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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맥과 중요 지맥 산행(완료)/영산기맥(호남·완)

영산기맥 마지막 제9구간 감돈삼거리에서 다순금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5.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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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무안군과 목포시의 영산기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5년 02월 14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기온이 오르면서 약간 무덥고 박무가 끼었던 날씨

산행온도 영하 03도에서 영상 07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감돈삼거리(815번 2차선 지방도로 삼거리)-능선진입-남양홍씨 묘지지대-동백나무지대-무명 묘지봉-무명봉-암릉 등로-벌목지대-시멘트포장과

                 비포장 임도-바위 전망대-묘지봉-로프구간-이정표(유달학생야영장 1.1 Km, 삼향면 맥포리방향 1.5 Km)-국사봉 산불감시 카메라-국사봉 

                 헬기장-녹색 철조망-국사봉 삼각점(283봉)-로프구간-산죽지대-대봉산(251봉)-로프 동백 등로-무명봉-갈림 삼거리-잡목지대-131번 송전탑-

                 녹슨 철조망-편백나누 군락지-편백나무 안부-무명 묘지-묘지와 잡풀지대-농산물 가공장-태현가족납골공원묘-비포장 임도-시멘트 포장임도-

                 지하통로-산불감시카메라-서해안고속도로 죽림분기점-전남지방경찰청 1.5 Km 도로 표지판-지하통로(선경자동차)-삼향중앙로-석교회관과 

                 노인회관-지하통로(삼성산업)-대원전통식품-유교체육관 배드멘턴장-석교마을 이정석-(유)남해환경-화성기계-지하통로 통과(서해안

                 고속도로 통과)-남해환경 모래생산공장-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 산죽밭-무명묘지-76번 송전탑-바위 전망대-77번 송전탑-이정표(남해

                 환경 0.4 Km, 정상 0.2 Km, 산양마을 1.0 Km)-지적산(188.7봉) 삼각점-바위 전망대-안전 목책지대-키큰 조릿대 구간-동백나무 등로-이정표와 

                 벤취 및 침상(정상 0.8 Km, 삼향동사무소 1.4 Km, 중앙고등학교 0.7 Km, 석현마을 0.2 Km)-통나무 계단-편백나무 군락지-이정표(정상 1.1 Km, 

                 삼향동사무소 1.1 Km, 현대아파트 0.7 Km)-산불감시초소와 체육시설-운동시설봉-81번 송전탑-안전목책-바위 전망대-소나무 등로-이정표와 

                 벤취봉(정상 1.8 Km, 삼향동사무소 0.4 Km, 검문소 0.6 Km)-느티나무 식재지-편백나무 군락지-시멘트 수로등로-지적산 등산안내도-목포도시

                 가스-이정표(등산로입구 정상까지 2.2 Km)-석현육교(1번 도로 통과)-삼향동주민센터-CJ대한통운택배 정문-정문 옆 능선진입-편백나무 

                 군락지-비포장 임도-편백나무 군락지-83번 송전탑-소나무 등로-2기의 무명묘지-무명묘지들과 잡풀지대-148번 송전탑-동백꽃 등로-84번 

                 송전탑-산죽 등로-잡풀과 잡목지대-대박산(155.4봉) 산불감시 카메라와 이동통신탑-KT 이동통신 건물 우회등로-지독한 잡목지대-시멘트 

                 포장임도-목포시 자원재활용 공장-포장도로-2차선 포장도로-4차선 포장도로-대운레미콘 공장-능선진입-통나무계단-삼각점 봉-목책 등로-

                 묘지와 체육시설 그리고 팔각정(비녀산 양을산의 유래)-이정표(실내체육관 0.3 Km, 송신탑 1.5 Km)-벤취와 체육시설봉-통나무 계단-양을산 

                 섬너릿길 이정표(너릿1길, 꽃무릇사거리 600 m, 태을계곡 320 m, 양을산정상 1.3 Km)-비포장 임도 등로-너릿1길 이정표(용해동

                 주민센터 1.0 Km, 태을계곡 300 m, 양을산정상 1.1 Km)-사각정자-이정표(비녀봉 300 m, 꽃무릇사거리 200 m, 용해주민센터 670 m, 

                 태을계곡 600 m)-무명봉-안전목책과 로프구간-꽃무릇식재지-꽃무릇사거리 이정표(산림욕장 450 m, 송전탑 600 m, 빛과소금교회 350 m, 

                 성신고등학교 1.1 Km)-석산화 설명판-육각정-안전목책과 로프구간-사각정과 이정표(만남의 쉼터 260 m, 경찰서 950 m, 꽃무릇사거리 210 m, 

                 체육공원 500 m)-안전목책과 로프 및 통나무 계단-벤취와 이정표(송신탑 330 m, 청산푸른아파트 500 m, 성신고등학교 340 m, 

                 실내체육관 1400 m)-편백나무 등로-통나무 계단-이정표(체육공원 200 m, 꽃무릇사거리 500 m)-양을산 산불감시초소-시멘트 포장도로-

                 KT통신탑과 건물-양을산 정상(156봉)과 양을루 육각정-시멘트 포장도로-벧엘수양관-체육공원 이정표(경찰서 1.8 Km, 목포대

                 용해캠퍼스 290 m)-생활체육광장-능선진입-벤취 및 체육시설-시멘트 포장도로-양을산 통신유적지 0.5 Km 지점 이정석-비녀산(양을산)의 

                 유래판-길상사-민가 골목 등로-양을산길-청산아파트-서광교회-용해터널-용해3단지아파트-경찰서사거리 도로판-타이어월드 용해점-용당장로

                 교회-양을로-목포경찰서-용당파출소-마리아회고등학교-봉은사-KBS목포방송국-목포용해동우체국-목포시청-향군회관-태학당-하우징 

                 갤러리-S OIL 주유소-목포시상하수도사업단-근화타워아파트-동초등학교사거리 도로판-청호길동신갤러리-산정한방병원-송정경로당 20 m 

                 이정판-다도해 헬스와 사우나-산체스오피스텔-나이스빌-목포산정교회-아파트 공사현장-일신아파트-평강교회-GS 칼텍스 주유소-신안군산림

                 조합-S OIL 주유소-목포대성 1BL 아파트 건설현장-대성동사거리 도로판-죽교동 도로판-목포새서부교회-세종학원-수문로 도로판-수문로 

                 삼거리-손길미용실과 한빛세탁-산죽길 29번과 30번길-서남특수어린이집-산죽길 2차선포장도로-경관루 팔각정과 운동시설-산죽등로-

                 유달산갓길-이정표(노적봉 1.5 Km, 조각공원 0.1 Km, 보해동산 0.1 Km, 어민동산 1.0 Km)-벤취와 운동시설-운동시설과 벤취-편백나무 

                 군락지와 통나무 계단-이정표(어민동산 290 m, 소요정 400 m, 조각공원 300 m)-돌계단-암릉지대-삼등봉(산불감시 카메라)-야경 등불 등로-

                 이등봉(이등바위)-장미바위-암릉하산 등로-이정표(이등바위 160 m, 일등바위 340 m,자생식물원 80 m와 난전시관 100 m, 어민동산 700 m와 

                 보해동산 800 m)-이정표(이등바위 0.1 Km, 일등바위 0.5 Km, 어민동산 1.0 Km와 해양대학교 1.0 Km,조각공원 0.6 Km와 보해동산 0.9 Km, 

                 특정자생식물원 0.3 Km와 난전시관 0.5 Km)-소요정-헬기장-보리마당-이정표(이등바위 0.3 Km, 일등바위 0.4 Km, 관운각 0.6 Km)-돌계단-

                 안전 철난간-얼굴바위-얼굴바위에서 바라본 다도해 전경판-UFO 바위-돌계단-이정표(이등바위 450 m와 소요정 250 m, 일등바위 50 m)-

                 일등바위에서 바라본 다도해 전경판-일등봉(일등바위)-유달산정상(228봉)-안전 철난간-돌계단-돌계단-이정표(일등바위 정상, 

                 자생식물원 530 m와 난전시관 570 m, 관운각 50 m와 노작봉 850 m)-나막신바위-이정표(마당바위 60 m, 일등바위 250 m, 유선각 250 m와 

                 노작봉 800 m)-팔각정-입석바위-마당바위-부동명왕조각상-거북바위-애기바위-조태바위(낚시터바위)-이정표(일등바위 0.5 Km, 

                 유선각 0.3 Km와 노적봉 0.7 Km, 아리랑고개 0.4 Km, 소요정 0.7 Km와 이등바위 0.9 Km)-둘레길 이정표(낙조대 0.8 Km, 일등바위 0.7 Km, 

                 아리랑고개 0.3 Km, 바람골쉼터 0.2 Km)-체육시설-유달산 둘레길 이정표-나무계단-민가-아리랑고개 이정표(일등바위 0.8 Km와 

                 낙조대 1.0 Km, 유달산휴게소 0.8 Km와 학암사 0.5 Km)-이정표(등산로, 보리마당)-이정표(유달유원지, 유달초교)-유달로 53번길 포장도로 

                 표지판-등산로 입구(유달산 소요정, 유선각)-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 능선길-통신탑과 스피커 봉-암릉길-경남도우회기념회장 바위-

                 잡목 등로-마지막 바위 전망대 삼각점-밭 등로-다순금마을민가-온금길-홍어야놀자 낚시매점-해안로 4차선 포장도로-인어바위 버스정류장-

                 예향목포 이정석-남해바다-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3.00 Km (GPX 기준)

산행시간 : 연이틀 비산비야와 도심 거리를 걸으며 많은 사진 남기며 꾸준하게 08시간 20분 (06시 21분부터 14시 41분까지)

교통편 : - 새벽 일찍 애마 이용해 감돈재삼거리 도착

               - 산행 후 다순금에서 옆지기 도움으로 목포 샤워장과 식당으로 무탈하게 이동 후 저녁 늦게 집으로 무탈하게 복귀

영산기맥은? (박종률님 자료를 인용)
영산기맥은 백두 대간이 덕유산을 넘어 지리산을 목전에 두고  백운산 앞의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을 분기하여 장안산, 팔공산, 성수산, 마이산을 지나 모래재위 조약봉에서(주줄산 또는 주화산) 한줄기는 북으로 금남정맥( 금강정맥)을 분기하고 또 한줄기는 서남진하는 호남정맥으로  만덕산, 내장산, 추월산, 무등산, 조계산, 백운산, 망덕산에서 끝이나는 섬진강의 서쪽 울타리가 된다.

