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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기양지맥(대간.완)

기양지맥 마지막 제2구간 수정리고개에서 감천 합수점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21.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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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북도 상주시와 구미시의 기양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1년 12월 10일 (금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흐리고 박무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02도에서 영상 11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수정리고개(916번 선상서로 2차선 포장도로, 수정리 버스정류장)-잡목등로-그린레미콘(912번 신촌옥관로 2차선 포장도로)-신오리(석거실) 버스정류장-창원김씨세거비-시멘트 포장도로(천년초농장 이정판)-비포장임도-밭경작지 임도-비포장임도-능선진입-452.3봉(이정판)-비포장임도-362.9봉(띠지들)-379.8봉(띠지들)-길주의 지점(비실이 띠지)-409.4봉(이정판)-길주의 지점(띠지들)-목장철책-목장철책과 이별-329.5봉 (잘려진 이정판, 띠지들)-길주의(비실이부부 우측)-키작은 소나무등로-무명묘지-무명묘지2-옥성감영농조합법인(꽃감생산단지)-시멘트 포장도로-주아령로 2차선포장도로-주아현(주아령로 2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굵은 활엽수와 무명묘지-비포장임도-능선진입-346 무명봉(띠지들)-무명묘지와 벌목토막-공터 밑둥봉-형제봉(532봉, 정상석, 이정목, 형제봉 등산로 안내판)-억새마대 하산등로-길주의(붉은띠지, 좌측)-억새마대 계단-비봉산(형제봉)01.09 이정목 안부-바위암봉-억새마대 계단-바위암릉-숲길 갈림삼거리 이정표(헬기장, 형제봉, 숲길)-헬기장(513미터)-굴(안전목책과 로프설치)-497 무명봉(이정목 비봉산 01.08) 이정표(임도 0.6 Km와 부처바위 1.4 Km, 513미터 헬기장 0.02 Km와 531미터 형제봉 0.8 Km, 솔바람길 마당숲 1.3 Km)-사각나무 계단-비포장임도와 시멘트 포장도로 경계(아름다운임도 안내도, 구미의 걷기좋은길 9선 선산뒷골 명상의 길) 이정표(부처바위, 옛길합류 80m, 선산복합체육시설 임도 3.3 Km)-사각나무 계단-도상 갈등고개 갈림사거리 안부 이정목(비봉산 01.07) 이정표(부처바위 0.5 Km, 휴양림 옛오솔길 1.2 Km, 임도 0.1 Km와 형제봉 1.1 Km, 뒷골 체육공원 1.6 Km)-6.25 전사자 유해발굴 무명봉-부처바위(암봉, 벤취쉼터3, 부처바위라 불리우는 내력) 이정목(비봉산 01.06) 이정표(충혼탑 3.7 Km, 현 시점 열량소비량)-오르막 계단-벤취쉼터1 무명봉-무명봉(돌탑, 사각탁자, 벤취쉼터, 운동시설)-433.8봉(이정판)-잡목등로-무명안부-잡목등로-무명봉-무명안부-바위암릉-신산(457봉, 이정판, 띠지들)-436 깨진 삼각점봉-소나무 등로-잡목등로-전망바위-잡목등로-길주의(붉은띠지, 좌측)-묘지2기-무명묘지-일선김공 묘지2-시멘트 포장도로-금오고개(59번 선상동로 2차선 포장도로, 백두산반점과 신선한우마을 식당)-순흥안공 묘지들-가시잡목과 절개지 등로-생태이동통로(가시잡목, 33번 선산대로 4차선 포장도로 통과)-급경사 오르막 절개지-가시잡목 철망-대현산 갈림삼거리-대현산(265.4봉, 법광띠지)-갈림삼거리 복귀-길주의(무영객, 우측)-잡목등로-숲길따라 도보여행길 안부 이정표(교리 0.7 Km, 생곡리 1.5 Km, 교리 1.4 Km)-멧돼지 목욕탕-그물망과 녹슨철망 등로-인식불가 삼각점 무명봉-그물망과 녹슨철망 등로-무명안부-그물망-그물망과 녹슨철망 등로-공터 무명봉-공터 무명봉(무한도전)-타이어 교통호-211봉 인식불가 삼각점과 타이어 교통호봉-비포장임도-제선충 더미들-공터 무명봉-묘지들-비포장임도-묘지들-잡목과 잡풀등로-묘지들-흰터고개(조남로 2차선 포장도로, 거대축사)-잡목등로-경주이공 평장들-잡목등로-한양조공 묘지와 사라지는 묘지들-비포장임도-묘지들-제선충 더미들-묘지들-원리고개(유학길 2차선 포장도로, 거대 축사)-영월엄공 묘지들-잡목등로-널부러진 고사목등로-비포장임도-독립지사 안강노공 묘지들-대곡정 팔각정 이정표(금오서원 1.6 Km와 봉수대 0.5 Km, 남산주차장 0.6 Km)-통나무 계단-벤취쉼터 3-전주이공 묘지들-경주노공 묘지들-169.3 삼각점봉(구미302 삼각점, 이정판)-구미 남산 봉수대 설명판-비포장임도-김종직 설명판-길재 설명판-금오서원 설명판과 벤취쉼터3-통합관리센터 갈림삼거리 이정표(금오서원 0.7 Km, 통합관리센터 0.5 Km, 봉수대 0.2 Km와 제1전망대 0.3 Km)-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전주이씨완창대군 후손묘지들-이정표(금오서원 0.6 Km, 봉수대 0.4 Km와 제1전망대 0.5 Km, 통합관리센터 0.7 Km)-159봉(굵은 소나무2)-묘지들-비포장임도-무명묘지2-일선김공 묘지들-무명묘지2-밭경작지-무명봉(굵은 참나무)-유학길 2차선 포장도로-이정표(금오서원 0.7 Km, 통합관리센터 0.8 Km와 구미보 1.1 Km)-퍼블릭골프장과 게이트장-감천 합수점-산행종료

산행거리 : 23.31 Km (수정리고개에서 감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합수점까지)

산행트랙 :

20211210 기양지맥 제2구간 수정리고개-감천 합수점.gpx
0.16MB

 

산행시간 : 09시간 52분 (07시 09분부터 17시 02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5시 30분 구미시 선산읍 엘비모텔에서 기상 후 샤워하고 모텔 출발

                            05시 50분 선산읍 편의점에서 미역국과 김치로 아침 해결(6,300.-원)

                            06시 35분 기양지맥 제2구간 김천 날머리 근처의 원리에서 카카오택시 호출

                            07시 09분 기양지맥 제2구간 들머리인 수정리고개에 도착 해 산행 준비 후 곧바로 산행 시작(28,000.-원)

                    올때 - 17시 02분 감찬이 낙동강과 만나는 합수점에서 원리 도로까지 뒤돌아 나와 곧바로 귀가

                            20시 20분 생각보다 막히지 않는 도로를 타고 일찍 귀가 후 가족들과 저녁식사

기양지맥이란 ???

기양지맥은 백두대간 웅이산(국수봉, 794봉) 남쪽 0.6 Km지점인 무명봉(청운봉, 734봉)에서 동쪽으로 분기하여 여남재(3번국도), 백운산(631봉), 기양산(705봉), 수선산(683봉), 주아현, 형제봉(532봉), 신산(457봉)를 지나 감천이 낙동강에 합수하는 구미시 선산읍 원리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45.8 Km되는 산줄기로 감천(69 Km)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이틀 연속 장거리 산행에 어렵고 힘들었지만 감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합수점에서 익숙치 않았던 기양지맥을 모두 마무리하고 기분좋게 귀가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기양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경북 김천시와 구미시 및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그리고 네이버의 지식백과와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어제 고도 편차가 있는 등로에 수북히 쌓여있는 활엽수 낙엽들로 미끄러운 산줄기를 타고 긴 거리를 걸어 수정리고개까지 진행하고 나니 조금은 여유가 생겨 오늘은 여명이 밝아 오는 시간에 산행을 시작하는데 다만 오늘도 산행 거리가 만만치 않아 일찍 마무리하고 귀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실제 산행거리가 54 Km 가까이 되는 산줄기를 이틀에 마무리하고 올라 갈 수 있음에 감사하며 기분 좋게 시작을 하는데 400 - 500미터의 봉우리들을 오를 땐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힘들고 어렵게 오르며 진행을 하고 다시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가는 시간에 드디어 감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합수점에 서서 무탈하게 마무리하는 기양지맥 완주를 자축하다 보니 어느덧 서서히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매주 이틀간 이어지는 산행에 조금은 피곤함도 느끼지만 마음은 조금 더 깨끗하게 정화되는 기분으로 또 일주일을 보낼 수 있으니 피곤함을 달래며 또 다른 산줄기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도 해 본 시간이었다.

 

초반에는 포장도로와 비포장임도 그리고 나즈막한 능선 등로를 따라 속도가 났지만 형제봉과 신산 지나 금오고개를 넘으니 잡목이 무성한 생태통로를 통해 33번 선산대로 4차선 포장도로를 통과하니 가파른 절개지가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느끼는 산객의 의욕을 저하시킨다.

다시 흰터고개 넘어 마지막 원리고개까지 통과해 오르니 거대한 왕릉을 만들듯 설치된 독립지사 안강노공 묘지들이 나타나고 잠시 그곳으로 올라 뒤돌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기양지맥 마지막 전 구간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으며 그 이름들을 불러본다.

사진 우측으로 대현산이 보이고 그 바로 좌측 뒤로 선산이 솟아 있으며 그 선산 좌측인 사진 정중앙부 뒷쪽으로 형제봉 지나 좌측 뒤로 어제 넘었던 수선산과 기양산 줄기가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이틀 연속 장거리 산행으로 몸도 피곤하고 특히나 이 산객에게 익숙하지 않은 기양산과 기양지맥 산줄기를 타고 드디어 감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합수점에 도착을 해 합수점을 배경으로 추억 한장 남기는 시간은 그저 꿀맛 같은 시간이다.

