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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여수지맥(호남·완)

여수지맥 제1구간 청소리 심원에서 순천제일교회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7.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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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순천시와 광양시 여수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7년 12월 28일 (목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강한 바람과 함께 상당히 추웠지만 맑았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하 08도에서 영상 3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청소리 심원버스정류장(청소길 840번 2차선 포장도로)-심원교차로(865번 2차선 포장도로와 합류지점)-황전터널 앞 계족산 등산로 안내도와

                등산로입구 이정표(미사치 0.9 Km, 심원마을 0.7 Km)-비포장임도-미사치 운동기구와 벤취쉼터들, 계족산 등산로 안내도와 이정표(계족산과

                깃대봉, 갓꼬리봉과 청소년 수련원, 황전면 회룡, 서면 심원마을 관풍정 1700 m)-453 미터 폐헬기장-125번 송전탑-454 고사목봉-698

                철쭉군락지와 철벤취쉼터들-이정표(계족산과 깃대봉, 등산로아님)-786 전망바위-여수지맥 분기점(삼면봉, 돌탑과 철 벤취쉼터 및 이정판)-

                깃대봉(858.4미터, 정상이정판과 삼각점, 계족산 등산로 안내도와 철 벤취쉼터)-여수지맥 분기점 복귀-818 무명봉-797 이정표(안치 0.8 Km와

                계족산 3.12 Km 및 정혜사 4.67 Km, 깃대봉 0.76 Km와 미사치 2.82 Km, 광양시 봉강면)-714 무명안부-721 바위봉-643 무명안부-

                안치(계족산 등산로 안내도와 철 벤취쉼터) 이정표(계족산 2.32 Km와 정혜사 3.87 Km와 깃대봉 1.56 Km 및 미사치 3.62 Km)-655.6봉-

                봉강터널 위-644 무명봉-708.2봉-고사목 안부-722.3봉-700 무명봉-계족산(6824미터, 벤취쉼터) 이정표(광양시 봉강면, 안치 1.98 Km와

                깃대봉 3.54 Km 및 미사치 5.60 Km, 정혜사 1.55 Km)-729.4봉-704 무명봉-708.9봉(준.희님은 714봉)-697 무명봉-682 돌담봉-232 송신탑-

                비포장임도-참나무 능선진입-533 급경사 오르막 로프구간-627 무명봉-용계산(625.6미터, 삼각점, 준희님은 624.7미터)-잡목지대-495 무명

                안부-512 무명바위봉-542.6봉(준희님은 541미터)-바위 우회등로-소나무 등로-419 삼각점(?)-밤나무 단지-편백나무 등로-104번과 35번

                송전탑-비포장임도-244 무명봉-264.4봉 좌측으로 우회-267 무명봉-227 갈림삼거리봉(길주의, 잠시 알바 후 복귀)-좌측 벌목지대-201 무명

                고사목봉-175 파란물통-시멘트 포장도로(구랑실재길)-지하통로(순천완주고속도로 순천분기점 통과)-밭 경작지와 조경수-시멘트 포장도로-

                용림버스정류장과 삼화기업 입간판-압곡육교(2차선 포장도로, 남해고속도로 순천부산 통과)-용림마을 도로표지판-용림버스정류장-능선진입-

                시멘트계단-시멘트수로-155 밤나무 비포장임도-봉화산(310.3미터, 삼각점, 준희님은 310.1미터)-258 타이어고사목-241 무명봉-소나무 등로-

                시멘트 계단-순천완주고속도로 갓길-대동교-순천완주고속도로 탈출-왕지로 1차선 포장도로-갈림삼거리에서 능선진입-희준님 응원판-지독한

                잡목과 간벌목지대-바위 갈림삼거리-186 묘지봉-우측 파라다이스 골프클럽-바위너덜길-169 송전탑-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 등로-238.1봉-

                비포장임도 이정표(쉼터 0.07 Km와 웅방산정상 0.42 Km, 철탑 0.6 Km와 순환로)-서산둘레길 코스안내판과 이정표(마산마을기점 1.1 Km,

                마산마을 2.51 Km, 제1쉼터 0.64 Km)와 운동기구-로프구간-서산근린공원(현위치 번호 6 이정목)-웅방산(311.4미터) 정상판-묘지지대-비포장

                임도 안부-태방터널 위-232.9봉-바위지대-조경나무 조림지-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임도-능선진입- 밤나무 단지-204 무명봉-조경수 조림지-

                묘지지대-감나무 과수원-묘지지대-시멘트 포장도로-녹색철망-기타폐기물매립장-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반사경과 스테인레스 스틸 물통)-

                시멘트임도와 인공수로-시멘트 인공수로 따라 능선진입-암반 전망대-156.2봉-공사장-성가롤로병원 주차장-승주약국과 소영꽃농원-

                상비교차로 통과-1차로 포장도로-순천시 나무은행부지-비례길 28-능선진입-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등산로 현황도와 이정표(체육

                소공원 0.3 Km, 천극산 1.3 Km)-능선진입-145.3 삼각점봉(체육시설과 사각탁자 및 벤취쉼터)-103 무명봉-묘지지대-장효자비-포장도로-

                밭 경작지-대나무 숲-포장도로로 탈출-우회등로-민가와 밭 경작지-포장도로-밭 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코끼리어린이집-복성마을 빗돌-

                연향로 복성사거리-태양광 발전소 철조망-66.1봉 포기-시멘트 포장도로-전원주택 공사장-육교(철로통과)-중흥S클래스에듀 대단위 아파트

                공사장-순천제일교회-율산교차로(지봉로와 율산로 교차로 사거리)-산행종료-좌야입구-버스탑승

산행거리 : 약 28.29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지맥산행 : 24.04 Km (여수지맥 분기점에서 순천제일교회까지)

                접속구간 : 04.25 Km (청소리 심원버스정류장에서 깃대봉 왕복 후 여수지맥 분기점까지 04.25 Km)

산행시간 : 홀로 추위에 잘 쉬지도 못하고 꾸준하게 진행하여 10간 32 (06시 58부터 17 30분까)

산행트랙 : 2017-12-28 여수지맥제1구간 분기점-순천제일교회.gpx

교통편 : 갈때-23:50(12월 27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에서 순천행 고속버스로 순천공용버스터미널까지 이동 (31,400.-원)

                     06:25 순천 53번 시내버스로 종점인 청소리 심원까지 이동

             올때-17:55 좌야입구 버스정류장에서 51번 순천시내버스로 순천역까지 이동

숙박 : 순천역 근처 지오스파랜드에서 숙박(10,000/박 담요포함)

여수지맥이란 ?

호남정맥의 미사치에서 동쪽 백운산쪽으로 2.2 Km 떨어진 3면 경계봉 (약 820미터, 순천시 서면과 황전면 그리고 광양시 봉강면)에서 호남정맥은 북으로 올라가고 남으로 한줄기 가지를 쳐 서쪽으로는 순천동천으로 동쪽으로는 광양서천으로 물길을 가르면서 여수반도의 끝단인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 힛도마을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81 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땅끝기맥, 호미지맥, 고흥지맥, 변산지맥등과 같이 산이름이 아닌 지형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지맥의 명칭을 붙였다.
지맥의 길이로는 인근의 고흥지맥이 더 기나 한반도에서 가장 길게 이어지는 산줄기라는데 큰 의미가 있겠다.
 

즉 함경도끝 연두봉에서 남쪽끝 여수의 힛도까지는 도상거리 2394 Km로 한반도에서 가장 긴 산줄기다(연두봉- 온성기맥 131.8 Km-조두봉분기점-관북정맥 264.8Km- 설령봉분기점-백두대간 1434.2Km-영취봉분기점-호남정맥 482.2Km-미사봉 분기점-여수지맥 81Km-힛도, 2394Km). 

실질적으로 갈수있는 남한땅 향로봉에서 힛도까지는 도상거리 1176.3 Km가 된다(향로봉-백두대간 613.1Km-영취봉분기점-호남정맥 482.2 Km-미사봉 분기점-여수지맥 81 Km-힛도, 1176.3Km)


 

새로운 산줄기인 남녘의 여수지맥을 찾아 홀로 힐링하며 저물어 가는 정유년을 뒤돌아 봤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정유년 올 한해도 열심히 달려오다 보니 채 일주일이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오르고 싶은 산줄기들이 많으니 아쉽기만 하다.

한여름 기온이 올라가면 잡목들과 잡풀들 그리고 가시나무들로 인해 진행이 어려운 산줄기 몇군데가 보이고 그 중 가장 거리가 길면서도 서울에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남도의 몇 군데 산줄기들을 정리하면서 올 겨울이 지나기 전에 모두 완주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 시간이다.

그 중 두번째 산행으로 첫번째는 골프장이 많아 눈이 내리지 않는 계절에는 골퍼들로 인해 산행이 거의 불가능한 쌍령지맥을 지난 주 무탈하게 완주하고 곧이어 이어지는 여수지맥 산행인데 한번 내려가 이틀 간 두 구간을 진행하려고 준비하다 보니 먹거리와 갈아 입을 옷들이 많아 배낭 무게와 부피로 인해 또 고민만 늘어가는 시간이다.


12월 27일 수요일에 올 한해 일을 마무리하고 수요일 밤 야간 우등버스를 이용해 순천으로 내려가 산행을 시작하려고 준비를 하는데 순천공용버스터미널에서 약 3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또 어떤 음식으로 아침을 해결하면 좋을지가 가장 큰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고흥지맥을 진행하면서 잠시 들려 터미널 내에 있는 작은 사각 쉼터내에 온풍기가 있어 틀어 놓고 기다리면 견딜수도 있을 것 같아 희망을 가지고 터미널 주변 음식점을 검색해 보니 24시간 영업을 하는 식당이 보이지 않아 편의점이나 고흥지맥 산행을 위해 내려갔던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심가네 김밥집에서 간단하게 해결하기로 한다.

