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경상북도 영주시와 봉화군의 자개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1년 11월 25일 (목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새벽부터 이른 아침까지 비와 눈이 내린 후 하루 종일 짙은 안개와 미세먼지로 시야가 제한되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1도에서 영상 08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고치령(영단로 시멘트 포장도로, 고치재, 760미터, 산령각, 고치령 표지석, 고치령 성황당 설명판) 이정표(마구령 8.0 Km, 국망봉 11.4 Km, 좌석리, 마락리)-사각나무 계단-계단-타이어 교통호-814.9봉(헬기장, 출입금지 안내판)-10.04 이정목과 이정표(마구령 7.5 Km, 고치령 0.5 Km)-10.05 이정목과 이정표(마구령 7.0 Km, 고치령 1.0 Km)-갈림삼거리 이정표(탐방로와 플랭카드)-자개지맥 분기점(920봉, 이정판 손실)-956.2봉 헬기장(눈이 쌓여 있는 헬기장, 실질적인 분기점)-928.2봉-855.7봉(이정판)-이장된 무명묘지-838.4 공터 무명봉-자개봉(856.5봉, 영주21 삼각점, 이정판 2개, 묵은 헬기장)-통제구역 입산금지 경고판-잣나무 군락지(좌측)-무명묘지-제1 송이움막-잣나무 군락지(좌측)-부서진 제2 송이움막-잣나무 군락지(좌측)-무명묘지-제3 송이움막-505.8 노거송 무명봉-연속 무명묘지2-467.5봉(스틱)-무명묘지 조망-시멘트 포장도로(사문로135번길)-참샘농원-사문사거리 이정표(좌석로 9.4 Km, 부석사 6.0 Km)-능선진입(밭 경작지와 드릅밭)-잡목등로-411.9봉(이정판)-이장된 묘지터-385.2 무명봉(길주의)-사과과수원-무넘어고개(노곡길 1차선 포장도로)-사과과수원과 농막-시멘트 포장도로(사곡로)-부석에덴요양원-에덴에셀 영농조합-사문로 2차선 포장도로-부석중학교-부석로 갈림삼거리(사과즙용 사과 획득)-수화고개(그까무재, 931번 소백로 2차선 포장도로, 부석119지역대)-소백산 자락길 공사장 절개지-무명묘지-지독한 가시덤불-사과과수원-능선진입-398.3봉 갈림삼거리-398.3봉(통나무 벤취)-332 노거송과 무명묘지봉-무명안부-336.4 노거송 무명봉-무명묘지2-무명묘지1-무명안부-무명묘지-370.8봉(이정판)-아카시아나무 군락지-싸리나무와 가시잡목-344.9 등걸 무명봉(길주의)-벌목 후 소나무 조림지(불났던 등로)-천마산(385.5봉, 영주302 삼각점, 산불감시초소와 무인산불가시카메라, 무명묘지)-벌목후 소나무 조림지-지독한 가시잡목등로(부났던 지역)-잡풀과 아카시아 나무등로-무명안부-332.5봉(굵은 참나무)-무명묘지-부엉재안부(단산면 옥대리)-330.5 웅덩이 무명봉-무명묘지-무명안부-285 무명봉(흰페인트 두줄)-부엉재(보계실고개, 보옥로 1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시멘트 포장도로-300.7봉(가시잡목봉)-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사거리-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와 반복)-능선진입-무명묘지-무명안부-무명묘지2-모치고개(보옥로125번길 1차선 포장도로, 한우축사와 상모치마을)-능선진입-지독한 가시잡목등로-비포장임도-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능선진입-283.3 무명봉(묵언)-고사목 무명안부-잡목등로-308.7 무명봉 응원판-무명묘지-지독한 가시잡목등로-잠실고개 갈림삼거리(보옥로125번길 시멘트 포장도로)-녹슨 철망등로-321 무명봉(이재구)-잡풀묘지-비포장임도-시멘트 구조물-시멘트 갈림사거리(임도 안내도, 구구수목원 입간판)-국모봉 갈림삼거리-수나리고개(감곡리)-능선진입-잡목등로-296.3 무명봉(노거송)-지독한 가시잡목등로-영모암 조망-가시잡목등로-341.1봉(이정판)-잡목등로-무명묘지-버려진 창고-대마고개(동원로 1차선 포장도로, 한우축사)-능선진입(한우축사 옆 능선)-가시잡목등로-329.3 고사목 무명봉-357.6 공터 무명봉-대마산(372.7봉, 이정판, 국방부대삼각점, 무명묘지)-지독한 가시잡목등로-밭경작지-대마산목장 민가-비포장임도-민가-시멘트 포장도로-거리현(935번 의상로 2차선 포장도로, 대마산목장 표지석)-능선진입-332.3 무명봉(뫼들)-336.5 무명봉(CHECK POINT2)-299.5 무명봉(법광)-312.4봉(이정판)-비포장임도 안부(사제1길)-308 무명봉-335.9봉(이정판)-322.4 무명봉(독도, 길주의)-잡목등로-무명안부-282.8봉(독도, 노간주나무)-무명안부-285.9봉(법광)-무명안부-281.1봉(이정판, 인식불가 삼각점)-시멘트 포장도로-지독한 가시잡목등로-296.6봉(이정판)-억새능선-무명안부-일몰-목책등로(전원사슴농장)-가시잡목등로-그물망 등로-마근대미(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 도로 포장공사중)-산행종료
산행거리 : 30.47 Km (고치령에서 자개지맥 분기점 지나 마근대미까지)
지맥산행 : 29.27 Km - 자개지맥 분기점에서 마근대미까지
접속구간 : 01.20 Km - 고치령에서 자개지맥 분기점까지
산행트랙 :
산행시간 : 11시간 09분 (06시 12분부터 17시 21분까지 접속구간 모두 포함하여)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전날 22시 30분 자개지맥 제1구간 날머리인 마근대미를 향해 집에서 애마로 출발
00시 30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2시간 차박
03시 30분 영주시에서 산행에 필요한 물품 구매 후 약 1시간 정도 차박
05시 20분 예약한 부석태시가 일찍 도착해 배낭 들고 고치령으로 출발(010-3538-3103, 35,000.-)
06시 05분 경 고치령에 도착했으나 계속 비가 내려 기다리다 산행 준비 후 산행 시작
올때 - 17시 21분 자개지맥 제1구간 날머리인 마근대미 시멘트 포장도로에 무사히 도착
17시 30분 공사 차량 통행에 어려움이 있어 주민 신고로 경찰이 도착해 신원 확인 후 이야기 나눔
18시 10분 위즈호텔에 도착 해 짐 정리하고 샤워 (50,000.-)
19시 20분 호텔 근처의 식당에서 내장탕으로 저녁식사 후 모텔로 복귀 해 일찍 취침(12,000.-)
자개지맥이란 ???
자개지맥(紫蓋枝脈)은 지리산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백두대간이 소백산을 넘어 고치령에서 동남쪽 1.1 Km 미내재에서 서남쪽 1.9 Km 되는 959봉 턱밑에서 남쪽으로 가지를 쳐 자개봉(紫蓋峰.858.7m)과 무넘어고개, 천마산(386m), 국모봉(349m/0.3km왕복), 수나리고개, 대마산(373m), 마근당이고개, 삽재, 박봉산(389.9m), 유릉산(299m)를 지나 서천이 내성천에 합류하는 영주군 문수면 승문리 물섬마을 앞 무섬교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48.4 Km되는 산줄기를 자개지맥이라 한다.
이 산줄기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서천(西川, 길이 32 Km)으로 들고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내성천(乃城川, 길이 108.2 Km)이 된다.
예기치 못한 비와 눈으로 산행 자체를 고민하며 시작한 산행 동안 지독한 가시잡목과 짙은 안개 그리고 미세먼지로 아쉬움을 남겼지만 희미한 소백산 주능과 문수지맥을 조망하며 옛 추억에 잠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자개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경북 영주시와 봉화군 및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와 네이버의 지식백과 그리고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많은 산줄기 사이에서도 마음속에 부담으로 다가 온 산줄기가 몇군데 있는데 지난 주 걸었던 자구지맥과 이번에 계획한 자개지맥이 바로 그런 지맥 산줄기들 중 하나이다.
초반부터 날씨로 인해 가슴앓이를 하였지만 그 이후 산행하기 좋은 산행조건으로 무난하게 진행을 하였으며 특히 몇군데 지독한 가시잡목들로 인해 온 몸에 많은 생채기를 만들었지만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면서 생각보다 먼 거리를 무탈하게 마무리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너무나 기분좋고 행복한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지맥 산행도 막바지로 들어가면서 초반의 겁없이 달려들던 도전정신은 많이 사라지고 자꾸만 주저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게 되는 것은 그만큼 산행에서 느끼고 배웠던 수많은 변수들이 작용하고 있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젊은 패기가 줄어들고 자꾸만 안정적인 시간을 원하는 것은 아닌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민초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만났던 빗줄기가 신과 조금 더 가까워진 산상으로 오르니 하얀 눈으로 변하고 그렇게 고민과 걱정이 설레임과 기대로 바뀌면서 계획보다 훨씬 빠르고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자개지맥의 최고봉인 956.2봉과 주산인 자개봉을 넘으니 산세는 급격하게 낮아지며 지독한 가시잡목들이 발목을 잡지만 그동안 많은 선답자들의 고생 덕분에 예상보다는 훨씬 편안하게 진행하니 드디어 오늘 산행 중 최고의 조망처인 천마산에 도착을 해 환상의 풍경과 조망에 취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제일 먼저 북쪽과 북북동쪽을 살펴보니 우측으로 돌아 부석면 마을로 내려갔다 솟구쳐 자개지맥이란 이름을 부여받게 만든 자개봉과 그 좌측 뒤로 가장 높은 956.2봉 지나 좌측 뒤 고치령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 오는데 오늘 저 산줄기를 타고 이곳까지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제법 먼 거리이다.
그 자개봉과 956.2봉 우측으로는 오래 전 많은 사연을 남겼던 마구령 지나 부석사를 품고 있는 봉황산 뒤로 갈곶산과 늦은목이 지나 선달선달 올라야 한다는 선달산이 우뚝하고 그 우측으로는 문수지맥 분기점인 옥석산이 우뚝 솟아 그 옛날 추억을 들려주고 있어 한동안 눈을 돌리지 못하고 그 아름다운 모습을 가슴속 깊이 간직해 둔다.
이제 눈을 남쪽으로 돌리니 벌목 후 소나무 조림지 지나 나즈막하게 이어지는 자개지맥 산줄기가 저 멀리 끝도 없이 이어지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온다.
그 자개지맥 산줄기 위로 구름속에 숨어 있는 햇살이 빛내림을 주고 그 끝자락 저 멀리 희미하게 문수지맥 마루금이 펼쳐져 있는데 우측 끝자락 방향으로는 문수지맥 상 학가산도 존재감을 알리고 있어 그곳 철조망 안에서 고생한 추억을 더듬어 본다.
눈으로 보이는 산그리메가 어렵지 않게 다가오지만 그 속살에 숨겨진 사연을 알지 못하기에 긴장감으로 다시 한번 더 가야 할 흐름을 읽어 보고 눈과 가슴으로 담은 후 잠시 무심으로 즐겨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백두대간 산행으로 3번 올랐고 좌석리에서 마락리로 넘어가는 도로가 포장되면서 차량을 이용해 한번 더 넘었으니 오늘이 다섯번째 만나게 되는 고치령 정상은 왠지 모르게 가슴속에 고통과 슬품으로 남아 있는 곳으로 기억되는 고갯마루이다.
