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전라남도 함평군의 철성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0년 2월 9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 종일 맑고 화창했으며 약간은 더위를 느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1도에서 영상 8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내동치(경주이씨세장산)-경주이공묘지-132.7 묵은 무명묘지봉-130.4봉 이정판-편백나무 군락지-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임도-철망지대-137봉
이정판-132.8 무명봉-128.8봉-서당치-125.6 무명웅덩이봉-길주의지점(좌측)-함평노공묘지(우측 잡목)-비포장임도-길주의지점(좌측)-콘크리트
수로-콘크리트 옹벽-영산로 1번 4차선 포장도로-호암2교 육교(호남선 철도)-능선진입-82.8 무명봉-134.4 띠지 무명봉-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
143.1봉 이정판-138.6 동백나무무명봉-151.8 삼각점봉(나주25 삼각점)-113.9봉-무명안부-민가와 개사육장-밭경작지(마늘 밭)-시멘트 포장도로-
축사-중천포로 시멘트 포장도로-솔마재(중천포로 2차선 포장도로)-시멘트 포장도로-밭 경작지-능선진입-하동정공 묘지-무명묘지들-63.8 억새
무명봉-엄나무 조림지 비포장임도-함평천합수점 분기점-능선진입-107.4 무명봉-로프 등로-135.9봉 이정판과 벤취쉼터 이정표(속금산 0.4 Km,
곡창임도 3.5 Km, 금송리 0.4 Km)-통나무계단-벤취쉼터1 안부-안전목책과 로프-조망처-안전목책과 로프-속금산(173.1봉, 삼각점, 벤취쉼터들,
운동기구)-안전목책과 로프-사각정자-벤취쉼터2-향동 갈림삼거리 이정표(월호리 1.1 Km, 속금산 0.2 Km, 향동 0.4 Km)-안전목책과 로프-무명
안부-85.6 고사목무명봉-시누대 등로-대나무 밭-묵은 밭 경작지-가시잡목지대-조망봉 갈림삼거리-83.7 조망봉-조망봉 갈림삼거리 복귀-80.5봉-
나주김씨세장산-시누대터널-중천포로 2차선 포장도로(망월동 정류장)-시누대 구간-110.2 페인트무명봉-109.6 바위무명봉-이별바위산(107.1봉)-
95.3 전망바위봉-전망바위 갈림삼거리 복귀-대나무 군락지-남원양공 묘지-비포장임도-중천포교차로(2차선 포장도로)-영산강 강변문학길-영산강
중천포나루-산행종료
산행거리 : 11.72 Km (내동치에서 영산강 중천포나루까지)
산행트랙 :
산행시간 : 04시간 50분 (07시 03분부터 11시 55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4시 30분 함평 호텔팰리스에서 기상
05시 30분 문을 연 식당이 없어 가까운 편의점에서 햇반과 컵라면 및 김치로 아침 해결
06시 15분 철성지맥 날머리인 월호리 영산강 중천포나루까지 애마로 이동
06시 30분 엄다택시(061-322-7575) 호출하여 내동치로 이동 (카카오택시는 너무 일러 받지 않고 엄다택시는 이곳 학교면 지리를
잘 몰라 애를 먹었는데 마침 엄다택시를 운영하면서 학교에서 살고 있는 기사님 만나 편안하게 이동)
07시 03분 내동치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하여 산행 준비 후 곧바로 산행 시작
올때 - 11시 55분 월호리 영산강 변 중천포나루에서 철성지맥 산행 종료 후 배낭 정리하여 곧바로 애마로 태청지맥 유천고개로 이동
철성지맥이란 ???
철성지맥은 영산기맥 불갑산(518봉) 서쪽 용천사 뒷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서쪽은 함평천을 동쪽은 고막원천을 영산강에 보내며 함평군 학교면 월호리 중천포에서 영산강에 빠지는 도상거리 31.2 Km되는 산줄기다.
함평군에서 시작해 함평군에서 끝이나며 산이름을 가진산은 철성산(265.5봉), 속금산(173.1봉), 이별바우산(107.1봉)이 전부이고 최고봉이 341.5 미터정도로 동네뒷산이나 가시밭길로 길이 험하기로는 그 어느 지맥에 빠지지 않는데 마지막 끝부분인 속금산과 이별바우산에 가서 태청지맥 끝자락과 영산강, 옥룡지맥을 둘러보는 조망으로 모든 것을 잊고 온다.
잘린 소나무 가지로 인해 이마에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그래도 많은 선답자들이 다녀가 무난했던 마루금을 따라 무탈하게 철성지맥 산행을 마무리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철성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전라남도 함평군과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및 네이버의 지식백과와 다음의 백과사전 그리고 산림청과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산행을 준비하면서 호남지역에서도 가시잡목으로 가장 악명이 높아 많은 걱정과 고민으로 내려왔던 철성지맥 제1구간을 어제 계확했던 내동치까지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함평으로 들어가니 마음이 놓이면서 오늘은 철성지맥 제2구간을 일찍 마무리하고 올라가는 길에 태청지맥의 태청산과 분기점을 다녀오기로 계획을 세우니 새벽 산행 시간이 바쁘기만 하다.
버스를 이용해 내동마을로 들어가려던 계획을 수정해 아침식사 후 일찍 영산강 중천포나루로 애마를 몰고 가 주차 후 지역 택시를 이용해 산행 들머리인 내동치로 이동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중천포나루에서 이른 시간에 택시를 부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일단 중천포로 들어가 택시를 불러 보기로 하고 아침 6시 20여분에 중천포 새로 건설된 도로가에 애마를 잘 주차시킨 후 지역 택시를 확인하니 엄다면 택시가 대부분이고 학교면 택시는 한 곳이 보여 전화를 하니 다른 번호로 연결돼 포기하고 엄다면 택시 두군데에 전화를 하니 이곳 중천포나루를 잘 모르고 있다.
고민하다 마지막으로 한곳만 더 연결하고 연결이 불가능하면 애마를 몰아 내동치로 이동해 산행 후 택시를 이용해 내동치로 가 애마를 회수하여 유천고개로 이동하기로 하고 카카오택시를 콜하니 역시 받는 택시가 없어 불가능하고 세번째 엄다택시에 전화를 하니 중년의 아저씨가 반갑게 인사하며 10여분 이내도 도착 가능하다는 소식이 들려 마음 편히 애마에서 조금 더 쉬면서 산행 준비를 하니 아침 6시 40여분 쯤 도착한 택시를 타고 내동치로 이동하게 되었다.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완주 후 태청지맥 분기점을 살펴 본 후 귀가할 수 있기를 빌며 새로운 하루를 반갑게 열어 본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드디어 철성지맥 마지막 봉우리인 이별바위산 지난 전망바위에 도착을 해 북동쪽으로 펼쳐진 환상의 풍경과 조망을 감사하는 시간은 그저 꿈속에서 유영하듯 그런 시간으로 남겨진다.
좌측으로 드넓은 진례들 벌판이 펼쳐지고 영산강을 따라 새롭게 조성되는 도로와 자전거 도로도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그 우측으로 도도히 흐르는 영산강이 한폭의 그림을 그리며 이 산객의 가슴속으로 파고들고 사진 한가운데에 조만간 걸어 만나야 할 태청지맥의 마지막 지점인 석관정이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처럼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그 뒤 저 멀리 태청지맥의 실질적인 마지막 봉우리인 청림산 줄기가 어서오라 손짓하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이 산객의 가슴을 들뜨게 만든다.
이제 산행을 마무리하고 저 산줄기가 시작되는 분기점과 태청산으로 달려가 손이라도 잡아주고 귀가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희망가를 불렀던 시간이다.
산행 날머리인 월호리 영산강 중천포나루 앞 신설된 도로 옆에 애마를 잘 주차시키고 어렵게 엄다택시를 불러 어제 오후에 산행을 마무리한 내동치고개까지 올라가니 아침 7시를 막 넘어가는 시간인데 산속이라 그런지 아직도 사방엔 어둠이 내려 앉아 있다.
