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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성지지맥(한강·완)

성지지맥 제1구간 분기점에서 도덕고개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9.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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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강원도 횡성군과 경기도 양평군의 성지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9년 04월 20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흐렸다 맑았다를 반복하며 초여름처럼 무척 무더위를 느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상 06도에서 영상 17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느르개 버스정류장(6번 2차선 포장도로)-유현1리 이정석-연내골 버스정류장(6번 2차선 포장도로)-비포장 임도-살구나무 글램핑 & 펜션-차량통제 차단기-사방댐-2009유현사방댐-다짐의 나무-사방댐 안내문-2017년도 유현임도(국유임도안내문)-능선진입-781.1봉 헬기장-한강기맥 접속 이정표(금물산 0.51 Km, 삼마치 9.09 Km)-이정표(금물산 0.16 Km, 삼마치 9.44 Km)-금물산(775.5봉) 이정표(성지봉 1.72 Km와시루봉 2.6 Km, 삼마치 9.58 Km)-이정표(0.04 Km)-성지지맥 분기점(751봉, 태양 전열판)-780.6봉-772 무명봉-759 무명바위봉-757.5봉-748 무명전망바위봉-국유임도안내문 갈림 삼거리 안부-714 무명봉-782.7봉(녹슨 부대경고판)-성지봉(성재봉, 787.4봉, 홍천24 삼각점, 군부대 경고판과 태양열 전열판)-바위 암릉구간 우회-무명안부-728무명봉 헬기장-비포장 임도 갈림삼거리(작은 소나무)-비포장임도(절개지)-잡목 능선진입-성황당 안부-비포장 임도 갈림삼거리-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군부대 경고판)-군부대 후문-경주김공과 황성고씨 묘지 능선진입-잣나무 군락지(공작새)-능선 갈림삼거리-518 무명봉-6.25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523 무명봉-531.4봉(6.25 전사자 유해 발굴현장)-521 무명봉-550.5봉-534 무명봉(6.25 전사자 유해 발굴현장)-자작나무 안부-잣나무 군락지-562.8 삼각점봉-바위 우회등로-481.6봉-417 무명봉-잣나무 등로-도덕고개(해발 300미터, 6번 2차선 포장도로, 한우조형물, 보현정 육각정)-도덕터널입구-풍수원교차로-풍수원 버스 정류장(풍수원교, 풍수원식당)-횡성 풍수원성당-풍수원 버스정류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4.77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성지지맥 산행 - 06.89 Km 성지지맥 분기점에서 도덕고개까지

               접속구간 총 07.88 Km - 느르개 버스정류장에서 성지지맥 분기점까지 05.7 Km                                                                                                      도덕고개에서 풍수원성당까지 02.18 Km)

산행트랙 :

20190420 성지지맥제1구간 유현리-도덕고개.gpx
0.08MB

산행시간 : 초등학교 동창들과의 저녁 약속 때문에 홀로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여 06간 02분 (08시 22부터 14시 25분까)

교통편 및 숙박 : 갈때 - 06:05 지하철 2호선 봉천역에서 지하철 탑승

                               06:50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횡성 행 시외고속버스 탑승 (10,600.-)

                               08:22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 느르개 버스 정류장에서 산행 준비 후 출발

                       올때 - 13: 48 도덕고개에서 성지지맥 제1구간 산행 종료

                               14:25 풍수원 성당 도착 해 잠시 둘러보기

                               16:05 풍수원 버스 정류장에서 횡성 행 동서울 버스터미널 행 버스 탑승 (10,200.-)

                               18:25 동서울 버스 터미널 도착 후 강변역에서 2호선 지하철 탑승

성지지맥이란 ???

성지지맥은 백두대간 오대산 두로봉에서 오대산과 계방산 및 용문산을 지나 양수리 두물머리로 이어지는 한강기맥 금물산에서 서남쪽으로 가지를 쳐 섬강이 남한강에 합수되는 여주군 강천면 강천리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55.9 Km되는 산줄기를 말한다.
섬강의 좌측 분수령이되며 성지봉(788봉), 도덕고개, 벗고개, 턱걸이고개, 삼각산(538.3봉), 구둔치, 서화고개, 분지고개, 성주봉(343봉), 뚜갈봉(216봉), 창남이고개, 자산(246봉)을 지난다.

 

 

옛 추억을 더듬으며 새로운 산줄기와의 만남을 즐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오늘 저녁에 안양에서 국민학교 동창회가 있는 날이라 산에 들기가 애매하기만 한데 그렇다고 집에서 기다렸다 모임에 참석하려니 하루가 아쉽다는 생각에 대중교통을 이용해 간단히 산행 후 돌아 올 수 있는 산행지를 찾다가 최근에 오르려고 준비했던 성지지맥 첫 구간을 다녀오기로 한다.

새병 일찍 일어 났을 땐 새벽 일찍 애마를 이용해 백운지맥 제2구간을 다녀 온 뒤 곧바로 저녁 모임에 참석하려고 하였지만 산행거리도 멀고 시간도 꽤 걸릴것 같아 성지지맥으로 방향을 돌린다.

하지만 이 성지지맥 역시 첫 구간을 도덕고개에서 끊으면 나머지 구간 나누기가 쉽지 않아 고민이지만 세번이 아니고 네번을 들린다 해도 좋아하는 산행을 한다고 생각하니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원칙을 지키려는 직행버스 기사님이 조금은 야속했지만 기분 좋게 6번 2차선 포장도로와 비포장 임도를 타고 금물산 아래 능선 앞까지 올라 와 길도 없는 낙엽 등로를 타고 너무나 힘들게 오르니 금새 한강기맥 마루금에 접속되고 오래 전 폭우를 만나 힘들게 걸었던 추억을 생각하며 금물산 지나 757.5 바위봉에 올라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좌측 앞으로 뾰족한 782.7봉과 그 우측으로 성지지맥이란 이름을 낳게 한 성지봉 일명 성재봉이 제법 우람한 산세를 자랑하며 이 산객을 부르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잘 진행되고 있지만 무더운 기온으로 인해 온 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고 발걸음이 조금은 무겁게 느껴지지만 눈으로 보이는 산그리메와 산세는 아름답게 추억의 한장면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이다.