산행 전 날씨를 확인할 때까지만 해도 흐리지만 비나 눈이 내릴 확율은 없다고 봤는데 어둠속에 영주시로 들어오니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걱정과 고민속에 차에서 세시간 정도 숙면을 취하고 일어나니 예약한 택시기사님도 걱정이 되었는지 전화로 문의를 해 온다.
그렇게 새로운 걱정과 고민으로 산행 날머리인 마근대미에서 고치령으로 올라가니 다행이 눈이 아닌 비가 내리고 있어 택시 운행에는 지장이 없지만 비옷도 준비하지 못한 상황이기에 겨울 방풍의를 입고 배낭 커버를 씌운 후 걸어야 할 거리가 멀기에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헤드렌턴 불빛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산줄기와 만나는 시간은 늘 하던것과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설레임이 교차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곳 고치령(古峙嶺, 770m)은 영주시 단산면의 마락리와 좌석리를 잇는 고개로 과거에는 북쪽의 관동 및 호서지방으로 통하는 교통로였다.
명칭 유래를 보면 신라시대에 고개 아래에 대궐을 짓기 위해 터를 잡은 일이 있었는데 이때에는 옛고개라 하였던 것이 변형되어 지금은 고치재라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영천군 산천조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등에는 관적령(串赤嶺)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고치령을 한자어로 표기할 때 관(串)에는 땅 이름 곶이라는 의미가 있고 적(赤)은 치와 소리가 비슷해 옮겼던 것으로 곶치령이 고치령으로 바뀐 것이다.
고치령은 소백산 산지와 태백산 산지가 만나는 고개로 고개의 서쪽으로 형제봉(1,177m)에서 국망봉(1,420.8m), 비로봉(1,439.5m)으로 연결되는 소백산맥이 이어진다.
고치령 남서쪽 유역의 사천은 단산저수지로 유입한 뒤 다시 빠져나와 남쪽으로 흘러 죽계천에 합류하는데 고치령 북동쪽 유역의 마락천은 북동류하여 마포천에 유입한다.
고치령에는 소백산 산신령인 금성대군과 태백산 산신령인 단종대왕을 함께 모시는 산신각이 있었는데 2001년 4월 산불로 인하여 소실되어 현재는 복원된 산신각이 남아있으며 산신각 내에는 단종과 추익한이 함께 그려진 그림이 보관되어 있다.
다만 누에고치 형상의 돌을 세워 둔 것은 고치령에 대한 모독으로 제대로 된 유래와 의미를 새길 수 있는 고개로서의 고치령이길 바래본다.
고치 표지석과 이정표를 확인해 보니 진행 방향으로 마구령까지 8 Km 거리 표시가 눈에 들어 오는데 오래 전 백두대간 산행을 하면서 만났던 산친구 한명의 의지와 열정에 감탄했던 시간과 장소였기에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바로 엊그제 일어났던 일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 포장도로를 지나 오르니 아담한 산령각이 나타나는데 예전에는 내부까지 보고 그 의미를 확인도 했었는데 오늘은 문이 잠겨있어 조용히 전체 모습만 사진에 담고 그 옆으로 보이는 젖어 있는 계단을 통해 이틀간의 자개지맥 산행을 시작해 본다.
고치재 성황당(고치령 산령각)은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고치재에 있는 성황제를 지내는 제당으로서 마락리 마주바위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곳이며 매년 10월 중순에 성황제를 지내고 있다.
고치재 성황당은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서 마락리로 넘어가는 소백산맥의 고갯마루 정상에 남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마락천이 흐르고 있다.
고치재 성황당이 위치한 곳은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과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과 연접하고 있어 예전부터 교통의 요지였다.
고치재 성황당은 사방 단칸에 납도리로 엮은 납도리집으로 산령각(山靈閣)이라고도 부르는데 6.25전쟁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66년에 중건하였으며 2001년 4월 재차 화재로 소실된 것을 2004년에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에 골슬레이트를 이어 놓았고 내부 뒷벽에 설치된 신단 중앙에는 2개의 위패를 안치해 놓았는데 우측 위패는 태백산 성황신의 것으로 태백산영지위(太白山靈之位)라고 새겨져 있으며 좌측 위패는 소백산 성황신의 것으로 소백산영지위(小白山靈之位)라고 새겨져 있다.
여기서 태백산 성황신은 단종(端宗)이 소백산 성황신은 금성대군(錦城大君)이 각각 좌정한 것으로 이와 관련하여 순흥에 귀양 와 있던 금성대군이 영월에 있던 단종을 만나기 위해 넘던 고개가 고치령(古峙嶺)이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과거에는 영주시 단산면 마락리 마을별로 동제를 지내기 전에 고치재 성황당에서 성황제를 먼저 지내고 각자 마을에서 동제를 지냈다고 한다.
동제를 지내는 시기는 대체로 매년 정월 열 나흗날과 시월 초정일(初丁日)이었으나 현재는 대부분 단절되고 마락리 마주바위마을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10월 중순에 좋은 날을 잡아 오전 10시경 성황제를 지낸 뒤 마을 동제를 지내고 있다.
1970~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영주시 단산면 마락리에서는 6개 마을이 개별적으로 동제를 지냈다고 하나 1970년대부터 시행된 화전민 이주정책과 이촌 현상으로 대부분 동제는 단절된 상태이다.
고치재 성황당에서 치러지는 성황제 또한 언제 중단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고치재 성황당은 단종복위운동과 관련 있어 지역사적 의미가 큰 장소이다.
고치령 표지석과 이정표 그리고 산령각을 사진에 담고 잠시 옛 추억에 젖어 보지만 추적추적 내리는 가랑비에 마음이 삼란해져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산령각 옆으로 보이는 계단을 타고 자개지맥 산행을 시작하는데 내리는 비만큼이나 마음도 무거워진다.
계단을 오르니 또 다른 계단이 나타나고 계단을 지나니 발목까지 빠지는 활엽수 낙엽 위에 빗물이 고여 미끄럽기에 조심하며 오르지만 어둠속에 쉽지 않다.
잔시 후 타이어 교통호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잡목들로 좁아진 폐헬기장이 나타나는데 지도를 확인해 보니 814.9미터봉으로 정상에는 아무 표식도 없이 출입금지 경고판만 서 있는데 확인해 보니 20132년 말까지 출입금지란 글자가 보여 좁아진 장상 풍경만 사진에 담고 산행을 이어간다.
폐헬기장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고치령에서 500미터 올라 왔다는 이정표 아래 소백 10-04란 이정목이 서 있다.
계속 이어지는 축축히 젖어 있는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라 오르니 다시 고치령에서 1 Km 올라 왔다는 이정표 아래 소백 10-05란 이정목이 서 있어 사진에 담고 조금 더 오르니 바람이 강하게 불지만 기온은 오르는지 온 몸이 굵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간다.
잠시 후 등로 좌측 방향으로 탐방로가 표기된 이정표와 거리두기 플랭카드가 걸려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백두대간 마루금이 우회하는 등로처럼 보이는 곳으로 자개지맥 분기점이 멀지 않아음을 알려주는 듯 하다.
백두대간 우회등로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며 지개지맥 분기점 이정판을 찾으며 조심스럽게 걸어 오르니 바람이 불어 등로에 쌓여 있던 활엽수 낙엽들이 모두 사라지고 미끄러운 등로에 비가 아닌 눈이 조금씩 보이며 더욱 미끄러운 등로로 바뀌어 있다.
하지만 참나무 높은 곳에 걸어 뒀다는 이정판은 구경도 못하고 금새 하얀 눈이 쌓여 있는 넓은 헬기장이 있는 자개지맥 최고봉인 956.2봉에 도착을 해 준희님의 이장판 앞에서 사진과 추억 한장씩 남기고 눈이 쌓여 있는 헬기장 풍경을 사진에 담고 있으니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해 헤드렌턴을 끄고 산행을 이어간다.
눈이 쌓여 있는 자개지맥 최고봉이자 헬기장인 956.2봉 지나 남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굵은 소나무 사이로 잡목들이 보이는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잠시 더 걸어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굵은 참나무 높은 곳에 준희님이 걸어 둔 928.2미터봉 이정판이 걸려 있어 사진에 담고 잠시 주위를 살펴보니 강한 바람이 불어 한기가 밀려 와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곧바로 출발한다.
능선 상 928.2봉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무명봉에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어 사진에 담고 걸어 전진하니 굵은 소나무 사이로 진달래 잡목들이 보이는 사이로 좁은 등로가 열려있다.
잠시 더 걸어가니 무명봉 우측으로 사면 등로가 나타나고 그곳을 걸어가며 등로 우측 앞을 살펴보니 잠시 후 걸어 만나야 할 무명봉 넘어 855.7봉과 자개봉이 연달아 줄지어 늘어서 있다.
진행 방향의 자개지맥 산줄기를 확인하고 참나무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나즈막한 무명안부 지나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올라 금새 굵은 참나무 위로 고사목이 쓰러져 있고 한쪽에는 법광님 띠지에 855.7봉임을 알리는 고도 표시가 보인다.
주위를 살펴보니 띠지 이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몇 발자국 앞 높은 참나무 가지에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855.7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참나무 높은 위치에 걸려있는 855.7 이정판을 사진에 담고 가파르게 이어지는 활엽수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잡목 가지 사이로 진행 방향 저 멀리 자개봉이 제법 뾰족하게 올려다 보이고 곧이어 봉분이 거의 사라진 무명묘지 한기를 통과한다.
그 묘지를 지나 능선 안부를 지나니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굵은 소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내려 온 855.7봉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며 제법 뾰족하게 솟아 있다.
그곳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잡풀들이 자랐다 말라있는 838.4 공터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자개봉으로 오른다.
보도블럭들이 널부러져 있는 공터봉 지나 잠시 더 걸어 오르니 폐헬기장에 작은 소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고 한쪽에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 있고 그 위 소나무 가지에 준희님이 걸어 둔 856.5봉이란 자개봉 이정판이 보여 그 앞에서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자개봉(紫蓋峰, 856.5m, 폐헬기장, 삼각점, 자개봉 정상판)은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와 부석면 소천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고치령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자개지맥에 있다.
명칭 유래를 보면 자개봉의 남서쪽 골짜기에는 단산저수지가 있는데 단산저수지 옆의 큰 산이 한밤중 자시(23시에서 1시 사이)에 열린다고 하여 자개봉이라고 전해진다.
자개봉은 소백산맥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작은 능선으로 남쪽으로 천마산(385.7m), 국모봉(348.6m), 대마산(372.7m), 유릉산(299.3m) 등 비교적 고도가 낮은 산지가 연속된다.
자개봉의 동쪽 수계에서 발원하는 낙화암천은 곡구에 조성된 부석저수지에 유입한 뒤 다시 빠져나와 남동쪽으로 흘러 영주시 부석면 소천리 일대에서 임곡천에 합류한다.
한편 자개봉의 서쪽 분수계는 자개봉에서 고치령, 칼바위, 늦은맥이재, 상월봉(1,396m)에 걸쳐 비교적 큰 면적을 가지며 여기서 발원한 사천은 곡구에 조성된 단산저수지에 유입한 뒤 빠져나와 남서쪽으로 흐른다.
자개봉의 등산로는 단산저수지의 상류 쪽에 있는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서 동쪽의 계곡을 따라 올라 조재기를 넘어 자개봉에 도달하며 자개봉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고치령이 나온다.
자개봉에서 동남쪽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에는 조선이 건국되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 위해 72명의 은사(隱士)가 은거했다는 부석면 노곡2리 듬실마을이 있다.
이 산줄기 이름을 부여받게 한 자개봉 정상치고는 정상석 하나없이 산이 아닌 봉으로 되어 있어 아쉬움도 남는 시간이다.
