고 눈 내려 시야 제한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광덕사 주차장 - 광덕사 - 남동릉 - 헬기장 - 광덕산 정상 - 북동릉 - 장군바위 -

             광덕산 쉼터 - 안산 계곡 - 광덕사 - 광덕산 주차장

산행길이 : 약 6.00 Km

산행시간 : 널널히 쉬면서 2시간 30분 (11시 50분부터 14시 20분까지)

 

 

마음 가는 곳으로 발길 닿는곳으로 달려간 곳, 공주에서의 아침 일을 마치고 아산과 천안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광덕산에서 또 하나의 발자취를 남기고 돌아 왔다.

많은 산우님들과 함께하면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고 또 오늘처럼 홀로하는 산행은 새로운 산우님들을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에 그 나름의 재미가 있는 것 같다.

 

 

광덕산 이정석 (해발 699 m) 

 

약간의 허기를 느끼면서 광덕사 주차장에 애마를 주차시키자 언제 달려왔는지 주차 요원이 손살같이 달려와 수금해 가고 잠시 애마 안에서 옷 갈아 입고 점심을 고민하다 하산 후 먹기로 하고 빠르게 광덕사 일주문으로 향한다.

 

광덕사 일주문 

 

몇몇 산우님들이 저 멀리 산행하는 모습이 보이고 바로 앞에는 불심에 마음을 담기 위한 여인네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무교인 내 자신이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고요한 산사에 들어오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세상 살아가는 복잡한 일들을 잊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산사를 찾는 이유가 있는가 보다.

 

일주문에 도착하자 좌측에 간단한 광덕산 등산로 안내판이 보이고 그 옆으로 호도나무에 대한 상세 이야기가 적혀 있다.

그러고 보니 이곳 천안 아산 지역은 호도와 호도과자로 유명한 곳이 아니던가.

 

호두에 관한 해설 안내판 

 

일주문을 지나 오르자 다시 보호수목으로 지정된 오래된 느티나무 한그루가 거대한 밑둥을 내보이고 좌측에 서서 지나는 불자와 산객을 맞이해 준다.

우측으로는 얼음이 얼기 시작한 개울에 졸졸졸 시냇물이 흐르고 가끔 승려가 불도를 닦고 있는 청아한 목소리도 들려도 온다.

 

언제 읽어도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나옹화상의 시 한편 

 

광덕사 앞에 다다르자 나옹화상이 지었다는 시 한구절이 산객의 마음을 흔들고 광덕사 앞에 서 있는 오래된 고목의 호도나무 한그루가 다시 산객의 눈과 발길을 붙잡는다.

 

광덕사 대웅전 전경 

 

광덕사
개산 당시 경내에 3층법당, 구범각, 팔금당 28방(房), 89암자가 딸려 있었다 하나 지나친 과장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아무튼 옛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모두 전소되고 말았다.

그후 조선 선조대왕 때 희묵 스님이 사찰을 일부 중창했고, 지금 건물들은 1974년부터 10여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중건되거나 보수된 건물들이다.

경내에는 적선당, 대웅전, 명부전, 요사채가 자리하고 있고, 동쪽 아래로는 길상암, 자광당, 천붕전 등 부속암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조 숙종 6년(1680년) 안명로가 지은 <광덕사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 7년(832년)에 진산화상이 부처님 치아 1개, 사리 10과, 가사 1벌, 불자(拂子) 1개, 금은자(金銀字)로 베낀 화엄경, 법화경, 은중경 각 2부씩을 가져와 창건했다 한다.

 

광덕사 앞에 서 있는 우리나라 호두나무의 시초라는 거목과 호두나무 유래에 대한 설명판


경내에 있는 호두나무 거목(천연기념물 제398호)도 볼거리다.

이 나무는 고려 충렬왕 16년(1290년)에 유청신(?~1329)이 원나라에서 처음 묘목을 가져와 심은 것이라 전해진다.

 

하늘이 뿌엿고 금방이라도 비나 눈이 내릴듯한 날씨에 하산 후 들려보자 마음먹고 광덕사를 지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해 본다.

좌측으로 흐르는 작은 개울을 지나 넓은 등로를 따라 올라가니 어디에서 왔는지 젊은 연인이 두손 마주잡고 정답게 오르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그들을 추월해 조금 더 오르자 헬기장과 장군바위로 오르는 첫번째 갈림길이 나온다.

 

헬기장과 장군바위 갈림길, 여기에서 헬기장 길을 택한다 

 

여기에서 좌측 정상 지름길 가파른 언덕으로 들머리를 잡고 거친 숨 몰아쉬며 빠르게 진행해 본다.

등로에 쌓인 낙엽과 군데 군데 조심을 요하는 얼음이 뒤섞여 발걸음 더디게 만들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오르자 몇몇 어르신들이 이미 정상을 돌아 내려오는 모습이 보이고 이제부터 반갑지 않은 나무 계단이 길게 갈지자 모습으로 누워 있고 그길 따라 조금 더 진행하니 곧바로 쉼터가 나온다. 