 

 

새벽 일찍 일어나 백운지맥 제2구간과 성지지맥 제1구간 중 어느곳으로 갈지 고민하다 오늘은 저녁 모임이 있어 조금 일찍 마무리하고 시간에 맞춰 귀가하려는 계획으로 짧은 거리의 성지지맥 첫 구간을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녀 오기로 한다.

새벽 6시 50분에 동서울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 횡성행 버스가 여러 버스 정류장을 들려 드디어 풍수원을 지나면서 기사님에게 유현리 연내골 버스정류장에 세워줄 것을 부탁하지만 그곳은 정식 버스 정류장이 아니라면서 이곳 느르개버스 정류장에 세워준다.

느루개는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에 속한 마을로서 유현1리의 1, 2, 3반에 속하는 마을이며 예전에 느릅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오늘 산행은 이 유현리에 있는 마루금을 따라 진행되는 유현리 투어같은 산행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횡성으로 가는 직행버스의 정류장이기에 성지지맥 첫 구간 산행을 하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면 이곳에서 하차하게 되는데 이해해 주는 기사님을 만나면 약 1.5 Km 떨어진 연내골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할 수도 있는 듯 보인다.

 

 

느루개 버스 정류장에서 배낭을 정리하고 횡성 방향으로 6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금새 도로 우측으로 유현1리라는 커다란 이정석이 서 있는데 유현리는 본래 원주군 고모곡면의 지역으로서 느릅나무가 많으므로 느루개 또는 유현이라 하였는데 고종 32년(1895)에 횡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덕갈매기, 밤골, 복지골, 수구대, 오상골, 배나무정이, 풍수원을 병합하여 육리라 하다가 1937년에 유현리로 고쳤다.

잠시 후 도로 좌측으로 생각지도 못한 유현치안센터라는 파출소가 보이고 그렇게 그 6번 도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가니 나즈막한 둔덕을 넘어 도로 좌측으로 커다란 비닐하우스 한동과 살구나무 글램핑 & 펜션이라는 이정판이 보이는 연내골 버스 정류장 앞에 도착을 해 그 이정판 방향인 좌측의 비포장 임도를 따라 성지지맥 마루금으로 향한다.

 

 

비포장 임도로 들어가니 임도 우측으로는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잘 정리된 밭 경작지가 보이는 곳을 지나니 임도는 다시 갈림삼거리와 만나 좌측으로 올라가니 살구나무 글램핑 & 펜션 건물들이 예쁘게 나타나고 산행을 중단하고 마음 편히 그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살구나무 글램핑 & 펜션은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 462번지의 청정 계곡과 푸른 자연이 어우러진 곳에 위치한 최고급 럭셔리 패밀리 글램핑으로서 가족 단위의 캠핑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모든 시설이 완비되어 있다고 되어 있다.또한 500평 규모의 채소밭에서 계절별 채소를 직접 따 드실 수도 있으며 낮에는 푸른 자연을 만끽하시고 밤에는 은은한 조명과 함께 휴식을 가져 볼 수 있는 휴식처이다라는 안내 문구가 눈에 들어 온다.지맥 산행이 마무리되면 여유를 가지고 캠핑이나 글램핑을 즐기는 시간도 가져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 글램핑과 펜션지대 앞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진행하니 임도는 다시 좌측으로 이어지는데 그 비포장 임도 우측으로는 연내골 계곡물이 청아하게 흐르며 혼미한 정신을 깨우고 있다.

여내골은 우무개에 있는 골짜기로 그 이름에 대한 유래는 모르지만 연내골이라고도 불리며 버스 정류장은 연내골이다.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비포장 임도를 따라 빠르게 걸어 오르니 차량통제 차단기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해 오르니 금새 사방댐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첫번째 사방댐을 지나 이어지는 임도를 따르니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화사한 봄꽃들이 임도 주위에 피어 이 산객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개울을 건너 2009년 유현사방댐을 다시 통과하고 연내골 주민들이 세우고 심어 놓은 다짐의 나무를 지나 오르니 또 다른 사방댐을 만난다.

그 사방댐을 지나 계속 오르니 비포장 임도가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곧이어 비포장 임도로 바뀌면서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2017년도 유현임도의 국유임도안내문이 서 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곧바로 성지지맥 능선으로 접속되기에 분기점과 금물산까지 역으로 다녀 온 후 다시 정상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해야하지만 우측으로 가면 781.1봉 헬기장으로 올라 한강기맥 마루금에 접속한 후 금물산으로 이어지는 등로이기에 주저없이 우측 비포장 임도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임도 갈림삼거리에서 주저없이 우측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임도 좌측 바위 틈으로 진분홍빛 진달래가 곱게 피어 어릴적 시골에서 생활하던 추억이 생각나는 시간이다.

그렇게 봄이 오는 풍경과 소리를 들으며 완만하게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임도가 우측으로 휘돌아 가는 작은 도랑 좌측 계곡쪽으로 희미한 족적이 보이고 그곳으로 치고 오르며 새로운 등로를 개척해 본다.

처음에는 계곡쪽으로 이어지던 등로가 우측 능선 방향으로 방향을 바꾸는 듯 싶더니 갈림삼거리 계곡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 깊이 쌓여 있는 낙엽을 헤치며 너무나 힘들게 오르는 시간이다.

 

 

그렇게 코가 등로에 닿을 듯 힘들게 걸어 오르니 진달래꽃이 만발한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잠시 후 멧돼지들의 식흔이 나타나더니 등로 좌측 깊은 계곡쪽에서 커다란 멧돼지 울음소리가 귓전을 강타하며 산천을 뒤흔들고 있어 이 산객도 큰 소리로 존재감을 알리며 만나지 못하도록 주의하며 오른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긴장감을 늬며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금물산과 성지지맥 분기점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는데 아직도 제법 고도를 높여야 도착할 것 같다는 느낌이다.

 

 

이제 진달래꽃 나무가 등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주능선을 따라 이리저리 어렵게 등로를 만들어 오르니 저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살짝 보이기 시작하고 그곳부터는 진달래 나무가 사라지며 커다란 참나무가 등로를 채우고 있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걸어 올라 본다.

다시 등줄기에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깊은 활엽수 낙엽을 밟으며 조금 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힘들게 걸어 오르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보도블록이 깔려있고 키 작은 소나무들이 보이는 헬기장으로 이뤄진 781.1봉에 도착을 한다.

