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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제1차(산행완료)/백두대간 산행 후기

백두대간 사다리재에서 조령3관문까지 산행 후기(칠갑산과 10월 5일과 6일)

by 칠갑산 사랑 2007.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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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마루금 제1기 백두대간 제15차 사다리재에서 이화령, 조령산, 조령3관문까지 산행 일지

 

 

산행날짜 : 2007년 10월 05일부터 10월 06일까지 (무박 2일)

산행날씨 : 구름 약간 있었으나 대체로 맑은 날씨

산행온도 : 새벽 영상 11도에서 낮 최고 영상 21도

참가인원 : 총 29명(존칭생략) 칠갑산, 솜이, 베짱이, 볼켄, 현우, 무시로, 하이킹, 왕언니, 피그, 다향, 료가, 청목, 석불산, 설총, 자우롬, 이철주, 고산자, 사강, 도롱골, 산바람, 시대야, 사하라, 나마스테, 산사람, 돌소리, 운산, 올리브, 거울, 인연 

산행코스 : 분지리 마을-사다리재-뇌정산 갈림길-평천치-백화산(1063.5봉)-황학산(915.1봉)-억새밭-조봉-이화령-조령제1관문 갈림길-조령샘-조령산(1026봉)-신선암봉(937봉)-제2관문 갈림길-깃대봉 갈림길-조령제3관문-주차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19:49 Km, 접속구간 2.50 km

산행시간 : 선두 13시간 00분, 후미 15 시간 00분

준비물 : 물 3.5 리터, 이온음료 0.5 리터, 양주 1.0 리터, 아침 밥, 김치, 부침개 2접시, 방풍의, 모자, 땀수건, 목수건 2개, 헤드렌턴 2개 및 예비 건전지, 가위, 칼, 압박붕대, 테이핑, 에어파스, 구급약, 프랭카드, 깔판, 의자, 코펠, 버너, 가스 1통, 라면 3봉지, 디카 및 예비 건전지, 모발폰 및 예비 건전지, 무전기 3대, 휴지 2봉, 키친 타올 1롤, 쓰레기 봉투, 지도, 상세 산행 안내표, 산행기 1부

버스에 두고 간 준비물 : 갈아 입을 옷 한 벌, 슬리퍼, 우의, 스패츠, 방풍의

교통수단 : 45인승 버스 1대

               신평고속관광 양기중 기사님 

상세일정 :

10월 05일

23:00 사당 출발

23:15 서울 TG 도착 (양형렬님 탑승)

23:20 영동고속도로 

11:35 중부내륙고속도로 

10월 06일

00:40 괴산 휴게소

02:00 분지리 마을 (산행 시작 점, 접속 구간)

02:40 취침 및 자유시간

03:00 분지리 마을에서 산행 시작

03:57 사다리재 (백두대간 산행 시작, 길주의, 우측 곰틀봉길 버리고 좌측이 대간 길)

04:31 886봉

04:39 뇌정산 갈림길(우측 뇌정산 길 버리고 좌측이 대간 길)

04:59 평전치(길주의, 좌측 안말로 내려가는 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 길)

05:00 이정 표(분지 안말 60분, 백화산 50분)

05:12 바위지대 및 1001봉(산행주의)

05:17 암봉지대(산행주의, 암봉 좌측으로 우회)

05:48 백화산(1063.5봉)

05:53 이정표(희양산 6 Km, 한실 8 Km)

06:00 옥녀봉 갈림길(길주의, 우측 옥녀봉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 길)

06:09 암릉지대 및 로프지대 2곳(산행주의)

06:22 헬기장

06:28 마원리 갈림길(길주의, 우측 마원리 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 길)

06:32 914봉

06:45 억새밭 및 사거리 안부(길주의, 직진이 대간 길. 산행 팁, 우측 1 Km 지점에 식수 구할 수 있는 샘)

06:52 황학산(915.1봉)

07:00 흰두뫼 갈림길, 산신제, 이정표 및 사거리 안부(분지 안말 50분, 길주의, 직진이 대간 길)

08:43 862봉

08:58 전망대(산행 팁, 우측으로 주흘산 주봉 및 영봉 조망 가능)

09:04 이깔 나무 및 상수리 나무 군락지(산행 팁, 좌측 이깔나무지대, 우측 상수리나무 지대)

09:07 인공 연못?(연못 가운데 나무 존재)

09:10 참호 및 헬기장(산행 팁, 억새 밭 지대)

09:16 참호통로 및 폐타이어 헬기장

09:19 함몰지역

09:23 조봉(정상석 없음)

09:25 밤나무 밭, 밤 줍기

10:05 헬기장 2개 연이어 나타남

10:15 이화령 초소 갈림길

10:16 681봉 및 하산 계단

10:17 이화령 휴게소

10:21 감시 초소 및 헬기장 2곳

10:28 758봉 및 헬기장

10:51 안부

10:59 헬기장 2곳 연이어 나타남

11:19 조령샘 (산행 팁, 우측 제1관문쪽으로 약 1 Km지점에 식수 구할 수 있는 조령 샘)

11:36 헬기장

11:22 다시 대간길 만나고 이정 표(길주의, 좌측 촛대바위 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11:43 잣나무 군락지

11:57 조령산(1026봉)

12:03 전망대

12:30 암봉 및 이정표(산행주의)

12:44 다시 암릉 내리막 길(산행주의)

12:52 이정표(길주의, 좌측 절골 하산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길. 제3관문 4.0 Km, 새재주막 2.0 Km, 신흥리 2.9 Km)

12:56 887봉(길주의, 좌측 절골 하산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 길)

13:07 안부 및 암반과 로프지대 2곳(산행주의)

13:27 암릉 로프지대

13:30 암릉 정상

13:34 암릉 로프 구간

13:39 신선암봉(937봉)

