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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맥과 중요 지맥 산행(완료)/영산기맥(호남·완)

영산기맥 제7구간 함평농공단지에서 도산삼거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4.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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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함평군과 무안군의 영산기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4년 01월 11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흐리고 짙은 박무가 있었지만 춥지 않아 산행하기 좋았던 날씨

산행온도 : 영하 05도에서 영상 06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함평농공단지-구23번 2차선 지방도로-금산교차로 도로표지판-함평고 버스정류장-시멘트 포장도로-어린양기도원 삽자가-

               가족묘지들-마늘밭-능선진입-철조망 잡목지대-무단경작금지 경고판-밭과 시멘트 포장도로-지하통로로 서해안고속도로

               함평 IC 통과-절개지-억새밭-묘지에서 서해안바다 조망-서해안고속도로 철망을 따라 진행-포장도로-폐축사-조림지-

               서해안고속도로 시멘트 계단타고 진행-능선진입-암릉구간 및 암봉-영태산(135.2봉, 삼각점)-벤취봉-군사용 타이어방호벽-

               폐건물 2채-2차선 포장도로-양림농장 출입 도로-중봉(134.5봉, 삼각점)-천주교묘지와 축사-시멘트 포장도로-86봉-

               시멘트 포장도로-2차선 지방도로-시멘트 포장도로-호화 가족묘지-시멘트 벽돌 산불감시초소봉(100봉, 삼각점)-

               산음고개(여시고개, 815번 2차선 지방도로, 산음마을 버스정류장과 축사)-묘지 및 과수나무 식재지-콘크리트 교통호-

               신틀봉 이정표(기산 1.8 Km, 곤봉산 0.7 Km, 함평초교 1.45 Km)-신틀재 이정표(곤봉산 0.7 Km, 기산 2.1 Km)-

               운동기구 및 벤취봉-벤취봉-곤봉산(190.4봉, 사각정자와 정상석 및 삼각점)-곤봉산과 대화봉 이정표-

               팔바위 이정표(곤봉산 0.2 Km, 초동마을 1.2 Km, 유모사 0.7 Km)-제비산(153봉, 잡목으로 우회)-원형물통 및 밭-

               장교리마을 통과-작동고개(811번 2차선 지방도로, 작동마을 버스정류장)-지하통로로 서해안고속도로 통과-월봉마을 통과-

               묘지들과 시멘트 포장도로-파란색 원형물통과 나무식재지-170봉 전망-200봉 암봉 조망-225봉 조망-225봉 바위턱-

               나무계단-감방산(257.5봉, 헬기장과 삼각점 및 이정표)-묘지 및 비포장 임도-무제봉(시멘트 임도 및 안내판)-

               철봉 및 벤취봉-산불감시초소봉(186봉, 삼각점)-뚜렷한 등로타고 알바-평산저수지-무안박씨묘지-도산재-도산삼거리-

               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7.00 Km

산행시간 : 희미한 등로와 잡목 가시넝쿨로 여유롭게 그러나 꾸준하게 사진 찍으며 08시간 35분 (07시 20분부터 15시 55분까지)

교통편 : - 애마 이용해 함평농공단지 도착

            - 산행 후 도산삼거리에서 트럭타고 함평으로 복귀

            - 함평택시로 함평농공단지 도착해 애마 회수하여 함평에서 샤워 후 귀가

 

영산기맥은? (박종률님 자료를 인용)
영산기맥은 백두 대간이 덕유산을 넘어 지리산을 목전에 두고  백운산 앞의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을 분기하여 장안산, 팔공산, 성수산, 마이산을 지나 모래재위 조약봉에서(주줄산 또는 주화산) 한줄기는 북으로 금남정맥( 금강정맥)을 분기하고 한줄기는 서남진하는 호남정맥으로  만덕산, 내장산, 추월산, 무등산, 조계산, 백운산, 망덕산에서 끝이나는 섬진강의 서쪽 울타리가 된다.

영산기맥은 이 호남정맥의 내장산과 백암산 사이의
순창새재 바로 윗봉에서 분기하여(530미터) 입암산(655미터), 방장산(742.8미터), 문수산(620.5미터), 구황산(480미터), 고산(520미터), 고성산(546.3미터), 월랑산(440미터), 태청산(93.3미터), 장암산(481.5미터), 불갑산(515.9미터), 모악산(347.8미터), 군유산(403.2미터), 발봉산(180.8미터), 감방산(257.0미터), 병산(130.7미터), 남산(189.0미터), 마협봉(290.0미터), 승달산(317.7미터), 국사봉(283.0미터), 지적산(183.0미터), 대박산(155.6미터), 양을산(151.0미터)을 지나 목포시 유달산(228미터)에서 다순금에 이르는 도상거리 159.5 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영산강의 북쪽 울타리를 이루는 산줄기이기에 영산북기맥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통상 영산기맥하면 이 영산북기맥을 말한다.
반면 영산강의 남쪽 울타리를 이루는 산줄기는 호남정맥이 무등산과 계당산, 국사봉을 지나 삼계봉에 이르기전 바람봉에서 분기하는 땅끝기맥을  따라 남진하여 월출산을 지난 벌뫼산에서 땅끝기맥은 남진하여 땅끝으로 가고 또 한가지가 분기하여 흑석지맥이라고 불리는 가학산, 두억봉, 흑석산, 선황산으로 해서 목포와 마주보는 소아와 대아산에 이른다.
즉  영산강의 남쪽 울타리는 이 호남정맥의 새재봉 분기점에서 바람봉 분기점까지 180.1 Km, 땅긑기맥의 바람봉 분기점에서 별뫼산까지 약 58.3 Km, 그리고 
흑석지맥의 별뫼산에서 대아산까지 약 39.2 Km가 될것이다.