헬기장으로 이뤄진 781.1봉에 올라 주위를 살펴보지만 나뭇가지들이 자라면서 조망이 전혀 없기에 사진 몇장 남기고 곧바로 좌측 등로를 타고 금물산 방향으로 향한다.

 

 

잠시 내려가니 커다란 소나무 아래 진달래 나무가 자라고 있는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고 그렇게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에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한강기맥이란 글자가 보이고 좌측 방향으로 금물산과 우측으로는 삼마치 방향 및 거리가 표기된 이정표이다.

한강기맥은 백두대간의 오대산 두로봉에서 분기하여 북한강과 남한강의 물줄기를 가르며 양평 양수리의 두물머리까지 이어지는 약 166.9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산경표 상 1백두대간 9정맥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 웅장한 산세와 심산유곡의 모습은 정맥의 반열에 올려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당당한 산줄기로서 백두대간에서 비켜나 있는 오대산 비로봉 줄기를 포함 기맥의 최고봉 계방산으로 솟구치면서 고산준령의 면모를 유감없이 이어간다. 대체로 서진하는 형태의 산줄기가 되며 강원도 평창과 홍천의 경계를 이어가다 횡성을 지나면서 경기도와 강원도의 도계를 잠시 이룬다. 그리고 통골고개에서 강원도와 이별 양평의 용문산 줄기를 달리다가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그 화려한 맥을 마감한다. 심산유곡의 험준한 준령을 간직한 탓에 변변한 찻길도 별로 없으며 오직 걸음품을 팔아 해결하는 야성의 산길도 자주 접한다.

옛날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 한강기맥 금물산 구간은 2012년 8월 18일 날 게릴라성 폭우가 쏟아지던 날 통과를 하였으니 6년하고도 8개월이 지나 다시 찾게 된 마루금이다.

 

 

한강기맥 마루금에 도착을 하여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등로 좌측의 성지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며 걸어가니 등로 옆으로는 너무나 곱게 피어 난 노란 제비꽃이 군락이 이루고 있어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금물산까지 16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고 그곳을 지나 가파르게 오르니 바위 암릉구간이 나타나고 금새 산패와 이정표가 서 있는 금물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금물산(775.5)은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및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옛날에 도둑이 많이 나타났다 하여 이름 붙여진 도둑고개에서 동쪽 횡성군 방향으로 내려가면 왼쪽으로 보이는 산이다.

산은 그다지 높지 않으나 주능선의 길이가 10 Km가 넘어 계곡이 길고 깊은 곳이며 특히 유산리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계곡과 밤골에서 주능선에 이르는 계곡이 볼 만하다.

이 금물산의 최고봉인 성지봉은 산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가지를 친 능선으로 그 본래의 산맥은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산행은 용수교에서 출발하여 계곡으로 들어가 724봉에 오른 뒤 성지봉(791미터)을 거쳐 짙은 숲길을 뚫고 정상에 오르는데 여름에는 길섶의 풀이 웃자라 긴 소매와 긴 바지가 아니면 통과하기 힘들다.

성지봉에서 정상까지는 봉우리가 두 개 있어 길이 오르락 내리락 한다.

정상은 일부 바위도 있고 특히 양평읍 쪽으로 뻗은 섭봉과의 사이에 북으로 열려진 계곡 쪽으로는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조망도 좋아 동쪽으로는 가리산(1051)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넓은 시동리와 유치리 일대 분지가 보인다.

지봉 쪽을 보면 세 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는 것이 마치 뫼산자를 보는 듯하고 양평군 쪽으로 뻗은 계곡은 울창한 수해를 이루고 있으며 이곳 뿐만 아니라 이 산 일대는 숲이 울창하여 싱그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금물산 정상에서 이정표 뒷쪽으로 가 살펴보니 북서쪽으로 6년하고도 8개원 전 홀로 힘들게 진행하였던 한강기맥의 발귀현과 갈기산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전차부대도 내려다 보이는데 엊그제 걸었던 등로처럼 여전히 뚜렷한 기억속으로 남아 있다.

금물산에서 내려다 보며 어느 지점 어느곳에서 우측으로 꺽어 내려가야 하는지 고민하며 진행을 하였지만 결국 성지지맥 방향으로 알바를 하면서 되돌아 온 기억이 생각 나 잠시 미소가 떠 오른다.

갈기산 우측으로 오음산과 좌측으로 용문산을 찾아 보지만 박무 때문인지 미세먼지 때문인지 아직은 자세히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그렇게 잠시 더 그 금물산 정상에서 머물며 조망을 즐긴 후 진행하니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너무나 힘들게 올랐던 헬기장의 781.1봉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며 다음을 기약하듯 인사를 건넨다.

잠시 후 금물산에서 40미터 지나왔다는 이정표를 다시 만나고 그곳을 지나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 태양열 전열판이 보이고 그곳으로 오르니 드디어 성지지맥 분기점에 도착을 해 준희님이 달아 놓은 산패에 인사를 드린다.

오래 전 홀로 게릴라성 폭우가 내리던 날 이곳 성지지맥 분기점에서 우측으로 크게 꺽여 내려가는 한강기맥 마루금을 찾지 못하고 직진의 성지지맥 등로를 타고 782.7봉까지 갔다가 뒤돌아 온 기억으로 잠시 웃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성지지맥 산패와 태양열 전열판을 사진에 담고 그 전열판 뒷쪽으로 가 보니 환상적인 풍경과 조망이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을 살펴본다.

바로 앞에 한강기맥 상 시루봉이 내려다 보이고 그 아래로 신론리 마을과 그 뒤로 뾰족한 갈기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예전 모습 그대로이다.

신론리는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에 있는 리로서 골짜기가 깊은 고장이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대리와 고론리 및 신당리의 각 일부를 합쳐 신론리라 하여 청운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고론, 삼선당, 새터(신대), 양짓말, 중보들, 밤나무고개 등이 있는데 고론은 신론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마을을 형성할 초창기에 서로 의논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하고 삼선당은 웃고론 서북쪽의 마을을 말하며 밤나무고개는 아랫고론 북동쪽 마을로 밤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새터는 웃고론 북동쪽의 새로 된 마을을 양지말은 아랫고론 양지쪽에 있는 마을을 말하고 중보들은 고론 남쪽의 중보가 있는 마을을 말한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내에 보를 막아 농사를 지었는데 보가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는데 그 중 가운데 보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중보들이라 이름 하였다.

