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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제1차(산행완료)/백두대간 산행 후기

대간마루금 제1기 백두대간 제11차 신의터재에서 갈령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07.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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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마루금 제1기 백두대간 제11차 신의터재에서 갈령까지 산행 후기

 

산행날짜 : 2007년 07월 20일부터 21일까지 (무박 2일)

산행날씨 : 흐리고 새벽에 안개, 낮 동안은 구름 많고 시야 제한된 날씨

산행온도 : 새벽 영상 17도에서 낮 최고 영상 25도

참가인원 : 총 28명(존칭생략) 칠갑산, 우산, 현우, 자우롬, 무시로, 하이킹, 솜이, 왕언니, 피그, 다향, 료가, 바드, 좋은느낌, 일여, 청목, 석불산, 베짱이, 고산자, 강고집, 이철주, 설총,  사강, 기분존날, 천동, 도롱골, 스네이크, 아래층, 산바람(파덜바람)

산행코스 : 신의터재 (어신재)-437.7 봉-윤지미산 (538 봉)-화령재-산불감사초소-봉황산 (740.8 봉)-660 봉-비재-못제 (천지)-갈령 삼거리-갈령

산행거리 : 24.47 Km, 접속구간 1.20 km

산행시간 : 선두 10 시간 30분, 후미 12 시간 30분

준비물 : 물 3.0 리터, 이온음료 1.1 리터, 이슬이 0.4 리터, 과일 젤 2봉, 육포, 아침 밥, 반찬 3종류, 빵, 방수방풍의, 모자, 땀수건, 목수건 2개, 헤드렌턴 2개 및 예비 건전지, 가위, 칼, 압박붕대, 테이핑, 롱 스패츠, 우의, 에어파스, 구급약, 프랭카드, 디카 및 예비 건전지, 모발폰 및 예비 건전지, 무전기 3대, 휴지 2봉, 키친 타올 1롤, 쓰레기 봉투

버스에 두고 간 준비물 : 갈아 입을 옷 한 벌, 슬리퍼, 닭죽 30인분

교통수단 : 45인승 버스 1대 신평고속관광 양기중 기사님

 

상세일정 : 

20

23:00 사당 출발

23:15 서울 TG 도착

23:25 신갈 정류장

23:53 기흥 휴게소 

21

01:33 서원 문경 휴게소 (닭죽으로 새벽 간식)

03:08 신의터재 도착

03:10 스트레칭

03:25 산행시작

03:32 선교공동묘지 지역

03:37 삼각점

03:47 감나무 밭

03:54 농장지역

04:15 사거리 안부

04:20 두번째 사거리 안부

04:35 무지개산 갈림길 (길주의, 대간길은 좌측, 후미 알바로 약 30여분 이상 지체)

04:47 사거리 안부

05:04 묘1기

05:20 사거리 안부

05:36 437.7

06:00 윤지미산 (538 봉)

06:55 밭 지역

07:11 임도 만남 (길주의, 임도 따라 우측으로 대간 길)

07:12 능선길(길주의, 임도에서 우측 능선길이 대간 길)

07:23 삼각점

07:31 화령재 (08:30까지 선두 후미 모두 모여 아침 식사)

08:30 화령재 출발

08:41 대간 이정 표(화령재에서 25번 국도 따라 북쪽으로 이동)

09:20 450 봉 (대간 산행 중인 부부 두 쌍 만남)

09:50 산불 감사 초소 (대간 산행 중인 젊은이 두 명 만남)

09:53 바위지대 전망대

10:26 바위지대 (산행주의, 좌측 사면 길로 우회)

10:30 봉황산 (740.8 봉, 길주의, 진행방향에서 우측길이 대간 길)

11:02 암릉지대 (좌측 사면 길로 우회)

11:21 사거리 안부

11:40 660 봉(길주의, 진행방향에서 우측길이 대간 길)

12:45 비재 (길 건너 철제 계단이 대간길)

13:08 455

13:20 510

13:31 암릉 지대 (우측 사면 길로 우회)

13:40 500

14;26 암릉 지대 (우측 사면 길로 우회)

14:31 못제 (천지, 습지 지대, 내린 비로 인해 약간의 물 있음)

15:03 암릉 지대 (좌측 사면 길로 우회)

15:21 암릉 지대 (좌측 길로 우회)

