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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화개지맥(낙남.완)

화개지맥 마지막 제2구간 도둑고개에서 남강 합수점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21.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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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함안군의 화개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1년 02월 28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오전에는 흐렸다가 오후부터 태양이 뜨고 기온이 올라 조금은 무더위를 느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7도에서 영상 02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도둑고개(도둑고개삼거리, 어령고개, 1041번 함의로 4차선 포장도로)-함안조공 묘지-무명묘지들-183.2봉-고사목 안부-

              잡풀등로-안국산(344.3봉, 남지320 삼각점, 안국산성, 산불감시초소, 함몰지)-나무계단-옻나무농장 철망-닭재안부-

              211.6봉-바위암릉-무명안부-귀인봉(258.1봉)-무명봉(운동시설)-소사고개(비포장임도)-123.6봉-잡목능선진입-무명

              고사목봉-안산(157.4봉)-소나무 무명봉-묘지2기 안부-묵은 밭 경작지-묵은 과수원-독골고개(이산로 1차선 포장도로)-

              묵은 과수원-경주최공묘지-무명안부-매화농장-88.4봉-무명봉-묵은 비포장임도-칡넝굴 지대-안부 사거리(밭 경작지)-

              무명봉(독도)-고사목 무명봉-매화 과수원-무명 묘지봉-밭 경작지-석물묘지-강태고개(시멘트 포장도로)-칡넝쿨지대-

              참나무 무명봉-가선대부 안동김공묘지-대치(1021번 대부로 2차선 포장도로, 태경 주유소)-주유소담장과 밭 경작지-

              가시잡목과 칡넝쿨지대-68.3 삼각점봉(남지424 삼각점)-무명안부-무명봉(독도)-비포장임도-묘지들-임도 갈림삼거리-

              생태통로(부촌길 1차선 포장도로)-밭 경작지-민가-시멘트 포장도로-우회등로-136.5봉-비포장임도-133.5봉-비포장

              임도-임도삼거리(대산부목지구 표지석과 국가지점번호판)-시멘트 포장도로(143.1봉 우회)-시멘트 포장도로 갈림

              삼거리 이정표(등산로 입구와 용화산 정상 0.8 Km, 도흥마을 1.1 Km, 입사 1.0 Km, 반구정과 합강정)-용화산 갈림

              삼거리-용화산(193.2봉, 정상석, 남지23 삼각점, 2층 6각정자, 운동시설) 이정표(반구정 700m와 합강정 970 m,

              입사마을 1.7 Km와 도흥 1.8 Km, 능곡 1.4 Km와 연산마을 2.2 Km)-갈림 삼거리 이정표(합강정, 반구정)-비포장 임도

              이정표(장포마을 1.1 Km, 등산로 입구 용화산 0.7 Km)-잡목등로-154.1봉 육각정-무명묘지들-잡목등로-기도처-돌계단-

              낙동강제방(시멘트 포장도로) 이정표(합강정)-장포배수문-수질오염 상시감시 칠서 측정소-합수점(남강과 낙동강,

              기강나루, 남지읍)-장포마을 버스정류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17.17 Km (도둑고개 또는 어령고개에서 장포마을 마을회관까지)

               지맥산행 : 16.09 Km - 도둑(어령)고개에서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까지

               접속구간 : 약 01.08 Km - 남강 합수점에서 장포마을 경로당과 회관까지

산행트랙 :

20210228 화개지맥 제2구간 도둑(어령)고개-남강 합수점.gpx
0.11MB

산행시간 : 06시간 56분 (06시 52분부터 13시 49분까지 접속구간 모두 포함하여)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6시 40분 아바나모텔에서 칠원택시로 도둑고개까지 이동(055-587-0300, 10,500.-)

                                 06시 52분 도둑(어령)고개에 도착해 산행 준비 후 곧바로 산행 시작

                       올때 - 13시 49분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장포마을 회관에서 산행종료

                                 14시 05분 남지읍 택시로 남지버스터미널까지 이동(055-526-4040,  20,000.-)

                                 14시 50분 부산 발 남지읍을 통과하는 우등고속버스로 남서울 행 탑승

                                 19시 00분 남서울 버스터미널에 도착 해 지하철 3호선과 2호선을 이용해 무사히 귀가

화개지맥이란 ???

화개지맥은 낙남정맥 광려산(723봉)에서 북으로 분기하여 광려천의 서쪽 울타리가 되어 남강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장포마을까지 가는 34.3 Km되는 산줄기로 북서쪽 남강하구 건너로는 우봉지맥끝과 마주보고 북동쪽 낙동강 건너로는 열왕지맥과 마주본다.

화개지맥이란 이름으로 통과하는 산과 고개들은 광려산(723봉), 화개산(454.5봉), 신당고개, 자양산(402봉, 0.7 Km), 안국산(343.9봉), 용화산(193.1봉) 등이 있다.

 

 

따뜻한 봄바람에 실려 온 봄소식을 맞으며 즐겁게 또 새로운 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행복하게 귀가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화개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함안군 및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그리고 네이버의 지식백과,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과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어제 걱정과 고민속에 대중교통을 이용해 마산으로 내려 와 기대보다 좋은 식당을 발견해 든든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편의점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한 후 산행 출발지로 가는 첫 버스를 무탈하게 탑승하여 아침 7시쯤 산행을 시작해 생각보다 좋은 등로를 따라 예상한 도덕고개에 도착 해 칠원으로 나왔기에 오늘은 조금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진행하기로 했는데 서울로 복귀하는 버스를 확인하다 보니 합수점에서 멀지 않은 창녕군 남지읍에서 오후 2시 50분 발 버스가 있어 무조건 그 버스를 타고 귀경하기로 했기에 오늘도 마음은 불안하게 진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높은 봉우리라고 해도 안국산이 344.3봉에 산행거리가 17 Km 전후로 예상되기에 7시간이면 여유있게 진행이 가능할 것 같아 여관 근처의 편의점에서 처음 먹어보는 도시락에 떠국 하나를 더해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즐기고 택시를 이용해 어제 내려 온 도덕고개에 도착을 하니 아침 6시 50여분이 지나면서 날이 완전히 밝았다.

늘 산행 전 하는 의식으로 오늘 하루도 아무 사고없이 무탈하게 목적지까지 진행한 후 즐거운 마음으로 귀경할 수 있기를 빌고 배낭 정리 해 곧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도 약간의 잡목이 보이지만 예상보다 좋은 등로를 따라 산행을 진행하니 어제보다 기온이 더 올랐는지 아니면 바람이 불지 않아서인지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이 더욱 많아진 느낌이다.

초반부터 꾸준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어렵게 안국산에 오르니 조금 흐린 날씨에 사방팔방 시원하게 펼쳐진 조망과 풍경에 시간가는 줄 모르게 즐기고 진행을 이어가기로 하고 배낭 내려 마음 편히 쉬면서 추억을 만든다.

제일 먼저 어제 걸어 온 남쪽 방향을 살펴보니 사진 정중앙 앞쪽에서 바로 앞 능선을 따라 우측으로 가면 우측 가장자리로 인공 통신탑이 솟아 있는 자양산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두번째 산줄기를 따르면 호암산 넘어 상투봉과 광려산으로 이어지는 화개지맥 전 구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과 중앙 제일 뒷쪽으로 낙남정맥 마루금도 시원하게 이어지고 있어 한동안 많은 사진을 담으며 그 이름들을 불러준다.

 

남쪽 방향으로 어제 걸어 넘어 온 화개지맥 전 구간을 살펴보고 이제 눈을 북서 방향으로 돌리니 잠시 후 걸어 만나야 할 닭재 전위봉과 귀인봉 지나 안산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가 끊어질 듯 이어지고 대사일반산업단지와 함안칠서태곡일반산업단지 사이로 낮아졌다 함안부목일반산업단지 우측으로 휘돌아 칠서지방산업단지 방향으로 달려가다 거꾸로 휘돌아 나와 장암농공단지 앞에서 북서 방향의 낙동강 근처로 이어져 그 낙동강을 우측에 두고 용화산을 넘어 남강과 낙동강으로 그 산줄기가 잠기는 오늘 걸어야 할 화개지맥 전구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합수점 뒤 저 멀리 하늘금까지 솟아 있는 봉우리 하나가 눈에 들어 와 찾아 보니 거리가 너무 멀어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합천의 가야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이다.

사진 중앙부 하얀 연기인지 수증기가 피어 오르는 뒷쪽으로는 낙동강 넘어 오늘 오후에 서울로 출발하는 버스를 탑승해야 할 남지읍이 자리하고 그 남지읍 뒤 우측으로는 톱날같은 산줄기가 눈길을 잡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화왕지맥에서 열왕지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확실하고 그 좌측 뒤로도 커다란 산군 하나가 눈길을 잡는데 지도로 확인하니 비슬산이다.

 

오늘도 역시나 산행의 어려움은 산의 높이가 아닌 경사도와 잡목의 유무 그리고 날씨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산행을 할 수 있음을 느껴 본 시간이었다.

이제부터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해도 250미터를 넘지 못하고 대부분 200미터 이하의 높이를 가지고 있는 산줄기이기에 편안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수많은 산업단지들로 인해 마루금이 잘리고 파헤쳐져 어느곳은 잡목보다 잡풀들로 인한 어려움이 가중되고 그래도 무탈하게 등로를 찾아 마지막 봉우리라 생각한 용화산을 넘어 전진하니 실제 마지막 봉우리는 팔각정자가 서 있는 154.11ㅗㅇ이고 그곳 정자에 올라 잠시 쉬면서 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드디어 좌측의 남강이 우측의 낙동강과 만나는 합수점이 그리처럼 펼쳐져 있고 그 남강 건너편으로는 조만간 다시 만나야 할 우봉지맥 날머리가 그리고 낙동강 넘어 우측 뒤로는 몇 년 전 어렵게 완주한 화왕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도초산과 날머리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여잠시 꿈결같은 시간도 보낸다.

