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와 동작구의 국사봉, 까치산, 서울둘레길, 청룡산 및 장군봉 정상과 둘레길 일대
산행일자 : 2019년 06월 26일 (수요일 퇴근 후 운동)
산행날씨 : 하루 종일 흐리고 무더웠으며 몇방울 비가 떨어졌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19도에서 영상 31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집-봉천역-남부순환로-봉천로 현대시장입구교차로-양녕로 현대시장교차로-국사봉터널입구-국사봉 등산로입구-동작충효길-
국사봉(180.9봉)-국사봉 등산로입구 복귀-125.3 바위봉-상도근린공원둘레길안내판-구암고등학교-158.2 관목봉-성현드림숲안내판-성현동
관악드림타운아파트단지-까치산공원-까치산(122.3봉)-솔밭로 이동통로-119.3 벤취쉼터봉-까치생태터널 위(남부순환로통과)-인헌공
강감찬길-98.2 무명봉-무당골-천지정과 K2 천지약수-서울대 연구공원-관악사삼거리-능선진입(사색의길)-179.7 삼각점봉 우회-135.5
무명봉-134.6 삼각점봉(헬기장)-SK 주유소 및 문영여자고등학교-관악로-관악서울대치과병원 버스정류장-능선진입-청룡산(138.8봉)-
청능산(157.7봉)-용천사-e편한세상서울대입구아파트공사장-쑥고개(쑥고개로)-장군봉(112봉)-집-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4.59 Km (스마트폰의 GPX 트랙 기준)
산행트랙 : 20190626 국사봉_까치산_서울둘레길)청룡산_장군봉.gpx
산행시간 : 아주 빠르게 걸어 진행하여 03시간 37분 (16시 55분에서 20시 32분까지)
집 근처에 산재되어 있는 근린공원을 찾아 또 새로운 길을 만들고 역사기행을 함께하며 걸었던 시간들
퇴근하니 먹구름이 밀려오며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기세인데 하늘만 바라보고 집에 있자니 답답한 마음에 간단히 물과 과일 그리고 우산을 챙겨 오늘은 집 근처에서 봤던 새로운 근린공원들을 찾아 한바퀴 크게 돌아 오려고 생각을 해 본다.
제일 먼저 자주 그 앞 도로를 지나쳤던 국사봉을 둘러보고 까치산도 들린 후 서울둘레길은 상황에 따라 진행 여부를 결정한 후 청룡산과 건우봉을 거쳐 장군봉에 올랐다 내려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결국 건우봉은 오르지도 못하고 길게 서울둘레길과 인헌공 강감찬길을 길게 걸은 후 귀가하니 생각보다 긴 거리를 제법 많은 시간을 걸려 제대로 운동을 하고 어둠이 내려 앉은 거리를 걸어 늦게 귀가하게 되었다.
걸으며 살펴보니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쳤던 양녕대군과 인헌공 강감찬장군에 대한 많은 생각과 의미를 알게 되었고 그 길을 따라 조금은 여유있는 발걸음도 필요해 보였다.
걸으며 만났던 동작충효길이란 글이 생각 나 찾아 보니 동작충효길은 충효의 고장 동작에서 만나는 일곱색깔 동작이야기 주제를 바탕으로 동작구의 역사와 문화자원에서 나타나는 충과 효의 정신을 포함하고 있다.
전체 코스는 본동 배수지공원을 시점으로 해서 노들역, 고구동산, 현충근린공원, 한강수변길, 노량진수산시장, 노량진 근린공원, 보라매공원, 국사봉, 까치산을 거치며 모두 7개 코스에 총연장 25 km에 이른다.
각각의 코스마다 이름과 테마를 달리하고 있으며 1코스 테마는 생(生)으로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서달산 잣나무길, 피톤치드(산림욕) 체험장, 살아있는 자연생태를 체험할 수 있는 숲속 유치원, 자연학습장으로 구성돼 있고, 2코스 현충원길의 테마는 충(忠)으로서 국립서울현충원 내부 및 외부를 지나면서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자는 취지다.
