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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장령지맥(식장·완)

장령지맥 제1구간 분기점에서 신안고개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9.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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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남도 금산군의 장령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9년 03월 30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새벽엔 비 내린 후 오전엔 흐렸다가 저녁에 다시 국지성 호우가 내렸던 종잡을 수 없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상 01도에서 영상 076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하신2리(윗삽실, 버스정류장)-은적사 갈림사거리-성산저수지-이정표(금성산술래길, 하신2리 윗삽실)-비포장 임도-금성산술래길

                 이정표(금성산정상 0.3 Km, 하신2리 윗삽실, 해너무재, 마수리)-하신리 설명판-안전목책-금성산(437.8봉, 정상석, 삼각점 금산308)-

                 장령지맥 분기점-금성산 복귀-선락장군하동정공 묘지-그물망 등로-360 무명봉-수원백공 묘지들-미륵재(37번 4차선 금산로 포장도로,

                 금산환경재생산업과 태림산업건설)-태림산업건설-비포장임도와 안부-지독한 잡목지대-344.6봉-지하통로(35번 통영대전간고속도로 통과)-

                 향운각-삽재(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절개지 철계단-조망바위-대암성 성터-427.9 삼각점봉(금산 425)-성황당 안부-398 무명봉-닭이봉 갈림

                 삼거리-벌목지대-419.4봉-장대리 숭암저수지와 추부면 조망-수암재-밭 경작지-비포장 임도 안부-33번 송전탑-430 무명봉-431봉(준희님

                 산패)-소나무 등로-무명안부-456.2봉-411.1 삼각점봉(이원402)-벌목지대-보령석재-민재(601번 군북로 2차선 포장도로)-금풍공장 건물-

                 222번 송전탑-471봉-440 무명봉-바위등로-487.3봉-무명안부-서대산 갈림삼거리(566봉)-502.8봉-441 무명봉-벌목지대-무명안부-절개지

                 능선-벌목지와 비포장 임도(채석장)-429.5 삼각점봉(이원 405)-비포장 임도 안부-지독한 잡목지대-산불감시초소(533봉)-방화봉(555.1봉,

                 산불감시초소)-낙엽송 등로-비들목재(산꽃로 2차선 포장도로)-비포장 임도-벌목지 소나무 식재구간-비포장 임도-벌목지 식재구간-바위구간-

                 647 무명봉-국사봉(669.9봉, 삼각점 이원 407)-무명 안부-615.3봉-무명 안부-바위구간-조망바위-655.4봉-629 무명봉과 묵묘(길주의 지점)-

                 무명 안부-무명봉-무명안부-515 참나무 무명봉-514 바위 무명봉-514 갈림삼거리(길주의 지점)-무명 안부-526.2봉-신안고개(신안재, 1차선

                 포장도로)-지맥산행 종료-신안사-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3.35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하신2리 상신마을 윗삽실에서 신안고개 지나 신안사까지 진행)

                장령지맥 - 약 20.23 Km(지맥 분기점에서 신안고개까지)

                접속구간 - 약 01.85 Km(하신2리 상신마을 윗삽실에서 장령지맥 분기점까지)

                                약 01.27 Km (신안고개에서 신안사까지)

산행트랙 : 20190330 장령지맥1구간 하신리-신안사.gpx

산행시간 : 하루종일 흐리고 오전에 높은 습도 및 오후부터 강풍에 조금 추위를 느끼며 힘들게 진행하여 10간 02 (06시 29부터 16시 30분까)

교통편 및 숙박 : 갈때 - 03:30 집에서 승용차로 출발

                                   06:15 추부면 하신2리 상신마을 앞 도착 해 차 안에서 잠시 산행 준비하면서 비가 그치길 기다림

                                   06:29 장령지맥 산행시작

                         올때 - 16:15 신안고개(신안재, 1차선 포장도로)에서 내리는 비로 인해 지맥 산행 종료

                                   16:30 신안사에 들려 잠시 구경하며 지인 기다림

                                   16:40 지인 만나 지인의 승용차로 신안사 출발

                                   17:30 하신2리 상신마을 윗삽들에서 차량 회수 후 출발해 귀가

장령지맥이란 ???

장령지맥은 금남정맥의 대둔산 남동쪽 인대산(661.8봉)과 백령고개 사이에 있는 무명봉(약610미터, 육백고지 6.5 Km)에서 분기한 식장지맥이 월봉산(543봉)을 지나 금성산(439봉)에서 두갈래로 갈라져 한줄기 식장지맥은 북진하여 만인산(537봉), 식장산(598봉) , 계족산(423봉)을 지나 신탄진 두물머리로 가고 또 한줄기는 동북으로 가지를 쳐 옥천군 군북면 장계리 장계관광지앞 금강에서 맥을 다하는 산줄기를 장령지맥이라 칭한다.

금성산((438.6봉)에서 시작하여 미륵재, 삽재, 닭이봉분기봉, 민재, 서대산분기봉, 방화봉(585봉), 국사봉(667.5봉), 대성산(704.8봉),
매봉(600봉), 장령산(장룡산 655봉), 도덕봉(407.3봉), 함박산(250봉), 퇴미산(249봉), 돌남산(258.6봉), 마성산(409.3봉), 이슬봉(454.9봉), 참나무골산(422봉), 며느리재를 지나 장계관광지앞 금강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52.2 Km 되는 산줄기다.




불안정한 날씨와 높은 습도 후 강한 바람속에 빨래판 능선을 타고 힘들게 첫 구간을 마감하면서 다시 내리는 빗줄기가 아쉬웠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주에는 원래 오래 전에 진행하다 남겨 둔 관암지맥 마지막 제3구간으로 반석역에서 금강까지 진행하려고 준비를 하였으나 세종시에 살고 있는 막내동서가 내려 오면 산행 후 동서네 집에서 함께 저녁이나 먹고 다음날 올라가라고 해 다른 산행지를 찾다가 2015년 11월에 만났던 장령지맥 분기점을 생각하곤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토요일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예보이고 조금은 긴 장령지맥을 두구간으로 나눠 완주를 목표로 진행하다 보니 대중교통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아 애마를 몰고 내려가 조금 일찍 산행을 시작해 중간 지점 근처까지 진행을 진행하려고 하지만 역시나 중간에 끊을 장소도 마땅치 않아 고민이다.

일단 내려가 보는데 새벽 6시가 넘어서까지 이슬비가 내려 걱정만 하다 6시 30여분에 드디어 기대했던 비가 그치고 안개가 자욱한 등로를 타고 시작해 어렵게 비들목재를 넘었지만 그곳부터 생각지도 못한 높은 봉우리 모두가 빨래판 능선으로 이뤄져 속도가 나질 않고 체력적으로도 갑자기 힘들어지면서 신안고개에서 마침 강한 비를 만나 접고 지인을 만나 신세를 지고 말았다.

다음날까지 마무리하고 올라갔으면 좋겠지만 갑자기 생긴 일과 솟아지는 비로 인해 이번 산행을 이곳 신안고개에서 접고 언제일지 모를 다음을 기약해 본다.


굵은 비는 그쳤지만 약간의 이슬비가 내리고 습도가 높아 진행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비가 그친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으로 산행을 진행해 서대산을 들리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갈림 삼거리를 지나니 앞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방화봉으로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서대산은 이미 구름속에 숨어 버렸고 그 좌측으로 이어진 장령지맥 마루금이 유순한 모습으로 펼쳐져 있지만 그 속살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이 산객에 고통을 주고 있다.

