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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각호지맥(대간·완)

각호지맥 제3구간 가리재에서 초강천 합수점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9.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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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북도 영동군의 각호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9년 08월 24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 종일 흐리고 무더웠으며 날파리들의 습격으로 최악의 산행을 이어갔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상 20도에서 영상 32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묵은점 버스정류장(영동황간로 2차선 포장도로)-가리재(삽재, 명륜동 마을자랑비, 명륜동길 1차선 포장도로)-시멘트 포장도로-묵은밭 경작지-능선진입-지독한 잡목지대-묵은 비포장임도(잡목지대)-409 무명봉-460 무명봉-537.7 삼각점봉-466 무명봉-469 무명봉-461 무명봉-466 무명봉-534.4 돌담봉-백마산(535.7봉)-잡풀 헬기장-처마바위-480 묘지봉-바위와 돌탑지대-342 무명봉-길주의 지점-성황당고개 안부-305 무명봉-자갈등로-무량산(425.9봉, 정상석, 영동303 삼각점)-로프 하산등로-393 바위암봉 조망-바위암릉 우회-절터.샘 이정표-415.3 돌탑봉(414 이정판)-무명안부(무량산 산행로 이정판)-이정표(절터.샘 0.1 Km)-392 무명묘지봉-절터.샘 갈림 이정표와 벤취쉼터2-이정표(영동대학교, 절터.샘)-이정표(봉현리 3.5 Km, 무량산정상 2.1 Km, 영동대학교 0.5 Km)-351 무명바위봉-372 돌탑봉-322 무명봉-314 무명봉-291.9봉(295 이정판)-268 무명바위봉-묵은 비포장임도(잡목)-256 무명봉-바위암릉 조망처-280 공터봉 조망-솔치재(19번 대학로 2차선 포장도로)-249 무명봉-무명안부(멧돼지 목욕흔적)-묘지와 멧돼지 목욕탕-비탄고개(산이비탄로 2차선 포장도로)-시멘트 포장도로-묵은 비포장임도-묘지들과 노란물통-212 무명봉-216 무명봉-묵은 시멘트 포장도로-245 무명봉-331.3봉(331 이정판)-320 무명봉-276 무명봉-무명안부-285 무명봉-초강천 조망-무명안부(원형철통)-바위암릉-322.3봉(321 이정판)-304 무명봉-254 무명봉-분통골 고개(시궁길 1차선 포장도로)-227 소나무 무명봉-258 바위무명봉-무명안부(당산나무)-279.7봉(280 이정판)-292 무명봉-217 무명봉-223 무명봉-무명안부-264 묘지봉 조망-벌목지대(조망)-289 무명봉-260.5 삼각점봉(261봉, 이원424 삼각점)-292 무명봉-314.4 묘지 및 잡목봉-돌계단-254 무명봉-전망처-198 묵은 묘지와 비석봉-갈고개(용당로 2차선 포장도로)-복숭아 과수원-암자(시멘트 포장도로)-묘지지대-시멘트 포장도로(초강동1길)-139 삼각점봉(140봉, 이원422 삼각점)-지독한 잡풀지대-시멘트 포장도로-지하통로(경부선 철도 통과)-시멘트 포장도로(비닐하우스 포도농장)-이원심천로(505번 2차선 포장도로)-시멘트 포장도로(복숭아 과수원)-초강로 2차선 포장도로-초강로 시멘트 포장도로-민가1채-초강제방길 1차선 포장도로-초강천과 금강 합수점-각호지맥 산행종료-심천교-용당리 버스정류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4.59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둔전리에서 가리재까지 진행)                           

산행트랙

20190824 가리재-합수점.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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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시간 : 고도가 낮아 바람도 없이 날파리의 습격으로 너무나 힘들게 많은 땀을 흘리며 힘들게 빠르게 행하여 11시간 08분 (06시 17부터 17시 26분까)

교통편 및 숙박 : 갈때 - 02:45 애마로 집에서 영동역으로 출발

                               05:25 영동읍 김밥식당에서 김밥과 라면으로 아침식사

                               05:50 영동역 옆 주차장에 애마를 주차시킨 후 영동역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06:00 군내버스로 묵은점까지 이동

                               06:17 묵은점에서 06시 14분에 하차 후 산행 준비 후 산행 시작

                       올때 - 17:26 초강천이 금강과 합쳐지는 합수점에서 산행 종료

                               17:34 용당리 버스정류장에서 방금 전 17시 30분 발 버스를 놓치고 19:00 발 버스를 기다림

                               17:50 지나가는 봉고차를 히치 하이킹하여 영동읍까지 무탈하게 이동

                               19:00 영동역 옆 주차장까지 도보로 이동 후 애마 회수

                               19:40 영동 숯가마 찜질방으로 이동해 샤워 후 1초 삼겹살과 소맥으로 저녁식사하고 곧바로 숙면  

각호지맥이란 ???

백두대간 삼도봉(1178봉)에서 분기하여 서북진하며 석기봉(1242봉), 민주지산(1242봉) , 각호산(1202봉) , 도마령을 지나 천만산(96봉m) 에 이르러 다시 서쪽으로 칠봉산, 성주산, 월영봉으로 이어지는 큰 산줄기 하나를 떨구고 한줄기는 계속 북진하며 삼봉산(930.4봉), 백마산(534.4봉), 솔치재을 지나 영동군 심천면 용당리에서 금강과 초강을 만나며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7.3Km로 금강 동쪽 즉 초강(길이 66.3 Km) 우측 분수령을 각호지맥이라 한다.

 


낮은 고도의 산줄기를 따라 무더위 및 날파리들과 싸우고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조금은 힘들게 진행했지만 무탈하게 또 하나의 산줄기 잇기 산행을 마무리하며 감사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늘 마지막 구간을 진행하기 위해 들머리에 서면 합수점에서의 느낌은 어떨지 또 그곳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증과 함께 기대를 하게 되는데 오늘은 이곳 마지막 초강천이 금강과 만나는 합수점까지 걸어 진행한 후 내일 다시 제1구간으로 이동해 마지막 산행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그 감흥이 약간은 줄어 든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도 마지막 마무리하는 산행이기에 큰 기대를 가지고 진행을 하다 보니 합수점에 서서 느끼는 감흥은 여전하고 애마를 회수하기 위해 알지도 못하는 분들의 도움으로 조금은 편안하게 이동하다 보니 자신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겠다는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었다.

오늘도 아무 사고없이 무탈하게 완주한 후 편안한 마음으로 내일 첫 구간을 마무리하고 친구들과 천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귀가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가리재에서 산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짙은 안개로 인해 풀섶에 내려 앉은 물방울이 비산하며 등산복을 적시고 지독한 잡목들 때문에 온 몸에 많은 생채기를 만들며 많은 시간을 소비하였기에 오늘 산행에 대해 걱정을 하였지만 그 이후로는 뚜렷한 등로에 잡목으로 힘든 구간도 많지 않아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하게 되었다.

다만 해발고도가 낮아 바람도 불지 않고 습도가 높으며 지독한 날파리들의 습격으로 무척 힘들게 진행하여 무량산을 넘어 우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하니 바위 암릉구간이 나타나고 그 바위암릉 위에서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너무나 멋진 봉우리 하나가 옆으로 붙어 있어 지도를 확인해 보니 방금 전 어렵게 넘어 온 백마산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멋진 조망과 풍경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내며 잠시 쉬어가는 시간은 꿈결같은 추억으로 간직되는 순간이었다.

 

초반부 잠깐 잡목으로 너무나 힘들게 진행한 후 그 이후부터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정상적으로 진행하다 보니 어젯밤 내린 비로 인해 습도가 높고 해발고도가 낮아 바람도 불지 않으면서 날파리들이 극성을 달라 붙어 조금은 난해하게 걸어 많은 식수만 마시고 있다.

그래도 무탈하게 진행하여 비탄고개를 지나 331.3봉을 통과하니 등로는 좌측인 서쪽으로 크게 꺽여 이어지고 등로 우측으로는 초강이 제법 큰 강줄기를 자랑하며 산줄기를 따라 오고 있다.

무명안부를 지나 전진하니 갑자기 바위 암릉들이 나타나고 힘들게 그 바위암릉을 따라 조심하며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초강천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데 그 초강천 좌측 넘어 박달산이 우뚝하고 그 박달산 넘어 저 멀리에는 상주의 백화산 주행봉과 한성봉 줄기가 옛 추억을 소환하며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새벽 3시가 되기 전 이틀간 산행 준비를 하여 집을 출발하니 텅비어 있는 고속도로를 타고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영동읍에 도착을 해 영동역 가기 전 로타리에서 문이 열려있는 김밥집에 들려 김밥 한줄에 라면 한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고 영동역 주차장으로 이동하니 새벽 5시 45분을 넘어가고 있다.

