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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서봉지맥(한남·완)

서봉지맥 마지막 제3구간 39번 오뚜기라면에서 평택호(아산호)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3.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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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기도 평택시의 한남서봉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3년 04월 24일 (수요일)

산행날씨 : 맑고 화창한 전형적인 봄 날씨

산행온도 : 영상 10도에서 영상 22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39번 지방도로 오뚜기라면 공장 후문-폐산불감시초소봉-안부-천리마 MTB 등로-무성산 갈림 삼거리-자미쉼터-110.8봉-포장임도-약사사-67번 송전탑-포장임도-비포장 임도-갈림 임도 삼거리-안중공설묘지-태성가설-38번 지방도로-반룡한의원-태성자원-경기도외국어교육연수원-덕우로-38번 지방도로-안중성당-평택시안중출장소-현화교차로-홈플러스-로얄관광호텔-학현2리(원학현)버스 정류장-수준점(26미터)-석정삼거리-성해1리 버스정류장-벽돌집식당-운정리입구 버스정류장-장수리와 도대리 포장도로-콸맥스 공장-대신정기화물-운정4길-서해플랜트-화양길-운정2길-운정1리 파우치마을 이정석-도대3길-대부금속-도대3리 버스정류장-현덕서로-포내로-동양가스-권관양수장-비포장 임도 갈림 삼거리-포장도로 갈림 오거리-오리사냥 음식점-39번 지방도로-가사초교 버스정류장-경기휴게소-가구단지-갓길 임도-권관3리 도로 표지판-현덕교차로-한국소리터 1.3 Km 이정표-평택호관광단지 갈림 삼거리-계두봉(왕자봉, 30미터)-현충탑-전망대-서해바다-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8.00 Km 

산행시간 : 사진 찍으며 꾸준한 속도로 04시간 20분 (12시 55분부터 17시 15분까지)

교통편 : 갈때-애마 이용해 오뚜기라면 공장 후문 SK 주유소까지 이동 후 주차

          올때-아산만 종점에서 택시 이용해 오뚜기라면 ㄹ\후문으로 이동 (택시비 13,900.-)             

한남서봉지맥이란 ???
한남정맥  감투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구봉산(145 미터), 칠보산(239 미터), 고금산(87 미터), 서봉산(250 미터), 덕지산(138 미터), 옥녀봉(82 미터), 계두봉을 거처 아산호(아산만 방조제)에서 맥을 다하는 약 60km의 산줄기를 한남서봉지맥이라고 부른다

 

 

남아 있던 서봉지맥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속시원하게 집으로 복귀한 시간들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마루금을 걸으며 선답자들의 도움을 받아 무탈하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정상 산줄기에 충실해 산행을 하면서 단 한명의 후답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잇도록 산행 후기를 적으려 한다.

다만 너무 방대한 자료이기에 간혹 잘못 기술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 산행 후기는 그저 참고 자료로 이용해 줄 것을 당부드리는 바이기도 하다.

 

작년 시작을 해 놓고 금새 끝내리라 생각했던 서봉지맥을 해가 바뀌고도 몇개월이 지난 오늘에서야 그 마무리를 할 수 있어 기쁜 마음으로 돌아 온 하루다.

어머님이 돌아 가시고 아버님을 모시고 서울집에서 생활하다 보니 좋아하던 산행도 자주 들지 못하고 아버님과 시간을 보냈지만 건강하시던 아버님마저 몸져 누우시고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끝내 하늘나라로 가시고 나니 한동안 패닉상태에 빠져 산행다운 산행 한번 하기 힘든 시간이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자꾸만 몸과 마음이 서봉지맥에서 멀어지고 언제 오르게 될지 모를 산줄기가 되어가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선 마무리하지 못한 찜찜함에 편한 시간을 보낼 수 없었던 것 역시 사실이였다.

오늘은 안성쪽에 일이 있고 시간이 길게 이어질 미팅이 아니기에 산행 준비 후 안성으로 내려갔다 평택에서 다시 잠시 일을 끝내고 나니 12시가 넘어 가고 있다.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옷을 갈아 입은 후 산행 들머리인 39번 지방도로 위의 오뚜기라면공장 후문에 도착을 하니 오후 1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한발 두발 여유롭게 걸어가니 드디어 서봉지맥 마지막 평택호랄까 아니면 아산호에 이르고 그 가장자리에 서서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하루 햇살을 받으며 어렵게 셀카로 사진 한장을 남겨 본다.

늘 시골에 내려갔다 올라오며 들렸던 길이였고 도로였는데 이렇게 중요한 산줄기임도 모르고 지나다녔던 시절이 오바랩되며 변해가는 산하만큼 이 산객도 변하고 있음을 실감한 시간이였다.

이렇게 또 하나의 산줄기를 이어놓고 보니 그동안의 고통은 사라지고 그저 이 시간 즐거운 희열에 가슴 떨리는 시간이 되였다.

 

 

어렵게 SK 주유소 한쪽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산행 준비 후 39번 지방도로 우측의 오뚜기라면주식회사란 노란 입간판을 바라보고 그 앞에서 우측으로 꺽어 좌측에 오뚜기라면 공장 콘크리트 옹벽을 두고 천천히 걸어 들어가니 그 옹벽을 타고 흘러내린 개나리 가지마다 노란꽃을 활짝 피워 아름답고 그 위에 하얀 벗꽃이 더해져 환상의 도로를 만들고 있다.

시작부터 즐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서봉지맥 들머리를 들어가는 시간이다.

 

 

콘크리트 옹벽을 타고 흘러내린 노란 개나리와 그 위에 피어난 하얀 벗꽃이 멋진 조화를 이루며 이 산객을 반겨준다.

도로 우측에는 오뚜기라면주식회사 직원들을 위한 주차장인듯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고 그 가운데로 나 있는 오뚜기라면공장 후문으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뿌듯하기만 하다.

 

 

포장도로를 타고 조금 더 올라가니 도로 좌측으로 오뚜기라면 공장 후문이 나오고 그 우측으로 갈림 포장 도로 하나가 더 나타난다.

그 우측 도로를 타고 올라가는데 자꾸만 오뚜기라면 공장의 후문 수위들이 힐끔거리며 이상한 눈길을 보내지만 이 서봉지맥을 알길 없는 사람들이 그런 눈길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는 듯 무심하게 진행한다.