14:09 이정표(조령3관문 120분, 조령산 80분, 신풍리 절골 70분)

14:12 산객 1명 추락 사고 지점, 암릉길 로프지대(산행주의)

14:18 안부(길주의, 좌측 한섬지기골 버리고 직진이 대간길)

14:23 로프 암반지대(산행주의)

14:27 928봉 및 현위치판 제12지점14:52 암릉 로프지대(산행주의)

15:24 이정표 및 긴 로프 암릉지대(산행주의)

15:39 암릉 끝나는 지점

15:48 삼거리 및 현위치 판 제10지점(길주의, 좌측 말용초 폭포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길)

16:07 757봉16:21 마대바위 및 전망대

16:27 깃대봉 갈림길(길주의, 좌측 깃대봉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16:31 암릉길(산행주의)

16:36 사거리 안부

16:50 조령제3관문(백두대간 산행 종료)

18:20 주차장(산행 종료)

18:30 성시 호텔 식당에서 저녁

19:00 성시호텔에서 온천욕

20:00 식당에서 출발

21:30 사당역 도착 후 해산  

 

 

 

속리산에서 월악산으로 이어지는 최고의 숨겨진 비경을 가슴으로 느끼고 몸으로 체험하며 

 

 

 

말라있는 분지리 계곡을 건너 가파른 된비알 올라 사다리재에서 다시 시작하는 이번 구간은 평천치를 지나 백화산으로 향하는 길은 암릉과 흙산이 산행의 재미를 더해주고 지천에 피어 있는 야생화와 곱게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 단풍이 우리들 산객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  봉황이 날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는 백화산 정상에서 바라 본 밝아오는 여명의 시작과 시루봉과 조봉을 양날개로 하여 옥녀봉을 향해 날아가는 봉황의 산세 및 하늘에 맞닿아 있는 마루금의 실루엣은 이미 모든 산객에게 시인이 되게 하기에 충분한 아름다움이였다.

 

백화산 정상석

 

백화산 지나 황학산 가는 길에 보았던 희미한 기억속의 희양산과 대야산이 지난 회차에 남았던 산행의 아쉬움을 달래주고 앞으로 올라야 할 조령산의 마루금이 일출의 장엄함 속에 그 모습을 분명히 하고 있다. 흰두뫼에서 올린 산신제에게 앞으로의 무사 안전한 산행을 산신령님께 빌며 이곳에서부터 시작되는 분지천을 따라 그윽한 고향의 향수를 느끼며 조용한 아침을 맞이해 본다.

 

억새밭에서 어린시절 꿈 많던 시절로 뒤돌아 가고

 

가을이 익어가는 억새밭에서 어린 소년 소녀가 되어 새로운 꿈 찾기에 여념이 없었고 조봉 가는 길에 펼쳐진 푸른초원과 낙엽송 그리고 갈참나무의 자연림이 우리들 산객의 건강을 일깨워 주었고 그 사이에 떨어져 있던 수많은 지밤들이 다시 우리들 발길 붙잡고 아득한 과거로의 여행을 시켜주는 멋진 선물이였다. 푸른 초원에 조성된 인공 호수가 우리나라 3대 산림 조림지의 아름다움에 더욱 운치를 더해 주고 있었다.

 

이화령에 세워져 있던 문경8경 안내도

 

원 이름이 이우릿재이였으나 일제 시대때 신작로가 뚫리면서 이화령으로 이름이 바뀐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지나 이제 날아가는 새도 쉬어 간다는 조령산과 조령(새재, 문경새재)과의 만남이다.나는 새도 쉬어 간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조령은 주흘산과 마주보며 남으로 신선암봉과 조령산, 북으로 마패봉과 신선봉을 거느리고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고개이다.

 

조령산 지난 전망대에서 바라본 신선암봉, 부봉 그리고 작은 공룡능선과 그 너머 월악산까지

 

조령산에서 조령까지 이어지는 마루금은 수없이 많은 기암괴석으로 인해 산행을 더디게 만들지만 백두대간 산행 중 최고의 경관과 경치를 감상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그 중에서도 신선암봉에서 바라보는 대 자연은 중국 황산에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 될 비경 중 최고의 비경이였다.  신선암봉에서 시원스럽게 조망되는 마루금은 이곳에 올라오는 산객들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사를 연발시키고 발길 붙잡아 잠시 자연의 숨결을 느끼도록 하는 곳이다.앞으로 바라보이는 월악산의 능선은 마치 남성미가 철철 넘치는 설악의 공룡능선을 바라보는 착각을 일으키고 부봉을 지나 탄항산과 주흘산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마루금은 또 다른 여성미를 자랑하듯 산객을 부르고 있다.

 

신선암봉 바로 직전 전망대에서 바라본 부봉과 주흘산 영봉 능선

 

능선의 고도차는 심하지 않으나 암릉과 암봉 구간이 많고 많은 로프지대를 지나야 하기 때문에 충분한 산행 지식과 안전한 등산 용품을 준비하지 않으면 대형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구간으로 남는다. 조령산과 주흘산을 사이에 두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조령은 한양으로 들어가는 관문으로서 영남대로라 하고 새로 난 길이라 하여 새재라고도 한다.  조령은 앞으로 지나야 할 소백산 구간의 죽령, 이미 통과한 추풍령과 함께 경상도 지방에서 한양으로 올라갈 수 있는 3개 대로중 하나로서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점하고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 조령은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던 선비들의 희비가 엇갈린 애환이 서려있는 곳으로 삼국시대에는 국가의 경계선으로서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에는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끊임없이 진행되였던 곳으로 아직도 조령성터가 그 흔적을 말해주는 듯 하다. 