오래 전 올랐던 서대산도 최근 산행기를 보면 많이 달라진 모습으로 올라 와 있어 조만간 다시 한번 그 변한 모습을 확인하러 올라가 봐야겠다.


새벽 3시에 일어 나 옆지기가 준비해 준 먹거리를 챙겨 집을 나서는 시간이 새벽 3시 30여분으로 아직도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걱정하는 옆지기를 뒤로 하고 애마를 몰고 가랑비가 내리는 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빗줄기가 점점 가늘어지고 죽암휴게소에 도착해 우동 한그릇 먹고 나니 이제 비는 그쳤지만 자욱한 안개가 피어 오르며 습도가 높아짐을 느끼는 시간이다.

그렇게 산행 들머리인 하신리 상신마을 앞 좁은 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비는 그쳤지만 아직도 안개비가 약간 내리면서 안개가 자욱하지만 날이 밝아 오며 산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음을 느낀다.

산행 후 알게된 내용인데 이곳 지명은 여전히 하신리인데 마을 이름이 상신마을이다보니 하신리보다는 상신리로 불리며 옛마을 이름은 윗삽실이었는지 하신2리 옆에는 이 윗삽실이란 지명 이름도 보인다.

그곳에서 상신 윗삽실 마을 뒤를 보니 이제부터 올라 장령지맥이란 이름으로 걸어야 할 금성산 분기점은 안개속에 묻혀 있어 오늘 산행도 역시 쉽지 않음을 느끼는 시간이다.


애마를 하신리 상신마을 앞 37번 4차선 포장도로 아래 지하통로 옆에 잘 주차를 시키고 산행 준비 후 밖으로 나오니 생각보다 춥지 않아 귀마개와 장갑을 차에 두고 산행 들머리 방향으로 걸어가며 도로 좌측으로 이제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곳을 살펴보니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 있고 금성산은 좌측의 산마루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많은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그 뒤로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보이는 하신리는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에 있는 리로서 금성산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금산에서 대전으로 통하는 국도변에 위치하며 상신, 중신, 하신을 통합하여 하신리라 한다.

자연마을로는 소고개, 집건네, 산댓골, 대장골 등이 있는데 산댓골은 산으로 가린 골짜기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부르는 이름이고 온양 이씨 어필각, 하신성, 이원배 효자정려, 진주 강씨 열녀비, 밀양 박씨 열행비, 이흥엽 효자비문 등 고적이 많은 마을이며 특산물로는 깻잎이 있다.

지금은 비가 그쳤지만 오후에 다시 한번 더 비 예보가 되어 있어 비들목재까지만이라도 비가 내리지 않기를 바래보지만 기상청의 예보를 믿지 못하기에 오늘 날씨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신2리 윗삽실 마을 설명판과 버스 정류장을 지나 금산농협 상신농산물간이잡하장 건물을 통과하니 아침이 밝아오며 마을에 있는 모든 강아지들이 이방인의 출현을 반기는 것인지 아니면 의심을 하는지 떼창을 하며 시끄럽게 하고 있어 빠르게 걸어 통과한다.

잠시 후 직진 방향으로 은적사를 가리키는 포장도로 갈림 사거리를 지나 직진의 도로를 따르니 잠시 후 도로 우측으로 상신저수지가 나타나는데 잠들어 있던 철새가 이방인의 출현에 놀라 산으로 날아간다.

그 상신저수지를 지나니 다시 은적사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으로 가는 은적사 도로를 버리고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능선 방향으로 향한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금성산술래길이라는 이정표가 서 있고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임도 좌측으로 가파른 경사면에 낙엽송이 서 있는 곳에서 좌측의 가파른 오르막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어렵게 그 오르막 낙엽송 능선을 따라 오르니 드디어 제도권 등로를 만나는데 그곳에는 갈림사거리 이정표가 보이는데 우측방향으로 금성산정상까지 300미터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반갑다.

3년 전 식장지맥 산행을 하면서 만났던 이정표가 떠 올라 비슷하다는 생각으로 우측의 금성산 정상부로 향한다.


잠시 걸어 오르니 하신리에 대한 서령판이 서 있고 그곳을 지나 가파르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자욱한 안개속에 안전목책이 설치된 등로를 만나 오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드디어 금성산 정상에 도착을 해 4년 전 만났던 기억이 되살아 나며 그때도 참으로 어렵게 올랐다는 기억을 떠 올려 본다.

오늘 산행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렵게 모바일 폰을 사용해 셀카로 사진 한장 남기고 주위를 둘러 보지만 안개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어 아쉽다.

금성산(437.8미터, 삼각점 금산 308)은 충청남도 금산군의 금성면과 복수면 및 추부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437.8미터이고 1914년 등장하는 금성면의 명칭이 유래할 정도로 이 지역에서는 진산으로 인식되고 있는 의미 있는 산이다.

여지도서에 금성산은 금산으로부터 왔는데 군 북쪽 10리에 있다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하며 조선 전체 사람이 사흘을 먹을 금이 들어 있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읍치 서쪽 장군봉에서부터 금성산을 지나 추부면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서 예로부터 여러 성들이 축조되었는데 만악리와 둑실 사이 고개에 있는 지춘산성(작은성재)과 초미동과 성밑 사이에 있는 학성산성(큰성재) 등이 그것이다.

금성이라는 이름도 과거 이 산에 성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한다.

조망안내도를 살펴보며 그 명소들을 찾아 보지만 보이는 것은 하얀 안개만 앞을 가로막고 있어 아쉬움만 남기는 금성산 정상에서의 시간이다.


보이는 것이 없아 아쉬움만 남기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장령지맥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생각해 보니 이곳은 실질적인 분기점이 아니기에 잠시 금성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약간 내려간 금성산성이 있는 곳 묘지 뒤에 붙어 있던 준희님의 산패가 생각 나 잠시 다녀 오기로 한다.

장령지맥 분기점이라는 산패는 4년 전이나 오늘이나 동일한데 왠지 모르게 오늘 산패가 조금 더 깨끗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정상적인 분기점에 섰으니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즐거운 장령지맥과의 추억을 담아 볼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어 보는 시간이다.


장령지맥 분기점이라는 산패를 만나고 그 아래 조용히 잠들어 있는 무명묘지로 내려 오니 비에 젖은 할미꽃이 막 피어 나려는 듯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어 올 들어 처음 만나는 할미꽃이기에 사진에 담아 본다.

산행을 하다보면 자주 만나는 할미꽃인데 왜 무덤에서 가장 잘 만나고 다른 곳에서는 만나기 어려운지 궁금증이 생겨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어 공감하는 시간이다.

봄에 일찍 피는 야생화는 햇볕이 잘 드는 양지에서 빨리 자라야 하기에 무덤에서 자주 목격이 되는데 할미꽃도 이런 야생화중에 하나로서 이런 야생화는 민들레와 제비꽃 및 할미꽃이 대표적이다.

이 세가지 야생화의 공통점은 바로 묘지 주위에 많다는 것으로 제비꽃과 민들레는 할미꽃과는 달리 묘지 이외의 밭이나 다른 양지 바른 곳에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할미꽃은 뿌리에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극약으로 사용되었고 그래서 습기가 없는 산성의 토질에서 잘 자란다고 하는데 석회질까지 뿌리는 묘지지대는 진디 이외의 다른 식물들모 많지 않아 자생하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이 되었다.

이제서야 이해가 되는 부분으로 할미꽃을 만났으니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계절의 변화임을 느낀다.


