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경기도 양평군과 여주시의 성지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9년 06월 16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맑고 바람 한점 없이 한여름 복 더위를 연상시켰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18도에서 영상 30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일신역-일신리-능선등로-성지지맥 마루금 접속-509.3봉-일신리 갈림삼거리 이정표(등산로없음, 수리봉정상, 마을회관)-송전탑-443 무명봉-무명안부-구둔치(설명판)-409.1봉-무명안부-374 무명봉-비포장 임도(매월터널)-281 무명봉-비포장 임도-297 무명봉-398.5 삼각점봉-이장된 묘지-무명안부-356 무명봉-357 무명봉-330.5봉 갈림 삼거리 안부-292 무명봉-묘지-무명안부-254.7봉-개활지(광주원주간 고속도로 위)-서화고개(88번 여양3로 2차선 포장도로, 양평군과 여주시 경계)-잣나무 군락지-파란 그물망-십자가의 길(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 수원관구)-이정표(십자가의길, 내려가는 길)-243.1 삼각점봉-길주의 구간(벤취와 예수 조각상에서 우측)-256 무명봉-265 통나무 벤취봉(길주의-직진)-음지말 시멘트 포장도로 안부-352.8봉(352.5봉)-간벌목지대-좌측 송전탑-305 무명봉-352.5봉-갈림 삼거리 이정표(써니빌 양평)-372.6봉-373.8봉-366 바위 무명봉-써니빌 양평 이정표 갈림 삼거리-철조망-336.6 삼각점봉-그물망(좌측 민가와 논 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와 비포장 임도-사각정자-복숭아 과수원-비포장 임도-315.4봉-비포장 임도-차량통제용 바리게이트-능선진입-376 무명봉-392 무명봉-393.1봉 갈림 삼거리-353 무명봉-풀목산(385.8봉, 많은 돌탑들)-바위등로 우회지대-묘지3기-뒷대고개(9번 2차선 포장도로, 여주시 북내면과 강천면 경계)-불난 흔적-무명안부-272.1봉-폐 산불초소봉(276봉)-273.2 삼각점봉-잡목지대-256 무명봉-270.7봉-261 무명봉-274 무명봉-분지고개(안부)-라파엘의집 예수상-지맥 마루금 복귀-예수 조각상-369 무명봉-389.5 삼각점봉-392.8봉-355 바위 무명봉-좌측 송전탑-우측 골프장-368.8봉-295 무명봉-361.5봉 갈림삼거리-385 삼각점봉-보금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보금산정상 1.3 Km, 마감산정상 690 m, 경기도 여주 학생야영장 2.2 Km)-현위치 2.1 보금산 삼거리 이정목-보금산 소나무-이정표(보금산정상 220 m, 마감산 정상 1.7 Km, 경기도 여주 학생야영장 1.1 Km)-이정표(보금산정상 125 m, 마감산정상 1.8 Km, 경기도 여주 학생야영장 1.0 Km)-사각탁자와 이정표(학생야영장 0.8 Km, 금마교 구름다리 1.4 Km와 마감산 1.9 Km)-보금산(364.3봉, 정상석, 헬기장)-보금산 갈림 삼거리 복귀-마감산 조망-나무계단-금마교(7번 2차선 포장도로 위)-7번 2차선 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4.69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성지지맥 산행 - 20.44 Km)
성지지맥 금마교에서 섬강과 남한강의 합수점까지
접속구간 - 총 04.25 Km, 02.11 Km 일신역에서 성지지맥 일신리 마을회관 갈림삼거리까지 02.14 Km 보금산 갈림삼거리에서 보금산까지 왕복
산행트랙 :
산행시간 : 바람 한점 없는 한여름 복 더위에 너무나 힘들게 진행하여 09시간 53분 (08시 01분부터 17시 54분까지)
교통편 및 숙박 : 갈때 - 05:45지하철 2호선 봉천역에서 첫 지하철 탑승
06:27 사당에서 4호산 지하철로 환승해 이촌역에서 청량리행 중앙선 탑승
06:50 청량리역 도착 해 일신역까지 매표 후 음료수 구입(총 9,400.- 원)
07:05 강릉행 무궁화 호 탑승하여 일신역으로 출발
07:59 일신역 도착해 하차해 곧바로 산행 시작
올때 - 17:54 성지지맥 제3구간 산행 종료 후 배낭 정리하며 택시 호출
18:10 호출한 택시로 여주시내의 힐사이드 목욕탕까지 이동(16,000.- 원)
19:20 목욕탕에서 나와 근처의 무한리필 식당에서 돼지고기 모듬과 맥주로 저녁식사(15,000.- 원)
20:30 여주복합터미널에서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행 고속벗 탑승 (4,400.- 원)
21:40 강남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
22:10 지하철 3호선과 2호선으로 환승하여 무탈하게 귀가
성지지맥이란 ???
성지지맥은 백두대간 오대산 두로봉에서 오대산과 계방산 및 용문산을 지나 양수리 두물머리로 이어지는 한강기맥 금물산에서 서남쪽으로 가지를 쳐 섬강이 남한강에 합수되는 여주군 강천면 강천리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55.9 Km되는 산줄기를 말한다.
섬강의 좌측 분수령이되며 성지봉(788봉), 도덕고개, 벗고개, 턱걸이고개, 삼각산(538.3봉), 구둔치, 서화고개, 분지고개, 성주봉(343봉), 뚜갈봉(216봉), 창남이고개, 자산(246봉)을 지난다.
소나기 예보로 인해 제3구간과 4구간을 뒤바꿔 마무리하며 무더위에 고생하였지만 그래도 무탈하게 완주한 성지지맥에서의 추억을 가슴에 묻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제3구간은 원래 6월 15일인 토요일 산행으로 계획을 하였지만 오후부터 강한 소나기가 내린다는 예보로 인해 조금 짧은 마지막 제4구간을 먼저 마무리하고 일찍 귀가한 후 일요일 당일 산행으로 진행하다 보니 조금은 순서가 어긋나 버렸지만 큰 시간차가 아니기에 그냥 진행하기로 한다.
대체적으로 평이하고 온순한 등로였지만 역시나 맑고 강한 햇살에 무더운 여름철 산행은 너무나 무거운 식수 문제로 어려움이 많았고 특히나 이곳 제3구간 역시 마지막에 높은 봉우리들이 수도 없이 솟아 있어 체력적인 문제로 약간 힘들게 진행을 한 구간으로 기억된다.
그래도 몇 일동안 열심히 운동하며 체력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간간히 터지는 환상의 조망과 그림같은 구름을 친구 삼아 무탈하게 성지지맥 산행도 완주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었으며 연 이틀 간 좋은 분들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아 좋은 고장으로서의 여주시도 기억에 저장해 보는 시간이었다.
아침 8시밖에 안되었지만 내려쬐는 강렬한 햇살은 발써 온 몸을 굵은 땀방울이 적시기 시작하고 어젯밤에 내린 소나기로 인해 등로 옆 잡풀과 나뭇가지에는 물방울들이 맺혀있다 이 산객이 지날 때마다 물방울들이 비산하며 등산복과 등산화를 적시고 있다.
