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경기도 화성시와 평택시의 한남서봉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2년 11월 18일 (일요일)
산행날씨 : 맑았지만 갑자기 추워져 산행하기 좋았던 날씨
산행온도 : 영하 01도에서 영상 12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당하리 버스 정류장(43번 지방도로)-용구리고개(태봉산기도원)-34번 송전탑-일출-158봉-상방산 갈림 삼거리-광산김공 묘지-명문바인딩 건물 내부-시멘트 포장 임도-점촌고개(310번 지방도로)-상봉시골밥상 식당-318번 지방도로-마하제3고가교-KTX 고속철도-강릉유공 가족 공원묘지-105봉 덕리쉼터(팔각정자와 서봉산 유래판)-비포장 임도-현위치 2.1 그늘막-벤취 2개 쉼터-안전목책과 로프-마하리 이정표-현위치 서봉 5-현위치 2.2 약수터(수라청~정상)-안전목책과 로프지대-이정표 (문학1리 1.5Km와 농산물센타 2.1Km, 정상 전망대 0.1Km)-서봉산 쉰길바위(삼각점,249봉, 정자와 정상석)-벤취 쉼터-218봉(골프장과 향남지구 조망)-명봉산 갈림길-현화사 조망-현위치 4.1 현화사 안부-벤취 쉼터-175봉 이정표(도이리 1.1 Km, 하가등리 0.5 Km, 서봉산 정상 1.9 Km)-139봉 이정표(동오리와 서봉산 정상 2.6 Km)-운동시설봉-골프장-임도 이정표(동오리)-비포장 임도-동산숲유치원-시멘트 임도-브라메리타 커피숍-동오정 식당-고개마루 식당-2차선 포장도로-도마리고개(82번 지방도로)-철계단(SK LPG 주유소)-굴뚝봉-천석산(139봉, 산불감시초소)-천석산 유래판과 천석바위 이정표(도이리 0.4 Km, 천석사 0.1 Km, 노인복지회관 0.5 Km)-벤취 쉼터-이정표(천석바위 0.2 Km, 노인복지회관 0.3 Km, 행정리 0.7 Km)-101봉-가로고개(채석장, 68번 지방도로)-행복나루 식당-절개지-비포장 임도-99봉(송전탑 6번)-인동장공묘지와 콘테이너-비포장 임도-약수터 200미터 이정표-139.1봉(묘지들)-비포장 임도-가족 묘지공원-비포장 임도-330번 지방도로-양석골 사거리(43번 지방도로)-화리현1리 빗돌-누에박물관과 뽕나무골 식당-가나안 식당(점심식사)-나라환경조경-소문난 삼부자 김 공장-108.2봉(군시설물과 비닐하우스)-노란 물통과 콘테이너 박스-삼각점-절개지-칼날 절개지 등로-비포장 임도-105봉-포도밭-송전탑 6번-개간 농경지-127봉-중앙레미콘 공장 절개지-중앙레미콘 공장내 진입 후 정문-강원폐차산업-시멘트 포장 임도-대양이(사양이)고개(2차선 포장도로)-대덕산업과 한식뷔풰 식당 위 공장 건물 내 진입-시멘트 포장 임도-전주이씨 가족 공원묘지-시멘트 포장 임도-비포장 임도-전주유씨 가족 공원묘지-김해김공 묘지-비포장 임도-동양레미콘 공장 절개지-비포장 임도-동양레미콘 공장 출입금지 철판-논-엠티케이 건물-동해라인데크-306번 지방도로-통나무집과 대신에이티-주산봉(109봉, 원형벤취)-요당1리 상수도시설-인삼밭-요당이 고개(2차선 도로)-전주유씨 영모제-우 축사-마을 시멘트 임도-체육시설 및 보호수-인삼밭과 민가들-요당정-요당못-폼텍공장-습지체험장-창해금속-2차선 지방도로-만도신소재-BK 메디텍-태화산업-절개지-명봉산(덕지산, 138봉, 사각정과 삼각점 및 산불감시초소와 이정표, 정상석)-운동시설-110봉 이정표(광승 1.0 Km, 닥지사 0.28 Km, 정상 0.22 Km)-소나무 군락지-밭 경작지-이정표(광승과 덕지사 및 어소리)와 벤취-나무계단-고령신공 가족 공원묘지-운동시설-개간지-벌목지대-신공장 녹색 펜스-원어소고개(2차선 지방도로)-바위봉-재활용 센타-비포장 임도-절개지-바위 무명봉-우경테크-콘크리트 포장 임도-토진리 마을 민가-토진2육교(평택 안성간 고속도로 위 육교)-시멘트 포장 임도-청북중학교-2차선 포장도로-서보레미콘-302번 지방도로-(한옥집과 우리부동산)-현곡산업단지와 오성산업단지-한국알박주식회사-TDK-아반스트레이트코리아-현성 MTS-40번 송전탑-302번 지방도로-39번 지방도로 사거리-오뚜기식품-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4.00 Km (접속구간 01.00 Km, 당하리에서 응고리고개)
산행시간 : 식사하고 휴식하며 알바와 사진 찍은 시간 모두 포함해 여유있게 10시간 20분 (06시 50분부터 17시 10분까지)
교통편 : 갈때-관악역에서 지하철 1호선으로 수원역
수원역 남부 버스 터미널에서 35번 버스로 당하리 하차
올때-오뚜기 식품 앞 39번 지방도로에서 320번 버스로 평택역 하차
평택 지하철 역에서 지하철로 관악역 하차 후 애마 이용해 귀가
한남서봉지맥이란 ???