헬기장인 자개봉 정상은 이미 키 작은 소나무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어 헬기장으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상실한 듯 보여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또 다른 이정판과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관목의 참나무 가지에는 촘촘하게 박아 놓은 통제구역 입산금지란 경고판이 계속 나타난다.
등로 좌측으로는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잣나무 군락지가 펼쳐지고 사진에 담고 내려가다 보니 한동안 급격하게 해발고도가 낮아지고 있다.
한동안 더 걸어 내려가니 찾지 않는 무명묘지 한기가 나타나고 다시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발목까지 빠지는 참나무 활엽수 등로 지나 등로 좌측으로 잣나무들이 보이는 곳 한쪽에 송이움막이 보이는데 제법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첫번째 송이움막을 지나 좌측으로 잣나무를 살펴보며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100여미터마다 통제구역 입산금지란 경고판이 살아 있는 참나무에 못질로 박혀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파온다.
한동안 더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좌측으로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잣나무 군락지 지나 등로 우측 옆으로 완전히 부서진 송이움막 두번째가 나타나는데 이제 움막으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사라진 듯 보인다.
두번째 부서진 송이움막을 지나니 더욱 굵은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내리막 경사도는 많이 완화된 모습이다.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다시 잣나무들이 나타나고 진행 방향 앞쪽으로 구름을 뚫고 막 떠오른 태양빛이 빛내림을 선사하며 따스한 온기를 불어주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더 소나무와 등로 좌측으로 잣나무 군락지가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등로를 따르니 조금 더 굵은 소나무 사이로 잣나무들이 섞여 있는 듯한 등로도 보이기 시작한다.
봉분이 완전히 사라진 무명묘지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참나무 활엽수 낙엽들이 다시 깔려있고 곧이어 등로 옆으로 세번째 공이움막이 나타나는데 올 가을에도 사용한 듯한 흔적들이 보인다.
세번째 송이움막을 지나 조선 소나무같은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굵은 소나무들이 보이는 505.8 무명봉 지나 좌측으로는 여전히 잣나무들이 보이고 곧이어 봉분이 낮아진 무명묘지 지나 또 다른 무명묘지도 통과한다.
그 무명묘지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소나무들이 보이는 봉우리가 나타나고 지도를 보니 467.5봉으로서 그곳 정상으로 오르지만 이정판이나 그 흔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한장 보이지 않아 스틱을 걸어 놓고 사진 한장 담으며 위치를 확인한다.
그 467.5봉 좌측 옆으로는 부석저수지가 있는데 좌측 능선에 막혀 보이지 않아 아쉬운 마음으로 계속 내려가니 잘 관리되고 있는 무명묘지 위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주위를 살펴보니 풍경과 조망이 나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그 이름들을 불러주고 진행을 이어간다.
등로 우측으로 소천리 지나 노곡리 마을과 농경지가 길게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잠시 후 올라 만나야 할 자개지맥의 천마산 줄기가 보이는데 천마산은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는 듯 하다.
소천리는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에 있는 리로서 낙화암천이 흐르며 산지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달터, 두들마, 물구지 등이 있는데 달터는 다래 덩굴 밑에서 달이 뜨는 것을 보면 달이 띠를 두른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두들마는 마을이 뱃머리 형상이며 언덕 위에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물구지는 물이 맑고 호수처럼 생겼다고 하여 물구지라 불렀다.
등로 좌측으로는 소천리 사문마을이 바로 내려다 보이는데 그 사문마을 위쪽으로는 부석저수지가 있을텐데 이곳에서도 그 저수지는 좌측 능선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사문마을(沙文-사그랭이, 상사문-上沙文)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소천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옛날에 학문이 높은 선비 김희소(金熙紹)가 경치가 좋은 산천을 찾아 다니며 글 읽기를 즐기던 바 이 동네에 있는 폭포에서 글을 읽고 폭포로 이루어진 모래밭에 글을 썼다고 하여 동명을 사문(沙文)이라 했다는 설이 있으며 또 다른 설에는 이곳에 옛날부터 사기그릇을 굽는 옹기굴이 있어서 사그랭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사문마을 건너편인 동쪽과 북동쪽을 살펴보니 바로 앞으로 나즈막한 무명산줄기가 지나고 그 뒤 저 멀리 부석사를 품고 있는 봉황산이 좌측인 북쪽으로 갈곶산과 늦은막이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 방향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무명묘지에서 등로 좌우측을 살펴보고 그 이름들을 줄러 준 후 직진 방향으로 진행을 시도해 보지만 가시잡목이 우거져 있고 금새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가야 하기에 좌측으로 나 있는 뚜렷한 비포장임도 같은 길을 따라 조금 일찍 우회하며 진행하기로 한다.
내려가니 그물망이 나타나고 곧이어 사문로135번길이란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좌측으로 참샘농원이란 입간판이 서 있다.
잠시 후 정상 마루금에서 내려오는 곳에 높은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그 앞으로 411.9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데 그 사이에는 사과과수원이 펼쳐져 있다.
사진에 담으며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사문사거리에 도착을 하고 좌측으로 커다란 파란 물통 옆에 좌석리와 부석사 방향으로 방향과 거리 표시가 보이는 이정표가 서 있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사과과수원과 파란 물통 넘어 저 멀리 방금 전 내려 온 467.5봉 좌측으로 자개봉으로 이어지는 자개지맥 마루금이 올려다 보이고 우측 뒤 저 멀리로는 515.8 삼각점봉 넘어 마구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사문 사거리에서 지나온 방향과 백두대간 마루금을 살펴보고 우측 능선 방향으로 오르니 초반부터 잡목들의 저항이 심하고 어렵게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굵은 참나무들이 늘어나고 잡목이 줄어들면서 경사도도 조그믹 완화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굵은 소나무에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놓은 411.9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곧바로 동쪽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평이한 능선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우측인 남동쪽으로 크게 휘어져 진행되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가시잡목들이 심하고 곧이어 아카시아나무 군락지를 빠져 나가니 가시잡목 벽이 앞을 가로막는데 살펴보니 바로 아래로 사과과수원이 펼쳐져 있다.
다른 방법이 없어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들며 그 가시잡목을 뚫고 내려가 사과과수원을 통과하니 짧은 절개지 지나 노곡길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무넘이고개에 도착을 한다.
무넘이고개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아무리 찾아도 자료가 없어 무넘이고개가 속해 있는 노곡리를 찾아보니 노곡리는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 뒤로 산지가 위치하며 낙화암천이 마을을 따라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남절, 은행정, 양지마 등이 있는데 남절은 용수산의 남쪽에서 마을 터가 제일 좋은 곳이라 하여 남제일이라 불렀으며 지금은 음이 와전되어 남절이라 부르고 있다.
은행정은 마을의 은행나무 밑에다 정자(亭子)를 짓고 마을의 길복(吉福)을 빌며 살아왔다 하여 은행정이라 불려졌고 양지마는 용수산 중턱에 자리잡은 양지바른 곳이므로 양지마라 불렀다.
무넘어고개를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다 능선 방향으로 오르려고 찾아 보지만 가시잡목들이 우거져 진행이 어렵고 지도와 트랙으로 확인해 보니 그까무재 일명 수화고개까지는 특별히 이름있는 봉우리도 없어 가능하면 마루금에 븥어 도로와 과수원을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노곡길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농막과 사과과수원이 펼쳐져 있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그물망이 설치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 방향으로 진행하니 사과과수원이 양쪽으로 펼쳐져 있고 곧이어 또 다른 농막 앞마당을 통과한다.
다시 나타나는 사과과수원을 따라 걸어가며 과수원 좌측을 살펴보니 북서쪽으로 방금 전 걸어 내려 온 이 산줄기의 이름으 부여받게 만든 자개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고 그 우측 뒤로 고치령에서 마구령 방향으로 이어지는 이름없는 부드러운 백두대간 마루금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부석사를 품고 있는 봉황산 좌측 뒤로 갈곶산 넘어 선달산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데 저 선달산을 오르면서 힘들어 선달선달 올라야 한다며 웃으면서 올랐던 기억이 뚜렷하기만 하다.
계속 이어지는 사과과수원을 따라 걷다보니 어릴적 시골에 살면서 가을 수확철에 감을 수확하면서 감나무에 하나내지 두개 정도의 까치밥 용으로 감을 남겨 놓고 수확을 했는데 사과나무도 마찬가지인지 가끔 사과들이 매달려 있어 하나 따 먹으니 껍질이 질기긴 해도 맛이 있어 두어개 더 따먹으며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사과과수원과 콘크리트 수로를 지나 다시 사문로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서고 그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부석에덴용양원 지나 에벤에썰영농조합 건물이 있는 갈림삼거리를 만나는데 이제 사문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그 갈림삼거리 지나 뒤돌아 보니 에덴에썰영농조합 건물 뒤 저 멀리 방금 전 지나 온 자개봉이 바로 코 앞으로 솟아 있고 그 우측 뒤로 고치령에서 마구령으로 이어지는 이름없는 부드러운 백두대간 마루금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헤어지는 이별을 아쉬워하듯 바라보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사문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그까무재 일명 수화고개 방향으로 걸어가니 도로 우측 사과과수원 위쪽으로 원 마루금이 이어지는데 괜시리 마음의 부담이 느껴지고 좌측으로는 부석중학교가 보이기 시작한다.
마근대미까지 진행하기 위해 시간이 촉박하고 걸어야 할 거리가 멀지만 도로 따라 우회하는 것은 마음의 부담으로 다가 와 앞으로는 조금 늦더라도 원 마루금을 고집하기로 하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부석로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 삼거리 좌측 옆으로 트럭들이 정차되어 있고 사과를 담은 거대자루들이 보여 다가가 확인해 보니 사고주스를 만들기 위한 사과들이라는 답이 돌아 온다.
부탁해 괜찮은 사과 몇개 맛볼 수 있느냐고 물으니 좋은 것은 먹어도 괜찮다며 몇개 골라가라 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큰 사과 3개를 취했더니 갑자기 배낭 무게가 무거워지며 두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감이 장난이 아니다.
그 부석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으로는 새로 지어진 듯한 부석119지구대가 자리하는데 도로 건너 진행 방향으로는 무슨 공사중인지 붉은 황토가 드러나 있는 절개지로 변해 있다.
지도를 보니 부석에서 올라오는 2차선 포장도로는 931번 소백로 2차선 포장도로로서 이곳 갈림삼거리 우측 위쪽이 바로 수화고개 즉 지도에는 그까무재로 표기된 고갯마루이다.
수화고개(그까무재, 931번 소백로 2차선 포장도로)는 좌측의 경북 영주시 부석면 소천리에서 우측의 단산면 옥대리 방향으로 넘어가는 2차선 포장도로에 있는 고개로서 이곳 마을을 찾아 봐도 수화에 대한 자료는 보이지 않는데 왜 수화고개일까 궁금하기만 하였는데 옛날 수화마을이 바로 그까무마을이었다는 자료가 보여 그렇게 불려지는 듯 보인다.
그 931번 소백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 그까무재 정상방향으로 오르면 도로 우측으로 잘 관리되지 않아 그 기능을 잃어가는 산신각 하나가 눈에 들어 오는데 바로 그까무재 동제(산신각)이기에 자료를 찾아보니 상세한 자료가 보여 올려 본다.
소천리 그까무재 동제(산신각)는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소천리 그까무재마을에서 마을의 안녕을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를 말하는데 영주시 부석면 소천리에서 노곡리로 넘어가는 고개에 있는 당집에서 정월 14일 자정에 행한다.