 

 

연이틀 마음껏 달렸던 영산기맥에서 무리하지 않고 다음을 기약했던 멋진 시간들

 

 

어제 늦게 산행을 마치고 함평으로 와 곰탕으로 저녁 식사 후 오늘 산행 준비를 했는데도 잠이 오질 않는다.

평소에는 산행 후 소맥 폭탄주 몇잔을 비우고 숙소로 돌아 와 피곤함을 느끼기도 전에 잠들곤 하였는데 오늘은 저녁에 잠시 손님을 만나 이야기 나눈 후 반주 없이 밥만 먹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피곤하지 않고 잠도 오지 않아 고민이다.

그렇게 뒤척이다 11시를 넘겨 잠이 들고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간단히 세수한 후 도시락을 지참하고 밖으로 나오니 숙소 근처에 아침 문을 연 식당이 있어 들어가 콩나무 밥 한그릇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물과 도시락까지 챙겨 나오니 이제 산행 할 일만 남았다.

아침 7시가 다되어 가는 시간에 숙소를 나와 애마를 몰고 함평농공단지 앞에 도착을 하니 7시 10여분을 지나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어둠속에 사물 분간이 어렵다.

잠시 등산화 신고 산행 준비를 마치니 조금씩 여명이 밝아오고 주위 사물이 보일쯤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다시 멀고도 긴 산행길을 재촉해 본다.

 

높이 190.4미터에 불과한 곤봉산이지만 그 오름길은 왜 그리 힘들고 멀게만 느껴지던지...

늘 산행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산의 옾이에 따라 산행의 난이도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산객이 어떤 마음으로 오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오늘도 절감한 하루였다.

그래도 이렇게 그동안 미뤄놨던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갈 수 있음에 감사하며 또한 연이틀 산행에도 큰 어려움 없이 진행 할 수 있는 몸과 체력에 감사한 시간이였다.

 

23번 4차선 지방도로 옆 함편온공단지 앞에 도착을 하니 아침 7시 10여분을 지나고 있는데 아직 여명이 밝아 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산행 준비와 등산화를 신고 잠시 더 기다리니 주위 사물이 보일 정도로 여명이 밝아오고 지난 밤 어둠속에 남기지 못했던 사진 몇장 더 남겨 본다.

진행방향 우측으로 농공단지의 건물들이 보이고 뒷쪽으로는 축협사료 건물도 보인다.

이곳에서 23번 지방도로를 좌측에 두고 구23번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오늘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7시 20여분이다.

 

구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에 함평고교 50미터 우측에서 꺾여 들어간다는 도로표지판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 계속 걸어가니 구23번 2차선 도로와 신23번 4차선 도로가 만나는 금산교차로 도로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새로운 4차선 도로 건너편에는 십자가가 보이는 교회건물과 삼거리상회가 보인다.

그곳에서 구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더 내려가 건너니 도로 옆에 삼거리란 버스정류장이 하나 서 있는데  우측으로 함평고교가는 표시가 되어 있다.

이곳에서 23번 신도로를 좌측에 두고 나란히 걸어가며 영산기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더 구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구도로가 좌측의 신도로보다 높아지며 제법 조망이 터지기 시작한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파와 마늘밭이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궁산리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궁산리는 바우산 기슭에의 첫 입주자인 안성이씨 이광삼과 함평노씨 노성복은 전북에서, 진주강씨 강대웅은 해보면에서 입촌하였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지금은 강씨, 노씨, 박씨 등이 살고 있다.

신흥마을은 궁산리 1구인데 상신흥, 중신흥, 하신흥으로 나누어 부르기도 하며 1930년대 주포 간척공사가 준공되어 101정보의 농지가 조성됨으로써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흥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 우측에 함평고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그 버스 정류장을 지나자 마자 우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이제 그 시멘트 포장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들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들어가니 도로 좌측에는 나즈막한 야산이 있고 우측으로는 밭이 산재해 있다.

그 도로를 타고 나즈막한 고갯마루를 넘어 진행하니 민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저 앞 시멘트 도로 좌측으로 십자가가 서 있는 건물 한채가 보인다.

그 십자가 건물을 지나자 마자 좌측 밭둑을 통해 능선으로 들어 진행하며 맥 잇기 산행은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그 십자가 건물쪽으로 가 보니 건물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는데 그 건물 위에 어린양기도원이란 글씨가 선명히 남아 있다.

그 어린양 건물을 지나자 마자 좌측으로 펼쳐진 밭 가장자리를 따라 진행하니 가을 걷이가 끝난 밭에는 아직 걷지 못한 비닐들이 너부러져 있고 그 밭을 지나 걸어가니 많은 묘지들이 서 있는 인동장씨 가족묘지를 지난다.

그 묘지들을 지나니 푸릇푸릇 새싹이 올라오는 마늘 밭이 나타나고 그 마늘 밭 가장자리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은 계속된다.

 

잡목이 발목을 붙잡는 능선을 타고 오르니 묘지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녹슨 철조망이 산재해 있는 무명봉에 오르는데 그곳에서 등로 우측 저 멀리 서해안 바다가 희미하게 조망된다.

그곳 무며옹 정상에서 다시 길이 없어져 등로 찾기에 애를 먹는데 조심해 찾아 보니 등로 우측 앞으로 보이는 밭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을 걷이가 끝난 밭 가장자리를 따라 맥 잇기 산행을 어렵게 이어가는 시간이다.