우측의 감천이 좌측에서 흘러 내려 온 낙동강과 만나는 이런 합수점을 바라보기 위해 이틀 간 장거리 산행으로 힘들고 어려웠지만 참으며 한발 두발 걸어 온 의미를 잠시 생각도 해 본다.

누가 강제적으로 시킨 것도 아닌데 보는 사람이 없어도 자기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며 이곳에 서 있다는 사실에 만족을 느끼며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잘 마무리하고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었다. 

 

어제는 새벽과 저녁 두번이나 들렸던 수정리고개이지만 어둠속에 보이는 것 하나 없아 아쉬웠었는데 오늘은 조금 늦게 들려 느긋하게 둘러보니 제대로 된 고갯마루의 모습이 생소하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어제 산행을 마무리한 수정리 버스정류장 앞 916번 선상서로 2차선 포장도로에서 산행 준비 후 산촌리에서 수정리 방향인 북쪽으로 고갯마루를 넘어가며 뒤돌아 보니 수정리고개가 벌써 이 산객의 가슴속에 남아 고운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

이곳 수정리는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에 있는 리로서 수선산 기슭에 자리한 산촌마을이고 고개와 골짜기기가 발달하였으며 마을 서쪽으로 작은 하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이실, 외이실, 골동, 대촌마을 등이 있는데 이실마을은 배나무가 무성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외이실마을은 이실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불리우는 이름이다.

골동마을은 깊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대촌마을은 대나무가 많이 있었던 지역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수정리 버스정류장에서 고갯마루 넘어 우측으로 보이는 가시잡풀 지대로 오르니 굵은 참나무 아래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를 따라 조금 걸어 오르니 약간의 잡목들과 굵은 참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무명봉 넘어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그린레미콘이라는 입간판이 보이는 912번 산촌옥관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해 한동안 편안하게 그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이곳 산촌리는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에 있는 리로서 대우산과 옥녀봉 사이에 위치한 전형적인 산촌 마을이며 근처에 옥관저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산골(산촌 또는 선동), 겉떠미, 골마, 꼭두점, 복호마, 안떠미, 양지마, 어구산(선화) 등이 있는데 산골은 높은 산 속에 위치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후에 산촌리가 되었고 골마는 산골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양지마는 산골 서북쪽 양지에 있는 마을이고 어구산은 깃대봉의 어구가 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도로를 따라 잠시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드릅밭이 펼쳐지고 그 드릅밭 넘어 저 멀리 멋진 산줄기와 봉우리가 보여 살펴보니 바로 중간에 솟아 있는 복우산으로 좌측 끝자락으로 복우산보다 더 높고 뾰족한 봉우리가 눈길을 잡는데 저 봉우리는 무명봉이다.

복우산은 경상북도 구미시의 옥성면 산촌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509m이고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선산)에 복우산(伏牛山)은 본부의 서쪽 25리에 있다 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며 그 위치도 확인할 수 있다.

여지도서(선산)에는 복우산(伏牛山)은 연악산에서 뻗어 나왔다 라는 기록이 있어 복우산 줄기가 연악산(수선산)의 지맥임을 알 수 있다.

이후 표기자의 변화 없이 대동여지도와 1872년지방지도(선산)에 복우산(伏牛山)이 표기되어 있어 강한 지명의 존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에는 모양이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 함이라는 기록이 있어 지명 표기자를 뜻풀이한 지명 유래의 일설을 확인할 수 있다.

 

도로 좌측으로 복우산을 살펴보고 계속 이어지는 912번 산촌옥관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동쪽 방향으로 진행하니 멋진 벗나무가 식재된 도로가 열리더니 우측 묘지들 뒤 저 멀리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다.

사진에 담고 이번에는 도로 좌측을 보니 갑장산이 존재감을 알려오는데 생각보다 해발고도가 낮아 보여 지도롤 다시 한번 더 확인해 보니 정확히 갑장산이 맞으며 그 우측으로 낮게 솟아 있는 봉우리는 500미터급의 무명봉이다.

그렇게 도로 좌우측으로 펼쳐진 조망을 즐기며 완만하게 걸어 올라 둔덕으로 오르니 도로 우측 옆으로 산촌옥관로라는 작은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곧이어 도로 좌측의 신오리 석거실 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를 지나자마자 도로 우측 뒤 저 멀리 구미사 옥성면과 무을면 그리고 상주시 낙동면의 삼면경계봉 우측 뒤로 어제 걸어 넘었던 642.5봉(두암산)과 수선산 및 기양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도로 우측 뒤로 어제 걸어 넘었던 멋진 기양지맥 마루금을 사진에 담고 이제 도로 좌측 앞인 동쪽으로 긴오리 석거실 마을 위를 보니 일출이 시작되려는지 붉게 물든 하늘에 떠 있는 구름들이 자꾸만 이 산객의 눈길을 붙잡는다.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으며 도로 양쪽으로 높은 콘크리트 옹벽이 보이는 언덕을 넘으니 도로 우측 앞으로 잠시 후 올라 만나야 할 452.3봉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살펴보며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신오리 석거실 버스정류장이 나타난다.

경북 상주시 낙동면 신오리 석거실 마을은 복우산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서 상주시와 구미시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있다.

임진왜란 때 피난민들이 이 마을에 있는 큰 바위 밑에 은거하면서 차츰 마을이 형성되어 석거실 이라 하다가 새로 마을이 형성되어 신기라 부르게 되었다 하는데 바다에 사는 연체동물인 낙지를 석거(石距)라고도 한다.

 

신오리 석거실 버스정류장을 지나자마자 도로 좌측의 석거실 마을 뒤로 다시 멋진 갑장산이 솟아 있어 사진에 담으며 잠시 갑장산에 대한 자료를 확인도 해 본다.

갑장산은 경상북도 상주시의 낙동면 비룡리와 승곡리 및 지천동(신흥동) 등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806m로서 갑장산(甲長山)이라는 명칭은 신증동국여지승람(상주)에 주 남쪽 13리에 있는데 일명 연악(淵岳)이라고도 한다 라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또 노음산(露陰山)은 주 서쪽 10리에 있고 (중략) 북석악(北石岳, 천봉산)과 남연악(南淵岳, 갑장산)과 함께 상산삼악(商山三岳)이라고 일컫는다 라고 하여 예전부터 상주를 대표하는 명산임을 알 수 있다.

이후 같은 내용이 동국여지지(상주), 여지도서(상주) 등에서 반복되고 상주지명총람(2004)에 갑장 지명은 고려 충렬왕이 승장사(勝長寺)에 머물 때 영남에서 으뜸 되는 산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일설에는 백제 초기 이 일대 제1가람이었다는 갑장정사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산 정상부에 용이 살다 승천했다고 하는 용터라는 못이 있었다 하고 또 당대 천석꾼과 정승이 난다는 명당이 있다 하여 밀장이 유행했는데 묘만 쓰면 비가 오지 않는다 하여 가물 때 주변 동리 사람들이 묘를 찾아 파내면 비가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잠시 더 도로 좌측의 낙동면 신오리 석거실 마을과 그 뒤로 솟아 있는 상주의 진산이라 불려지는 갑장산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고 다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전진하니 도로좌측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들을 지나 창원김씨 수일공 낙동석거실 세거비가 보이는 곳을 지나니 도로 좌측 옆으로 구미의산 종주길 안내판과 제7구간과 8구간을 가르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아마도 구미시에 있는 산들을 연결해 종주하는 종주등로를 홍보하는 듯 보인다.

그곳을 지나자마자 도로 우측으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아래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갈리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앞에는 200미터 우측으로 천년초농장이라는 작은 이정판도 보이는 곳에서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이제 912번 산촌옥관로 2차선 포장도로를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으로 크게 꺽여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산촌리 마을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니 추수가 끝난 논과 밭경작지들 사이로 검정 비닐하우스와 농막들이 보이고 잠시 후 우측으로 작은 연못도 보이는데 지도를 찾아보니 이름이 없는 무명저수지이다.

그 저수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시멘트 포장도로를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의 비포장임도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우측으로 보이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좌측으로 천년초농장이라 생각되는 커다란 건물을 지나 좌측으로 밭경작지를 두고 그 우측 비포장임도를 타고 오르다 뒤돌아 보니 갑장산이 여전히 저 멀리 아름답게 솟아 있는데 그 위로 햇살이 비추는 듯 보여 벌써 일출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데 이곳은 앞 기양지맥 마루금에 막혀 일출은 보이지 않는다.

계속 비포장임도를 따라 걸어 오르니 임도가 능선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한동안 더 진행하니 임도 좌측으로 선답자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곳에서 비포장임도를 우측으로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굵은 참나무와 소나무들 사이로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고사목이 서 있는 무명봉 지나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452.3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겨본다.

이곳 452.3봉 역시 길주의 지점으로 직진의 동쪽 방향으로 진행하면 맥에서 멀어지는 520.1미터의 옥녀봉으로 가는 등로로서 기양지맥 마루금은 올랐던 등로를 타고 뒤돌아 내려 와 진행 방향 좌측의 잡목들을 헤치며 진행을 해야 하는 봉우리이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452.3봉에서 진행 방향을 찾아 보지만 보이지 않아 방향을 가늠하고 다시 살펴보니 정상에서 올랐던 등로를 타고 뒤돌아 5미터쯤 내려가 좌측으로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을 살펴보니 좌측인 남동쪽 방향의 잡목 사이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잡풀들이 우거진 무명묘지 지나 잡목들을 헤치며 완만하게 내려가니 다시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곳에서 등로는 우측인 남쪽으로 바뀌어 진행되는 길주의 지점으로 정상 등로를 찾아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다 등로 좌측 앞인 남동쪽 방향을 살펴보니 오늘 걸어 만나야 할 형제봉 지난 신산 뒤로 낙동강 넘어 냉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좌측 뒤로 팔공지맥의 청화산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구름속에 숨어 있는 아침 햇살 아래 아름답게 솟아 있는 신산과 냉산 및 청화산을 살펴보고 확인한 후 이어지는 굵은 참나무와 소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멋진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활엽수 낙엽들이 깊이 깔려있는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하고 그 임도를 따라 걸어 전진하니 그 임도 우측 옆으로 도상 362.9봉이 보여 잡목들을 헤치고 그 362.9봉 정상에 도착을 하니 아무 표식도 없이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만 굵은 참나무 옆에 정상을 지키고 그중 하나의 띠지에 이곳이 362.9봉임을 알리는 고도표시를 해 놨다.

