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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기양지맥(대간.완)

기양지맥 제1구간 애향아동복지원에서 분기점 지나 수정리고개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21.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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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북도 영동군과 경상북도 김천시 및 상주시 그리고 구미시의 기양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1년 12월 09일 (목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흐리고 박무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5도에서 영상 11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애향아동복지원(옛 용문산 기도원) 최상단 주차장-능선진입-지계곡-계단-백두대간 마루금 접속 이정표(국수봉 1210 m, 용문산정상 1100m, 용문산기도원 490m, 웅북리(중웅)-기양지맥 분기점(청운봉, 734.2봉) 이정표(웅이산 국수봉 0.65 Km, 용문산 3.0 Km, 백두대간 김천과 영동구간 등산로)-기도터(십자가와 기도자리)-무너진 움막기도터-폐헬기장-기도원 갈림삼거리-길주의 지점(조진대 고문님 띠지)-408.7봉(이정판)-길주의(큰 소나무)-녹슨 철조망-묘지2-묘지1-진주강공 묘지들-비포장임도와 양파밭-말랑고개(영오길 2차선 포장도로)-사과과수원-사과과수원 철망 우회등로-습지-철망과 이별-353봉 갈림삼거리(무영객)-331.6 삼각점봉(인식불가 삼각점, 이정판)-동지골산 갈림삼거리-동지골산(285.9봉, 이정판)-갈림삼거리 복귀-잡목등로-잡목과 콘크리트 수로-2차선 포장도로-여남재 육교(3번 6차선 포장도로 통과)-국회의원 정휘동 묘지-능선진입(가시잡목등로)-무명안부-여남터널 위(경부선 철도, 유해발굴 지점)-무명안부-292 무명봉(큰 소나무에 가지2)-336 무명봉(큰 참나무)-무명묘지-경주이공과 동래정씨 합장묘지-352.4봉(이정판)-경주이공 묘지2-무명묘지2-돌무덤 안부-갈비봉 갈림삼거리-갈비봉(369봉, 이정판)-갈림삼거리 복귀-상리고개(997번 문화로 2차선 포장도로)-가시잡풀-입산금지 풀랭카드(송이 채취구역)-공터 무명봉-415 고사목 무명봉-578.1봉(이정판)-바위암봉-경주정씨 묘지-무명묘지들-무명안부-백운산(631.3봉, 이정판)-관목 무명봉-531.1봉(이정판)-공터 무명봉-무명묘지-소나무와 바위 무명봉-전망바위-463.7봉(바위봉)-산태백재 안부-억새등로-벌목지 조망-356.9봉(이정판)-무명봉(굵은 참나무2봉)-진주강공 묘지들-산태백재(구미의산 종주길 안내판, 68번 상무로 2차선 포장도로)-사과과수원 우회(상무로 시멘트 포장도로)-감나무과수원-마루금 접속-벌목지 사과과수원-비포장임도-능선진입-급경사 오르막 등로-바위암릉-483.2 삼각점봉(이정판, 인식불가 삼각점)-무명안부-537.1봉(이정판, 묵은 헬기장)-바위암릉-무명봉-바위암릉-바위암봉 우회-바위암봉 조망처-기양산(704.8봉, 정상석2, 이정판) 이정표(마을회관 4.2 Km와 마을회관 4.8 Km)-무명봉(일봉)-로프 하산등로-사각탁자 안부-수다사법당 뒷산(등산로폐쇄)-마공리 갈림삼거리 무명봉(등산로 안내판) 이정표(수선산정상 1.4 Km, 기양산정상 0.5 Km, 마공리 4.2 Km)-로프 내리막 등로-642 무명봉(큰 참나무)-바위암릉-647.6봉(이정판)-639.8 무명봉(붉은띠지)-벤취쉼터2 무명봉-바위들-665 무명봉(참나무 가지2)-수선산(682.3봉, 이정판, 인식불가 삼각점) 이정표(선산임도 1.1 Km, 돌티고개 3.1 Km, 기양산정상 1.9 Km)-무명안부-642.5봉 갈림삼거리 이정표(임도 1.1 Km, 수선산정상 0.6 Km와 상주시 청리면)-642.5봉(이정판)-갈림삼거리 복귀-급경사 낙엽 내리막 등로-무명안부-501.9봉(무영객 띠지와 바위)-벌목지 조망-비포장임도-442.3봉(수정1길 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임도(잣나무 군락지)-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밖이실마을 육각정자-능선진입-경주이공 평장들-밭경작지-비포장임도-420.8봉(금곡 띠지)-비포장임도-능선진입-506.4봉(굵은 소나무)-급경사 내리막 등로-잡풀등로-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갈림오거리)-수정리고개(916번 선상서로 2차선 포장도로, 수정리 버스정류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30.12 Km (애향아동복지원에서 분기점 지나 수정리고개까지)

             지맥산행 : 29.32 Km (기양지맥 분기점에서 수정리고개까지)

             접속구간 : 00.80 Km (애향아동복지원에서 기양지맥 분기점까지)

산행트랙 :

20211209 기양지맥 제1구간 애향아동복지원-분기점-수정리고개.gpx
0.19MB

산행시간 : 12시간 04분 (06시 26분부터 18시 30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1시 00분 기양지맥 제1구간 날머리인 수정리고개를 향해 집에서 애마로 출발

                            04시 00분 수정리고개에 도착 해 약 1시간 정도 차박

                            05시 50분 전날 예약한 청리 택시가 수정리고개를 찾지 못해 약 30분 늦어짐 (010 3535 6126)

                            06시 26분 수정리고개에서 예약한 시간보다 약 30분 늦게 출발해 애향아동복지원 최상단 주차장 도착 후

                                         곧바로 산행시작 (38,700.- 수정리고개에서 애향아동복지원 최상단 주차장까지)

                    올때 - 18시 30분 수정리고개에서 기양지맥 제1구간 산행 종료 후 배낭 정리

                            19시 10분 금오시 선산읍 엘비모텔에 투숙(40,000.-)

                            20시 30분 모텔 근처 국밥집에서 나주곰탕과 맥주 한병으로 저녁 해결 후 곧바로 취침 (12,000.-)

기양지맥이란 ???

기양지맥은 백두대간 웅이산(국수봉, 794봉) 남쪽 0.6 Km지점인 무명봉(청운봉, 734봉)에서 동쪽으로 분기하여 여남재(3번국도), 백운산(631봉), 기양산(705봉), 수선산(683봉), 주아현, 형제봉(532봉), 신산(457봉)를 지나 감천이 낙동강에 합수하는 구미시 선산읍 원리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45.8 Km되는 산줄기로 감천(69 Km)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이름부터 익숙치 않아 숨기고 남겨뒀던 기양지맥에 들어 미끄러운 활엽수 낙엽에 힘들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길게 진행하며 무탈하게 마무리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기양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충북 영동군과 경북 김천시 및 상주시 그리고 구미시와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네이버의 지식백과,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지난 주 황학지맥 산행을 하면서 칠곡대로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낙상 사고로 얼굴에 큰 상처를 당하고 눈까지 감겨 힘들게 완주 후 귀가하니 가족들의 걱정이 심해 몇일동안 근신하며 보냈는데 휴일이 지나니 얼굴과 눈 주위 붓기도 빠지고 무릎과 손등의 상처도 많이 아물어 다시 지맥 산행을 계획하는데 옆지기의 극심한 반대로 잠시 보류를 하는데 그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몇번이나 괜찮은지 확인하고 어렵게 산행을 허락해 준다.

이번에는 기양지맥을 생각하는데 길이가 애매하여 구간나누기가 쉽지 않아 두구간으로 나눌지 아니면 세구간으로 나눠 편안하게 진행을 할지 고민하다 지난 주 일어난 사고도 확인할 겸 두구간으로 나눠 진행을 해 보기로 하고 주위 택시번호를 확인해 새벽 이른 시간에 예약까지 하고나니 조금은 안심이 되는데 예전과는 달리 걱정도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도 지난 주 걱정과는 달리 빠른 시일에 다시 산행을 계획하고 진행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기분 좋게 내려갈 수 있지만 진행하면서 별 이상이 없는 것까지 확인이 필요하니 두려움과 걱정도 공존하던 시간이었다. 

 

이른 새벽에 연세드신 택시기사님이 약속장소인 수정리고개를 찾지 못해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용문산기도원에서 애향아동복지원으로 이름이 바뀐 곳 최상단부 주차장까지 올라 백두대간 마루금에 접속하고 웅이산 방향으로 오르니 734.2미터의 청운봉에 도착을 하는데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서 봤던 준희 선생님이 걸어 둔 기양지맥 분기점이란 이정판이 사라져 아쉬움을 남긴다.

밝아오는 아침여명에 일출을 기대해 보지만 두꺼운 구름으로 인해 일출도 만나지 못하고 말랑고개와 여남재 넘어 잠시 갈비봉을 다녀온 뒤 상리고개를 만나고 이어지는 백운산을 어렵게 넘은 후 다시 531.1봉 지나 463.7 암봉으로 오르니 오늘 산행 중 최고의 조망이 펼쳐져 있어 잠시 망중한을 즐기는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기만 하다.

제일 먼저 진행 방향인 북동쪽으로 잠시 후 내려가 만나야 할 356.9봉이 좌측으로 보이고 그 우측 뒤로 산태백재 지나 우측 뒤 저 멀리 이 산줄기의 주산이자 이름을 부여받게 한 기양산이 우뚝 솟아 있으며 우측의 수선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환상을 노래하고 그 좌측 뒤 저 멀리로는 상주의 진산인 갑장산이 오래된 추억을 꺼내며 다시 한번 더 고운 추억을 만들어 보자 보채고 있다.

 

바위암봉에서 멋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산태백재로 내려가 다시 정상 마루금으로 진행하려니 사과과수원으로 나와 일을 하고 있는 주인장이 동네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알려주고 그곳으로 가라고 해 마찰을 피해 마을도로를 타고 다시 마루금에 복귀한 후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 쌓여 있는 미끄러운 활엽수 낙엽을 밟으며 너무나 어렵게 오르니 537.1봉 지나 연속으로 이어지는 바위암봉들이 눈 앞으로 다가온다.