또한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엊그제 내린 눈 그리고 약간의 눈이 내릴거라는 예보로 인해 스패츠와 체인젠까지 챙기다 보니 생각보다 배낭 무게가 장난이 아니기에 진행하다 어려우면 그곳에서 멈추고 구간을 조금 더 늘려 4구간 대신 5구간으로 진행을 하는 것도 대안으로 가지고 내려가 본다.


사전에 준비를 잘 했기에 대중교통과 식당 문제는 잘 해결을 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금호고속버스 순천버스터미널 직원의 갑질 횡포에 기분이 상하고 금호고속 홈페이지에 들어가 항의 글까지 남겼지만 아직도 이해하지 못할 그분의 행동에 앞으로는 절대로 금호고속과 관련된 교통수단은 가급적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항의를 해 본다.

그래도 금새 모든 것 잊고 기분 좋게 심원에서 출발해 깃대봉을 다녀온 후 분기점에서 여수지맥의 무사 완주를 마음속으로 빌며 꾸준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생각보다 빨리 708.2봉에 도착을 하고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피해 준비한 패딩과 방풍의까지 입은 후 잠시 지나 온 방향을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이 산객이 지나 온 저 멀리 깃대봉과 분기점이 그 속살에 하얀 눈을 담고 너무나 아름다벡 펼쳐져 있다.

다만 온도가 낮아지고 강한 바람까지 불어 깨끗한 조망을 기대했는데 불청객인 미세먼지가 심해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지나온 길을 살펴볼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기도 하였다.


수요일인 12월 27일 서울 센트럴시티에서 순천으로 출발하는 23시 50분 심야버스를 타고 순천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새벽 3시 20여분을 넘기고 추위를 이기려 순천공용버스터미널 내 작은 유리막이 되어 있는 사각 쉼터로 들어 가 온풍기를 켜니 그 터미널을 청소하는 아저씨 한분이 역정을 내면서 경비 절약을 위해 영업시간 이외에는 온풍기를 켤 수 없다며 영업시간에 다시 오라고 한다.

어이가 없어 조금 언성을 높히니 이곳 순천 공영터미널은 금호고속 소속으로 경비를 아껴야 하며 지금은 온풍기를 켤 수 없으니 집에 가던지 아니면 여관을 가라고 재촉을 한다.

전국을 다녀봤지만 공영터미널이 사기업 소속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고 갑질을 하는 청소 아저씨도 처음이기에 금호고속 홈페이지에 들어가 항의를 했지만 답은 낮이 되어야 올 것 같아 참고 있는데 그 아저씨는 그 넓은 터미널의 문이란 문은 모두 열어 놔 추위에 도저히 그 순천공영터미널에 머물를 수 없어 근처의 남문 파출소로 이동해 그곳에서 한시간 정도 머물며 24시간 영업을 하는 식당을 알아보니 심가네 김밥집 방향으로 50여분 더 걸어가면 허름한 여러분 식당이 있는데 저녁부터 아침까지만 영업을 하면서 맛도 있고 친절도 해 앞으로 이곳에 오면 자주 이용할 것 같다.

금호고속 직원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남문파출소와 여러분식당을 알게 된 것은 큰 소득으로 앞으로 순천에서의 시간이 지루하지는 않을 듯 싶다.

새벽 3시에 순천버스터미널에 승객을 내려 놓은 금호고속은 영업을 하는 것이고 그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있는 온풍기 좀 쓴다는 승객은 영업 시간이 아니니 집에 가거나 여관에 갔다가 영업시간에 오라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안이 벙벙한 새벽 시간의 헤프닝이었다.


식사 후 청소리 심원까지 가는 53번 첫차가 6시에 출발한다고 알고 있기에 시간 맞춰 터미널버스정류장으로 나가니 역시나 첫차는 차고지에서 6시 정각에 출발해 이곳 버스터미널 정류장에는 6시 30여분이 지나서야 도착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새벽 시간에 타고 내리는 손님이 없어 6시 20여분이 지나자 53번 버스가 도착을 하고 버스에 오르니 할머니 한분만 타고 있어 추위에 떨다 올랐는데도 여전히 썰렁하기만 하다.

기사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이 새벽 시간에는 40여분이면 청소 심원에 도착될 것 같다며 끝까지 가 내리면 된다고 알려 준다.


청소리 심원으로 가면서 산행후기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들머리도 살펴보니 이제서야 조금씩 들머리와 등로가 눈에 들어 오고 그렇게 새벽 7시가 막 넘어가는 시간에 무탈하게 청소리 심원 버스 종점에 도착을 해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불어 오는 도로에 내려 잠시 산행 준비 후 사진 몇장 남기고 황전터널 방향으로 걸어 오른다.

그 버스정류장 옆에는 심원마을(청소골산촌체험) 안내도가 보이는데 심원에 관한 지명자료를 찾지 못해 아쉬운 시간이다.

청소리는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있는 리로서 계족산의 서쪽 자락에 있으며 전형적인 중산간 지역이며 동천이 남류하고 있고 북쪽으로 갓꼬리봉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관풍정, 송내(솔안이), 원골, 청소리(청소)가 있는데 관풍정은 정나나무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송내는 솔밭의 안쪽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골은 원집이 있었다 하여 붙여졌으며 청소리는 청소가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으로 문화재로는 보물 제804호인 정혜사 대웅전이 있다.


청소리 심원 버스정류장을 출발해 북쪽 방향으로 뻗어 있는 840번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오르니 생각보다 차가운 바람이 불며 한기를 느낀다.

잠시 후 500미터 전방에 865번 도로와 만나는 분기점이 있다는 도로표지판을 만나고 잠시 후 300미터 남아 있다는 도로표지판에는 좌측으로 광양이 우측으로는 구례와 간전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표시가 보인다.

잠시 후 심원교차로에 도착을 하고 좌측으로는 봉강터널이 우측으로는 산행들머리와 황전터널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측의 황전터널 방향으로 더 걸어가니 터널 앞 우측으로 계족산 등산로 안내도와 이정표가 서 있는데 호남정맥 상 미사치까지는 900미터라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다만 미사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분기점 방향으로 오르고 싶다면 이곳 등산로 안내도와 이정표가 보이는 비포장 임도가 보이기 전 전봇대가 서 있는 우측 콘크리트 옹벽을 넘어 오르면 조금 더 거리와 시간을 단축할 수 잇을 것 같은데 들머리 찾기가 쉽지는 않은 듯 싶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금새 통나무 계단이 나타나고 그곳을 타고 방금 전 봤던 황전터널 위를 통과한다.

하지만 이 황전터널은 잠시 후 다시 통과하며 진행을 해야 되기에 접속구간의 등로는 황전터널을 우측에서 좌측으로 통과한 후 다시 좌측에서 우측으로 통과하며 진행을 해야 된다.

잠시 후 거목의 편백나무 군락지를 지나고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일정한 속도를 맞춰 걸어 오르니 2011년 9월 초에 지났던 미사치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오래전 기억을 떠 올리려 노력해 보지만 호남정맥 산행을 하면서 지났던 이곳에 관한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

미사치(445미터)는 순천시 서면 청소리 심원마을과 황전면 덕림리 미초마을을 잇는 고개로서 조선시대 때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갈 때 이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미사의 아름다울 미자는 향부자 사로 향부자는 관절염의 통증 치료재로 쓰이는 사초과의 식물()로 해변이나 물이 많이 나는 곳에 자라는 식물이다.

미사치의 남쪽 방향은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을 끼고 있는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심원마을이 있고 마을 아래쪽에는 신라시대 혜조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정혜사가 자리잡고 있다.

한때는 대찰로 명성을 날리기도 하였지만 고려와 조선시대의 여러 난들을 거치면서 여러가지 화재와 악재들로 인해 사세가 위축되어 요즈음은 조그만 사찰로 명맥만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사치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우측 등로를 타고 잠시 호남정맥 마루금을 걸어 보는 시간이다.

무거운 배낭으로 인해 두 어깨에 전해지는 중압감이 제법 느껴지지만 바람이 차가우니 조금은 발걸음을 빠르게 옮겨 추위를 이겨 보려 노력하지만 어쩐 일인지 좌측 엄지발가락에 통증이 전해오며 진행에 조금은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지난 주 쌍령지맥 첫구간을 진행하며 눈 산행을 했는데 그때 젖었던 등산화를 말리면서 등산화가 약간 변형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지만 아무튼 이틀 동안 걸어야 할 발가락이 아프니 걱정이 앞선다.

잠시 후 125번 송전탑을 지나고 올랐다 내려가기를 반복하며 400여미터의 고도 차이를 극복해야 하니 오를 땐 많이 오르고 내려갈 땐 조금씩 내려가며 계속 도고는 올라가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전진하니 드디어 제법 넓은 공터에 철봉으로 만든 쉼터들이 보이는 철쭉군락지에 도착을 해 심호흡 한번 하고 다시 출발을 해 본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오늘 처음으로 보이는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는데 추운 날씨와 강한 바람에 비해 미세먼지와 박무로 인해 제대로 된 조망을 즐길 수 없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제일 먼저 지나 온 방향인 남서쪽으로 철쭉군락지 지나 송전탑과 미사치가 보이고 그 넘어 702.7과 갓거리봉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6년 전 기억을 떠 올리려 노력해 보지만 왠일인지 이곳에 대한 기억만 사라진 듯 생각이 없어 그 때 산행기를 다시 한번 확인이 필요할 듯 하다.