지난 주 내려 온 정상 등로인 계곡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능선 등로를 따르다 보니 엉뚱하게도 지난 구간 걸었던 509.3봉 직전으로 올라 예기치 않게 509.3봉은 두번이나 오르게 되었다.
평이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관동대로였던 구둔치를 넘어 오르니 벌목 후 싸리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등로 좌측으로 생각지도 못한 한강기맥의 용문산 일대가 시원하게 조망되기 시작하여 잠시 발걸음 멈추고 그 아름다운 용문산 능선과 그 위에 떠 있는 그림같은 구름을 사진에 담으며 잠시 시인이 되어 보는 시간이다.
참으로 많은 추억과 좋은 기억들이 남아 있는 용문산이지만 이제 이 맥 잇기 산행에 빠진 이후로는 다시 들리기가 어려우니 언제나 아음 편히 느긋하게 즐기며 다시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어젯밤 U-20 월드컵 결승전 경기를 잠시 시청하다 무거워진 눈껍풀을 주체하지 못하고 편안하게 자고 일어나니 이제 새벽 4시밖에 안되었는데 옆지기는 잠도 자지 않고 끝까지 시청하고 이제서야 자리에 누우려고 한다.
이 산객이 성지지맥 마지막 산행을 위해 일찍 집을 나선다니 어제 준비한 과일과 떡 그리고 얼린물을 준비해 주며 누룽지 한사발을 끓여 줘 감사한 마음으로 배를 채우고 봉천역에서 첫 지하철을 이용해 먼길을 출발한다.
사당과 이촌에서 환승하여 이른 시간에 청량리역에 도착을 해 조금 더 식수와 음료수를 준비하여 강릉행 7시5분 열차에 탑승하여 졸다 깨다를 하다보니 아침 7시 59분에 목적지인 일신역에 도착을 하고 내려가지 전 지나 온 방향으로 사진 한장 남기고 역을 빠져 나간다.
일신역은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일신리에 있는 간이역이며 중앙선에 있는 기차역으로 석불역과 매곡역 사이에 있는 구둔역의 새로운 역 이름이다.
1940년 4월 1일 보통역(구둔역)으로 영업을 시작했으나 여객 감소로 인해 1996년 1월 1일 승차권 차내 취급역으로 전환되었으며 2006년 12월 4일 등록문화재 제296호로 지정되었다.
중앙선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인해 2012년 8월 16일 새 역사로 이전했고 무궁화호가 운행되며 여객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코레일(Korail) 수도권동부본부 소속으로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일신리 1815-27에 있으며 2013년 현재 역명으로 변경되었다.
구역사는 2006년 12월 4일 등록문화재 제296호로 지정되었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배우 수지가 두 팔 벌려 철길 위를 걷는 장면과 유명 가수 아이유의 화보를 찍은 장소로 유명한 구둔역이 바로 지금의 일신역이며 구둔역이란 명칭은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해 이 마을 뒤쪽의 산 위에 아홉개의 진을 쳐 아홉 구와 진칠 둔자로 정한 마을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구둔역이었는데 복선화 작업을 하면서 역도 이전을 하면서 일신역으로 개칭된 간이역에서 또 새로운 하루를 열어 보는 시간이다.
철도역을 빠져 나오니 마침 이곳을 경유하는 버스가 회차를 하고 있고 그 넘어 저 멀리에는 지난 주 내려왔던 성지지맥 마루금이 짙은 녹음속에 제법 까칠한 오르막을 자랑하며 벌써부터 이 산객의 기를 꺽어 놓고 있는 듯 보인다.
역사를 빠져나와 좌측으로 걸어 가 만나는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둔덕을 넘으니 도로 좌측으로 일신1리 노곡마을 이정석이 보이고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일신리이다.
일신리는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의 지대가 비교적 평탄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금당천이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금동리, 지산리, 구둔리, 신촌리, 노일리를 합쳐 일신리가 되어 지평면에 편입되었다.
자연 마을로는 먹방이(묵방), 못저리, 구둔 등이 있는데 먹방이는 묵방이라고도 불리며 먹을 만들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고 못저리는 연못이 있었다는 곳이며 구둔은 아홉 굽이의 골짜기에 위치한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다.
둔덕으로 올라 도로 우측 뒷쪽으로 보이는 일신역을 사진에 담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해 들어가니 일주일 사이에 논의 벼가 많이 자라고 등로는 포크레인이 넓은 임도를 만들어 잠시 편안하게 걸어 진행한다.
하지만 논이 끝나고 좌측 잡풀들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능선 방향으로 들어가니 어젯밤 내린 빗방울이 나뭇가지와 풀섶에 내려 앉아 있다 이 산객의 움직임에 비산하며 금새 등산복과 등산화를 적시고 있다.
잠시 후 우측 계곡 쪽으로 나 있는 등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 등로를 따르니 커다란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며 빗방울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등로는 자꾸만 멀어져 결국 지난 주 토요일 걸었던 성지지맥 마루금 방향으로 너무나 힘들게 올라 약간 중첩되는 거리를 걷게 되었다.
그래도 예상보다 20여분 늦게 정상 성지지맥 마루금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깊은 한숨을 토해내고 안도하는 시간이었다.
잠시 더 남쪽으로 걸어 진행하니 지난 주 너무나 힘들게 올랐던 잘린 참나무 가지가 말라있는 509.3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며 웃음만 남겨두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저 멀리 지난 주 토요일 우측으로 하산했던 일신리 마을회관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까지 2.11 Km 거리를 1시간하고도 3분여가 더 걸려 도착을 했으니 예상보다는 늦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등로를 따라 정상적인 마루금에 접속했다는 사실이 더욱 크게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성지지맥 제3구간 산행을 시작해 보는데 생각보다 평이하고 완만한 내리막 등로가 이어져 있어 힘들게 올라 온 아침 시간을 조금은 여유롭게 극복해 보는 시간이다.
하지만 등로에는 산악오토바이 바퀴 자국이 깊고 선명하게 나 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안기고 가끔은 깊게 쌓여 있는 낙엽들로 인해 위험하기까지 한 상황이라 조심스럽기만 하다.
잠시 후 등로 옆으로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 하나가 보이고 다시 이어지는 부드러운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의 띠지가 걸려 있는 443 무명봉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무명봉을 지나니 그동안 잘 보이지 않았던 바위들이 보이고 아름다운 조선 소나무들을 살펴보며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간벌목들이 흩어져 있는 안부를 지나 금새 깊은 골짜기를 이루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한쪽에는 구둔치에 대한 설명석이 보인다.
구둔치는 소로의 고갯마루로서 경기도 양평군의 동남부 양동면 매월리 달웅개에서 지평면 일신리 구둔을 가는 길에 위치한 고개이며 예전에 이 고개에 군대가 주둔하며 전투가 계속되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하는데 예전 관동대로라 불렸던 도로의 첫번째 고개로도 유명한 고갯마루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지평현에 구질현이 현 동쪽 15리 지점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해동지도 지평현 도엽에 구존봉이라고 표현되어 있으며 광여도와 대동여지도에서 건지산 서쪽에서 구존치가 확인된다.
