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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제1차(산행완료)/백두대간 산행 후기

제8차 백두대간 산행(우두령- 추풍령, 6월 1일과2일 무박2일)

by 칠갑산 사랑 2007.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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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마루금 제1기 백두대간 제8차 산행 일지 (우두령, 질매재에서 추풍령까지)

 

 

산행날짜 : 2007년 6월 01일부터 02일까지 (무박 2일)

산행날씨 : 새벽에 운무와 안개 아침부터 맑고 화창한 초여름 더위

산행온도 : 새벽 영상 12도에서 낮 최고 영상 25도

참가인원 : 총 35명(존칭생략) 칠갑산, 우산, 은수, 쑤꿀, 김현우, 행자, 산하, 양형렬, 하이킹, 료가, 이철주, 자우롬, 물사맨, 왕언니, 수박, 고산자, 사하라, 석불산, 정우, 일여, 돌소리, 사강, 설총, 강시몬, 운산, 바드, 솜이, 따스, 베짱이, 청목, 볼켄, 피그, 강태공, 산사람, 짝꿍

산행코스 : 우두령(질매재)-870봉-삼성산(985.6)-여정봉(1030)-바람재-신선봉 갈림길-형제봉-황악산(1111)-백운봉(770)-천덕산 운수봉(668)-여시골산-괘방령-가성산(730)-장군봉(625)-690봉-눌의산(744.5)-추풍령

산행거리 : 22.86 Km, 접속구간 00.00 km

산행시간 : 선두 9 시간, 후미 11 시간 30분

준비물 : 물 1.5 리터, 이온음료 0.8 리터, 이슬이 0.4 리터, 과일 젤 2봉, 육포, 방울 토마토, 아침 밥, 빵, 방수방풍의, 모자, 땀수건, 목수건 2개, 헤드렌턴 2개 및 예비 건전지, 가위, 칼, 압박붕대, 테이핑, 에어파스, 구급약, 프랭카드 및 띠지, 디카 및 예비 건전지, 모발폰 및 예비 건전지, 무전기 3대, 휴지 2봉, 키친 타올 1롤, 쓰레기 봉투 2개

버스에 두고 간 준비물 : 갈아 입을 옷 한 벌, 슬리퍼

교통수단 : 45인승 버스 1대 신평고속관광 양기중 기사님

 

상세일정 :

01

23:10 사당역 출발

23:25 경부고속도로 TG 통과

23:30 신갈 정류장 출발

23:42 기흥 휴게소

02

02:25 황간 휴게소

03:25 우두령(질매재) 도착

04:10 산행 시작

04:21 호초당산 갈림길(870봉, 길주의, 진행방향에서 좌측이 대간길)

04:32 삼성산(985.6봉)

04:50 여정봉(1030봉)

00:55 헬기장

04:58 첫 임도(길주의, 임도 좌측길 따라 진행)

05:01 능선길로(길주의, 임도 따라 1분 정도 걸은 후 좌측 능선길로)

05:03 두번째 임도길(길주의, 좌측으로 임도 따라 진행)

05:07 다시 능선길로(길주의, 5분여 임도 따라 내려가다 전봇대에서 좌측 능선길로)

05:13 바람재

05:21 두번째 헬기장

05:36 신선봉 갈림길(길주의, 진행방향에서 좌측이 대간길)

05:49 형제봉

06:02 직지사 갈림길

06:07 황악산(1111.4봉)

06:13 헬기장

06:16 두번째 헬기장

06:28 나무쉼터

06:48 백운봉(770봉)

07:21 사거리 안부

07:35 천덕산 운수봉(668봉, 아침식사)

08:31 매몰동굴

08:47 여시골산

08:50 620

09:13 괘방령(길주의, 우측으로 포장도로 따라 약 10여미터 진행 후 좌측 능선길로, 식수구함)

09:43 418

10:24 갈림길

10:56 십자로 안부

11:11 갈림길 (휴식 및 간식)

12:09 헬기장 및 가성산(730봉)

12:31 장군봉(625봉)