영동역은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의 경부선에 있는 기차역으로 각계역과 황간역 사이에 있으며 1905년 1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역을 1956년 복구하였고 1996년 6월 현 역사를 준공하였다.

새마을호와 무궁화호가 운행되며 여객과 화물 그리고 승차권 발매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애마를 영동역 주차장에 잘 주차시키고 영동역 앞 계산로를 건너 보이는 영동역 버스 정류장에서 새벽 06시 정각에 출발하는 고자행 버스를 기다리니 정각에 버스가 들어 오고 이 산객을 제외한 다른 승객 한명만 탑승하여 생각보다 빨리 달려 그 큰 버스를 택시처럼 타고 이동을 하게 되었다.

 

영동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650번 버스에 탑승하니 14분 후에 지난 주 산행을 마무리한 묵은점 버스정류장에 도착을 해 하차하여 버스가 고자리로 출발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버스정류장에서 배낭을 정리한 후 버스가 진행하는 방향으로 걸어 가리재까지 이동을 한 후 각호지맥 마지막 제3구간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이곳 묵은점은 상가리와 하가리 중간에 위치하여 중가리라고도 하는데 옛날에 사기점이 있었다고 하고 가리재(4번국도경부선 가리터널)는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가리마을에 있는 고개로서 가리는 사방을 산이 둘러싸고 있으며 마을 앞으로 주곡천과 삼봉천이 흐르며 벼 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가이(가리), 강변말관사말목이(마항리), 묵은점(중가리), 사기점상가리하가리(밀근이등이 있는데 강변말은 강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고 말목이는 백마산 줄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묵은점은 상가리와 하가리 중간에 위치하여 중가리라고도 하는데 옛날에 사기점이 있었다고 한다.

상가리는 가이 위쪽에 위치하며 하가리는 가이 아래쪽에 위치한다.

오늘 하루도 아무 사고없이 무탈하게 초강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까지 완주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출발한다.

 

 

묵은점 버스 정류장에서 배낭을 정리한 후 우측에 4번 4차선 포장도로와 좌측으로 경부선 철도를 두고 황간 방향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 위로 이제부터 올라야 할 537.7 삼각점봉이 뾰족하게 올려다 보이는데 생각보다 가파른 등로에 약간은 걱정도 앞서는 시간이다.

잠시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1차선 명륜동길 포장도로가 갈리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좌측으로는 영동 감 체험장 안내판과 명륜동 마을자랑비가 서 있다.

명륜동은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서송원리의 해방 후에 난민 정착 사업으로 이뤄진 마을로서 이 명륜동이 있는 서송원리는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의 서북쪽에 위치한 마을이며 산이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산수가 빼어나고 앞으로는 서송원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서송원명륜동신탄(신의티리), 탄막(서탄막등이 있는데 서송원은 조선시대에 행인의 편의를 도와주던 원집과 서송원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명륜동은 해방 후에 난민 정착 사업으로 이뤄진 마을이다.

 

탄막은 서송원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숯을 많이 구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신탄은 탄막 옆에 새로 생긴 마을로 신의티리라고도 하며 문화유적으로는 안정 박사 삼묘표가 있다.

이곳에서 직진으로 이어지는 2차선 영동황강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나 있는 1차선 명륜동길을 따라 본격적인 각호지맥 마지막 제3구간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명륜동 마을유래비를 읽어 본 후 명륜동로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걸어 오르니 또 다시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이제는 그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더 걸어 올라가다 뒤돌아 보니 4번 4차선 포장도로 건너 지난 주 어렵게 내려 온 비료공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인다.

그렇게 시멘트 포장도로 정상부까지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콘테이너 박스가 나타나고 그 옆으로 수수와 잡풀들이 혼재되어 있는 밭 경작지가 보이는데 밤 사이 비가 내렸는지 아니면 이슬이 변해 물방울이 되었는지 이 산객이 걸어갈 때마다 물방울이 튀어 등산복과 등산화를 적시고 있어 조심스럽게 그 밭 경작지 가장자리를 따라 어렵게 능선으로 진입한다.

 

 

능선으로 진입하니 등로가 사라지고 잡목들이 우거져 길을 찾아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이리저리 잡목들을 헤치며 희미한 등로를 찾아 오르니 이제 얼굴에 달라 붙는 거미줄이 산행을 방해하며 힘들게 만드는데 날파리들마저 윙윙거려 신경이 쓰이며 걸어 오르기가 어렵다.

잠시 후 넓은 묵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는데 오래된 묵은 비포장 임도이다 보니 잡풀과 잡목이 자라면서 일반 등로를 걷는 것보다 더 어렵게 진행을 이어가 본다.

벌써 등산복이 흥건히 젖어오고 등줄기와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쉼없이 떨어지는 시간에 드디어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401.9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잠시 한숨을 돌리고 좌측으로 크게 꺽여 오르는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러가 본다.

 

잡목들이 우거진 401.9봉에서 좌측으로 크게 꺽어 묵은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이곳 역시 지독한 잡목들과 잡풀들이 자라나 진행이 어려운데 중간 크기의 참나무에 반가운 산보님 띠지가 걸려 있어 오래 전 관악산에 오르며 만들었던 추억을 생각해 본다.

잠시 더 잡목을 헤치며 진행하니 진행 방향 위쪽으로 올라야 할 537.7 삼각점봉이 평이한 능선처럼 좌우측으로 길게 펼쳐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 잡목지대를 어렵게 지나니 점점 등로가 뚜렷해지고 잡목들이 사라지며 낙엽진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완만하게 이어지는 낙엽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능선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능선 등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잡목들이 우거진 영동410이란 삼각점이 박혀 있는 537.7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하고 잠시 쉬어 간다.

 

그 537.7 삼각점봉을 빠져 나오니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크게 꺽어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는데 등로에는 키 작은 잡풀들과 그 위로 자라난 관목의 참나무들이 걷기 좋게 자라고 있어 진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한동안 평이한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방금 전 산행을 시작한 가리재가 있는 서송원리 마을과 비료공장들 그리고 그 우측 위로는 가리마을들도 빤히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칼등 능선으로 이뤄진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계속 해 지난 구간 걸었던 각호지맥 제2구간 마루금이 우측에서 좌측으로 거꾸로 이어지며 길게 펼쳐진 모습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 보이기 시작하는 서송원리와 가리 마을을 내려다 보고 그 위로 이어지는 제2구간 산줄기를 살펴보며 진행을 이어가니 46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계속 이어지는 칼등 능선을 따르니 갑자기 바위 등로가 나타나고 조심하며 걸어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지난 구간 걸었던 743봉과 상촌산 그리고 우측으로 삼봉산 라인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참나무와 바위가 보이는 469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소나무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무명 안부를 통과해 다시 올라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461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하고 다시 출발한다.

 

계속 이어지는 평이하지만 뚜렷한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다시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나즈막한 돌담이 보이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이 해발 534.4미터의 백마산인데 그 정상에는 아무 표식도 보이지 않는다.

자료를 찾아 보니 이곳이 혹시 백마산성이 아닐까 생각이 되지만 자료에 나와 있는 백마산성의 위치와는 차이가 약간 있는 듯 보인다.

백마산성은 영동에서 동북쪽으로 보은행 도로를 따라  5 Km 정도 가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보이는 봉우재 고개를 넘어서면 533미터 이르는 백마산성이 나타나는데  산의 꼭대기에는 380   임진왜란 때의 이야기가 전해내려 오고 있다.

왜군이 부산포를 함락하고 북상해 오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오자 마을 사람이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새벽에 어디선가 장사  사람이 나타나 산으로 뛰어 올라가 주먹으로 바위산을 깨어  쌓기에 알맞도록 네모 반듯반듯하게 다듬어 놓았다.

수천 개의 돌이 마련되자 장사는  돌을 가지고 성을 쌓기 시작하여 높이 6 정도의 돌 산성을 장사  사람의 손으로 쌓았고 드디어 마을 사람들은 식전부터 산에서 바위 깨는 소리에 잠에서 일어나  쪽을 바라 보았다.

장사는 날씬한 솜씨로 돌을 날라다 돌 산성을 쌓기에 여념이 없었으며 마을 사람들은 아침 먹을 생각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장사가 성을 쌓는 모양을 머리서 지켜보았는데 삽시간에 500척을 넘어 1000척의 성이 완성되었고 오래지 않아 높이 6척에 둘레 6000척의 산성이 완성되었다.

하루아침에 성을 쌓은 장사는 마을로 내려와 주민들에게 '여러분이 피난할 자리가 마련되었으니 지금  가족들을 데리고  백마산성 안으로 올라가십시오' 하고 전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연일 불리한 전란 이야기를 들어오던 참이라 미리 꾸려 놓은 피난 보따리를 짊어지고 산성 안으로 향했는데  안에는 어느 사이에 장사가  놓은 샘이 있었고 성은 견고하여 외침을 받을 염려가 조금도 없어 보였다.

