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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제1차(산행완료)/백두대간 산행 후기

대간마루금 제16차 백두대간 조령제3관문에서 부리기재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07.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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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마루금 제1기 백두대간 제16차 조령제3관문에서 부리기재까지 산행 일지

 

 

산행날짜 : 2007년 10월 19일부터 20일까지 (무박 2일)

산행날씨 : 맑았으나 고산지대엔 첫눈 그리고 온종일 강한 바람

산행온도 : 새벽 영하 2도에서 낮 최고 영상 10도

참가인원 : 총 28명(존칭생략) 칠갑산, 솜이, 하이킹, 무시로, 베짱이, 인연, 자우롬, 나마스테, 시대야, 사강, 사하라, 고산자, 현우, 돌소리, 다향, 청목, 봉서산, 운산, 피그, 료가, 월척, 석불산, 왕언니, 도롱골, 이철주, 조광수, 올리브, 거울

산행코스 : 고사리 주차장(접속구간)-조령제3관문(백두대간 산행 시작)-마패봉(927봉)-북암문-동암문-평천재-탄항산(월항삼봉, 956.7봉)-하늘재-포암산(961.7봉)-관음재-마골치-꼭두바위봉-부리기재(백두대간 산행 종료)-박마을(접속구간 산행 종료)-산행종료

산행거리 : 21.16 Km, 접속구간 5.00 km (고사리 주차장 - 조령 제3관문 : 2.00 Km, 부리기재 - 박마을 : 3.00 Km)

산행시간 : 선두 13 시간 00분, 후미 15 시간 00분

준비물 : 물 3.5 리터, 이온음료 1.0 리터, 과일 젤 1봉, 아침 밥, 반찬 3종류, 수저 및 젓가락, 떡, 방수방풍의, 모자, 땀수건, 목수건 2개, 겨울 장갑 2개, 헤드렌턴 2개 및 예비 건전지, 가위, 칼, 압박붕대, 테이핑, 에어파스, 구급약, 프랭카드, 디카 및 예비 건전지, 모발폰 및 예비 건전지, 무전기 3대, 스틱 2개, 버너, 코펠, 가스1통, 상세 지도 및 산행 자료, 컵, 휴지 2봉, 키친 타올 1롤, 쓰레기 봉투

버스에 두고 간 준비물 : 갈아 입을 옷 한 벌, 슬리퍼, 롱 스패츠, 우의, 삼겹살 15근, 상추 및 깻잎, 소금 및 기름장, 일회용 접시들, 가스 렌지 1개, 불판 2개, 밥 및 김치류 등.

교통수단 : 45인승 버스 1대

            신평고속관광 양기중 기사님

상세산행

10월 20일

00:00 서울 사당 출발

00:15 서울 TG 도착 후 다향님 탑승

01:30 충주 휴게소 도착 후 휴식 및 새벽 식사

02:10 충주 휴게소 출발

03:10 조령산 자연 휴양림(조령제3관문 충북 연풍쪽 고사리 주차장)

03:15 스트레칭

03:20 고사리 주차장에서 산행 시작 

04:00 조령제3관문(백두대간 산행 시작, 길주의, 관문 지나자 마자 성곽 따라 좌측 능선길로)

04:14 묘1기

04:40 선바위 및 암릉길 시작 점(산행주의, 전망대 옆 로프 이용하여 진행 )

04:51 마패봉(마역봉 927봉, 길주의, 마패봉 지나 곧바로 좌측 신선봉 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05:04 노송 및 암릉 지대 (산행주의)05:22 북암문(길주의, 좌측 지름재 및 우측 동화원 휴게소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길)05:29 756봉 (산행팁, 잡목 우거져 전망 없음)

05:46 안부 및 묘1기

06:01 764봉 (산행팁, 잡목 우거져 전망 없음)

06:17 760

06:32 동암문(길주의, 사거리에서 좌측 미륵리와 평천재 및 우측의 동화원 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길)

06:36 성터

06:55 부봉 갈림길(길주의, 우측 부봉길 버리고 90도 꺽이는 좌측 대간길 따라 진행, 부봉은 대간 길 아님)

07:02 로프 2곳 설치 지역(산행주의, 우측 암벽으로 트래버스 하는 지역)

07:16 908

07:34 960봉 및 주흘산 갈림길(길주의,  우측 주흘산 길 버리고 좌측으로 90도 꺽이는 길이 대간길)

07:43 내리막 급경사 길 (산행주의, 50 m 로프가 설치된 위험 구간)

07:54 갈림길(길주의, 우측 버리고 좌측이 대간길)

08:00 평천재 (길주의, 우측의 월항마을과 평천리 및 좌측의 동암문과 미륵리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길)

08:31 탄항산(월항삼봉 856.7봉)

08:50 전망대 및 로프 암릉지역 그리고 굴바위 (산행주의)

08:52 아침식사

08:28 아침식사 후 출발

08:32 766

09:34 삼각점 2곳

09:41 안부 및 모래재 (산행팁, 민둥 구간)

