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0온누리 제1기 백두대간 제19차 소백산 구간 죽령에 서 고치령까지 산행 후기
산행날짜 : 2007년 11월 30일부터 12월 01일까지 (무박 2일)
산행날씨 : 맑았으나 너무 강한 칼바람과 약간의 박무로 시야는 제한 됨
산행온도 : 새벽 영하 8도에서 낮 최고 영상 04도
참가인원 : 3450 온누리 산악회 회원 총 23명(존칭생략) 칠갑산, 솜이, 하이킹, 무시로, 베짱이, 인연, 자우롬, 나마스테, 사하라, 고산자, 현우, 돌소리, 청목, 운산, 피그, 석불산, 왕언니, 이철주, 다락방, 산바람, 료가, 설총, 달구지
산행코스 : 죽령-제2연화봉(1357.3봉)-연화봉(1383봉)-제1연화봉(1394.4봉)-소백산 비로봉(1439.5봉)-국망봉(1420.8봉)-상월봉-늦은맥이재-마당치-고치령-백두대간 산행종료-좌석리-전구간 산행종료
산행거리 : 24.83 Km, 접속구간 4.00 km (고치령 - 좌석리 : 4.00 Km)
산행시간 : 선두 10 시간 00분, 후미 11 시간 30분
준비물 : 물 0.5 리터, 이온음료 0.6 리터, 아침 밥, 반찬 3종류, 과일로 단감. 귤. 사과, 이슬이 0.2 리터, 과일 젤 2개, 초코렛, 빵, 수저 및 젓가락, 겨울 방수방풍의, 겨울용 모자 2개, 땀수건, 목수건 2개, 얼굴마개, 겨울 장갑, 헤드렌턴 및 예비 건전지, 가위, 칼, 압박붕대, 에어파스, 구급약, 디카 및 예비 건전지, 모발폰 및 예비 건전지, 무전기 3대, 스틱 2개, 상세 지도 및 산행 자료, 컵, 휴지 2봉
버스에 두고 간 준비물 : 갈아 입을 옷 한 벌, 슬리퍼, 겨울 방풍의.
교통수단 : 45인승 버스 1대
신평고속관광 양기중 기사님
상세산행
11월 30일
23:00 사당 출발
23:20 서울 TG 통과
12월 01일
01:05 중부내륙 중앙고속도로 단양 휴게소
02:35 죽령 휴게소 도착
03:00 죽령에서 산행 시작 (산행 들머리)
03:01 포장도로 따라 매표소까지 이동
03:03 우측 군부대 갈림길
03:05 시멘트 포장 도로 따라 오르막
03:17 이야기 쉼터, 시멘트 길 이용
03:29 갈림길(이정표 연화봉:8 Km, 비로봉:10.5 Km, 시멘트길 이용)
03:35 이정표 - 정상:9.8 Km, 죽령: 2.0 Km)03:41 오두막 쉼터 및 주요 탐방로 안내도(시멘트 길)
03:55 전망대(우측으로 풍기 야경이 멋있음)
04:05 이정표 (비로봉:8.2 Km, 죽령 휴게소:3.3 Km)
04:21 중계소 갈림길(비로봉:4.3 Km, 연화봉:2.7 Km, 중계소:0.2 Km)
04:23 낙뢰 다발 지역 안내판
04:30 제2연화봉(1357.3봉)
04:38 샘터 갈림길(시멘트길 따라 진행, 식수 구할 수 있는 곳)
04:43 1280봉
04:45 곰바위
04:52 이정표(천문대 0.8 Km, 죽령:6.4 Km, 길주의 - 좌측 길 버리고 우측 연화봉쪽으로 진행)
04:59 소백산 천문대 이정표
05:04 희방사 갈림길(이정표- 희방사:2.4 Km, 죽령휴게소:7.0 Km)
05:09 연화봉(1383봉, 길주의 - 우측 희방사길 버리고 좌측이 대간길, 백두대간 띠지 잘 확인 요망)
05:15 희방사 갈림길 회귀
05:35 철쭉 군락지 및 계단
06:05 제1연화봉(1394.4봉)
06:28 1382봉
06:34 철쭉 군락지 및 계단
06:45 다시 계단
06:50 1394.4봉
07:02 천동리 갈림길(길주의 - 좌측 천동리 하산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07:06 주목보호 감시 초소(아침식사)
07:34 주목 보호 감시 초소 밖에서 일출 감상
07:47 주목보호 감시초소 시인마을 출발0
7:50 나무 계단 및 전망대
08:04 소백산 비로봉(1439.5봉, 길주의 - 우측 비로사길 버리고 좌측이 대간길)
08:08 계단(강한 칼바람으로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08:17 어의곡리 갈림길(길주의 - 좌측 어의곡리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08:21 철계단 및 철쭉 군락지
