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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제1차(산행완료)/백두대간 산행 후기

대간마루금 제1기 백두대간 제10차 큰재에서 신의터재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07.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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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마루금 제1기 백두대간 제10차 산행 일지

(큰재에서 신의터재까지)

 

날짜 : 20070706일부터 07일까지 (무박 2)

날씨 : 흐리고 무더운 날씨였으나 비는 내리지 않음

온도 : 새벽 영상 17도에서 낮 최고 영상 25

참가인원 : 28(존칭생략) 칠갑산, 우산, 현우, 자우롬, 무시로, 하이킹, 솜이,

         왕언니, 피그, 다향, 료가, 바드, 좋은느낌, 일여, 청목, 석불산, 베짱이,

         사하라, 고산자, 강고집, 이철주, 설총,  행자, 사강, 기분존날, 기분존날 2,

         천동, 도롱골

산행코스 : 큰재 - 회룡재 - 개터재 - 윗왕실 동물이동 통로 - 백학산 (618) -

         개머리재(소정재) - 지기재 - 철탑 - 신의터재

산행거리 : 24.47 Km, 접속구간 00 km

산행시간 : 선두 8 시간, 후미 9 시간 30

준비물 : 3.5 리터, 이온음료 0.6 리터, 이슬이 0.4 리터, 과일 젤 2, 육포,

         아침 밥, 반찬 2종류, 쑥개떡 송편, 방수방풍의, 모자, 땀수건, 목수건 2,

         헤드렌턴 2개 및 예비 건전지, 가위, , 압박붕대, 테이핑, 롱 스패츠,

         우의, 에어파스, 구급약, 프랭카드, 디카 및 예비 건전지, 모발폰 및 예비

         건전지, 무전기 3, 휴지 2, 키친 타올 1, 쓰레기 봉투

버스에 두고 간 준비물 : 갈아 입을 옷 한 벌, 슬리퍼

교통수단 : 45인승 버스 1

          신평고속관광 양기중 기사님

 

상세일정 :

06

23:00 사당 출발

23:15 서울 TG 도착

23:25 신갈 정류장

23:50 기흥 휴게소

07

02:00 황간 휴게소

03:05 큰재 도착

03:10 스트레칭

03:30 산행 시작

03:55 안부 (길주의, 시멘트길 따라 우측 회룡목장쪽으로 약 100여 미터 간 후

        목장 정문쪽에서 우측 대간 능선길로)

04:26 회룡재 도착

04:36 회룡재 출발 (길주의, 임도 무시하고 가로질러 능선길로)

05:01 개터재 도착

05:47 여명이 밝아오며 일출인지 월몰인지 감상

06:17 윗왕실 동물이동 통로

06:50 477

06:59 갈림길 (길주의, 진행방향에서 좌측이 대간길)

07:08 백학산 정상

08:35 아침식사 및 휴식 후 백학산 출발

08:50 임도길 만남 (길주의, 임도 따라 우측으로 내려 온 후 좌측 대간 능선길로,

        좌측에 식수로 사용할만한 개울 있음)

08:51 능선길 (임도 버리고 좌측 대간 능선길)

09:31 임도 만남(좌측으로 논과 밭 존재)

09:40 갈림길 (길주의, 우측 능선으로 대간길)

09:45 과수원 임도 만남 (길주의, 임도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과수원과 논밭

        사이를 빠져 나온 후 2차선 차도 건너 다시 임도를 100여미터 따라가다

        우측 능선으로 대간길)

09:47 개머리재 통과

09:50 임도 따라 가다 우측 대간 능선길로

10:05 갈림길 (후미 기다리며 휴식)

10:41 두번째 갈림길

11:03 과수원 (길주의, 임도길 따라 2차선 도로 건너 마을로)

11:08 지기재 통과

11:09 금강 낙동강 분수령 표시판

11:12 대나무 밭쪽 능선길 (길주의, 시멘트길 따라 마을로 진입하다 대나무 밭쪽

        민가에서 우측 능선으로 대간길)

11:12 다시 임도 만남(민가 옆으로)

11:13 다시 우측 능선길

11:18 시멘트 임도길 만남

11:22 우측 비포장 임도길

11:23 능선길 (길주의, 좌측 전봇대 근처에서 좌측 능선길로)