잠시 후 시남산이란 파란 페인트가 보이는 암봉으로 올라 뒤돌아 보니 지나온 방향인 남서쪽으로 방금 전 힘들게 넘어 온 백운산과 그 바로 우측으로 무명봉우리가 V자를 이루고 그 무명봉 뒤로는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약간 벗어나 있지만 존재감을 알리고 있는 내남산과 난함산이 어머니품처럼 푸근하게 솟아 있고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는 오늘 산행을 시작한 백두대간의 용문산과 웅이산 사이의 기양지맥 분기점도 보이며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거의 전 구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흐린 날씨속에 이렇게나마 풍경과 조망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잠시 더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기양지맥 첫 구간의 날머리로 생각한 수정리고개에 도착을 해 잠시 차박을 하고 눈을 뜨니 새벽 5시를 넘어가고 준비한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택시기사님에게 전화를 하니 거의 다 왔다며 밝은 목소리가 들리는데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다시 전화를 하니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아이나비만 사용하시는 연세 든 기사님이 수정리 산 66-2번지가 나오지 않자 수정리 66-2번으로 주소를 치고 오니 다른 목적지로 갈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다시 스마트 폰으로 자세히 길 안내를 해 드리니 40여분이 지난 아침 6시가 다 되어 어렵게 수정리고개에 도착을 하고 곧바로 용문산기도원에서 애향아동복지원으로 이름이 바뀐 산행 들머리로 이동을 하니 과속을 해 새벽 6시 24분 쯤 복지원 최상단의 주차장까지 무사히 올라간다.

옛 용문산기도원 입구를 지나며 잠시 사진 한장 남기니 여전히 어둠이 짙은 시간이라 조금은 아쉬움도 남는다.

 

처음에는 용문산기도원이 지정된 좁은 지역의 단일 건물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택시로도 한참을 지나야 통과할 수 있는 마을로서 나운몽 목사가 애향숙이란 이름으로 설립한 기도원이었다.

용문산기도원은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에 있는 기도원으로 평안북도 박천군 출신인 나운몽 목사가 1947년 애향숙이란 이름으로 설립한 기도원으로 한국 개신교 기도원의 모체가 되었다.

1979년 3월 30일 미국 오순절성결교회와 제휴하여 대한예수교 오순절성결회를 설립하고 재단법인체를 구성하여 복음신문을 발간하였다.

용문산기도원은 재단법인체로 출범한 이후 7명의 이사가 사무, 전도, 교육, 출판, 농림, 건설, 후생 등 7국을 각기 분담하여 용문산기도원 사업을 전국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연간 수차례 개최되는 대수련회에는 1만여 명의 신도들이 모여 노천기도회를 열고 전국 순회 심령부흥회도 개최하고 있고 1955년에 개교한 고등성경학교와 1956년에 개교한 기드온신학교를 운영하며 각 300명 정도의 신학생이 엄격한 규율 속에서 연구와 수련을 쌓고 있다.

1960년에는 수도원을 설립하고 신학교 출신 중에서 일생을 독신으로 주를 위하여 몸을 바치겠다는 독신자 80여 명의 수도사를 배출하였다.

이들은 수행반과 수련반으로 나뉘는데 수행반은 대외 선교에 종사하고 수련반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새벽 2시 50분에서 밤 10시까지 기도와 영력 수련을 한다.

택시기사님이 미안했던지 산행 준비를 하는 동안 잠시 기다렸다 안전산행하라는 말씀만 남기고 떠나가고 홀로 남아 마지막 배낭을 확인하고 곧바로 주차장 뒷쪽으로 나 있는 낙엽깔린 등로를 타고 기양지맥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아직은 어둠이 짙게 내려 앉아 있는 새벽시간이다.

 

애향아동복지원 최상단의 좁은 주차장에서 북쪽으로 나 있는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는 능선으로 오르니 초반에는 뚜렷하던 등로가 점점 사라지더니 제각각 왔다리갔다리 이어지고 있어 어둠속에 긴장하며 방향만 보고 진행하니 우측 아래 건계곡지나 다시 뚜렷한 등로가 나타난다.

낙엽 밑에는 작은 자가들이 깔려이어 발목도 조심하며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곧이어 통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타고 끝까지 오르니 이정표와 벤취쉼터 하나가 설치되어 있는 백두대간 마루금과 접속하는데 우측 이 산객이 올라 온 방향으로 샘터 70미터 표시가 보여 살펴보니 방금 전 올라 온 최상단 주차장 옆으로 물이 흐르던 소리가 들렸는데 그곳을 말하는 듯 보인다.

이 용문산기도원 갈림삼거리는 벌써 15년 전과 10여 년 전 두번을 지난 기억이 있는데 희미한 기억 파편들이 머릿속에서 조각들을 맞추며 영상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데 용문산과 국수봉에 관한 기억은 나는데 이곳 용문산기도원 갈림삼거리에 관한 기억은 없다.

좌측 남서 방향으로 솟아 있는 용문산은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능치리와 충청북도 영동군 추풍령면 웅북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710m이고 1/25000 지형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산이지만 용문산기도원(일명 용문산신앙촌이지만 현재는 애향아동복지원으로 개명됨) 때문에 널리 알려져 있다.

경상북도 상주군 공성면 백학산과 웅이산(국수봉)에서 뻗어 나온 백두대간 산줄기가 용문산을 지나 갈현(葛峴)과 사기점고개 지나 추풍령(秋風嶺)으로 이어진다.

능선은 정상부를 중심으로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고 동쪽 비탈면인 용문산마을에서는 어모면의 주요 하천이자 어모면을 대표하는 지명인 아천(牙川)이 발원하여 골짜기를 따라 남쪽으로 흐르다가 갈현 부근에서 발원한 아천의 다른 지류와 합류하여 동쪽으로 흘러 아천 본류를 이룬다.

영동군에 속하는 용문산 서쪽 비탈면에서 발원한 하천은 반계천과 추풍령천을 이루어 초강으로 흘러든다.

용문산의 명칭 유래는 1800년 무렵 박송이란 유생이 산세를 보고 용문산(龍門山)이라 이름 지었고 1940년경 나운몽 목사가 입산하여 기도원인 애향숙(愛鄕塾)을 세우고 하나님은 그를 찾는 자는 누구나 다 용납하고 만나 준다는 뜻으로 용(龍)자를 용서하다는 의미의 용(容)자를 써서 용문산(容門山)으로 바꾸었다.

 

백두대간 마루금에 접속하니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며 한기가 밀려오고 이제 우측의 웅이산 방향으로 낙엽들을 헤치며 오르니 바위지대 지나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붉게 물들어 오며 조만간 일출이 시작되려는 듯 세상을 밝혀주기 시작하는데 이 산속에는 아직도 어둠이 짙게 깔려있다.

그렇게 잠시 더 미끄러운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라 오르니 이정표와 734.2미터의 청운봉이란 이정판이 설치되어 있는 기양지맥 분기점에 도착을 하는데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서 봤던 준희님이 걸어 둔 이정판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아 북쪽인 우측의 웅이산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웅이산(국사봉)은 공성면 영오리와 신곡리 및 김천시 어모면 웅북리 그리고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사이에 있는산으로 높이는 683미터이다.

중국의 웅이산과 같이 시초가 나서 불리는 이름이라고도 하고 남천(이천, 소리천)의 발원지이며 산꼭대기에 웅긴당(웅신당 일명 웅문당)이라는 대(臺)가 있어서 가물 때 기우제를 지냈다.

산의 북쪽에 용문서당이 있었는데 임춘이 쓴 소림사 중수기에 의하면 이 서당 주변 일대에 소림사 터였음을 알 수가 있고 남천(소리천, 병성천)의 발원지이다.

정 한강 구의 문집에 웅이산에서 기초를 얻는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로 백경의 지초를 캔 일이 있다고 하고 웅산으로도 불리는 웅이산은 본래 이름이 1뫼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2뫼가 곰이로 다시 웅이 단군의 어머니가 곰이었을 만큼 곰을 신성시하던 때 거룩한, 성스러운, 으뜸, 큰 등의 뜻으로 3뫼로 불리던 것이 한자로 쓰이면서 웅산(또는 웅이산)이 되었을 것으로 본다.

이를 뒷받침하듯 상산지에 의하면 이 산에는 웅신당이 있어서 기우제를 지냈었다고 한다.

정성스럽게 걸어 둔 기양지맥 분기점이란 이정판이 사라져 잠시 더 찾아 보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멀고도 긴 기양지맥 산행을 출발하는 마음이 비장하기까지 한데 이제서야 어둠이 서서히 물러가고 여명이 밝아오며 두 눈으로 세상을 살펴볼 수 있어 다행이다.

 

기양지맥 분기점인 734.2미터의 청운봉을 지나 출발하며 북쪽을 살펴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국사봉에서 웅이산으로 이름이 변경된 봉우리가 올려다 보이고 들리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목까지 빠지는 활엽수 낙엽을 밟고 조심하며 남동 방향으로 내려가니 바람이 낙엽을 쓸고 간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에 도착을 한다.

그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지나 오르니 바위암릉이 나타나는데 우측 앞으로 십자가가 보여 올라 가 보니 시사봉 기도처로서 바로 아래 영오리 시사골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문이미 서쪽에 있는 시사골 골짜기는 시사가 시향(時祀)의 뜻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오늘은 아침 이른 시간이고 겨울이라 추워서 그런지 기도를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기도를 했던 흔적도 오래되어 보여 썰렁하기만 하다.

 

바위 상단에 시멘트로 기도처를 만들고 십자가를 세워 둔 시사봉 기도처에서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기양지맥 분기점을 살펴보고 다시 내려가니 찟겨진 텐트 기도처가 나타나고 다시 넓은 공터에 평편한 돌들과 사각탁자들이 보이는 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바위 사이로 움막기도처가 나타나는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방치되었는지 기도처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상실된 듯 보인다.

사진 한장 남기고 흉물스럽게 방치된 움막 기도처를 지나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가는데 생각보다 찬바람이 불어 옷깃을 파고드는 새벽 찬바람이 홀로 걸어가는 이 산객의 마음을 더욱 움추러지게 만들고 있다.

 

그 움막 기도처를 지나 내려가며 진행 방향 좌측 앞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붉게 물들어 오는 하늘이 곧 일출이 시작되려는 듯 보이는데 오늘 만나야 할 백운산과 기양산을 찾아 보지만 아직은 우거진 참나무 가지들과 어둠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보이는 것이 없기에 아쉬움을 남긴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참나무 등로가 열리고 등로 자체는 뚜렷하게 나 있어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군데 군데 깊이 쌓여 있는 활엽수 낙엽들이 미끄러워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잠시 후 관목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폐헬기장을 지나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고 관목의 참나무가 보이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우측으로 애향아동복지원으로 내려갈 수 있는 등로가 보이는 갈림삼거리봉이다.

 

기도원 갈림삼거리에서 좌측인 동쪽으로 진행하니 능선 등로 따라 곧이어 굵은 소나무와 바위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등로 좌측으로 방금 전 출발한 기양지맥 분기점인 청운봉과 그 우측 위로 국사봉에서 이름이 바뀐 웅이산 정상도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지나 온 방향을 살펴보가 계속 이어지는 참나무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진행 방향 앞 나뭇가지 사이로 밝은 햇살이 비추기 시작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사진에 담아 보지만 깨끗한 모습을 담을 수 없어 아쉬움도 남는 일출을 사진에 담아 본다.