08:26 벌바위 갈림길(길주의 - 좌측 어의계곡 및 벌바위 하산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길)
08:47 이정표 및 로프 지대(국망봉 1.6 Km)
08:52 암봉지대(길주의 - 암봉 좌측으로 우회하여 진행)
08:58 등산로 아님 표시판
09:07 석륜암터 갈림길(길주의 - 우측 석륜암터 하산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길)
09:23 돼지바위 및 봉두암 갈림길 및 이정표(길주의 - 우측 돼지바위와 봉두암길 버리고 좌측이 대간길)
09:26 초암사 갈림길(길주의 - 우측 초암사 하산길 버리고 좌측이 대간길)
09:28 나무 계단 및 상고대
09:34 국망봉(1420.8봉)
09:52 어의곡리 갈림길(길주의 - 좌측 어의곡리 하산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09:53 상월봉(1394봉, 길주의 - 우측 상월불각사길 버리고 좌측이 대간길, 눈으로 우회로 이용했음)
09:59 1100봉 및 이정표
10:26 늦은맥이재(길주의 - 우측 벌바위골 및 을전어의곡리 하산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10:32 1265봉 및 구인사 갈림길(길주의 - 우측 구인사 갈림길 버리고 좌측이 대간길)
10:45 산죽 군락 지대
11:02 헬기장 및 헬기장 지나 이정표
11:37 1060.6봉 및 전망대
11:53 헬기장 및 이정표
11:54 연화동 갈림길(길주의 - 우측 연화동 하산길 버리고 좌측이 대간길)
11:57 이정표
12:06 너덜구간(산행주의)12:22 이정표
12:47 1031.6봉(우측 직각으로 꺽어 진행)
13:08 암봉 지대
13:26 마당치 및 이정표
13:46 형제봉 갈림길 및 이정표(길주의 - 좌측 형제봉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13:58 헬기장
14:10 불탄지역
14:19 863봉 및 전망대
14:23 묘1기
14:27 고치령(산행 날머리 및 산행 종료)
14:40 트럭으로 고치령 출발, 접속구간 : 고치령에서 좌석2리까지 트럭으로 이동(총 23명 탑승, 가격은 30,000원)
14:54 좌석2리 좌석교 신평 버스 대기 장소
소백산 칼바람에 몸과 마음까지 얼었지만 더욱 끈끈해진 백두대간 산우애
에필로그
12장의 달력이 어느새 낙엽따라 모두 떨어지고
마지막 남아 있는 한장의 아쉬움을 달래며 겨울 산행의 백미인
소백산 자락으로 달려간다.
옛부터 수많은 전설과 민초들의 애환이 담겨 있으며
한때는 영남에서 한양으로 이어주던 교통의 중요한 고개로서 제 역활을 했지만
이제는 중앙고속도로가 지하 터널로 뚫려 있어 가끔 등산객이나 여행객들만이 찾아주는
한산한 죽령고개에서 칼바람으로 유명한 소백산 구간을 산행하기에
더욱 특별한 의미를 담아둔다.
어두운 밤하늘에 영롱하게 빛나는 별빛을 받으며
산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작은 산객들의 마음마저 꽁꽁 얼려버리는 칼바람이 윙윙거리지만
우주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천문대까지
평탄한 시멘트길을 따라 등줄기에 땀이 흐르도록 된비알 올라간다.
어느덧 어느 종교와 인연이 깊은 지명인 연화봉을 넘자
평범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벌써 두꺼운 얼음층과 채 녹지 못하고 쌓여 있는 등로 위 눈들이
진행을 더디게 만들고 볼때기를 날릴듯한 강한 칼바람이
백두대간 산행의 어려움을 일깨워 주고 있다.
서서히 밝아오는 여명에 빛을 잃어가는 아름답던 영주와 단양의
야경을 뒤로하고 주인없는 주목보호 관리소에 들려 배고품을 달래본다.
찬란하게 떠오르는 일출에 대간 산행의 장대한 꿈과 소망을 담고
하얀 서리발이 돋아난 미끄러운 계단을 오르자 몸조차 가누기 힘든 칼바람이 뼈속 깊은 곳까지 한기로 얼리지만
부처가 주도했던 비로봉에 올라 가장 높게 정기가 맑은 이백(소백과 태백을 이백이라
부르기도 했다)과의 사랑을 알린다.