 

정상의 띠지들을 사진에 담고 다시 좌측의 잡목들을 헤치며 진행하니 방금 전 헤어졌던 비포장임도를 만나 우측으로 진행하고 활엽수 낙엽들이 사각거리는 임도를 타고 한동안 전진하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오르는데 그 정상에는 관목의 소나무와 참나무가 보이는 도상 379.8봉인데 이곳 정상 역시 아무 표식도 없이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그중 하나의 띠지에 이곳이 379.8봉임을 알리는 고도 표시가 되어 있어 사진에 담고 주위를 둘러 본 후 곧바로 출발한다.

 

산행 띠지들만 걸려있는 379.8봉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묘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지점에 도착을 해 자세히 살펴보니 직진의 능선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남쪽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야 할 길주의 지점에 도착을 한다.

활엽수 낙엽들이 수북히 쌓여있는 내리막 등로를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참나무 등로를 따라 오르니 굵은 참나무들 사이로 관목의 참나무 위에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409.4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그 봉우리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구미시 옥성면 대원리의 대원저수지가 빤히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사진에 담으며 걸어가니 굵은 참나무와 소나무들이 보이는 능선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다시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에 담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다시 활엽수 낙엽 등로 지나 소나무 등로로 바뀌고 곧이어 노간주나무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서 등로는 남동 방향에서 남쪽 방향으로 방향이 바뀌어 이어지고 있는 길주의 지점이다.

 

그 무명봉을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눈 앞으로 갑자기 굵은 괴봉으로 만들어진 철책이 나타나는데 그 철책 넘어로 잘 정리된 목장지가 나타나고 이제부터 한동안 좌측에 목장 철책을 두고 진행하게 되는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활엽수가 푹신하게 덮혀있고 주위에 녹슨 철조망이 설치된 무명묘지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목장 철책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어제 힘들게 통과한 사과과수원 옆 철책과 달리 가시잡목들이 사라지고 굵은 참나무들 사이로 활엽수 낙엽들이 깊이 깔려있어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낙엽으로 인해 미끄럽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한 등로이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지나 온 목장지대가 올려다 보이고 좌측 앞으로는 목장 건물들과 비닐하우스 넘어 멋진 산줄기들이 눈에 들어 와 지도로 확인해 보니 냉산과 그 좌측 뒤로 청화산과 팔공지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지척으로 다가와 있는데 저 냉산 우측으로 보여야 할 기양지맥 마루금은 목장 능선과 나뭇가지들에 막혀 보이지는 않는다.

 

목장 철책 위에서 팔공지맥과 냉산을 살펴보고 조금 더 이어지는 목장 철책을 따르니 도로 우측 아래로는 중부내륙고속도로의 교각들이 내려다 보이고 차량들이 빠르게 통행하는 굉음들이 들리는데 나무들에 막혀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목장 철책 좌측 아래로 목장 건물들과 거대한 비닐하우스들이 내려다 보이는데 그 비닐하우스에 한우들이 보이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제 한동안 따라 걸어 내려 온 목장 철책을 좌측 아래로 내려보내고 우측의 굵은 참나무가 보이는 우측 능선 등로를 따라 목장 철책과 이별을 한다.

한동안 평이한 참나무 등로를 따라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낙엽 등로를 따르니 바위암릉 지대를 지나 관목의 참나무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과 함께 잘려진 이정판이 걸려있는 329.5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는데 누가 이런 이정판을 훼손했는지 아쉽기만 하다.

 

훼손된 329.5봉 지나 부드러운 능선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우측으로는 제법 굵은 참나무와 소나무들이 혼재되어 있고 그렇게 한동안 더 진행하니 갑자기 평이한 능선 등로가 내리막 등로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등로는 동쪽에서 다시 남동 방향으로 바뀌고 잠시 더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키 작은 소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진행 방향으로 멋진 봉우리가 올려다 보여 살펴보니 잠시 후 주아현 건너 올라 만나야 할 형제봉 능선이 아름답지만 제법 힘들게 올라야 할 것 같고 그 좌측 뒤로는 신산이 살짝 얼굴을 내밀며 존재감을 알려온다.

 

키 작은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며 진행 방향으로 형제봉과 신산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계속 내려가니 잡풀들이 우거진 묵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어느 순간 가시잡목들로 인해 우측 소나무 능선으로 들어가 진행한다.

한동안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다시 비포장임도와 만나고 무명묘지들을 지나 솔갈비가 깔려있는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빠르게 진행하니 다시 활엽수 낙엽 등로로 바뀌고 곧이어 눈 앞 나뭇가지 사이로 커다란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는데 그 뒤로 보이는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어렵게 전진하니 그 건물 앞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그 건물을 보니 옥성감 영농조합법인이란 간판이 보이는데 무엇을 하는 공장일까 궁금했는데 내려가 보니 도로 표지판에 곶감생산단지란 글들이 보여 곶감생산공장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옥성간 영농조합법인 정문을 지나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며 진행 방향을 보니 주아령로 2차선 포장도로 지나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기양지맥 마루금이 벌써 이 산객의 의지를 꺽어 놓을 듯 드높게 솟아 있다.

 

곶감을 생산하는 옥성간 영농조합법인 건물의 정문을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주아령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오르니 저 멀리 주아현 고개가 올려다 보이고 도로 우측으로 전봇대와 이동통신탑이 보이는데 그곳을 통해 능선으로 오르며 형제봉으로 향하게 된다.

주아현(주아령, 주아령로 2차선 포장도로, 옥성감 영농조합 곶감 작업장)은 주아리에 있는 고개로서 주아리는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에 있는 리이며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낙동강의 지류가 흐르며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데 주아면의 소재지였으므로 주아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가라골, 물레방골, 사기장골, 비각, 절골, 새터마을 등이 있는데 가라골마을은 가래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물레방골마을은 물레방아가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며 사기장골마을은 사기점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비각마을은 황두선의 효자 비각이 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고 절골마을은 절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며 새터마을은 남쪽에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주아현 고갯마루를 넘어가면 좌측으로 망해버린 카페가 있다는데 의미가 없어 고갯마루는 사진에 담는 것으로 대신하고 우측 전봇대가 보이는 곳으로 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활엽수 낙엽들이 수북히 쌓여있고 잡풀들이 자랐던 모습이 남아 있는 무명묘지 한기와 그 좌측 옆으로 커다란 느티나무 한그루가 반겨 줘 사진에 담고 이제 남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한동안 정신없이 오르게 된다.

오를수록 활엽수 낙엽들이 더 많아지고 경사도도 급해지며 자꾸만 뒤로 밀리니 참으로 진행에 어려움은 느끼는 시간으로 잠시 후 낙엽 아래 작은 바위들까지 깔려있어 쉬다 오르다를 반복한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오르니 갑자기 눈 앞으로 넓은 비포장 임도가 U자처럼 휘돌아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좌우측으로 사진에 담은 후 우측으로 돌아 오르니 희미한 선답자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그 비포장임도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관목의 소나무들과 참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후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해 지도를 살펴보니 도상 345.3봉으로 선답자들도 이곳을 오르며 힘들었는지 이 무명봉에 올라 산행 띠지들을 걸으며 쉬어간 흔적이 역력하다.

그 345.3봉 지나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 앞으로 이제부터 올라 만나야 할 형제봉 능선과 봉우리가 아직도 저 멀리 올려다 보이고 그 풍경을 사진에 담다보니 괜시리 체력만 빠져 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다시 이어지는 가파른 참나무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다 힘이 들어 발걸음 멈추고 뒤돌아 보니 주아현 넘어 329.5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멀어지고 사진에 담고 다시 오르니 관목의 소나무가 보이는 무명봉 넘어 수북히 쌓여 있는 활엽수 등로를 타고 평이하게 걸어가며 잠시 편안한 발걸음을 옮긴다.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다시 오르막 등로로 오르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 지나 좌측으로 약간의 조망이 터지고 살펴보니 옥성자연휴양림 지나 낙동강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뒤로 팔공지맥의 만경산과 문암산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등로 좌측인 북동쪽으로 낙동강과 팔공지맥 마루금을 확인하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다 이번에는 등로 우측으로 조망이 열려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살펴보니 덕촌리의 좁은 평야지대 지나 나즈막한 300미터급 무명봉이 솟아 있고 그 뒤 우측으로 원통산이 보이며 무명봉 뒤 저 먼쪽으로는 어제 걸었던 기양지맥의 백운산 줄기 좌측 아래로 광덕산과 대양산으로 내려가는 산줄기가 박무속에 흐릿하게 펼쳐져 있다.

저 원통산에 관한 자료는 찾을 수 없으나 그 원통산이 있는 태봉리를 찾아 보니 태봉리는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에 속하는 법정리로서 명칭유래는 옛날 한 임금이 왕자의 태(胎)를 묻은 곳이라 하여 태봉(胎峰)이라고 하였고 그 후 태봉(台峰)으로 바뀌었다. 남쪽에 원통산(475m)이 있고 서쪽과 북쪽에도 해발 고도 475미터 및 500여미터의 산이 둘러싸고 있으며 동남쪽 지세는 비교적 완만하다.