 

연 이틀에 걸쳐 꾸준한 발걸음을 하다보니 드디어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에 서서 화개지맥이란 이름으로 마산에서부터 걸었던 도상거리 약 35 Km 에 실제 산행거리 약 40여 Km 정도를 걸어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는 지점까지 내려 가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는 시간은 힘들고 어렵지만 왜 이런 산행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이제 마음 편히 화개지맥이란 이름을 내려 놓고 좌측 장암리 장포마을까지 비닐하우스 단지를 따라 걸어가며 남지읍 택시를 불러 버스편을 알아 보니 계획했던 2시 50분 버스를 탑승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아 기분 좋게 또 하나의 지맥 산행을 완성하는 시간은 행복하기만 하다.

 

어제 피곤했었는지 깊은 잠에 빠졌다 추위에 일어나 보니 방은 따뜻한데 몸이 어려웠던 모양이라 준비한 피로 회복제를 먹고 다시 잠에 빠졌다 눈을 뜨니 새벽 5시를 넘기고 있다.

오늘은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기에 여유롭게 근처 편의점으로 가 도시락과 떠국 하나를 더 준비해 여관으로 돌아 와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6시 30여분이 지나 택시를 콜 하니 10여분도 되지 않아 도착을 해 그 택시를 이용해 어제 산행을 마무리한 도덕고개로 햔하니 다시 10여분만인 6시 50여분 쯤 목적지에 도착을 한다.

도둑고개는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와 칠서읍 회산리 및 대산면 대사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서 새로 확장하고 포장되고 있는 1041번 함의로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를 말한다. 

도둑고개란 이름은 옛날에 산적이 많이 출몰하던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또 다른 이름으로는 활빈당골, 도덕골, 대통골이라고도 부르는데 활빈당이란 의적이 있었다는 데서 기인한 것이며 일제시대 때 애국지사가 활동하던 곳이란 이야기도 전해지고 도덕골의 도덕고개란 이 고개를 넘을 때 서로 도와주면서 넘는다고 해서 붙여졌으며 대통골이란 대나무 통처럼 골짜기가 좁고 길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전해지는 곳이다.

 

산행 준비 후 그 그 1041번 함의로 4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어령마을 방향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니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분기되고 공장건물들이 나타나며 진행 방향으로는 함안조공 묘지가 보이는 방향으로 오르며 화개지맥 마지막 구간 산행을 시작한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면 어령마을로서 일부는 도둑고개를 이곳 지명 이름을 따 어령고개라 부르기도 하는 듯 한데 택시기사에 의하면 도둑고개라 하면 모두가 잘 알고 있으니 택시를 부를 땐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된다는 소식이다.

어령마을은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회산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서 회산리는 광려천변에 자리한 농촌마을이고 회문리와 신산리를 병합하여 만들어진 마을이며 한 글자씩 따서 회산리라 칭하였다.

자연마을로는 회산, 생잇골, 황샛골마을 등이 있는데 회산마을은 회산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 유래는 회산리의 그것과 같고 생잇골마을은 생이(상여)집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지어진 지명이며 황샛골마을은 황새가 잘 앉는 곳이라 하여 지어진 지명이다.
어령터(어령, 於嶺)는 칠원읍 유원에서 대산면으로 넘어가는 지방도로 옆에 위치하는 칠서, 칠원, 대산, 산인등 4개면의 경계지점을 말하는데 고개(嶺)라기보다는 지형이 조금 높은 협곡에 불과하다.

마을이 형성되기로는 200여년전 인천이씨(仁川李氏)와 은진송씨(恩津宋氏)인 처남 매부간이 산인면 운곡리로부터 처음 이주하여 살면서 부터였다고 전하며 별다른 지명의 유래는 없다.

 

묘지 방향으로 오르니 묘지 뒤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그곳을 통해 능선으로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와 약간의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솔갈비가 푹신한 등로로 이어지는데 생각보다 등로 상태는 양호하다.

잠시 후 이장된 듯한 묘지터에 활엽수 낙엽이 깊게 깔려있는 곳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무명묘지 지대를 타고 오르니 잠시 소나무와 잡목 등로를 지나 또 다른 무명묘지를 통과한다.

다시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무명묘지 3기가 펼쳐지고 그 묘지 뒤 우측으로 진행하니 오랫만에 다시 만나는 붉은 노끈이 매여져 있는 무명봉 넘어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에 높이가 적혀 있는 183.2봉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은 잡목봉으로 이뤄져 있다.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을 확인하고 우측으로 꺽어 살짝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탱자나무 가시가 악마의 입을 버리고 있는 듯 무섭게 다가오고 등로에는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고 약간의 잡목들이 산행을 방해하는 안부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길게 이어진다.

이른 아침부터 기온이 오르는지 등줄기와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등로를 적실만큼 많이 흘러내리고 몇번인가 발걸음 멈추고 심호흡을 하면서 어렵게 걸어 오르니 지독한 잡풀지대가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있는 지대를 지나 산성터가 나타나고 그 위에 산불감시초소가 세워져 있는 안국산 정상에 도착을 해 배낭 내려 놓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일망무제로 펼쳐진 아름다운 조망을 즐기고 진행하기로 한다.

안국산(344.3m)은 경상남도 함안군의 칠서면 회산리와 대산면 대사리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344m이고 지명는 안곡산(安谷山)으로 지리지와 고지도에 수록하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칠원)에 지명을 수록하고 있는데 봉화 1곳이 현의 서쪽 안곡산에 있다 라고 기재하였고 주기에는 남쪽으로 창원 성황당에 응하고 북쪽으로 영산현 소산(所山)에 응한다 라고 하여 안곡산의 위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칠원읍지에도 안곡산 서쪽 십 리에 함안계라고 기록하고 있고 고지도에는 해동지도(함안) 이후부터 1872년지방지도(함안)까지 안곡산으로 기재되어 있다. 안국산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은데 구전에 임진왜란 때 안곡산에 주둔하던 조선군이 각지에 봉화통신을 주도하면서 왜군을 무찔러 퇴각하게하자 그때부터 나라를 안정시켰다는 의미에서 지방민들이 안곡산을 안국산이라 불렀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산정에 산성과 봉수대가 있다.

잠시 쉬면서 흐르던 땀방울이 멈추자 주위를 둘러보니 정상에 산불감시초소가 세워져 있는데 감시원은 아직 출근 전인지 비어 있고 그 옆으로 돌로 쌓은 우물같은 웅덩이가 보이는데 산성과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고 산불감시초소 옆으로는 남지320 삼각점도 박혀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제일 먼저 남쪽 방향을 살펴보니 사진 중앙 앞쪽에서 흘러 내린 첫번째 산줄기가 우측으로 흘러 자양산 방향으로 흐르는데 자양산의 인공통신탑은 아쉽게도 살짝 잘려있고 두번째 산줄기가 우측에서 좌측으로 흐르며 마루금을 이어가고 그 뒤 저 멀리 상투봉 능선 지나 좌측 뒤 가장 높은 무학산부터 중앙부 좌측의 대산 그리고 중앙 우측으로 조금은 뾰족하게 보이는 화개지맥 분기점인 광려산 지나 우측 끝자락으로 낙남정맥 상 서북산에서 여항산으로 이어지는 산그리메가 황홀감을 안겨준다.

 

이제 눈을 남동쪽으로 돌리니 바로 앞 잡목사이로 회산리 신산소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저산이 나즈막한 둔덕봉처럼 솟아 있으며 그 저산 넘어로는 광려천이 중부내륙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그 뒤로 광려천과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가운데 두고 좌측으로는 어젯밤 하루 묵었던 철원읍이 우측으로는 내서읍 마을이 있는데 아쉽게도 내서읍 방향은 바로 앞 능선에 막혀 잘 보이지 않는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우측 뒤 저 멀리로는 마산의 진산이자 낙남정맥 상 무학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좌측으로는 신산경표 상 낙남정맥이자 산경표를 기준으로 신낙남정맥이라 불려지는 불모산 방향의 산줄기가 살짝 보이고 사진 중앙 좌측으로는 창원시의 낙남정맥 산줄기 앞으로 천주산과 작대산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산줄기가 옹골찬 모습으로 이 산객의 가슴에 추억으로 쌓이고 천주산 좌측 위 하늘은 두꺼운 구름속에 또 새로운 하루를 밝혀 줄 햇살이 빠져 나오지 못하고 하늘만 붉게 물들이고 있다.

 

아름다운 화개지맥과 낙남정맥 산줄기를 살펴보고 이제 눈을 동쪽으로 돌리니 잡풀들과 잡목들 뒤로 안국산에서 뻗어 내려간 200미터 대 전위봉이 앞을 가로막고 그 뒤 저 멀리 두꺼운 구름속에서 붉게 하늘을 물들이는 태양빛이 빛내림을 하고 있는 아래 제법 옹골찬 모습으로 연봉을 이루고 있는 산줄기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칠서면 뒤를 흐르는 우측부터 천주산과 작대산 지나 무릉산과 함박산 방향의 낙동강으로 낮아지는 산줄기가 마치 또 다른 멋진 이름을 가진 산줄기처럼 위풍당당하게 앞을 가로막고 늘어서 있다.