택시기사님의 걱정과 응원을 뒤로하고 잠시 산행 준비 후 고갯마루 뒤쪽의 경주이씨 세장산과 사당을 살펴보고 어제 내려왔던 곳 반대편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철성지맥 마지막 제2구간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7시 3분을 넘어가고 있다.
내동치는 전라남도 함평군 학교면 복천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인 내동마을을 말하는데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무안박씨가 복암산 줄기를 따라 지형을 살펴보다가 그곳이 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남향이므로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다고 판단하여 살기 시작한 후 무안박씨촌이 되어 있다.
내동(內洞)이란 지명은 글자 그대로 안쪽에 깊숙이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내동이라고 하였다 한다.
오늘은 이곳 철성지맥 마지막 구간을 조금 일찍 마무리하고 귀가하는 길에 태청지맥의 유천고개에서 태청지맥 분기점과 태청산을 올랐다 내려 와 귀가하기로 하였기에 거리는 짧지만 마음은 급하게 진행되는 하루가 될 듯 싶다.
능선으로 오르니 시멘트 포장도로였던 내동치보다 더 짙은 어둠이 남아 있어 손전등을 켜고 축축히 젖어 있는 활엽수 낙엽을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잠시 후 편백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군락지를 지나니 등로가 희미하게 사라져 등로 찾기에 어려움을 느낀다.
어렵게 등로를 찾아 방향을 보고 진행하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잘 관리되고 있는 경주이씨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 뒤로 돌아 능선으로 오르니 묵은 묘지 2기 위에는 오랫동안 방치되었는지 활엽수 관목들이 손목만큼 굵어진 상태로 자라고 있어 장례문화도 바뀌어야 함을 알려 주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큰 고도차이 없는 참나무 등로가 펼쳐지고 잠시 후 커다란 참나무 가지에 준희 선생님이 130.4봉이라는 이정판을 걸어 놓은 봉우리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130.4봉을 지나 잠시 평이하게 진행하니 등로는 우측으로 휘어져 이어지고 잡목들이 우거진 등로를 비집고 통과하니 등로에 널부러져 있는 고사목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관목의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다시 편백나무 군락지가 펼쳐지고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또 다시 어둠이 짙어지며 아직도 아침이 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듯 보이는데 실상은 벌써 아침 일출이 시작되어야 할 시간이지만 산속이다 보니 또 다른 세상이 보이는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편백나무 군락지를 지나 무명묘지 2기가 있는 곳을 통과하니 솔갈비가 깔려있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고 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진행하니 또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난다.
그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억새풀이 우거진 능선 방향의 비포장임도를 타고 오르니 빛바랜 억새들이 세월의 무게감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또 다른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좌측에 억새밭을 두고 천천히 걸어 오르니 등로는 다시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그 능선으로 접어들기 직전 좌측인 동쪽을 살펴보니 조만간 걸어야 할 태청지맥의 백룡산과 그 주변 산줄기들이 구름속을 빠져 나오려는 아침 햇살의 용트림으로 붉게 변한 하늘 아래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생각지도 못한 태청지맥 상 백룡산 줄기를 확인하고 넓은 비포장임도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좌측으로 올라가는 뚜렷한 비포장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키작은 동백나무들이 보이는 묵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잠시 후 등로는 또 다시 우측으로 올라가는 비포장임도를 버리고 좌측 직진 방향의 우거진 잡목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를 살펴보며 감사한 인사를 드리고 잡목을 뚫고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높은 철망이 나타나고 그 철망을 따라 좌측으로 걸어 오르니 잠시 후 철망은 다시 우측으로 사라지고 지독한 가시잡목 등로가 열리면서 곧이어 137봉에 도착을 하여 살펴보니 맨발님의 이정판이 걸려 있다.
봉우리를 지나 여전히 이어지는 가시잡목들을 헤치고 등로 위에 쓰러져 널부러져 있는 고사목들까지 피하며 힘들게 진행하니 등로 좌측인 동쪽에서 두꺼운 구름을 뚫고 일출이 시작되는데 나뭇가지에 막혀 선명한 일출은 만날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약간은 지루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조금 빠르게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약간의 공간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아침 햇살을 살펴보니 벌써 지평선 위로 한참 떠 오른 아침 햇살이 반갑게 웃고 있어 사진에 담고 다시 출발한다.
일출을 만나고도 한동안 커다란 소나무와 그 아래 펼쳐진 잡목들 그리고 등로에 널부러진 약간의 고사목들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진행하니 활엽수 낙엽이 쌓여 있는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완만하게 올라 하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소나무가 보이는 132.8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동쪽 하늘에서 방금 떠 오른 햇님은 다시 두꺼운 구름속으로 모습을 감추며 주위 하늘만 붉게 물들이며 불꽃 쇼를 보는 듯 황홀함을 안겨 준다.
잠시 후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128.8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은 다른 봉우리와 달리 지도 상 명확히 나와있는 봉우리이지만 이정판이 없어 선답자의 띠지를 넣어 사진 한장 남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봉우리를 지나 여전히 남아 있는 약간의 잡목들과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밋밋한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전진하니 금새 안부같지 않은 지점에 서당치에 도착을 하는데 치는 고개로서 좌우측을 살펴봐도 전혀 고개같지 않은 그런 지점이지만 지도에는 정확한 명칭까지 나와있고 준희 선생님도 이곳을 서당치라는 이정판을 걸어 놨기에 잠시 자료를 찾아보니 서당치 자체에 대한 자료는 찾을 수 없고 다만 이 서당치가 속해있는 죽정리만 찾을 수 있어 정리한다.
서당치가 있는 죽정리는 전라남도 함평군 학교면에 있는 리로서 행정구역 폐합 당시 통폐합된 여러 지역 중 죽림과 정자의 지명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죽정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정자동, 덕산, 선암, 둔기, 후동, 호암 마을이 있는데 정자동은 마을 입구에 정자나무가 많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망우정이란 정자가 건립되면서 마을 이름을 정자동(亭子洞)이라고 하였고 덕산(德山)마을은 마을 뒷산이 덕 있게 생겼다 하여 덕산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고 나주김씨 김박환이라는 사람이 마을 뒤에 큰 산이 없으므로 멀리 있는 산의 덕을 보아야 하며 또 모든 마을 주민이 덕을 베풀며 살라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덕산이라고 하였다 하는 설도 있으며 선암(仙岩)마을은 뒷산에 신선바위라는 바위가 있다 하여 마을 이름을 선암이라고 하였다.
둔기(屯基)마을은 임진왜란 때 군인들이 군막을 치고 있었던 곳이어서 마을 이름을 둔기라고 하였고 후동(後洞)마을은 죽정리에서 가장 나중에 생긴 마을이라고 하여 이름도 후동이라고 하였으며 호암(虎岩)마을은 뒷산에 범 형상을 하고 있는 범바위가 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호암이라고 하였다.
서당치를 지나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약간의 잡목들과 관목의 참나무로 이어지던 등로는 이제부터 반듯하게 자라고 있는 리끼다 소나무 등로로 바뀌고 그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등로가 아름다운 시간이다.
가끔 나타나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을 확인하며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웅덩이처럼 생긴 125.6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에 담고 푹신한 솔갈비를 밟으며 전행을 이어가니 길주의 지점인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도 역시 누군지 모를 붉은 노끈 띠지가 걸려있고 자세히 확인하니 뚜렷한 우측의 직진 등로를 버리고 잡목들이 우거져 있는 좌측으로 돌아가는 등로를 찾아 진행해야 하는 길주의 지점이다.
정상적인 마루금을 찾아 잡목들을 헤치고 진행하니 다시 곧게 뻗어 있는 리끼다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그 소나무 사이에는 키 작은 푸른 잎을 자랑이라도 하듯 펼쳐 보이는 동백나무들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높게 자랐다 마르면서 빛이 바래있는 억새풀을 바라보며 잠시 가을정취에 잠겨보며 걸어가니 무명묘자 2기가 나타나는데 한기는 이장을 하였는지 봉분이 거의 사라져 있다.