조금 더 올라가니 저 멀리 정면으로 원형의 높은 탑이 보이고 바로 그곳 우측으로 작은 주차장 하나가 보인다.

그 주차장 우측 절개지 능선으로 오르며 본격적인 산행 모드로 들어간다.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아카시아 나무를 식재해 놔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고 또한 등로 좌측으로는 절개지가 펼쳐져 더욱 산행에 주의를 요한다.

그래도 그 절개지 좌측 저 멀리 약사사 지나 만나야 할 포장 임도로 이어지는 서봉지맥 마루금이 빙 돌아 내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와 잠시 사진 한장 남기고 능선으로 들어간다.

능선으로 드니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운 진달래들이 소나무 아래 곱게 피어 산객을 맞이해 주는데 오후 1시를 넘기면서 부터 벌써 더위를 느끼기 시작하고 이마와 등줄기에선 굵은 땀방울이 흘러 내리기 시작한다.

잠시 완만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금새 폐허가 되어 버린 산불감시초소봉이 나타나고 사진 한장 남긴 후 좌측 등로를 버리고 좌측에 울타리를 두고 우측 등로를 따라 서서히 속도를 높혀 본다.

 

 

그곳 봉우리에서 내려가기 전 좌측 울타리쪽으로 가 살펴보니 이제부터 돌아 진행해야 할 서봉지맥 마루금이 좌측으로 빙 돌아 내려가는 모습이 보이는데 생각보다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머물러 본다.

바로 앞 울타리 넘어에는 밭을 일군 흔적이 있는데 살펴보니 무슨 나무들을 식재한 장소처럼 보인다.

그 사이에 용성리 마을이 한가롭게 봄이 오는 소식을 접하고 있다.

 

 

다시 녹색 그물망을 좌측에 두고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가끔 벌목된 나무들이 등로를 막아 산행에 약간의 지장을 주지만 진행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등로에 피어난 붉은 진댤래꽃들의 호위를 받으며 진행을 하니 금새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안부가 나타나는데 그 안부 넘어 산등성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진디를 심고 있다.

처음에는 무슨 공사를 하는지 궁금했는데 안부 지나 일하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가족 묘지를 만들기 위해 잔디를 심어 가꾸는 중이란 말이 돌아 온다.

또 이렇게 산등성이 하나가 무참히 사라지는 현장을 목격하곤 마음이 아파옴을 느낀다.

 

 

잠시 담소를 나무고 그곳 묘지 조성지대를 지나니 다시 소나무 숲이 이어지고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걸어가는 발길엔 생동감이 넘친다.

그저 이렇게 산에 들어 있는 자체로 즐겁고 좋은 것을 왜 그리 그것이 힘들게만 느껴졌는지...

그렇게 조금 더 진행하니 뚜렷한 등로와 만나는데 그 옆에는 천리마 MTB 7 Km란 안내판이 보인다.

MTB를 끌고 오를 정도의 등로는 아닌듯 싶은데 지자체에서 MTB를 위해 특별히 등로를 조성했는지 이곳부터는 등로도 좋아져 더욱 발걸음이 가볍다.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계속 이어지는 진달래꽃을 감상하며 진행하니 등로 좌측에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우측의 서봉지맥과 저 멀리 안중읍쪽 아파트들이 생각보다 가깝게 다가 와 있어 잠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제 곧 올라야 할 무성산 갈림봉과 110.8봉 그리고 약사사로 이어지는 서봉지맥 마루금을 살펴본 후 진행하다 다시 잡목이 사라진 등로에서 바라보는 안중읍쪽 풍경이 연두빛으로 봄을 알리는 산하와 묘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게 다가온다.평택시 안중읍지에 소개된 안중읍에 대한 유래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1987년 7월 1일 평택군 조례 제 1130호(87.6.29 공시)로 군과 면의 사무를 효율적으로 분장 수행하고 주민의 행정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오성면 금곡리, 안중리, 학현리, 대반리, 삼정리와 청북면 덕우리, 용성리, 포승면 석정리 일부, 현덕면 화양리 일부 및 인광리 업무를 분리하여 평택군 안중출장소를 개설 행정기관으로서 발족을 하였는데 그 당시 안중리 마을회관을 빌려 사무실로 사용하였으나 1988년 12월 20일 청사를 준공하였으며 평택군 조례 제1220호(89. 3. 31 공시)로 평택시 안중출장소가 안중면으로 승격되었고 군조례 제 1222호(89. 3. 31 공시)로 3개 법정리(성해리, 현화리, 송담리)를 신설하여 행정면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어서 2002. 5. 1일 평택시에 읍설치 요청을 하고 동년 5월 22일 경기도에 요청, 동년 8월 10일에 행자부에 요청, 동년 9월 23일 행자부에서 읍설치 승인이 되었으며 동년 10월 31일 평택시 조례공포 제583호로 안중읍으로 승격되었고 동년 11월 5일 안중읍 승격 및 출범을 시작하였다고 되어 있다.

 

 

묘지있는 곳에서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완만한 짧은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더욱 많은 진달래꽃들이 반기고 안부를 지나 오르니 갈색에서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는 산하가 더욱 생동감있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잠시 더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걸어가니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곧 무성산 갈림 삼거리가 눈 앞으로 다가 와 있다.

생각보다 양호한 등로에 많은 진달래가 피어 산행하기에는 좋지만 날씨가 더워 벌써부터 땀방울과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 같아 걱정도 앞서는 시간이다.

 

 

무성산 갈림 삼거리에서 원 기맥은 좌측으로 꺾여 내려가며 진행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무성산 방향으로 올라가 본다.

잠시 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넓은 헬기장 같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잡목으로 가려 조망은 전혀 없다.

잠시 배낭 내려 옷매무새 다듬고 사진 몇장 남긴 후 다시 무성산 갈림 삼거리로 뒤돌아 나와 이제는 우측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 본다.

평택시에 존재하는 무성산은 잘 알려지지 않은 나즈막한 산이지만 그곳에 있는 무성산성은 꽤 이름이 알려진 산성이다.

평택시 무성산지는 경기도 기념물 제202호로서 청북면 옥길리에 위치하는 산성이다.