1447년경(세종 29) 개척한 마을로 동남쪽으로 지방도 916호선과 중부내륙고속국도가 나란히 지난다.

옥성면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농경지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고 경지는 과수 재배와 논농사에 이용되고 있다.

 

힘들게 오르면서도 등로 좌우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들을 조망하며 그 이름들을 불러주다 보니 다시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도 지나고 경사도가 많이 완만해진 능선 등로를 따르니 관목의 소나무가 잘려이는 밑둥이 보이는 무명의 공터봉도 통과한다.

그 무명 공터봉을 지나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가파르게 오르니 잘린 나뭇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고 등로 좌측으로 낙동강 건너 팔공지맥의 청화산이 박무속에 흐릿하게 보이는데 그 우측으로 보여야 할 냉산은 앞의 산줄기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다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북서 방향으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마루금과 복우산 넘어 갑장산이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눈에 들어오고 사진에 담고 오르니 커다란 정상석에 비봉산 형제봉이란 글씨와 이정목 그리고 등산로 안내판이 보이는 532.1미터의 형제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삼각점은 찾지도 못하고 내려서고 말았다.

형제봉(532m, 정상석과 안내도)은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과 옥성면을 나누는 산지 지형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서 동쪽으로 낙동강이 남동 방향으로 굽이쳐 흐르고 있고 남쪽에는 감천과 그 지류들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유입되며 북쪽에는 옥성면의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형제봉을 중심으로 하는 산지 지형은 북동쪽이 산지에 연결된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낙동강과 감천에 둘러싸여 있는 섬과 같이 보이는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보면 선산의 뒤에는 비봉산(飛鳳山)이 있는데 동쪽으로 낙동강에 접하고 있고 북서쪽으로 연악산(淵岳山)과 연결되어 있다.

형제봉의 동남쪽에는 선산읍이 위치하며 계곡 끝 부분에는 자연마을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주변의 농경지는 주로 논으로 이용되고 있다.

산지의 동쪽으로 칠곡에서 상주로 통하는 국도 25호선이 지나고 남서쪽으로 김천으로 통하는 국도 903호선이 지나가고 있다.

산지의 동쪽 끝 부분인 생곡동에는 과거 용산진이 위치해 있었는데 이곳에 일선교가 건설되어 낙동강의 오른쪽과 왼쪽이 편리하게 연결되고 있다.

 

형제봉 정상 역시 예전에 다녀 간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는 조망이 좋다고 되어 있는데 주위 관목들이 자라고 잡목들이 크면서 이제는 제대로 된 풍경이나 조망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 사라져 잠시 물한모금 마시고 남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억새마대가 깔려있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며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잠시 후 만나야 할 무명봉 지나 숨어 있는 갈등고개를 넘으면 신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팔공지맥의 청화산 줄기가 낙동강 넘어로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멋진 풍경들을 사진에 담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빛바랜 붉은 무명띠지가 걸려있는 곳에서 방향을 좌측으로 크게 틀어 진행해야 할 길주의 지점이 나타나고 이제 등로는 남동에서 북동 방향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북동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잠시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다 등로 우측 앞을 보니 잠시 후 만나야 할 뾰족한 무명봉 우측 뒤로 400미터대의 기양지맥 마루금이 펼쳐져 있고 신산도 보이는데 그 신산 뒤 저 멀리로는 팔공지맥 산행을 하면서 갈림삼거리에서 고민하다 들리지 못한 냉산이 여전히 그리움으로 솟아 있고 그 좌측 뒤로 청화산이 그 옛날 추억을 들려주며 재회를 약속하자고 달려온다.

나뭇가지들로 조금은 아쉬운 조망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주위 산줄기와 봉우리들을 살펴보며 오래된 추억을 꺼내 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진행 방향인 동쪽으로 기양지맥과 팔공지맥 마루금을 확인하고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다시 억새마대가 깔려있는 계단이 나타나고 길게 이어지는 내리막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현위치 이정목이 서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이정목에는 비봉산(형제봉)이란 글씨가 눈길을 잡는다.

아마도 이곳 형제봉을 비봉산이라고도 불렸던가 본데 아무리 자료를 찾아봐도 이곳을 비봉산이라 한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무명안부 좌우측을 살펴보니 예전에는 모르겠는데 최근에는 사람이나 동물들이 지나다닌 흔적도 보이지 않아 폐쇄된 안부처럼 보이는 곳이다.

 

안부로 내려갔으니 다시 올라가야 하는 것이 산행의 원리이기에 말없이 이어지는 소나무 오르막 등로를 따라 잠시 진행하니 커다란 바위암릉이 나타나고 우측으로 돌아 우회하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만나고 헤어진 형제봉이 저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드높게 올려다 보인다.

다시 나타나는 억새나대가 깔려있는 계단을 따라 가파르게 오르니 또 다시 소나무 사이로 바위암릉이 이어지고 조심하며 암릉을 통과하니 우측으로 숲길로 갈 수 있다는 방향 표시만 되어 있는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삼거리를 지나고 곧이어 넓은 헬기장에 도착을 하는데 하늘에선 금방이라도 비나 눈이 내릴듯한 흐린 날씨이다.

이곳에서 배낭 내려 간단히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물 한모금으로 갈증까지 해결한 후 다시 천천히 헬기장을 벗어나 진행을 이어간다.

 

 

헬기장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북동 방향의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안전목책과 로프가 좁은 공간에 설치되어 있어 살펴보니 수직동굴이 나타나고 그곳으로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안전시설을 설치한 듯 보인다.

사진에 담고 잠시 더 걸어 전진하니 이정목과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삼거리봉에 도착을 하는데 직진의 좌측 등로는 솔바람길로서 오늘 이 산객이 따라야 할 기양지맥 마루금은 우측의 임도와 부처바위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며 진행을 해야 할 길주의 지점이기도 하다.

 

그 갈림삼거리 이정표에서 부처바위 방향인 우측으로 가파르게 내려가니 이곳 역시 참나무 아래 활엽수가 깔려있는데 생각보다 많지 않아 진행에 어려움이 없어 조금은 빠르게 진행되고 곧이어 나타나는 사각나무 계단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 아래 솔갈비가 푹신하게 깔려있는 평이한 등로로 이어져 발도 오랫만에 편안하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잠시 후 소나무 등로가 끝이나고 다시 활엽수 낙엽이 깔린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연속으로 사각계단이 나타나고 곧이어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안부에 도착을 하니 아름다운임도 안내도와 구미의 걷기좋은길 9선 및 숲길따라 도보여행길이란 이정표들이 서 있는 갈등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면 실제 갈등고개는 조금 더 진행한 후 나타나는 비포장임도 갈림사거리를 말하는 듯 하나 이곳에 시멘트 포장도로가 개설되며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며 이곳을 갈등고개로 부르고 있는 듯 보인다.

 

새로운 갈등고개로 불려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지나 이정표상 부처바위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오르니 길게 설치된 사각계단이 나타나고 곧이어 굵은 소나무들이 보이는 둔덕 넘어 다시 이정목이 서 있는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해 지도를 보니 이곳이 진짜 갈등고개로 표시된 안부이다.

갈등고개에 관한 자료는 찾을 수 없으나 이 고개는 노상리에 있는 고개로서 노상리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있는 리이며 신산 밑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낙동강의 지류가 흐르며 매우 시가화된 지역이고 큰 길 위쪽이 되므로 노상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길우, 배나무작골, 뒷골, 부엉골, 절골마을 등이 있는데 길우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 유래 또한 노상리의 그것과 같고 배나무작골마을은 배나무가 많던 곳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며 뒷골마을은 길우 뒤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부엉골마을은 부엉이가 살았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절골마을은 원귀사라는 절이 자리한 곳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갈등고개 지나 부처바위 0.5 Km 방향으로 진행하니 웅덩이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황학지맥 산행 시 자주 만났던 6.25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은 아니였을까 생각되는 웅덩이 크기이다.

이제 한동안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산책로 같은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다시 바위암릉이 나타나고 그 앞 좌측 위로는 벤취쉼터 하나도 설치되어 있다.

사진에 담고 그 바위암릉을 우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하니 평상과 이정목 그리고 이정표와 부처(진)바위라 불리우는 내력이란 설명판이 보이는데 그 옆 평상에 젊은 친구 두명이 앉아 있어 어렵게 사진만 간단히 담고 부처바위는 오르지도 못하고 곧바로 출발하며 뒤돌아 보니 그 젊은 친구 두명도 자리에서 일어나ㅣ 부처바위로 오르고 있다.

비봉산 정상부에 자리한 이 바위의 정확한 내력에 대해 기록으로 남겨진 것은 없으나 예부터 이 계곡이 부처골, 부처뱅이 등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바위의 모양이 부처가 누워있는 형상과 흡사하다는 설과 갈라져 있는 바위들이 붙어있다고 해서 붙여진(사투리로 부처진) 바위라는 설이 구전되고 있다는 내용인데 형제봉 정상부터 보였던 비봉산이 궁금해 찾아 본다.

비봉산은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있는 비봉산 근린공원에 솟아 있는 나즈막한 봉우리를 말하며 봉황이 날아가는 모습과 닮았다는 데서 이름 붙여진 봉우리로서 구미시 선산읍을 감싸고 있다.

비봉산 근린공원은 산책로와 등산로 및 각종 편의시설과 체력 단련장을 갖춘 시민들의 쉼터이다.

비봉산은 봉황이 두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로 날아가려는 모습인데 두 날개에 해당하는 곳이 교리 뒷산과 노상리 뒷산이고 몸통과 목 부분은 옛 군청 뒤의 봉우리이며 주둥이에 해당하는 곳이 옛 군청 자리이다.