그 묘지 2기를 지나니 또 다시 솔갈비를 덮고 있는 무명묘지 한기가 나타나고 여전히 아름답게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잡목들이 우거져 있는 한쪽으로 잡풀들이 우거져 있는 함평노공 묘지가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우측 잡목사이로 나 있는 정상 등로를 어렵게 찾아 산행을 이어간다.
그 함평노공 묘지를 지나니 등로는 다시 넓은 비포장임도로 이어지고 등로 주변으로는 키 작은 푸른 잎을 가지고 있는 동백나무들이 자주 눈에 들어 온다.
잠시 후 우측으로 갈리는 갈림삼거리를 지나 계속 직진으로 걸어가니 잘려진 소나무가 있는 지점에서 직진의 넓은 비포장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90도 꺽어 진행을 해야 하는 길주의 지점이 다시 나타나고 조심스럽게 좌측으로 꺽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갑자기 관목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힘든 등로가 나타나며 바로 앞으로는 콘크리트 수로가 지난다.
그 수로를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바로 눈 앞에 1번 영산로 4차선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이는데 그 도로로 내려가는 등로가 사라져 한동안 하산 등로를 찾아 헤매는 시간도 가져 본다.
한동안 1번 영산로 포장도로 절개지 위에서 내려갈 등로를 찾지 못해 서성이다 결국 그 절개지에 설치되어 있는 그물망을 잡목 유격 훈련하듯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드디어 1번 영산로 4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해 옷가지에 달라 붙어 있는 나뭇가지들을 제거하고 차량 통행이 없는 틈을 이용해 높게 설치된 중앙분리대를 넘어 조심스럽게 그 도로를 건너니 곧바로 작은 다리가 나타나고 그 다리를 건너는데 마침 다리 아래 호남선 철로를 달리는 SR 기차가 빠르게 달리고 있어 어렵게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다리를 통해 호남선 철로를 통과한 후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무단 횡단한 1번 영산로 4차선 포장도로 건너 제법 위험해 보이는 절개지가 보이고 그 절개지 위로는 관목의 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라며 산객들을 힘들게 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렇게 지나 온 등로를 확인하고 비포장임도를 따라 전진하니 임도 좌측으로 쓰레기 불법 투기 및 소각 금지 경고판이 서 있는 곳 좌측 잡목 능선으로 등로가 이어지고 있어 잠시 걸어 들어 온 비포장임도는 직진의 우측으로 보내고 잡목 능선으로 오른다.
잡목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는 다시 주능선이 있는 좌측으로 철로와 평행하게 잡목들을 헤치며 어렵게 오르게 되는데 그렇게 잡목들과 씨름을 하다 보니 드디어 절개지 위 주 능선에 도착을 한다.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휘어져 남쪽 방향으로 진행되고 잡목과 청다래 가시나무들을 헤치며 어렵게 산행을 이어가니 잘린 소나무 밑둥이 썩어가는 82.8무명봉에 도착을 해 한숨을 내쉬며 다시 산행 복장을 점검한다.
다시 이어지는 잡목속으로 나 있는 좁은 등로를 타고 어렵게 오르니 다시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무명묘지 한기도 통과한다.
묘지를 지나 다시 나타나는 지독한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전진하니 그나마 희미한 등로를 만들어 준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134.4 무명봉에 도착을 해 존경의 인사를 드리고 잠시 심호흡 한번 해 본다.
약간의 잡목들이 있지만 그동안 알고 있던 철성지맥의 기시잡목 등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진행에 큰 어려움은 없어 그동안 이곳을 다녀 간 선답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걸어보는 시간이다.
청다래 가시나무가 우거진 무명봉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갑자기 눈 앞에 넓은 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임도로 내려가 몇장의 사진을 담은 후 임도 따라 좌측으며 조금 진행하니 죽정리와 고막리 임도 설명판과 한자로 수풀림자를 쓴 임자사랑해라는 함평군의 안내판이 서 있는 곳 좌측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능선으로 오르니 역시나 가시잡목들과 쓰러진 고사목들이 진행을 방해하고 등로 우측 바로 옆으로는 방금 전 헤어졌던 넓은 비포장 임도가 따라오고 있어 잠시 후 장상 등로를 버리고 우측 비포장임도로 내려 가 그 임도를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한동안 비포장임도를 따라 빠르게 진행하다 우측 143.1봉이 올려다 보이는 곳에서 좌측으로 흐르는 비포장임도를 보내고 우측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올라 잡목을 헤치며 오르니 맨발님이 걸어 놓은 143.1봉 이정판이 보여 추억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잠시 후 잘려진 소나무 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는 등로를 찾아 우측으로 약간 휘어져 진행하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소나ㅜ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후 사라졌던 붉은색 노끈이 길라잡이 노릇을 하고 있어 편안하게 걸어본다.
하지만 등로는 금새 다시 지독한 잡목들과 가시나무들이 혼재되어 있어 어렵게 진행되고 그렇게 걷다보니 등로 좌측 저 멀리 태청지맥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고 전진하니 금새 151.8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삼각점을 살펴보니 나주25란 삼각점으로 해발고도와 관계없이 2등 삼각점임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산행 포인트이다.
나주25이라는 삼각점이 박혀 있는 151.8봉에서 잠시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학교면과 엄다면으로 이어지는 비산비야의 풍경들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는데 바로 앞 나뭇가지들로 인해 선명하지 못하다.
학교면은 전라남도 함평군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면으로 대부분의 지역이 100m 이하의 낮고 평탄한 산지를 이루며 옥마산(123m), 속금산(173m) 등이 솟아 있고 영산강이 남쪽 경계를 곡류하며 고막원천이 동쪽 면계를 함평천이 동서쪽 면계를 흘러 영산강에 유입한다.
함평천 연안과 고막원천 연안의 복천리와 금송리 일대에는 비교적 넓은 경지가 분포하고 광주와 목포간 중간지점에 위치한 평야지대로 호남선 철도와 1번 및 23번 국도가 동서남북으로 교차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영산강을 사이에 두고 나주와 경계를 이루고 있고 면 소재지인 학교리를 비롯해 고막과 석정 및 금송 등 11개의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여지도(무안)와 지승에 현재 학교면 위치로 무안현 소속의 좌랑촌면과 금동면이 묘사되어 있고 금동면에 고막원이 나타나며 조선지형도에는 학교면으로 표기되어 있다.
1914년에 지금의 무안군에 속해 있던 금동과 진례 및 좌촌면을 통합하여 학교면을 신설하고 함평군으로 편입시켰다.
한편 학교리는 학다리로 마을의 형국이 학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전하고 옛날에 마을 앞까지 호수처럼 물이 찼을 때 학이 많이 날아와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호구총수에는 호양촌(湖陽村)으로 되어 있고 학교리 이암(耳岩)은 마을 뒤 산등에 귀모양의 바위가 있으며 또 마을 모퉁이에 귀걸이를 방불케 하는 돌이 점점이 놓여 있어 옛날 함평에서 나주 동강을 가던 길 손들이 귀바위 모퉁이를 돌아 얼마 안가면 망월동 나루가 나온다 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암이 되었다고 한다.
제한된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고 151.8 삼각점봉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여전히 잡목과 잡풀들이 뒤섞여 있는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무 명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금송리의 방수저수지와 민가들 그리고 그 뒤 저 멀리 동림저수지로 이어지는 마을 좌측 뒤로 올망졸망하게 이어지는 톱날 등로를 따라 태청지맥의 마지막 산봉우리인 청림산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영산강을 두고 오늘 걸어야 할 철성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속금산과 이별바위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동안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으며 조금은 가파르게 걸어 오르니 잡목들이 우거진 속에 소나무 나뭇가지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ㄹ려 있어 확인해 보니 그 띠지에는 매직 펜으로 이곳이 113.9봉임을 알리는 해발고도 표시들이 보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지만 정상판은 보이지 않고 그렇게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만 사진에 담은 후 잡목를 헤치며 통과하니 또 다른 조망과 풍경들이 펼쳐져 잠시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살펴 본다.