과연 마을 사람들이 성안으로 완전히 피난을 하고 나자 왜군은 추풍령 고개를 넘어 황간과 영동으로 밀려 들어 왔고 왜군의 일부가 백마산성을 에워싸고 공격을 시도해 왔으나 산성 안의 지도자인 젊은 장사는 성안에서 크고 작은 돌을  아래로 굴려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왜군은 대낮의 공격을 포기하고 어두운 야밤에 새로운 공격을 시도해 왔고 그러자  고을 지리에 익숙한 장사는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종잡을  없는 공격을 퍼부어 왜군을 멀리 쫓아버리고 말았다.

임진왜란이 끝날 때까지  고을 주민들은 이렇게 고마운 장사의 덕으로 아무 탈없이 난을 피할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백마산성 꼭대기에는 380  전에 난민들이 솥을 걸고 밥을 지어먹던 자리가 그대로 남아 불에 그을린 돌을  수가 있으며  당시 난민들이 사용하던 샘과 성터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전한다.

설령 백마산성 장소가 이곳이 아니더라도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했던 것은 사실인 듯 보이기에 찾은 자료를 이용해 본다.

 

 

지도 상 534.4미터의 백마산 정상인데 나즈막한 돌담만 보일 뿐 아무 표식이 없어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둘러 보지만 역시나 이곳이 백마산이라는 그 어떠한 표식도 없어 사진 몇장 남기고 몇발자국 더 걸어 진행하니 그곳 능선 상 나뭇가지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와 박건석님이 이곳이 백마산 정상임을 알리는 종이코팅지를 나무에 매달아 놨다.

백마산은 충청북도 영동군의 영동읍 가리와 주곡리 및 봉현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534미터이며 1872년지방지도에는 백마산성이 표기되었다가 20세기 초반 문헌인 조선지지자료에는 백마산(白馬山)은 군동면 심원리에 있다로 기록되어 있으며 한국지명총람에 백마산(白馬山)으로 소개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정확한 자료나 이름 유래 등을 다방면으로 찾아 보지만 제대로 된 정보가 없어 조금은 아쉬웠는데 정상까지 홀대를 받고 있으니 지자체의 관심이 필요해 보이는 백마산 정상이다.

 

백마산 정상을 지나 약간은 희미하지만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 낙엽 등로를 따르니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헬기장이 나타나고 그 헬기장을 통과해 참나무들이 보이는 등로를 타고 여유롭게 걸어 전진하니 커다란 돌이 돌출되어 있는 일명 처마바위에 도착을 한다.

사진을 남기고 지나가며 살펴보니 어느 선답자는 치마바위라 하였는데 치마보다는 지붕 끝자락을 더 길게 내세워 비나 눈의 막아주는 역활을 하는 처마바위가 맞을 듯 싶다는 생각이다.

그 처마바위를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사초가 보이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묘지 한기가 보이는데 지금까지 전국의 산을 다니면서 봤던 묘지들 중 처음보는 형태이다.

그 묘지를 지나자마자 등로는 바로 앞으로 보이는 바위 우측 급경사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보이던 바위 역시 처마 모양을 하고 있는 처마바위로서 이곳 바위들은 대개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제법 굵은 참나무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따르는데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낙엽과 작은 돌들이 뒤엉켜 미끄럽기에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그렇게 한동안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가 희미해지고 자세히 살펴보니 직진의 등로가 아닌 좌측의 사라진 등로를 찾아 무조건 좌측으로 내려가야 하는 길주의 지점도 통과한다.

그 길주의 지점을 지나니 다시 거대한 바위가 나타나고 우회하며 내려가니 그 바위 아래에는 누군가 쌓은 듯한 작은 돌탑 몇개가 눈에 들어 오는데 이곳 바로 아래가 성황당고개이기에 혹시 그 성황당고개와 관련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커다란 바위와 돌탑들이 보이는 곳을 지나 계속 참나무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경사도가 제법 완만해지며 등로도 조금 더 뚜렷하게 나 있어 진행에는 문제가 없다.

그렇게 한동안 무심으로 걸어 내려가니 등로 옆 벗나무는 벌써 여름을 지나 가을을 준비하는지 온통 울긋불긋 단풍으로 곱게 치장을 서두르고 있다.

잠시 후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로 연결되고 편안하게 전진하니 선답자의 띠지가 걸려 있는 34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주위를 둘러보고 심호흡 한번 한 후 다시 출발한다.

 

 

봉 따먹기의 대가이신 심용보님의 띠지도 만나 반갑게 인사 드리고 다시 그 무명봉을 내려가니 이장된 파묘인 듯한 곳을 지나 금새 지도 상 성황당 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좌우측으로 제법 그럴듯한 안부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발길이 끊인지 오래되었는지 사용하고 있지 않은 듯 보인다. 

성황당고개(사동저수지와 주곡교를 이어주는 안부)은 좌측으로 충북 영동군 영동읍 주곡리와 우측의 봉현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이다.

 

주곡리는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에 있는 리로서 산이 마을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으며 앞으로는 주곡천이 흘러나가고 임야가 넓으며 밭 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임실(주곡), 미륵댕이(미당미륵동), 산막골(산막곡), 새재(조현), 소막골(소막곡등이 있는데 미륵댕이는 옛날에 마을 어귀에 미륵이 서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산막골은 미륵댕이 서남쪽 산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소막골은 산막 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고 백마산성에 얽힌 전설이 있다.

 

봉현리는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에 있는 리로서 천지봉백마산 등이 우뚝 솟아 마을을 감싸며 앞으로는 봉현천이 흐르는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봉우재(봉화재,봉화현), 양짓말음지말 등이 있는데 봉우재는 마을에 봉화대가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으로 봉화재 또는 봉화현이라고도 하고 양지말은 봉우재 북쪽 양지에 있는 마을이다.

 

음지말은 음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고 백마산 위에 백마산성이 있다.

산행을 하면서 각 지역의 지명유래나 봉우리 또는 안부의 자료를 찾다보면 각 지자체별로 얼마나 자기 지역에 관해 실질적인 관심을 가지고 홍보를 하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는데 앞으로는 조금 더 자기 고장에 대한 자부심으로 근거있는 자료들을 잘 관리해 줬으면 하는 바램이기도 하다.

 

성황당고개를 지나 오르니 등로가 완전히 파헤쳐져 있고 깊은 골이 생겨 살펴보니 이곳도 산악오토바이를 즐기는 지역인지 바퀴 자국들도 보인다.

어느 곳은 상처가 너무 깊어 비나 눈이 내리면 등로로서의 역활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 정도이니 이 역시 잘 관리하고 자제시키는 지자체의 역활이 중요해 보인다.

한동안 오르니 온 몸에선 다시 굵은 땀방울이 흘러 등산복을 완전히 적시고 두개의 묵은 묘지를 지나 오르니 등로는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는데 높지 않은 봉우리 두어개와 나즈막한 안부 역시 같은 숫자만큼 넘으며 진행하게 된다.

잠시 후 플랭카드가 보여 살펴보니 No Pain, No Gain이라는 의미있는 글귀가 보이고 곧이어 돌길이 나타나는데 이곳 역시 예전에 무슨 성터였는지도 모를 곳처럼 보인다.

그 돌길을 타고 좌측으로 오르니 각호지맥 마루금은 주능선에서 우측으로 꺽여 진행이 되지만 좌측 가까운 곳에 무량산이 있으니 잠시 들려 추억 하나 만들고 진행하기로 한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철 벤취쉼터 하나가 보이고 그 위로 묘지가 있는데 묘지 지나 오석의 정상석이 서 있고 삼각점이 박혀 있는 425.9미터의 무량산 정상이다.

사진 몇장 남기고 철 벤취쉼터로 돌아 나와 잠시 휴식 취하며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 후 출발하기로 하는데 다만 이곳 무량산에 대한 그 어떠한 자료도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다만 15년 전 충청매일 신문에 연재된 내용이 있어 찾아 보니 이곳 무량산 정상부근에는 삼국시대 봉화대 터가 있어 이곳이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역이었음을 알려주는 역사적 흔적들이 남아있고 전망대에 서면 영동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와 등산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특히 봄에는 진달래와 들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울창한 숲과 가을에는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과 겨울에는 하얀 눈꽃이 절경이어서 무량산의 사계에 반한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되어 있어 이곳 영동 주민들에게는 제법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 아닐까 추측을 해 본다.

 

 

무량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허기를 달랜 후 뒤돌아 나와 이제는 우측이 아닌 직진 방향의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뚜렷한 참나무 내리막 등로에 굵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잠시 후 등로 우측 방향으로 약간의 조망이 터져 살펴보니 오늘 아침에 넘었던 백마산이 바로 지척으로 올려다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눈 앞에 바위전망대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올라 살펴보니 등로 좌측인 서쪽 방향으로 오늘 밤 하루 묵어야 할 영동시내가 빤히 내려다 보인다.