 

빼곡한 참나무 가지 사이로 두꺼운 구름을 뚫고 올라 온 아쉬운 일출을 사진에 담고 평이한 낙엽 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지점에서 등로는 동쪽에서 북동쪽으로 꺽여 진행되고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걸어가며 등로 좌측을 보니 500미터 중반의 뾰족한 무명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고 그 좌측 뒤 저 멀리 방금 전 만나고 내려 온 기양지맥 분기점인 734.2미터의 청운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뾰족한 무명봉 뒷쪽으로 숨어 있을 웅이산을 찾아 보지만 아직은 보이지 않고 사진에 담고 다시 조금 더 걸어가니 굵은 소나무에 준희님이 걸어 둔 이정판이 보이는 408.7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겨본다.

 

지도 상 408.7봉 지나 북동에서 남동 방향으로 방향을 바꿔 진행하니 가지가 많은 참나무가 보이는 곳에서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휘어지고 곧이어 등로 좌측 옆으로 녹슨 철조망이 나타나는데 오래 전 설치가 되었는지 관목의 참나무의 중심부까지 그 철조망이 들어가 있어 안타까운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그 녹슨 철조망을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고 이리저리 방햐만 잡고 내려가니 제법 가파른 바위너덜길이 보이고 우측으로 우회해 내려가니 등로에서 약간 벗어나 있어 좌측 위로 오르니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가 나타난다.

또 디시 나타나는 묘지 한기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ㅗ 다시 무명묘지 지나 진산강공 묘지가 보이고 그 바로 아래 또 다른 진주강공 묘지가 나타나는데 최근에 만들어진 묘지처럼 보인다.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비포장임도 우측으로 양파밭이 보이고 그 뒤로 말랑고개 넘어 영오리 마을 지나면 나즈막하게 이어지는 진행 방향의 마루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영오리는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에 있는 리로서 바로 옆 용문산을 비롯 많은 산들이 주변에 있다.

자연마을로는 오동, 샛터, 큰마, 말랑 등이 있는데 마을 앞의 들판에 많은 바위가 까마귀가 앉아 노는 형상이라하여 오동이라 불렀으며 오동부락에 살던 주민들이 지네의 등살에 못이겨 피신하여 새로 자리를 잡은 곳이라 하여 샛터라 불렸다.

큰마는 당초 오동부락에서 피신하여 온주민들이 자리 잡은 곳으로 영오 마을 중 가장 큰 마을이라는 뜻이며 주 특작물로는 감, 밤, 모과가 있고 특히 밤나무가 많다.

 

그 묘지 위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고 내려가 벌목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 등로를 지나 넓은 비포장임도와 만나 편안하게 진행하면서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거대한 축사 건물 뒤 저 멀리 오늘 만나야 할 기양지맥의 백운산 능선 뒤 좌측 저 멀리 기양산도 보이는데 아직은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제법 멀게만 느껴지는 시간이다.

그래도 지난 주 황학지맥에서 낙상사고로 얼굴과 눈을 다쳐 걱정스럽게 귀가한 시간과 비교하면 이렇게 다시 산상에 올라 새벽 공기를 마실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등로 좌측 앞으로 진행 방향인 기양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조금 더 걸어가다 우측 아래 드넓게 펼쳐진 양파 밭 지나 멋지게 솟아 있는 봉우리 하나가 눈에 들어 와 처음에는 그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도를 확인해 보니 백두대간 산행 시 들리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던 난함산인데 다음지도에는 앞쪽으로 조금 더 높은 내남산과 그 뒤로 난함산이 나란히 이름을 올려 놓고 있는 봉우리들이다.

난함산은 경상북도 김천시의 어모면 은기리와 봉산면 상금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733m이며 속리산에서 추풍령으로 내려오는 백두대간의 능선에서 남동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고 북쪽으로 국수봉과 이어지며 서쪽으로 추풍령을 거쳐 눌의산과 연결된다.

난함산 정상은 난함산 북쪽의 백두대간 능선보다 고도가 더 높고 난함산의 동사면과 북사면에서 발원한 하천은 아천이 되며 서사면과 남사면에서 발원한 하천은 직지천을 이룬다.

난함산은 해동지도에 처음 기록되어 있는데 산의 서쪽인 추풍령에는 추풍역(秋豊驛)이 있고 산의 남동쪽에는 두화원(豆花院)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난함산(卵含山)이라는 명칭은 산의 모습이 알을 품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

저 난함산 역시 지맥 산행이 마무리되면 여유를 가지고 올라 주위 산군들을 살펴보며 오늘을 추억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비포장임도를 따라 진행하며 등로 좌우측으로 아름다운 풍경들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으며 조금 더 걸어가니 꽃잎이 지고 빛이 바랜 억새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 뒤로 이어지는 진행 방향의 지맥 등로도 확인하며 전진하니 영오길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말랑고개에 도착을 한다.

말랑고개(영오길 2차선 포장도로, 상주시 공성면과 김천시 어매면 경계, 우측으로 난함산 조망)의 말랑은 상주지역에서 사용하는 말로 꼭대기의 뜻인 마루(정상)를 말랑 또는 말래이라고 하며 문이미의 말랑 마을에서 김천시 어모면 옥계리로 가는 곳에 있는 고개이다.

고갯마루 좌측으로는 민가들이 보이는데 귀가 밝은 강아지 몇마리가 이방인의 발자국 소리에 새벽 정적을 깨기 시작해 사진 몇장 남기고 곧바로 도로 표지판 뒤로 나 있는 잡목들을 헤치며 산행을 이어간다.

 

말랑고개 건너 둔덕으로 오르니 커다란 파란 물통 지나 사과과수원으로 오르고 진행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가 보니 가시잡목들과 잘려진 벌목된 나뭇가지들이 등로를 막아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우측으로 우회하며 묘지지대를 통해 진행하니 여전히 사과과수원으로 내려가는 등로가 어렵지만 그래도 진행이 가능할만한 소로가 보인다.

다시 나타나는 사과과수원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며 뒤돌아 보니 마루금 우측으로 드넓게 펼쳐진 사과과수원과 영오리 말랑마을 지나 내려 온 기양지맥 마루금이 올려다 보이고 사진 정중앙의 무명봉 우측으로 웅이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좌측으로 분기점을 찾아 보지만 앞에 솟아 있는 무명봉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다.

 

사과과수원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솔갈비가 폭신하게 깔려있는 부드러운 등로가 반겨주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을 지나 오르니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덮혀있는 무명안부도 통과한다.

계속 이어지는 활엽수 낙엽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갑자기 가시잡목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철망 넘어 드넓은 사과과수원이 펼쳐져 있는데 살펴보니 선답자들이 거생을 했다고 하는 철망따라 진행을 해야 하는 난코스가 나타난 지점이다.

 

처음에는 우측에 사과과수원 철망을 두고 바짝 붙어 진행을 해 보려고 노력해 보지만 도저히 우거진 가시잡목을 뚫을 수가 없어 좌측으로 조금 더 떨어진 곳을 살펴보니 철망에서 5미터쯤 떨어진 사면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그 등로를 따라 사면치기를 하듯 어렵게 사과과수원을 통과한다.

잠시 후 생각지도 못한 숩지지대가 나타는데 지금도 물이 역간 흐르는 곳으로 그 습지를 우측에 두고 위로 걸어 오르니 철망과 헤어져 잡목등로 지나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관목의 참나무가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을 지나 북동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고 고사목과 관목의 활엽수가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그 무명봉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솔갈비와 활엽수 낙엽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가 보이고 곧이어 등로 좌측 나뭇가지 방향으로 제한된 풍경이 아름답게 보여 발걸음 멈추고 살펴보니 북쪽으로 영오리와 공성면 마을 지나 제법 높은 봉우리 하나가 솟아 있어 처음에는 갑장일까 생각하며 지도를 확인해 보니 511.3미터의 서산이었다.

서산은 경상북도 상주시의 청리면 가천리와 하초리 및 공성면 인창리 그리고 외남면 구서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511.3m)이며 서산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 청리현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상주)에 봉화가 6곳이니 공성 회룡산은 (중략) 동쪽으로 청리 서산에 응한다. 청리 서산은 북쪽으로 본주 소산에 응한다 라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여지도서(상주)에는 서산은 관아의 남쪽 30리에 있는데 구봉산으로부터 뻗어 나온다 라고 하여 그 위치와 흐름을 기록하고 있다. 지역민들은 동서남북 어디서 보아도 한 가지 모습으로 보인다고 하여 팔방산(八方山)이라 부른다고도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옛날 상주에 큰 홍수가 났을 때 거대한 산 하나가 물 위에 동동 떠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아녀자가 소리치는 바람에 부정을 타 산이 그 자리에 멈춰 서게 되어 서산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해동지도에 서산봉수가 청구도에 서산이 표기되어 있다.

그 서산 뒤 좌측으로 봉우리 하나가 보여 찾아 보니 혹시 노악산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약간의 박무로 인해 정확하지 못하고 특히나 그 근처를 지나갈 숭덕지맥과 작약지맥의 산줄기를 확인할 수 없어 더욱 자신은 없는 모습이다.

 

공성면과 서산을 확인하고 그 좌측 옆ㅇ로 서쪽을 살펴보니 드디어 채석장 위로 우뚝 솟아 있는 웅이산이 보이고 그 좌측 옆 나뭇가지 사이로 오늘 산행을 시작한 기양지맥 분기점이 보이는데 깨끗한 모습이 아니라 아쉬움도 남는다.

사진에 담고 다시 북동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잡목들이 나타나고 이리저리 헤치며 방향을 바꿔 동쪽으로 진행하니 다시 선답자의 산행 띠지들이 길라잡이를 해 주고 있어 길잃을 염려없이 잘 걸어간다.

다시 북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약간의 잡목등로를 따르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있으며 백두사랑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이정판이 보이는 331.6 삼각점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그 삼각점봉을 지나 좌측인 북북동 방향으로 진행하니 여전히 잡목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공터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이 근처에서 등로가 산행자 각자에 따라 다 다르게 표기가 되어 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북쪽으로 285.9미터의 동지골산으로 가 우측으로 이어지지만 잠시 후 우측 아래로 지나는 3번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너기 위해 여남재육교를 건너야 하기에 동지골산을 들렸다 진행한 선답자와 그렇지 않은 선답자들이 혼재되어 있는 듯 보인다.

그곳 동지골산 갈림삼거리에 배낭을 벗어 놓고 스마트폰만 들고 가까운 동지골산으로 향한다.