국사봉은 양녕대군 이제 묘역이 위치한 남쪽 산을 말하며 해발 184미터의 산으로 관악구 봉천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국사봉이란 이름은 태종의 맏아들이었었던 양녕대군이 이 산에 올라 멀리 경복궁을 바라보며 나라와세종을 걱정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국사봉 부근에는 양녕대군의 사당과 묘소도 자리하고 있으며 국사봉 정상에 서면 한강의 시원한 물줄기와 서울의 아름다운 전경이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국사봉 밑에 자리 잡은 사자암은 조계종 소속으로 조선 태조 5년(1396) 무학대사가 한양천도과정에서 풍수 상의 이유로 창건했다고 하는데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서울의 풍수를 살펴보니 만리현(현재 만리동)이 밖으로 달아나려는 백호의 형상이었다.
이에 무학대사는 백호의 움직임을 막아낼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만리현의 맞은편인 관악산에 호압사를 짓고 사자형상인 국사봉에 사자암을 조성했다.
국사봉 오름길에 제일 먼저 눈길을 잡은 것은 능고개와 아차고개 설화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곳 국사봉이 있는 상도동의 동명은 이곳에 상여꾼이 집단으로 거주하여 상투굴이라고 칭하던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에 성도화리로 불리다가 상도리와 상도정이란 이름을 거쳐 1955년 서울특별시 동설치조례에 의하여 상도동으로 개칭되었다.능고개는 상도4동 국사봉중학교에서 봉천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으로 이 지역에 얽힌 이야기를 보면 지금의 지덕사가 처음에는 중구 도동에 세워져 문중도 같이 살고 있었으나 워낙 살림이 빈궁하여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였다.
근근히 지내던 어느 추운 겨울날 한 노승이 이 집 앞을 지나다가 밤이 깊어 하룻밤 묵고 가기를 청하는지라 불러들여 불을 지피고 밥 대신 죽을 끓여 집주인은 먹지 않고 중에게만 주었다.
이튿날 이 사실을 안노승은너무 고마워서 은혜에 보답하겠다며 그 주인을 데리고 능고개 자리에 와서 장차 죽거든 이곳에 묘를쓰라고 일러 주었고 그로부터 몇 년 후에 그 주인이 죽자 중이 가르쳐준 고개에다 묘를 썼더니 그때부터 자손이 번창하고 가세가 일어났다고 하여 능고개라 한다.
노량진(노들나루)이란 이름은 백로가 노닐던 나루터라는 뜻으로 조선시대에 지금의 용산에서 수원 방면으로 가려면 노들나루를 이용하였는데 이곳에 도성을 지키기 위하여 노량진이 설치되어 마을 이름을 노량진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차고개는 사육신묘 마루터기에 있는 고개이름으로 이 고개는 조선 세조 때 영등포 이남에 살던 어떤 선비가 사육신을 처형함이 부당함을 간하기 위하여 도성을 향하여 말을 달려 오다가 이 고개에 이르렀을 때 육신이 이미 새남터에서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차! 늦었구나 하고 한탄하던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또 다른 유래는 조선 명종 때 이름난 점술가인 홍계관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자기의 명을 점쳐 보니 모년 모월 모일에 횡사하는 점괘가 나와 살아날 길을 찾아보니 딱 한 방법으로 용상 아래 숨어 있으면 횡사를 면한다고 하는지라 홍계관은 왕에게 아뢰어 승낙을 받고 날짜에 맞춰 용상아래 숨어있었다.
그때 때마침 쥐
한 마리가 마당을 질러가고 있어 이를 본 왕이 홍계관에게 지금 마당에 쥐가 지나가는데 몇 마리인지 점을 쳐 보아라 하고 명하였고 그가 곧 점을 쳐보고 말하기를 세 마리라 하였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노하여 형관을 시켜 홍계관의 목을 베라고 하였고 형장에 당도하여
다시 점을 쳐보니 만일 한 식경만 기다리면 살 길이 있겠다 하는 점괘가 나왔다.
홍계관이 형관에게 조금만 형 집행을 늦추어 달라고 간청하므로 형관이 허락하여 잠시 기다리고 있었다.
계관을 형장으로 보낸 후 왕은 측근을 시켜 그 쥐를 잡아 배를 갈라 보니 뱃속에 새끼 두 마리가 있었고 홍계관의 신묘한 점에 놀란 왕은 곧바로 신하를 형장으로 보내어 계관의 참형을 중지하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