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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육백지맥(낙동·완)

육백지맥 제1구간 황연동 원통골에서 신리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7.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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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강원도 태백시와 삼척시의 육백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7년 06월 10일 (토요일 당일산행)

산행날씨 : 흐리고 비가 내려 중간에 탈출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상 11도에서 영상 26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황연동 원통골 체육공원(백병산 안내판)-통나무계단-로프지대-등산로 안내판과 통나무 벤취-로프지대-바위로프지대-현위치(등산로

                 종점 1.4 Km) 이정판-1135.6 바위봉-병풍바위(백병산)-촛대바위-전망바위-태백시 황연동(원통골) 병풍바위와 촛대바위 안내판-

                 현위치(병풍바위와 촛대바위) 안내판-백병산(1260.6봉) 이정표(낙동정맥 삼거리 0.4 Km, 병풍.촛대바위 0.5 Km)-낙동정맥 삼거리 사각정자

                 이정표(낙동정맥 면산방면 8.5 Km, 백병산 정상 0.4 Km와 통리재하산길 4.2 Km)-산죽등로-낙엽송지대-1176.3봉-통나무계단-통나무벤취들-

                 통나무 벤취들2-큰재 설명판-1073.6 육백지맥 분기점-산죽지대-벌목지대-송전탑-유인밀양박씨묘지-새넘을재-백산 밭경작지-959.7봉-

                 978.9봉-금강송지대-무명묘지-싸리나무 군락지-1029.4 삼각점봉-산죽지대-간벌지대-간벌 잣나무 군락지-벌목지대-974.8봉-벌목지대-

                 56번 송전탑-묵밭-신리재(해발 830미터, 427 2차선 포장도로, 수준점)-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08.74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육백지맥산행 약 04.39 Km와 접속구간 통골에서 육백지맥 분기점까지 약 04.35 Km)

산행트랙 2017-06-04 0522__20170604_0522.gpx (육백지맥 통골과 백병산 지나 신리재까지)

산행시간 : 몸 풀다 만 04시간 27분 (03시 16부터 07 44분까)

교통편 :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23:00 심야버스로 태백버스터미널까지 이동 (23,700.-)

             태백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통골까지 이동 (7,500.-) 

             신리재에서 태백콜택시로 태백버스터미널까지 이동 (16,000.-)

             태백버스터미널에서 10:00 버스로 동서울버스터미널까지 이동 (21,600.-)

육백지맥이란 ??? 

백두대간 매봉산에서 부산 몰운대로 가는 낙동정맥이 통리의 백병산(1260봉) 어깨를 지나 남쪽 1.3 Km지점의 표고 약 1102미터 되는 곳에서 북동으로 가지를 쳐 삼척 오십천(길이 55.76 Km, 유역면적 393.78Km2)의 동쪽 벽을 이루며 북동진하며 육백산(1241봉), 응봉산(1267.9봉), 핏대봉(879.4봉), 삿갓봉(751.3봉), 안개산(703봉), 삿갓봉(688.2봉), 안항산(359봉)을 거쳐 삼척시 오분동 고성산(100봉)에서 삼척 오십천이 동해 바다를 만나는 곳에 이르는 도상거리 47.5 Km의 산줄기를 육백지맥이라 한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시작한 육백지맥 마루금에서 생각지도 못한 비를 만나 중간 탈출하며 백병산 산행으로 만족했던 아쉬움만 가득 남긴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6년 전 3월 중순, 아직도 등로에 많은 눈이 남아 있던 계절에 어둠을 뚫고 어렵게 올라 만났던 백병산과 육백지맥 분기점에 붙어 있던 이정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기에 기대감을 가지고 육백지맥 산행을 준비해 보지만 왠지 모르게 이곳 등로는 다른 등로에 비해 더 원시림에 가깝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 더욱 걸어보고 싶은 마루금중 하나였다.


많은 자료를 준비한 후 결국 대중교통을 이용해 조금은 편안하게 다녀오기로 하고 심야우등 버스를 타고 출발를 했는데 태백시내에서 새벽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 난감한 시간이다.

분명 어제까지 기상청에 들어 가 날씨를 확인해 보니 이곳 지역의 강수확률은 최대 20% 였는데 그 20%에 속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어떻게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몇방울 떨어진 빗방울이 멈추고 더 이상 비가 내릴 것 같지 않아 일단 산행 들머리로 출발를 하는데 불안한 마음에 1회용 비옷을 구매하여 출발한다.

예전에 산친구들과 산행을 즐길 땐 이런 빗속의 산행도 하나의 추억이라 생각하며 즐겼는데 나 홀로 장거리 맥 잇기 산행을 하면서 부터는 가능하면 어둠속 비가 내리는 시간에는 산행을 자제하게 되었기에 오늘도 많은 고민을 하면서 비가 내리지 않기만을 빌어 본다.