등로 우측 앞으로는 지금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여수지맥 마루금도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곳 역시 미세먼지로 인해 제대로 된 조망은 아쉬운 시간이다.

등로 좌측으로는 황전면 들녁과 마을들이 내려다 보이는데 황전면은 북동쪽으로 구례군 문척면, 북쪽으로 구례읍, 서쪽으로 월등면, 남쪽으로 서면, 북서쪽으로 곡성군 죽곡면과 접한다.

면의 북쪽 경계에 섬진강이 흐르고 월등천과 황전천이 북부에서 합류하여 섬진강으로 유입하는데 유역에 좁다란 평야가 있을 뿐 대부분의 지역이 해발고도 200에서 500미터의 산지이다.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황전은 북쪽으로 처음은 20리, 끝은 40리이다는 기록에서 처음 등장하고 여지고에 황전천은 부의 북쪽 40리에 있고 근원이 송현에서 나와 북동쪽으로 흘러 월등과 황전 여러 면을 지나 잔수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여지도서에도 황전면이 기록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에 황전면이 북쪽 잔수에 접하여 표기되어 있다.

1914년 황전면이 된 이래 큰 변화없이 현재에 이른다.

잠시 더 그곳 전망바위에서 제한된 주위 풍경을 살펴보고 가파르게 오르니 금새 순천시 서면과 황전면 그리고 광양 봉강면의 삼면 경계봉이자 오늘 이곳에 내려온 이유가 되는 해발고도 820미터인 여수지맥이 분기되는 지점에 도착을 한다.


이곳까지 와 다녀오지 않으면 후회될 것 같아 좌측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깃대봉을 다녀오기로 한다.

부드러운 낙엽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는 완만하게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크게 어렵지 않게 해발 858.4미터인 오늘 산행중 최고봉인 깃대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에는 정상판과 계족산 등산로 안내도 및 철봉으로 만들어진 벤취쉼터들이 눈에 들어오고 한가운데엔 삼각점이 박혀있다.

다만 이곳에서 보인다는 동쪽의 백운산과 억불산을 살펴보지만 미세먼지와 박무로 인해 희미한 실루엣조차 볼 수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추억 한장 남기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 곧바로 다시 여수지맥 분기점이자 삼면봉으로 내려오니 보여야 할 준희님의 여수지맥 분기점 이정판이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늘 만났던 준희님의 지맥 분기점에서의 이정판을 만나지 못해 안타까웠지만 삼면봉으로 대신하고 조금 걸어 내려가니 등로 위에 쌓여 있는 눈의 깊이가 조금 더 깊어져 있어 걱정을 해 보지만 진행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각보다 뚜렷하고 잡목의 저항도 심하지 않아 부드러운 초반을 시작하는데 등로의 고도 차이도 심하지 않아 출발 전 걱정은 상당부분 사라지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 앞으로 두꺼운 구름속에 갇혀 떠 오르지 못하던 아침 햇살이 밝게 웃으며 구름을 뚫고 오르고 있다.

그렇게 잡목 사이로 늦은 일출을 보며 걸어 전진하니 봉우리 같지 않은 818 무명봉을 지나고 가지가 많은 소나무를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봉강면으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79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등로 우측의 안치와 계족산 그리고 정혜사 방향으로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조심하며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부드러운 뚜렷한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나즈막한 무명 안부를 지나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오늘 새벽에 올라 온 호남정맥의 미사치와 송전탑이 내려다 보이고 곧이어 잡목과 바위가 보이는 721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등로 좌측인 동쪽으로 가깝게 보여야 할 백운산과 억불봉을 찾아 보지만 미세먼지와 박무로 보이지 않아 너무나 아쉬운 시간만 흐르고 있다.

다만 앞으로 진행해야 할 남쪽 방향으로 박무속에 708.2봉이 바로 눈 앞으로 우뚝 솟아 있고 그 뒤 좌측으로 722.3봉과 계족산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해 위안을 삼아 본다.


등로 우측으로는 오늘 새벽 버스에서 내려 걸어 진행을 한 청소리 심원 마을이 희미하게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호남정맥의 삭거리봉 줄기가 아름답개 펼쳐져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여전히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저 아래 잘록한 안부에 많은 인공 구조물들이 보이고 천천히 내려가 보니 이곳이 바로 해발고도 615미터인 안치로서 왼쪽으로는 봉강면 조령리로 오른측으로는 서면 청소리의 심원마을로 하산할 수 있는 사거리 안부이다.

다만 이곳이 청소리와 조령리 사이의 경계의 고개인데 그 어디에서도 안치에 관한 자료가 보이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안치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추위를 이기려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잠시 잡목들이 사라지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오늘 걸어 내려 온 여수지맥과 분기점 그리고 그 뒤로 우뚝 솟아 있는 깃대봉이 아름답게 올려다 보인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가지가 많이 달려 있는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와 관목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655.6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바람만 없으면 참 산행하기 좋은 날씨인데 바람이 강하게 불며 체옥을 떨어트리니 방풍 자켓을 입으면 덥고 벗으면 추위를 느끼는 산행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바람도 강한 이런 정상에서 자라면서 이렇게 많은 가지를 가진 참나무을 본 기억이 많지가 않아 의아하지만 아무튼 오랫동안 자리 지키며 산꾼들에게 힘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 655.6봉을 출발하니 등로는 여전히 뚜렷하고 커다란 참나무들이 등로를 지키고 있어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등로 우측으로 여전히 올려다 보이는 호남정맥을 살펴보며 걸어가니 커다란 바위가 앞을 가로막아 좌측으로 우회하고 전진하니 관목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644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산행을 이어가 본다.

다시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고 오르니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고 그 바위는 우회하지 않고 위로 통과하니 커다란 참나무 사이로 빛바랜 억새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지나온 방향 잡목 사이로 지나온 여수지맥 마루금이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708.2봉에 도착을 하는데 생각보다 주위에 잡목들이 많아 조망과 풍경을 살펴볼 수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그 708.2봉을 조금 걸어 내려온 지점에서 잡목이 사라지며 진행 방향으로 멋진 풍경들이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추억 한장 남겨 본다.

다시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오르니 낙엽들이 바람에 몰려 등로 위에 쌓여 있는데 어느곳은 무릎 위까지 빠지고 있어 여간 조심스러운 발길이 아니다.

그 낙엽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참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평이하게 열려 있는 뚜렷한 마루금을 타고 가벼운 발걸음을 옮겨 본다.

걱정했던 눈은 등로 바닥에 깔려있을 정도이기에 큰 부담없이 걸어가고 그렇게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나즈막한 봉우리와 안부를 교대로 통과하니 갑자기 정상 참나무 한그루 주위에 웅덩이 같은 것이 보이는 722.3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등로는 여전히 부드럽게 이어져 있어 출발에 앞서 걱정했던 부분들은 거의 해소가 되어 있지만 앞으로 등로가 또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기에 긴장의 끈은 놓지 못하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군계일학으로 서 있는 등로를 지나고 다시 낙엽이 뒤덮혀 있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금새 해발고도 729.4미터인 계족산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은 등로 우측으로 정혜사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이기도 하다.

계족산(725미터)은 전라남도 광양시의 서부 봉강면과 순천시 서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725미터로서 도솔봉의 남서쪽에 위치하며 남쪽 비봉산으로 산줄기가 이어지고 산에서 신룡천이 발원해 광양서천에 합류한다.

조선 초, 중기 광양현의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순천부의 기록에 수록되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순천에 순천부 북쪽 45리에 있는 산으로 계족산이 있어 그 이전부터 지명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여지도서의 광양에는 계족산은 광주 무등산에서 뻗어 나오며 관아의 서쪽 30리에 있다고 하였다. 동여비고의 전라도에 순천의 북쪽에 계족산이 묘사되어 있으며 호남지도의 순천에도 순천 북서쪽의 산으로 계족산이 나타난다.

한편 해동지도, 지승, 광여도에 도솔봉 서쪽과 순천과의 경계에 계족산이 묘사되어 있으며 현재 산 북사면으로 심원터널이 지나간다.

하지만 이곳 정상판에는 해발고도를 682미터로 적어 놓았고 이곳을 산행하기 전 산행들머리부터 자주 만났던 계족산 등상로 안내도를 생각하면 제대로 된 정상석 하나 없이 정상은 너무 홀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계족산 정상의 모습이다.

추억 한장 남겨 보는데 생각보다 바람이 차가운지 얼굴이 붉게 얼어 있는 모습이 그대로 사진에 드러나 있어 그날의 기온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그 계족산 정상에서 우측 정혜사 가는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정상에 웅덩이가 있는 잡목봉으로 오르고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직전 만났던 계족산 정상보다 더 높은데 왜 계족산 정상을 낮은 위치에 세워 놨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이곳 잡목과 웅덩이가 보이는 무명봉에서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휘어져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며 이어지고 있다.

정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화엄사의 말사로 전라남도 순천 계족산 중턱에 자리한 사찰이며 보물 제804호로 지정된 대웅전의 단아한 모습과 어울리게 정혜사는 오래된 사찰이라는 뜻에서 현지에서는 고사라는 사찰명으로도 불린다.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때에 혜조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보조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설 그리고 원감국사 충지의 스승인 혜소국사가 742년(신라 경덕왕 1년)에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혜소국사 창건설이 맞는 것으로 여겨진다.
송광사 제6세 원감국사인 충지의 문집에 있는 혜소국사제문의 기록에 의하면 혜소가 자신이 늙었을 때 머물려고 정혜사를 창건하였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뒤를 이어 제자들이 사찰을 완성하고 큰 도장을 이루었다 한다.