 

 

한강기맥 마루금을 살펴 본 후 눈을 좌측인 서쪽으로 돌리니 한가운데에 섬처럼 떠 있는 풍류산이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갈운리와 앞쪽으로는 도원리와 그리고 우측인 갈기산과의 사이에는 신론리가 펼쳐져 있어 섬처럼 보이는 풍류산이다.

풍류산(풀무산, 야산)은 승지골 서쪽의 마을로 풀무산 밑에 위치하는데 위치는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도원리에 있는 나즈막한 산이다.

약간의 박무인지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상당히 제한적이라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성지지맥 분기점에서 우측으로 크게 꺽여 갈기산 방향으로 내려가는 한강기맥 마루금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그 분기점을 내려가니 등 로 앞 나뭇가지 사이로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780.6봉과 그 우측 뒤로 757.5봉과 성지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넘어 저 멀리에도 이어지는 성지지맥 마루금들의 뾰족한 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예전에 한강기맥 산행을 하면서 나침판과 지도 한장 달랑 들고 진행하면서 갈기산 방향을 잡지 못하고 저 웅장한 산줄기를 한강기맥이라 생각하며 신나게 걸었다가 뒤늦게 알바임을 알아 차리고 다시 뒤돌아 오는 등로는 왜 그리 험하고 멀었던지 지금 생각해도 등줄기에 굵은 땀방울이 샘솟듯 솟아나는 시간이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무명 안부가 나타나고 그 안부를 통과하니 활엽수 낙엽이 깊게 쌓여 있어 한발자국 옮기기도 어려운 미끄러운 등로가 이어지고 있어 진행에 애를 먹는다.

아침에 유현리를 통해 오르던 등로 옆에는 연두빛과 초록의 봄빛이 완연하였는데 고도를 높힌 이곳 700미터 고도의 등로는 아직도 한겨울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어렵게 오르니 이곳 정상부를 맨발님이 780.6미터봉이라는 산패를 걸어 놔 인사를 드리고 출발한다.

 

 

그 780.6봉 정상에서 북서쪽을 살펴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갈기산으로 이어지는 한강기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으로 거대한 전차 사격장이 하얀 속살을 내보이며 옛날 저곳에서 헤매였던 추억을 들려주고 있다.

다시 앞으로 걸어 진행하며 평이하게 전진하니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782.7봉 좌측으로 유현리 방향으로 뻗어 내린 785.8봉과 789.6봉 그리고 759.2봉의 연봉들이 연이어 이어지며 또 다른 환상의 산줄기를 이루고 있어 잠시 더 그 풍경들을 살펴보며 걸어 내려가 본다.

 

 

잠시 걸어 내려가니 참나무들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772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정상에 바위들이 박혀 있고 진달래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759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살펴보니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이어가야 할 좌측의 782.7봉과 우측으로 787.4봉인 성지봉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에 잠시 더 그 무명봉에 머물며 많은 사진을 남기고 다시 성지봉을 향해 다시 산행을 이어가 본다.

 

 

박무와 미세먼지로 조금은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펴볼 수 있는 풍경과 조망에 감사하며 그 바위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다시 등로에는 많은 활엽수 낙엽들이 쌓여 있어 조심스럽게 걸어 본다.

진행 방향인 서쪽과 우측의 한강기맥 그리고 전차 사격장을 살펴보며 무명 안부로 내려갔다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을 헤치며 가파르게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불이 났던 흔적들이 보이면서 모든 나무들이 까맣게 죽어 있어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니 금새 나즈막한 웅덩이 형상을 하고 있는 757.5봉에 도착을 하는데 잡목들에 가려 보이는 것이 없기에 사진 한장 암기고 출발한다.

 

 

그 웅덩이 같은 정상을 하고 있는 757.5봉을 잠시 내려가자 마자 등로 우측으로 전망바위가 보이고 잠시 그 바위 위로 오르니 환상의 조망들이 펼쳐져 있지만 역시나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어 아쉽기만 하다.

제일 먼저 북쪽 갈기산으로 이어지는 한강기맥 마루금을 살펴보니 그 한강기맥 넘어 저 멀리 홍천군 남면쪽 까끈봉과 매화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들이 쌍봉으로 솟아 있고 그 좌측 갈기산 사이로는 신대리와 시동리 민가들이 좁지만 길게 마을을 형성하며 살아가는 민초들의 애환을 담아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홍천군 남면 방향을 살펴보고 눈을 좌측인 북서쪽으로 조금 돌리니 드디어 시루봉에서 발귀현 넘어 갈기산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한강기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으로는 잘못 들어가 잠시 헤매였던 전차 사격장이 드넓은 계곡을 독차지하고 하얀 속살을 내보이며 하루 빨리 이 시대가 종말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다가온다.

많은 추억과 애환 그리고 이야기를 남겼던 한강기맥 산줄기이기에 많은 시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이렇게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가슴 시린 시간이 되었다.

 

 

이제 진행 방향인 서쪽을 살펴보니 생각보다 뾰족하게 솟아 있는 782.7봉이 제법 위압적으로 다가오고 그 우측으로 안부 하나 지나 솟아 있는 성지봉 일명 성재봉이 왜 이곳을 성지지맥으로 이름 붙였는지 알려주려는 듯 제법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오래 전 한강기맥 산행을 하면서 저 782.7봉까지 내리는 폭우를 맞으며 열심히 걸어갔다 뒤돌아 성지지맥 분기점으로 걸어가는 심정은 참으로 암담하고 우울했던 시간으로 기억되는데 그곳 성지지맥 분기점에 도착한 이후로는 체념하듯 아니면 도사가 된 듯 그저 발길 닿는대로 진행하다 보니 정말 즐기는 시간으로 남겨진 추억이 쌓이게 되었던 구간이다.

 

 

그렇게 전망바위에서 한동안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마지막으로 올랐던 바위를 사진에 담은 후 내리막 등로에 깊게 쌓여 있는 활엽수 낙엽을 헤치며 조심해 내려가니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 국유임도안내문이 있던 갈림삼거리 임도로 내려갈 수 있는 안부였다.