영산기맥은 이 호남정맥의 내장산과 백암산 사이의 
순창새재 바로 윗봉에서 분기하여(530미터) 입암산(655미터), 방장산(742.8미터), 문수산(620.5미터), 구황산(480미터), 고산(520미터), 고성산(546.3미터), 월랑산(440미터), 태청산(93.3미터), 장암산(481.5미터), 불갑산(515.9미터), 모악산(347.8미터), 군유산(403.2미터), 발봉산(180.8미터), 감방산(257.0미터), 병산(130.7미터), 남산(189.0미터), 마협봉(290.0미터), 승달산(317.7미터), 국사봉(283.0미터), 지적산(183.0미터), 대박산(155.6미터), 양을산(151.0미터)을 지나 목포시 유달산(228미터)에서 다순금에 이르는 도상거리 159.5 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영산강의 북쪽 울타리를 이루는 산줄기이기에 영산북기맥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통상 영산기맥하면 이 영산북기맥을 말한다.
반면 영산강의 남쪽 울타리를 이루는 산줄기는 호남정맥이 무등산과 계당산, 국사봉을 지나 삼계봉에 이르기전 바람봉에서 분기하는 땅끝기맥을  따라 남진하여 월출산을 지난 벌뫼산에서 땅끝기맥은 남진하여 땅끝으로 가고 또 한가지가 분기하여 흑석지맥이라고 불리는 가학산두억봉, 흑석산, 선황산으로 해서 목포와 마주보는 소아와 대아산에 이른다.
즉  영산강의 남쪽 울타리는 이 호남정맥의 새재봉 분기점에서 바람봉 분기점까지 180.1 Km, 땅긑기맥의 바람봉 분기점에서 별뫼산까지 약 58.3 Km, 그리고 
흑석지맥의 별뫼산에서 대아산까지 약 39.2 Km가 될것이다.

 

 

오랜 시간은 걸렸지만 또 하나의 산줄기 산행을 마무리하며 가족들과 소중한 추억을 남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어제 약 27 Km를 걸으면서도 몸에 큰 이상을 느끼지 못했기에 돌아가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마무리하고 저녁에 무안에서 손님을 만나 세발낙지로 맛있는 저녁을 먹은 후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어 눈을 뜨니 새벽 4시 30여분을 지나고 있다.

옆에서 자고 있는 옆지기와 큰 딸이 깨지 않토록 조심하며 등산복을 입고 조용히 방을 나와 주위를 돌아 다니니 새벽 일찍 문을 연 김밥집이 있어 들어가 김밥 한줄에 라면 한그릇으로 아침을 먹고 다시 방으로 돌아 오니 새벽 5시를 넘기고 있다.


어렵게 옆지기를 깨워 방을 나서는 시간이 새벽 5시 20여분으로 천천히 감돈삼거리로 진행을 하니 30여분만에 드디어 어제 어렵게 산행을 마무리 한 감돈저수지 옆 간돈삼거리에서 어랜시간 진행했던 영산기맥 마지막 구간 산행을 시작해 본다.

흔들리는 불빛속에 옆지기를 먼저 보내고 산행 준비 후 815번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전봇대 옆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그곳을 오르니 금새 또 다른 남양홍씨 묘지 비석이 서 있는 묘지지대를 지나 능선으로 들어가며 본격적인 마지막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어제 조금 무리를 해서인지 감돈삼거리에서 처음 남양홍씨 묘지를 통해 오르는 시간은 생각보다 몸이 무거워 힘이 든다.

너무 무리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면서 진행하다 어려우면 그곳에서 마치고 월요일 다시 이곳 무안으로 내려와야 되기에 그날 남아 있는 구간을 마치기로 하니 마음이 편안해 진다.

헤드렌턴을 이마에 걸고 진행하니 생각보다 쉽게 국사봉 직전 무인카메라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 좌측 영산강 방향으로 펼쳐진 평야지대 위로 붉은 일출이 시작된다.

한동안 그곳 국사종 직전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있는 곳에서 그 장엄한 광경을 수없이 사진에 담으며 영산기맥 마지막 구간을 이렇듯 축하해주는 자연에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시간이 되었다.


새벽 어둠을 꿇고 달려 도착한 감돈삼거리에서 산행 준비 후 옆지기의 애마를 돌려 보내는 시간이 6시 20여분이다.

주위 풍격을 사진에 담고 815번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영산기맥 마지막 구간 산행을 출발하는 시간이 정확히 새벽 6시 21분을 지나고 있다.

이곳에서 목우암은 어제 설명이 되었기에 생략을 하고 법천사에 대해 살펴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있다.

 

법천사는 승달산 아래에 위치하는 대한 불교조계종 대흥사의 말사로서 절의 창건은 백제시대 553(성왕 30)에 덕이 또는 덕예조사가 세웠다고 전하며 혹은 725(성덕왕 24)에 서역의 금지국에서 온 정명스님이 창건하였다고도 한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원명국사 징엄(1090 ~ 1141)이 이곳에 와서 공부하자 제자 500여명이 찾아와 함께 수도하며 절을 중창하였는데 처음에는 산 이름이 영취산이었으나 이때부터 승달산이라고 하였다 한다.

사되었던 법천사는 1990년부터 대웅전, 산신각이 복원되었고, 삼존불이 봉안되었고 최근에는 천왕문, 종각 등이 신축되었다.

법천사 석장생이 유명한데 예로부터 장생은 장승과 같은 뜻으로 마을이나 성문, 사찰 등의입구에 세워 외부로 부터 잡귀 등을 막아주는 수호신을 말한다.

법천사석장생은 법천사의 입구에서 절의 경계를 표시하는 용도로 사용됐으며 법천사 입구 절 근처에서 나무나 약초 등을 채취하는 것을 방지했던 용도도 있었다.

장승은 무속과 불교가 어우러진 신앙석상이다.


많은 잡목과 잡풀들이 산행 들머리를 막고 있지만 길지 않은 거리이기에 조심하며 오르니 다시 가시나무들이 옷을 붙잡고 늘어진다.

그곳 산행 들머리를 조심해서 통과한 후 오르니 많은 묘지들이 보이고 그 묘지를 지나 조금 더 오르니 다시 남양홍씨와 유인무안박씨 묘지들과 묘비가 나타난다.

그 묘지를 둘러보고 묘지 우측 위로 나 있는 좁은 등로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는데 어제 긴 거리를 걸어서 그런지 몸이 무겁고 속도도 나질 않는다.

조심하며 그 능선으로 오르며 오랫만에 어둠속에 홀로 오르는 시간이 되었다.


낙엽이 깊게 쌓여 있어 오르는데 자꾸만 미끄러지고 조심하며 어렵게 오르니 등로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은 동백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잠시 더 오르니 주능선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정상에는 무명묘지가 보이고 그곳부터는 짧은 거리동안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가 열려 있다.

잠시 진행해 안부를 지나고 낙엽 등로를 따르니 낙엽이 수북한 무명봉에 오르고 이제부터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휘어 진행하게 되어 있다.


다시 계속 이어지는 낙엽 등로를 타고 평이하게 걸어가니 등로는 생각보다 좋지 못하고 잡목과 잡풀들이 자꾸만 옷깃을 잡아 끌고 있다.

그래도 등로에 쌓여 있는 낙엽과 등로 주위에 자라고 있는 동백나무들을 친구 삼아 그 어둠을 멀리하고 있다.

다시 한동안 평이하게 걸어 진행하니 완만하게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그 등로에는 벌목된 나무들이 너부러져 있는 장소를 지나더니 곧바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여명이 밝아 오더니 이제부터 올라야 할 능선이 어렴풋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 언저리에서 머리에 차고 진행하던 헤드렌턴을 벗어 배낭에 넣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반대편 능선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잠시 헤드렌턴을 벗어 넣으며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198.4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 위로 손톱달이 밝게 웃고 있다.

한동안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낙엽으로 인해 몇번인가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갑자기 등로가 유순해지더니 주능선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 등로는 좌측으로 열려있지만 우측으로 바위 전망대가 있어 잠시 들렸다 가기로 한다.

제일 먼저 오늘 진행한 영산기맥 마루금을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승달산까지 시원하게 여명의 불빛에 드러나 있고 그 끝자락에 하늘 마루금에 맞닿아 있는 지푱선이 아름답기만 하다.


등로 우측으로는 청계와 삼향쪽 마을이 펼쳐져 있고 그 끝자락에는 서해바다가 눈에 들어 온다.

아침이 밝아 오는 시간이기에 민가의 불빛이 조금씩 그 빛을 잃어가고 운무가 드리워진 세상은 이제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을 한다,

한동안 바위 위에서 이렇게 멋진 주위 풍경을 조망한 후 다시 정상 등로로 뒤돌아 내려와 복귀한 후 임도에서 올라 온 방향에서 좌측으로 돌아 마루금을 찾아 계속 진행을 한다.


지나온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청계쪽 마을을 지나 저 멀리 서해바다가 아름답게 밀려오고 있다.

다시 주 등로를 타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에 무명묘지가 한기 보이고 곧이어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이장된 듯한 묘지지대가 나타난다.

약간의 낙엽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안부와 무명봉을 오르락 내리락하고 그렇게 몇번의 안부와 봉우리를 넘으니 등로에 안전 로프가 달려있는 마루금이 나타난다.


그 로프 구간을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금새 삼거리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고 살펴보니 유달학생야영장과 삼향면 맥포리방향과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이다.

이곳에서 정상 등로는 우측으로 꺽어 진행을 해야 하지만 좌측에 넓은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서 있어 그곳으로 올라 오늘 영산기맥 마지막 구간의 멋진 일출을 맞이해 본다.

숨이 막힐 정도의 아름다운 마지막 구간의 일출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며 많은 사진을 남겨 본다.


한동안 그 국사봉 무인산불감시 카메라에서 아침 일출을 감상하고 그곳을 빠져 나오니 다시 이정표가 보이고 오늘 산행하면서 올라 온 삼거리 갈림길이다.

그곳에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다 뒤돌아 보니 이정표 뒤로 방금 전 많은 시간 쉬면서 영산기맥 마지막 구간의 멋진 일출을 담았던 국사봉 무인감시 카메라가 내려다 보인다.


     

그 국사봉 직전 무인삼불감시 카메라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금새 넓은 헬기장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이곳 역시 국사봉 정상은 아닌듯 하다.

주위를 살펴보지만 정상 표식도 없고 삼각점도 없는 헬기장 정상이기에 주위를 둘러 본 후 다시 그 헬기장을 떠나 계속 능선을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헬기장 정상에는 표식을 알 수 없는 군부대에서 사용하는듯한 표식 하나만 덩그란히 놓여 있다.


