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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맥과 중요 지맥 산행(완료)/영산기맥(호남·완)

영산기맥 제8구간 도산삼거리에서 감돈삼거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5.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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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전라남도 무안군과 목포시의 영산기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5년 02월 13일 (금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맑고 청명하였으며 기온도 적당해 조망과 산행하기 좋았던 날씨

산행온도 : 영하 07도에서 영상 04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도산삼거리(22번과 24 2차선 포장도로 교차로)-시멘트 포장 임도-드래곤농장-매곡육교(서해안고속도로 통과)-시멘트 포장 임도 좌측-거대한 원형 탱크-일출-갈림 삼거리에서 우측 대나무 밭-수반마을 포장도로-수반회관과 경로당-반곡정 정자-유인나주김씨정절비-팔각정-학산박공행적비-양림회관과 경로당-2차선 지방도로(양림.수반마을 이정석과 버스정류장)-매곡 버스정류장-무안읍 갈림 삼거리-밀양박씨세장산-풍원농산-60 4차선 포장도로-상봉산 등산 안내도-능선진입-비포장임도-병산(130.7)-비닐 마늘밭-시멘트 포장도로-상봉마을공동농기계 보관창고-상봉 마을 포장도로-상봉마을 경로당과 팔각정자-논 사이 포장도로-뼈바우재 상봉산 등산 안내도-지하통로(광주목포간 1번 고속화도로 통과)-교촌길 마을 포장도로-도은 건강원-상사지마을 이정석-2차선 포장도로-경아농장-초당대 갈림 삼거리 도로 이정표-무안 황토랑-무안 하마로와 창포로 도로 표지판-무안 아뜨리움 아파트-전화국 버스 정류장-현대 오일 주유소-무안승달문화예술회관 이정표-공립무안군 노인전문요양병원 입간판-고려농수산-무안석재-무안군선거관리위원회-남산체육공원 이정표-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무안사무소-남산공원주차장-6.25 참전유공자 기념비-성남리 석장생 안내판-3.1 독립운동 무안의적비-국궁장-충혼탑-비포장 임도-돌계단-공원 체육시설과 사각정자-남산사랑 철쭉사랑 이정판-체육시설-남산 이정표(충혼탑 0.6 Km, 남산팔각정 0.2 Km, 남산밑 오거리 1.0 Km)-안전 목책과 로프 구간-돌탑들-나무계단-남산 팔각정-전망바위(초당대학교 조망)-폐쇄된 우물-바위 전망대-남산 이정표(충혼탑 1.1 Km, 남산밑오거리 0.5 Km, 초당대기숙사 0.5 Km)-무명고개(전주이씨묘지)-안전철봉과 로프 구간-남산밑오거리 이정표(남산 1.1 Km, 사색의 숲 0.7 Km, 전망의 숲 1.7 Km, 승달산 12.1 Km, 연징산 2.2 Km, 미륵사 0.7 Km, 만남의 숲 폭포 0.7 Km)-벤치 1개와 무안유수원지 조망-잘 발달된 등로 타고 잠시 알바-묘지지대-잡목과 희미한 등로-사색의 숲 약수와 팔각정-사색의 숲 삼거리 이정표(남산 2.4 Km, 사색의 숲 0.6 Km, 승달산 11.0 Km, 전망의 숲 0.4 Km, 연징산 1.4 Km)-대치령-전망의 숲 육각정과 이정표(만남의 숲 폭포 1.1 Km, 축구장 1.0 Km, 승달산 10.7 Km, 연징산 1.8 Km)-나무계단-사격장 계곡 이정표(승달산 10.5 Km)-폐헬기장-무명묘지-바위 암봉-바위 전망대-무명묘지-움막-병천리 임도 종점 이정표(청천리 1.9 Km, 승달산 8.7 Km, 남산 팔각정 5.6 Km, 연징산 3.6 Km)-넓은잔디공터-청천리 임도 종점 이정표(청천리 1.9 Km, 승달산 8.6 Km, 연징산 3.7 Km)-통나무 계단-288봉 산불감시초소-전망바위-무명묘지2-동백나무 등로-바위 암릉지대-바위전망대-통나무 계단-적지와 경계점 삼각점-태봉작전도로 이정표(남산 팔각정 7.9 Km, 연징산 등산로 0.3 Km, 대치리 1.4 Km, 승달산 등산로 0.3 Km)-태봉 비포장 작전도로-능선 이정표(연징산 6.4 Km, 태봉작전도로 0.5 Km, 승달산 등산로 6.0 Km)-능선 진입-무안CC 비포장 임도-능선진입-헬기장-264.6-바위 전망대-비포장 임도-태봉재 이정표(연징산 6.8 Km, 태봉리 1.7 Km, 깃봉 2.3 Km, 대치리 2.0 Km)-구리제-무명봉-무명안부-산죽지대-무명봉-무명묘지 안부-무명묘지지대-산죽지대-구리봉 묘지 이정표(사천리 능선 1.2 Km, 태봉능선 0.3 Km)-태봉능선 이정표(구리봉 0.3 Km, 깃봉 0.7 Km, 목우암입구 0.7 Km, 태봉제 1.5 Km)-벤치1-깃봉(126, 승달산 등산 안내판)-바위 암릉-사자바위산(317) 사각정과 이정표(깃봉 0.3 Km, 하루재 0.8 Km)-벤치1-벤취1-벤치1-하루재(236미터) 움막과 묘지 및 안부-하루재 철쭉소공원-안전목책과 로프 구간-승달산 갈림길 이정표(하루재 0.4 Km, 승달산정상 깃대봉 0.7 Km, 목포대학교 2.2 Km)-산불감시초소봉-이정표(하루재, 승달산정상, 산불감시초소)-수월동 갈림길 이정표(하루재 0.5 Km, 승달산정상 깃대봉 0.6 Km, 수월동 0.1 Km)-안전목책과 로프 구간-무명묘지-승달산 갈림 헬기장과 삼각점-승달산 깃대봉(333) 정상석과 산불감시 카메라-승달산 갈림 헬기장 복귀-안전 목책과 로프-무명묘지-이정표(헬기장 0.2 Km, 감돈저수지 3.3 Km, 부성농장 0.4 Km)-통나무 계단-안전목책과 로프 구간-안전목책과 로프 구간-무명봉-안전목책과 로프 구간-안부 이정표(헬기장 0.7 Km, 감돈저수지 2.6 Km, 연춘동 0.2 Km, 화천마을 0.5 Km)-무명묘지-안전목책과 로프 및 계단 구간-이정표(헬기장 1.6 Km, 월명동 0.6 Km, 월선동 0.9 Km)-무명묘지-이정표(헬기장 1.9 Km, 시제마을 1.5 Km, 월명동 0.4 Km)-통나무 계단-무명묘지 2-이정표(헬기장 2.5 Km, 꽃장마을 0.5 Km, 시제마을 0.4 Km)-밀양박씨 묘지지대-안전목책과 로프 및 계단 구간-무명묘지들-이정표(헬기장 3.0 Km, 꽃장마을 0.5 Km, 신촌마을 0.4 Km)-이정표(신촌마을 0.4 Km, 감돈저수지 0.8 Km, 꽃장마을 0.5 Km)-경주최공묘지-비포장 임도-꽃장마을 축사-꽃장마을 시멘트 포장도로-두레농장-2차선 포장도로-감돈저수지 안내판-2차선 포장도로-감돈재 삼일농장-산수정 이정판-감돈재 삼거리(법천사, 승달산 목우암, 달산수원지, 국립 목포대학교 이정석 및 안내판)-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7.02 Km (GPX 산행 자료 기준)

산행시간 : 무안의 남산을 들려 기맥 산행을 진행하며 많은 사진 찍고 여유롭게 그러나 꾸준한 속도로 08시간 14분 (07시 18분부터 15시 32분까지)

교통편 : - 새벽 일찍 애마 이용해 도산삼거리 도착

           - 산행 후 감돈삼거리에서 옆지기 도움으로 무안으로 이동 후 샤워 및 손님과 자녁 미팅

영산기맥은? (박종률님 자료를 인용)
영산기맥은 백두 대간이 덕유산을 넘어 지리산을 목전에 두고  백운산 앞의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을 분기하여 장안산, 팔공산, 성수산, 마이산을 지나 모래재위 조약봉에서(주줄산 또는 주화산) 한줄기는 북으로 금남정맥( 금강정맥)을 분기하고 또 한줄기는 서남진하는 호남정맥으로  만덕산, 내장산, 추월산, 무등산, 조계산, 백운산, 망덕산에서 끝이나는 섬진강의 서쪽 울타리가 된다.

영산기맥은 이 호남정맥의 내장산과 백암산 사이의
순창새재 바로 윗봉에서 분기하여(530미터) 입암산(655미터), 방장산(742.8미터), 문수산(620.5미터), 구황산(480미터), 고산(520미터), 고성산(546.3미터), 월랑산(440미터), 태청산(93.3미터), 장암산(481.5미터), 불갑산(515.9미터), 모악산(347.8미터), 군유산(403.2미터), 발봉산(180.8미터), 감방산(257.0미터), 병산(130.7미터), 남산(189.0미터), 마협봉(290.0미터), 승달산(317.7미터), 국사봉(283.0미터), 지적산(183.0미터), 대박산(155.6미터), 양을산(151.0미터)을 지나 목포시 유달산(228미터)에서 다순금에 이르는 도상거리 159.5 Km의 산줄기를 말한다.영산강의 북쪽 울타리를 이루는 산줄기이기에 영산북기맥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통상 영산기맥하면 이 영산북기맥을 말한다.
반면 영산강의 남쪽 울타리를 이루는 산줄기는 호남정맥이 무등산과 계당산, 국사봉을 지나 삼계봉에 이르기전 바람봉에서 분기하는 땅끝기맥을  따라 남진하여 월출산을 지난 벌뫼산에서 땅끝기맥은 남진하여 땅끝으로 가고 또 한가지가 분기하여 흑석지맥이라고 불리는 가학산, 두억봉, 흑석산, 선황산으로 해서 목포와 마주보는 소아와 대아산에 이른다.
즉  영산강의 남쪽 울타리는 이 호남정맥의 새재봉 분기점에서 바람봉 분기점까지 180.1 Km, 땅긑기맥의 바람봉 분기점에서 별뫼산까지 약 58.3 Km, 그리고 
흑석지맥의 별뫼산에서 대아산까지 약 39.2 Km가 될것이다.