장령지맥 분기점을 사진에 담고 묘지 위에 피어나기 시작하는 할미꽃도 살펴 본 후 다시 무너진 금성산성을 타고 나오니 금성산성에 대한 설명판이 서 있다.

읽어 보니 금성산성에 대한 설명은 없고 이곳이 조망이 넓고 성내에 성이 있었으며 주변의 여러산성을 거느렸던 산성이었다는 간단한 내용만 보인다.

다시 나무 계단을 타고 오르니 칠백의총이란 이정표가 보이고 곧이어 폐헬기장을 지나 다시 금성산 정상에 도착을 해 그 한가운데 구석에 방치되어 있는 삼각점을 확인해 보니 금산 308이라는 3등 삼각점이다.


그 금성산을 지나 본격적인 장령지맥 산행을 시작하는데 비에 젖은 활엽수 낙엽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갑자기 선락장군하동정공 묘지가 나타나 처음 보는 선락장군을 찾아 보니 조선시대 무산계급의 하나이다.

지방세력가와 공이 있는 평민과 천인들에게 무산계급을 수여하던 고려와는 달리 조선에서는 무신들에게 무산계를 수여하였는데 종4품의 무관을 상하로 나누어 상에게는 정략장군을 주고 하에게는 선략장군의 관계를 주었다고 되어 있다.

다시 비에 젖은 낙엽을 밟으며 걸어 진행하니 금새 등산바지와 등산화가 축축히 젖어오고 그렇게 보이는 것 없이 안개속을 진행하니 노란 생강나무 꽃이 활짝 피어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무명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그물망이 높게 쳐져 있고 그 그물망을 타고 우측으로 진행하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한동안 그 그물망을 타고 좌우측으로 왔다리 갔다리 하다보니 커다란 참나무와 아름다운강산이라는 닉을 사용하고 있는 선배님의 띠지가 걸려있는 360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하고 다시 출발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수원백씨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진행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앞에 오늘 새벽 지나간 37번 4차선 금산로가 보이고 그 도로 건너 마루금을 가로막고 있는 금산환경재생산업 공장과 그 좌측으로 이어지는 장령지맥 마루금이 짙은 안개속에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묘지 우측 가장자리를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포장도로와 민가들이 보이고 그 골목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금새 차량 통행량이 많은 37번 4차선 금산로가 지나는 미륵재에 도착을 한다.

추정리는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가 대부분의 지대를 차지하고 있는 마을이고 시가지가 발달해 있으며 남쪽으로 금산천이 흐르고 있다.

북동쪽으로는 기사천이, 남동쪽으로는 봉황천이 굽어 흘러가고 있으며 남서쪽에 월봉산이 위치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가래올과 동정 마을 등이 있는데 가래올 마을은 추정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라 해서 가래올 마을이라 불리며 동정 마을은 가래울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왜 이곳을 미륵재라 했는지 궁금해 자료를 찾아 보니 그 어느곳에서도 이곳이 미륵재라고 하는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한데 이곳은 추정리로서 추부면 용지리와 금성면 대암리를 이어주는 고개처럼 보인다.

생각보다 차량들의 통행량이 많고 중앙분리대도 높게 설치되어 있어 고민하다 차량 통행이 뜸한 시간을 이용해 무단횡단을 감행하고 그렇게 도로를 건너니 마루금은 금산환경재생산업 공장이 가로막아 진행이 어렵기에 중국집과 추정현대오일뱅크를 지나 태림산업건설이라는 입간판이 서 있는 곳 우측으로 들어가며 어렵게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주유소 지나 태림산업건설이라는 입간판 앞으로 나 있는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들어가니 그곳은 태림산업건설의 작업장으로 이어지고 그 작업장을 지나 능선으로는 콘테이너 박스 뒤로 철계단이 나 있다.

조심스럽게 그 철계단을 오르니 지독한 가시나무와 잡목들이 진행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잠시 그 잡목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우측 무명봉인 303.1봉은 올라갈 생각도 못하고 좌측으로 나 있는 아카시아 나무들이 크게 자라고 있는 묵은 폐임도를 따라 진행을 한다.

몸에 상처를 내면서 어렵게 그 아카시아 지대를 지나니 묵은 안부가 나타나고 그 안부를 지나 오르니 지독한 잡목지대가 다시 앞을 가로막으며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온 몸에 빗방울을 튀기며 참으로 어렵게 그 잡목과 가시나무 지대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그 잡목속에서도 고운 분홍빛 진달래가 피어나 이슬비에 꽃잎을 적시고 힘들게 진행하는 이 산객에게 화사한 미소를 건네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몇장의 사진으로 남겨 본다.

힘들게 그 잡목지대를 지나 우측으로 돌아 오르니 멋진 잔나무 등로가 잠시 열리고 그 등로를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추정리 마을이 안개속에서도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고 곧이어 344.6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준희님의 산뜻한 산패가 걸려 있어 인사 한번 드리고 사진 한장 남긴 후 출발한다.


그 344.6봉을 지나 진행을 이어가니 뚜렷한 등로가 잠시 이어지고 곧이어 자동차 소음이 강하게 들리기 시작하는데 살펴보니 바로 눈 앞으로 35번 4차선 통영과대전간 고속도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짜피 고속도로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좌우측의 지하통로를 찾아야 하기에 이 산객은 우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묵은 임도를 타고 내려가 지하통로를 건너기로 한다.

잠시 걸어 내려가니 인삼랜드휴게소가 전방 2 Km 지점에 있다는 도로표지판을 지나 나타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지하통로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해 본다.


지하통로를 통해 통영대전간 고속도로를 건너 등로 좌측의 고속도로를 올려다 보니 서울 방향으로 추부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데 오늘 새벽 저 추부 IC를 통해 하신리로 향했었다.

이곳 대암리는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마을 동쪽에 닭이봉이 솟아 있으며 남쪽으로 하천이 유입해 들어오고 있고 서쪽에는 대암들과 산태미티들이 펼쳐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섶실과 대암 마을 등이 있는데 섶실 마을은 섶이 많이 있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지명이며 대암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경관이 아름답다 하여 대미라 불리던 것이 후에 대암 마을이라 개칭되었다.

잠시 더 도로를 타고 우회했던 등로를 따라 마루금으로 복귀하면서 도로 우측 앞을 올려다 보니 저 멀리 이제부터 올라야 할 대암성터가 제법 가파른 높이를 자랑하며 이 산객을 부르고 있는 듯 보인다.


도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좌측 건물이 보이는 곳으로 이어지는데 다가가 살펴보니 향운각으로서 제주고씨의 금산 입향조를 모신 사당처럼 보이는 건물이다.

그 건물을 지나 고속도로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생협연대물류 창고 몇동이 보이고 그 건물들을 우측에 두고 고속도로 옆으로 나란히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삽재 정상으로 오른다.

그렇게 고갯마루로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는 통영대전간 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우측으로는 고속도로 공사중 만들어진 절개지 위에 도로 점검용 작은 철계단이 능선으로 이어져 있는 삽재 정상에 도착을 한다.

삽재는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대암리에 있는 마을로서 대미 북쪽에 있고 대암리에서 추부면 장대리로 넘어가는 삽재 고개 아래에 마을이 있으므로 고개 이름을 따라 삽재라고 부르며 반남박씨가 많이 산다.

관암지맥 산행을 하면서 대전 유성과 공주의 경계를 넘는 고개가 삽재였는데 이곳도 삽재라는 고개가 있어 조금은 흥미로운 이름이다.