국유임도 안내문이 서 있던 갈림삼거리 임도에서 우측이 아닌 좌측 임도를 탔으면 이곳으로 올라 다시 성지지맥 분기점과 금물산까지 올랐다 오른 등로를 타고 다시 내려와야 하는 갈림사거리 안부이다.

좌측 유현리 방향의 국유임도안내문이 서 있던 방향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골짜기 등로를 사진에 담고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다시 온 몸에 굵은 땀방울을 흘려 본다.

 

 

좌측 임도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사거리 안부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에 쌓여 있는 낙엽이 미끄러지며 무척 힘든 산행을 이어가는데 날씨까지 무더워 생각보다 많은 땀방울을 등로에 뿌리고 있다.

잠시 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띠지가 펄럭이는 좁은 공터의 714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 무명봉을 지나 내려가니 눈 앞에 거대한 바위가 가로막우 우회하며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유현리로 내려갈 수 있는 장쾌한 산줄기가 펼쳐져 있고 그곳을 살펴보며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진행 방향 저 멀리 용문쪽으로 추읍산이라 생각되는 산봉우리가 여성의 유두모양으로 솟아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다시 가파르게 오르니 달걀처럼 보이는 바위가 나타나고 그 뒤로 녹슨 군부대 경고판 상단부에 맨발님이 이곳이 782.7봉임을 알리는 산패를 걸어 놨다.

이곳 역시 얼마 전 걸었던 장령지맥처럼 내려갔다 오를 땐 뾰족하게 송곳처럼 솟아 있어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심한 듯 보인다.

지나 온 방향으로 금물산을 살펴보고 잡목으로 인해 조망이 없기에 다시 출발하는데 봉 따먹기의 대가이신 서래야님이 이곳을 작은성지봉 또는 작은성재봉이라는 종이 코팅지를 붙여 놨다.

 

 

그 782.7봉을 지나 출발하며 앞을 보니 이제부터 올라야 할 성지봉이 멀리에서 볼 때와는 달리 유순한 모습으로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고 그 모습을 살펴보며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전차 사격장과 그 우측으로 한강기맥 상 갈기산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이 정겹기만 하다.

오래 전 한강기맥 산행을 하면서 게릴라성 폭우와 짙은 안개로 인해 저 전차 사격장에서 왔다리 갔다리하면서 잠시 길을 잃고 헤맸던 추억이 떠 올라 웃음 짓는 시간도 다시 고운 추억으로 남겨지는 순간이다.

 

 

잠시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가파르게 걸어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삼각점이 보이고 그 삼각점 뒤로는 나뭇가지에 준희님이 이곳이 성지지맥 상 787.4미터의 성지봉이라는 산패를 걸어 놔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성지봉(788)은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과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791미터로서 산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천주교와 관계가 깊은 곳이다.

1801(순조 원년)의 신유박해와 1866(고종 3) 병인양요 및 1871(고종 8) 신미양요 등으로 극심하게 탄압받았던 천주교 신도들이 이곳 성지봉으로 숨어 들었다고 하며 풍수원 마을 가장 윗쪽에는 강원도 유형문화재인 풍수원 천주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교회는 옛날 천주교인들의 피난처였으며 1888(고종 25) 프랑스인 르메르이 신부가 초가집 사랑방에서 초대 신부로 부임해 한국에서 네 번째 천주교회가 된 곳으로 유명하다.

 

 

성지봉 정상의 산패와 삼각점을 사진에 담고 잠시 나뭇가지들이 사라진 틈을 통해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옥스필드 골프장이 펼쳐져 있고 그 뒷쪽으로 쌍봉이 솟아 있어 지도를 살펴보니 이름도 없는 그저 무명봉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횡성군의 응봉이 솟아 있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 쌍봉 뒷쪽으로는 문바위봉이라 생각되는 산줄기들이 길게 펼쳐져 있지만 미세먼지로 인해 속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잠시 이곳 성지봉 정상에서 간식을 먹고 출발하기로 하고 배낭 내려 놓은 후 삼각점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공터 우측으로는 군부대 경고판이 서 있고 그 뒷쪽으로는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는 태양열 전열판이 설치되어 있어 사진에 담고 다시 무더위를 식히며 그늘을 찾아 자리를 잡는다.

옆지기가 준비해 준 약밥과 포도 및 콜라비를 꺼내 허기를 달랜 후 식수 한모금으로 마무리를 하니 다시 힘이 솟고 그 힘으로 조금 빠르게 진행을 이어가 보는데 아직까지도 오후 1시 30분에 횡성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희망으로 걸어 보는 시간이다.

 

 

성지봉을 출발해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눈 앞에 거대한 바위가 나타나고 그 바위를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조심스럽게 우회하며 통과하니 등로는 그 바위 아래로 이어지지만 바위를 넘을 수 없어 우회하게 되었던 마루금이다.

또 다시 나타나는 바위를 지나 낙엽이 깊게 쌓여 있는 진달래 등로를 따르니 나즈막한 무명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가파르게 치고 오르니 갑자기 넓찍한 헬기장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주위를 둘러보니 우측 저 멀리 갈기산으로 이어지는 한강기맥 마루금과 그 좌측으로 전차 사격장만 보인다.

 

 

한강기맥 마루금을 살펴 본 후 헬기장을 출발하기 전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라 간식으로 허기를 면했던 이 성지지맥이란 이름을 낳게 한 성지봉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는데 올라갈 때 봤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제 오늘 헤어지면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영원히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진 몇장 더 남기고 아쉬운 이별의 손짓을 한 뒤 재빠르게 그늘 능선으로 들어가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활엽수 낙엽이 깔려 있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만나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 본다.

등로 좌측으로 짧은 절개지와 능선이 보이지만 금새 다시 이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로 내려와야 하기에 그냥 그 임도 등로를 따르니 묵은 헬기장 같은 공터에 키 작은 소나무들이 자라는 곳에 도착을 한다.

그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공터 갈림삼거리에서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곳 우측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다시 앙상한 활엽수가 등로를 채우고 그 아래 낙엽이 나뒹굴고 있는 마루금을 타고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가니 처음 보는 듯한 산넘어 구름따라라는 좋은 닉을 가진 선답자의 띠지가 보여 사진에 담고 다시 전진하는 시간이다.