12:55 690

13:16 헬기장

13:21 헬기장 및 눌의산(744.5봉)

14:56 임도 및 감나무 밭과 포도밭

15:08 경부고속도로 지하통로

15:11 임도 따라 철길 건널목

15:14 우측 포도 밭 쪽으로 임도 이용

15:16 우측 지방도로 하부 따라 진행

15:18 추풍령 표지석(노래비, 산행 종료)

 

 

마지막이란 단어가 가슴을 짓누른 멀고도 아픈 사연을 이겨내며 완주한 대간 길

 

 

하루 하루 백두대간 제8차 산행 일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미칠 것 같은 암울함이 가슴을 옥죄어 온다.

즐기며 재미 삼아 시작한 산행에서 왜 이런 슬픈 기억을 만들며 또 가슴 아픈 사연을 이야기해야 하는 고민도 심하다.

 

내 자신 아름 산 방에서 최고의 시간과 최선을 다한 산행만을 했건만 마지막과 헤어짐이란 단어가 주는 중압감에 처음으로 잠 못 들고 하룻밤을 지새운다.

가장 마음 아픈 것은 그 동안 정들었던 대간 산우님들과의 언제 만날지도 모를 작별을 고해야 한다는 사실이 내 자신에게 용납되질 않는다.

그래도 떠나야 하는 대간 길.

 

 

 

 

언제나처럼 사당 역에서 만난 산우님들은 지난 회 차와는 다르게 무엇인가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이것 저것 많은 질문을 하고 계신다.  

일단 상세 이야기는 산행 완료 후 나누기로 하고 내 자신의 간략한 심경과 결정만으로 여느 때와 동일하게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한다.

 

이제 같은 아름산방의 산우가 아닌 산을 좋아하는 동료로서 행자님을 만나니 인생무상이란 단어가 저절로 입가에서 튀어 나온다.

왜 이리 멀어져야 하는지 그리고 또 왜 그리 그리워지는지.

 

경북과 충북이 맞닿는 가까운 거리이기에 황간 휴게소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들머리에 도착하니 새벽 3시 조금 넘긴 시간.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일기 예보와는 달리 짙은 농무와 안개만이 일년 내내 우두령을 지키고 있는 황소가 무심한 우리 35명의 대간 종주자들을 반기고 쓸쓸함과 그리움을 남기고 대간 띠지가 휘날리는 들머리 지나 된비알 오르막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숨가쁜 어려움과 고달품, 언제 다시 이 길을 다시 밟아 볼 수 있을까 생각하니 한발 한발 가슴이 시리도록 그 길이 그리움으로 변한다.

너무나 짙은 농무가 고마움으로 다가오고 얼굴에 흘러 내리는 눈물이 콧물인지 아쉬움인지 자꾸만 시야를 흐리고 있다.

 

 

길 찾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선답자들의 글을 보았건만 호초당산 갈림길도 잘 지나고 한참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 보니 여명은 밝아 오지만 햇님을 볼 수 없는 막힌 시야.

 

전망이 전혀 없는 삼성산을 지나 다시 얕으막한 능선 길을 따라 발길 닿는 대로 진행하다 보니 벌써 여정봉에 도착한다.

선등하시는 사하라 선두대장님이 가끔 재미난 이야기로 길잡이 해 주시고 오랜만에 합류한 우산 총무님이 힘들어 하신다는 후미대장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일단 바람재까지 가서 기다리자 생각하며 계속 전진해 본다.

 

이제 헤드렌턴도 필요 없을 만큼 날이 밝아 오지만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 대간길의 서러움을 감추기라도 해 주듯 안개와 농무는 떠날 줄 모르고 그렇게 우리를 따라 오고 있다.

 

 

 

갑자기 약간의 시야가 트이면서 발목을 적시는 깊은 러프 위에 영롱하게 방울져 흘러 내리는 안개비가 여정봉을 지나고 있음을 알리고 저 멀리 희미하게 목초지 같은 넓은 평야지대가 나타나지만 제한된 시야로 인해 확실치는 않다.

