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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영인지맥(금북·완)

영인지맥 마지막 제3구간 성내고개에서 공세리성당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5.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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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남도 아산시의 영인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5년 12월 05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춥고 박무가 있었지만 한낮에는 산행하기 좋았던 산행 날씨

산행온도 영하 3도에서 영상 06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성내고개(2차선 포장도로) 이정표(금산 1640 m, 어라산 700 m와 국사봉 1600 m)-목계단-우봉이공과 전주이씨 묘지-무명묘지들-180.5봉

                 이정표(금산 1120 m와 투구봉 1840 m, 어라산 1220 m와 국사봉 2120 m)와 벤취 쉼터2개-안부-목계단-사골 갈림 이정표(금산 780 m와

                 투구봉 1500 m, 어라산 1560 m와 국사봉 2460 m, 사골 400 m)-금산(251봉) 정상판-운동시설과 벤취 쉼터 그리고 이정표(금산 260 m,

                 사골 920 m와 국사봉 2980 m)-바위등로-263.1봉 운동시설과 벤취 쉼터 그리고 이정표(투구봉 600 m, 아산온천 1110 m, 국사봉 3240 m)-잠시

                 알바 후 복귀-255봉 전망바위-안부 이정표(동심사 1360 m, 투구봉 180 m와 금산 720 m 및 국사봉 3960 m, 체육공원 420 m)-송전탑 32번-279봉

                 산불감시초소-송전탑 31번-이정표(동심사 880 m, 투구봉 660 m와 금산 1200 m 및 국사봉 4440 m)-286.1봉 삼각점-282봉 갈림 삼거리-비포장

                 임도-송전탑 30번-205봉 능선 갈림 삼거리-송전탑 29번-사각탁자와 벤취 쉼터-콘크리트 수로-철계단-이정표(등산로입구와 금산 1860 m)-

                 아산온천지대-크리스탈모텔-파라다이스 주차장-포장도로-포유무인텔-628번 2차선 포장도로-아산리삼거리 이정판-KPEC 혁신사관학교 입간판-

                 신설된 비포장 임도-번호없는 송전탑-능선진입-송전탑 27번-비포장 임도-172봉 능선 진입-177봉 길주의-바위 암릉구간-로프구간-수목장-

                 그물망지대-1차선 포장도로-명도건설산업(주)-아산지하통로1(39번 4차선 지방도로)통과-영인산휴양림 제2매표소 설치운영 안내판 뒤 능선진입-

                 비포장 임도-묘지들-안부 사거리(등산로 안내판)-가족 유골묘-151.6봉-이정표(정상 4.9 Km, 주차장 0.7 Km)-해주최공과 안성이씨 묘지-

                 이정표(상투봉 1.9 Km와 정상 4.6 Km, 어금니바위 0.7 Km)-바위 쉼터-영인산 1.5 지점 안내판-조망처-287봉 공터 소나무-잣나무 조림지-291.3봉

                 산불감시초소-자연산휴양림 제2매표소(2000원)-이정표(상투봉 0.7 Km와 정상 3.4 Km, 휴양림 0.6 Km, 주차장 2.2 Km)-잣나무 등로-나무계단-

                 이정표(상투봉과 정상완주로, 주차장, 습지학습지구)-이정표(상투봉, 휴양림과 계곡학습지구, 주차장)-사각정자-나무다리-편백나무 벤취 쉼터-

                 이정표(상투봉, 생태연못, 영인산휴양림사업소와 산림박물관)-벤취 쉼터 삼거리-목계단-이정표(상투봉과 정상완주로, 관리사무소와 산림박물관,

                 휴양림과 잔디광장 및 주차장)와 사각탁자-나무계단-상투봉(299봉) 이정표(단자봉 1.1 Km와 정상 2.7 Km, 주차장 1.2 Km와 휴양림 1.4 Km,

                 흔들바위 0.1 Km)-나무계단-안부 나무다리-나무계단-이정표(관리사무소와 산림박물관, 상투봉과 정상완주로, 산책로)-사각탁자-포장도로

                 이정표(상투봉과 정상완주로, 관리사무실과 온실 및 산림박물관, 휴양림과 주차장)-영인산 수목원 안내도-산림교육지원센터-이정표(영인산정상,

                 영인산휴양림사업소와 상투봉, 복원지구 산림박물관, 휴양림지구)-이정표(산림박물관과 산림복원지구, 등산로)-영인산숲길(등산로) 휴식년제 실시

                 안내판-영인산산림박물관 안내도-스카이 어드벤처 매표소-산림박물관-헬기장 이정표(정상 및 시련과 영광의 탑, 산림박물관과 휴양림)-

                 이정표(정상 1.1 Km, 휴양림지구 1.4 Km, 산성입구 강청골 0.45 Km)-흐느재 이정표(정상 0.9 Km, 수목원지구 0.9 Km와 휴양림지구 1.7 Km,

                 산성입구 0.4 Km)-시멘트 포장도로-콘크리트 계단-영광의 탑-이정표(깃대봉 0.22 Km와 정상 0.47 Km, 휴양림지구 1.8 Km, 용샘 0.62 Km)-

                 탁자와 벤취 쉼터-잣나무 조림지-산사랑 표지석과 벤취 쉼터들-안전목책과 로프구간-바위 암릉구간-이정표(깃대봉 19 m, 정상 0.27 Km,

                 휴양림지구 2 Km)-깃대봉(359.9봉)-콘크리트 계단-안전목책과 로프구간-콘크리트 계단-배형상 전망대-영인산(363.5봉) 정상석과 삼각점 그리고

                 돌탑과 이정표(영인산성 0.4 Km, 단자봉 1.6 Km와 상투봉 2.7 Km, 산림박물관 1.1 Km와 휴양림지구 2.6 Km)-로프구간-바위 암릉구간-

                 316 묘지봉-293봉 전망바위-바위 암릉구간-250봉 바위-채석장 위험지역-잡목지대-불난지역-비포장 임도-시멘트 포장도로-포장도로-

                 아름다운골프장 주차장-능선진입-잡목지대-자작나무 조림지-231.4봉-자작나무 조림지-벌목지대-163봉-묘지지대-벌목 후 소나무 조림지-

                 갈림 삼거리-비포장 임도-사슴농장과 민가들-628번 2차선 지방도로-삼용 AFT 이정판과 냉정리 잔다리 버스 정류장-서해선철도 4공구 현장사무실

                 600 m 안내판-포장도로 1차선-삼용 AFT와 서해선철도 4공구 현장사무실 50 m 안내판-서해선(홍성과 송산)복선전철 제4공구 건설현장-삼웅단조와

                 삼웅 AFT 정문-비포장 임도-밭 경작지-민가-능선진입-채석장 위험구간 지대-냉정운정암-잡목지대-입암정 육각정(208.9봉) 이정표(현위치

                 입암산정상, 대진아파트 1.6 Km와 공세성당 1.6 Km, 냉정리 1.5 Km와 장수고개 1.2 Km, 냉정고개 3.5 Km와 영인산정상 5.6 Km)-바위 암릉

                 우회등로와 안전목책 및 로프 구간-입암산(207.4봉) 삼각점-안전목책과 로프구간-바위등로구간-천등말 갈림길 이정표(공세성당 1.1 Km,

                 입암산정상 0.5 Km)와 벤취 쉼터-묘지지대-천주교묘지 이정표(공세성당 0.8 Km, 입암산정상 0.8 Km)-채석장-천주교공동묘지-114.1봉-

                 천주교공세리성당 공원묘지 이정석-시멘트 포장도로-밭 경작지-인주 파출소-공세성당 이정표(입암산 1.6 Km와 냉정고개 5.1 Km, 영인산

                 정상 7.2 Km)-이정표(공세리 성당 0.1 Km)-사거리 도로-아산북부 신협-공세2리 마을회관과 노인정-공세리성당 주차장-보호수 느티나무-

                 공세리성당-아산만조망-산행종료

산행거리 : 많은 낙엽과 잔설로 인해 미끄러운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진행해 19.23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얼어있어 미끄러운 낙엽을 조심하며 그러나 조금은 빠르게 공세리성당까지 둘러보며 진행 해 06시간 55분 (09시 23분에서 14시 19분까지)

교통편 : 대중교통 이용

             서울 봉천역에서 신도림역까지 지하철 2호선 그리고 신도림역에서 평택역까지는 지하철 1호선으로 환승해 도착

             평택역에서 500번 버스로 음봉면 삼거리 앞 삼기리 버스정류장 도착

             음봉면 삼거리에서 히치 하이킹 성공해 트럭으로 성내고개 도착

             인주파출소 버스정류장에서 611번 버스로 아산온천역 도착

             아산온천역에서 1호선 지하철로 신도림역까지 그리고 신도림역에서 봉천역까지는 지하철 2호선으로 환승해 도착 후 귀가

영인지맥이란 ???

영인지맥은 금북정맥이 칠장산에서 서남진하여 칠현산, 덕성산, 서운산, 성거산(579.1봉)을 넘어 걸마고개에 이르기 200미터 전에 서쪽으로 가지를 쳐 경부고속도로와 1번국도를 건너선 천안시 북부시가지를 지나서 노태산(141봉)과 천안 제3, 4공단을 지난다.
아산땅으로 들어선후 용와산(238.3봉), 연암산(292.7봉), 둔덕산(225봉), 국사봉(222.5봉), 금산을 넘어 영인산(363.9봉)을 일군후 입암산(207.4봉)에서 서해에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44.8 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이 영인지맥 북쪽의 줄기는 안성천으로 흘러들고 남쪽의 물줄기는 곡교천으로 흘러들어 삽교천에 합류한 후 바로 서해로 들어간다.

 

 

박무속에 또 하나의 산줄기 이어가는 산행을 마무리하며 사라져 가는 마루금에 대한 아쉬움을 남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어제 팔공기맥 산행을 7구간으로 무탈하게 마무리를 하고 돌아 와 사진들을 정리한 후 탁배기 한잔으로 자축을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내일 혹시 진행하게 될지도 모를 영인지맥 마지막 구간에 대한 자료들을 정리하고 숙면을 취한다.

일요일 새벽 일찍 눈이 떠지고 산행 준비 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이용해 지난 구간 산행 날머리이자 이번 구간 산행 들머리인 성내고개로 출발을 하는데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내려가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제법 걸렸다.

그래도 무거웠던 몸이 산행을 시작하여 잠시 진행을 하니 풀리기 시작을 하고 큰 어려움 없이 영인지맥 산행도 마무리를 하고 올라올 수 있어 이번 주말과 휴일은 하나의 기맥과 하나의 지맥 산행을 졸업하는 아주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

 

새벽에 무척 추웠던 날씨는 해가 뜨면서 조금은 풀렸는지 눈도 많이 녹아있고 기온도 올라 산행하기에는 참으로 좋은 조건을 주기에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을 하여 오늘 산행중 최고봉이자 영인지맥이란 이름을 낳게한 영인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그곳 영인산 정상에서 북서쪽을 살펴보니 박무속에서도 이제부터 걸어 마무리를 해야 할 영인지맥의 마지막 마루금이 참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풍경 하나 하나가 모두 고운 추억이 되어 이 산객의 가슴속에 남겨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즈막한 산줄기를 타고 진행을 하면 628번 도로를 건너 아름다운골프장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231.4봉이 보이고 그 우측 끝자락에 마지막으로 올라야 할 입암산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도 아름답기만 하다.