 

밭을 지나 다시 능선으로 진입하려는데 그 밭 끝자락에 사유지라는 출입금지 경고판이 붙어 있고 다시 잡목이 성가시게 발목을 잡는 무명봉을 넘으니 함평이씨 묘지를 지나 밭으로 이어지고 있다.

밭을 지나 다시 많은 묘지들이 보이는 곳으로 나오니 등로 좌측 앞 저 멀리 서해안고속도로 상 함평 IC가 가깝게 내려다 보인다.

이제 농로 같은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서해안고속도로쪽으로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이곳에서도 잠시 등로 찾기에 애를 먹고 어렵게 함평 IC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만나 그곳을 통해 서해안고속도로로 진입하는 도로를 건너본다.

 

힘들게 함평 IC에서 서해안고속도로로 진입하는 도로를 지하통로를 통해 건난 후 아무리 찾아봐도 우측 서해안고속도로 쪽으로 나 있는 절개지 위로 올라 갈 방법이 없다.

할 수 없이 엉금엉금 기어서 그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함평 IC 1교란 작은 도로표시판이 도로 옆에 서 있다.

그 고속도로 옆에 서서 지나온 영산기맥 마루금을 사진에 담은 후 아직 남아 있는 고속도로 절개지를 타고 올라 능선으로 진입한다.

예전에 없던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이어지던 맥들도 모두 잘려나가 한번 완주 산행을 하기 위해서는 그전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고생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잡목과 가시나무를 헤치고 능선으로 오르니 억새가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버린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 위에 자라고 있는 나뭇가지에 선답자들이 붙여 놓은 띠지 두어장이 나풀거리고 있다.

그 억새밭을 헤치고 전진하니 비포장 수레길 같은 넓은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묘지가 다시 나타난다.

 

묘지지대를 넘어 계속 걸어가니 다시 서해안고속도로가 나타나고 우측에 고속도로 절개지를 두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고속도로 건너 저 멀리 서해안바다가 다시 조망되기 시작한다.

이제 서해안고속도로 위 등로를 따라 진행하듯 걸어가다 보니 그 길은 고속도로와 일반 평지를 가르는 철조망 안으로서 내려가 포장도로가 만나는 곳 직전의 좌측 쪽문을 통해 그 고속도로 안에서 외부로 빠져 나와 어렵게 포장도로로 내려 선다.

 

포장도로로 내려 서서 지도를 살펴보니 등로는 이곳에서 다시 우측에 서해안고속도로를 두고 평행으로 잠시 더 진행해 앞에 보이는 능선을 타고 우측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여러가지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그곳 마루금을 타고 걸어 들어가 좌측에 텅비어 있는 거대한 축사건물을 두고 오르니 우측으로는 서해안고속도로가 지척이다.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밭을 지나 축사가 끝나는 곳에서 계속 오르니 이제 고속도로 옆 시멘트 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타고 올라 능선 중앙부쪽으로 오른다.

잠시 더 중앙부로 오르니 시멘트 계단이 끝나고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는데 그곳을 타고 조금 더 오른 지점 좌측의 가파른 절개지 사이로 선답자들의 띠지 몇개가 달려 나풀거리고 있다.

 

우측에 서해안고속도로를 두고 좌측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잡목과 가시나무들이 성가시게 굴고 잠시 더 땀흘리며 오르니 소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박무속에 등로 앞 저 멀리 둥근 아침해가 이제서야 안개를 뚫고 나오기 시작한다.

등로 우측으로는 함평읍의 드넓은 들판과 시원스럽게 뻗어 내려간 서해안고속도로가 한누에 내려다 보인다.

 

그렇게 다시 정상 등로를 찾아 오르니 처음 만나는 바위봉을 넘어 등로 좌측으로 오늘 걸어 온 영산기맥 마루금이 저 멀리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함평농공단지를 지나 나즈막한 야산을 넘고 다시 서해안고속도로 옆을 타고 걸어 와 이곳 빈 축사와 나무가 식재된 곳을 통과한 후 이곳 암봉까지 이어져 온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위대한 인간의 두발을 생각해 본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이제사 지도상 나타나는 암봉에 도착해 잠시 그 암봉에 올라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을 즐겨 본다.

등로 우측의 함평읍 평원과 서해안고속도로 그리고 앞으로 진행해야 할 나즈막한 마루금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 다르게 등로는 직진의 앞 봉우리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측으로 보이는 낮은 야산으로 올랐다 꺾여 다시 남쪽으로 진행해야 하니 그 또한 맥 잇기 산행의 어려움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다시 그곳 암봉에서 많은 시간 지체하며 많은 사진을 남기고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안부를 지나니 저 멀리 영태산 정상부가 보인다.

그곳 135.2봉의 영태산 정상부로 오르니 중앙에 삼각점이 박혀 있는데 영태산이라 적혀 있는 종이 코팅지는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다.

암봉을 넘어오며 너무나 멋진 조망을 많이도 담았고 또 영태산 정상부는 커가는 소나무로 인해 조망이 가려져 있기에 금새 출발해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영태산 정상부를 떠나며 아쉬워 사진 한장 더 남긴 후 내려가니 앞이 트이며 지금부터 걸어가야 할 영산기맥 마루금이 눈 앞으로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하늘엔 박무속에 그 빛을 잃고 떠 있는 둥그런 하루 태양이 말없이 내려다 보고 있다.

계속 안부를 향해 내려가니 바로 눈 앞에 무명봉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우측 하늘엔 여전히 빛을 잃은 태양이 반긴다.