09:48 밤나무 단지 (우측에 철조망)

09:52 하늘재

10:11 하늘샘

10:22 성벽(길주의, 좌측길 따라 대간길)

10:34 돌탑 및 미륵리 갈림길(길주의, 좌측 미륵리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11:00 로프 암릉지역(산행주의)

11:26 포암산(961.7봉, 길주의, 우측길 버리과 좌측이 대간길)

11:34 963

11:34 산죽밭 및 이정표

11:45 갈림길(길주의, 좌측 만수골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11:59 842봉 및 이정표

12:12 이정표 및 안부(길주의, 좌측 만수골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12:24 관음재

12:28 880봉 및 만수봉 갈림길(길주의, 좌측 만수봉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12:37 마골치(길주의, 좌측 메밀봉 가는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12:45 941봉 및 전망대

12:57 888봉 및 안부

13:08 899

13:27 돌탑 및 관음리 갈림길(길주의, 우측 관음리 하산길 버리고 좌측이 대간길)

13:36 809봉 및 갈림길(길주의, 갈림길에서 좌측길 선택해 질러감)

13:59 843봉 및 로프 암릉지역(산행주의)

14:44 꼭두바위봉(838봉) 및 전망대

14:53 너덜지대

15:02 꾀꼬리봉 갈림길(1034봉, 길주의, 좌측 꾀꼬리봉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15:21 1062.4봉 및 잡목지대

15:35 안부 (길주의, 띠지가 많아 우측이 대간길로 착각하기 쉬우나 우측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 길)

15:46 부리기재(백두대간 산행 종료, 길주의, 우측 문경쪽 밖마을로 하산)

16:40 밖마을(산행 종료)

 

 

첫눈의 환상속에 강한 바람의 시샘 그리고 하나된 백두대간 종주대

 

에필로그

 

이번 구간의 특징은 옛날 교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시절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던 중요한 두개의 고갯길(조령과 하늘재)을 지나고 어사 박문수와 관계있는 마역봉을 지나 북암문과 동암문의 성벽을 따라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이다.

 

이어 교통의 중요 지점에 묵어 가던 현재의 여관 역활을 했던 동화원을 바라보며 민초들의 삶과 애환을 생각해 보고 설화가 만개한 부봉에 떠 있는 칼라풀한 단풍에 비추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어떻게 위험 암릉 구간을 트래버스해 지났는지 모르게 건넌 것이리라.

 

포암산 정상에서 유일하게 찍은 단체 사진

 

이곳을 지나 웅장하게 서 있는 주흘산을 바라보며 평천재(월항재)를 지나 봉수대가 설치 되어 있다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활을 담당했던 탄항산(월항삼봉)을 지나 우리나라 최초로 열렸다는 고갯마루 하늘재(계립령)에 닿는다.

베바우산과 마골산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삼베를 짜는 삼나무의 껍질을 버껴낸 겨릅(저릅)대를 세워 놓은 형상과 흡사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포암산의 웅장한 바위군에 인간의 작디 작은 존재를 생각해 보고 힘든 산행을 하는 이유를 조금은 느껴보는 시간이 된다.

 

계립령(하늘재) 하산길에 전망대에서 바라본 포암산 전경

 

계속 나타나는 만수봉 이정표를 따라 산행을 하다 보면 북쪽으로 만수봉과 하설산, 동쪽으로 우리가 가야 할 대미산과 운달산, 서쪽으로 칠보산과 보배산 그리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주흘산과 문경 시루봉의 마루금에 압도 당한다. 

 

관음재를 지나면서 처음 내린 하얀 눈을 뒤집어 쓰고 거대한 암봉의 위용을 자랑하는 월악의 영봉에 다시 한번 가슴 저미는 환상의 대간길을 느끼면서 마골치를 지나 꾀꼬리봉 갈림길에 안착한다. 

심한 바람과 낮아진 온도가 산행 내내 어려움을 가중시키지만 누구보다 먼저 만나 본 첫 눈이 모든 어려움에 대한 보상을 해 주고 위험구간으로 인식되는 너덜구간이 있지만 하늘을 향해 더 높게 솟아 있는 월악의 영봉이 피로에 지친 산객의 마음에 위안을 준다.

 

이제 오르락 내리락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지루한 구간을 통과하면 마지막 안부가 산객의 마음을 유혹하고 그 유혹 뿌리치고 진행하여 부리기재에서 박마을로 내려오면 자연이 주는 고즈넉한 가을 마을에 사과 익어 가는 맛난 향기가 서산으로 지는 짧아진 가을 햇살에 비춰 산객을 다시 일상으로 뒤돌리고 있다.

 

박마을로 하산 후 찍은 백두대간 마루금과 부리기재 원경

 

그 일상속 얼굴에 주름 가득한 시골 어르신의 배려로 비닐 하우스에서 구워먹던 삼겹살 한입이 또 한구간 긴 여정을 끝마친 종주대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땅거미 지는 날머리에 2주 후를 기약하며 돌아서는 발길이 어느때보다 가볍게 흔들거림을 맛보는 즐거운 시간이였으리라.