11:40 바위길 통과

11:57 임도 만남 (길주의, 좌우 논밭 길)

12:31 신의터재 도착

13:00 계곡에서 알탕

15:00 식당에서 점심 식사 후 서울로 출발

16:17 여주 휴게소

18:40 사당 도착 후 해산

 

 

백두대간 길은 역시 완주해야 알 수 있는 백두대간 산행이야

 

이번에도 한 주가 더 많은 5주나 되는 주일 관계로 3주만에 백두대간 길에 오르다 보니 기다림에 지치고 또 보고픈 산우님들과의 긴 헤어짐에 더욱 시간이 더디 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제 본격적인 장마철이다 보니 우중 산행에 무더위는 한창 기승을 부릴 시기이지만 유명한 산행지가 아니기에 많은 시간 투자해 가며 이것 저것 자료 챙겨 올려 드리면서 한 분의 산우님이라도 더 모시고 가고픈 마음에 바쁘게 움직인 산행 준비다.

 


큰재에 있는 금강 낙동강 분수령 이정 표

 

롱 스패츠도 알아 보고 직접 판매점에 들려 공지 올려 드리면서 그렇게 준비한 큰재에서 신의터재까지의 제 10차 백두대간 산행.

다행이 하늘의 도움으로 우중 산행도 피하고 가끔 불어주는 산들 바람이 찌는 무더위를 식혀 준, 참으로 복받은 백두대간 팀이란 생각이다.

 

사강님은 그 와중에 지난번 폐교된 옥산 초등학교 안성 분교 운동장에서 잃어버린 선글라스를 찾곤 얼마나 기쁜 모습과 목소리이시던지.

이번 구간은 경상북도 상주시를 돌아 오는 길이기에 상주에 관한 자료를 옮겨 본다.

 

 


큰재 들머리에 있던 이정 표

 

상주시는 옛날 삼국 시대에 신라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였으며 또한 각 나라의 경계를 이루고 있어 격심한 전쟁 격전지 이기도 하였다.

그 유명한 백제 장수 아자개와 그 아들 견휜의 주 활동 무대가 바로 이곳 상주였으며 조선시대에는 경주와 상주의 앞글자를 따서 경상도라 이름할 정도의 매우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였다.

 

현재는 삼백의 고장이라 하여 누에와 쌀, 곳감으로 유명하나 옛날의 명성에는 많이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 님에 의하면 조선 인재의 절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절반은 상주와 선산에 있다고 하였다 하니 얼마나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였는지 알 수 있는 유명한 고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내륙 지방으로 많은 발전 없이 그저 평범한 시골의 중소도시중 하나로 남아 있다.

 


산행 전 몸 풀기 스트레칭을 알려 주고 있는 기분존날님

 

28명의 산우님들과 기흥 휴게소 들렸다가 황간 휴게소에서 이른 새벽 밥을 챙겨 먹고 산행 들머리 큰재에 도착하니 새벽 3시 조금 넘긴 시간. 동네 강아지들이 합창하듯 짖어 대고 잠시 기분존날님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며 산행 준비를 해 본다.

 


언제나 반갑기 그지없는 백두대간 안내 판

 

많은 역사적 기록에 등장하는 큰재는 추풍령쪽에서 다가오면 평지의 고원지대 같은 곳이기에 왜 큰재란 이름이 붙었는가 의심이 가지만 옥산쪽에서 올라오는 길은 골짜기가 깊고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지대로 보여 큰재라 불리게 되였으며 이 구간에서 가장 높은 고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험한 고개를 넘어 한양으로 가 과거에 급제한 후 성공한 자들의 성공담이 유명한 일화로 남겨진 사례도 자주 있게 되였다. 지리학적으로 추풍령쪽에서 바라볼 때 평탄한 능선길로 보이는 이런 곳을 중화지구대로 불려지기도 한다.

 


회룡재에서 미니 단체 사진

 

3 30,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둠을 헤치며 안성 분교 담장 우측으로 들머리를 찾았으나 잠시 주춤거리며 헷갈리는 길 찾아 알바하고 대간길 들어서니 완만한 오르막의 푹신한 흙 길이 반갑게 맞아준다.