영동읍은 충청북도 영동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읍으로서 삼봉산과 백마산 부근에서 발원한 영동천이 소규모 산간 곡지를 이루며 흐르고 있다.

 

읍 중앙에는 경부고속철도와 경부선 철도가 관통하고 있어 수도권 및 충청권과 영남권을 연결하는 중요한 길목이 되고 있으며 현재 계산리, 동정리, 회동리, 화산리, 당곡리, 산익리, 매천리 등 16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영동이란 지명은 삼국사기지리지(상주)에 영동군은 본시 길동군인데 경덕왕이 (영동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 라고 하여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길동군이 현재의 영동군으로 지명이 변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읍은 조선 시대 영동현의 읍치가 있던 군내면과 함께 서이면 및 군동면 지역이었으며 조선시대 군내면은 16개 리를 관할하였다.

 

여지도서에는 군동면이 동면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동정리와 회동리 및 가이리 등 6개 리를 관할하였고 서이면은 토금리와 산리동리 및 마곡리 등 5개 리를 관할하였으며 이와 함께 각 동리의 관문으로부터의 방향과 거리, 편호, 남녀 인구가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동면이 동여도에는 현동면이 1872년지방지도에는 현동면과 서이면이 기록되어 있으며 군동면 지명은 동면 혹은 현동면으로 지칭된 방위 지명이었으나 1914년에 소멸되었다.

 

신구대조에는 군내면을 포함해 군동면의 22개 리, 서이면의 4개 리, 남일면의 음가동을 병합해 영동면이라 명명하여 새롭게 개편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의 군청은 영동면 계산리에 있었다. 계산이란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등장하는 영동의 별칭으로 현재는 지명 영역이 축소되어 촌락 지명으로 남아 있으며 1940년에는 영동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산행이 아니라면 들릴 기회도 없었을 것이고 잘 알지도 못했을 영동이기에 오늘 산행이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영동쪽 풍경을 살펴본 후 눈을 좌측으로 돌려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무량산 방향을 살펴보니 무량산 우측 저 멀리 무량산과 영동 사이로 멋진 산줄기와 산군들이 보이는데 지도를 확인해 보니 다음 주에 오르려고 계획중인 백하지맥과 내일 올라야 할 각호지맥 첫 1구간인 도마령에서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민주지산 산줄기처럼 보인다.

내일 저곳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며 오늘 걸었던 나즈막한 산줄기나 기억하고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무량산을 우측에 두고 좌측 라인을 살펴보니 지난 주 폭우를 만나 스마트 폰의 고장으로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하고 걸었던 각호지맥 제2구간인 우측의 구름과 맞닿아 있는 상촌산과 그 좌측으로 움푹 들어간 서낭당고개 그리고 다시 톱날처럼 날카로운 산세를 자랑하는 743봉에서 좌측 봉긋하게 솟아 있는 687봉까지 시원하게 조망된다.

다만 저곳을 지나며 제대로 된 기록도 못하고 트랙도 다운되어 생성하지 못했기에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올라 주위 풍경과 조망들을 사진에 담고 제대로 된 기록을 남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687봉 좌측으로 빙 돌아가며 눈을 돌리니 백마산이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모습으로 인자하게 내려다 보고 그 우측으로 무량산으로 이어지는 각호지맥 라인을 아름답게 펼쳐 보이고 있다.

그 백마산 좌측 라인 뒤에는 537.7 삼각점봉도 얼굴을 내민 채 멀어지는 산객에게 이별의 손을 흔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 백마산 좌측 저 멀리에는 언젠가 걸어야 할 팔음지맥 마루금들도 보이기 시작하는데 아직 정확한 산의 위치는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한동안 그 바위전망대에서 조망을 즐기고 다시 출발하니 연이어 바위암릉 구간들이 이어지고 우회하며 통과하니 갑자기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절터.샘이라는 이정판이 보인다.

그 이정판을 지나 계속 되는 바위암릉을 우회하며 진행하니 갑자기 제법 크게 세워진 돌탑이 보이는 415.3봉에 도착을 하는데 준희님은 이곳에 414미터봉이라는 이정판을 걸어 놨다.

 

돌탑이 있는 415.3봉에서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신 후 다시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지나 온 백마산이 지척으로 솟아 있고 그 우측 가까운 곳으로 오늘 걸어 온 지맥 마루금과 저 멀리 지난 주 걸었던 상촌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겹치며 자세히 조망되기 시작한다.

조망을 즐기고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는 참나무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무량산 산행로 안내판이 보이고 곧이어 절터.샘 방향 표시와 0.1 Km 거리라는 거리표시가 보이는 이정판도 서 있다.

그 이정판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커다란 참나무 옆에 탐스런 영지버섯이 곱게 피어났는데 집에 들고 가도 옆지기에게 핀잔을 들으니 사진에 담는 것으로 만족하고 산행에 열중해 본다.

한국에서는 불로초과의 버섯인 영지 또는 근연종의 건조시킨 자실체를 말하는데 영지는 불로초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버섯으로 중국에서는 영지를 비롯해서 자지()의 자실체를 건조시킨 것을 말하고 일본 공정서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영지는 신체가 허약할 때 기혈을 보충해주며 심신을 안정시키고 소화기를 건강하게 해주는데 이런 효능을 통해 허로, 심계, 잠을 잘 못 자는 증상, 어지러움, 정신적인 피로, 오래된 기침 등에 활용하고 있다.

약리작용으로 중추신경억제작용, 면역증강, 수면시간연장, 혈압강하작용, 진해거담작용, 중독성간염경감효과, 장관흥분작용, 항종양작용(동물실험) 등이 보고 되었다.

누군가 꼭 필요한 사람에게 사용될 수 있기를 바라며 다시 산행에 열중해 보는 시간이다.

 

영지를 사진에 담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가 보이는 392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을 넘으니 봉분이 낮아진 돌담이 쳐져 있는 무명 묘지 한기도 통과한다.

그 묘지를 지나 내려가니 다시 철벤취쉼터 1개와 우측으로 절터. 샘으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데 진행 방향 앞뒤로는 오래되었는지 글씨가 모두 사라져 확인이 불가능한 이정표이다.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하며 그 안부를 지나간다.

 

여전히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 수종은 참나무와 소나무가 혼재된 형태를 보이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 앞에 영동대학교와 절터.샘 방향으로 갈 수 있는 화살표만 표기된 이정판이 서 있다.

지도를 보니 영동대학교는 이제 이름이 바뀐 유원대학교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가 되는 이정판을 지나니 잠시 후 또 다른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데 살펴보니 좌측으로는 영동대학교까지 0.5 Km 거리이고 우측 진행 방향으로는 봉현리 3.5 Km 거리라는 표시가 눈에 들어 온다.

사진 한장 남기고 우측 봉현리 방향으로 진행을 이어가 본다.

 

여전히 등로는 뚜렷하고 큰 고도 차이도 없어 진행에는 큰 무리가 없지만 날씨가 후덥지근하여 많은 물을 마시고 굵은 땀방울을 빗물처럼 쏱아내다 보니 흐르는 땀을 닦아내기 바쁜데 고도까지 낮아 수많은 날파리들이 온 몸 주위를 맴돌며 윙윙거려 미칠 것 같다는 느낌이기에 잠시 발걸음 멈추고 수많은 날파리들을 잡아 보지만 그때 뿐 조금만 걸어가며 방금 전 날파리들을 잡을 때보다 더 많은 날파리들이 모여들고 있어 난감하기만 하다.

나무에 붙어 있는 화살표도 살펴보고 그렇게 한동안 참나무 등로를 걸어가니 갑자기 눈 앞에 바위암봉이 나타나고 그 바위암릉으로 오르니 작은 돌탑과 참나무 위에 산지킴이님이 이곳이 372미터봉이라는 이정판을 걸어 놨다.

 

사진 한장 남기고 372봉을 내려가니 이곳 등로 역시 산악오토바이로 인해 깊게 패여있어 진행에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조심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평이하게 열려있고 잠시 후 참나무 고사목이 걸쳐있는 322 무명봉을 통과한 후 조금 더 전진하니 또 다른 314 무명봉에 도착한다.

그 이후 특이할 것 없는 참나무 등로를 따라 한동안 무심으로 걷다보니 세개의 가지가 펼쳐져 있는 참나무 한그루 위에 이곳이 295미터봉이란 이정표가 걸려 있는 291.9봉에 도착을 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신 후 출발한다.