한남정맥 감투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구봉산(145 미터), 칠보산(239 미터), 고금산(87 미터), 서봉산(250 미터), 덕지산(138 미터), 옥녀봉(82 미터), 계두봉을 거처 아산호(아산만 방조제)에서 맥을 다하는 약 60km의 산줄기를 한남서봉지맥이라고 부른다
어렵게 또 한구간 이어 놓은 서봉지맥 마루금에서 안타까웠던 시간들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마루금을 걸으며 선답자들의 도움을 받아 무탈하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정상 산줄기에 충실해 산행을 하면서 단 한명의 후답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잇도록 산행 후기를 적으려 한다.
다만 너무 방대한 자료이기에 간혹 잘못 기술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 산행 후기는 그저 참고 자료로 이용해 줄 것을 당부드리는 바이기도 하다.
50여일이 지나가는데도 눈 한번 뜨지 못하고 말 한마디 하지 못하며 병상에 누워 계신 아버님을 생각하니 산행은 언감생시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 2주 동안은 사업적으로 무척 바쁜 일정이 이어지고 외국 본사에서 연속으로 2명의 동료가 한국에 나와 함께 고객사를 방문하다 보니 육체적으로 또한 정신적으로 피로도가 쌓여만 가는데 아버님의 면회 시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운동이 부족해지고 몸도 마음도 지쳐만 가고 있다.
마침 토요일 점심 때 담당 의사와 면회를 하고 상황이 좋지만은 않지만 그렇다고 하루 이틀 사이에 변고가 일어 날 것 같지도 않다는 소식에 가까운 서봉지맥의 남아 있는 구간을 다녀 오기로 하고 배낭을 정리하다 보니 어딘지 모르게 낮설게만 다가온다.
그렇게 만 3주가 넘어 제대로 된 산행길에 나서다 보니 추워진 날씨에 몸은 정상적으로 작동이 될련지 또 희미해진 마루금은 잘 찾아 걸어 갈 수 있을지 많은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지만 답답했던 마음을 날려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생활을 위해서도 멋진 시간을 만들어 오자는 생각 뿐이다.
옆지기의 도움으로 간식인 과일과 떡을 준비하고 점심은 진행하는 도중 식당에서 해결하기로 하니 한결 가벼워진 배낭이 고맙기만 한 시간이다.
그렇게 새벽 녘에 애마를 이용해 관악역으로 이동해 옆지기를 보내고 온 몸이 얼어 붙는 날씨에 플랫폼으로 들어가 열차를 기다리니 정확히 아침 5시 36분에 지하철이 들어오고 몸을 실은채 출발하니 20여분만에 수원역에 도착해 광장을 통해 남쪽으로 내려가 남부 버스 정류장에서 3주전 타고 올랐던 35번 버를 이용해 당하리에서 하차하며 멀고도 긴 하루의 산행을 시작한다.
지난 구간 산행을 접었던 응구리고개로 걸어 들어 와 추워진 날씨에 옷매무새를 다시 한번 점검한 후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3주 사이에 깊이 쌓여 있는 낙엽이 성애와 함께 미끄럽게 다가오고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익히며 오르니 등로 좌측 정남 넘어 동탄과 기흥쪽 마을이 옅은 안개속에 파묻혀 고요히 잠들어 있다.
이제 막 세상을 열고 일어나듯 그 넘어 동녘 하늘에선 붉은 빛이 세상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흡사 용광로의 불길처럼 찬란하다.
참으로 아름다운 우리의 산하이며 자연이자 마루금이다.
35번 버스에서 내리니 아직도 어둠이 사라지지 않은 당하리 버스 정류장엔 이 산객과 또 한명의 젊은이가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잠시 후 그 횡단보도를 건너니 젊은이는 24시 편의점으로 사라져 간다.
잠시 주위를 둘러 보지만 역시나 보이는 것이 없기에 43번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현대오일뱅크 직영 신광주유소가 어둠을 밝히고 있다.
그곳을 내려가니 당하리 버스 정류장이 보이고 그 옆에 도로 표지판 하나가 외롭게 서 있다.