무성산성은 평택시 서부 청북면에 위치하고 있는 무성산(마루산·테미산이라고도 함)의 정상부(해발 104.7미터)를 감싸고 축조된 테뫼식 토축산성(산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둘러 쌓은 토축산성)이다.
산성은 능선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남쪽의 자미산과 이어진다.

평면형태는 남북이 길쭉한 장타원형에 서쪽에 위치한 계곡부로 인하여 서벽이 서쪽으로 불쑥 돌출된 어자 형태를 하고 있고 성벽은 동, 남, 북벽이 능선을 감싸 돌고 있으며 서벽은 계곡을 가로질러 축조되어 성내의 유수를 이곳을 통해 배출할 수 있는 지형이다.

성벽을 따라 평탄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정상부의 북사면으로 능선을 깎은 뒤에 만들어진 평탄지들이 존재하는데 문지는 동문지와 서문지가 있으나 현재는 군사시설로 인하여 파괴가 심하다.

서문지는 성내의 물이 모일 수 있는 저지대인 점으로 미루어 수구의 기능을 함께 수행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무성산성은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아산만 일대의 방어 및 통치와 관련하여 유용한 자료를 제공하여 줄 뿐만 아니라 토성축조 방식과 활용문제에 있어 직접적인 자료로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무성산 정상에는 서 보지 못했지만 이렇게 또 하나의 역사를 배워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무성산 갈림길로 뒤돌아 나와 안부로 내려가는 등로에는 초록이 완연한 봄을 지나 여름으로 달려가는 듯 보인다.

하얀 조팝나무꽃이 더욱 산객의 마음을 붙잡고 흔드는 시간이지만 오랫동안 머물 수 없기에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안부를 지나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한다.

추운 겨울이 이겨내고 돋아나는 초록의 새순이 지금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잡목과 가시덩쿨로 산행에 얼마나 큰 어려움을 주는지 알기에 피식 웃음이 나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저 위로 민둥의 정상부가 올려다 보이는데 그곳에 좌측으로 뚜렷한 길이 나 있어 잠시 따르다 이상한 느낌으로 잡목이 우거진 우측 정상부로 올라가 본다.

정상부로 올라가다 좌측을 내려다 보니 지붕이 있는 쉼터가 내려다 보이는데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 나타난 자미쉼터인듯 하다.

왜 자미쉼터일까 궁금해 자료를 찾아 보니 자미산성이 근처에 있음을 알게 됐고 그곳에서 유래된 이름인듯 하다.

안성천 하류와 아산만 입구의 해양방어체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삼국시대의 산성으로 산성이 위치한 자미산(해발 110.8미터)으로는 북쪽의 무성산에서 뻗어온 산줄기가 이어져 남쪽의 비파산까지 내려가고 있다.
즉 무성산성과 비파산성이 연결되는 중간부에 자미산성이 위치하고 있는데 자미산의 자미는 북두칠성을 나타내며 주민들은 ‘재미산’으로도 부른다.

자미산성은 내성, 외성, 부성의 삼중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정상부 주위를 토축으로 축조한 내성과 7~8부 능선을 따라 석축으로 이루어진 외성의 이중구조와 자미산 동쪽 능선의 110미터 거리에 토축으로 이루어진 부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 외성의 선후관계는 외성 북벽 부근에서 내성의 토루가 외성의 건물지에 편입되는 것으로 보아 내성이 먼저 축조되고 이후 내성이 파괴되면서 외성으로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양상은 내성 남벽 절개부에서 출토되는 유물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데 즉 내성 절개부에서는 청동기시대 무문토기류, 백제시대 타날문토기류가 출토되며, 외성에서는 신라시대 토기·기와류가 출토되고 있다.
내성은 토축으로 편축식의 축조방법을 하였으며 평면은 반월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둘레는 240미터 정도이며 성벽 높이는 2~2.5미터 내외이다.

외성은 석축하였으며 평면은 동서가 약간 긴 장방형을 기본형태로 하고 있는데 여기에 북동사면의 지맥 영향으로 북동회절부가 남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돌출된 형상을 하고 있다.

즉 성벽은 남벽, 동벽, 북벽을 능선이 감싸돌고 있으며 서벽부는 계곡을 막아 축조되어 있으며 둘레는 582미터이며 외벽 높이는 4~5미터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시설물로는 추정건물지 9개소, 장대지, 추정동문지와 적대, 추정수구지, 동·서·북치성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북치성 하단부에는 초생달모양의 토루가 삼중으로 겹을 이루고 있다.
이 산성의 북쪽으로 무성산성, 동쪽으로 용성리 강길마을성이 위치하며, 남쪽으로 약 100미터 거리에 비파산성, 용성리성 등이 자리하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자미쉼터를 지나 정상으로 올라오니 많은 잡목들과 가시넝쿨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민둥의 110.8봉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찾아 보지만 아무 표식도 없고 삼각점도 찾을 수 없어 그냥 지나친 후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을 예전엔 자미산이라 불려졌음을 알게 되였다.

한여름 산행을 하는 후답자들에게는 마의 봉우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봉우리이기도 하다.

 

 

그 110.8봉을 지나자 마자 바로 묘지지대가 나타나는데 그 묘지 위에서 바라본 서봉지맥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원 마루금이 보이지만 지도를 보니 그 원래 마루금을 타지 못하고 우측으로 크게 우회하는 등로가 보이길래 한동안 그 이유를 찾아 둘러 보지만 이곳에서는 그 이유를 찾지 못한다.

이제 묘지를 우측에 두고 좌측 가장자리를 타고 내려가니 넓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 좌측으로 따라 진행을 해 본다.

 

 

잠시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많은 묘지들이 널려있고 그 앞에는 공터가 보인다.

그 공터를 지나 마루금이 이어질듯 한데 등로는 그곳 아래에서 우측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다시 올라가 정상 지맥 마루금을 찾아 내려가 보지만 많은 가시 넝쿨로 인해 진행이 불가능 하다.

다시 뒤돌아 나와 우측으로 크게 떨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잡목 사이로 바로 아래 민가들과 저 멀리 덕우리쪽 마을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잠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바로 아래에 파란 지붕을 한 민가가 보여 닷 뭔가 잘못되였다는 생각에 위로 올라 직진의 가시덤불을 찾아 보지만 등로가 보이지 않아 내리막 등로로 진행을 한다.