조선지지자료에 하동면 구둔리에 위치한 구둔치로 기록되어 있고 일신초등학교 남쪽을 구둔이라고 한다.
구둔교와 구둔역 등에서 관련 지명을 엿볼 수 있다.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와 애환이 담겨 있는 구둔치를 지나 오르며 옛날 관동대로에 대해 생각해 본다.
방금 전 통과한 구둔치는 조선시대 관동대로의 첫번째 고갯마루로서 지금도 제법 사람들의 왕래가 있어 보이지만 예전처럼 한양(서울)을 가기 위한 목적이 아닌 산행이나 임산물 채취를 위한 목적이 대부분일 것이다.
관동대로는 조선시대 서울 도성에서 망우리를 거쳐 양평(당시는 양근, 지평)에서 원주, 안흥(횡성 강림면), 방림(평창), 진부(평창), 횡계(평창), 대관령, 강릉, 삼척, 울진,월송진(울진)을 거쳐 평해까지 이르는 도로이고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9개 대로 가운데 하나였으며 총 거리는 서울에서부터 885리였다.
조선 전기는 주로 농업을 위주로 하는 현물 경제 체제를 기본으로 하였기 때문에 수도와 극히 일부의 지방 행정 중심지를 제외하고는 도시가 크게 발달하지 못하였고 국가의 무본억말(농업을 장려하고 상공업을 억제함) 정책은 상공업 발달을 저해하였다.
이에 따라서 당시의 교통과 통신 체제는 사회와 경제 의미보다 주로 군사와 행정상의 의미가 컸으며 철저한 중앙집권화 경향으로 수도 한성부를 중심으로 전국의 도로망을 개편하였다.
증보문헌비고에서 제1로는 경성에서 고양, 파주, 장단, 개성 등지를 거쳐 황해도에 이르고 서북쪽으로 평안도 의주에까지 이르는 노선을 말하고 제2로는 경성에서 동북쪽으로 나아가 강원도 김화와 금성을 거쳐 함경도 경흥의 서수라에까지 이르는 노선이며 제3로는 경성에서 양평, 원주, 강릉, 삼척, 울진, 평해로 연결되는 노선을 말한다.
제4로는 경성에서 한강을 건너 용인, 충주, 문경, 대구, 밀양, 양산, 동래를 거쳐 부산에 이르는 노선을 말하고 제5로는 경성에서 함창, 상주, 성주, 함안, 진해, 고성을 거쳐 통영에 이르는 노선을 제6로는 경성에서 동작진을 건너 과천, 천안, 공주, 여산, 전주, 남원, 함양, 진주, 사천, 고성을 거쳐 통영에 이르는 노선을 말하며 제7로는 경성에서 삼례역에 이르고 여기에서 태인, 정읍, 장성, 나주, 해남을 거쳐 제주에 이르는 노선이며 제8로는 경성에서 평택을 거쳐 충청 수영에 이르는 노선을 제9로는 경성에서 양화도를 거쳐 김포, 통진, 갑곶진을 거쳐 강화에 이르는 노선으로 각각 편제하여 기록하였다.
이 가운데 제3로 경성(서울)으로부터 강원도 평해에 이르는 도로망이 이른바 관동대로인데 거리는 총 885리였으며 구간별로 보면 서울에서 원주까지는 235리, 원주에서 강릉까지는 290리, 강릉에서 삼척까지는 120리, 삼척에서 평해까지는 230리였다.
잠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참나무 등로를 지나 예전에 벌목지였는지 제법 키 큰 관목들과 싸리들이 보이는 등로 좌측으로 영월지맥의 치악산과 그 우측으로 백운지맥 마루금들이 아름다운 하얀 구름 아래 드넓게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남기고 출발한다.
사람 키 높이보다 더 웃자란 싸리나무들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걸어 오르니 등로는 다시 커다란 참나무 등로로 바뀌면서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이 쌓여 있는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완만하게 걸어 오르며 자연을 마닉하다 보니 작은 바위 위에 쓰러진 고사목이 얹혀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409.1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른 특별한 내용이 없기에 곧바로 다시 출발한다.
여전히 이어지는 커다란 참나무 아래 수북하게 쌓여 있는 낙엽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남쪽에서 북동쪽으로 바뀌어 진행되고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보이는 조망을 살펴보니 방금 전 올랐던 443 무명봉 뒤로 어렵게 통과한 509.3봉이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 아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등로가 갑자기 좌측으로 크게 꺽이면서 지금까지 짙은 녹음으로 보이지 않던 지나 온 마루금이 살짝 그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이기에 너무나 소중하게 그 흔적을 남겨 본다.
그렇게 지나 온 등로를 살펴보며 산객의 키보다 더 큰 싸리나무를 헤치며 오르니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멋진 풍경들이 눈에 들어 와 자세히 살펴보니 한강기맥 상 용문산 줄기가 이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주위를 살펴보고 조망이 가능한 곳으로 이동해 많은 사진을 남기고 뒤돌아 나온다.
등로가 다시 북동쪽에서 남동쪽으로 바뀌고 여전히 키 작은 관목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마루금은 이제 급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멋진 조망과 풍경들이 펼쳐지고 자세히 살펴보니 영월지맥의 치악산 구간과 그 우측 저 멀리 조만간 다시 올라야 할 백운지맥의 마루금들이 환상의 모습으로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그 풍경들을 사진에 담아 본다.
잡목들로 인해 등로가 보이지 않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서 생각지도 못한 환상의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며 많은 사진을 남기고 다시 조심하며 내려가니 싸리나무와 칡넝쿨이 혼재되어 있는 무명안부를 넘어 다시 가파르게 올라가 본다.
잠시 걸어 오르니 그늘진 나무 밑으로 이동되고 그렇게 잠시 더 어렵게 걸어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에 비닐 띠지가 남겨져 있는 374 봉에 도착을 해 잠시 한숨을 돌려 본다.
휴식 후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 본다.
다시 이어지는 참나무 그늘 등로로 들어가니 조금은 시원함을 느끼며 편안하게 걸어가고 다시 내려갔다 오르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곳 역시 산악 오토바이들이 많이 지나다녔는지 등로는 온통 파헤쳐져 있어 조심스럽게 걸어 본다.
잠시 후 등로에는 참나무 대신 소나무가 보이기 시작하고 여유를 가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갑자기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 지도를 살펴보니 아래로는 중앙선 철도가 지나는 매월터널 위이다.
매월터널 위 비포장 임도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올라 가파르게 오르니 웅덩이 주위로 소나무들이 보이는 281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자리펴고 준비한 간식과 얼음물로 목을 축이고 허기를 달랜 후 출발한다.