아무튼 몸의 컨디션도 좋아 계획되었던 들입재까지 갈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어 보며 힘차게 출발를 해 본다.


오늘 진행할 거리가 멀기에 백병산을 들릴 것인지 조금은 고민이 있었지만 이곳까지 와 백병산을 들리지 않고 진행하기엔 후회가 많을 것 같아 일부러 황연동(통동)의 원통골를 통해 조금 일찍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원통골을 통해 백병산으로 오르는 등로는 낙동정맥의 고비덕재를 통해 오르는 방법과 오늘 이 산객이 오른 병풍바위를 통해 오르는 방법이 있는데 촛대바위 옆 전망바위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환상적이라는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참고하여 병풍바위 지나 촛대바위 방향으로 오르기로 한다.

오랫만에 이마에 헤드렌턴을 쓰고 어둠을 헤치고 오르는 산행은 나뭇잎 하나의 흔들림에도 등줄기에서 식은 땀을 흘리는 신경이 곤두서는 산행이 되었지만 그래도 맑고 상쾌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오르는 시간은 지금 이 순간 살아 잇음을 느끼게 해주고 있어 생동감이 넘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오르니 생각보다 쉽게 병풍바위와 촛대바위를 지나 6년 만에 드디어 백병산 정상에 도착을 하니 옛날과 달라진 점은 없지만 분위기만은 하얀 눈에서 푸른 초록으로 변해 있다.

많은 추억을 만들고 풍경 하나 하나를 가슴에 묻으며 어둠이 사라지는 등로를 타고 그리웠던 백병산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그리웠던 낙동정맥 마루금으로 출발을 한다.

 

빗줄기가 가늘었다 굵어지기를 반복하며 산객의 등산 바지를 완전히 적시고 등산화에서는 드디어 오랫만에 개구리 울음 소리가 들리기 직전이 되어 드디어 발 아래 신리재를 바라보며 벌목지대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신리재 지나 978.1봉쪽으로 하얀 안개가 피어 오르며 환상의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비로 인해 진행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지만 그래도 오랫만에 만나는 안개의 춤사위는 잠시 잠을 자고 있던 이 산객의 열정에 불을 지르며 조금 더 산에 대한 그리움이 커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날이 맑았다면 절대 볼 수 없었던 환상의 풍경에 내리는 빗줄기를 맞으며 한동안 많은 추억을 쌓으며 고팠던 산행에 대한 갈증도 풀어 보는 시간이다.


혹시나 몰라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23:00 태백행 버스표를 사전에 예매해 놓고 여유있게 터미널로 가니 생각보다 많은 손님들로 거의 만원에 가깝다.

하지만 사북에 도착을 하니 손님 거의 모두가 하차를 하고 태백까지 가는 손님은 채 5명이 되지 않는다.

강원랜드의 카지노가 생기면서 보이는 특이한 현상으로 앞으로도 태백으로 갈 때에는 버스표 예매는 필수적이라는 생각이다.

새벽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태백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해 먹자 골목으로 들어가 어렵게 24시 식당을 찾아 순대국 하나로 속을 달래고 나오려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며 아스팔트 도로를 적시고 있다.

잠시 산행을 할 것인지 말것인지 고민하고 있는데 빗방울이 멈추고 더 이상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아 택시를 타고 산행 들머리로 가다가 편의점에 잠시 들려 1회용 비옷을 챙겨 출발한다.

어둠속에 황연동 원통골에 홀로 내리니 타고 온 택시는 손살같이 사라지고 그곳에 홀로 남아 산행 준비를 하고 잠시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은 후 산행 들머리를 찾아 우측 체육시설이 있는 방향으로 들어가니 말라버린 개울이 보이고 그 개울을 타고 좌측으로 오르며 우측 능선 방향을 살펴보니 잠시 후 산악회 띠지들이 나풀거리는 산행 들머리가 눈에 들어 온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어둠속에 생각보다 일찍 산행 들머리를 잘 찾아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쉰 후 조금은 이른 시간에 헤드렌턴 불빛의 도움을 받으며 산행을 시작해 본다.


황연동은 강원도 태백시의 북동쪽에 위치한 동으로 법정동인 황지동 일부와 통동 및 백산동 등을 관할한다.

1981년 삼척군 장성읍과 황지읍이 합하여 태백시로 승격할 당시에는 황지2동과 연화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1998년에 행정동을 조정할 때 두 동의 첫 글자를 합성해서 황연동이라 하였다.

황지와 연화는 고문헌에 기록이 있는데 황지는 황지연못에서 유래하였고 연화동은 연화산에서 유래하였다.