비로봉에서 국망봉으로 이어진 민둥산의 가장 강렬한 칼바람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바람의 위력을 실감케 하였고 나라 잃고 왕궁을 향해 통곡했던
마의태자의 서러움을 재생하듯 울부짓는 칼바람으로 단숨에 지나친 국망봉을 넘어
상월봉 정상에서 느꼈던 눈 쌓인 암릉 등로를 경험하면서
겨울 산행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도 해 본다.
이후 서서히 잦아드는 바람을 등에 업고
푹신한 양탄자를 깔아 놓은듯 수북히 쌓여 있는 흙산 등로를 따라
가끔씩 나타나는 흰백색의 눈을 어려운 중에도 감상하며 즐겨본다.
그 옛날 영토의 경계선으로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전투를 치뤘을 법한
무너진 성터를 지나 어린 단종과 금성대국을 모시는 산신각과 태백을 지키는 장승들이 지키고 있는
소백과 태백사이의 고개인 오늘의 산행 날머리,
고치령 일명 고치재에서 대간 사랑을 마무리 한다.
최형남님이 준비한 트럭을 타고 좌석리까지 포장도로를 달려 내려오는 새로운 경험에
웃을 수 있었던 또 한구간의 백두대간 산행이였지만 아직도 부어 있는 얼굴을 바라보며
잊혀져 가는 시간을 기록해 본다.
산행후기
어려움이 가중되는 겨울 산행과 연말이 가까워 오고 강행군으로 계속 이어진 백두대간 산행에서 오는 피로도가 커지면서 점점 줄어드는 산우님들의 참여에 아쉬움이 남지만 산꾼들에게 이미 소문이 자자한 소백산 칼바람과의 만남이 그립기에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서울을 탈출한다.
피그대장님이 준비한 호박죽으로 단양휴게소에서의 새벽 식사를 마치고 잠시 배탈난 하이킹님이 걱정이지만 잘 극복하리란 믿음으로 어둠속에 도착한 죽령 휴게소.
죽령 이정표(날씨가 너무 추워 제18차 길에 찍었던 사진을 이용함)
죽령
높이 689m.
조선시대부터 조령과 더불어 영풍-단양 간의 주요교통로였다.
옛날 어느 도승이 짚고 가던 대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 하여 죽령이라 했다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아달라이사금 5년에 이 고개를 사람이 통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전한다.
전설에 의하면 도둑떼에게 아들을 잃은 할머니가 도둑소굴로 숨어 들어 망을 보다가 사람들에게 신호로 "다자구야"라고 외쳐서 도둑떼를 사로잡는 데 공을 세워 이곳 주민들은 매년 대강면 용부원리의 산신당에 모여 다자구 할머니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부근에 죽령 봉수와 보국사·희방사·죽죽사가 있다.
지난회 차 들렸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이건만 몸으로 느끼는 체감은 많이도 달라져 있음을 실감하며 버스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졸린 눈 비비며 산행 준비를 시작한다.
죽령에서 약 30분 산행 후 서 있던 이정표
인공적인 따뜻함만을 누리고 살았던 나약한 인간 세계에서 생활했던 공간과는 온도 차이도 심하고 밤 하늘에 떠 있는 별빛의 강도에도 많은 변화를 감지한다.
강한 칼바람으로 인해 벌써 마음에 추위를 느끼며 하나 둘 껴입은 겨울 옷으로 중무장하니 몸은 둔하지만 추위는 달랠 수 있기에 정각 새벽 3시 넓은 시멘트 등로를 따라 힘차게 소백산과의 인연을 만들어 본다.
백두대간 정식 루트는 시멘트 길과 능선을 번갈아 타며 천문대까지 올라야 하지만 경방 기간이라 출입도 제한되어 있고 어둠속에 길찾기가 쉽지 않아 그냥 시멘트 등로를 따르기로 한다.
매표소를 지나자 많은 선답자들이 알바했다는 우측 군부대 갈림길이 나오고 길 잘 찾아 오르니 오른쪽으로 풍기읍쪽의 야경이 하늘에 떠 있는 별빛과 잘 호응하면서 불어오는 칼바람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은 희석시켜 주고 있다.
된비알 오름길에 바라본 오른쪽 풍기읍 야경
오늘도 선두에서는 사하라 선등대장님이 속도 조절하면서 멋진 리딩을 하고 계시고 후미에서는 다시 오랫만에 복귀하신 피그대장님이 수고해 주시고 계신다.