 

이제 북북동쪽으로 낙동강 북쪽을 살펴보니 지금은 사라진 이름이지만 한때는 유원지의 대표 이름이었던 부곡하와이쪽으로 흐르는 열왕지맥 마루금이 사진 우측 끝자락을 채우고 좌측으로 오르며 비슬지맥과 화왕지맥 그리고 왕령지맥이란 이름으로 불려지는 산줄기들이 혼재되어 있는 모습으로 옛날 추억을 들추고 있다.

바로 앞으로는 잠시 후 만나야 할 화개지맥의 봉우리들이 이어지고 그 뒤 저 멀리 하얀 연기인지 수증기를 내뿜고 있는 남지에서 오후에 서울로 가는 버스를 이용해 귀가를 할 예정이기 때문에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 보지만 거리감 때문인지 사진으로 보는 것이 전부이다.

그 남지읍 뒷편으로도 제법 거대한 산군 하나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 와 지도로 확인해 보니 몇번인가 들렸던 비슬산이 아닐까 생각되는 모습이지만 워낙 멀리 있기 때문에 확신까지는 할 수 없는 풍경이다.

그 좌측 옆으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해야 할 용화산과 남강 합수점 방향을 살펴보니 사진 좌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희미한 실루엣만 그곳 방향이 맞다고 알려 주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지점을 파악하기는 어려운 박무이다.

 

그렇게 한동안 그 안곡산 정상에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담으며 보이는 산줄기와 봉우리 이름들을 불러 보지만 한계가 있기에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내려가며 안곡산성을 확인해 보려 하지만 진행 방향으로는 확실하지 않아 올라 오던 방향으로 가 산ㅅㅇ터를 마지막으로 사진에 담고 산행을 이어간다.

안곡산성(安谷山城)은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회산리에 있는 가야 시대의 산성으로 칠원산성(漆原山城)과 연계하여 창원과 마산 방면에서 가야읍으로 진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아라가야에 의하여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진 복합성이지만 동 시기에 축조되었는지는 단언하기 힘들다.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회산리 산247번지에 위치하며 함안군 칠원읍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3.7㎞ 지점에 자리한 안국산(343m) 정선부를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다.

산성의 서쪽에 있는 정상부에는 봉수대가 위치하고 있고 남서쪽 맞은편에는 칠원산성이 위치하며 산성에서는 동쪽으로 약 2.7㎞ 지점에 무릉산성(武陵山城)과 멀리 무릉산 및 청룡산(작대산)이, 북동쪽으로 성주봉 산성(직선거리 5.1㎞), 북쪽으로 함안군 칠서면 지역과 낙동강 너머 창녕군 남지읍과 영산, 화왕산이 조망된다.

북서쪽은 고종산성(鼓鍾山城, 직선거리 3㎞)과 멀리 함안군 법수면과 의령군 의령읍이, 남서쪽은 가야읍과 봉산산성(蓬山山城, 직선거리 10㎞), 방어산성(防禦山城, 직선거리 19㎞)이, 남쪽에서 동쪽 구간으로는 내서에서 칠원읍 지역으로 넘어오는 길목에 해당하는 예곡리와 칠원 읍내가 조망되는 요해지(要害地)이다.

안국산 정선부를 두르며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진 복합식 산성으로 안곡산성에 대한 기록은 조선 시대의 문헌에서는 전혀 확인되지 않고 일제 강점기의 조사 자료에서만 나타날 뿐이며 함안 박물관에 의해 정밀 지표 조사가 이루어져 대체적인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산성의 평면 형태는 북서-남동 방향으로 긴 부정형이고 규모는 내성이 540m에 외성이 700m이며 내성과 외성을 합한 규모는 1,240m 정도이다.

성벽은 급경사면과 자연 절벽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아니면 낮게 쌓은 남벽과 북벽 그리고 이중의 성벽을 쌓은 동벽으로 나누어진다.

동벽은 이중의 성벽으로 내부의 것은 안국산 정상부의 동쪽 끝부분에 위치하며 평면 형태는 호상(弧狀)을 이루고 규모는 길이 70m 정도이지만 정확한 양상은 알 수 없다.

외부의 성벽은 내부의 성벽에서 동쪽으로 약 160m 지점에서 확인되며 평면 형태는 굴곡을 이루는 부정형이다.

외부의 성벽은 동벽 중앙의 약 30m 정도에서만 확인된다. 부속 시설로 봉수대와 건물 터가 확인되었으나 산성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은 낮다.

산성 내에서 채집된 유물은 토기편과 기와편 등이며 시기적으로는 조선 시대와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반·중반 정도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를 해 보면 안곡산성은 안곡산 정상부를 두르는 복합성으로 내부에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반·중반의 유물이 채집되었으므로 아라가야에 의해서 축성된 것으로 판단되며 따라서 아라가야 산성의 축조 수법과 관방 체계를 파악하는 데 많은 자료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다시 뒤돌아 올라 가 안곡산성 흔적을 사진에 담고 북북동 방향으로 내려가니 여름철 지독하게 무성했던 가시덤불과 잡풀들이 계절에 순응하며 말라 있는 사이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간다.

내려가며 나뭇가지 사이로 진행 방향을 어렵게 살펴보고 조금 더 내려가니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길게 통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그 계단을 따르니 잠시 후 계단이 끝이나며 옻나무인지 아니면 죽나무인지 모를 나물 채취용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고 그 앞으로 철조망이 보이는데 원 마루금인 좌측으로는 진행이 어려워 보여 철조망을 넘어 나물 채취용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곳을 통해 내려가니 커다란 움막 두동이 나타나고 그 아래 저 멀리 민가가 내려다 보이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 언저리가 닭재로 표기된 안부로서 다음지도에는 칭기고개이다.

함안군 자료를 찾아보니 닭재(鷄峴)는 칠서면과 대산면의 경계가 되는 안곡산(安谷山) 북쪽에 있는 고개로서 안곡산 너머의 칠서면 관할에 절이 하나 있었는데 이 절에 지네가 너무 많아서 절이 폐사가 될 지경에 놓였을 때 대산면에서 닭을 가지고 가서 지네를 없앴다고 하며 이때 닭을 가지고 넘어간 고개가 닭재이다.

 

커다란 움막 두동이 있는 안부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여 완만하게 오르고 그 오르막 등로를 따라 나무 채취용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농경지를 벗어나는 지점에서 등로 우측인 동쪽을 살펴보니 봉불사가 있는 민가 좌측 뒤로 220미터급 무명봉이 솟아 있고 그 우측 뒤 저 멀리 어제부터 길라잡이처럼 방향을 잡아주는 천주산과 작대산 그리고 무릉산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들이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해주고 있어 바쁜 발걸음이지만 잠시 숨을 고르며 몇장의 사진에 담고 진행을 이어간다.

 

닭재 안부 지나 새순 채취용 나무 식재지 가장자리에 설치된 나즈막한 철조망을 통과한 후 능선으로 오르니 뚜렷한 활엽수 낙엽 등로가 열려있고 잠시 후 둥그런 바위와 커다란 참나무들이 보이는 등로로 이어진다.

다시 이어지는 고도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저 멀리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다가가 확인해 보니 이곳이 도상 211.6봉으로 도착해 보니 봉우리가 아닌 능선 상 둔덕 같은 곳으로 이곳 산행 띠지들리 걸려있는 곳에서 등로는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는 방향으로 틀어 진행을 해야 활 길주의 지점이다.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를 지나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니 커다란 바위 사이에 떨어진 활엽수 낙엽들이 깊게 쌓여 있어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그렇게 그 바위암릉 지대를 벗어나니 등로는 커다란 소나무와 약간의 잡목들이 혼재되어 사이로 뚜렷하게 나 있어 진햐ㅐㅇ에는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잠시 더 진행하니 여름철 멧돼지들의 목욕탕으로 이용되었던 작은 웅덩이를 지나 등로는 더욱 넓은 비포장 임도처럼 변하고 곧이어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 커다란 나뭇가지에 봉화산등산로 라는 이정판이 걸려있는데 지도를 찾아봐도 봉화산은 보이지 않고 혹시 지나 온 안곡산의 봉화대를 봉화산이라 부르고 있지는 않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정체 모를 봉화산등산로 이정판이 붙어 있는 무명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이제 소나무 등로 아래 커다란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고 비포장 임도처럼 넓었던 등로도 좁은 소로로 변하면서 무명묘지를 통과 해 오른다.

솔갈비가 푹신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다 보니 어느새 등로는 소나무에서 아카시아 나무지대로 변하면서 약간은 거칠어지고 잠시 심호흡 하면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머물며 고운 추억을 남겼던 안곡산은 벌써 저 멀리 멀어지며 가슴속 깊이 추억으로 쌓인다.

다시 힘을 내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산로라는 이정판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고 귀인봉이란 이정판과 그 뒤로 준희님의 258봉이란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258.1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 이정판 옆으로는 굵은 끈이 연결되어 있고 그곳에 다녀 간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잠시 확인도 해 본다.

귀인봉은 평지에 자리한 마을인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에 있는 산으로 지명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데 다만 전국적으로 있는 귀인봉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니 귀한 사람이 태어날 곳이라든지 아니면 귀를 닮았다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라 이곳 역시 그런 지명유래가 있지는 않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귀인봉이라는 이정판과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 앞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우측으로 꺽여 이어지는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진행을 이어가니 아카시아 나무들이 보이고 가끔은 쓰러진 고사목들도 나타나는데 가시가 있기 때문에 조심해 걸어 전진한다.

특별할 것도 없는 고도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아카시아 나무 등로를 따라 한동안 걸어 진행하니 갑자기 녹이 슨 여러가지의 운동시설들이 설치되어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는 이곳에서 좌측으로 휘어져 진행이 되고 있다.