 

 

생각보다 좋은 등로를 타고 멋진 조망을 즐기며 마음껏 마루금을 걸었던 아름다웠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오랫만에 영산기맥 산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마음이 어딘지 모르게 비장감마저 느낀다.

지난 해인 2014년 1월에 어렵게 도산삼거리에서 산행을 마친 후 차일피일 마루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면서 호남지방으로 내려 갈 기회를 잃어 버린 후 꼬박 1년을 채우고 난 후 떠나는 시간이기에 더욱 그립기도 하고 마음 설레이기도 하는 시간이다.

특히나 산행지인 무안에 큰 일이 생겨 자주 내려가면서 영산기맥 마루금을 살펴보았기에 그 설레임이 더 커는지도 모를일이며 오늘 역시 그곳 무안에서 오후에 일을 봐야 하기에 어렵게 옆지기와 큰 아이를 꼬드겨 함께 내려가는 시간이 되었다.

이 산객이야 산행을 하고 손님 만나 일을 마치면 되지만 옆지기와 큰 딸아이에게는 힐링이 되는 여행의 기분으로 떠날 수 있기를 바라며 출발하기에 큰 의미 역시 부여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초당대학교 북쪽에 있는 무안의 남산을 둘러보고 사격장 계곡을 지나면서 부터는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이 셀 수도 없을만큼 많은 빨래판 등로를 만들고 오르락 내리락을 하면서 조금은 지루하게 생각될 쯤 드디어 315봉의 삼각점이 있는 승달산 갈림 헬기장에 도착을 한다.이곳에서 승달산 정상은 좌측인 동쪽으로 300여미터 떨어져 있기에 잠시 고민을 하지만 오늘이 아니면 언제 다시 내려 와 승달산을 오를 수 있을지 기약이 없기에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승달산 정상에 올라 뒤따르는 목포에서 왔다는 산객 한분에게 부탁을 해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정상석을 앞에 두고 사진 한장 남겨 본다.이곳 승달산은 산이 없기로 유명한 전남 무안의 진산으로서 산의 높이는 333봉으로 높지 않지만 주위에 높은 산들이 없어 조망 하나는 일망무제 거침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곳이다.다만 그저 승달산으로만 알고 올랐는데 올라 와 보니 이곳 정상은 승달산 깃대봉이란 또 다른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승달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니 참으로 많은 자료들이 보이는데 특이한 것은 산의 높이와 관계없이 불교와 매우 깊은 야ㅕㄴ관을 가진 산처럼 보인다는 것이다.무안군 청계면과 몽탄면에 걸쳐있는 승달산은 백두대간의 서남부 마지막 지류로 해발 333미터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남도의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한눈으로 다도해의 아름다운 섬들을 조망할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겨울에도 훈훈한 훈풍을 느낄 수 있는 명산이다.
또한 토양이나 기후 조건이 야생난이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을 지니고 있어 난 자생지로도 이름난 곳으로 승달산이라는 명칭은 고려 인종(1122년) 때 원나라 승려 원명이 이 산에 올라와 교세를 크게 떨쳤고 그를 찾아온 제자 500여명이 한꺼번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데서 유래되었으며 법천사, 목우암, 총지사지 등 불교사적이 많다.
승달산은 무안군 청계면 과 몽탄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현재 청계면에 잇는 국립 목포대학 뒷산이 바로 승달산이다.
승달산이란 지명의 유래는 이 산에 있는 법천사와 관련이 있는데 신라 성덕왕 24년(725년) 서역 금지국의 승려 정명이 처음 이 절을 창건했고 뒷날 고려 의종떄 원나라 임천사의 승려 원명이 중창 했는데 그 때 원명을 찾아온 5백명의 제자들이 모두 도를 깨쳤다고 하여 승달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 승달산에는 몇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국립지리원에서 퍼낸 지도는 333고지를 승달산으로 표기 하고 있지만 이는 깃대봉( 산 정상부가 마치 깃발이 나부끼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깃대봉이라 함)을 잘못표기 한 것으로 승달산은 이곳에서 서북쪽에 있는 목포대학 뒷산이며 노승봉으로도 불린다.
 승달산은 목우암의 창건과 관련되어져 있다고 전해오는데 목우암은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서역 금지국의 승 정명이 세운 암자오서 고려시대 인종과 의종 연간(1131~1162)에 중국 임천사의 스님 원명이 고쳐 지었다. 그때 제자 500여 명이 찾아와 도를 깨달았다고 하여 산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목우암의 원명 스님이 꿈에 백운산에 있는 총지사에서 소가 한 마리 나와 이 암자에 이르는 것을 보았다. 잠에서 깨어난 스님이 이것을 이상히 여겨 암자에 가보니 계속 바위에 소 발자국 흔적이 있었다고 하며 이 발자국을 따라와 절을 지어서 이름을 목우암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이곳 승달산으로 진행하는 등로 좌측으로 계속 목우암 하산 갈림 이정표가 있었음을 상기시키며 그 연관성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무안에 있는 손님과 전날 전화를 하다 보니 오후 5시쯤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고 전해오고 서울에서 느긋하게 출발하다 보면 또 하루가 다 지나기에 옆지기와 큰 딸을 꼬드겨 새벽 일찍 내려 가 남아 있는 연산기맥 2구간을 모두 걷기로 하고 새벽 3시 집에서 출발을 한다.

뻥 뚫린 도로를 타고 함평 휴게소에서 새벽 아침을 먹은 후 산행 들머리인 도산삼거리에 도착을 하니 이곳 역시 도로 공사가 진행중이고 공사중인 옆 공터에 안전하게 애마를 주차시킨 후 모자라는 잠을 청해 약 1시간 가까이 잠을 잔 후 눈을 떠 보이 벌써 아침 7시를 넘기고 있다.

산행 준비 후 도로공사중인 22번과 24번 2차선 지방도로가 이어지는 도산삼거리 들머리에서 남쪽 밭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 임도를 타고 길고도 먼 영산기맥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7시 18분으로 헤드렌턴 불빛이 없어도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밝음이 찾아 오고 있다.

옆지기와 딸 아이는 애마속에 남아 조금 더 부족한 잠을 청한 후 무안으로 들어 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후에 감돈삼거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기에 큰 걱정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출발하는 시간이 되었다.

 

 

무박 산행을 하면서 늘 느끼는 감정이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여명이 밝아오는 이 시간에 호젓하게 홀로 조용한 시골 마늘 밭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걸어가는 시간이 너무나 상쾌하고 좋아 그저 오늘 하루도 온종일 지금같은 그런 세상으로 남아 있기를 바래보며 걸어가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정상 마루금은 시멘트 포장 도로 좌측으로 올려다 보이는 나즈막한 산줄기라 생각되지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가꾸며 살아 가다 보니 이렇게 시멘트 포장도로가 생기면서 정상 마루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아닌지 하는 느낌이다.

그렇게 조금 더 진행을 하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우측으로 크게 걲이며 휘어지는데 그 바로 옆에는 드래곤 농장이라는 양계장처럼 보이는 농장이 보이고 그 한쪽에서는 강아지가 심하게 짓어대고 있기에 조용하면서도 재빠르게 그 농장을 빠져 나가 본다.

 

 

이 산객이 살았던 시골에도 역시 한우 농장을 경영하는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구제역이 한번 터지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농가에 너무나 크나큰 타격을 입혀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재빨리 도망치듯 그 양계 농장을 통과한다.

다시 허허벌판에 비닐을 씌워 놓은 마늘 밭만이 거대한 평야를 뒤덮고 있는 풍경이 새롭게 다가오는 무안의 풍경으로 가슴에 남겨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잠시 더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좌측으로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밭 넘어 살펴보니 북무안 IC가 있는 고속화도로가 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시멘트 포장 도로는 다시 좌측으로 휘어지며 매곡육교를 통해 그 고속화도로를 통과하도록 되어 있다.

살펴보니 서해안고속도로의 지류로서 무안공항으로 빠져 나가는 고속화도로처럼 보이는 4차선 고속화 도로였다.

 

 

그 매곡육교를 지나자마자 시멘트 포장도로는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우측 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커다란 둥근 원통형의 뭉통처럼 보이는 통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 진행한다.

나즈막한 둔덕을 넘으니 이제 도로 좌측인 동쪽에서 일출이 시작되려는지 붉게 물들어 가는 하늘이 참으로 예쁘게 다가오고 잠시 발걸음 멈추고 농가와 나즈막한 야산 위로 떠 오르는 아침 햇살을 맞이해 본다.

무안읍 고절리와 용월리 마을 위로 떠 오르는 아침 햇살이 또 다른 매력으로 가슴에 안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침 일출을 기다려 보지만 아직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릴듯하여 계속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츠ㅏㄱ 마늘 밭 넘어 거대한 축사건물과 기울어져 가는 민가가 묘한 대조를 이루고 그렇게 시골 풍경을 즐기다 보니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좌측 직진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휘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금새 하늘을 뒤덮은 대나무 밭이 나타나고 그곳을 빠져 나가니 기와집의 민가들이 함께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이 나타난다.