어렵고 힘들게 걸어 오면서도 견딜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면 너무나 큰 희열을 안겨주기에 또 다시 다른 산줄기를 찾아 떠나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어렵게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음봉면 삼기리에 도착을 하니 아침 9시를 넘기고 그곳에서 잠시 성내고개 방향으로 걸어가니 마침 트럭 한대가 올라 와 무조건 손을 흔드니 세워줘 편안하게 성내고까지 도착을 하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인사를 건넌다.

삼거리는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에 있는 마을로서 1리와 2리로 나뉘는데 삼거1리(삼거리, 샛터말)의 유래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삼거리의 주된 마을이고 면사무소가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 세갈래로 나 있기 때문에 삼거리라 이름이 붙여졌고 샛터말은 삼거2리와 1리의 사이에 있다고 하여 샛터말이라 하였다.
삼거2리(강정골)에 사람이 모여살게 된것은 지금부터 약 250여년전 최씨들이 정착하고 그후 김씨들의 집성촌이 되었으나 갑골이라는 마을의 도적이 강정골까찌 들끓어 폐동이 되었다가 한참뒤에 도적들을 피하여 정착하여 현재의 동네를 이루게 되었다.

지난 구간 아쉬움을 남기고 음봉면으로 내려갔던 성내고개에 도착을 하니 아침 9시 20여분을 지나고 간단히 산행 준비후 좌측 서쪽으로 높은 콘크리트 옹벽에 세워져 있는 철계단을 타고 오르며 영인지맥 마지막 산행을 시작한다.

이곳 성내고개는 주민들도 잘 모르는 고개 이름으로 남쪽의 음봉면 삼거리와 북쪽의 영인면 성내리를 이어주는 고개인데 북쪽의 성내리란 마을이름에서 차용된 이름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 곳이다.

성내리는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에 있는 마을로서 대부분의 지역이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성내저수지가 위치하여 관개용수가 풍부하며 주로 논농사가 행해진다.
자연마을로는 안골, 서촌말, 쇠재 등이 있는데 안골은 성내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금산의 북쪽 안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쇠재는 금산 밑에 있는 마을로 질그릇점이 있으며 철이 생산되었다고 하여 쇠재 또는 금성이라 불리고 서촌말은 쇠재 옆에 있는 마을로 성내리의 서쪽에 위치하므로 서촌말이라 이름 붙여졌다.

 

철 계단을 타고 높은 시멘트 옹벽을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금산까지 1640미터 거리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통나무계단이 짧게 이어진다.

그 계단을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에 우봉이공과 부인의 묘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수레길 같은 넓은 낙엽깔린 호젓한 등로가 이어지며 새벽 공기를 마시며 걸어가는 시간이 상쾌하게 다가온다.

잠시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묘지들이 보이고 그 넘어로는 산정리 마을이 박무속에 희미하게 내려다 보인다.

다시 나타나는 무명묘지 몇기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벤취 쉼터들과 금산까지 1120미터 거리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 180.5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곳 180.5봉에서 잠시 장갑과 귀마개를 벗어 배낭에 넣고 출발하기 전 뒤돌아 보니 잡목 사이로 지난구간 넘어온 어라산과 국사봉이 저 멀리 높게 올려다 보인다.

이제 깊은 낙엽 등로를 타고 미끄러지지 않토록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가족 유골묘와 그 넘어 저 멀리 아산의 산줄기들이 연봉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는 나즈막한 안부로 내려가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도를 살펴보니 이름도 없는 무명안부이다.

하지만 이곳은 음봉면 산정리의 사골마을로서 마을 사람들은 가골고개로 부르고 있는 듯 하여 찾아보니 사골(삿골)은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산정리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로 사기점이 있었다 하여 사깃골 또는 삿골이라 불리는데 이 사골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사골고개라 불리는 듯 보인다.

그 사골고개를 지나 오르니 그곳에는 통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그 사골고개 안부를 지나 통나무 계단을 타고 올라 낙엽 등로를 타고 잠시 편안하게 걸어 본다.

잠시 오르니 등로 옆에 이정표가 서 있는데 살펴보니 좌측으로 사골하산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사골마을에 대한 설명은 바로 앞에서 했기에 이곳에서는 생략을 한다.

이제 낙엽과 하얀 눈이 공존하는 평이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평이한 능선같은 등로에 251봉인 금산 정상이 나타나는데 지도상에 나와 있는 금산과 지자체에서 세워둔 이정표의 금산 지점이 서로 달라 한동안 헷깔리며 걸어 보는 시간이다.

금산(251봉)은 충청남도 아산시의 영인면 아산리와 성내리 및 음봉면 신수리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251미터이며 산 위에 돌로 쌍은 성 100여 간이 있으므로 성재라고도 부른다.
1872년지방지도의 아산에 일북면 동심산과 수항치 사이에 금산이 표기되어 있다.
동쪽으로 음봉면 삼거리에 이충무공 산소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아산의 옛 고을 터가 있고 금산 아래 있는 영인면 성내리 금성 마을은 쇠재라고도 부르며 옛날 질그릇을 구웠던 곳이다.
산 이름은 금산인데 그 아래 마을 이름은 금성으로서 서로 표기가 다른데 그 이유가 궁금하기만 하다.

 

  

금산 정상을 지나 다시 두껍게 깔려 있는 낙엽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고 잠시 후 하얀 눈이 남아 있는 등로로 바뀌고 있다.

살펴보니 남사면은 눈이 완전히 녹아있지만 북사면에는 아직도 제법 눈이 남아 있어 여간 미끄럽지 않기에 조심하며 걸어간다.

그렇게 오르니 벤취 쉼터 2개와 이정표가 서 있는 234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는 금산을 아직 도착을 못했으며 앞으로 260미터를 더 걸어가야 도착할 수 있다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되어 있어 헷깔리기만 하다.

하루 빨리 올바른 이정표로 바꿔 줄 것을 기대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좋은 날씨에는 인근 마을 주민들이 올라 와 운동도 즐기는지 간단한 운동시설과 벤취 쉼터가 마련되어 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헷깔리는 이정표가 서 있는 234봉을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낙엽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작은 바위들이 산재된 등로도 지나 무명 안부를 통과한다.

다시 잔설이 보이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황량함이 물씬 풍기는 등로를 지나 잔설이 제법 남아있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좌측으로 아산온천 하산 갈림길이 있는 263.1봉에 도착을 해 잠시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이곳 정상에도 역시 간단한 운동시설들이 보이고 벤취 쉼터도 보이며 사각탁자까지 설치되어 있어 여름철 잠시 쉬어가기 좋은 정상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잠시 좌측 아산온천 방향으로 알바를 하고 뒤돌아 와 정상 마루금인 투구봉 600미터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하지만 그곳 236.1봉에도 누군가가 이곳이 금산이라고 적어 놔 헷깔리기는 마찬가지이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다시 잔설이 있는 멋진 등로가 보이고 곧이어 소나무 등로로 바뀌더니 곧이어 등로 좌측에 있는 전망바위에 도착을 해 잠시 주위 풍경을 둘러보며 추억을 남겨 본다.

남서쪽으로 이제부터 걸어 내려가 통과해야 할 아산온천지구가 내려다 보이고 그곳 넘어 저 멀리 영인산의 상투봉과 깃대봉 그리고 영인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능선이 하얀 눈을 덮어 쓰고 어서오라 손짓을 하고 있다.

 

전망바위 바로 발 아래인 남쪽으로는 거대한 아산온천 지구가 자리하고 그 넘어 나즈막한 봉우리와 그 우측 뒤로 무명산(251미터)이 올려다 보인다.

아산온천은 1987년 발견되어 1991년에 관광지로 지정 개발되었는데 수질은 중수산나트륨을 포함한 알카리성온천으로 20여종의 무기질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체감이 매끄럽고 혈액순환촉진, 세포재생촉진작용, 신경통, 관절염, 고혈압, 위장병, 풍, 피부미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변 야산들이 울창한 산림으로 둘러싸여 깊은 산곡에 들어있는 것으로 착각할 만큼 공기가 맑고 숲속을 걸으면 산림욕까지 겸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서해안고속도로 서평택IC에 내려 아산호와 충무공유적지 등을 둘러보는 주말 나들이 코스로도 손색이 없는 온천이다.
아산온천 뒤로 보이는 무명산은 들릴 수 없지만 처음 들어 보는 무명산이란 이름으로 인해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올라보고 싶은 산이 되었다.

 

그렇게 그곳 전망바위에서 잠시 주위 풍경을 둘러보며 멋진 추억을 남기고 출발하니 이제부터 제일 먼저 올라야 할 투구봉이 뾰족하게 올려다 보인다.

잠시 낙엽진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이정표 하나가 보이는데 살펴보니 진행방향으로 동심사란 단어가 처음 보이고 좌측으로는 체육공원으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 삼거리 이정표이다.

그 체육공원 갈림 삼거리를 지나 잠시 걸어 진행하니 32번 송전탑을 만나 통과를 한다.

 

그 32번 송전탑을 지나 넓은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낙엽이 두껍게 깔려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는 279봉에 도착을 하는데 잡목으로 가려 조망이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투구봉을 만나지 못하였지만 이곳 정상이 투구봉은 아닐까 생각되어지는 곳으로 아산시 자료를 찾아보면 높이는 다르지만 이곳을 지칭하는 듯한 투구봉 일명 국수봉에 대한 설명이 있어 찾아 본다.

투구봉(국수봉)은 충청남도 아산시의 음봉면 삼거리와 신정리 등에 걸쳐 있는 산으로 조선지형도에 삼거리와 신정리 사이에 요로원이 있고 그 서쪽으로 국수봉(투구봉)이 한자를 달리해 나타난다.
산 모양이 멀리서 보면 투구와 같이 보이므로 투구봉이라고도 하는데 국수는 나라의 장수를 뜻하지만 대개 국사가 변하여 국수로 부르게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산에 돌로 쌓은 성이 있어 둘레가 364척과 높이 10여 척이 되는데 어리목 고개의 서쪽이 되므로 어리목산성 또는 어라항산성이라 부른다.
국수봉에는 인근의 삼거리에서 요로원을 거쳐 둔포로 이어지는 어리목 고개가 있으며 이곳은 조선 명종 때 도적 임꺽정이 이곳에 웅거하여 조정의 곡물이나 진상품을 털었으므로 길손들이 어울려서 넘어야 하는 고개라 하여 어리목 또는 어라항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279봉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31번 송전탑을 지나고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여유있게 걸어 보는 시간이지만 역시나 낙엽에 물기가 있어 여간 미끄럽지 않다.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내려가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고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가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가는 곳에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잘려져 넘어져 있고 그 쓰러진 소나무 밑으로 동심사란 이정표가 보이는데 소나무 가지로 인해 글자는 잘 구별이 되지 않는다.

