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 후기/경기도 산

동두천 소요산 산행 후기(9월 23일)

by 칠갑산 사랑 2007. 9. 24.
728x90

날짜 : 2007년 9월 23일 (일요일)

날씨 : 구름 많았으나 산행하기 좋은 날씨

산행인원 : 총5명(존칭 생략) 칠갑산, 솜이, 명인, 무시로, 베짱이 

산행코스 : 소요산역 - 매표소 - 청룡폭포 갈림길 - 비탐방로 암릉지대 - 소요산 정상 의상대 - 공주봉 - 의상대 회기 - 나한대 - 상백운대 - 중백운대 - 하백운대 - 팔각정 - 소요산 산림욕장 - 소요산 역

도상거리 : 약 9 Km

산행시간 : 6시간 20분 (점심시간 및 휴식시간 포함)

 

알바로 새로운 산행의 즐거움을 맛보며 즐긴 소요산 산행기

 

어제 강화도 마니산 산행을 다녀왔지만 너무나 환상의 경치와 팀원들 그리고 차량 봉사해 주신 산우님들의 수고로 인해 전혀 피곤함 없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또 다른 열차 여행의 재미를 생각하며 집을 나선다. 

 

분명 비는 내리지 않는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어쩐지 날씨가 꾸물꾸물한 것이 영 마음에 걸렸지만 집에서 출발하려는 시간부터 햇살이 방긋 구름 사이를 뚫고 얼굴 내밀며 오늘 산행도 잘 다녀오라는 듯 배웅하고 있다.

 

좋은 예감으로 모임 장소인 종로3가를 향해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도착한 문자 한통이 또한 마음을 즐겁게 하고 있다.

무시로님이 꼬리도 못달고 달려 온다는 문자 메세지로 총 5명의 전사들이 땀 한번 제대로 흘리겠구나 하는 걱정 반 기대 반이다. 

 

소요산 관광 안내도

 

오랫만에 뵙는 명인님을 제외하면 모두 백두대간 산행 길에서 자주 뵙던 산우님들이기에 약 1시간 30 여분간의 조잘거림이 끝이 없이 이어지고 그 이야기들이 마지막을 향해 클라이막스를 넘기려 할 때 드디어 우리들의 목적지 소요산 역에 도착한다. 

 

소요산 역을 빠져 나와 뒤돌아 본 풍경 

 

인사도 필요없고 복잡한 절차도 필요없이 곧바로 산행 들머리로 들어서니 옛날 보지 못했던 산림욕장 입구가 나타나고 익숙치 못한 그길을 버리고 넓은 시멘트길을 따라 오르니 오늘도 어김없이 들리지도 못할 자재암을 위해 거금 2000원을 징수당한다.

 

썩 기분 좋은 것은 아니지만 어제와 같이 더 열심히 운동 하라는 의미를 부여하니 마음 하나는 편안해 진다.

 

우측으로 흐르는 청아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쉬지 않고 오르니 벌써 일주문 지나 청량폭포에 들려 잠시 휴식을 가진다.

생각보다 풍부한 수량이 굉음을 내며 하얀 포말을 일으키고 그 아래 멋진 포즈를 취하고 또 잊혀지지 않을 추억을 만들어 본다.

 

청량폭포에서 잠시 쉬면서 찍은 단체 사진

 

잠시 소요산에서 원효대사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몇 귀절의 글들을 떠 올려 본다.

 

"높은 산 불끈 솟은 바위는 지혜로운 이가 들 곳이요,(원효대) 푸른 소나무 깊은 골은 수행자가 깃들 곳이니라.(자재암)" 

"주리면 나무열매를 먹어서 주린 창자를 달랠 것이요,(소요산) 목이 타면 흐르는 물을 마셔 그 갈증을 식힐 것이니라.(원효폭포)"

"메아리가 울리는 바위굴을 염불하는 법당으로 삼고,(나한전-굴) 슬피우는 기러기를 기쁘게 마음의 벗으로 삼을 것이니라."