척주지에 황지는 태백산 속에 있는데 삼척부에서 서쪽으로 110리이며 황지 위쪽에는 연화봉이 있다라는 내용이 있다.

또 대박산 동쪽은 황지이고 황지 동쪽에는 연화산이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내용을 통해서 연화산 이름이 오래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연화산(1171)은 시의 중앙에 고립되어 우뚝 솟아 있으며 산속에 연화부수형의 명당이라는 연당지가 있고 옥녀봉과 비녀봉의 두 봉우리 모습이 연꽃처럼 생겼다 해서 연화산이라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이곳은 통동이라는 명칭으로 사용되는데 통동은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동으로서 백두대간의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산간지역에 있으며 산 가운데로 길게 형성된 골짜기가 마치 구유(여물통) 같은 형태라 하여 통리라는 지명이 생겼다 하고 옛날에 이곳에 속이 빈 통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 통리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통골이라는 골짜기를 넘어가면 삼척시 원덕면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 하여 통리 또는 통의라 했다는 지명 풀이도 있다.
1916
년경부터 양지, 음지, 용정, 웃통골, 원심의 5개 자연마을을 합쳐 통리라 부르게 되었고 후에 통동으로 개칭되었는데 지금도 통리라 부르는 이들이 많다.

조선 광해군 때 청송심씨가 개척하였고 현종 때 울진장씨가 고종 때 천씨와 김씨가 이주하여 정착했다 한다.
탄광개발과 더불어 한때 1500호가 거주했을 정도로 번창했다가 1962 12월 태백선의 황지지선(백산에서 황지)이 완공되며 인구가 많이 빠져나갔고 1982년 한보광산이 개발되면서 다시 번창하였으나 한보광산은 2007 6월 폐광되었다.
통동에는 삼척시 도계읍과 경계를 이루며 솟은 백병산
(1259)이 있고 영동선 철도역인 통리역과 통리초등학교가 있으며 통리 역 인근에서는 달마다 5, 15, 25일에 열흘장인 통리장이 서는데 이 장은 태백에서 가장 큰 재래장이다.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알려져 있는 통리협곡
은 백병산에서 발원하는 오십천이 깎아 놓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협곡으로 행정구역상으로는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에 속하지만 통리역으로 부터 걸어서 약 30분이면 닿을 수 있다.


    

마른 계곡을 건너 등로를 찾아 보지만 어둠속에 찾을 수 없어 트랙을 확인하니 등로는 조금 더 진행한 후 우측으로 나 있다.

계곡을 따라 크게 자란 잡목과 풀숲을 헤치며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보이고 그곳으로 들어가며 들머리를 찾았다는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잠시 진행하니 나무계단이 보이고 그 계단을 타고 천천히 걸어 오르니 다시 단풍나무들이 예쁘게 등로를 채우고 있다.


    

가끔 들려오는 멧돼지들의 울음소리와 이름모를 산새들의 합창을 들으며 어둠을 헤치며 걸어 오르니 오랫만에 진행하는 어둠속 세계가 편안하지만은 않다.

다시 나타나는 계단을 오르고 굵은 로프가 설치된 완만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갑자기 등산로라는 이정판이 서 있고 그 우측으로는 등로를 가로막는 통나무 벤취 하나가 나뭇가지 사이에 설치되어 있는데 등로가 없음을 알리는 역활도 잇는 듯 하다.

이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내려가며 진행이 되는 곳이다.

 

다시 천천히 고도를 높히니 굵은 로프가 다시 보이기 시작하고 눈 앞에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는데 우측으로 로프를 따라 오르면 어렵지 않게 통과를 한다.

그 바위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갑자기 현위치 이정판이 나타나는데 등산로 종점까지 1.4 Km 거리라는 표시도 적혀있어 지금까지 1.4 Km 진행해 올랏음을 알린다.

그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이 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의 등로는 생각보다 뚜렷해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백병산을 산행하는 산객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듯 한데 등로가 바뀌면서 이제는 잡목이 줄어들며 관목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큰 고도 차이없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선돌같은 바위 하나가 서 있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이 1135.6봉이다.


바위봉을 지나 가끔 나타나는 바위들을 지나 걸어가니 금새 거대한 바위벽이 앞을 가로막는 백병산 병풍바위에 도착을 하는데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작은 이정판이 눈길을 잡는다.

백병산 정상 서쪽의 병풍바위 등의 암봉이 병풍을 두른 듯하고 갈수기 때 하얀 암봉으로 보여 병풍바위 바로 위 산을 백병산이라고 부른다.