 

참나무 세가지가 서 있는 291.9봉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너럭바위에 도착을 하는데 그 바위에는 예전에 바다였는지 역암처럼 보이는 작은 자갈들이 박혀 있고 바위 전체에 파란 부처손이 뒤덮고 있어 이색적인 풍경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그곳에서 진행 방향인 북쪽을 살펴보니 280 자갈바위 전마ㅏㅇ대가 보이고 그 우측 저 멀리 초강천 지나 솟아 있는 480.5미터의 박달산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저 박달산은 등로 우측으로 한동안 바라보며 진행을 해야 하는 봉우리이기도 하다.

 

그 너럭바위에서 진행 방향으로 조망을 살펴보고 내려가니 바위에 자라고 있는 품질 좋은 부처손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어 사진에 담아 본다.

부처손은 건조한 바위면에서 자라며 담근체와 뿌리가 엉켜 줄기처럼 만들어진 끝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서 높이 20 Cm 정도 자라는데 가지는 편평하게 갈라지고 앞면은 녹색이며 뒷면은 다소 흰빛이 돈다.

습기가 없을 때는 말리므로 공처럼 되었다가 습기가 있으면 다시 활짝 펴진다.

잎은 약 2 mm로 4줄로 배열되고 끝이 실처럼 길어지며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으며 포자낭이삭은 잔가지 끝에 1개씩 달리고 네모지며 길이 약 10 mm이다.

포자엽은 달걀 모양의 삼각 모양으로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포자는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다.

전초를 하혈, 통경, 탈항에 사용하고 관상용으로 가꾸기도 하는데 부처손이란 한자명인 보처수에서 온 것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 타이완, 필리핀, 북인도 등지에 분포한다.

몇 년 전까지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어느 산악회를 따라 갔다 맥 잇기 산행에는 관심도 없이 산에서 나는 임산물과 식불들 특히 이 부처손에 관심이 많은 산행 리더를 통해 몇가지를 배웠지만 이 산객은 역시나 산행 자체가 좋아 오르다 보니 등로 옆으로 보이는 버섯은 가끔 채취하지만 다른 임산물에는 전혀 관심도 없이 이렇게 책을 통해 새롭게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너럭바위를 내려가 평이하게 이어지는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묵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는데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는지 이제는 지독한 잡목들과 잡풀들이 자라면서 일반 등로보다 못한 상황이다.

어렵게 우회하며 그 비포장 임도로 내려가 다시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다시 참나무 등로와 만나 정상적으로 진행을 이어가고 곧이어 256 무명봉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본다.

그 무명봉을 지나니 또 다른 너럭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지나온 산줄기 방향인 동쪽을 살펴보니 우측에 평퍼짐한 백마산 좌측 아래로 각호지맥에서 벗어나 있는 484봉이 이어져 보이고 그 봉우리 넘어 가운데에 537.7 삼각점봉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눈을 다시 조금 더 우측인 남동쪽으로 돌리니 중앙에 솟아 있는 372봉이 높게만 올려다 보이고 그 좌측 저 뒤로 봉화재 지나 백마산이 어머니 품처럼 넉넉하게 보이고 372봉 바로 우측 뒤로는 머리끝자락만 내민 무량산도 보이는데 그 우측 끝자락에는 414봉도 드러나 있다.

지나 온 마루금을 살펴보며 발걸음 하나 둘 확인하며 넘었던 봉우리들을 살펴보는 시간이 꿈굘같은 시간으로 남는다.

 

너럭바위에서 아름다운 풍경들과 조망을 살펴보고 지나온 발자취도 더듬은 후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커다란 참나무가 세갈래로 갈라진 280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이 길주의 구간으로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90도 꺽어지는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해야 솔치재로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제법 넓은 공터로 이뤄진 280 무명봉에서 북쪽 방향을 살펴보니 263.6미터 삼각점봉과 그 뒤로 282.1봉이 연봉으로 늘어서 있어 잘못 착각하면 저 산줄기가 마치 각호지맥 마루금처럼 착각하기 쉬운 산줄기가 보인다.

 

착각하기 쉬운 263.6 삼각점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살펴보고 그 우측인 봉현리 마을쪽을 살펴보니 몇개의 커다란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는데 개사료 공장처럼 보이고 그 우측 저 멀리에는 봉현리 마을회관쪽 마을들도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한가롭고 평화롭기만 하다.

봉현리는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에 있는 리로서 천지봉과 백마산 등이 우뚝 솟아 마을을 감싸며 앞으로는 봉현천이 흐르는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봉우재(봉화재, 봉화현), 양짓말, 음지말 등이 있는데 봉우재는 마을에 봉화대가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으로 봉화재 또는 봉화현이라고도 하고 양지말은 봉우재 북쪽 양지에 있는 마을이며 음지말은 음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백마산 위에 백마산성이 있다.

그 봉현리 마을 지나 저 멀리에는 황간쪽 백두대간 마루금과 그 마루금에서 살짝 벗어 나 있는 771미터봉우리인 지장산 줄기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온다.

 

진행방향인 북쪽을 살펴보니 솔치재로 이어지는 능선 넘어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우측으로 돌아 올라가는 마루금 뒤 저 멀리에는 초강천 건너 박달산이 관대의 모양으로 서 있고 그 앞 좌측 산줄기를 따라 초강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달려가는 각호지맥 마지막 산줄기의 풍경도 한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각호지맥 마지막 나즈막한 산줄기 넘어로는 언젠가 걸어야 할 팔음지맥 산줄기가 금강을 향해 산세를 낮추며 달려오는 모습도 보이기에 조금 더 그곳에 머물며 많은 사진을 남기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솔치재로 향한다.

 

 

잠시 내려가니 다시 바위암릉구간이 이어지고 그곳에도 역시 많은 부처손들이 자라고 있다.

바위암릉 구간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금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솔티재 일명 솔치재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보는데 생각보다 차량들 통행량은 많아 보이는 고개이다. 

솔티재(솔치재, 19번도로 옆 이정석)는 영동읍 설계리에 있는 유원대학교(옛 영동대학교)를 지나 19번 대학로를 타고 용산면 율리 방향으로 오르면 도착하는 고갯마루 정상을 말하는데 도로 옆에는 커다란 솔티재 이정석이 서 있고 그 이정석 아래에는 영동읍과 용산면의 분기점이란 표기가 보인다.

 

솔티재란 지명이름은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설계리에 있는 솔티라는 마을이름에서 유래된 듯 싶은데 솔티는 소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솔티마을이 있는 설계리는 영동군이 산간지역이나 이 지역은 비교적 평지가 넓은 지역으로 동쪽에는 백마산이 있고 서쪽에는 성산이 있지만 평야가 매우 넓게 펼쳐져 있으며 남쪽에는 번화가가 있다자연마을에는 누어치구수동어미실솔티국민복지아파트가 있는데 누어치는 누에를 치던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고 솔티는 소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며 어미실에는 향음사라는 절이 있다.

처음에는 도로 건너 보이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지도를 보니 우측 능선으로 곧바로 올라 붙어 정상적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 솔티재이다.

  

19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솔티재 도로를 건너 시멘트 포장도로가 분기하는 지점 우측 능선으로 곧바로 치고 오르니 금새 뚜렷한 정상 등로를 만나 좌측으로 걸어 올라 간다.

잠시 후 너럭바위 위 작은 활엽수에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249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하니 나즈막한 안부로 내려가는데 그곳에는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 밑둥에 멧돼지들이 뭄을 문지른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많은 멧돼지들의 목욕탕이 근처에 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다.

그 안부를 지나 한동안 평이하게 걸어 진행하니 묵은 묘지처럼 보이는 곳 한쪽에 멧돼지들이 웅덩이를 만들고 고인 물에 목욕을 한 후 근처 나무들에 몸을 문지른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어 조금은 섬뜩한 기분을 느끼며 진행을 서두른다.

  

 

그렇게 멧돼지 목욕탕을 통과하니 다시 참나무 낙엽이 푿ㄱ신하게 깔려 있는 평이한 등로와 이어지고 진디가 사라진 무명 묘지 한기를 지나 잡풀들을 헤치며 또 다시 나타나는 묘지를 통과하여 내려가니 금새 6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비탄고개에 도착을 한다.

비탄고개(6번군도 2차선도로)는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오탄리의 자연마을인 비탄리에 있는 고개로서 비탄리는 지대가 비탈지고 오목해서 붙여진 이름으로임진난 때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난하였다고 한다.

 

오탄리는 들이 넓으며 마을 앞으로 주곡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서 자연마을로는 오정리바깥오정안오정비탄리점말(점촌등이 있는데 오정리는 예전에 오동나무 정자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바깥오정은 오정리의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며 안오정은 오정리 안쪽에 있는 마을이다.

 

비탄리는 지대가 비탈지고 오목해서 붙여진 이름으로임진난 때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난하였다고 하고 점말은 예전에 옹기점이 있었다 하여 생겨난 지명이며 오탄리는 오정리와 비탄동을 합쳐 만든 이름이다.