 

산행후기

 

눈을 뜨니 파아란 가을 하늘 아래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거실을 두드리고 있다.

멀고도 길며 힘들면서도 특별한 추억이 담긴 백두대간 제16차 산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세상 모르게 잠들었다 일어나니 밝고 맑은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지난 16차 백두대간 산행이 또 한장의 멋진 추억에 덧칠을 하고 그 추억속을 더듬으며 벌써 과거가 되어 가는 그 길을 다시 한번 영상 이미지를 그려보며 걸어 본다.

 

들머리까지 가는 거리가 짧기 때문에 사당에서의 만남을 한시간 뒤로 연장하고 계속 기상청의 날씨 현황을 확인하지만 마음이 편하질 않는다.

전날 금요일까지 비가 내리고 또 찬바람이 불면서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 되리란 예보 때문이다.

이제 이번 구간을 다녀 오면 정확히 긴 장도의 반환점을 돌게 되지만 산행 전 이렇게 마음 졸이며 시작한 것이 벌써 몇번째 산행이던가. 

 

첫눈이 내렸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월의 흐름을 �고 있는 단풍과 그 밑에 쌓인 눈 

 

조령(조령제3관문 또는 무경새재)

높이 643m. 이화령으로부터 북쪽 약 7㎞ 지점인 조령산(1,017m)·신선봉(967m)·마폐봉의 안부에 위치한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 만큼 험하다 하여 새재·문경새재라고도 한다.

영남지방에서 소백산을 넘어 서울에 이르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로 조선시대의 주요 교통로였다.

고개를 따라 조령천이 남류하며, 동·서 사면은 절벽을 이룬다.

삼국시대에는 죽령과 계립령(鷄立嶺, 하늘재)을 이용했으나, 조선초 태종 때 새로 조령을 개척했다고 한다.

 

조령제3관문에 도착해 출발하기 앞서 흔적 한장 남기고

 

산골짜기의 기슭을 돌아 오르게 되어 있는 천연의 요새지로 임진왜란 이후인 1594년(선조 27)에 조령 제2관문인 중성(中城)을 설치했다.

그후 1708년(숙종 34)에 중성을 중건하고, 초곡성(草谷城:제1관문)과 영성(嶺城:제3관문)을 축조했다. 

1925년에 이화령에 국도가 건설되면서 서울과 영남을 잇는 관문으로서의 역할은 상실했으나 1966년 3월 22일에 제1·2·3 관문과 성벽이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었다.

1970년대 중반에 관문들을 복원하여 주변을 관광지로 개발했고, 1981년 6월 4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저 청명한 가을 날씨이기만을 기도하며 잠시 새로운 산우님들 인사한 후 충주 휴게소 들려 새벽 식사를 마치고 들머리인 조령 고사리 주차장에 도착하니 정확히 새벽 3시 10여분.

제일 먼저 내려 하늘을 처다 보니 너무나 황홀한 별들이 어둠속 하늘을 밝히고 제각각 자리에 빛을 발하며 마음 졸이는 산객을 안심시키고 있다.

무척 쌀쌀하게 느껴지는 밤공기를 들이 마시면서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준비를 끝내고 힘찬 산행을 시작하니 새벽 3시 20여분.

 

문경새재도립공원 안내도

 

지난 번 엉뚱하게도 접속구간을 알바하여 낮선 구간을 가다보니 짧게 두어번의 헷갈리는 길을 잡아 백두대간 들머리인 조령제3관문에 무사히 도착한 시간 새벽 3시 50여분.

몇몇 산우님들 어둠속에 들머리에서 추억 만들어 드리고 배낭 정리한 후 정확히 새벽 4시에 성곽따라 나무 계단을 오르며 긴 하루를 열어 본다.

 

어둠속에서도 벌써 가을을 느낄 수 있는 떨어진 낙엽이 뒹굴면서 산객들의 마음을 졸이게 만들고 을씨년한 가을 바람이 볼때기를 매만지며 만만치 않은 산행의 서곡을 알려주는 듯 하다.

오늘 선두는 여전히 사하라 대장님이 이끌고 중간을 료가님에게 맡긴 후 제일 후미에서 사부작 거리며 뒤를 따라 본다.

오랫만에 자유를 느끼신 피그대장님은 얼굴도 보여주기 싫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아가 버리고 그 마음 잘 알고 있기에 편하게 산행의 즐거움을 가지시길 빌어 드린다.

 

낙엽 위에 소복히 쌓여 있는 첫눈

 

묘1기 지나 조금 더 된비알 오르니 선두 리딩 대장님의 떨리는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급하게 전달 된다. 선두는 위험한 암릉 구간 막 지나 능선길로 접어 들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환상의 첫눈이 내려 온 세상을 밝히고 있다며 조심해서 올라 산행의 백미를 느껴보라 전해 준다.