추위와 칼바람으로 인해 속도는 무척 빠르게 느껴지지만 모든 산우님들 잘도 적응하시고 어느새 제2연화봉 가까이 접근하자 등로에 빙판길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지난 번 내린 누이 녹지 않고 얼어 붙어 빙판길을 만들었는가 보다. 아마도 내년 봄이 되어 날씨가 따뜻해 지기 전엔 녹지 않고 등산객들을 애먹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선두 사하라대장님으로 부터 계속 산행 주의하라는 연락이 들어오고 함께하는 산우님들에게 주의 시켜 드리지만 이미 모든 산우님들은 베테랑이 되어 있어 걱정은 없다.
단지 어둠속에 조심하다 보면 진행상 시간이 늦어져 또 다른 위험은 없을까 하는 기우만이 남아 있다.
조심하며 오늘 처음 우리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하신 달구지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제2연화봉에 도착한다.
제2연화봉에서 칼바람속에 떨리는 몸을 서로 지탱하며 간신히 흔적을 남겨 본다
능선으로 오르기전 무섭다고 생각했던 칼바람의 위력이 헬기장으로 이뤄진 허허벌판 제2연화봉 정상에서 더욱 뒤살아나고 몸조차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 사진기를 들고 있으면 몸이 자동으로 흔들 거리면서 중심잡기조차 버거운 상태이다.
간신히 다녀간 흔적 남기고 어둠속에 희미하게 모습만 드러내고 있는 중계소를 우측으로 끼고 다시 빙판길 조심하며 내려가니 샘터 갈림길이 보이지만 무심한 척 그냥 지나친다.
기록을 위해 사진이라도 남기려 했지만 너무나 강하게 불어오는 찬바람에 디카 건전지도 얼어붙고 무전기 성능도 저하되어 발깐 표시등이 깜빡거리며 산객의 마음을 알아주듯 발걸음을 재촉한다.
소백산 천문대 이정석
1280봉 쯤 올랐다 생각했지만 지도 꺼내기 조차 귀찮고 손이 시려와 확인도 못한채 다시 바위지대를 지나니 곧 천문대가 어둠속에 큰 울음을 터트리고 외롭게 울고 있다.
얼마나 바람의 강도가 센지 천문대 지붕 옆으로 난 구조물 사이를 빠져 나가는 바람이 흡사 모든 우주를 빨아들이는 불랙홀의 흡입력처럼 강하게 울리면서 귓전에 굉음을 울리고 있다.
무서움을 넘어 공포스런 어둠속의 괴물같은 소리이다.
소백산 천문대
1978년 문을 연 국립천문대로 1996년 보현산 천문대가 문을 열 때까지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천문대로 자리해 왔다.
24인치 카세그레인식 망원경을 주장비로 하고 있는 소백산 천문대에는 이밖에도 6인치 쌍안경과 6인치 굴절망원경을 비롯해 몇대의 망원경들이 함께 준비되어 있다.
보현산천문대가 야간의 방문이 전혀 허락되지 않는 반면, 소백산천문대는 사전에 양해를 구하면(연구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도에서)야간에도 견학이 가능하며 아마추어 천문가들에게 매우 우호적이다.
이곳에는 7~8명 정도가 묵을 숙소가 마련돼 있어 적은 인원의 관측과 견학에는 아주 좋다.
이곳을 찾아가려면 먼저 방문 2~3주 전쯤 미리 전화로 견학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소백산 천문대 앞에 서 있던 백두대간 안내도
잠시 서성이며 천문대 이정표를 디카에 간신히 담고 연화봉을 그냥 지나치려 하니 어느새 다녀온 이철주님과 현우님이 얼마 안되는 거리이니 꼭 다녀오라 알려준다.
급하게 오르니 몇몇 산우님들 뒤따르고 한 20여미터 오르자 하늘과 맞닿아 있는 연화봉 정상엔 단지 쉼터와 이정석이 지키며 힘겨운 바람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칼바람에 흔들려 사진도 똑바로 찍지 못하고 그저 흔적 남기기에 급급하다
연화봉(1383봉)
연화봉은 도솔봉에서 바라보면 이슬을 머금고 막 피어나는 연꽃을 연상시킨다고 알았지만 어둠이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다음엔 꼭 밝은 날 다시 찾아 와 그 연꽃 모습을 보고 가야 되겠다는 아쉬움만 남기고 떠나 온다.