 

부처바위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억새마대가 깔려있는 계단을 따라 오르니 고사목들이 보이는 한쪽에 벤취쉼터가 설치되어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이제 방향을 다시 동쪽으로 바꿔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작은 돌탑과 평상 및 벤취쉼터와 으ㅜㄴ동기구들이 보이는 무명봉에 오르는데 연세드신 동네 오르신 한분이 올라 와 운동을 하고 있어 방해되지 않토록 주의하며 무명봉을 사진에 담고 좌측인 북동 방향으로 틀어 평이하게 걸어가니 굵은 소나무에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433.8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능선 상 봉우리인 433.8봉을 출발하면서 등로 좌측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삼형제봉이 나란히 보여 잠시 발걸음 멈추고 지도로 확인해 보니 제일 앞쪽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봉우리가 헬기장과 부처바위까지 1.4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던 무명봉이고 그 뒤로 두번째 솟아 있는 봉우리가 바로 532.1미터의 형제봉이며 좌측 제일 뒤로 보이는 봉우리는 400미터급의 기양지맥에서 벗어 나 있는 무명봉이다.

가야할 산줄기와 봉우리는 조금 더 멀게 느껴지지만 지나 온 풍경은 왜 그리 모두 아름답고 멋지게만 보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 상 433.8봉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바위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굵은 참나무와 소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 양쪽으로 깨끗한(?) 잡목들이 우거진 등로가 길게 펼쳐져 있는데 자세히 보니 키 작은 활엽수 잡목들로서 가시나무나 청다래가 없어 그나마 진행에 큰 어려움을 주지는 않는다.

얼굴에 난 상처가 다시 덧나지 않토록 조심하며 그 잡목들을 헤쳐 완만하게 오르니 다시 활엽수 낙엽들이 깔려있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무명안부도 통과하고 다시 둔덕 넘어 내려가니 제법 깊은 골짜기 형상의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안부이다.

그 무명안부 지나 다시 오르니 굵은 소나무와 잡목들이 보이는 무명봉 넘어 잡목들이 우거진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무명안부 지나 잡목들이 우거진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굵은 아카시아나무들이 고사목이 되어 있는 모습과 함께 등로에 널부러져 있는 고사목들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다시 바위암릉이 이어지고 있다.

바위암릉을 통과하니 관목의 참나무와 아카시아나무들이 보이고 잠시 더 빼곡한 나무 사이로 조심해 오르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좌측 굵은 소나무에 백두사랑산악회에서 이정표를 걸어 둔 457미터의 신산 정상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하면서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신산(457m)에 대한 자료는 찾을 수 없는데 이 신산이 있는 신기리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있는 리로서 신산 앞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고 낙동강의 지류가 흐르며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진다.

자연마을로는 신기, 대지미, 뒷골, 말무더미, 절터, 신풍진, 바깥신풍진마을 등이 있는데 신기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이고 대지미마을은 신기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뒷골마을은 대지미 뒤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말무더미마을은 말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고 절터마을은 절이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풍진마을은 뒤에는 높은 산이 있고 앞에는 낙동강이 흘러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며 바깥신풍진마을은 신풍진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름은 멋지고 근사한데 자료도 없고 정상에서의 조망도 전혀 없기에 사진과 추억 몇장 남기고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우측인 동쪽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며 온전한 구미시 선산읍으로 들어간다.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라 짧게 내려가니 다시 소나무 아래 솔갈비가 푹신한 걷기 좋은 등로가 나타나고 콧노래를 부르며 내려가 나즈막한 안부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우측 옆으로 바위들이 나타나는데 그 바위에는 붉은색 페인트로 절 표시가 되어 있어 순간적으로 히틀러가 생각난 시간이었다.

바위를 지나 잠시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다시 관목의 활엽수가 빼곡한 사이로 좁게 나 있는 등로가 열리고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이끼 낀 깨진 삼각점이 박혀있는 435.6 삼각점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저곳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만 걸려있을 뿐 이정판은 보이지 않아 아쉽고 삼각점도 인식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이끼 낀 깨진 삼각점이 박혀있는 435.6 삼각점봉에서 등로는 다시 우측인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진행되고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ㅏㅎ여 있는 잡목 등로를 지나니 멋진 리끼다 소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편안하게 걸어 전진하니 굵은 소나무 사이로 다시 키 작은 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전진하니 멋진 소나무 등로 우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발걸음 멈춰 살펴보니 소나무 가지 사이 서쪽으로 방금 전 우측 기양지맥 산줄기를 따라 통과한 433.8봉 직전의 작은 돌탑에서 분기한 무명산줄기가 바로 눈 앞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형제봉과 그 좌측으로 흐르는 무명산줄기가 산객의 눈길을 잡는다.

 

그 지나 온 기양지맥 산줄기를 살펴보고 그 좌측인 남쪽과 남서 방향을 살펴보니 선산읍 교리마을과 농경지가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 뒤 저 멀리 희미하게 구미시 선산읍이 박무속에 존재감을 알려온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면서 선산휴게소는 몇번 들렸었는데 정작 선산읍을 들릴 기회가 없었는데 올해들어 산행을 위해 몇번인가 들렸고 묵었던 기회도 있었기에 이제는 낯설지 않은 동네가 되었다.

선산읍은 경상북도 구미시의 중앙에 위치한 읍으로 선산읍성, 선산향교, 금오서원 등이 있으며 읍의 서쪽으로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경유하고 33번과 59번 국도가 읍의 중앙을 관통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읍의 북쪽으로는 형제봉 등 구릉성 산지가 분포하며 여기에서 발원한 단계천이 읍의 서부를 관통해 감천에 합류하고 다시 감천은 동류하여 낙동강에 합류하는데 이들 하천 유역에는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현재 완전리와 동부리 및 노상리 등 18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으며 읍사무소 소재지는 완전리이다.

삼국시대 신라의 일선군(一善郡)이었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일선군은 숭선군(嵩善郡)으로 개칭되었다가 숭선군은 995년(고려 성종 14)에 선주(善州)로 개칭된 후 1413년(조선 태종 13)에 선산군(善山郡)으로 다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선산)과 여지도서(선산)를 통해 1143년(고려 인종 21)에 해평현이 선산에 편입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고 이후 1895년 대구부 선산군으로 개편되었으며 1896년 경상북도 선산군이 되었다가 1914년에는 선산군으로 존속되었다.

이후 1979년에는 선산면이 선산읍으로 승격되었다가 1995년에 구미시와 선산군의 통합으로 도농통합시인 구미시가 신설되면서 구미시 선산읍으로 개편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본래 구미보다 상위의 행정 구역 명칭이었던 선산은 지명 영역이 크게 축소되어 현재 선산읍이라는 읍 지명으로 존속되고 있다.

선산이라는 지명은 삼국사기지리지에 숭선군(嵩善郡)은 본래 일선군 (一善郡)으로 (중략) 경덕왕 (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선주(善州)이다 라는 기록이 있어 선산의 이칭인 숭선, 일선, 선주를 확인할 수 있다.

선산의 또 다른 이칭인 화의(和義)는 고려사지리지의 화의(성종이 정한 명칭이다)라고도 부르며 여기에는 금오산(金烏山)이 있다 라는 기록에서 알 수 있는데 유사한 기록이 세종실록지리지(선산)에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본디 일선군(一善郡)인데 (중략) 본조 태종 13년 계사에 예(例)에 의하여 선산군(善山郡)으로 고쳤다 라는 기록을 통해 1413년에 현재의 지명인 선산이 처음으로 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선산), 여지도서(선산), 해동지도(선산)에는 선산의 이칭들인 일선과 숭선, 선주, 화의가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선산도호부가 19개 면을 관할했다는 사실을 여지도서(선산)에서 확인할 수 있고 호구총수(선산)에도 19개 면 309개 리를 관할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동내면이 동읍내면(東邑內面)으로, 산외면이 외산면(外山面)으로, 상구미면과 하구미면이 상고미면(上古尾面)과 하고미면(下古尾面)으로, 산성이 금오산(金烏山)으로 일부 표기자가 변경되거나 도치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읍은 대부분 조선시대 동내면(東內面)과 서내면(西內面) 지역으로 1914년 동내면과 서내면 등을 병합하여 선산읍의 전신인 선산면이 신설되었음과 당시 선산군이 9개 면 113개 리를 관할한 사실도 신구대조(선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등로 우측으로 지나 온 기양지맥 마루금과 선산읍을 살펴보고 그 전망바위를 내려 와 이어지는 굵은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난해한 등로를 따르니 잡목속에 갇혀있는 듯한 굵은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하고 사진에 담고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니 잡목이 줄어들며 조금은 속도가 난다.

잠시 더 편안하게 이어지는 소나무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오래된 붉은 띠지 한장이 보이는 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는 길주의 지점에 도착을 하는데 의식하지 못하면 뚜렷한 직진의 우측 등로를 따라 내려가기 쉬운 지점이다.

 

좌측인 남동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많이 훼손된 묘지2기가 보이고 다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는 곳에서 이제는 좌측으로 틀어 내려가니 고사목들이 어지럽게 널려 등로를 가로막고 있다.

고사목 등로를 지나 내려가니 다시 굵은 참나무 등로가 열리고 약간의 잡목들을 지나 이장된 듯한 묘지를 통과하니 멋진 솔갈비 등로와 만나 편안하게 진행하고 곧이어 잘 관리되고 있는 일선김공 부부묘지를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고 바로 아래 59번 선상동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금오고개에 도착을 한다.