 

 

조령제3관문 전경, 문경쪽에서

 

이틀 전까지만 해도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잔뜩 긴장하고 기다렸지만 산행 중 비는 내리지 않겠다는 금요일 기상 예보에 기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또 한구간의 백두대간 산행 길을 기다려 본다.오랫만에 다시 백두대간 산행에 동참하는 산사람님과 돌소리님 그리고 운산님과의 재만남도 반갑고 지난 회차에 참가하셨다가 응봉산으로 방향을 트는 바람에 대간 산행은 처음이신 나마스테님과 개인적으로 다른 산악회에서 계속 진행하던 대간 산행을 이번부터 우리와 합류하여 함께 가게될 인연님과의 만남도 소중하다.

 

분지리 안말에 있던 백화산 이만봉 등산 안내도

 

들머리까지의 거리가 짧기 때문에 괴산 휴게소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충북 괴산의 연풍 IC를 지나 분지리 마을에 도착하니 이제 새벽 2시, 제일 먼저 계곡물을 확인해 보니 이미 말라붙어 있는 계곡엔 물소리 하나 없는 고요한 정적만이 흐르고 다시 되돌아 와 지난번 남기지 못한 백화산, 이만봉 등산 안내도를 카메라에 담아 둔다.

 

위를 올려다 보니 구름으로 덮혀 있는 하늘에선 하나 둘 별들의 세상 밝히기 잔치가 벌어져 있다. 윤동주 시인의 별헤이는 밤이란 시를 중얼거리지 않아도 그저 머리위로 마구 흩어지는 별빛만으로도 이밤 이곳에 서 있는 우리들 산객은 충분히 행복하다. 서서히 구름이 걷히면서 더욱 밝고 맑게 빛나는 별들이 손짓하고 어렸을 때 배웠던 오리온 자리를 비롯하여 몇몇 별자리를 찾아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40여분 버스에서 더 쉬였다가 2시 40여분에 잠시 개인적으로 준비운동하고 들머리로 들어서니 정확히 새벽 3시.

 

지난번 내려올 때 무척 걱정했던 그 된비알과 너덜 구간을 어떻에 올랐는지도 모르게 모두 빠른 걸음걸이로 잘도 치고 오르고 계신다. 30여분 올라 묘1기에서 잠시 목축이고 흐르는 땀방울 훔치며 다시 힘내 오르니 정확히 1시간만에 사다리재에 도착한다.

 

흠뻑 땀으로 젖어 있는 모습으로 도착한 사다리재에서 처음 백두대간 함께한 인연님

 

평지에서 느꼈던 가을 바람의 서늘함은 사라지고 산 능선을 타고 넘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상쾌함을 더해 주고 여기에서 잠시 후미 기다리며 정겨운 추억 만들기를 시작해 본다. 배낭에 짐 정리하고 다시 말라오는 목 축이며 능선길 따라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동무 삼아 유유자적 걸어본다.

 

사다리재

이곳 사다리재는 원래 미전치로 부르던 고개인데 사다리재는 그 출처나 연원이 불분명한 이름이다. 본래는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한밤미 마을과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 마을을 오가던 고사리밭등이 이 고개의 옳은 이름이다. 고사리밭등은 분적골 사람들이 고사리가 많은 곳이라 하여 부르던 이름으로 고비미자를 써서 미전치로 하였다.

 

이 고개는 이만봉 등산로로 반쪽만 쓰이고 있으며 가은쪽의 옛길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자연림으로 복원되였다.  고사리밭등에서 동쪽 백화산으로 가는 도중에 평천치라는 곳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은 평밭등이다. 이곳 역시 분적골에서 마성면 상내리 쪽으로 넘어가던 옛고개였으나 지금은 폐로가 되였고 분적골에서 평밭등까지는 산판 임도가 개척되였다가 그 역시 거의 쓰임새를 잃고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에 호프 하이킹님도 평전치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가던길 재촉하여 어둠속에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981봉 올랐다 내려가니 뇌정산 갈림길 이정표가 반기고 길 조심하며 좀 더 전진하여 암릉구간 내려가니 평전치이다. 백화산까지는 아직도 50여분 더 올라야 한다는 이정표가 보이지만 몸이 풀린 현재의 상태로는 아무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않는 눈치이다.

 

평전치백두대간상에 위치한 이곳 평전치는 남으로는 경북 문경시 마성면 상내리가 접해있고 북으로는 충북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분적골) 안말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인근 마을에서는 이곳 평전치를 덩밭등이라 부르고 있으며 옛날에는 분적골에서 마성면 상내리로 넘어가던 고개였으나 지금은 대로가 되였고 평밭등에서 분적골까지 신판 임도가 가설되였으니 그 역시 거의 쓰임새를 잃고 등산로로만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평전치에서 서쪽으로는 지나온 백두대간 마루금 사다리재, 곰틀봉과 이만봉을 거쳐 희양산으로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지나야 할 백화산, 황학산과 조봉을 거쳐 이화령으로 연결된다. 평전치 남쪽의 상내리 한실마을은 마원리, 중평리 여우목 마을, 연풍지역과 더불어 천주교 성지로서 백화산 일대 대간 능선을 넘나들며 선교활동을 펼쳤던 곳으로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대원군의 박해를 피해 허기진 몸을 숨겼던 첩첩산중 천혜의 은신처 이기도 했다.

 

평전치를 지나자 평탄한 능선길에 상쾌하지만 서늘한 기운의 가을 바람이 온몸을 휘감고 흘렸던 땀 식혀 주니 발걸음 재촉하여 본다. 가끔씩 나타나는 암릉군은 지루하지 않는 대간 산행을 만들어 주고 벌써 고운 빛으로 갈아 입은 단풍잎이 어둠속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다. 다시 가파른 1001봉의 암릉구간을 지나자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새벽 5시 49분, 백화산 정상에 발 도장을 찍어 본다.

