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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성골지맥(도솔·완)

성골지맥 제1구간 도솔산에서 453번 2차선 포장도로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7.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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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강원도 양구군의 성골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7년 10월 26일 (목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 종일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했던 산행 날씨

산행온도 영상 05도에서 영상 20도

산행인원 : 칠갑산과 남양주 금곡님 (총 2명)

산행코스 : 도솔산지구 전투위령비-헬기장-도솔산(1147.8미터, 도솔산 전적비, 삼각점)-헬기장-1049봉-1027봉-957암봉 우회-묵은 헬기장-조망처-453번 2차선 포장도로-민통선 경고판(군부대)-산행종료

산행거리 : 돌산령에 주둔하고 있는 군부대 사단의 훈련으로 인해 산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렵게 진행하여 03.13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훈련중인 장병들 눈치를 보며 어렵게 진행하여 01시간 22분 (06시 36분에서 07시 58분까지)

산행트랙 :

20171026 성골지맥 제1구간 도솔산-453번 2차선 포장도로.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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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편 : 승용차 2대로 진행

성골지맥이란 ???
성골지맥은 도솔지맥의 도솔산(1148봉)에서 분기하여 수입천과 양구서천의 경계를 이루며 비둑고개, 두밀령(788.3미터), 항령, UN봉, 성골령, 오미령, 성주봉(626.1봉)을 지나 파로호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0.5 Km되는 산줄기인데 최전방 군부대 근처라서 일부구간은 때로는 제약을 받을 수도 있다.
지맥 이름이 산이름이 아니고 고개이름에서 따온 좀 색다른 지맥이름이다.

 

 

돌산령에 주둔한 군 사단의 훈련으로 인해 기대했던 산행은 하지도 못하고 시작과 함께 마무리하며 아쉬움을 남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어제 오전에 일을 보다가 갑자기 남양주 금곡님으로부터 전화 한통화를 받았는데 다음 달 함께 오르기로 한 성골지맥 첫구간을 내일 올랏으면 하는 생각에 다음달에 함께 오르지 못하는 사정을 전하면서 혹시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남기신다.

성골지맥은 원래 지난 달에 끝이 났어야 하는데 자료 정리도 덜 되어 있고 또한 민통선 안에 있는 그곳 군부대 철조망을 통과해 진행해야 하는데 그 군부대 초소에는 사명들이 보초를 서고 있어 진행이 쉽지 않아 보여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지금까지 오르지 못하게 되었던 산줄기이다.

오후까지 일을 보고 저녁에 전화통하를 다시 하기로 하는데 이 산객이 합류하지 못하면 금곡님 혼자 애마를 몰아 성곡령에 주차시키고 그곳에서 양구군 택시를 불러 산행 들머리인 돌산령으로 이동해 산행을 시작할 계획으로 일찍 택시를 이용해야 되기에 오늘 저녁까지는 예약을 해야 한다기에 고민하다 내일 하루 시간을 빼 금곡님과 제대로 된 발 한번 맞춰 보기로 하니 괜시리 바쁘기만 하다.

그렇게 갑자기 성사가 된 성골지맥 산행이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새벽 일찍 돌산령에 도착 하는 순간부터 그곳 돌산령 군부대 초소에서 병사들이 득달같이 찾아 와 지금은 사단 군 훈련 기간으로 도솔산 뿐만 아니라 성골지맥 첫 구간 대부분의 산행이 불가능함을 전하며 많이 미안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래도 새벽 일찍이고 사격도 하지 않으니 도솔산만이라도 다녀오겠다고 하니 보고 계통이 있어 상부에 보고를 해야 한다면서 조금 더 높은 병사가 나타나고 간곡하게 돌산령에서 사격장을 통한 도솔산 산행을 제지하고 나선다.

어쩔 수 없이 돌산령에서에 산행은 포기하고 도솔산지구 전투위령비가 있는 곳으로 애마를 이동시켜 그곳에서 사진 한장 남길 시간도 없이 도솔산 정상에서 일출을 감상하기 위해 좌측 철문을 통해 오르려는데 이곳에도 역시 훈련중인 사병들이 나타나 이유를 물으며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등산이 주목적이라니 큰 제지는 하지 안아 너무나 어렵게 도솔산으로 향하며 또 새로운 산줄기 이어가기를 시작해 본다.