일 때문에 자주 이용했던 통영대전간 고속도로의 대전 방향을 살펴보니 옛추억이 떠 올라 잠시 더 살펴보고 우측의 철계단을 타고 다시 산행을 이어가 본다.


제법 높은 절개지 한가운데에 설치된 고속도로 점검 용 좁은 철계단을 타고 오르다 보니 한여름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죽은 잡목들과 가시나무들이 뒤엉켜 약간의 어려움을 주는데 한여름철에는 이 계단을 이용해 오르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게 조심하며 그 고속도로 절개지를 올라 능선으로 드니 그림같은 활엽수 등로가 열려있고 그 끝자락에 대암성 정상부가 살짝 올려다 보인다.

그림같은 등로를 따르니 등로 주위에 피어난 진분홍 진달래꽃이 가랑비에 젖어 있는 청초한 모습으로 이 산객을 부르고 있어 잠시 친구 놀이를 해 주고 다시 오르니 거대한 바위 암벽이 앞을 가로막아 우측으로 우회하며 힘들게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가 잠시 살펴보니오늘 산행을 시작한 하신리마을과 37번 4차선 포장도로 그리고 그 뒤로 장령지맥 분기점인 금성산과 그곳에서 이곳으로 이어진 마루금이 안개속에서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지나 온 마루금을 살펴 본 후 다시 정상 등로로 복귀해 걸어 오르니 금새 성터가 나타나는데 일부만 남아 있고 대부분은 쓰러지고 넘어져 빠른 고증 후 복원이 필요해 보이는 대암성터이다.

대암성터는 일명 북산(429미터)이라고도 하는데 북산은 충청남도 금산군의 금성면 대암리와 추부면 장대리 및 추정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429미터인데 대암리 북쪽이 되므로 북산이라고도 하고 옛 성터(대암산성)가 있어 성티 또는 오대산이라고도 한다.

잡목들과 소나무들이 성 주변에 자라고 있어 조망은 없지만 성터로서의 가치가 있기에 쌓았던 성이 아니였나 생각도 해 본다.


그 성터를 따라 낙엽속을 조심하며 천천히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잠시 더 돌담이 이어지고 등로 좌측으로는 나즈막한 돌탑 몇개도 보이는데 누군가 이곳에 올라 일부러 쌓은 듯한 모습이다.

그 돌탑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잡목들로 둘러 쌓인 곳에 427.9 삼각점봉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대암성터 및 성재라는 지명이 나란히 씌여 있어 아마도 이곳을 성재라 부르고 있는 듯 보인다.


삼각점이 박혀 있는 성재 정상을 지나 쓰러진 성터 돌들을 타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안부가 나타나고 그 안부를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활엽수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 본다.

한동안 내려가니 안부가 나타나는데 커다란 참나무 한쪽으로는 무너진 돌탑이 보여 예전에 성황당터는 아니였을까 생각되는 고갯마루인데 이제는 지나다니는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장령지맥 산행을 위해 찾는 산객들만 지나며 돌 하나 더 올려 놓고 가는 무명고개로 변한 안부터럼 보이는 곳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전국적으로 수많은 성황당 안부를 만나는데 이제는 오래된 추억이 된 듯 사라진 흔적의 안부들이 많아 보이는데 성황당은 서낭당의 다른 말로서 서낭신을 모신 당집이나 제단을 말하며 지방에 따라 할미당과 천황당 및 국사당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서낭신은 토지와 마을을 수호하는 신으로 최근까지 전국에 널리 퍼져 있었으며 서낭당은 보통 신수에 잡석을 쌓은 돌무더기나 신수에 당집이 복합되어 있는 형태로 고개 마루, 길옆, 부락입구, 사찰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서낭당은 서낭신의 봉안처인 동시에 거소가 되는데 이 신은 천신과 산신의 복합체로 보여지며 서낭신의 신앙에는 내세관이나 인간 정신세계의 이상 같은 것이 없고 현실적인 일상생활의 문제가 중심을 이룬다.

안부를 지나니 등로는 다시 낙엽 깔린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성황당 안부를 지나 다시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참나무들과 작은 바위들이 보이는 398미터의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눈 앞에 거대한 바위 암벽이 가로막고 있다.

지도를 보니 등로 우측으로는 닭이보으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로서 정상에는 특별한 것이 없기에 정상을 들리지 않고 좌측의 사면 등로를 타고 닭이봉 갈림삼거리 봉은 오르지 않고 통과하며 진행하기로 한다.

닭이봉은 충청북도 옥천군의 군서면 금산리와 행정리 및 사정리와 충남 금산군 추부면 성덕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508미터이며 닭이봉의 지명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대동여지도에 계현(鷄峴)으로 관련 지명이 표기되어 있고 계현은 조선지지자료에 계치(鷄峙)로 기록되어 있으며 같은 책에 계산(鷄山)이 따로 기록되어 있다.

또 계현과 계산의 한글 이름인 달기와 달기산도 함께 소개하였고 한국지명총람에는 닭의산이라는 또 다른 이름도 소개되어 있다.

죽렴지맥과 영월지맥 산행을 하면서 다녀 왔던 닭이봉 일명 계봉이 생각 나 잠시 그때의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도 가져 본다.


닭이봉 갈림삼거리 앞 바위 암벽을 우측에 두고 좌측 능선으로 우회하며 진행하니 다시 우측 갈림삼거리에서 내려오는 정상적인 마루금을 만나 좌측으로 산행을 이어가 본다.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정상을 지키는 무명봉을 지나 약간의 작은 돌들이 깔려 있는 등로를 통과하니 등로 양쪽으로는 예쁜 진달래가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모습이 이곳 등로에도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 갑자기 눈 앞에 벌목지가 펼쳐지고 멋지게 피어난 진분홍빛 진달래꽃을 살펴보며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동편리 마을과 그 뒤로 오늘 오후에 올라야 할 방화봉과 국사봉 마루금이 안개속에 드러나 있다.


그렇게 잠시 더 진행 방향으로 장령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벌목지대 경계선을 타고 걸어 오르니 커다란 바위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바위를 지나니 예쁜 진달래가 활짝 피어있고 그 진달래꽃 뒤 커다란 참나무 위에 이곳이 419.4봉임을 알리는 여영님의 산패가 올려다 보인다.

다시 등로 우측을 보니 조금 더 선명하게 많은 선답자들이 제1구간으로 끊어 진행을 한 비들목재를 가운데 두고 좌측의 방화봉과 우측의 국사봉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렇게 그곳 419.4봉에서 조망을 즐기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등로 우측 앞쪽으로 지금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수암재 넘어 이어지는 송전탑과 431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비가 다시 내린다고 하여 걱정을 하며 진행을 하지만 새벽에 내린 비를 제외하면 산행중에 내리는 비는 없어 다행이지만 습도가 높아 많은 땀을 흘리고 날씨가 흐려 조망이 없는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이정도의 조망이라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이제는 등로 좌측으로 대양리 마을과 숭암저수지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바로 뒤로 철마산과 저 멀리 만인산과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식장지맥의 산줄기들이 그 옛날 추억을 이야기하며 한자락을 꺼내 놓는다.

등로 좌측 앞으로는 서대리쪽 무명봉이 우뚝 솟아 있어 처음에는 무슨 산인지 확인을 해 보지만 이름이 없는 무명봉이다.