15:26 암릉 지대 (좌측 길로 우회)

15:29 갈령 삼거리 (대간 산행 종료, 길주의, 좌측 갈령 방향으로 하산)

15:19 갈령 (갈령 삼거리에서 우측 접속 구간으로, 산행 종료)

 

 

 

쉽지 않았던 백두대간 산행, 그 1/3을 마치면서 또 다른 어려움과 그리움을 남기고

 

 

 

올 2월 초부터 시작한 백두대간 산행이 벌써 11회 차를 지나며 전 산행 일정 중 정확히 1/3의 산행을 마무리 하면서 전라도를 지나 경상도의 거의 마지막 구간으로 충청도를 향해 힘겨운 발걸음을 옮긴 구간.

 

그 동안 수많은 변화들 중 가장 중요한 몇 가지를 꼽아 보면, 대간마루금 카페에서 대간마루금 이름으로백두대간 산행을 하게 되였다는 것과 많은 산우님들과 함께한 산행 중 이제 백두대간 팀으로 자리잡으며 또 새로운 산우님들의 꾸준한 동참이라 생각해 본다.

 

봉황산에서 바라 본 아름다운 마루금

 

아직도 장마철, 엊그제까지 그리 세차게 내리던 비도 또 오늘과 내일은 피해 준다니 참으로 복 받은 백두대간 팀이며 산행이다.

 

지금껏 제대로 된 우중 산행 한번 못해 봤으니 불행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산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미지의 마루금을 향해 출발한다.

 

매 격주 토요일 마다 집을 나서는 이 칠갑산이 무엇이 그리 좋아 옆지기는 매번 이렇게 맛난 죽으로 마음을 사로잡는지 그저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늘 마음으로는 고마움을 느끼지만 표현을 못하니 이것도 천성인 것을…

 


신의터재 이정석에 선 처음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하신 산바람(파덜바람)님

 

 

일찍 사당에 도착하니 벌써 마음 급한 산우님들 하나 둘 모여 들고 새로운 얼굴이 반갑게 인사 건넨다.

 

파덜바람님, 수원에서 처음 백두대간 산행을 위해 신청도 못하고 참여 했다며 얼굴 붉히며 부끄럽게 인사 나눈 것과 달리 산행 중 닉 부르기가 어렵다 하니 산행에서 돌아온 후 곧바로 산바람으로 개명할 정도로 대간 산행의 묘미에 흠뻑 빠져 버린 새로운 얼굴과 인사 나누는 사이 스네이크 대장님과 아래층님이 모습 보이며 그렇게 28명의 전사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잠시 후 배웅 나오신 산안개 총대장님과 보물단지님께 인사 건네고 휘황찬란한 서울 야경을 배경 삼아 신의터재로 달려간다.

 

이제 달리는 고속도로도 바뀌어 영동고속도로의 용인 휴게소에 잠시 들려 휴식 취하고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서원 문경 휴게소에서 새벽 닭죽으로 하루의 긴 일정을 시작한다.

 

오늘 우리는 백두대간 마루금을 경계로 상주시의 중모와 화령의 첫 글자를 따서 중화라 부르는 고도가 가장 낮은 중화지구대를 벗어나 속리산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신라시대에 큰 산이란 뜻의 답달비군으로 시작하여 통일신라 때 화령군으로 고쳐 부르다 고려시대 때 현으로 바뀌였던 화령은 조선 고종대에 상주군 화령면으로 명명되어 현재의 상주시 화령면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지금 정말 이 화령이 답달비군에 어울리는 단어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가지 추측이 가능하다면 산세가 좋고 사는 사람이 많았으며 이동 인구가 많아 그런 이름의 유래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화령재 이정석

 

남덕유산의 장쾌한 준령을 넘어 추풍령에서 시작하여 화령재까지 이어지는 논 길과 밭 길을 지났고 때로는 산도 평야도 아닌 평범한 대간 길을 걸어 오면서 속리산의 맥을 이어주는 낮은 대간 마루금에서 오늘 우리는 우리가 지금껏 살아 온 모습과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 담긴, 아직도 부모님들이 살고 계시는 영원한 우리들의 고향, 농촌의 여유로움을 보았기에 기억에 쌓아 둘 산행은 아니었지만 영원히 잊지 못할 산행으로 남게 되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신의터재(어신재)에서 마을 입구로 산행 출발지에 서 있던 이정 표 

 

 

새벽 3시 10분, 지난 회 차에 날머리였던 신의터재에 도착하여 처음 온 산우님들 산진 한 장 남기고 특별 강사인 기분존날님의 구령에 맞춰 몸풀며 산행 들머리로 이동하니 3시 25분을 가리키고 있다.