성골지맥은 도솔산에서 분기하는 산줄기이기에 어짜피 도솔산 정상까지는 접속구간이지만 두번이나 이곳으로 와 돌산령에서 도솔산으로 오른 경험이 없었기에 기대를 하였는데 아쉽게도 오늘 역시 도솔산지구 전투위령비가 모셔진 곳에서 산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기온이 떨어져 도솔산지구 전투위령비가 있는 주차장을 출발하는데 밖의 기온이 영상 6도를 가리키고 한기에 두꺼운 방한복 자켓을 걸치고 도솔산 정상에서 일출을 감상하기 위해 숨도 쉬지 못하고 재빨리 도솔산 정상부로 오르니 오르는 도중 굵은 땀방울이 흘러 내리고 잠시 쉬며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 등로를 따라 오르니 보이는 벙커마다 사병들이 보이면서 두 산객을 바라보고 있어 여간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빠르게 오르니 도솔산 정상 직전에 두꺼운 구름을 뚫고 일출이 시작되고 아쉽지만 1304봉 위병소 좌측으로 막 떠오른 아침 햇살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안전한 산행을 이어갈 수 잇도록 해달라고 소원을 빌어 보지만 안타깝게도 오늘 소원은 받지를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두꺼운 구름으로 인해 기대하지 않했던 멋진 일출을 바라보는 시간은 참으로 황홀했으며 대자연을 맞이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잠시 그 시간을 즐겨보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지난 7월 1일 도솔지맥 첫 구간을 마무리하기 위해 용늪과 대암산 산행을 양구군에 신청을 하고 산친구 3명을 더해 총 4명이 밤잠도 설치고 와 새벽 짙은 이슬을 헤치고 올랐던 도솔산지구 전투위령비이기에 눈에 익는데 그때와는 달리 맑게 개인 날씨에 주위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조금 더 상세히 살펴볼 수 있었지만 에기치 못한 돌산령 군부대의 훈련으로 인해 오늘 제대로 된 산행이나 가능할지 몰라 오후에 애마 회수를 위해 들리게 되면 그 때 자세히 보기로 하고 곧바로 출발하면서 위령비만 사진으로 남겨 본다.
위령비 아래에는 넓은 주차장 공터가 있고 그 공터 우측 가장자리에는 나무로 만든 조형물들과 탱크 한대가 이곳 분위기를 엄숙하고 무겁게 만들고 있다.

간단히 사진 한장 남기고 도솔산지구 전투에 관한 내용을 다시 한번 읽어 본다.

도솔산지구 전투는 1951 6·25전쟁 당시 한국해병대 제1연대가 북한 공산군 제5군단 예하의 제12사단 및 제32사단이 점령 중이었던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칠정리의 도솔산(1148미터)을 혈전 끝에 탈환한 전투를 말한다.

전투기간은 1951 6 4일부터 19일까지이고 이 전투지구는 38선 이북의 강원도 양구와 인제 사이에 있는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악지역이며 특히 도솔산을 중심으로 한 이 일대는 높이 1000미터를 오르내리는 높은 봉우리가 연이어 있으며 기암절벽과 험하고 깊은 골짜기로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좌우로 양구와 인제에서 북상하는 도로를 끼고 있으므로 만약 이 지역을 확보하지 못하면 좌우편에서 북상중인 한국군의 전선부대가 한 걸음도 진격하지 못하게 되므로 전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그러므로 북한 공산군은 이러한 전술적인 이점과 천연적인 지세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 도솔산지구전투는 처음에 미 해병대 제1사단의 제5연대가 맡았으나 많은 손실만 입고 탈환하지 못하자 1951 6 3일 한국 해병대 제1연대(연대장 대령 김대식)가 공격 임무를 인수하여 6 4일 첫 공격을 시작하였다.

북한 공산군은 약 4200명의 병력으로 무수히 많은 지뢰를 매설하고 수류탄과 자동화기를 퍼 부어 완강히 저항했으므로 한국 해병대는 한 걸음도 진격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 해병대는 치열한 육박전과 강력한 야간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24개 고지를 하나하나 점령하면서 전진하여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면 적의 공격을 받아 다시 빼앗기고 또 빼앗는 가운데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던 24개 목표 고지를 6 19일 완전 탈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전투에서 2263명의 북한 공산군을 사살하고 44명을 생포했으며 개인 및 공용화기 등 198점을 빼앗는 큰 전과를 올린 반면 아군 또한 7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산악전 사상 유례없는 대공방전으로서 해병대 5대 작전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이 전투로 한국 해병대 제1연대는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부대 표창을 받았고 그 뒤 해병대에서는 도솔산의 노래라는 군가를 제정하여 그날의 용전의 기백을 후배 해병들에게 알리고 있다.

이에 도솔산지구전투 승전과 참전용사의 넋을 기리고 평화통일의 염원을 기원하고자 19818 21일 해군본부 해군참모부에서 도솔산전투전적비를 건립하고 관리하였으니 그 지역은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출입을 제한하여 양구군에서 19996 20일 현 위치에 높이 3.5미터 둘레 4미터의 위령비를 재 건립하게 되었고 매년 개최되는 해병대 상징문화제인 도솔산전적문화제 행사 시 호국용사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모제도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매년 한번씩 이곳에서 도솔산지구 전투 관련 행사를 하면서 민간인들에게도 도솔산까지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기다릴 수 없어 이렇게 또 도둑고양이기 되어 도솔산과의 세번째 만남을 위해 빠르게 걸어 올라 보는 시간이다.