 

전망대에서 바라 본 자재암 원경

 

몇장의 사진으로 청량폭포를 빠져나와 이제 본격적인 산행을 위해 우측으로 오르니 자재암과 공주봉으로 오르는 갈림길이 나타나고 하백운대를 오르기 위해 좌측 자재암 방향으로 진행한다.

잠시 계단 오르니 전망대가 나타나고 여기에서 알바 아닌 알바로 예상했던 코스와는 전혀 다른 다른 산행이 시작된다.

 

자재암

 

산 중턱의 자재암은 원효대사가 도를 깨친 곳으로 원효가 요석공주와 인연이 있은 후 심산유곡인 이곳을 찾아와 수행하다가 절을 지었다고 한다.  수행 도중 관세음보살과 친견하여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하여 자재암이라 했다고 한다.  자재암 주변엔 아담한 물줄기의 폭포가 널려 있다.

 

신라 선덕여왕 14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조선 세조 10년에 간행된 반야바라밀다 심경약소 언해본이 완벽하게 발견되어 보물 1211호로 지정되어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겁도 없이 폐쇄된 암릉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전망 좋은 바위에서 바라 본 하봉암 마을 방향

 

눈 앞에 아름답게 자리 지키고 있는 좌측 자재암을 지나야 하백운대 오름길이 나올 것을 희미하게 나 있는 우측 능선길을 따라 오르니 왠지 이상한 느낌은 들지만 함께하는 산우님들의 산행 실력을 믿기에 확인 없이 그냥 전진해 본다.

 

한시간여 거친 오르막을 오르니 등산로는 더욱 희미하게 지워지고 갑자기 나타나는 이끼 낀 거대한 암릉군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이제와 뒤돌아 갈 수도 없고 어쩔 수 없다며 진행하니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제대로된 릿지 난 코스를 따라 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모두 릿지며 산행을 잘하시는 산우님들이시기에 정말 환상의 코스로 잘 선택했다며 환호성을 질러주는 모습에선 내 자신에게까지 미안함이 밀려 온다. 

 

소요산 의상대 정상석

 

나중에 소요산 의상대 정상에 올라가서야 이 등산로가 위험해 오래 전 폐쇄된 길임을 알게 되였고 정상에서 내려오는 모든 등로가 폐쇄된 것을 알게 되였다.

또 하나의 좋은 경험을 하였지만 그 알바로 인해 또한 환상의 산행을 즐긴것도 사실이다.

 

오르는 중간 중간 넓은 전망 바위에서 멋지게 펼쳐진 동두천 하봉암 마을과 하늘에 맞닿은 마루금의 아름다움에 자꾸 오름짓이 무뎌지고 얇아지는 뱃가죽을 채우기 위해 맛나게 준비한 송편이며 과일로 입의 즐거움도 함께 하고 있다.

 

그 가파른 암릉길에서의 릿지를 즐기는 사이 어느덧 소요산 정상인 의상대에 도착하니 중년의 부부같은 등산객들이 전망 좋은 바위에 앉아 밤으로 간식을 즐기고 있다.

어느새 명인님의 입담으로 그 맛있는 밤을 얻어 먹고 후일 도봉산에서 산행 안내를 해 드리는 것으로 약속하고 정상석 쪽으로 자리를 옮겨 본다.

 

의상대에서 바라본 나한대와 상백운대 방향 

 

확 트인 전망이 거칠 것 없이 펼쳐지고 서울의 동북부에 위치한 모든 마루금이 동두천 시내를 넘어 가지런히 하늘 아래 한폭의 그림으로 남아 있다. 몇장의 사진을 남긴 후 오늘 최고봉인 소요산 의상대 정상석에서 다시 하늘을 바라보며 추억의 앨범에 남길 소중한 추억 거리를 만들고 있다.