잠시 더 걸어 들어가는 수반회관과 수반경로당이란 건물이 눈에 드,ㄹ어 오는데 그 한쪽에는 무더위쉼터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어 한여름 무더위에 쉴 수 있는 장소임을 알 수 있다.

3년 전 돌아가신 부모님이 살았던 시골에도 역시 경로당이 있었는데 내려갈 때마다 약간의 경비를 드려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눠 드실 수 있도록 해 드렸던 추억에 잠시 발걸음을 멈춰 본다.

 

 

수반회관이 있는 좁은 공터에는 삼거리 포장 갈림길이 있는데 우측 도로를 버리고 도로가 좌측으로 크게 휘어지는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공사중인 한옥이 보이고 그 옆으로는 반곡정 정자 ㄷ둔공비가 서 있어 이곳이 정자임을 알 수 있다.

그 반곡정을 벗어나 나즈막한 둔덕을 넘자 이제 포장도로 좌측 저 멀리에서 찬란한 아침해가 떠오르고 잠시 발걸음 멈추고 그 아침 햇살을 사진에 담아 본다.

 

이곳 수반마을은 전남 무안군 매곡리의 다섯개 마을중 하나의 마을로서 매곡리는 무안읍 소재지에서 북으로 4.5 Km지점에 위치하며 동으로는 보평산의 줄기가 가로 놓여 있다.

수반마을의 대표성씨는 무안박씨이고 마을은 신촌서쪽에 있고 감방산을 중심으로 옥녀봉과 임자봉이 소반을 받은 형국이라 하여 반곡으로 부르다가 후에 수반으로 개칭하였는데 마을형성은 고절리 무안박씨 박익경의 증손이 을사사화 이후 이 마을로 내려와 정착하였다고 전해지며 현재 그가 시와 글을 읊조리며 문인제자들과 강학했다는 죽헌정이 남아있다.

현대화된 도시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시골 마을의 형상이지만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왠지 서글품까지 느끼게 만든다.

 

 

반곡정을 지나 다시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에 유인나주김씨정절비가 세워져 있고 거대한 느티나무가 서 있는 둔덕을 넘어 진행을 하니 도로 좌측으로 eㅏㅁ장을 해 놓은 거대한 팔각정자가 보여 들어가 살펴보지만 어떤 용도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시골 노인분들의 쉼터로서 봄부터 가을까지 이용되는 장소가 아닐까 그저 추측만 해 볼 뿐이다.

곧이어 학산박공행적비를 지나 계속 도로를 타고 진행을 한다.

 

 

그곳을 지나니 도로 우측으로는 계속 오래된 미을 민가가 보이지만 좌측으로는 마늘밭과 비어있는 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이제는 수반마을에서 양림마을로 바뀌었는지 양림회관과 경로당 간판이 보이고 그 건물 바로 앞 도로 건너편에는 그물로 쌓아 놓은 돌탑도 보인다.

이곳 양림망르역시 무안박씨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마을이 형성되던 시기에는 감방산을 중심으로 마을이 옥여봉과 임자봉이 소반을 받은 형국이라 하여 소반이라 불렀으나 후에 매곡리로 개칭되면서 양림으로 부른다. 

마을형성에 관해서는 이웃한 수반마을의 무안박씨 박활의 아들 박경보가 결혼하여 이 마을에 분가해 살면서 마을의 터전이 닦아졌다고 전해지며 현재 무안박씨의 거의 완전한 동성마을을 이루고 있다.

 

 

그 양림회관과 양림노인정을 지나니 삼거리 갈림 도로가 나타나는데 그 앞에는 2010년 아름다운 무안가꾸기 최우수 양림마을이란 커다랑 이정석이 서 있고 사진 한장 남긴 후 삼거리에서 우측 도로를 타고 계속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생각보다 바람도 없어 춥지 않은 기온에 자켓과 장갑을 벗어 배낭에 넣고 다시 출발 해 나타나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그 삼거리 한쪽에는 양림. 수반마을이란 거대한 이정석이 서 있고 도로 건너에는 수반.양림이란 버스 정류장이 보이는데 좌측으로는 무안방향이 우측으로는 현경방향이 표시되어 있다.

이곳 삼거리에서 우측 도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조금 더 넓어진 2차선 자동차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또 다른 버스정류장이 보이는데 이곳에는 매곡이란 글씨가 보인다.

그 버스 정류장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우측으로 무안으로 빠지는 표시가 되어 있고 직진의 방향으로는 성봉마을이란 글씨도 보이는데 이 산객은 상봉마을 방향의 직진 도로를 따라 진행을 한다.

 

 

우측의 무안가는 도로를 버리고 계속 직진의 상봉마을 방향으로 걸어가니 도러는 이제 우측으로 자전거 전용길까지 만들어져 있다.

밀양박씨세장산을 사진에 담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낡은 건물이 보이는데 살펴보니 풍원농산 건물이다.

그곳을 지나 밀양손씨세장산을 지나니 도로 우 측으로 60번 4차선도로가 지나는데 바로 앞으로는 1번 지방도로아 만난다는 도로 표시판이 보인다.

생각보다 많은 차량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기에 조심스럽게 그 4차선 60번 포장도로를 건너 상봉산 등산안내도 앞에 선다.

 

 

이 상봉산을 찾아보니 상봉산 또는 비응산과 병산 그리고 자루뫼라고 불려졌던 산으로서 그 아래에는 교촌5리의 상봉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교촌5리인 상봉마을은 상봉산 밑에 있는 마을로 서쪽에 병산이 있는데 산의 형상이 마치 봉이 날아가는 형국이라 하여 상봉이라 부르다 일제시대 때 위에 있는 봉우리란 뜻의 상봉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이곳에서 지루하게 걸어 왔던 시멘트와 일반 포장도로를 버리고 능선으로 들어 잠시 호젓하게 병산을 다녀 갈 수 있었다.

 

 

이곳 상봉산은 자루뫼라고도 하며 비응산 또는 병산이라 불리는 산이다.

또한 그 경치가 아름다워 유산8경중 하나에 속하는 산이기도 한데 유산8경은 무안읍에 있는 유산정에서 바라본 8가지의 뛰어난 경치를 말하는데 그 중에서 제5경인 병산청송이 변산의 푸른솔을 말하는 것이다.

이 산은 무안읍에서 바라봤을 때 읍의 서쪽을 방위하고 나쁜 액이 넘어오는 것을 방어하는 역활을 했다고 한다.

상봉마을은 원래 상곡이었는데 뒷산인 상봉산의 이름을 따서 상봉이라  했다가 일제시대 때 위에 있는 봉우리란 뜻의 상봉으로 바뀌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이 병산을 찾아가는데 편안한 임도를 타고 한동안 진행하다 생각지도 못한 알바를 해 어렵게 찾아간 정상이 되어 버렸다.

 

 

어렵게 병산 아니 상봉산의 삼각점 2개를 사진에 담고 잠시 주위 풍경을 조망한 후 다시 내려가니 넓은 비포장 임도가 열려있고 곧이어 드넓은 마늘 비닐 밭이 펼쳐져 있다.

그 마늘 밭을 가로 질러 다시 만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이곳 영산기맥도 이제 그 높이를 많이도 낮춰 비산비야를 이루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바로 옆으로 그 마루금만 살아 있다.

그래도 이렇게 그 희미한 흔적을 찾아 마루금을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걸어가는 시간이다.

 

 

다시 한동안 마늘밭을 친구 삼아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정부에서 보조를 받아 지은 마을공동농기계보관창고가 보이고 곧이어 상봉길이란 도로 표시명이 보인다.

상봉마을 팔각정이 있는 공터에서 좌측으로 돌아가면 상봉회관과 경로당이 보이고 이제 잠시 마을 민가를 벗어나 논 사이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걸어 간다.

아침 일찍부터 주민 몇명이 차량을 이용해 시장을 다녀 오는지 눈에 들어오는데 그 외에는 아주 조용한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이곳에서 등줄기와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남아 있던 조끼를 벗어 배낭에 넣고 걸어간다.

잠시 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이제 1번 고속화도로가 보이는데 지명 이름이 무안스포츠파크라 되어 있고 주위에서 60번 지방도로로 갈리는 도로 이정표가 보인다.

계속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방금 전 봤던 1번 고속화 도로를 통로를 통해 건너도록 되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상봉산 등산 안내도가 서 있는 뼈바우제이다.

왜 뼈바우제일까 궁금하지만 그 어느곳에서도 지명유래를 찾을 수 없으니 아쉽기만 하다.

 

 

지하통로를 통해 1번 고속화도로를 건너니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가 계속 이어지고 도로 좌측으로는 대나무 밭이 그리고 우측으로는 논들이 보인다.

잠시 더 걸어 가 민가 담벼락을 살펴보니 이곳의 지명이름이 교촌길로 되어 있다.

낡은 민가 사이를 통해 교촌길을 걸어가니 도로 좌측에 가정집처럼 보이는 도은건강원이 보이고 곧이어 나타나는 갈림 삼거리에서 직진의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90도 꺽어 진행을 한다.

 

 

우측으로 꺽어 짧게 걸어가니 갈림 삼거리에 2006년 마을환경평가 우수마을 상사지마을이란 커다란 이정석이 서 있고 좌측인 남쪽으로는 청계방향이 그리고 우측인 북쪽 방향으로는 현경방향 도로 표지판이 서 있다.

이곳에서 좌측 현경 방향인 무안 방향으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사각정자가 보이고 그 바로 앞에 경아농장으로 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인다.