 

안부와 무명봉을 넘어 진행하니 다시 등로에 박혀 있는 암봉을 넘고 이제부터 걸어가야 할 마루금이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저 앞에 보이는 중봉 넘어 무명봉쪽으로 마루금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측 86봉으로 잠시 크게 꺾여 내려갔다 좌측 남쪽으로 꺾여 내려가는 이상한 흐름으로 이어지기에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기도 한데 이 산객 역시 저곳에서 약 30여분 이상 헷깔려하며 알바를 경험하게 된다.

역시 기맥 산행이란 것이 많은 산님들이 오르는 산행이 아니기에 잡목과 가시넝쿨들로 인해 진행에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번 절감하기도 한 시간이다.

 

등로 좌측으로 펼쳐지는 용성리쪽 마을을 조망하며 내려가니 다시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고 그 등로를 타고 호젓하게 걸어 본다.

다시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갑자기 정상부에 의자 두개가 놓여 있는 정상을 우측으로 우회하게 되고 곧바로 타이어 교통호인지 아니면 방호벽인지가 등로 좌측을 길게 이어지고 있다.

잠시 낙엽진 멋진 등로를 타고 걸어가고 짧은 대나무 밭을 넘으니 중봉 오르는 농장과 중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금새 수많은 묘지들이 줄지어 늘어 선 가족 묘지를 지나 2차선 포장도로가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가족 묘지를 지나 밭으로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멋진 고택 한채가 보이는데 오래전 비어 있었는지 이제 허물어져 가는 빈집으로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그 흉물스런 비어 있는 고택 앞을 지나 2차선 포장도로로 나가니 도로 건너편에 양림농장이란 큰 입간판 하나가 서 있다.

등로는 이제 저 농장 앞으로 들어 가 눈 앞에 보이는 중봉으로 올랐다 우측으로 크게 떨어져 내려와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면 될 것 같지만 많은 산님들이 저 중봉을 오르지 않는듯 하여 등로나 제대로 나 있을지 조금은 걱정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아니면 연이틀 간 장거리 산행에서 오는 피곤함 때문이였는지 모를 정신 집중이 흩트러지며 저 양림농장 앞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내려가 도로 우측으로 밭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묘지로 올라 길도 없는 능선으로 오르며 한동안 고생을 하게 된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걸어 올라 갈 수 있는 등로가 열려 있기에 한발 두발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오르니 드디어 중봉 정상 직전에 무탈하게 도착을 하게 된다.

 

등로도 없는 길을 찾아 어렵게 오르다 보니 정상부 8부 능선 가까이에서 드디어 정상 등로를 만나 중봉 정상부로 오르게 되고 정상부에 오르니 정상 표식은 없이 중앙에 삼각점 하나가 박혀 있다.

그 삼각점에서 잠시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직진해 영산기맥 마루금이라 착각한 대덕리 방향을 내려다 본다.

 

중봉 정상의 삼각점을 사진에 담은 후 직진해 바위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대덕리 방향의 풍경이다.

그림상으로는 저 앞 능선을 타고 영산기맥 산행을 이어가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고 잠시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 저 멀리 앞에 보이는 100봉쪽에서 다시 만나냐 하니 그것 역시 맥 잇기 산행의 어려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이곳 중봉에서도 우측 86봉으로 내려가는 등로를 찾지 못해 한동안 갈팡질팡 하다가 길도 아닌 길을 만들어 어렵게 내려온다.

내려오니 바로 눈 앞에 축사 한동이 보이고 그 축사를 우측에 두고 내려가니 가을 벼베기가 끝난 논들이 펼쳐져 있다.

그 논둑을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하니 다시 등로를 가로지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앞에 보이는 86봉으로 향한다.

 

그렇게 한동안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는 86봉이 있고 좌측으로는 마늘 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 정상부로 올라 능선을 타고 86봉 정상을 올랐으면 좋았을 것을 조금 편하자고 그 86봉 정상을 밟지 않고 계속 좌측에 밭을 두고 시멘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의 86봉을 지나치게 되였는데 그곳에서 부터 독도에 혼란을 야기하면서 많은 시간 긴 알바를 경험하게 된다.

한순간의 편리함과 안이함이 이렇게 많은 시간 허비하며 알바를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였는데 아마도 오랫만에 오른 맥 잇기 산행에서 이틀 연속 산행의 고통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86봉 오름길에 조금 편하게 진행하려다 엉뚱하게 진행해 가까운 등로를 버리고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저 멀리 돌고 돌아 옥산리를 헤매고 다닌다.

결국 한동안 옥산리 동네를 돌아 다니다 어렵게 정상적으로 독도를 해 옥산리와 대덕리 중간의 호화묘지쪽으로 정상 등로를 찾아 간다.

이곳에서도 약 30여분 이상 시간을 까먹고 발품만 팔고 말았다.

드디어 정상적인 등로인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지나온 중봉과 86봉을 담고 앞으로 올라랴 할 100봉을 올려다 본다.

긴 한숨이 저절로 터져 나오는 시간이다.

 

보이는 사진 우측 높은 봉우리가 중봉이고 좌측의 나즈막한 봉우리가 86봉이다.

저 86봉을 올랐다 중봉과 86봉 사이의 시멘트 임도를 타고 이곳으로 내려왔으면 좋았을 것을 86봉 좌측 동네로 들어가 엉뚱하게도 많은 시간 헤매고 돌아 다닌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정상 등로를 찾아 지나온 등로가 어떻게 잘못되였는지 복기하는 시간도 나쁘지만은 않다.