 

왕언니님과 마지막 후미에서 조심하여 암벽 로프지대 오르니 파아란 들풀 위에도 곱게 물든 단풍 위에도 온통 하얀 눈이 쌓여 설화를 만들고 떨어져 수북히 쌓인 낙엽위에도 온통 새하얀 세상을 만들고 있지만 종주대가 지난 대간길에만 후미를 위한 배려인 듯 촉촉히 젖어 길을 안내하고 있다.

그저 어둠속에서도 첫 눈에 대한 탄성과 신비로움을 토해내며 좀 더 오르자 몸을 지탱하기도 힘든 강한 찬 바람이 능선을 타고 종주대의 앞길을 막아서고 있다.

 

잠시 들뜬 마음 가라 앉히고 이제부터 다시 걱정이 앞서기 시작이다.

무사히 안전한 산행으로 뒤돌아 상경하는 버스에서 모두 웃는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눈 덮힌 능선길을 오르니 어사 박문수가 마패를 걸어 놓아 마패봉이라 불리기도 한다는 마역봉에 도착한다. 

 

첫눈에 묻혀 보이지 않는 정상석을 종주대중 누군가 예쁘게 치워놓았다

 

마역봉(마패봉)

높이는 940m로, 마패봉이라고도 부른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산으로, 충청북도 쪽으로는 신선봉과 맞닿아 있다.

조령 제3관문을 사이에 두고 깃대봉과 마주하며 명칭의 유래는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산을 넘을 때 조령 제3관문에서 쉬었을 때 마패를 관문 위의 봉우리에 걸어놓았다고 하여 이 지방에서는 마패봉이라 부른다.

 

종주대중 누군가가 마역봉이란 정상석을 알리기 위해 눈 덮힌 글자 위의 눈을 쓸어 내린 고마움에 인사하고 다녀간 기념을 남겨 본다.

잠시 하산하니 곧바로 좌측으로 많은 띠지들과 분명한 길이 나 있고 아무 생각없이 진행하면 알바하기 쉬운 신선봉 갈림길 지나 이제부턴 포근한 낙엽 밟는 기분으로 진행해 보지만 고산지대에 불어 오는 늦가을 칼 바람이 자꾸만 발걸음을 더디게 만들고 있다.

 

다시 나타나는 길게 누워 있는 암릉 로프 구간을 조심하며 내려가니 다시 눈은 보이지 않고 촉촉히 젖어 있는 낙엽길이 산객의 마음마저 포근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보니 900고지 이상에는 눈이 내려 쌓여 있지만 그 이하의 고도에선 비가 내려 그저 촉촉히 대지를 적신 정도이다.

 

노송지대 지나 좀 더 진행하니 좌측에 돌로 쌓아 놓은 성벽이 보이고 확인해 보니 북암문이다.

추운 날씨로 잠시 사진 한장 남기고 그냥 지나쳐 작은 능선 오르니 756봉에 오르지만 아직도 어둠속 세상에 잡목들만 우거져 전망이 없기에 또 그냥 지나친다.

작은 안부 지나 묘 한기 지나고 764봉 올랐다 가파른 내리막 내려가니 다시 760봉이 나오지만 이곳도 그냥 지나친다.

 

동암성문터, 옛날에는 중요한 역활을 했을 성터가 이젠 흔적만이 남아 산객들에게 존재만 알리고 있다

 

오랫만에 후미에서 왕언니님 모시고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며 앞서 나간다.

한참 앞서가다 불빛이 보이지 않으면 기다렸다 얼굴 한번 보고 산행에서 어려움은 없는지 확인한 후 다시 도망가기를 몇차례, 약간 여명이 밝아오며 벌써 동암문에 도착한다.

한참을 기다려 동암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성터에서 사진 한장 다시 남긴 후 오름길 오르니 날이 밝아오며 헤드렌턴을 접어 본다.

 

이제 시간도 아침 6시 30여분이 지나고 동녘 하늘에선 일출을 위한 용트림이 일어나지만 짙게 드리운 구름과 우거진 잡목들로 인해 일출 보는 것은 포기하고 밝아오는 여명만 간신히 몇장 건져본다.

부봉 갈림길부터 환상의 설화가 자꾸 발목 잡고 로프 트레버스 지대에 도착하여선 부봉 산자락에 피어 있는 너무나 환상의 설화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후미만의 즐거움을 잠시 만끽해 본다.

 

부봉에 피어 있는 설화가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부봉

높이는 935m이다. 문경새재 제2관문인 조곡관 뒤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산으로, 모두 6개봉으로 이루어졌고 제2봉이 제일 높다. 백두대간에 속한 산으로, 하늘재를 지나 조령(鳥嶺)까지 이어진 주능선에서 가지를 뻗은 문경의 진산(鎭山) 주흘산(主屹山:1,106m)과 이어져 있다.