잠시 후 짧은 절개지를 만나 어렵게 내려가니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휘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바위가 보이는 곳에서 잡목 사이로 나 있는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커다란 자작나무 군락지가 펼쳐지고 그 아래 진분홍빛 진달래가 만개한 등로가 열려 있어 잠시 꽃 구경 나온 기분으로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내려가니 잠시 등로가 어지럽게 갈리고 조심하며 정상 등로를 찾아 전진하니 등로는 직진의 산길이 아닌 좌측으로 휘어지며 진행되는데 갑자기 눈 앞에 작은 돌탑과 가지가 많은 활엽수가 보이는 무명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보이는 것은 이곳이 예전에 성황당은 아니였을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의 그런 안부이다.

그곳을 지나 다시 나타나는 비포장 임도같은 곳으로 오르니 등로 좌측 위로는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들이 보이고 살펴보니 이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도 역시 묘지를 찾기 위해 만들어진 등로가 아닐까 생각도 해보는 시간이다.

 

 

그 성황당 같이 보이는 안부를 지나 진행하니 등로 양쪽으로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그 사이로 진달래꽃이 피어난 멋진 등로가 열려 있어 잠시 편안하게 걸어 내려가 본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가 갈리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좌측으로 나 있는 내리막 임도를 따르니 또 다른 비포장 임도 옆에 군부대 사격장을 알리는 붉은 깃발이 보이는 덕갈고개에 도착을 한다.

덕갈고개(떡갈무기고개)는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도원리에 있는 고개로서 승지골에서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 떡갈무기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일명 떡갈무기고개라고도 한다.

덕갈고개 우측 옆으로는 군부대 경고판이 서 있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또 다른 비포장 임도가 갈리는데 그곳에는 임시 초소와 굳게 닫힌 군부대 철문 안에 군용 지프가 시동이 걸린채 정차되어 있어 여기까지는 그 이유를 몰랐는데 잠시 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군부대 들어가는 비포장 임도 갈림삼거리를 지나자마자 등로는 다시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묘지가 보이는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묘지로 오르니 경주김공묘지와 그 옆에 부인인 황성고씨 묘지 2기가 보이고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오늘 아침 버스에서 내려 걸어 갔던 6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유현리 방향이 내려다 보이는데 이 산객이 어릴적 시골에서 동네 뒷산에 올라 내려다 보던 풍경과 비슷해 잠시 옛추억에 젖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묘지를 지나 오르니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눈 앞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저 멀리 앞 등로에 화려한 색깔로 치장한 공작새 한마리가 이 산객을 발견하곤 도망가듯 달아나며 소리를 내고 있다.

한동안 그 공작새의 사진 한장 남겨 보려고 뒤쫒아 오르니 그 공작새는 더욱 빠른 발걸음으로 달아 나 포기하고 그 공작새를 따라 천천히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잣나무 군락지가 보이는 곳으로 공작새는 달아나 버리고 다시 홀로 무명 안부를 통과해 오르니 등로 우측 저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성지봉과 782.7봉이 빼꼼히 올려다 보인다.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눈 앞으로 직각에 가까운 봉우리 하나가 올려다 보이는데 그 봉우리를 좌측에 두고 우측 사면 등로로 마루금이 이어지고 있어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올라 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는 다시 좌측 방금 전 올려다 봤던 봉우리 방향으로 크게 꺽여 오르고 있다.

너무 가파라 직등하지 못하고 우측으로 우회하며 오른 봉우리처럼 보이는 곳으로 오르니 등로에는 곱게 피어난 분홍빛 진달래가 등로를 가득 체우고 있어 꽃구경 나온 발걸음으로 즐겨 보는 시간이다.

 

 

다시 평이한 진달래 꽃 능선을 타고 즐기는 마음으로 걸어가니 무명안부를 지나 나무들이 잘려있는 고사목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휘어져 다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우측으로 웅덩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등로를 지나 군부대에서 걸어 놓은 뜻깊은 문구가 적혀 있는 플랭카드를 만나 잠시 읽어 보고 출발한다.

 

 

잠시 더 평이한 진달래꽃이 만발한 능선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천등이 치듯 요란한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살펴보니 등로 우측의 전차 사격장에서 들리는 소리인데 토요일인 오늘도 훈련이 있는 듯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군부대 플랭카드와 6.25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을 바라보며 전진하니 나즈막한 무명 안부를 통과하여 다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진다.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소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을 넘고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라 벗나무가 보이는 522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벗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에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금새 6.25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이 널부러져 있는 지도 상 531.4봉에 도착을 해 여전히 들려오는 전차 사격 소음에 곧바로 자리를 털고 출발한다.

 

 

분홍빛 진달래가 만발한 능선을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고사목이 쓰러져 있는 무명봉에 오르고 능선같은 봉우리를 지나 진행을 이어가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 나즈막한 무명 안부를 통과한다.

약간은 낙엽이 깔려 있는 진달래 꽃 등로를 타고 봄바람이 불어 오는 상쾌한 기분으로 전진하며 걸어 오르니 여전히 귓전을 때리는 전차 사격소음에 잠시 놀라면서 바위들이 보이는 등로와 마주한다.

잠시 후 좌측으로 우회하는 등로가 보이는 곳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보이는 봉우리로 오르니 준희 선생님의 550.5봉 산패가 반갑게 환영하고 잡목이 우거진 곳에서 사진 한장 어렵게 남기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정상 등로로 어렵게 복귀를 한다.

 

 

등로는 여전히 곱게 피어난 예쁜 진달래꽃이 화사하게 웃어주는 풍경으로 반겨주고 그렇게 잠시 편안하게 걸어 진행하니 또 다시 웅덩이들이 널려있는 무명봉을 통과한다.

파헤쳐진 웅덩이를 자세히 보니 최근에 발굴한 흔적이 역력한데 그러고 보면 6.25 전쟁이 전국적으로 격전지가 아니였을까 생각이 들 정도의 큰 전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현장이다.

굴참나무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등로도 만나고 잠시 무심으로 걸어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몇가닥의 가지들이 함께 자라고 있는 자작나무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 양쪽으로 희미한 등로 흔적이 남아 있지만 이제는 사용되지 않는 묵은 사거리 안부도 통과한다.