뒤따르던 산우님들 불평불만 솟아내며 그냥 지나치지 여기까지 올랐다 다시 내려간다며 수근거렸지만 디카를 들이대자 흔적남기기 위한 몸부림이 처절하게 다가온다.
우측 풍기읍 야경을 다시 한장 남기고 벌벌벌 떨리는 몸 간신히 추스려 천문대 갈림길로 뒤돌아 내려와 우측 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나무 계단에 하얀 서릿발이 내려 앉아 미끄럼을 가중시키고 있다
약간 능선을 벗어나 바람은 좀 수그러 들었지만 이제부터는 다시 빙판길이 발목잡고 놓아 줄 기미가 없어 몇몇 산우님들은 벌써 체인젠으로 무장한 채 어둠속 미로 찾기를 계속하고 있다.
얼어 버린 등로 갓길위 눈쌓인 길을 찾아 힘들게 진행하자 서서히 주목 군락지가 바람에 흔들리며 공포스런 굉음을 내기 시작한다.
이제 겨울의 시작이니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시일을 보내야 다시 아름다운 꽃을 피울까 생각하며 내 자신의 어려움을 참아본다.
별빛을 받아 반짝이는 빙판 등로를 따라 능선으로 이어가자 더욱 강렬한 소백산 칼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눈에서는 눈물이 소리없이 흐러 볼때기를 타고 내리며 금새 얼어붙듯 따가워 온다.
누구랄 것도 없이 재빨리 발걸음 옮기지만 불어오는 강풍으로 인해 몸은 계속 갈지자 행보로 전진이 더디다.
지칠줄 모르는 바람에 출렁이며 얼어붙은 철쭉 가지들이 사정없이 몸둥아리 때리고 다시 하얀 서릿발이 돋아난 가파른 나무 계단 타고 오르자 그 추위속에서도 등줄기에선 땀방울이 솟아나 속옷을 적시고 있다.
제1 연화봉 이정표
잠시 전망대에서 마지막 풍기쪽 야경을 기억속에 담고 고개를 넘자 바람이 언제 불었느냐며 조용하게 제1연화봉 이정표가 반겨준다.
단지 이정표만 흔적으로 남기고 얼어 있는 손 비며 녹인 후 지체할 시간도 없이 발걸음 옮겨 다시 능선으로 나가니 서서히 동녘 하늘에서 검은 구름 사이로 일출의 장엄함이 꿈틀 거리기 시작한다.
고릴라 바위라 이름 지어 주웠다
변화 무쌍한 자연의 변화에 경외로운 찬사를 보내며 1382봉을 넘자 좌측에 고릴라 형상의 바위가 시선을 잡는다.
사진으로 남기고 계단타고 내려가 다시 두번째 계단을 지나 바위들이 산재해 있는 1394.4봉에 오르자 동녘 하늘엔 더욱 선명한 붉은 빛이 하늘을 채색하고 있다.
이미 선두는 주목보호 감시초소에 도착하여 후미 기다리고 후미는 이제 제1연화봉을 향해 열심히 뒤따르고 있다.
아침 7시가 가까워진 시간에 천동리 갈림길에 도착하고 주능선을 타고 조금 오르자 좌측으로 기다리던 초소가 아름다운 별장처럼 바람을 막고 굿굿히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천동리 갈림길 이정표, 내린 눈이 녹지 않아 더욱 을씨년 스럽다.
천동계곡
소백산의 대표적 코스인 천동~비로봉 산행 코스를 따라 천동쉼터 까지 이어지는 소백산의 대표적 계곡중의 하나이다. 산 중턱까지 계곡이 이어져 길 양편에 치솟은 단풍이 하늘과 물에서 화려한 빛을 발한다.
졸졸 흐르는 계곡의 맑은 물 소리와 각양 각색의 싱그러운 낙엽송은 단풍을 거들어 탐방객의 청각과 시각을 한껏 풍족하게 만들어 준다. 정상인 비로봉 부근에 이르면 '살아 1,000년, 죽어 1,000년'을 간다는 주목이 단풍의 붉은 색깔과 어울려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추위에 그나마 칼바람을 피했던 주목보호 감시초소 전경
재빨리 칼바람을 피해 지표에 달라붙어 있는 말라 있는 초원을 가로질러 초소안으로 몸을 숨기니 벌써 많은 다른 산객들도 아침상을 펼치기 위해 도착하여 분주하다.
잠시 후미 기다리다 자리 펴 산상의 식당 잔치 벌이니 이 또한 산행에서 맛보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리라.