헬기장을 출발해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니 녹색 철조망이 두동강이 나 있고 등로 옆에 쓰러져 있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읽어 보면 몇년전만 해도 이 녹색 철조망이 세워져 있고 그 쪽문을 통해 들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진행하였다고 하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 흔적도 많이 변해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 녹색 철조망을 지나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앞으로 올라야 할 봉우리가 잡목 사이로 높게 올려다 보인다.

잠시 오르막 등로를 타고 힘들게 오르니 드디어 국사봉 정상에 도착을 하여 중앙에 박혀있는 삼각점을 확인하며 이곳이 283봉 국사봉 정상임을 확인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국사봉 정상임을 알리는 이정표나 표식이 없어 조금은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등로 좌측으로는 방금 전 떠오른 아침 햇살이 잡목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환하게 웃고 있다.


국사봉 정상 삼각점을 확인하고 이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에는 로프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고 내리막 등로는 점점 경사가 심해진다.

한동안 그 로프를 타고 내려가니 다시 평이한 등로로 변하고 잠시 후 산죽 등로가 나타나더니 등로 우측 저 앞으로 251봉 대봉산이 올려다 보인다.

잡목이 잠시 우거진 평이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정상에 약간 넓은 공터가 있고 한쪽엔 묘지가 있는 251봉 대봉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정상에는 국사봉 등산로 안내도도 서 있고 이곳에서 정상 등로는 좌측 묘지있는 방향이 아닌 우측 급경사 내리막 등로로 이어진다.


대봉산 정상을 지나 내려가니 등로 우측에는 로프가 달려있고 좌측엔 파란 잎이 인상적인 동백나무들이 반긴다.

하지만 내리막 등로가 너무나 가파라 내려가기에 여간 어렵지 않다.

조심하며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우측으로 그 임도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호젓한 일반 등로로 변하고 있다.


앞으로 올라야 할 봉우리가 잡목 사이로 높아만 보이고 한발 두발 그 호젓한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동백나무 군락지가 나타난다.

다시 나즈막한 봉우리를 지나 내려가니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아름다운 갈지자 등로를 타고 오르니 다시 오르락 내리락 등로로 이어진다.

잠시 더 그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동백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방금 전 올려다 봤던 봉우리 방향으로 진행해 오르니 등로는 갑자기 삼거리 갈림길로 변한다.

이곳에서 정상 영산기맥 마루금은 우측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크게 꺽여 잡목속으로 걸어가며 이어가게 된다.


좌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내리막으로 이어지더니 금새 잡목들이 등로를 가로막는 희미한 등로로 변한다.

잠시 잡목을 헤치고 진행하니 등로 옆에 131번 송전탑이 보이고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는 등로를 따르니 앞으로 올라야 할 무명봉이 올려다 보인다.

낙엽이 깊게 깔린 등로를 따르니 ㄷㅇ로 좌측으로 녹슨 철조망이 보이고 그 철조망 건너편에는 쓰러질 것 같은 건물들도 보이는데 무슨 용도인지는 알 길이 없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다 다시 오르막 등로로 변하는 마루금을 찾아 걸어가니 오르막 등로 주위에는 멋진 편백나무 군락지가 짧게 펼쳐져 있다.

 

어렵게 그 편백나무 사이로 나 있는 희미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땀을 흘리니 다시 잡목이 등로를 가로막는 마루금으로 변하고 등로 주위에는 파란 잎이 무성한 동백나무들이 눈길을 잡는다.

다시 편백나무들이 드문 드문 서 있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는 안부를 지나 직진의 능선을 타고 오르며 진행 돌 것 같은데 마루금은 좌측 안부의 골짜기를 타고 내려가도록 되어 있어 잠시 헷깔려 한다.

나중에 보니 곧바로 서해안고속도로가 나타나고 절개지를 타고 진행 할 수가 없어 좌측 시멘트 포장 임도를 타고 우회하도록 돼 있었던 장소였다.

 

안부에서 좌측 골짜기 같은 등로를 타고 희미한 족적을 찾아 내려가니 동백나무 숲을 지나 잡목 구간을 지난 후 곧바로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 죽은 벌판 같은 등로가 나타나는데 중간 중간 묘지들도 보인다.

그 등로 좌측 앞 저 멀리에는 무슨 농산물을 가공하는 커다란 공장 건물이 보이고 바로 직진의 눈 앞으로는 서해안고속도로가 보이는데 그 도로를 달리는 차량으 빠른 굉음이 귓전으로 밀려오고 있다.

 

우측에 태현 가족납골묘지를 두고 비포장 ㅇㅁ도를 타고 걸어가니 좌측 농산물 가공 공장으로 통하는 시멘트 포장 도로가 나타나고 이제부터 그 포장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한동안 걸어가게 되는데 그 좌측으로는 서해안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시멘트 포장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금새 좌측으로 지하통로가 보이는데 그 위를 지나는 서해안고속도로를 건널 수 있는 지하통로였다. 

 

시멘트 포장 도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며 걸어가니 저 위에 높은 무인 카메라가 서 있는데 그 용도는 자세히 모르겠다.

그 무인카메라를 지나 고갯마루로 오르니 포장도로 좌측으로 시원하게 뻗은 서해안고속도로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도로 위에 설치되어 있는 도로 표지판을 보니 이곳 근처에 죽림분기점이 있다는 표지판이다.

이제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서해안고속도로를 건너 진행해야 할 지적산이 저 멀리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좌측에는 서해안고속도로를 두고 전방으로는 올라야 할 지적산을 조망하며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잠시 후 좌측 서해안고속도로 위에 2번 도로 표시와 함께 진도와 완도 및 해남 방향의 도로 표시판이 보인다.

그 서해안고속도로 건너 지적산 앞으로는 산자락이 완전히 잘려 나간 풍경이 눈에 들어오며 홀로 걸어가는 이 산객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고 있다.

아마도 채석장이 근처에 있어 자갈이나 모래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다시 한동안 내려가니 영암F1국제자동차경주장이란 도로 표지판도 보이는데 지도자 한사람의 잘못된 판단이 얼마나 많은 민초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경기장이 되어 있어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다시 내려가니 포장도로 우측으로 신축된 공장 건물이 보이고 그 앞에는 삼향중앙로란 도로 표지판이 붙어 있다.

좌측으로는 지하통로가 다시 보이고 그 지하통로 건너편에는 선경자동차와 해체재활용산업이란 입간판도 서 있다.

 

그 지하통로를 좌측에 두고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다시 완만하게 올라가며 걸어가니 좌측 서해안고속도로 위에 목포란 글자와 함께 유달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도로 조우측으로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밭에는 파란 마늘이 보이더니 금새 석교길이란 도로 표지판과 정면으로 석교회관 및 석교노인회관이란 건물이 보인다.

그곳 앞 삼거리에서 좌측 포장도로를 타고 잠시 멀어졌던 서해안고속도로 방향으로 걸어간다.

 

그렇게 다시 한동안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또 다시 지하통로가 보이고 그 앞에는 여전히 전에 봤던 공장 이정판 옆에 삼성산업이란 또 다른 이정판도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에 서해안고속도로를 두고 걸어가니 다시 파란 마늘밭이 나타나고 곧이어 도로 좌측으로 대원전통식품 건물과 우측으로는 배드맨튼전용구장이란 큰 건물이 보인다.

그 사이로 나 있는 포장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가니 도로 좌측에 화성기계를 두고 그 앞 삼거리에 석교마을이라는 거대한 이정석이 서 있다.

무안군 삼향면 유교리의 석교마을은 마을 앞 하천에 인력으로 돌다리를 놓았는데 이 다리 이름을 따서 석교라 부렀다는 설이 전해지는 마을로서 나주임씨와 밀양박씨가 주로 거주하고 있으며 쌀과 시금치가 대표적인 농작물이다. 

 

그 석교마을 이정석을 지나 서해안고속도로를 통과하기 위해 지하차도로 걸어 들어가니 도로 좌측에 (유)남해환경이란 입간판이 보이고 곧이어 서해안고속도로를 건널 수 있는 지하차도를 지난다.

이제부터는 한동안 거대하 남해환경 도로를 타고 모래를 생산하는 현장을 바라보며 지적산 산행 들머리까지 걸어 올라가 본다.

 

서해안고속도로를 지하차도를 통해 통과하니 갈라진 시멘트 포장도로 우측으로 거대한 남해환경 모래생산 공장이 나타나고 한동안 그 남해환경 공장지대로 나 있는 포장도로를 타고 지적산 산행 들머리로 올라간다.

돌 좌측 저 멀리에는 조금씩 멀어져 가는 서해안고속도로 위에 군산까지 145 Km 남아 있다는 도로 표지판이 눈에 들어 온다.

그 도로 표지판 지나 조금 더 앞쪽을 보니 방금 전 도로 옆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하며 만났던 죽림분기점 도로 표지판도 다시 만난다.

잠시 더 그 망가진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유)남해환경 공장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이 보인다.

 

사무실 건물을 지나 우측에 마지막 공장 건물을 두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 앞 저 멀리 지적산 오르막 등로에 있는 송전탑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지적산 산행 들머리가 있는 고갯마루에 도착을 하는데 지형을 살펴보니 원 기맥 등로는 좌측 능선쪽으로 올라 와야 되는데 서해안고속도로와 남해환경 공장으로 인해 영산기맥 마루금이 사라져 어쩔 수 없이 오늘 이 산객이 걸었던 우회 마루금으로 변한듯 보인다.

 

고갯마루에서 우측 대나무들이 보이는 등로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잡목과 소나무가 서 있는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더니 저 앞으로 묘지 한기가 올려다 보인다.

그 묘지를 지나 잡목이 우거진 뚜렷한 등로를 타고 가파르게 오르니 76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그 옆으로 지나온 영산기맥 마루금과 서해안고속도로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북서쪽 저 멀리 남양저수지 지나 봉수산이 암봉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북동쪽으로는 방금 전 지나온 서해안고속도로와 국사봉이 저 멀리 가물거린다.

바로 발 밑에는 남해환경 공장 건물들과 작은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데 오늘 이 산객이 걸었던 등로가 한눈에 펼쳐져 있다.

 

등로 좌측인 서쪽으로는 전봉산과 맥포저수지가 보이고 저 멀리 일로쪽 작은 소도시의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이제 하루 해가 남쪽에서 서쪽으로 기울어 가며 이쪽에 펼쳐져 있는 많은 채석장과 모래생산 공장들로 인해 파헤쳐지고 잘려져 나간 산자락을 박무속으로 감추듯 어렴풋하게 다가온다.

오랫동안 이 아름다운 자연 그대로가 잘 보존되어 질 수 있기를 바래 본다.