조령산(1,017m)에서 동쪽으로 보이며, 주흘산의 북서쪽에 바위벽으로 솟아 있다. 이화령에서 하초리로 흐르는 조령천이 산 옆으로 지나간다. 6개 암봉이 한 줄로 이어져 있어 험준한 암릉의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옛날 영남지역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인 제3관문을 비롯하여 제1, 2관문이 자리잡고 있다.

 

한겨울의 상고대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서리가 내려 있는 모습도 아닌 것이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부봉자락에 피어 있는 첫눈의 설화에 연신 디카만 눌러 본다.

무사히 로프 지대 통과하여 908봉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솟아 밝은 햇살을 부봉 동녘자락에 비추고 그 황홀한 모습에 잠시 쉬어 다시 추억 한장 만들곤 추위에 곧바로 하산길로 접어 든다. 

 

선두 리딩대장님으로 부터 심한 찬바람이 불어 하늘재까지 가서 아침먹기도 힘드로 그렇다고 그냥 이곳에 앉아 먹기에는 너무 추워 진행하면서 좋은 자리 만나면 식사를 하시잖다.

동의해 드리고 아름다운 단풍위에 살며시 내려 앉아 있는 상고대에 겨울 칼바람도 잊은 채 그렇게 산행은 진행되고 있다.

 

아직 종주대의 몸 컨디션은 좋은 상태로 유지하며 진행하기에 마음속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며 좀 더 진행하여 주흘산 갈림길에 도착하니 선두는 벌써 탄항산 정상에 올랐다는 소식이다.

벌써 근 한시간 이상 차이를 보이고 있다.

 

탄항산 오름길에 바라 본 주흘산 영봉과 우측으로 주흘산 갈림길 및 백두대간 마루금

 

주흘산

높이 1,106m.

조령산, 포암산, 월악산 등과 더불어 소백산맥의 중심을 이루며 산세가 아름답고 문경새재 등의 역사적 전설이 담겨 있다.

산의 북쪽과 동쪽은 깎아지른 듯한 암벽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또 동쪽과 서쪽에서 물줄기가 발원하여 신북천과 조령천으로 흘러드는데, 이 물줄기들은 곳곳에 폭포를 형성한다.

그중 유명한 것이 발원높이 10m의 여궁폭포와 파랑폭포이다.

산기슭에는 혜국사(惠國寺)가 있고, 주흘산과 조령산 가운데에 난 계곡을 따라서는 문경관문(聞慶關門)이 세워져 있다.

 

주흘산 갈림길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눈에 쌓여 있는 월악산 최정상 영봉을 간신히 디카에 담고 가파른 하산길 내려오는 순간 잘못하여 가장 소중한 소장품인 디카를 놓치고 말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간신히 한장 찍어 온 월악산 영봉과 암봉들, 첫눈에 하얀 포말을 뒤집어 쓴듯하다

 

월악산

주봉인 영봉(靈峰)의 높이는 1,097m이다. 달이 뜨면 영봉에 걸린다 하여 '월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삼국시대에는 월형산(月兄山)이라 일컬어졌고,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이 곳에 궁궐을 지으려다 무산되어 와락산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월악산국립공원의 가장 남쪽에 있는 포암산(布岩山:962m) 부근에서 북쪽으로 갈라져 나온 지맥의 끝부분에 솟아 있으며, 만수봉(萬壽峰:983m)을 비롯해 많은 고봉들이 있다. 정상의 영봉은 암벽 높이만도 150m나 되며, 이 영봉을 중심으로 깎아지른 듯한 산줄기가 길게 뻗어 있다. 청송(靑松)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바위능선을 타고 영봉에 오르면 충주호의 잔잔한 물결과 산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파른 언덕을 타고 잘도 굴러 어디에 멈췄는지도 모르게 보이지 않고 아쉬움에 마음만 급해 재빨리 능선까지 달려 내려가 비등로를 헤매이다 간신히 그 디카를 찾아내곤 얼마나 마음의 안도를 하였던지.

디카야 다시 사면 된다지만 지금까지 찍었던 사진이 아까워 그 험한 비 등로를 헤매고 찾았으리라.

 

바람이 얼마나 강하게 불던지 모든 띠지가 오른쪽으로 90도 각도로 날리고 있다. 평천재에서

 

이제 평천재로 향하니 선두는 아침식사를 위해 자리잡고 중간도 탄항산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너무나 강한 한겨울 칼바람이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띠지들을 옆으로 90도 각도로 일렬 세우고 윙윙 한겨울에나 들을 수 있는 험한 소리를 내며 눈마저 감기도록 만들고 있다.

 

힘들게 최선을 다해 조심하며 내려오시는 왕언니님의 투혼에 홀로 감탄사를 연발하며 평천재 지나 다시 탄항산을 위한 땀 흘림을 시작해 본다.

하지만 너무나 추운 날씨에 잠시 등줄기에 배어 있던 땀방울이 능선의 칼바람에 곧바로 식어 버리기를 반복하고 그 찜찜한 기분을 이기려 자꾸 앞으로 도망가니 이제 탄항산 정상이다.

아침 8시 30분.