조금 더 내려가니 등로는 좌측으로 꺾이며 정상 방향으로 진행되고 곧이어 비포장 임도와 포장 임도가 만나는 안부에 내려선다.

등산객이나 사람들의 왕래가 전혀 없는 마루금이다 보니 이곳처럼 등로 자체가 사라져 버린 곳이 간호가 나타나고 그럴때마다 산객은 등로를 찾아 잠시 헤매게 되는 것이 고통이자 묘미인듯 하다.

 

 

포장도로 옆에는 현호색이 지천으로 피어 있고 그 옆에는 천리마 MTB 6.0 Km란 안내판이 보인다.

도로를 가로 질러 다시 반대편 능선으로 오르니 묘지 하나가 보이고 그 묘지를 좌측에 두고 돌아 능선으로 진입하니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는데 등로 주위에는 더욱 많아진 연분홍 진달래꽃이 산객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고 있다.

참으로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산책하듯 걸어 보는 시간이다.

 

 

완만한 오르막이지만 전혀 힘들지 않게 주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주변의 잡목에서는 연두빛 새싹들이 봄을 알리고 그렇게 능선을 타고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높게 세워진 산불감시초소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그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니 바위들이 정상에 너부러져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아무 표식도 없고 삼각점도 없어 그저 산불감시초소봉이라 이름 붙여 놓고 다시 지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조금 더 진행하니 등로 앞으로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잡목이 사라진 틈을 이용해 저 멀리 안중읍쪽 풍경을 바라 본다.

평야지대이다 보니 높은 산은 찾을 수 없고 그저 구릉지 같은 비산비야 지대 저 멀리 고층 아파트들이 하늘 높이 올라간 풍경들이 보인다.

부모님이 시골에 살아 계실 때 많이도 이용했던 도로들인데 이렇게 지맥 마루금에 올라 내려다 보니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묘지를 좌측에 두고 뚜렷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주위엔 소나무들이 식재되어 제법 크게 자라고 있고 앞을 보니 오뚜기라면 공장 후문 주차장 옆으로 이어지던 포장도로가 이곳 고갯마루로 이어지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처음 산행을 시작할 때 저 포장도로를 타고 일찍 고갯마루에 도착할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오늘은 산행 시간도 짧고 또 비산비야 지대이다 보니 그 마루금이 밟고 싶어 진행한 시간이 다행이란 안도의 긴 한숨이 나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이어지는 호젓한 등로를 타고 즐기는 시간이다.

 

 

계속 내려가니 등로는 점점 더 넓어져 비포장 임도 수준에 이르고 평이한 등로로 바뀌는 곳 좌측으로 잘 가꿔진 묘지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그 묘지 넘어 저 멀리 잡목 가지 사이로 약사사가 빼꼼히 보이기 시작하고 이제사 정상적인 등로를 찾아 잘 진행하고 있음을 확인하며 안도를 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묘지를 지나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약사사가 보이고 그곳으로 도로가 이어져 있지만 지도를 보니 정상 등로는 약사사쪽이 아닌 우측 나즈막한 능선이라고 알려 주기에 그 능선을 타고 걸어 본다.

잠시 능선을 타고 진행을 하니 다시 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옆에는 67번 송전탑이 서 있다.

그 포장임도를 가로질러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고갯마루 직전에서 등로는 다시 좌측 포장 임도쪽으로 이어지고 짧은 거리 그 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을 한다.

 

 

잠시 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올라가다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약사사 뒷편으로 오뚜기공장 후문에서 이어져 온 포장 임도가 보이고 진행 방향 앞쪽으로는 노부부인듯 한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면서 이 산객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인사 드리니 등산할 만한 산도 없는데 등산을 한다며 물어 오시고 설명을 해 드려도 이해하기 힘들 것 같아 간단하게 서봉지맥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드리고 고갯마루로 오른다.

고갯마루로 오르니 포장도로는 직진으로 넘어가고 좌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나 있는데 그 비포장 임도가 바로 지맥 마루금이다.

 

 

비포장 임도 입구에는 다시 천리마MTB 2.5 Km란 작은 안내판이 서 있고 한동안 푹신한 임도를 따라 걸어 들어가니 임도 우측으로 잘 정리된 몇기의 묘지지대가 나타난다.

그 묘지 주변에는 많은 제비꽃들이 펴 한들거리먀 봄바람에 춤을 추고 있어 사진에 몇장 담고 다시 출발한다.

계속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직진의 좌측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꺾이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한다.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걷다보니 나즈막한 고갯마루 넘어 좌측에서 오는 비포장 임도와 다시 만나는데 방금 전 헤어졌던 임도가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비포장 임도를 만나 우측으로 계속 진행하다 등로 우측을 보니 분명 정상 등로는 임도 우측으로 따라오는 능선같이 생각이 들고 잠시 그 능선으로 올라가 보지만 등로도 잘 나 있지 않고 임도와 동일하게 진행되기에 그냥 임도를 따라 걷기로 한다.

한동안 걸어 진행하니 임도 좌측 아래로 커다란 창고같은 건물이 보이고 곧이어 포장도로와 다시 만난다.

 

 

포장도로로 가 커다란 안내판을 살펴보니 이곳이 안중공설묘지로서 도로 우측으로 제법 넓게 묘지들이 자리하고 있다.

앞쪽 10시 방향으로는 요양센타 실버타운이란 노인 요양시설이 보이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아마도 정상 마루금은 그쪽 방향이 맞을듯 싶다.

하지만 이곳부터는 난개발이 심해 한동안 제대로 된 마루금을 타지 못하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포장 도로와 차도를 따라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걸어가야 한다.

 

 

안주공설묘지 지대를 지나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 녹색 철망이 나타나고 그곳은 살펴보니 커다란 카센터처럼 보이는데 차량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만나는 사거리 갈림길에서 직진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는 나즈막한 능선이 지나고 우측으로는 함석판을 덧댄 공장이 보이는데 살펴보니 태성가설이란 공장으로 건물을 지을 때 콘크리트를 부어 양생 시킬 때 사용하는 자재들을 만드는 공장처럼 보인다.

 

 

그 태성가설을 지나 진행하니 금새 금곡사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2차선 도로를 타고 한동안 진행한다.

진행하지 마자 도로 우측으로는 사상의학 반룡한의원이란 커다란 건물이 보이고 도로 건너편에는 S Oil 주유소도 보인다.