 

간단한 산행 준비 후 주차장 좌측 위로 보이는 굳게 닫혀있는 철문 좌측 능선 방향으로 오르는데 갑자기 초병 한명이 주차장 아래에서 올라오며 다시 이것저것 물어보며 요즈음 사단 훈련이 있어 민간인들의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한다면서 출입을 제지하지만 그리 심하지는 않아 잠시 도솔산에 올라 일출을 보고 내려오겠다고 하니 다시 주차장 아래 초소로 내려간다.

7월에는 산림청 직원과 실랑이를 하였는데 오늘은 군부대 장병들과 실랑이를 하다 보니 계획된 산행을 무탈하게 마무리하기가 만만치 않음을 직감적으로 느끼는 시간이지만 이른 아침이기에 강행을 해 보고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면 그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한다.

 

어렵게 굳게 닫혀있는 철문을 좌측 능선으로 우회하니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 있고 그 임도를 타고 오르니 임도 우측으로 헬기장이 나타난다.

도솔지맥 상 도솔산에서 분기하는 성골지맥 분기점을 다녀 와 이곳 헬기장에서는 우측 도솔산지구 전투위령비 있는 방향이 아닌 좌측 헬기장을 지나 이어지는 산불기를 타고 진행을 해야 되는 지점이기에 눈과 가슴으로 잘 기억을 해 보는 시간이다.

그 헬기장을 지나 오르니 평이한 등로가 돌계단으로 바뀌고 그곳에서 굵은 땀방울이 흐르기에 주차장에서 입었던 두꺼운 방한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고 조금 더 오르다 뒤돌아 보니 등로 우측 뒤로 돌산령 지나 해안면으로 이어지는 453번 2차선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민통선 지역이라 갈 수 없는 대우산과 대우산 갈림삼거리 우측으로 이어지는 도솔지맥의 가칠봉 방향이 너무나 선명하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탄성을 지르며 몇장의 사진을 남겨 본다.

 

그리고 그 도솔지맥 좌측으로는 오늘 걸어가야 할 성골지맥 산줄기가 남서쪽으로 흐르며 이어지고 있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그 성골지맥 마루금 뒷쪽으로는 비수구미 계곡으로 이어지는 골짜기가 길게 이어지고 그 계곡 좌측으로는 백석산이 그리고 그 뒷쪽 우측으로는 갈 수 없는 어은지맥의 주봉인 어은산도 가물거린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너무나 좋고 가슴 설레이게 만드는 산그리메가 아닐 수 없다.

그 헬기장 내려가는 등로 바로 좌측으로는 인공으로 만들어 세워 둔 산양 조형물이 여전히 당당한 모습으로 서서 지나가는 산객들을 바라보고 있다.

 

다시 약간의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며 사진 몇장 남기고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재빨리 도솔산 정상에 오르니 등로 좌측 저 멀리 1304봉 위병소 좌측 능선위로 두꺼운 구름을 뚫고 힘겨운 사투를 벌이며 올라오는 햇살이 강렬하게 맞이해 준다.

매일 보고 만나는 일출이고 햇살이지만 오늘처럼 많은 제약을 뚫고 올라 와 힘들게 만나는 도솔산 정상에서의 햇살은 다른 날 만나는 햇살과는 의미 뿐만 아니라 햇살 자체도 다르게 다가오고 있다.

한동안 발걸음 멈춰 그 아름다운 일출을 바라본 후 주위 풍경들을 살펴 본다.

 

먼저 도솔산 정상에 있는 구조물 앞에서 금곡님에게 부탁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7월 초에도 올라 추억 한장 남겼지만 짙은 안개와 강한 바람으로 인해 제대로 된 사진 한장 남기기 어려웠는데 오늘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기에는 정말 좋은 날씨처럼 느껴진다.

도솔산(1148미터)은 강원 양구군 동면 팔랑리와 해안면 만대리의 경계에 솟아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148 미터로서 북서쪽의 대우산과 동쪽의 수리봉 및 남동쪽의 대암산 그리고 북쪽의 가칠봉 등과 함께 태백산맥에 솟아 있는 고봉이다.

산의 북동 사면에서는 소양강의 상류부가 남서 사면에서는 파로호로 흘러 드는 북한강 상류의 서천이 북서 사면에서는 북한강의 지류인 수입천이 각각 발원한다.