이곳까지 올라 와 운동을 즐기는 주민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탁상행정의 전형을 보여주는 시설물들로서 이렇게 낭비되고 있는 세금이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보면 분통이 터지는 풍경들이다.

 

아쉬움을 남기고 운동시설들이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좌측으로 휘어져 완만하게 내려가니 내려가는 입구쪽으로 묘지가 보이고 약간의 잡목들이 나타나지만 뚜렷한 등로가 열려있어 진행에는 어려움이 전혀 없다.

내려가며 등로 우측 앞을 보니 태곡리의 강태소류지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고 그 소류지 지나 태곡리 마을의 민가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으며 진행하니 갑자기 넓은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를 만나는데 다음지도를 보니 태곡리 소사고개란 표시가 보이지만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무명안부로서 아무런 표식이 없다.

태곡리는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에 있는 리로서 광려천변에 자리한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가장골, 개정지, 노송나뭇골, 배골, 삼밭골, 점골마을 등이 있는데 가장골마을은 가장(가매장)을 하던 곳이라 하여 지어진 지명이고 개정지마을은 정자나무가 있는 개울 가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지명이며 노송나뭇골마을은 노송나무가 많아 지어진 지명이다. 

배골마을은 뱃골 또는 이곡이라고도 불리며 배나무가 무성했다 하여 유래된 지명이고 삼밭골마을은 삼밭이 있었다 하여 불리는 지명이며 점골마을은 옹기점이 있다 하여 지어진지명이다.

 

소사고개에서 등로 우측 앞으로 태곡리 마을과 저수지를 살펴보고 잠시 그 넓은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등로엔 활엽수 낙엽이 깔려있고 큰 고도 차이도 없이 동네 산책로 같은 등로이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몇개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확인해 보니 123.6미터봉임을 알리는 글씨들이 보여 지도를 확인해 보니 봉우리가 아닌 능선상 둔덕 같은 봉우리이다.

 

둔덕봉인 123.6봉을 지나 조금 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커다란 소나무가 쓰러져 있고 멧돼지들의 목욕탕이 보이는 곳에서 비포장 임도는 우측으로 돌아가고 마루금은 좌측 잡목 사이로 오르도록 되어 있어 어렵게 잡목들을 헤치고 진행한다.

빼곡하게 자란 잡목들을 헤치며 어렵게 오르니 쓰러진 커다란 고사목이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내려가니 소나무 등로에는 제선충으로 죽은 나무들이 보이고 중간에 벌목을 위한 것인지 표시가 되어 있는 소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잠시 후 무명안부로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뚜렷해지고 잡목들이 줄어 들면서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다.

 

그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소나무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쓰러진 고사목이 보이는 무명봉 지나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전진하니 약간의 오르막 등로를 지나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가 보이는 봉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확인해 보니 157.4미터의 안산 정상이다.

이곳 경상남도 함안군 대사면 대사리와 칠서면 태곡리에 걸쳐 있는 안산에 관한 자료는 전혀 찾을 수 없었는데 전국적으로 많은 안산은 풍수지리에서 가택이나 묘택이 있는 혈 맞은편의 낮고 작은 산을 말하며 주산()과 청룡() 및 백호()와 함께 풍수학상의 네가지 요소 중 하나로서 여러 산이 겹쳐 있으며 내안산()과 외안산()으로 구별된다.

안산과 떨어져 있는 또 하나의 산을 조산()이라 하는데 이들 산이 남주작()에 해당되고 안산은 혈 위에 있는 주산( : )에 대하여 책상 혹은 안석()과 같은 구실을 맡고 있다.

형태상으로는 옥궤( : 옥으로 만든 책상)와 횡금( : 눕혀 있는 거문고), 옥대( : 옥으로 만든 띠), 집홀( : 홀을 손으로 잡은 모습), 안검( : 손에 칼을 잡고 있는 모습), 아미() 등과 같으면 좋다고 한다.

안산은 조산의 발치 기슭에 위치함이 보통으로 그 모습이 단정하고 원만하며 평정()하고 반듯하며 사물을 포용하는 형국이면 좋다고 하며 형상이 좋더라도 물에 흘러 날아가 버리듯 혈을 향하여 찌르듯 하면 좋지 않다.

혈(, 또는 )로부터 안산은 가까이 있고 조산은 멀리 있는 것이 원칙으로 풍수지리에 의하면 국도()와 읍성() 및 왕릉() 등에는 조산이 필요하고 보통의 묘자리( : )나 집터( : )에는 안산이 꼭 필요한데 서울의 경우 남산이 안산에 해당된다.

 

풍수지리에 민감했던 옛날 풍습에서 안산은 중요한 봉우리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안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본 후 다시 활엽수 낙엽들이 깔려 있는 두렷한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중간 중간 제선충 방지용 나무 더미들이 보이더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이어진다.

잠시 후 등로가 우측으로 휘어져 이어지는 지점에 커다란 소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진행을 이어가니 등로가 희미하게 사라지고 약간의 잡목들이 소나무들과 혼재되어 있는 진행하기 쉽지 않은 등로가 이어진다.

잠시 더 난해한 잡목들을 헤치고 고사목을 넘어 전진하니 다시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 앞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 등로는 직진의 오르막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크게 꺽여 나ㅣㄴ해한 등로를 찾아 진행해야 할 길주의 안부에 도착한다.

 

묘지를 우측에 두고 무명안부를 지나 좌측으로 크게 꺽어 힘들게 마루금을 따르니 약간의 잡목 지대를 지나 넓은 임도같은 등로와 무명묘지를 만나 통과하고 좌측 무명봉을 우측 사면 등로로 진행하니 갑자기 눈 앞으로 넓은 비포장 임도인지 아니면 밭 경작지인지 모를 진행하기 좋은 등로가 나타나고 등로 좌측 아래로는 대사일반산업단지 내 많은 공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그 넓은 비포장 임도 같은 편안한 등로를 따라 전진하며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비산비야를 이루고 있는 마루금에 오래되어 이제 그 기능을 상실한 듯한 과수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그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편안한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자꾸만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대사일반산업단지가 눈길을 사로 잡는데 일반(또는 지방) 산업 단지는 공업용으로 개발되어 산업 시설이 들어서는 일정한 지역을 말하며 일명 공장 용지를 일컫는 말이다.

이곳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의 대사 일반 산업 단지는 2009년에 산업 단지 조성 공사에 착공하여 2015년 6월 30일에 준공하였으며 총 면적은 29만 5307㎡이고 경성 정기, 지앤와이, 남진 산업, 성산 엔지니어링 등 총 19개 업체가 입주해 가동 중이다.

잠시 더 대산산업단지를 살펴보며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오래된 배나무 과수원이 보이는데 수령이 오래되어 지금은 모두 죽어 있어 그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묵은 과수원이 되어 있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이산로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댓질고개 또는 독골고개라 불려지는 고갯마루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은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의 대사일반산업단지와 우측으로는 칠서면 태곡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이다.

자료는 찾을 수 없지만 댓질고개는 좌측 대사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이 옛날 댓질이란 이름이 있어 불려진 듯하고 독골은 태곡리의 독골이란 자연마을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듯 보이는데 독골에 관한 자료 역시 찾지 못하였다.

 

댓질고개 또는 독골고개라는 이산로 1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높은 콘크리트 옹벽이 낮아지는 좌측 끝자락에서 능선으로 오르니 이곳 역시 계단시 가파른 언덕에 배나무인지 매화인지 과수원이 펼쳐져 있는데 수령이 오래되어 지금은 과실수로서의 역활이 없는 폐허가 된 과수원으로 오르고 그곳에서 등로 좌측 뒤 대사일반산업단지 방향을 살펴보다 그 넘어 저 멀리 산줄기를 확인해 보니 어제 만났던 자양산 인공통신탑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좌측으로 자골산 넘어 이곳으로 이어지고 있는 화개지맥 마루금이 좌측으로 반원형을 그리며 펼쳐져 있는 풍경이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계단식 과수원으로 이뤄진 폐사된 배나무인지 매화나무들을 우측에 두고 오르며 뒤돌아 자양산부터 오늘 걸어던 안곡산과 안산을 살펴보고 오르니 경주최공 묘지 지나 잠시 더 폐사된 과수원이 이어진다.

과수원 지대를 지나니 무명묘지들이 보이고 곧이어 능선으로 진입하니 등로는 뚜렷하게 나 있어 진행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잠시 후 둔덕봉을 넘어 잡목들이 보이는 무명안부를 넘어 오르니 등로 좌측 대사리 대사일반산업단지 방향으로 최근에 새로 세워진 듯한 공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어제 걸어 넘었던 자양산과 그 좌측으로 화개지맥이 보이고 우측 앞으로는 대산면 옥렬리 방향의 또 다른 안산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좌측으로 대사일반산업단지내 공장들과 어제 걸었던 자양산 방향을 살펴보고 안부 지나 뚜렷한 등로를 타고 솔갈비가 푹신한 오르막 마루금으로 오르니 또 다시 화사한 매화꽃이 활짝 핀 짧은 매화밭을 지나고 능선으로 오르니 소나무 등로가 펼쳐져 있다.

그 소나무 등로를 따라 잠시 더 둔덕봉으로 오르니 등로는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크게 꺽여 내려가야 하는 길주의 지점에 도착을 해 지도와 등로를 확인한 후 정상 마루금을 타고 완만하게 내려간다.

 

내려가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지만 여전히 뚜렷한 안부에 도착을 하고 활엽수 낙엽이 깔려 있는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소나무와 관목의 참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잠시 후 노거수가 보이고 그 주위로 관목의 잡목들이 나타나는 봉우리에 도착하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많이 걸려있어 확인하니 88.4미터봉임을 알리는 숫자들이 보여 지도를 확인하니 88.4미터봉이 맞다.