병풍바위에 올라서면 청옥산에서 두타산, 매봉산, 함백산, 태백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이 한눈에 보이지만 산길이 험하여 등산할 때 주의해야 하며 병풍바위는 암반 코스이므로 암벽 등반 경험이 없이 오르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오늘은 아직 어둠의 세계이고 약간의 안개까지 껴 있어 정상으로 올라봐야 보이는 것이 없기에 아래에서만 살펴보고 그 병풍바위를 통과한다.


길게 별풍처럼 둘러친 병풍바위를 우측으로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눈 앞에 다시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는데 그 바위 앞에는 굵은 로프가 둘러쳐져 있다.

그 로프를 타고 좌측으로 돌아 오르니 그 우측에 촛대를 닮아 있는 촛대바위가 나타나는데 그 앞에 마고할미바위도 있다는데 어둠속에 마고할미바위는 찾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그 촛대바위 우측 위로 솟아 있는 암릉을 바라보며 선답자들이 만난 환상의 풍경과 조망이 생각 나 조심스럽게 올라 보지만 어둠과 안개로 인해 아쉽기만 하다.


전망바위 위에 올라 제일 먼저 진행 방향인 동쪽을 살펴보니 부드럽게 이어진 백병산 정상부가 아주 가깝게 다가 와 있고 그 정상부는 생각보다 펑퍼짐한 모습을 하고 있다.

오래 전 낙동정맥 산행을 할 때에도 하얀 눈이 쌓여 있는 어둠속에 오른 백병산이었기에 아무것도 본 것이 없어 그 정상부의 모습은 기억속에 없었는데 오늘에서야 제대로 된 그 정상부를 살펴 본다.

 

방금 전 지나 온 등로인 남서쪽으로는 생각보다 거대하고 뾰족하게 솟아 있는 병풍바위가 어둠속에 우뚝하다.

밑에서 바위벽만 바라보며 지나올 땐 상상도 하지 못한 거대한 바위봉이 솟아 있어 스스로 놀랐던 시간이지만 아직도 어둠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그 좌우측으로 보여야 할 멋진 조망과 풍경들은 안개속에 파묻혀 전혀 그 모습을 보여줄 기미가 없어 아쉬운 시간이다.

다만 그 병풍바위 우측 저 멀리 오늘 새벽에 택시를 타고 통과했던 통리역쪽 붉은 불빛이 안개속에 가물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와 조금은 위안을 삼아 본다.


다시 조심하며 그 전망바위를 내려 와 백병산 정상부로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계단이 보이고 지나온 방향으로 촛대바위와 병풍바위 방향의 화살표가 표기된 안내판이 서 있다.

잠시 완만하게 오르니 현위치 안내판이 서 있고 그곳을 지나 오르니 금새 삼각점이 있는 백병산 정상에 도착을 하고 몇미터 내려가니 좁은 공터 위에 백병산 정상석과 많은 안내판들이 보인다.

백병산(1260)은 강원도 태백시 통동과 백산동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260미터이며 백산이라고도 부르는 매봉산에서 시작하는 낙동정맥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정상 서쪽의 병풍바위 등의 암봉이 병풍을 두른 듯하고 갈수기 때 하얀 암봉으로 보여 백병산이라고 부르는데 병풍바위에 올라서면 청옥산에서 도타산, 매봉산, 함백산, 태백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이 한눈에 보인다.

산길이 험하여 등산할 때 주의해야 하며 병풍바위는 암반 코스이므로 암벽 등반 경험이 없이 오르는 것은 위험하다.
산행은 통리에서 시작하여 원통골을 지나 고비
덕재에 올라 정상에 쉽게 오르는 코스와 한보탄광영업소를 지나 남동쪽 능선길을 따라 촛대바위와 병풍바위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코스가 있다.

원통골을 지나 정상에 오르는 코스는 사람의 모습처럼 생긴 마고할미바위와 시야가 탁 트인 촛대바위를 지나 하산하면 된다.
한보탄광영업소에서 안경다리를 건너 오솔길을 따라 가면 낙엽송 숲이 나오고 숲을 통과해 동쪽으로 난 능선
을 따라 오르면 촛대바위에 이른다.

이곳에서 10분 정도 올라가면 무덤터가 나오고 여기서 두 갈래로 산길이 갈라지는데 초보자는 병풍바위의 남쪽 아래를 우회하는 오른쪽 길로 가는 것이 안전하다.
무덤터에서 더 올라 병풍
바위에 이르고 동쪽 절벽을 내려서서 암릉을 타고 100 미터 가량 가면 마고할미바위가 있고 울퉁불퉁한 바위로 된 길을 골라 10분 정도 가면 잡목으로 우거진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서 15분 거리의 펀펀한 삼거리에서 북쪽 방향으로 내려가면 수백 평 크기의 너른 고비덕재에 이르는데 고비덕재는 고비가 많이 자라는 언덕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초보자는 원통골로 하산하는 것이 좋고 다른 하산 코스는 1150 미터봉을 지나 구사리 중촌마을로 내려온다.