 

 

계속 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무안 방향으로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산자락을 돌아 우측으로 길이 나 있어 그곳으로 진행하는 것이 올바른 마루금이라 생각이 들지만 초당대학교 뒷편의 무안 남산을 올라보고 싶고 시간이 된다면 연징산까지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있어 조금 더 계속 도로를 타고 걸어 가 본다.

그 산모퉁이를 지나 걸어가다 우측을 보니 이제부터 진행해야 할 초당대학교 뒷편의 남산과 연징산이 올려다 보이는데 저 연징산까지 다녀 올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계속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초당대학교로 들어가는 도로 안내판이 보이는데 이곳에서도 잠시 고민하지만 결국 직진을 해 무안읍 방향으로 걸어 들어간다.

조금 더 걸어가니 작은 개울 앞에 무안황토랑이란 길이 보이고 작은 개울 위 도로를 건너 걸어가니 하마로와 창포로란 도로 표지판도 보인다.

도로 우측으로 아뜨리움 아파트가 보이는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는 승달타워도 보이고 우측 저 멀리에는 백제고등학교도 보인다.

광주와 목포가는 도로 표지판을 지나 남진자동차부품 안내판을 통과하니 도로 좌측에 KT 무안 건물이 보인다.

그곳 KT 건물이 있는 삼거리에서 1번 4차선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진행을 해 본다.

초당대학교는 도로 우측을 타고 걸어가다 좌측으로 가면 더 쉽고 빠르게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진행을 하면 무안 남산과 연징산을 다녀오기가 까다로워 이렇게 진행을 하게 되었는데 오후 늦게 약속한 손님과의 시간도 충분할 것 같아 조금은 무리를 해 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KT건물을 지나 진행하니 전화국이란 버스 정류장이 보이는데 좌측으로는 초당대학교 우측으로는 무안우체국 표시가 보인다.

조금 더 걸어가니 현대 오일 뱅크 주유소가 보이고 곧이어 무안 승달문화예술회관 이정판도 서 있다.

공급 무안군 노인전문요양병원 입간판을 지나 우측으로 고려농수산이란 업체 건물도 통과하니 넓은 공터 뒤로 무안석재와 원불교 건물도 보인다.

무안군선거관리위원회 건물을 지나 우측으로 남산체육공원과 승덕정 그리고 충혼탑 이정판을 보고 콘크리트 폽잩ㅇ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올라간다.

 

 

우측 시멘트 도로를 타고 오르니 좌측으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무안사무소가 보이고 곧이어 남산공원주차장 빗돌이 서 있다.

6.25 참전유공자기념비를 지나 오르니 성남리석장생 안내판이 서 있고 좌측으로 항일독립투사전적비와 국궁장이 보인다.

다시 뒤돌아 나와 올라온 방향에서 우측으로 가니 순직기념비와 함께 드높은 충혼탑이 서 있다.

나라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지켜 준 호국영령들에게 잠시 묵념을 올리고 출발을 한다.

 

 

이제부터 넓은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를 타고 오르니 돌계단이 나타나고 너럭바위가 보이는데 그곳으로 오르니 방금 지나온 무안읍내의 시가지가 환히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영산기맥 마루금도 고개를 내밀고 있다.

다시 위험하지 않은 암릉 구간을 오르니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좌측으로는 사각정과 운동시설들이 보이고 등로는 우측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측으로 꺽어 오르자 마자 우측으로 남산사랑과 철쭉사랑이란 입간판이 서 있어 봄이 되면 넓지는 않지만 제법 멋진 철쭉이 무안 시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소나무가 식재된 듯한 넓은 등로를 타고 오르니 운동시설이 있는 무명봉에 오르고 그 한쪽에 놓여 있는 둥그런 바위를 사진에 담아 본다.

그 무명봉 지나서는 이제부터 올라야 할 남산 팔각정에서 남산밑오거리 방향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다시 더 진행하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으로 남산팔각정이 있기에 무조건 남산 팔각정 방향으로 급경사 오르막 등로를 따른다.

안전 목책과 로프구간을 지나 오르니 금새 몇개의 동탑들을 지나 남산 팔각정이 보이고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남산팔각정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본다.

전국에 수많은 남산이 있는데 이곳 무안의 남산에는 또 어떤 내용이 숨어 있을까 궁금해 자료를 찾아 보지만 제대로 된 자료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남산 정사의 팔각정에 올라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본다.

먼저 북쪽으로 내려다 보니 바로 발 아래 무안읍내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도로가 드러나 있다.

 그 뒤 저 멀리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영산기맥 마루금이 비산비야를 이루며 끊어질 듯 이어져 온 멋진 모슺으로 이 산객의 가슴속으로 남겨진다.

1년 전 지나 온 감방산과 함평쪽 산군들도 아스라히 펼쳐져 있다.

 

 

그렇게 남산 정상의 팔각정에서 동쪽에서 북쪽 그리고 서쪽을 조망한 후 내려 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다 등로 우측을 내려다 보니 그곳에 정상 영산기맥 마루금과 초당대학교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저 초당대학교 옆 도로를 타고 진행해 후문으로 가 미륵사를 통해 진행하면 이 산객이 오늘 남산을 들렸다 진행하는 등로와 만나 다시 정상적인 마루금으로 진행될 것이다.

초당대학교의 역사는 길지 않은듯 하며 공무원과 간호계열 그리고 항공계열처럼 특화된 교육을 시키는 대학교처럼 보이는 작은 대학교이다.

 

 

다시 잘 발달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남산 팔각정을 들리지 않고 남산밑 어거리로 직접 오르면서 만날 수 있는 약수터가 보이는데 지금은 겨울철이라 약수도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물도 많지 않아 식수로 사용하기 어려울 것 같아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마루금을 따라 걸어 본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전망바위가 보이고 잠시 그곳으로 올라 초당대학교와 장상 마루금을 살펴보고 초당대학교 건물 뒷쪽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마루금도 살펴 본다.

높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맛으로 즐기기엔 좋은 마루금으로 다가오는 시간이다.

 

 

바위 전망대를 내려 와 다시 정상 마루금을 타고 걸어가니 금새 이정표 하나가 보이는데 살펴보니 등로 우측으로 초당대학교 기숙사까지 500미터 거리라는 이정표이다.

남산밑오거리까지의 거리 역시 500미터이니 이제 조금만 더 걸어가면 그 오거리에 도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당대기숙사 이정표를 지나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주변에는 파란 동백나무들이 눈길을 잡는다.

나즈막한 둔덕을 지나 앞에 보이는 높은 봉우리로 올라가는 줄 알았는데 그 봉우리를 우측으로 우회하며 파란 솔잎이 남아 있는 멋진 소나무 길을 따른다.

잠시 더 진행을 하니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지나 언덕을 넘는데 그 언덕 좌측으로는 전주이씨 묘지들이 보이고 곧이어 내리막 등로에는 안전목책과 로프 등로가 열려 있다.

그 등로 좌측 저 멀리에는 무안읍수원지가 잡목 사이로 내려다 보인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안전 철봉과 로프 등로를 따르니 저 아래에 오거리가 나타나고 안내판과 벤취 그리고 이정표가 서 있다.

남산밑오거리란 곳으로 미륵사에서 0.7  Km 지나왔고 남산으로 부터는 1.1 Km 지나왔다는 거리 표시가 반갑다.

이제 승달산까지의 거리가 12.1 Km이고 그 승달산에서부터 감돈삼거리까지 꽤 먼 거리이기에 아직도 걸어야 할 거리가 상당한 거리인듯 다가온다.

연징산까지 2.2 Km인데 이곳에서부터 잠시 고민의 시간이 시작되고 결국 이곳 연징산은 들리지 못하고 진행하는 아쉬운 시간이 되었다.

 

 

남산밑오거리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둔덕 위에 벤취 하나가 보이고 다시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무안읍수원지가 등로 좌측으로 아주 가깝게 내려다 보인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너무나 뚜렷한 등로가 열려 있기에 아무 의심없이 한동안 진행하다 보니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느낌이 들고 기맥 띠지들도 보이지 않아 정독을 하면서 스마트폰의 GPX를 확인해 보니 정상 마루금은 우측으로 일찍 꺽여 진행을 했어야 했는데 현재는 제법 멀리 잘못 진행을 했음을 인지한다.

다시 정상 마루금을 찾아 내려오니 그저 평범한 등로 우측으로 소나무 숲이 보이는데 그곳으로 조금 들어가니 제법 넓은 등로가 열려 있는데 살펴보니 정상 등로가 아닌 묘지지대를 가기 위한 길처럼 보였다.

 

 

한동안 평이하게 정상 등로를 찾아 진행하니 갑자기 연등산에 서씨묘지지대들이 나타나고 그곳부터는 잡목들이 등로를 막아 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단지 감으로만 등로를 찾아 어렵게 내려가니 저 아래 사색의 숲 팔각정과 약수터가 보이고 드디어 정상적인 등로와 마루금을 찾아 내려왔음에 긴 안도의 한숨을 내 쉬어 본다.

여름 같으면 물 한모금 마시고 진행하고 싶지만 오늘은 날씨도 추워 아직 물한모금 마시지 않았고 또한 물을 보니 그렇게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어 그냥 진행하기로 한다.

약수터가 옹달샘으로 표기되어 있고 힐링하는 산책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설명이 되어 있다.

 

 

사색의 숲 팔각정을 지나니 원통형의 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후 완만한 오르막 등로에 파란 동백나무들이 간간히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더 오르니 작은 돌들이 많이 박혀있는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사색의 숲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연징산까지 1.4 Km거리이기에 다녀와야 하는지 조금 고민을 하다가 오늘 연징산까지는 조금 무리라는 생각에 연징산은 포기하기로 한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은 여전히 가슴속에 남아 있고 승달산까지 11.0  Km 거리가 남아 있다는 거리가 큰 부담으로 다가오기에 오늘은 연징산을 포기하고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돌아 정상 마루금을 따라 진행을 한다.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돌아 진행하니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연세 지긋한 등산객 한분을 만나 간단히 인사만 나누고 헤어진다.