 

동지골산 갈림 공터에 배낭을 벗어 놓고 북쪽으로 걸어가니 나즈막한 안부 지나 백두사랑산악회에서 이정판을 걸어 둔 285.9미터의 동지골산에 도착을 하는데 상주시 공성면 마을유래에는 동지골산(도상 285.9m)을 3번 국도가 지나는 여남재 서족에 있는 높이 291.4m의 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곳에서 등로 우측 아래에서 차량들이 빠르게 통행하는 소음이 트게 들리기 시작하고 곧이어 지독한 가시잡목과 가파릉ㄴ 절개지를 타고 힘들게 진행을 해 여남재를 만난다는 생각은 꿈에도 그리지 못하고 편안하게 육교를 통해 3번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널 수 있음에 마음 편히 진행하는 시간이다.

 

동지골산 정상에서 추억과 사진을 남기고 뒤돌아 나와 갈림삼거리에 벗어 둔 배낭을 찾아 이제 좌측인 동쪽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간벌된 참나무 토막들이 널부러져 있고 그곳을 통과하자마자 눈 앞으로 지독한 잡목들이 보이고 그 아래로 굉장히 빠르게 달리는 차량들 소음이 귓전을 때리는데 도로는 아직 잡목들에 막혀 보이지 않고 그 3번 도로 지나 진행 방향으로 아름다운 마루금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시원하게 올려다 보이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우측인 남쪽으로 이어졌던 마루금이 갈비봉 지나 다시 북쪽으로 올라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진행 방향으로 기양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지독하게 우거진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조금 내려가니 시멘트 수로가 보이고 가파른 내리막 절개지에는 파란 철망이 깔려이는 등로로 변하고 있다.

그곳을 헤치며 조금 더 내려가니 콘크리트 수로의 경사도가 심해 그곳을 통해 내려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여 그 우측 잡목을을 헤치며 어렵게 내려가니 바로 발 아래로 2차선 포장도로 지나 3번 4차선 고속화 포장도로가 빤히 내려다 보이고 우측 저 멀리 그 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 여남재 육교도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여남현(여남재)은 경상북도 김천시의 어모면 구례리와 상주시 공성면 영오리를 연결하는 고개로서 여남현은 동쪽의 백운산과 서쪽의 국수봉 사이에 있으며 시에서는 비교적 낮은 고개이다.

여남현의 남쪽 사면에서 발원한 계류들은 아천으로 유입하며 여남현으로 김천시와 상주시를 연결하는 3번 국도가 지나고 3번 국도와 나란히 경북선철도가 통과한다.

여남현이 기록된 자료로는 해동지도, 대동여지도 등을 꼽을 수 있는데 모두 여남현이 아니라 왜유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남현은 조선지지자료에 여남령(汝南嶺)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며 김산군 구소요면 여남동에 있다고 쓰여 있다. 왜유령은 임진왜란 때 왜병이 넘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으며 여남현은 고개 아래 마을인 여남에서 유래하였다.

여남은 1520년경 상산 김씨가 이주해 살면서 지형이 중국의 고도인 여남과 비슷하다고 붙인 이름이라 한다.

 

너무나 힘들게 잡목들을 헤치며 급경사 절개지를 내려가니 드디어 3번 4차선 고속도로 위에 별도로 건설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좌측으로 여남재육교가 나타난다.

그 육교를 통해 3번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너며 중앙부에서 북쪽을 보니 상주와 문경으로 갈 수 있는 도로표지판이 내려다 보이고 도로 ㅡㅌ 지나 저 멀리 공성면의 백학산 근처의 봉우리가 빤히 보이는데 백학산인지는 분간할 수 없는 제한된 조망이라 아쉽기만 하다.

여남재(3번국도)는 높이 332.9미터로 영오리에서 김천시 옥계동으로 가는 고개이며 1913년 국도가 개통되었고 1925년 굴을 뚫어 경북선 선로가 놓였다.

배우리에 의하면 백제지역 언어 중 늘어진의 뜻인 너리의 너는 신라 경덕왕 16년 지명을 한자로 바꿀 때 여(汝)가 되었다고 하고 또 넓다와 늘어지다의 뜻으로 잉(仍), 황(黃), 남(南), 노(奴)가 취해졌다고 한다.

만약 여남재가 당시부터 사용되어 온 땅이름이라면 넓고 긴 재의 뜻이 되나 남이 너미의 변형으로 본다면 늘어진 고개나 긴 고개가 될 것이다.

높이 332.9m로, 영오리에서 김천시 옥계동으로 가는 고개이다. 1913년 국도가 개통되었고, 1925년 굴을 뚫어 경북선 선로가 놓였다.

 

여남재 육교를 통해 3번 4차선 포장도로를 통과한 후 좌측으로 보이는 등로를 따라 원 마루금과 접속한 후 우측 능선으로 진행을 해야 하지만 어짜피 여남재로 인해 제대로 된 마루금으로 진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여남재 육교에서 곧바로 능선으로 올라 마루금에 접속하기로 한다.

좌측을 보니 국회의원 정휘동묘지가 보이는데 가지고 있는 권력과 힘에 비해 워낙 지탄을 받고 있어 멀리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능선으로 오르니 지독한 가시잡목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렇게 잠시 더 우거진 가시잡목들을 뚫고 오르니 묵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좌측으로 걸어 오르니 드디어 굵은 참나무가 보이는 기양지맥 마루금에 접속하고 그곳에서 우측으로 등로를 따라 정상적인 산행을 이어가니 제법 깊은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근처에는 경부선 철도가 지나고 있는 공성면 이화리의 무명안부이다.

 

무명안부 지나 다시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는 미끄러운 등로를 따라 오르니 무명봉에는 웅덩이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6.25 전사자 유해발굴지처럼 보이는 곳이다.

그 무명봉 넘어 잠시 굵은 소나무와 노간주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무명봉 지나 등로 좌측으로 멋진 풍경들이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살펴본다.

사진 정중앙 방향으로 상주시 공성면 마을이 보이고 좌측 앞으로는 동지골산에서 흘러내린 산줄기 아래로 방금 전 여남재 육교를 통해 통과한 3번 4차선 포장도로가 길게 뻗어 있고 그 우측 아래로는 997번 이화로 2차선 포장도로가 옆으로 이화천을 두고 보인다.

그 공성면 마을 뒷쪽으로는 좌측의 백학산과 우측 뒷쪽의 서산이 보이는데 그 뒤로 보여야 할 백두대간과 숭덕지맥 마루금은 아직도 부끄러운지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등로 좌측의 공성면 방향과 그 뒤로 보이는 봉우리들을 확인하고 다시 내려가니 무명묘지가 보이는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오르니 좌측의 무명봉을 우측 사면 등로를 따라 우회하는 등로가 뚜렷하게 나 있다.

잠시 후 굵은 참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을 넘고 계속 평이하게 걸어가니 가지가 두줄기인 굵은 소나무가 보이는 292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을 남기고 출발하니 다시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무명봉도 통과한다.

그 무명봉 지나 평이하게 이어지는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오르더니 금새 가파르게 올라 굵은 참나무에 가지가 많이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진행을 이어간다.

 

등로는 어느새 남동 방향으로 계속 이어지고 그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수없이 많은 오르내림이 이어지지만 진행에 어려움은 아직 없는 듯한 등로이다.

굵은 참나무가 서 있는 336 무명봉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내려가 무명묘지를 지나고 동래정씨 묘지도 통과하니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352.4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는데 그 봉우리 뒷편으로도 묘지들이 보이는 곳이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352.4봉 지나 봉분이 무너지고 있는 경주이공 묘지2기를 통과하고 내려가니 참나무 등로에는 많은 무명묘지들이 차례로 나타나는데 일부 묘지들은 이미 자연으로 돌아간 모습들도 보이고 그 진행 방향 나뭇가지 위로는 잠시 후 힘들게 올라 만나야 할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제법 까칠하고 드높은 모습으로 눈 앞에 나타난다.

잠시 후 무명안부 지나 다시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나즈막한 돌무덤이 보이는 무명안부 지나 가파르게 오르고 잠시 후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봉우리로 오르는데 자세히 보니 등로 좌우측 모든 방향으로 띠지들이 걸려있는 우측의 갈비봉을 다녀올 수 있는 갈림삼거리인데 갈비봉은 직진의 남쪽 방향으로 이어지고 마루금응 좌측인 동쪽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해야하는 길주의 지점이기도 하다.

 

갈비봉 갈림삼거리에서 오늘 산행거리가 길기 때문에 잠시 고민하다 지나고 나서 후회할 것 같아 배낭 내려 놓고 직진의 갈비봉을 향해 빠르게 걸어가 본다.

평이한 참나무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갈비봉이 가까워진 지점 우측으로 멋진 봉우리가 보여 처음에는 용문산이나 웅이산이라 생각을 하고 살펴보니 바로 남서 방향에 솟아 있는 내남산과 난함산으로 두개의 봉우리가 겹쳐 보이는 형상으로 솟아 있다.

멋진 난함산을 살펴보고 활엽수 낙엽 사이로 커다란 바위들이 보이는 오르막 등로 지나 369미터의 갈비봉이란 이정판이 서 있는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무에 막혀 조망은 전혀 없는 봉우리이다.

갈비봉(369m)의 유래를 보면 옛날에 이 지역이 물에 찼으나 백운산과 이 봉우리만 물에 잠기지 않은 것은 백운산은 배㈜이고 이곳은 뱀의 형상이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조망이 없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뒤돌아 북쪽의 갈비봉 갈림삼거리 방향으로 걸어 오른다.

 

갈비봉에서 북쪽으로 뒤돌아 올라 와 벗어 놓은 배낭을 찾아 둘러메고 이제 우측인 동쪽 방향으로 전진하니 낙엽들이 사라진 참나무 능선 등로가 아름답게 펼쳐지고 편안하게 걸어가니 등로의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평이한 활엽수 능선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이제 등로는 동쪽에서 북동 방향으로 바뀌어 이어지고 빛바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을 확인하며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드넓은 비닐밭이 나타나고 그 아래 상주시 공성면 이화리 마을이 빤히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마을과 비닐하우스를 확인하며 완만하게 내려가니 상주시와 김천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997번 문화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상리고개에 도착을 한다.

상리고개(250미터, 997번 문화로 2차선 포장도로)는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와 상주시 공성면 이화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갯마루 우측의 진행 방향으로는 높은 철망이 설치되어 이어 그 철망을 피해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능선으로 오르기 직전 도로 우측을 보니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 마을의 비닐하우스 경작지 지나 저 멀리 멋진 산줄기 하나가 눈길을 잡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좌측의 금오지맥의 주산인 금오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 영암지맥의 영암산과 선석산 지나 다시 금오지맥의 백마산과 고당산 방향의 살줄기들이 마치 하나의 산줄기로 이어지듯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모두 만난지 얼마되지 않은 산줄기들이고 봉우리들이다 보니 그 추억들이 쌓여 잊혀지기 전에 다시 한번 더 가슴속에 그 모습을 그려본다.