남동쪽으로 금송리 들판이 내려다 보이고 푸릇푸릇한 논 경작지 사이로 거대한 비닐하우스들도 보이는데 그 뒤로 봉긋 솟아 있는 속금산이 인상적이고 그 좌측으로도 이 철성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이별바위산이 속금산 못지 않은 뾰족하게 솟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 온다.
그 이별바위산 좌측 뒤로는 나주시의 올망졸망한 산군들이 제법 옹골진 모습으로 펼쳐져 있는데 정확한 산 이름들은 구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측의 철성지맥 마루금 상 속금산과 이별바위산을 살펴보고 그 좌측인 동쪽을 보니 방금 전 113.9봉을 오르며 계속 살펴봤던 석정리와 금송리쪽 들판과 100미터급 높이의 톱날 등로 사이로 태청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청림산도 보이는데 저 봉우리는 또 언제쯤 올라 이곳 오늘 걸었던 철성지맥 산줄기를 바라보며 오늘을 추억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너무나 아름다운 조망들과 풍경들이기에 조금 더 그곳 113.9봉 지난 조망처에서 머물렀다 많은 사진을 남기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잡목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무명안부를 통과한다.
무명안부를 지나 진행하니 등로가 사라지고 잠시 후 만나는 묘지 부근에서 사라진 등로를 찾아 이리저리 시간을 까먹은 후 어렵게 방향을 잡고 잡목 등로를 내려가니 많은 개들이 울부짖기 시작하고 그 시끄러운 개 소리를 들으며 진행하니 등로 우측에 수많은 개들이 강제 사육당하는 개 사육장이 보인다.
수많은 개들이 좁은 철창에 갇혀 이방인의 출현에 미친듯이 날뛰는데 아무리 식용이라 해도 이렇게 키워야 하는지 아쉬움도 남는 시간이다.
개 사육장과 민가를 우측에 두고 좌측 개울를 타고 내려가니 드넓은 밭 경작지가 펼쳐지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앞 거대한 축사 지나 우측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 아래 이름모를 건물들이 보이는데 아마도 그 건물들 주변으로 설치된 철망으로 인해 정상적인 마루금으로 가지 못하고 그 우측 아래 개설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는 듯 보인다.
그렇게 진행 방향을 살펴보고 밭 경작지 우측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가니 제법 푸릇한 마늘이 크게 자라고 있고 사진에 담으며 조심스럽게 걸어가니 개 사육장으로 통하는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중천포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 도로를 따라 진행하니 도로 우측으로 거대한 축사가 자리하고 있고 좌측 위로는 낡은 건물들을 둘러 친 철망이 높게 설치되어 있는데 무슨 건물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서쪽 방향으로 걸어가니 역시 중천포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데 등로는 그 포장도로를 건너 눈 앞에 보이는 비닐하우스 방향으로 이어지는 신설된 시멘트 도로를 타고 오르며 진행이 된다.
중천포로 2차선 포장도로 좌측으로는 솔마재라는 버스정류장이 보여 찾아 보지만 역시나 솔마재에 관한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이곳은 함평군 학교면 죽정리와 금송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지역으로 두 지역의 자연마을에 관한 자료를 모두 찾아 보지만 역시 솔마재는 찾을 수 없다.
중천포로 2차선 포장도로에 있는 솔마재란 버스정류장을 지나 나타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비닐하우스가 보이는 곳으로 오르니 견공 세마리가 지키고 있는데 방금 전 개 사육장에서 만났던 개들에 비해 순둥이들이다.
그 비닐하우스 위에 있는 창고형 천막건물 우측 뒤로 돌아 오르니 우측 능선으로도 비포장임도 같은 뚜렷한 등로가 보이지만 그곳을 버리고 좌측 밭 가장자리로 오르니 밭 뒤편으로 묘지가 보이고 그 묘지쪽으로 오르며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금송리 우측으로 이제부터 올라야 할 속금산이 보이고 중앙 저 멀리 영산강 주변 나주시의 나즈막한 산군들이 보인다.
조망을 즐기고 밭 경작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하동정공 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 뒤로 나 있는 등로를 따르니 약간의 잡목지대를 지나 많은 무명묘지들이 널려있는 지역도 통과한다.
그 묘지지대를 지나 약간의 잡목들과 관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지난 여름 태풍에 뿌리가 뽑힌 거대한 나무가 쓰러진 곳을 지나 억새가 우거져 있는 묵은 헬기장 같은 63.8 공터봉도 통과한다.
폐 헬기장 같은 억새가 무성한 공터봉을 지나 활엽수 낙엽이 깔려 있는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눈 앞에 넓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 좌측으로는 가시가 인상적인 엄나무 밭이 길고 드넓게 펼쳐지고 있다.
그 비포장임도를 따라 좌측의 엄나무 밭을 구경하며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니 엄나무 밭 뒤 저 멀리 우측에 철성지맥 마루금을 두고 좌측의 죽정리 마을과 그 뒤로 솟아 있는 나즈막한 무명봉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잠시 더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진행하니 둔덕으로 올라 진행 방향으로 135.9봉 넘어 속금산이 빤히 보이는 곳 우측으로 나즈막한 봉우리 하나가 올려다 보이는 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약간 휘어져 이어지고 있는데 이곳이 바로 신산경표의 저자이신 박성태님이 처음 철성지맥을 지정할 때 이곳에서 우측 무명봉으로 이어가 함평천이 영산강과 만나는 합수점에서 끝나는 산줄기로 하였다가 중간에 거대한 함평엘리체 골프장으로 가로 막혀 진행이 어렵고 또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방향의 속금산과 이별바위산이 산줄기로서 더 뚜렷하고 확실한 산들이 있어 차후 변경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지점이다.
오늘은 그냥 지나가지만 162지맥을 무결점으로 완주한 이후에는 한번쯤 원래 생각했던 마루금을 따라 실질적으로 함평천이 영산강과 만나는 합수점으로 걸으며 오늘 걷게 될 산줄기와의 차이점을 확인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계속 이어지는 엄나무 밭 사이로 나 있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한동안 걸어 진행하니 눈 앞으로는 계속해서 135.9봉과 그 우측 뒤로 속금산이 뾰족한 송곳처럼 솟아 있고 등로 우측으로는 월호제와 115봉 산줄기 지나 영산강 넘어에 있는 언젠가는 걸어야 할 옥룡지맥의 망해산과 고문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진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가니 드디어 엄나무 밭이 끝이나고 등로는 우측 잡목 능선으로 이어져 능선으로 들며 사진 한장 남기다 보니 이곳에도 역시 오늘 제대로 길라잡이를 해 주고 있는 붉은 노끈이 눈에 들어 온다.
능선으로 올라 진행하기 직전 잠시 엄나무 밭 뒤로 살펴보니 지나온 철성지맥 마루금을 좌측에 두고 넓은 석성리와 금송리 들판과 비닐하우스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좌측으로 지나 온 151.8 삼각점봉과 143.1봉 그리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이름없는 무명의 산줄기가 눈길을 잡으며 출발하는 마음을 안타깝게 만든다.
능선으로 오르니 드디어 등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원 철성지맥 산줄기와 방향까지 바꿔 버린 함평 엘리체 골프장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가 열리면서 이제는 고인이 되신 광주의 산꾼이셨던 백계남님의 산행 띠지가 보이는데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휘어지며 진행이 된다.
활엽수의 관목들과 잎이 푸르른 동백나무들이 등로 양쪽을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사이로 나 있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나즈막한 무명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오르니 활엽수 등로는 소나무 등로로 변하면서 솔갈비가 푹신하게 깔려 있는 명품 등로로 바뀌어 있다.