그렇게 진행하니 봉우리 같지 않은 198봉을 지나 곧바로 안전목책과 로프가 있는 묘지 하나가 보이더니 그 바로 뒤아 전망의 숲 팔각정이 보인다.

이제 승달산까지의 거리까지는 10.7 Km로서 이곳에서부터는 멋진 조망과 다도해 그리고 무안의 수많은 공단지대들을 바라볼 수 있어 멋진 팔각정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제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영산기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 저 멀리에는 승달산이 아련히 보이는데 저곳을 오르는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빨래판 등로를 타고 갈지자로 돌고 돌아 진행해야 하기에 결코 쉽지 않았던 시간이었다는 기억이다.

구리봉과 사자바위봉도 보이고 그 영산기맥 마루금 지난 저 멀리에는 무안의 청계면이 제법 큰 규모의 도시로 다가오고 있다.

 

 

전망의 숲에서 내려다 보는 바로 앞 사격장 계곡을 지난 헬기장 봉이 내려다 보이고 좌측으로 흘러가는 영산기맥과 우측으로 230.7봉 지나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 능선 넘어로는 청계면 청수리쪽 마을이 멋지게 드러나 있어 무안이 생각보다 많이 개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이곳을 내려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세발낙지와 전형적인 농어촌이라 생각을 했는데 수많은 공단지역과 대학교의 존재감으로 인해 새롭게 알 수 있는 무안이 되고 있다.

 

 

많은 시간 전망의 숲 팔각정에서 조망을 즐긴 후 다시 그 팔각정을 내려와 마루금을 따르니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긴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생각보다 편안하게 내려 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한동안 그 가파른 내리막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소나무 가지 사이로 다시 시루봉 갈림길이 있는 헬기장봉이 아름답게 다가와 다시 한번 사진에 남겨 본다.

 

 

나무계단 좌측으로는 승달산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영산기맥 마루금이 멋지게 펼쳐져 있다.

보이기에는 멋지고 아름답지만 그 등로를 타고 걸어가야 하는 시간에는 빨래판 등로로서 생각보다 많이 힘들고 어려웠었다는 생각이다.

나무계단을 지나 내려가니 사격장계곡 안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승달산까지는 10.5 Km의 거리가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그 안부를 지나 다시 반대쪽 능선으로 오르니 평이한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고 잡목과 잡풀이 우거졌던 장소를 지나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내려온 전망의 숲 팔각정이 저 멀리 올려다 보인다.

 

 

완만한 등로를 타고 호젓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 저 멀리 몽탄면 사천리와 귀학리의 마을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그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들이 남아 있다.

사천리는 면소재지에 위치하여 교통이 편리하고 공공기관과 학교등이 밀집되어 있는데 이곳은 비교적 생활하기에 편리한 곳이라 할 수 있으며 북으로 사천저수지가 있고 산세가 아름다운 곳으로 봉서동, 만복동, 사내, 우적동등의 4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본래 무안군 박곡면(현 몽탄면) 지역으로 1910년 목포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죽림동, 양사곡리 , 매곡리, 월천, 우적동등을 합하여 양사곡과 월천의 이름을 따서 사천이라 하여 무안군에 편입되었고 삼국시대의 도요지로 전해지는 가마터가 남아있다.

사천리 아래 귀학리는 몽탄면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3 Km쯤 떨어져 있는 마을로 동으로는 영산강변이 펼쳐져 있고 서쪽은 승달산 계곡의 달산저수지, 남쪽은 달산리와 연접해 있으며 북으로는 사천리와 경계를 이루는 산골마을 이다.

귀례촌과 적동의 2개마을로 이루어진 귀학리는 본래 무안군 박곡 면(현, 몽탄면) 지역으로 1910년 목포부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귀래촌, 연동, 내동, 학봉정 일부를 합하여 귀내와 학봉의 이름을 떠서 무안군 박곡(몽탄)면에 편입되었다.

이 산객이 나고 자랐던 고향과 비슷한 풍경에 잠시 발걸음 멈추고 명상에 잠겨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조금 더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잡목이 사라지고 방금 전 지나온 전망의 숲 팔각정이 올려다 보인다.

다시 호젓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파란 동백나무들이 반겨주고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무명 묘지 한기가 나타난다.

그 묘지를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고 그 바위 옆으로는 천길 낭떨어지가 형성되어 있다.

다시 낙엽진 참나무 숲을 지나 몇개의 무명봉과 안부를 오르락 내리락하다 보니 등로 좌측으로 바위 전망대가 보인다.

그 전망바위에 올라 잠시 주위 풍경을 조망한 후 다시 출발하니 또 다른 전망바위가 보이고 그곳으로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온 거대한 암벽 지나 저 멀리 전망의 숲 팔각정이 있는 암봉도 보인다.

걸어 온 등로가 참으로 아름답고 멋지다는 생각으로 잠시 주위 풍경을 돌아보며 간식을 먹으며 허기를 달래 본다.

 

 

다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올라 무명 묘지 2기를 통과한다.

그곳을 지나 계속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우측에 움막이 나타나고 곧이어 청천리임도종점 이정표가 나타나고 이제 승달산까지는 8.7 Km가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상천리의 상청천은 3면이 산이므로 맑은 물이 산골짜기에서 마르지 않고 흐르기에 맑으내 또는 청천이라 하였다.

하청천은 처음에는 연화동이라 하였다가 청천리를 양분하여 웃마을은 물이 맑고 깨끗한 곳이라 하여 맑으내라 하였으며 아랫마을인 하청천은 큰 서당이 있었던 관계로 하서당 또는 아랫서당이라 불리었다.

이제 무안읍에서 청계면으로 경계를 이루는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다가 청계면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 청천리 임도 종점 이정표를 지나 넓은 잔디 공터를 지나니 또다른 청천리 임도 종점 이정표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거리는 0.1 Km가 줄어 든 거리 표시가 되어 있다.

이제부터 한동안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통나무 계단을 타고 등줄기에 땀방울을 흘리니 바위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288봉에 도착을 하는데 설령 산불이 난다해도 잡목들로 인해 조망도 없는 이곳 정상에서 어떻게 산불을 감시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시설이다.

 

 

그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무명봉이 있는 바위 전망대에 서서 잠시 휴식을 취해 본다.

등로 좌측으로 몽탄면쪽 나즈막한 산줄기와 마을들이 아름답고 그렇게 조망을 즐긴 후 다시 그 무명봉을 지나 내려가니 묘지 2기 사이로 등로가 나 있다.

다시 낙엽진 활엽수 등로를 따르니 무명봉을 넘어 동백나무 군락지를 지나고 너럭바위가 있는 암봉을 지나 등로 우측의 태봉리와 저수지가 멋지게 펼쳐져 있다.

그 저 멀리에는 서해바다가 가물거리기 시작하고 영산기맥의 마지막 끝자락도 멀지 않았음을 짐작하는 시간이다.

 

 

그 암반을 지나 걸어가니 바위 무명봉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을 내려보니 지도에는 나타나지도 않는 드넓은 골프장이 나타나고 스마트 폰을 인용해 살펴보니 무안 골프장이라 되어 있다.

그 골프장 좌측 저 끝자락 옆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마루금이 이어지고 회색빛으로 변해 버린 골프장에는 몇팀의 골퍼들이 한가하게 자연을 즐기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 골프장을 조망한 후 다시 둔덕을 넘어 진행하니 내리막 등로에서 앞으로 걸어야 할 영산기맥 마루금이 참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하지만 승달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바로 앞 봉우리를 지나 곧바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고 우측으로 돌고 돌아 다시 좌측으로 진행해야 저 멀리 한가운데에 있는 승달산에 도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보기에는 가깝게 다가오는 마루금이지만 진행하다 보니 빨래판 능선으로 참으로 어렵게 진행한 시간이 되었다.

 

 

조망을 즐긴 후 암봉을 넘으니 다시 낙엽진 등로를 타고 안부를 지나 한동안 평이한 등로를 걸어가고 바위들이 등로에 박혀 있는 암릉길도 걸어 본다.

다시 무명봉을 지나 멋진 바위 암봉에서 배낭을 내려 놓고 간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잠시 조망을 즐겨 본다.

가야 할 구리봉과 깃재 그리고 사자바위산등이 보이고 그 좌측 저 멀리 승달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발 아래로는 태봉작전도로가 움직이는 뱀처럼 꾸불꾸불 흔들리고 있다.

전망바위를 지나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깔려 있는 통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적지점과 경계점 삼각점이 보이고 금새 태봉작전도로인 비포장 임도에 도착을 한다.

이제 이 태봉작전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한동안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임도 우측으로는 건물과 산을 깍아내는듯한 풍경이 눈에 들어 오는데 아마도 시멘트나 자갈을 채취하기 위해 산자락을 잘라내고 있는 장소는 아닐까 걱정도 되는 시간이다.

좌측으로 비포장 임도를 타고 한동안 걸어가니 둔덕을 지나 비포장 임도가 좌측으로 휘어지는 바로 직전 우측의 전봇대에서 마루금은 우측 능선으로 들어가며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전봇대 바로 옆에 비포장 임도 우측으로 승달산 등산로 6.0 Km란 거리표시가 보이고 그 방향으로 능선으로 들어가니 등로는 금새 다시 좌측 능선으로 꺽이며 이어지고 있다.