그렇게 등로 좌측을 조망하며 천천히 전진하니 갑자기 비포장 안부가 나타나고 지도를 보니 수암재라는 고갯마루인데 이곳 나뭇가지에도 준희님이 붙여 놓은 수암재라는 산패가 반겨 준다.

수암재는 추부면 장대리 하숭암마을과 군북면 동편리 퉁점마을을 이어주는 고개인데 왜 수암재인지는 알 수가 없다.


잘룩한 수암재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올라 진행하니 금새 잡풀들이 자랐다 말라죽어 있는 작은 밭 경작지가 나타나고 그 밭을 지나 만나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간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최근에 생긴듯한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데 이곳은 내린비로 인해 흙이 깍이면서 새로 생긴 비포장 임도 위로 떨어지고 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무명 안부로서 미끄러지는 절개지를 타고 조심하며 다시 능선으로 오른다.


능선으로 오르니 평이한 소나무 등로가 펼쳐지고 잠시 후 33번 송전탑을 만난다.

그 송전탑을 통과한 이후에도 멋진 소나무 등로가 잠시 더 이어지고 이제부터 활엽수 낙엽이 푹신하게 깔려 있는 명품 등로로 바뀌고 있다.

무심으로 힐링하듯 그렇게 그 아름다운 등로를 따르니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은 능선상 커다란 소나무에 준희님이 431미터봉이라는 산패를 걸어 놨다.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은 431미터 봉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멋진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여전히 푹신한 솔갈비와 활엽수 낙엽 등로로 이어진다.

무명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무명안부가 나타나는데 장대리와 조정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처럼 보인다.

어느 선답자는 이곳을 조정리재라 부르기도 하고 또 어떤 선답자는 이곳을 장대리재로 부르기도 하는 듯 보이는데 양쪽 마을을 이어주는 고개이니 어떻게 불러도 문제는 없을 듯 보인다.

금산군 추부면 장대리에 있는 고개로 장대리는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에 있는 리로서 구릉성 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마을 동쪽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쪽에는 숭암저수지가 위치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장대와 숭암 마을 등이 있는데 장대 마을은 동면시장이 섰다 해서 동면장터라 불리었는데 후에 장터 마을이라 개칭되었다.

숭암 마을은 장대 동쪽에 있는 마을로 동네 어귀에 문바위(문처럼 생긴 바위로 옛날 효자감사 김천석이 독서 하던 곳)가 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장대리와 조정리를 이어주는 안부를 지나 오르니 생각보다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 진땀을 흘리고 그렇게 힘들게 정상에 도착하니 이곳 정상에는 맨발님이 456.2봉임을 알리는 산패가 달려있다. 


그 456.2봉을 지나 여전히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조망이 터지는데 등로 좌측 앞으로는 구름속에 정상이 숨어 있는 충청남도의 최고봉인 서대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래 전 저 서대산과 천태산에 올랐을 때 이어서 종주 산행으로 한번 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제는 지맥 산행이나 끝마치고 나서 한번 생각을 해 봐야하는 종주길이 되었다.

그렇게 잠시 더 조망을 즐기며 진행하니 이원 402라는 삼각점이 박혀 있는 411.1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더 남겨 본다.


삼각점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눈 앞에 드넓은 벌목지가 나타나고 자세히 살펴보니 소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다.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아래 민재에는 많은 공장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어짜피 정상적인 마루금을 타고 진행이 어려울 것 같아 가능하면 좌측 벌목지의 소나무가 식재되어 있는 곳을 타고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다 등로 좌측 앞을 살펴보니 서대리마을과 그 우측으로 서대산이 드높게 올려다 보이는데 그 서대산 정상부는 여전히 구름속에 숨어 얼굴을 보여주지 않지만 아까 내려오다 만났던 모습보다는 구름이 많이 벗겨진 상황이다.

서대리에는 사업적으로 거래처가 있어 자주 왔던 곳이라 더욱 반갑기만 하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다 이제 진행 방행을 살펴보니 601번 군북로 2차선 포장도로의 민재와 그 민재 앞뒤로 펼쳐져 있는 많은 공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 금풍 건물 뒤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487.3봉이 어서 오라 손짓하고 있지만 그 오르막 등로가 생각보다 가파라 보여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 좌측으로 여전히 서대산이 드높게 솟아 있고 그 서대산으로 갈라지는 갈림삼거리 봉은 앞의 뾰족한 487.3봉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생각보다 등로의 고저가 많고 지금까지 진행하던 지맥 마루금과 달리 고도도 상당히 높게 느껴지기에 체력적인 부담으로 다가오는데 오늘 새벽엔 특히나 잠이 부족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벌목지의 소나무 식재 구간을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보령석재 앞마당으로 이어지고 정문이 굳게 닫혀 있기에 그 아래 공간을 통해 개구멍을 통과하듯 어렵게 통과해 걸어가니 드디어 601번 2차선 군북로 포장도로가 지나는 민재에 도착을 한다.

이 민재는 좌측의 서대리와 우측의 조정리를 이어주는 601번 지방도로 위 고갯마루로서 현재는 고개가 높지 않아 평이한 도로처럼 보이지만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제법 높아 걸어 넘기 쉽지 않았으리란 생각이다.

바로 보령석재 앞마당을 통해 어렵게 내려왔고 도로 건너 금풍 건물을 우측에 두고 그 건물 벽을 타고 능선 방향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시간을 보니 이제 오전 11시를 가리키는데 비들목재까지는 아기도 많이 남아 있어 처음 6시간 이내에 비들목재까지 간다는 계획은 맞추기 어렵게 느껴진다.

금풍 벽을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초반부터 가파른 낙엽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힘들게 오르니 좌측에서 올라오는 뚜렷한 등로를 만나 편아하게 걸어 본다.

잠시 후 222번 송전탑을 지나고 다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몇번의 쉼을 한 끝어 드디어 471봉에 도착을 하는데 여영님이 산패를 걸어 놨다.

식수 한모금으로 목마름을 달랜 후 다시 산행을 이어가 본다.


나즈막한 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오르며 487.3봉이라 생각하면 앞에 나즈막한 봉우리 뒤로 또 다른 드높은 봉우리가 얼굴을 내밀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체력적인 문제를 느끼는 이 산객의 의지를 꺽어 놓고 있다.

소나무 등로를 타고 솔갈비를 밟으며 조금은 평이하게 걸어 오르니 키 작은 측백나무가 보이는 440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다 앞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올라야 할 487.3봉이 눈 앞에 우뚝 솟아 있고 그 좌측 저 멀리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 이제서야 완전한 얼굴을 내밀며 한번쯤 다시 만나자고 보채듯 다가온다.


나즈막한 안부로 내려가니 칼등 등로에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이제부터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힘겹게 올라야 할 마루금은 잠시 잊고 힐링하듯 즐겁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명품 등로라 생각해도 좋을 등로를 지나니 등로는 다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잠시 후 커다란 바위들이 줄지어 늘어선 등로도 좌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한다.

바위 지대를 지나니 드디어 아무 표식도 없는 지도상 487.3봉의 좁은 공터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물 한모금 마시며 타는 목마름을 달래 본다.


아무 표식도 없는 487.3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진행하니 나즈막한 안부로 떨어지고 그 안부를 지나니 등로 좌측 앞으로 서대산 북벽의 암벽이 올려다 보인다.

다시 나타나는 바위 등로를 따르니 금새 등로 좌측으로 서대산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아무 표식이 없어 길주의 지점이기도 하다.

잠시 마음의 갈등을 일으키는데 서대산을 다녀오면 비들목재에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해야 될 것 같고 다녀오지 않고 그냥 진행하려니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듯 싶다.