 

이제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에 밭을 두고 100봉쪽으로 걸어가니 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 뒷쪽으로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달려 있다.

그 묘지 뒤를 타고 올라 주능선에 오르니 정상 등로와 다시 만나고 그곳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잡아 오르니 금새 암봉에 삼각점 하나가 박혀 있는 100봉에 올라 잠시 휴식을 취해 본다.

바위 앞으로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선명하게 보이고 이제 그 보이는 능선을 따라 다시 발길을 재촉해 본다.

 

100봉 정상 삼각점을 지나 조금 더 가 보니 벙커가 있고 그곳 지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다시 100봉 삼각점으로 뒤돌아 와 좌측 하산 등로를 찾아 보지만 잘 찾지 못해 한동안 헤매다 어렵게 내려가니 능선 끝자락에 목장이 보이고 곧이어 2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산음마을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함평군 채소양념공장이 보인다.

그곳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쉰 후 다시 우측 축사있는 곳으로 뒤돌아 와 그 옆 비포장 임도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목장 앞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철대문 좌측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다시 밭이 펼쳐져 있고 그 밭 끝자락에 능선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과수 식재지와 묘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하니 다시 잘 벌목된 능선 등로가 나타난다.

그 등로를 타고 오르니 산죽군락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는데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나니 아주 편안하고 잘 가꿔진 등로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우측이 정상 등로이지만 좌측으로 걸어 들어가 그 정상까지 가 본다.

 

등로 좌측으로는 함평의 대덕리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현재의 마을에서 500미터 가량 떨어진 꾸서기라는 곳에 광산김씨가 살았는데 조선조 명종 때 함평이씨 영이 해제 칠금에서 처가살이를 와 터를 잡았다고 한다.

임진란 때 행주산성에서 전공을 세우고 순국한 이우춘이 이 마을 출신이며 마을에 맨 먼저 입촌한 이령의 아들이다.

마을에 샘이 둘 있는데 하나는 식수샘이고 또 하나는 약수샘으로 시원하기 이를 데 없는데 이 샘물을 마신 환자가 병이 나았다 하여 외지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고 한다.

물이 찬 샘이라 해서 한샘(발음 한삼)이라 했는데 그 후(1789년 호구총수지명) 큰 샘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대천으로 표기되었으며 마을 앞에 있는 한샘 방죽은 함평군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가운데 하나이며 방죽 바로 앞의 밭 가운데에 소나무가 몇 그루 서 있는데 이곳에 서현내면사무소가 있었다.

서현내면사무소는 1906년 동현내면과 서현내면이 합쳐 기성면이 될 때 기각리로 옮겨져 함평면이 되었다.

지금은 집이 한 채도 없으며 기와장만 남아 있다.

 

뚜렷한 등로 양쪽으로 잘 정리된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능선을 따라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시멘트 교통호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니 신들봉이란 이정표가 서 있는 정상에 도착을 한다.

기산 1.8 Km와 곤봉산 0.7 Km 란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그곳 신들봉이란 이정표에서 뒤돌아 나와 갔던 길을 나온다.

신들봉이란 산을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왜 이곳을 신들봉이라 칭하고 이정표까지 세워 두웠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신들봉에서 갔던 길을 뒤돌아 내려오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곤봉산 가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등로를 타고 가파른 길을 내려가니 금새 신들재에 도착해 그곳에 서 있는 마을과 이곳 고개의 유래를 읽어 본다.

신들재는 짚신 삼을 때 꼴박는 것 같이 생겼다고 신들재라 불리고 그 앞 산음마을은 전라남도 함평읍 장교리에 있는 자연부락으로 풍수지리학상 현재의 산음은 가야금의 몸통이라 하여 금동골이었다.

이 금동골은 구전해오면서 금동굴, 금덩굴로 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후에 공식명을 산음으로 표기했는데(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도 산음으로 표기됨) 마을 바로 앞에 있는 산 그림자에 가려 해가 늦게 뜬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원래 이 마을은 경주이씨 대운이 1680년경에 개촌 했으나 풍수지리학상 이 마을이 경주이씨 터가 아니라하여 이웃 칠언으로 이거하였고 이어 함평이씨 유신(1705~1752)이 1720년경에 이거 정착했으며 그 뒤를 이어 정성화가 입촌 했는데 그 후손은 현재 한 집도 살지 않는다.

그 뒤를 이어 120년 전에 진주강씨 병운, 평산신씨 경국, 광산김씨 행서가 입촌 했고 90년전에 도광김씨 제옥이 들어와 살았다.

 

신들재 지나 완만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다시 등로 양쪽으로 멋진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잠시 더 오르니 운동시설들이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을 지나 계속 멋진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박무속에서도 희미하게 함평읍이 내려다 보인다.

다시 벤취 2개가 있는 무명봉을 지나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니 다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그곳을 타고 오르니 사각정자와 운동시설이 서 있는 곤봉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곤봉산 정상의 높이는 높지 않지만 주위에 높은 산이 없어 조망이 뛰어나다.

한동안 조망을 즐긴 후 다시 맥 잇기 산행을 위해 출발하려는데 이정표 앞쪽에는 곤봉산 표시가 뒷쪽에는 대화봉정상이란 표시가 되어 있어 잠시 헷깔린다.

거의 직진처럼 나 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에 팥바위란 이정표가 서 있는데 이름도 이상하거니와 주위를 둘러봐도 바위가 없어 알 수가 없는 이정표이다.