 

실로 오랫만에 보는 아름다운 일출 모습

 

백화산

산의 높이는 1,063m이며, 충청북도 괴산군과 경상북도 문경시의 경계를 이룬다. 괴산군 안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산에는 잡목이 많고, 골짜기가 깊어 물이 맑다. 백화산이라는 이름은 겨울철에 눈 덮인 산봉우리의 모습이 하얀 천을 씌운 듯이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부근에는 황학산, 이화령, 이만봉(989m), 희양산 등의 높은 봉우리가 많다.

산행은 북쪽의 이화령, 서쪽 연풍면 분지리, 문경읍 오서골에서 각각 오르는 코스가 있다. 이 중에서 가장 평탄하고 편리한 코스는 이화령에서 시작하는 코스이다. 이화령은 수안보 온천에서 가깝다. 이화령에서 2시간 정도 오르면 황학산에 이른다.

 

황학산에서는 남쪽으로 백화산이 바로 보이고, 문경시 하리가 내려다보인다. 이곳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 오르면 바위지대가 나오고, 이어 20분 정도 오르면 백화산의 정상이다. 정상에서는 서쪽으로 이만봉.시루봉·희양산 등이 시야에 시원하게 펼쳐진다.

 

하산 코스로는 올라온 길로 내려가는 코스, 이만봉으로 가는 코스, 분지리 안말마을로 내려가는 코스가 있다. 평전치를 지나서 서쪽 능선을 따라가면 분지리 안말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973봉을 거쳐 사다리재를 지나 안말마을로 내려간다. 이 코스는 약 22.5㎞ 거리로, 6시간 정도 소요된다.

연풍면 분지리에서 시작하는 코스는 남쪽이나 동쪽 능선을 따라 오를 수 있다. 동쪽 능선으로 40여 분을 오르면 흰두뫼에 이른다. 이곳에서 다시 동쪽 능선을 따라 오르면 주능선 안부가 나온다. 여기서 남쪽 능선을 따라 가면 바로 헬기장에 이르고, 헬기장에서 1시간 정도 가면 정상에 다다른다. 하산할 때는 서쪽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곰봉을 거쳐 이만봉에 닿는다.

 

곰봉은 옛날에 이 산에 반달곰이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만봉에서 분지리 안말마을로 내려가면 산행이 끝나는데, 이 코스는 약 16.5㎞로,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이곳 백화산에서 잠시 머물며 하늘에서 벌어지는 여명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며 시시각각 변해가는 하늘빛에 넋을 잃고 바라본다. 아직 일출하기엔 이른 시간이기에 재빨리 내려와 옥녀봉 갈림길에서 길주의하며 조심스럽게 로프가 매달려 있는 암릉을 통과하니 헬기장이 나오고 여기에서 잠시 배낭 내려 놓고 붉은 빛으로 갈아 입는 동녘하늘에 렌즈를 맞추고 기다려 본다. 

 

이제 헤드렌턴도 필요없을 정도로 눈에 들어오는 대간 마루금에 눈길을 주면서 다시 가던 길 재촉하니 새벽 6시 33분에 정확히 잡목 사이로 일출의 진통을 알리는 화사한 빛이 들어온다. 재빨리 그 잡목 헤치고 잠시 능선에 서서 그 장엄한 일출을 감상한 후 평탄한 흙길을 부담없이 걸어 본다. 푹신한 양탄자를 깔아 놓은듯 푸근하고 편안한 낙엽길이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다시 거대한 암봉들과 암릉길이 앞을 가로막겠지...

 

지나온 백화산이 밝아오는 햇살에 다양한 가을빛을 풀어 놓은듯 고산지대 특유의 향수에 젖은 빛을 발하고 올라야 할 황학산 가는 길엔 조그마한 억새와 잡풀들이 산객의 벗이되어 고단한 그 길을 함께 하고 있다. 가끔 잡목 사이 오른쪽으로 보이는 마원리 한실 마을이 너무나 평온하고 고요하게 누워있고 그 위로 한줄기 아침 운해가 또 다른 백두대간 산행의 묘미를 더해 주고 있다.

 

황학산에서 바라 본 지나온 대간길과 벌써 운무에 휩쌓인 백화산 정상부

 

황학산 오름길에 리딩대장이신 사하라님께서 선두는 이미 황학산 지나 바람이 잔잔해진 흰듸뫼 갈림길에 도착하여 산신제 지낼 준비를 하고 있다 전해 주시고 후미에서는 힘들지만 열심히 뒤따라 올라 오고 있다는 피그 후미대장님의 낭랑한 목소리를 전해 주고 계시다. 조금 더 힘내 오르막 오르니 잡목들로 시야를 막고 있는 황학산 정상이다.

 

황학산

높이는 915m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3번 국도인 이화령 남쪽 6㎞ 거리에 솟아 있고 바로 옆에 있는 규모가 큰 백화산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호젓한 산길과 억새밭, 참나무 숲길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답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여 길이 뚜렷하지 않아 정확한 독도법이 필요하다. 산에 있는 억새밭은 1960~1970년대 사람들이 살면서 목장을 하던 곳으로, 갈수록 잡목이 늘어나고 있어 억새밭이 줄어들고 있다. 억새밭 계곡에 식수가 있지만 찾기 어려우므로 식수를 준비해야 한다.

 

아래에서 보면 밋밋한 산세 때문에 산행이 무척 쉬워 보이지만 경사가 의외로 급하고 정상에서 백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수많은 암봉과 빽빽한 수림으로 덮여 있어 고산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잠시 바라본 백화산은 이미 그 봉우리에 운해를 뒤집어 써서 부끄러운 듯 모습을 감추고 있고  잠시 마원리 방향으로 조금 더 진행해 보자 많은 억새가 아침 바람에 흔들거리며 춤사위를 보여 주고 있다.