 

생각지도 못한 금오지맥의 금오산과 영암지맥의 영암산 그리고 그 봉우리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들을 확인하고 상리고개 도로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잡목 위로 우거졌던 덩굴식물들이 뒤엉킨 풍경들이 눈에 들어 오고 조심하며 그 덩굴지대를 빠져 나가 오르니 등로 우측의 비닐하우스 밭이 내려다 보이고 곧이어 능선 등로에 도착을 하는데 굵은 소나무들과 관목의 참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평이한 등로이다.

잠시 후 송이채취 구역으로 입산금지라는 작은 플랭카드가 걸려있지만 송이철이 지나 주인과의 마찰은 없을 것 같아 마음 편히 오르니 등로가 좌측인 북동 방향으로 바뀌는 지점 위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다.

잠시 후 관목의 공터봉 지나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진행 방향 우측 앞으로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휘돌아 가는 모습이 나뭇가지 사이로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 무명봉 지나 오르며 살펴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진행 방향으로 펼쳐진 기양지맥 산줄기가 계속 눈에 들어오고 조금은 가파르게 오르니 무명봉을 좌측 사면 등로로 우회하며 통과도 해 본다.

다시 415미터라 생각되는 고사목이 보이는 무명봉 넘어 이끼 낀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좌측으로 482.3봉으로 오를 수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워낙 가파른 오르막 등로이기에 마음은 들려보고 싶지만 몸은 자꾸만 백운산으로 향한다.

잠시 후 바위지대를 지나 오르니 멋진 참나무 아래 수북히 쌓여 있는 활엽수 낙엽 등로가 열리는데 경사도가 점점 더 가파라지며 두발 오르면 한발 미끄러지는 참으로 힘든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그 이후로도 한동안 더 가파르게 걸어 오르니 드디어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그곳에서 우측으로 크게 휘어 동쪽 방향으로 걸어가니 금새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578.1봉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겨 본다.

 

너무나 힘들게 578.1봉에 올라 사진 한장 남기고 헐떡이는 호흡을 진전시킨 후 조금은 평이한 참나무 등로를 따라 걸어가다 좌측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멋진 산줄기들이 보여 지도로 확인해 보니 백운산 지나 북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기양지맥 마루금이 바로 앞으로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산태백재 지나 어렵게 올라야 할 기얀산과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수선산 방향의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이 산객이 진행하는 기양지맥 마루금은 많이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이어지고 있어 진행하면서 진행해야 할 산줄기와 지나 온 산줄기가 나뭇가지 사이로 빤히 보이는 풍경이 자주 눈에 들어 온다.

 

북동쪽으로 진행 방향을 살펴보고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는 참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제법 큰 바위들이 등로에 나타나고 경주정씨 묘지 지나 무명묘지가 또 다시 나타난다.

또 다시 나타나는 무명묘지 지나 안부를 통과하니 등로는 완만하게 올라가고 좌측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잠시 후 만나야 할 백운산 정상과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기양지맥 산줄기가 빤히 올려다 보여 사진에 담아 본다.

 

잠시 후 공깃돌 같은 바위를 지나 참나무 등로를 따라 오르니 지나 온 방향으로 기양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고 다시 오르니 드디어 해발 631.3미터의 백운산에 도착을 하니 커다란 이정판에 백운산(삼방산)이란 글씨가 눈에 들어 온다.

백운산(631m)은 이화리와 김천시 감문면 사이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618.3미터이다.

경상북도 김천시의 감문면 송북리와 상주시 공성면 산현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618미터인 백운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가 여남재를 지나 이어진 것으로 이 산줄기는 시와 상주시의 경계를 이룬다.

백운산은 조선시대 속문산(俗門山)이라 불렀으며 문헌자료에도 대부분 속문산 또는 고소성(姑蘇城)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속문산석성(俗門山石城)은 김산군 북쪽 27리에 있고 높고 험하며 둘레가 492보인데 안에 샘 두 곳과 못 두 곳이 있으며 또 군창(軍倉)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돌과 흙으로 쌓은 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한편 조선지도 등에도 속문산으로 기재되어 있다.

백운산은 조선지지자료에 나오며 김산군 위량면 남곡동에 있다고 쓰여 있으며 백운산은 옛날 한 장사가 나라가 망해서 이 산으로 숨어들어가자 흰 구름이 산을 덮어 보이지 않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백운산 정상에서 추억과 사진을 남기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어 풍경이나 조망은 전혀 없기에 동쪽으로 이어지는 참나무 등로를 타고 백운산을 출발한다.

 

푹신하게 깔려있는 등로를 타고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 작은 활엽수가 보이는 공터 무명봉에 오르고 조금 더 걸어가다 우측을 보니 지도 상 또 다른 백운산인 617.7미터의 삼각점이 박혀있는 백운산이 빤히 보인다.

사진에 담고 조금 더 걸어가다 이제는 좌측을 보니 방금 전 만나고 헤어진 백운산이 조금 더 멀어진 모습으로 손을 흔들어 주고 그 풍경에 취해 걷다 보니 금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가운데에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531.1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본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봉우리 지나 낙엽이 깔려있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다시 낙엽이 바람에 날려 사라진 평이한 등로가 이어진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전진하니 큰 고도차이 없는 능선 등로가 이어지더니 좁은 공터봉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는 여전히 북쪽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 공터 무명봉에서 진행 방향으로 보니 진행 방향으로도 능선 등로가 길게 이어지는데 활엽수 낙엽이 깔려있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등로가 이어진다.

 

이제 그 공터 무명봉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굵은 참나무와 관목의 잡목들이 보이는 능선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잠시 후 만나야 할 463.7봉이 생각보다 뾰족하게 솟아 있어 걸어가고 있는 산객의 마음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그 463.7봉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는 산태백재 지나 기양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길게 보이고 곧이어 잡풀들이 자랐던 무명묘지 지나 조금 더 진행하며 우측을 보니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의 무을저수지가 빤히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나타나는 바위암봉 지나 역시 바위로 이뤄진 463.7봉으로 오르니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환상의 풍경들과 조망들이 이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아 잠시 많은 사진들로 담아 본다.

제알 먼저 진행 방향인 북동 방향으로 산태백재 지나 356.9봉이 좌측으로 보이고 그 우측 뒤 저 멀리 안곡리 마을 뒤로 기양산으로 이어지는 기양지맥 산줄기가 보이고 그 기양산 좌측으로는 신암산과 사진 좌측 끝자락 방면으로 서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기양산 우측인 수선산 지나 내알 걸어야 할 기양지맥의 형제봉 지나 우측으로 감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합수점 방향이 시원하게 보이는데 합수점은 앞의 능선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그 기양지맥 마루금 우측으로는 무을면 지나 선산읍 방향으로 이어지는 좁지만 길게 펼쳐진 농경지들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미모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지나 저 멀리 쌀개산이 희미한 모습으로 이 산객의 눈길을 잡는다.

 

이제 눈을 남동쪽으로 돌리니 기양지맥 마루금 좌측인 동쪽으로 나즈막한 산줄기 하나가 남동 방향으로 길게 펼쳐지고 그 끝자락 위로 톱날같은 산줄기 하나가 펼쳐져 있는데 바로 478미터의 미모산과 함께 붙어 있는 우봉산 줄기로서 그 좌측 뒤로는 기양지맥 끝자락 옆으로 솟아 있는 225.7미터의 쌀개산이 보이고 우측 뒤 저 멀리로는 박무속에 얼마 전 걸었던 금오지맥의 꺼먼재산과 다봉산으로 이뤄진 산줄기와 봉우리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이제 눈을 다시 남쪽으로 돌리니 바로 앞으로 방금 전 올라 만나고 헤어진 631.3미터의 백운산이 지척으로 봉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마루금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500미터급의 또 다른 무명 산줄기가 빤히 올려다 보인다.

이곳에서는 잘 구분이 되지 않지만 저 멀리 기양산 부근에서 살펴보면 V자 홈처럼 제법 깊은 안부로 이뤄져 백운산과 저 500미터급의 무명봉이 마치 쌍봉처럼 보일 봉우리들이지만 오늘은 그저 겹쳐 보이는 산줄기 중 하나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지나 온 백운산 방향을 살펴보고 이제는 서쪽을 살펴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었던 웅이산과 용문산 사이의 기양지맥 분기점인 734.2미터의 청운봉에서 백운산 넘어 이곳으로 이어져 온 기양지맥 마루금이 아름다게 펼쳐져 있다.

그 기양지맥 마루금 우측인 북서 방향과 북쪽을 살펴보니 나즈막한 봉우리 좌측 뒤로 공성면 마을이 펼쳐져 있고 그 마을 넘어 백두대간의 나즈막한 산줄기가 길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우측 뒤로는 서산과 숭덕지맥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보일듯 말듯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출발에 앞서 북서 방향으로 공성면 마을과 들판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백두대간 상 용문산과 기양지맥 분기점인 청운봉 그리고 우측으로 국수봉에서 웅이산으로 이름을 바꾼 능선이 환상의 모습으로 다가 온다.

공성면은 경상북도 상주시의 남단에 위치한 면으로 동쪽은 구미시 무을면, 서쪽은 외서면과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남쪽은 김천시 감문면과 어모면, 북쪽은 청리면과 외남면에 접해 있다.

동과 서 및 남쪽은 기양산과 용문산 및 백학산 등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면 가운데를 병성천 상류 물길이 북동방향으로 흘러가며 이들 산지와의 사이에 넓은 평지를 형성하고 있다.

무곡리 삼층석탑(도 문화재자료 제128호), 효곡재사(도 유형문화재 제256호), 산현리와 용안리 고분군, 경북선 옥산역 등이 있으며 현재 면 소재지인 옥산리를 비롯하여 이화리, 산현리, 초오리 등 19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공성 지명은 고려시대 공성현(功城縣)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인데 고려사지리지에 공성현은 원래 신라의 대병부곡(大幷部曲)인데 고려 초에 지금 명칭으로 고쳤으며 현종 9년(1018)에 본 목에 소속시켰다 라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세종실록지리지(상주)와 신증동국여지승람(상주)에도 같은 내용의 관련 기록이 확인되고 상주지명총람(2004)에서는 공성이 큰 땅 또는 신성한 땅의 의미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본래 조선시대 상주목 공동면(功東面)과 공서면(功西面), 청남면(靑南面) 지역이었다.