 

벌써 낮게 깔린 구름의 무게를 못이긴 한여름 찜통 더위에 목덜미와 등줄기를 타고 흘러 내리는 땀방울 훔치기 바쁘지만 가끔 능선에 오르면 금새 시원하게 불어주는 상쾌한 새벽 공기가 있어 참으로 좋은 기분이다.

 

복잡한 서울과는 분명 다른 신선하고 상쾌한 기분, 무엇이라 정확하게 설명을 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몸에 익숙한 이런 기분 때문에라도 또 오게 되는가 보다.


일출인지 달이 지는건지 알 수 없는 기묘한 빛에 이끌려

 

오늘도 사하라님과 일여님이 선두에서 선등하시고 처음 산행에 참가한 기분존날 2님도 우람한 몸매를 과시하며 앞장서 따라가고 있다.

이 칠갑산은 중간에서 중간 리딩을 하고 후미에는 피그대장님이 수고를 아끼지 않고 계신다.

 

안부 지나 묘기를 지나자 선등하시는 사하라 대장님이 무전기로 길 찾기 문의를 해 오시고 이야기 나누다 보니 벌써 회룡 목장지나 중간과 한 20여분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시 후미대장님께 연락 취해 보니 우산 총무님이 힘들어 하신다는 전언이다.

자주 산행을 하지 못했기에 많이 어려울 것 같다며 그래도 총무란 직책에 빠지지 못하고 이렇게 합류해 주는 것 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한데 무엇을 얼마나 더 바랄 수 있겠는가, 그저 무사히 잘 따라 올라와 주길 바랄 뿐.

 


회룡 목장 입구에 서 있던 이정 표. 이 이정표를 보고 능선으로

 

열심히 선두 따라가다 보니 회룡목장으로 통하는 시멘트 길이 나오고 그곳을 따라 100여미터 전진하자 굳게 철문으로 막아 놓은 목장 입구 바로 앞에서 우측 능선길에 많은 대간 띠지들이 걸려 있다.

 

그곳으로 올라 다시 얕으막한 능선길을 오르니 옛고개가 나오고 조금 더 진행하자 벌써 회룡재이다.

용이 뒤를 돌아 보는 형상의 산세로 이뤄졌다 하여 용이 회귀한다는 뜻의 회룡재로 불렸다 하나 어둠 속에서 정확히 알 수가 없어 아쉬움만 남긴다.

 

잠시 쉬며 시원한 얼음물로 타는 갈증 달래니 후미가 도착되고 미니 단체사진으로 다녀 온 증거를 만들어 본다.

한시간 반 정도 예상됐던 산행이 약 30분 이상 단축된 것에 환호성을 지르며 다시 출발하자 몇몇 산우님이 큰 임도 따라 잠시 알바하는 사이 중간 선등하여 오르막 오르니 능선길이 참으로 푹신하니 좋다.

 


회룡재에 도착한 후미조 미니 단체 사진

 

큰비가 예상 되였으나 비도 내리지 않고 길은 이슬에 촉촉히 젖어 산행하기에는 최상의 조건을 주고 있지만 아쉬운 것은 전망이 없고 낮게 깔린 구름의 저기압으로 비 맞은 것보다 더 많은 땀이 흘러 내려 산행을 자꾸 더디게 만들고 있음이다.

 

더욱이 반바지를 입고 시작한 산행으로 허벅지와 종아리는 벌써 영광의 상처들이 생기고 산딸기 가시가 따끔 따끔 피부를 자극할 땐 정말로 정신이 아찔해져 온다.

그래도 그 아품 보다는 시원한 산행의 기쁨이 크기에 참아 본다.

 


개터재 이정 표

 

돌무덤 지나 작은 무명봉 우회하여 묘2기를 지나자 곧바로 개터재가 나온다. 이제 시간은 새벽 5, 민초들에게 유용하게 식량을 제공한 날짐승들이 많아 개터재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과 산세의 모양이 개들이 모여 살고 있는 모양이란 설이 있다고 들었지만 확인할 길이 없어 아쉬움이 크다.

 

다시 이철주님과 베짱이님 모시고 출발하려 하자 석불산님도 뒤따르고 이렇게 또 소구간을 통과한다.