이런 멋진 이정표까지 세워놨으면 설명이나 정확한 이유라도 함께 적어 놨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팥바위 이정표를 지나 한동안 뚜렷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주능선은 직진으로 이어지는데 영산기맥 마루금은 우측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더 내려가니 이곳 내리막 등로 역시 고속도로 수준으로 산행에 큰 어려움은 없다.

다만 한동안 내려가다 뚜렷한 우측 등로를 버리고 좌측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야 한다는데 그 갈림길을 잘 찾을 수 있을지가 걱정이 되는 시간이지만 다행하게도 그 희미한 갈림길을 찾아 들어가 본다.

하지만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 넝쿨들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는 안타까운 시간을 한동안 보낸 후 어렵게 등로를 약간 벗어나 아래 밭쪽으로 내려가 본다.

 

참으로 어렵게 온몸에 가시 생채기를 남기고 내려오니 제비산은 들리지도 못하고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는데 그 잔디밭 좌측으로는 거대한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들어진 원형 물통이 자리하고 있다.

앞쪽으로는 장교리쪽 들판과 축사 건물들이 보이고 저 멀리 이제부터 올라야 할 감방산 줄기가 길게 뻗어 어서오라 손짓을 하고 있다.

저 감방산을 오르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생채기를 내야 할지 몰라 벌써 약간의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기도 하다.

 

등로 뒷쪽에는 방금 전 내려온 거대한 잔디밭과 원형 물통이 잘가라 손짓하고 앞으로는 드넓은 논들이 펼쳐져 있는데 저 앞으로 파란색 작은 콘테이너 박스가 눈길을 잡는다.

그 앞으로는 거대한 축사 건물이 내려다 보이고 그곳을 목표로 삼아 내려가니 푸릇푸릇 새싹이 돋아나는 거대한 파와 마늘밭이 다시 산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감방산은 아직도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시간이다.

 

거대한 축사 건물 앞 논과 밭을 통해 진행을 하니 마을 농로로 이용되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따라 좌측 감방산 방향으로 걸어가니 금새 811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작동고개에 도착을 한다.

함평읍 장교리 작동마을이라 알고 있는데 작동마을에 대한 자료는 찾지 못하고 도로 표시판에 월봉길이라 되어 있기에 월봉마을에 대한 자료를 대신해 본다.

원래 기성면에 속했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교리에 편입되었고 마을의 형국이 달의 형국이라서 월봉이라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전의 장동마을 까지를 합해 월봉이라 한다.

1789년 호구 총수의 지명에 월봉마을이 없는 것을 보면 그 이후에 형성된 마을임을 알 수 있는데 입향조의 내력에서 여실히 이를 증명한다.

이 마을의 개촌자는 전주리씨 량(1798~1858)으로 1810년경 신광면에서 이거 정착하였으며 이어 경주이씨 집호(1864년생?)가 1870년경에 칠언에서 이주 정착한 후 1876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경주이씨 족보에 집호의 생년이 1864년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20대에 문과 급제했다는 전언에 비추어볼 때 1854년생이 갑자(1864)생으로 잘못 오기된 듯 하다.

날씨가 춥고 많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마을이다 보니 사람 한번 만나기도 힘이 드는 시간이다.

 

작동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나자 마자 도로 건너 시멘트 포장도로가 우측으로 나 있고 그곳으로 들어가니 임도 우측 아래에는 거대한 창고형 건물이 보인다.

도로 표시판에는 월봉길이라 적혀 있는 곳이다.

나즈막한 언덕을 넘으니 금새 서해안고속도로가 다시 나타나는데 이어지는 시멘트포장도로를 타고 가 지하통로를 통해 무사히 통과한다.

 

지하통로를 통해 서해안고속도로를 통과하니 눈 앞에 월봉마을이 나타나는데 영산기맥 마루금은 월봉마을을 우측에 두고 좌측 가장자리를 통해 이어지도록 되어 있다.

앞에 보이는 감방산 오르막 줄기를 보면서 진행을 하니 민가 두어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오랫만에 할아버지 한분을 만나 잠시 인사를 나누고 그 민가 뒷편으로 오르니 많은 묘지들이 널려있는 장소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잠시 사과 하나 먹으며 지나온 마루금을 뒤돌아 보니 이제 원형 물통은 저 멀리 멀어져 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마늘 밭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시멘트 포장도로 사거리를 지나 저 앞으로 보이는 파란 원형 물통을 목표로 삼아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파란 원형 물통이 있는 쪽으로 올라가니 이제 시멘트 포장도로는 비포장 임도로 변해있고 임도 우측으로는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밭이 나타난다.

그 파란 물통을 지나 오르니 금새 잡목들이 발목을 붙잡지만 그래도 묘지들이 있는 곳으로 무사히 도착해 긴 한숨을 내 쉰다.

묘지에서 정상 등로를 찾지 못해 한동안 다시 이리저리 헤매다 그냥 앞에 보이는 능선을 치고 오르기 위해 잡목이 업    ㅅ는 곳을 찾다보니 묘지 좌측에 편백나무들이 서 있고 그곳으로 들어가니 빛바랜 선답자들의 띠지 두어장이 산객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드디어 다시 정상 등로를 찾아 이제부터 굵은 땀방울 흘리며 오르는 일만 남아 있다.

 

그리 높지는 않아 보이지만 연이틀 연속으로 산행을 하다보니 체력적으로도 많이 소진되고 정신적으로도 약해졌는지 그 오르막 등로가 왜 그리 힘들고 고통스럽게 다가오던지 지금도 생각만으로 가슴이 답답해 옴을 느낀다.