동심사는 고려 시대 충청도 아주(현 아산)에 있던 사찰로서 충렬왕 5년(1279) 충렬왕의 맏아들 강양공 왕자가 들른 적이 있는 절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아산군조에 연암산 소재로 기록되어 있는 동심사와 동일한 사찰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강양공은 고려시대의 왕족으로 충렬왕의 장남이었지만 세자로 책봉되지 못하고 동심사에 가 있었다가 소환된 후 강양공에 봉해졌는데 강양공의 이름은 자이고 시호는 정강인데 고려 제25대 충렬왕의 장남으로 어머니는 정신부주이다.
심양왕 고의 아버지로서 원나라 공주의 소생이 아니라 하여 세자로 책봉되지 못하고 1279년(충렬왕 5) 왕명에 따라 세자(충선왕)를 피하여 충청도 아주(현 아산)의 동심사에 가 있었다.
1283년 소환되어 제국대장공주로부터 의물을 하사받고 후에 강양공에 봉하여졌으며 1391년(공양왕 3) 정강이라는 시호가 내렸다.우측 능선을 타고 잠시 더 오르니 등로 우측인 북쪽으로 커다란 성내저수지와 그 뒤로 고룡산이 멋진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주위 풍경을 살피며 조금 더 오르니 286.1봉 삼각점을 만나고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286.1봉까지 진행을 하면서 이정표에서 봤던 투구봉을 살펴보지만 보이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지나 온 봉우리중 한곳이 투구봉이라 생각을 하는데 아마도 산불감시초소가 있던 봉우리를 이곳에서는 투구봉이라 부르고 있지는 않을지 생각도 해 본다.

삼각점을 지나 평이한 잡목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길주의 봉우리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야 할 정상 등로가 보이지 않아 잘못하면 우측 등로를 타고 진행하기 쉬운 곳이었다.

소나무가 서 있는 그곳 283봉에서는 좌측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야 정상 마루금으로 진행 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한 봉우리이다.

 

길주의가 필요한 283봉에서 좌측 잡목 등로를 타고 가파르게 내려 오니 286.1봉을 오르면서 헤어졌던 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잠시 올라 본다.

등로에는 많은 낙엽이 떨어져 쌓여있어 진행할 때마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장단을 맞춰 노래를 부르듯 경쾌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잠시 더 오르니 비포장 임도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곳에서 마루금은 좌측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비포장 임도를 우측으로 보내고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이곳도 등로는 비포장 임도처럼 넓게 펼쳐져 있는데 살펴보니 바로 아래에 서 있는 송전탑 공사를 하면서 넓혀 놓은 등로처럼 보인다.

잠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에 30번 송전탑이 서 있고 그 송전탑을 통과하니 또 다시 등로는 넓은 임도로 이어지는데 이곳에는 간벌된 나무들이 어지럽게 산재되어 있어 진행에 방해를 주고 있다.

그곳을 지나니 낙엽이 덮혀있는 썩어가는 사각탁자와 벤취 쉼터가 보이는데 정상 등로는 우측 아래로 이어지지만 잡목과 잡풀이 가로막아 도저히 내려갈 수 없기에 좌측으로 내려가 아산온천의 모텔 건물들이 서 있는 방향으로 내려가 본다.

 

우측 아래까지 내려갔다 그곳에 우거져 있는 잡목과 가시나무들을 헤치고 내려갈 수 없어 다시 사각탁자가 있는 곳으로 올라 와 좌측 등로를 따르니 안부에 시멘트 수로가 보이고 그 앞으로 철 계단이 놓여 있어 그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내려가니 저 멀리 보이는 크리스탈 모텔 건물이 보이고 그 철 계단 옆으로 등산로 입구와 금산까지 1860미터라는 이정표도 보인다.

이제 앞에 보이는 크리스탈 모텔 건물 방향으로 걸어가며 등로 우측을 보니 저 멀리 이제부터 올라야 할 영인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크리스탈 모델 건물 뒷편에 있는 넓은 공터를 지나 건물 내 주차장을 통해 나가니 그 주차장은 크리스탈 모텔이 아닌 파라다이스 모텔의 건물 주차장이다.

그 주차장을 빠져 나가 넓은 1차선 포장도로를 만나고 그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 내려간다.

잠시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포유무인텔 건물이 있고 그 건물을 지나 앞으로 걸어가니 바로 눈 앞에는 628번 2차선 포장도로가 눈에 들어 온다.

그 628번 포장도로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다 아산온천로157번길이란 도로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진행하며 걸어 내려온 마루금이 송전탑과 함께 시원하게 올려다 보인다.

 

이제 그 628번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저 아래에 아산리삼거리라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도로 건너 좌측편에는 영인면이란 도로 표지판과 함께 KPEC 혁신사관학교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보인다.

이곳을 배티고개란 명칭으로 나타낸 지도들도 있어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도 배티고개에 관한 자료가 없어 이곳 지명인 아산리를 찾아 본다.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에 있는 마을로서 영인산 밑이 되며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농경지가 넓게 조성되어 있으며 큰 규모의 영인저수지가 자리한다.
자연마을로는 갈매지, 구향교골, 새터, 학다리, 샘거리, 옥거리, 절골마을 등이 있는데 갈매지마을은 갈매기처럼 생긴 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향교골마을은 전에 아산향교가 있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새터마을은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불리우는 이름이다.
학다리마을은 마을 앞 내에 나무로 다리를 높게 놓았었는데 마치 이것이 학의 긴 다리와 같다 하여 학다리마을이라 칭하였다.
샘거리마을은 학다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우물이 있었으므로 샘거리라 하였으며 옥거리마을은 아산옥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고 절골마을은 동심사가 있던 곳이라 하여 현재까지 불리우는 이름이다.

그 표지판이 있는 방향으로 진입하며 걸어 들어가니 도로 좌측에는 무슨 공사를 하는지 사람들이 모여 장비들을 가동하고 있어 소음이 심하다.

그 공사장을 바라보며 앞으로 걸어가니 넓은 주차장 같은 공터가 나타나고 등로는 그 공터를 지나 628번 지방도로 좌측 능선방향으로 최근에 개설된 비포장 임도처럼 보이는 넓은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며 이어지고 있다.

 

원 마루금은 새로 개설된 비포장 임도 좌측의 능선인데 그곳으로 오르려고 해 보니 잡목으로 진행이 어렵고 이곳에 새롭게 개설된 임도와 큰 차이도 없어 그냥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진행하기로 한다.

한동안 그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임도 좌측으로 파란 임시 화장실이 보이고 우측에는 드높은 송전탑이 서 있는데 아무리 찾아 봐도 송전탑 번호가 없어 의아하게 생각을 해 본다.

그 송전탑이 서 있는 둔덕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뒤돌아 보니 저 멀리 286.1에서 아산온천 지구를 지나 이어져 온 영인지맥 마루금이 나뭇가지 사이로 훤히 올려다 보인다.

 

계속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오르니 등로는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그 능선으로 오르니 그곳에도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에 많은 낙엽들이 떨어져 쌓여 있다.

그 편안한 등로를 따라 오르니 거대한 27번 송전탑이 서 있고 그 송전탑을 지나 오르니 방금 전 헤어졌던 넓은 비포장 임도와 다시 만나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진행을 하게 된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두덕에서 임도가 완만하게 내려가는 곳 정상부에서 마루금은 우측 잡목이 있는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어 잡목을 헤치며 걸어가 본다.

 

약간의 잡목이 있는 낙엽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다시 거목들이 쓰러져 등로를 가로막고 어렵게 그 등로를 지나니 거대한 활엽수가 일렬로 서 있는 멋진 마루금이 나타난다.

그 마루금 끝자락까지 가니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잘못 진행을 하면 좌측 등로를 따라 알바하기 쉬운 곳이다.

우측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내려가니 눈 앞에 거대한 바위가 나타나는데 등로는 그 바위를 우측으로 우회하며 가파르게 내려가며 이어지고 있다.

 

그 바위지대를 지나 가파르게 내려가니 이곳 등로에는 더욱 깊은 낙엽들이 쌓여 여간 미끄럽지 않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얇은 로프를 잡고 내려가니 더욱 깊은 낙엽 등로가 나타나며 등로를 희미하게 만들고 있어 길찾기에 유의하게 된다.

그렇게 주의하며 희미한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등로 옆으로 2기의 수목장이 깨끗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이런 수목장도 묘지 문화의 대안이 될듯 싶다는 생각이다.

그 수목장을 지나 내려가니 안부를 지나 직진 방향으로 그물망이 쳐진 밭 경작지가 나타나고 등로는 그 그물망 좌측의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내려가게 된다.

 

낙엽 산행을 하듯 그렇게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닭장이 나타나고 곧이어 1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간다.

도로 우측으로는 명도건설산업이란 건물이 보이고 등로 좌측 위로는 에쓰오일 주유소가 있는듯 올려다 보인다.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 명도건설산업이란 건물을 지나 걸어가면 39번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도로를 건널 수 있는 아산지하통로1이 나타나고 그 지하통로를 통해 39번 지방도로를 통과한다.

 

39번 지방도로를 지하통로를 통해 통과하니 갈림 사거리 도로가 나타나는데 등로는 사거리 지난 능선 방향의 플랭카드가 붙어 있는 방향이다.

도로 좌측 즉 39번 지방도로 옆에는 맛집 은성옥과 구39번 지방도로와 주위 도로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몇장의 사진을 담고 다시 사거리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입산통제안내와 제2매표소 설치운영 안내판이 보이기에 의아한 생각을 해 보는데 올라가다 보니 실제로 매표소를 설치 운영하고 있으며 한명당 2000원을 징수하고 있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잠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마루금을 오른다.

등로 옆으로 많은 묘지들이 보이고 곧이어 우측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만나는 갈림 삼거리를 만나 좌측으로 완만하게 오른다.

그렇게 잠시 더 오르니 사거리 갈림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을 뒷아산고개로 표기해 뒀다.

하지만 다른 자료를 찾아보니 뒷아산고개는 방금 전 올라온 39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곳을 뒷아산고개로 표기를 한 자료들도 있어 정리를 해 본다.

이 영인산은 아산시의 옛날 이름인 아산군의 이름을 낳게 한 산으로 영인산 정상에서 북동쪽 능선으로 약 4 Km 거리에 39번 국도가 넘는 뒷아산고개가 있으며 이 뒷아산고개 남쪽 약 400 m 아래 39번 국도변 서쪽 산자락 위로 뾰족한 기암이 올려다 보인다.

이 바위는 예전부터 이곳 주민들이 어금니바위로 불러온 기암으로 이 어금니(어금니 아)바위에서 아산군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어금니바위 북쪽 뒷아산고개에서 계속 북동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약 3 Km 거리인 금산(286봉) 줄기 남쪽 음봉면 신수리 아늑한 분지에 아산온천이 자리하고 있다라고 적고 있다.

 

사거리 갈림 안부인 뒷아산고개를 지나 등산로라 적혀있는 방향으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가족 유골묘지가 보이고 조금 더 오르니 그 가족 묘지 뒤 저 멀리 영인산의 시련과 영광의 탑이 서 있는 연화봉과 깃대봉 그리고 영인산 정상부를 이루는 능선이 하얀 누을 덮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다시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는 직진의 등로가 아닌 좌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듯 오르고 있다.

한동안 부드러운 낙엽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휘어져 오르고 곧이어 156.1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주차장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보이고 정상까지 4.9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보인다.

 

다시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옆으로 눈에 덮혀 있는 해주최공과 부인의 합장묘가 보이고 등로는 여전히 직진으로 오르지 못하고 좌측의 사면 등로를 타고 오르듯 진행이 된다.

한낮의 태양열이 내려 쬐니 등로에 얼어있던 얼음과 눈이 녹으며 약간의 질척이는 등로로 변하고 그렇게 완만하게 오르니 드디어 등로 좌측으로 어금니바위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어금니바위를 다녀오지 못한 아쉬움이 지금까지도 찐하게 남아 있다.