512봉에 발자국 찍고 안부 지나 작은 봉우리 몇 개를 넘자 곧 윗왕실이 가까워 오는 것 같지만 시간을 보니 6시도 안된 새벽.

 

서쪽에 일출인지 아니면 달이 숨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기묘한 모습을 디카에 담고 내리막길 내려가니 선등대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시간이 빠르니 백학산에서 아침식사를 하자고.

동의해 드리고 윗왕실에서 다시 잠시 후미 기다리며 몇장의 추억거리 만들다 보니 이제 시간은 6 20분을 넘기고 있다.

 


윗왕실 동물이동 통로에서 미니 단체 사진

 

산세가 왕이 기거하는 왕궁과 같다하여 왕재라 하였으나 민초들이 왕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하던 시절 이였음으로 뒤에 실자를 붙여 왕실이라 불리게 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 왕실재.

 

1시간이면 도착할 백학산, 이곳에서 다시 한번 백두대간 산행의 진 모습을 만나 본다.

오르막 치고 올라가다 앞을 바라보니 거대한 산등성이가 앞을 가로막고 저곳이 백학산 이겠지 하고 오르면 다시 보이는 능선, 이렇게 3번을 자신과 시험하며 오르고 마지막 한 봉을 넘으니 보이는 백학산 이정석.

 


백학산 정상에서 아침 식사 후 첫 단체 사진

 

옛날 물 좋고 공기 좋던 이 산에 수많은 학들이 날아 와 앉아 있는 모습이 산에 눈이 내린 설산처럼 하얗다하여 백학산이라 불려지게 되였다는 산 백학산.

다시 그 옛날 날아 와 앉아 있던 학들을 볼 수 있기를 가슴속에 빌어 본다.

 

얼마나 반갑고 기쁘던지.

이제 시간은 7 10여분을 지나고 있다.

앞서 도착한 산우님들은 벌써 약간의 추위와 배고품을 느끼며 휴식을 취하고 잠시 후 속속들이 도착하는 산우님들로 정상이 북적대자 호화로운(?) 아침상을 펴 본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하이킹님이 무거운 배낭을 두개나 짊어지고 올라오고 알아 보니 왕언니님이 처음으로 근육통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다 한다.

일명 고춧가루 파스로 근육통 달래고 산행 하시며 이후부턴 힘들지 않으셨다 하니 그 작은 파스조각이 효험이 있었나 보다.

이렇게 도와주고 배려해 주는 산우님들이 있기에 아무리 어려움이 크더라도 잘 극복하고 완주란 단어를 생각할 수 있겠지.

 


백학산을 내려오며 처음으로 보이는 앞으로 가야 할 무명 봉

 

1시간 이상 맛난 식사며 단체 사진으로 절반의 성공을 자축하고 다시 산행길로 접어 든다.

이곳부터는 길찾기에 난해한 구간이라 알고 있기에 자주 선등대장님과 후미대장님께 연락하여 알바하지 않도록 서로 주의를 기울여 본다.

 


임도를 따라가다 다시 능선 대간길로 오르는 산우님들

 

갈림길과 임도가 번갈아 나오고 다시 농로 따라 가다 보니 과수원이 보이고 부부처럼 보이는 농부 두 명이 과수원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를 서두르고 계신다.

 

간단히 인사 드리고 2차로 차선을 넘어 개머리재 (소정재)를 지나니 다시 우측 능선길로 많은 대간 띠지들이 보이지만 뒤에는 아무도 따라 오질 않고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걸으면서 잠이 와 잠시 누워 잠을 자고 왔다니 이럴수가.

 


개머리재 내려오며 본 사과 과수원. 탐스런 사과가 시선을 잡는다

 

산세가 개의 머리를 닮은 형상이라 하여 개머리재 또는 소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소정재라 불리기도 하는 곳이 바로 개머리재이다.

 

나도 능선에 올라 한 30여분 이상 자리 깔고 누워 보지만 아직도 보이는 산우님 한 명 없이 그렇게 따분한 시간 보내고 있다.

후미대장님께 연락하니 아직도 멀었다는 답변만 들릴 뿐, 함께 오를 산우님 한분 올라 오질 않으니 더욱 마음만 답답할 뿐이다.