봉담읍의 당하리 마을 유래는 조선조 중엽에 건립된 당집이 마을 뒷산에 위치해 있어 당아래로 불리워지다가 1914년 현재의 이름인 당하리로 개칭되였다.
그 버스 정류장을 지나자 마자 도로 좌측으로 작은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입구에는 털보가든이란 입간판이 보인다.
그곳을 통해 마하리 마을을 지나 지난번 내려 왔던 응구리고개로 걸어 들어 간다.
마하리 마을 역시 조용하기만 한데 안으로 들어 갈수록 깨어난 농부들이 바삐 움직이고 무엇을 하는가 하고 살펴보니 김장을 하기 위해 전날 절여 놨던 배추를 씻고 계신다.
어머님게서도 늘 이런 수고스러움을 마다 않고 김장을 해 주시곤 하였는데 이제 영원히 먹을 수 없는 배추김장이 되고 말았다.
마하리란 마을은 옛날에 이 마을 우물에서 안개가 피어 오르고 용마가 나와 마을을 일곱바퀴 돈 다음 죽게 되자 이 말을 묻었다 하여 말무덤이라 불리게 되였다.
조선조 말 이곳은 마하리로 표기되였고 1914년 말마자에 안개하자를 써서 마하리라 불리게 되였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 온다.
이곳 응구리고개 유래를 찾아 보지만 알길이 없고 다만 이 응구리고개가 있는 관항리 항골은 높고 큰골짜기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항골이라 불리게 되였다는 자료만 찾을 수 있었다.
이곳 응구리고개에서 우측 능선의 낙엽 사이를 뚫고 오르니 잡목이 약간 우거져 있지만 그런대로 희미한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르르 타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해 본다.
바쁜 일과 아버님 병실을 지키다 보니 어느새 3주간 산에 들지 못하였고 그 사이에 계절은 많이도 변해 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며 깊이 쌓여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등로 우측에 34번 송전탑이 서 있다.
그곳에서 등로 좌측의 송전탑 옆을 내려다 보니 엷은 안개가 깔린 관항리 방향의 항골과 담안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너무나 아름다워 어둠이 완전히 물러가지 않았지만 똑딱이 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DSRL 카메라를 꺼내 그 풍경을 담은 후 전진해 오르니 정상에 묘지가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등로 좌측으로는 정남쪽 마을이 안개속에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고 무명봉을 넘으니 다시 몇기의 묘지들이 산재해 있다.
그곳을 지나 낙엽이 양탄자처럼 깔려 있는 멋진 등로를 타고 오르니 오랫만에 등로 좌측의 잡목 사이로 찬란한 하루해가 떠 오르고 있다.
몇주만의 일출에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그 잡목 사이로 한동안 일출을 바라 본다.
일출을 감상한 후 다시 촉촉한 성애가 녹아나는 깊은 낙엽을 밟으며 오르니 이 산행이 맥 잇기 종주 산행인지 아니면 낙엽 밟기 테마 산행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그 동안 복잡하고 마음 아팠던 순간을 잠시나마 자연속에 내려 놓고 무심으로 걸어 보는 시간이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폐부 깊숙히 들어 마시며 걸어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평범한 봉우리에 도착을 하고 아무 표식도 없는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지도를 살펴 보니 이곳이 바로 158봉인듯 하다.
서리가 녹으며 낙엽을 밟을 때 나는 바스락 거림은 없지만 그 밟는 감촉만으로도 살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 158봉을 지나 다시 진행하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오르막으로 이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등로가 갈리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잠시 헷깔려 주위를 살펴보며 지맥 등로를 찾아 보니 이곳이 바로 상방산 갈림 삼거리이다.
등로 좌측으로 가면 삼방산이 나오지만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읽어 보면 조망도 없고 정상에는 아무 표식도 없어 괜이 올랐다는 글을 많이 읽었기에 오늘 이 산객은 포기하고 우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며 진행한다.
상방산 갈림 삼거리에서 우측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다시 몇 기의 광산김공 묘지들이 보이는 장소에 도착을 하는데 그 묘지 건너 건달산 산줄기가 방금 떠 오른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다.
앞으로 저 건달산을 다시 오를 수 있을 기회가 있을지 기약은 없지만 이렇게 나마 사진으로 남길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을 해 보는 순간이다.
그곳 등로를 따라 잠시 더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건물 하나가 보이는데 등로는 바로 그 건물 앞 마당으로 내려간다.
살펴보니 명문바인딩이라는 건물 공장으로 이곳 공장 건물 앞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에 신생기계 건물을 지나 310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점촌고개에 도착을 한다.
이곳 310번 지방도로 건너편에는 에스엠코어 건물 몇동이 서 있고 그 우측 옆으로 절개지가 올려다 보인다.