 

그렇게 주위 풍경과 서해바다를 즐기며 여유롭게 오르니 또 다시 77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곧이어 산양마을 갈림 삼거리 이정표 공터에 도착해 일망무제로 펼쳐진 조망을 즐겨 본다.

오를 땐 이곳이 지적산 정상이라 생각을 했는데 이곳 공터는 우측으로 대양동의 산양마을 하산 등로가 있는 갈림 삼거리이고 지적산 정상은 아직도 200여미터 더 진행해야 만날 수 있다.


다시 뚜렷한 등로를 타고 완만한 오르막 마루금을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삼향마을이 보이고 그 넘어 영산강 하구도 보이기 시작을 한다.

그렇게 조금 더 오르니 금새 삼각점이 박혀있는 188.7미터의 해발고도를 가지고 있는 지적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어느곳에도 정상 표시가 없어 조금은 아쉬움이 남아 있는 정상이다.

지적산에 대한 자료를 어렵게 찾아보니 지적산의 이름 유래를 살펴보면 조선환여승람에 지적산이 지족산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 왜 지족산인지 그 이유는 알 길이 없다고 한다.

또한 지적산의 동남쪽 기슭에는 여러 개의 고인돌이 있으나 여기에 대한 연구 자료도 남은 것이 전혀 없다고 하니 아쉬움이 크다.

아마도 석현마을에 있는 고인돌을 말하는듯 하지만 정확하지를 못하니 그저 아쉬움만 남겨 본다.


지적산 정상에서 서쪽을 살펴보니 저 멀리 우측으로 봉수산의 암봉이 보이고 삼향마을의 아파트 촌이 내려다 보이며 좌측으로 서해바다와 그 옆으로 압해대교도 보인다.

저 압해대교를 건너 멋진 추억을 담아 볼 시간도 기대를 해 보며 한동안 그 아름다운 풍경을 살펴 본다.

몇번인가 들렸던 목포지만 이렇게 높은 지적산에 올라 여유롭게 살펴 볼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지적산 정상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며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드넓은 너럭바위가 보이고 그 위에 선돌같은 바위 하나가 올려져 있다.

그 바위를 지나 저 멀리 살펴보니 남쪽으로 부주산이 보이고 그 부주산 우측 저 멀리 목포 시내의 고층 아파트 촌들이 즐비하게 보인다.

높지 않은 나즈막한 산봉우리이지만 주위에 높은 산들이 없으니 이곳 지적산에서의 조망 역시 일망무제로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남서쪽으로는 앞으로 걸어 진행해야 할 대박산과 양을산 그리고 저 멀리 유달산으로 이어진 멋진 영산기맥 마지막 마루금이 목포 시내를 주위에 두고 펼쳐져 있다.

목포의 상동과 하동의 아파트 단지 넘어 저 멀리 통신탑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양을산과 그 우측으로 봉우리 두개가 아름다운 유달산이 보여 가깝게 줌으로 담아 보니 이제 정말 영산기맥 마지막 구간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여유롭게 조망한 후 그 멋진 지적산을 내려가니 짧은 안전목책과 로프구간을 지나 등로 우측으로 키 큰 조릿대가 자라고 있는 호젓한 등로를 따른다.

잠시 완만하게 산죽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옆에 묘명 묘지 하나가 보이는데 이곳 등로에도 많은 묘지들이 있음을 실감하는 맥 잇기 시간이다.

 

그 묘지를 지나 진행하니 산죽은 더욱 울창해지고 키도 커지더니 금새 그 산죽들도 등로에서 사라진다.

다시 편안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나즈막한 무명봉에 올라 지나온 지적산을 뒤돌아 보니 지적산도 대단히 큰 암봉임을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다시 편안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앞 저 멀리 가야 할 양을산과 유달산이 눈 앞에 아른거리고 동백나무 등로가 나타나더니 금새 중앙고등학교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사각탁자와 벤취들이 있는 안부 사거리에서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마지막 맥 잇기 산행을 진행해 본다.


중앙고등학교와 석현동 갈림 사거리 안부를 지나 오르니 등로는 조금 더 가파라지는데 등로 우측으로 멋진 편백나무 숲이 보이고 그 안에는 몇개의 쉼터 벤취들도 보인다.

그 짧은 편백나무 지대를 지나 오르니 등로엔 통나무 계단이 박혀 있고 그렇게 잠시 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잠시 편안한 등로가 열리는데 그곳에 현대아파트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다.

그곳을 지나 편안한 소나무 등로를 타고 잠시 더 걸어가니 운동시설과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해발고도 140미터인 지적산 웅지봉에 도착을 한다.


그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다시 편안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또 다른 운동시설들이 있는 해발고도 120미터인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넓은 운동시설이 있는 공터 좌측에는 81번 송전탑이 서 있다.

잠시 주위 조망과 풍경을 둘러보고 있는데 주민 한분이 올라 와 운동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다시 간단히 인사 나누고 그 무명봉을 지나 가파르게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그곳을 지나니 등로 좌측 앞 저 멀리 앞으로 진행해야 할 대박산을 지나 저 멀리 양을산과 유달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중간에는 목포 시내의 거대한 아파트 촌들과 민가들이 드넓게 펼쳐진 풍경도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그렇게 잠시 ㄷ 내려가니 등로는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아주 편안한 등로로 이어지고 그 등로 좌측 앞으로 지금부터 올라야 할 대박산과 그 대박산 주ㅟ를 지나는 거대한 송전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 좌측 발 아래로는 1번 지방도로가 드넓게 내려다 보이고 그 도로 뒤 저 멀리 영산기맥 마지막 마루금이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조금 더 걸어가니 무명봉을 지나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가 열려져 있다.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걸어가니 또 다른 넓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해발고도 117미터 정상에는 헬기장 같은 풍경으로 다가온다.

정상에는 두개의 벤취가 놓여있고 그 한쪽에 서 있는 이정표를 살펴보니 정상 등로인 삼향동사무소가 이제 400미터 남아 있고 우측으로는 검문소 하산 등로라는데 어떤 검문소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 헬기장 같은 넓은 공터를 지나 좌측 내리막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하니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더니 금새 낙엽진 활엽수 등로로 변하고 있다.

주민 한분이 어렵게 올라오는 모습이 보여 인사 나누고 계속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철조망이 보여 살펴보니 가스회사의 거대한 가스통들과 건물들이 잡목 사이로 내려다 보인다.

그 철조망을 지나니 등로는 우측으로 꺽여 내리막으로 진행되는데 그곳에도 역시 멋진 편백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다.


그 편백나무 군락지를 지나 내려가니 콘크리트 수로가 나타나고 그 앞으로는 드넓은 6차선 1번 지방도로로 내려가는 절개지가 내려다 보여 좌측으로 등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그렇게 수로를 타고 내려가니 우측으로 1번 지방도로가 보이고 그 위로는 육교가 올려다 보이는데 도로 표지판을 살펴보니 목포 주변의 도시들 이름과 도청의 표지판들도 보인다.


그렇게 1번 지방도로로 내려가니 육교와 ㄴ려간 등로 사이에는 지적산등산안내도가 서 있고 그 옆에는 등산로입구 정상까지 2.2 Km란 이정표가 보인다.

그 좌측 옆으로는 목포도시가스란 회사가 보이는데 방금 전 내려오며 만났던 등로 좌측의 철조망이 바로 이 목포도시가스 회사로 내려가는 길을 막아 놓은 철조망이었다.

그 옆에 서 있는 육교로 올라 걸어가다 육교 좌측을 살펴보니 목포시내로 들어가는 1번 지방도로가 드넓게 내려다 보이고 육교 끝자락 저 멀리에는 삼향면사무소 건물도 똑바로 보이기 시작한다.


육교를 타고 걸어가니 그 끝자락 맞은편에 삼향동주민센타가 자리하고 등로는 그 육교 위에서 좌측으로 내려가게 된다.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영산로라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도로 우측 옆으로 CJ대한통운택배란 회사 정문이 보이는데 기맥 마루금은 그 회사 정문 좌측 벽을 타고 입간판 좌측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산행 들머리를 잘 찾지 못해 헤맸지만 금새 정상 등로를 찾아 잡풀이 무성했다 말라죽은 등로를 타고 능선으로 진입하며 이어간다.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나뭇가지에 선답자들의 띠지가 달려있어 다시 한번 확실한 등로임을 확인하고 잠시 더 오르니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는데 그 임도 양쪽으로는 멋진 편백나무들이 빼곡히 자라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는 좌측에서 우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되는데 잔디가 잘 깔린 비포장 임도와 다시 만나 진행된다.

그곳을 지나니 좌측 1번 지방도로에서 우측 묘지쪽으로 오르는 비포장 임도를 만나 가로질러 편백나무가 빽빽한 능선으로 오르며 영산기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편백나무 군락지를 타고 오르막 등로를 힘들게 오르니 잠시 조망처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지적산에서 이곳 1번 지방도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잠시 더 오르니 편백나무 군락지를 지나 83번 송전탑을 통과하고 넓은 등로를 따라 소나무 등로를 걸어 오른다.

다시 소나무가 멋지게 자라고 있는 넓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쌍묘가 보이고 말라죽은 잡풀지대를 지나 저 멀리 2개의 송전탑이 올려다 보이는 곳에 도착을 한다.


그 말라죽은 잡풀지대를 통과해 걸어 오르니 148번 송전탑을 지나고 곧이어 등로 옆에 붉게 피어 있는 동백꽃들이 반겨주는 등로를 따라 오르면 또 다른 84번 송전탑을 지난다.

그 송전탑을 지나니 갑자기 등로 양쪽으로 키가 큰 산죽들이 나타나고 오르면 오를수록 그 조릿대는 더욱 빼곡히 자라고 있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빼곡하게 자란 조릿대 지역을 통과해 오르니 갑자기 넓은 쌍묘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다시 오르니 잡풀이 자랐다 말라죽은 지대를 지나 드디어 대박산 정상에 도착해 두개의 통신탑을 사진에 남겨 본다.

155.4미터의 대박산 정상 역시 제대로 된 정상석과 표시기 하나 없어 주위 풍경과 지나온 마루금을 바라보며 조망을 즐긴 후 너무나 허기가 져 오기에 그곳 정상에 앉아 준비한 간식과 과일로 점심을 대신해 본다.

하지만 그 통신탑을 관리하는 철조망 안에 있는 건물쪽에서 몇마리의 강아지들이 무척 시끄럽게 울부짖어 쉬어가기도 힘이 드는 시간이다.

대박산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 보니 많은 자료가 없지만 그래도 책나무출판사님의 자료가 가장 공감이 가는 글이라 적어 본다

대박산은 국도 1호선 부근 삼향동사무소 뒤편의 산으로 동쪽으로는 지적산이 지척에 있고 북쪽으로 대박산마을과 월산마을이 있다.