어금니바위(아기업은바위)는 충청남도 아산시의 영인면 아산리와 염치읍 송곡리 등의 경계가 되는 영인산 북동쪽에 있는 바위로서 바위가 300미터쯤 쭉 벌어져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바위가 부처처럼 생겼으므로 불암 또는 부처바위라고 전한다.
조선지형도에 영인면, 음봉면, 염치면의 경계에 부아암이 표기되어 있으며 한편 이 바위를 어금니처럼 생겼다 하여 어금니바위라 하는데 아산이라는 고을 이름이 이 바위로 인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또 이 바위는 아기 업은 바위 또는 부아암이라고도 하는데 바위가 마치 아이를 업은 형상처럼 보이기 때문이며 여기에는 저주받은 장자집 며느리의 설화가 전해진다.
산 아래 염치읍 송곡리에 장자못이라는 큰 연못이 있는데 이 못은 스님에게 시주를 하지 않고 거름을 퍼 준 어느 부자의 집터로서 저주를 받아 그 집이 연못이 되었고 며느리만 중의 말을 듣고 아이를 업은 채 중을 따라가다가 이곳에서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이 바위가 되었으므로 아기 업은 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바위는 그 모양이 기괴하여 고을 수령은 어리석은 미치광이가 되고 아산고을 아전들은 흉악하고 간사하다 하였으며 3년 동안 고을 사또 다섯이 바뀌었으므로 1459년(세조 5) 아산 땅을 나누어 온양, 평택, 신창의 세 고을에 붙였다가 1465년(세조 11) 임금이 온양온천에 거둥할 때 다시 건의하여 고을이 복구되었다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이 어금니바위에는 많은 전설과 설화가 내려오는데 모두가 아산시와 관련된 전설들이다.

그중 하나를 아래와 같이 정리하여 어금니바위의 전설을 소개하고자 한다.
옛날에 돈 많은 욕심장이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농토가 삼천석 지기나 되어 인근에서는 제일 부자였으나 세상에 둘도 없는 옹고집 구두쇠였으나 그집 며느리는 착하고 어여뻐서 동네 사람들의 칭송을 한몸에 받고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이집에 늙은 스님이 시주를 받으러 왔었는데 마음씨 곱고 효성이 지극한 며느리가 쌀 한 되박을 시주하려 할 때 심술이 많은 시아버지가 나타나 쌀을 빼앗고 대신 외양간의 똥을 담아주며 외장간의 똥을 담아주며 스님을 좆아 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며느리는 스님을 불쌍히 여겨 뒷문으로 몰래나가 스님에게 다시 쌀을 시주하였으며 이때 스님이 며느리에게 하는 말이 이집에 큰 액운이 깃들어 촌각을 지체할 수 없으니 지금 곧 이곳을 피해야 하니 나를 따라 오시오 하였다.
그리고 뒤에서 무슨 소리가 나더라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고 따라와야 한다고 당부하며 얼마를 가던 중 뒤에서 우레 같은 굉음이 들려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니 그 으리으리한 자기 집에 불이 났다고 한다.
불이난 자기 집이 불기둥에 휩싸여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으며 며느리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큰 바위로 변하였다.
며느리가 변하여 바위가 된 형상이 아기 업은 모양을 하고 있어 아기업은바위 또는 어금니와 같다 하여 어금니바위 그리고 부처와 같다 하여 불암이라 불리고 있으며 현재의 아산시라는 지명도 이 바위의 어금니 아자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예로부터 지역마다 전해져 오는 전설이 아산에도 있으며 토속신앙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기원하는 장소들이 많이 있어 나름대로 답답한 심정을 신앙에 의지하기 위해서 정성을 들이고 있지만 이곳 어금니바위에도 바위 주변에 촛불과 작은 불상들이 놓여 있어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러 오는구나 생각이 들게 한다.
어금니바위에 올라보면 볼품없는 거대한 바위덩어리지만 전해오는 전설을 되새겨보면 더욱 의미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각자의 정성을 드리며 소원은 이룬다.

다음에 아산에 들리게 되면 수암사를 들려 꼭 저 어금니바위를 직접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보며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어금니바위 갈림 삼거리에서 우측 상투봉과 정상이 표기된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바위 몇개가 등로에 놓여 있어 쉬어가기 편하도록 보이는데 오늘은 차가운 기온으로 인해 그냥 출발을 한다.

그 바위 옆에서 등로 우측을 바라보니 저 멀리 영인산 능선이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오고 있다.

그 바위가 있는 곳을 지나 오르니 다시 낙엽진 등로가 뚜렷하게 이어지고 있다.

 

거대한 활엽수가 드문 드문 등로에 서 있는 부드러운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계속 영인산의 아름다운 산줄기가 조망되고 그렇게 조금 더 오르니 영인산 1-5라는 긴급구조요청 번호가 보인다.

다시 천천히 오르니 소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등로 좌측으로 조망처가 있어 들어가 보니 등로 좌측 저 멀리 중방리 넘어 곡교천이 보일듯 말듯 다가와 있다.

중방리는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에 있는 마을로서 대체로 평지로 이루어진 지역이며 농경지가 넓게 조성되어 있으며 마을 서쪽으로는 서원천, 남쪽으로는 곡교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횟골, 중방이, 윗중방이, 안마을 등이 있는데 횟골마을은 예전 이곳에 석회광이 있었다 하여 현재까지 불리는 이름이고 중방이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이며 윗중방이마을은 중방이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안말은 중방이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불리는 이름이라 한다.

 

그렇게 염치읍쪽 마을들과 공장지대 그리고 올망졸망한 산그리메들을 살펴본 후 다시 정상 등로로 복귀해 오르니 정상에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공터같은 284봉에 도착을 한다.

정상은 제법 넓은 공터로 이뤄져 있는데 그 가운데엔 거목의 소나무 한그루가 자리하고 있어 솔봉이라 불러도 될듯한 그런 봉우리이다.

잡목들이 자리하고 있어 조망이 없기에 물 한모금 마시고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우측 저 멀리 영인산 줄기가 조금 더 가깝게 다가와 있다.

 

그렇게 등로 우측으로 계속 따라오는 영인산 정상부를 조망하며 전진하니 등로는 직진의 멋진 잣나무 마루금으로 변하면서 너무나 아름답게 열려있다.

등로 좌측으로는 영인면 지나 염치면의 들녘과 나즈막한 산그리메들이 산객의 발걸음을 느리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니 이제 등로 좌측 앞으로 우뚝 솟아 있는 상투봉이 어서오라 손짓하며 반긴다.

마루금에서는 약간 떨어져 있는 봉우리이지만 언제 다시 저 상투봉만 다시 오를 수 있을지 기약이 없기에 바쁘기는 하지만 잠시 들렸다 가기로 한다.

 

계속 이어지는 잣나무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본다.

어제의 피곤함은 사라지고 몸이 풀리면서 진행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기에 산행 속도는 가면 갈수록 더 빨라지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렇게 조금 빨리 걸어가니 저 앞으로 산불감시초소가 보이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초소 좌측 잣나무 위에 291.3봉이라는 이정판이 달려 있어 사진 한장 남기며 잠시 쉬어 간다.

 

291.3봉의 산불감시초소봉을 지나 다시 출발을 하니 등로는 여전히 잘 발달되어 있고 이제는 잣나무와 활엽수가 뒤섞인 등로로 변하고 있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멋진 잣나무 군락지가 보이고 그속에는 사각탁자도 보이는데 그 우측에는 영인산휴양림 제2매표소란 작은 판매소가 나타나고 이 산객이 접근하자 직원이 작은 창문을 열면서 평택에서 오셨지요 하고 말을 건넨다.

아무 생각없이 그렇다고 하자 2000원의 입장료가 필요하다고 설명을 하면서 직원 자신도 미안한지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하면서 시에서 정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

뒷아산고개에서 출발을 할때 봤던 플랭카드는 실제로 매표소를 운영한다는 소식을 전해는 내요이었다.

조금은 어이없는 아산시의 행정에 다시는 이곳 영인산에 올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매표소에서 거금 2000원을 내고 곧바로 출발을 하니 휴양림과 상투봉이 갈리는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원마루금은 우측 휴양림 방향이지만 앞으로 빤히 올려다 보이는 상투봉이 그리워 좌측 등로를 타고 상투봉으로 향한다.

잣나무 등로의 계단을 타고 천천히 내려가니 잣나무들이 사라지고 눈 앞으로 상투봉까지 이어지는 환상의 등로가 시원하게 열려있다.

수목원의 습지지대를 지나 상투봉으로 오르는 등로가 보이는데 상투봉 정상부근은 제법 가파르게 올라야 되는 등로이다.

 

길게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우측으로 습지학습지구 안내판이 보이고 곧이어 계단등로 좌우측으로 식재된 나무들을 보호하는 지지대와 갈색으로 변해가는 억새들이 산객의 눈길을 잡는다.

그렇게 계속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휴양림과 계곡학습지구로 가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해 우측의 사각정자를 살펴본다.

그렇게 구경한 후 갈림 삼거리에서 상투봉으로 걸어가다 등로 좌측을 올려다 보니 방금 전 내려온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291.3봉과 제2매표소 봉우리가 아름답게 멀어지고 있고 그 아래에는 갈색으로 변해가는 억새가 다시 눈길을 잡는다.

 

다시 나무계단 좌우측으로 식재되어 있는 낙엽진 벗나무를 친구삼아 내려가니 이제 등로 좌우측으로는 갈색으로 변해 버린 환상의 억새지대가 반겨준다.

등로 우측의 계곡학습지구를 바라보며 물이 흐르는 나무다리를 건너니 물길을 건넌다는 사실에 조금은 찜찜하지만 이곳은 어짜피 마루금이 아닌 상투봉을 다녀오기 위한 등로이기에 위안을 삼아 본다.

다리를 지나 벤취 쉼터가 설치되어 있는 짧은 낙엽송지대를 지나니 우측으로 생태연못과 진디광장 갈림길을 지나 벗나무가 식재된 등로를 타고 올라 갈림 삼거리에 설치된 벤취 쉼터 하나를 만난다.

 

계속 이어지는 벗나무 식재 등로를 타고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꺽어 오르니 다시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오르니 우측으로 관리사무소와 산림박물관으로 갈 수 있는 갈림 삼거리를 만나 좌측의 상트봉과 정상완주로 방향의 등로를 따라 올라가 본다.

완만하게 오르니 이제 나무계단이 다시 나타나고 그 나무계단을 타고 상투봉 정상으로 향하는데 계단 좌측으로는 염치읍쪽 마을과 산그리메가 환상적이다.

 

그렇게 나무계단을 타고 가파르게 오르니 넓은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있고 조망안내도와 상투봉 정상이 세워져 있다.

등산객들이 보여 상투봉 정상석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주위 조망을 즐겨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상투봉(299봉)은 산의 형상이 상투와 같이 뾰족하게 솟아있다 하여 상투봉으로 불리고 있다.
아산영인향토지에 의하면 동림산의 주봉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는 동림산으로 불리어졌던 산으로 이곳에서 남쪽 60미터 위치에 흔들바위가 있고 동림산에는 삼국시대의 동림사지터가 있었다고 전해져 오는데 현재 위치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이곳에서의 낙조와 주변의 전망이 아주 일품이다.
앙증맞은 정상석을 사진에 담고 제일 먼저 서쪽 끝자락으로 가 10여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흔들바위를 살펴본다.