소천리 그까무재마을에서 동제를 지내기 시작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성황당 서쪽 벽상에 소천거부현성황사기광서5년기묘월초4일(紹川巨釜晛城隍祠記光緖五年己卯月初四日)이라고 쓴 기문이 걸려있다는 기록으로 볼 때 1879년(고종 16)경부터 당집을 세워 제사를 지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소천리 그까무재 동제의 제당은 부석119지역대 뒤쪽의 그까무재라 불리는 영주시 부석면 소천리에서 노곡리로 넘어가는 고갯길 가에 기와를 얹은 한식 구조로 지은 1칸 당집이다.
당집 내부에는 여자와 호랑이 및 동자가 그려져 있는 화상이 있는데 이는 1991년도에 당집 주변에 있던 소나무가 고사하고 당집의 지붕이 비바람에 상하여 동네에서 보수하면서 새로 만든 것이다.
그까무재 성황당은 부인인 여자 성황신을 모시는데 김씨라 칭하며 소천리 그까무재 동제는 정월 14일 자정에 지내며 음력 섣달그믐날에 제관, 축관, 도가 각 1명을 깨끗한 사람으로 선정한다.
금줄은 일주일 전에 도가 집에만 치고 황토를 제당부터 도가 집까지 펴며 제물은 수탉, 소고기 산적, 돼지고기 산적, 메 한 그릇, 제주, 삼실과, 삼채소, 백설기를 마련하는데 장보기는 정월 14일 아침에 도가가 장을 본다.
제의 후 소지는 성황 소지, 제관 소지, 도가 소지, 호주 소지를 올리고 성황제가 끝나면 당집 옆에 있는 입석에 술을 한잔 붓고 산신제를 지낸다.
도가 집에서 내려와 비빔밥으로 음복하며 결산을 본 후 15일 아침에 따로 모이지 않는데 제비는 4~5년 전까지 호당 갹출하였으나 요즘은 동네 자금으로 지낸다.
그까무재 동제(산신각)을 확인하고 다시 부석119지역대 앞 갈림삼거리로 내려 와 이제는 도로 우측 공사장 절개지 방향을 살펴보니 지나온 방향으로 소백산자락길 5.6 Km 란 이정판이 서 있고 그 뒷쪽으로 들어 가 우측 절개지로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온 갈림삼거리 좌측으로 부석119지역대 건물이 보이고 그 우측 뒤로 부석면 마을과 저 멀리 좌측의 마구령에서 올라 온 이름없는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우측 뒤의 갈곶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보이고 그 갈곶산 앞으로는 부석사를 품고 있는 봉황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생각보다 넓게 펼쳐져 있는 부석면은 경상북도 영주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지형이 남북으로 길쭉한데 북쪽은 소백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관내의 백두대간에는 어래산이 있다.
마구령 등에서 발원한 낙화암천이 중앙부를 남쪽으로 흐르고 봉황산 남사면에는 봉황산 아래 부석사(浮石寺)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순흥부 이부석면(二浮石面)과 삼부석면(三浮石面) 및 도강면(道講面)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가 뒤에 이부석면은 용암면(龍岩面)으로 삼부석면은 봉양면(鳳陽面)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1914년 용암면과 봉양면 및 도강면이 합쳐져 부석면(浮石面)이 되었으며 영주군에 편입되었는데 지명에서 부석(浮石)은 부석사에서 유래하였는데 여지도서(순흥)에 의하면 부석사는 봉황산(鳳凰山)에 있고 당나라 고종 의봉 1년(676, 문무왕 16)에 신라 문무왕의 명령에 따라 승려 의상(義湘, 625~702)이 이 사찰을 세운 후 부석사라고 이름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1980년 영풍군(榮豊郡)에 속했다가 1995년 다시 영주시에 속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면 소재지인 소천리를 포함하여 10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는데 이들 지명은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기초하고 있으며 지명은 대개 조선시대의 한 마을 이름을 대표로 내세워 사용하고 있다.
감곡리(甘谷里)는 신라의 감곡부곡(甘谷部曲)에 기원을 두고 있고 남대리(南大里)는 남대궐이라고도 불리던 마을로 단종이 쉬어갔던 곳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북지리(北枝里)는 북쪽에 소백산이 있는 것에서 유래하였는데 순한글로 갓띄 또는 갓디라고도 하고 임곡리(林谷里)는 숲이 울창하여 숲실이라고 불리던 마을이고 용암리(龍巖里)는 마을의 용바위라는 랜드마크에서 붙여진 지명이다.
오래 전 많은 산친구들과 백두대간 산행을 하면서 두어번 들렸던 부석이지만 기억이 생소한데 오늘에서야 제대로 된 부석을 조금 알게 된 것 같아 다행이다.
공사중인 황톳빛 절개지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 북서쪽을 살펴보니 좌측으로 자개봉과 자개지맥에서 가장 높은 956.2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그 속에 숨겨 놓은 가시잡목들 위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으로는 무명봉 뒤로 마구령으로 이어지는 무명의 부드러운 백두대간 마루금이 하얀 구름이 떠 있는 하늘마루금에 맞닿아 있는 모습으로 자꾸만 눈길을 잡는다.
바로 앞 931번 소백로 넘어로는 이동통신탑 앞 마루금 옆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길게 열려있어 초반 조금 힘들더라도 가시잡목을 뚫고 올라 정상적인 마루금을 따라 진행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다.
고치령에서 산행을 시작할때만 해도 비가 내리고 안개가 껴 있어 오늘 산행이 만만치 않겠다고 걱정을 했는데 자개봉을 지나니 비가 그치고 안개도 사라지며 이제는 산행하기 좋은 조건이 되어 산행 자체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절개지 상단에서 멋진 풍경과 조망들을 즐기고 이제 굵은 소나무들이 보이는 남쪽 방향으로 들어가니 둔덕넘어 완만하게 내려가고 곧이어 무명묘지 한기 지나 지독한 가시덩굴들이 앞을 가로막는 등로 앞에 도착을 하는데 진행이 난감하기만 하다.
그래도 한여름 우거졌던 덩굴들이 계절적 영향으로 많이 숨이 죽어 이리저리 찾아 보니 선답자들이 지난 흔적이 흐릿하게 보이고 그곳을 통해 허들 넘듯 넘기도 하고 낮은 포복을 하듯 기어 어렵게 넘으려고 하지만 쉽지 않아 좌측으로 내려가니 사과과수원으로 이어진다.
지독한 가시덤불 지대를 관통하지 못하고 좌측 사과과수원으로 내려가니 이곳도 역시 몇개의 사과들이 남아 있어 두어개 따서 갈증과 허기를 면하고 가파른 잡목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원 마루금과 만나 좌측으로 걸어 오른다.
별 특징도 없고 고도 차이도 크지 않은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몇장 걸려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확인해 보니 좌측 옆으로 지도상 398.3봉이 보여 잠시 올라가 보니 아무 표식도 없이 소나무 사이에 통나무 벤취가 놓여 있는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뒤돌아 나온다.
변변한 이정판이나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한장 없이 통나무 벤취 하나 걸려있는 398.3봉을 다녀 와 남서 방향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우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조망이 펼쳐지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소백산 주능선의 비로봉과 국망봉처럼 보이는 풍경들인데 정상부는 아직도 안개인지 구름속에 숨어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등로는 좌측으로 이어지지만 우측으로 조금 더 내려가 살펴보니 단산면 옥내리 마을 지나 무명의 산줄기가 펼쳐져 있고 그 뒤로 구름속에 숨어 있는 소백산 주능선이 이 산객의 마음을 애타게 만들고 있다.
다만 북쪽으로는 방금 전 걸어 내려온 자개봉과 그 우측 뒤로 선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감 마루금이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나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고 뒤돌아 서니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등로 우측으로 소백산 방향을 살펴보고 다시 뒤돌아 올라 와 진행 방향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굵은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곧이어 무명묘지 한기도 통과한다.
무명묘지를 지나 내려가니 무명안부를 통과하는데 지도를 보니 좌측의 부석면 우곡리와 우측의 노곡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이제는 민초나 동물도 지나다니지 않는 안부로 변한 듯한 모습이다.
그 안부를 지나 조금 더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멧돼지들이 몸을 문지른 소나무를 지나 잡목 등로가 나타나고 다시 나타나는 깊은 무명안부를 통과하니 소나무에 흰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336.4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무명봉 지나 계속 이어지는 남서 방향으로 평이하게 걸어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중간에 걸려있어 감사의 목례를 하고 내려가니 잘 관리되고 있는 무명묘지 2기 지나 진행 방향으로 370.8봉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해 방향을 가늠하고 내려간다.
또 다시 나타나는 무명묘지를 지나 나타나는 무명안부를 통과하니 둔덕 넘어 다시 나즈막한 안부가 보이고 곧이어 잔디가 사라진 무명묘지 한기가 다시 나타난다.
잠시 후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으로 휘돌아 가니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꺽여 남쪽으로 이어지고 곧이어 준희님의 이정판과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370.8봉에 도착을 해 추억과 사진 한장 남기고 산행을 이어간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봉우리 지나 남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옆 굵은 소나무에 흰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고 곧이어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아카시아나무 군락지가 나타난다.
보자마자 걱정을 많이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 아카시아나무 군락지 사이로 좁은 등로가 열리고 조심하며 천천히 그 등로를 따르니 생각보다 쉽게 잘 관통하니 먼저 지나간 선답자들의 수고와 고생에 공감이 되는 시간이다.
빼곡한 아카시아나무 군락지를 잘 관통하니 등로 좌측으로 멋진 풍경이 펼쳐지고 잠시 발걸음 멈추고 지도를 확인해 보니 보계리의 논경작지 지나 무명산줄기 넘어 저 멀리 쌍봉과 그 좌측 뒤 희미하게 높은 봉우리가 눈에 들어 와 지도를 살펴보니 봉화의 응봉산과 매봉산으로 보이고 그 좌측 위로는 만석산이 보여야 하는데 앞 산줄기에 막혀 보이지 않고 그 좌측 뒤로 보이는 희미한 봉우리는 바로 문수지맥의 주산인 문수산이 그 옛날 추억을 들려주며 잠시 옛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동쪽을 살펴보고 눈을 남동과 남쪽 방향으로 돌리니 바로 발 아래 보계리의 민가와 논경작지 넘어 무명산줄기가 길게 펼쳐지고 그 넘어 문수지맥 마루금이 나지막하게 펼쳐져 있는데 그 사이로 제법 드높게 솟아 있는 봉우리들이 보여 지도를 확인해 보니 바로 문수지맥 산행을 하면서 가깝게 바라만 봤던 청량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래 전 잠시 다녀오긴 했지만 지맥 산행이 끝나면 시간 내 한번 환종주를 계획하고 있는 곳이기에 조금 더 상세한 모습을 확인해 보지만 박무로 인해 보이는 것이 전부이다.
이제 남쪽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저 멀리 문수지맥과 청량산이 가물거리고 우측으로 봉화와 영주시 사이로 오늘과 내일 걸어 만나야 할 자개지맥 마루금이 큰 높낮이 없이 끝도 없는 산그리메를 만들고 그 중간에 살짝 높아진 대마산이 앞 산줄기 위로 보일듯 말듯 다가 와 있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을 아름다운 풍경과 끝도 없이 펼쳐진 환상의 산그리메에 취해 조금 더 머물며 많은 사진에 담은 후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생각지도 못한 멋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전진하니 산객의 키보다 더 큰 싸리나무가 등로를 완전히 가로막고 열어주지 않아 힘들게 헤치고 통과하니 가시잡목들 사이로 몇그루의 굵은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무명봉 넘어 다시 지독한 가시잡목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어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들며 힌들게 진행을 이어간다.