산의 동쪽 기슭에는 소양강이 남북으로 흘러내리고 있으며 약 7.5  Km 북쪽을 군사분계선이 통과한다. 북동쪽 기슭에는 만대리를 중심으로 산간분지가 전개되어 논농사가 이루어지며 남서쪽 기슭에는 서천 골짜기를 따라 팔랑리와 원당리 및 후곡리를 중심으로 한 일대에 산간분지가 발달되어 있다.

이제 마루금 따라 걷기를 위해 이곳 도솔산에 다시 올 기회는 많지 않을 것 같은데 언제 다시 이곳으로 올라 오늘을 회상해 볼 수 있을지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시간이기에 그 아쉬움을 남겨 본다.

 

이제부터 도솔산 정상에서 본격적인 조망과 풍경을 즐기면서 잠시 망중한을 가져 본다.제일 먼저 북쪽으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올라 온 도솔산지구 전투위령비로 통하는 등로가 내려다 보이그 그 아래로 453번 지방도로가 휘돌아 양구읍과 해안면을 이어즌 풍경과 그 뒤 골짜기 넘어 도솔지맥에서 좌측으로 약간 떨어져 있는 대우산이 막 떠 오른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 대우산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도솔지맥을 따라 올라가면 가칠봉을 가운데 두고 좌우측으로 매봉과 구례산이 호위병처럼 붙어 있고 그 좌측 뒤로 지혜산이 우뚝하다.

그 구례산 우측으로는 희미하게 금강산이 보이고 그 금강산 우측으로는 문산도 뾰족하게 올라 와 있다.

바로 발 아래로는 돌산령 군부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그 우측으로 해안분지 일명 펀치볼도 보이는데 그 펀치볼 뒷쪽으로는 제4땅굴과 을지전망대로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민통선 안과 이북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그 도솔지맥 좌측으로는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진행을 해야 하는 성골지맥 산줄기가 길게 펼쳐져 있어 또한 가슴을 들뜨게 만들고 있다.

다만 저 아래 453번 2차선 포장도로 건너 굳게 닫혀있는 군부대 철조망과 철문을 통해 민통선 안으로 들어 가 산행이나 잘 마치고 무탈하게 이곳 도솔산지구 전투위령비로 다시 되돌아 올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기도 하다.

군 훈련이 없어 평상시와 같은 토요일이나 휴일이면 조금 쉽게 통과가 가능할 것 같지만 오늘은 평일에 사단 군 훈련까지 겹쳐있어 진행이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밀려 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멋진 산줄기들을 둘러보고 이제 가지 못하는 도솔지맥 민통선과 이북지방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니 지난 7월에 올라 내려다 보지 못했던 거대한 펀치볼이 하얀 안개를 덮어 쓰고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펀치볼 일명 해안분지는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에 있는 분지이며 정식명칭은 해안분지이지만 펀치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이곳은 한국전쟁 때의 격전지로 외국 종군기자가 가칠봉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 화채 그릇(Punch Bowl)처럼 생겼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가칠봉과 대우산 및 도솔산 그리고 대암산 등 해발 1100미터 이상의 산에 둘러싸인 분지이며 남북 길이 11.95 Km에 동서 길이 6.6 Km에 면적은 44.7 Km2로 여의도의 6배가 넘는다.

해발고도는 400에서 500미터이며 차별 침식 분지라는 주장도 있고 운석 충돌 분지라는 주장도 있으며 분지 안에는 펀치볼마을(양구군 해안면 만대리와 현리 및 오유리)이 있다.

사진 좌측 끝자락에는 제4땅굴과 그 땅굴 우측으로 을지전망대가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희미하게 금강산도 보이고 있다.

4땅굴은 북한의 새로운 침투 방법으로 모색되어 굴설된 땅굴로 1978년 제3땅굴이 발견된 지 12년 만인 1990 3 3일에 양구 동북쪽 26 Km 지점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되었으며 군사분계선에서 1.2 Km 떨어진 곳에 있다.

그 규모는 높이와 폭이 각 1.7미터에 깊이가 지하 145미터이며 총 길이는 2052미터로서 지난 1974년 고랑포 동북쪽 8 Km지점에서 발견된 제 1땅굴의 높이 1.2미터에 폭 0.9미터, 길이 지하 46미터와 비교해 볼 수 있다.

육군 백두산 부대는 땅굴 발견 이후 1992 2월까지 37억 원을 들여 안보기념관과 기념탑을 세우고 갱도 및 갱내시설을 설치해 안보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땅굴 출입구에는 발견당시 땅굴을 수색하던 중 북한군이 설치한 수중지뢰에 의해 산화한 군견을 위로하는 충견비가 세워져 있고 땅굴 내부에는 투명유리 덮개로 덮인 15인승 전동차가 운행되고 있어 앞서 발견된 1,2,3 땅굴에 비해 매우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으며 전동차에는 방송시설과 좌석 별 헤드폰을 부착해 안내 방송을 하고 있다.