 

제일 먼저 북서쪽을 살펴보니 바로 코 앞에 닫자봉이 보이고 우측으로 산림박물관이 그리고 그 뒤로 연화봉에서 깃대봉 제일 뒤 좌측으로 영인산 정상이 우뚝 솟아 보인다.

이제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오는 풍경에 넋을 잃고 즐기다 보니 많은 시간이 지나고 있다.

하지만 닫자봉 찾아가는 길이 쉽지 않아 잘 진행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은 되지만 단자봉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면 수목원을 통해 정상 등로로 진행하면 될 것이다.

 

등로 북동쪽으로는 오늘 걸어 온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291.3봉에서 매표소 지나 수목원을 통과한 후 나무계단을 통해 이곳 상투봉으로 오르는 등로가 한눈에 들어 온다.

그 뒤로 머리만 내밀고 있는 영인지맥 마루금이 가물거리는 풍경에 또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주위 풍경을 살펴보고 이 영인지맥을 따라 산줄기를 가르는 곡교천도 내려다 본다.

 

상투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남서쪽 풍경은 북쪽과는 달리 나즈막한 평야지대로 이뤄져 있고 이 영인지맥 산줄기를 가르며 흘러가는 곡교천이 빤히 내려다 보인다.

저 멀리 나즈막한 들녘을 지나면 도고산이 안개속에 가물거리 그 아름다움에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추억만 쌓고 있다.

곡교천은 충청남도 동남구 광덕면 원덕리에서 발원하여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대응리에서 삽교천으로 합류하는 하천으로 삽교천 수계의 본류인 삽교천으로 유입되는 제1 지류로서 전체 구간이 국가 하천과 지방 1급 하천 및 지방 2급 하천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안 지역에 해당하는 구간은 지방 1급 하천과 지방 2급 하천으로 지정되었는데 지방 1급 하천인 곡교천은 대통령령 제16535호에 의거하여 광덕면 행정리에서 아산시 국가 하천 종점까지 지정이 되었고 지방 2급 하천은 충남 제5호 고시(1964.01.20)에 의거해서 광덕면 원덕리에서 행정리 종점까지 지정되었다.
곡교천은 원덕리의 차령(190m) 일대에서 발원하여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대평리·행정리,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유천리와 소정면 운당리, 소정리, 대곡리,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가송리, 두남리, 용정리, 삼태리, 아산시 배방읍, 염치읍, 온양동, 신창면, 선장면 등지를 거쳐 아산시 인주면 대응리에서 삽교천으로 흘러든다.
국교천의 유래는 옛날에 아산시 염치읍 일대의 하천에 나무로 놓은 굽은 다리가 있어서 하천 앞 마을을 고분 다리라 부르고 한자로 곡교리라고 불렀으며 마을 앞 하천을 고분 다리천 또는 곡교천이라 불렀다고 한다. 1872년 지방 지도에 곡교와 곡교점이 나타나고 대동여지도에도 곡교가 나타나고 있으나 하천의 명칭은 미륵천으로 표시되어 있다.
곡교천은 일부 구간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데 풍세면에서는 한천, 한내 또는 봉강천이라고 부르고 아산시 배방읍에서 쑥개, 봉호, 봉강 또는 봉강천이라고 부른다.
곡교천은 광덕면 원덕리 일대의 상류부에서는 200에서 400여 미터의 구릉성 산지 사이를 흐르고 있어 구릉성 산지 사이의 곡간에 최소 규모의 범람원 충적 평야를 형성하고 있지만 동남구 광덕면 대평리 및 행정리 일대의 상류부에서는 대체로 해발 고도 100에서 200여 미터의 비교적 낮은 구릉성 산지 사이의 곡간을 흐르면서 국지적으로 소규모의 범람원 충적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과 소정면 일대 상류부의 해발 고도 100에서 200여 미터의 비교적 낮은 구릉성 산지 사이의 곡간에서는 비교적 넓고 긴 범람원 충적지를 형성하고 있고 이어서 풍세면의 가송리, 두남리, 보성리, 용정리, 남관리, 삼태리 일대의 중류부에서는 해발 고도 100여 미터 이하의 낮고 평평한 평지를 흐르면서 규모의 범람원 충적지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곡교천은 풍세면 북쪽의 중류부에서 풍서천을 합한 후 곡교천은 아산시 인주면 대응리에서 삽교천에 합류되고 삽교천은 하류부에서 아산만으로 유입된다.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과 풍세면 일대의 구릉성 산지 사이의 곡간을 흐르는 곡교천은 대부분의 구간에 인공 제방이 축조되어 하천 연변 범람원 충적지의 농경지와 가옥을 보호하고 있다.
풍세면 구간에서는 평야의 경지 정리와 관개수로 정비가 잘 되어 있고 천안시 구간 연변에는 비옥한 범람원 충적지의 대부분이 논으로 개발되어 있으며 하천 연변의 완사면은 밭이나 과수원으로 개발되어 있다.
이러한 논과 밭 등을 기반으로 여러 마을들이 들어서 있는데 상류부 광덕면의 경우 원덕리의 아래 밤나무골, 심내말, 원터, 새터말, 대평리의 피덕, 대평원, 행정리의 향촌과 구정 등이 있고 중류부 풍세면의 경우 가송리의 안송정과 하마가 두남리의 납안들과 석우, 보성리의 영성, 용정리의 용두, 하도, 상도, 남관리의 공사, 난산, 삼태리의 금호 등이 있다.
곡교천의 광덕면 및 풍세면 구간에는 하곡과 연변 완사면에 농경지와 가옥 이외에도 농업, 제조업 및 서비스업과 관련된 기업체들과 문화 유적지들이 입지해 있다.
곡교천의 광덕면 및 풍세면 구간에는 각종 교통로들이 하곡과 연변 완사면을 따라서 개설되어 있거나 하곡과 연변 완사면을 횡단하여 개설되어 있는데 광덕면의 경우 국도 1호선, 국도 23호선, 시도 23호선 등이 하곡과 연변 완사면을 따라 개설되어 있고 지방도 623호선이 하곡과 연변 완사면을 횡단하여 개설되어 있다.
풍세면의 경우 시도 1호선이 곡간과 연변 완사면을 따라 개설되어 있고 천안 논산 고속 국도, 지방도 629호선 등이 하곡과 연변 완사면을 횡단하여 개설되어 있다.
또한 풍세면의 경우 경부 고속 철도가 곡교천 구간 일대에 대체로 직선상으로 개설되어 통과하고 있다.

저 곡교천이 흘러 아산만호로 흘러드는 곳에서 이 영인지맥 산줄기고 그 아산만에 빠지며 마무리가 될 것이다.

 

  

한동안 그 상투봉에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다 보니 제법 시간이 흐르고 있다.

다시 배낭 둘러메고 나무데크 앞으로 나와 이정표 있는 곳에서 닫자봉과 정상 방향을 알려주는 북쪽 방향으로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며 출발을 한다.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평이한 등로가 열리고 뚜렷한 등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니 지맥 마루금은 우측으로 흘러야 하는데 이 산객이 따르는 등로는 자꾸만 좌측으로 내려가고 있어 다시 잠시 올라가 등로를 찾아보니 우측으로 흐르는 희미한 등로가 나타나 그 등로를 타고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 작은 나무 다리를 건너 진행을 이어가 본다.

하지만 나중에 확인을 해 보니 좌측으로 흐르는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면 닫자봉으로 오를 수 있었는데 확실하지 않아 뒤돌아 올라 와 정상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게 되었으니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닭게 된 시간이었다.

 

나무 다리를 건너 길게 이어지는 나무게단을 따라 한동안 올라가니 등로 좌측으로 관리사무소와 산림박물관으로 갈 수 있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이제 등로 좌측으로 산림 박물관 이정표를 따라 걸어 가 본다.

잠시 걸어가니 등로 옆에 사각탁자가 보이고 곧이어 갈림 사거리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는 등로 좌측으로 관리사무소와 온실 그리고 산림박물관 방향이 마루금이다.

영인산 수목원 안내도가 서 있어 잠시 살펴보고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산림박물관 방향으로 다시 출발을 해 본다.

 

시멘트 도로를 타고 산림박물관 방향으로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거대한 건물들이 보이고 조금 더 진행하니 도로 우측에 산림교육지원센터라는 글귀가 보인다.

그곳에서 잠시 등로 좌측 뒤를 바라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온 상투봉이 상투의 형상으로 드높게 솟아 올려다 보인다.

다시 도로를 타고 앞으로 전진하니 영인산 정상으로 가는 이정표를 만나 이제부터 도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향한다.

 

좌측으로 폭포가 있는 사거리에서 도로를 버리고 직진 방향으로 산림박물관과 산림복원지구 화살표를 따르니 잠시 후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으로 등산로 방향 표시가 보여 그 등산로 방향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전진을 해 본다.

지도를 살펴보니 원 마루금은 좌측의 산림복원지구로 올라 능선을 따라야 하지만 지금은 그곳으로 진행을 하는 것이 제한되어 우측 등산로를 따라 걷게 되었다.

자꾸만 좌측 주능선쪽을 살펴보며 계속 걸어가니 영인산 숲길(등산로) 휴식년제가 실시되고 있다는 안내판을 지나 스카이 어드벤처 매표소 앞에 도착을 한다.

 

날씨가 좋으면 많이 이용할 것 같은데 오늘은 춥고 겨울철이라 한동안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는 설명이 들려온다.

스카이 어드벤처 주위를 둘러본 후 다시 곧바로 출발을 하니 도로 좌측으로 산림박물관 건물을 두고 한동안 걸어가게 된다.

잠시 더 걸어가다 도로 우측을 살펴보니 영인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주위로 많은 민가들이 들어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잠시 더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영인산 산림박물관 건물 입구가 나타나고 잠시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을 한다.

 

그 산림박물관 건물을 지나 계속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으로 전진하니 다시 갈림 삼거리가 보이는데 이곳에서는 우측 도로를 버리고 좌측 도로를 타고 올라간다.

그 삼거리 갈림길에는 거북이 샘물이 보이는데 겨울철이라 그런지 물은 단 한방울도 나오지 않는다.

잠시 도로를 타고 오르니 드넓은 헬기장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앞을 살펴보니 저 멀리 시련과 영광의 탑이 서 있는 연화봉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그 헬기장을 넘어 다시 내려가니 산성입구 강청골 가는 갈림 삼거리가 보이고 곧이어 갈림 사거리인 흐느재에 도착을 한다.

흐느재는 아산시 영인면 상성리와 염치읍 강청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인데 그 어디에서도 흐느재에 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영인산성은 아산시 아산리에서 서남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높은 산이 영인산인데 영인산성은 바로 영인산의 정상부에 축조되어 있는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성이 축조되어 있는 영인산은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사방으로 지맥이 뻗어 있어 영인면과 인주면, 염치면 등의 경계가 되고 있는데 성은 남쪽에서 북으로 달리고 있는 산줄기의 제일 북쪽에 솟아 있는 표고 364미터의 영인산 정상부를 지형에 따라 부정형으로 축성하였다.
성이 축조되어 있는 영인산이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인 데다가 남에서 북으로 달리는 산성의 최북단에 성이 축조되어 있기 때문에 산성에서의 전망은 매우 좋다.
먼저 동쪽으로는 산줄기가 이어지고 있어서 그다지 전망이 좋지 못하나 북쪽으로는 영인면과 인주면 일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며 멀리 아산만과 안성천 그리고 평택까지도 한꺼번에 조망된다.
남서쪽으로도 약간 시야가 가리기는 하나 삽교천과 아산만 일대가 한 눈에 조망되어 아산만에서 삽교천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감시할 수 있다.
또한 남쪽으로도 1 Km정도 떨어져서 동남에서 서북으로 흐르고 있는 곡교천과 그 주변이 한눈에 들어오며 곡교천 너머로 신창면 읍내리에 있는 학성산성이 건너다 보이기도 한다.