 

노익장을 과시하고 계신 왕언니님의 예쁜 포즈, 탄항산(월항삼봉) 정상에서

 

탄항산(월항삼봉)

높이는 851m이다.

뾰족한 봉우리가 3개 나란히 서 있어 삼봉이라고도 하고, 산삼이 많이 나는 산이라 해서 삼봉(蔘峰)이라 부르기도 한다.

월악산국립공원 내에 속하며 가까이에 미륵사지와 수안보온천 등의 관광지가 있어 봄철 산행지로 각광받는 산이다.

산행은 보통 미륵대원사에서 시작한다.

칼바위능선과 782봉을 거쳐 정상에 오른 뒤 하늘재로 내려서는 데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예상 시간보다 약 30여분 늦은 시간이며 출발이 20여분 지체 되였기에 예상보다 근 한시간 정도 늦은 시간인 것이다.

사진 한장 찍고 내리막길 내려 가니 멋진 전망대가 나오고 여기에서 노송과 주흘산을 배경으로 다시 멋들어진 사진 한장 남기고 로프 건너 굴바위에 오르니 중간 후미 몇몇 산우님들이 바위 위에 산상 부�를 만들어 맛난 아침식사를 하고 계신다.

그 틈에 낑겨 허기 달래며 료가님이 준비한 복분자 원액 한잔으로 추위를 이겨본다.

 

이제부터 후미는 거울님과 올리브님, 료가님과 하이킹님이 더해져 총 6명으로 불어났고 다시 766봉 지나 안부를 넘고 모래산을 밟으며 빈 밤송이가 능선길을 가득 메운 대간길 따라 시원하게 흐르는 파이프 물을 건너 하늘재에 도착한다.

 

하늘재(계립령)에서 찍은 미니 단체 사진

 

하늘재(계립령)

하늘재(계립령)는 영남과 한양을 이어주는 최초의 길로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고대부터 있던 이 길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아달라이사금3년 여름4월(서기156년)에 이 길을 열었다“고 했고 죽령은 ”아달라이사금 5년(서기158년)에 열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문헌에 나타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로 보인다.

고대에 계립령.마골점. 마목현 등으로 불렸던 하늘재는 포암산(베바우산과 마골산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 것은 삼베를 짜는 삼나무(大麻)의 껍질을 베낀 겨릅(저릅)대를 세워놓은 형상과 흡사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함) 아래에 있는 고개라 하여 계립령(鷄立嶺, 하늘재)라 불린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래 깊은 이 길을 따라 불교문화가 신라로 전해졌고 망국의 한을 품은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미륵대원터와 덕주사(신라의 석굴사원 중 규모가 가장 큰 미륵대원터 석불입상은 덕주공주가 송계계곡 암벽에 새긴 마애불과 마주보고 있어 망국의 한을 달래야 했던 남매의 분노가 숨어있다)에 머물면서 나라 잃은 서러움을 달랬으며 민초들의 수 많은 애환이 스며있는 이 고개는 관음세계에서 미륵세계로 넘어 가는 고갯길로 상징하여 민초들의 발걸음이 이어진 곳이라 하늘재를 경계로 충청북도 충주시 상모면에는 미륵리 마을이 있고 경상도 문경시에는 관음리 마을이 있어 불교문화의 교류를 전달한 이동로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계립령(하늘재) 통하여 불교가 들어오기 전 까지 신라에는 토속신앙仰이 성행하였으나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정식으로 인정되면서 활화산처럼 번지기 시작한 불교신앙仰은 신라인들의 응집력으로 이어져 마침내 호국불교로 자리잡아 신라의 삼국통일 대업을 달성하는데 견인차역활을 하였다.(운해님의 글 중에서)

 

여기에서 사하라 선등대장님의 다리 근욱 이상으로 탈출하시고 도롱골님과 청목님도 마음이 약해 지셨는지 함께 동참하신단다.

그러자 옆에 있던 올리브님과 거울님도 탈출을 생각하고 있기에 몇마디 농담을 하여 다시 두분을 모시고 오르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것이 최상이였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전체 산행 일정은 생각하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 너무나 큰 고통을 느꼈기에 그곳에서 함께 중단했더라면 어땠을까 후회되는 부분이지만 지금 이 시간 몸의 컨디션이 정상이고 이상이 없다면 차라리 잘된 결정이란 생각도 든다.

항상 진행중에는 무엇이 최상이고 무엇이 최악인지 알 수가 없고 단지 완주 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기에 더욱 완주 후에 밀려드는 고독과 외로움이 큰지도 모르겠다.

 

힘겹게 올리브님, 거울님 그리고 왕언니님 모시고 성벽과 이정표 지나 돌탑을 우회하여 포암산 직벽을 오르는 시간은 참으로 길고도 먼 오르막이였다.

선두와 중간팀들은 벌써 오랜 시간 포암산 정상에서 후미 기다리며 단체 사진 한장 찍기 위해 추위와 싸우고 계시고 후미에서 최선을 다해 오르막 오르고 계신 산우님들도 그 마음 알기에 급하게 뒤쫒지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열심히 된비알 오른다.