 

소요산 의상대 정상석 바로 위에서 멋지게 한 컷 하신 명인님

 

소요산

 

서화담 양봉래와 매월당이 자주 소요하였다 하여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였다는 소요산은 규모는 작지만 산세가 특이하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장관을 이루며, 여름의 녹음과 폭포, 계곡, 가을 단풍 또한 유별나서 옛부터 경기의 소금강이라 일컬어진다.

인적 뜸한 겨울 정취도 낭만이 그윽하다.

뾰족 뾰족한 기암괴석이 절묘하게 봉우리를 이루어 놓아 만물상을 연상케 한다.

 

동두천시 소요동에 있으며 한수 이북 최고의 명산, 또는 경기의 소금강 등으로 불린다.

서울에서 44km, 동두천 시청에서 동북쪽으로 약 5km의 거리에 있는 소요산 (587m) 은 해발은 낮아도 수목과 폭포, 봉우리가 줄지어 있다. 

원효폭포, 옥류폭포, 청량폭포, 선녀탕 주변엔  여름철마다 피서객들로 북적댄다.

자연석굴인 나한전과 산중턱의 금송굴도 신비롭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던 혼란한 시기에 생존하였던 원효 (元曉 617-686) 는 의상과 더불어 당나라에 유학하려 두차례(34세, 650년 및 45세, 661년) 나 시도하였으나 자신의 마음밖에 따로 법이 없음을 깨닫고 혼자 되돌아와 보편적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왕성한 저술, 선교활동을 펴,그 사변력, 통찰력과 문장력에 대한 명성이 항간에 자자하였다. 

그는 광대들이나 쓰는 무애박을 치고, 무애가를 부르며, 무애춤을 추며, 광대, 백정, 기생, 시정잡배, 몽매하고 늙은사람들 사이를 방방곡곡 떠돌며 춤추고 노래하며 술마시고 거문고를 켜며 무수한 대중에게 불법을 전하였다.

코흘리개 아이까지도 부처에 대해알게 되었다. 

 

김춘추의 둘째누이인 요석공주(瑤石公主)는 첫남편을 백제전투에서 잃고 홀로 되었는데 불심이 깊었던 공주는 인격이 고매하고 화랑시절 백제전투에도 참가했던 원효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원효는  667년 문무왕 7년경(51세) 부왕인 태종무열왕의 과부공주인 요석과 만나 얼마후 설총을 낳고 이후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 小姓居士) 라 하며 무애의 보살행을 행하였다 한다

 

결혼전 원효는 거리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고 한다. "누가 자루빠진 도끼를 주겠는가?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라."  

이를 귀부인을 얻어 어진 아들을 낳고 싶다는 원효의 결혼에의 관심으로 보는 견해도 많지만 새 시대의 지평을 열어보이리라는 사상사의 선언으로 보는 견해가 더 우세하다.

 

소요산 산행 기점인 일주문 가는 길과 일주문 

 

소요산은 소요산역이 있는 소요동이 산행의 들머리가 된다.

입구에서 중간의 주차장과 상가를 지나 그저 평탄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소요산 자재암' 이라 쓰인 현판을 단 일주문에 들어서게 된다. 

여기서 조금 오르면 기암 절벽 사이로  떨어지는 원효폭포가 있고 그 폭포 아래 속리교라는 다리가 있다.

 

여기서 두 갈래 길이 나타나는데, 오른쪽으로  난 계곡길을 따라 오르면 남쪽 능선 위, 소요산의 정상인 의상대(587m)로 바로 오르게 된다. 

속리교를 지나  왼쪽의 난간으로 난 길을 계속 오르면  절벽을 이룬바위가 나타난다.

원효대사가 수도 한 곳이라는 전설이 서려있어 원효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양쪽으로 치솟은 암벽 사이의 숲길을 오르면 곧 세심교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백운암 돌담 옆을 지나면 곧 자재암에 닿는다.