잠시 더 힐링하듯 그 명품 소나무 등로를 타고 무심으로 걷다 보니 등로는 다시 거칠게 오르막 등로로 변하면서 굵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그 로프를 따라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오르니 드디어 정상판과 벤취쉼터 그리고 좌측으로 금송리 하산 이정표가 서 있는 135.9봉 정상에 도착을 해 잠시 숨을 몰아 쉬며 주위를 둘러 본다.
이제 이곳 135.9봉부터 철성지맥 산행이 끝날때까지는 등로 조우측과 앞뒤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조망과 풍경들로 인해 다른 생각을 할 시간조차 없을 지경이다.
제일 먼저 등로 우측으로는 함평엘리체 골프장이 빤히 보이기 시작하고 그 골프장 좌측으로는 함평천이 영산강과 만나는 합수점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가 이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그곳을 걸어 보지 못함이 끝내 아쉬운 시간이다.
진행 방향으로는 속금산이 날카로운 송곳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고 좌측 앞으로는 철성지맥 마지막 봉우리인 이별바위산과 금송리 들판 그리고 영산강과 태청지맥의 마지막 석관정과 청림산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그곳 135.9봉 정상 앞 바위에서 조망을 즐기며 많은 사진으로 남긴 후 다시 출발하니 통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편안하게 걸어 내려가고 안부로 내려가니 벤취쉼터 하나가 보인다.
안부를 지나 속금산으로 오르며 급경사 오르막 등로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들려 멋진 조망을 즐겼던 135.9봉이 바로 앞으로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철성지맥 마루금이 길게 펼쳐져 있는 모습도 아스라히 보이기 시작한다.
지나 온 마루금 저 멀리 태청지맥과 영산기맥들도 살펴보고 안전목책과 로프를 따라 급하게 오르니 다시 진행해야 할 속금산 방향을 제외한 사방팔방이 시원하게 조망되기 시작하여 그곳에서 잠시 발걸음 멈춰 대자연과 눈맞춤도 해 보는 시간이다.
북쪽으로 방근 전 지나온 철성지맥 마루금 우측으로 금송리와 석정리쪽 넓은 들판과 마을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에는 조만간 걸어야 할 태청지맥 마루금이 존제감을 확실하게 전해 준다.
그 뒤 저 멀리 희미하게 영산기맥 마루금에서 분기하는 태청지맥과 철성지맥 줄기도 살짝 보일 듯 말 듯 다가와 있어 다시 많은 사진으로 남겨 본다.
이제 눈을 돌려 북서쪽을 살펴보니 신산경표의 저자이신 박성태 선생님이 처음 이 철성지맥을 분류하면서 만들었던 산줄기의 분기점이 바로 앞 암봉 우측의 엄나무 밭에서 암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이어지는 함평엘리체 골프장과 그 골프장을 건설하면서 봉우리를 깍아 낸 모습도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우측 분기점 뒤 저 멀리에는 어젯밤 하루 묵었던 함평읍이 보이고 그 좌측 아래로 학교와 엄다면의 들녘 넘어 영산기맥 산줄기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풍경들도 눈에 들어 온다.
이제 그 함평엘리체 골프장 좌측을 살펴보니 바로 발 아래 월호제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함평엘리체 골프장 좌측으로 함평천과 영산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그 좌측 끝자락 영산강 위에 건설된 동강교 그리고 그 동강교 지나자마자 보이는 합수점이 인상적으로 다가 온다.
평생 저 산줄기를 타고 한번쯤 걸어 볼 기회나 있을련지 궁금하기도 하고 꼭 한번쯤 걸어 보고 싶다는 다짐도 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그 전망바위 또는 조망처에서 한동안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다시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또 다시 안전목책과 로프 구간이 나타나는데 그곳에서도 방금 전 전망대에서 봤던 풍경보다 조금 더 깨끗한 조망이 가능하다.
잠시 후 관목의 작은 나뭇가지에 속금산 173.1봉이라는 준희 선생님이 걸어 놓은 정상판과 삼각점을 사진에 담고 배낭 내려 남아 있는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 후 스마트 폰의 커메라만 들고 조망 좋은 곳을 찾아 다니며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추억을 만들었다.
속금산(173.1m, 산불초소와 영암408 삼각점)은 전라남도 함평군의 학교면 금송리 서편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173미터이고 함평군의 최남단에 자리잡고 있으며 영산강 본류를 굽어보고 있다.
형상이 장군으로 전해 오고 있는데 주위에 옥마봉(말), 투구봉, 칼재 등으로 불리는 산을 거느리고 있고 산 남쪽에 위치한 월호리 망월동 구릉에서 옹관묘군이 발견된 바 있으며 금이 많이 나오는 산이라 하여 속금산 또는 용금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실제로 금을 많이 채광하였다고 한다.
동역도(전라도)에 속금산(束金山)이 고막원과 함께 영산강 본류 주변에 표기되어 있고 광여도(무안)에 진례면 서쪽 영산강 본류변 가까이 속금산이 보이며 군세일반(함평)의 지도에 속금산(束琴山)으로 함평군지에는 속금산(束錦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속금산 정상에서 잠시 배낭 벗어 놓고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 후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북서쪽으로 가 보니 전망바위가 정상 아래 보이고 그곳으로 조심해 내려가 살펴보니 방금 전 걸어 넘어 온 135.9봉 좌측으로 함평천 분기점과 엄나무 밭이 보이고 그 우측 뒤 저 멀리 구비쳐 흐르며 이어지는 철성지맥 마루금이 길게 펼쳐져 있다.
바로 앞 135.9봉 우측 뒤로는 반곡저수지가 보이고 엄나무 밭 뒤 저 멀리에는 함평읍의 회색빛 건물들이 희미하며 그 함평읍 우측으로 솟아 있는 철성지맥의 주산인 철성산은 이제 희미한 실루엣처럼 보이면서 우측 뒤 끝자락으로 이어지는 모악산과 불갑산이 길고도 멀었던 산줄기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준다.
철성지맥 마루금 우측으로는 반곡저수지를 좌측 끝자락에 두고 금송리와 석정리쪽 드넓은 들판과 마을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에는 태청지맥 산줄기가 또 다른 세상으로 이 산객을 유혹하고 있다.
우측으로는 광주의 무등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들이 펼쳐져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 보는 무등산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고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북쪽 방향을 집중적을 살펴본 후 이제 눈을 다시 서쪽 방향으로 돌리니 바로 아래 월호제가 나뭇가지 사이로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곳 넘어 함평 엘리체 골프장 동쪽으로 이어진 무명 산줄기가 우뚝하다.
그 무명 산줄기 지나 저 멀리 원 철성지맥으로 지정되었다가 변경된 산줄기가 함평엘리체 골프장 좌측으로 솟아 있고 그 좌측으로는 영산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그 영산강 위에 설치된 동강교를 지나자마자 함평천과 영산강이 만나는 합수점이 빤히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 합수점 지나 저 멀리에는 오래 전 즐겁게 걸었던 영산기맥 산줄기가 옛 추억을 들려주며 다시 한번 더 조우 할 수 있기를 희망도 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속금산 정상에서 자리 펴고 간식으로 허기도 달래고 물 한모금 마시며 목마름도 해결한 후 다시 배낭 정리해 속금산을 출발하며 정상부를 사진에 담아 본다.
다만 제대로 된 정상석 하나 없이 떠나는 마음이 편치 않지만 생각해 보면 어제와 오늘 이틀간 철성지맥을 걸으며 정상석 하나 만나지 못했으니 이것도 지맥 산행을 하면서 처음 경험을 해 보는 산행이 되었다.
속금산 정상을 사진에 담고 남쪽 방향으로 출발하려는데 등로 좌측으로 이제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철성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이별바위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오고 그 끝자락에 영산강이 흐르고 그 영산강을 넘으면 조만간 다시 내려 가 걸어야 할 옥룡지맥 마루금이 이어진 모습도 보인다.