원통골에서 시작하여 구사리로 내려오는 산행 거리는 약 10 Km 5시간 정도 소요된다.

주변에는 태백산(1567)과 대덕산(1307) 등 명산이 많으며 숙박 시설과 식당은 태백 시내에 많다.


한국지명유래집의 중부지방편에는 백병산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어 정리를 해 본다.

백병산(1260)은 강원도 태백시 황연동에 위치하는 산으로 이 산은 과거에 백산이라 불렸다.

척주지에 삼태산은 우보산과 마주보고 있는데 가장 높고 큰데 삼태산 동쪽은 백산이고 백산 너머는 우검산이며 또 우검산 동쪽은 영은사 뒷산이고 동북쪽은 마라읍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내용을 통해서도 백산과 백병산이 같은 산이라는 것이 인정되며 백산이란 이름은 산꼭대기의 바위가 흰 빛깔을 띤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백산이 다른 한자의 백산으로 바뀐 경위는 외자를 쓰면 외로워진다는 속설 때문이라고 한다.

대동여지도와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조선지형도에는 백병산이라 표기되어 있으며 산은 꼭대기가 바위절벽으로 되어 있고 그 모습은 흡사 바위병풍을 둘러놓은 듯하다.

산 이름은 흰 색조와 병풍 같은 형상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으며 관련 지명으로 백산동, 백산역, 백산분교, 백산교, 백산골이 있다.


백병산을 다시 만난 것이 만으로 6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그 기억이 뚜렷하고 그 정상부의 모습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는데 그 정상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변한 모습으로 오르고 있는 듯 하다.

헤어지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제부터 조금은 더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금새 낙동정맥 삼거리에 도착을 해 사각정자와 이정표들 그리고 통나무 벤취들이 보인다.


이제부터 추억의 낙동정맥 마루금을 따라 잠시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해 보는 시간이다.

낙동정맥은 강원도 태백시의 매봉산 천의봉에서 부산광역시 다대포의 몰운대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으로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던 한반도의 산맥 체계는 하나의 대간과 하나의 정간 그리고 13개의 정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상에서 비롯된 이와 같은 산맥 체계는 10대 강의 유역을 나누는 분수산맥을 기본으로 삼고 있어 대부분의 산맥 이름이 강 이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낙동정맥은 낙동강 동쪽에 위치한 산줄기로서 이 정맥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전국토의 근골을 이룬 백두대간의 태백산 줄기인 매봉산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영천의 운주산(806)까지 높이 1000 미터에 달하는 산줄기를 형성하고 월성군 서면 아화리의 낮은 구릉을 넘어 다시 경상남도의 가지산을 거쳐 부산광역시 다대포의 몰운대까지로 낙동강 동쪽 하구에서 끝난다.

낙동정맥은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동해안과 낙동강 유역의 내륙을 가르는 분수령 산맥이며 연결되는 주요 산은 백병산(1260), 백령산(1004), 주왕산(907), 주사산, 사룡산(685), 단석산(829), 가지산(1240), 영축산(1059), 원적산(812), 금정산(802) 등이며 길이는 약 370 Km로서 남한에서 세번째로 긴 산줄기이다.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산죽 등로를 따라 걷는 것이 너무나 힘들게 진행을 하였는데 오늘은 그 지난했던 등로를 따라 그 시절을 추억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정석에 보이는 면산을 보니 더욱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며 이 구간을 걸으며 참으로 어렵게 걸었던 산친구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 지는 시간이다.

그렇게 낙동정맥 삼거리를 지나 진행을 하니 키 큰 산죽밭이 길게 이어지고 그 등로를 걸을 때마다 산죽잎이 흔들리며 사각거리는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오랫만에 들어 보는 산죽 울음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니 6년 전 좁은 험로였던 낙동정맥 마루금도 이제는 고속도로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여명이 밝아 오고 있지만 날씨가 흐린지 이곳 푸른 숲속에는 아직도 어둠이 세상을 지배하고 사진 한장 남기기에도 희미한 불빛이 필요한 시간이다.

거대하게 자라고 있는 낙엽송 지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가니 다시 산죽밭으로 등로가 이어지고 나즈막한 무명봉을 넘어 깊은 산죽밭을 통과해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펄럭이는 1176.3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띠지들을 살펴보니 맥 잇기 산행을 하면서 많이도 만나고 있는 띠지들이 대부분이지만 새롭게 보이는 띠지들도 가끔 나타난다.

계속 이어지는 산북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통나무 계단으로 이어지고 그 계단을 따라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많은 통나무 벤취 쉼터들이 보인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라 생각되는데 확실한 기억은 아니다.