 

깜빡 잠이 들쯤, 아래쪽에서 큰 목소리들이 들리고 곧이어 다향님과 솜이님 그리고 고산자님과 료가님, 석불산님의 등장으로 자리 접고 합류해 본다.

 


대간길 양옆으로 펼쳐진 밭 작물들, 손상돼 가는 대간길이 아쉽지만

 

다시 얕으막한 능선길을 따라 진행하다 보니 시야가 트이면서 많은 잡초가 우거진 평지가 나오고 그 아래엔 다시 많은 과수원이 길 양편에 들어서 있다.

많은 아주머니들이 파아란 포도밭에서 포도를 손질하고 있으며 9월에 출하되니 많이 이용해 주고 또 다시 이곳을 들려 달라 이야기해 주신다.

그저 만나면 반갑고 또 그리운 농부님들.

 

중간중간 백두대간 산행하는 산우님들을 위한 숙박 및 택시 안내판도 보이고 그렇게 또 2차선 도로를 지나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란 큰 입간판이 붙어 있는 지기재도 통과한다.

 


이렇게 비포장 임도도 걷고 또 2차선 도로도 건너 가야 하는 대간길

 

옛날에 도적들이 많아 통행하는 민초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던 고개로 처음엔 적기재라 불렸지만 언제부터 인가 지기재로 불리게 되였는데 이 지방 사람들의 발음 즉 사투리가 변형돼 지기재라 불리게 되였다고 한다.

 


오랫만에 찍어 보는 대간 능선 길

 

지금 보니 3차 구간 때처럼 다시 마을을 통과하여 대나무 밭을 돌아 능선길로 오르다 다시 시멘트 포장길을 돌아 나오자 막바지 대간 능선길이 반겨준다.

이곳에서부터 솜이님 그리고 료가님과 많은 이야기 나누고 따가운 햇살 등지고 바위길 넘으니 언제 도착했는지도 모르게 신의터재 이정석에 도착한다.

 


산행 완주 후 신의터재에서 찍은 단체 사진

 

원래 이름은 신은현이라 불렸는데 일제 시대 때 어선재로 개명 되였다가 1995년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준신이 이곳에서 의병들을 모아 상주성에서 왜적을 물리치고 장렬하게 순직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신의터재란 이름으로 최종 개명되였다고 전해지는 곳 신의터재.

 

앞선 산우님 4명은 벌써 계곡으로 달려가 없고 속속 도착하는 산우님들과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어려움 털어내니 마지막 후미까지 오후 1시 이전에 도착이다.

 

참으로 빠른 산행에 즐거운 대간길 이였음을 자축하며 단체 사진 한 장으로 하루의 무사 완주에 마침표를 찍는다.

식당으로 가기 전 개울에서 알탕으로 찌든 소금기 빼내고 반주 곁들여 맛난 음식으로 점심 해결하니 아직 해가 중천에 떠있다.

 

오후 3,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세상 모르게 잠에 취해 꿈꾸다 보니 저녁 7시도 안된 시간에 벌써 사당에 도착하여 다음 회차를 기약하며 손 흔들어 안녕을 고한다.

 


9월이 되면 출하가 가능하다니 그때 한번 맛보고 싶은 포도 송이들

 

이번에도 선두에서 수고해 주신 사하라 선등대장님과 일여님께 감사 드리고,

중간 중간 다른 산우님들을 위해 봉사해 주시고 배려해 주신 도롱골님, 고산자님 그리고 하이킹님께 무한한 고마움 전해 드리고,

늘 후미에서 많은 수고 해 주시는 피그대장님께도 진심어린 감사를 드림니다.

 

또한 처음 백두대간 산행에 참여하여 멋진 완주 일궈주신 기분존날 2, 앞으로도 백두대간 산행에서 자주 뵙자 청해 봅니다.

 

그리고 함께한 모든 백두대간 종주자님들, 하늘이 도와주고 서로 신뢰하며 조금씩 지나온 길이 벌써 삼분의 일이 넘는 길이로 남겨지게 되였네요.

 

늘 감사하며 고마운 마음 전해 드리며 더위에 건강 유의하시고 다음 회차에도 밝은 모습으로 다시 인사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간마루금 백두대간 산행대장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