 

포암산 정상에서 현우님과 하이킹님 

 

포암산

높이는 962m이다.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에 걸쳐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의 주능선상에 있으며 월악산국립공원의 가장 남쪽에 속한다.
옛날에는 이 산을 베바우산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반듯한 암벽이 키대로 늘어서 있어 거대한 베 조각을 이어 붙여놓은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희고 우뚝 솟은 바위가 삼대 즉, 지릅같이 보여서 마골산이라고 불렸다는 기록도 전해오고 있다.

만수계곡에서 들어가면 쌍봉의 육산처럼 보이지만 문경시 쪽에서 보면 암봉으로 보인다.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고 산세가 험하여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이 산 밑 고개인 하늘재는 신라시대부터 사용한 옛고개로 북방의 문화를 영남지방에 전해주던 관문이었고 지금도 성벽이 남아 있다.

하늘재 밑의 미륵사지는 고려 초기에 조성된 약 4천 평의 대사찰로 주흘산을 진산으로 하며 좌우로는 신선봉과 이 산을 끼고 멀리 월악산을 조산으로 하는 중심혈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보물 제95호인 5층석탑과 보물 제96호인 미륵석불이 있다.

미륵석불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북향석불'이다.

이 석불은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이곳에 머물렀다는 전설을 담고 있어 마의태자 자화상으로도 불린다.

 

약간의 불평 불만도 있겠지만 함께하는 산행의 중요성과 의미가 그런곳에 있기에 단체 사진 한장 찍어 드리고 선두와 중간은 곧바로 보내 드린다.

이곳에서 거울님의 몸에 이상이 생겨 선두이셨던 다향님께 부탁 드리고 선두를 잡기 위한 개인 산행이 시작된다.

이 시간 11시 20여분.

 

만수봉 갈림길에 어느 종주대가 붙여 놓은 대간마루금 띠지가 있어 반가움에 찰칵

 

만수봉

높이는 983m로, 월악산의 주능선과 포암산의 연능 사이에서 솟은 암봉이다.

소백산맥과 함께 이어진 명산들을 바라볼 수 있는 관망대와 같은 산이다.

지도상에는 무명봉으로 남아 있으나, 만수교와 만수골 이름을 빌려 만수봉으로 통하고 있다.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능선길이 여러 군데로 갈려 있다.

산세가 포암산과 많이 흡사하며 산 중턱에 참나무 숲과 정상 부근의 고사목 아래 암벽지대가 아름답다.

 

잠시 내려 갔다 963봉 찍고 산죽밭을 지나 842봉과 만수봉 갈림길인 안부를 통과하여 빠르게 전진하니 언제 관음재를 지났는지 모르게 지나치고 드디어 만수봉 갈림길에 도착한다.

보통 1시간 20분 거리를 50여분에 도착하니 고산자님이 홀로 기다리다 이슬이 한잔과 멸치 두마리를 건네 주신다.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단숨에 들이키고 다시 880봉 지나니 중간들이 보이고 잠시 인사 나눈 후 다시 앞으로 전진하니 마골치 지나 평편한 능선길에서 휴식 취하고 있는 선두와 조우한다.

 

잠시 이곳에서 달콤한 포도 몇알과 시원한 식수 받아 들이키고 다시 빠르게 진행하니 전망대가 나오고 오늘의 최선두인 피그대장님, 석불산대장님 그리고 이철주님과 마지막으로 합산해 본다.

처음으로 등줄기에 땀이 흥건히 배어 있고 얼굴에도 몇방울의 땀방울이 흘러 내린다.

 

선두 만난 전망대에서 바라본 주흘산 주봉과 영봉, 만수봉 그리고 지나온 대간 마루금

 

이제 바람은 새벽보다 많이 머졌지만 아직도 찬바람이 얼굴을 때릴때면 따끔한 느낌이 남아 있고 햇살이 비추는 능선에선 다시 계절이 바뀐 듯 더위가 느껴진다.

이곳에서 다급한 다향 후미대장님으로 부터의 인원 파악 요청이 들어 오고 확인하니 정상적인 숫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우롬님이 혼자 떨어져 알바하다 후미와 극적으로 만났다는 사실에 가슴 철렁한 시간이기도 했다.

 

다시 오늘 처음 백두대간 산행 팀에 합류하신 봉서산님과 조광수님 그리고 인연님, 시대야님과 함께 지루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무명봉과 능선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돌탑 지나 트래버스 로프길이 다시 나타나고 그곳 지나자 이제 돌소리님과 운산님도 함께 거대 그룹이 된다.

이제보니 선두와 후미만 갈리고 다시 이곳에서 부터 선두도 소 그룹으로 다시 재편된다.

 

이런 트래버스 암릉길도 건너고, 오늘 처음 합류하신 봉서산님과 조광수님.