또한 땅굴 내부에 화강암층을 통해 흘러내리는 비무장지대의 오염되지 않은 지하수를 마실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을지전망대는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현리에 있는 전망대로서 가칠봉(1049미터) 산등성이에 있는데 1988년에 건립한 총면적 324 m²에 높이는 10미터의 2층 건물이다.

비무장지대 남방 한계선에서 가장 가까운 전망대로 군사분계선 남쪽 1 km 지점에 있어 북쪽으로 북한군 초소와 논밭이 보이고 맑은 날에는 금강산 비로봉과 차일봉, 월출봉, 미륵봉 및 일출봉까지 보인다.

한국전쟁 때의 격전지였던 펀치볼도 훤히 내려다보이는데 전망대가 서 있는 자리 또한 당시에는 치열한 격전지였다.

처음에는 군부대의 사전 승인을 받은 단체 관광객들만 출입할 수 있었으나 1998년부터 개인 관광객의 출입이 허용되었으나 근처의 양구통일관에서 출입 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풍경과 조망이기에 많은 사진을 담으며 가슴속 깊이 그 모습을 간직도 해 보는 시간이다.

 

이제 눈을 남쪽으로 돌려 남서쪽을 살펴보니 오늘 새벽에 올라 온 453번 2차선 지방도로가 구불구불 힘들게 이곳 돌산령으로 이어지고 그 좌측으로 팔랑리 마을과 그 우측 저 멀리 성골지맥의 마지막 모습까지 시원하게 조망되고 있다.

그 성골지맥 마지막 합수점이라 생각되는 파로호에는 하얀 안개가 띠를 두르고 있어 더욱 쉽게 파로호를 만나고 그 뒤로 우뚝 솟아 있는 도솔지맥의 대표적인 산인 사명산도 두 눈으로 똑바로 확인이 가능할 정도로 가시거리가 환상이다.

팔랑리는 강원도 양구군 동면에 있는 리로서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 지역이며 조선 때 멀리 함경도 지방에 살던 이학장이라고 하는 도사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남으로 내려오면서 양구 동북방 도솔산 남쪽에 있는 팔랑리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

이학장의 부인이 유방이 4개가 달려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곧 네 쌍둥이를 낳았고 몇 년 해에 또 네 쌍둥이를 낳았다고 하는데 여덟 자식 모두 훌륭하게 자라 벼슬까지 하게 되어 그 후 이 마을을 팔량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마을로는 느림골, 무학, 범바우, 돌고지, 자작정, 갈조동, 송림말, 막은골 등이 있다.

팔랑리와 저 멀리 사명산 사이 파로호 가는 길에는 양구읍도 내려다 보이는데 제법 거리감이 있어 자세한 풍경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제 눈을 남동쪽과 남쪽으로 돌리니 좌측 가장자리에 아침 일출이 시작된 모습이 눈 에 들어오고 그 우측 방향으로 1304 위병소가 있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솔지맥이 지난 7월 새벽의 짙은 안개로 인해 제대로 된 만남을 가지 못한 아쉬움을 털어 내고 있다.

그 1304봉 우측으로는 저 멀리 솔봉으로 이어지는 도솔지맥 첫 구간이 장쾌한 산줄기를 이으며 펼쳐져 있어 보는 이의 가슴까지 시원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곳 역시 군사지역으로 묶여 편안하게 걸을 수 없는 산줄기이기에 아름답게 펼쳐 보이는 풍경과 달리 많은 애환이 깃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주위 풍경을 살펴보며 감탄하고 많은 사진으로 남기고 있는데 언제 나타났는지 몇명의 사병들이 지켜보며 무전을 하고 있다.

아마도 이 도솔산 정상 아래 초소에서 훈련을 하다 아침에 누군가 탄성을 지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올라 와 보고 민간인이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지휘계통에 따라 보고를 하면서 민간인들을 빨리 하산 조치시키라고 연락을 받고 있는 듯 보였다.

미안하다고 이야기 전하고 그 도솔산에서의 시간도 아쉬움을 남기고 재빨리 내려오기 시작해 도솔산지구 전투위령비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는 헬기장에 도착을 해 잠시 뒤돌아 서서 방금 전 아쉬움을 남기고 내려 온 도솔산 정상부를 올려다 보니 그 정상부는 벌써 저 멀리 멀어지며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

 

헬기장을 지나 내려가니 잘 정리된 교통호가 나타나고 그 교통호를 타고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는 다시 주능선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약간의 잡목과 잡풀들이 자라고 있는 능선을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 아래에 초소들이 보이는데 그 초소마다 사병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지 위장막까지 덮고 이 산객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올라왔는지 어디를 가는지 상세하게 물어 온다.

등산이라고 이야기하니 다시 무전기를 이용해 어딘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진행을 막지나 않을까 걱정을 하는데 큰 제지는 하지 않아 무탈하게 걸어 진행을 한다.