 

너무나 멋지게 벋어 있는 쭉쭉 빵빵 납엽송을 오른쪽에 둔 후 아쉬움 뒤로 하고 대간 하산길 따라 내려오니 저 멀리 선두팀이 모두 모여 추위에 떨고 계신다. 이름하여 흰듸뫼를 거쳐 분지리 안말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길. 지금까지 4시간 이상 산행을 하였건만 이곳 지형 특성상 다시 그 분지리를 왼쪽 가운데에 두고 한바퀴 삥 돌아 온 형국이 되였다.

 

산신제를 지낸 흰듸뫼 지나 분지리로 하산하는 갈림길

 

후미가 도착하길 기다려 그동안 무사 안전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의 무탈한 산행과 완주를 비는 조촐하지만 정성을 다한 산신제를 지내고 모두 모여 아침밥을 먹어 본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렇게 함께 모여 먹는 아침밥은 왜 그리 꿀맛이던지.

 

이제부터 자유 산행으로 진행하니 선두도 보기 힘들겠구나 생각하면서 단체 사진 한번 찍는다는 것이 그냥 지나쳐 단체 사진 없는 두번째 산행이 되였다. 피그 후미대장님을 앞으로 보내고 제일 후미에서 마음껏 즐기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진 담아 보자 마음먹어 본다.

 

우측으로 주흘산이 조망되는 전망대에 올라 사진 한장 남기고 갈대가 흔들리는 헬리포터도 지나며 마지막 가는 가을볕에 곱게 피어있는 야생화의 아름다움도 감상하다 보니 벌써 인공 호수 지나 우측에 장관을 이룬 억새밭이다.

 

민둥산과 가덕산에서 보았던 억새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묻어나고 다른 산보다 더 곱고 예쁘게 피어난 억새밭에서 장난기어린 사진으로 이 시간의 추억을 간직해 본다. 옛날 목장지대로서 가꾸지 않아 점점 줄어든다는 억새밭에 서서 지키지 못하는 아쉬움을 느껴본다.

 

지천에 널려 있던 밤을 주워 다시 무거워진 배낭을 이끌고 도착한 조봉, 시야는 잡목들로 제로

 

폐타이어로 쌓은 헬리포터를 지나 조봉으로 가는 길엔 지천에 널려 있는 밤송이의 유혹에 이끌려 잠시 비닐 봉지 하나씩 꺼내들고 한되 이상의 지밤을 주워본다. 밤을 줍는 재미 또한 쏠쏠하며 생밤으로 까먹는 맛 또한 달콤하다. 이곳에서 갑작스런 사하라 리딩대장님의 컨디션 난조로 이화령에서 부터는 볼켄 운영총무님이 리딩대장을 겸하고 계신다.

 

힘겹게 자라나는 소나무의 모습에서 초라함이나 어려움 보다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동안 다시 여러 헬리포터를 지나고 이화령 초소 밑 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오자 경북과 충북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이화령에 도착한다.

 

단체 사진 한장 못찍은 것이 마냥 후회되고, 이화령에서

 

이화령

높이 548m이다. 소백산맥의 조령산(鳥嶺山:1,017m)과 갈미봉(葛味峰:783m) 사이에 있다. 예로부터 조령(鳥嶺:642m)이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을 잇는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었지만 고개가 높고 험하여 불편하였다.일제강점기 때 이러한 불편한 점과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을 말살하기 위하여 조령 바로 밑에 고개를 만들었다.

 

현재는경상북도 문경시 점촌읍과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을 연결하는 3번 국도가 지난다.
주변지역에서 많이 나는 담배·양잠 등 밭작물의 수송로는 물론 가까이 있는문경새재 도립공원과 수안보 온천을 즐기려는 관광객이 많이 이용한다

 

이화령 휴게소에서 미니 단체 사진 한장 남긴 후 다시 사하라님께 감사 인사 건네고 오르막 오르니 너덜지대가 간간히 보이고 많은 헬리포터가 다시 나타난다. 중간에 피어 있는 야생화와 억새에 마음 빼앗기며 즐기며 오르자 벌써 조령샘이 반겨 주고 여기에서 약수로 물 보충 후 마지막 깔딱 넘어 조령산 정상 밑 헬기장에 도착한다.

 

조령산 정상석을 끼고 힘겹게 오른 후의 기쁨을 자축하는 후미조 ㅎㅎㅎ

 

이곳에서 바라보는 시야는 사통팔달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지나 온 대간길이며 옆으로 빗겨 서 있는 주흘산까지, 너무나 선명하고 아름다운 마루금에 잠시 멍하니 서서 그 모습에 빠져 본다.

 

조령산

높이는 1,017m이다. 전체적으로는 산림이 울창하며 대암벽지대가 많고 기암·괴봉이 노송과 어울려 마치 그림 같다. 능선 남쪽 백화산과의 경계에는 이화령이 있고 능선 북쪽 마역봉과의 경계가 되는 구새재에는 조령 제3관문(조령관)이 있으며, 관문 서편에는 조령산 자연 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제3관문이 위치한 곳은 해발 642m로서 예로부터 문경새재라 일컬어지고 있다. 이를 통해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이 연결되어 교통의 요지였을 뿐 아니라, 험난한 지세를 이용할 수 있어 군사상의 요충지이기도 하였다.

 

주능선 상에는 정상 북쪽으로 신선봉과 치마바위봉을 비롯하여 대소 암봉과 암벽지대가 많다. 능선 서편으로는 수옥폭포와 용송골, 절골, 심기골 등 아름다운 계곡이 발달되어 있다. 능선 동쪽을 흐르는 조령천 곁을 따라 만들어진 길은 조선조 제3대 태종이 국도로 지정한 간선도로였으며, 주흘관(제1관문)·조곡관(제2관문)·윈터·교구정터 등의 사적지가 있고 완만하게 흐르는 계곡에는 와폭과 담이 산재하여 있다. 현재 이 일대는 문경새재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안보 온천, 월악산 국립공원과 가깝다.