그 영산강 좌측으로는 작은 섬처럼 보이는 태청지맥의 마지막 지점인 석관정이 보이고 그 석관장 바로 앞으로는 고막원천이 영산강과 만나 합수점을 이루고 있는 풍경도 한눈에 들어 온다.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이제 아쉬움을 남기고 그 속금산 정상부를 지나 남쪽 이별바위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내려가니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왕사들이 깔려있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조심하며 내려가니 다시 방금 전 내려다 봤던 풍경과 유사한 풍경이 조금 더 선명하게 내려다 보인다.
이병바위산으로 이어지는 철성지맥의 마지막 산줄기가 아름답고 영산강과 고막원천 그리고 태청지맥의 마지막 지점과 옥룡지맥까지 살펴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본다.
그렇게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천천히 걸어 내려가며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다 보니 등로 우측으로는 또 다른 철성지맥의 산줄기인 함평천과 만나는 곳에서 끝이나는 산줄기가 빤히 보이기도 하다.
철성지맥 산줄기 우측으로는 영산강 지나 옥룡지맥 산줄기도 보이고 그 좌측 철성지맥 사이로는 월호리와 중포리로 이어지는 드넓은 들판이 인상적으로 다가 온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 앞으로 사각정자가 보이고 그곳으로 내려가 좌측을 보니 금송리 들판 넘어 태청지맥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금송리와 석정리 들판 넘어 태청지맥과 저 멀리 영산기맥은 상상으로만 살펴보고 내려가다 보니 발 아래 펼쳐진 마을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전라남도 함평군 학교리 금송리 금산마을로서 마을 앞에 고인돌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마을의 정착년대가 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나 옛날에는 이씨가 살았다는 말만 전할 뿐이다.
확실한 것은 500여 년 전에 전주최씨가 정착하였으며 이어 광산김씨 자분의 손자인 혼(1470~1534)이 1500년대에 학교면 월산리에서 이주 정착하였고 150여 년 전에 나주김씨가 130년 전에 무안박씨 그리고 80여 년 전에는 김해김씨가 정착하여 여러 성씨가 촌락을 형성하고 있다.
속금산이라는 마을 뒷산의 명칭을 따서 마을 이름을 금산(錦山)이라고 하였다고 하며(1789년 호구총수 지명 束錦山) 속금산의 우뚝 솟은 봉우리를 멀리서 보면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듯하다.
속금산은 원래 용금산이라 했는데 그 이름처럼 금광이 많이 있다.
사각정자에서 다시 잠시 더 머물며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출발하니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가 펼쳐져 있고 그 임도를 따르니 임도 좌우측으로 벤취쉼터 두개가 설치되어 있는 무명안부도 통과한다.
그곳을 지나니 우측으로 월호리 그리고 직진 방향으로는 향동으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등로는 향동으로 가는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90도 꺽어 내려가야 하는 월호리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 길주의 지점이다.
전라남도 함평군 학교면 금송리 향동마을은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순흥안씨가 입향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1호도 없으며 그 후 제주양씨가 입향하여 현재는 여러 성씨가 모여 살고 있다.
구전에 의하면 마을 주변에 화심이란 명당혈이 있었는데 좌청룡은 당상골이라 하고 우백호는 동백골이라 하여 동백꽃과 무성한 당산가지를 연관시킨데서 화지(花枝)라는 촌명이 유래되었다고 하며 1914년 이전에는 목포부 진례면에 속했었다.
우측 월호리 방향으로 90도 꺽어 내려가니 입구에는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고 잠시 안전목책과 로프를 타고 전진하니 무명안부를 만난다.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를 지나니 소나무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85.6미터의 무명소나무봉에 도착을 한다.
그 소나무 무명봉 좌측 아래에는 방금 전 이정표에서 봤던 향동마을이 있어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 내려다 보이기도 하다.
무명고사목봉을 지나 전진하니 약간의 잡목구간을 지나 소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진다.
한동안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전진하니 키 큰 시누대 구간이 나타나고 그 시누대 구간을 타고 걸어가니 시누대 구간이 끝나기 직전 좌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된다.
잠시 시누대 구간을 지나 내려가니 다시 대나무 구간으로 바뀌고 그 대나무 구간을 지나니 묵은 밭 경작지가 나타난다.
그 묵은 밭 경작지를 지나니 지독한 잡목구간이 나타나고 어렵게 그 잡목구간을 지나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조망봉으로 향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그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외면하고 좌측의 조망봉으로 향하며 천천히 걸어가며 등로 좌측을 보니 금송리 금송과 향동마을이 보이고 그 뒤로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속금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는 모습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그 우측 저 멀리로는 오늘 걸어 온 철성지맥 마루금이 보이고 그 뒤 끝자락에는 영상기맥 마루금이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 우측 남동쪽으로는 잠시 후 올라야 할 철성지맥 마지막 봉우리인 이별바위산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그 우측 뒤로는 나주의 옥룡지맥 상 산줄기들이 보이는 듯 하다.
그 사이로 도도하게 흐르는 영산강도 보이는데 저 이별바위산에 올라 바라보는 영산강은 또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벌써 궁금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좌우측으로 그림처럼 펼쳐진 풍경과 조망을 살펴보며 잡목들을 피해 천천히 걸어 오르니 드디어 잡목들과 작은 바위들이 보이는 83.6미터의 조망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잠시 더 머물며 환상의 그림들을 그려본다.
조망봉 정상에서 동쪽을 보니 우측 끝자락으로 영산강이 보이고 그 영산강 바로 좌측으로 작은 섬처럼 생긴 석관정이 보이는데 저 석관정은 고막원천과 영산강이 만나는 합수점 앞으로 태청지맥의 마지막 지점이기도 하다.
그 좌측으로는 금송리 들판이 펼쳐지고 그 들판 뒤로는 태청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청림산 줄기가 봄으로도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태청지맥을 살펴보고 그 우측을 살펴보니 바로 앞에 철성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이별바위산이 지척으로 다가와 있고 그 좌측으로는 영산강 넘어 나주시의 나즈막한 이름없는 산줄기들도 보인다.
같은 모습과 풍경이지만 보는 각도와 장소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면서도 지루할 수 없는 환상의 풍경에 그저 웃음꽃이 만발하는 시간이다.
한동안 그 조망봉에서 즐기고 많은 추억과 사진을 담은 후 내려오기 직전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잠시 후 올라야 할 80.5봉과 그 좌측으로 중천포로 2차선 포장도로 지나 이별바위산이 올려다 보이고 그 사이 저 멀리 중천포나루로 가는 마지막 애마가 주차되어 있는 곳 넘어 영산강이 빤히 내려다 보인다.
그 뒤 저 멀리에는 나주시의 나즈막한 산줄기들도 보이는데 옥룡지맥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한동안 머물다 그 83.6 무명조망봉을 출발해 올랐던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고 잠시 후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와 붉은 노끈이 달려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좌측 잡목들이 우거진 곳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를 타고 들어가니 금곡님 띠지도 보인다.
잠시 후 대나무 숲을 지나 준희 선생님이 정상판을 걸어 놓은 80.5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좌측으로 급격하게 휘어지며 떨어지는 등로를 찾아 조심스럽게 내려가 본다.
내려가니 나주기씨세장산이 서 있고 다시 미로 같은 시누대 터널을 따라 내려가니 시누대 터널 한가운데에 무명묘지 한기가 솔갈비로 이불을 덮듯 누워있다.
묘지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시누대 터널을 지나니 또 다시 묵은 묘지 위에 잡풀들이 무성한 묘지 하나를 넘어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 한기를 더 넘으니 조금 더 길게 이어지는 시누대 터널이 나타난다.
그 시누대 터널을 빠져 나가니 밭 경작지로 이어지고 곧이어 중천포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도로 위에 도착을 한다.
도로 우측으로는 새벽에 애마를 주차시킨 중처포나루가 있고 신설된 자전거 도로를 따라 영산강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곳에서 도로를 건너 비닐하우스 좌측 열을 통해 능선으로 오르니 잡풀이 우거진 묘지들을 지나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는 능선으로 등로가 이어진다.