1호선우회도로가 관통하는 장자골 인근 해안가까지 마루금이 이어지며 북서쪽의 내화촌과 노득동을 돌아 남쪽으로 청소년수련관을 거쳐 상동 버스터미널 인근 항도초등학교까지 길게 이어진다.

시내 쪽에서 바라보면 제1수원지를 중심으로 좌측은 양을산이며 우측이 바로 대박산으로 면적은 165 ha로 목포에서 두 번째로 넓다.

대박산의 명칭에 관한 유래를 찾아보면 산골마을 초가지붕 위에 열려있는 박이 크게 보여 대박산으로 불리게 된 대박산마을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무안현조에 따르면 옛 이름이 함박산이었으나 언제부터 대박산으로 부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그곳 대박산 정상에서 잠시 간식을 먹으며 쉰 후 다시 배낭 둘러메고 그 통신탑을 보호하기 위한 철조망을 타고 걸어가니 갑자기 그 통신탑을 관리하는 직원이 철조망 안에서 나타나 짜증 섞인 말투로 이곳은 접근 금지라며 그 아래 잡목과 잡풀 사이로나 있는 등로를 타고 진행하라며 이 산객의 진행을 막는다.

아무 피해도 주지 않고 그 건물 아래에 나 있다는 등로도 없기에 빨리 통과하겠다며 사정을 해 봐도 전혀 들어 줄 기미가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뒤돌아 내려가 가시나무를 헤치고 진행하려니 갑자기 부아가 치밀어 오르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렵게 그 대박산 정상의 철조망 위 건물과 2개의 통신탑을 우측에 두고 저 아래 잡목과 가시나무 넝쿨을 헤치며 어렵게 진행을 하니 방금 전 대박산 철조망을 타고 왔으면 금새 만날 수 있었던 건물 정문으로 통하는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내려 가 본다.

잠시 그 포장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도로가 우측으로 크게 휘어지는 곳에서 좌측 직진의 능선으로 조금 더 걸어가다 보니 등로는 다시 우측 도로를 타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어 짧은 알바 후 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도로 우측에 목포의 재활용 공장 건물이 보인다.

제2선별장을 지나 내려가니 녹색 철조망 안의 재활용 공장에서는 재활용을 위해 정리된 수많은 재활용 원료들이 큰 묶음으로 정리가 되어 있다.


계속 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갈림 거리가 나타나는데 2차선 포장도로이다.

그 갈림 삼거리 우측에는 목포 재활용공장의 정문이 굳게 닫힌 채 보이고 그곳 2차선 지방도로에서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내려가니 도로가에 곱게 피어 있는 동백꽃이 산객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아름다운 동백꽃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발길을 멈추고 그 동백꽃 몇 송이를 사진에 담아 본다.


그렇게 동백꽃을 친구삼아 내려가니 다시 갈림 삼거리가 타나나는데 도로 우측으로는 목포시환경시설관리사무소란 커다란 입간판이 서 있고 그 아래 저 멀리에는 목포대양일반산업단지의 건물들과 서해 및 남해 바다가 만나는 풍경 그리고 압해대교가 아스라히 내려다 보인다.

그 4차선 지방도로 건너편엔 대운레미콘 공장이 가동중인데 양을산으로 오르는 산자락 일부를 완전히 잘라먹고 있어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공사 현장이다.

 

그 대운레미콘을 우측에 두고 4차선 지방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짧게 내려가니 대운레미콘 공장이 끝나는 우측 전봇대 방향으로 넓은 등산로 들머리가 보인다.

그 등로로 오르니 많은 주민들이 산행을 즐기는 듯 드로는 반질거릴 정도로 아주 잘 나 있고 산책로도 만들어져 있는지 등로가 이리저리 몇갈래로 나눠져 있다.

일단 능선 방향으로 길을 따라 오르니 금새 등로 우측으로 드넓은 대운레미콘 공장이 펼쳐져 있다.


그 정상 능선으로 오르자 마자 갑자기 등로 한쪽에 삼각점이 나타나 어리둥절 하게 생각하면서 삼각점을 사진에 담은 후 살펴 보니 목포 451이란 삼각점이다.

혹시나 하고 자료를 찾아 보지만 아무런 자료도 찾을 수 없어 왜 봉우리도 아닌 이런 곳에 이런 삼각점이 박혀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다시 등로 우측으로 안전목책과 로프가 달려 있는 호젓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우측 아래에는 드넓은 대운레미콘 공장이 펼쳐져 있다.

수많은 채굴 설비들과 모래를 만드는 설비들 그리고 자갈을 만드는 설비들이 쉴새 없이 굉음을 울리며 돌아가고 그 돌아가는 설비들 밑으로는 모래와 자길들이 쉴새 없이 떨어지고 있다.

언제 끝날지 ㅁ르겠지만 이제 이곳도 더 이상 산자락을 자르지 말고 보존할 수 있기를 바랠 뿐이다.


잠시 더 올라 무명봉을 지나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설치된 안전목책 등로를 타고 앞서 걸어가는 아주머니 한분의 두시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기만 하다.

이제 봄이 오려는지 기온도 많이 올라 걷기에도 큰 지장이 없어 등로가 녹아 질척이고 있음을 걱정할 정도이다.

등로가 좋아 조금은 빠르게 호젓한 마루금을 타고 걸어가 본다.


드렇게 호젓한 등로를 타고 조금 빠르게 진행 해 앞서가던 아주머니를 추월하니 나즈막한 봉우리를 넘어 묘지 몇기들이 있고 운동시설들이 있으며 비녀산(양을산)의 유래가 적혀 있는 육각정자를 지난다.

현재 양을산으로 불러지고 있는 해발 151m의 이 산은 본래에는 비녀산으로 불러져 왔다고 한다.

비녀산이라는 지명이 언제부터 불리어지게 되었는지의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정상이 유난히도 일자형이다 보니 흡사 비녀 형상이고 산 기슭에 있는 바위가 여인네의 비녀쪽지를 닮았다고 하여 비녀산으로 불리워 왔다. 

양을산이라 바뀌어 불려진 것은 등산 및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이 늘어나면서 산 밑자락 양을촌마을을 시발점으로 오르다보니 차츰 양을산으로 불러지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실질적인 양을산 정상은 한참을 더 걸어 진행해야 만날 수 있는데 왜 비녀산(양을산)의 유래를 여기에 적어 놨는지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곳 전체를 양을산이라 불려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는

 

그곳 비녀산(양을산)의 유래가 있는 육각정을 지나니 송신탑 1.5 Km란 이정표가 보이는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우측 등로를 타고 올라 본다.

잠시 오르니 벤취3개가 있는 무명봉에 오르고 사진 한장 남긴 후 다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이제부터 넓은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옆에 양을산 섬너릿길이란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등로 좌측으로는 태을계곡이 그리고 직진으로는 양을산까지 1.3 Km 남아 있다는 표시가 보인다.


다시 소나무가 잘 커가고 있는 넓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용해동주민센타 갈림 이정표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사각정자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다.

등로는 이 사각정자 우측으로 꺽여 진행되는데 혹시나 멋진 조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올라 보지만 조망도 별로이기에 곧바로 정상 마루금을 따라 진행을 해 본다.


다시 정상적인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는 좁아지고 멋진 소나무들도 눈에서 사라져 버렸다.

꽃무릇 사거리 이정표를 지나 무명봉을 올랐다 내려가니 다시 멋진 소나무들이 자라는 넓은 등로로 변하면서 저 멀리 앞으로 올라야 할 양을산의 인공 통신탑이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걸어가니 꽃무릇식재지란 입간판이 보이고 곧이어 꽃무릇 사거리 이정표와 사각정자가 보인다.


그곳을 지나다 잠시 석산화에 대한 설명판이 있어 읽어 보니 석산화는 여름에 잎이 다 말라죽고 난 후 추분 전후 9월경에 꽃이 핀다.

잎이 나오면 꽃이 지고 꽃대가 나오면 잎이 말라 버리는 운명탓에 슬픈 인연의 꽃으로 불린다.

꽃은 피우지만 열매는 맺지 못하는 꽃  이루지 못한 사랑에 받쳐지는 헌화이기도 하며 독이 있어 사인화 또는 유령화로도 불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꽃무릇 또는 상사화를 이곳 지방에서는 석산화로도 불려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다시 나타나는 육각정을 지나 짧은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나즈막한 돌탑을 지나 안전철봉과 로프가 달려 있는 등로와 만난다.

그곳 정상을 지나 평이하게 걸어가니 체육시설이 있고 사각정자도 있는 체육공원과 경찰서 방향이 있는 이정표를 지난다.

다기 오르막 등로를 타고 한동안 오르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성신고등학교와 청산푸른아파트 갈림 사거리를 지나 편백나무 군락지를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오르니 양을산 정상에 세워져 있는 KT 통신 건물 정문에 도착을 한다.


그 KT  건물 좌측에는 산불감시초소가 보이는데 아저씨 한분이 근무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위해 나오는지 문을 잠그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그곳 정문에서 우측 벽을 타고 바깥 등로를 따르니 금새 양을산 정상의 양을루라는 육각정자가 있는 정상에 도착을 한다.

양을산은 지금 목포시에 있는 목포대학 뒷편을 보고 비녀산이라고 하는데 그 산의 모양이 마치 옛날 여자들이 경대 앞에서 머리를 곱게 빗고 비녀를 꽂아 놓은 형성이라 해서 비녀산이라고도 하다.

또 해발 150미터 높이의 산인데 앞으로 목포의 이지형으로는 이 산이 목포 시내 한 중앙을 차지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그곳에 양을촌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양을산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양을촌이라고 한 것 같다.

잠시 그 양을루 정상에 올라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본다.


양을산 남서쪽으로는 지금부터 걸어 올라야 할 영산기맥 마지막 유달산이 두개의 봉우리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늠름하게 서 있고 그곳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완전히 사라져 거대한 도심의 건물들이 차지하고 있는 목포 시내로 변해 버렸다.

그 유달산 뒷쪽으로는 남해 바다가 박무속에서도 확연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그곳 양을산 양을루에서 조망을 즐긴 후 다시 KT 뱍을 타고 나 있는 등로를 따라 시멘트 포장도로로로 뒤돌아 나와 정문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한동안 내려가 본다.

체육공원 200 m란 이정표를 지나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방금 전 아저씨 한분과 기분 나쁘게 헤어졌던 대박산 정상이 잡목 사이로 올려다 보인다.

잠시 더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목포동문교회의 벧엘수양관 건물이 보인다.