그 후 난리와 흉년이 들어 사찰이 황폐해지자 고려시대 선승인 원감국사 충지(1226∼1293)가 정혜사를 부흥시켜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한다.
동국여지승람, 승평지, 범우고 등의 문헌에 충지가 정혜사에 주석할 때에는 대찰이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며 소규모 사찰로 변했고 그 후에는 중창기나 중수기 등의 기록이 전혀 보이지 않아 후대의 내력은 알 수 없고 현재 남아 있는 전각 등을 통해 정유재란 후에 다시 중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순항쟁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국보급 괘불 등 귀중한 문화재가 화재로 소실되었다 한다.
사찰은 두 개의 석축을 쌓아 조성하여 두 개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입구에 들어서 계단을 오르면 공양간 건물이 있고 다시 계단을 오르면 정면에 대웅전과 명부전이 나란히 배치되었으며 좌우에 요사가 1동씩 자리 잡고 있고 그밖에 삼층석탑과 석등이 조성되어 있다.

정혜사 대웅전은 조선시대에 지어졌으며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1984년 11월 30일 보물 제804호로 지정되었고 명부전은 정면 3칸·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선답자들의 띠지 몇장이 나풀거리는 그 잡목봉을 지나 여유롭게 걸어 내려가니 제법 굵은 참나무 사이로 등로가 뚜렷하게 열려있어 지맥 산행이 아닌 대간 산행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잠시 빠져드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이제 거목의 참나무와 그 아래 약간의 잡목들과 억새들이 혼재되어 있는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약간의 긴장을 하면서 전진해 본다.

한동안 그렇게 걸어 내려가니 억새가 사라지고 등로는 다시 낙엽 등로로 바뀌고 있어 큰 어려움은 없다.

평이하게 이어지는 낙엽 등로를 타고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빠르게 전진하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올라 웅덩이 속에 벗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는 704 무명봉에 도착을 해 주위를 살펴보지만 특이한 모습은 아니다.

 

무명봉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그 등로에는 빛바랜 억새가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 죽어 있어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잠시 그 억새능선을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자금까지의 등로와는 달리 약간의 잡목들이 조금은 귀찮게 만들고 곧이어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많은 가지들이 보이는 소나무 한그루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국토지리원 지도에 708.9봉이라 되어 있는 곳인데 그 소나무 가지에는 희준님이 714미터라고 되어 있는 봉우리이다.

이곳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등로 좌측을 살펴보지만 여전히 백운산과 억불봉은 전혀 보이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만 남기고 출발한다.


진행 방향으로 용계산을 찾아 보지만 아직은 보이지 않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무명안부가 나타나는데 그 안부 건너에는 커다란 바위가 등로를 가로막고 있다.

바위를 좌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하고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멋진 참나무 등로로 변하고 있어 무심으로 걸어 본다.

잠시 후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낙엽 오르막 등로로 변하는데 그 등로 위에 쌓여 있는 낙엽이 무릎 위까지 빠져 한동안 어렵게 걸어 올라 보는 시간이다.

그 낙엽 등로를 타고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등로는 평이하게 변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잡목들이 등로를 가로막고 태클을 걸기 시작한다.

잡목을 헤치고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 있는 697 무명봉을 넘고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를 지나 다시 펼쳐진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정상에 나즈막한 돌담이 둘러쳐진 68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전방의 산에서도 자주 만났던 돌담인데 그곳에서는 병사들의 벙커용으로 만났지만 이곳 최남단에서도 같은 용도인지 궁금하다.

이제 커다란 참나무와 약간의 관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평이한 능선으로 변하면서 빛바랜 억새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본봉이 낮아진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고 리끼다 소나무 등로를 잠시 따르니 232 송전탑이 보이고 그 송전탑을 지나니 키 작은 편백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등로를 만난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빠르게 내려가니 넓은 비포장 임도 위에 도착을 하고 그 임도에서 지나 온 방향을 올려다 보니 저 멀리 여수지맥 줄기와 그 좌측으로 분기한 무명봉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주위 풍경을 살펴보고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이제부터 가파르게 올라야 할 용계산이 뾰족한 봉우리를 드높게 치켜 든채 어서 올라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다.

사진 몇 장 남기고 계속 걸어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잠시 후 등로는 좌측으로 흐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키 작은 편백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능선 방향으로 나 있다.


우측 능선으로 들어가니 등로에는 커다란 활엽수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아래 뚜렷한 등로가 나 있어 진행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잠시 후 등로에는 다시 커다란 소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무명안부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가 사라지고 키 작은 관목과 진달래나무라 생각되는 수종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어 발걸음을 긴장 시키고 있다.

잠시 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나무 사이에 굵은 하얀색 로프가 길게 이어져 있어 그 로프를 바라보며 가쁜 숨을 헐떡이며 걸어 올라 본다.


한동안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숨을 헐떡이다 뒤돌아 보니 어느 정도 고도가 높아지면서 잡목 사이로 지나온 여수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가파르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또 다른 하얀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그렇게 힘겹게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드디어 가파른 오르막이 마무리되고 평이한 등로가 열리면서 627 무명봉에 도착을 해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봉우리같지 않은 봉우리를 지나 참나무 등로를 따라 다시 완만하게 올르니 금새 625.6봉 정상인 용계산 정상부에 도착을 하고 정상에 보이는 삼각점과 이정판을 사진에 담는데 희준님은 이곳을 624.7미터 봉이라 하였다.

용계산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해 그 용계산이 있는 판교리를 찾아 보니 판교리는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있는 리로서 동쪽으로는 용계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동천이 남류한며 대부분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구멍바위와 동천 주변으로 웃터들과 노은 앞들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쟁골(재궁리, 재궁골), 진섶(, 진신) 등이 있는데 쟁골은 재궁(재실)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나 1948년 여순반란 사건으로 폐동되었고 진섶은 진흙이 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쁜 호흡을 진정시키며 잠시 쉬었다 곧바로 그 용계산을 출발하니 손목 굵기의 소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소나무 등로를 지나니 등로는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처럼 뚜렷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등로에는 잡목들이 침범하기 시작하고 배낭에 걸리는 잡목들을 이리저리 헤집고 걸어 진행을 하니 지금까지와는 달리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고 지난 고흥지맥에서의 악몽이 다시 생각나는 시간이다.

잠시 더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잡목 등로를 따르니 쓰러진 거대한 고사목들도 보이고 무명안부를 지나 512 바위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부터는 다시 잡목의 저항이 줄어들고 있어 다행이다.


바위봉을 지나자마자 약간의 잡목이 발목을 잡지만 심하지 않고 이제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타고 빠르게 진행을 하니 지금까지 잘 보이지 않았던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그 바위들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세갈래 가지가 보이는 커다란 소나무 가지에 희준님이 541미터라 적어 놓은 이정판이 걸려 있는데 국토지리원 지도를 보니 542.6봉이라 표기된 봉우리이다.

특이할 것이 없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그 봉우리를 출발해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른다.

 

약간의 잡목이 보이지만 신경 쓸 정도는 아니기에 빠르게 진행을 하니 등로 옆으로 쓰러진 고사목도 보이고 잠시 후 잘 보이지 않던 바위들도 나타난다.

그 바위를 좌측으로 돌아 통과하니 등로는 환상의 소나무 등로로 바뀌는데 그 소나무 아래에는 특이하게도 키 작은 잡목과 관목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어 다른 등로와는 확연히 다란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곳을 지나니 관목과 잡목이 사라지고 푹신한 솔갈비가 반겨 주는 전형적인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빠르게 걸어가니 다시 잡목들이 나타나 발목을 잡는다.

그러고 보니 이곳 등로는 주종이 소나무인데 그 소나무 아래 자라고 있는 관목과 잡목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는 등로이다.


길게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 아래 관목과 잡목들을 살피며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위에 갑자기 삼각점이 나타나는데 지도에도 표기가 없고 트랙에도 나타나지 않는 삼각점이다.

이제 등로에는 소나무와 활엽수가 혼재된 모습으로 다가오고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이제 소나무만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키 작은 소나무 등로로 바뀌면서 밤나무 단지를 통과한다.

밤나무 단지를 지나니 소나무가 사라지고 편백나무 군락지가 그 소나무 등로를 대심하며 한동안 편백나무 숲을 걸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한동안 그 편백나무 군락지를 타고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다시 키 작은 소나무 등로로 바뀌고 그곳을 지나니 더욱 멋있는 편백나무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우측은 편백나무를 좌측으로는 소나무를 두고 그 경계선을 타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옆으로 104번과 35번이란 두개의 번호가 붙어 잇는 송전탑을 지나 상주박공과 부인의 합장묘지를 통과하고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소나무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넓은 비포장 임도에 도착을 한다.

그 비포장 임도를 만나 좌측으로 몇 발자국 걸어 통과하면 우측 능선 방향으로 산행 들머리가 보인다.


능선으로 올라 사면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위에는 잎이 넓은 활엽수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 여간 미끄럽지 않아 조심스럽게 걸어 오른다.

잠시 오르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면서 등로는 완만하게 오르는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편백나무들이 간간히 보이는 등로를 따르니 붉은 띠지가 나풀거리는 244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우측으로 휘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좌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이상한 기분에 지도와 트랙을 확인해 보니 등로 우측 위에 264.4봉을 두고 그 좌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계속 이어지는 좌측 사면 등로를 따르니 잠시 후 우측 264.4봉에서 내려오는 등로와 만나는데 우측 264.4봉을 거쳐 내려오는 산꾼들이 거의 없는지 그쪽 등로는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는 듯 보였다.

잠시 후 소나무 한그루가 특이하게 서 있는 267 무명봉을 지나고 조선소나무 등로를 타고 편안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생각보다 아주 잘 진행이 되고 잇는 것 같아 기분조차 좋아지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렇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에는 산악바이크를 탄 흔적인지 아니면 산악오토바이를 즐긴 흔적인지 움푹 패인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어 아쉬움도 남기는 시간이다.