 

 

능선으로 진입해 조금 더 진행하니 이곳 역시 비포장 임도처럼 등로가 넓어져 있고 잠시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무안 골프장의 그린이 보이는데 그곳에는 몇명의 아주머니들이 추위를 이겨내며 골프를 즐기고 있다.

두어명이 산속을 걸어 진행하는 이 산객을 보며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지만 개의치 않고 조금은 빠른 발걸음으로 그 골프장 옆을 통과한다.

오래 전 골프를 배우며 건강을 지키려 했지만 내기 골프에 미쳐 건강을 더 해쳤던 기억에 웃음을 지어 보는 여유도 부려 보는 시간이다.

 

 

골프장 그린을 지나 진행하니 등로는 넓은 비포장 임도같이 잘 열려있고 잠시 그 넓은 임도를 따르니 바위가 나타나더니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변해 있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이리저리 진행하다 보니 등로는 갑자기 좌측으로 급하게 꺽여 완만하게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다시 한동안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264.6봉 직전의 헬기장이 나타난다.

 

 

그 헬기장을 지나 평이한 등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264.6봉 정상에 도착을 하고 그 좌측 옆으로는 바위 전망대가 보인다.

그곳으로 올라 배낭을 벗어 놓고 잠시 준비한 간식과 사과 하나로 점심을 해결하고 출발를 하기로 한다.

바로 발 아래에는 태봉재 비포장 임도가 내려다 보이고 능선을 올랐다 우측으로 이어지는 구리봉과 깃봉 그리고 그 뒤로 사자바위산 지나 좌측으로 이어지는 승달산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보이는 등로로는 바로 앞 능선을 올랐다 곧바로 승달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도 있는듯 보인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으로 느끼고 배운 것은 남아 있는 거리와 산줄기는 직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로서 역시나 계획된 산행시간과 거리를 채워야만 그 산행도 마무리가 될 것이다.

 

 

간식과 과일로 전망바위에서 허기를 채운 후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내려가니 짧은 급경사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더니 곧바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진행해 다시 우측 능선으로 오르며 이어지고 있다.

능선으로 진입하니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데 태봉재로서 이제 깃봉까지 2.3 Km 남아 잇다는 거리 표시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거대한 나무도 나타나며 등로는 아주 평이하게 이어지고 있다.

지나 온 뾰족봉이 보이고 그렇게 급하지 않게 천천히 오르니 주능선에 도착을 해 다시 평이하게 등로를 타고 이어지고 앞으로 올라야 할 깃봉과 사자바위산이 잡목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잠시 더 걸어가니 구리재라 생각되는 곳을 지나 키 작은 산죽 지대가 이어진다.

 

 

다시 무심으로 걸어가니 무명봉에 오르고 다시 나타나는 산죽지대를 통과해 앞으로 올라야 할 마루금을 잡목 사이로 올려다 본다.

잡목과 잡풀이 자랐다 말라 죽은 등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안부를 지나 잡풀이 자랐다 말라죽은 등로 위에 거목이 자라고 있는 운치있는 등로를 따른다.

다시 무명봉을 지나 등로 좌측으로 두어기의 무명 묘지를 지나니 다시 산죽 지대가 나타나더니 등로 우측으로 잡목이 사라지고 지나온 영산기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태봉재 지나 골프장도 보이고 그 넘어 전망의 숲과 연징산 자락이 보인다.

생각보다 멀리 걸어 왔음을 실감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마루금을 걸어 진행 할 땐 보지 못했던 무안 골프장 우측의 서쪽으로도 태봉2저수지가 파란 물을 가득 담고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태봉재에서 버 멀리 연징산까지 이어지는 영산기맥 마루금과 주위 조망들을 살펴본 후 계속 걸어 진행하니 작은 바위 암릉이 나타나더니 금새 정상에 묘지와 비석이 서 있는 309봉인 구리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묘지는 잘 가꾸지 않아 잡풀이 무성하지만 비석을 읽어 보니 제법 높은 벼슬을 지낸 분의 묘소인데 후손들이 잘 가꾸지 못해 보기 좋지 않은 모습이다.

드러나저러나 왜 구리봉인지 찾아 보지만 알 수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구리봉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올라야 할 깃봉 능선이 아름답고 이정표에는 태봉능선이라 표기되어 있다.

살펴보니 이곳 구리봉에서 깃봉까지의 능선을 태봉능선이라 불려지는데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이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낙엽진 활엽 등로를 따르니 정면으로 깃봉 능선이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에 태봉능선이란 이정표가 서 있는데 구리봉에서 벌써 0.3 Km 지나왔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태봉능선 이정표를 지나 갑자기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평이한 드올로 변하고 곧이어 키 작은 산죽등로가 나타난다.

바위가 있는 무명봉을 지나 산죽 등로를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뾰족한 무명봉이 보이는데 이곳으로 올때까지 승달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저 뾰족봉을 넘어야 되는줄 알았던 봉우리이다.

다시 한동안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옆에 벤취 하나가 보이고 지쳐가는 산객의 발길을 붙잡지만 가야 할 거리가 멀기에 계속 진행을 한다.

 

 

다시 약간의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드디어 깃봉 정상에 도착을 하고 승달산 등산안내도를 사진에 담고 주위 풍경도 사진에 찍어 본다.
잠시 쉬고 있으니 목포대학교 방향에서 목포에서 왔다는 등산객 한분이 올라오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결국 승달산 정상까지 함께 진행 해 승달산 정상에서 사진 한장 부탁해 담아 본다.

 

 

이곳 깃봉 정상에서 처음으로 영산기맥 마지막 봉우리인 양을산과 유달산의 전경이 눈에 들어 오고 한동안 희열에 넘쳐 표현도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보기에는 가까운 듯 보이지만 이곳에서 저 유달산 넘어 다순금까지 가려면 최소 30 여 Km를 걸어야 하기에 저 양을산과 유달산은 내일의 걸음걸이로 남겨 둔다.

그리고 등로 우측 바로 아래에는 무안군 청계면의 국립목포대학교 전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생각지도 않은 멋진 조망을 깃봉에서 즐긴 후 다시 배낭 둘러메고 좌측으로 꺽이는 등로를 타고 바위로 이뤄진 사자바위산으로 향한다.

잠시 평이한 등로가 열리는가 싶더니 금새 바위가 앞을 가로막고 등로는 바위를 우측에 두고 좌측 사면 등로로 나 있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바위봉으로 올라보니 지나온 깃봉 능선이 시원하게 다가오고 등로 우측 아래로는 청계면과 국립목포대학교 전경 그리고 저 멀리 무안 갯벌로 유명한 서해바다가 가물 거린다.

남서쪽으로는 내일 종착지에 도착 해 영산ㄱ맥 산행을 마무리 할 목포의 유달산이 반짝이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다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잠시 더 주위 조망을 즐겨 본다.

등로 우측 발 아래로는 무안 청계면의 국립 목포대학교 전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그 목포대학교 지나 들판이 보이고 그 들판 끝자락에는 서해바다가 환히 내려다 보인다.

많은 추억을 남겼던 무안 앞바다이기에 그 추억을 더듬으며 오늘 하루도 이렇게 새로운 추억을 포개 놔 보는 시간이다.

 

 

다시 지나 온 영산기맥 마루금과 등로 좌측으로 속았던 뾰족봉을 바라보며 암릉과 암봉을 거쳐 조심하며 진행하니 금새 이정판과 사각정자 그리고 묘지 하나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사자바위산 정상에 도착해 잠시 큰 한숨을 내쉬어 본다.

사각정자에는 노승정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왜 사자바위산일까 하고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해 아쉽지만 지형만으로 판단을 하면 등로 우측의 암릉과 절벽이 마치 사자가 포효하는 듯한 형상이라 사자바위산이라 붙여진 이름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두 다리에 전해지는 묵직함은 있지만 생각보다 멋진 조망과 풍경으로 인해 산행의 피로도는 많이 사라진 듯 다시 몸이 가벼워진다.

사자바위산에서 다시 평이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 옆으로 벤취 하나가 멋지게 놓여 있고 그곳으로 가 잠시 벤취에 앉아 내려다 보는 풍경이 가히 절경이다.

이곳에서 잠시 가야 할 마루ㅠ금과 등로 우측의 목포대학교 그리고 청계 들판과 서해바다를 다시 한번 더 가슴에 담아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벤취에서의 추억을 남기고 다시 등로로 나와 진행을 하니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더 내려가다 앞을 보니 이제 승달산 능선이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와 있는듯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바로 앞에 봉우리 넘어 좌우측으로 길게 뻗어 있는 승달산 능선을 자세히 살펴 보니 우측 중간이 지도상에 나와 있는 승달산 헬기장이고 좌측 끝자락의 인공 구조물이 있는 봉우리가 실질적인 승달산 정상처럼 보이는데 그곳을 다녀 와야 하는지 다시 짧은 고민이 시작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너무나 아름다운 조망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걸어 내려가니 다시 등로는 평이하게 이어지고 또 다른벤취 하나와 무명봉이 기다리고 있다.

제법 바위들이 등로를 채우는 마루금을 따라 진행을 하니 가파른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고 앞서 가던 목포에서 왔다는 등산객 한분이 여유롭게 앞서 걸어 내려가고 있다.

또 다른 벤취 하나를 지나 바위봉을 넘으니 또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묘지와 이정표 그리고 움막이 널려 있는 하루재 안부에 도착을 해 주위 사진을 담으며 잠시 더 쉬어 간다.

 

 

하루재를 지나자 마자 등로 우측으로 하루재 철쭉소공원이란 안내판이 보이고 봄이되면 많은 주민들이 올라 철쭉꽃을 즐기는 상황을 상상도 해 본다.