조심하며 힘들게 걸어 오르니 묵은 밭 경작지가 나타나고 잠시 편안하게 그 임도를 따르니 다시 능선으로 오르는데 등로에는 지독하게 빼곡히 자라고 있는 시누대 군락지가 나타나 그 시누대 좌측 사면 등로를 타고 어렵게 산행을 이어간다.
하지만 시누대 터널이 끝나니 다시 지독한 잡목지대가 펼쳐지고 어렵게 걸어 오르니 소나무에 하얀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110.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안도의 한숨을 깊이 내쉬어 본다.
그 무명봉을 지나니 109.6 무명바위봉이 나타나는데 그 바위 위에는 지독한 덩굴식물들이 완전히 뒤덮어 바위인지도 잘 모르고 진행 할 정도이다.
그 무명바위를 지나니 등로 우측으로 환상의 조망처가 나타나고 잠시 가까운 이별바위산으로 가기 전 그곳에서 황홀한 시간을 가져 본다.
남서쪽으로 영산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그 좌측인 남쪽으로는 나주시의 평평한 들판이 끝없이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월호리 들판이 눈길을 잡는다.
그 영산강이 우측으로 휘돌아 흐르는 뒷쪽으로는 나주시의 망해산과 고문산으로 이어지는 옥룡지맥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쪽으로는 월호리의 들판과 비닐하우스 그리고 영산강이 보이고 영산강을 따라가면 철성지맥의 또 다른 산줄기가 흐르는 함평천과 영산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달려가는 마루금이 환상을 노래한다.
그 뒤 저 멀리에는 영산기맥이 흐르고 있는 풍경도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그 전망바위 조망처에서 시간을 보내며 즐긴 후 잠시 더 걸어가니 드디어 어제부터 이틀 간 걸었던 철성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이별바위산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는데 이마에는 꺽인 나뭇가지에 찔려 영광의 상처가 남아 있어 흉터나 남지 않을까 걱정도 되는 시간이다.
함평군 학교면 금송리와 월호리의 경계에 솟아 있는 이별바위산 역시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이렇게 사진 한장 남기는 것으로 대신해 본다.
철성지맥 마지막 봉인 이별바위산을 지나면서는 지금까지 만났던 멋진 풍경들과 조망들의 집대성이기에 그저 즐기며 만나 보기로 한다.
남서쪽으로 나주의 드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고 영산강이 도도히 흐르며 그 우측 위로는 새벽에 주차시킨 애마가 아직 공식적으로 개통하지 못한 신설 강변도로에 보이고 그 우측 위로 월호리의 드넓은 평원 위에 많은 비닐하우스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눈을 북서로 돌리니 월호리의 들판과 마을 뒤로 영산강이 흐르고 또 다른 줄기인 철성지맥의 합수점이 보일듯 말듯 다가와 있다.
그 뒤 저 멀리에는 오래 전 홀로 걸었던 영산기맥이 추억을 소환하고 그 기억을 더듬으며 미소 짓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내려가야 할 지점에서 직진의 좌측으로 바위 전망대가 보여 잠시 올라 가 보니 북동에서 남쪽으로 펼쳐진 환상의 풍경과 조망들이 이틀 간 고생하며 이곳까지 걸어 온 이유와 왜 그 고생을 하면서도 또 그 산상에 오르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북서쪽으로 금송리의 너른 들판이 가슴을 펴게 만들고 그 뒤 저 멀리 태청지맥의 산줄기가 그리움을 더하며 우측으로는 조만간 개통할 영산강변 도로가 이용자들을 기다리며 새롭게 단장하고 있는 모습도 새롭게 내려다 보인다.
동쪽으로는 신설된 도로 저 멀리 고막원천 위로 다리가 지나고 그 우측으로는 작은 섬같은 태청지맥의 마지막 지점인 석관정이 부르고 있다.
고막원천은 장성군의 삼서면 태청산(593m) 남쪽 산록 일원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영산강으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지방 하천과 국가 하천으로 구분되어 있다.
상류의 학성리 일대에 유정저수지가 있고 대곡리 일대에서 유평천을, 우치리에서 대도천을 계림리에서 삼서천을 합류한다.
함평군으로 유입하면서 월야면 정산리 일대에서 용암천이 합류하고 용월리 일대에서 넓은 평야를 이룬 후 나산면으로 유입하면서 국가 하천이 되고 계속 남쪽으로 흐르다가 나주시 다시면 동당리 일대의 석관정 나루터에서 영산강과 합류한다.
하류의 좌안 유역에 학교면 고막리가 있는데 고막이란 지명은 고막대사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하고 과거에는 부분칭으로 사호(沙湖), 곡강(曲江), 왕릉천(王陵川)이라고도 불렀으며 하류지역은 고막천이라고도 하였다. 대동여지도에는 이 하천의 유로에 저천(猪川) 지명이 기재되어 있고 여지고(함평)에 저천(猪川)은 동쪽 30리에 있다 라는 관련 기사가 있어 또 다른 명칭으로 사용되었음을 보여 준다.
한편 학교면 고막리에 석교가 있는데 1273년(고려 원종 14) 도승 고막대사가 도술을 부려 놓은 다리라는 전설이 있으며 예전에는 마을에서 떡을 만들어 다리 건너 나주시 영산포 등에 가서 팔았다 하여 떡다리라는 별명이 있다고 전한다.
보고 또 봐도 그 자리에 머물러 영원히 지우기 싫은 황홀한 풍경으로 가슴속 깊이 쌓이는 시간이기에 뒤돌아 나가지 못하고 잠시 더 머물러 보는 순간이다.
남쪽으로는 햇살에 반짝이며 도도하게 흐르는 영산강 넘어 너른 나주시의 들판이 환상이고 그 뒤 저 멀리 나주영상테마파크 뒤로 어우러진 풍광이 발걸음을 붙잡고 조금 더 놀자가자 이야기 한다.
어제 날씨와는 달리 화창한 날씨마저 오늘 철성지맥 산행의 마무리를 축하하듯 반겨 주기에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남서쪽으로는 이제 내려가 만나야 할 중천포나루와 주차된 애마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펼쳐진 영산강과 나주시 들판 그리고 희미하게 보이는 영산기맥이 이 산객의 마음을 빼앗아 흔들고 있다.
이제 아쉬움을 남기고 내려가야 할 시간이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며 그저 자연속에 몸과 마음을 던져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그 바위 전망대에서 아쉬운 마음을 내려 놓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마지막 하산길로 뒤돌아 나가기 위해 내려간다.
평생 다시 한번 더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없기에 더욱 그리움과 아쉬움이 크게 다가오는 시간일지도 모를 일이다.
내려가기 전 너무나 아름다워 다시 한번 더 내려가야 할 철성지맥의 마지막 하산길과 영산강이 흐르는 중천포나루를 확인하는 시간은 꿈만 같다.
다음달이면 공식적으로 개통된다는 저 영산강변 도로가 열리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보이겠지만 지금은 가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전부이다.
전망대에서 뒤돌아 나와 갈림삼거리에서 좌측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 마지막 하산 등로를 타고 희미한 마루금을 찾아 내려가니 대나무 숲과 최근에 조성된 듯한 묘역을 지나 신설된 도로 위 능선에 도착을 해 마지막 종착지를 살펴본다.
드디어 신설된 마지막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 도로를 건너 영산강변에 있는 중천포나루로 내려가니 강변 옆에 영산강 강변문학길이란 안내판이 서 있는데 중천포나루에 관한 설명이 붙어 있다.
이곳에서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바로 앞 나무 데크를 타고 마지막 영산강변으로 걸어 가 본다.
실질적인 철성지맥 산줄기가 마무리되는 지점인 영산강 중천포나루에서 사진 한장 남기는 것으로 이틀 동안 걸었던 철성지맥 산행을 마무리하는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중천포나루는 전라남도 나주시의 광산면 신곡리 덕음 마을과 함평군 학교면 월호리 기동(중촌) 마을 사이 나루였고 옛 무안군 진례면 지역으로 진례진(進禮津)이라고도 불렀다.