그곳에서 도로 좌측을 타고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흐느재에서 넓은 도로를 타고 완만하게 정상 방향으로 오르니 정상 등로는 도로를 직진의 좌측으로 보내고 마루금은 우측으로 오르게 되는데 그곳에는 콘크리트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그 좁은 콘크리트 계단을 타고 한동안 오르다 뒤돌아 보니 지나온 산림박물관과 곡자봉 그리고 저 멀리 상투를 닮아 있는 상투봉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조금은 힘이 들지만 이렇게 환상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조망이 있어 그 피곤함을 견딜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콘크리트 계단을 타고 한동안 오르니 계단 좌측으로 공터를 지나 나무들이 자라고 직진방향으로는 콘크리트 계단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곳에서 좌측 공터와 나무가 식재되어 있는 곳으로 진행을 하니 금새 우측으로 올라 영광의 탑이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우리 민족의 고난과 미래의 희망을 담은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 탑은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 영인산 정상(해발 3백40미터)에 세운 이 탑은 높이 24미터에 둘레 26미터의 쌍둥이 모습으로 화강암으로 제작됐다.

우리 민족의 과거와 현재 및 미래를 표현하고 있는 이 탑은 하단부는 빈번한 외침의 고난과 쓰라린 과거를 험한 파도로 중단부는 땀흘려 이룩한 결정체를 다이아몬드의 형으로 상단부는 세계를 향한 영광된 조국의 모습을 하늘을 향해 곧게 솟은 4각의 돌기둥 모습으로 각각 형상화했다.

시 관계자는 탑이 세워진 영인산은 비류백제의 도읍지로 백제 멸망시는 나당연합군의 상륙지였고 고려시대에는 대몽고 항쟁의 전적지였는 등 암울했던 과거를 상징하고 있으며 근세 이후 아산국제 무역항 건설 및 대규모 공단 조성 등 서해안시대의 총아로 부상된 역사적인 곳이라며 국민정신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탑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은 또한 영인산의 연화봉으로 불려지는 봉우리이기도 하다.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 탑이 있는 연화봉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니 나무탁자와 벤취들이 놓여있는데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 세분이 점심식사를 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어 보기 민망하다.

그곳을 지나 잣나무가 식재되어 있는 능선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벤취 쉼터들이 보이고 그 옆으로 산사랑이란 싯구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니 안전목책과 로프로 이뤄진 바위 암릉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한다.

 

그 바위 암릉을 타고 오르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등로 우측으로 깃대봉 오르는 등로가 열려있어 그곳 깃대봉으로 오른다.

잠시 가파르게 오르니 넓은 공터에 정상석과 굴뚝 그리고 육각형의 콘크리트 조형물이 있는 깃대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정상에서 주위 풍경을 살펴 본 후 셀카 놀이를 하면서 추억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일망무제 시원하게 펼쳐진 조망과 풍경이 아름다운 깃대봉 정상인데 더욱 환상적인 모습은 마지막 봉우리인 입암산이 북쪽 저 멀리 시원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깃대봉 정상에서 북동쪽을 살펴보니 상성리와 신현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그 한가운데엔 거대한 영인저수지가 자리를 하고 있다.

그 영인저수지 우측으로는 영인산에서 유래한 영인면 마을이 바로 발 아래로 펼쳐져 있다.

영인면은 충청남도 아산시의 북쪽에 위치하며 아산호를 사이에 두고 경기도 평택시와 마주하는 면으로 남쪽의 영인산과 중앙의 고용산을 제외하면 대부분 고도 50미터 이하의 저지대를 이룬다.
남쪽 산지에서 발원한 아산천과 신언천이 아산호로 유입하면서 유역에 평야를 이루는데 1974년 아산만 방조제 축조 이후 간척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현재 아산리, 상성리, 신현리, 백석포리 등 13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본래 아산군 현내면 지역으로 관대와 상불 등 14개 리를 관할하고 있는데 1872년지방지도의 아산에 현내면으로 표기되어 있고 아산만 지역이 파란색으로 나타나 있으며 남쪽으로는 읍치와 사직단이 나타난다.
1914년 일북면의 3개 리, 이북면의 15개 리와 신흥면의 신성리를 합하고 면의 남쪽에 위치한 영인산의 이름을 따서 영인면으로 고치고 아산군에 편입되었다.
조선지형도에 서해로 빠져나가는 안성천을 경계로 진위군과 경계를 이루며 고용산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저지로 묘사되어 있다.
영인면 지명은 인근 영인산(364미터)과 관련이 있는데 이 산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신성산으로 1819년 발간된 신정아주지에는 영인산으로 나오는데 아산 고을의 고려 때 별호의 하나인 영인이 다른 한자의 영인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산 북동쪽에 300미터쯤 벌어진 바위를 부처바위라 하고 또 어금니바위라고도 하는데 아산의 어금니 아자가 이 바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괴석이 신기한 부처를 이루어 3년 동안 다섯 원(사또)을 갈려 보냈다는 내용이 있으며 토정 이지함 선생이 아산 현감으로 있다가 통인에게 해를 입은 것도 이 바위 탓으로 전해지고 있다.

많은 공장 건물들과 드넓은 들판이 인상적인 영인면이다.

 

 

동쪽으로는 방금 전 힘들게 넘어 온 시련과 영광의 탑이 서 있는 연화봉 줄기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그 뒤쪽으로는 영인지맥 마루금도 보인다.

오늘 넘어 온 39번 지방도로도 보이는 듯 하고 어금니바위가 있는 곳의 산줄기도 보이는 듯 다가온다.

그 뒤 저 멀리에는 알듯 모를듯 넘실거리는 아산과 천안의 산그리메들이 가슴속에 남아 있는 풍경들을 선사하고 있다.

 

남동쪽으로는 지나온 산림박물관 건물과 그 우측으로 곧자봉이 그리고 가운데 저 멀리에는 상투를 닮아 있는 뾰족한 상투봉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 상투봉 좌측으로는 수목장 지나 매표소가 있는 산줄기가 아름답기만 하다.

역시 진행해야 할 마루금은 아무리 낮아도 힘들게만 보이는데 아무리 높고 힘들게 진행을 한 등로라 해도 지나온 마루금은 언제나 아름답고 황홀하다는 사실을 오늘 다시 한번 느껴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주위 풍경과 조망을 한동안 즐긴 후 이제 가야 할 방향인 남서쪽을 살펴보니 바로 고갯마루 지나 영인산 정상이 바로 지척으로 다가와 있다.

영인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로와 산자락에는 하얀 눈이 남아 이제 겨울이 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풍경을 즐긴 후 배낭을 메고 그곳 깃대봉 정상을 지나 영인산 정상 방향으로 출발을 한다.

 

깃대봉 정상을 출발해 가파르게 내려가니 콘크리트 계단이 열리고 그 계단 옆으로는 소나무가 식재된 풍경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바위 암릉구간을 넘으니 다시 길게 이어지는 콘크리트 계단이 이어지고 등로 우측으로 이제부터 가야 할 마루금을 살펴 본후 금새 옛날 미군 부대에서 사용한 듯한 오래된 건물을 지나 배의 형상을 하고 있는 휴식 공간과 전망대를 만나 그곳으로 오른다.

 

그 배의 형상을 하고 있는 전망대로 오르니 이곳 역시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져 있어 제일 먼저 북서쪽으로 지금부터 진행해야 할 방향을 살펴 보니 바로 아래로 이어지는 마루금 지나 저 멀리 지나야 할 아름다운 골프장이 보이고 그 뒤로 아산 현대자동차 공장도 박무속의 희미한데 사진으로는 분간이 되질 않는다.

그렇게 진행되던 산줄기는 골프장 지나 이제 우측인 북쪽으로 이어지며 마지막 봉우리인 입암산을 우똑 솟구치고 그 산세를 낮춰 아산만 방조제로 맥을 다하는 모습이 내려다 보인다.

 

한동안 그 전망대에서 조망을 즐긴 후 전망대를 내려 와 서쪽으로 이어진 등로를 따르니 넓은 공터에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 영인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영인산(364봉)은 충청남도 아산시의 영인면과 염치읍과 인주면에 걸쳐 있는 아산지방의 명산으로 해발고도는 364미터인데 산이 높아서 매우 험준하지만 사람이 전혀 다치지 아니하고 또 산꼭대기에 우물이 있어서 가뭄이 들 때 기우제를 지내면 매우 영험하므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영인면이라는 이름도 이 산에서 따온 이름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신성산(삽재산의 뜻)이라 수록되어 있고 산마루에 옛성 두 개를 연해서 쌓은 신성산성이 있는데 그 북쪽 성은 돌로 쌓은 것으로 주위가 480척에 높이는 10척이며 안에 우물 하나가 있는데 날이 가물면 이곳에 비를 빌고 그 남쪽 성은 흙으로 쌓은 것이 주위가 480척에 높이가 4척인데 옛날에 평택 사람이 난리를 피하여 우거한 사실이 있어 평택성이라 이름 했다라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영인산으로도 표기되어 있으며 산 정상에 옛날 기우제를 지내던 용샘이 있고 산 중턱에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는 세심사가 있다.
이 산 남쪽 줄기가 동심산으로서 고려 공민왕의 태를 봉안했던 곳인데 뒤에 태를 영남의 금산으로 옮겼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 터가 명당이라 하여 탐을 냈으므로 그 후 이 지방에 가뭄이 들면 공민왕 태가 모셔졌던 자리를 파서 그곳에 누가 묘를 몰래 썼는지 확인하였다고 한다.
영인산 정상에서 서쪽을 살펴보니 나즈막한 들녘 가운데로 곡교천이 흐르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영인산 정상에서 많은 시간 보내며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뒤돌아 배 형상을 하고있는 전망대로 나오니 허기가 지기 시작하고 이곳에서 준비한 간식과 과일 그리고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허기를 달래고 잠시 더 쉬어 가기로 한다.

허기를 달랜 후 배 형상을 한 전망대 초입부에서 좌측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이제 마지막 입암산을 향해 출발하니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낙엽진 가파른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기에 조심하며 내려간다.

교통호 같은 등로를 타고 빠르게 내려가니 거대한 바위 암릉지대가 나타나고 좌측으로 우회하며 그 암릉을 통과한 후  316 묘지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휘어져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진다.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 ㅂ위에 올라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영인산이 거대한 암봉의 모습으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전망바위에서 잠시 영인산을 조망한 후 다시 내려가니 다시 눈 앞으로는 거대한 바위 암릉구간이 펼쳐져 있어 그 바위를 타고 걸어간다.