그곳 통나무 벤취 쉼터들을 지나니 잠시 산죽이 사라지고 거목 아래 푸른 풀들이 자라는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다시 나타나는 일렬로 설치된 통나무 벤취 쉼터들을 지나 계속 걸어가니 안부도 아닌 곳에 큰재 설명과 함께 커다란 설명판이 서 있다.

큰재 이정판에 쓰여 있는 내용을 읽어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큰재 (1087미터) 이곳은 인근 고비덕재와 더불어 옛날 태어난 통리 주민들이 동해로 소금을 구하기 위해 넘던 길이며 무거운 소금 가마니를 지고 다니느라 힘이 들어 큰재라 하였다.

인근 골짜기들 중에 통리쪽으로 소금골이라는 골짜기가 존재하며 우리의 조상들은 귀중한 소금을 구하기 위하여 높고 험한 길을 어렵게 다니곤 하였다.


큰재 설명판을 지나 계속 진행을 하니 나즈막한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소나무 한ㄷ그루가 눈에 들어 오는데 6년 전 진행하면서도 봤던 기억이 나는 듯 하다.

그곳을 지나 다시 나타나는 통나무 벤취 쉼터들을 통과하니 산죽 밭이 열리고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갈림 삼거리가 보이고 그곳 거목 위에는 준.희님과 백두사랑산악회에서 붙여 놓은 육백지맥 분기점이란 이정판이 각기 다르게 설치되어 있어 사진 한장 남기며 잠시 상념에 잠겨 본다.

6년 전 이곳을 지나며 언제일지 몰라도 다시 이곳 육백지맥도 조만간 함께 걷자고 약속을 했었는데 그 기간이 6년이 지나고 이제는 이 산객 홀로 다시 찾았으니 아쉬우면서도 세월의 빠름에 긴 한숨만 나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서 확인한 등로보다 더 뚜렷한 산죽 등로가 열려있어 이곳 육백지맥 마루금도 많은 산객들이 찾고 있음을 직감해 보는 시간이다.

잠시 더 머물며 많은 사진을 남기고 이제 우측 직진으로 진행되는 낙동정맥 마루금을 버리고 좌측 산죽 등로를 타고 들어가니 이곳 역시 바닥이 보이지 않을만큼 산죽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다.

그 산죽지대를 내려가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벌목지대가 나타나는데 눈 앞 저 멀리에는 많은 선답자들이 이정표로 삼았던 높은 송전탑이 바로 보이기 시작한다.


좌측으로 열려있는 벌목지대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며 살펴보니 이곳은 벌목 후 낙엽송을 조림해 놓은 곳처럼 보인다.

조심하며 내려가니 남아 있는 거대한 소나무들이 눈에 들어 오고 잠시 더 내려간 후 뒤돌아 보니 방금 전 걸어 진행해 온 육백지맥 마루금이 저 멀리 위로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구사리 백산마을에서 육백지맥 분기점만 다녀오게 되면 이곳으로 올랐다 다시 내려오는 등로로 이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잠시 남아 있는 잡목을 헤치며 진행하니 거대한 송전탑 밑으로 통과를 하는데 송전탑 번호는 확인을 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잡목으로 가려 보이지 않고 그 좌측 동활계곡 넘어로 송전탑을 따라 가면 보이는 복두산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이 아름답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나는 벌목지대를 지나며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이제 우측의 978.9봉과 좌측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1032.2 삼각점봉이 부드럽게 이어져 가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이제 그 벌목된 소나무 지대를 좌측에 두고 우측 벌목 경계를 따르니 유인밀양박씨 묘지가 보이고 곧이어 등로 좌측 앞으로 드넓은 백산마을의 고랭지 채소밭이 펼쳐진 풍경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백병산을 다녀 오지 않고 최단 거리로 육백지맥 분기점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백산마을이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다시 어두운 잡목속으로 들어가니 등로는 여전히 뚜렷하고 잠시 후 완만하게 내려가 새넘을재에 도착을 한다.

새넘을재는 좌측 백산마을터와 우측 빙수촌으로 뚜렷한 산길이 가로지르는 안부십자로서 아직까지도 일부 민초들이 넘나 들었던 흔적이 남아 있는

고갯마루로서 자료를 찾지는 못하였지만 새들도 넘기 어려워 힘들게 넘었다는 의미의 고갯마루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깊은 안부인 새넘을재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며 진행을 하니 등로에는 잡목이 자라 앞을 가리기 시작하고 좌측으로는 간벌된 소나무가 하늘 높은줄 모르게 솟아 있는 풍경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잠시 오르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지도를 보니 좌측의 959.7봉은 대부분 우측으로 우회한 듯 우측 우회 등로가 더 뚜렷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좌측 희미한 등로를 타고 정상으로 오르니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썩어가는 959.7봉 장상에는 특별한 것이 없이 진행에 시간만 소비한 듯 보였다.