충청남도에서 가장 높은 서대산은 충북 옥천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조선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서대산은 금산의 깊은 산중으로 인식되어 있었던 것 같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조선초기 이전에 서대산에 3개의 서대사가 있어 꽤 알려졌던 모양이며 서대사의 서편 기슭에 있는 현재의 원흥사 터에 서대사가 있었으며 고려말의 고승 취운당의 부도 등 큼직한 청석부도가 많이 남아있고 국내의 여러 절에 옛날 서대사에서 출판한 화엄경이 많이 있음을 보아서도 서대사가 절도 크고 불사도 활발했었음을 알 수 있다.

산의 형태는 땅속에서 그대로 솟아 오른것처럼 보이고 비래산(산맥으로 이어지지 않고 따로 떨어져 독립된 산)에 가까우며 북쪽으로는 잿말재, 남쪽으로는 비들목재, 남서쪽으로 민재를 지나 산줄기가 이어지지만 그 재들이 낮은데다가 서대산 자체가 워낙 우람하고 높이 솟아있어 주위의 모든 산들을 압도한다.
산세는 원추형 암산으로 곳곳에 기암괴봉과 깍아지른 낭떠러지 암반들이 많고 경관이 좋다.

용바위, 마당바위, 선바위, 남근바위, 구름다리, 사자굴, 살바위, 개덕사, 개덕폭포 등이 있고 주릉에는 석문, 견우장연대, 북두칠성 바위에 얽힌 전설이 있으며 서대산 정상에 서면 민주지산, 덕유산, 대둔산, 계룡산 및 대전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서대산의 산길은 모두 가파르지만 암릉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타고 넘고 돌아오르는 등 아기자기하고 재미있으며 산행 중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경관이 좋고 아름다워 산타는 멋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그래도 오늘은 서대산을 다녀오지 않고 곧바로 좌측의 서대산 가는 등로를 포기하고 우측의 장령지맥 마루금을 따라 산행을 이어가기로 한다.


서대산 갈림삼거리를 아쉬운 마음으로 출발하니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가 보인다.

조심하며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다 앞을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 보광로와 새로 생긴 채석장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뾰족한 방화봉과 그 좌측으로 국사봉 및 655봉 그리고 좌측 저 멀리 701봉도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 어디까지 걸어 진행이 가능할지 고민도 시작되는 시간으로 일단 지도 상 비들목재를 지나면 탈출하기도 산행을 마무리 하기도 어렵기에 조금은 신경이 쓰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멋진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보고 조심하게 걸어 내려가니 활엽수 낙엽이 미끄러워 생각보다 산행 속도가 느리게 진행된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다시 멋진 활엽수 낙엽 등로가 열려있고 그 등로를 타고 너무나 호젓하게 힐링하며 걸어 본다.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몇번의 쉼을 가진 후 어렵게 정상으로 향하니 잡목 사이에 바위들이 보이는 502.8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429.5봉과 우측의 뾰족한 방화봉이 아직도 드높게 올려다 보인다.

  

그 502.8봉을 지나 다시 진행을 이어가니 대충산사에서 붙여 놓은 산행 띠지에 비단강 천리 강따라 산따라 라는 글귀가 보이는데 오래전 잠시 좋은 인연이 있던 대전 충남쪽 산악회이다 보니 참석할 기회가 없어 아쉬움이 남아 있는 산악회 띠지라서 더욱 반갑기만 하다.

다시 부드러운 낙엽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고 다시 오르니 441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 뒤를 살펴보니 올망졸망한 산그리메 저 멀리 닭이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저 닭이봉 능선을 따라 걸으며 이곳 장령산 마루금에 대한 생각을 정리 할 기회가 있기를 바래 본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며 걸어 내려가니 벌목 후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나즈막한 무명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올라 환상의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등로 우측으로 절개지와 평탄지가 나타난다.

바로 앞에 조정리 마을이 보이고 그 우측 위로 336.9봉 넘어 오늘 아침에 걸었던 장령지맥 마루금이 끝자락에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절개지 좌측 아래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하니 등로 앞으로 벌목지가 펼쳐지고 등로 좌측으로는 보광로1차선 포장도로와 그 뒤로 채석장이 내려다 보이고 진행 방향 앞쪽으로는 이제부터 올라야 할 방화봉이 우측에 뾰족하고 좌측으로 국사봉이 까칠한 높이를 자랑하며 이 산객의 의지를 꺽고 있다.


비포장 임도를 가로질러 다시 능선으로 오르다 뒤돌아 보니 오늘 걸어 온 장령지맥 마루금과 그 우측 저 멀리 머리에 구름을 이고 있는 서대산이 이어지며 조만간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건네고 있다.

그렇게 멋진 마루금을 돌아 보고 다시 잡목이 보이는 능선으로 진입하니 얼마 오르지 않아 마모되어 인식도 되지 않는 이원 405라는 삼각점이 박혀 있는 429.5봉에 도착을 한다.

이제 고인이 된 한현우님은 이곳을 깃대봉이란 작은 종이 코팅지를 달아 놨는데 정상부는 잡목과 잡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삼각점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넓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고 그 임도를 건너 다시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좌측으로 묘지지대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의 잡목지대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능선으로 들어가니 장령지맥 산행 중 최고의 잡목지대가 펼쳐져 있고 온 몸에 생채기를 내며 힘들게 그 지독한 잡목지대를 헤치고 진행하여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비어있는 산불감시초소가 나타나는데 왜 조망이나 전망도 없는 이런 곳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그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니 명품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무심으로 힐링하듯 그 부드러운 솔갈비를 밟으며 오르니 등로가 갑자기 가파라지기 시작하며 금새 또 다른 산불감시초소가 보이는 555.1봉의 방화봉에 도착을 한다.

방화봉(555.1미터)은 충청남도 금산군의 군북면 동편리와 두두리 및 산안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555.1미터이고 조선 시대 봉화를 올렸던 산이라 해서 봉화재로도 불린다고 전한다.

선답자들의 띠지와 정상 이정판 그리고 산패들이 붙어 있어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곧바로 출발하는 시간이 오후 1시 25여분이 지나고 있어 예상했던 시간보다는 한시간 이상 지체되고 있어 조금은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다.


방화봉을 지나 잠시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구덩이가 나타나는데 전사자 유해 발굴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모르겠다.

다시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빗물이 마르면서 더욱 미끄러워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잠시 후 낙엽송 등로가 나타나고 등로는 우측 사면으로 한동안 우회하듯 걸어 내려가는데 잠시 후 작은 바위가 나타나고 우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하다 앞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비들목재 지나 올라야 할 국사봉 능선이 올려다 보이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저곳을 오르기가 그토록 힘들고 어려운지 몰랐다.

좌측 중앙 아래로 하얀 부분이 보이는데 처음에는 녹지 않은 눈이 왜 저곳에만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오르면서 보니 하얀 색을 가진 바위였다.


계속 가파르게 이어지는 내리막 낙엽 등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지난 가을 우거졌던 억새가 말라 빛이 바랜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그 가장자리엔 하얀 매화꽃이 만개하기 시작해 봄이 오고 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다.

직벽의 절개지이기에 우측으로 길게 우회해 내려가니 많은 선답자들이 제1구간의 날머리로 이용했던 산벛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비들목재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우측으로 내려가 고개를 넘어 좌측으로 이동하며 도로 좌측 철망을 보니 준희님이 달아 놓은 이곳이 장령지맥 비들목재입니다라는 산패가 보인다.