한동안 걸어 내려가다 평이한 등로를 만나고 그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진행을 해야 되는데 아무 생각없이 뚜렷하게 나 있는 직진같은 우측 등로를 따르니 짧은 알바를 경험하게 된다.

 

지도와 트랙까지 확인을 해 놓고 무엇에 홀렸는지 좌측으로 휘어져 가는 등로를 놓치고 직진 같은 우측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잘 관리되고 있는 전주이공과 부인이 함께 잠들어 있는 묘지 한기를 만나고 그곳에서 앞으로 보니 멋진 조망과 풍경이 펼쳐져 있어 잠시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사진을 남기며 살펴보니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는 여수지맥 마루금이 바로 눈 앞에 뻗어 있는 순천완주고속도로를 건너 다시 만나는 남해고속도로를 건너면 저 앞에 솟아 있는 봉화산으로 이어지고 있는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생각지도 못한 알바로 인해 진행 방향의 멋진 마루금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렇게 봉화산 방향을 조망한 후 다시 뒤돌아 올라가 붉은 띠지가 보이는 227봉에서 정상 마루금을 확인한 후 우측으로 꺽어 잠시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벌목된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좌측에 벌목지대를 두고 숲과의 경계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또 다시 멋진 조망과 풍경들이 펼쳐져 있어 그 벌목지대로 가 잠시 풍경을 감상하고 진행하기로 한다.

바로 앞에 구상리 지나 흥대리 마을이 아름답고 그 흥대리 뒷쪽으로는 좌측 저 멀리 비봉산에서 우측 앞으로 보이는 일자봉으로 이어지는 산들이 아름답게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많은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벌목 경계선을 따라 빠르게 진행을 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을 즐기며 걸어 내려가다 등로 좌측으로 벌목된 지대 앞을 살펴보니 광양시가 내려다 보이고 그 한쪽에는 고층의 아파트 단지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생각지도 못한 풍경에 잠시 발걸음 멈춰 광양시인지 다시 한번 확인을 해 봐도 역시 맞는 듯 싶다.

광양시는 전라남도 동남단에 위치한 시로서 동쪽은 섬진강을 경계로 경상남도 하동군, 서쪽은 순천시, 남쪽은 광양만, 북쪽은 구례군과 접하고 있다.

소백산맥의 남단에 해당하는 백운산(1218미터)이 군의 북부에 솟아 있고 서쪽의 솔봉(1123미터), 형제봉(861미터), 동주리봉(862미터) 등과 동쪽의 매봉(865미터)이 동서로 늘어서 있고 북부는 험준한 산악지대이다.

옥룡면에 있는 백계산(506미터)은 동백림으로 유명하고 백운산의 남쪽으로 4개의 지맥이 뻗어 있는데 이는 천연적으로 순천시와 경계를 이룬다.

하천으로는 섬진강을 비롯해 진상면 어치(1216미터)에서 발원한 수어천, 백운산과 도솔봉에서 발원한 서천과 동천이 있는데 모두 북쪽에서 남쪽으로 지나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지으며 흐르는 섬진강은 하구인 진월면에 이르러 넓고 긴 하구가 되어 태인도에 이른다.

과거에는 수량이 꽤 많았으나 현재는 상류부의 댐 건설로 인하여 수량이 크게 줄고 퇴적물이 쌓여 강바닥이 높아져 2에서 3톤짜리 나룻배가 드나들 때도 불편하다.

구석기시대 유적과 유물은 봉강면 석사리, 옥곡면 대죽리, 옥룡면 용곡리와 죽천리, 진상면 지원리 등 6개소에서 다수 발견되었다.

신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로는 진월면 오사리와 진정리에서 빗살무늬토기편들이 발견되고 있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유적·유물로는 광양읍 덕례동과 봉강면, 진상면, 옥곡면 등지에 고인돌군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아울러 돌칼, 돌도끼, 돌끌, 조개무지 등도 발견되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 54국 중 하나인 만로국이 광양지역에 있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옥룡면 죽천리 내천마을이나 진상면 비촌마을에 변한의 성지라고 전해 내려오는 유적이 있어 변한의 영역에 속했을 가능성도 있다.

백제에 편입된 뒤로는 마로현이라 했으며 신라의 통일 이후에는 희양현으로 개칭하고 순천군의 영현이 되었으며 신라 말엽 풍수지리설의 창시자로 알려진 도선이 백운산 옥룡사에서 독자적인 선문를 개설하였다.

940년(태조 23)에 광양현으로 개칭되어 여전히 승평군의 속현으로 있다가 충정왕 이전에 감무가 파견됨으로써 주현으로 독립하였는데 이 무렵에 광양김씨가 벌족(나라에 공이 많고 벼슬 경력이 많은 집안)으로 대두해 당대 최고의 외척인 인주이씨나 해주최씨 등과 혼인관계를 가지면서 정치무대에서 활약하였다.

고려 말에 이르러 왜구의 노략질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1413년(태종 13)에 현감이 파견되었고 1597년(선조 30)의 정유재란 때 왜장 고니시의 침공을 받았는데 광양성에서 치열한 전투 끝에 왜군을 왜성대로 물러나게 하였다.

그러나 이 전투의 결과로 광양현이 폐허화됨에 1598년순천에 편입되었다가 얼마 뒤 다시 분리, 복구되었으나 피폐한 읍세는 쉽게 회복하지 못하였다.

조선 말기 사회모순이 격화되었을 때 두 차례(1869, 1889)에 걸쳐 민란이 발생한 것도 이 같은 지역적 여건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 패퇴한 농민군이 광양과 섬진강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으며 이 때 섬진강에 빠져 죽은 자가 3,000∼4,000명이나 될 정도로 큰 손실을 입었다.

1895년의 관제개혁 때 남원부 소속의 군이 되었으나 이듬해 13도 체제로 다시 개편했을 때 전라남도에 속한 광양군이 되었으며 돌산군이 새로이 만들어질 때 여러 섬들을 돌산에 이속시켰다.

1906년 백낙구과 황순모 등을 주축으로 한 의병항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으며 이는 전라도 의병봉기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1914년 일제가 지방행정체제를 개편할 때 칠성면, 우장면, 사곡면 등이 광양면으로 진하면과 월포면이 진월면으로 통합되고 돌산에 이속시켰던 여러 섬들이 재편입되는 등의 변화를 겪었고 1915년 섬진강 연안의 다압면 섬진리가 경상남도 하동군으로 이속되었다.

1923년 농민 500여 명이 단합해 소작쟁의를 일으켰으며 이듬해 1월에는 골약면에서 소작쟁의가 일어났고 1932년 1월에는 금광 광부 800여 명이 동맹파업을 하는 등 일제의 경제적 수탈에 항거하는 운동이 어느 지역보다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1934년에는 광양청년회 회원 100여 명이 독서회 사건으로 체포되기도 하였으며 1948년여수와 순천 사건의 잔당들이 백운산에 은거하면서 광양을 약탈 대상으로 삼아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1949년광양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66년골약면에 태인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73년에는 골약면 송장리가 여천군 율촌면으로 이속되었다.

1981년 11월광양만에 제2제철소의 건립이 시작됨에 따라 1986년골약면과 태금면 및 옥곡면 광영리 일대를 관할하는 광양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89년 광양출장소를 동광양시로 승격, 광양군에서 분리되었다.

1995년 시와 군 통합에 따라 광양군과 동광양시가 통합해 광양시로 되었다.

1998년광양시 과소동 통폐합으로 황금동과 성황동을 골약동으로 또한 금호동과 금당동을 금호동으로 통폐합하였다.


그렇게 광양시까지 조망을 하고 다시 빠르게 벌목지대를 지나 능선으로 들어가니 푹신한 낙엽 등로가 이어지고 무명봉을 넘어 솔갈비가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른다.

약간의 고사목들이 등로에 쓰러져 있는 201 무명봉을 넘으니 등로 우측으로 파란 물통이 보이는 175봉도 지난다.

또 다시 등로를 가로막고 있는 쓰러진 고사목을 조심해 넘으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고 곧이어 내려가 경주정씨 묘지를 통과한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높은 이동통신탑과 민가들 그리고 축사인지 아니면 창고 건물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 압곡리는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있는 리로서 동천이 흐르는 평지에 위치한 농촌마을이며 압곡저수지과 건천저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가장골, 구시골, 단지골, 마구정, 머구밭골, 참나뭇골마을 등이 있는데 가장골마을은 가장을 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구시골마을은 구시(구유)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단지골마을의 지명은 단지처럼 오목한 형국의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것이고 마구정마을은 마구간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머구밭골마을은 머구(머위)가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참나뭇골마을은 참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가 방금 전 어렵게 내려 온 능선 방향을 뒤돌아 보고 순천완주고속도로를 좌측에 두고 그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니 고속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 지하통로가 보인다.

새천년양조와 모비스라는 간판들이 보이는 곳을 지나 아치형으로 되어 있는 지하통로를 통해 순천완주고속도로를 건너는데 차량 통행도 가끔 보이는 지하통로이다.

지하통로를 통과하니 도로 좌측으로 민가와 밭경작지 넘어 봉화산이 올려다 보이는데 그 봉화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또 다른 고속도로인 남해고속도로를 통과해야 한다.

잠시 내려가 좌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밭 경작지를 통해 조경수지대를 지나고 남해고속도로를 육교로 넘기 위해 또 다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용림버스정류장 앞으로 삼화기업 입간판이 서 있는 곳을 통해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압곡육교를 통해 그 아래로 보이는 남해고속도로를 통과한다.