출발해 잠시 걸어 가니 또 다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사진 한장 남기고 도로를 건너 절개지 위로 힘들게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비스듬하게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산악 오토바이들이 남긴 패인 등로를 따라 조심하며 걸어가니 준희님이 걸어 놓은 398.5미터라는 이정판이 보이고 그 아래에는 내용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 있는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398.5 삼각점을 지나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평이하게 진행하니 눈 앞에 갑자기 이장된 듯한 묘지터가 나타나고 그 묘지터 좌측으로 멋진 조망과 풍경들이 펼쳐져 있어 잠시 이름을 찾아 본다.
잠시 후 만나야 할 광주원주간 고속도로 넘어 양동쪽 산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하늘의 하얀 뭉게구름에 닿아 있는 곳을 살펴보니 진행하다 중단된 백운지맥의 백운산 자락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참으로 많은 추억과 기억을 가지고 있는 백운산과 덕동계곡이기에 늘 이 산객의 가슴속에 간직된 산이기도 하다.
양동과 백운지맥 상 백운지맥 능선을 살펴보고 좌측 위로 조금 더 올라 살펴보나 드디어 찾고 있던 영월지맥의 치악산 산군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곳 역시 고도감이 있기에 그 위에 떠 있는 하얀 구름으로 모자를 만들어 쓰고 있는 듯 다가온다.
그 우측 아래로는 여전히 백운지맥의 백운산군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고 있어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이다.
잠시 더 그곳 이장된 듯한 묘지가 있는 곳에서 조망과 풍경을 감상하고 다시 갈 길 먼 거리이기에 출발을 해 보지만 무더위가 심해지며 자꾸만 시원한 식수를 마시는 횟수도 증가하고 있다.
그렇게 환상적인 조망을 즐기고 다시 참나무 그늘 등로를 따라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 무명 안부를 통과 해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오르니 정상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보이고 우측으로 돌아 통과하니 등로는 다시 아름다운 참나무 등로가 열리면서 뜨거운 햇살을 박아 준다.
잠시 후 바위와 고사목이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계속 전진하니 가지가 세가닥인 참나무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357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무명봉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참나무 그늘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이름없는 무명 안부도 통과한다.
내려갔으니 다시 올라가야 하고 그렇게 잠시 올랐다 또 다시 내려가니 내리막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무명안부를 지나 올라 참나무가 잘려진 밑둥이 보이는 29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하고 아직도 남아 있는 얼음물로 더위를 식혀 본다.
그 무명봉을 지나 다시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원형 철조망이 보이고 살펴보니 등로 좌측에 보이는 묘지를 지키기 위한 원형철조망을 설치한 것이다.
묘지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다시 통과한 후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이제부터 한동안은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벗나무가 자리하고 있는 254.7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안부를 지나 오르니 잘려진 나무 등걸이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부드러운 참나무 등로를 타고 여유롭게 걷다 보니 금새 눈 앞에 개활지가 펼쳐지고 바로 앞에는 직선으로 뚫린 고속도로 위를 차량들이 빠르게 통과하며 내는 굉음이 귓전을 때리고 있다.
최근에 지맥 산행을 하면서 자주 이용했던 고속도로인데 이렇게 위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이 조금은 이색적이면서도 낯설기만 하다.
절개지가 내려다 보이는 우측으로 꺽어 가파르게 걸어 내려가며 그 광주원주간 고속도로 위를 통과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절개지를 내려가니 등로 좌우측으로 곧게 뻗어 있는 광주원주간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있고 그 위를 달리는 차량들이 내뿜는 소음이 생각보다 크게 들려오며 고막을 찟을 듯 다가온다.
이곳은 바로 제2영동고속도로라고도 불리는 광주원주간 고속도로로서
광주원주고속도로(고속국도 제52호선)는 경기도 광주시를 기점으로 강원도 원주시를 종점으로 하여 동서를 잇는 대한민국의 고속도로이다.영동고속도로 교통량 증가와 지역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제2영동고속도로 주식회사에서 2011년 11월 11일에 착공하여 2016년 11월 11일에 개통된 민자고속도로로 별칭으로는 기존 영동고속도로를 대체한다고 하여 이 기업의 명칭을 따서 제2영동고속도로라고도 불린다.광주원주고속도로는 왕복 4차선으로 중부고속도로, 제2중부고속도로, 경기광주 분기점, 영동고속도로 원주 분기점을 동서로 잇는 고속도로로 총 연장 59.6 Km 구간이다.
서울로 올라가는 방향의 고속도로를 담아 본 풍경이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뜨거운 태양열을 피해 그 광주원주간 고속도로 위 절개지를 빠르게 통과한 후 다시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잠시 평이한 참나무 등로가 이어지더니 등로는 우측으로 휘돌아 내려가고 있다.
잠시 후 다시 만나는 88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여양3로로서 이곳이 바로 도상 서화고개이다.
서화고개(88번 2차선 포장도로, 여양3로)는 경기도 양평군의 동남부 양동면 단석리 요골에서 여주군 북내면 서원리 서화로 가는 길에 위치한 고개이며 조선지지자료에 서화현이 송석리에 있다는 기록이 보인다.
서원리는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 대부분의 지대가 비교적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금당천이 마을 서쪽을 따라 남북으로 뻗어 흐른다.
자연 마을로는 원골, 서화, 선돌, 율리 마을 등이 있는데 원골 마을은 원집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서화 마을은 서화고개 밑에 위치한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선돌 마을은 선돌이 있었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며 율리 마을은 밤나무가 많다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도로 좌측으로는 양평군이 우측으로는 여주시 서화마을의 경계로서 서화고개라는 이름도 우측 아래에 있는 서원리 서화마을에서 유래된 듯 싶다.
서화고개를 통과해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잣나무 군락지가 펼쳐지는데 문제가 생겼는지 많은 마무에는 병해충 예방과 치료를 위해 주사를 했다는 표시들이 보인다.
짧은 잣나무 군락지의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파란 그물망이 보이고 잠시 후 등로는 잘 정비된 상태로 멍석이 깔려 있으며 예수 조각상도 보이는데 지도를 보니 등로 좌측으로 까리따스거단길 피정의집이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아마도 그곳에서 설치한 듯 보인다.
그곳 옆 벤취에서 잠시 배낭 내려 얼음물로 목마름을 달랜 후 다시 출발한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또 다른 모습의 조각상들이 계속 나타나고 곧이어 한명의 신부와 한명의 일반인처럼 보이는 두명이 앉아 쉬고 있는 좌측 옆으로 이정표가 보여 살펴보니 이곳 등로를 십자가의 길이라 명칭을 한듯 보인다.
피정이란 성당과 수도원 등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행하는 일정기간 동안의 수련생활을 지칭하는 용어를 말하는데 수련생활이나 천주교 수련생활을 지칭한다고 되어 있다.
아마도 불교의 묵상이나 기도쯤 되는 용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걸어 본다.
수녀님이 쉬고 있던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는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는데 등로 좌측 아래로는 붉은 건물의 까리따스 거단길 피정의집이 생각보다 크고 많이 내려다 보인다.