다시 우측으로 내려가는 등로에 널부러져 있는 간벌목들을 피해 어렵게 내려가니 우측으로 우회하는 등로와 만나 정상적으로 진행이 되고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무명 묘지 2기가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진행되는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묘지 위쪽인 좌측의 희미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거대한 소나무들이 즐비하게 줄지어 자라고 있는 등로를 만나 정상부로 오른다.

거대한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978.9봉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물 한모금 마시며 잠시 쉬어 가는데 이제부터 다시 가느다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며 산객의 마음을 울적하게 만들고 있다.


소나무가 서 있는 978.9봉 정상에서 좌측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그곳에는 멋진 금강송들이 자라고 있어 산행의 피로를 풀어 주는 듯 하다.

잠시 더 내려가니 다시 키 작은 산죽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는데 빗방울이 조금 더 굵고 많이 떨어져 등로 옆 나뭇잎들을 적시고 있다.

잠시 후 무명묘지 한기를 통과하고 싸리나무가 등로를 완전히 뒤덮고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커다란 바위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지도에는 1032.2봉이자 현지 이정판에는 1029.4봉이란 산패가 걸려 있는 바위 정상에 도착을 해 삼각점과 산패를 사진에 남겨 본다.

이제 비가 제법 내려 온 세상을 촉촉히 적시며 이 산객의 등산바지와 등산화를 완전히 적시기 시작한다.


그곳 삼각점이 박혀 있는 바위봉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안개가 피어 오르는 신리재 넘어 걸어야 할 육백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나즈막하게 내려 앉은 신리재가 상상되고 그 넘어 올라야 할 978.1봉 넘어 육백지맥에서 벗어나 있는 1047봉의 사루봉이 뾰족하게 올려다 보인다.

하지만 이곳에서부터 빗줄기가 강해지기 시작하고 사진 한장 남기기도 어려워 진행에 고민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혹시나 하고 잡목 사이로 우측을 살펴보니 보여야 할 육백산과 사금지맥의 응봉산은 하얀 안개속에 숨어 사라져 버렸다.


바위를 좌측으로 우회하며 1032.2봉을 내려가니 그곳에는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내려가는 것도 쉽지 않다.

조심하며 내려가니 길게 이어지는 내리막 산죽밭이 펼쳐져 있고 잠시 후 간벌된 지대가 보이는데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여간 어렵지 않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다 보니 등로는 우측으로 돌아 진행되고 빗방울은 더욱 거세져 비옷을 입고 배낭 커버를 씌워도 빗물이 자꾸만 등산복을 적시며 등산화에서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렇게 잠시 더 내려가니 간벌된 소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비를 피해 활엽수 그늘 아래 잠시 쉬었다 비가 잦아들며 다시 진행을 해 본다.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이곳 역시 벌목된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는데 이곳도 역시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등로에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힘들게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그 벌목된 경계를 따라 오르니 온몸은 이미 완전히 젖어 버려 약간의 바람만 불어도 한겨울 한기처럼 추위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벌목지대에 자라고 있는 키 작은 잡목에 묻어 있는 빗방울을 헤치며 어렵게 오르니 등로 앞으로는 신리재 지나 올라야 할 978.1봉과 그뒤로 사루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좌측으로는 경동탄광상덕광업소에서 작업을 하며 내는 굉음이 귓전을 때리고 있다.

그 경동 광업소 뒷편으로는 1029.5봉 능선도 아름답게 펼쳐져 잇는데 그 산자락 중간에 하얀 안개가 드리워졌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조금 더 올라 우측으로 휘어지는 벌목지대를 빗방울을 털어가며 어렵게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이제부터 진행해야 할 1156.3봉과 육백산 그리고 그 우측으로 언젠가 올라야 할 사금지맥의 응봉산이 안개의 춤사위 사이로 살포시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이지만 내리는 빗줄기로 인해 사진 한장 남기기도 어렵고 트랙 한번 확인하기도 힘드니 진행을 해야되나 중단을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온몸은 이제 완전히 비에 젖어 생쥐꼴이 되어가고 등산화는 빗물에 젖어 축축해지기 시작하여 잠시 후부터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릴 듯 하다.


그렇게 힘들게 오르니 여전히 신리재 지난 978.1봉과 사루봉 그리고 등로 우측으로는 육백산과 응봉산이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이 산객의 최종 결심을 종용하고 있다.