 

2차선 지방 도로에서 콘크리트 마을 농로를 따라 들어가다 우측 능선으로 접어 드니 지난 밤까지 비가 내린 것처럼 잡목과 키 큰 수풀엔 한아름 물기 머금고 우리들 발길을 촉촉히 적시고 있다.

 

어느 선답자의 후기에서 언급 되였듯이 대간 상 묘기가 가장 많은 곳이라더니 능선에 오르자마자 많은 묘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여기에서 잠시 주춤 거리며 대간 길을 찾기 위해 우왕좌왕 해 본다.

 

작은 밭길을 따라 오르다 첫 번째 묘기에서 좌측으로 꺾어 들어가면 금새 대간 띠지들이 보이고 발 밑에 쌓인 낙엽들 또한 촉촉히 젖어 산행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하루의 시작이지만 장마철 특유의 후덥지근한 날씨가 오늘 하루도 쉽지 않은 산행임을 예고하는 듯 벌써 땀방울이 폭포수처럼 흘러 내린다.

 


마루금에서 바라 본 평화로운 화서 마을

 

오늘도 변함없이 이 칠갑산은 중간에서 오르고 선두는 이철주님, 일여님 및 처음 산행에 참여한 산바람님이 리딩하고 후미에선 피그 대장님이 수고하고 계신다.

 

많은 묘지들을 지나고 삼각 점을 지나지만 후덥지근한 날씨로 인해 땀 닦기 바쁘다 보니 지도 보는 것 조차도 마음에 내키지 않아 그냥 통과한다.

휴식 취한 후 평탄한 오르막을 조금 더 오르니 먼동이 트면서 어둠 몰아내고 좌측 감나무 밭이 조성되어 있는 농로 길로 접어든다.

선두대장님으로부터 특이한 길 찾기 사항을 연락 받으며 후미 대장님께 알려주고 산행에 대한 많은 정보도 교환하고 있다.

 


대간길에 눈길 사로잡은 단풍잎과 대간 띠지들

 

농장지대 지나 사거리 안부를 건너 무지개산 갈림길에 올랐지만 길 찾기에 큰 어려움이 없는 듯하여 한참 오르다 보니 갑자기 후미대장님으로부터 다급한 무전기 연락이 들어 온다 삼거리인데 어느 길로 가야 하냐며.

난감하다 어느 삼거리란 말인가 잠시 생각하고 있는 사이 후미는 알바하여 무지개산에 올랐다 하산한다며 대간 길로 잘 접어 들었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에구구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큰 산도 아니고 시야도 없는 시간에 더군다나 후미에서 알바하여 무지개산까지 들렸다 벌써 30여분 이상 시간을 허비하고 있으니 계획된 시간에 날머리에 도착이나 가능 하려는지…

 


윤지미산에 올라 한컷 하신 다향님

 

이미 일출 시간이 되였건만 뿌연 안개와 구름으로 인해 일출 감상을 포기하고 오르막 오르니 정확히 6시를 가리키고 윤지미산 이정석에 입맞춤을 해 본다. 왜 윤지미산일까 궁금하여 인터넷을 찾다가 운해님의 글이 있기에 여기서 잠시 소개해 보기로 한다.

 

신의터재를 지나 북진하는 마루금은 산아래 폭포에 펼쳐지는 무지개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하여 붙여진 무지개산 초입에서 270도 방향으로 휘어지는 마루금은 숭덕지맥의 시작인 437.7봉으로 내 달린다.

 

437.3봉에서 소머리산으로 이어지는 숭덕지맥은 박성태님의 신산경표에 봉황산에서 시작하여 무지개산과 숭덕산을 지나 영강으로 이어지는 49.9km의 산줄기를 숭덕지맥이라 한다 라고 되어 있다.

 

문헌과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지 않는 윤지미산에 오르면 비교적 넓다란 평지가 반겨주고  급경사로 이루어진 비탈을 오르느라 수고한 산꾼들의 땀과 더위를 식혀주기에 충분한 소슬바람 불어주며 자연석으로 만들어 세운 앙증맞은 정상석이 재미를 더 해 준다.