잠시 후 멍석깔린 등로 우측 위로 243.1 삼각점봉이 보이는데 이곳에도 역시 맨발님이 이정판을 걸어 놨는데 삼각점은 인식이 불가능할 정도로 낡아 있다.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등로로 복귀해 계속 멍석이 깔린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비포장 임도같은 평이한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간간히 벤취들도 보인다.
아무 생각없이 그 넓은 등로를 타고 벤취쉼터 1개가 설치되어 있는 246 무명봉으로 올라 사진 한장 남기고 계속 좋은 등로를 따르다 느낌이 이상해 지도와 트랙을 보니 정상 등로는 이곳에서 벤취 우측 뒷로 나 있는 능선 등로를 찾아 따라야 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많은 선답자들이 지나갔는데 로프가 소실된 곳으로 등로가 열려 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우측 능선으로 들어가 참나무 그늘 숲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르니 금새 등로 좌측으로 조망이 열리고 사진 한장 남겨 보는데 살펴보니 양동면 단석리쪽 산줄기로서 우측 저 멀리에는 잠시 후 걸어야 할 성지지맥 마루금도 보일 듯 싶어 찾아 보지만 분간하기 쉽지 않다.
계속 이어지는 뚜렷한 참나무와 소나무 등로를 번갈아 타며 부드럽게 걸어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통나무 벤취2개가 눈에 들어 오고 사진 한장 남기고 우측으로 휘어지는 뚜렷한 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다 트랙을 보니 등로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나 있는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 통나무 벤취 두시편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 길주의 분기점이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통나무 벤취 2개가 있는 곳에서 잠시 등로를 찾지 멋해 헷깔려 하다 어렵게 통나무 벤취 뒷쪽으로 나 있는 등로를 찾아 긴 한숨과 함께 산행을 이어가 본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이어가니 금새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음지말 안부에 도착을 해 잠시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본다.
음지말은 등로 좌측의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단석리에 있는 마을로서 단석리에는 마을 앞으로 단석천이 흐르며 마을 뒤로는 산지가 위치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다라 장대리, 거단리, 송석리, 상소리 일부를 합쳐 단석리라 하고 양동면에 편입되었다.
자연 마을로는 다락그니, 덤바위, 무당골, 벙데미 마을 등이 있는데 다락그니는 높은 지대에 위치한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덤바위는 바위 더미가 있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무당골은 무당이 살았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며 벙데미는 부엉이가 살던 곳이라는 뜻에서 붙여졌다.
절개지가 높아 직접적으로 오르지 못하고 시멘트 도로 따라 우측의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다시 이어지는 참나무 등로를 따라 오르니 바닥에는 깊은 낙엽이 쌓여 있고 그 낙엽을 밟으며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걷고 있는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그렇게 잠시 무심으로 걸어 오르며 바스락 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만 귀를 열고 듣다 보니 어느덧 352.8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도 역시 맨발님의 이정표가 나뭇가지에 달려 있어 고마운 인사 한번 드리고 다시 산행을 이어가 본다.
참나무에 달려있는 352.8(맨발님은 이곳 높이를 352.5봉)봉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출발하니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에도 역시나 커다란 참나무들이 자주 보이고 있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에는 어지럽게 널려있는 간벌된 나무토막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고 그렇게 힘들게 내려가니 등로 좌측 옆으로 번호를 확인할 수 없는 송전탑이 높게 올려다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조금은 무 거워진 발걸음을 옮기니 이곳 역시 산악오토바이 바퀴가 깊게 패여 있어 조심하며 걸어 내려간다.
잠시 후 등로 우측 옆으로 352.5봉이 있어 다녀오지만 산패도 없고 특이한 것도 없어 사진에 표기만 하고 곧바로 나와 정상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참나무 숲을 걷다 보니 등로 좌측으로 써니빌 양평가는 방향 표시와 글씨가 보이는 이정표가 나타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직진의 마루금을 타고 걸어 내려간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뚜렷하게 이어지며 완만하게 올라 소나무들이 보이는 372.6봉에 도착을 하지만 봉우리 같지 않은 곳에 아무 표식도 없어 지도를 보지 않았으면 그냥 통과해도 몰랐을 봉우리이다.
다시 진행하니 커다란 소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을 통과하고 그렇게 빠르게 전진하니 다시 소나무들이 보이는 372.6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배낭 내려 남아 있는 떡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며 남아 있는 얼음물로 갈증까지 달래고 나니 조금은 살것 같다는 느낌이지만 잠시 쉬고 있는 시간조차 주지 않는 날파리들의 습격으로 쉬는 것조차 쉽지 않다.
스틱 하나로 장소를 표기하고 다시 출발하니 이곳은 참나무보다는 소나무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등로로 바뀌고 있다.
나즈막한 무명 안부를 지나 오르니 생각지도 못한 바위봉이 나타나고 그 바위를 우측으로 돌아 통과하니 급경사 내리막 등로가 기다리고 있다.
제법 그럴듯한 무명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써니빌 양평으로 내려갈 수 있는 안내판이 서 있고 조금은 빠르게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 철조망이 나타나며 그 정상부에 336.6 삼각점봉이 보인다.
준희님이 달아 놓은 이정판에 인사 드리고 사진을 담은 후 오른 등로를 뒤돌아 내려와 우측 내리막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더욱 뚜렷한 넓은 등로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낙엽을 밟으며 내려가니 등로 위에 제멋대로 쓰러져 나뒹굴고 있는 고사목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강아지들의 격한 환영의 소리를 들으며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푸릇하게 벼가 자라고 있는 논 경작지가 보이기 시작하고 사철나무가 조림된 지역 넘어 저 멀리 민가들도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경계에는 그물망이 설치되어 있다.
그 민가 뒷산에는 하얀 밤꽃이 활짝 피어 밤꽃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어 잠시 살펴보고 진행을 이어가 본다.
어릴적엔 가난이 싫어 시골에서 산다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전원 생활이 그리워지기 시작하고 나이들어 은퇴하면 한번쯤 물 좋고 공기 좋은 전원에서 살아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비포장 임도와 만나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커다란 느티나무와 사갇ㄱ정자 사이로 나 있는 고갯마루를 넘어 좌측으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는 복숭아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 복숭아 과수원 조성지를 우측에 두고 정상부로 오르니 흙을 파낸 절개지로 인해 우측으로 돌아 오르고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머리와 등줄기에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걷다 보니 온 몸에선 다시 굵은 땀방울이 샘물처럼 솟구치고 있다.
고갯마루로 올라 지나온 방향을 살펴보고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우측과 좌측으로 갈라지는 갈림 삼거리를 통과하는데 두번째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 방향으로 나 있는 묵은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금새 보도블럭들이 산재되어 있고 그 아래 묘지가 보이는 315.4봉에 도착을 하지만 강렬한 햇살에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그늘 속으로 파고든다.
보도 블록이 깔려 있는 315.4봉을 넘으니 묘지 한기가 보이고 그 묘지 좌측 옆으로 나 있는 등로를 따르니 비포장 임도와 만난다.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진행하니 짧은 잣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니 쓰러진 차량 통제용 바리게이트가 보인다.