비탄고개에서 산행 들머리를 찾아 보지만 지독하게 자란 칡넝쿨로 인해 도저히 오를 수 없기에 도로 좌측으로 보이는 축사가 있는 민가 앞쪽으로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묵은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여 어렵게 그 도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한동안 올라가니 도로는 비포장 임도로 변하고 곧이어 하얀 트럭 한대가 올라 와 있는데 주인장은 벌초를 갔는지 보이지 않고 주위에는 잘 정돈된 묘지들만 눈에 들어 온다.

그 트럭이 서 있는 비포장 임도에서 잡풀이 수북하게 자란 좌측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좌측 아래로 방금 전 건너 올라 온 6번 2차선 포장도로가 빤히 내려다 보이고 곧이어 노란 물통과 묘지들이 보이는 곳에 도착을 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그 묘지지대를 빠져 나가니 약간의 잡풀들과 잡목들이 보이는 등로로 바뀌면서 나즈막한 무명 안부로 떨어졌다 다시 오른다.

천천히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능선 상 봉우리인 21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달랜 후 진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후 비포장 임도는 다시 소로의 일반 등로로 변하면서 무명 묘지 한기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측백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216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갑자기 등로가 희미해지며 사라져 버린다.

방향만 확인하며 조심해 내려가니 이곳 역시 묘지들이 연달아 나타나고 묘지를 지나 잡목들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묵은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데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는지 키 큰 잡목들이 도로를 완전히 점령해 버렸다.

 

그 묵은 시멘트 포장도로 위에 무성하게 자라난 잡목들을 헤치고 조금 더 우측으로 걸어가니 다시 우측 능선 방향으로 등로가 열려 있고 힘들게 오르니 참나무와 소나무가 보이는 245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이제부터 별 특징이 없는 약간의 잡목 등로를 헤치며 꾸준하게 전진하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고 준희님이 331미터봉이라는 이정판을 걸어 놓은 지도 상 331.3봉에 도착을 한다.

 

그 331.3봉을 넘어 사초가 깔려 있는 부드러운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금새 320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등로는 이제 좌측으로 휘어져 내리막 등로로 연결되고 있다.

한동안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멧돼지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소나무 안부를 지나 다시 사초가 깔려 있는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올라 간다.

잠시 후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를 지나 참나무와 소나무가 각각 2가지씩 보이는 276 무명봉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잠시 쉬어 간다.

 

한동안 평이한 능선 등로를 따라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전진하니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에는 여전히 부드러운 사초가 깔려 있어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다시 꾸준하게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285 무명봉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우거진 나무 사이로 우측을 살펴보니 초강천이 등로 바로 옆으로 가깝게 다가와 있음이 눈으로 확인된다.

 

등로 우측으로 바짝 다가와 있는 초강을 내려다 보며 그 초강 옆으로 보이는 율리쪽 논들도 살펴보니 이제 벼가 자라면서 조만간 가을이 올 것 같은 풍경이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 무명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소나무들이 보이는 237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약간의 벌목지대를 통해 오탄리쪽 산들이 조망되기 시작한다.

 

그 오탄리쪽 옆 산군들을 살펴보고 좌측 저 멀리 눈에 들어 오는 산줄기가 있어 줌으로 당겨보니 우측의 서대산을 중심으로 그 좌측으로 얼마 전 걸었던 장령지맥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 끝자락 쪽에 은행나무로 유명한 천태산도 보인다.

저 천태산에서 서대산까지 종주 산행으로 한번쯤 걸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벌써 1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 실천을 하고 있지 못하니 이제는 진행하는 지맥 산행이나 마무리가 되야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종주 산줄기가 되어 버렸다.

 

잠시 더 머물며 멋진 조망과 풍경을 감상하고 보이는 산줄기와 산봉우리들의 이름을 불러 준 후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좌측으로 점말마을로 내려갈 수 있는 점말고개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안부 정상부에는 원형의 쇠 파이프가 묻혀 있어 용도가 궁금하기만 하다.

점말고개(점말마을역시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오탄리에 있는 자연마을의 이름 중 하나인 점말마을 위에 있는 고개라서 붙은 이름으로 점말은 예전에 옹기점이 있었다 하여 생겨난 지명이다.

그 쇠 파이프가 묻혀 있는 뒤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계속 이어가 본다.

 

점말고개를 통과해 진행하니 등로는 이제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제법 크고 널부러진 바위들이 진행을 가로막고 있어 생각보다 힘들게 오르는 시간이다.

온 몸에선 다시 비가 오듯 굵은 땀방울이 흘러 내리고 그렇게 힘들게 오르니 등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초강이 거꾸로 U자를 그리며 그 좌측 뒤 저 멀리 박달산을 일으켜 세운 풍경이 이색적으로 다가 와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살펴보고 진행한다.

 

초강과 박달산을 구경하고 우측으로 조금 더 붙어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넘어 온 331.3봉 지나 저 멀리 지난 주와 오늘 아침에 걸어 넘었던 백마산 근처의 산줄기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 온다.

좌측의 박달산과 오늘 걸어 온 각호지맥 마루금 사이 저 멀리에는 상주의 백화산 주행봉과 한성봉이 보이고 그 주위로 백두대간 마루금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정확한 산군들은 구분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게 등로 우측과 뒷쪽의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천천히 걸어 오르니 드디어 바위들이 사라지고 사초들이 한거리는 참나무 등로를 타고 정상부로 향한다.

그렇게 걸어 오르니 참나무에 준희님이 321미터봉이란 이정판을 붙여 놨는데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이곳 높이를 322.3미터봉으로 표기를 하고 있다.

사진 몇장 남기고 그 이정판 옆에 달려있는 선답자들의 띠지를 확인한 후 다 시 그 322.3봉을 지나 우측으로 90도 꺽어 가끔 바위들이 보이는 내리막 낙엽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계속 이어지는 바위 암릉을 타고 조심하며 걸어 전진하니 소나무들이 보이는 304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긴 후 이제는 좌측으로 크게 ㅓㄱ여 진행되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 본다.

등로 우측으로 여전히 초강천이 바로 옆으로 내려다 보이고 그 초강천 건너 시금리 구비재 마을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시금리 구비재는 충청북도 영동군 용산면 시금리에 있는 자연마을로서 시금리는  평야가 매우 넓은 지역이며 초강천이 굽이굽이 흘러 마을을 감아 돌고 있고 하천을 따라 넓은 평지가 나타난다.

북동쪽에는 박달산이 있다.

자연마을에는 광탄(너분열), 시금골, 구대도(구비재)가 있는데 광탄은 너분열이라고도 불리며 넓은 지대에 마을이 위치하였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고 시금골은 예부터 철이 많이 났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저 마을을 통해 우뚝 솟아 있는 박달산을 올라 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힘들어 보이기에 가슴속에 아름다운 풍경만 간직해 본다.

 

그 시금리 구내미 마을 우측으로는 부드러운 능선을 타고 솟구친 박달산이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는 제법 넓은 초강천이 휘돌아 흐르는 풍경이 또한 풍경화처럼 다가오는 시간이다.

조금 더 풍경을 감상하고 진행하니 사초 위에 소나무가 서 있는 254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좌측 소나무와 참나무 하산 등로를 따르니 봉분이 사라진 묘지를 지나 철망이 나타나고 그 철망을 넘어가니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분통골고개에 도착을 한다.

분통골고개 역시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오탄리에 있는 자연마을인 분통골 뒤쪽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오정리는 본래 영동현 서이면 오정리 지역으로 1909년에 영동군 서이면에 속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오정리와 비탄동을 병합하여 오탄리라 해서 영동면에 편입되었으며 행정리는 오정리(외오정, 안오정)와 비탄리(비탄, 점촌-점말)로 나누어진다.
언제부터 인가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이곳에 오동나무(오) 정자(정)가 있어서 오정리라 불러왔으며 비탄리는 마을 앞개울 밑에 깔려있는 암석이 마치 고기가 여울(탄)을 오르는 형상이라 하여 비탄으로 불렀다고 한다.

안오정 동쪽에 위치한 점촌은 여행객들의 숙식처인 주점과 주막이 있어서 붙여진 동명인데 과거에는 옹기점이 있었다고 한다.

분통골고개로 내려 가 도로를 건넌 후 좌측을 살펴보니 잡풀로 뒤덮힌 비포장 임도가 보이고 그 임도를 타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분통골고개에서 잡풀이 무성한 비포장 임도를 타고 들어가니 등로는 다시 좌측 평이한 등로로 이어지고 잠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날파리와 씨름하며 오르니 많은 가지들이 함께 보이는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227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무명봉을 지나 진행을 이어가니 다시 너럭바위가 나타나는데 주위 나무들에 가려 조망이 없기에 산행에 몰두해 본다.

잠시 후 비닐표지기가 보이는 258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커다란 당산나무가 서 있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한다.