이어지는 교통호를 타고 나즈막한 봉우리를 지나 내려가니 낙엽이 완전히 져 버린 활엽수가 앙상한 가지만 남긴채 긴 겨울 준비에 분주하고 그곳을 지나 1049 암봉으로 올라 잠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보는 여유도 가져 본다.

 

등로 우측으로 양구에서 돌산령을 지나 해안으로 이어지는 453번 2차선 포장도로가 옛 영화를 뒤로하고 지나다니는 차량이 없어도 자리를 지키고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는 시간이다.

그 도로 우측 끝자락에는 오늘 새벽 이 산객이 산행을 시작한 도솔산지구전투위령비가 있는 주차장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 평이하게 이어지는 민통선 안 도솔지맥 산줄기가 안타까운 현실을 그대로 알려 주고 있다.

언제나 고민없이 저 아름다운 등로를 따라 맥 잇기 산행을 할 수 있을지 궁금증만 커지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다시 조금 더 걸어 내려가 우측으로 나 있는 우회 등로를 버리고 직등으로 오르니 잡목의 저항이 강력한 1027봉 정상에 도착을 해 등로 뒤를 살펴본다.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헬기장과 도솔산 그리고 그 뒤 우측 사진 중앙으로 1304 위병소가 있는 정상부도 아름답게 올려다 보이고 그 위병소 우측으로 솔봉 방향으로 연결되는 지금은 자유롭게 오를수도 없는 도솔지맥 마루금이 지난날의 아픈 추억을 이야기하며 좋은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이 구간 역시 대승적인 차원에서 등로만이라도 열어줄 수 잇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램을 가져 본다.

 

잠시 후 다시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453번 2차선 포장도로를 지나 오르지 못하는 대우산이 빤히 내려다 보며 그 옛날 치열했던 전투를 겪었던 산이었음을 잊은듯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이곳 대우산에서 도솔지맥 마루금을 따라 가칠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역시 6.25 전쟁 중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 잔흔이 사라지고 그저 아름다운 모습만으로 남아 있다.

가칠봉 전투(1951 9 4일부터 10 14) 1951 6 23일 휴전회담이 제기된 이후 처음으로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확보할 목적으로 미국 19 군단장이 양구 북방의 가칠봉 일대에 5사단을 투입하여 고지를 점령하게 한 작전으로 북한군은 27사단과 12사단을 투입하여 반격에 나섰으나 40여일의 격전 후에 결국 한국군의 승리로 끝났다.

휴전 회담이 시작된 후 유엔군은 미국 1 해병사단과 대한민국 1 해병연대를 주축으로 강원도 양구군 일대의 펀치볼 전투를 8 30일에 시작했다.

가칠봉 전투는 펀치볼 전투와 단장의 능선 전투와 거의 동시에 시작된 전투로 이 일대를 유엔군과 한국군이 장악하기 위한 전투였다.

가칠봉 전방 500미터에는 1122고지(일명 고암산에 있는 김일성 고지)가 있었고 쌍방이 차후 작전을 위해서 필히 확보해야 할 주요 고지였다.

가칠봉은 아군 전선에 너무 근접하여 포병 및 항공 화력이 불가능해서 오로지 보병 근접 전투에 의존해야 했던 전투였기 때문에 미군의 화력과 항공지원에 많이 의존하던 당시 한국군 및 유엔군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고 인명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지형적으로도 가칠봉은 해안분지의 북서쪽 분지를 둘러싸고 외곽에는 높은 산들이 솟아 있는데 공격자인 한국군은 낮은 지점에서 고지로 올라가며 전투를 치러야했 지만 방어자인 인민군은 지형을 이용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적의 항공지원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올라오는 공격군을 격퇴하는 전투로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향후 작전을 위해서 가칠봉 고지를 장악해야 했던 한국군은 공격을 시작했고 고지의 주인이 6번이나 바뀌는 혈전을 치뤄여 했다.

악조건 속에서도 국군 5보병사단은 끝까지 가칠봉 일대를 고수함으로써 펀치볼 지역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5사단장 민기식 준장은 27 보병연대(연대장 유의준 대령)를 전투에 투입했고 인민군은 2군단 27사단 예하 7연대, 14연대, 32연대와 12사단 23연대를 투입했다.

27연대는 8 30일에 적정 정찰과 부대 배치를 완료하고 9 4일 공격을 개시했으며 포병 화력 지원은 사단 예하의 26포병대대가 담당했다.

한국군은 초반에 고지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으나 인민군도 즉시 야음을 이용한 역습을 가해 고지를 탈환했으며 이렇게 6번 고지의 주인은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양측은 백병전을 서슴지 않았고 많은 손실을 입었다.