 

 

무명 안부를 통과해 오르니 다시 고운 진달래꽃이 반겨주고 등로 주위를 살펴보니 봄이 오는 빛깔로 변하면서 온 산하가 연두연두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한동안 큰 고도 차이없이 참나무와 진달래꽃이 조화롭게 피어 있는 평이한 등로를 따라 자연과 하나가 되다보니 등로 우측으로 저 멀리 연두빛 나뭇가지 사이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성지지맥 첫구간의 웅장한 마루금이 스스로의 자태를 뽐내며 일렬로 늘어 선 모습이 보인다.

다시 이곳으로 올라 바라볼 수 없는 마지막 풍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다시 진달래 꽃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이다.

 

 

지나온 등로를 살펴보며 조금 더 전진하니 나즈막한 안부로 떨어지는데 그 안부 좌측으로는 넓지 않은 잣나무 군락지가 보이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오르니 등로는 여전히 제법 굵은 참나무와 진달래꽃이 만발한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큰 굴곡없는 등로를 따라 낙엽을 헤치며 평이하게 걸어 진행하다 눈을 우측으로 돌리니 저 멀리 한강기맥 상 갈기산이 정상부에 하얀 암벽을 드러나며 뾰족하게 솟아 있고 그곳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어 나뭇가지 사이로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계속 이어지는 진달래꽃길을 따라 무심한 듯 걷다보니 이제는 등로 좌측 앞으로 제법 우람한 봉우리 하나가 다가섰다 멀어지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이름도 없는 무명봉이다.

성지봉을 내려서며 눈 앞으로 보였던 제법 높이를 자랑하던 저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조금은 걱정을 했던 곳이였는데 그 봉우리는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의 조금 더 낮은 산줄기를 타고 성지지맥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등로 좌측 아래로 오늘 아침에 직행버스를 타고 달렸던 6번 2차선 포장도로와 유현리로 이어지는 마을들이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사진 몇장 남기며 전진하니 금새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 있는 562.8봉에 도착을 해 잠시 쉬어가는 시간도 가져 본다.

 

 

삼각점봉에서 쉬면서 지도를 보니 이제 나즈막한 481.6봉만 넘으면 멀지 않아 도덕고개인데 시간을 보니 12시 50분을 넘기고 있어 횡성발 동서울행 버스를 확인해 본다.

확인하니 오후 1시 30분 발 버스가 있고 그 다음이 오후 3시 40분 버스이기에 이곳에서 잠시 갈등을 일으키는데 산행 시간을 잘못 계산하여 여유를 부리다 2시간을 하는 일 없이 허송세월하고 늦게 귀가하는 우를 범하게 되었다.

눈 앞에 보이는 커다란 바위를 우측으로 우회하며 내려가니 다시 그 바위 아래로 이어지고 이제부터 발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어렵게 산행을 이어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작은 바위가 박혀있는 481.6봉에 도착을 한다.

 

 

지금부터라도 빠르게 진행을 하였으면 오후 2시쯤 도덕고개를 지나는 버스를 풍수원 버스 정류장에서 탈 수 있었는데 어짜피 늦었다고 생각해 그곳 정상 지난 그늘에 앉아 남아 있는 간식도 먹고 인터넷으로 뉴스도 살펴보며 해찰을 떨다 일어나니 약 20여분을 쉬고 재출발하게 되었다.

가끔 들리는 차량들이 달리는 소음을 듣고 진달래꽃과 눈을 맞추며 내려가니 가지가 많은 소나무가 보이는 417봉을 지나 잣나무가 보이는 마지막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다시 가파라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잣나무 사이를 지나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길게 우회하듯 내려가고 그렇게 희미한 족적을 따르니 드디어 신설된 6번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도덕터널 위 옛 6번 2차선 포장도로가 보이는 도덕고개 정상에 도착을 한다.

도덕고개는 일명 도둑머리고개라고도 하는데 6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강원도 횡성군과 경기도 양평군 경계에 있는 고개로서 조선지지자료에는 당시 고모곡에 도덕현 지명이 처음 나타난다.

한글 지명으로 도덕모루로 기재되어 있으며 위치를 풍수원 부근으로 기록하고 있어 이 지명에 대해 지역사회에서는 도둑머리고개로 해석하고 있으며 지명은 도둑에 대한 사회 징벌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 지명 변경 요청으로 도둑머리고개로 지명이 바뀌었으며 관련 지명으로 인근에 도덕산이 있다.

마루금 절개지에는 철망이 설치되어 있어 좌측으로 우회하듯 내려왔고 고개정상에는  해발300미터라는 도로 표지판과 잘 생기 이정석 그리고 보현정과 설명판들이 보인다.

 

 

도덕고개 정상부로 올라가 다음 구간 들머리인 보현정 육각정과 그 우측으로 나 있는 등로를 확인하고 내려 와 그 우측으로 흐르는 감로수를 마시며 갈증을 해소한 후 올라갔던 도로를 뒤돌아 내려가며 횡성방향으로 빠르게 걸어 내려가 본다.

보현정(寶峴亭) 횡성군 서원면과 양평군 양평읍을 연결하는 도덕고개에 자리잡고 있으며 전하는 말에 의하면 보현정이 있는 이 고개는 일명 도둑머리 고개라 하여 행인의 발 잘취가 드물었다.

원래 보(寶)의 자의(字義)는 돈보(錢帶)로 상평통보(常平通寶-조선시대의 돈 이름) 字(자)로 일명 보배고개이다.

정자(亭子)란 그 지방의 지리 및 유래와 무관할수 없으며 넓은 의미로 의역하면 보현정은 보배로운 고개의 정자로 생각되어 보현정(寶峴亭)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아직까지도 횡성에서 오후 1시 30분에 출발한 버스는 생각지도 못하고 빠르게 옛 6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내려가며 어떻게 하면 일찍 서울로 복귀할 수 있을지만 생각하는 바보같은 시간이었다.

 

 

구 도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 옆으로 신설된 4차선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곳으로는 제법 많은 차량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어 차량 소음은 대부분 그곳 신설도로를 달리는 차량들로부터 나왔던 소음 같았다.

잠시 후 횡성 방향의 도덕터널 입구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한동안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풍수원성당청소년야영장이란 입간판이 크게 보여 찾아보니 청소년 수련회를 위한 시설이지만 개인과 가족 및 단체 등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고 수영장이 있는 야영지이다.