한의원 건물 앞 도로 변에는 안중공설묘지입구와 반룡한의원이란 버스정류장이 있고 진행 방향으로는 안중터미널이 표시되어 있다.

 

 

조금은 뜨거워진 날씨로 인해 챙있는 모자를 눌러 쓰고 안현로라 적혀 있는 도로를 타고 진행하다 반룡한의원 지나 우측 뒷쪽을 바라보니 저 멀리 지나 온 서봉지맥과 안중공설묘지 그리고 요양센타 실버타운 건물이 보인다.

사라져 가는 지맥 마루금을 찾아 이렇게 걷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각하다가도 이렇게 그 희미한 흔적을 찾아 갈 수 있음에 그 의미를 부여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도로 건너 좌측으로는 몇개의 식당들도 보이고 그렇게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38번 지방도로 분기점 500미터란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곧이어 하나숯불장어 식당을 지나 태성자원 입간판이 있는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좌측 도로인 안현로를 버리고 우측 안현로 서1길로 방향을 바꿔 진행한다

이 도로는 1차선 포장도로로 차량 통행은 많지 않아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에 로얄파크라는 모텔이 보이고 꿈나래어린이집도 보인다.

도로 건너 좌측에는 안중컨벤션웨딩홀 건물도 보인다.

한라 어린이집을 지나 경기도외국어교육연수원 건물을 통과하니 도로 좌측에 미래자원이 서 있다.

시립안중어린이집을 지나 진행하니 삼거리 갈림 도로와 만나는데 이곳에서 도로를 타고 좌측 덕우로로 향한다

 

 

조금 더 걸어가니 늘봄한우마을 식당이 서 있고 곧이어 38번 지방도로와 만나는 학현사거리에 도착을 한다.

도로 건너 반대편에는 안중성당이란 큰 붉은색 건물이 보이고 그 도로 건너편에는 안중우체국 건물도 보인다.

이곳에서 38번 지방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꺾어 서평택 IC와 평택항 방향으로 계속 진행한다.

 

 

이 도로는 38번 지방도로로서 서동대로란 이름이 붙어 있는 도로이다.

도로 타고 계속 진행하니 덕우2리와 덕우1리 간판이 보이고 작은 갈림 삼거리를 지나 39번 지방도로와 만날 수 있는 사거리를 건넌다.

계속 직진으로 서평택 IC와 평택항 도로 표지판 방향으로 걸어가니 이제 그 같은 방향으로 만호와 포승 표시도 함께 보이기 시작한다.

우측에 이글골프연습장 인도어를 지나 우측으로 안중도서관 들어가는 작은 도로를 건너니 곧 평택시안중출장소와 평택시립안중도서관 및 서평택국민체육센터 건물이 도로 우측에 서 있다.

 

 

안중출장소 버스정류장을 지나 혆롸리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니 도로 건너에는 이화마을과 LIG 아파트들이 보이고 조금 더 진행해 우측으로 청북과 청북택지지구로 갈 수 있는 사거리를 만난다.

이곳이 바로 현화교차로로서 도로 옆에는 전원마을입구 버스정류장이 서 있고 그 조금 앞에는 큰 플러스홈 건물이 서 있다.

 

 

현화교차로 사거리를 지나 계속 38번 지방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웨스트호텔이 로얄관광호텔로 바뀌어 있고 그 앞을 통해 계속 도로 따라 걸어 간다.

조금 더 지나니 옛고을 한우정육점식당 입간판을 만나는데 우측 개울 건너에는 카센타들이 보인다.

학현2리(원학현) 버스정류장을 지나 성해2리 방향으로 끝도 보이지 않는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발바닥에서 고통의 느낌이 전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금 더 진행하니 도로 우측 화단에 수준점이 보이고 잠시 들어가 살펴보니 해발고도 26미터에 수준점번호 12-07-16-01이라 적혀 있다.

수준점 안내판 옆에는 돌로 잘 보관된 수준점이 박혀있다.

왜 이런 평지같은 곳에 수준점이 있는지 의아해하면서 다시 38번 도로로 나와 계속 진행하던 방향으로 걸어 본다.

 

 

잠시 더 걸어 가니 도로 우측으로 발안, 조암, 홍원리와 석정리로 갈 수 있는 도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진행 방향은 직진의 만호와 포승 방향이다.

오랫만에 만나는 정겨운 은성정미소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발안과 조암 그리고 홍원리와 석정리를 갈 수 있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도로 표지판에는 석정삼거리란 이름이 붙어 있다.

 

 

석정삼거리 옆에는 성해2리 버스정류장이 서 있고 이제부터 진행 방향으로는 성해1리란 이름이 붙어 있다.

도로 건너 좌측으로는 과수원도 보이기 시작하고 도로 우측 옆에는 삽교호까지 26 Km 남아 있다는 작은 표시판도 보인다.

성해1리 버스정류장을 지나 이제 석정아파트 방향으로 걸어가니 보령가설재 입간판을 지나 벽돌집 식당이 서 있다.

그 바로 앞에는 이제 도로 좌측으로 갈리는 장수리 도대리 방향으로 틀어 진행해야 할 주의 구간에 도착을 한다.

도로를 건너 주위를 살펴보니 안중자동차매매상사란 입간판이 서 있고 그 반대편에는 운정리입구 버스정류장도 보인다.

 

 

차량 통행이 빈번하던 38번 지방도로를 직진으로 보내고 장수리와 도대리 방향으로 들어서니 1차선 포장도로인데 일반도로가 아닌 포장 임도같은 느낌으로 걸어 본다.

도로 양쪽에 나즈막한 능선이 있는 곳을 지나니 도로 우측으로 신축한지 얼마되지 않았는지 깨끗한 QualMax란 건물이 보이고 계속 직진을 하니 대신정기화물 택배 입간판도 보인다.

 

 

간간이 지나는 차량을 피해 계속 포장 임도같은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양쪽으로는 평지와 다름없는 풍경이 펼쳐지고 좌측 저 멀리에는 현화리 지나 안중읍내의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눈에 들어 온다.

현화리에는 몇개의 마을들로 이뤄져 있는데 현화는 처음에 현덕면 화양 3리와 4리였다가 뒤에 안중면이 독립하면서 행정리가 설치되자 본래 현덕면 화양리였으므로 그 앞자를 따서 현화리라고 했다고 한다.