이러한 격렬한 전투 끝에 결국 가칠봉 및 주위에 연결된 고지를 완전 점령할 수 있었다.

이로써 한국군은 양구군 해안 분지 일대를 완전히 차지하여 소위 펀치볼이라 불리는 북서쪽의 주요 고지를 확보한 반면 인민군은 이 전투의 패배로 가칠봉에서 쌍두령 방면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는 전쟁 없이 이 아름다운 풍경을 후손 만대까지 간직할 수 있기를 기대도 해 보는 시간이지만 현 상황이 어떨지 안타까운 시간만 흐르고 있다.

 

그렇게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다시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주능선에서 우측으로 약간 내려간 교통호로 이어지고 그곳엔 많은 낙엽들이 떨어져 쌓이면서 어떤 곳은 낙엽이 무릎까지 빠지고 있다.

잠시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는 교통호를 따르니 커다란 바위가 서 있는 957 암봉이 나타나고 그 암봉은 우측으로 우회하며 통과를 해 본다.

그 암봉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고 그 위로는 앙상한 가지만 남긴 활엽수들이 길고 추운 겨울 준비를 하고 있는 풍경이 산객의 마음까지 춥게 만들고 있다.

 

햇살도 숨어 버린 날씨처럼 약간 우중충한 기분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옆으로 약간의 단풍잎들이 남아 잇는 단풍나무는 잎들이 모두 말라 죽은 그런 모습으로 이곳 강원도의 고지대는 이미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하얀 억새가 하늘거리는 묵은 헬기장이 나타나고 그 헬기장에서 가을이 지나가는 풍경을 눈으로 확인도 해 본다.

맥 잇기 산행에 치중하다보니 제대로 된 단풍이나 억새 산행은 이제 꿈도 꾸지 못하는 시간이기에 이렇게나마 만날 수 있는 억새에 마음을 빼앗겨 보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묵은 헬기장을 지나 나즈막한 둔덕을 넘으니 다시 교통호와 벙커들이 나타나는데 그 주위에는 억새들이 산객의 키보다 더 크게 자라 시야를 가리고 있다.

조심하며 그 벙커 위 억새를 헤치며 어렵게 오르니 낙엽 진 앙상한 나무들 가지 넘어 저 멀리 진행 방향으로 민통선 안 군부대에 위치한 산불감시초소와 872.1봉 지나 비득고개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빤히 올려다 보이고 그 뒤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환상적인데 저 민통선 안의 군부대 마루금을 따라 진행이나 가능할지 불투명하기에 더욱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천천히 내려가 본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평일 하루를 빼 어렵게 왔는데 마침 군부대 훈련이라 민간이의 출입 통제가 심하고 수많은 병사들이 훈련에 동원되어 평범한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하는 것조차 눈치를 보이는 상황이니 저 민통선 안 군부대를 통해 산행을 이어가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란 예감이 들기 시작한다.

 

다시 등로 우측으로 올려다 보이는 대우산을 살펴보고 아쉬운 마음에 내려갈 성골지맥 마루금도 가슴속에 담아 둔 후 깊은 낙엽이 쌓여 있는 등로를 따라 천천히 내려가니 이제 등로에는 자잘한 바위와 자갈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위에 낙엽들이 쌓여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래도 낙엽이 지면서 등로 좌측으로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지는 453번 포장도로 좌측 위로 이어지는 도솔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조금 거 걸어 내려가니 이곳 역시 교통호와 벙커가 연속으로 나타나며 전방지역 특유의 산줄기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잠시 후 등로 옆으로 키 작은 단풍나무에 남아 있는 붉은 단풍이 이 산객의 눈길을 붙잡아 잠시 눈 맞추며 사진 몇장 더 남겨 본다.

계속 이어지는 넓은 군사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낙엽이 조금씩 줄어들며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낙엽과 단풍들이 더 많아지기 시작한다.

고도 차이를 느끼며 그렇게 걸어 내려가며 교통호가 있는 무명안부를 지나는데 등로 좌측 아래 벙커에도 역시 병사들이 보이고 등로 우측 위 벙커에서도 사병들이 나와 많은 질문을 하면서 신분증 확인까지 요구를 하고 있다.

어기론가 무전 통화를 하더니 잠시 기다리기를 요청하고 한동안 기다리니 이제 신분 확인이 되였다며 더 이상 산행은 불가능하니 바로 앞에 보이는 453번 도로를 따라 하산해야 한다고 전하며 졸졸졸 뒤따라 온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등로 우측 앞을 살펴보니 두타연으로 이어지는 계곡에는 가을이 절정을 이루며 온 산하가 붉게 불타오르듯 물들어 있다.

두타연은 민간인 출입통제선 북방인 방산면 건솔리 수입천의 지류에 있는데 동면 비아리와 사태리 하류이기도 하다. 