 

예로부터 소머리산으로 불려오던 538봉이 윤지미산으로 언제부터 둔갑 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곳이라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사료되며 개인적인 시각에서 보는 윤지미산에 대한 느낌은 아래에서 정리하기로 한다.

 

왜! 윤지미산이라고 하였을까???

산경표와 신산경표에 숭덕지맥은 봉황산에서 시작하고 있다.

 

지금처럼 고도와 거리를 명확하게 구분 지울 수 없었던 당시에 분기점에 대한 지명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이름이 있는 산이나 고개를 분기점의 표시로 나타냈던 것으로 보인다.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의 분기점 역시  명확한 지명도 없이 주화산이라 부르고 있다.

이제 개인적으로 의문은 풀리기 시작한다.

 

437.7봉에서 분지되는 숭덕지맥을 봉황산에서 시작하는 것은  거리가 너무멀다.

무지개산 역시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고 ... 가장 근거리에 있은 것은 윤지미산으로 불리고 있는 538봉 뿐이다.

 

437.7봉에 지명하자니 이 산은 원래 소머리산의 끝 부분이다.

그렇다면 538봉에 지명을 부여하면 437.7봉은 자연적으로 538봉에 포함된다.

멋 진 발상이다.

이제는 작명하는 일만 남았다.

상주는 고도이고 신라시대에는 경주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이중환도 팔음지에서 조선인재의 절반은 경상도에 있고 경상도 인재의 절반은 상주와 선산에 있다고 하였다. 경상도의 지명도 경주와 상주의 첫머리 글자를 조합하여 "경상도"라 하였다.

그렇다면 걸 맞은 지명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였을 것이다.

 

작명하고자 하는 좋은 지명은 다른 산들이 모두 가지고 있으니 경전에 나오는 말로 지어봐!

사서삼경 대학편에 윤집걸중(允執乞中)이란 말이 있지...

인생전반을 알고...

세상을 품을 수 있으니

모든 것을 알아 맞힐 수 있다?

 

그런데 산 이름으로 복잡하잖아..

축약 시켜서 윤집산으로 하자(뜻만 전달되면 되니까..)

이렇게 하여 윤집산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된 윤집산이 윤지미산으로 둔갑된 것은 자음탈락....

윤집 - 윤지 - 윤지미 - 윤지미산..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

 

개인의 생각이므로 확대 해석은 금물이다.

다만,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신산경표에서 봉황산을 숭덕지맥의 시작점으로 보았던 것은  숭덕지맥이 분기하는  무명봉(437.3봉)에 대한 설명을 자연스럽게 할 수 없었기에 봉황산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이며 무명봉(437.3)봉보다 높은 538봉(이것은 분기점과는 떨어져 있으나 윤지미산과 소머리산이 원래 하나의 산이었다면 산줄기로 이어지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을 "윤지미"산이라 칭한 것은 숭덕지맥의 상징적인 봉을 나타 내고자 하는 작명자의 고육지책으로 여겨진다.

 

윤지미의 뜻은 (사서삼경 대학에 나오는 윤집걸중(允執乞中=인샌전반을 다안다.세상을 포용한다.세상을 두루 알아맞히다)라는 사자성어를 사용하여 윤지미산의 상징성을 부여한 것으로 보아 작명자의 노고를 엿볼 수 있는데 이것은 삼백(쌀.누에.곳감.)의 고장 상주사람들의 인품과 학풍을 은연 중 자랑한 것으로 보인다.(운해님의 꿈의 백두대간 산행 후기에서 발췌함)

 

 

윤지미산에서 잠시 휴식 취하며 선두에 연락하니 선두는 이미 화령재 부근에 가 있고 후미는 약 30여분이상 처지고 있다.

함께한 다향님, 바드님과 담소 나누는 사이 열심히 알바하고 올라온 솜이님을 통해 사정 이야기를 듣고 혼자 후미 기다려 내려가자 마음 먹어 본다.

 


지금도 한창 공사중인 상주 당진간 고속도로 현장

 

간격이 좁혀졌음을 알고 싸늘해진 몸 기운 달래기 위해 급경사를 빠르게 내려 오니 시야가 트이면서 인삼 재배 단지가 보이고 잠시 더 진행하여 임도를 따르니 아직도 분주히 공사중인  상주~당진간 고속도로 터널 위를 여유롭게 걸어본다.