 

잣나무 숲을 지나 드디어 조령산 정상, 오른쪽 한곳에 안나푸르나에서 사망한 지현옥 산악인을 추모하는 추모석이 서 있고 그곳에 잠시 묵념을 오린 다음 마음껏 대자연의 숨결을 받아 들여본다. 이곳 정상석에서 다시 미니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 한 5분여 내려와 조망되는 전망대에서 남아 있는 간식 꺼내 입에 물고 드넓게 펼처진 환상의 마루금 �아 이 세상 최고의 전망으로 그동안 비와 운무로 바라보지 못했던 아쉬움을 모두 털어내 본다.

 

조령산 바로 지난 전망대에서 본 고은 가을 단풍 

 

바위봉으로 이뤄진 세봉우리의 부봉을 중심으로 그 완쪽에 신선암봉에서 깃대봉과 마패봉의 암릉군들과 저 멀리 보이는 작은 공룡능선 그리고 그 넘어 암벽으로 이뤄진 월악산까지막힘없이 보이는 그 위용에 저절로 탄성만 내지를뿐 그 어떤 말이 필요하겠는가??? 다시 부봉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자 주흘산 영봉과 주흘산 주봉 및 꼬깔봉이 아직 푸르름 간직한 채 예쁜 마루금의 곡선미로 우리들을 유혹하고 서 있다.

 

부봉높이는 935m이다. 문경새재 제2관문인 조곡관 뒤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산으로, 모두 6개봉으로 이루어졌고 제2봉이 제일 높다. 백두대간에 속한 산으로, 하늘재를 지나 조령(鳥嶺)까지 이어진 주능선에서 가지를 뻗은 문경의 진산(鎭山) 주흘산(主屹山:1,106m)과 이어져 있다. 조령산(1,017m)에서 동쪽으로 보이며, 주흘산의 북서쪽에 바위벽으로 솟아 있다. 이화령에서 하초리로 흐르는 조령천이 산 옆으로 지나간다.

 

6개 암봉이 한 줄로 이어져 있어 험준한 암릉의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옛날 영남지역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인 제3관문을 비롯하여 제1, 2관문이 자리잡고 있다. 일대는 물박달나무, 자란초, 미치광이풀, 냉초 등 희귀 동식물이 많아 지방기념물(地方記念物)로 지정되었고, 문경시는 1987년부터 10만 그루 이상의 묘목을 심어 박달나무 군락지로서의 명성을 지켜나가고 있다.

 

참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멋들어진 대간 마루금과 우리 산하의 마루금에서 다시 한번 백두대간 산행의 참의미를 찾아 보려 노력해 본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산행에서 이런 멋진 마루금을 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피로 씻어내듯 모든 백발번뇌가 사라지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며 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멋들어진 마루금 바라보는 그 아래에는 예쁜 단풍잎이 빨강과 노랑의 물감으로 덫칠하고 고산에서 처음 시작하는 빛의 향연을 보여주고 있다. 조화속의 조화, 너무나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많은 아름다움에서 오늘의 하이라이트이면서 가장 고난도의 신선암봉 오름길로 접어 든다. 

 

힘겹게 오르내리던 암봉과 암릉지대의 로프들, 생명줄인 것을

 

내리막 암벽을 로프에 의지한채  조심하여 내려가자 선두는 이미 신선암봉에 도착하여 그 환상의 파노라마를 무전기를 통해 연신 전해주고 있다. 내려오는 중간 중간에 그 멋진 모습 놓치기 싫어 연신 디카에 담고 평지로 내려 와 방금 하산한 조령산 뒷자락을 바라보니 눈부신 햇살에 그 아름다운 실루엣 들어내며 조심하여 잘 가라 손짓하는 듯 아쉬운 마음 접어 두고 다시 앞으로 전진한다.

 

887봉 간신히 올랐다 다시 거대한 암봉에 로프가 매여 있는 위험 구간에서는 다시 조편성을 해 가며 서로에게 최고의 안전을 강조하며 한발 두발 조심해 본다. 최고의 산꾼들이라 해도 자찻 방심하면 천길 낭떠러지 계곡의 이름없는 동물들 밥이 될 신세이기에 웃음도 웃지 못하고 장난도 치지 못하게 가장 엄하고 무서운 대장이 되어 그 어려움 통과하자 그에 대한 보상이라도 해주듯 너무나 아름다운 마루금이 바로 눈앞에서 이 세상 최고의 전망으로 보상해 주는 듯 하다.

 

힘겹게 암봉 오른 후 잠시 여유를 부리며, 신선봉 바로 직전

 

힘겹게 올라오는 종주대 한분씩 모두 멋진 추억 만들어 드리고 막힘없이 펼쳐진 마루금 파노라마의 정상에서 이제사 안도의 한숨 내쉬며 잠시 여유로운 시간을 만들어 본다.

 

신선암봉(신선봉)높이는 967m이다. 바위산으로 수안보 온천에서 동남쪽으로 5㎞ 지점에 우뚝 솟아 있다. 주위의 월악산, 주흘산, 조령산 같은 유명한 산들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예로부터 산 북쪽과 남쪽에 두 줄기 길이 있었는데, 북쪽 길은 신라가 북진정책을 위해 백두대간에 처음으로 뚫은 하늘재(지릅재)이고, 남쪽 길은 조선시대에 영남지역의 선비들이 과거 보러 서울로 올라가던 문경새재이다.  