이곳에서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휘돌아 진행되는데 트랙을 확인하니 이곳부터 오일뱅크 주유소가 있는 1021번 대부로 2차선 포장도로까지는 비산비야의 등로를 따라 갈지자 행보를 이어가야 하는 조금은 난해한 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나즈막한 둔덕봉인 88.4미터봉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관목의 등로를 타고 우측 무명봉을 좌측 사면 등로로 우회하며 통과하니 다시 활엽수 낙엽이 깊게 깔려 있는 평이한 등로로 이어지는데 마치 묵은 비포장 임도가 세월이 지나면서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우측으로 휘어져 조금 걸어가니 활엽수 낙엽이 깔려있는 멋진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무심으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진행하니 갑자기 등로 옆으로 죽어 내장이 사라진 고라니 한마리 시체가 약간의 공포심을 유발하고 곧이어 많은 플라스틱 폐기물들이 널부러져 있는 장소를 지나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좌측의 직진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여 진행을 이어간다.

 

무명봉을 지나 우측으로 걸어가니 묵은 비포장 임도 같은 안부를 통과하고 솔갈비가 푹신하게 깔려있는 소나무 오르막 등로로 올라가니 커다란 소나무 옆으로 묵어 작은 소나무들이 자라는 묵은 묘지봉에서 우측으로 꺽어 완만하게 내려간다.

잠시 더 진행하니 갑자기 눈 앞으로 여름철 지독하게 무성히 자랐다 말라있는 잡풀들과 칡넝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사이로 나 있는 좁은 등로를 따르니 잡풀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지나온 방향과 진행해야 할 방향을 가늠해 본다.

 

말라있는 잡풀 억새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무명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니 지독하게 무성했다 말라 있는 가시넝굴과 칡넝굴이 뒤엉켜 여름철 진행에는 고생을 할 것 같은 등로가 열리고 그곳에서 북동쪽을 살펴보니 몇 년 전 고운 추억을 남겼던 화왕지맥과 열왕지맥 그리고 비슬지맥 일부가 톱날 같은 능선 줄기를 자랑하며 올려다 보인다.

지독한 칡넝굴지대를 어렵게 내려가니 우측으로 밭 경작지가 쳘쳐져 있는데 나무 기둥 사이에 철봉을 만들어 많은 냄비들을 걸어 놨는데 아마도 날짐승들의 접근을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우측 바로 아래로는 이곡소류지가 있는 밭 경작지 안부를 지나 가파른 절개지 능선으로 오르니 희미한 등로가 사라지고 제멋대로 방향만 잡고 올랐는지 잡목들이 꺽여 있는 등로가 여러곳으로 산재되어 있다.

어렵게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소나무 아래 깔려있는 솔갈비를 밟으며 오르니 경사도가 조금은 완만해지고 계속 이어지는 솔갈비 등로를 따르니 무명묘지 지대도 통과하고 곧이어 썩어가는 고사목이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고사목이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오래된 수령을 가진 매화과수원이 나타나는데 그 과수원 상단부에 개설된 등로처럼 보이는 곳이다.

그 매화나무 과수원을 지나 오르니 잡풀들이 무성한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고 관목의 참나무가 쓰러져 있는 무명안부를 통과해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ㅣ지들이 걸려있고 무명묘지 한기가 보이는 무명뵤지에 도착을 한다.

 

무명봉에서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크게 꺽여 완만하게 내려가고 관목의 나무들과 쓰러진 고사목들이 보이는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 생강나무에서도 노란 생강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사진 몇장 남겨본다.

봄이 오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무명안부 지나 다시 오르니 무명묘지를 통과하고 곧이어 등로 우측으로 드넓은 칠서농공단지가 펼쳐지고 하얀 수증기가 뿜어져 올라오고 있다.

그 칠서공단 뒤 저 멀리로는 여전히 아름다운 화왕지맥과 열왕지맥 그리고 비슬지맥이 뾰족한 톱날 능선을 자랑하며 봄으로도 당당하게 펼쳐져 있다.

 

잠시 더 그 칠선농공단지와 저 멀리 화왕지맥 산줄기들을 감상하고 사진에 담은 후 약간의 잡목지대와 도깨비가시 잡풀지대를 조심해 통과하니 눈 앞으로 잘 관리된 밭 경작지가 펼쳐지고 중간에 묘지들과 매화나무가 보이는데 매화나무에선 하얀 매화꽃이 만발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진행 방향을 확인하고 그 밭 경작지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조심해 진행하니 어제보다 바람이 잦아들며 조금은 무더위를 느끼기까지 한다.

 

밭 경작지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가며 곱게 피어난 매화꽃도 구경하며 진행하니 밭에는 비닐도 씌우지 않은 파와 마늘 그리고 야채들이 아직도 푸릇한 모습으로 밭에 남아 있어 신기하게 살펴보고 조금 더 걸어가니 가족묘지를 조성한 장소를 지나 우측으로 휘돌아 내려가니 우측 대치리방향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 대치에 도착을 한다.

대치리는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에 있는 리로서 대치천이 흐르는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고 시가화된 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대치, 배릇골, 행촌마을 등이 있는데 대치마을은 한티 고개 밑이 되므로 한티 또는 대티(대치)라 부르게 되었고 배릇골마을은 배나무가 무성했다 하여 지어진 지명이며 행촌마을은 살구나무가 많았다 하여 유래된 지명이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시작되는 대치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넓고 뚜렷한 등로 좌우측으로 잡목들과 잡풀들이 보이고 잠시 편안하게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를 따르니 지독하게 우거졌다 말라 있는 가시넝굴과 칡넝굴이 뒤엉켜 있는 곳에 도착을 하는데 게절의 영향으로 오늘은 진행에 어려움이 없지만 여름철 칡이 우거진 계절에는 진행이 불가능해 보인다.

지독한 칡넝굴 바로 우측 아래로는 태경이앤지라는 커다란 공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는 등로를 따라 칡넝굴을 밟으며 통과하니 금새 둔덕봉에 오르는데 정상에는 제법 굵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고 그 가지에는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무명봉에 도착한다.

 

지독한 칡넝굴 지대 상단에 참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진행하니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가 빛바랜 억새 사이로 나 있고 잠시 편안하게 진행하니 등로 우측 바로 옆으로 공장 건물들이 다가 와 있다.

그 칡넝굴과 공장지대를 지나니 가선대부 안동김공 묘지가 나타나고 잠시 편안하게 소나무와 잡목 사이로 넓고 뚜렷하게 나 있는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금새 깨밭 넘어 1021번 대부로 2차선 포장도로와 오일뱅크 주유소 그리고 그 뒤로 밭 경작지 지나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진 등로가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대치라고도 불려지는 이곳 대부로 2차선 포장도로는 좌측의 함안군 대산면 부목리와 우측의 칠서면 대치리를 이어주는 나즈막한 고갯마루이다.

 

대치라 불려지는 1021번 대부로 2차선 포장도로로 내려서니 좌측 도로 건너편으로 오일뱅크 주유소가 보이고 그 주유소 우측 담벼락과 밭 경작지 사이로 나 있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오르니 밭 경작지 상단부에서 농민 한분이 휴식처를 만들고 있어 인사 드리고 능선 방향으로 철조망 넘어 갈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 보니 그곳은 등로가 없어 갈 수가 없으니 우측으로 돌아 오르라고 하는데 그곳으로 가도 진행이 어려워 보여 좌측으로 가야 하니 양해를 구하고 좌측 낮아진 철조망을 넘어 주유소 뒷쪽으로 진행하니 지독하게 무성했던 칡넝굴과 잡풀들이 말라 있어 지금이야 쉽게 통과가 되지만 여름철 진행에는 고생 좀 할 것 같은 등로이다.

그곳에서 방금 전 지나 온 오일뱅크 주유소와 그곳으로 내려 온 도로 건너 마루금을 확인하고 능선으로 오르니 지독한 아카시아 가시나무가 앞을 가로막고 잡풀들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며 손등에 몇군데 생채기를 만들고서야 그 지독한 잡목지대를 빠져 나갈 수 있었다.

 

지독한 잡목들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잡풀지대를 너무나 힘들게 올라서니 여전히 아카시아 가시나무가 진행을 어렵게 만들고 힘들게 요리조리 빠져 나가보지만 결국 몇군데 상처를 만들고 어려운 구간을 넘으니 등로 우측으로 거대한 칠서공단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데 이곳의 경기는 좋은지 궁금하기만 하다.

잠시 후 넓은 묵은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에 아카시아 나무들이 자라면서 관목이 되어 있는 곳으로 진행하니 잠시 후 아카시아 가시나무와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고 남지424란 삼각점이 박혀있으며 그 앞 진행 방향으로 무명묘지가 보이는 도상 68.3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긴다.

 

그 삼각점봉과 무명묘지를 지나 내려가니 지금보다는 훨씬 뚜렷하고 좋은 등로가 열리고 잠시 후 잡풀들이 무성한 무명묘지를 지나 우측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니 커다란 참나무와 관목들이 보이는 무명안부도 통과한다.

안부 지나 다시 짧지만 가파르게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가 누워있고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을 지나 다시 잡풀들과 관목이 보이는 무명안부를 통과한다.

 

무명안부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많은 묘지들이 등로를 따라 산재되어 있고 그 아래로는 부목리 마을이 작지만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는데 그 뒤로 잠시 후 휘돌아 내려가며 걸어 넘어야 할 화개지맥 마루금도 보이기 시작한다.