석불산님이 깊은 구덩이에 빠져 큰일날 뻔한 일만 아니 였다면 더없이 산행하기 좋은 구간이기도 하다.

 

다시 오솔길 따라 가끔 들려오는 차동차 소리를 들으며 25번 지방 도로로 내려오니 선두 팀이 큰 박수로 환영해 주고 곧바로 화령재에 도착하여 화령재 이정석과 화령정에 인사 나눈다.

 


화령정에서 아침 식사 전 바드님

 

여기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하였기에 후미 기다려 한 시간 가까이 휴식 겸 맛난 식사를 즐긴 후 단체 사진 한장으로 마무리 한다.

여기에서 한 두 방울 떨어지는 빗방울에 잠시 고민했지만 금새 멈추고 하늘을 보니 맑지는 않지만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다.

 


화령재에서 아침 식사 후 이정석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 

 

다른 대간 고갯마루와 마찬가지로 이곳 화령재도 삼국시대부터 국경을 이뤄 전략의 요충지로서 치열한 전투의 현장을 남기고 그 역사의 기록을 전적비와 공적비로 알리고 있었으며 1990년 화령정을 건축해 많은 역사적 사실을 편액에 담아 산객과 길손들에게 알리고 있었다.

 

다시 힘내 25번 지방도로 따라 문장대 이정표 쪽으로 올라가니 우측으로 민가가 보이고 그 민가 옆 등로를 따라 오르니 많은 대간 띠지들이 다시 반갑게 맞이해 준다. 여기에서 두 쌍, 네분의 대간 종주자들과 인사 나누고 산행 내내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였다.

 


화령재 지나 민가쪽 능선으로 대간 길은 이어지고

 

다시 깔딱 올라 산불감시 초소에 오르자 또 다른 두 명의 젊은이들이 대간 길에 올라 있고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홀로 후미가 되어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다.

 

빠른 걸음으로 뒤따라가다 보니 지나온 멋진 마루금이 시야에 들어오고 또한 화서면의 고요한 시골 마을이 한가롭게 눈에 들어 와 고향의 향수에 젖어 몇 컷 찍어 본다.

봉황산 오르막 직전, 후미 산우님들과 함류하여 깔딱 오르니 태봉산이라 불리기도 했다는 봉황산 정상이다.

 

 


봉황산 정상에서 찍은 단체 사진
 봉황산(鳳凰山)은 중화지구 화령(化寧) 북쪽에 우뚝 솟아있는 대간상의 산이다.1300여년 전 봉황새가 이 산에 날아들어 30여년 정도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한다.

 

인근에서는 “정상을 봉황머리처럼 원만하게 빼어 올리고 좌우 양 날개를 길게 펼친 형국이 봉황새 같아서” 라고도 한다. 화령은 행정구역상 화서면이라 부르지만 지역 사람들에게는 화령으로 더 알려져 있다.

 

옛날 화령현 소재지였던 까닭이다.

그 당시 무사들이 살았다는 무동(武洞), 현감이 살았다는 상현(上縣), 관곡(官穀)을 보관했던 창고가 있었던 창안 등의 지명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일대의 특징은 지대가 250~400m로 높은 고원이어서 조그마한 야산들도 300m가 넘고 사방 어디에서나 모두 올라오게 되어있다는 점이다.

 

이 흐름은 화서, 화동, 모서, 모동면을 지나 추풍령까지 이어지는데 상주에서는 이를  중화지구대 (中化地溝帶)라고 한다. 일교차가 심해 과수농사가 잘 되며 포도, 배, 사과는 인기가 높다.

 

정상에서 정상주 한잔으로 휴식 취하며 증명 사진 찍어 본다. 이제 서서히 안개가 걷히면서 마루금이 눈에 들어 오지만 골짜기에 피어 오르는 산 안개가 아직은 그 아름다운 자태 숨기고 싶다며 투정을 부리듯 시야를 제한하고 있다.

 

아쉬운 대로 몇 장의 멋진 산하를 카메라에 담고 다시 비재를 향해 출발한다.

출발하기 전 여 산우님들이 취하고 있는 이 세상 최고의 편한 휴식을 몰래 카메라에 담아 보기도 한다.