자재암 옆에는 나한전이라고 불리는 자그마한 굴이 있는데, 여기에는 아주 맛있는 물이 솟아나온다.

(원효샘물)이 물은 최고의 차맛을 내기로 유명하여 이곳은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의 담론과 산책을 유도한 우리나라 차문화의 산실이다.

 

그 옆에는 높이 20여 미터의 청량폭포가 있고 청량폭포를 지나면 중백운대로 이어지는 능선길과 계곡으로 계속되는 두 갈래 길이 나타난다. 
중백운대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암릉길이다.  중백운대에서 상백운대 (535m) 로 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한 밋밋한 길이지만 능선 남쪽은 가파른 벼랑을 이루고 있다.

 

상백운대에서 선녀탕이 있는 계곡으로 바로 내려갈 수도 있고 아니면 나한대를 거쳐 정상인 의상대까지 간 후 원효폭포 쪽으로 하산할 수도 있다. 

또한 의상대로 이어지는 능선 곳곳에 계곡 쪽으로 난 하산길이 있다. 이쪽 능선에서의 하산길들은 경사가 급한 편이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산 입구엔 구한말에 독립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홍덕문선생 추모비" 가 있다.

 

공주봉 가는 길에 봤던 미2사단 및 동두천 시내 전경

 

어자피 시간도 많고 또 공주봉은 다녀 와야 될 것 같아 우측 하산길로 접어 드니 공주봉 1.1 Km란 이정표가 보이고 약 20여분 내리막 내려가니 다시 깔딱으로 공주봉이 이어져 있다.

내려가는 중간 동두천에 위치한 미 2사단 기지를 바라보며 분단의 아품과 미군 기지 이전으로 발생한 극심한 사회 분열상에 마음이 저려옴도 느껴본다.

 

그래고 더욱 아쉬운 부분은 왜 저리 아름답고 멋진 산하엔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꼭 저런 흉물스런 군사 기지가 있어야 되는지도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머리 위를 뜨겁게 달구는 햇살을 받으며 어렵게 바위 너덜 구간 지나니 이제 공주봉이다.

 

공주봉에서 바라 본 의상대와 나한봉 방향

 

공주봉

 

소요산에는 곳곳에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이야기가 스며 있다.  요석공주가 머물렀다는 별궁터와 원효가 수도했다는 원효대도 있고 정상인 의상대 옆에 있는 공주봉(원효가 요석공주를 두고 지은 이름)도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동두천 시내와 서울 동북부의 삼각, 도봉 그리고 수락산 자락이 아스라히 손에 잡힐 듯 바라 보이고 고개를 서쪽으로 돌리니 파주, 연천쪽의 마루금이 손짓하며 부르고 있다.

 

에구구 먹고 싶은 아이스께끼, 명인님이 공주봉에서 사 주신 막걸리 맛도 최고였답니다  

 

이곳에서 명인님이 사 주신 막걸리 한사발과 아이스크림 하나로 최고의 산상 맛을 보며 잠시 휴식 취하고 다시 왔던 길 뒤돌아 의상대로 회기하니 선두도 없고 후미도 없이 그저 즐거움만이 가득하다.

 

오고 가는 등산로에 웃음 보따리 풀어 헤치고 배꼽 내놓으며 목청껏 웃을 수 있음에 서로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이제 우리들만의 식당을 찾아 나무 그늘 속으로 숨어 본다.

 

맛나게 준비한 명인님의 연애 소설 같은 이야기와 세상 사는 이야기를 곁들여 만찬을 함께하고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향긋한 달콤함을 맛보니 이제 다시 힘이 솟고 남아 있는 산줄기를 따라 유유자적 여유롭게 산행을 즐기고 있다. 

 

나한봉 가는 길에 보았던 멋진 노송과 바위 

 

나한대 오름길에 릿지인지 암벽인지 분간하기 힘든 바위길도 올라보고 가다가 길이 막히면 다시 등산로 따라 그렇게 시간은 흘러 가고 있다.