 

중계소 탑이 앞을 가로막는 임도로 내려서자 바로 앞에서 세상을 깨우는 선두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고 좌측으로 방향을 틀자 이제서야 선두 팀이 중계 탑 쪽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긴 시간은 아니라도 여기에서 약간의 알바를 하면서 그 중계 탑까지 구경하고 내려 오신다니 그것이 자랑인지 부끄러움인지 모를 약간의 민망해 하는 목소리로 변한다.

 

다시 후미조에 길주의 시키고 행자님과 우산님의 몸 상태를 확인하니 아직은 큰 무리없이 진행할 수 있겠다는 희소식에 그대로 진행해 본다.

다시 두번째 임도를 만나 진행하다 전봇대가 서 있는 좌측 능선으로 접어 드니 잡목인지 목장의 초원인지 시야가 트이면서 저 멀리 넓은 헬기장 한쪽에 작은 바람재 이정석이 외롭게 그곳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선두 팀과 다시 합류하여 뿌연 농무 속에 추억 한 장 만들고 선두를 보낸 후 후미 조를 기다려 본다.

온 몸이 비릿한 땀과 농무에 흠뻑 젖어 비 맞은 생쥐 꼴로 변했지만 아직 날씨로 인한 어려움이 없었기에 그나마도 고행중의 고행이라 느껴질 만큼 상쾌하지는 못하다.

 

너무 간격이 벌어져 다시 출발하여 오르막 힘들게 오르니 신성봉으로 하산하는 갈림에 도착하고 여기에서 처음으로 약간의 과일과 간식을 나누며 이야기 꽃을 피워본다.

저 멀리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 보지만 어차피 잡목들과 안개로 인해 당분간 보여주기 싫은 모양이다.

 

 

직지사

김천역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진 황악산 기슭에 있는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418년) 아도화상이 세웠다. 절 안 주위의 울창한 오랜 소나무와 깊은 계곡의 맑은 물, 가을의 단풍이 절경이며, 주위의 조경과 잘 어울려 있다.
경내엔 1천구의 아기부처가 나란히 안치되어 있는 비로전(일명 천불전)이 있으며,  1,000년 묵은 칡뿌리와 싸리나무 기둥의 일주문과,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건물인 대웅전, 통일신라시대 작품인 높이 1.63m의 석조약사 여래좌상(보물 319호)이 있다.
한편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제불교연수회관이 1994년 5월에 준공되었다. 

 

 

황악산에서 모두 모여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 떠난다 했기에 급할 것은 없지만 아픈 마음이 자꾸 발길 보채고 약간의 오르막 오르니 벌써 형제봉이다. 하지만 아무 이정표도 없으니 이곳이 형제봉이란 사실은 단지 지도를 통해서만 알 수 있을 뿐.

다시 힘내 직지사 갈림길에 도착하고 잠시 몇 년전 다녀 온 직지사를 생각해 본다.

 


 

 

황악산

높이는 1,111m이다. 예로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黃鶴山)으로 불렀다고 하며 지도상에도 흔히 그렇게 표기되어 있으나, 직지사(直指寺)의 현판 및 《택리지(擇里志)》에는 황악산으로 되어 있다.

서남쪽에 연봉을 이룬 삼도봉(三道峰:1,176m)·민주지산(珉周之山:1,242m)과 함께 소백산맥의 허리부분에 솟아 있다. 주봉(主峰)인 비로봉과 함께 백운봉(770m)·신선봉(944m)·운수봉(740m)이 치솟아 있으며, 산세는 평평하고 완만한 편이어서 암봉(岩峰)이나 절벽 등이 없고 산 전체가 수목으로 울창하다. 특히 직지사 서쪽 200m 지점에 있는 천룡대로부터 펼쳐지는 능여(能如)계곡은 대표적인 계곡으로 봄철에는 진달래, 벚꽃, 산목련이 볼 만하고 가을철 단풍 또한 절경을 이룬다. 그밖에 내원(內院)계곡과 운수(雲水)계곡의 경관도 뛰어나다.