 

 

비재 가는 도중 암릉 길을 조심조심 우회하고 660봉 넘어 평편한 능선 길을 그저 대간 길이려니 생각하며 발길 옮기고 있다.

햇살도 없고 간간이 불어 주는 시원한 바람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끊임없이 흘러 내리는 땀방울을 식혀 주기엔 부족하다.

몇 번인가 옷을 벗어 물기 쥐어 짜내며 마지막 구간을 위해 전진한다.

 


전망 바위에서 바라 본 지나온 봉황산과 대간 마루금

 

비재 못 미처 무명 바위 전망대에서 오랜만에 여유 있게 카메라 셔터 눌러가며 파아란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만끽해 본다.

이름이 없어도 좋고 백두대간 길이 아니라도 좋은 곳 우리국토, 이 시간 이렇게 알려지지 않은 전망대에서 자연의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며 느낄 수 있음에 감사 드리며 아쉬운 발길 돌린다.

 


하늘을 향해 꼿꼿히 서 있는 전나무 숲에서 자우롬님과 천동님

 

삐뚤 빼뚤 제멋대로 자라난 침엽수만 보다가 갑자기 쭉쭉 빵빵 하늘을 향해 치솟은 전나무 밭에 진입하여 넋을 잃고 그 아름다움에 취해 본다.

그냥 그 자연의 일부분이 되어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렇게 기분 좋고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면서…

 

상주의 동관과 평온을 연결하는 비재, 비재 지나 암봉으로 이뤄진 500봉에서 봉황산을 바라보면 봉황이 나는 형상이라 하여 비조재(飛鳥) 또는 비조령(飛鳥嶺)이라 불렀던 비재의 철제 계단에 많은 산우님들 모여 미니 단체 사진을 남기고 있다.

 


비재 철 계단에 모여 있는 산우님들

 

여기에서 중간을 피그 대장님께 넘겨 주고 오랜만에 후미에 남아 힘들어 하는 산우님들 모시고 이번 구간의 최대 난관 지역으로 들어 선다.

 

지난 회 차에 무척 힘들어 하시던 천동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앞서 내달리고 현우님과 자우롬님 모시고 오르는 그 된비알이 얼마나 힘들던지 처음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해 본다.

455봉과 510봉 가는 대간길에도 수많은 전나무 밭이 눈길 사로잡고 함께하는 산우님들 세워 멋진 포즈 잡는 모델을 만들어 드려 본다.

 


암봉에서 바라 본 견훤의 주 활동 무대였던 대궐터산

 

 

500봉 암봉에 올라 봉황산을 바라보지만 봉황이 나는 형상을 제대로 구분 할 수 없음에 안타까움만 더해 간다. 하지만 아자개와 견훤의 활동 무대였다는 대궐터산과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구병산을 볼 수 있고 또한 멋진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산우님들과 즐거운 시간 보낼 수 있음에 만족하고 백두대간 길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습지 지대인 못제를 향해 마지막 힘을 짜낸다.

 

벌써 오후 2시를 넘기고 못제 오르던 마지막 공터에 앉아 남아 있는 모든 먹거리 비우고 부족한 생명수인 식수 나눠 오늘의 멋진 완주를 생각해 본다.

이제 제일 후미엔 딱 세 명만 남아 있다.

현우님과 자우롬님 그리고 이 칠갑산, 자우롬님이 너무 많이 흘리는 땀방울에 살결이 쓸리며 무척 심한 고통을 인내하고 계시지만 그래도 주저 앉을 수 없기에 힘들게 한발 두발 앞으로 내딛는 모습이 무척 안쓰럽다.

 


못제(천지)로서 백두대간 산행길에 위치한 유일한 습지 지대

 

힘든 발걸음 옮겨 정상을 넘자 충북알프스란 이정표가 눈에 띄며 산행 전 충북알프스에 대해 설명한 어느 산 객의 글이 떠오른다.

이곳의 좌측으로 동 관음을 지나 구봉산으로 내려서는 충북알프스가 분지하는 곳으로 앞으로 충북알프스라 불러 주자는 의견이었다.

나는 아직 거기까지는 잘 모르는 사연이기에 기회가 되면 자료를 찾아 알아 보고자 다짐해 본다.