 

꼭두바위봉 지나 잡목지대와 징그러운 너덜구간을 넘으니 이제 마지막 봉우리 1062봉에 도착하고 여기에서 남아 있는 마지막 간식 털어 먹고 다시 완만한 능선길로 접어 들자 언제 따라 오셨는지 솜이 총무님이 반갑게 말을 건네신다.

 

잠시 안부에서 우측으로 많이 붙어 있는 띠지로 고민하다 지도로 확인한 후 앞에 서 있는 암봉을 넘으니 그렇게도 기다리던 부리기재 이정표가 반갑게 서 있다.

이 시간 오후 3시 50여분.

 

백두대간 산행 종료 지점인 부리기재 이정표 이곳에서 박마을로 하산

 

부리기재

왜 부리기재인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버리미기재가 "벌어먹이다"의 경북 내륙지방의 사투리에서 왔듯이 이곳도 그런 뜻이거나 숯이나 도자기를 만드는 가마를  뜻 하는 버리(부리)에서 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늘재 오는 길에 현대식 도요지가 많은 것으로 보아 부리기재를 넘나들 던 상인들이 부르던 명칭이 현재의 부리기재로 보는 것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운해님의 글 중에서)

 

마지막 추억 남기고 우측 박마을로 하산하여 나오는 시멘트 갈림길에서 잠시 주춤거리며 간신히 제길 찾아 내려오니 빨간 능금이 허기진 뱃속을 유혹하고 서쪽으로 지는 햇살에 반짝이는 갈대가 가을 바람에 흔들리며 고즈넉한 전형적인 가을의 오후를 보여주고 있다.

 

박마을로 내려 와 석양에 비춘 멋진 갈대도 찍어 보고

 

오후 4시 40분 드디어 버스에 도착하여 후미에게 길 주의 무전이며 전화 통화하고 탈출하셨던 산우님들이 힘들게 찾아 준 비닐 하우스에서 지금까지 먹었던 식사중 최고의 식사 시간을 가져 본다.

얼굴에 주름이 늘어가는 시골 아저씨의 고운 마음씨와 넉넉한 더덕 인심을 덤으로 얻으며 마지막으로 오후 6시 30여분 하산한 다향님 모시고 반주 한잔으로 상추쌈 싸서 먹은 복분자 한잔이 오늘의 어려운 산행을 모두 잊게 만들고 있다.

 

참으로 힘들고 어려웠던 제16차 백두대간 산행, 모두 겨울 산행 준비에는 만전을 기했지만 갑자기 찾아온 급강하된 온도와 예기치 못했던 첫눈으로 인해 예상보다 많이 늦게 내려 왔지만 그래도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안전한 완주를 할 수 있음에 모든 백두대간 종주자들에게 축하의 큰 박수를 보내 드린다.

 

선두에서 리딩하시면서 멋진 산행 보여 주셨던 사하라 선등대장님, 몸 조리 잘하시고 다음 구간에서도 변함없이 종주대 이끌어 주실 것을 부탁 드려봅니다.

 

도롱골님과 청목님, 어려운 여건에서도 늘 대간 산행에 보내주시는 선배님들의 사랑이 있기에 또 어려운 길이지만 쉽게 다녀온다 생각합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다음 구간엔 함께 손붙잡고 하산할 수 있기를 바래 봅니다.

 

후미에서 아픈 산우님들 치료도 도맡아 해주시며 살신성인의 정신을 보여주신 다향님, 진심으로 고마움 전해 드림니다.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긴 산행이 되셨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다향 후미대장님이 계시기에 함께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는 것이겠지요.

아무조록 함께하며 늘 수고 하심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 전해 드림니다.

 

사강님, 미끄러운 산행길에 어려움이 계셨다고 들었는데 몸 조리 잘하시고 짧은 17차 구간에서도 뵐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봅니다.

 

익어가는 빨간 능금도 바라보고, 침 한번 꿀떡. 주인이 있었으면 맛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처음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해 주신 봉서산님과 조광수님, 힘든 부분도 있고 맘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정은 느낄 수 있었던 산행이라 자부 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백두대간 산행에서 뵐 수 있기를 바래 봅니다.

 

거울님과 올리브님,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자꾸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농무가 눈을 가림니다. 앞에 가신 산우님들 기다리는 생각에 따라주지 않는 몸둥아리 이끌고 죽을 힘 다해 사투를 벌이는 모습에서 진정한 산꾼의 모습을 보았지요.

제가 너무 일방적으로 하늘재에서 모시고 올랐다는 후회도 한 적이 있지만 무사히 완주한 모습을 보곤 역시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후회되지 않을 멋진 산행이였길 바라며 건강 잘 돌보시고 많이 짧아진 17차 구간에서도 변함없이 뵐 수 있기를 바람니다.

 

함께한 28인의 종주대 여러분, 말이 필요없겠지요 우리들의 대간 사랑은 말입니다. 늘 변함없이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대간마루금 화이팅, 백두대간 종주대 화이팅

 

감사합니다.

 

백두대간 산행대장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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