금오고개(59번 선상동로 2차선 포장도로, 휴게소는 휴업)는 교리에 있는 고개이며 교리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있는 리로서 마을 뒤로 형제봉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며 잿골못과 용동지가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향교마(생기골, 생골, 교촌), 댕대이(당대, 당대이), 동편, 장터걸(구장터) 등이 있는데 향교마는 예전에 선산 향교가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으로 생기골, 생골 혹은 교촌이라 하였는데 후에 교리가 되었고 댕대이는 용동골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이곳에서는 당대에는 잘 살 수 있으마 후대에는 어떤 사람이라도 천한 사람이 된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동편은 생골 동쪽에 있는 마을이고 장터걸은 전에 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그 금오고개를 지나는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며 좌측으로 고갯마루를 보니 정상 마루금은 고갯마루 중앙부이지만 절개지로 잘리고 철망이 설치되어 있어 어쩔 수 없이 우측으로 비켜 내려 오니 우측 바로 아래로는 폐허가 되어 있다는 갈비식당 자리에 중식당이 생긴 듯하고 사람들도 왕래를 하는 모습이 보여 영업을 하고 있지나 않는지 궁금하지만 식사를 할 정도는 아니기에 그냥 통과한다.

능선으로 오르니 잘 관리되고 이는 순흥안공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중식당으로 변한 건물 좌측 뒤 저 멀리 고층 아파트들이 보이는 구미시 선산읍이 가깝게 다가 와 있어 어젯밤 하루 묵었던 곳이기에 정감있게 살펴 본다.

 

그 순흥안공 묘지들 뒤로 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고 지도와 트랙을 확인해 보니 바로 앞으로 새로 신설된 33번 선산대로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데 그 도로를 통과하기 위해 선답자들 모두가 제각각 등로를 만들어 통과한 듯 보이고 일부는 우측으로 빙 돌아 도로를 타고 우회한 듯 보이기도 해 당연히 정상 등로는 사라진 듯 보인다.

어렵게 잡목들을 헤치며 무릎까지 빠지는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라 둔덕봉으로 오르니 33번 도롯가로는 철망이 설치되어 있어 다시 좌측 둔덕으로 올랐다 에코 브릿지 방향으로 내려가야 해 그 짧은 구간을 진행하는데도 많은 시간과 체력이 소모되고 있다.

어렵게 에코 브릿지 상단으로 진행해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가시잡목들과 잡풀들이 우거졌다 말라 있어 생태통로 좌우측으로 보여야 할 33번 선산대로 4차선 포장도로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약간의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가파른 절개를 내려가니 생태이동통로로 내려서는데 이곳도 역시 사용되지 않아 잡목들과 잡풀들이 우거졌다 말라있어 진행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지만 선답자들이 지나간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어 그 족적을 따라 어렵게 진행한다.

생태통로를 완전히 통과하니 파란 풀들이 절개지에 자라고 가파른 절개지를 네발로 기어 오르다 중간 지점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통과한 33번 선산대로와 그 바로 뒤로 금오고개가 살짝 보일듯 말듯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부드럽게 이어지는 435.6 삼각점봉이 우측으로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거리는 짧은데 급경사 오르막 절개지이기에 몇번이나 쉬면서 오르니 정상부에서 잡목들이 우거져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우측 사면 등로로 이동하니 철망이 다시 나타나고 그 철망을 우측에 두고 가시잡목들과 잡풀들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오르니 드디어 33번 선산대로를 통과하는 생태이동통로를 완전히 벗어나 굵은 소나무 등로에 잡목들이 뒤엉켜 있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길게 이어진다.

이제 조그믹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느끼며 힘들게 오르니 바위암릉 지대를 지나 이어지는 잡목지대도 통과하고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널부러져 있는 고사목들이 보이는 곳에서 경사도가 조금은 완만해져 심호흡 한번 하고 다시 오른다.

 

조금은 경사도가 완화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선답자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이는 지점에 도착을 하고 지도와 트랙을 확인해 보니 등로는 우측으로 이어지지만 좌측 가까운 곳에 도상 265.4봉이 보여 잠시 다녀오기로 한다.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따라 잠시 걸어 오르니 금새 도상 265.4봉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에는 아무 표식도 없고 산행 띠지도 법광님만이 유일하게 걸어 놨는데 고도표시를 해 놔 감사한 인사를 드리고 동쪽을 살펴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낙동강이 지척으로 다가 와 있는 풍경이 보이지만 선명하지 못해 아쉬움만 남기고 사진에 담은 후 곧바로 갈림삼거리로 복귀한다.

 

갈림삼거리에서 등로는 이제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고 약간의 잡목들을 헤치며 완만하게 내려가니 다시 등로 옆으로 굵은 소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소나무 등로가 짧게 끝이나더니 관목의 참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등로 좌우측으로는 우거진 잡목들이 보이지만 선답자들이 고생하며 지나간 등로에는 잡목들이 제거되어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편안하게 걸어가니 고사목이 서 있는 무명봉 지나 우거진 작은 참나무 사이로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살펴보니 다른 등로와 달리 이곳 등로의 참나무 가지에는 빛바랜 낙엽들이 그대로 달라 붙어 있어 가을 풍경이 되살아 나고 잠시 가을 정취를 느끼며 전진하니 이틀 연속 장거리 산행에서 오는 피로감이 많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키 작은 참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는 낙엽들을 살펴보며 걸어가니 참나무 사이로 굵은 소나무들도 자주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한동안 더 굵은 소나무와 낙엽이 떨어지지 못하고 키 작은 참나무에 매달려 있는 생각보다 멋진 등로를 따라 진행하다 보니 어제부터 이틀간 장거리를 걸어 체력적으로는 힘이 들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이 이색적으로 다가 와 그 피로를 풀어주는 기분으로 걸어 본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무명봉에 오르니 붉게 익어가는 청다래 열매가 아름답게 열려있고 계속 이어지는 굵은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사이로 뚜렷하게 보이는 등로를 따르니 교리 갈림삼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이정표가 서 있어 살펴보니 교리에서 생곡리 방향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방향과 거리표시가 보이는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이다.

 

그 이정표 안부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굵은 소나무 아래 빛바랜 억새와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있는 등로가 나타나고 그렇게 한동안 걸어 전진하니 밑둥이 잘려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사진에 담고 그 무명봉을 출발하니 다시 굵은 소나무 아래 키 작은 참나무와 잡풀들이 나타나고 지금과는 다른 등로의 풍경에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진행하는 시간이 되었다.

한동안 더 그런 멋진 등로를 따르니 등로 주위로 많은 제선충을 방지하기 위한 나무 더미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아직도 물이 고여있는 멧돼지 목욕탕이 보이는데 그 주위 소나무에는 멧돼지들이 몸을 문지른 흔적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멧돼지 목욕탕을 지나 조금 더 소나무 등로를 따라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녹슨 철망 뒤로 파란 그물망과 원형 철조망이 설치된 모습이 눈에 들어 오는데 아마도 무슨 농장이나 목장이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 곳이다.

그 녹슨 철망과 그물망을 따라 한동안 걸어가니 철망이 조금 멀어진 둔덕봉에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 하나가 박혀 있는 167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긴 후 다시 출발하는데 그 많던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한장 보이지 않아 조금은 아쉬움도 남긴다.

 

인식불가의 삼각점이 박혀있는 무명봉 넘어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녹슨 철망과 그물망 우측으로는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서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런 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드디어 좌측의 녹슨 철망과 그물망이 좌측 아래로 사라지고 잠시 굵은 소나무가 보이는 능선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 주변으로 재선충 방지용 나무더미들이 자주 눈에 들어 온다.

잠시 후 활엽수가 수북히 쌓여 있는 무명안부를 지나니 이제 등로 우측으로 다시 파란 그물망이 나타나고 한동안 더 걸어 오르니 이제는 등로 좌측으로 다시 녹슨 철망과 그물망이 보이는데 그 철망 위로 떨어진 낙엽들이 쌓여 특별한 모습으로 남겨져 있다.

 

바람에 실려 온 활엽수 낙엽들이 수북히 쌓여 있는 녹슨 철망과 그물망을 따라 한동안 진행하니 그 녹슨 철망과 헤어져 소나무 등로를 따르고 곧이어 공터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활엽수 낙엽이 깔려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무명안부를 통과하니 다시 활엽수 낙엽이 깔려있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올라 선답자의 산행 띠지에 고도 표시가 되어 있고 한쪽에는 통나무 벤취가 설치되어 있는 도상 212.8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는데 이곳 역시 활엽수 낙엽들이 수북히 쌓여 있는 제법 넓은 공터봉이다.

 

선답자의 산행 띠지에 212.8봉임을 알리는 고도 표시가 되어 있어 사진에 담고 그 공터봉을 출발하니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는 미끄러운 활엽수 낙엽들이 수북히 쌓여 있어 조심하며 천천히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무명안부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 옆으로 폐 타이어들이 박혀있고 그 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그 반대쪽으로는 타이어 교통호가 보이며 그 한쪽에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 있는 212.8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더 남겨 본다.

 

인식불가인 삼각점과 타이어 교통호 및 많은 띠지들이 걸려있는 무명봉 지나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으로는 여전히 타이어들이 박혀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잠시 후 봉우리 같지 않은 무명봉 넘어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굵은 소나무들이 보이고 안부 지나 다시 오르니 참나무 아래 활엽수 낙엽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잠시 후 둔덕봉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재선충 방지용 나무 더미들이 널려있는 곳을 지나 참나무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안부 같지 않은 안부 지나 넓은 공터의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공터 무명봉 지나 내려가니 봉분이 무너진 묘지 한기 지나 관목의 참나무들과 키 작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가 보이는데 그 등로에는 이제 자연으로 돌아가는 많은 묘지들 위로 관목의 나무들이 자라고 곧이어 잘 관리되고 있는 많은 묘지들이 널려있는 묘지지대로 이어진다.

그 묘지들을 지나 내려가니 비포장임도가 지나고 다시 나즈막한 능선으로 오르니 넓은 비포장임도가 길게 이어지고 있어 편안하게 걸어 본다.

잠시 더 그 비포장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묘지들이 보이고 키 작은 잡목들과 잡풀들이 무성했던 등로를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밭경작지와 농막 그리고 민가가 내려다 보이는 선산읍 독동리가 내려다 보인다.