 

오후 2시 30여분, 드디어 못제에 도착하여 대간상의 유일한 습지를 관찰해 보았지만 비가 내려 고인 빗물과 일반 산에서 볼 수 없는 식물로 인해 못제인가 보다 할 정도이지만 건기에 지나치면 전혀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습지 지대 인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서 다시 못제와 견훤에 관한 전설 하나를 소개해 본다. 이 글은 어느 산객의 대간 후기글에서 발췌한 내용임을 알려 드린다.

 

-상주에서 군사를 일으킨 견훤은 세력을 확장 해 나가는데 보은지방의 호족인 황충과 자주 충돌하게 되지만 매 번 패하는 황충은 견훤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알기 위래 부하를 파견해 염탐한 결과 견훤이 못제에서 목욕을 하고나면 힘을 얻는다는 것을 알고 견훤이 지렁이의 자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황충은 못제에 소금300가마를 뿌려 견훤의 힘을 사라지게 하였다는 이야기다- 

헬기장 지나 암릉 구간 우회하니 바로 앞에 왕언니님과 청목님이 보기에도 아름다운 노익장을 과시하며 때로는 진한 우정으로 때로는 장난기 섞인 투정으로 그 힘든 산행의 고통을 줄이고 계신다.

참으로 존경스럽고 자랑스런 우리 백두대간 팀의 맏형과 큰 누님으로서 다시 한번 그 투혼에 찬사를 드려본다.

 


갈령 삼거리 이정 표

 

무척 험난한 세군데의 암릉 구간을 어렵게 지나자 대간 산행의 날머리인 갈령 삼거리 이정표가 밝게 웃으며 반겨주고 앞에 우뚝 솟아 있는 형제봉이 아쉬운 표정으로 다음 회 차에 만나자 인사 하는 듯하다.

 

이제 시간은 오후 3시 30여분이 지나고 다시 우측으로 방향 돌려 작약지맥을 따라 갈령으로 향하니 오늘 하루의 끝자락도 이제 서서히 보이기 시작이다.

무척 가파르고 험한 접속구간을 조심하여 내려오니 마지막 헬기장이 보이고 곧바로 갈령에 내려 선다.

 


다음 구간 올라야 할 형제봉의 늠름한 모습

 

못제에서 갈령까지는 많은 암봉들과 암릉으로 이뤄져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불순한 일기에는 산행에 많은 주의를 요하는 위험 구간으로 기록하고 싶다.

 

갈령에 도착하자 일찍 하산한 모든 산우님들 선남 선녀의 모습으로 박수 치며 축하해 주시고 맑고 차가운 계곡에서 동심으로 돌아가 산우님들과 물장난 치며 모든 땀방울 씻어내니 하루의 피로가 봄 눈 녹듯 모두 사라진다.

 

한잔의 맥주와 우리들의 산우애가 있는 곳 백두대간 산행, 아주 늦은 점심인지 아니면 이른 저녁을 맛나게 먹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한낮의 사자가 되어 늘어지게 늘어져 잠을 청하니 어느덧 서울에 도착하여 또 한 구간을 무사히 마침을 자축해 본다.

 


산행 날머리 갈령 이정석

 

반년이란 시간을 보내며 벌써 전 구간의 1/3을 무사히 완주한 오늘, 평소와 다를 것이 없음에도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산행에서 우리네 인생을 닮아 있는 백두대간 마루금의 참 의미를 되새기고 더 많은 역사 공부와 지리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 한 구간으로 기억해 본다.

 

오늘도 선두에서 거미줄 헤치며 리딩해 주시느라 수고해 주신 일여님과 이철주님께 감사 드리며 늘 후미에서 어려운 산우님들의 말벗이 되어 무사 완주를 도와 준 피그대장님께 감사 인사 드림니다.

 

사당에서 출발 전 배웅 나와 주셨던 산안개 총대장님과 보물단지님께도 고마움 전하며

오늘 처음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해 주신 스네이크대장님과 아래층님 그리고 산바람님께 감사와 함께 다음 회 차부터 더 자주 뵐 수 있기를 기대 해 봅니다.

 

함께한 28인의 대간 종자주 여러분, 정말 고생 많이 하셨구요 다음 구간에서도 즐겁게 다시 뵐 수 있기를 기다려 봅니다.

 

감사합니다.

 

대간마루금 백두대간 산행대장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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