북쪽의 괘방령(掛傍嶺)과 남쪽의 우두령(牛頭嶺)을 통해 영동군김천시를 잇는 지방도가 지난다. 정상에서는 서쪽으로 민주지산, 남쪽으로 수도산가야산, 동쪽으로 금오산, 북쪽으로 포성봉이 보인다. 등산시에는 직지사와 운수암을 거쳐 주능선에 도달하는 3~5시간 정도 되는 산행을 하게 되는데, 계곡길은 가파르지만 능선길은 경사도 완만한 편이다. 겨울의 설화(雪花)와 가을의 단풍이 아름다운 산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 깔딱을 치고 오르니 이미 선두팀 산우님들은 오래전에 도착하여 휴식 취하며 세차게 불어오는 찬바람에 서서히 추위를 느끼고 계신다.

다시 후미조와 연락하니 15분여 후면 도착한다는 연락에 모두 편한 자세로 휴식을 갖는다.

 

한분 두분 산우님들이 쏙쏙들이 도착하시고 마지막 후미대장님이신 피그님이 두개의 무거운 배낭을 양 어깨에 메고 올라오는 모습에 미안함과 고마움을 보낸다.

 

 

 

이제 처음으로 단체 사진 한장 찍고 다시 급경사 내리막을 조심 조심 하산하여 아침식사 약속장소인 천덕산 운수봉으로 향한다.

가는 길목에 나무 의자며 몇 개의 간이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며 이곳이 주변 사람들에게는 지역의 영산으로 대접 받으며 사랑 받고 있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간 특유의 작은 봉 몇 개를 넘어 백운봉을 지나니 이제 뱃속에서도 힘들다며 먹거리 좀 달라 조르기 시작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따스님이 준비해 온 비빔밥 파티가 예정되어 있기에 혼자 먹을 수 없는 아침식사.

모두 모여 넓찍한 비닐속에 그 많은 밥과 나물 그리고 고추장과 고소한 기름까지 넣어 쓱싹 비비니 이것이 정말 대간길에서 맞이하는 아침상이란 말인가.

 

특히 선두에서 매번 간단한 김밥으로 한끼 해결하시던 선두팀들은 눈이 휘둥그레 커지면서 오늘은 꼭 그 비빔밥 맛 좀 보자 달려들어 발디딜 틈도 없이 북적이고 있다.

따뜻한 찌게까지 그리고 빠질 수 없는 한잔의 알코올들.

 

운수봉에서의 잊지 못할 한시간여 아침상을 비우고 다시 시작된 내리막 산행에서 좌측이 대간길인 것을 우측으로 잘못들어 약간의 알바를 하고 제길 찾아 마루금 밟으니 매몰동굴이 큰 입 벌려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잠시 좀 더 진행하니 어느새 여시골산이다.

 

 

다시 가파른 내리막 지나 임도를 건너니 저 멀리 괘방령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거대한 돌탑과 괘방령에 대한 설명 그리고 비어있는 가옥에 들어가 빈 물통 채우니 어느덧 따가운 햇살이 머리위에 떠 있고 계절보다 한참이나 앞서가는 기온에 벌써 지치고 땀벅범이가 되어 가고 있다.

 

 

짝꿍님과 많은 이야기 나누고 다시 시작된 능선 오르막길.

큰 활엽수와 소나무가 그날 만들어 산행에는 좋으나 가성산에 이르는 그 길이 왜이리 지루하고 멀게 느껴지는지.

가도가도 끝이 없고 앞에 보이는 저 산이 가성산 이겠지 생각하고 오르면 다시 나타나는 봉우리들.

 

몇몇 구간에서 경험은 했지만 오늘 내 자신이 무척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래도 꾹 참고 전진하다 보니 정말 마지막 큰 봉 하나가 가까이에서 수고 많았다면 방긋 웃음주고 있다.

 

가성산 못비쳐 넓은 공터에서 대간 오락부장이신 양형렬님이 준비한 시큼한 홍어에 김장김치 싸 몇 조각 먹으니 콧속이 뻥 뚤리며 이제사 좀 정신이 드는 것 같다.