이곳 독동리에는 구미 독동리 반송이 유명한데 반송은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소나무로서 1988년 4월 30일 천연기념물 제357호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482㎡이고 수령은 400년으로 추정되는 노거수로서 사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수형이 우아하다.

나무높이는 13m이고 지상 0.4m 높이에서 남북으로 2갈래로 갈라져 있으며 남쪽 줄기는 0.8m 높이에서 다시 3갈래로 갈라져 있고 각 줄기의 밑둘레는 1.7m, 1.6m, 1.2m이다.

북쪽의 줄기는 0.6m 높이에서 5갈래로 갈라져 있고 그 중 2개의 밑둘레는 각각 1.5m, 1.3m이며 나머지 3개는 약 1.1m씩이다.

수관의 나비는 동서가 19.2m에 남북이 20.2m이며 가슴높이 둘레가 7.3m인 반송(Pinus densiflora for. multicaulis)은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줄기 밑부분에서 굵은 곁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수형이 우산처럼 다북한 것이 특징이다.

선산 독동의 반송은 반송으로서 이처럼 큰 것이 드물기 때문에 희귀식물로 보호되고 있다.

 

등로 좌측으로 독동리 마을을 살펴보며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굵은 참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에 고사목들이 쓰러져 널부러져 있다.

조심해 진행하니 묘지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조남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흰터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 좌측 고갯마루에는 거대한 한우 축사가 빤히 올려다 보인다.

흰터고개(2차선도로)는 독동리에 있는 고개를 말하며 독동리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있는 리로서 들이 넓게 펼쳐져 있는 농촌마을로 낙동강의 지류가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문산동, 정문, 고남동, 솟대골, 할티마을 등이 있는데 문산동마을은 문산서원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정문마을은 노경전의 아내 여산 송씨의 열녀정문이 있는 곳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고남동마을은 해평면 낙산리의 원촌으로 건너가는 나루터인 고남진이 있는 곳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고 솟대골마을은 전에 솟대를 세웠던 곳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며 할티마을은 전에 활쏘기를 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흰터고개의 조남로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높은 콘크리트 옹벽을 넘어 능선으로 오르니 키가 큰 잡목들이 빼곡한 등로가 나타나는데 그 잡목 사이로 사람 한명 빠듯하게 지날 수 있는 좁은 등로가 나 있다.

조심하며 그 등로를 통과하니 경주이씨 평장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 좌측 뒤로 오르니 우거진 잡목 사이로 활엽수가 수북히 쌓여 있는 난해한 등로가 이어진다.

그 잡목등로를 따르며 살펴보니 등로 주변이 온통 묘지들인데 그 묘지 위에 제법 굵은 잡목들이 자라며 묘지들은 그 기능을 잃고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인데 한양조공 부부묘지도 역시나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그 앞에 서 있는 비석만큼은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묘지지대를 지나니 넓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다시 활엽수가 두껍게 덮혀있는 많은 묘지들을 만나 그 묘지 좌측 위로 오르니 굵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무명봉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간다.

내려가다 보니 이곳 역시 재선충 예방을 위한 나무더미들이 자주 보이고 안부 지나 한동안 고도 차이없이 평이하게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 우측 아래로 거대한 축사들 넘어 들판과 저 멀리 아름다운 산줄기들이 펼쳐져 있다.

처음에는 얼마 전 걸었던 금오지맥의 마지막 합수점 부근이라 생각했는데 남서 방향으로 백마산은 맞는데 합수점은 백마산 좌측이니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고 그 백마산 앞으로 고아에덴타운아파트 단지들만 보이고 사진 정중앙부로 선주교가 보이는데 저 선주교에서 금오지맥을 마무리하는 산님들도 많으니 날머리라 생각해도 맞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합수점은 아닌 것이다.

가운데 제일 먼 곳으로 김천시의 구봉산과 대양산 및 매봉산 줄기가 펼쳐져 있고 우측 가까운 곳으로는 월류산과 쌀개산에서 흘러 내려 온 능선이 선산읍 마을 뒤로 펼쳐져 있다.

 

등로 우측으로 금오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백마산과 선주교를 확인하고 조금 더 묘지지대를 따라 내려가니 유학길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원리고개에 도착을 해 고갯마루 정상부를 사진에 담아 본다.

원리고개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원리는 신산 앞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고 작은 하천이 흐르며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데 금오서원이 있었으므로 원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원동, 강창, 웃마, 아랫마, 연수마을 등이 있는데 원동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원리의 그것과 같고 강창마을은 조선 때 강창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웃마마을은 원동의 위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아랫마마을은 원동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연수마을은 맑은 못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유학길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원리고개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영월엄공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들 뒤로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며 어렵게 진행하니 등로 좌측 아래로 거대한 작업장이 내려다 보이는데 무슨 용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방인의 출현에 동네 강아지들이 목청 돋궈 울부짖기 시작하고 재빨리 능선 등로를 따라 빠르게 전진하니 굵은 참나무와 관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사이로 말라있는 덩굴식물들이 보이는 지저분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고사목들이 등로 위에 널부러져 있는 난해한 등로도 만나며 어려운 산행을 한다.

 

잠시 더 이어지는 널부러진 고사목들이 보이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거대한 참나무가 쓰러져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그 무명봉을 넘어가니 갑자기 좌측에서 올라오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데 그 시멘트 포장도로는 비포장임도로 변하고 임도 좌측으로 독립지사 안강노공 묘지들이 보여 잠시 그 묘지 안으로 들어가 둘러 보니 부부묘지들이 함께 모셔진 묘지들이 보인다.

 

그 묘지를 대충 둘러보고 다시 뒤돌아 나오며 지나 온 방향인 북서쪽을 살펴보니 바로 앞으로 독동리 들판 넘어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대현산이 보이고 그 대현산 좌측 뒤로 신산이 솟아 있으며 신산 좌측 옆으로는 형제봉이 보이는데 그 형제봉 앞쪽으로는 선산읍 위로 나즈막하게 솟아 있는 비봉산이 뒷쪽으로는 상주시의 진산으로 대접 받고 있는 갑장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어제 걸었던 수선산과 기양산 줄기를 찾아 보지만 그 산들은 좌측 능선에 막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지나 온 기양지맥 마루금과 갑장산을 살펴보고 눈을 그 우측인 북쪽과 북동 방향으로 돌리니 바로 앞으로 낙동강이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낙동강 뒤 우측으로 팔공지맥의 문암산이 보이고 그 좌측 뒤 저 멀리 만경산이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는데 그 뒤로 보여야 할 보현지맥의 비봉산은 앞의 산줄기들과 거리가 멀어 보이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비나 눈이 쏱아질듯 흐렸던 나리가 개면서 다시 햇살이 비추기 시작해 날씨로 인한 걱정은 덜었지만 갑자기 찬바람이 불어오며 조금은 추위를 느끼는 날씨로 변해 체력적으로 힘든 시간에 조금은 부담으로 다가 온다.

 

독립지사 안강노공 묘지를 둘러보고 그 앞으로 펼쳐진 오늘 지나 온 기양지맥 마루금과 갑장산 그리고 낙동강과 팔공지맥 일부분을 확인하고 뒤돌아 나와 언강노공 묘지를 좌측에 두고 비포장임도를 따라 오르니 안강노공 묘지는 최근에 새로 담장을 만들어 놓은 공사를 한듯 하다.

그 독립지사 안강노공 묘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도상 151.7봉에 도착을 하는데 2층 팔각정자가 세워져 있고 현판에는 대곡정이라 했는데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서 봤던 대곡정 기문을 찾아 보지만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올라가 봐도 주위에 자란 나무들로 인해 풍경이나 조망을 즐길 수 없기에 곧바로 그 대곡정 팔각정을 지나 진행을 이어간다.

 

그 대곡정 팔각정 옆으로는 봉수대까지 0.5 Km와 금오서원까지 1.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어 사진에 담고 출발하니 활엽수 낙엽이 ㅏㄹ려있는 통나무 계단이 길게 내려가고 한동안 이어지는 낙엽 등로가 깔려있는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우측으로 벤취쉼터 3개가 보이는 안부 지나 다시 오른다.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진 묘지를 지나 전주이공 평장들을 통과하니 경주노공 묘지들도 보이고 곧이어 구미302란 삼각점이 박혀있고 백두사랑산악회에서 이정판을 걸어 둔 169.3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몇장 남기는데 그 주위로 방금 전 보며 올랐던 묘지들이 ㅠㅕㄹ쳐져 있는 넓은 공터인데 시간이 지나 잡목들과 잡풀들이 우거진 공터이다.

이곳은 구미시 남산(169.3미터봉과 구미302 삼각점) 의 봉수대터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69미터이며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선산)에 남산(藍山)은 선산도호부의 동쪽 9리에 있으며 산 밑에 양치는 목장이 있다와 동일 문헌의 봉수조에 남산봉수(藍山烽燧)는 서쪽으로 개령현의 감문산(甘文山)에 응하고 남쪽으로 석현에 응한다 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며 산 지명과 함께 동일한 전부지명소를 가진 봉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유사한 기록이 여지도서(선산)에도 나타나고 이후 표기자의 변화 없이 해동지도(선산)의 남산봉수(藍山烽燧), 대동여지도의 남산(藍山), 1872년지방지도(선산)의 남산봉(藍山烽'으로 표기되어 있다.

특히 조선지지자료(선산)의 동내면에 남산(藍山)과 한글로 봉우지산이 병기되어 있으며 강창(江倉)과 원촌(院村)에 있다는 기록이 있어 남산의 이칭인 봉우재산과 함께 강창과 원촌에 위치함을 알 수 있다.

한국지명총람의 봉산재(烽火-, 藍山)라는 기록을 통해 현재 남산과 봉화재가 함께 통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미시 남산 봉수대터에서 잠시 더 주위를 둘러보고 묘지들이 널려있는 공터를 지나 우측인 남쪽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가니 무명묘지 2기 지나 등로 우측 옆으로 구미 남산 봉수대란 설명판이 서 있어 잠시 읽어 본다.