오래 전 벌목되었다가 관리가 되지 않아 키 작은 잡목들과 가시들이 등로를 채워 생각보다 고통이 심하다.
그렇게 한동안 온 몸에 심한 고통을 느끼며 천천히 전진하니 갑자기 굵은 소나무가 잘려있는 밑둥이 있는 무명봉에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어 주위를 살펴보니 등로는 이곳에서 직진의 가시잡목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휘어져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측으로 완만히 내려가니 굵은 소나무 사이로 무명안부 지나 올라 잘려진 나뭇토막들이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 지나 잠시 아름다운 소나무 능선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그 소나무 등로를 통과하니 가시잡목들이 우거진 사이로 불에 그을린 잘려진 나뭇토막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다시 고난의 등로가 시작되는지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도 조심하며 그 불난지역의 가시잡목을 통과하니 등로 우측 앞으로 멋진 풍경이 펼쳐지고 지도로 확인해 보니 서쪽으로 단산면 마을이 생각보다 넓게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소백산 주능선이 펼쳐져 있는데 그 능선 위로 구름이 드리워져 있어 정확한 봉우리들은 보이지 않는다.
지독한 가시잡목들이 우거진 불난지역을 지나 등로 우측으로 단산면과 소백산 주능선을 아쉬움속에 살펴보고 북쪽으로도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자개봉과 자개지맥에서 가장 높은 956.2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해 많은 사진에 담아 본다.
그 자개봉 우측으로도 선달산이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어지고 잠시 더 발걸음 멈추고 확인한 후 전진하니 갑자기 발목지대에 키 작은 소나무 조림지가 펼쳐지고 진행 방향으로는 봉우리 정상에 산불감시초소가 세워져 있는 천마산 정상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날씨로 인한 불편함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남아 있는 약간의 박무가 시야를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쉬움을 남는다.
벌목지 사이로 키 작은 소나무가 조림된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올려다 보이는 산불감시초소를 목표로 걸어 전진하니 금새 천마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산불감시초소 앞에는 영주302 삼각점과 초소 철구조물에 385.3미터란 이정판이 두개가 걸려있고 그 앞으로 무인산불감시카메라와 무명묘지 한기가 보인다.
감시원이 있는지 확인하니 비어 있는 산불감시초소이기에 계단을 타고 올라 일망무제로 펼쳐진 환상의 풍경과 조망들을 즐기며 그 이름들을 불러주는 시간을 가져 보는데 다만 이곳 천마산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보이는 자료가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도 잠시 후 만나야 할 대마산과 마찬가지로 말을 키우기 최적의 조건이라든지 아니면 울퉁불퉁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아 있는 바위들이 있다든지 아니면 하늘을 만질 수 있을만큼 웅장하고 높은 산이란 의미 중 하나일 것인데 아마도 타는 말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만 가능한 시간이다.
제일 먼저 북쪽과 북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나즈막한 산줄기 따라 부석면의 민가 옆으로 돌아 자개봉과 최고봉인 956.2봉으로 이어지는 자개지맥 전 구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 뒤로는 부드러운 백두대간 마루금 지나 마대산으로 이어지는 형제봉 능선이 살짝 보이기 시작하고 자개봉 우측으로는 마구령 방향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무명봉이 백두대간 마루금을 이루며 옛 추억을 소환하고 있다.
이제 눈을 북동 방향으로 돌리니 방금 전 지나 온 지독한 산불난 지역과 가시덤불 등로 지나 398.3봉에서 좌측으로 꺽여 부석면 방향으로 이어지는 비산비야의 마루금이 부석면을 지나자마자 좌측 자개봉 방향으로 급격하게 산세를 들어 올리며 높아지는 모습이 하눈에 들어 온다.
그 자개지맥 마루금 우측인 동쪽 방향으로는 마구령 지나 선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이어지고 그 앞으로 800미터급인 부석사를 품고 있는 봉황산 뒤로 갈곶산 뒤에 선달산이 아직도 귓전에 선달선달하며 오르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 우측 뒤 저 멀리 희미한 박무속에 문수지맥 분기점인 옥돌봉이자 옥석산이 보이고 그 우측 아래로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문수지맥 마루금이 홀로 진행하며 남겼던 소중한 추억을 다시 반추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이제 눈을 동쪽과 남동동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사진 좌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부석의 350미터급 무명봉이 부드러운 능선들을 거늘이고 아름답게 솟아 있고 그 뒤 끝자락에 희미한 문수지맥의 주산인 문수봉이 흐릿한 모습으로 존재감을 알리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야가 제한되어 아쉬움을 남긴다.
동쪽 방향으로는 좌측으로 봉화군 물야면 방향으로 560미터급 무명봉과 그 바로 우측으로 응봉산과 587.1미터의 매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너무나 아름답게 솟아 있는데 저 산줄기는 내일까지 계속 시야에 남아 길라잡이같은 역활을 해주고 있다.
이제 눈을 남쪽으로 돌리니 좌측의 낙화암천과 우측의 사천 가운데로 비산비야처럼 흐르는 자개지맥 마루금이 길게 펼쳐져 있는데 사진 중앙부로 보이는 대마산은 그 존재감이 미미해 정확한 위를 잡기도 쉽지 않지만 그 뒤로 영주시가 움푹 낮아진 곳 뒤로 문수지맥의 학가산이 우뚝 솟아 있어 확실하게 그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그 학가산 우측으로는 자구지맥 산행을 하면서 자주 봤던 주마산 능선이 보이고 학가산 좌측으로는 영주의 봉수산 주위의 산군들이 도토리 키재기를 하듯 펼쳐져 있다.
이제 눈을 북서 방향으로 돌리니 사진 정가운데 움푹 패인 듯 보이는 곳에 드넓은 단석저수지가 보이고 그 우측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자개봉과 956.2봉이 보이고 그 좌측 뒤로 희미하게 하늘금에 맞닿아 있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좌측 국망봉 방향으로 이어지고 그 앞으로는 단석저수지 좌측 옆으로 600미터급의 무명봉이 제법 높게 그 위용을 자랑하는데 그 뒤로 보여야 할 소백산 주능선을 가리고 있어 아쉽기만 하다.
바로 발 아래로는 영주시 단석면 옥대리의 마을들과 농경지가 생각보다 드넓게 펼쳐져 있어 새롭게 각인되는 풍경이다.
이제 산불감시초소의 계단을 내려 와 무인감시카메라 뒷쪽으로 가 남서쪽 방향을 살펴보니 잠시 후 내려가야 할 자개지맥 마루금이 좌측 앞으로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단석면 마을이 생각보다 길고 넓게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먼 방향으로는 소백산 주능선이 펼쳐져 있지만 하얀 구름과 박무로 인해 아쉬움만 남기고 좌측 뒤로는 지난 주 걸었던 자구지맥 마루금이 더욱 흐릿한 실루엣으로 눈에 보일듯 말듯 멀어져 있다.
단산면은 경상북도 영주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으로 지형이 남북으로 길쭉하고 북서쪽은 소백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국망봉과 고치령에서 발원한 하천은 단산천을 이루어 남쪽으로 흐르는데 남쪽의 사천리 일대에 제법 큰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순흥군 일부석면(一浮石面)과 동원면(東園面)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가 뒤에 일부석면은 단산면(丹山面)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1914년 단산면과 동원면을 합쳐 그대로 단산면이라고 하고 영주군에 편입하였으며 1980년 영풍군(榮豊郡)에 속했다가 1995년 다시 영주시에 속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면소재인 옥대리를 포함하여 8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으며 이들 지명은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기초하고 있다. 지명은 대개 조선시대의 한 마을 이름을 대표로 내세우고 있는데 동원리(東園里)는 동원면이 있던 곳이라고 해서 명명되었고 병산리(屛山里)와 옥대리(玉帶里)는 각각 앞산이 병풍을 두른 듯하다 라는 것과 뒷산의 능선이 옥띠와 같이 곱게 뻗어 나왔다 라고 하는 지형의 모습에서 유래하였다.
사천리(沙川里)는 하천에 흰 모래가 많다는 지리적 환경에서 유래하였고 마락리(馬落里)와 좌석리(坐石里)는 각각 마을에 존재하는 마지바위와 앉은 바위라는 랜드마크에 기원을 두고 있다.
남서 방향으로는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벌목지 위에 소나무를 식재해 놓은 등로 우측 아래로 민가와 좁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고 그 우측 위로 이제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좌측으로 휘돌아 가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그 뒤 저 멀리 우측 끝자락으로는 지난 주 자구지맥을 걸으면 자주 눈으로 담았던 용암산과 두개의 주마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뚜렷하고 그 좌측으로 영주시와 좌측 뒤로 내일 걸어 마무리를 해야 할 자개지맥의 서천 합수점 지나 문수지맥의 학가산 이후의 나즈막한 산줄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제 천마산에서 많은 시간 머무르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긴 후 무명묘지 지나 천천히 벌목지 위에 식재된 키 작은 소나무들을 살펴보며 걸어 내려가니 마루금은 우측인 서쪽 방향으로 민가를 가운데 두고 우측으로 휘돌아 남쪽으로 내려가는 형국으로 진행되고 있는 흐름이 눈에 들어 온다.
그 자개지맥 마루금 뒤 저 멀리로는 우측으로 소백산 줄기의 흰봉산과 도솔봉 좌측 아래로 묘적봉이 보이고 그 앞쪽으로 지난 주 걸었던 자구지맥의 옥녀봉과 자구산 방향 지나 좌측 앞으로는 순흥면에 위치한 비봉산과 송학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진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계속 이어지는 아름다운 일망무제의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내려가지만 여전히 눈에 들어 오는 모습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많은 사진들에 담다 보니 그 벌목지 지나 불났던 지역에 자라고 있는 지독한 가시잡목 능선이 펼쳐지고 어렵게 그 가시잡목 등로를 진행하니 온 몸이 다시 심한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시간이 되고 있다.
잠시 후 아카시아나무 군락지 사이로 나 있는 좁은 등로를 따르니 좌측으로는 아카시아나무 군락지가 여전히 펼쳐져 있고 우측과 진행 방향으로는 우거진 억새와 잡풀들이 보이는데 진행에는 큰 어려움 없이 통과를 한다.
힘들게 가시잡목 등로를 지나니 움푹 패인 무명안부로 내려가고 좌우측을 살펴보니 여전히 이용되고 있는 듯 뚜렷한 등로도 보인다.
안부 좌측은 영주시 부석면 보계리와 우측의 노곡리를 이어주는 이곳 안부는 안부에서 멀지 않은 곳까지 좌우측 모두 시멘트 포장도로가 개설되어 있는데 이곳 안부까지는 아직 완전히 개통이 되지 않은 듯 보인다.
그 안부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굵은 참나무가 서 있는 지도상 332.5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정판은 물론 그 흔하던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한장 보이지 않아 아쉬운 마음으로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표식 하나 없는 332.5봉을 지나니 키 작은 잡목과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있는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를 통과하니 멋진 소나무 능선 등로가 길게 이어진다.
잠시 후 좌우측으로 길의 흔적이 없는 소나무가 서 있는 무명안부를 통과하니 나즈막한 언덕 넘어 또 다시 안부로 내려가는데 지도를 보니 바로 부엉재라 표기된 안부로서 자료를 찾아 보니 보이는 자료는 전혀 없다.
이곳 부엉재는 우측의 경북 영주시 단산면 옥대리와 좌측의 부석면 보계리의 경계를 가르는 고갯마루인데 좌우측을 살펴봐도 제대로 된 길의 흔적이 없는 명목상의 안부로 남아 있는 듯 보인다.
그 부엉재 안부를 지나 굵은 소니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웅덩이가 패여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굵은 소나무와 잡목들이 섞여 있는 봉우리의 모습이다.