그 바리게이트를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휘돌아 오르는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잡목들이 무성한 능선으로 오르니 생각보다 너무나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이 기다리고 있어 네발로 걸어 오르다시피 힘들게 오르는 시간이다.
가파르게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잠시 평이하게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로 이어진다.
커다란 소나무들이 보이는 조선소나무들이 보이고 잠시 후 쓰러진 고사목이 버이는 376 무명봉에 도착한다.
많은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을 지나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392봉에 도착하고 그곳을 지나니 관목들이 보이는 참나무 등로를 따라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393.1봉 갈림 삼거리인 무명봉에 도착해 잠시 한숨을 돌리고 진행을 이어간다.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혼재되어 있고 벌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등로를 지나니 녹음이 짙은 아름다운 등로가 열리고 그 가운데를 통해 자연을 즐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후 썩은 고사목들이 보이는 무명봉을 넘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갔다 안부를 지나 오르니 잘려진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350 무명봉에 도착하고 계속 이어지는 나즈막한 빨래판 등로에 조금은 지쳐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낙엽이 쌓여 있는 나즈막한 무명 안부를 지나 오르니 참나무 등로가 열리는데 한발 오르면 두발 미끄러질 것만 같은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에 제대로 된 산행이 불가능해 보이는 등로와 마주하고 긴 한숨만 내쉬는 시간이다.
직등으로 오르다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보여 우측으로 길게 우회한 희미한 등로를 따라 우회하며 걸어 오르니 드디어 많은 돌탑들이 세워져 있는 385.8봉인 풀목산 정상에 도착을 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주위를 살펴보며 추억을 남겨 본다.
풀목산(385.8봉)은 여주시 북내면과 강천면의 경계의 산으로 산이 봉긋하게 솟아 있어 정상 오르기가 쉽지 않은 산이다.
풀목산 지명의 유래는 풀 초가 아닌 뿔 각에서 유래된 것이라 하며 목은 눈 목 자에서 유래한 것이라 하는데 우리의 고어나 일본어의 목은 메이고 이 메는 뫼(산)에서 온 것이니 즉 뿔뫼(각산)가 풀뫼에서 풀메 다시 풀과 목과 산으로 불리게 된 것이 추측하지만 자료가 없으니 정확한 유래는 전해지지 않는다.
아무리 자료를 찾아 봐도 이곳 풀목산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었는데 선답자 중 한명이 위와 같은 자료를 정리한 것이 보여 차용해 본다.
오르기가 너무 힘들었는지 잠시 쉬었다 내려가는데도 정상적인 하산 등로를 찾지 못해 헤매다가 어렵게 낙엽 깔린 등로를 찾아 힘들게 내려가 본다.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쌓여 있는 낙엽과 자갈들을 조심하며 한동안 내려가다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정상 하산 등로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보여 그곳을 좌측으로 우회하며 내려가는 상황이다.그렇게 한동안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니 문화유공 묘지3기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니 9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뒷대고개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겨 본다.이곳 뒷대고개(9번 2차선 포장도로)는 여주군 북내면 중암리와 강천면 도전리의 경계로서 9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이며 지명은 강천면 도전리의 뒷대마을에서 유래된 듯 보이며 일명 도전리 고개라고도 불리고 있다.도전리는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에 있는 리로서 이 마을은 원심천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마을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자연마을로는 뒷대, 새말, 새텃말, 옻나무 다불이 있는데 뒷대는 도전리에서 으뜸이 되는 마을로 강천면의 맨끝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새말은 원심이 옆에 새로된 마을이라는 뜻이며 새텃말은 전거론 남서쪽에 새로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옻나무 다불은 아랫말 남쪽에 있는 마을로 옻나무가 있었다 하여 생긴 지명이다.잠시 머무는 시간동안 그래도 몇 대의 차량들이 통행하고 있어 평소에도 제법 차량들의 통행이 이뤄지고 있는 듯 보이는 고개이다.
뒷대고개를 넘어 북내면과 강천면 도로 표지판이 서 있는 곳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옆 소나무들은 온통 화마에 휩쌓였던 흔적들이 심하게 남아 있고 그렇게 오르니 깊은 골짜기 모양을 한 무명 안부를 통과한다.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오를수록 불난 흔적은 더욱 선명하게 남아 이 산객의 가슴에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어 진행에 어려움도 느낀다.
잠시 후 검게 그을린 소나무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272.1봉에 도착 해 사진 한장 남기는 시간에도 냄새까지 매쾌한 냄새가 나는 듯 느껴진다.
그 산불이 난 흔적이 뚜렷한 272.1봉을 지나니 등로에는 조금 더 녹음이 우거진 관목들과 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잡목들을 헤치고 전진하니 철 뼈대만 남아 있는 폐 산불감시초소가 덩그런히 남아 있어 조금은 흉물스럽게 다가온다.
사진 몇장 남기고 전진하는데 그 폐 산불감시초소와 어우러진 하늘의 하얀 구름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폐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벌목인지 불에 타 고사목이 된 나무들인지 모를 쓰러진 나무들이 널부러져 있는 등로를 지나니 등로에는 키가 큰 싸리나무 등로가 도배되어 있다.
잠시 더 그 싸리나무 숲을 헤치며 조심하며 걸어 오르니 싸리나무가 사라지는 곳 정상부에 273.2 삼각점봉이 나타난다.
준희님이 붙여 놓은 산패를 사진에 담고 삼각점을 찾아 역시 사진에 남긴 후 목례를 하고 그 정상부를 출발하니 불이 나면서 거목들이 사라지고 그 아래 새롭게 자라기 시작한 잡목들과 싸리나무들이 등로를 채우기 시작한 마루금을 따른다.
죽음은 새로운 탄생으로 이어받고 그렇게 또 세상은 변해가고 있음을 느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화마에서 벗어난 참나무 아래 새롭게 자라고 있는 잡목들과 잡풀들을 헤치며 빠르게 전진하니 등로는 다시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는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뚜렷한 참나무 등로가 이어지는 마루금으로 연결되고 있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소나무가 보이는 256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평이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빠르게 전진하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나풀거리는 270.7봉에 도착을 해 심호흡 한번 하면서 시원한 얼음물로 목마름을 달래 본다.
다시 낙엽 깔린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무명 안부를 지나 낙엽이 사라진 뚜렷한 등로로 이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힘겹게 걸어 오르니 못난이 소나무 한그루와 작은 바위가 보이는 257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잠시 심호흡 하면서 지도를 살펴보니 많이 진행을 한 듯 한데 이제부터 오르고 내려가는 빨래판 등로가 이어지며 고도도 상당히 올려야 하기에 체력적인 문제가 예상되기 시작한다.
다시 출발하니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전진하니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는데 등로는 자꾸만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고 좌측 앞으로는 예수상이 보이기 시작하여 우측으로 내려가던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내려가니 금새 깊은 안부의 분지고개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분지고개는 여주시 북내면 운촌리와 강천면 도전리를 이어주는 V자형 고갯마루로서 분지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지명 이름이다.