눈 앞에 보이는 높은 봉우리는 좌측 사면 ㅈ등로로 우회를 하고 잠시 후 안전 목책과 로프 구간을 지나 또 다시 보이는 승달산으로 이어지는 높은 봉우리를 잡목 사이로 올려다 본다.

그렇게 진행하다 보니 등로 좌측 아래 잡목 사이로 목우암이 내려다 보이고 그 목우암에 대해 살펴보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목우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로서 553년(성왕 30) 덕이 또는 덕예라고 하는 승려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혹은 725년(성덕왕 24)에 서역 금지국에서 온 정명이 창건했다고도 한다.

고려 후기 원나라 임천사의 승려 원명 국사 징엄이 중건하였는데 원명은 꿈에 백운산에 있는 총지사에서 소가 한 마리 나와 이 암자에 이르는 것을 보고 그곳에 가 보았더니 계곡 바위에 소 발자국 흔적이 있었으므로 풀을 엮어서 암자를 만든 뒤 목우암이라 하고 그곳에 머무르면서 수도하였다고 한다.

그 뒤 1662년(현종 3) 영욱이 중창하였고 1896년(건양 1) 무렵 폐사되었으나  1913년 정병우가 암자를 지어 법등을 이었으며 1951년 활연이 주석하면서 1970년에 옛터에 인법당을 현 대웅전 자리에는 요사를 지었고 1990년 대웅전을 지었으며 1992년 산신각을 복원한 데 이어 1993년에는 삼존불상을 봉안하였다.

1896년 법천사가 폐사되었을 때 법천사 대웅전에 봉안하였던 목조 삼존불상을 목우암으로 옮겨왔고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1971년에 보수한 축성각 1984년에 건립한 요사채 등이 있다.

법당 안에는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72호로 지정된 목조아미타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높이 195Cm로서 상품하생인을 취하고 있다.

축성각은 정면 4칸과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조선 인조 때 인근 법천사의 중건과 함께 이루어진 건물로 추정되고 있고 내부는 2칸으로 구분하여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24구의 나한상을 봉안한 나한전과 산신당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석등과 부도가 있는데 법당 앞에 있는 석등은 높이 215 Cm, 너비 20 Cm의 크기로 팔각간주로 받쳐져 있는데 강희20년신유라는 명이 음각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681년(숙종 7)에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절 일원이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82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목우암을 내려다 보고 다시 안전목책과 로프 구간을 따라 걸어가니 무명봉으로 올랐다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이곳 역시 안전목책과 로프가 이어져 있다.

그렇게 내려가다 앞을 보니 저 멀리 좌측 봉우리에 인공 구조물을 이고 있는 승달산 정상부가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산죽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목포대학교 하산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도 어김없이 이정표가 서 있다.

하루재에서 벌써 0.4 Km를 지나왔고 승달산 깃대봉까지 0.7 Km가 남아 있으니 참으로 많이도 걸어 내려 왔다는 생각이 든다.

튼튼한 두 다리가 있어 이렇게 마음 놓고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목포대학교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눈 앞으로 뾰족봉이 나타나는데 갑자기 등로가 갈라지며 그 봉우리 좌측으로도 우회 등로가 잘 발달되어 있다.

정상으로 오르려는 마음과는 달리 몸이 피곤한지 벌써 좌측 우회 등로를 통해ㅐ 진행을 하고 그 등로에는 키 작은 산죽들이 반겨주고 있다.

우회 등로가 끝나는 지점을 지나 봉우리에서 내려오는 등로와 만나 조금 더 진행하니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데 정상부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다는 이정표이다.

지도를 살펴보니 바로 노승봉의 산불감시초소로서 지도에는 삼각점까지 표기가 되어 있어 다시 올랐다 내려올까 고민하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이곳은 포기하고 그냥 진행을 하는데 진행하는 내내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에 마음이 개운하지 못하였다.

 

 

그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노승봉 갈림 삼거리를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또 다른 이정표가 서 있고 살펴보니 수월동갈림길이다.

수월동은 월선리에서는 가장 먼저 생긴 마을로 토끼산, 비친암골, 월구정, 소잔등, 토끼바위, 은락골등으로도 불렀으며 도선국가(옥룡자)가 무안 4명당의 하나인 운중수월이 있다하여 수월동 또는 수정동으로 고쳐 불렀다고 전해지는데 그뒤 언제부터인가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이 마을의 최초 입향성씨는 김해김씨인 김봉헌으로 임진왜란(1592년)때 피난을 와서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현재도 김해김씨가 대부분인 동족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다른 성으로 전주이씨, 이천서씨, 나주문씨등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에는 다은과 같은 전설이 있는데 범상골전설(지형에 관한 것으로 범이 잠자는 개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그린 전설)이다.

도선국사전설 도선이 명당운중수월을 가르쳐 주게 된 연유를 전하는 전설로 도선이 승달산 노승 진념을 만나 북재를 넘어 이 마을에서 밭가는 농부에게 밥을 한끼 얻어먹고 명당을 일러주었다고 전해진다는 전설이다.

 

 

수월동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다시 천천히 걸어가니 다시 안전목책과 로프가 있는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정상에는 무명 묘지 한기가 보인다.

그 무명묘지가 있는 무명봉을 지나니 다시 산죽등로가 평이하게 열려 있고 잠시 막바지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드넓은 헬기장이 자리를 잡고 있는 지도상 승달산 정상이다.

살펴보니 등로 좌측 승달산 가는 방향으로 삼각점 하나가 박혀 있는데 이곳에서 승달산 정상을 다녀와야 될지 고민을 하다가 시간도 충분하기에 잠시 다녀 오기로 한다.

다만 출발하기 전 감돈저수지 방향으로 내려가는 방향에 서 있는 안전목책 위에 카메라를 올려 놓고 셀카놀이를 하면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헬기장에서 좌측 등로를 타고 잠시 산죽 등로를 내려갔다 안부에서 치고 오르니 나즈막한 봉우리를 지나고 다시 평이한 등로가 열려 있다.

완만하게 진행하니 드디어 정상석과 산불감시카메라 그리고 승달산 등산로 안내도가 서 있는 승달산 깃대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승달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처음 사진에서 했기에 여기에서는 생략을 하고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보는 시간이다.

 

 

남서쪽으로 지금부터 진행해야 할 영산기맥 감돈저수지 방향의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으로는 몽탄면의 달산리와 양장리 및 봉명리 방향이 내려다 보이고 그 끝자락에 오늘 산행 날머리인 감돈저수지도 내려다 보이는데 내려가야 할 거리가 생각보다 멀게만 느껴진다.

또한 동쪽을 살펴보니 저 멀리 진행중인 땅끝기맥의 월출산에서 주작 덕룡을 지나 두륜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도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온다.

너무나 맑고 멋진 조망에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이다.

 

 

감돈저수지로 이어지는 영산기맥이 아름답고 그 끝자락에 오늘 산행 날머리인 감돈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데 그곳 지나 저 멀리 살펴보니 내일 걸어야 할 목포의 산줄기가 시원하고 그 끝자락에는 영산기맥 마지막 봉우리인 목포의 유달산이 우뚝하다.

두개의 봉우리가 유달산임을 알리고 그 조망을 바라보는 이 산객의 마음에는 잔잔한 풍파가 일면서 영산기맥 산행의 시발점부터 오늘 이곳까지 걸어 왔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지나가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너무나 아름다워 다시 한번 승달산 동쪽을 살펴보니 영산강 지나 저 멀리 땅끝기맥 마루금인 월출산에서 두륜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희미하지만 확실에게 가슴속으로 들어 오는 시간이다.

4월부터 다시 올라야 할 저 땅끝기맥 마루금을 걸으며 서쪽을 바라보면 오늘 이 산객이 서 있던 이 승달산이 보일련지 궁금한 시간이기도 하다.

처음 산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전혀 보이지 않던 산줄기랄까 아니면 마루금이 시간이 지날수록 뚜렷하게 머릿속에 각인되는 상황에 더욱 산행의 매력을 느끼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한동안 그 승달산 깃대봉 정상에서 조망과 풍경을 즐긴 후 이제 홀로 다시 승달산 헬기장으로 뒤돌아 나와 사진 몇장 남기며 조금 더 쉬어 본다.

잠시 더 쉬고 살펴보니 이곳에서 감돈재까지의 거리가 약 3.5 Km 정도라 생각되기에 옆지기에게 전화를 해 하산 예상 시간을 알려주고 천천히 남서쪽으로 나 있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보이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마지막 마루금을 걸어 본다.

잠시 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옆에 무명 묘지 한기가 보인다.

 

 

그 무명 묘지를 지나 계속 내려가니 안부 같은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는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살펴보니 헬기장에서 200미터 내려왔고 좌측으로 감돈저수지까지 3.3 Km 남아 있으며 우측으로는 부성농장으로 하산하는 갈림 삼거리 이정표이다.

오늘 산행 중 처음으로 오늘 산행 날머리인 감돈저수지를 이정표에서 만나는 기분이 묘하기만 하다.

 

 

감돈저수지 방향으로 계속 진행을 하니 다시 내리막 통나무 계단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후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린다.

그 멋진 소나무 등로를 지나니 다시 안전목책과 로프가 달려있는 등로로 변하고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오르막 등로에도 안전목책과 로프가 제작 설치되어 있는 등로로 이어진다.

무명봉을 넘으니 다시 내리막 등로에도 안전목책과 로프가 달려있고 한동안 그 안전목책과 로프 구간을 따라 내려가니 잡풀이 무성한 안부가 나타나더니 드 앞에는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연천동과 화천마을 갈림 사거리에 서 있는 이정표이다.