그 웅덩이 무명봉 지나 조금 더 완만하게 걸어가니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몇장의 띠지들이 걸려있어 살펴보니 뚜렷한 우측의 직진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잡목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며 진행을 해야 하는 길주의 지점이다.
금곡님의 산행 띠지를 확인하고 좌측으로 내려가니 등로는 이제 남서에서 남동으로 바뀌고 곧이어 무명묘지 지나 좌측으로 묘비가 세워진 전혀 관리가 되지 않는 묘지 한기가 더 보이는데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져 묘지로서의 기능은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다시 나즈막한 안부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굵은 소나무 지나 쓰러진 고사목들이 등로를 막아 이리저리 피하며 통과해 등로 양쪽으로 굵은 소나무가 서 있고 소나무 위에는 하얀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한다.
무명봉 지나 우측으로 휘어져 완만하게 내려가니 다시 뚜렷한 능선 등로가 열리고 굵은 소나무가 보이는 무명봉 넘어 한동안 편안하게 전진하니 등로 좌측 앞으로 잠시 후 만나게 될 보옥로 2차선 포장도로가 빤히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굵은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가 급격히 경사도를 낮춰 내려가고 곧이어 높은 콘크리트 옹벽이 설치되어 있는 보옥로 1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에는 이곳 역시 부엉재로 표기된 고갯마루이기도 한데 지명이름을 차용해 보개실고개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등로 좌측의 부석면 보계리와 우측의 단산면 옥계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보계리는 앞으로 계속 만나게 될 마을이기에 옥대리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보인다.
옥대리는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에 있는 리로서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고 경지가 소규모로 분포하며 작은 하천이 흐르며 마을 뒷산 능선이 옥띠와 같이 곱게 뻗어 나왔다 하여 옥대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옥대, 장터, 모산, 새터, 원팅이마을 등이 있는데 옥대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옥대리의 그것과 같고 장터마을은 단산장이 섰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모산마을은 사모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 산 앞이 된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새터마을은 옥대 서쪽에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며 원팅이마을은 옛날 이곳에 원통사라는 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보개실고개(15번 2차선 포장도로, 우측은 단산면소재지이고 좌측은 보계실마을) 보계실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보계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보계실(寶溪室, 원보계-元寶溪)마을의 보계는 원래 보계암(寶溪庵)이 있어서 연유된 것이라고도 하며 보계(寶溪)란 극락정사(極樂淨土) 즉 고뇌가 없는 곳을 일컬으며 마을 깊숙이 산 속에 방같이 둘러 싸여 있어 이 곳을 보계실(寶溪室)이라 한다.
옛날에는 보자(實字)가 든 곳은 피난실(避難室)이라 하고 옛날에는 실자(室子)가 든 곳은 피난처(避難處)로 알맞았으며 지금도 이곳을 원보계(元寶溪)라 부르고도 있다.
또 다른 부엉재라는 1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솔갈비가 깔려있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잘 정비된 듯한 소나무 아래 솔갈비가 쌓여있는 등로가 열리고 굵은 참나무가 보이는 둔덕을 넘어 잠시 더 걸어 전진하니 금새 넓은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걸어 진행하니 좌측에서 올라오는 갈림삼거리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며 한동안 편안한 시멘트 포장돌를 따라 속도를 내 본다.
그렇게 잠시 더 오르막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원 마루금은 도로 우측으로 같이 진행이 되고 그 모습도 올려다 보며 걸어 오르니 지도 상 300.7봉이 도로 우측의 키 작은 소나무 위로 보인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짧은 절개지를 타고 우측 소나무 옆으로 오르니 지독한 가시잡목 등로가 나타나고 어렵게 헤치며 300.7미터 정상에 도착을 하니 이정판은 물론 선답자의 산행 띠지 한장 걸려있지 않아 아쉬운 마음에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복귀를 해 진행을 이어간다.
지독한 가시잡목이 우거진 300.7봉 지나 다시 편안하게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는 이제 비포장임도로 바뀌고 잠시 더 전진하니 임도는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있다.
그 도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다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잠시 후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의 부석면 보계리와 우측의 단산면 병산리의 경계를 이루는 제궁골 안부 임도이다.
병산리는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에 있는 리로서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고 경지가 넓게 분포하여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며 남서방향으로 작은 하천이 흐른다.
앞산이 마치 병풍을 세워놓은 것 같으므로 병산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병산, 대지리, 회석, 방다리, 서창, 수미촌마을 등이 있다.
제궁골(제궁골, 제궁마, 제궁마을, 제궁촌-薺宮村) 마을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보계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광창마을(廣倉) 남쪽에 위치하며 이곳에 선성(宣城) 김씨(金氏)들의 제궁(薺宮)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이에 연유하여 제궁마 또는 제궁촌(薺宮村)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보계리와 병산리의 경계 안부를 지나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평지같은 도로가 길게 이어지고 원 마루금은 도로 좌측 옆에 수평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곳 역시 시멘트 포장도로와 비포장임도가 차례로 바뀌어 이어지고 그렇게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도로 좌측 보계리 방향으로 거대한 태양광발전시설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문수지맥의 문수봉 아래로 이어지는 산줄기들이 눈길을 사로잡기 시작한다.
대부분 시멘트 포장도로나 비포장임도를 따르면 풍경과 조망이 좋은데 이곳 자개지맥 상 도로와 임도에서는 제대로 된 풍경과 조망 한번 구경하기 힘들어 아쉬웠는데 그래도 문수지맥 마루금을 확인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계속 이어지는 임도와 도로를 번갈아 갈아타며 큰 고도 차이 없이 빠르게 진행하니 임도 우측 아래로 묘지들이 보이고 그 묘지 넘어 나뭇가지 사이로 영주시 순흥면 방향으로 옥녀봉과 지례봉 및 이자산 방향의 봉우리들이 박무속에 솟아 있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 온다.
잠시 더 발걸음 멈추고 많은 사진으로 남기고 다시 임도 따라 빠르게 전진하니 임도와 도로 주변으로 거대한 축사들이 보이는데 분뇨냄새가 즐거운 기분을 깨는 시간이다.
임산물 불법굴 채취금지라는 플랭카드와 국가지점번호판을 지나니 드디어 시멘트 포장도로를 우측으로 보내고 좌측의 짧은 절개지를 타고 능선으로 올라야 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잠시 가시잡목을 뚫고 능선으로 오른다.
덩굴식물들이 우거졌다 말라있는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약간의 가시잡목들이 나타나고 그곳 능선 정상에 올라 좌측인 북서쪽 방향을 살펴보니 소백산 국망봉에서 고치령 방향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많은 사진을 담다 보니 날씨도 조금 더 좋아져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풍경들이 발길을 붙잡는다.
그래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남서 방향에서 이제 동쪽 방향으로 방향이 완전히 바뀐 굵은 참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활엽수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며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활엽수 낙엽이 두껍게 깔려있는 무명묘지 지나 좌측으로 거대한 한우축사가 내려다 보이고 곧이어 잡목들이 보이는 무명안부 넘어 다시 또 다른 축사를 내려다 보며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조화가 예쁘게 놓여 있는 묘지 지나 잡풀들이 우거졌던 묵은 밭경작지로 내려간다.
그 밭경작지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보옥로 125번길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모치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은 민가와 한우축사가 올려다 보이고 우측으로는 상모치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민가 여러채가 보인다.
모치고개는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보계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인 상모치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상모치는 마을의 산이 모치래기(메추라기)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모치(毛致)라 칭하였다 한다.
자연 부락이 산재되어 있고 위쪽을 상모치(上毛致), 가운데를 중모치(中毛致), 아래쪽을 하모치(下毛致)라 부르고 있다.
모치고개에서 좌우측으로 보이는 풍경을 사진에 담고 도로 건너 높은 콘크리트 옹벽 사이로 보이는 계단을 타고 능선 방향으로 오르니 잡목과 덩굴식물들이 우거졌다 계절의 변화로 숨이 죽어 있는 마루금 방향으로 오르니 그것마저도 쉽지 않다.
어렵게 원 마루금 정상으로 올라 좌측으로 걸어가니 다시 굵은 참나무와 우거진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아 진행 자체가 힘들어 보이고 이리저리 그 잡목들을 헤치고 힘들게 전진하니 이제 진행 방향의 능선으로는 비집고 들어갈 공간조차 보이지 않아 살펴보고 우거졌던 덩굴식물 좌측 아래로 계단식 경작지 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 와 좌측 사면등로를 타고 우회하듯 주능선을 버리고 좌측 숨이 죽어 있는 덩굴식물들이 보이는 방향으로 어렵게 산행을 이어간다.
힘들게 그 지독한 덩굴식물 지대를 빠져 나가니 이제는 우거진 가시잡풀지대가 기다리고 한발 두발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들며 통과하니 갑자기 우측에서 올라 오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만나 그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편안하게 진행을 이어간다.
한동안 지체된 시간을 벌충하기 위해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 좌우측으로 사진에 담을만한 풍경이나 특이한 것도 없어 빠른 발걸음에 초첨을 맞춰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더 그 비포장임도를 따라 빠르게 걸어가니 비포장임도 갈림삼더리 안부에 도착을 하고 지도로 확인해 보니 여전히 부석면 보계리에 있는 무명안부이다.
그 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를 지나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잡목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다시 우측으로 휘어져 오르니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다.
그곳에서 우측 아래인 남동 방향으로 걸어 전진하니 고사목이 쓰러져 걸쳐있는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굵은 참나무 사이로 잡목들이 우거진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308.7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 서 있는 관목의 소나무 위에 준희님 응원판이 걸려있다.
대부분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 걸려있는데 이곳 응원판은 무명봉 정상에 걸려있어 조금은 의아한 생각으로 사진에 담고 출발한다.
응원판이 걸려있는 무명봉 지나 계속 이어지는 굵은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드넓은 인삼포가 펼쳐져 있고 사진에 담고 조금 더 능선 등로를 따르니 무명묘지 한기가 나타난다.
그 묘지를 지나자마자 다시 우거진 덩굴식물이 등로를 완전히 가로막아 진행이 불가능해 보이고 잠시 그 앞에서 어이없어 하며 살펴보니 그래도 우거진 덩굴식물 사이로 선답자들이 지나간 희미한 흔적들이 보여 조심스럽게 걸어가니 생각보다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좋은 등로로 진행하다가 가끔 만나는 이런 힘든 등로에서 고민이 되었지만 자세히 보니 그래도 선답자들이 진행한 희미한 흔적들이 보여 다행이란 생각으로 통과한다.
지독하게 우거졌던 덩굴식물 지대를 무사히 빠져 나가 우측으로 드넓게 펼쳐진 인삼포를 살펴보며 조금 더 걸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잠실고개라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보계리로서 바로 윗쪽에 잠실지가 있어 붙여진 이름처럼 보이는 안부로서 또 다른 이름은 응징이고개이다.
응징이고개(시멘트 포장도로, 응징이, 응정-應亭)는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보계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인 응징이 마을 윗쪽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응징이마을은 마을 앞산의 모양이 매의 부리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사람들은 응정(應亭)이라고 불렀으며 그 후 점차로 발음이 와전되어 지금은 응징이라고 부르고 있다.
응징이고개 안부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가 열려있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녹슨 철망이 설치되어 있는데 중간중간 무너져 그 기능은 사라진 듯 보이는데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그 철망 사이로 낙엽들이 쌓여 또 다른 벽이 만들어져 있다.
한동안 더 걸어 진행하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 한장이 걸려있는 곳에서 등로는 남동 방향에서 크게 꺽어 남서 방향으로 바뀌고 잠시 걸어 내려가니 잡목과 잡풀이 무성한 무명묘지 한기가 나타난다.