이곳은 또한 구상치(남해고속도로 위 압곡육교 84미터)라고도 하는데 남해고속도로를 건너가는 840번 지방도로로서 정확한 마루금은 왼쪽(동쪽) 100여미터 지점으로 보이지만 대충 눈대중으로만 가늠할 뿐 정확히는 가늠이 안된다.


   

압곡육교를 지나며 진행 방향을 올려다 보니 올라가야 할 봉화산이 조금 더 가파른 오르막 봉우리로 위압감을 주고 있지만 어짜피 올라야 하는 곳이기에 마음을 비우고 걸어 본다.

육교 아래로 지나는 남해고속도로도 살펴보고 압곡육교를 건너니 도로 우측으로 용림마을 가는 유턴 도로표지판이 보이고 이곳 역시 용림이라는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시멘트 옹벽이 끝나는 지점 우측으로 산행 들머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우측 능선 방향으로 들어가니 시멘트 옹벽 위로 등로는 이어지고 곧이어 시멘트 계단을 타고 오르도록 되어 있는데 그곳에는 도깨비 씨방이 널려있어 온 몸이 그 도깨비 씨방으로 뒤덮혀 버린다.

잠시 시멘트 계단을 오르니 이제는 낡은 시멘트 수로가 길게 이어지는데 그 위에는 낙엽이 깊게 덮혀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잠시 후 밤나무 과수원을 지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쯤 뒤돌아 보니 어렵 진행해온 여수지맥의 산줄기와 고속도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어렵게 잡목을 헤치며 오르니 처음에는 소나무 등로가 열리는가 싶더니 오를수록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아 역시 지맥 산행의 진수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래도 한발 두발 그 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광양 382번 이라는 삼각점이 박혀 있는 봉화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삼각점만 박혀 있고 310.3미터라는 이정판이나 정상석이 보이지 않아 한참을 찾아 본다.

봉화산(310.1미터)은 전라남도 순천시의 용당동과 조곡동 및 서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356미터이며 시가지 북동쪽에 위치하며 산에서 발원한 하천들이 산 서쪽을 흐르는 동천에 합류한다.

봉화산은 조선 시대에 봉수가 있었던 것에서 지명이 유래하였으며 성황당산이라고도 불리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순천에 성황당산 봉수는 부의 동쪽 10리에 있으니 동쪽으로 광양 건대산 봉수와 응하고 서쪽으로는 다만 관문에 보고한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대부분의 지리지에 순천부의 4대 봉수로 돌산도봉수, 백야 곶봉수, 진례산봉수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의 19 4면에는 성황당으로 1872년지방지도에는 성황봉대로 기재되어 있으며 봉화가 묘사되어 있으며 현재 봉수대가 복원되어 있다.

잠시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묵은 비포장 임도로 내려가 진행 방향을 확인해 보니 그곳 소나무 가지 위에 희준님이 310.1미터의 봉화산이라는 이정판이 걸려 있어 인사 한번 드리고 그 봉화산 정상을 출발해 본다.


봉화산 정상을 지나 진행을 이어가니 소나무 등로에 잡목이 자라고 있어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이 느껴진다.

조심하며 그 잡목을 헤치고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잠시 후 아치형의 고사목 우측 가장자리에 타이어 하나가 붙어 있는데 무슨 특별한 용도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곳에서 부터는 등로가 희미하고 잡목들이 널부러져 있으며 고사목들도 보이기 시작해 등로 찾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니 커다란 밤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241 무명봉에 도착을 해 긴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밤나무가 서 있는 무명봉을 지나 잡목을 헤치며 진행을 하니 가끔 보이는 선답자들의 띠지가 길라잡이를 해주며 어려운 산행에 위안을 주고 있다.

잠시 후 잡목이 줄어들고 멋진 소나무가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등로를 따르니 얼마 전 타계하신 광주의 백계남님의 노란색 띠지가 나풀거려 묵념 한번 하고 지나간다.

계속되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등로 좌측으로 순천완주고속도로가 바로 내려다 보이는 절개지 상단부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등로 좌측 뒤쪽으로 순천완주고속도로 넘어 저 멀리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여수지맥 마루금을 확인하고 절개지 상단을 따라 조심스럽게 우측으로 걸어 순천완주고속도로 방향으로 걸어 내려간다.


고속도로가 아닌 우측의 마을 민가가 있는 곳으로 내려갈 수 있는지 확인을 해 보니 그곳으로는 높은 철망이 쳐져 있어 진행이 불가능해 보여 계속 내려가니 시멘트 도로와 철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드디어 어쩔 수 없이 순천완주고속도로 갓길로 내려선다.

생각보다 지나다니는 차량이 많지 않아 조심스럽게 그 순천완주고속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27번 고속도로라는 도로표지판이 보이고 조금 더 걸어가니 우측으로 대동교라는 이름도 보인다.

그 앞 저 멀리에는 터널이 보이는데 그 터널 앞에는 하이패스와 전자카드 현금이라는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표시가 나타난다.


그곳 대동교라는 도로표지판이 있는 곳 우측으로 다리를 수리할 때 이용 가능한 철 다리가 보여 그곳으로 고속도로 갓길을 벗어나 철 계단을 통해 그 고속도로를 통과해 보지만 그 좌측 끝자락에서 막혀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다시 돌아 와 고속도로 갓길로 올라가 그 대동교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고속도로 우측 밑으로 콘크리트 수로가 보이고 그 수로를 통해 다시 내려가니 선잡자가 철망을 넘었는지 작은 통나무 하나가 걸쳐져 있어 그곳을 통해 어렵게 고속도로 철망을 넘은 후 잡풀이 우거진 곳을 어렵게 헤집고 내려가니 드디어 순천완주고속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 1차선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한다.

좌측의 순천시 왕지동 대동마을에서 순천완주고속도로를 통과한 후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계속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 앞 저 멀리 성처럼 생긴 건물에 캐슬라콘티넨탈이라는 외식업체와 그 우측으로 파라다이스골프클럽 건물이 보이는데 그 뒤로 돌아 가는 산줄기가 바로 여수지맥 마루금이다.


그 도로를 타고 계속 걸어 오르니 좁은 도로에 생각보다 많은 차량들이 지나다니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계속 걸어 오르니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 갈림삼거리 한쪽에는 비트코인 및 이더리움 채굴위탁전문(바이셀) 제1공장(순천)과 제2공장(광양)이라는 커다란 플랭카드가 걸려있어 살펴본 후 그 갈림삼거리 사이의 낙엽이 깊게 깔려 있는 능선으로 진입하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솔갈비가 깔려 있는 능선으로 올라가니 나주박공 묘지2기가 나타나고 잠시 후 희준님이 걸어 놓은 여수지맥 종주자들에게 건네는 응원판이 보여 목례를 드리고 힘을 내 본다.


하지만 그 응원판을 지나자마자 등로는 잡목과 간벌된 밤나무 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지맥 특유의 등로로 변하면서 진행에 상당한 방해를 받고 있다.

조심하며 그 잡목지대를 어렵게 빠져 나가니 다시 짧은 구간 멋진 솔갈비가 깔려 있는 소나무 등로를 만나 편안하게 걸어 오르고 그곳 정상에는 몇개의 커다란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다.

그 바위를 지나자 마자 정상 등로를 만나 우측으로 그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소나무 등로를 지나 무명묘지 한기도 통과하고 잠시 편안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바위 너덜길을 지나 169번 송전탑을 통과한다.

그 송전탑을 지나 오르니 지독한 잡목지대가 다시 나타나며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주고 조심하며 걸어가다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방금 전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며 봤던 성처럼 생긴 건물에 캐슬라콘티넨탈이라는 외식업체와 그 옆으로 파라다이스골프클럽 건물 뒤를 돌아 걷고 있는 마루금이다.

잠시 후 지독한 잡목속에 봉우리 같지 않은 238.1봉을 지나고 여전히 이어지는 잡목속을 헤집고 걸어가는 시간이다.


그 지독한 잡목지대를 타고 힘들게 통과하니 갑자기 눈 앞에 비포장 임도같은 편안한 등로가 나타나고 그 앞으로 산책나온 아저씨 한분이 걸어가고 있다.

잠시 반가운 마음으로 그 편안한 등로를 따르니 이정표가 서 있는데 송전탑에서 600미터 진행을 해 왔고 앞으로 쉼터까지 70미터 그리고 웅방산정상까지 420미터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이다.

그 이정표를 지나 활엽수 낙엽이 깔려있는 편안한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지독한 잡목지대를 지나며 느려진 속도를 회복하기 위해 조금 더 속도를 내보니 잠시 후 서산둘레길이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살펴보니 마산마을기점과 제1쉼터 방향이 표기되어 있는데 그 앞에는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는 쉼터이다.

그곳에서 우측으로 나 있는 편안한 등로를 잠시 따르다 좌측 정상부의 웅방산으로 오르기 위해 밤나무 과수원을 통해 가파르게 오르니 다시 정상적인 등로와 만나고 그 등로를 타고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로프구간과 바위를 지나 서산근린공원이라는 이정목과 311.4미터인 웅방산 정상 이정판이 붙어 있는 정상에 도착을 한다.

웅방산(311.4미터) 정상부는 묘만 몇기 덩그러니 앉아 있는데 옛 지도를 보면 한자로는 웅방산으로 표기하고 일본어 카다가나로 곰방산으로 적고 있어 아마도 원래 곰방산으로 부르던 것을 한자표기로 옮겨 적으면서 웅방산이 된 것은 아닐까 추측을 해 보는 시간이지만 그 어디에도 웅방산과 곰방산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앖으니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그곳 정상에서 셀카놀이로 추억 한장 남기고 넘어가니 묘지 몇기가 나타나고 그곳 한쪽에 자리잡고 앉아 남아 있는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출발하기로 한다.