소백산 주목 군락지
소백산의 주목군락은 비로봉의 정상부 서쪽에 100여 그루의 오래된 주목이 모여 자라고 있으며, 줄기가 꼬이고 곁가지는 아래 위로 굴곡을 만들어 신기한 모습을 하고 있다. 대부분 나무의 높이는 7m 정도이고, 둘레는 일정치 않으나 2m 정도에서 밑으로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다. 이는 강한 바람과 눈이 원인인 듯하다.
주변에는 벚나무, 개암나무, 신갈나무 등이 자라고 있으며, 능선 근처에는 우리나라 특산종인 모데미풀의 집단이 있다. 소백산의 주목군락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목군락지로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보아하니 살아 천년을 채우고 죽어 천년을 향해가는 듯하다.
비로봉 오름길 좌측에 굿굿히 한겨울 이겨내고 있는 주목들
후미까지 도착하여 아침 식사 마치니 아침 7시 35분여.
비로봉 옆으로 찬란한 아침 햇살이 솟아 오르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칼바람이 윙윙거리는 초원 한복판에서 흔들리는 디카를 움켜잡고 간신히 몇 캇트 찍은 후 빠르게 초소속으로 몸을 숨긴다.
모두 배낭 정리 후 다시 7시 50여분에 초소를 출발하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강도의 이 세상 최고의 칼바람이 산우들의 몸을 자꾸만 작게 만든다.
비로봉 넘어 구름 사이로 찬란히 세상을 밝히는 일출 모습
하지만 나무 계단을 타고 오르다 바라본 지나온 초원속의 주목보호 감시초소와 두갈래 등로 그리고 앞에 우뚝 버티고 서 있는 비로봉 능선이 그나마 위안을 주면서 콧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에 미소를 띄운다.
소백산 비로봉(1439.5봉)
소백산의 주봉으로서 비로봉 정상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푸른 목장을 연상시키는 넓은 초원에 모두들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이다.특히, 겨울의 아침 햇살에 비치는 무지개빛 눈보라와 눈꽃 그리고 백색평원은 설경의 극치를 이룬다.하지만, 세찬 겨울 바람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다.비로봉 북서 사면에는 천연기념물 제244호인 주목군락지가 있다.
소백산 정상 비로봉 이정석에서 추위에 떨며 찍은 단체 사진
드디어 소백산 정상, 비로봉. 잠시 찰나의 시간이지만 후미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조차도 참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바람이 덜 불어오는 구석으로 삼삼오오 물러서는 산우님들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직접 경험하지 못했던 최고의 소백산 칼바람과 맞서 본다.
떠 오른 아침 햇살을 향해 소리도 쳐 보지만 이내 목소리가 들어가고 모든 신체 부위를 가려 누가 누군지도 분간 못 할 복장으로 간신히 몇장의 단체 사진을 남겨 본다.
비로봉쪽에서 바라본 주목보호 감시초소 방향의 능선
오늘 산행의 클라이막스 비로봉에서 어의곡리 갈림길에 이르는 민둥산 능선, 좌측 내륙에서 불어 오는 칼바람에 몸은 자꾸만 좌측 영주쪽으로 비틀거리고 열심히 힘내 걸어보지만 뒤돌아 보면 그 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는 착각.
비로봉에서 어의곡 갈림길쪽으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과 능선 그리고 힘겹게 발길 옮기고 있는 종주대
바닥엔 아침 햇살과 관계없이 하얀 서릿발이 미끄러움을 가중시키고 강력한 칼바람은 움직이는 모든 물체를 좌측으로 밀어 버리고 있다.
거의 모든 대원들이 몇번의 넘어짐과 쓰러짐을 반복하고 또 몇몇 산우님들은 아예 나무 계단을 벗어나 우측 능선으로 몸을 숨겨 풀밭으로 간신히 전진해 나아가고 있다.
어의곡리 갈림길에서 출입금지 플랭카드가 달려 있지만 눈 덮힌 산하이기에 마음 편히 국망봉을 향해 로프를 넘는다.
잠시 비로봉 정상이 한눈에 올려다 보이는 우측 사면으로 내려오자 너무나 조용하고 따뜻한 햇살이 비춰 방금전 능선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고 있다.
어의곡 갈림길에서 바라본 비로봉과 이어진 나무 계단들
이곳부터 피그 후미대장님을 중간으로 보내 드리고 후미에서 사부작 거리며 이백과의 본격적인 사랑 놀음을 시작해 본다.
잠시 철 계단 넘어 벌바위 갈림길 지나자 앞서 나가던 료가님이 선그라스를 잃어 버렸다며 뒤돌아 올라오고 산행 주의 당부한 후 로프 지역을 통과하여 계속 앞으로 진행해 본다.