부목리는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있는 리로서 대사천이 흐르는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며 매우 시가화된 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걸매산, 모래골, 새땀마을 등이 있는데 걸매산마을은 갈마산 밑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유래된 지명이고 모래골마을은 모래가 많은 지역이라 하여 이름 지어졌으며 새땀마을은 신촌이라고도 불려지고 새로 된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지어진 지명이다. 

부목리 마을을 내려다 보고 잠시 후 거꾸로 내려오며 걸어야 할 화개지맥 마루금도 살펴 보며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직진 방향으로는 직접 걸어 오르기가 만만치 않아 좌측 묘지가 보이는 방향으로 약간 우회하며 진행하니 갑자기 넓은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를 만나 우측으로 편안하게 진행이 되고 있다.

그 임도를 타고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곳으로 가 잠시 살펴보니 거대한 필서농공단지의 많은 공장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 찬 모습이 내려다 보인다.

 

등로 우측의 묘지지대로 짧게 들어 가 드넓게 펼쳐진 칠서 일반 산업 단지를 살펴보고 자료를 찾아보니 칠서 일반 산업단지는 지방 산업 단지 육성을 통한 낙후 지역의 개발과 지역 주민 고용 증대 및 국토 공간의 효율적 이용 등을 목적으로 1991년 조성된 공단지역이다.

다시 묘지를 빠져 나와 진디가 깔린 듯한 부드러운 비포장 임도 같은 넓은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 옆으로는 계속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들의 모습도 자주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오르니 갑자기 갈림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나고 살펴보니 우측으로 올라가는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크게 꺽어 뒤돌아 내려가듯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진행해야 할 길주의 지점에 도착한다.

 

좌측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평범한 소로의 소나무 등로로 바뀌고 뚜렷한 일반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니 진짜 비포장 임도길이 나타나고 진행 방향으로 부목리의 밭 경작지 넘어 저 멀리 민가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며 일반 마을의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눈 앞에 잘록한 안부 지나 우측으로 진행해야 할 마루금도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 좌우측으로 밭 경작지를 두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잠시 등로 좌우측으로 살펴보며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부촌길 1차선 포장도로 위를 통과할 수 있는 동물이동통로가 보여 그곳으로 넘어가니 밭 경작지 앞으로 녹색 철망이 설치되어 있고 그 안에서 할아버지 한분이 밭 둑 정리를 하고 있어 밭 우측 가장자리로 올라 갈 수 있느냐고 문의하니 그곳은 길이 없으니 좌측으로 돌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라고 알려 준다.

할아버지 말을 듣고 따랐으면 편안하게 우회하며 진행이 가능했을 것을 괜시리 고잡을 부리다 날짐승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양철로 담을 쌓은 밭 경작지 가장자리를 타고 진행하며 개고생만 자처하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알려 준 좌측 우회 등로를 따랐으면 넓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손쉽게 올랐을 것을 괜시리 정상 마루금을 고집하며 동물이동통로 지나 우측 아카시아 나무들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니 잡목들과 가시나무들의 저항이 시작되고 어렵게 통과해 오르니 묘지 한기 지나 길게 설치된 스티로폼 칸막이가 산객을 잡는다.

그 칸막이 우측의 지저분한 등로를 타고 눈 앞으로 올려다 보이는 민가 방향으로 어렵게 오르니 집 앞으로 창고 지붕공사를 하고 있는 주인장이 내려다 보며 커피 한잔 마시고 가라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방금 전 음료수를 마셨기에 감사한 마음만 전하고 진행하니 가끔 이곳으로 오는 등산객들은 하나같이 이 산객처럼 어려운 길로 올라 온다며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로 올라오면 좋다고 말씀도 해 주신다.

어렵게 칸막이로 막혀있는 밭 경작지 우측 가장자리를 ㅏ라 마지막 민가로 올라 그 민가 앞에서 좌측으로 나가니 정말 넓은 시맨트 포장도로가 올라오고 있어 후답자들은 그 시멘트 포장도로로 진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 마지막 민가 주인장과 몇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고 민가 바로 좌측 앞으로 보이는 능선으로 오르려 하지만 지독한 잡풀들과 가시잡목들로 인해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으니 민가 주인장이 좌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들어가 조금 우회한 후 우측으로 오르면 된다기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져 좌측으로 우회하며 그 난해한 지역을 통과한다.

잠시 묵은듯한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들을 지나 주능선에 도착하고 우측으로 한동안 걸어 오르니 민가 옆에서 올라오면 만나는 정상 마루금과 합류하여 완마하게 이어지는 잡목 구간을 헤치며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에 높이 표시가 되어 있는 136.5봉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물한모금 마시고 산행을 이어간다.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만 보이는 136.5봉을 지나 잠시 더 전진하니 커다란 참나무에 가지가 3개 분기되어 있는 무명봉을 통과하고 조금 더 참나무 등로를 따라 진행하다 등로 우측을 보니 드디어 나뭇가지 사이로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과 그 넘어 오후에 인연을 만들어 야 할 남지읍이 생각보다 큰 도시의 모습으로 다가 온다.

다시 이어지는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고 활엽수 낙엽들이 깊게 덮혀 있어 조심스럽게 전진하니 둔덕봉 지나 소나무 등로가 열리는 듯 싶더니 금새 넓은 비포장 임도로 내려 서 그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일반 대형차들도 통행이 가능 할 것 같은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곧이어 고갯마루에 도착을 하는데 임도 좌측 능선 위로 도상 133.5봉이 보여 올라가 보니 이곳 역시 선답자들 산행 띠지에 이곳이 133.5봉임을 알리는 고도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이 전부이다.

그 봉우리를 지나 잡목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등로 우측 옆으로 방금 전 헤어졌던 비포장 임도가 따라 와 그 임도를 따라 잠시 편안하게 걸어 본다.

 

비포장 임도로 내려가 그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임도가 우측으로 휘돌아 가는 길목에서 좌측 능선 방향으로 손쉽게 오를 수 있는 진입로가 보여 그곳으로 오르며 다시 정상 마루금을 타고 진행을 이어간다.

약간의 잡목들을 헤치고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여전히 아름다운 낙동강과 남지읍이 조금 더 가깝게 내려다 보이는데 이곳부터 잡목들과 가시나무들의 저항이 심해 더 이상 마루금을 고집하지 못하고 우측 비포장 임도로 내려가 마음 편히 임도를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한동안 그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대산부목지구란 임도 표지석과 국가지점번호판이 서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도 정상 마루금은 포장도로 건너 능선으로 들어야 하지만 이리저리 살펴봐도 지독한 잡목들로 인해 진입이 불가능해 보여 포기하고 좌측 오르막 포장도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면서도 지도와 트랙을 확인하니 시멘트 포장도로 우측 봉우리가 도상 143.1미터 봉이기에 가능하면 배낭 내려 놓고 잠시 다녀오기로 하는데 오르며 아무리 살펴봐도 도로를 내면서 생긴 가파른 절개지에 잔돌들이 흘러 내리고 있어 도저히 우측 능선으로 오를 수 있는 장소가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도로 옆으로 농로겸용 자전거도로란 도로 표지판을 지나 언덕으로 오르며 들리지 못하는 143.1봉을 아쉽게 올려다 보고 한번 오르려고 시도를 해 보다 위험하기에 금새 포기하고 계속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 좌측 앞으로는 나뭇가지 사이로 잠시 후 올라 만나야 할 용화산이 지척으로 다가 와 있어 힘을 내 본다.

 

그렇게 둔덕을 넘어 다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120m 내리막이란 도로 표지판 지나 우측 143.1봉에서 내려오는 등로 길목에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이는데 그곳을 찾아봐도 오르고 내린 흔적도 보이지 않고 빼곡하게 들어 찬 잡목들로 인해 진행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 능선 날머리를 지나 계속 조금 더 가파라지는 내리막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저 아래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앞에 차량 통제용 바리게이트가 설치되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갈림삼거리로 내려 가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 능선 방향으로 산행 들머리가 보이고 그 옆으로 이정표가 서 있는데 살펴보니 진행 방향으로 용화산까지 0.8 Km 가 남아 있다는 거리와 방향 표시가 보이고 지나 온 방향으로는 도흥마을에서 1.1 Km 거리라는 글자가 보인다.

좌측으로는 입사로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반구정과 합강정으로 가는 도로가 이어지는 방향이다.

이정표를 사진에 담고 들머리로 올라 가파르게 오르니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열려있고 한동안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그 등로를 따르니 잡목들과 잡풀들이 무성한 무명묘지 한기가 보이는 전위봉에 도착을 한다.

 

잡풀로 뒤덮혀 있는 무명묘지가 있는 전위봉을 지나 우측으로 휘어져 진행하니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평이하게 진행되던 등로가 드디어 막바지 오르막 등로로 경사가 급해지며 마지막 봉우리로 오르는 체력이 바닥 난 느낌이라 많이 힘이 든다.

그래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조금 더 힘을 내니 드디어 2층 6각정과 운동시설 그리고 삼각점과 정상석이 보이는 용화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용화산(193.2m)은 경상남도 함안군의 대산면 장암리에 소재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193m이고 이곳은 남강과 낙동강이 합류하여 서출동류(西出東流)하는 명당일 뿐만 아니라 창녕과 함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라고 한다. 

지명은 일곱 마리 용이 승천하는 것 같은 형상에서 유래한다고 하며 또는 우리나라에 미륵신앙이 크게 성행할 때 전국에 미륵이나 용화와 관련된 지명이 많이 생겨났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뒷받침하듯 일설에는 용화산에 청송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군의 북쪽 40리 지점에 있다 라고 하여 지명을 수록하고 있고 고지도에서는 해동지도(함안) 이후부터 지명을 기재하고 있다. 