웅방산 정상부 묘지지대에서 잠시 배낭 내려 쉬면서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달랜 후 다시 나타나는 잡목지대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왼쪽 엄지 발가락이 아파오기 시작하고 살펴보니 등산화 앞쪽이 약간 헤지면서 딱딱해져 고통이 오는 것 같은데 1년 동안 신었던 등산화가 왜 그런지 의아하기만 하다.

아마도 지난 주 쌍령지맥 첫 구간을 눈 산행을 한 후 건조시키면서 약간 틀어졌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지만 지금까지 10년 넘게 등산화를 말리면서 그런 경험이 없었기에 이해가 되지 않아 내일까지 어떻게 걸어 진행을 해야 할지 고민과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다.

조심스럽게 계속 걸어 내려가니 다시 넓은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고 과일수가 심어져 있는 무명안부를 통과하며 속도를 내 보지만 내리막 등로에서는 왼쪽 엄지 발가락의 통증으로 조심스럽고 오르막 등로에서는 그 고통이 사라져 속도를 내보는 시간으로 진행을 해 본다.


그 안부를 지나 오르니 두갈래 갈림삼거리 임도가 나타나고 우측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빠르게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조경수가 식재되어 있는 장소가 나타나고 그 조경수 사이를 통해 오르니 방금 전 헤어졌던 비보장임도와 다시 만나 그 끝자락에 위치한 232.9봉으로 오른다.

그곳에서 진행방향과 좌우측으로 아름답게 펼쳐진 조망과 풍경을 잠시 즐겨보고 출발하는 시간이다.

진행 방향의 마루금이 보이고 그 뒤로 아파트 단지들도 머리를 내밀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등로 좌측으로는 광양시 덕례리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덕례리는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에 있는 리로서 농촌지역이며 마을 앞으로 억만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 회암, 동주마을, 덕산마을 등이 있는데 회암마을은 도치바구라는 뜻으로 도끼처럼 생긴 바위가 마을에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동주마을은 주령과 동지에 걸쳐있는 마을로 1957년에 두 마을의 이름을 따서 동주라 부르게 되었다.

동남쪽으로 인덕 저수지가 있으며 덕산마을에는 선사시대 유적인 고인돌 8기가 있다.

그 덕례리마을 좌측으로는 순천완주고속도로가 시원스럽게 뻗어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오는데 이곳에서 위치를 확인해 보니 좌측은 광양시이고 우측은 순천시의 경계쯤 되는 곳이다.


그렇게 그곳 232.9봉을 지나 바위를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조경수가 심어져 있는 밭이 나타나고 그곳을 통해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가니 또 다른 수종의 나무들이 조림되어 있는 곳도 통과를 해 본다.

잠시 후 조경수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그 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고 진행을 하면서 올라야 할 무명봉도 올라본다.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도로 좌측으로 포크레인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편백나무가 보이는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안부 좌측으로는 무슨 공사를 하고 잇는지 포크레인 한대가 경사면에 서서 땅파기 작업이 한창이기에 재빨리 안부 지나 능선으로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232.9봉 지나 웅방산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밭 가장자리를 지나 다시 밤나무들이 보이는 능선으로 오르니 소나무와 바위가 보이는 204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내려가니 지독하게 자랐다 말라죽은 잡풀지대를 지나 조경수 지대를 통과한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작은 공동묘지같은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그 앞으로 감나무 과수원지대가 펼쳐져 있는데 농부 한분이 그곳에 올라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지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도 내려다 보인다.

그 감나무 과수원 우측으로는 폐기물처리장 건물과 들판들도 보이기 시작하고 그 뒷편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보인다.


묘지지대를 지나 내려가니 감나무 과수원이 나타나고 감나무에 달려있는 감들을 살펴보지만 도저히 먹을 수 없어 아쉬움만 남기고 더 내려가니 매화나무 식재지가 나타난다.

그 매화나무 식재지를 지나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나타나는 감나무 과수원을 지나 오르니 그곳에도 몇기의 무명묘지들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작은 공동묘지에서 감나무와 매화 그리고 아주 가까운 감나무 과수원까지 이어진 여수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보인다.

사진 한장 남기고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무명봉을 지나 다시 내려가고 어렵게 절개지를 타고 포장도로로 내려가니 이곳은 온통 폐기물 처리장과 관련된 건물들과 부지들 뿐이다.


그 폐기물 처리장 사이로 나 있는 녹색철망을 타고 반대쪽 능선 방향으로 걸어가니 비포장 이도 좌우측으로도 온통 폐기물 처리장과 그와 관련된 부지들 뿐인 듯 보인다.

잠시 후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마지막으로 폐기물 처리장과 건물들을 살펴보고 능선쪽으로 보이는 물통과 반사경이 있는 곳으로 오르니 시멘트 포장도로와 스로가 보이고 그 도로를 타고 걸어가 그 끝자락에서 좌측 능선으로 오르며 진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걸어 오르니 너럭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잠시 심호흡을 하면서 지나온 방향의 마루금을 살펴보니 웅방산쪽에서부터 걸어 온 여수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다시 그 전망바위를 지나 소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억새와 잡목 구간이 보이기 시작하고 금새 소나무와 청다래 넝쿨이 뒤엉켜 있는 156.2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156.2봉을 지나니 여전히 잡목과 잡풀 구간이 이어지고 어렵게 잡목들을 헤치고 진행을 하니 무명묘지 2기를 지나 잠시 평이하게 진행되던 등로가 갑자기 좌측으로 휘어지며 내려가는데 등로 우측으로는 공사장이 바로 옆으로 다가와 있어 그 공사장쪽으로 잡목을 헤치고 나가니 진행 방향으로 마루금과 마을 그리고 도로들이 내려다 보인다.

지도를 보니 등로 좌측으로 바로 성가롤로병원이 존재하는 곳으로 어느 선답자들은 이곳에서 첫 구간을 마무리를 한 곳이기도 하다.


그 공사장 좌측 가장자리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좌측으로 성가롤로병원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장례식장과 주차장을 지나 야국이 있는 작은 상가 건물을 통과해 내려간다.

잠시 후 승주약국과 소영꽃농원이라는 입간판을 지나 걸어 내려가니 상비교차로인데 대각선으로 건널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기다렸다 차량의 신호를 보면서 어렵게 그 상비교차로를 건너가는 시간이다.

상비교차로가 있는 조례동은 전라남도 순천시에 있는 동으로서 원래 순천군 해촌면에 속한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월리와 연동리, 재궁리, 비봉리, 운동리, 두지리 등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조례리라 하고 해룡면에  편입시켰다.

1949년 8월 지방자치제 실시로 순천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순천시  조례동이 되었으며 1992년과 1998년에 조례동 일부가 연향동에 편입되었는데 이 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왕조동 관할하에 있다.

지명은 마을의 지세가 조리처럼 생겼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굼실(운동), 두지, 못등, 우명, 비봉, 새터, 신월, 연동, 장선배기, 작은조리골 등의 자연마을과 대밭골, 아릿재궁, 서덩골 등의 골짜기 및 매봉산, 안산, 태봉 등의 야산 그리고 문턱바위와 벼락바위 등의 바위와 송경, 아침들, 후천 등의 들판이 있다.

벼락바위는 벼락을 맞았다는 데에서 유래되었으며 서당골은 서당이 있었다는 데에서 장선배기는 장승이 있었다는 데에서 운동마을은 마을 뒤편의 봉화산에서 구름이 쉬어간다는 데에서 각각 유래되었다.

유적으로 곡수서원과 고인돌, 양천허씨 문종의 재실인 세수재 등이 있으며 문화재로 충렬사(전남문화재자료 6)가 있고 고인돌은 신월마을에 있으며 1995년 순천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조사, 발굴되었다.

원래 10기가 있었는데 택지조성 사업으로 2기만 남아 있고 돌검 및 돌살촉 조각이 출토되었다.

곡수서원은 정철을 추모하기 위하여 1712년(숙종 38)에 건립되었으며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58년에 재건되었다.
공공기관 및 시설로 왕조동사무소와 조례저수지 등이 있으며 휴식공간으로 용당동, 조례동, 생목동, 서면 등에 걸친 봉화산공원, 비봉공원, 신대공원, 운동공원과 봉화산 중턱에 약수터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 순천공업고등학교, 순천동산여자중학교, 왕지초등학교, 봉화초등학교, 비봉초등학교, 신흥초등학교, 이수초등학교, 조례초등학교, 동산여자중학교, 신흥중학교, 강남여자고등학교, 당고등학교와 특수학교인 선혜학교 등이 있다.


어렵게 상비교차로를 통과해 17번 4차선 포장도로인 무평로로 이어지는 우측 접속도로를 타고 걸어 올라가다 보니 등로는 이 도로가 아닌 작은 능선 넘어 또 다시 보이는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우측의 절개지에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죽은 잡목과 잡풀을 헤치고 어렵게 오르니 소나무와 밤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나즈막한 능선 넘어 또 다른 1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포장도로로 내려가 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순천시에서 운영하는 나무은행부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계속 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 옆으로 솔밭쉼터와 장수촌참숯골이라는 식당 입간판들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 계속 도로를 따라 오르니 언덕을 넘는데 이곳 역시 제선충 방지를 위한 소나무 반출금지라는 커다란 플랭카드가 보인다.

그곳 언덕을 넘어 계속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약간의 조망이 터지고 살펴보니 매화나무 과수원 넘어 골프장과 운전학원인지 성가롤로병원인지 모를 커다란 고층 빌딩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 뒤로 오늘 걸어 온 마루금도 살짝 보이고 있어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빠르게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후 민가가 있는 곳을 지나니 이곳이 비례길이라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좌측으로 공장건물이 보이는 곳 우측 능선 방향으로 등로가 열려있어 그 능선 등로를 타고 진행을 이어간다.