 

첫번째 쉼터에 있던 산악인의 선서 석 

 

이곳에서 현 위치를 알리는 등로 안내판과 산악인의 선서를 새겨 넣은 이정석을 디카에 담고 다시 된비알 오르니 아직도 찬바람에 산행하기에는 좋은 조건인 듯 하다. 

몇몇 산우님들이 올라가고 내려오지만 목인사만 간단히 건네고 다리에 힘줘 전진하니 머리가 희긋한 중년 노부부가 봄으로도 당당하게 멋진 모습으로 앞서 정상을 향해 오르고 계신 모습이 보이고 그 뒤를 따르자 다시 넓은 공터가 나오면서 헬리포터가 보인다.

 

헬기장에서 바라본 광덕산 정상 방향의 전망대 봉

 

여기에서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에 윈드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고 다시 평탄한길을 따라 먼저 출발하니 곧바로 철책에 로프로 길안내 해주는 시설물들이 보이고 그 길을 따라 정상인듯 고지를 향해 올랐지만 정상은 아직도 먼곳에 위풍당당히 서 있고 이곳은 잠시 쉬어가는 바위 전망대이다.

 

잠시 숨 한번 고르고 짧은 너덜구간 지나 가파른 오르막 오르니 정상이 눈앞에 보이면서 어디에서 왔는지 한무리의 등산객들이 시끌벅적한 목소리로 이야기 나누며 정상으로 오르는 좁은 오르막에 정체를 일으키고 있다.

좌측으로는 아산쪽에서 올라오는 산 능선에 하얀 설화가 피어 있고 그 풍경을 바라보며 힘을 내니 드디어 광덕산 정상이다.

 

광덕산 정상에서 찍은 유일한 사진 

 

광덕산(698.4봉)

충남 아산시 송악면과 천안시 광덕면 경계를 이루는 광덕산(698.4m)은 아산시 온양온천 남쪽 10km 거리에 자리한 산이다.

칠장산에서 백화산(284.1m)까지 이어지는 금북정맥 상의 태화산(455.5m)에서 북쪽으로 가지를 친 능선에 솟은 이 산은 아산시에서는 최고봉으로 친다.

예로부터 나라에 전란이 일어나거나 불길한 일이 생기면 산이 운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광덕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쪽의 눈 덮힌 마루금  


산자락에는 천년고찰 광덕사를 비롯해서 외암 민속마을 등 볼거리도 풍부하다.

산세는 전체적으로 육산으로 망경산(588m)까지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으로 인해 가족단위 산행에 어울린다.

 

정상는 넓은 공터로 이뤄져 있고 사방의 조망이 참으로 멋진 곳이지만 이때부터 먹구름이 밀려오며 눈발이 내리기 시작하여 시야를 제한하고 있다.

이곳 저곳 다니며 멋진 모습을 디카에 담고 잠시 쉬며 준비한 과일을 먹고 있으니 아까 헬리포터에서 만났던 노부부가 도착하고 짧은 인사로 서로를 격려해 본다.

 

광덕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안시내 방향, 박무로 시내의 원경은 보이질 않는다 

 

정상에서 판매하고 있는 막걸리 한사발을 마시며 껄죽한 농을 건네는 등산객들이 있기에 이야기를 나눠보니 대구에서 온 산우님들로서 이곳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그분들이 모두 내려가고 조용한 정상에서 노부부와 막걸리 한잔을 나누며 눈발이 휘날리는 정상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너무나 고마워 사진이라도 한장 남겨 드리려 했지만 거절하여 그냥 내려온다.

 

정상에서 탁사발 한잔 사주셨던 멋진 조치원 노 산객, 늘 건강하세요 

 

내려오는 도중 다시 너무나 아쉬워 간신히 사진 한장 찍어 드리고 눈이 하얀게 쌓여 있는 등로를 조심하며 내려오니 이제부터 평탄한 등로에 수북한 낙엽이 산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아까 대구에서 올라왔다는 산객들을 피해 빠르게 내려가니 어느새 장군바위에 도착하고 이곳에서 한참을 머물며 장군바위에 대한 기록을 읽어 본다.

 

장군바위 전경 

 

다시 뒤따라 온 많은 등산객들을 피해 이제부터 가파른 하산길을 묶여 있는 로프에 기대어 조심하며 내려오니 어느새 박씨샘 갈림길에 도착하고 잠시 들려 볼까 고민하다 흣뿌리는 눈발에 포기하고 민가가 있는 넓은 등로를 따라 광덕사로 원점 회귀한다.

 

하산길에 본 너무나 멋진 낙엽의 세계 

 

꽤 길게 느껴지는 임도를 따라 내려오니 아까 산행 전 보지 못했던 광덕사가 잠시 쉬어가라며 손짓하고 잠시 짬을 내 경내로 들어가 그곳 내력을 배워본다.

 

광덕사 대웅전 앞에 있던 삼층 석탑과 설명판 

 

다시 한번 들릴때에는 아산 외암 민속마을과 연계하여 산행하고 우리의 역사를 배운 후 온양 온천에 들려 온천욕으로 마무리하는 코스를 생각해 본다.