잠시 후미조까지 기다려 다시 한 그룹으로 진행하니 가장 힘들고 지루한 가성산이 작은 이정석으로 돌무덤 위에 앉아 있고 그곳에서 아름다운 인연의 마지막 추억을 또 한장 만들어 본다.

 

 

이제 제법 뜨거워진 날씨 속에 얼음물도 떨어지고 힘겹게 진행하니 장군봉이 반갑게 맞아주고 다시 내리막 경사 지나 한참을 오르락 내리락 하니 넓은 헬기장을 앞뜰에 두고 당당히 그곳을 지키고 있는 눌이산이 보인다.

 

 

앞쪽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경부고속도로와 한가로운 시골 마을이 정겹게 두 눈에 들어오고 여기에서 마지막 남아 있는 먹거리 펼쳐 하루의 마감이 임박했음을 알린다.

 

 

다시 후미 조 기다려 방 빼 주고 급경사 긴 내리막 내려오니 과수원이 보이고 호화묘기도 몇 기 보이기 시작한다.

복숭아와 감나무 밭 그리고 포도 주산지를 자랑이라도 하듯 반듯하게 정렬된 드넓은 포도밭을 지나니 경부고속도로 지하 통로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좌측으로 다시 포도 과수원을 빠져 나오니 시골 아낙이 철길 건널목에서 이 고장 유래며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 주고 있다.

 

 

이미 많은 산우님들이 하산하여 자유 복장으로 소리 질러 반겨 주고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목 축인 후 다시 못 올지도 모를 다음 구간 들 머리를 찾아 바쁘게 돌아 본다.

 

우측에 새로 만들어진 4차로 지방도로를 따라 마을과 포도 밭을 지나니 많은 대간 띠지들이 보이고 그곳이 다음 우리들의 들 머리임을 확인하니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정신이 몽롱해 지기 시작한다.

 

 

뒤돌아 오는 길에 추풍령 이정석 노래 비에 모여 아름 산에서의 마지막 단체 사진 찍고 늦은 점심을 위해 버스에 올랐다.

 

 추풍령(221m) :

'구름도 자고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굽이마다 한많은 사연/ 흘러간 그 세월을 뒤돌아 보는/ 주름진 그 얼굴에 이슬이 맺혀/ 그 모습 흐렸구나 추풍령고개…' 흘러간 유행가를 통해서도 우리 귀에 익숙한 추풍령(秋風嶺·해발 221m)은 경북 김천시 봉산면과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이 경계를 이루는 고개.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나뉘는 백두대간 고갯마루이지만 경사가 완만해 승용차를 타고 가면 고개라는 것조차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특히 요즘은 이곳을 지나는 국도 4호선 확장공사 고개 정상에 세워져 있던 '추풍령 노래비'마저 잠시 철거돼 어디가 추풍령인지도 분간하기 힘들다.

임진왜란 의병장 장지현(張智賢)이 왜군과 분전하다가 장렬히 전사한 곳이기도 한 추풍령은 과거 조령(烏嶺), 죽령(竹嶺)과 함께 군사적 요충지이자 한양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조령과 추풍령은 나라가 관리한 관로(官路). 길이 더 잘 닦여 있었던 터라 추풍령이 말을 타고 달리기에는 더 나았지만 과거길 선비들은 이 고개를 애써 피해갔다. 추풍낙엽(秋風落葉), 즉 낙방을 연상케 하는 이름 때문이었다.

과객들은 추풍령 대신 6km 정도 길이 더 멀고 험한 김천 대항면과 충북 영동군 매곡면 상촌리 사이 '궤방령'을 더 많이 이용했다. 더욱이 궤방령의 '방(榜)'자는 합격자 발표 때 붙이는 '방(榜)'과 같은 글자다.

이 무렵 추풍령은 주막거리로 흥청거렸다. 1905년 경부선 철도 부설 후에도 추풍령 부근은 식당이 즐비하고 여인숙도 두 개나 있는 번화가였다.