 

 

사거리 갈림 이정표를 지나 진행하니 편백나무가 조금씩 보이고 무명묘지가 있는 무명봉을 넘어 평이한 등로를 따른다.

잠시 더 그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또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무명봉을 넘어 무명묘지 한기를 다시 통과하며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 안전목책과 로프 그리고 통나무 계단이 설치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우측 끝자락의 승달산 깃대봉에서 좌측의 승달산 헬기장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아름답기만 하다.

 

 

멋진 승달산 깃대봉 능선을 뒤돌아 보고 다시 오르니 평이한 등로가 열리고 점점 더 낙엽이 깊은 등로로 변한다.

한동안 지루할만큼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갑자기 눈 앞에 이정표 하나가 보이는데 살펴보니 월명동과 월선동 갈림 삼거리 이정표이다.

월선동은 앞서 소개를 하였기에 이곳에서는 월명동에 대한 자료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무안군 몽탄면 달산리는 몽탄면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약 5Km정도 떨어져 있는 지역으로 동으로는 약곡리 서쪽으로는 청계면 월선리 남으로 봉오리 노송정마을 그리고 북으로는 귀학리에 접한다.

마을 위쪽에 있는 달산저수지의 물줄기를 따라 산곡간에 펼쳐진 양호한 경지를 바탕으로 하여 죽전, 화정, 사기점, 월영정, 양춘동 등이 자연마을을 이루고 있다.

본래는 무안군 이로면 지역으로 승달산 밑에 있다하여 달산이라 하였는데 1910년 무안부로 개칭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적동, 동막동, 영춘동, 월영동, 죽전리를 합하여 무안군 박곡(몽탄)면에 편입되었다.

이곳 승달산(해발 333봉)계곡에는 서성, 김지국의 정명이 세웠다고 전하는 법천사와 암자 목우암이 있다.

특히 월영정(달산2리)은 화정마을 북쪽에 위치해 밤에 달이 먼저 보이는 마을로 달맞이를 하는 정자나무가 있다하여 월영정으로 부른다고 전해지고 있다.

 

 

월선과 월명동 갈림 삼거리를 지나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나즈막한 봉우리를 지나 잡목 구간이 나타난다.

잠시 더 뚜렷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또 다시 무명 묘지가 나타나고 시제마을과 월명동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시제마을 갈림 삼거리를 지나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금새 통나무 계단이 설치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며 이마에 땀방울을 흘려 본다.

 

 

어렵게 그 통나무 계단을 타고 봉우리로 오르니 묘지 2기가 보이고 큰 소나무 한그루가 인상적인 곳에 도착을 한다.

그곳을 지나 진행을 하니 등로엔 낙엽이 깔려있고 양탄자같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주변에는 파란 잎이 멋진 동백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잠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꽃장마을과 시제마을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 옆에 서 있는 이정표를 살펴 본다.

그 이정표를 지나자마자 곧바로 비포장 임도와 만나 우측으로 완만하게 오르며 진행을 한다.

 

 

임도를 타고 오르니 많은 묘지들이 보이고 살펴보니 밀양박씨 묘지들이다.

그 묘지지대를 지나 오솔길 같은 등로를 따르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안전목책과 로프가 달려 있는 통나무 계단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더 내려가니 바로 앞으로 마지막 봉우리라 생각되는 봉우리가 올려다 보이고 오늘 산행도 막바지에 도달을 하는 느낌이다.

 

 

무명 묘지 2기를 지나 급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꽃장마을과 신촌마을 갈림 사거리 이정표가 보이는데 헬기장에서 3.0 Km 지나왔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이정표이다.

다시 안부를 지나 조금 더 진행을 하니 정상 등로는 우측 능선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 같은데 받아 간 GPX 자료는 자꾸만 엉뚱한 방향인 좌측의 신촌마을 방향으로 알려주고 있다.

잠시 더 좌측으로 진행하니 능선방향으로 감돈저수지 0.8 Km와 좌측으로 신촌마을까지 0.4 Km 가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눈에 들어 온다.

 

 

마지막 이정표에서 주능선인 감돈저수지 방향이 아닌 좌측의 신촌방향으로 내려가니 넓은 비포장 임도를 지나 곧바로 거대한 축사건물들이 많이 보이는 마을로 내려간다.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에 다시 주능선 방향으로 올라 보지만 등로도 희미하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 다시 뒤돌아 내려 와 축사 건물이 들어 선 마을 방향으로 걸어 내려간다.

 

 

신촌마을은 축산업을 주로 하는 마을처럼 보이는데 요즈음 조류독감과 구제역으로 인해 축사 근처로 진행하기가 미안해 일부러 논둑과 밭이 있는 곳으로 돌고돌아 축사로 부터 멀리 진행을 하게 된다.

축사에서는 축사동을 치우며 거름을 만들고 있는 기계음과 농부들이 일을 하고 있고 지나는 이 산객이 이상한지 자꾸만 처다보기에 더욱 그 축사와 멀리 진행을 한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다 논둑으로 가니 좌측 저 멀리 두레농장이란 입간판이 보이고 어렵게 그 신촌마을을 빠져 나오니 논에 객토를 하고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그 신촌마을을 빠져 나오니 815번과 이어지는 감돈재 주변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고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삼일농장이라는 거대한 축사 건물이 서 있는 삼거리에 도착을 해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해 보려 한다.

잠시 그곳 삼거리에서 옆지기가 운전하는 애마를 기다리며 좌측 감돈저수지 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 사진 몇장 담고 있으니 옆지기로 부터 전화가 오는데 갑자기 네비게이션이 고장 나 이곳 감돈재를 찾지 못하겠다는 전언이다.

 

 

옆지기와 딸에게 스마트 폰의 네비게이션을 이용해 찾아 보라고 이야기 해 놓고 그 2차선 도로를 타고 계속 걸어가며 도로 좌측의 감돈 저수지를 내려다 본다.

어짜피 내일 새벽에 감돈삼거리까지 가야되기에 시간이 남아 있는 오늘 그곳 감돈삼거리까지 천천히 걸어 보기로 한 것이다.

진행하며 도로 우측 능선 방향을 살펴보니 절개지가 이어져 그곳 능선 방향에서 도로쪽으로 내려오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산수정이라는 모텔 입간판이 보이고 잠시 감돈저수지와 멀어져 우측 오르막 도로로 이어지고 있다.

 

 

오르막 도로를 타고 한참 올라가니 드디어 815번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감돈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옆지기를 기다려 본다.

옆지기를 기다리다 마루금을 살펴보니 도로 우측 능선으로 남양홍씨 묘지들이 보이고 그 능선을 타고 이곳으로 진행해 오는 것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지만 선답자들이 그 능선을 타고 진행한 기록이 없어 진행에 어려운 구간이 아닐까 추측을 해 본다.

내일 새벽에 올라야 할 815 지방도로 건너편 남양홍씨 묘지쪽도 살펴 본 후 조금 더 기다리니 옆지기와 딸이 애마를 몰고 와 다시 무안으로 들어 가 샤워 후 손님과 함께 약 2시간의 업무를 마치고 가족과 맛난 식사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감돈저수지는 한국농어촌공사 저수지 관리대장에 1948년께 설치됐다고 기록돼 있으나 감돈저수지 인근 주민들은 설치 년도가 1948년 보다 훨씬 앞선다고 주장한다.
주민들은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는 이유는 바로 일제시대 때 무안 지역에 형성된 대규모 간척지 농장인데 당시 무안에는 영아농장(400 ha)과 자방포농장(500 ha)이 있었다.

이렇다 할 물 공급 시설이 없었던 시절이라 400500 ha에 이르는 대규모 간척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저수지 필수적이었rl 때문에 감돈저수지가 설치됐으며 현재까지도 무안군 일로읍 봉평리 인근 논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
 영아농장을 일군 사람이 일본인이었고 이 일본인 이름을 본따 주민들이 영아농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무안군 일로읍 봉평리에 위치한 감돈저수지는 한국농어촌공사 무안과 신안지사 무안지소에서 관리하는 50여개 저수지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물을 받을 수 있는 유역면적만 504 ha이고 감돈저수지 물로 농사를 짓는 수혜면적은 384 ha에 이르며 수혜대상 지역을 살펴보면 감돈리, 지정, 맥포, 용포, 굉암, 상산리, 용산, 산정리 등 8곳이다.
감돈저수지는 무안군 몽탄면 달산리 구리치 서쪽 계곡에서 발원한 남창천(무안 몽탄 달산-일로 남악 23.10 Km)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담겨지는 곳이다. 상류지역인 승달산(333 m)에서 내려온 물이 영춘동마을을 거쳐 와 뱅이골 물을 보태 월영동을 지나 노송정과 죽전마을 물과 함께 감돈저수지로 모인다.
시설 제원을 살펴보면 높이는 1420 m, 길이 37600 m, 저수량 1631 ㎡ 등이다.

현재 감돈저수지는 55%∼60% 가량의 저수율을 보이고 있는데 농사철이 시작된 5월 중순부터 물을 대달라는 농민들과, 물을 적절히 공급하기 위해 적정 저수율을 유지하려는 농어촌공사 직원들 사이에 물과의 한판이 시작된다.
특히 감돈저수지는 지난 2001년 수질개선시범사업지구로 선정돼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얻기도 했다.

이곳 상류에서 내려오는 가축폐수, 생활용수 등을 정화시키는 시설을 설치했는데 정화 작용을 하는 재료로 식물을 선택해 저수지 일대가 공원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렇게 힘은 들었지만 무탈하게 먼 거리를 완주 후 뒤돌아 보는 시간은 추억이 되어 있었고 내일도 무탈하게 영산기맥 전 구간을 완주할 수 있기를 홀로 빌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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