지도에서 함안천과 낙동강 및 남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용화산이 그려져 있는데 물살로 북쪽산 강기슭은 기암절벽의 절경을 이루었을 것으로 보이며 예로부터 선비들이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며 수업을 하였다고 한다.

주위 풍경들을 살펴보고 정자를 지나 남지23이란 2등삼각점과 정상석도 만나 본 후 이정표를 확인하니 진행 방향으로 이제 합강정까지 970미터 거리이니 합수점까지 계산한다고 해도 거의 다 진행했음을 느끼는 시간이다.

 

용화산 정상에서 잠시 더 머물며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올랐던 등로를 타고 조금 걸어 내려 와 좌측 내리막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니 등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는 풍경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넓고 뚜렷한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갈림삼거리에 이정표가 서 있는데 우측으로는 반구정 가는 방향이 좌측으로는 합강정 가는 방향만 표기된 이정표가 서 있어 사진에 담고 좌측 합강정 방향으로 진행한다.

가장 유명한 반구정은 조선 세종 때 유명한 정승이었던 황희(1363∼1452)가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친구 삼아 여생을 보내던 임진강 기슭에 세운 정자로 낙하진과 가깝게 있어 원래는 낙하정이라 불렀다가 변경된 정자이지만 이곳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에도 반구정이란 정자가 있다.

반구정(伴鷗亭)은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로서 조선 중기 학자인 조방(趙垹, 1557~1638)이 풍류를 즐기며 여생을 보내기 위하여 지었는데 조방의 자는 극정(克精)이고 호는 두암(斗巖)과 반구정(伴鷗亭)이다.

조방은 함안 출생으로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의 현손이며 이황(李滉)의 성학 십도(聖學十圖)를 연구하였고 도학(道學)에 힘썼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홍의 장군(紅衣將軍) 곽재우(郭再祐)를 따라 창의하여 정암진(鼎巖津)과 기강(岐江) 등을 지키는 등 전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에는 화왕 산성(火旺山城) 의진(義陣)에서 군무를 도와 많은 적을 무찔러 고을 사림들이 그의 충의에 감복하여 조정에 상소하여 포창(褒彰)을 청하였다.

난이 평정되자 낙동강 우포(藕浦)의 말 바위(斗巖) 위에 반구정을 짓고 마주 바라보이는 곽재우의 창암정(滄巖亭)을 수시로 오가며 산수의 자연과 함께 은둔생활을 하였으며 또한 용화 산하 동범록(龍華山下同泛錄)에 1607년(선조 40) 초봄 정구(鄭逑)와 장현광(張顯光) 등 도내 선비 35명과 함께 용화산(龍華山) 아래 낙동강에서 뱃놀이를 즐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방은 충효 사상을 일생의 신조로 삼았으며 두암집(斗巖集) 3권과 가훈 팔잠(家訓八箴), 충효 실감(忠孝實鑑) 등의 저술을 남겼고 호조 참판에 추증되었다.

반구정의 위치는 대산면 사무소를 지나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입사 마을 안쪽 경사가 심한 임도를 따라 3㎞ 정도 올라가면 용화산 기슭 입구를 알리는 바위 표지석이 있고 이곳에서 50m를 내려가면 낙동강 변 평탄한 자리에 반구정이 위치한다.

반구정은 정유재란 이후 조방이 낙동강 변 말 바위 위에 세웠고 그 후 반구정 주위가 침식되자 후손들이 1858년 5월 옛 청송사가 있던 지금의 자리에 반구정을 옮겨 세웠으며 1929년 5월과 1980년 2월 중수된 후 1998년부터 2002년에 걸처 진입로 개설과 전기 공사를 하였다.

반구정은 용화산이 좌우로 감싸 안고 있고 옮겨 지은 후 묘사 재실(墓祀齋室, 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마련한 집)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현재 반구정 좌측에는 조방의 후손인 조성도가 반구정 옆에 관리동을 건립하여 살고 있으며 뒤쪽에는 공중화장실이 있다.

마당 앞 강변에는 65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있으며 넓은 마당 주변은 낮은 담장으로 구획하였다.

느티나무 앞 육각정에는 2007년 함안군 대산면에서 지어 준 호기정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반구정과 인접하여 합강정(合江亭)이 위치한다.

 

마음 같아서는 우측의 반구정에 잠시 들려 여유를 부려보고 싶지만 남지에서 오후 2시 50분 남서울 행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어 아쉬움을 남기고 좌측 합강정 방향으로 진행하니 등로는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뚜렷하게 이어지고 있어 편안하게 진행된다.

잠시 후 둔덕봉 지나 내려가니 갑자기 눈 앞에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용화산에서 0.7 Km 내려 왔다는 이정표가 반겨준다.

비포장 임도로 내려가 좌우측으로 사진을 남기고 다시 능선 방향으로 오르니 들머리 옆으로 오늘 산행 날머리인 장포마을까지 1.1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힘을 준다.

통나무 계단을 타고 오르며 마지막 팔각정이 있는 154.1봉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능선으로 오르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뚜렷한 등로는 직진의 무명봉을 우측으로 우회하듯 지나는데 확실하지 않기에 좌측 직진 방향으로 오르니 선답자들도 이곳을 피해 갔는지 희미한 등로조차 보이지 않고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잡목들이 산객을 잡아채며 마지막 사투를 벌인다.

잡목봉에서 사투를 벌이고 봉우리를 넘어가니 우측으로 우회한 뚜렷한 등로와 만나 다시 편안하게 진행되고 그렇게 잠시 더 진행하니 오르막 등로를 지나 둔덕봉에 도착을 하는데 선답자의 띠지에 이곳을 154.1봉이라 하였는데 실제 봉우리는 팔각정이 있는 조금 더 진행된 곳이다.

주위를 살펴보니 오래되어 썩어가는 벤취쉼터들과 낙엽이 높게 쌓여 이는 모습들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음을 알리고 있다.

그 둔덕봉을 지나 좌측으로 휘어져 걸어가니 드디어 마지막 154.1봉의 팔각정에 도착을 해 그 정자로 올라 배낭 내리고 남아 있던 간식과 물로 허기를 달래며 아름다운 합수점 방향과 낙동강 건너 화왕지맥 날머리 방향을 살펴 본다.

 

허기를 면한 후 정자 우측 끝자락에서 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드디어 좌측의 남강과 우측의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이 바로 지척으로 내려다 보이고 그 남강 건너편으로는 조만간 다시 내려 와 만나야 할 우봉지맥의 날머리인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 방향의 합수점도 아름답게 펼쳐진 모습이 환상적이다.

그 두 지맥의 날머리인 남강과 낙동강 합수점을 확인하고 낙동강 우측을 보니 화왕지맥 상 도초산이 우뚝 솟아 있고 낙동강 끝자락 저 멀리로는 구진산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솟아 있어 한동안 많은 사진을 담아 본다.

 

이제 눈을 북동 방향으로 돌리니 바로 앞으로 남강을 합류시킨 낙동강이 바로 발 밑 좌측에서 우측으로 도도히 흐르고 그 낙동강 건너로는 남지읍 학계리 방향의 천변공원과 비닐하우스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으로는 산행 후 달려 가 오후에 서울 발 버스를 타야 하는 남지읍이 가깝게 보인다.

그 뒤 저 멀리로는 나즈막한 화왕지맥 산줄기 지나 좌측 저 멀리 비슬산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중간에 화왕산 산군들이 그리고 우측 아래로는 비슬지맥의 영취산과 종남산 방향으로 흐르는 큰 산군 3개가 눈길을 잡는다.

 

한동안 더 그곳 154.1봉 8각정에서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물 한모금 더 마신 후 배낭 둘러메고 출발하는 시간은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멋진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열리고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둔덕봉 넘어 무명묘지 몇기가 보이는 곳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정확한 등로 없이 선답자들도 각자의 취사선택에 따라 묘지 좌우측으로 각각 진행한 듯 여러 방향으로 띠지들이 걸려있다.

고민하다 묘지 우측으로 보이는 선답자의 띠지를 타고 내려가니 역시나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서 봤던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등로도 없이 지독한 잡목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어 참으로 힘들게 진행을 한다.

 

지독한 잡목들을 헤치며 잠시 내려가니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해 자세히 살펴보니 등로는 우측으로 트래버스 하듯 사면 등로로 이어지고 힘들게 우측 사면 등로로 걸어가니 드디어 다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나타나고 희미한 내리막 등로가 보인다.

조심하며 지독한 잡목지대를 뚫고 조금 더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는 우측으로 뚜렷한 등로가 보이고 그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비닐 움막과 그 위로 바위절벽 한가운데에 작은 예수상이 보이는데 누군가 이곳에 거쳐를 하면서 기도를 하는 곳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그 움막을 지나 이제 좌측 아래로 이어지는 돌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드디어 발 아래 천변도로와 낙동강이 빤히 내려다 보이고 낙동강 건너로는 화왕지맥 상 도초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한동안 그 돌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드디어 우측으로 합강정 가는 계단과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아래 갈림삼거리 옆으로 합강정 가는 방향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가 서 있다.

합강정(合江亭)은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로서 조선 후기 문관이며 학자인 간송(澗松) 조임도(趙任道, 1585~1664)가 수학하던 정자이다.