잠시 더 비를 맞으며 걸어 오르니 잡목이 우거진 974.8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어렵게 내려가니 다시 벌목지대가 신리재로 이어지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계속 이어지는 벌목지대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내리는 빗줄기를 피할 곳도 없이 온몸은 더욱 축축하게 젖어 미풍에도 한기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벌목된 나뭇가지들이 웃자라고 있는 잡목 속에 숨어 잘못 밟으면 미끄러지기 일쑤이기에 내려가는 길도 쉽지만은 않다.

이제 신리재 2차선 포장도로가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송전탑 넘어 978.1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얼나 지나지도 않았는데 모바일폰 밧데리는 벌써 충전이 필요하다며 울려대기 시작하고 게속 진행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이 서질 않는 시간이다.


어렵게 벌목지대의 잡목들을 헤치며 조심해 내려가니 56번 송전탑을 통과하고 잡목이 우거진 마지막 구간은 좌측의 묵은 밭을 통해 신리재로 내려서게 된다.

지나다니는 차량 한대 없는 427번 2차선 포장도로에 내려서니 도로 좌측으로 한국가스공사 건물이 보이고 조금 더 고갯마루로 올라가니 도로 우측으로 해발 830미터인 신리재란 이정판이 서 있다.

그런데 2차선 포장도로 한가운데에는 차량 통행을 금지할 수 있는 바리게이트가 보여 이상한 느낌으로 살펴본다.


신리재(427 2차선 포장도로)는 구사터널 옆에는 신리재(구사리재)라는 옛길이 있으며 신리재는 해발 830미터로 오십천 수계와 가곡천 수계의 분수령이다.

신리라는 마을 위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신리마을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위치한 리로서 도계읍의 최남단에 위치한 산촌으로 북쪽에는 육백산이 남쪽에는 호암산이 솟아 있다.

오만곡에서 발원하는 계류와 구사리에서 흐르는 계류가 이 마을에서 합류하여 가곡면 동활리를 지나 가곡천으로 들어간다.

잔벙, 음지, 문의, 양지, 소항 등의 자연부락이 있는데 이 마을과 구사리 사이에 큰고 작은 소붓치재가 있어서 소붓치라 하다가 이것이 와전되어 부쇳골이라 하였는데 화재가 자주 나서 신리로 고쳤다.

너와집이 보존되어 있는 신리민속마을, 성황제, 산멕이기(산신제) 등이 유명하다.



신리재 정상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붉게 익어가는 산딸기를 따 먹으며 진행을 강행할지 아니면 오늘은 아쉽지만 이곳에서 마무리를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차량 두대가 지나가고 그 차량을 보니 더 이상 진행하며 빗방울을 털기가 어려울 것 같아 이곳에서 오늘 산행은 마무리를 해 본다.

태백시의 콜 택시를 불러 놓고 도로 옆 수준점을 찾아 사진도 남겨 본다.


택시를 타고 태백으로 내려가니 비가 그치며 햇살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아쉬움은 남지만 남아 잇는 구간은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2번에 나눠 진행하면 마무리가 될 것 같아 조망과 풍경이 좋은날 다시 오자고 다짐해 본다.

태백으로 돌아 와 목욕탕에서 샤워하고 옷을 갈아 입은 후 걸어 서 태백역 앞을 통해 태백시외버사터미널로 향한다.

예전에 참으로 많이도 찾았던 곳인데 심야에 잠을 잘 수가 없어 기차보다는 버스를 이용하다 보니 태백역도 오랫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태백역 앞에 있는 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해 동서울버스터미널 행 아침 10시 버스표를 끊고 나니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

터미널 밖은 이제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기 시작하고 열심히 땀 흘리며 산행을 해야 될 시간에 배낭 메고 집으로 귀가를 한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도 어둠속에 백병산과 백병산의 보물인 병풍바위와 촛대바위를 만나고 추억의 낙동정맥 마루금을 걸었다는 사실로 아쉬움을 달래보는 시간이다.


다음에 내려 올 때를 대비해 버스 시간표를 사진에 담고 시원한 음료수 한병을 마신 후 흔들리는 버스에 올라 깊은 잠에 빠졌다 일어나니 버스는 제2영동고속도로를 달려 양평휴게소에서 잠시 쉬어 간다.

어렵게 동서울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오후 1시 10여분이 지나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지하철을 이용해 집으로 돌아오니 이제 오후 2시를 넘기고 있다.

예전에는 폭우가 솟아지는 날에도 그 빗속이 좋아 산에 들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홀로 맥 잇기 산행에 빠지다 보니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하고 아름다운 풍경 한장 담지 못하는 그런 산행은 자꾸만 피하게 되니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이 산객의 산행 취향도 많이 변해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껴 본 하루로 남겨 본다.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다음에 더 좋은 풍경과 조망을 기대하며 멋진 육백지맥의 무탈한 완주를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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