그 목포동문교회 건물을 지나 계속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저 멀리 체육공원이 보이고 ㅇ주머니 두어분이 운동을 하고 계신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생활체육광장이란 이름의 이정판이 서 있고 배드멘턴 경기장들도 보이며 주위에는 운동시설들이 잘 구비되어 있다.

이곳에서 정상 마루금을 찾지 못해 잠시 헷깔려 했지만 금새 시멘트 포장도로와 좌측 배드멘턴 경기장 사이로 나 있는 능선 등로를 찾아 맥 잇기 산행을 진행해 본다.


잠시 헷깔리다 정상 마루금을 타고 내려가니 소나무들이 보이고 곧이어 벤취들과 운동시설들이 보이는 장소에 또 다시 도착을 한다.

주위를 둘러보고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타고 다시 내려가니 통나무 계단이 보이고 곧이어 방금 전 생활체육공원에서 헤어졌던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내려가며 진행을 해 본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내려가니 양을산 통신유적지 0.5 Km란 커다란 이정석과 양을산의 유래판 그리고 좌측으로 길상사가 보인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포장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곳에서 직진으로 민가를 우측에 두고 좁은 골목길이 보이고 그 민가 골목길을 타고 좌측에 밭을 두고 내려가 본다.


양을산길이란 도로명과 민가 주소가 붙어 있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니 양을산터널이 있는 도로아 만나고 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내려가니 청산아파트와 서광교회 안내판이 보인다.

양을산터널을 우측에 두고 좌측의 좁은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용해3단지 아파트가 도로 좌측에 나타난다.

양을마을로란 도로 표지판을 지나 내려가니 경찰서 사거리 도포 료지판이 걸려있는 사거리에 도착을 한다.


이제부터 목포 도심 도로를 타고 잘려진 마루금을 이어야 하기에 발바닥만 불이 나고 힘이 겨워지는 시간이다.

길상사 표지판을 지나 경찰서 사거리를 건너 직진 저 멀리 보이는 용당장로교회 탑을 기준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작은 밭들이 보이더니 양을로라는 도로 표지판이 나타난다.

목포경찰서를 지나 용당파출소와 마리아회고등학교를 통과하니 봉은사 오르는 이정판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니 다시 KBS 목포방송국이 나타난다.


그 KBS 목포방송국을 지나 계속 걸어가니 목포용해동우체국이 나타나고 곧이어 목포 시청 건물이 보인다.

목포는 일찍이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물아혜군이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무안군으로 또 고려시대에는 물량군 또는 무안군으로 불리웠다.

이러한 이름들은 지금의 목포시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무안군 및 신안군과 함께 더불어서 불렀으며 오랜 세월동안 이 고장의 행정구역은 여러번 바뀌었으나 조선조에 이르러 나주목의 속현으로 이어왔다.

목포라는 이름은 고려사라는 역사책에서 처음 나오는데 땅이름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나무가 많은 포구라 하여 목포라고 불렀다고 하고 목화가 많이 난다하여 그렇게 불렀다는 설도 있으나 서해로부터 육지로 들어가는 길목이라고하여 목포라고 불렀다고 하는 주장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조선 세종21년인 1439년에는 목포만호진이 설치 되었으며 임진란 때에는 목포 고하도에 이순신장군이 친히 수군진을 설치하여 108일 동안 머물렀으며 1897년 10월 1일 목포항이 개항 되었다.

그후 1910년 일제가 국권을 빼앗던 해의 10월 1일 목포부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1932년에는 무안군 일부지역을 더하여 8.6 Km2의 도시면적에 인구 6만인 전국 6대 도시의 하나로 성장하여 일흙(하나의 검정인 김)과 삼백( 세개의 하얀색인 면화, 쌀, 소금)의 집산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49년 8월 15일 목포부를 비로소 목포시로 고쳐 부르게 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목포 신항과 무안 국제공항 건설 등 SOC 투자촉진과 대불 및 삼호공단 조성으로 산업기반 시설이 확충되어 서남해안 시대의 중추기능을 담당한 세계로 웅비하는 미래의 도시이다.

남해안의 섬들을 여행하면서 자주 들렸던 목포이지만 이렇게 ㅁㄱ 잇기 산행을 하면서 들리는 오늘의 의미는 완전히 다른 시간으로 기억되는 순간이다.


목포시청을 지나 입시학원인 태학당을 통과하고 하우징 갤러리를 만난다.

목포시상하수도사업단을 지나 근화타워를 바라보고 동초등학교사거리를 만나 통과한다.

차량통행이 많지 않기에 편안하게 걸어보는 목포시내이지만 어제와 함께 계산해 보면 이제 40여 Km를 걸은 후 이기에 조금은 발바닥이 간지럽고 불이 나는듯 뜨거워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동초등학교 사거리를 건너 신정한방병원를 통과한 후 송정경로당을 지나니 다도해 헬스와 사우나 건물이 나타난다.

산체스오피스텔 건물을 지나 나이스빌을 통과하면 목포산정교회와 만나고 곧이어 죽교동과 하당 연동광장 그리고 우측으로 연산동 갈림 사거리 도로 표지판을 만난다.


그 사거리 도로를 건너 진행하니 우측으로 일신 아파트가 보이고 그 옆으로 거대한 아파트 공사 현장이 나타난다.

이제 저 앞으로 유달산 암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평강교회를 지나 GS 칼텍스 주유소를 통과하니 신안군산림조합을 지나 저 멀리 양을로 사거리에 유달산이란 바향 표지판이 보이고 곧이어 거대한 목포대성 아파트 공사 현장이 나타난다.


대성동 사거리 도로 표지판을 만나 그곳에서 이제 좌측같은 직진의 유달산 방향으로 진행을 하니 저 멀리 이등봉과 일등봉으로 이어지는 유달산 능선과 암봉이 잘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죽교동 도로 표지판에서 좌측인 목포역 방향으로 걸어가니 목포새서부교회 입간판을 만나 지난다.

 

세종학원을 지나 시장통 같은 도로를 타고 계속 걸어가니 수문로 도로 이정표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우측의 조각공원과 유달산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며 마지막 유달산으로 향한다.

두 다리에 전해지는 묵직함이 피곤도를 높이지만 이제 마지막 봉우리만 남겨 놨다는 사실이 다시 용기와 힘을 복돋아 주기 시작한다.


우측의 좁은 골목길로 접어 올라가니 손길미용실과 한빛세탁 건물이 나타나고 일반 마을길 같은 좁은 골목으로 이어진다.

산죽길 29번과 30번이 갈리는 도로 표지판을 지나 둔덕을 넘으니 바로 눈 앞으로 유달산의 이등봉이 갑자기 나타난듯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어렵게 진행한 영산기맥도 이제 유달산이란 마지막 봉우리만 남겨 놓고 많은 회한과 추억을 떠 올려 보는 시간이다.


좁은 도로 좌측으로 서넘특수어린이집과 장애인복지타운 그리고 솔로몬지역아동센타란 입간판을 지나 걸어가니 유달산 순환도로가 저 앞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이제 곧 유달산으로 오를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잠시 발걸음 멈추고 동네 할아버지들과 환담을 나눠 본다.


유달산 순환도로로 나가기 직전 지나온 목포 시내의 잘려진 마루금을 뒤돌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수많은 아파트들과 건물들 그리고 복잡한 목포 시내의 허파 노릇을 하고 있는 야산들을 뒤돌아 보며 건강하게 두 다리를 이용해 이곳까지 걸어 왔음을 다시 한번 감사해 보는 시간이다.

이제 남아 있는 마루금도 무탈하게 조금 더 많은 추억을 남기며 걸어갈 수 있는 시간이길 바래 본다.


산죽길이라 보이는 유달산 순환2차선 도로로 올라 좌측으로 오르니 도로 좌측 앞으로 유달산의 이등봉과 일등봉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암릉이 펼쳐져 있다.

그 마루금을 올려다 보고 다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유달산 방향으로 올라가니 도로 우측으로 정자가 보이고 그 정자가 서 있는 방향으로 오르니 그곳에는 경관루라는 팔각정과 운동시설이 보이고 몇명의 주민들이 운동도 즐기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곳에서 좌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본격적으로 유달산 산행을 시작해 본다.


한동안 오르니 유달산 갓길이란 이정판이 보이고 돌담 등로를 지나니 보해동산과 어민동산 갈림 이정표를 만난다.

그곳에서 조금 더 오르니 운동시설이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올려다 보니 유달산 주능선과 암봉이 아름답게 올려다 보인다.

이제 유달산 산행을 위해 무거워진 두 다리를 이끌고 마지막 사투를 벌어야 하는 시간이다.


잠시 편백나무 군락지를 지나 오르니 좌측으로 따라오던 철조망이 좌측으로 사라지고 통나무 계단이 이어지더니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보인다.

그 바위를 통과하니 본격적인 유달산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지금까지 걸었던 도심의 도로와는 완전히 달라진 일반 등산로로 변해가고 있다.

어민동산과 소요정 갈림 이정표를 지나 오르니 길게 이어지는 돌계단이 앞으로 펼쳐져 있다.


길게 이어진 돌계단을 지나 오르니 목포 시내가 한누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처에 도착을 한다.

하기야 지금부터는 어느곳을 오르더라도 목포의 모든 방향이 내려다 보이는 조망처이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즐기며 진행해 보리라 생각을 해 본다.

목포 시내를 지나 압해교로 이어지는 풍경이 아름답기만 하다.


북동쪽으로는 지나 온 영산기맥 마지막 마루금을 살펴 본다.

목포 시청과 경찰서를 지나 저 멀리 양을산 대박산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온다.

참으로 멀고도 멀었던 마루금 걷기도 이제 그 종착지가 다가와 그곳에서 발보는 심정이 뜨겁기만 하다.

이렇게 편안하게 목포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등로는 좌측으로 야경 등을 따라 나 있지만 머리 바로 위 이등봉 바위쪽으로 희미한 등로가 열려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올라가 본다.

약간은 위험하다는 생각도 해 보지만 그렇게 큰 위험은 없어 보이기에 조심하며 오르니 등로는 야경을 밝혀 주는 등불을 따라 오르고 마지막 바위를 오르니 삼등바위 바로 밑 안부로 오르게 된다.

그곳에 올라 남서쪽을 바라보니 목포대교가 내려다 보이고 그 대교 중간부근까지 고하도의 용머리 해변이 들어 와 있다.

그 남해바다 직전에는 목포해양대학교 전경도 내려다 보인다.