그 묘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금새 비포장임도와 만나 편안하게 그 비포장임도를 따라 진행한다.
이제 임도를 건너 능선으로 진입을 해야 하지만 바로 좌측으로 이어지는 임도와 나란히 진행되고 특별히 이름있는 몹우이도 없기 때문에 마음 편히 비포장임도를 타고 조금 더 진행을 해 다시 능선에서 내려오는 날머리와 만나는 곳까지 임도따라 가기로 한다.
잠시 더 걸어 가니 임도 앞 진행 방향으로 제법 높은 봉우리 하나가 보여 그곳으로 진행되는 줄 알았는데 진행하다 보니 그 봉우리가 바로 마루금에서 약간 ㅓㄹ어져 있는 348.6미터의 국모봉이었다.
이곳까지만 해도 그 국모봉을 잠시 들렸다 나오기로 생각했는데 막상 갈림삼거리에서는 잊고 그냥 마루금 따라 진행하다 시간이 지나 인지를 하였지만 늦은 시간이라 아쉬움도 남는다.
그렇게 한동안 더 임도 따라 걸어가니 콘크리트 옹벽들이 쌓여 있고 그 좌측 한쪽으로 임도 안내도가 있고 우측으로는 구구수목원이라는 녹슨 입간판이 서 있는 갈림오거리에 도착을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국모봉 다녀온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그냥 오거리 건너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산행에 집중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 국모봉을 다녀오지 못한 아쉬움이 생각난다.
임도 오거리에서 임도 안내도가 있는 방향의 도로를 타고 국모봉으로 올랐으면 좋았는데 그때는 인지하지 못하고 그 가운데로 흐르는 자개지맥 마루금 우측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임도 좌측으로 거대한 축석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등로는 구구리를 지나 감곡리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국리 자료를 찾아 보니 구구리는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에 있는 리로서 무학봉을 뒤로 한 평지에 자리한 농촌마을이고 마을 왼편에 작은 하천이 흐르며 구구교가 놓여 있다.
자연마을로는 무학, 오현, 서오현, 윗배나무실, 상이목, 하이목, 귀염나무골마을 등이 있는데 무학마을은 구구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무학봉 밑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오현마을은 오동나무가 많았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서오현마을은 오현의 서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윗배나무실마을은 오현 동쪽에 있는 마을로 배나무가 많이 있었다 하며 위치가 위쪽이어서 윗배나무실이라 하였고 상이목마을과 하이목마을은 각각 윗배나무실의 위쪽과 아래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귀염나무골마을은 하이목 앞에 있는 마을로 귀염(고욤)나무가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그렇게 한동안 주위 조망도 없는 비포장임도와 시멘트 포장도로를 번갈아 갈아타며 전진하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개설되며 안부가 사라진 수나리고개에 도착을 한다.
수나리고개 안부는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구구리 수나리지 위에 있는 고개로서 원래 잘록한 안부였다가 시멘트 포장도로 공사를 하면서 고갯마루로서의 모슺은 사라진 듯 보이는 곳이다.
안부가 시멘트 포장도로로 메꿔지며 안부 같지 않은 수나리고개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둔덕넘어 비포장 내리막 임도가 나타나고 임도 좌측으로는 또 다른 거대한 축사가 내려다 보이는데 축사 분뇨냄새가 산속의 공기마저 오염시켜 숨 쉬기가 거북할 정도로 안타까운 산행 시간이다.
거꾸로 된 디귿자 형태로 진행하니 이제 좌측 절개지 위로 이어지는 마루금으로 올라야 하는데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져 쉽지 않은 마루금 접속이다.
그래도 힘들게 오르니 지독한 잡목 등로가 앞을 가로막고 온 몸에 고통을 수반하는 생채기를 만들며 조금씩 전진하니 등로는 조금 좋아지지만 역시나 축사는 등로 가깝게 자리하고 있어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있다.
그렇게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좁은 조망이 열리고 그곳을 살펴보니 오늘 산행 초반부터 등로 좌측으로 보였던 매봉산과 응봉산 줄기 좌측 뒤로 같은 높이의 무명봉이 이제 겹치는 모습으로 멀어져 있다.
등로 좌측으로 매봉산을 조망하고 잠시 더 걸어 진행한 후 안부에서 남동 방향으로 바꿔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가 보여 살펴보니 그 아래 바로 영모암이 내려다 보인다.
영모암(永慕庵)은 순흥안씨의 선조 묘소를 관리하는 제실이 있는 곳을 말하는데 부석면 감곡리 서쪽에 지장산이 있으며 그곳에 순흥안씨(順興 安氏)의 선조 묘소로서는 가장 오래된 묘소이자 제1파의 파조이신 추밀공(永儒) 묘소가 있어 그 묘소를 관리하는 제실이 바로 영모암이다.
몇장의 사진으로 남기고 다시 마루금으로 올라 좌측을 보니 여전히 매봉산과 응봉산 그리고 무명봉이 겹치는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영모암을 살펴보고 좌측으로 조망까지 확인한 후 다시 출발하니 지독한 가시잡목들이 앞을 가로막아 어렵게 통과하고 등로 좌측 아래로 영모암을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다시 조금 좋아지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점점 더 잡목들이 많아지고 그 잡목들을 헤치며 힘들게 오르니 굵은 소나무에 준희님이 걸어 둔 이정판이 보이는 341.1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겨본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봉우리 지나 다시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무명묘지 한기가 나타나고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멧돼지들이 몸을 문질러 죽어가는 소나무가 눈길을 잡는다.
다시 거칠어지는 등로를 헤치며 진행하니 손과 다리에 생채기가 나기 시작하고 무명묘지 지나 오래된 창고같은 건물을 지나니 거대한 축사가 도로 건너 보이는 동원로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대마고개에 도착을 한다.
대마고개(동원로 1차선 포장도로)는 영주시 단산면 동원리와 봉화군 봉화읍 화천리 경계를 이루는 고개로서 대마산 아래에 있어 붙여진 이름처럼 보이는데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도로 건너 축사와 민가가 보이는 철문 방향으로 몇발자국 들어가 철문 직전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축사에서 기르는 개 몇마리가 이방인의 출현에 울부짖고 있어 잡목들을 헤치며 빠르게 진행하니 등로 좌측 뒤로 오전에 넘으며 환상의 조망을 즐겼던 천마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뒤 저 멀리 소백산 국망봉 북쪽으로 백두대간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사진에 담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굵은 참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잡목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가 나타나고 어렵게 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금곡님의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 지나 굵은 소나무와 고사목 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마시고 진행을 이어간다.
간벌과 가지치기가 되어 있는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다시 완만하게 올라 잡풀들이 보이는 공터 무명봉 지나 가지치기 된 나뭇가지들이 널려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계속 이어진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이정판과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묘지 뒷쪽으로 대삼각점과 무명묘지 한기가 보이는 대마산 정상에 올라 잠시 배낭 내려 간식을 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물 한모금 더 마시고 진행하기로 한다.
대마산(大馬山.373m, 국방부 동판 대삼각점)은 영주시 단산면 동원리와 봉화군 봉화읍 화천리의 경계에 솟아 있는 산으로 잠시 전 통과한 천마산과 마찬가지로 말과 관련이 있는 듯 한데 자료는 보이지 않고 진행 방향 아래로 말 목장이 펼쳐져 있다.산 봉우리가 마치 촛대처럼 솟아 올랐다고 하여 촛대봉으로도 불린다는 설도 있는 대마산이다.
대마산 정상은 생각보다 조망이 좋지 못한데 주위 나무들이 자라면서 진행방향인 남쪽부터 좌우측인 남동쪽과 남서쪽 방향으로만 조망이 살짝 제한적으로 열려있다.
먼저 남동 방향으로 돌리니 남쪽을 살펴보니 좌측 방향으로 내일까지 걸어 만나야 할 자개지맥의 나즈막한 산줄기와 무명봉들이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인 사진 중앙부로는 영주시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그리메가 골짜기 모습으로 이어지고 그 끝자락으로 희미한 문수지맥의 학가산과 그 좌우측으로 조운산과 보문산이 희미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이제 눈을 남동 방향으로 돌리니 이제 사진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자개지맥 마루금 상 나즈막한 무명봉들이 끝도 없는 산그리메를 그리며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으로는 내성천 지나 하늘금을 그리고 있는 희미한 문수지맥 마루금이 좌측 끝에서 우측 끝자락 방향으로 흐르며 그 옛날 추억을 들려주고 있지만 이제 오랜 과거가 되어 끊어진 조각들처럼 하나 둘 이어지다 끊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읽어 보면 이곳에서 대마산목장으로 하산하는 등로가 난해하고 가시잡목들이 심해 고생을 했다고 하기에 신경쓰며 내려갈 등로를 가늠해 보는데 어느 등로가 정답임을 알 수 없기에 가능하면 많은 선답자들이 이용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기로 한다.
대마산 정상에서 곧바로 좌측인 남동 방향으로 진행한 선답자들도 보이고 직진인 남쪽으로 조금 더 진행한 다음 좌측인 남동 방향으로 진행한 선답자들도 있는데 등로를 확인하니 직진 후 좌측으로 휘어져 진행하는 것이 조금 더 좋을 것 같아 그 등로를 따른다.
약간의 잡목들과 소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굵은 소나무들이 보이는 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가고 내려갈수록 아카시아나무들이 새로 자라면서 등로를 완전히 막아 버려 난감하기만 하다.
이리저리 조금씩 아카시아 가시나무를 헤치며 내려가니 바로 발 아래 밭 경작지가 나타나는데 그곳부터 등로가 완전히 가시나무에 막혀 진행 자첵 불가능해 보인다.
시간만 흘러 마음은 급한데 내려갈 등로는 보이지 않아 서둘러 보지만 서두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님을 알기에 마음 비우고 천천히 하나 둘 가시나무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드디어 밭경작지에 도착을 하는데 그 밭 가장자리에는 도깨비와 도둑가시풀 열매가 등산복에 다닥다닥 달라 붙어 한동안 그 가시들을 제거하고 내려간다.
드넓은 밭경작지를 따라 내려가며 살펴보니 고구마를 수확한 빈 밭경작지로서 한참을 내려가며 가시를 떼어내니 진행 방향 저 멀리 거리현 지나 올라야 할 마루금이 보이기 시작하고 민가도 나타나는데 그 민가에서 키우는 개 몇마리가 이방인의 출현에 울부짖고 있어 괜시리 대마산 목장주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조심스럽게 목장 민가 옆을 지나며 살펴보니 말이 민가 건너편 마굿간에 보이는데 주인이 말에게 먹이를 주고 있어 더욱 조심스럽게 그 민가에서 좌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어렵게 산행을 이어간다.
첫번째 민가에서 좌측 비포장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임도 좌우측으로 드넓은 밭경작지가 펼쳐져 있는데 좌측 밭경작지 건너 능선 방향에서 내려오는 방향에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어 그곳으로도 제법 진행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잠시 후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니 좌측으로 민가 한채가 다시 나타나고 그곳 역시 조심스럽게 빠른 발걸음으로 통과하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조심스러운 대마산목장의 민가 두채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주)대마산목장이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보이고 바로 눈 앞으로는 935번 의상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거리현에 도착을 하는데 많은 선답자들은 이곳을 삼거리현이라 하였고 첫번째 산행을 이곳에서 마무리를 한 후기들이 많이 보인다.