두어번 쉬었다가 어렵게 그 능선을 타고 오르니 잡목과 가시들이 등로를 점령하고 전혀 길을 내주려 하지 않는다.

정말 힘들게 올라 주능선에 도착을 하니 선답자들의 띠지가 반겨주고 그제서야 환희의 한숨을 길게 내쉰 후 좌측 등로를 타고 걸어 본다.

 

이제 뚜렷한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그것도 잠시 곧 잡목과 가시들이 발목을 붙잡고 그곳을 지나니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작은 바위들이지만 늘 잡목과 가시넝쿨과 싸우다 보니 몇개의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는 등로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새롭게 다가오는 산행이다.

이제 시간은 오후 1시 50여분을 지나고 허기가 지기 시작해 적당한 장소를 찾아 늦은 점심식사를 하려고 하지만 오후가 되면서 급격히 떨어지는 기온과 찬바람 그리고 중국에서 불어 오는 짙은 미세먼지로 인해 제대로 된 점심식사 장소 하나 찾기도 힘이 든다.

 

다시 잡목을 헤치고 오르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며 전망처가 나타난다.

지나온 등로와 앞으로 진행해야 할 등로를 잠시 전망한 후 자세히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들판을 내려다 본다.

아마도 170봉 전망대쯤으로 생각되는 곳인데 등로 좌측으로는 만흥리와 지풍리쪽 마을과 방금 전 지하통로를 이용해 통과한 서해안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이는데 박무인지 미세먼지로 인해 희미한 조망이 아쉽기만 하다.

 

다시 잡목을 헤치고 앞으로 걸어가니 소나무 가지 사이로 등로 우측에는 해운제란 저수지가 바로 곁으로 다가와 있다.

해운리와 현화리 마을 지나 저 멀리에는 서해바다가 보이겠지만 미세먼지로 인해 보이지 않으니 그것이 아쉬운 시간이다.

미세먼지는 점점 더 진하게 온 세상을 뒤덮기 시작하고 기온은 더 떨어지기 시작해 온몸의 열기가 식었다 올랐다를 반복해 산행에 여간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오르니 작은 바위 지대를 지나 200봉 암봉에 도착을 한다.

 

다시 계속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과 우측으로 멋진 풍경이 펼쳐지지만 역시나 미세먼지로 인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특별한 조망이나 전망이 없으니 이제부터 그저 걷는데에만 열중하다 보니 금새 다시 바위들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데 등로 자체는 어렵거나 힘들지는 않고 그저 평이한 등로로 열려 있다.

다시 바위를 만나 사진 한장 남겨 보는 시간이다.

 

바위를 지나 이제 감방산이라 생각하는 봉우리가 바로 코 앞에 보이는 바람이 잦은 장소에 소박한 점심상을 펴 놓고 혼자만의 만찬을 즐겨 본다.

어제 옆지기가 준비한 반찬 2종류와 오늘 새벽 식당에서 얻은 밥 한공기가 전부이지만 배고프고 허기진 이 시간에 먹는 점심은 늦었지만 꿀맛이다.

맛난 점심을 먹고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엔 이제 동백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동백나무 숲 사이 저 멀리 서쪽으로 지고 있는 햇살이 반짝이고 있다.

 

다시 뚜렷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며 등로 좌우측으로 펼쳐진 조망을 살펴 보지만 역시나 미세먼지로 인해 잘 내려다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게 다시 한동안 진행하다 전망대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온 마루금 아래쪽이 하얀 암반으로 이뤄져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이다.

진행 할 땐 전혀 느끼지 못했던 풍경이였는지 지나고 살펴보니 그 능선 아래에는 전부 암벽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를 않는다.

또한 감방산 가는 길이 가깝게 생각을 했는데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감방산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오르면 그곳은 무명봉이기를 몇번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발 두발 중단없이 걸어가는 두발의 위대함을 알기에 계속 걸어가니 드디어 저 앞으로 통나무 계단이 보이고 곧이어 감방산 정상인 헬기장에 도착을 한다.

드넓은 헬기장으로 이뤄진 감방산 정상의 좌측 한쪽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그 앞에 삼각점이 세워져 있다.

배낭 내려 잠시 주위 풍경을 살펴보고 셀카 놀이를 하면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감방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감방산은 무안군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5 Km쯤 떨어진 현경면 현화리에 위치한 산으로 무안군과 함평군을 경계하면서 함평군 유산에서 뻗어 내려온 노령산맥의 줄기로 무안의 주산이다.

감방신이 옛날에는 꼭대기가 아주 높아 정상을 보면 하늘에 닿는 듯 깜박깜박 하다 하여 깜박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또 감방산 정상에 있는 용굴에는 용이 살았는데 이 용이 승천하려다 못오르고 꼬리고 감방산 꼭대기를 때려 산이 무너지고 용은 이무기가 되어 철산바다로 통하는 용굴로 사라졌으며 무너진 흙더미는 철산바다를 메웠고 그 후 계속해서 매몰되어 감방산은 낮아지고 철산바다 일부는 평야가 되었는데 그 평야를 경신평야라하며 산이 허물어져 바다를 들판으로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것이 그저 이곳 감방산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전설이라 해도 그렇게 가꾸고 알리려는 이곳 주민들의 수고에 큰 박수를 보내는 시간이다.

 

감방산 정상에서 많은 시간 쉬었다 다시 배낭 둘러메고 헬기장을 내려가니 등로 좌측에 감방산 등산안내도가 서 있고 이곳 정상을 무제봉이라 적어 놓았다.