유달산 삼등바위와 이등바위 사이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는 오를 수 없는 바위 위에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보이는 바위가 보인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을 삼등바위나 또는 유달산 수도바위(똥바위)라 부르는데 정상의 평평한 터에서 용맹정진하는 수도자의 모습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되어 있다.

잠시 주위 풍경을 둘러보고 이제 안부로 내려왔다 바위를 타고 오르니 금새 유달산 이등봉이다.

장수바위 위편에는 등산객들이 삼등바위라 부르는 봉우리가 있는데 여기에 올라서면 멀리 일등바위 정상이 보이고 다음 이등바위 정상에 있는 수도바위가 보인다.

그리고 세 번째 봉우리인 삼등바위 이곳에서는 압해도와 북항일대 및 양을산 부근 그리고 멀리 무안 도대 부근이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고하도와 달리도 사이를 통과하여 목포항에 들어오는 여객선들과 바다에 점점이 박혀 있는 작은배들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섬들이 어우러져 다도해의 정취를 물씸 풍긴다.

이등바위와 함께 이어져 있기 때문에 삼등바위의 중턱을 돌아가는 일주로를 따라 가면 다시 이등바위의 입구에 이른다.


안부를 지나 바위를 오르니 역시 바위 위에 이등봉이란 설명석이 박혀있다.

이등바위는 유달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서 일등바위에서 심판받은 영혼이 이 이등봉으로 이동하여 잠시 대기한다 하여 이동바위라고도 부른다.

이등봉은 동그란 탑처럼 보이는데 시내쪽에서 바라보면 마부가 말을 끄는 모습이라 아마도 영혼을 실어 나르는 마부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어 어떤 사람들은 독승바위라고도 부른다.

이곳에 오른 등산객에게 부탁해 어렵게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좌우로 펼쳐진 아름다운 목포를 바라보며 앞으로 진행해야 할 소요정과 일등봉을 목표로 진행을 하니 장미바위가 나타나는데 설명을 보니 장미꽃처럼 보이는 여섯쪽의 바위가 꽃송이를 만들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이 산객의 눈에는 전혀 장미같은 형상은 보이지 않는다.

이 장미바위를 지나 내려가는데 바위 틈 사이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며 왜 이리 어려운 등로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지 궁금해했는데 이 위험한 바위 등로 우측으로 계단의 안전한 등로가 있었던 것이다.


그 장미바위를 지나 내려가다 앞을 보니 저 멀리 소요정이 보이고 뚜렷한 등로를 타고 오르면 유달산의 일등바위가 있는 정상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다.

조망을 즐기고 조심하며 그 위험한 바위 지대를 내려오니 평이하고도 안전한 등로와 만나 좌측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해 본다.


잠시 살펴보니 등로 옆에 이정표가 보이는데 이등바위에서 160미터 내려왔고 일등바위까지 340미터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눈에 들어 온다.

또 다른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옆에 소요정이란 팔각정이 보이는데 임시 매점이 있는지 탁배기를 팔고 있는 부부인듯한 사람이 눈에 들어 온다.

관운각을 지나 소요정으로 지나는 길에는 다양한 바위들이 존재하는데 마당바위, 손가락바위, 흔들바위, 일등바위, 얼굴바위, 보리마당이 있으며   소요정을 지나면 장미바위, 이등바위, 거북바위, 장수바위가 있다.

이제 마지막 봉우리를 넘어 맛있는 목포의 식사를 생각하면서 탁배기에 대한 유혹을 떨쳐 버리고 곧바로 그 소요정을 지나친다.


소요정을 지나자마자 헬기장이 나타나고 그 헬기장을 지나니 등로 우측으로 보리마당이란 설명석이 보인다.

이곳에서 보리타작을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어딘지 모르게 억지스럽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옛날에 이곳에 사람들이 살면서 보리를 타작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보리마당을 통과한다.


그 보리마당을 지나니 이정표를 지나 바위 계단을 타고 오른다.

길게 이어진 계단을 타고 오르니 안전 철봉이 나타나고 잠시 그곳에서 지나온 이등바위쪽을 바라보니 아름다운 유달산 이등봉 마루금이 펼쳐져 있다.

그곳을 지나 계속 걸어가니 얼굴바위가 보이고 설명석을 읽어보니 일등바위에서 흔들바위를 지나면 소나무가 드문드문 서 있는 큰 바위더미를 돌아가야 한다.

바위의 아래로 돌아서 지나야 하는데 돌아가기 전이나 돌아간 후에 바위를 올려다보면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는데 바위의 끄트머리가 갑자기 튀어나와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데 포효하는 남자의 얼굴로 보인다라고 되어 있다.


그 얼굴바위를 지나니 등로 우측에 얼굴바위에서 바라본 다도해라는 설명판이 서 있어 그 설명판을 보며 주위 지명을 맞춰 본다.

고하도의 용머리 해안이 보이고 목포대교가 내려다 보이며 장좌도와 외달도도 내려다 보인다.

하지만 약간의 박무로 인해 그 풍경이 희미하게 전해져 와 조금은 아쉬움을 남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바로 발 아래에는 조금 더 가깝게 다가 온 목포해양대학교 전경이 환히 보인다.


얼굴바위에서 주위 조망을 즐긴 후 다시 나타나는 돌계단을 타고 오르니 처음에는 UFO 바위라 생각되었던 흔들바위가 나타난다.

설명은 없지만 많은 등산객들과 선답자들이 흔들바위라 부르고 있으니 찾아본다.

얼굴바위를 지나 일등바위를 향해 가다보면 흔들바위가 보이는데 급하게 경사진 암반 끝에 있어 실바람만 닿아도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흔들바위는 장정 대여섯명이 올라갈 수 있는 평평한 면을 이루고 있는데 이곳에 올라 주변 경치를 바라보는 재미도 뛰어나다.


그 흔들바위를 지나 계속 진행하니 애벌레바위가 눈에 들어 온다.

관악산의 지네바위나 애벌레 바위만큼은 아니지만 보기에 따라 충분히 애벌레처럼 보이는 바위이다.

이제 일등바위 50미터란 이정표를 지나 오르니 계속 돌계단을 타고 넓은 공터가 있는 일등바위에서 바라 본 다도해라는 설명판 앞에 선다.

이곳에서 옆에 서 있는 등산객에게 부탁해 다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제 이곳에서 살펴보니 남서쪽 저 아래로 영산기맥 마지막 산줄기인 목포애향 이정석이 있는 도로와 신안비치호텔이 시원스레 내려다 보인다.

많은 사진 남기고 돌계단을 타고 오르니 금새 유달산 정상인 일등바위에 도착해 어렵게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유달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로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울뚝불뚝한 바위들이 뒤엉켜 웅장한 모습을 만들어 내는데 애벌레바위에서 올라 와 넓은 공터에서 돌계단을 지나면 일등바위에 오르는데 이 일등바위를 바라보면 살아 움직일 듯한 바위들의 웅장함을 더욱 느낄 수 있다.


유달산 일등봉(228미터 봉우리)

유달산은 예부터 영혼이 거쳐가는 곳이라 하여 영달산이라 불렸는데 동쪽에서 해가 떠오를 때 그 햇빛을 받아 봉우리가 마치 쇠가 녹아내리는 듯한 색으로 변한다 하여 유달산이라 하였다.

이후 구한말 대학자인 무정정만조가 유배되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유달산에서 시회를 열자 자극을 받은 지방 선비들이 유달정 건립을 논의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산 이름도 유달산이 되었다.

유달산은 목포 시민의 공원일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명소로 알려져 있어 전국에서 모여드는 관광객이 많다.

1982년부터 유달산 공원화가 추진되어 유달공원, 난공원, 달성공원, 조각공원 등이 있으며 서쪽 사면은 비교적 경사가 급하여 도시화가 덜 진행되었고 해안에는 유달산해수욕장이 있다.

이 산에는 대학루, 달성각, 유선각, 관운각, 소요정 등의 정자가 있는데 달성각은 1958년 광복 13주년을 기념하여 건립하였고 유선각은 1932년 10월 목포 개항 35주년을 기념하여 건립하였는데 처음에는 목조로 건립하였으나 현재는 콘크리트건물로 개축되었다.

그리고 230평의 어린이 놀이터와 4·19기념탑과 충혼탑 등이 있으며 산 중턱에는 가수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유달사, 관음사, 수도사 등의 사찰이 산 중봉에 있으며 활터도 있다.

산의 정상인 일등암에 오르면 다도해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그 경관은 장관을 이루는데 다도해관광권의 중심이며 산 주변에 2.7 Km의 유달산 일주도로가 있다.

유달산은 지질학상의 판구조이론으로 볼 때 압축구조장의 안쪽에 위치하며 고생대 말부터 중기의 사이에 있었던 큰 규모의 습곡 운동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뒤로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침식이 되어 지금은 노년기 지형으로 발달하였다.

목포시와 다도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므로 산정에 두 개의 봉수대를 설치해 멀리 바다에서 들어오는 외적을 경계하였으며 달성각에서 약 100 m 내려오면 정오를 알리던 오포대와 노적봉이 있다.

노적봉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군량을 쌓아둔 것처럼 가장하여 적을 속인 곳이라는 전설이 전하여지며 남쪽 기슭의 해안을 광복 전에 일본 사람들이 매축하여 신시가지를 만들었는데 현재의 만호동과 무안동이 이 지역에 해당한다.

많은 자료를 찾아 보니 아직도 알지 못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는 유달산이다.

 

목포 시내를 한누에 내려다 보니 예전 옆지기와 올라 와 남겼던 추억이 생각나며 그 옆에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아 본다.

거대한 회색 도시 중간에 양을산 지나 대박산으로 이어지는 멋진 영산기맥 마루금이 다시 이 산객의 가슴을 들뜨게 만들고 있다.

언제나 다시 이곳 유달산 정상에 올라 이 멋진 풍경을 조망할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으니 더 많은 풍경을 담아가려 노력해 보기도 한다.


이제 지나온 소요정과 이등바위 그리고 삼등바위로 이어지는 유달산 마루금이 환상으로 다가온다.

한발 두발 걸어 지나온 등로와 마루금이 하나의 추억이 되어 가슴에 남겨지는 시간이다.

예전에 두어번 오르면서 만났던 풍경이었지만 오늘과 같이 이처럼 많은 상념에 잠겨 본 시간도 없었던 듯 싶다.


이제부터 걸어 내려가야 할 아리랑고개와 다순금 마을을 지나 그 끝자락에 목포애향 이정석이 있는 도로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바닷가 우측 옆으로는 신안비치호텔이 드높게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드어 온다.

이곳 정상에서 옆지기에게 전화 해 유달산 정상이라 전해주고 이제 한시간 전후면 다순금의 목포애향 이정석이 있는 곳에서 만나기로 한다.