일본인들이 김천은 몰라도 추풍령은 알던 시절. 그러나 추풍령의 호황은 1970년 7월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먼지 폴폴 날리던 길에 지쳐 추풍령에서 으레 먹고 자고 다시 길을 떠나던 차들이 반나절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고속도로를 이용하면서 추풍령을 잇는 국도는 통행량이 급격히 줄었던 것.

현재는 백두대간을 산행하는 산악인들이나 드라이브 나온 연인들이 빈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추풍령 고개를 따라 도로변에서 성업을 누리던 상가들도 하나 둘씩 떠나 지금은 썰렁한 분위기다.

고개 아래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인구도 1960년대 8천여 명이던 것이 지금은 2천800여 명으로 급감했다. 게다가 최근엔 추풍령 면소재지 우회도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4, 5년 후 이 도로가 완공되면 대부분 차들은 추풍령을 그냥 지나칠 것으로 예상돼 상가 업주들의 걱정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황인성(56) 영동군의원(추풍령면)은 "면소재지 우회도로 공사가 완공되면 추풍령은 기억 속에서조차 지워질 우려가 크다"며 "추풍령을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주민들 중심으로 '추풍령 보존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공원화 등 많은 노력을 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추풍령 할매갈비' 식당 이명선(45)씨는 "23년째 장사를 하는데 차량 통행량이 급격히 줄어 일대 업소들이 심각한 영업부진을 겪고 있다"며 한때 번화했던 추풍령의 옛 명성을 아쉬워했다.

추풍령 정상 부근에서 12년째 기사식당을 운영하는 송점순(56)씨는 "충북은 밤 12시 통행금지가 없었던 곳이어서 예전엔 통행금지를 피해 경북 쪽에서 추풍령으로 술 마시러 오는 술꾼들도 많아 재미가 쏠쏠했다"며 "외지인들 발길이 뜸한 데다 우회도로 개설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발췌: 매일신문 2005-05-14)

 

이제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를 나눠야 되는 순간, 속마음은 이번에 쫑을 내고 홀로 하는 대간 길을 생각해 보지만 이야기하면서 산우님 들의 대간 사랑이 남다름을 알고는 홀로 부끄러운 얼굴 들 수가 없었다.

인생에서도 이런 굴욕과 패배를 경험하지 못한 내 자신을 원망하며 서울에 돌아 와 다시 바쁜 마음 추스리며 다음 구간을 생각하니 이제 어제 그리고 오늘 가슴 아팠던 기억이 한낮 무수히 새벽 대간 길에 떠도는 운무중의 한 조각 이였음을 깨 달고 제9차 추풍령 노래를 목놓아 부르며 기쁨의 눈물을 뿌려 본다.

 

< 소 주 > - 고 양 규

 

흐르는 세월에
소주를 부우며
기억 밖의 그사람을
그려본다

사랑하던 시절
향기롭던 그 시절
조금씩
그리움을 삭혀 가며
아름다운 시절을 뒤로하며
잔을 비운다.
다시 잔을 채운다.

 

 

 

오늘도 선등하시며 수고하신 사하라님과 볼켄님, 늘 고생하시는 모습에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는데 이 시간 진심으로 감사 드림니다. 

또한 선두와 중간이 아무 걱정 없이 진행 할 수 있도록 모든 어려움 참고 후미 이끌어 주신 피그 대장님, 무엇으로 보답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픈 다리 이끌고 힘겹게 완주하신 행자님, 오랜만에 동참하여 다른 산우님들게 피해 드린다며 그 어려운 고통 참아내시며 완주하신 대간 안방 마님 우산님, 감사 드림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함께 그 먼길 편하지 않은 산행 함께 하며 격려 주시고 용기 주신 산우님들, 정말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이 칠갑산은 여러 대간 종주자님들이 계시기에 존재하며 앞으론 오직 하나 백두대간 산행만을 위한 산행대장으로서 여러 종주자님들과 함께 향로봉에서 가슴으로 느끼는 뜨거운 눈물을 어루만지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 드림니다.

 

늘 건강하시고 다음 회차에 즐겁게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산행대장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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