 

아산 외암 민속 마을 

외암마을 유래

마을 중요 민속자료 제 236호로 지정되어 있는 충남 아산 외암민속마을은 약 500년 전부터 부락이

형성되어 충청 고유격식인 반가의 고택과 초가 돌담(총5.3km) 정원이 보존되어 있으며 다량의 민구와

민속품을 보유하고 있다.

 

외암 마을 들어서면서 

 

또한 가옥주인의 관직명이나 출산지명을 따서 참판댁, 병사댁, 감찰댁, 참봉댁, 종손댁, 송화댁, 영암댁,

신창댁 등의 택호가 정해져 있으며 마을 뒷산 설화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끌어들여 연못의 정원수나 방화수로 이용하고 있다.

 

외암 마을의 장승들 

 

▶ 마을이름 '외암'의 유래

 설화산 남서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외암마을은 외암이라고 불리웠을까?

 '외암'이라는 마을 명칭은 외암리의 서쪽에 있는 역말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 역말에는 조선초기부터 이미 시흥역이 있었고, 외암마을은 이 시흥역의 말을 거두어 먹이던

곳이라서, 오양골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 오야에서 외암이라는 마을명이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물레방아 

 

▶ 우리나라 전통마을과 외암마을

외암마을은 예안이씨 중심으로 구성된 마을이다.

마을 앞쪽으로 넓은 농경지를 두고. 뒤로는 산이 병풍처럼 막아주는 사이의 구릉지에 자리잡고 있다.

이 마을이 처음에는 넓은 농경지로 인해 자연발생적인듯 하나 조선 중기에 이르러 예안이씨가  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인물이 나타나자 점차 예안이씨 후손들이 번성하여 집성마을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이 마을은 입구의 물(다리)를 건너면서 약한 구릉지에 집들이 길을 따라 독특하게 자리잡고 있다.

마을 가운데로 안길이 있고 이 안길은 올라가면서 좌우로 샛길을 뻗치고 있다.

이러한 모양은 하늘에서 보면 마치 나무가지와 같이 큰줄기를 따라 올라가면서 작은 가지가 뻗고 가지 끝에 열매가 맺어 있는 것과 같은 자연형태와 같은 마을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초가지붕 및 돌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듯한 마을이지만 거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원칙이 있다.

즉 마을의 동북쪽에 위치한 산을 주산이라 하는데 주산인 설화산과 서남쪽에 위치한 봉수산을 잇는 긴 선이 이어지는 축선에 일정한 영역을 만들어 그 영역 안에 집들을 배치해 두었다.

마을의 전체적인 모양은 동서로 긴 타원형이다.

동북쪽의 설화산 자락이 마을에 이르러서는 완만하게 구릉을 만들면서 마을 앞쪽으로 흘러 내려간다.

 

따라서 서쪽의 마을 어귀는 낮고 동쪽의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동고서저(東高西低)형상이다.

이러한 지형조건에 맞추어 집이 앉은 방향은 거의 서남향이다.

 

소와 구루마가 어릴적 추억을 떠 올리며 정겹게 서 있다 

 

》자연을 대하는 마음과 '외암마을'의 조경

외암리 마을의 경관은 크게 '마을 밖'이라는 외부경관과 '마을 안'이라는 내부경관으로 구분된다.

외부경관은 다시 멀리 본 경관(원경)과 가까이 본 경관(근경), 마을 주변에 설치되어 있는 조형물 등이 있다.

내부경관은 자연적인 조형물과 인위적인 조형물, 상징적인 조형물, 꾸며진 경관과 꾸며지지 않은 경관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수 있다.

 

저 눈 쌓인 능선 너머 어디인가에 외암마을이 있겠지 

 

마을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시설물이 물레방아와 정자이다.

물레방아는 노동공간으로 마을의 중요한 공동생활 시설물 중의 하나이다.

일정한 수량을 확보하고 있는 마을어귀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

정자를 경관이 수려한 곳에 지어 놓은 유희시설이지만 반드시 유희기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농경지 가까이에 세운 것은 농민들이 힘든 농사일을 하다가 잠시 쉴수 있는 휴식장소로 이용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마을 안 경관은 안길을 중심으로 샛길들이 이어지면서 돌담과 집들이 다른 마을엣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마을의 거의 모든 담장은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마을의 지질구조는 땅 밑을으로 일정한 지층에 이르기까지 호박돌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돌을 걷어내 경작지를 만들고, 집터를 확보하면서 걷어낸 돌로 담을 쌓은 것이다.

 

마을 안의 집들은 모두 사랑채와 대문채 사이의 사랑마당에 정원을 꾸며 놓았으며 각각 특색있는 정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건재고택, 송화댁, 교수댁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크고 이 마을의 대표적인 정원인 만큼 원래의 모습을 잘 보존하면 좋을 것이다.

 

눈 내린 감나무와 따지 않고 남아 있는 감 그리고 까치집이 정겹게 다가 온다 

 

다시 광덕사를 벗어나 들머리로 내려오니 시장기가 돌고 그곳에서 묵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은 후 눈에 쌓여 있는 애마를 몰고 급하게 천안을 통해 서울로 뒤돌아 왔다.

 

2007년 12월 6일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