구미시 남산 봉수대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 남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의 봉수대로서 조선시대 세종 때 정한 5곳의 봉수대 기점 중 제2선인 동래선(東萊線)에 속해 있었다.

구미 임수동의 건대산(件垈山), 해평면의 석현(石峴), 칠곡 약목면의 박집산(朴執山)에서 올라오는 봉수신호를 받아 김천 개령면의 감문산, 상주 회룡산(回龍山) 봉수대로 전달하여 서울 남산(목멱산 木覓山)까지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산 꼭대기에 띠를 두른 모양으로 설치되었는데 현재 봉돈(烽墩; 봉화 연기를 피우는 돈대) 1기만 남아 있다.

돌을 쌓아 올려 만든 봉돈의 높이는 1.8m, 상부직경은 2.6m, 하부직경은 4.3m이고 봉수대를 둘러싼 축조물의 길이는 약 85m로 석축이 약 47m, 토석축이 약 38m에 이른다.

석축은 거의 붕괴된 상태이지만 토석축은 원형이 유지되어 있다.

 

구미 남산 봉수대 설명판을 읽어 본 후 가파르게 내려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임도 좌우측으로 소나무들이 보이는데 정작 등로 위에는 활엽수 낙엽들만 수북히 쌓여 있어 무척 미끄럽기에 조심하며 진행한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김종직에 관한 설명판이 서 있고 곧이어 길재 그리고 벤취쉼터 3개가 보이는 좌측 옆으로는 금오서원 설명판이 보이는 안부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금오서원은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으로 1985년 10월 15일 경상북도기념물 제60호로 지정되었다.

1545년(명종 22)에 최응룡, 김취문이 주창하여 고려말 길재의 학문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570년(선조 3) 금오산 밑에 건립한 서원이다.

1575년(선조 8)에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2년(선조 35) 선산부사 김용(1557∼1620)과 지방 사림들이 서원 자리가 너무 외딴 곳에 있어 관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지금의 남산(藍山) 기슭에 복원하였다.

1609년(광해군 1)에는 다시 사액되어 중수하였고 길재의 출생지인 봉계리를 향하여 남향으로 서 있는데 앞쪽으로 감천(甘川)과 낙동강이 만나는 물길이 내다보인다.

서원에는 성리학의 대통을 이어받은 김종직, 정붕, 박영, 장현광 등을 추가로 배향하여 5현의 위패를 모셔왔으며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毁撤)되지 않은 47개의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경내에는 다섯 선현의 위패를 모신 상현묘와 누문인 읍청루, 동재, 서재, 정학당, 내삼문이 있으며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씩 향사를 지내고 있다.

 

그 금오서원 설명판을 지나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임도 좌측으로 통합관리센터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진행 방향으로 금오서원까지 0.7 Km 거리라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보인다.

갈림삼거리 이정표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다시 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직진의 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임도 우측으로 전주이씨완창대군 14세손 묘지들이 보이고 곧이어 금오서원까지 0.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통과하니 도상 158.9봉 갈림삼거리에 도착하고 우측으로 조금 더 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금새 굵은 소나무 두그루가 서 있는 158.9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그 158.9봉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갈림삼거리로 되돌아 나와 이제 북동 방향으로 걸어가니 많은 무명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지대를 통과해 우측으로 돌아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활엽수 낙엽들이 수북히 쌓여 있는 등로로 이어진다.

다시 무명묘지 2기를 지나고 굵은 소나무 사이로 몇기의 무명묘지들을 더 지나니 일선김공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들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키 작은 참나무에 다시 낙엽들이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는 풍경이 다시 가을 정취를 느끼게 만든다.

잠시 더 그런 가을 정취가 나는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묘지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잡풀 등로를 통과한 후 그물망이 설치된 밭경작지가 나타난다.

 

조심하며 그 밭경작지에 설치된 그물망을 넘어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굵은 참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활엽수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가지가 두개인 굵은 참나무가 잡목 사이에 서 있는 기양지맥 마지막 봉우리인 67.6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살펴보니 금오서원이 있는 원리 송죽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로서 바로 앞에 새벽에 주차시킨 애마가 보이는 유학길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애마에 배낭을 넣어 두고 유학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조금 걸어가니 도롯가에 이정표가 서 있는데 우측으로는 금오서원까지 0.7 Km 이고 좌측으로는 구미보까지 1.1 Km라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보인다.

그 이정표에서 도로 가드레일을 넘어 내려가니 퍼블릭 골프장과 게이트장이 나타나고 그 골프장 우측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가며 등로 좌측인 북서 방향으로 골프장 넘어 올려다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구미 남산 봉수대 지나 우측으로 대현산과 신산 그리고 좌측 뒤로 형제봉이 우뚝 솟아 있는데 그 뒤로 보여야 할 갑장산은 앞 기양지맥 마루금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지나 온 기양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계속 그 골프장 가장자리를 따라 합수점 방향으로 걸어가니 좌측 게이트볼장에서는 부부인듯한 4명의 두쌍이 즐겁게 게임을 즐기고 있다.

곧이어 골프장과 게이트장이 끝이 나고 갈대돠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란 강변 넘어 우측의 감천이 좌측의 낙동강과 만나는 합수점 방향으로 내려가니 드디어 합수점이 눈앞에 나타나고 그곳에서 더 이상 내려가기 어렵기에 합수점을 배경으로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낙동강은 낙동강은 유로연장 521.5 Km에 유역면적 23,817 Km2으로 압록강 다음가는 한국 제2의 강으로서 강원 태백 함백산(1,573m)에서 발원하여 상류부에서는 안동을 중심으로 반변천을 비롯한 여러 지류를 합치면서 서쪽으로 곡류하다가 함창 부근에서 다시 내성천과 영강 등 여러 지류를 구심상으로 받아들이고 유로를 남쪽으로 돌려 상주 남쪽에서 위천을, 선산 부근에서 감천, 대구 부근에서 금호강과 남지 부근에서 남강을 합친 뒤 동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삼랑진 부근에서 밀양강을 합치고 나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남해로 들어간다.

낙동강은 가락국(또는 가야)의 동쪽을 흐르는 강을 의미하는데 옛날 가야의 터전이었던 경북의 고령과 상주, 선산, 경남의 합천, 의령, 함안, 고성 지방은 모두 낙동강의 서쪽 지역에 자리를 잡았으며 이들 지역에서 보면 낙동강은 동쪽 편에 위치한다.

고려 시대 때 편찬된 삼국유사에는 낙동강을 황산진 또는 가야진으로 표기했으나 조선 초기의 역사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에는 낙동강을 낙수 혹은 낙동강이라고 썼다.

이 책에는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 36리에 있다 라는 기록이 있고 18세기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에도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을 말함이다 라고 적고 있고 이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낙동강이란 이름이 표시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낙동강의 이름은 조선 초기부터 사용됐다고 볼 수 있다.

 

감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기양지맥 산행을 이틀간 두 구간으로 나눠 마무리하고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뒤돌아 나오는데 서쪽 감천 위 구포와 생곡간 새로 건설중인 구미국도대체우회도로의 신설 교량 넘어로 오늘 하루를 밝혀줬던 햇살이 구름 사이로 숨어들며 또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다.

저 다리 아래 흐르는 감천은 경상북도 구미시의 중서부에 위치한 하천으로 김천시 대덕면 대리 수도산에서 발원하여 김천시 감천면을 지나 구미시의 선산읍 원리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구체적인 유로가 한국지명총람의 감천(甘川, 감내)에 기록되어 있으며 고유지명인 감내와 함께 지명이 유래한 부근의 면 지명인 감천면(甘川面)을 확인할 수 있다.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선산)에 감천(甘川)은 지례현에서 발원하여 금산과 개령을 거쳐 선산도호부의 남쪽 4리를 지나서 동남쪽으로 보천탄으로 들어간다 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한다.

여지도서(선산)에도 유사한 기록이 보이며 동일 문헌의 교량조에는 감천교(甘川橋)라는 다리 명칭을 확인할 수 있고 이후 1872년지방지도(선산)에서도 표기자 변화 없는 감천(甘川)이 표기되어 있으며 조선지지자료(선산)의 동내면과 서내면, 무래면 및 망장면에도 동일한 지명이 등장한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에서는 감천교(선주교)-장대걸 앞 감천에 놓인 다리 (중략) 감천변(장대걸)-오로 북서쪽 감천 곁에 있는 마을 (중략) 감천제방-감천변 북쪽에 있는 제방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감천을 전부지명소로 하는 다리, 촌락, 제방 명칭을 확인할 수 있다.

 

감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마지막 일몰까지 감상하고 뒤돌아 나와 다시 유학길 2차선 포장도로 위에 주차한 애마로 가 마지막 배낭과 등산복을 정리하고 남아 있는 커피와 음료수로 갈증을 달랜 후 곧바로 출발하니 오후 5시가 넘어가고 생각보다 막히지 않는 도로를 타고 귀가하니 저녁 8시 20여분이 지나고 있어 기다리는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소맥 몇잔으로 기양지맥 완주를 자축해 본다.

지난 주 황학지맥 산행에서 당한 사고와 이틀간 두 구간으로 완주하기엔 부담되는 기양지맥 산줄기였기에 걱정과 고민을 많이하며 내려 온 시간이었는데 다행히 무탈히 완주 후 올라 갈 수 있어 다행이었으며 특히 몸에 이상이 없어 조금은 마음 편히 귀가한 시간으로 남겨 본다.

가을 내내 경상도로만 내려갔더니 조금은 지루한 느낌으로 다음에는 전라도의 경수지맥으로 내려가 볼까 생각해 보는데 갑지가 마음이 변하면 산행지가 바뀔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다.

이제부터는 서두르지 말고 여유롭게 안전한 산행에 신경 쓰며 걸어보는 시간이길 바래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