유달산 정상에는 표식을 알 수 없는 삼각점이 박혀있다.

한동안 더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일등바위 이정석이 있는 넓은 공터로 내려오니 등로는 좌측 바위 옆 출입금지 팻말 사이로 나 있다.

안전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 돌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 아래로 유달산 유달사가 내려다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안전철봉과 돌계단을 타고 걸어 내려가니 우측에 일등바위 암봉을 두고 좌측은 목포 시내를 조망하며 걸어가는 등로이다.

다시 돌 등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정자 옆에 나막신 바위가 나타난다.

앞 끝이 살짝 위로 올라간 나막신 모양이라는데 멀리에서 보면 꼭 나막신을 닮아 있어 신기하기만 하다.


그 나막신 바위를 지나 팔각정과 입석바위를 지나 잠시 더 오르니 마당바위가 나타난다.

어른 10여명이 앉아서 쉴 정도의 마당같이 넓은 바위라 붙여진 이름인 마당바위에서 일망무제인 풍경을 즐겨 본다.

이미 한 가족이 올라 와 즐기는 시간이기에 아주 조심스럽게 사진 몇장 남기고 일등바위쪽을 바라보니 그곳에 부동명왕이란 글씨와 아기부처가 보인다.


마당바위 정상에 있는 이정석과 삼각점을 사진에 담고 일등바위 방향을 바라보니 거대한 바위 위에 부동명왕성이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이 흥법대사 부동명왕상은 우리나라 불교와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설명판이 팔각정 아래에 서 있다. 

미래를 여는 공동체라는 단체에서 세운 자료를 보니 이 흥법대사 부동명왕상은 우리지방의 전통문화나 우리나라 불교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외래문물의 표상으로 일본승려 흥법(공해 774-835)은 일본불교 진언종의 개조이며 부동명왕은 대일여래의 사자로서 밀교의 5대 명왕중 하나이다.
일본불교는 개항후 7개 종파가 목포지역에 침투하였으며 진언종파는 1920년 유달산에 흥법대사상과 부동명왕상을 조각하고 일본 불교를 우리 지역에 전파 하고자 했다.
목포개항 1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문화를 바르게 인식하고 민족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이 표지판을 세운다라고 되어 있다.

전혀 관련이 없다면 바위에 새겨 놓은 글씨와 아기 불상을 완전히 없애 버리는 것은 어떨까 생각도 해 본다.


그 마당바위에서 내려다 보니 입석바위 지나 팔각정이 보이고 그 아래 목포여객터미널과 목포외항 그리고 남항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인해 한동안 더 머물며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다시 팔각정 방향으로 어렵게 발걸음을 돌린다.


마당바위를 내려가니 관운각 팔각정 바로 위에 입석바위가 서 있다.

관운각에서 바당바위로 오르는 길에 있는 바위로 크고 작은 장방형의 네모 반듯한 두 개의 바위다.

일등봉의 능선에 걸쳐있는 이 바위는 바위능선의 지질변화 과정 중 수직으로 절리되어 기둥처럼 우뚝 서 있게 된것으로 정면에서는 사각기둥 모양의 평범한 입석으로 보이지만 옆면이 길에 뻗어있어 상당한 규모임을 자랑하고 있으며 이곳이 유달산 상봉으로 가는 길목임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 입석바위를 내려 와 관운각 팔각정을 돌아 내려오니 거북바위가 보인다.

관운각 밑에 있는 바위로서 고개를 내밀고 엎드려 있는 거북이 모양이란 설명석이 보인다.

하지만 이 산객에게는 전혀 거북바위 형상은 보이지 않는다.

관운각 바로 아래에 있는 바위로 모양이 고개를 내밀고 엎드려 있는 거북이와 닮았다는 이 바위는 관운각을 지나 바다로 다시 돌아가려는 거북이의 모습인데 여기 이외에도 유달산에는 거북형상을 한 바위들이 많다.

거북이가 바라보는 곳에 떡바위가 있다.


거북바위를 뒤로 하고 다시 내려가니 애기바위(두엄씨바위)가 등로 우측 위로 보인다.

큰 엄씨가 애기를 업고 작은 엄씨에게 등을 돌리고 작은 엄씨도 애기를 업었는데 큰 엄씨를 보려고 하는 모양이라 붙여진 이름이란 설명석이 보인다.

그 바위를 아무리 바라봐도 두 엄마가 애기를 업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아 고개만 흔들고 있다.


애기바위를 지나면 곧이어 조대바위(낚시터바위)가 보인다.

고하도 앞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팔짱을 끼고 앉아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는 낚시꾼을 보는 듯하다.

등뒤의 큰 바위에 비스듬히 기대어 책상다리로 앉아 있는 모양인데 네 개의 바위가 합쳐져 이러한 모양을 만들어 냈다.

이곳에서는 다도해의 잔잔한 바다와 길게 늘어진 고하도와 옹기종기 모여있는 온금동 마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으며 안개자욱한 날에 바라보면 더 이채롭다.


그렇게 애기바위와 조대바위를 구경한 후 다시 정상 마루금으로 내려 와 천천히 내려가니 좌측으로 유선각과 노적봉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고 이곳에서는 우측 등로를 타고 400미터 남아 있는 아리랑고개 방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지금까지 원없이 걸었던 바위 등로를 버리고 이제는 평이한 내리막 동백나무 등로를 타고 아리랑 고개 방향으로 내려간다.


뚜렷한 넓은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낙조대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데 그 아래에는 둘레길 표시가 되어 있다.

잠시 더 내려가니 바위가 보이고 곧이어 운동시설이 있는 공터에 도착을 한다.

그 운동시설이 있는 공터에는 주민 몇명이 운동을 하고 있어 인사를 나누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 저 멀리 목포여객터미널 앞에는 커다란 여객선 하나가 보인다.

유달산둘레길 안내판을 지나 내려가니 아리랑고개 이정표와 민가가 있는 마을에 도착을 한다.


유달유원지와 유달초교 갈림 이정표를 지나 민가 옆으로 내려가니 1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곳 도로 위에는 유달로 53번지길이란 도로 표지판도 보인다.

등산로 입구 유달산소요정과 유선각이란 안내판을 지나 도로를 건너 반대편 시멘트 포장도로로 오르니 등로는 우측 밭을 버리고 좌측 능선 방향의 비포장 임도같은 능선으로 들어가 조금 더 올라가 본다.

완만하게 오르니 방송스피커가 많이 달려있는 중계탑에 도착을 해 방금 내려 온 유달산을 올려다 본다.


유달산 일등바위에서부터 마당바위 지나 입석바위와 관운각 팔각정을 지나 유달로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한눈에 펼쳐져 있다.

이제 등로 좌측으로는 목포 해안도로를 타고 남해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며 조망이 아닐 수 없다.


간간히 바위가 섞여 있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또 다시 거대한 바위들이 나타나고 자세히 살펴보니 그 바위에는 경상도우회기념회장이란 글씨와 함께 모여있던 사람들의 이름이라 생각되는 글씨들도 보인다.

그 바위를 지나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허기진 뱃속에서 쉬었다 가자 난리를 치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내려가다 등로 좌측을 내려다 보니 다순금 마을이 펼쳐져 있고 그 아래 저 멀리 순환도로 아래 남해바다에는 거대한 굴뚝 4개가 서 있는 배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잠시 살펴 본 후 내려가니 다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영산기맥 마지막 다순금 바위쪽을 조망해 보며 옆지기를 찾아 보지만 아직은 그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지나 온 바위군들을 올려다 보고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잡목들과 잡풀들이 펼쳐진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마지막 전망바위가 있는 전망대에 도착을 해 옆지기에게 전화를 하고 앉아 준비한 간식과 과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한동안 쉬면서 주위 풍경을 가슴에 담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좌측으로 크게 꺽여 내려가는 계단을 타고 다순금 마을로 내려가 본다.


내려가다 살펴보니 다순금 마을 지나 목포 해안 순환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오늘 산행 날머리인 다순금 목포애향이란 이정석도 보인다.

그곳에 혹시 옆지기의 애마가 있을까 찾아 보지만 보이지 않아 다시 천천히 발걸음 돌려 하산 등로를 따른다.

진행하다 보니 등로 좌측의 다순금 마을은 오래된 건물들과 공자들이 많은지 전혀 개발되지 않은 낡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 마을로 인식되고 있다.


다시 내려 와 방금 전 쉬었던 전망바위를 올려다 보니 거대한 바위 암릉으로 보여진다.

잠시 밭 사이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금새 민가 뒷길로 내려가고 갈림 삼거리에서는 좌측 임도를 타고 민가 좌측의 도로를 타고 내려간다.

등로 우측으로는 고하도 용머리와 목포대교가 이제 손에 잠힐듯 가깝게 다가와 있다.


그렇게 민가 사이로 나 있는 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동네 주민이 나와 바라보며 이상한 듯 고개를 가로 젓는다.

안전철봉이 설치된 콘크리트 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온금길이란 도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등산로 안내판을 지나 홍어야 놀자란 낚시 용품 판매점이 있는 해안 2차선 포장도로에 내려 선다.


옆지기에게 전화를 하니 근처에 있다는 전언이 들리고 곧이어 그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걸어가니 목포시 인어바위라는 버스 정류장을 지나 곧이어 목포애향이란 커다란 이정석과 목포개항110주년 기념 그리고 목포는 항구다란 노래가사를 적어 놓은 이정석이 있는 산행 날머리에 섰다.

옆지기가 도착을 하고 사진 몇장 남기고 큰 딸과도 완주의 기쁨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시감이 화살처럼 흐르고 있다.

그렇게 많은 사진 남기고 옆지기와 큰 딸 이렇게 세명이 목포 시내로 나가다 목욕탕에서 샤워 후 맛있는 식당에 들려 영산기맥 산행의 마무리를 자축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2013년 3월 23일 시작한 영산기맥 산행을 거의 2년 동안 무탈하게 마치고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목포 시내에서 잠시 구경 겸 식사를 하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여유롭게 목포를 출발 해 집으로 복귀하니 저녁 시간이 지나고 뻐근한 두 다리의 여독을 풀어 주며 즐거운 주말을 보낸다.


이제 남아 있는 진양기맥과 팔공기맥 그리고 금남기맥을 마치면 9기맥도 무탈하게 완주가 될 것이다.

서두르지 말고 여유롭게 한발 두발 걸어 다시 목표한 9기맥 완주를 꿈꿔 본다.


함께한 가족에게 감사하며 그동안 무탈한 산행을 이끌어 준 산신령과 영산기맥 산행에서 만났던 수많은 인연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시간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