공동 지명은 조선시대 공성 동쪽 지역이 되므로 바뀐 이름이라고 하고 호구총수(상주)와 여지도서(상주)에 공동면과 공서면 및 청남면이 기록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에도 현 서남부에 공동면과 공서면 및 청남면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청구도에는 공성면과 청남면만 확인되고 1914년 공동면과 공서면 및 청남면의 여러 동리를 합쳐 공성면으로 하여 현재의 19개 동리를 관할하게 하였으며 1986년 상주군에 속하였다가 1995년 상주시에 속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바위암봉으로 이뤄진 463.7봉에서 잠시 더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조심헤 내려가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그 끝자락에서 가파르게 내려가니 굵은 참나무 아래 활엽수 닉엽 등로가 길게 펼쳐져 있다.

조심하며 미끄러지지 않게 그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산태백재는 조금 더 진행을 한 2차선 포장도로이지만 지도 상 실제 산태백재는 바로 이곳이다.

산태백재(상주시 공성면 산현리와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의 경계)는 해발 180미터 높이의 상주시 공성면과 무을면 안곡리 사이의 고개로서 고개에는 소공원이 있다.

상주시 공성면의 마을유래에는 산태백이를 920번 지방도로가 옥산 북쪽의 3번 국도에서 갈라져 동쪽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 딱박골로 넘어 가는 고개로서 해발 180m 가량된다고 되어 있다.

 

지도 상 실제 산태백이 안부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굵은 참나무 등로를 타고 가파르게 오르다 어려워 잠시 발걸음 멈추고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라 멋진 환상의 조망을 즐겼던 463.7봉이 오를때와는 달리 조금은 부드러운 모습으로 멀어지는 이 산객을 향해 이별의 손을 흔들고 있다.

다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빛바랜 억새등로가 나타나고 경사도가 조금은 완만해진 등로를 따라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벌목지대가 나타난다.

그 벌목 등로를 따라 걸어 완만하게 오르며 우측을 보니 안곡리 무을저수지가 빤히 내려다 보이고 무을면과 선산읍 방향으로 이어지는 들판 좌측으로는 내일 만나야 할 기양지맥 마루금이 길게 펼쳐진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굵은 참나무놔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고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놓은 356.9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긴다.

 

정상에서 잠시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출발하기 전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부드럽게 걸어 올라 온 벌목지 능선 우측 뒤로 참나무 등로가 길게 펼쳐져 있고 사진 우측 뒤 저 멀리 환상의 조망과 풍경을 즐겼던 463.7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아름답게 보이고 있다.

오를땐 힘들게 올랐는데 지나고 보는 풍경은 늘 이렇게 아름답고 멋지게 남겨지니 다음에 ㅗ 그 고통을 잊고 또 새로운 산줄기를 찾아 떠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그 356.9봉 지나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한 후 굵은 참나무 두그루가 서 있는 무명봉 넘으니 등로는 이제 북쪽으로 이어지고 솔갈비가 푹신하게 깔려있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큰 아카시아나무가 서 있는 곳에서 등로는 북동 방향으로 바ㅟ어 이어진다.

고사목과 참나무 등로를 따라 다시 가파르게 내려가니 진주강공 묘지들이 나타나고 진행 방향으로 기양산 줄기를 확인하며 전진하니 등로 우측 아래로 캠핑카들도 내려다 보인다.

곧이어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좌측으로 논경작지 지나 구미의산 종주길 안내판과 무을로 도로 표지판 그리고 68번 상무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산태백재에 도착을 한다.

 

그 산태백재 도로 건너 원 마루금은 좌측 등로를 타고 산태백지 좌측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해야 하는데 그 우측 앞에 있는 사과과수원에서 농부들이 일을 하면서 등로가 없으니 우측 논을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가라고 알려 줘 마찰을 피해 원 마루금을 포기하고 우측의 안곡리 상무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마을 상단부로 진행하기로 한다.

안곡리 마을을 통해 마을 뒤로 오르며 우측 앞으로 보이는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기양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올려다 보니 저 높아 보이는 해발고도가 고작 400미터급인데도 아득하게 올려다 보인다.

 

잠시 논경작지 둑을 지나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좌측으로 민가가 보이는 곳에서 다시 우측으로 논경작지 둑을 타고 진행하니 상무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다시 나타나 그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길게 올라간다.

오르다 도로 좌측으로 감나무 과수원이 나타나는데 까치밥으로 남겨 둔 감 하나가 있어 따 먹어 보니 달달한 것이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그 힘으로 계속 걸어 오르니 마지막 민가 지나 원 마루금과 접속하고 좌측의 벌목지에 보이는 묘지 방향으로 오르다 뒤돌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넘었던 안곡리 마을 지나 356.9봉과 463.7봉 넘어 백운산과 우측 뒤 저 멀리 내남산과 난함산이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그 우측으로 보여야 할 용문산과 청운봉 및 웅이산은 우측 능선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 마을 뒤로 펼쳐진 지나 온 기양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좌측의 벌목지를 타고 묘지 뒤 능선으로 오르니 벌목 후 사과나무들이 식재되어 있어 이곳 역시 과수원으로 개발되고 있음을 느끼는데 사과 수확이 되는 계절에는 진행에 어려움도 예상된다.

잠시 후 능선으로 오르지만 가시잡목들로 인해 우측 바로 아래 사면 등로로 이동하다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벌목 후 사과나무들이 식재된 등로 뒤 저 멀리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마루금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우측에서 올라오는 비포장임도를 만나 한동안 그 비포장임도를 따라 오르고 그렇게 편안하게 걸어 오르니 임도 좌측 위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나풀거려 살펴보니 이곳에서 우측으로 흐르는 비포장임도를 버리고 좌측 가파른 오르막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야 할 길주의 지점에 도착을 한다.

능선으로 오르니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빛바랜 선답자드의 산행 띠지 지나 활엽수 낙엽이 자꾸만 미끄러지는 등로에서 잠시 심호흡 하며 호흡을 가다듬으며 좌측 뒤를 보니 저 멀리 백두대간의 웅이산과 오늘 산행을 시작한 기양지맥 분기점인 청운봉 그리고 좌측 앞으로는 백운산에서 흘러 나온 산줄기가 우측으로 흘러 내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지나 온 방향의 기양지맥 마루금을 확인하고 계속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그나마 활엽수 낙엽 사이로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있는 사초에 미끄럼이 조금은 덜한 느낌이다.

잠시 후 굵은 소나무가 보이는 능선으로 오르니 경사도가 훨씬 완만해지고 곧이어 바위암릉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 바위암릉을 통과해 넘자마자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있고 백두사랑산악회에서 이정판을 걸어 둔 483.2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추억과 사진 몇장 남겨 본다.

 

그 삼각점봉에서 등로는 다시 우측인 동쪽으로 크게 꺽어 진행하니 다시 활엽수 내리막 낙엽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들이 쌓여 있는 무명안부도 통과한다.

안부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며 등로 좌측 앞을 보니 잠시 후 만나야 할 기양산 정상부가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멋진 참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묵은 헬기장이 있는 537.1봉에 도착을 하니 준희님이 걸어 둔 이정판이 보인다.

이곳에서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주위를 둘러보니 537.1봉 역시 빼곡한 참나무들로 인해 풍경이나 조망이 전혀 없어 곧바로 출발한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정상을 지나 북동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굵은 참나무 등로 아래 활엽수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고 무명안부 지나 다시 오르니 바위암릉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바위암릉을 지나 오르니 구미의산 종주길이란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바위암릉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더 걸어 오르니 또 다른 바위암봉이 나타나고 그곳은 통과하기 어려워 우측으로 빙 돌아 우회히며 산행을 이어간다.

 

그 바위암봉을 우측으로 우회하니 계속 이어지는 굵은 소나무와 바위들이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고 그 바위암릉을 따라 오르니 다시 눈 앞으로 바위암봉이 나타난다.

그 바위암봉을 따라 조심스럽게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바위 한쪽에는 시남산이란 파란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바위암봉에 도착을 해 주위를 둘러보니 환상의 풍경들과 조망이 펼쳐져 있어 잠시 배낭 내려 많은 사진과 추억을 담아 본다.

제알 먼저 남서쪽을 살펴보니 방금 전 이곳으로 올라 온 마루금 뒤 저 멀리 백운산과 그 우측으로 무명산줄기가 좌우측으로 길게 보이고 그 무명봉 뒤로는 오늘 산행내내 봤던 내남산과 난함산이 둥그런 모습으로 솟아 있다.

그 우측으로 백두대간인 무좌골산 지나 용문산과 기양지맥 분기점인 청운봉 지나 국사봉에서 이름을 바꾼 웅이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까지 한눈에 들어 와 오늘 이 산객이 힘들게 걸어 온 모든 괘적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남동 방향으로는 무을면의 마을들과 좁고 길게 펼쳐진 경작지 지나 사진 정중앙에 미모산과 우봉산이 솟아 있고 그 뒤로 희미한 봉우리 하나가 눈에 들어 와 지도로 확인해 보니 바로 금오지맥의 진산인 금오산이고 그 우측으로는 영암지맥의 영암산과 선석산 줄기 그리고 다시 금오지맥 상 백마산과 빌무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펼쳐져 있는데 그 산줄기는 박무로 인해 보일듯 말듯 이어지고 있다.

그 우측 뒤로 보여야 할 가야산과 수도산으로 이어지는 수도지맥 산줄기를 찾아보니 그쪽 산줄기는 거리감이 있어 그런지 산줄기 자체를 구분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제 눈을 남동 방향으로 돌리니 오늘과 내일까지 걸어 마무리를 해야 할 기양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아랴로는 68번 상무로를 따라 구미시 무을면과 선산읍으로 이어지는 마을과 농경지가 길게 이어지고 있으며 그 끝자락에 내일 기양지맥이란 이름으로 산행을 마무리 해야 할 감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이 있을텐데 오늘은 그저 상상으로만 보일 뿐이다.

그 감천 합수점 좌측 뒤로는 낙동강 건너 팔공지맥의 청화산과 그 우측으로 마루금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냉산까지 보이지만 그곳까지가 오늘 산행의 최대 조망이었다.

 

이제 눈을 북서 방향으로 돌리니 바로 앞으로 신암산 지나 청리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서산 지나 백두대간이 낮아진 줄기를 따라 이동하는 사이로 백학산이 보이고 그 뒤 좌측 끝자락으로 희미한 봉우리 하나가 눈에 들어 오는데 지도를 확인해 보니 팔음지맥의 주산인 팔음산이 하늘금과 맞닿아 있는 곳으로 솟아 있다.