잠시 나한대에서 다시 물 한모금 마시며 남아 있는 웃음 보따리 꺼내 그 줄기 따라 가파른 길 내려 오니 반대로 내려오시던 연세 느긋한 백발의 어르신들이 징그러운 바위 너덜길이라며 귀여운 투정을 부리시는 모습에서 그래도 그 아름다운 모습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상백운대 오름길에 백두대간 초창기 고정 멤버였다가 토요일 근무로 인해 합류하지 못하고 있는 산오름님 만나 그간의 아쉬운 헤어짐을 이야기하고 다시 너덜길 따라 기기묘묘한 노송들 사이를 지나니 삼각점이 있는 상백운대에 도착한다.

 

척박한 바위 틈에 낑겨 고달픈 삶을 이어가지만 지나는 산객들의 사랑은 듬뿍 받을 듯 

 

몇몇 산우님들이 앉아 휴식 취하는 사이에 자리 마련하여 남아 있는 과일 나누니 하루해도 이제 오후를 향해 줄달음 치고 있다.

다시 가벼워지 배낭 둘러매고 무명봉에 있는 묘 한기에서 좌측으로 크게 돌아 중백운대에 오르니 어린 꼬마를 대동한 가족들의 산행 모습에서 추석 한가위 명절 보다도 더 찐한 가족 사랑을 그려 보다.

 

중백운대 이정표 

 

그곳에서 다시 추억 한장 만들고 하백운대를 오르는 길엔 귀를 간지럽히는 연인들의 속삭임을 뒤로하고 척박한 돌산에서도 끈질긴 생명력 이어가며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누워 있다 시피 하고 있는 노송에서 명찰에 붙힐 증명 사진 찍듯 한몸이 되어 본다.

 

하얀 안전줄만 없었으면 좋은 사진이 되였을 것을 

 

간간히 바라 보이는 지나온 의상대와 나한대의 두 봉이 여인의 앞가슴을 수줍게 가리고 있는 듯한 모습에서 오늘의 대미를 생각해 본다.

 

하백운대에서 하산 중 바라 본 의상대와 나한봉 전경 

 

하백운대 정상에서 처음 약속한 가파른 자재암 길을 버리고 능선을 따라 하산하며 팔각정에서 가을을 재촉하는 억새숲에 들어가 재주 없는 작품 사진 그려보며 자연에 동화되려 노력해 보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팔각정에서 갈대밭을 배경으로 찰칵 

 

그래도 전문 사진 작가가 아니기에 디카에 담겨 있는 모습만으로도 웃을 수 있고 만족할 수 있음에 오늘 하루 산행에서의 포만감이 젖어 든다.

이제 마지막 하산길 내려 오니 지루한 아스팔트 길을 버리고 능선으로 내려 왔음을 자축하며 산림욕장 이정문에서 마지막 단체 사진으로 마무리를 해 본다.

 

소요산 산림욕장으로 하산하며 단체 사진 한장 

 

흘리고 싶은 땀 흘리면서도 그렇다고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6시간 동안 돌아 본 소요산에서 명인님이 보여준 참 산사람의 의미를 배우고 또 추석 명절 전 이렇게 소요산에서 소요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 듬뿍 안고 돌아 온 하루로 적어 본다.

 

급한 약속이 있어 먼저 가신다는 명인님을 보내 드리고 마시는 한잔의 시원한 생맥주가 목줄기를 타고 넘을 때 다시 오늘 우리들이 걸었던 소요산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을 함께 넘겨 본다.

 

가을이 성큼 다가옴을 느끼게 하는 억새들 

 

함께한 명인님, 솜이님, 베짱이님 그리고 무시로님 너무나 즐겁고 행복한 산행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이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그 모습 그대로 기억속에 남아 있답니다.

 

추석 명절 잘 보내시고 조만간 다시 멋진 산행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보자 약속해 봅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산행대장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