거리현나 삼거리현 또는 대마산목장에 관한 자료는 잘 보이지 않는데 3년 전 봉화신문에 연재된 대마산목장과 관련된 자료가 유일하게 보여 살펴보니 김한영(81)씨는 마장을 열 당시 마주(馬主)로서 경주마의 생산과 훈련을 위해서 1998년에 땅을 구입했는데 당시는 모르고 계약을 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뒷산이 대마산(大馬山 373m)이라고 해 제대로 왔다고 좋아했다.
경작지 한 평 없는 산을 4만평이나 목장으로 만드는데 흙이 한차도 밖으로 안 나갔다고 처음엔 의욕도 있고 승마 체험교실도 잠시 열었지만 지금은 위탁말만 있고 마주로 목장을 임대로 쓰고 있는 사람의 말을 봐주고 있다며 이젠 늙었고 후계자도 없어 다 글렀다고 넋두리를 하는 백발의 노인은 헛헛한 심정을 내비쳤다란 내용이었다.
첫날 산행을 이곳 거리현에서 마무리한 선답자들이 거의 대부분인데 이 산객은 내일 제2구간으로 서천 합수점까지 진행한 후 서울로 귀경을 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무리인줄 알면서도 마근대미고개까지 진행하기로 해 조금 더 진행을 이어가는데 이제 시간이 오후 2시 50여분을 지나고 있어 여유는 없지만 너무 늦지 않게 마무리가 될 것 같아 희망이 생긴다.
높은 콘크리트 옹벽 앞에 놓여 있는 짧은 계단을 이용해 전봇대 뒤로 오르니 굵은 소나무와 잡목들이 보이고 한동안 남동 방향으로 힘들게 오르니 등 뒷쪽으로 방금 전 어렵게 내려 온 대마산과 대마목장이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계속 오르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332.3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꺽여 남쪽으로 이어진다.
남쪽으로 꺽여 진행하며 등로 좌측 뒤를 보니 북쪽으로 여전히 대마산과 대마산목장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고 사진에 담고 진행을 이어가니 갑자기 소나무에 CHECK POINT 2란 이정판이 걸려있는 336.5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 336.5 무명봉에서 등로는 다시 우측인 서쪽으로 크게 꺽여 이어지고 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방금 전 지나 온 대마산 정상에서 밭경작지로 내려 와 대마산목장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아름답게 보인다.
보기에는 참으로 아름답고 멋지게 보이지만 그 속살은 지독한 가시잡목들이 우거져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들며 너무나 힘들게 내려 왔으니 보기와는 다른 등로에 쓴 웃음만 나온다.
등로 우측인 북서 방향으로 지나 온 대마산과 대마산목장을 살펴보며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굵은 소나무 한그루 주위로 잡목들이 우거져 있는 299.5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도 어김없이 법광님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데 무명봉이라 그런지 고도 표시는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서 등로는 다시 좌측인 남쪽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고 내려가다 등로 우측을 보니 드디어 풍기읍과 영주시 방향 가운데로 자구지맥 지나 희미하게 도솔봉과 묘적봉으로 이어지는 소백산 줄기가 희미하게 실루엣으로 다가 온다.
사진에 담고 잡풀 능선 등로를 따르니 약간의 잡목 지대를 지나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그 끝자락에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312.4봉에 도착을 해 추억과 사진 한장 남긴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봉우리 지나 다시 좌측인 남동 방향으로 내려가니 제법 높은 절개지가 나타나고 한쪽으로 돌아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지도에는 아무 표시가 없는 무명안부이다.
안부 좌측의 봉화읍 도촌리와 우측의 화천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 안부로서 화천리는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에 있는 리로서 자연마을로는 꽃내, 망년, 너운티, 동성 등이 있는데 90이 넘게 장수하는 노인이 많아 세월가는 것을 잊고 산다고 하여 망년이라 부르게 되었고 무안박씨 별장이 있는데 고개 마루에 넓은 들이 있어 넓은티 또는 너운티라 부르기도 하며 주 특산물로는 사과, 양봉, 송이 등이 있다.
도촌리는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에 있는 리로서 낙화암천과 내성천이 주위를 흐르고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사재, 섶밭, 음평, 율리목 등이 있다.
뒷산에 사령당 봉수대가 있는데 봉수지기들이 봉화불에 사용할 땔감을 마련하여 나르고 또 섶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하여 섶밭이라고 불렀다.
마을 동쪽에 있는 산이 높아 마을과 들에 햇볕이 늦게 든다하여 음평(陰坪)이라 불렀고 맛 좋은 밤(栗)나무가 많아 율리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주 특산물로는 사과, 양봉, 송이 등이 있다.
그 무명안부 지나 가파른 절개지로 오르니 부러진 소나무 고사목이 보이는 308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에 남기고 거칠어지는 등로를 따라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걸어가니 우리동네 작은산길 영주 숲정이길이란 새로운 띠지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 띠지가 걸려있는 곳에서 등로는 다시 좌측인 동쪽으로 휘어져 이어진다.
소나무와 노간주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따르니 굵은 소나무 위에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335.9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335.9봉에서 등로는 다시 우측인 남쪽으로 꺽여 이어지고 잠시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억새들이 하늘거리는 능선 등로가 나타나는데 올해는 이렇게 철지난 억새로 가을 지나 겨울을 느껴보는 시간이다.
잠시 더 그 억새 능선을 따르니 갑자기 눈 앞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자세히 확인해 보니 그곳에서 등로는 직진의 억새 능선을 버리고 우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해야 하는 길주의 지점이다.
우측인 남서 방향으로 진행하니 잘려진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등로 지나 무명안부로 내려가고 다시 오르니 둔덕봉 넘어 다시 무명안부로 내려간다.
안부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드넓은 밭경작지가 펼쳐져 있고 사진에 담으며 걸어 전진하니 도상 282.8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정판 하나 없이 빛바랜 독도님 산행 띠지 한장이 노간주나무에 걸려 있어 사진에 담고 다시 출발한다.
지도상 노간주나무에 빛바랜 독도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282.8봉 지나 안부를 통과하니 다시 굵은 소나무와 잡풀들이 보이고 그 아래 고사목이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을 통과한다.
그곳을 지나자 조금 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법광님 띠지가 걸려있어 지도를 확인해 보니 285.9봉으로 표기된 곳인데 보기에는 봉우리가 아닌 능선처럼 보이는 봉우리이다.
능선 상 봉우리를 지나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니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둔덕 넘어 다시 나타나는 무명안부를 지나니 굵은 소나무 두그루가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을 지나니 아카시아나무 군락지가 짧게 펼쳐지고 다시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과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281.1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더 남겨 본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281.1봉 지나 내려가니 다시 잡목 등로가 열리고 가끔 나타나는 굵은 소나무 사이로 잡목들이 우거진 등로 사이로 힘들게 진행한다.
잠시 후 굵은 참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으로 오르니 석관묘가 나타나는데 도굴된 듯한 흔적들도 보인다.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좌측으로는 거대한 축사 건물도 보이는데 지도로 확인해 보니 좌측의 봉화읍 문단리와 우측의 영주시 조와동을 이어주는 무명안부 고갯길이다.
시멘트 포장도로로 된 무명안부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좌측으로 방금 전 지나 온 거대한 축사 지붕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드넓은 밭경작지가 펼쳐져 있는 가운데 나즈막한 능선 등로로 이어지는데 잡풀들이 우거졌다 말라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다시 나타나는 지독한 가시잡목들과 덩굴지대를 힘겹게 빠져 나가니 무명안부가 나타나고 완만하게 걸어 올라 다시 자복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드디어 축사와 농장들 그리고 민가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귀 밝은 농장의 개들은 벌써 이 산객의 발자국을 인지하고 짖어대기 시작하고 조심하며 진행하니 금새 통나무 의자가 설치되어 있고 준희님이 걸어 둔 이정판이 보이는 296.6봉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마시고 추억을 담은 후 다시 출발한다.
그 296.6봉에서 등로는 다시 서쪽에서 남쪽으로 바뀌고 회색빛 억새가 하늘거리는 등로에서 등로는 다시 남서 방향으로 이어진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문수지맥 마루금을 확인하고 등로 우측으로는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햇살 아래 소백산 주능선이 이제서야 제대로된 모습으로 이 산객의 가슴을 들뜨게 만들고 있다.
다시 등로는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무명안부 지나 긁은 소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에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드넓은 밭경작지 넘어 저 멀리 자구지맥과 백두대간 소백산 줄기 위로 오늘 하루 세상을 밝혀 준 밝은 햇살이 서서이 기울어져 가기 시작한다.
한동안 그 무명봉에서 아름다운 일몰을 살펴보며 많은 사진에 남기고 계속 이어지는 남쪽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니 지독한 가시잡목들이 다시 발목을 잡기 시작한다.
어렵게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천천히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낡은 목책이 길게 설치되어 있고 좌측 아래를 살펴보니 드넓은 밭경작지에서는 농부가 포크레인으로 작업을 하고 있고 그 뒷쪽으로 낡았지만 드넓은 농장과 민가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둔덕 넘어 내려가니 등로는 좌측 염소농장 울타리를 따라 짧게 진행되고 그곳을 지나며 염소농장을 사진에 담아 보니 시설들은 낡아 엉망진창인 듯 보인다.
염소농장 울타리를 힘들게 통과한 후 계속 이어지는 등로 좌측의 목책을 따르니 묘지들 지나 큰 고도차이는 아니지만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언덕과 안부를 교대로 올랐다 내려가며 걸어가니 체력적으로 조금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다시 등로 옆으로 파란 그물망이 나타나고 언덕봉으로 올랐다 나타나는 아카시아 군락지를 따르니 그물망은 좌측 농장 방향으로 내려가고 평이한 내리막 등로 따라 드디어 마지막 무명묘지 위에 도착을 해 마근대미에 주차된 차량과 축사들 그리고 민가들을 사진에 담는데 경찰차가 급하게 달려오고 있다.
드디러 그 묘지를 지나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인 마근대미에 도착을 하고 배낭을 정리하는데 마을 주민 한분이 나와 공터에 주차된 차량 때문에 레미콘 차량과 대형 공사 트럭들의 운행에 지장을 초래해 경찰을 불렀다면 경찰이 신원조회를 하고 곧바로 문제가 해결되어 산행을 마감하는데 살펴보니 이곳 마을의 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라 주민이 걱정을 한 듯 보인다.
아곳 마근대미는 조와천이 발원하는 경상북도 영주시의 상망동에 있는 고개로서 경북 봉화군 봉화읍 문단리와 상망동을 이어주는 고개이다.
배낭 정리하고 곧바로 젖어 있는 등산복 상의를 갈아 입은 후 차량으로 들어가 온풍기를 틀어 한기를 면하고 가까운 영주 시내의 모텔을 찾아 예약하고 마근대미를 출발하니 이제서야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서울에서 내려오면서부터 긴 산행거리 때문에 산행 시간을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였고 영주로 내려와서는 예고에도 없던 비가 내리고 산상에 쌓여 있던 눈으로 인해 걱정도 많았지만 금새 비와 눈이 그치고 계획된 마근대미까지 예상한 시간에 어둠기 전에 무사히 도착을 해 기분 좋게 하루를 마감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내일 걸어야 할 남아 있는 자개지맥 제2구간 역시 고도 차이는 없지만 가시잡목이 심한 구간들이 존재하고 유릉산 직전 갈림삼거리에서 유릉산 방향이 아닌 좌측의 원 마루금을 따라 진행하게 되면 산행거리가 약 25 Km 가까이 나오기에 결코 만만치 않은 산행이 될 것이기에 오늘은 좋아하는 소맥도 포기하고 내장탕 한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고 기분 좋게 하룻밤을 보낸다.
내일 하루도 무탈하게 남아 있는 자개지맥 산행을 무탈하게 마무리한 후 귀가해 가족들과 소맥 한잔으로 자출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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