오후가 되면서 박무가 심해져 오전보다도 더 시야가 제한되어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지난 주 황학지맥에서 일어난 사고에 비하면 이렇게나마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 바위암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환상의 조망을 즐기고 많은 추억과 사진에 담은 후 다시 암봉을 내려가니 로프가 달려있고 안부 지나 오르니 두개의 정상석과 이정판 그리고 이정표가 서 있는 704.8미터의 기양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긴다.

기양산(704.8m, 기양산과 연악산이란 정상석 2개)은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704.8미터이고 백두대간 상의 웅이산(국수봉)에서 한 줄기가 뻗어 내려와 여남재로 잠시 가라앉은 후 백운산을 거치면서 다시 솟구친 산이며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조양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특징은 산세가 부드러우면서 아기자기하고 백두대간 상주 구간을 조망할 수 있다는 것으로 산행은 마공마을에서 시작하는데 식수를 준비한 다음 마을회관에서 15미터 거리에 있는 다리를 건너 도량 옆으로 난 마을 안길을 따라 5분 정도 가면 비포장 농로가 이어지면서 좌우에 사과밭이 펼쳐지고 이곳의 사과 역사는 상주지역 최초인 1927년부터 식재되었다.

마을 전체가 온통 사과나무 과수원이고 과수원은 산중턱까지 개간되어 있어 봄철에는 사과꽃 향기가 가득하고 가을철에는 사과향 내음이 가득하며 주변에는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어 진달래 산행도 겸할 수 있다.

산중턱까지 개간된 경사진 사과밭 사이를 지나 잣나무 조림지를 올라서면 우측으로 뻗어내린 능선에 닿게 되고 이어진 완만한 능선을 따라 암릉구간을 벗어나면 일봉(703m)에 이르고 주변이 탁 트여서 정상에서 맛볼 수 없는 짜릿함을 맛볼 수 있다.

 

오늘과 내일까지 이 산객이 걸어 진행해야 할 기양지맥 산줄기의 주산인 기양산에 도착을 해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 정상 역시 나뭇가지로 막혀 아무 풍경과 조망도 보이지 않기에 동쪽으로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이제부터 진행을 해야 할 마루금이 나뭇가지 사이로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관목의 소나무가 서 있는 좁은 공터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북동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며 등로 좌측인 북쪽을 보니 바로 앞 능선 넘어 갑장산이 빤히 보이고 그 갑장산 좌측 뒤로 식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 하나가 뾰족하게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등로 좌측인 북쪽으로 갑장산을 살펴보고 바위 사이로 보이는 로프 등로를 따라 가파르게 내려가니 발목 위까지 빠지는 활엽수 낙엽이 펼쳐져 있고 어렵게 내려가니 넓은 사각탁자가 설치되어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은 상주시 청리면 마공리이고 우측은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의 경계 지점의 안부로서 등로 좌우측으로는 사람이나 동물들이 다닌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여름철 바람이 불어 오는 시간에 앉아 있으면 신선이 따로 없을 것 같은 풍경에 왜 골바람은 이런 추운 계절에만 블어오는지 이해가 안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각탁자가 설치되어 있는 활엽수 낙엽 안부를 지나 다시 가파르게 오르니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 우측 관목의 참나무에 수다사 법당 뒷산 등산폐쇄라는 안내판이 보여 수다사를 찾아 보니 생각보다 역사가 긴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찰이었다.

수다사는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연악산(淵岳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진감국사가 창건한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신라 문성왕 때에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연악산 상봉인 미봉(彌峯)에 백련(白蓮) 한 송이가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절을 창건하여 연화사(淵華寺)라 하였다가 967년(광종 18)에는 화재로 인해 극락전과 청천료(淸泉寮)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

1185년(명종 15)에 각원(覺圓)이 금강문(金剛門) 등 3문(門)을 세우고 극락전과 청천료를 옮겨지었으며 비로전(毘盧殿)과 나한전(羅漢殿), 시왕전(十王殿), 미륵전(彌勒殿), 봉황루(鳳凰樓)와 방사(房舍) 24개, 수선사(修禪社) 등을 신축하고 절 이름을 성암사(聖巖寺)라 하였다.

이 때 42성관음대법회(四十二聖觀音大法會)를 9,000일 동안 개설하고 법화경(法華經)을 강론하였는데 승속 수만 명이 참여하였다.

1273년(원종 14) 대수해로 극락전과 시왕전, 청천료만 남고 모두 유실되었으며 1572년(선조 5)에 사명당(泗溟堂)이 극락전을 중수한 뒤 대웅전이라 개칭하였고 청천료를 수리하여 극락당이라 하였다.

또 만세루(萬歲樓) 24칸과 안심료(安心寮), 9개의 대방(大房)을 신축하고 절 이름을 수다사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곳에서 1만여 명의 의승(義僧)이 모여 의국법회(義國法會)를 개설하였으나 1704년(숙종 30)의 화재로 현존하는 건물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과 명부전, 요사채 등이 있고 대웅전 안에는 1185년에 각원이 조성한 아미타불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또 명부전 안에는 각원이 조성한 지장보살좌상을 비롯하여 시왕상(十王像)이 봉안되어 있다.

명부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81년에 보수하였는데 특히 명부전 내에 봉안되어 있는 지옥도는 희귀한 벽화로서 상태가 거의 완전한 귀중한 작품이다.

 

수다사 방향으로 출입금지라는 안내판이 서 잇는 무명봉 지나 부드러운 능선 등로를 따르니 활엽수 낙엽이 다시 벌목까지 빠지고 굵은 참나무들을 살펴보며 오랫만에 여유롭게 걸어가니 등로 좌측 뒤로 방금 전 출발한 기양산 정상부가 빤히 올려다 보이는데 벌써 저 멀리 멀어지며 아쉬움을 남긴다.

그렇게 잠시 더 능선 등로를 따르니 이정표와 등산로 안내도가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수선산은 우측인 동쪽으로 크게 꺽어 진행되고 좌측의 직진 방향으로는 마공리 하산등로 표시와 거리가 보인다.

마공리는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에 있는 리로서 기양산 끝자락에 자리한 마을이며 고개와 골짜기가 발달한 산촌마을이다.

기양산 밑 큰 골짜기가 되므로 마골이라 부르다가 변하여 마공리가 되었으며 자연마을로는 마공, 성뚝, 양진마, 새동네, 따부동재마을 등이 있는데 마공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마공리의 그것과 같다.

성뚝마을은 성이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양진마마을은 볕이 잘 드는 양지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새동네마을은 북서쪽에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며 따부동재마을은 공성면 용안리 따부동으로 가는 고개 밑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등산로 안내판과 마공리 하산 이정표가 서 있는 공터 무명봉에서 우측인 동쪽 방향으로 설치된 굵은 로프를 따라 내려가니 이곳 역시 급경사 내리막 등로에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어 미끄럽기에 전혀 속도를 낼 수 없었으며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있어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내려갔더니 체력 소모가 두배 이상으로 지쳐가는 느낌이다. 

그렇게 내려가 무명안부 지나고 다시 짧게 걸어 오르니 낙엽이 바람에 날아 간 능선 등로가 열리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능선 등로를 따르니 굵은 참나무 무명봉 넘어 바위암릉 등로가 보인다. 

그 바위암릉 구간을 지나자마자 굵은 참나무에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647.6봉에 도착을 해 추억과 사진 한장 남기고 시원한 물한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산행을 계속 이어간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647.6봉을 지나 이어지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짧은 바위암릉 등로를 지나 참나무가 아름답게 줄지어 늘어 선 능선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참나무 가지 사이로 진행 방향의 수선산이 살짝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계속 길게 이어지는 참나무 아래 활엽수 낙엽들이 사라졌다 수북히 쌓여 있는 지점을 교대로 통과하니 붉은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도 넘어 경사도가 약간 더 급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공터에 벤취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벤취쉼터가 보이는 무명봉 넘어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관목의 참나무 등로를 따라 직진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수선산까지의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다시 나타나는 바위지대를 통과하고 발목까지 빠지는 활엽수 등로를 따르니 다시 가지가 두개인 제법 굵은 참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더 남긴다.

무명봉 지나 발목 이상까지 빠지는 활엽수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304란 삼각점이 박혀있고 이정표에 682.6미터의 수선산이란 글자가 선명한 수선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그 흔한 정상석은 보이지 않고 우측 한쪽으로 백두사랑산악회에서 걸어 둔 이정판이 보이며 좌측으로 상주의 진산인 갑장산으로 갈 수 있는 분기점인 수선산에 도착을 한다.

수선산(682.6m, 삼각점과 이정표)은 경상북도 구미시의 무을면 상송리와 오가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682.6미터이며 조선시대에 연악산이라는 이칭으로 기록되고 통용되었다.

관련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선산)에 연악산(淵岳山)은 선산도호부의 서쪽 32리에 있는데 이 산의 북쪽 지맥은 곧 상주의 갑장산(甲長山)이다 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한다.

여지도서(선산)에는 연악산(淵岳山)은 속리산에서 뻗어 나온다 라는 기록이 있어 산줄기의 근원을 알 수 있으며 이후 표기자의 변화 없이 해동지도(선산), 대동여지도, 1872년지방지도(선산)에 연악산(淵岳山)이 표기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선산)의 무을면에는 연악산(淵嶽山)은 상송동에 있는데 수다사(水多寺) 뒤에 있는 산이라는 기록이 있어 연악산의 표기자 일부가 악(嶽)으로 표기된 것과 함께 산 아래에 수다사라는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에서는 수성산(水城山)을 수다산(水多山), 수선산(修善山), 연악산(淵岳山)이라고도 하였으며 상주군 낙동면과 청리면 및 선산군 무을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꼭대기에 못이 있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이칭인 수성산 및 수다산과 함께 수선산이라는 현재의 명칭을 확인할 수 있다.

 

수선산 정상 역시 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어 풍경이나 조망이 전혀 없기에 사진과 추억만 남기고 곧바로 수선산 정상을 출발한다.

이제 동쪽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참나무 아래 활엽수 낙엽들이 수북히 쌓여 있는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좌측으로 벌목지가 나타나는데 그 벌목지 넘어 저 멀리 환상의 조망들이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본다.

서쪽으로 오늘 걸어야 할 마루금이 우측 가장자리를 따라 펼쳐지고 수정리고개 넘어 내일 마무리를 해야 할 마루금 상 현제봉과 신산이 우측 중앙부로 보이고 우측 제일 뒷쪽으로는 팔공지맥의 청화산이 좌측으로 보이고 우측으로 뾰족한 냉산이 오래 전 들리지 못하고 하산한 아품을 다시 꺼내 들추고 있다.

 

동쪽과 남동 방향으로 내일까지 걸어야 할 기양지맥 마루금을 확인하고 낙동강 건너 팔공지맥의 청화산과 우측으로 냉산까지 살펴 본 후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다 좌측을 보니 이제 남동 방향으로 원통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 하나가 주위에 하얀 안개속에 휩쌓인 모습으로 내려다 보인다.