암봉 지나 석륜암터 갈림길을 넘자 다시 주목 지대가 나타나고 눈앞에 멋들어진 국망봉 바위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무 계단을 타고 조금 오르자 바위를 지난 우측 지점에 오늘 처음보는 상고대가 철쭉 가지에 피어 있고 여기에서 지나는 산우님 한분 한분씩 잠시 멈춰서서 사진을 찍어 드린다.
지금 사진으로 보니 눈만 내놓고 있어 누가 누군지 분간조차도 할 수 없는 사진들이다.
국망봉 오르는 나무 계단 우측에 피어난 상고대
다시 그 나무 계단 끝을 타고 넘자 나라 잃은 서러움을 가슴에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중 황궁이 있는 경주를 향해 통곡했다는 신라 마지막 세자 마의태자의 울부짓음이 바람소리를 타고 더욱 선명하게 들리는국망봉이다.
소백산 국망봉(1420.8봉)
비로봉(1,439m)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로 가을 숲이 아름답다.산의 남동쪽 기슭에는 부석사·초암사·석륜암 등이 있으며, 유명한 석천폭포가 있다.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고려 태조왕건에게 투항하여 태자와 함께 은거하던 중 이 곳에 올라와 옛 도읍 경주 쪽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그리하여 이 봉우리를 국망봉이라 부른다.
국망봉 이정석에서 배고품과 추위에 고생한 막내
이정석과 몇분의 산우님들만 간단히 디카에 담아 드리고 바람을 피해 하산하지만 이곳 역시 상월봉까지 민둥 능선이기에 바람을 피할 수가 없다.
능선을 타고 춥지만 아름답게 펼쳐진 마루금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상월봉으로 오른다.
선두에서 남겨 놓은 좌측 우회길이 보이지만 정상에 올라 칼바람에 떨고 있는 능선을 바라보고 동북쪽 사면에 쌓여 있는 많은 눈을 피해 다시 뒤돌아 내려와 좌측 사면을 타고 상월봉을 넘는다.
국망봉에서 내려오며 찍은 상월봉과 능선
이제부터 잡목과 낙엽이 등로의 새로운 주인으로 자리잡고 잦아진 소백산 칼바람을 뒤로하고 늦은맥이재로 향하니 어느새 뒤돌아 갔던 료가님이 합류하고 선두가 늦은맥이재에서 휴식을 취하다 후미에게 방을 빼주고 멀어져 간다.
이곳에서 이슬이 한잔으로 칼바람과 싸워 지친 심신 달래며 휴식 취한 후 산죽 군락을 통해 대간 산행을 이어간다.
선두와 조우했던 늦은맥이재 이정표, 좌측으로 율전어의곡으로 하산길이 있다
성터
늦은맥이에서 형제봉 갈림길까지 오래전 쌓은 것으로 보이는 성터가 있으나 관리가 안돼 거의 허물어져 있다. 자료로 찾을 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마침 운해님이 남긴 글속에서 그 성터에 대한 짧막한 글이 있어 참조한다.
'신라시대에 고치령 아래에 대궐터를 짓기 위 해 이 고개를 넘나들 때 古峙(옛 고개)라는 문헌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대궐과 연관이 있었거나 국경선 방위를 목적으로 축성한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이곳에서 옛 성터와 같은 다 허물어진 돌담이 눈에 보이고 상세 지도를 펼치지만 알길이 없어 답답하다.
아마도 그 옛날 삼국 시대에 신라와 백제의 국경으로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격전장이 아니였을까 하는 추측만 할 뿐이다.
힘들게 선두 따라 능선길 오른 후 미니 사진 한장
헬기장과 간간히 보이는 이정표를 지나 1060.6봉을 넘자 선두는 이미 마당치에 도착해 휴식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고 다시 힘내 따라가니 연화동 갈림길 이정표가 보인다.
1031.6봉 정상 이정표에서 후미조 간단한 미니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 하산길에 너무나 멋들어진 양탄자 같은 낙엽속에 왕언니님 밀어 넣고 영화 한편 찍은 후 암봉을 우측으로 우회하니 곧바로 마당치이다.
양탄자처럼 푹신하게 깔려 있는 낙엽
이제 얼마남지 않은 날머리 고치령을 생각하며 허기진 배 채우고 형제봉 갈림길 지나 조금 더 힘내니 온통 죽어 있는 고사목 지대에 들어선다.