비들목재는 금산군 군북면 두두리에서 보광리와 산안리로 넘어가는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개로서 상곡리와 보광리 갈림길 표지판과 효심사 안내판이 보인다.

비들목재의 자료를 찾다보니 이름이 비둘기와 비슷하다 거나 비둘기가 많다는 등의 설명이 있던 곳인데 흔히 비가 오려면 비구름이 이 고개를 넘어야 마을에 비를 뿌린다는 말에서 유래를 찾아 비들목재라고 했다는 설명도 보이는 듯 하다.

이곳에서 지도를 살펴보니 최소 다섯시간 이상을 빨리 진행해야 그나마 가깝게 탈출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 것으로 보여 더 이상 진행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곳에서 이른 시간에 중단하고 다음에 다시 진행을 해야 하는지 잠시 고민을 해 보지만 아직 식수와 먹거리도 충분하고 헤드렌턴과 우비도 준비를 하였기에 최대한 할 수 있는 곳까지 진행을 하기로 한다.



마음을 정했으니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오르기로 하고 보광로라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 곳 우측으로 오르니 등로는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눈 앞으로는 드넓은 벌목지대가 펼쳐져 있으며 그곳에는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두두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멋진 봉우리가 가깝게 보이는데 살펴보니 닭의 벼슬처럼 생긴 닭이봉이라 생각되고 그 우측 뒤 저 멀리에는 오늘 산행을 시작한 금성산도 보이는 듯 머리만 내밀고 있다.

두두리는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의 지형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는 산간 마을이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며 비교적 낮은 지대에 자리한다.

자연 마을로는 두두, 샘골, 양짓담, 음짓담 마을 등이 있는데 두두 마을은 둔덕에 위치한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샘골 마을은 큰 샘이 있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양짓담 마을은 양지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불리워진 이름이며 음짓담 마을은 음지에 있다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다시 조금 더 걸어 오르다 이번에는 등로 좌측을 보니 산안리 마을에는 거대한 태양광 발전기인지 모를 건물들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정상에는 여전히 구름으로 덮혀 있는 서대산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벌목지대를 따라 오르며 등로 좌우측을 번갈아 살펴보며 계속 걸어 오르니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국사봉 오름길에 하얀색으로 보였던 것이 눈이 아닌 바위의 한 종류임을 알게 되었다.

잠시 후 새로 신설된 듯한 넓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 건너 잡목과 가시나무들이 무성한 오르막 능선을 따라 오르니 이곳 역시 드넓은 벌목지대에 키작은 소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이제는 등로 우측으로 두두리 방향은 소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고 좌측 산안리 방향으로만 발목된 지대가 펼쳐져 있어 산안리 마을과 서대산이 계속 뒤따라 오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힘들게 걸어 올라 벌목지 정상부로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걸어 올라 온 벌목 후 소나무를 식재한 등로와 비들목재 그리고 그 뒤로 너무나 힘들게 올랐던 방화봉이 드높게 올려다 보인다.


이제 벌목지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잡목들과 약간의 가시나무들이 보이고 등로는 더욱 가파라지기 시작하며 체력적으로 힘들어 하는 이 산객의 투혼마저 빼앗아 가는 듯한 진행이 이어진다.

조금 뒤 이제 정상인가 하고 오르면 다시 눈 앞에 조금 더 높은 봉우리가 나타나기를 몇번인가 반복하고서야 너무나 힘들게 669.9미터의 국사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에는 정상석은 보이지 않고 준희선생님의 산패와 이원407이라는 삼각점만 박혀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잠시 물 한모금 마시며 쉬어 간다.

국사봉(669.9미터봉)은 전국적으로 여러 곳에 있는데 이곳 금산군 군북면과 제원면 사이에도 669.9미터봉이 있으며 선비 사()를 쓴 502미터 국사봉도 영동군 심천면에 있다.

그런데 지도의 국사 봉이라고 되어있는 이 산들을 현지 주민들은 한결같이 국수 봉이라 부르는데 그 까닭은 알 수 없으나 이들 산의 대부분이 봉화대 터가 있거나 봉우리에 석축 흔적이 있다.
국어사전에 국수는 먹는 국수가 있고 나라의 병을 고친다는 의국수(醫國手)의 준말로 이름 난 의사의 뜻이 있으며 바둑과 장기의 명수로 나라에서 일류인 사람을 말하는 경우가 있고 두 손을 오목하게 하여 물을 뜨는 것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 중에서 나라와 관계 있는 말은 나라의 병을 고친다는 뜻의 국수 밖에 없다.

이곳 중에서 제일 높은 금산군 군북면 두두리와 길곡리 경계에 있는 668미터 높이의 이 국사봉은 그 모습도 좋거니와 골짜기의 개울도 좋고 숲도 울창하다.

국사봉은 몸집이 우람하고 높은 서대산이 부러운 듯 서대사의 턱밑에서 서대산을 우러러 보고 있으며 갈곡리 새방이골에 한줄기와 산안리 사기점골에 두줄기의 좋은 개울을 거느리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이곳 국사봉 정상에 도착을 하니 시간은 잘도 흘러 벌써 오후 2시 35분을 지나고 있지만 갈길은 멀어 괜시리 올라 왔다는 후회도 해 보지만 이제 돌이킬 수도 없으니 직진만 있을 뿐이다.

이제부터는 다시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가끔 빗방울이 떨어져 다시 비가 솟아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앞서는 시간에 갈길이 머니 또 다른 걱정도 앞서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국사봉을 지나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라 진행을 이어가니 마음은 늘 어느지점에서 탈출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며 좌우측의 마을들을 내려다 보며 진행을 하지만 워낙 멀리 보이는 마을들이기에 당분간 탈출하는 지점을 확인하기는 어려울 듯 보인다.

자시 후 진행하다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바로 앞에 봉우리 하나가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희미하게 머리만 내밀고 있는 산봉우리 보여 자세히 살펴보니 금산의 진산인 진악산처럼 보이는데 희미하게 보여 확실하지는 않다.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잡목들과 잡풀들이 우거졌던 무명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숨가쁘게 걸어 오르니 금새 615.3봉에 도착을 해 헐떡이는 숨을 진정시키며 식수 한모금으로 목마름을 달래 본다.

 

그 봉우리를 지나 다시 활엽수 낙엽이 깊게 쌓여 있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무명 안부를 만나 통과하고 다시 오르니 거대한 바위 암벽이 앞에 나타나고 어렵게 그 암벽을 올라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어렵게 통과한 국사봉과 615.3봉이 쌍봉을 이루며 아름답게 이어져 있다.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는 제원면의 마을들이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 희미하게 발군산도 보이는 듯 한데 그 이후의 먼 거리에 있는 산군들은 희미한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다.

 

우측의 제원면 쪽 마을들을 내려다 보니 등로 바로 아래쪽으로 드넓은 산판도로가 새로 생긴 듯 이어져 있어 자세히 살펴보지만 역시나 차량으로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조망을 즐기고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등로가 가파라지고 곧이어 꼬부랑 소나무 한그루와 잡목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655.4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이제부터 우측으로 크게 꺽여 내려가는 등로를 찾아 조심스럽게 확인하며 진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평이하게 걸어 진행하니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644 무명봉을 통과하고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등로에 묵은 묘지가 나타나는데 선답자들의 띠지가 좌측 90도 꺽여 내려가는 길목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지도를 확인하니 이곳 역시 좌측으로 내려가야 하는 길주의 지점이다.