 

안부를 지나 오르니 238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 상 봉우리이다.

그 무명봉을 지나니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고 이리저리 등로를 찾아 우측으로 크게 꺽어 전진하니 등로가 사라졌다 희미하게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잠시 후 좌측으로 이어지는 우회 등로가 나타나지만 직진의 봉우리 등로를 타고 오르니 가지가 많은 참나무 위에 준희님이 280미터봉이란 이정판을 걸어 놨는데 이 산객이 가지고 있는 지도에는 279.7봉이다.

 

그 봉우리를 지나 다시 좌측으로 크게 꺽어 참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평이한 무명안부를 지나고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묘지들을 지나 소나무들이 제멋대로 산재되어 있고 쓰러진 고사목도 누워있는 292 무명봉을 통과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고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들을 지나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등로 옆에 거대한 활엽수 한그루가 서 있는 217 지점에 도착을 한다.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 상 217 지점을 지나 사방 팔방으로 널려 있는 등로에서 정상적인 등로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어렵게 사라진 정상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잡풀에 덮혀 있는 묘지 한기를 지난다.

다시 지독한 잡목들이 우거진 등로를 뚫고 어렵게 진행하니 점점 잡목들의 저항이 덜해지고 잠시 후 둔덕같은 223 무명봉에 도착을 해 긴 한숨을 내쉬고 다시 출발하니 거목이 자리하고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 좌우측을 살펴봐도 오래 전 폐쇄된 듯한 무명 안부이다.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고 잠시 후 소나무들과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27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추억을 남기고 계속 이어지는 잡목 숲을 헤치고 전진하니 최근에 벌초를 한 듯한 묘지를 만나 그 묘지의 앞마당에서 잠시 쉬어 간다.

묘지를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벌목지가 나타나고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우측 옆으로 올라야 할 289 무명봉은 산줄기에 가려 보이지 않고 그 좌측으로 진행해야 할 260.5 삼각점봉이 시원하게 조망되기 시작한다.

아마도 저 260.5봉 넘어로 오늘 산행 날머리인 초강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이 있을 것이지만 아직까지는 산줄기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진행 방향의 산줄기를 확인하고 눈을 조금 더 좌측인 남쪽 방향으로 돌리니 벌목 후 나무를 식재한 드넓은 지역이 나타나고 그 뒤 저 멀리 각계리와 각계역 지나 천태산 방향으로 펼쳐진 산군들이 보이고 그 우측 위로는 장령지맥 산줄기들도 보인다.

그 한쪽에는 옥계폭포로 유명한 달이봉도 보이는데 또 저곳은 언제나 들려 볼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제 등로 좌측에 벌목된 잡목지대를 두고 그 경계를 타고 진행을 하니 웃자란 잡목들이 우거져 진행이 쉽지 않다.

우측의 소나무 등로 쪽도 찾아 보지만 그곳이나 벌목지 경계나 별 차이가 없기에 벌목지 경계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고 그렇게 한동안 걸어 오른 후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각계리 마을 뒤 저 멀리 내일 걸어야 할 각호지맥 첫 구간인 민주지산과 석기봉쪽 산줄기가 길게 펼쳐져 보이고 그 우측으로 백두대간 마루금도 보인다.

멋진 조망과 풍경에 쐬기에 쏘이는 줄도 모르고 가시에 찔려 붉은 피가 흐르는 것도 잊은 채 잠시 더 그 아름다운 조망들을 살펴 본다.

 

잠시 조망을 즐기고 벌목 경계지점을 넘어 우측 소나무 등로를 타고 힘들게 오르니 커다란 측백나무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287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좌측으로 130도 이상 꺽어 내려가니 약간의 잡목들을 지나 다시 벌목지 경계 지점의 등로에 도착을 한다.

그 등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260.5미터의 이원424 삼각점봉에 도착을 하고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나즈막한 안부로 떨어진다.

 

무명안부를 지나 멋진 소나무들이 등로 좌측에 도열해 있는 등로를 통과하니 능선 상 234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등로 양쪽으로 서 있는 소나무들을 사진에 담고 다시 출발이다.

잠시 후 등로는 다시 좌측의 벌목지와 경계를 이루는 잡목지대로 이어지고 그곳에서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여전히 각계리 마을 지나 저 멀리 영동의 고층 빌딩들이 보이고 그 넘어 하늘금에는 내일 걸어야 할 각호산에서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민주지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등로 좌측 바로 앞으로는 산이리 지난 오탄리쪽 200미터의 해발 높이를 가지고 있는 무명봉들이 그럴듯 하게 서 있고 그렇게 한동안 조망을 즐기고 진행하니 등로는 이제 292 무명봉을 지나 벌목지대와 헤어져 약간의 잡목들과 소나무가 보이는 능선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고사목이 보이는 300 무명봉을 넘고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칡이 우거진 314.4봉에 도착을 하고 어렵게 그 칡넝쿨을 뚫고 넘어가니 최근에 벌초를 한 듯한 묘지들이 보이고 그 묘지 지나 좌측 잡목 능선으로 들어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달려 있는데 그 띠지에 이곳이 314.4미터봉 임을 알리는 글자를 적어 놨다.

 

어렵게 찾은 그 314.4봉을 지나 다시 희미하게 사라지는 정상 등로를 따라 조금 전진하니 묘지를 만든 후손들이 설치를 한 듯한 시멘트 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멋진 소나무 등로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각계역 방향의 철도 기지창 같은 곳이 내려다 보이고 그 앞으로 경부고속철도인 KTX 철로가 시원스럽게 뻗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그 철로 주변으로 비닐하우스 단지들도 보이고 그 뒤로 옥계폭포로 유명한 달이산도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다.

KTX 기차가 얼마나 자주 달리는지 약 1분에 한대씩 빠르게 지나가며 지축을 흔들고 있다.

 

조망을 즐기고 다시 내려가니 골이 깊게 패인 등로 양 옆으로 멋진 소나무가 도열하듯 서 있어 행복한 기분으로 막바지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더 그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조망이 열리기 시작하고 각계역 열차 기지창과 심천면 마을이 가깝게 내려다 보이며 그 우측으로는 KTX 철로가 일직서으로 길게 뻗어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펼쳐진 풍경을 즐기고 다시 능선으로 드니 254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다.

무명봉을 지나 잡목 구간을 헤치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살펴보니 일반 철도와 KTX 철로 그리고 심천면 마을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달이산과 마니산으로 이어지는 영동의 산군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잠시 더 머물며 풍경을 감상하고 간벌된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잡목들이 자라면서 산초가시나무가 막바지 산행에 변수로 작용한다.

조심하며 내려가니 묵은 묘지 앞에 비석도 흙어 묻혀버린 198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묘지를 쓰는 폐해에 대해 생각하며 진행하니 아름드리 리끼다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묘지지대를 통과하니 또 다시 이어지는 다양한 모습의 묘지들을 지나 드디어 용당리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고개에 도착을 한다.

이 갈고개는 우측의 영동군 심천면 용당리와 좌측의 초강리를 이어주는 6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개로서 생각보다 차량 통행은 많지 않은 듯 보인다.

  

갈고개를 지나 복숭아 과수원을 통해 산행을 이어가고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짧은 알바를 한 다음 다시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하니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작은 암자 앞마당에 도착을 하는데 사람을 불러도 대답이 없어 염치 불구하고 그 암자 앞에 보이는 수돗가로 가 시원한 물로 세수를 하고 땀에 찌든 수건을 빨고 나니 조금은 견딜 것 같다.

지도를 보니 이 암자와 건물은 표기가 되어 있지 않아 건물 좌측 아래 화장실 가는 잡풀 숲으로 내려가 어렵게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작은 암자를 지나 잡풀지대로 들어가니 몇기의 묘지들이 나란히 보이고 그 묘지지대를 지나 잡풀들이 무성한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등로는 금새 시멘트 포장도로와 이어진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잠깐 이동한 후 좌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가 갈리는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임도 좌측 둔덕의 잡목 사이에 139미터의 이원422 삼각점봉이 보인다.

사진에 담고 이어지는 우측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금새 등로는 키 큰 잡풀들이 점령을 해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낀다.

 

참으로 힘들게 그 잡풀지대를 통과하니 이어지는 묵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묘지지대를 지나 철도 기지창 앞까지 진행을 하는데 그곳에서 내려가려고 보니 높은 콘크리트 옹벽이 앞을 가로 막아 도저히 내려갈 방법이 없다.

우거진 잡목과 잡풀들을 헤치며 우측으로 길게 돌아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 우측으로 콘테이너 박스가 보이고 밭 경작지들도 보이기 시작하는 곳을 통해 너무나 어렵게 능선을 벗어 난다.

하지만 이곳에서 눈 앞에 보이는 철로를 통과하는데 많은 시행 착오와 시간을 걸려 어렵게 지하통로를 찾아 진행하게 된다.