행궁리는 현화 1리의 마을 이름으로 조선시대에 평창이씨가 낙향하여 살면서 부유한 생활 속에서 활을 쏘며(행궁) 지냈다는 데서 행궁이라고 했다고 하며 한촌은 현화 2리의 마을 이름으로 한씨들이 많이 사는 마을이라는 데서 한촌(한촌)이라고 하다가 한촌(다른 한자 한촌)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무지개골은 한촌의 다른 이름으로 마을의 지형이 무지개의 형상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며 안중은 이 마을 뒤에는 봉화를 올리던 재무덤이 있었는데 어려운 때에 봉화를 올려 마을이 안정된다하여 안정리라고 하다가 안중으로 변화했다고 한다.

 

 

안중읍내를 조망하며 계속 걸어가니 나즈막한 야산이 나타나는데 도로 우측에는 또 다른 공장이 나타난다.

그 옆에는 운정4길이란 도로 표지판이 반긴다.

나즈막한 고갯마루를 넘으니 이제 도로 우측 저 멀리 서해대교 주탑이 박무속에 보이기 시작하고 가까이에는 황토밭에 작물을 심기 위해 잘 정돈된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이제 발바닥이 따갑기 시작하고 조금은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계속 도로 우측으로 보이는 서해대교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가니 이제는 도로 좌측으로 묘지와 밭 넘어 안중읍내가 조망된다.

도로 우측에 과수원이 보이고 아주머니 한분이 밭에서 열심히 땀흘리며 일을 하고 있다.

우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 갈림길에서 바라보는 서해대교가 또 다른 풍경으로 가슴에 남겨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곳을 지나 계속 도로를 타고 걷다보니 선답자들의 후기에 등장하는 서해플랜트 공장이 도로 우측에 보이고 좌측 도로 표지판에는 화양길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다시 도로 양쪽으로 붉은 황토밭이 펼쳐진 곳을 따라 걸어가니 운정2길이란 도로 표지판이 우측으로 가리키는데 그곳으로도 포장도로가 보인다.

도로 주위에 피어 난 노란 개나리와 하얀 벗꽃이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걸어가는 산객의 친구가 되어 주는 시간이다.

 

 

계속 도로를 타고 걸어가는 시간이 약간은 고통스럽지만 중단할 수는 없는 순간이기도 하다.

시골 특유의 풍경으로 다가오는 느낌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의 밭에는 푸른 마늘 밭이 넓게 펼쳐져 있어 잠시 시골에서의 어린 시절을 추억도 해 본다.

그렇게 진행하니 운정1리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그 옆에는 운정1리 파우치마을이란 커다란 이정석이 서 있다.

 

 

운정1리 마을을 통과해 지루하게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화양리 지나 현덕면이 보인다.

밭에는 이제 초록빛이 완연하다.

화양은 예전에 이 마을이 생기던 해에 주변 마을은 장마가 지속되었으나 이 마을은 비가 자주 오지 않고 해가 자주 났으므로 햇볕이 잘 드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화양리에는 몇개의 마을이 있는데 당현은 화양 1리의 마을 이름으로 마을 어귀의 고개 너머에 크고 장엄한 당집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재는 당현의 우리말 이름으로 당집이 재 고개 너머에 있어 유래했다고 하며 용동은 화양 2리의 마을 이름인데 마을의 개울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동네 우물에서 용이 솟아 하늘로 날랐다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용골은 용동의 우리말 이름으로 용이 승천한 고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며 원화양은 화양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도대리로 들어오며 보였던 현덕제일교회가 바로 이곳에 있고 조금 더 진행하니 도로 우측에 대부철강이란 공장 건물도 보인다.

 

 

도대3길 도로 표지판을 지나 걷다보니 도대3리 버스정류장이 서 있고 도로 좌측으로는 낡은 민가 한채도 보인다.

도로 양쪽으로 펼쳐진 밭을 구경하며 걸어가니 도대2리와 방축리 갈림 사거리가 나타나고 몇장의 사진을 담으며 마을들을 둘러 본다.

도대리는 마을 앞 갯고랑에 고목나무가 한 그루가 있어 마치 배의 돛대와 같았으므로 마을 이름을 돛대라고 하다가 도대로 바뀌었다고 하고 방축리는 마을 앞에 바닷물을 막는 방축을 쌓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많은 지명에 대한 공부도 겸하면서 걸어가는 시간은 고통스럽지만 새로움을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사거리 갈림길을 지나 우측으로는 서해대교를 좌측으로는 현덕면을 조망하며 걸어가니 저 앞에 민가 한채가 보인다.

다가가 보니 드넓은 평야지대에 홀로 서 있는 민가와 그 옆에 동양가스 건물이다.

어떻게 이런 외딴 곳에서 가스 영업을 하고 있는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동양가스가 있는 민가를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도로 우측으로 시멘트 임도가 갈라지고 혹시 그곳으로 가야되는 것은 아닌지 한동안 독도를 하면서 살펴보지만 잘 알지를 못하겠다.

어쩔 수 없이 스마트 폰을 이용해 찾아 보니 아직까지도 더 포장도로를 타고 직진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진행하며 도로 우측을 보니 이제 서해대교의 주탑 뿐만 아니라 다리 자체도 보이기 시작하지만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강렬한 햇살과 박무로 인해 아쉬움을 남기는 시간이다.

 

 

참으로 길고도 먼 포장도로를 타고 아직도 저 멀리 보이는 그 길을 걸어가다 보니 도로 좌측으로 현덕면의 수많은 고층 아파트들이 큰 도시의 한단면을 보여주듯 그렇게 서 있다.

이제 도시와 시골 가릴것 없이 고층 아파트가 대세인 시대가 도래한듯 보인다.

이런 시골에 저런 대단위 아파트 촌이 건설될 정도로 많은 일자리가 있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생각되던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다시 불타듯 따가운 발바닥을 이끌고 걸어가니 현덕방축길이란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도로 좌측으로 권관양수장이 보인다.

그 권관 양수장을 지나니 도로 좌측에 거대한 공장같은 건물과 양철로 담을 친 곳이 나타나고 그 끝자락에서 우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갈라지고 있다.

이제 지루했던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 비포장 임ㄷ조를 타고 진행할 수 있는 곳에 도착을 한 것이다.