지도 상 629미터의 갈림삼거리로서 다시 한번 더 등로를 확인하고 그 묵은 묘지를 출발하여 좌측 내리막 등로로 내려가며 산행을 이어간다.


묵은 묘지가 있는 갈림삼거리를 지나 좌측으로 잡목들이 우거진 하산 등로를 따르니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뾰족한 봉우리 하나가 눈에 들어오고 살펴보니 천태산 줄기의 봉우리이다.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낙엽이 푹신하게 쌓여 있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고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높지 않은 무명봉을 통과하고 다시 나타나는 무명 안부를 통과해 힘겹게 오르니 등로 옆에 노란 제비꽃이 피어나 힘든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잠시 쉬면서 예쁜 노란 제비꽃을 사진에 담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평이한 능선에 도착을 해 그 능선 끝자락으로 가니 등로는 이제 우측 아래 방향으로 내려가며 이어지고 있다.

잠시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다 앞을 바라보니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526.2봉이 바로 눈 앞에 보이고 그 봉우리 좌측 저 멀리 천태산 갈림삼거리인 701봉과 우측으로 뾰족한 천태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사진 몇장 남기고 출발한다.



아름다운 천태산 줄기를 살펴보며 계속 내려가니 다시 깊은 활엽수 낙엽이 쌓여 있는 무명 안부를 지나고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힘들게 걸어 오르니 벗나무와 잡목들이 보이는 526.2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도 역시 준희선생님이 산패를 걸어 놨다.

이곳에서 다시 약간의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잠시 발걸음 멈춰 우측으로 신안사가 보이는 바로 아래 도로를 확인하니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서 비포장이라 되었던 신안사로 이어지는 도로도 모두 포장이되어 있어 이곳에서 가능하면 오늘 산행을 마무리하면 어떨까 고민을 하며 걸어 내려간다.


약간의 희미한 등로를 찾아 낙엽을 헤치며 힘들게 내려가니 드디어 포장된 1차선 도로에 도착을 하고 이곳에서 잠시 지도와 트랙을 확인하는 사이 비가 솟아지기 시작해 더 이상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기에 지인에게 전화를 해 주소를 알려주고 신안사에서 구경하며 쉬고 있겠다고 하니 알겠다며 30여분 기다려야 한다고 알려 온다.

신안고개(420m)금산군 제원면과 군북면이 만나는 지점이고 이곳이 신안리이기에 신안재 또는 신안치로 불려지며 신안고개라는 이름도 붙은 듯 보이는데 산행은 이제부터 그 면의 경계를 따라 진행하게 된다.

신안리는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가 대부분의 지대를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마을 동쪽에 천태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하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신안 마을 등이 있는데 신안 마을은 옛날에 임금님이 편안히 쉬어 간 신인사라는 절이 있다 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고 문화재로 시도유형문화재 3호인 신안사대광전, 시도유형문화재 117호인 신안사극락전이 있다.

이곳 신안고개에서 배낭 커버를 꺼내 바낭을 덮고 우산을 펴 쓰고 우측 신안사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니 신안사까지의 거리는 약 1.2 Km 정도일 듯 보인다.


그렇게 내리는 비를 피해 준비한 우산을 쓰고 한동안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드디어 신안사 앞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좌측 다리 건너 신안사로 들어 가 잠시 신안사를 둘러 본다.

신안사는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신안리 신음산에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며 651(진덕여왕 5)에 자장이 창건하였고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충청북도 영동군에 있는 영국사에서 수학할 때 이 절에도 가끔 들러 유숙하였는데 주위의 경관과 어울려 몸과 마음이 아울러 편안하다고 하여 신안사라 하였다.

그 밖에도 583(진평왕 5) 창건설과 조구가 헌강왕(875885) 때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가람고에 각각 현존 사찰로 기록되어 있어 그 무렵에도 존속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보석사의 말사가 되었다가 한국전쟁으로 퇴락 되었으나 곧이어 중건되었다.

이 절의 당우로는 대웅전, 극락전, 진향각, 요묵당 등의 호화롭고 장엄한 건물이 즐비 하였으나 오랜 세월에 병화로 소실되어 지금은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117호로 지정된 극락전과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대광전과 요사채가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불상 또한 원래는 10여기가 봉안되어 있었으나 병화로 소실되었을 때 태고사 등으로 옮겨 봉안하였음으로 현재는 5기뿐이지만 그 단정하고 우아한 모습은 조선시대 불상의 걸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전성기에는 3000명의 승려가 수학하였다고 하며 불경과 불기 등 여러 가지 비품이 많았으나 6·25 때 모두 소실되었다.

절 앞에 있는 연못과 폭포 및 20리에 뻗친 계곡은 경승지로도 유명하다.

신안사로 들어가니 비는 더욱 거세게 뿌려대고 오늘 산행을 신안고개에서 마무리 한 결정은 잘되었다고 스스로 위로를 해 보는 시간이다.


신안사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대광전을 사진에 담고 마루턱에 걸터 앉아 비를 피하며 잠시 모바일폰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신안사 대광전은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신안리신안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으로 정면 5칸과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건물이며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호이고 이 건물의 가구상 특징은 측면 박공부분에까지도 평방을 돌리고 공포를 짜올린 점이다.

공포의 구성은 안팎 모두 3출목이며 제공(첨차와 살미가 층층이 짜여진 것)의 형태는 모두 앙서형이고 내부의 살미첨차는 장식화가 덜 진행된 양봉형이다.

내부의 바닥에는 마루를 깔고 뒤쪽 가운데 3칸의 기둥 사이에 후불벽과 불단을 설치하였고 그 위에 닫집을 꾸며 불상을 장엄하였다.

그렇게 그곳 신안사에서 약 20여분 돌아 보고 쉬고 있으니 지인이 도착을 하고 그 차량을 이용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허신리에 도착하니 오후 5시 30여분이 지나고 있다.

오늘 저녁에 지인과 저녁 약속을 했었는데 지인도 갑자기 다른 일정이 생겨 떠나고 홀로 나무 힘들게 진행을 했는지 아니면 내일도 비 예보가 되어 있어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모르게 갑자기 서울 집으로 복귀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으로 문자와 e-mail을 확인하니 갑자기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 그 핑계로 내일 산행을 중단하고 서울로 복귀하게 되었다.






새벽에 내리던 비와 산행을 시작하며 비는 그쳤지만 자욱한 안개와 높은 습도로 인해 어렵게 진행하다 보니 속도도 나질 않고 체력적인 소모만 커져 결국 근래들어 가장 힘들게 진행한 산행이 되었다.

특히나 민재를 지나면서부터는 지독한 빨래판 등로로 인해 더욱 어렵고 힘들게 진행을 하였으며 그래도 밤 늦게까지 진행하면 장령산 근처까지 진행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아 그렇게 준비를 하였는데 신안고개에서 비를 만나 오늘 산행을 마무리하고 나니 다음 한구간으로 마무리 하기에 조금은 긴 거리가 남아 있어 고민만 늘어 났다.

그래도 무탈하게 잘 마무리하고 알고 지내던 지인의 도움으로 차량을 회수해 집으로 복귀하여 치킨에 소맥 한잔하고 나니 이 세상 부러움 없이 즐거운 토요일이 지나고 있다.


내일은 생긴 일을 처리하고 후기를 정리하다 보면 또 하루가 지날 것이기에 조만간 다시 내려가 가능하면 하루만에 완주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90330 장령지맥1구간 하신리-신안사.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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