바위 암릉 구간을 타고 내려가다 그 암릉이 끝나는 지점에서 등로 좌측 아래를 살펴보니 세심사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세심사는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의 영인산에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백제 때 창건하였으며 654년(신라 선덕여왕 14)에 자장이 중창하였다고 전하나 이를 입증할 만한 기록은 없는데 1530년(중종 25)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의 여지도서와 범우고 등에 신심사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영산전, 산신각, 범종각, 요사채가 있으며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 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 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 원정, 보심, 품관, 대운 등이 그렸으며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고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다.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구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 231)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 부도 2기만 있으며 이밖에 1563년(명종 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 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

종교를 떠나 산중에 있는 절에 가면 마음이 정화되고 힐링되는 느낌은 나만의 느낌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렇게 세심사를 내려다 보며 다시 걸어가며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영인과 염치쪽 들녘과 산그리메들이 아름답고 그 한가운데엔 곡교천이 햇살을 받아 붉게 빛나고 있다.

그렇게 바위 암릉을 지나 앞으로 걸어가니 낙엽 위에 하얀 눈이 남아 있는 등로에는 아무도 지나간 발자국이 없는 새로운 등로가 열려있다.

조금 더 잡목들이 발목을 잡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정상에 바위 하나가 있는 250봉에 도착을 하고 그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니 이곳 역시 많은 활엽수 낙엽이 등로를 채우고 여간 미끄러운 등로를 만들고 있지 않다.

 

사라진 등로를 찾아 이리저리 어렵게 내려가니 등로 좌측 옆으로 산꾼들이 오르며 정글 칼로 등로를 만들며 진행을 하고 있어 순간적으로 맥 잇기를 하는 산꾼들이 아닐까 생각되어 인사를 나누니 역시나 영인지맥을 걷고 있는 산꾼들로서 골프장 지나 올라야 할 231.4봉까지는 잡목이 우거져 있고 등로가 없어 고생을 했다는 소식에 약간은 긴장을 하는 시간이다.

다시 안전한 산행을 빌며 헤어져 이리저리 희미한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등로에는 위험표시를 한 안내판이 걸려있어 살펴보니 예전에 채석장이 있었던 지역인 듯 보이고 조금 더 내려가니 커다란 소나무 밑둥에 산불이 났던 흔적이 있는 장소를 지나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오르며 진행을 한다.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오르니 임도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곧이어 2차선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한다.

지도를 살펴봐도 나타나지 않는 도로인데 그 도로 건너 능선으로는 선답자들의 띠지 두장이 보여 그곳으로 오르려다 트랙을 다운 받아 온 선답자는 좌측의 아름다운 골프와 온천 리조트 방향으로 진행을 했기에 그곳으로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골프장 건물이 보이고 건물 우측으로 주차장도 나타난다.

그 주차장 방향으로 걸어가니 골프장 직원이 다가와 오르는 포장도로는 위험하니 능선으로 진행하라고 요청을 하여 그 능선으로 오른다.

 

가파른 능선으로 오르니 처음에는 간벌된 오르막 능선이 나타나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 보지만 그것도 잠시 우측으로 자작나무 조림지를 지나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가 우거진 등로로 변하고 있다.

참으로 어렵게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오르니 바위 하나가 나타나고 그 바위 위로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라 온 아름다운골프장 건물과 골프장 그린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잠시 심호흡 한번 더 내쉬고 잡목을 헤치며 오르니 등줄기와 이마에선 쉴새없이 굵은 땀방울이 흘러 내리고 있다.

 

참으로 어렵게 잡목과 가시나무를 헤치고 오르니 이장된 듯한 묘지지대인지 공터인곳을 지나 큰 자작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231.4봉에 도착을 한다.

그 식재된 큰 나무들을 지나면 곧바로 몇그루의 멋진 소나무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다시 중간 크기의 자작나무 조림지가 번갈아 나타난다.

그곳에서 어렵게 지나온 마루금을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영인산 정상이 멀어져 가는데 그곳에 있을 땐 보지 못했던 거대한 채석장 현장을 보게 된다.

가까이 있을 때 만나는 것과 조금은 떨어져 바라보는 풍경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음을 알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그 자작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231.4봉을 지나 진행을 하는데 정상 마루금은 잡목과 가시나무들로 인해 진행이 어려워 좌측의 벌목지대 가장자리를 타고 걸어가 본다.

지독한 잡목을 헤치고 어렵게 내려가니 등로 좌측의 발목지대에는 어린 소나무 묘목들이 식재되어 있어 이채롭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고 그렇게 잠시 내려가니 다시 잡목이 우거져 좌측 벌목지대를 타고 진행을 하니 소나무 등로가 이어진다.

조금 더 내려가니 소나무들이 있는 163봉을 지나고 등로 우측으로 많은 묘지지대를 통과하니 또 다시 등로 좌측으로 벌목지대 위에 키 작은 소나무들이 식재된 장소와 만난다.

 

그 벌목지대에 어린 소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다시 등로가 뚜렷해지기 시작을 한다.

이제 벌목지대를 지나 우측의 주능선을 타고 정상 마루금을 따라 걸어 내려가니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90도 꺽어 내려가는 희미한 등로를 찾아 내려가야 하는 길주의 구간이다.

잘못 진행하다 보면 이곳에서 알바하기 쉬운 구간으로 남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려 와 살펴보니 갈림 삼거리에서 직진으로 진행을 해도 되는데 그곳은 오랫동안 지나다닌 흔적이 없어 잡목이 우거져 진행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우측 이 산객이 내려온 곳은 그 능선 아래 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비포장 임도같은 넓은 도로를 개설해 놔 진행에 편안하기에 그렇게 진행한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우측으로 조금 더 내려 오니 생각보다 넓은 낙엽 등로가 열려 있고 그 등로를 타고 한동안 내려오니 저 아래ㅔ 마을 민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차량들이 통해하는 소음도 들리기 시작한다.

내려가니 그물망이 나타나고 그 그물망을 타고 좌측으로 진행을 하니 그 그물망 아래 민가들을 우측에 두고 628번 지방도로로 내려가는 형국이 되었다.

 

잡목과 잡풀을 헤치고 628번 2차선 포장도로로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1차선 포장도로가 갈리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좌측 도로를 따라 영인산로 333번길 방향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도로 앞에는 삼웅AFT 입간판과 냉정리 잔다리 버스 정류장이 있고 좌측으로 1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서해선철도 현장사무실 600미터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그 도로를 타고 한동안 올라가니 도로 우측 앞으로 공단의 건물들이 보이는데 이 옆에는 몇대의 포크래인이 또 다른 공단지대를 조성하는지 공사가 한창이다.

그렇게 잠시 더 오르니 도로 좌측 앞으로 올라야 할 압암산이 올려다 보이고 그 풍경을 구경하며 오르니 또 다른 갈림 사거리가 나타나고 그곳 사거리에서 좌측 삼웅AFT와 서해선철도 4공구 현장사무실 50미터 방향으로 걸어 들어간다.

 

잠시 좌측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서해선(홍성-송산)복선 전철 제4공구 건설현장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니 정면으로 삼웅AFT와 삼웅단조 정문이 나타난다.

그 정문 앞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도로 양쪽으로는 밭 경작지가 나타나고 그 임도 좌측 앞으로는 저 멀리 입암산 정상부로 오르는 등로가 제법 가파르게 다가온다.

 

원 마루금은 지금 이 산객이 걸어가는 등로 좌측의 공장이 있는 곳으로 진행을 해야 될 것 같은데 새로운 건물들이 생기면서 마루금이 끊겨 이렇게 우회하는 등로처럼 보인다.

밭 경작지를 따라 걸어 들어가니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는 직진의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오른다.

잠시 더 그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마지막 민가 한채가 보이고 그 민가 우측의 사각정자가 있는 방향으로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민가를 지나 우측에 밭 경작지를 두고 그 가장자리를 따라 오르다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는 다시 좌측 안부쪽으로 내려가게 된다.

민가 뒷쪽을 통해 좌측에 공장 건물을 두고 그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오르게 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그곳이 바로 지도상의 잔다리 고개인듯 보인다.

잔디리고개는 절개지의 채석장이 있는 냉정리의 잔다리 마을에 있는 고개인데 등로 우측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 입암산을 완전히 파헤쳐진 거대한 채석장이 있는 곳이다.

다시 우측으로 희미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갑자기 폐가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폐가 우측으로 최근에 신축을 한 듯한 건물도 보인다.

지도를 보니 냉정리에 있는 운정암이라는데 자료를 찾아 봐도 나오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폐가와 운정암이라 되어 있는 건물들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선답자는 그 건물 뒷 능선으로 올랐는데 이 산객은 큰 의미가 없기에 좌측 능선으로 오르며조금 더 곧바로 입암산 정상 방향으로 오른다.

그렇게 가파르지는 않지만 어제의 장거리 산행과 오늘 잡목과의 사투로 인해 체력적으로 조금은 힘이 달리는 현상이 나타나 조금씩 산행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을 한다.

그래도 한발 두발 걸어 오르니 드디어 소나무 등로를 지나 우측에서 올라오는 등로를 만나 좌측으로 올라 안전목책과 로프 그리고 운동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입암정 바로 앞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저 아래에 커다란 냉정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냉정리는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에 있는 마을로서 동남쪽으로 덕흥산이 있어 낮은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으로 냉정저수지가 위치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복흥골, 잔다리 등이 있는데 복흥골은 냉정리 남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전에 그릇점이 있어서 점말이라 불렸는데 후에 점말을 다시 일으킨다는 뜻으로 복흥골이라 개명하였다.
잔다리는 냉정리 동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가는 다리가 여럿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한자어로 세교라고도 한다.
그렇게 냉정리를 구경하고 우측으로 돌아 오르니 육각정자인 입암정이 서 있고 그 앞으로는 이정표도 서 있는데 드디어 공세리성당까지 이제 1.6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입암정이 있는 곳 이정표에 그곳이 입암산 정상이라 되어 있는데 삼각점도 없고 정상 이정판도 보이지 않아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바위 암릉을 지나 오르니 드디어 삼각점이 박혀있는 207.4미터의 입암산 정상에 도착을 해 배낭 내려 간식을 먹으며 허기를 달래 본다.

입암산에 대한 자료는 찾지 못하고 인주면에서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찾았기에 정리 해 본다.

1872년지방지도의 아산의 일서면 지역 북쪽에 신봉산이 있고 동쪽에 입암산이 있으며 인주면은 조선지형도 삽교천을 경계로 당진군과, 안성천을 경계로 진위군과 마주보고 있으며 북서쪽은 황해와 이어진다고 되어 있다.

 

입암산은 정상이 잡목들과 거목들로 막혀 조망이 전혀 없기에 과일로 허기를 달랜 후 곧바로 다시 출발을 한다.

바위지대를 넘어 내려가니 갚은 낙엽 내리막 등로가 열려있는데 우측으로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그쪽 방향에서 작업을 나느괴ㅐ응ㅁ이 계속 들려오기 시작을 한다.

안부를 지나 바위가 산재되어 있는 봉우리를 넘으니 다시 그림같은 낙엽 등로가 펼쳐져 있어 편안하게 걸어 본다.

 

그렇게 무심으로 걸어가니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가 열리는데 등로 우측에서 들리는 작업 소음은 이제 굉음을 지나 귓전을 찟듯 다가온다.

잠시 더 내려가니 저 앞으로 벤취 쉼터 2개와 등로 좌측으로 이정표가 서 있는데 입암산과 공세리성당의 정중앙으로서 양쪽 모두 800미터 거리라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곳이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평이한 낙엽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고 접근금지 안내판이 보이는데 그 아래에는 거대한 채석장에서 작업이 한장이다.