함평쪽 마산(일명 이별바우산, 104m) 남쪽 벼랑인 옛 임강촌(臨江村)나루터에는 양수장과 함께 지금도 일본식 집이 남아있다.
처음 이 철성지맥 산행을 준비할 때만 해도 가시잡목들로 인해 성한 몸으로 이틀 동안 완주나 가능할지 많은 걱정과 고민을 가지고 내려왔지만 실제 걸어 보니 그 동안 많은 선답자들이 다녀가며 그런대로 등로가 열려있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잘 마무리가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다.
이제 오후에 들릴 태청지맥과 그 아래 장암지맥들도 차례로 올라야 하는데 이곳 철성지맥 산행이 마무리되느 남아 있는 그 산줄기들이 다시 걱정거리가 되어 버렸지만 실제 몸으로 체험하지 못하면 모두 허상이기에 다시 그곳으로 가 몸을 맡겨 볼 예정이다.
영산강에서 마지막 의식도 치르고 추억도 남기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특히나 영산강은 몇번 만난적은 있지만 이렇게 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그 강변에 서서 추억 한장 남길 기회가 없어 아쉬웠는데 철성지맥 마루금 상 마지막 중천포나루에서 이렇게 그 마지막 의식을 치르고 나니 이제서야 제대로 된 지맥 산행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영산강은 전라남도의 담양군 용면 용추봉(584m)에서 발원하여 광주광역시와 나주시를 거쳐 영산강 하굿둑에 이르는 하천으로 발원지부터 담양읍에 있는 용천과의 합류지점까지는 지방 하천이며 이후의 유로는 국가 하천이다.
강의 우안으로 황룡강, 고막원천, 함평천이 좌안으로는 지석천, 삼포천, 영암천 등이 합류하면서 전라남도 서부 지역의 중심 하천을 이룬다.
유역권은 광주광역시를 중심으로 볼 때 동으로는 담양군과 화순군을 경계로 섬진강 수계의 곡성군, 순천시, 보성군과 구분되는 한편 화순군의 경우 동복면은 보성강 수계이다.
서로는 함평군과 무안군이 영산강 수계에 속하고 남으로는 영암군을 경계로 탐진강 수계의 강진군과 장흥군과 구분되며 북으로는 장성군을 경계로 노령산맥의 말단부를 분수계로 하여 전라북도와 나뉜다.
하류 일대는 과거부터 간척지 조성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하구에는 하굿둑이 축조되어 있고 남도 문화를 꽃피게 한 물길로 유역에는 이와 관련된 역사와 문화 유적지와 함께 많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영산이란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나주의 영산강변 영산창(榮山倉)에서 유래되었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영산 지명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나주)에 영산창(榮山倉)은 금강진 언덕에 있으니 곧 영산현이고 나주 및 순천 (중략) 해남 등지의 전세를 여기에 거두어들였다가 배로 서울에 운반하며 금상(今上) 7년(중종 7, 1512)에 이 창고에 거두어들이던 것을 영광의 법성창으로 옮겼으므로 폐지되었다 라는 기록이 있고 동일 문헌에 영산폐현(榮山廢縣)은 주의 남쪽 10리에 있고 본래 흑산도 사람들이 육지로 나와 남포에 우거하였으므로 영산현이라 했으며 고려 공민왕 12년에 군으로 승격했다가 후에 주에 예속되었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볼 때 영산 지명은 흑산도에 있던 지명이 옮겨져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군현의 읍치나 진 등의 이동으로 지명이 함께 바뀌는 것은 조선 시대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한편 영산강 지명 유래에 대하여 영산포 영산동에 효부였던 영산 신씨를 기리는 영산사가 세워지면서 금강이 지명으로 바뀌었다는 설과 정씨 성을 가진 마음씨 좋은 노인의 며느리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영산서원과 관련하여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당시 영산강 지명이 발원지로부터 하구까지를 일컫는 전칭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여지고에서 사호강(沙湖江)에 근원이 담양의 용천산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원율천이 되고 (중략) 왼쪽으로 덕진포를 지나 엄산을 경유하여 목포가 되어 서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라는 기록으로 보아 지금의 영산강의 유로를 설명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당시 영산강의 전칭으로 사호강 지명이 사용되었음을 보여 준다.
대동여지도에서 상류에서부터 수록된 지명을 보면 담양의 북천(北川), 죽록천(竹綠川), 광주의 칠천(漆川), 나주의 금강(錦江), 사호강(沙湖江), 곡강(曲江) 등이 기재되어 있다.
앞으로 호남지방의 지맥 산행을 이어가다 보면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영산강이기에 오늘은 이것으로 그동안의 아쉬움을 달래 본다.
공식적인 철성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마지막 지점인 중천포나루에서 다시 신설된 2차선 포장도로로 올라 와 애마 옆에서 배낭 정리하며 드디어 철성지맥 산행을 완전히 마무리 한다.
시간을 보니 이제 이제 정오도 되지 않은 시간이라 여유를 부릴 시간도 없이 배낭을 정리해 애마에 태우고 곧바로 태청지맥 분기점을 왕복할 수 있는 신기리 유천마을이 있는 유천고개로 달려가는데 네비게이션 상 거리는 약 50 여 Km에 시간은 45분여 겅ㄹ린다는 정보가 뜬다.
출발에 앞서 마지막으로 방금 전 내려 온 마지막 능선 날머리를 사진에 담고 아쉬움을 남긴 채 중천포나루를 출발하는 마음이 아쉬우면서도 개운하다.
중천포나루를 빠져 나와 중천포로 2차선 포장도로를 달리다 보니 도로 좌측 앞으로 속금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고 그 아래 조용하게 자리잡고 있는 월호리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다시 애마를 세우고 사진 한장 더 남겨본다.
월호리는 전라남도 함평군 학교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 앞에 영산강이 흐르고 있으며 행정구역 폐합 당시 통폐합된 여러 지역 중 망월과 용호의 지명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월호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망월동, 배야, 기동, 용호 마을이 있는데 망월동(望月洞)은 흉년과 가뭄으로 비 오기만 기다리던 마을 사람들이 마을 옆에 있는 월출봉에 올라가 옛 이야기를 나누며 하늘을 쳐다보고 천문을 연구하며 천기를 점치기도 하고 장마와 가뭄을 이야기하면서 달뜨는 시간을 기다렸다 하여 망월동이라고 이름 붙였고 배야(背野)는 금송평야에 등져 있는 평야라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배야라고 했다는 설도 있고 영산강 중류의 고려 때 이름이 곡강인데 이 곡강의 배류지가 바로 마을 앞이며 배류지를 끼고 있는 평야라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배야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기동(基洞)은 사방이 조그만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으로 강이 흐르고 있어 마을 터로서는 아주 좋은 터라고 하였다 하여 마을명을 기동이라고 하였다 하고 용호(龍湖)마을의 지명은 앞산(고문산) 및 영산강 줄기인 호수에서 용이 살았다 하여 용호라고 불렀다고 한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다중이 이용하는 찜질방 대신 여관방에서 마음 편히 쉬면서 잘 들릴 기회가 없었던 함평에서 즐거웠던 시간들을 보내고 어려웠지만 깔끔하게 마무리한 철성지맥 산행을 뒤로 하고 떠나는 마음이 아쉬움이 남아 있지만 시원한 마음으로 출발하는 시간이다.
산행이 아니라면 들릴 기회조차 없었을 함평이기에 오래 전 영산기맥 산행을 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내려 와 고운 추억을 남겼던 시간과 비록 홀로 내려 와 보낸 이번 이틀 간의 시간이었지만 마음속에는 살기 좋고 인심 좋으며 먹거리 풍부한 시골 함평으로 기억되게 되었다.
앞으로도 함평이나 근처의 도시들을 더 자주 내려 와야 할 이유들이 생겼지만 내려올 때마더 새롭고 의미있는 많은 추억들을 남길 수 있기를 바라며 철성지맥 산행의 대단원을 갈무리 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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