고개 좌측 도전리 쪽에 사각 쉼터와 라파엘이라는 복지 시설물이 있고 예수 상등 성당과 관련된 조형물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골프장이 내려다 보인다.
분지고개에서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좌측으로 돌아가니 사각정자와 민가들이 보이고 그 사각정자 뒷쪽에는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예수상이 보인다.
지도를 살펴보니 좌측의 건물은 라파엘직업재활센터라는 건물로서 장애인들의 작업장이 있는 곳처럼 보인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예수상도 만들고 예수 조각상도 만들어 등로 옆에 세워둔 것 처럼 보이는데 왜 그랬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이제 그 예수상 우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로 들어가 골짜기 치기를 해 주 능선의 마루금에 붙어 오른다.
주능선으로 힘들게 올라 좌측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으로 예수 조각상들이 줄줄이 나타나고 모양을 살펴보니 각 조각상마다 모습이 모두 다른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이 산객은 무교이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심오한 뜻이 있지 않을까 추측만 해 보는 시간은 역시나 궁금하기는 하다.
그렇게 몇개의 조각상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는 뚜렷하게 나 있고 등로 주위에 별다른 특이한 내용도 없기에 산행에만 집중하며 무심으로 걸어 보는 시간이다.
좌측은 참나무가 우측으로는 소나무가 보이는 등로를 따르니 다시 평이하게 진행되던 등로가 완만하게 올라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369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을 해 본다.
남아 있는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면하고 남아 있는 얼음물로 목마름을 달래니 다시 정신이 맑아지며 무거워진 두 다리엔 힘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소나무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369 무명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하니 등로는 낮아지는듯 평이하게 이어지고 등로에는 간간히 바위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진행하니 역광이라 그런지 사진기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지 사진이 흐릿하게 나타나기 시작하고 자꾸만 신경이 쓰여 피로도가 가중되고 있다.
그래도 조심하며 전진하며 많은 사진을 남기다 보니 389.5 삼각점봉에 도착을 하고 맨발님이 걸어 놓은 이정판에 인사를 드리고 사진 몇장 남긴 후 뜨거운 햇살을 피해 다시 출발한다.
그늘로 들어가니 어제 마지막 구간 걸었던 시간보다는 더위가 덜하다는 느낌으로 진행하고 잠시 후 다른 바위 봉우리를 만나 우측으로 우회하며 걸어가니 작은 물병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지도 상 392.8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와 키 작은 관목들이 전부이기에 물통을 사진에 담고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막바지 산행을 이어가니 피곤했던 몸과 다리들도 조금은 풀리는지 피로도가 상당히 완화되어 있다.
다시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금새 커다란 소나무들이 보이는 378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표시를 한 후 출발하니 이제부터 등로에는 제법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여 조금 더 주의하며 진행하는 시간이다.
다시 눈 앞에 거대한 바위들이 가로막는 355 바위무명봉에서 우측으로 돌아 우회하며 통과하니 등로 우측으로 아스라히 남한강과 그 남한강 넘어 여주시가 조망되기 시작하여 잠시 발걸음 멈추고 추억 한장 더 남기고 출발한다.
이제 오늘 산행도 길게 남지 않았음을 직감적으로 느끼며 조금 더 힘을 내 걷다 보니 등로에는 다시 키 작은 잣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등로 좌측 옆으로 번호를 확인할 수 없는 송전탑 하나가 올려다 보인다.
송전탑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멋진 골프장이 내려다 보이는데 지도를 보니 스카이밸리 골프 클럽이다.
너무 무더워서 그런지 골퍼들은 보이지 않고 텅빈 골프장 그린이 더욱 아름답게 내려다 보며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이어가니 공터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368.8봉에 도착을 해 심호흡 한번 더 해보고 다시 출발한다.
등로는 여전히 평이하게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게 이어지는데 체력적으로 어려운지 약간의 오르막 등로만 만나고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심호흡만 자주 해 보는 순간이다.
잠시 후 참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이곳 등로에도 여전히 산악 오토바이가 파 놓은 깊은 등로로 인해 무척 신경이 쓰이는 시간이다.
잠시 나즈막한 무명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가파르게 오르니 소나무들이 보이는 295 무명봉에 도착을 해 지도를 살펴보니 보금산 갈림삼거리도 이제 얼마남지 않아 보금산까지 다녀와야 하나 하는 고민을 다시 시작해 보는 시간이다.
다시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해 오르니 좁은 공터봉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다시 평이하게 전진하여 두어번의 무명봉들을 통과한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361.5봉 갈림 삼거리를 만나는데 그곳에는 커다란 벗나무 한그루와 소나무 한그루가 길목을 지키듯 서 있어 사진에 담고 다녀오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을 담아 좌측 361.5봉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를 응시해 본다.
하지만 특별한 내용이 없고 이름있는 봉우리도 아니기에 곧바로 출발하며 보금산을 어떻게 할 것인지 여전한 고민속에 걸어 본다.
벗나무와 소나무가 장승처럼 서 있는 361.5봉 갈림 삼거리를 지나 진행을 이어가니 갑자기 눈 앞에 돌 계단이 길게 이어지고 그 계단을 타고 오르니 군데 군데 보도블록들이 보이는데 예전에 무슨 건물이 있어던 흔적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파란 이정판과 삼각점이 박혀 있는 385 공터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정판은 너무 낡아 글씨가 모두 삭제되어 있고 그 옆으로 커다란 소나무 가지에는 다녀 간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세월이 흘렀음을 알려 주고 있다.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도 걸려 있어 잠시 더 살펴보고 좌측 증로로 내려 와 산행을 이어가니 금새 직진의 무명봉 방향으로 나 있는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우회하는 뚜렷한 등로를 따라 막바지 산행을 이어간다.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저 아래 갈림 삼거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한쪽에 서 있는 이정표를 살펴보니 직진의 성지지맥 정상 등산로와 우측으로 보금산으로 향하는 등로가 갈리는 삼거리이다.
보금산까지 편도가 1.3 Km 라는 거리 표시로 인해 조금은 두려웠지만 고민도 잠시 오후 5시 10여분이 가까워진 시간이기에 왕복 1시간 30분을 계산한다 해도 오후 7시까지는 7번 지방도로 위 금마교 아래까지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우측 금마산 방향으로 돌아 산행을 이어가 본다.
우측으로 잠시 걸어 진행하다 커다란 참나무 아래 배낭을 숨겨 놓고 모바일 폰과 스틱만 들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현위치 2.1 보금산 삼거리라는 이정표를 만난다.
다시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평이한 소나무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보금산소나무라는 안내판이 보이고 그 옆으로는 너무나 아름다운 분재형 소나무 두그루가 보여 사진 한장 남기고 보금산 정상부로 향한다.
보금산소나무를 살펴보고 다시 출발하니 등로는 여전히 완만하게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안부를 지나 다시 나무계단을 통해 완만하게 오르기 시작한다.