유수량은 많지 않으나 주위의 산세가 수려한 경관을 이루며 오염되지 않아 천연기념물인 열목어의 국내 최대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높이 10미터에 폭 60여미터의 계곡물이 한곳에 모여 떨어지는 두타폭포는 굉음이 천지를 진동하고 한낮에도 안개가 자욱하여 시계를 흐리게 하며 이 폭포 바로 아래에 있는 두타연은 20미터의 바위가 병풍을 두른 듯 하고 동쪽 암벽에는 3평 정도의 굴이 있는데 바닥에는 머리빗과 말()구박이 반석 위에 찍혀 있다. 

1천 년 전 두타사란 절이 있었다는 데서 연유된 이름이다.

맥 잇기 산행만 아니라면 저 두타연과 비수구미 계곡에도 들려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이라도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몇 년 동안은 참는 수밖에 없는 아쉬운 시간이다.

 

민통선을 막고 있는 군부대 철조망을 뚫기도 전에 사병들에게 막혀 453번 2차선 포장도로로 내려가지도 못하고 기다리는 시간이기에 오늘은 이곳에서 산행을 접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시간이다.

저 도로 건너 민통선 철조망 안 군부대에도 군용차에 탑승하여 훈련중인 사병들이 보여 그곳을 뚫고 성골지맥 산행을 진행하기엔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에 조금 더 기다리니 상부와 연락을 해 내려가도 좋다면서 다만 더 이상 산행은 불가능하며 앞에 보이는 453번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하산을 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잠시 내려가다 앞으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오늘은 오를 수 없는 성골지맥 마루금이 더욱 아름다운 단풍잎으로 갈아 입고 이 산객을 유혹하고 있다.

오늘은 아니지만 조만간 다시 들려 저 철조망 넘어 남아 있는 성골지맥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를 하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 등로 좌측 양구쪽으로 이어지는 453번 2차선 포장도로를 살펴보니 그 뒤로 길게 병풍처럼 둘러쳐진 도솔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올려다 보인다.

그 도솔지맥 마루금 우측으로 펼쳐진 팔랑리와 양구쪽도 살펴보며 천천히 내려가니 금새 453번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 도로 건너편에 서 있는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이란 안내판을 읽어 본 후 들어가지 못하는 민통선 안 군 부대를 살펴보니 사면들 몇명이 훈련을 하는지 차량에 타고 있어 철조망으로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니 원래 출입이 통제되지만 요즈음은 사단 훈련이 있어 더욱 진행이 어렵다며 오늘은 미안한데 산행을 포기하라는 말만 되돌아 온다.

그 철조망 좌측 바깥 부분을 따라 비득고개까지 우회하면 안되겠냐고 물어보니 그곳은 지뢰지대라 위험하고 등로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훈련중이라 그곳을 통과한다 해도 그곳에서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니 이곳에서 산행을 접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 준다.

몇마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금곡님과 협의하여 오늘은 이곳에서 성골지맥 첫 구간 산행을 마무리하고 어렵게 지나가는 군부대 차량을 히치 하이킹하여 도솔산지구 전투위령비 앞 도로에서 하차한다.

 

랫만에 다시 돌산령 가기 전 도솔산지구 전투위령비로 올라가는 시멘트 포장도로 앞에 서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지난 7월 초에 들려 어둠속에 올랐던 곳인데 다시 몇개월 후 다른 산줄기 이어가기 산행을 위해 들린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빠르게 걸어 올라 도솔산지구 전투위령비 주차장으로 올라 가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니면 평일이라 그런지 걱정했던 산림청 직원은 보이지 않아 그곳에서 잠시 시간을 더 보내며 몇장의 사진을 더 담은 후 무탈하게 애마를 회수한다.

 

남양주 금곡님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홀로 와서 성곡령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택시로 왔으면 택시비는 택시비로 지불하고 산행도 못한 채 다시 택시를 이용해 성곡리에서 산행 후 상무룡리에서 다시 택시를 이용해 애마를 회수했으면 큰일 났을뻔 했다며 함께 해 다행이란 이야기를 전해준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 첫 구간 산행이 불가능하면 성곡령에서 두번째 구간을 먼저 산행하고 나중에 시간 맞춰 남아 있는 구간을 마무리하자고 의견 통일이 이뤄지니 곧바로 성곡령으로 내려가 준비한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고 함께 성무룡리고개로 이동해 이 산객의 애마를 그곳에 주차시킨 후 다시 성곡령으로 뒤돌아 와 제2구간 산행을 무탈하게 마무리할 수 있어 그나마 조금은 위안이 되었던 하루가 지나고 있다.

 

남아 있는 구간은 군 훈련이 끝나고 조금은 조용해질 시기를 택해 무탈하게 마무리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71026 성골지맥 제1구간 도솔산-453번 2차선 포장도로.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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