이 포장도로를 타고 계속 진행을 해도 되지만 길게 돌아가는 도로이기에 길이를 단축하기 위해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따라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는데 왼쪽 엄지 발가락이 더욱 아프기 시작해 내리막 등로에서는 여간 어렵지 않다.

이제 하루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가는지 그림자가 길게 이어지고 있는 시간이다.


한동안 그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무명묘지들이 보이고 등로 좌측으로 파란 그물망이 나타나더니 그 좌측 넘어 저 멀리 순천의 고층 아파트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비포장 임도는 끝이나고 좌측 아래로 지나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서서 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오르니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지나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잇는데 그곳 갈림삼거리에는 체육소공원과 천극산이라는 장소와 거리표시가 보이고 등산로 현황도도 서 있다.


능선으로 오르니 이곳 역시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가 나타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랐는지 등로는 반질거리며 미끄럽기까지 한다.

잠시 후 계단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는데 젊은 청소년 몇명이 운동을 하면서 땀을 흘리고 있어 기특하다 생각하고 열심히 운동을 한다고 응원을 해 주니 이곳 근처의 배구부 중학생으로 단체 운동을 하러 나왔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어 역시 젊음이 좋음을 느낀다.

그렇게 가파르게 걸어 어렵게 오르니 넓은 공터가 보이고 그곳에는 많은 운동시설들이 보이고 사각쉼터들도 보인다.

그곳 운동시설 옆으로 박혀있는 삼각점과 소나무에 걸려있는 희준님의 145.3미터 이정판을 사진에 담고 그곳 정상을 넘어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동네 어르신들이 산책을 나왔다 내려가는 모습들도 자주 목격이 되는 시간이다.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고 평이한 등로를 만나 속보로 진행을 하니 이곳 역시 등로 옆으로 수많은 무명묘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거꾸로 올라오는 지역 주민들도 자주 목격이 된다.

다시 언덕을 넘어 가파르게 내려가니 그곳에도 굵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에는 이제 굵은 거대한 편백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언덕을 오르니 벤취쉼터 2개가 보이는데 한쪽에는 산책객이 쉬고 있는 10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해 본다.

다시 굵은 하얀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걸어 전진해 내려가니 많은 묘지들이 눈 앞에 펼쳐지고 그 앞으로는 이제 진행해 마무리를 해야 할 오늘 산행 등로의 마지막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나즈막한 능선을 지나 저 멀리 고층 빌딩의 아파트 단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우측으로 높은 탑이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오늘 산행 날머리인 순천제일교회 교회탑이다.


많은 묘지들을 우측에 두고 좌측 가장자리의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장효자비가 묘지들 앞에 세워져 있고 곧이어 밭 경작지가 나타나는데 밭 가장자리마다 그물망을 쳐놔 우측으로 길게 우회하며 내려가 본다.

잠시 후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고갯마루로 올라 우측 밭 가장자리를 타고 빠르게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졌던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그 소나무 능선을 지나니 대나무 밭이 보인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등로는 그 대나무 밭으로 이어지고 있어 들어가 보지만 등로가 막혀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뒤돌아 나와 잠시 헤맨다.


다시 방금 전 올랐던 시멘트 포장도로 방향으로 걸어 내려 와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 방향의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잠시 후 그 도로 좌측으로 간벌된 지역이 나타나고 그 간벌된 곳으로 오르니 밭 경작지 지나 좌측으로 민가가 보이는데 그 민가가 세워지면서 정상 등로가 완전히 막힌듯 보였다.

그래도 잘 찾아 진행하고 있음에 안도를 하면서 그 민가를 좌측에 두고 밭 경작지와 도로를 타고 정상 마루금 방향으로 원원치 한다.


그 민가 앞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에서 민가 앞 우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고 능선으로 오르다 뒤돌아 보니 최근에 세워진 듯한 민가 좌측으로는 폐가 한채도 보인다.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주위에는 여전히 밭 경작지들이 보이고 파란 그물망 옆 등로를 타고 어렵게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 내려가 본다.

이제 진행해야 할 마지막 66.1봉도 보이기 시작하고 그 좌측으로 거대하게 새로 건설되는 아파트 단지들도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과수언을 지나고 계속 이어지는 그물망이 쳐진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복성리 사거리 교차로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등로 좌측으로 코끼리어린이집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 나오는 코끼리어린이집 건물이기에 오늘 산행도 그 날머리가 멀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후 복성마을이라는 커다란 빗돌이 서 있는 복성리 사거리교차로에 도착을 해 횡단보도를 통해 도로를 건너 본다.

복성리는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있는 리로서 근매봉과 안산 등으로부터 낮은 산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등성이와 골짜기가 발달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매봉, 바구-배기, 비럭굴 등이 있는데 매봉은 북성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매봉산의 밑에 있다고 하여 산의 이름을 따서 매봉이라 칭하였더.

바구-배기는 북성의 서북쪽에 위치한 마을이며 상비라고도 불리고 비럭굴은 상비마을의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복성리 사거리교차로를 지나 마지막 봉우리인 66.1봉을 오르기 위해 진행을 해 보지만 그곳 역시 최근에 태양광 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주위가 완전히 녹색 철망으로 가로막혀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 아래에는 새롭게 들어서는 민가를 건설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라 그 마지막 66.1봉으로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그 앞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마지막 날머리인 순천제일교회 방향으로 진행을 해 본다.

잠시 후 전원주택을 건설하는 건설장소를 지나 66.1봉을 올랐다 내려오는 등로와 만나 우측으로 걸어가니 철로가 나타나고 그 철로를 건널 수 있는 육교가 나타나 그 육교를 통해 철로를 통과한다.


그 철로를 통과한 후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눈 앞으로 거대한 아파트 공사 현장이 나타나고 살펴보니 신대배후단지 조성공사중인 곳이었다.

내일 아침에도 이 신대배후단지에 세워진 거대 아파트 단지를 통해 맥 잇기를 이어가야 하는 곳이기에 사진에 담아 본다.

그곳 공사장 앞 우측으로 보이는 공터를 지나 우측으로 보이는 오늘 산행 날머리인 순천제일교회의 높은 교회탑을 기준으로 잡아 그곳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신대배후단지 공사장과 얼마 거리가 떨어지지 않은 공터를 통해 걸어 진행을 하니 드디어 순천제일교회의 거대한 주차장 위에 도착을 하고 우측으로 보이는 거대한 교회탑과 예배당 건물이 보이는 곳으로 걸어 가니 드디어 오늘 산행 날머리로 예정이 되어 있던 순천제일교회 예배당 건물 앞에 도착을 한다.

그 순천제일교회 교회탑과 예배당 건물 앞을 지나 1차선 포장도로로 내려가 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 본다.

우측에 순천제일교회 건물을 두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는 마지막 발걸음이다.


잠시 더 걸어가니 율산길 4차선 포장도로와 접속되고 그 율산길을 따라 우측으로 걸어 오르니 순천남노회와 순천풋살클럽 간판들이 보이고 곧이어 율산교차로에 도착을 한다.

율산교차로가 있는 이곳 남가리는 전라남도 순천시 행정면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 낮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가저수지와 밑골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가산, 남가산, 갈밭 등이 있는데 가산은 남가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아름다운 산 밑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남가산은 가산 남쪽이 된다 하여 붙여졌으며 갈밭은 갈대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그곳 율산교차로에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하고 도로를 대각선으로 건너 조금 더 걸어가니 오늘 버스를 타고 순천역으로 갈 수 있는 좌야입구 버스정류장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 본다.


잠시 후 드디어 오늘 산행 날머리인 좌야입구 버스정류장에 도착을 해 잠시 배낭을 정리하고 버스를 기다리니 이곳을 지나는 대부분의 버스가 순천역을 통과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51번 버스를 타고 순천역으로 이동을 한다.

좌야마을이 있는 신대리는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있는 리로서 안산과 돛대봉이 위치하여 골짜기가 발달해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이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매안, 봉서, 산두, 향매 등이 있는데 매안은 신대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고 봉서는 신대 동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봉황의 모습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두는 신대의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산정부에 위치하여 산두라 불리고 향매는 신대 서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며 매화향기가 많이 나는 곳이라 하여 향매라 칭하였다.






대중교통인 51번 버스를 이용해 20여분만에 순천역 버스정류장에 도착을 하니 이제 저녁 6시 20여분을 지나고 있어 역 근처의 지오스파랜드로 들어가 샤워한 후 다시 순천역 건너편의 창평 국밥식당에서 순대국에 소맥 한잔하며 저녁식사를 즐기니 오늘 하루가 마무리되어 간다.

다시 지오스파랜드로 들어가니 저녁 8시가 조금 넘어가고 스마트 폰과 충전기를 충전시킨 후 곧바로 잠자리에 드니 밤 11시에 눈이 떠지고 다시 2시간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새벽 1시에 잠이 들었다 알람소리에 눈을 뜨니 새벽 4시 30분을 넘기고 있다.

새벽 순천공용버스터미널에서 금호고속 직원과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그렇기에 좋은 경찰서와 경찰관을 만나 좋은 식당까지 소개를 받아 즐거운 하루를 잘 보냈다.

홀로 연말에 먼 남도까지 내려 와 힐링하며 보낸 여수지맥 첫 구간에서의 산행후기를 정리해 봤다.


남아 있는 하루도 아무 사고 없이 무탈하게 예상하는 여수시립공원묘지까지 완주 후 정상적인 대중교통을 이용해 서울로 복귀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7-12-28 여수지맥제1구간 분기점-순천제일교회.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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