등로 좌측으로는 어제 먼저 올랐던 마감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고 잠시 후 보금산정상까지 22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계속 완만하게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보금산정상까지 125ㅣㅁ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다시 만나고 커다란 사각탁자와 이정표를 지나 오르니 금새 드넓은 헬기장 한가운데에 아담한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 보금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보금산(364.3봉)의 높이는 390미터로서 섬강과 남한강이 산을 둘러싸고 흘러 경치가 아름답다.
높지는 않지만 등산로 곳곳에 암릉이 많으며 보금산에서 가장 뛰어난 풍경은 정상 부근에 있는 기암인데 가파른 절벽 위에 있는 기암으로 마귀할멈 측간바위라고 부르는데 마치 치마 입은 여인이 턱을 두 손에 괴고 앉아 있는 모습처럼 보여 눈길을 끈다.
산행은 당고개에서 시작하며 이 고개는 삿갓재라고도 부르는데 옛날에는 산적이 많았다고 전하며 그래서 50명이 모여 서야 겨우 이 고개를 넘었다고 하여 오십 명 고개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고개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 오르면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숲을 지나고 이어 235미터봉에 이르는데 이곳에서부터 등산로는 평탄하다.
20여 분을 오르면 송전탑을 지나 석량고개에 도착하고 다시 북서쪽의 오르막 산길을 따라 오르면 성주봉에 닿는다.
성주봉을 지나면 산길이 평탄해지고 소나무가 무성한 숲을 지나게 되며 정상 못 미처 안부에 이르고 안부에서 경사가 급한 길을 오르면 마귀할멈 측간바위를 만난다.
여인처럼 생긴 바위의 모습을 감상하려면 정상 쪽으로 더 높이 가다가 되돌아 보면 되고 이곳에서 50미터 거리를 더 올라 정상에 이른다.
정상에서는 여주읍과 남한강이 시원하게 시야에 펼쳐지고 하산은 밀감농원으로 내려오거나 388미터봉을 지나 여주 청소년 야영장으로 내려오며 이 코스는 3시간 정도 소요된다.
교통편은 동서울터미널에서 여주행 버스를 이용하고 여주에서 강천행 버스를 이용하여 당고개에 도착한다.
주변에는 1993년 불교목공예가 박찬수가 설립한 목아 불교박물관이 있고 또 북내면에는 남한강변에 자리한 신륵사가 있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고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다수 있으며 숙박 시설은 여주시에 많다.
보금산 정상부를 살펴보고 추억을 남긴 후 조금 더 걸어 남서쪽 끝자락으로 가 보니 그곳에 환상의 조망이 펼쳐져 있어 숨죽이고 잠시 그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 빠져 보는 시간이다.
바로 앞에 남한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그 뒤로 여주시내의 고층빌딩들과 아파트촌들이 이곳이 이골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할 정도로 제법 규모가 큰 도시의 틀을 갖춘 여주시가 보인다.
그 뒤로 해룡지맥과 앵자지맥의 마루금들이 하늘금에 맞닿아 있는 풍경으로 다가오며 그 옛날 추억을 이야기 해 주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그 보금산 정상부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뒤돌아 내려가며 조금은 빠르게 걸어 본다.
잠시 후 오늘 처음 만나는 등산객을 보고 인사 나누고 빠르게 뒤돌아 나와 베낭을 챙겨 갈림삼거리로 돌아가니 이정표의 1.3 Km 거리보다는 훨씬 가까운 보금산까지의 거리처럼 느껴지는 시간이다.
아쉬움을 남기고 이제 금마교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니 가끔 차량 소음들이 들리면서 직진 등로 방향으로 어제 올랐던 마감산이 빼꼼하게 올려다 보여 사진 한장 남기고 금마교 방향으로 걸어 내려간다.
가끔 차량 소음들이 들리는 마대가 깔려있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나무계단을 지나 그토록 보고 싶었던 금마교 위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금마교는 여주시 강천면 걸은리에서 원주시 문막읍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있는 다리로서 다리 아래로는 7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고 있는데 산꾼에게는 보금산과 마감산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다리 유래는 금빛이 나는 말이 다니는 다리라는 뜻이라 하는데 조금 더 상세한 설명이 되어 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이곳에서 여주 택시를 불러 여유를 가지고 내려가며 많은 사진을 남겨 본다.
드디어 그 금마교를 건너 어제 오후에 소나기 예보로 인해 먼저 걸었던 마감산 방향의 등로를 따라 금마교 아래 7번 2차선 포장도로 아래에 도착을 해 금마교를 배경으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곳에서 스틱을 접고 배낭 정리하며 남아 있던 떡과 과일로 허기를 채우고 음료수로 목마름까지 달래고 나니 이제 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시간이 되었다.
잠시 더 기다렸단 도착한 여주택시를 타고 여주버스터미널 근처의 목욕탕으로 이동해 하루의 피로를 풀어 본다.
목욕 후 버스 터미널 뒷쪽의 먹자골목으로 가니 돼지고기 무한리필 식당이 보이고 그곳으로 가 시원한 맥주 한병에 공기밥까지 시켜 40여분 간 허기진 배를 채우니 드디어 4회에 걸쳐 진행한 성지지맥 산행이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여주시는 대략 한반도의 중앙부에 해당되고 동쪽은 강원도 원주시와 충청북도 충주시, 남서쪽은 이천시, 서쪽은 광주시, 북쪽은 양평군과 접한다.
광주산지의 연장인 구릉이 기복하고 있는 가운데를 남한강이 남동에서 북서로 관류하여 여흥동, 중앙동, 오학동(구 여주읍) 지역을 중심으로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남한강 및 그 지류 유역을 제외하면 해발고도 300에서 400미터의 저산성 구릉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 면적 중 임야가 약 48%를 차지하여 도내에서 그 비율이 높은 편이다.
시을 관류하는 남한강은 수운에 유리하여 여주를 수운을 이용한 미곡 집산지로 발전시켰으며 대체적으로 시의 서부가 낮고 편평한 데 비해 동부와 북서단에는 높은 산이 많다.
식사 후 다시 터미널로 복귀해 저녁 8시 30분 고속버스 표를 구매하니 약간의 피곤함과 졸음이 밀려오고 그렇게 버스에 오르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뜨니 벌써 서울에 도착을 하고 있다.
어제 오후에 이곳 양평과 여주 지방에 소나기 예보가 있어 제4구간을 먼저 산행 후 오늘 제3구간 산행으로 성지지맥 산행도 무탈하게 마무리를 한다.이제 다음 주말에는 장인어른 제사가 있어 대전 근방의 지맥 줄기에 잠시 올랐다 내려오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 주에는 오랫만에 죽마고우와 함께 지리산에 들어 하룻밤 묵으며 많은 추억을 남기려 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지맥 산행은 다시 다음달이나 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조금 늦어지는 감도 있지만 일찍 마무리 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이 없기에 건강 생각하며 서두르지 않고 꾸준한 지맥 산행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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