포장도로 저 앞쪽으로는 39번 지방도로 위를 많은 차량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고 그 도로 양쪽으로는 활짝 핀 하얀 벗꽃나무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반사경이 있는 곳에서 포장도로를 버리고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는 느낌이 참으로 편안하고 좋다.

비포장 임도 양쪽으로도 여전히 황톳빛 밭들이 즐비하고 가끔 농부들이 밭에 나와 농작물들을 가꾸는 풍경이 한가롭게 다가온다.

한여름 개울가에서 자랐던 갈대들이 회색빛으로 변해 흔들리는 봄바람에 사각거리며 울고 있다.

 

 

그곳을 지나 다시 비포장 임도 우측을 바라보니 밭과 논을 지나 저 멀리 서해대교가 환히 보이기 시작한다.

서해대교는 총연장 7310미터이고 교폭은 31.41미터인 왕복 6차선 도로교로 국내 교량 중 가장 길다.

1993년 11월 4일 착공되어 2000년 12월 15일 개통되었고 풍속 65미터/sec의 강풍과 리히터 규모 6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해수로 인한 부식에 대비하여 내염 시멘트 및 에폭시 코팅 철근을 사용하였다.

또한 서해대교에는 사장교와 FCM교(장경간 콘크리트 상자형교), PSM교(연속 콘크리트 상자형교) 등 3가지 다리 형식이 복합적으로 사용되었다.

사장교는 첨탑에서 늘어뜨린 케이블로 다리 상판의 하중을 지탱하도록 설계된 다리로 교각 사이의 간격을 많이 떨어뜨려야 할 때 주로 사용된다.

서해대교의 사장교는 국내 최대의 규모로, 주탑 높이가 182미터, 다리 사이의 간격이 470미터에 달해 이 다리 밑으로 5만 톤급의 선박이 왕래할 수 있다.

사장교는 국내 최초로 가물막이 공법으로 건설되었는데 육상에서 대형 원통을 조립한 뒤 해상으로 운반하여 설치하고 그 내부에 모래를 채워 가물막이를 형성한 후 해수를 퍼내고 암반층까지 굴착하여 주탑의 기초 콘크리트를 형성하였다.

사장교 주탑의 외형은 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리에 있는 보물 제537호인 당간지주의 형상을 빌어 지역적 상징성을 강조하였다.

PSM교는 일정한 길이로 미리 만들어진 콘크리트 상판을 차례로 얹어 잇는 것으로 경간 길이가 60미터이다.

시점인 포승면 내기리에서부터 2340미터, 중앙해상부분(축도부) 780미터, FCM교가 끝나는 지점부터 종점인 당진까지 2700미터 구간을 PSM교를 채택하였다.

다리의 총길이 중 사장교는 990미터이고, PSM교 5820미터, FCM교 500미터이다.

서해대교는 이렇듯 여러 가지 첨단 공법이 도입되어 건설된 교량으로, 국내 건설기술 수준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서해대교는 서해안시대 국가공단 물동량의 원활한 수송을 가능하게 해주어 서해교역의 관문으로 부각되고 있으며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한편 수도권과 남부지역을 오가는 차량의 소통을 분산시켜 교통체증 해소에도 기여하고 있다.

늘 자주 이용하는 서해대교이지만 이렇게 멀리에서 뜻깊은 시간에 의미를 두고 바라보는 시각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다시 이어지는 마늘밭을 지나 진행하니 오거리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우측 포장 도로쪽으로는 현덕사란 절이 있는듯 이정판이 보인다.

삼거리 갈림길은 포장도로이고 직진 코스만 비포장 임도인데 지맥길은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다시 능선으로 접어 들며 이어가게 되어 있다.

임도 좌측 39번 지방도로에서 들리는 차량의 굉음이 이곳까지 들리는 것을 봐 이제 서봉지맥의 끝자락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순간이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잠시 산길을 걸어가니 다시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직진 방향으로 그 포장도로를 타고 들어가니 오리사냥이란 식당이 서 있다.

그 식당을 좌측에 두고 걸어가 식당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90도 꺽어 39번 지방도로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 한다.

식당을 지나니 오리사냥이란 앙증맞은 이정석이 산객의 눈길을 잡는다.

 

 

오리사냥이란 식당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임도 좌측으로 커다란 SK 주유소가 나타나고 곧이어 39번 지방도로와 만난다.

그 39번 지방도로를 만나 좌측에 SK 주유소를 두고 우측으로 90도 꺽어 그 39번 지방도로를 따라 평택호로 향한다.

시골을 다닐 때 참으로 많이도 이용했던 도로인데 서해안고속도로가 뚫린 후부터는 들릴 기회가 별로 없는 도로였지만 오늘 오랫만에 이렇게 의미있는 시간을 가져 본다.

 

 

39번 4차선 도로 위로는 생각보다 많은 차량들이 굉음을 지르며 빠르게 통행하고 있는데 땡볕레 도로를 따라 걸어 가는 산행 차림인 이 산객을 힐끗 처다보며 이상한 듯 바라본다.

워낙 많은 눈총을 받았던 터라 전혀 개의치 않고 도로 변에 활짝 피어 있는 벗꽃을 즐기며 걸어가니 발바닥에선 더욱 뜨거워진 온도로 견디기 힘들다며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

진행하니 도로 건너편으로는 예전에 몇번인가 이용했던 경기휴게소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는 가구상점들이 즐비한 건물이 보인다.

방법이 없기에 천천히 걸어가니 도로 위 부여까지 93 Km 남아 있다는 도로 표지판 옆으로 갓길이 나타나고 그곳으로 들어가 자동차 소음을 조금이나마 줄이며 걸어 본다.

 

 

잠시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던 갓길이 다시 도로와 만나면서 이곳부터는 수레길 처럼 넓은 포장도로로 변해 버린다.

그 수레길 같은 포장 갓길을 타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 저 멀리 서해바다와 희미하게나마 서해대교가 눈에 들어 온다.

이제 정말 서봉지맥의 끝자락이 눈에 들어 오는 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다시 그 갓길이 39번 도로 옆으로 붙어 나란히 진행되는데 여전히 벗꽃 행진은 멈추질 않는다.