그 뒤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 방향을 살펴보니 처음에는 산줄기라 생각했는데 산줄기가 아닌 구름이 하늘금과 맞닿아 있는 모습이라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무명안부로 내려간다.

 

이제 북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사진 좌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갑장산이 지척으로 다가 와 있고 그 우측 아래로는 중부내륙고속도로의 낙동IC오 낙동면 마을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도로와 농경지 그리고 마을들이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옆으로는 상주시의 낙동면에 있는 노봉산과 삼봉산 방향의 조망이 멋지게 펼쳐져 있다.

오늘 산행도 많이 진행되고 있어 산행 날머리인 수정리고개도 그리 멀지 않았다고 생각되는데 그래도 오후 5시가 넘어가고 있으니 아직도 한시간 반 정도는 더 진행을 해야 하니 5 Km 전후로 남아 있는 듯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 멋진 풍경과 조망들을 즐기고 벌목더미가 쌓여있는 무명안부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이곳 역시 참나무 등로가 열리는데 바람이 많이 불었는지 등로 위에 쌓여있는 활엽수 낙엽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니 참나무 가지 사이로 수선산이 빤히 올려다 보이고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우측 방향으로 임도로 갈 수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정작 기양지맥 방향으로는 아무 표식도 없어 아쉬움도 남긴다.

이제 수선산 정상에서 0.6 Km 지나 왔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삼거리에 배낭을 내려 놓고 우측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도상 642.5봉을 잠시 다녀 오기로 한다.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 배낭을 내려 놓고 임도 방향으로 잠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금새 굵은 참나무 위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과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642.5봉에 도착을 해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보이는 풍경이나 조망이 전혀 없기에 곧비러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내려 와 벗어 둔 배낭에서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신 후 두 어깨에 둘러메고 이제는 이정표에서 아무 표식도 없는 북동 방향으로 걸어 전진하니 이곳 역시 송이버섯 채취지역인지 노끈으로 출입금지 표시를 해 놨다.

 

잠시 편안하게 걸어 전진하니 활엽수 낙엽들이 모두 사라진 참나무 능선 등로가 아름답게 펼쳐지고 등로 양쪽으로 설치된 노끈을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굵은 참나무가 서 있는 무명봉도 넘는다.

무명봉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경사도가 점점 더 가파라지기 시작하고 보이지 않던 활엽수 낙엽들이 발목 이상으로 빠져 미끄러 넘어지지 않토록 주의하며 어렵게 내려간다.

다시 평이한 능선 등로로 내려가 길게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약간의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무명안부 지나 오르미 다시 바위들이 낙엽속에 숨어 있는 등로와 만난다.

잠시 후 잡목들과 바위들이 보이는 도상 501.9봉에 도착을 하니 무영객님이 최근에 걸어 둔 산행 ㄸ지 한장만이 외롭게 정상을 지키고 있다.

 

바위가 보이는 도상 501.9봉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 발목지가 나타나고 그 벌목지 아래 무수리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우측 벌목지 방향을 살펴보며 능선 등로를 따르니 빛바랜 잡풀들이 등로에 보이기 시작하고 등로 좌측 옆으로는 낙엽이 지지 않은 키 작은 상수리나무들이 자주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전진하니 등로 우측 아래로 구미시 무을면 무수리 방향의 장자골소류지가 바로 아래로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무수리 마을 지나 우측의 미모산과 중앙부의 광덕산 그리고 그 뒤 저 멀리 금오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와 우측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섬처럼 떠 있는데 그 금오산 주변의 산줄기는 박무로 인해 벌써 보이지 않아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등로 우측으로 아름다운 풍경들을 조망하며 빠르게 전진하니 벌써 등로 위로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고 마음이 급해지는데 급하게 진행한다고 빨리 마무리가 되지 않음을 알기에 느긋하게 안전한 산행을 이어가기로 마음 먹고 의식적으로 조금은 발걸음의 속도를 늦춘다.

커다란 활엽수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진행 방향 우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마루금이 눈 앞으로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내일 만나야 할 형제봉 넘어 냉산이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진행 방향으로 아름답게 펼쳐진 기양지맥 마루금을 확인하고 사진에 담은 후 다시 고개를 돌려 지나 온 방향으로 서쪽을 살펴보니 우측 뒤 저 멀리 수선산에서 좌측으로 완만하게 이어져 온 기양지맥 마루금이 서서히 어둠이 밀려오는 시간에 고운 추억으로 가슴속에 쌓이고 있다.

시간은 이제 오후 5시 20여분을 지나고 있어 일몰 시간이 가까워져 있지만 오늘은 날씨가 흐려 평소 맑은 날보다 일찍 어둠이 내릴듯 보인다.

 

잡목들이 사라진 능선 등로를 따라 진행 방향과 지나 온 수선산 방향을 확인하고 잡풀들이 우거졌다 말라있고 우측으로는 벌목된 나무토막들이 널부러져 있는 가운데로 나 있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다시 진행 방향으로 잠시 후 걸어 넘어야 할 부드러운 마루금 넘어 내일 만나야 할 형제봉 능선과 낙동강 건너 냉산이 빤히 보이고 있다.

사진에 담으며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도 여전히 무수리와 미모산 그리고 저 멀리 금오산이 아름답고 그 풍경들을 추억속에 간직하며 내려가니 다시 활엽수 낙엽이 깊이 쌓여 있는 참나무 등로 지나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으로는 벌목 후 나무들이 조림되어 있다.

진행 방향으로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삼거리 건너 둔덕이 바로 도상 442.3봉인데 표식도 없기에 임도에서 사진으로 대신하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잣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좌측에서 올라오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 갈림삼거리 지나 우측으로 육각정과 커다란 느티나무가 보이고 좌측으로 민가들이 보이는 밖이실 마을 위에 도착을 한다.

밖이실은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수정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이실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고 중마의 남서쪽과 안이실의 남동쪽에 있으며 구미시와 경계를 이루는 산 능선에 있는데 마을의 남쪽 끝이 경계가 되는 마을이다.

이제 시간은 오후 5시 30분이 지나며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시야가 상당히 제한되고 사진 한장 남기기 위해 빛이 모자라 시간이 걸리는 어려운 시간으로 돌입하고 있다.

 

밖이실 마을을 지나 우측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등로는 금새 우측으로 흐르는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낙엽깔린 비포장임도를 타고 오르며 이어지는데 오르자마자 경주이공 평장들이 보인다.

잠시 후 밭경작지를 만나 통과하고 다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비포장임도 안부 지나 가시잡목이 앞을 가로막는 완만한 오르막 능선으로 등로가 이어진다.

어렵게 그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는데 한걸음 옮기기도 쉽지 않아 다시 헤드렌턴을 밝히고 오르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잡목들이 우거진 도상 420.8봉에 도착을 해 어렵게 사진 한장 남긴다.

 

어둠이 조금씩 더 짙게 내리는 잡목 등로를 따라 어렵게 진행하니 다시 넓은 비포장임도로 내려가고 마음 편히 그 임도를 따라 걸어가다 도로 좌측을 보니 묘지지대 저 멀리 낙동면 수정리 지나 용포리 방향의 마을에서 불빛들이 빛나기 시작하는데 박무인지 안개로 인해 불빛들이 흐릿하기만 하다.

용포리는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에 있는 리로서 갑장산 앞의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고 경지가 넓게 분포하며 남쪽의 작은 하천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평오리, 용중리, 반포리 등을 병합하면서 용중과 반포의 이름을 따 용포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용못, 웅용담, 아랫용담, 평오, 중용, 장자골마을 등이 있다.

용못마을은 용포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용담못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웃용담마을은 용못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아랫용담마을은 용못 아래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평오마을은 오동나무가 많으며 평지가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중용마을은 용포리의 중앙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며 장자골마을은 부자가 살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등로 좌측 앞으로 용포리 마을의 불빛들을 확인하고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임도 양쪽으로 과실수들이 보이고 묘지들이 나타나는 곳에서 비포장임도를 우측으로 보내고 좌측 직진 방향의 능선으로 들어가니 이곳 역시 활엽수 낙엽이 등로를 가득 채우고 가끔 나타나는 잡목들이 발길을 붙잡지만 심하지 않아 조심하며 천천히 오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쓰러진 고사목들이 보이고 관목의 소나무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굵은 소나무가 서 있는 도상 506.4봉에 도착을 해 어렵게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오늘 산행 중 마지막 봉우리인 도상 506.4봉 지나 약간의 굴곡진 낙엽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전진하니 경사지 지나 억새 등로도 통과하고 우거졌던 잡풀과 덩굴 지대를 어렵게 넘어가니 다시 비포장임도를 만나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간다.

그렇게 한동안 더 전진하니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 갈림오거리에 도착을 하고 북동 방향인 직진으로 계속 걸어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새벽 어둠속에 애마를 주차하고 택시로 이동을 했던 수정리 버스정류장이 보이는 916번 선상서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수정리고개에 도착을 해 오늘 산행을 마무리하고 배낭을 정리한 다음 선산읍의 모텔을 예약하고 곧바로 출발한다.

수정리는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에 있는 리로서 수선산 기슭에 자리한 산촌마을이고 고개와 골짜기기가 발달하였으며 마을 서쪽으로 작은 하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이실, 외이실, 골동, 대촌마을 등이 있는데 이실마을은 배나무가 무성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외이실마을은 이실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불리우는 이름이다.

골동마을은 깊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대촌마을은 대나무가 많이 있었던 지역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지난 주 황학지맥 산행 중 칠곡대로의 중앙분리대에서 낙상 사고를 당해 얼굴과 눈 그리고 무릎쪽에 상처를 입었는데 얼굴에 난 상처를 제외하면 모두 회복되어 다시 기양지맥으로 내려 왔는데 오늘도 30여 Km 를 걸어 진행을 했는데도 아무 이상을 느끼지 못해 몸은 이상이 없는 것으로 결론은 내고 기분 좋게 선산읍으로 들어가 마음 편히 저녁을 먹고 사진을 정리한 다음 곧바로 잠자리에 들어 다음날 새벽까지 세상 모르게 단잠에 취한 시간도 가져 본다.

기양지맥 마루금 역시 결코 쉽지 않은 등로로서 두구간으로 나눠 진행하기에는 낮의 길이가 짧은 겨울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며 내일 남아 있는 거리 역시 23 Km 이상 되기에 일찍 마무리하고 귀가하기엔 무리가 될 듯 싶어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진행을 하기로 한다.

남아 있는 내일 산행도 감천 합수점까지 잘 완주를 하고 기분 좋게 귀가해 다음 주 월요일 기분 좋은 일처리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