조임도는 인조 때 공릉참봉(恭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고 1647년 대군사부(大君師傅)에 임명되어 창녕까지 가다 역시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그 뒤 공조 좌랑으로 일하다가 노환으로 사직한 후 사헌부 지평에 증직되고 함안에 있는 송정 서원(松汀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관규 쇄록(管窺瑣錄), 추모록(追慕錄), 취정록(就正錄), 금라전신록(金羅傳信錄), 간송 문집(澗松文集) 등이 있고 1979년 12월 29일 간송 문집 책판 및 금라전신록 책판이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180호로 지정되었으며 금라전신록은 함안의 역사와 고려 말 이방실 장군 등 함안 출신들의 업적을 기록한 책이다.

합강정의 위치는 대산면 사무소를 지나 함암군 대산면 장암리 입사 마을 안쪽 임도를 따라 3㎞ 정도 올라 반구정을 지나 조금 가면 용화산 기슭 낙동강 변에 위치한다.

합강정은 1633년(인조 11) 건립하여 처음에는 여러 이름으로 부르다가 남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곳이라 하여 합강정이라는 편액을 걸었다고 전하고 건립 후 수차례 중수하였으며 1980년 전면적인 보수를 하였다.

이제 합강정은 지맥 완주 후 여행으로 다녀가기로 하고 낙동강 천변 도로를 따라 남강과 만나는 합수점 방향으로 걸어간다.

 

천변도로를 타고 우측에 낙동강을 두고 걸어가니 장포배수문 지나 드디어 커다란 낙동강이란 표지판이 서 있어 사진에 담다 보니 표지판 뒤로 낙동강과 낙동강 뒤 저 멀리 남지읍이 빤히 보인다.

낙동강은 유로연장 521.5 Km로 압록강 다음가는 한국 제2의 강이고 강원 태백 함백산(1,573m)에서 발원하여 상류부에서는 안동을 중심으로 반변천을 비롯한 여러 지류를 합치면서 서쪽으로 곡류하다가 함창 부근에서 다시 내성천과 영강 등 여러 지류를 구심상으로 받아들이고 유로를 남쪽으로 돌려 상주 남쪽에서 위천을 선산 부근에서 감천을 대구 부근에서 금호강을 남지 부근에서 남강을 합친 뒤 동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삼랑진 부근에서 밀양강을 합치고 나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남해로 들어간다. 

낙동강은 가락국(또는 가야)의 동쪽을 흐르는 강을 의미하고 옛날 가야의 터전이었던 경북의 고령과 상주, 선산, 경남의 합천, 의령, 함안, 고성 지방은 모두 낙동강의 서쪽 지역에 자리를 잡았으며 이들 지역에서 보면 낙동강은 동쪽 편에 위치한다. 

고려 시대 때 편찬된 삼국유사에는 낙동강을 황산진 또는 가야진으로 표기했으나 조선 초기의 역사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에는 낙동강을 낙수(洛水) 혹은 낙동강이라고 썼으며 이 책에는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 36리에 있다 라는 기록이 있다. 

18세기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에도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을 말함이다 라고 적고 있고 이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낙동강이란 이름이 표시되고 있어 오늘날과 같은 낙동강의 이름은 조선 초기부터 사용됐다고 볼 수 있다.

 

낙동강 표지판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낙동강 천변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는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장포마을의 거대한 비닐하우스 단지가 펼쳐져 있고 남강을 사이에 두고 함안군과 의령군 방향의 봉우리들이 펼쳐진 모습도 보인다.

장포마을의 거대한 비닐하우스를 살펴보고 남동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방금 전 어렵게 잡목들을 헤치며 내려 온 마지막 등로가 보이고 합강정으로 가는 길목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천변 시멘트 포장도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는 모습도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렇게 도로 우측으로는 낙동강을 두고 좌측으로는 장암리 장포마을의 드넓은 비닐하우스 단지를 살펴보며 걸어가니 드디어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에 도착을 해 도로 옆에 설치된 두개의 벤취쉼터에 배낭을 내려 놓고 휴식을 취하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좌측의 남강이 우측의 낙동강과 만나는 합수점을 배경으로 추억 한장 남기다 보니 남강 건너 우봉지맥 마지막 지점이 보이고 머리 뒤 저 멀리 화왕지맥 마루금이 몇 년 전 홀로 걸으며 남겼던 고운 추억을 들춰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남강은 경상남도 남부를 흐르는 낙동강의 지류로서 원류는 함양군 서상면 남덕유산(1,503m)에서 발원하는 남계천으로 대체로 남남동의 유로를 따라서 소백산지 동사면에서 진양호로 흘러든다. 

진양호에서 남강댐을 거친 뒤부터 남강으로 불리면서 동북동으로 유로를 바꿔 곡류하여 하류부에서 함안군·의령군 군계를 이루다가 창녕군 남지읍 대안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상류부의 남계천은 지우천(智雨川), 위천(渭川), 단계천(丹溪川) 등 지류를 합치면서 안의(安義), 함양, 산청(山淸) 등 분지를 형성하여 그곳에 지방중심지를 발달시키고 진양호에서 덕천강(德川江)을 합친 뒤 하류부의 남강은 진주시를 관류하고 나서 유천강(類川江), 향양천(向陽川), 검암천(儉岩川) 등 지류를 남북으로 받아 들이면서 유역에 진주분지를 비롯한 유역평지를 띠모양으로 전개시킨다. 

남강 유역평지는 수해상습지였으나 남강댐이 구축된 뒤 수해를 면하게 되었다.

 

드디어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공식적인 화개지맥이란 이름으로 이틀간 걸었던 산행을 마무리하고 이제부터는 버스를 타기 위해 장암리 장포마을 회관까지 천천히 걸어가며 주위 풍경들을 살펴 보기로 한다.

시간을 보니 이제 오후 1시 35분을 지나고 있어 버스편이 금방 있으면 오후 2시 50분에 남지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서울 남부터미널 행 버스를 탑승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남지 택시를 불러 남지로 나가야 할 것 같다.

배낭 정리하고 스틱을 접은 후 천천히 그 비닐하우스 단지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장암리 장포마을까지 걸어 보기로 한다.

 

한동안 걸어가며 비닐하우스에서 어떤 작물들을 재배하는지 궁금해 살펴보니 다양한 식물들이 재배되는데 특히 수박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한동안 그렇게 비닐하우스 단지를 따라 걸어 가니 드디어 장암리 장포마을 회관에 도착을 하는데 회관 옆에는 시골마을에 걸맞지 않은 멋진 건물을 신축중인데 걸려있는 플랭카드를 보니 장암권 창조적마을 만들기사업이란 글귀가 눈길을 잡는다.

마을회관 앞 도로 옆에서 마지막 배낭을 정리하고 방풍의를 꺼내 입은 후 주위를 둘러보니 각 민가의 벽마다 수박과 관련된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 왜 비닐하우스에서 수박을 주로 재배하는지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장암리는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있는 리로서 대사천이 흐르는 평지에 자리한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한바구, 장고산, 석동마을 등이 있는데 한바구마을은 크다라는 의미의 한자가 붙은 것으로 큰 바위가 있었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지명이고 장고산마을은 장구산 밑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지명이며 석동마을의 지명은 돌이 많은 지역이라 하여 유래된 것이다.

 

배낭을 정리하고 버스 시간표를 봐도 이해가 되지 않고 시간은 자꾸만 흘러 오후 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더 이상 버스를 기다리지 못하고 남지 택시를 부르니 10여분만에 도착을 하고 그 택시를 타고 남지 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오후 2시 30여분을 지나고 있다.

부산에서 서울 남부터미널로 운행하는 버스표를 구매한 후 화장실로 가 환복하고 세수한 후 나오니 오후 2시 45분을 지나고 음료수 한병 사서 마시고 3시가 다 되어 도착한 우등버스로 생각보다 쉽게 서울로 복귀할 수 있었다.

남지읍은 경상남도 창녕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읍으로 계성천과 고곡천이 낙동강에 유입하면서 충적평야가 발달하여 있으며 남쪽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 북쪽으로 유어면, 동쪽은 도천면과 접한다. 1914년 창녕군 남곡면에 영산군 도사면을 통합하였는데 1936년 남지면이라 개칭하였다가 1963년 남지읍으로 승격하였으며 해동지도에 두 지명 모두 수록하고 있다. 

지도에서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사면만 기록하고 있는데 남곡면은 창녕계라고 기재하고 있는 곳이며 도사면에는 기강진과 우질포진의 2개의 나루가 있는데 교통의 중심부로 사통팔달의 여건을 갖추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걱정과 고민속에 시작한 화개지맥도 예상보다 너무 쉽고 편안하게 마무리하고 오래 전 추억들을 회상하며 새로운 도시에서 좋은 인연을 만든 후 귀가하는 시간은 늘 느끼는 것처럼 꿈결 같은 시간이었다.

대중교통 시간도 알맞았고 마산에서의 아침식사와 대중교통 그리고 새로운 도시인 칠원읍에서의 새로운 인연을 만든 후 남지읍에서 서울로 복귀하는 대중교통까지 그 어떤 지맥 산행보다 좋은 기억으로 남겨지는 시간이었다.

이제 오늘 그 날머리를 함께 봤던 우봉지맥을 생각해 보지만 길게 이어지는 몇개의 지맥들이 목의 가시처럼 남아 있어 마음이 변하면 긴 지맥 산행에 올인하며 먼저 마무리를 하고 짧은 지맥 산행들은 이틀 간 내려가 완주하는 기쁨을 맛보며 진행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30여분 연착하여 서울 남부터미널에 도착을 해 지하철을 이용해 무탈하게 귀가하니 가족들이 기다려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옆지기가 준비한 아귀찜으로 소맥 몇잔으로 화개지맥 완주를 자축하며 길었던 이틀간의 시간을 마무리 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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