전관3리란 도로 표지판을 지나 밭을 지나 권관리쪽 마을을 지나 다시 좌측 39 지방도로 위로 나가 진행하니 현덕교차로란 도로 표지판이 반겨준다.

 

 

현덕교차로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도로 우측으로 갈림 이정표가 보이는데 직진으로는 아산방향이 우측으로는 서평택 IC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그 가운데에 한국소리터 1.3 Km 란 안내판도 서 있다.

포승과 평태ㄱ항이란 단어들이 보이고 이제 서봉지맥의 마지막 줄기가 계두봉(현재의 지도상에는 왕자봉이라 되어 있음)를 살며시 들어 올렸다 바다로 빠져드는 직전까지 온 것이다.

이곳에서 우측 서평택 IC와 평택항 그리고 포승 방향으로 39번 지방도로와 헤어진다.

 

 

그렇게 39번 지방도로와 헤어져 우측으로 내려가니 곧바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좌측으로는 옛날 자동차극장이 있던 평택호관광단지로 가는 방향이고 우측으로는 포승과 평택항 그리고 서해안고속도로를 탈 수 있는 방향이다.

해안가 횟집들과 조개구이집들이 즐비해 시골에서 서울 가는 길에 자주 들려 식사를 즐겼던 곳이기에 잠시 옛 추억을 더듬어 보기도 한다.

갈림 삼거리를 가로 질러 다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하면 도로 좌측에 작은 텃밭이 나타나는데 그 텃밭 가운데로 계두봉 오름 등로가 나 있다.

 

 

이곳이 서봉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계두봉, 일명 왕자봉을 오르는 마지막 등로이다.

누군가가 작은 텃밭을 일구고 있고 능선으로 오를 수 있는 등로를 안내해 놨다.

잠시 올라 다시 좌측으로 꺽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39번을 타고 달리는 자동차들의 소음이 심하게 들려오고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금새 바위들이 산재한 계두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아무 볼품도 없고 알려지지도 암ㅎ았으며 특별할 것도 없는 바위 몇개가 산재한 계두봉, 일명 왕자봉이지만 오늘 이 산객에게는 그 어떤 유명한 산보다도 위대하고 소중한 봉우리로 다가 온다.

닭의 머리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어디에도 그 봉우리에 대한 상세 내용은 없어 아쉽기만 하다.

이제 마음속에 남겨 뒀던 찜찜함을 털어 버리고 또 하나의 맥 산행을 마무리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찬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오니 안부가 나타나는데 그곳에도 역시 군사용이라 생각되는 수로 초소들이 즐비하고 잠시 더 내려가니 등로는 상가들이 들어 있는 38번 지방도로에 닿는다.

광장처럼 생긴 공터를 지나니 우측으로 현충탑이 보여 그곳에 들려 사진 한장 남기며 주위를 둘러보고 글들을 읽어 본다.

이 현충원의 건립취지는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의 총 849위를 모시기 위해 1987년 겨울 설치되였다고 전한다.

현충탑을 세운 취지 및 유래는 평택읍이 시로 승격되자 군에서 관리하던 현충탑을 시에 인계하고 평택군지역 관내 472기의 영령을 모시기 위해 아산만 방조제의 관광단지 내에 새로운 현충탑을 건립함으로써 군민들로 하여금 국민적 우의 상징과 자유민주주의의 숭고한 정신을 기릴 수 있도록 하였다.

그곳 비문에 새겨진 글을 잠시 올려 본다.


오늘도 저 햇빛 속에 그대들 꽃다운 모습이 보이고
지금도 바람결 속에 그대들 고운 음성 들리네.
짧은 인생을 영원한 조국에 바쳤기에 가고도 가지 않은 그대들이라.
조국의 산천과 역사와 함께 길이 살리라.
정든 조국, 정든 고향, 여기서 그대들 길이 살리라.

 

피 흘리고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켜준 숭고한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도 이 산객은 자유롭게 맥 잇기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것임을 알기에 현충탑 앞에서 묵념으로 대신해 본다.

 

 

이제 버스 정류장으로 나와 잠시 구멍가게에 들려 버스 시간표를 살펴보니 버스가 올려면 아직도 30여분 남아 있고 그 사이에 육교를 타고 전망대로 향한다.

육교 중앙에 서서 평택과 서울 방향의 38번 도로 풍경을 담아 본다.

저 위로 올라가면 도로 좌우측으로 수많은 횟집과 조개구이식당들이 들어 서 호객행위가 대단하다.

 

 

육교 가운데에서 내려다 본 아산쪽 도로 풍경이다.

이곳 아산만 방조제는 오래전 정부에서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심해 방조제를 건설하고 홍수 피해를 줄여 아산만 일대를 관광지로 이용하기 위헤 세워진 것으로 요즈음 새롭게 갑문을 설치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였는데 그 공사도 거의 마무리 단계인 듯 하다.

수도 없이 자주 다녔던 도로였는데 이렇게 내려다 보는 즐거움이랄까 신기함이 더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전망대에서 주위 풍경을 구경한 후 다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1층으로 내려 가 서해 바닷가로 나가 본다.

많은 배들이 바다 위에 떠 있고 그 배 위로 저물어 가기 시작하는 하루해가 비춰 또 다른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어렵게 셀카 놀이를 하며 인증 사진 한장 남기고 서봉지맥 산행의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집에서 가까운 산줄기를 찾다 우연히 알게 된 서봉지맥도 오늘로서 이처럼 서해바다에 그 맥을 다하는 모습을 만났으니 다음에는 어느 지맥에 들련지 스스로도 궁금한 시간이다.

다만 좋은 추억이 아닌 가슴 시린 고통의 추억이 남아 있기에 서봉지맥을 생각할 때마다 부모님 생각에 몸서를 칠지도 모를 일이지만 오늘을 오랫동안 기억해 보고 싶은 마음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나 보다.

다시 육교를 타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니 초로의 할머니 한분이 사람들이 그리웠는지 이 산객을 붙잡고 많은 이야기를 걸어 온다.

택시를 불러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시 택시가 도착하고 오뚜기라면 공장 후문으로 이동해 생각보다 편안하게 집으로 복귀 할 수 있었다.

다음주부터는 다시 2주간 유럽 출장이 잡혀 있어 당분간 산행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시간이 많지는 않겠지만 운동복을 챙겨 새벽 시간에 잠시 조깅이라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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