산세가 아름다운 높은 산으로, 산행 기점이 해발 450m 지점이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등반할 수 있다. 산행코스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조령산 자연 휴양림 매표소를 기점으로 안부(鞍部)를 지나 정상에 오른 뒤 마패봉(일명 마폐봉, 940m)·폭포 위를 지나고 치마바위를 거쳐 휴양림 매표소로 내려오는 코스가 경치가 좋고 길이 편한 탓에 흔히 이용된다.

등산 중 처음 만나는 뾰죽봉의 정상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시야가 탁 트여 있어 전망이 좋다. 월악산·주흘산·조령산 등의 1,000m급 산과 북바위산, 포암산, 만수봉 등 900m급 산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산에는 열두폭 병풍을 둘러친 듯한 병풍바위, 할머니가 돌이 되어 노송을 향해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을 드리는 형상의 할미바위, 방아다리 바위 등이 있다

 

다시 마지막 남아 있는 거대한 고래등 같은 바위릉을 오르자 드디어 신선암봉, 이 시간 13시 39분이 지나고 있다. 시를 알고 수필을 즐기며 소설을 쓸줄 아는 산꾼이라며 이런 멋진 전망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생각해 본다.

 

단지 내가 지금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환상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는 중국의 황산보다도 더 멋지고 아름다운 비경을 숨긴 채 이렇게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이외에는 달리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고 있다.

 

월악산의 거대한 작은 공룡능선과 그 뒤로 우뚝 솟아 있는 암봉인 월악산 주봉인 영봉

 

동쪽으로 너무나 가깝게 자리잡고 있는 부봉의 세 봉우리 (부봉, 주흘산 영봉과 주흘산 주봉) 그 옆 가장 자리에 꼬깔봉까지그리고 북쪽으로 가깝게 보이는 깃대봉과 마패봉 및 저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작은 공룡능선과 월악의 암릉까지, 그저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말로 표현 못하고 몸으로 체험하지 못하는 그 무엇을 표현하려 애쓰지만 그 느낌만으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맛보고 있다. 

 

월악산

주봉인 영봉(靈峰)의 높이는 1,097m이다. 달이 뜨면 영봉에 걸린다 하여 '월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삼국시대에는 월형산(月兄山)이라 일컬어졌고,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이 곳에 궁궐을 지으려다 무산되어 와락산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월악산 국립공원의 가장 남쪽에 있는 포암산(布岩山:962m) 부근에서 북쪽으로 갈라져 나온 지맥의 끝부분에 솟아 있으며, 만수봉(萬壽峰:983m)을 비롯해 많은 고봉들이 있다. 정상의 영봉은 암벽 높이만도 150m나 되며, 이 영봉을 중심으로 깎아지른 듯한 산줄기가 길게 뻗어 있다. 청송(靑松)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바위능선을 타고 영봉에 오르면 충주호의 잔잔한 물결과 산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봄에는 다양한 봄꽃과 함께하는 산행, 여름에는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수림을 즐기는 계곡 산행, 가을에는 충주호와 연계한 단풍 및 호반 산행, 겨울에는 설경 산행으로 인기가 높다. 특히 동서로 8㎞에 이르는 송계계곡의 월광폭포(月光瀑布)·자연대(自然臺)·청벽대(靑壁臺)·팔랑소(八浪沼)·망폭대(望瀑臺)·수경대(水境臺)·학소대(鶴巢臺) 등 송계팔경과 16㎞에 달하는 용하구곡(用夏九曲)의 폭포·천연수림 등은 여름 피서지 가운데서도 명승으로 꼽힌다.

 

단지 하나 아쉬움이 남는다면 신선암봉 하산길 암벽에서 둘이 거꾸로 올라오던 산객중 한명이 로프에서 추락하여 얼굴과 온몸에 심한 상처를 입고 누워 신음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였으리라. 자세히 보니 전문 등산화도 아니고 더욱이 릿지화도 아닌 일반 운동화를 신고 겁없이 올랐다 추락한 산객, 그 옆에서 휴지로 연신 흘러 내리는 핏물만 닦아주고 있는 친구의 손길에서 무모한 산행의 끝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알려 주고 있다.

 

재빨리 119에 연락하여 자세한 위치와 환자 상태를 알려 주고 선두대장님께 무전기로 연락하여 도움 요청한 후 가지고 있던 간단한 구급약으로 응급 조치 후 인사하고 뒤돌아서는 발길이 천근만근으로 다가오면서 떨어지질 않는다.

 

그래도 다행히 119 구조대와 연락되어 중간에 무사히 후송시켰다는 소식에 안도는 하였지만 다시 한번 안전한 산행을 위한 기본적인 장비와 산행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한 시간이기도 했다. 다시 능선길로 내려 와 다녀온 신선암봉 바라보니 거대한 동물의 등뼈처럼 하얀 등뼈 드러내고 환한 햇살 받으며 가을 오후의 정취를 더욱 빛내주고 있다.

 

지나온 신선암봉과 대간 마루금이 저녁 햇살에 눈비시게 빛나고

 

다시 안부 지나 로프가 매달려 있는 암봉과 암릉 구간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전진하자 암릉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 이어가고 있는 노송의 애처로움에 몇장의 추억 더하고 그곳에서 잠시 남아 있는 간식으로 허기 달래 본다. 인공으로 만든듯한 암릉과 소나무의 부조화 속에 조화로운 모습에서 몇장의 추억을 더 만들고 푸르름과 파스텔로 덧칠해 놓은 듯한 고산지대의 가을 빛을 향유하며 진행하자 한송이 진달래가 계절을 찾지 못하고 선명한 분홍빛으로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다.