 

그 이정표를 지나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우측에 채석장을 두고 걸어간다.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많은 묘지들이 보이고 곧이어 또 다른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 삼거리에서 우측 비포장 임도로 잠깐 들어가 뒤돌아 보니 그곳에 거대한 채석장이 내려다 보이고 그 채석장 바로 뒤에는 드높은 입암산 자락이 완전히 거대한 절개지로 변해 흉물스럽게 남아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채석장을 살펴보고 다시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 해 걸어가니 눈 앞에 거대한 천주교공동묘지들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좌측 직진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도 좋겠지만 우측 천주교 공동묘지 위로 올라 마지막 봉우리는 114.1봉을 거쳐 진행해도 무난할 것 같지만 이 산객은 묘지 우측 뒤 능선을 타고 진행하기로 한다.

 

천주교 공동묘지를 좌측에 두고 그 묘지 뒤로 올라 능선을 따르니 금새 등로 좌측에 제단같은 특이한 구조물이 보이고 그 우측 나뭇가지에 영인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114.1봉 이정판이 달려있어 사진에 담아 본다.

그렇게 마지막 봉우리에 올라 영인지맥 산행의 마지막 산행을 즐기며 그 묘지지대를 지나 좌측으로 내려가니 방금 전 헤어졌던 시멘트 포장도로와 다시 만나 이제 우측으로 이어진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 본다.

 

천주교공세리성당공원묘원이라는 커다란 이정석을 지나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잠시 걸어 가니 공세리의 천등말 마을이 보이는데 천등말은 인주면 공세리의 마을이름으로 천등말은 서강 남쪽에 있는 마을로 천등혈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잠시 더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직진의 공세리 마을로 진행을 해도 되겠지만 다시 이 도로를 만나 진행을 해야 되기에 이 산객은 계속 이어지는 이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기로 한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니 등로 앞으로 공세리마을과 성당 그리고 들판 넘어 저 멀리 아산호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저 끝자락까지 가 아산호에 손이라도 닦을 수 있기를 바래보지만 역시나 복잡한 도로로 인해 더 이상 진행이 무의미 하기에 공세리성당 뒷편으로 가 그 아쉬운 마음을 달래 보기로 한다.

잠시 더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 양쪽으로 밭 경작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민가들이 보인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이정표가 서 있고 인주파출소가 있는 갈림 사거리에 도착을 해 공세리 마을을 생각해 본다.

공세리는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에 있는 마을로서 바다를 마주보고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마을 동남쪽에는 농경지가 분포하는데 공세창이 있었으므로 공세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공세지, 동강, 서강, 새원, 천등마을 등이 있는데 공세지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 유래 또한 공세리의 그것과 같다.
동강마을은 공세지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전에는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와 배가 닿았었다고 하며 서강마을은 공세지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전에는 이곳에 바닷물이 들어와 조세를 배에 직접 실어 냈다고 한다.
새원마을은 공세지 북쪽 들 가운데 있는 마을로 새로 언(뚝)을 막고 마을이 되었으므로 새원이라 하였고 천등말은 서강 남쪽에 있는 마을로 천등혈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사거리를 지나 걸어가니 신협과 공세2리 마을회관과 노인정을 지나 커다란 느티나무를 통과한다.

다시 조금 더 걸어가니 차량 차단기가 있는 곳 우측으로 주차장이 보이고 계속 포장도로를 따라 가니 도로 좌측으로 보호수인 느티나무 또 한그루를 만난다.

그 도로를 타고 진행하니 드디어 역사가 있고 사연이 있는 공세리 성당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공세리성당은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성당으로 1895년 6월에 설립되었으며 당시에는 15개의 공소가 있었다.
공세리는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에서 거둔 조세를 보관하였던 공세창에서 유래하였는데 충청도는 한국 최초로 천주교의 복음이 전파되면서 한국 천주교가 창설된 지역이고 그 결과 많은 공소가 생겼는데 공세리는 공소가 있었던 곳이다.
1895년 드비즈 신부가 공세리천주교회 첫 신부로 부임하였고 아산군, 천안군, 공주군, 진천군을 관할하였으며 드비즈 신부는 서울 주교관으로 부임하였다가 1897년 다시 공세리천주교회 주임신부로 부임하였고 1930년까지 재임하였다.
충청도 지역의 천주교 초기 본당 중의 하나로 충청도에서 두번째로 오랜 역사를 가진 성당이며 1895년 6월 예전의 합덕성당 전신인 양촌성당에서 분리 설립하였으며 현재는 대전교구 소속이다.
공세리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인 아산, 서산, 한산, 청주, 옥천, 회인 등 40개 마을에서 거두어들인 조세를 보관하던 공세창이 있었던 데서 비롯되었는데 충청도 내포 지역의 공세리 일대는 한국 천주교회 초창기에 이미 내포의 사도로 불린 이존창이 천주교를 전래한 곳이다.
이후 이 지역에서는 수많은 순교자가 탄생하였으며 끊임없는 박해에도 신앙 활동이 단절되지 않아 신앙 부활의 요람지요 전교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고 천주교 신앙이 허가된 이후에는 가장 주목받는 지역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 결과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인 이웃마을 양촌과 지금의 예산읍 간양리인 간양골 지역에 각각 성당을 설립하였고 이 무렵 공세리 인근에는 여러 공소가 있었으며 신자 수도 적지 않았다.
이들 공소는 본래 간양골 본당에 속하였으나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간양골 본당이 폐쇄됨에 따라 양촌성당 관할 아래 놓였다가 이듬해 드비즈 신부가 공세리에 부임하면서 본당 설립을 하게 되었다.
처음 관할 구역은 충청남도 아산, 천안, 공주 일대와 충청북도 진천 일대로 매우 넓었으나 이듬해 공주성당이 설립되고 1901년 안성성당이 설립되어 지역이 분리됨으로써 아산 지역만 관할하게 되었다.
1894년 천주교 선교사들이 처음 상륙하여 선교를 시작한 첫 전교지임을 기념하기 위해 동네 한가운데 가정집을 성당으로 개조한 것이라고 한다.
1895년 제3대 본당신부로 재부임한 드비즈 신부에 의해 공세창고터가 성당과 사제관 건물로 쓰였고 1921년 근대식 성당을 완성하였다.
현재의 강당 건물은 1956년에 신축하였으며 1970년에는 수녀원 건물이 지어졌으며 이인하, 김동욱 신부 등이 본당신부로 활동하였다.
1895년에 충청남도의 첫 성당이 성일륜(애미리오) 신부에 의해 공세리에 지어졌는데 이것이 공세리천주교회의 최초 건물이고 1922년에 고딕식 2층 건물이 새로 지어졌다.

 

  

그 공세리성당을 사진에 담고 아쉬운 마음을 담아 성당 뒷편으로 돌아가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저 멀리 삽교천과 곡교천이 흘러 들어 서해바다로 들어가기 전 모이는 아산만이 내려다 보인다.

삽교천은 충청남도의 홍성군 장곡면에서 발원하여 본 군을 지나 아산만으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삽교천을 경계로 아산시와 마주보고 있다.
청양에서 발원하여 예당저수지를 거쳐 흘러오는 무한천과 합류하고 이후 아산만 부근에서 곡교천과 합류한다. 예산평야 일대에 관개용수를 제공하며 하구에 본 군의 당진군 신평면 운정리와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을 연결하는 삽교천방조제가 건설되어 있다.
삽교라는 지명은 여러 고지도에서 나타나는데 조선지도 뿐만 아니라 대동여지도에 덕산현 인근에 지명이 기재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서는 부근에 다리와 함께 삽교점이 묘사되어 있다.

아산만은 충청남도 아산시·당진시와 경기도 평택시 사이에 있는 만으로 아산만의 입구는 북서쪽으로 열려 있으며 폭은 약 2.2 Km에 만입은 약 40 Km이다.
아산만 지역은 행정구역상 넓게는 경기도 화성시, 평택시, 충청남도 아산시, 당진시, 서산시 등이 해당되나 아산만 지역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지역개발 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연안지역만 포함시킬 수 있다.
수심은 내만에서는 2에서 3m이고 만구 부근에서는 6에서 10m 정도이고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조석간만의 차가 가장 큰 곳으로 평균 6.1m이고 최대 9.6m의 조차를 나타낸다.
또 조류의 유속이 빨라 저조시 내만의 대부분이 좁은 수로를 제외하고는 육지화되어 넓은 간석지가 나타나는데 만내로 흘러드는 하천으로는 안성천과 삽교천 및 당진천 등이 있으며 이들 하천의 하구 양 연안에는 안성평야와 예당평야 등 광대한 평야가 분포하고 있다.
아산만은 본래 연안 어업과 굴, 조개, 김 양식장 및 염전 등으로 이용된 한적한 만에 불과하였으나 1971년 이후 만내로 흘러드는 하천의 하구를 막는 방조제 공사가 전개되면서부터 국토를 넓히기 위한 간척사업의 표본장이 되었다.
원래 이 지역의 넓은 평야와 간석지는 농업용수를 확보하지 못하여 해마다 한발과 수해가 빈발하였을 뿐 아니라 해수가 깊숙이 거슬러 올라와 유역의 농경지에 적지 않은 염해를 입혔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나아가 간척과 개간에 의한 농경지를 확장하기 위하여 1973년 안성천 하구에 아산만방조제를 건설하여 지금은 1억 2300만 톤을 저수할 수 있는 거대한 담수호인 아산호가 형성되었고 약 1만 5000㏊의 관개몽리면적을 가지게 되었다.
또 1979년에는 규모에 있어 아산만방조제의 약 4배가 되는 삽교천 하구를 막는 삽교호방조제가 건설됨으로써 삽교호가 형성되었고 이는 농업용수 개발, 배수 개선, 경지 정리, 개간 및 간척, 영농 기계화 등 이 지역의 지역 개발에 있어서 혁신적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석문방조제가 1995년에, 대호방조제가 1985년에, 화옹방조제가 2003년에 건설되었다.
또한 만의 북안에는 평택화력발전소가 건설되어 이 지역의 전력을 보충하고 있으며 아산만은 내만에 아산호 및 삽교호와 같은 거대한 두 개의 담수호가 만들어져서 배후의 온양온천과 덕산온천 등의 온천지대와 현충사를 연결하는 관광·보양지역으로 변하고 있다.
아산만 지역은 평야가 대부분이라 벼농사가 주로 이루어졌는데 최근에는 축산업이나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야채 재배가 활발하고 또한 해안과 갯벌에서는 수산업과 수산양식업이 활발이 이루어졌으나 수산어획과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데 이는 방조제 건설로 조류가 바뀌고 생태계의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는 정부 및 각지방자치 단체에서 조성한 산업단지들이 들어서고 있고 그전에는 석유화학, 철강, LNG, 자동차 등 주요 기간산업이 발달되었다.
최근에는 서해안 고속도로의 건설로 관광객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해안과 포구의 조그마한 어촌들의 관광지화가 가속되고 있으며 또한 평택항이 있어 아산만 지역이 국제 물류의 중심지로 변화될 것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몇 년전 고운 추억을 남겼던 서봉지맥 마지막 봉우리를 찾아 보지만 박무로 인해 잘 보이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좌측으로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석문지맥 마루금도 찾아 보지만 보이지 않아 상상만으로 그려 본다.

이렇게 또 하나의 맥 잇기 산행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복귀하늠ㄴ 시간은 그저 꿈결같은 시간으로 남겨 본다.

조만간 또 다른 마루금을 찾아 떠 날 수 있기를 바라며 영인지맥 산행의 대단원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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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