아마도 감방산 무제봉인가 생각되는 안내판이다.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 급경사 내리막으로 이어지는데 오르막 등로와 마찬가지로 통나무 계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계단을 내려가 잠시 더 진행하니 묘지들이 나타나고 묘지 뒷쪽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넓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 좌측으로 내려가고 곧이;어 콘크리트 포장도로와 비포장임도가 혼재되어 있는 임도에 도착을 한다.

하지만 그 옆에 서 있는 감방산 등산안내도에는 이곳 역시 무제봉이라 적혀 있으니 어느것이 맞는 표시인지 헷깔리기만 하다.

 

사진 한장 남기고 감방산 등산안내도 뒷편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다시 완만한 오르막 길을 오르니 잡목들이 길을 막지만 지금까지 걸어 왔던 등로보다는 양호한 느낌이다.

잡목 구간도 잠시 다시 뚜렷하고 양호한 등로를 만나 룰루랄라 진행하고 그렇게 잠시 더 힘을 내 오르니 넓은 공터에 벤취 2개와 철봉이 있는 벤취봉에 도착을 한다.

 

철봉과 벤취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 직진의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이제 등로는 뚜렷하게 등로 양쪽으로 멋진 잣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즐기며 걸어 갈 수 있는 길이다.

그렇게 다시 잠시 힘을 내 걸어가니 눈 앞으로 하늘색 산불감시초소가 나타나고 그 초소 옆 정상으로 올라 주위 풍경을 바라본다.

이곳이 186봉의 산불감시초소봉으로서 초소 옆에는 잡풀 사이로 삼각점 하나가 숨어 있다.

하지만 이곳 봉우리는 소나무들이 조망을 막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곧바로 뚜렷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이제부터 등로 찾기에 주의하며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주의를 해 보지만 최근에 벌목작업과 소나무 가지치기를 했는지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등로 주위에 벌목된 잔가지들이 많아 선답자들의 띠지 하나 구경하기 힘들다.

잠시 내려가다 첫번째 갈림 삼거리에서 부터 우측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희미한 등로를 찾아 내려가야 하지만 역시나 가지치기와 벌목으로 인해 길을 찾지 못해 대형 알바를 하고 만다.

마지막 띠지까지는 잘 찾아 왔지만 그곳에서 좌측으로 들어가는 곳으로 가 한참을 등로를 찾아 헤매지만 찾지 못해 그냥 그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몸은 편안한데 마음만은 좌불안석이 따로 없다.

 

다 내려가 보니 역시나 등로 우측으로 한참이나 벗어난 곳으로 내려 와 있고 다시 정상 등로를 찾아 오르지만 가지치기로 인해 정상 등로 찾기를 포기하고 내려온 마을에서 다시 좌측으로 산을 돌고 돌아 도산재가 있는 곳으로 복귀해 보기로 한다.

현경양수장과 평산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잘못 내려가 살펴보니 민곡리로 내려가야 할 것을 한참이나 우측인 평산리로 내려가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어렵게 평산 저수지와 현경양수장 좌측으로 나 있는 도로를 타고 어렵게 무안박공 묘지를 찾아 정상 등로로 복귀를 하고 그곳에서 다시 도산재쪽으로 내려가며 어렵게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처사 무안박공 가족묘지들이 있는 곳을 지나 내려가니 바로 눈 앞에 도산재란 커다란 저수지가 보이고 그곳을 좌측에 두고 우측 밭있는 곳으로 내려가 보지만 역시나 정상 등로는 그 우측 능선인듯 해 올라가 보지만 잡목으로 진행에 어려움을 느껴 그냥 밭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밭을 통과해 내려가니 24번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난다.

 

24번 2차선 포장 지방도로를 만나 좌측의 도산삼거리 방향을 담아 본 풍경이다.

저 도로 표지판 좌측 위에는 도산재라는 저수지가 존재하고 이 길로 계속 가면 함평읍쪽으로 진행하게 되는 곳이다.

하지만 정상 영산기맥 마루금은 이곳에서 우측 고갯마루쪽으로 올라 좌측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능선을 타고 내려가며 진행해야 맞는 등로이지만 잡목으로 진행 할 수 없어 저곳 도산삼거리에서 우측 무안쪽으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하기로 한다.

 

그렇게 좌측 도로를 타고 내려가 도산삼거리 도로 표지판 아래에 있는 도산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고민하다 오늘 산행은 이곳에서 멈추기로 한다.

이곳에서 히치하이킹으로 함평읍까지 갈 수 있으면 최선의 방법이고 그렇지 못하고 택시를 부른다 해도 군 경계를 넘지 않으니 그것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 이곳에서 산행을 마무리하고 배낭을 정리해 본다.

잠시 기다리며 지나가는 차를 세워 보지만 차를 잡지 못하고 택시를 부를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트럭 한대가 내려오고 손을 흔드니 쉽게 멈춰 함평읍까지 데려다 준다.

연세 드신 두 노부부인데 농사를 짓다가 오늘은 바람 쐬러 멀리 다녀오는 길이라며 많은 등산객들이 산에 오르니 많은 차들이 잘 세워주지 않는다며 높은 산도 없는 함평까지 내려 와 산행을 하고 귀가하는 이 산객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듯 하다.

그렇게 쉽게 함평읍에 도착해 택시로 함평농공단지까지 가 애마를 회수한 후 다시 시내로 돌아 와 샤워 후 느긋하게 서울 집으로 복귀하니 오랫만에 맥 산행에 내려 와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날아 갈 듯 뿌듯한 시간으로 남겨진다.

 

이제 다시 이어가기를 시작했으니 남아 있는 구간도 무탈하게 빨리 마무리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