 

깃대봉 (치마 바위봉)

높이는 835m이다. 산이름은 정상 일대에 있는 화강암 절벽이 치마를 펼친 듯하다고 하여 생겨났으며, 산모습이 깃대처럼 뾰족하다 하여 깃대봉이라고도 한다. 조령산맥의 한 줄기로, 백두대간에 속하는 산이기도 하다. 조령산(鳥嶺山:1,017m) 정상 북쪽 능선에 있다. 주위에 조령산의 주봉(主峰)인 신선봉(1,017m)을 비롯해 크고 작은 암봉(巖峰)과 암벽지대가 많다.
 
정상에서는 월악산의 주능선과 만수봉, 포암산, 부봉, 주흘산(主屹山), 조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내려오면 산신각이 있고 바로 밑에 조령약수가 있다. 숲이 울창하며, 황장군바윗골, 치마바윗골, 옹주골, 용산골, 장치바윗골, 말용초폭포 등 여러 명소가 기암괴석과 어울려 빼어난 비경을 이룬다.

 

병풍같은 바위와 마지막 암릉 구간 무사히 내려 오니 깃대봉 이정표가 눈에 들어오고 이세상 최고로 어려운 모습을 하여 한장의 앨범속 사진을 남긴다. 좌측으로 돌아 아직도 남아 있는 조령산성터를 따라 하산하니 산신각과 조령약수가 반기고 여기 조령 제3관문에서 오늘 마지막의 대미를 장식해 본다.

 

조령제3관문에서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며 완주를 기쁨을 나누고

 

조령제3관문

1966년 3월 22일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었다. 제1·제2·제3관문 및 부속성벽이다. 옛날에 영남에서 서울로 가려면 문경에서 주흘산(主屹山:1,106m)을 넘는 것이 보통이었다.

 

신라 때는 주흘산의 한 갈래인 대촉산(黛蜀山)을 넘어 계립령(鷄立嶺)으로 다녔고 조선 전기부터는 조령이 개척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남으로써 이곳에 중국의 산해관(山海關)과 같은 방위시설을 축조해야 한다는 논의를 낳았다. 현지 실측(實測)이 시행되고, 1594년(선조 27)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였다.

 

충주 사람으로 수문장(守門將) 출신인 신충원(辛忠元)이 조정의 결정에 앞서 조령에 머물면서 단독으로 설관(設關)에 착수하였다. 그가 이루어놓은 첫번째 시설이 지금의 중성(中城)이다.

 

중성은 1708년(숙종 34) 크게 중창(重創)되었는데, 이것이 곧 제2관문이다. 숙종 때 제2관문에서 3km 떨어진 곳의 남적(南賊)을 방비할 제1관문을 세우고 초곡성(草谷城:主屹關)이라 하였다. 이들은 1890년대에 다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육축(陸築)에는 홍예문(紅霓門)을 열고, 성벽에는 총구멍이 있는 성가퀴를 돌리고, 한쪽에 큼직한 수구문(水口門)을 뚫었다. 숙종 때 조령 재 위에 북적(北賊)을 막기 위하여 조령산성(鳥嶺山城)을 쌓았다. 이것이 곧 제3관문으로 현재 경북과 충북의 경계에 위치한다.

 

제3관문은 육축만 남겨 놓은 채 불타버려 1977년 복원하였다.제1·제2·제3관문은 양쪽 산의 골짜기에 위치하며 관문 좌우의 성벽은 능선을 따라 우회한다. 높은 봉우리 6분선(分線)에서 끝났다가 다음 골짜기에서 다시 이어져 초곡·중성·조령산성의 성벽을 이룬다. 동화원(桐華院)을 비롯하여 진(鎭)과 군창(軍倉)의 터가 있고, 경상감사(慶尙監司) 신임·후임자가 서로 교인(交印)했다는 교구정(交龜亭)의 터도 남아 있다. 문경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 시간 오후 16시 50분. 장장 14시간의 사투속에 최고의 멋진 실루엣과 파노라마에 취해 방향 감각을 잊고 제1관문쪽으로 30여분 알바 후 다시 조령 제3관문으로 돌아와 선두 중간에서 준비해 준 봉고차에 몸을 실고 주차장에 도착하니 17시시 20여분.

 

백두대간 산행 중 최고 시간을 갱신하며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성시 호텔에 준비해 둔 저녁 식사와 온천욕으로 갈무리 하니 두눈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꾸 꿈나라 여행을 하잖다. 노련한 양기중 기사님의 빠른 운전으로 오후 20시에 출발한 버스가 막힘없이 고속도로 통과하여 사당에 도착하니 21시 30여분. 다음 회차에 다시 만나자 인사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옮겨 집에 도착한 후 한구의 시체가 되어 다음날 아침 햇살에 다시 다른 하루를 시작해 본다.

 

늘 선두에서 고생하시는 사하라 리딩대장님, 건강한 몸으로 다음회차에도 다시 뵐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볼켄 운영총무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중간에 두분의 산우님 찾느라 고생하시고 잘 리딩해 주신 피그대장님, 늘 감사한 마음 전해 드리며후미에서 정말 힘들게 잘 완주하신 거울님과 올리브님의 투혼에 박수 보내 드림니다.

 

처음 백두대간 산행에 합류하신 나마스테님과 인연님의 놀라운 산행 실력에 감탄하였으며 또 오랫만에 함께한 산사람님, 돌소리님 그리고 운산님, 녹슬ㅈ디 않은 산행 실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너무나 길었던 제15차 백두대간 산행, 다행이 비도 그치고 날씨도 좋아 근 2개월여만에 최고의 아름다운 비경을 감상할 수 있어 행복했으며 이제 속리산권을 벗어나 바위가 많다는 월악산 구간에서도 또 다른 멋진 백두대간 산행을 이어가지 약속 드려 봅니다.

 

함께 고생한 29인의 백두대간 종주대 여러분, 사랑합니다 스리고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대간마루금 백두대간 산행대장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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