철도 앞에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가니 밭 경작지에 할아버지 한분이 깨를 털고 있고 인사 드리고 물 한모금 얻어 마시고 이야기 나눈 후 다시 뒤돌아 와 지하통로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한동안 지도를 연구하다 보니 지하통로는 방금 전 만났던 콘테이너 박스를 좌측에 두고 우측의 비포장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 들어 간 후 다시 180도 틀어 철도를 건널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어렵게 그 지하통로를 통해 철도를 통과한 후 우측으로 보이는 2차선 포장도로를 통해 그 지하통로를 빠져 나오니 눈 앞에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다시 나타나고 그 양쪽으로 복숭아와 포도 과수원을 두고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마지막 합수점을 향해 걸어 가 본다.

잠시 후 505번 이원심천로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우측으로 조금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분기하고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막바지 산행을 이어 간다.

 

여전히 이어지는 포도와 복숭아 과수원을 살펴보며 진행을 이어가니 간간히 호두나무들도 보이는데 나중에 산행 후 이곳 주민들이 말하기를 이곳 영동은 과일의 고장으로서 감과 포도, 복숭아 호두가 매우 유명하다며 요즈음 포도 축제 기간이니 구매해 먹어 보라고 권유하기까지 하였다.

잠시 후 초강로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우측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민가가 보이는데 그 민가로 이어지는 곳에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 있어 그 포장도로를 따라 마지막 합수점으로 향한다.

주인 아저씨가 방울 토마토를 수확하며 몇개를 나눠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마지막 합수점으로 걸어가니 조금은 더위에 지쳤는지 아니면 긴장이 풀렸는지 발가락이 아프기 시작한다.

 

 

민가를 지나 우측 밭이 끝나는 지점에서 강변 도로 방향으로 오르니 드디어 1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며 우측의 초강천과 잠시 후 만나게 될 심천교를 사진에 담아 본다.

초강은 충청북도 영동군의 심천면과 황간면에 있는 하천으로 상촌면 삼도봉 북사면에서 발원하여 고자천장교천석천송천으로 불리다가 심천면 심천리와 초강리에서 심천과 초강이 되어 금강 본류인 고당강에 합류한다.

지명은 조선 시대에 대체로 심천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초강으로도 표기되어 있는데 초강은 해동지도에 초강서원이 표기되면서 지명이 처음 등장한다.

여지도서에 서일면 대초지리라는 관련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에는 초강은 서일면 대초지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현재의 초강리 지명으로 존속되고 있다.

초강의 다른 이름인 심천은 조선 시대의 여러 지리지와 고지도에 이른 시기부터 기록되어 표기자 변화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심천(深川)은 고을 서쪽 15리에 있으니 고당포로 흘러 들어간다 라고 기록되어 관련 지명이 처음 등장한 이후 해동지도에 심수천(深水川)여지도서에는 심천진(深川津), 심천교(深川橋), 심천원(深川院)이 그리고 대동여지도에는 심천진(深川津), 1872년지방지도에는 심천교(深川橋), 심천점(深川店)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심천원과 심천점의 등재는 이곳이 충청도에서 경상도로 가는 중요한 길목임을 말해 주고 있다.

최근 문헌인 한국지명총람에는 심천면 심천리와 심천 그리고 고유 지명으로 지프내가 기록되어 있어 일관된 표기자가 나타나며 심천이 지프내의 훈차 표기임을 확인할 수 있다.

10여미터 이상 그 강뚝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드디어 저 멀리 금강이 보이고 합수점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드디어 합수점에 도착을 하는데 그 합수점 한쪽에는 연세가 지긋하신 부부가 승용차를 주차시켜 놓고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맞고를 치고 계시기에 인사 드리고 몇마디 이야기를 나눈 후 합수점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겨 본다.

금강은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에서 발원하여 충청남북도를 거쳐 강경에서부터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도계를 이루면서 군산만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길이는 394.79 Km에 유역면적은 9912.15 Km2이다.

옥천 동쪽에서 보청천조치원 남부에서 미호천기타 초강과 갑천 등 크고 작은 20개의 지류가 합류하고 상류부에서는 감입곡류하면서 무주에서 무주구천동영동에서 양산팔경 등 계곡미를 이루며 하류의 부여에서는 백마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면서 부소산을 침식하여 백제 멸망사에 일화를 남긴 낙화암을 만들었다.

강경 부근에서 하구까지의 구간은 익곡을 이루어 군산과 강경 등 하항이 발달하였으며 종래 부강까지 작은 배가 소항하여 내륙수로로 크게 이용되어 왔으나 호남선의 개통과 자동차교통의 발달로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몇 번인가 올랐던 민주지산 산줄기이지만 각호지맥이란 이름을 가지고는 내일 다시 올라야 하기에 합수점에 도착했다고 해서 완전히 완주한 것이 아니기에 감흥은 조금 덜 하지만 그래도 늘 느끼는 것처럼 고생한 후 만나는 합수점에서의 추억은 걷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행복감일 것이다.

 

합수점에서 마지막 의식을 거행하고 고운 추억을 남긴 후 심천교 앞 용당리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 나가는데 마침 심천교를 건너는 버스가 보여 달려가듯 가 보지만 역시나 버스는 무정하게 통과해 버린다.

아마도 오후 5시 30분 버스인 듯 한데 다음 버스가 한시간 30분 이후인 7시가 넘어야 있기 때문에 용당리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 나가면서도 고민이다.

약 5분 정도 늦게 심천교 앞 용당리 버스 정류장에 도착을 해 배낭 정리하고 등산복 상의를 갈아 입은 후 남아 있는 약간의 식수로 수건을 적셔 얼굴과 팔을 닦아 내니 그래도 살 것 샅다는 느낌이다.

택시를 불러야 하나 고민하다 일찍 영동으로 돌아 간다고 해도 할일이 없으니 이곳에서 히치 하이킹을 시도하는데 약 15분 후 봉고차가 와 무조건 손을 흔드니 세우며 영동읍까지 태워주신다.

용당리는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에 있는 리로서 금강을 끼고 있어 마을 경관이 매우 빼어나고 주로 벼농사와 포도농사를 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용당(용냉이), 장동리(노루골장동), 차실(차곡등이 있는데 용당이란 지명은 마을에 용당이 있었으므로 용당 또는 용댕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장동리는 노루가 많아 노루골 또는 장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차실은 노루골 북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수레바퀴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차곡이라고도 한다.

용소에서는 용이 승천하다 아낙네의 고함을 듣고 이무기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그렇게 용당리와의 인연을 끝으로 무탈하게 영동읍까지 나와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천천히 걸어 영동읍까지 가 애마를 회수하니 벌써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봉고차에서 내려 영동역으로 걸어가며 담은 영동천의 모습이 새롭기만 하다.

영동천은 충청북도 영동군의 영동읍에 있는 하천으로 양강면 산막리 천마령 북사면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다 영동읍 부용리 부근에서 매끄내(매천)와 주곡천을 합하여 심천면 초강리에서 금강 본류(고당강)와 합류한다.

지명은 영동면이란 면 지명이 생성된 1914년 후에 등장한 하천 지명으로 보이고 조선 시대 영동천은 동천(東川)으로 불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동천(東川)은 성 동쪽에 있다 라는 기록이 보이고 여지도서에도 동천(東川)은 현 서쪽 1리에 있으며 천마산에서 흘러와 고당강에 들어간다 라고 등재되어 있다.

이후 대동여지도에도 표기자 변화 없이 동천으로 통용되다가 일제 강점기 및 현대로 오면서 지명이 소멸되어 오늘날에는 영동천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국지명총람에 영동천(永同川)으로 기록되어 있다.

내일 아침을 생각해 황간에 있는 찜질방을 모두 연결해 보지만 폐업한 곳도 있고 여름철엔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기에 영동에서 가까운 영동숯가마찜질방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영동숯가마찜질방으로 이동해 간단히 샤워를 하고 그곳 식당에서 제공하는 삼겹살 2인분에 맥주 2병과 소주 1병을 주문해 밥 한공기와 함께 푸짐하게 먹고 나니 조금은 살 것 같은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그렇게 먹었는데도 배가 부르다는 느낌이 없다.

저녁 식사 후 스마트 폰에 저장된 사진을 컴퓨터로 옮기고 산행을 정리한 후 다시 한번 더 샤워와 양치질을 하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가 일어나 보니 이제 새벽 2시를 넘기고 있다.

갈증을 느껴 시원한 냉수로 다시 배를 채우고 시원한 곳을 찾아 다시 잠자리에 누우니 금새 잠이 들고 새벽 4시에 일어 나 각호지맥 마지막 산행을 위해 마지막 일요일 아침을 준비한다.

오늘 하루도 멋진 산행을 기대하며 무탈하게 완주 후 천안으로 이동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시간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