지도를 보니 불난 지역으로 앙상한 나뭇가지들만이 을씨년스런 날씨에 더욱 차갑게 가슴을 파고 든다.
내가 아닌 우리들의 아름다운 산하, 모두 잘 가꾸고 보존하여 만대 후손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나 혼자만의 마음은 아닐 것이리라.
불난 고사목 지나 잠시 휴식중인 달구지님
마지막 작은 두어개의 봉을 넘자 묘 한기가 넓은 공터를 만들어 주고 조금 가파른 하산길 내려가자 웅성거리는 사람 목소리가 들리면서 하얀 포터 한대가 눈에 들어온다.
마지막 임도길 내려 와 종주대 박수 받으며 고치령 이정표에서 사진 한장 남기니 퉁퉁 차갑게 부어 있는 눈두덩이와 얼굴이 다시 홍조를 띠면서 마음의 평온을 찾아본다.
백두대간 산행 날머리인 고치령 이정표
고치령(운해님 자료 인용)
국토지리원 자료에 古峙(옛 고개)로 기록 되어 있는 이 재를 양백지간(兩白之間) 또는 "고치재"로 부르기도 한다.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를 가로 지르는 고치령은 조선중엽 때 까지만 하더라도 죽령 다음으로 중요한 고개였던 것으로 보이나 세조에 의해 유배당한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던 이 곳 사람들의 노력이 발각되어 폐쇄되었다는 설도 있는 곳이다.
양백지간이라 하는 이 곳에는 영월로 유배된 단종과 순흥으로 유배된 금성대군(단종의 삼촌으로 단종의 복위를 꿈꾸다 사사당한다)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것이라 전해진다.
영월땅으로 유배되었던 단종이 어느 날 하얀 도포차림에 말을 타고 고치령을 넘어 가고 있었다.
단종대왕에게 "어디를 가느냐" 물어보는 백성들에게 단종이 답하기를... "태백산"에 놀러간다고 하였다.
이 날 오후 단종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단종의 혼백이 태백산으로 들어 태백의 산신이 되었고 그의 신하였던 금성대군은 소백의 산신이 되었다고 믿어왔던 사람들은 혼령이 되어 만나는 조카와 삼촌(단종은 금성대군의 조카이다)을 위해 양백지간인 고치재에다 산신각를 짓고 매년 정월14일에는 어김없이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태백을 지키는 장승들
마지막 후미조가 내려올 때까지 다음 산행 들머리 확인하고 태백을 지키는 장승과 단종 및 금성대군을 모시는 산신각을 디카에 담고 최형남님이 운전하는 포터를 타고 요상한 포즈를 취해 좌석리로 내려오니 우리의 신평 버스가 반갑게 맞이해 준다.
고치령에 있는 단종과 금성대군을 위한 산신각
산신각(한문을 공부한 지기에게 번역한 글임)
단종대왕과 금성대군을 모시는 산신각(고치령에 있음).
가운데에 산신각(山神閣)이라 쓰여 있고 좌우측에 있는 주련에는 아래와 같이 쓰여 있다.
왼쪽에는 차산국내지령지성(此山局內至靈至聖) "산이 모두 영역이 모두 지극하게 성령스럽고 성스러웠으면 한다"라고 쓰고 오른쪽에는 만덕고승성개한적(萬德高勝性皆閒寂) 수만 가지 덕이 높고 번성해서 모든 사람의 본성이 여유로우면서 고요하기를 바란다" 고 써 있다.
고치령에서 찍은 마지막 단체 사진
몸도 성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탈하게 잘 리딩해 주신 사하라대장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늘 후미에서 어려움 도맡아 돌봐주시는 피그 후미대장님께도 고마움 전합니다.
또한 종주대의 자질구레한 모든 일을 처리해 주시며 포터 승선값까지 내주신 솜이 총무님, 늘 감사하는 마음 전합니다.
처음 3450 온누리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하여 소백산 칼바람에 고생하신 달구지님, 앞으로도 대간 산행에서 자주 뵐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좌석2리 좌석교에서 종주대를 기다리고 있던 신평 버스
함께 힘들고 어려운 칼바람과 싸우며 고생하신 23인의 백두대간 종주대 여러분, 늘 사랑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드림니다. 몸 잘 관리하시고 다음회 차엔 가벼운 마음으로 2007년을 마무리 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후기글을 마무리 합니다.
백두대간 종주대 여러분,
여러분들이 있기에 이 칠갑산은 행복합니다.
그리고 종주대를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백두대간 산행대장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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