 

 

그곳을 지나 계속 걸어 내려가니 저 멀리 풍수원 교차로 모습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하고 도로 위 표지판을 보니 좌측의 원주와 횡성에서 우측의 서원면과 오크밸리로 통하는 갈림삼거리이다.

지도를 보니 오늘 산행을 시작한 곳이 유현리였는데 이곳 풍수원교차로 역시 여전히 유현리이기에 강원도의 지역 경계 땅이 얼마나 넓은지 실감을 해 보는 시간이다.

유현리는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에 있는 리로서 북쪽으로 금물산이 위치하고 있다.

자연마을에는 떡갈매기, 바깥말, 점터, 피미기 등이 있는데 떡갈매기는 예전에 이 마을에 떡갈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고 덕갈매기라고도 한다.

유현리는 이 지역에 느릅나무가 많으므로 느루개 또는 유현이라 하였다고 한다.

잠시 후 신 6번 4차선 도로와 만나 차량 통행이 없는 틈을 타 건너 교차로 가까이 내려가니 좌측 횡성 방향에서 직행버스 한대가 내려오고 잠시 후 풍수원 교차로에서 도덕터널 방향으로 틀어 올라오고 있어 의심하면서 늦게 손을 흔드니 버스 기사가 본듯 만듯 그냥 지나쳐 버린다.

시간을 보니 이제 막 오후 2시를 넘긴 시간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손을 들어 태워줄 것을 요청하였으면 태워줬을 것 같은 직행버스였다.

 

 

저녁에 죽마고우들과의 모임 때문에 서두른 감도 있지만 이제는 오후 4시 10분쯤 이곳 풍수원을 지나는 버스 이외에는 히치 하이킹 밖에 없기에 느긋하게 마음 먹고 풍수원 버스 정류장을 지나 좌측의 풍수원성당을 둘러보고 나오자고 생각을 해 본다.

횡성군 서원면 유현 2리에 풍수원이라는 이름의 원이 있었고 그곳에 나라 안에서도 가장 오래된 성당 건물에 속하는 풍수원성당이 있는데 타관 사람들의 발길이 전혀 미치지 않는 산골짜기 깊숙한 외진 곳이라서 조선 후기에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들었고 그곳이 바로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였다.

풍수원성당 연혁에 따르면 교우들이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중 산간벽지로 수목이 울창하고 세상과 멀리 떨어져 관헌의 눈을 피할 수 있어서 택한 곳이 서원면 유현리 덕갈매기 서쪽이었다.

풍수원 버스 정류장 지나자마자 풍수원식당이 보이고 그 직전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는데 그곳으로 들어가며 한국인이 지은 최초의 성당인 풍수원 성당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서 본다.

 

 

횡성으로 가는 6번 2차선 포장도로에서 약 300여미터 걸어 들어가니 아담하지만 예쁘게 생긴 고딕 양식의 풍수원 성당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주위로는 크게 자란 느티나무들이 성당 건물에 그늘을 만들어 주는 참으로 고즈넉한 풍경이 이 산객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풍수원성당은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 2리에 있는 강원도에서 처음 지어진 성당으로 옛 모습이 잘 보존된 성당이며 1801년 신유박해 때 경기도 용인에 살던 40여 명의 신자들이 피할 곳을 찾다 정착한 곳이 풍수원으로 그때부터 박해를 피해 이곳에 더욱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모이게 된다.

1896년 김대건과 최양업 신부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인 신부로 서품 받은 정규하 신부가 이곳으로 부임하면서 성당 건축이 시작되었으며 신자들이 직접 나무를 패고 벽돌을 만들어 지었다고 한다.

1907년에 완성된 성당으로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1892년), 전북 완주 되재성당(현 고산성당, 1896년), 서울 명동성당(1898년)에 이어 네 번째로 지어진 성당 건물이자 강원도에 지어진 최초의 성당이다.

옛 모습 그대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며 성당이 처음 지어질 때만 해도 건물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는 것이 당연했겠지만 아직까지 그러한 모습이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정겹기도 하다.

빨간 벽돌로 쌓은 벽과 뾰족한 4층 종탑의 모습이 그림과도 같아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로 자주 이용되기도 한다.

성당 밖으로 나오면 언덕으로 예수 수난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기도처인 십자가의 길이 나오는데 그곳에 있는 14점의 그림은 판화가 이철수의 작품이다. 머무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지만 잠시 머문 기억이 두고두고 되새겨지는 여행지다.

잠시 더 그 풍수원 성당 주변을 둘러보고 그늘진 느티나무 아래 벤취에서 휴식도 취하면서 배낭을 정리하니 이제서 오후 2시 30여분이 지나고 다시 천천히 6번 2차선 포장도로로 나와 풍수원식당 앞에서 히치 하이킹을 시도해 보지만 생각복=다 트럭의 통행량이 적어 30여분 만에 포기하고 풍수원식단 옆 벤취에서 졸다 쉬다를 반복하며 지루하게 한시간 30여분을 보낸다.

 

 

 

 

 

 

 

 

죽마고우들의 독촉을 뒤로 하고 느긋하게 안자 쉬다가 드디어 오후 4시 5분 쯤 도착한 동서울행 버스를 타고 졸다보니 올림픽도로인데 토요일 오후라서 정체가 극심하여 예상보다 50여분 늦게 동서울터미널에 도착을 해 어렵게 귀가를 하였다.

간단하게 샤워 후 애마를 몰고 안양으로 가 오랫만에 만나는 죽마고우들과 시원한 소맥으로 목을 축이며 옛 추억을 노래하다 보니 또 하루가 지나고 있다.

시작을 했으니 곧바로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다음주에는 비슬산이 그리워 청룡지맥에 들 예정이고 5월 초에는 사업적으로 중요한 독일 출장이 잡혀 있어 또 이곳 성지지맥에는 언제 들릴 수 있을지 약속도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새로운 마루금에서 옛 추억을 더듬으며 좋은 시간 보내고 죽마고우들과 어릴적 코 흘리개적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버스 때문에 고생한 시간은 벌써 저 멀리 또 다른 추억으로 남겨지는 순간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90420 성지지맥제1구간 유현리-도덕고개.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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