그곳으로 어렵게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잠시 벌목된 잡목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고 조금 더 진행하니 갑자기 큰 굉음이 들리면서 KTX 열차가 지나는 소음에 놀라 지도를 살펴보니 이 능선으로 오르지 말고 310번 지방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진행해 이 KTX 철로를 건너야 했는데 괜시리 능선으로 올라 고생만 하고 다시 우측 능선을 타고 310번 도로로 내려간다.
내려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서 자주 봤던 상봉시골밥상 식당이 보이고 그곳에서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전진한다.
도로를 타고 진행하니 도로 좌측에 은성기공 간판과 대야정밀을 지나 KTX 철로를 밑 지하차도로 건너 다시 좌측 소 임도를 타고 전진하니 KTX 철로로 접근금지 시키는 철조망이 나타나고 그 철조망을 타고 진행해 고갯마루에서 우측 등로를 타고 진행해야 되지만 이 산객은 그곳에서 우측 능선을 타고 곧바로 마루금으로 오르기로 한다.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주 능선에 도착을 하고 이제 정상 마루금을 타고 우측으로 전진하니 금새 강릉유공 묘지가 나타난다.
등로 좌측으로 KTX 철조망을 타고 고갯마루로 올라 이곳 주능선으로 오르는 넓은 등로와 만나 걸어가니 다시 많은 강릉유공 가족 공원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옆을 통과해 진행을 한다.
양탄자 같은 낙엽이 깔린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다 보니 빨간 단풍나무 한그루가 너무나 예쁘게 서 있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해 그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드넓은 공터에 사각정자와 운동기구들 그리고 벤취가 놓여 있는 덕리쉼터에 도착을 한다.
등로는 공터 좌측을 타고 진행하게 되는데 그곳 끝자락 옆에 서봉산 유래판이 서 있다.
서봉산유래
정남면 문학리에서 시작하여 멀리 팔탄면 봉담면으로 이어지는 산으로 화성시에서는 비교적 높은 산이며 정상의 모습이 멀리서 보면 봉황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예전에 봉황이 깃들어 살았다는 설이 전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두가지 설이 있다.
이 산골짜기 안에 쉰길바위가 있을 정도로 산이 비교적 높고 골짜기도 대단히 깊다.
1794년(정조18)에 발간된 수원부읍지에 의하면 서봉산은 부서남 15리 정송면에 있는 산으로 작은 소암이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1831년(순조 31)에 발간된 화성지에서도 부남 35리 남곡면에 있으며 능원(융릉, 건릉)의 화소 내에 포함된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러한 기록 때문인지 정남면 백리에서는 서봉산을 화소산이라고도 부르고 있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덕리쉼터에서 잠시 머물며 몇장의 사진을 담고 다시 천천히 넓은 임도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더 전진하니 울긋불긋 아름다운 단풍이 등로를 가득 채우고 이 산객을 유혹하듯 펼쳐져 있다.
집안의 우환으로 인해 그동안 오르지 못해 만나지 못했던 단풍을 한번에 모두 보여 주려는듯 멋진 풍경이다.
어쩜 이리고 곱고 아름다운지 잠시 산행 하는 것도 잊고 바라볼 정도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천천히 그 단풍터널을 걸어 본다.
그 단풍나무 터널을 지나니 이제는 더욱 운치있는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지며 그동안 산행에 굶주려 있던 이 산객의 마음을 동요시키고 있다.
이제 등로도 서서히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그곳 소나무 밭을 따라 오르니 등로 우측에 멋진 바위가 서 있다.
UFO형태 같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듯 하기도 하다.
이름 하나 멋지게 붙여주고 싶지만 오늘은 생각이 나질 않아 포기하고 천천히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 바위를 지나 오르니 평탄한 넓은 등로가 나타나고 그 위엔 낙엽 깔린 환상의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잠시 더 오르니 저 위 정상부에서 벌써 정상에서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동네 주민 2분이 내려오고 있어 인사를 나누고 오른다.
그렇게 급하지 않게 오르니 현위치 그늘막이란 이정목이 나타나고 그 옆에는 사람 키를 재는 도구가 서 있는데 왜 그런 도구가 이곳에 있는지 이해 불가이다.
또한 그 옆에는 사각형의 쉼터가 하나 있는데 너무 인위적이란 생각에 별로 앉아 보고 싶지도 않은 작은 건물이다.
그곳을 지나 다시 평탄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서봉산으로 향한다.
완만한 등로를 따라 오르니 벤취 2개가 있는 쉼터가 나타나고 너무 운치가 있어 잠시 앉아 보기도 한다.
그곳을 지나 더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안전 목책과 로프가 있는 지대가 나타나고 그곳을 넘으니 다시 등로 우측에 거북등을 닮은 바위 하나가 보인다.
이 바위 역시 멋진 이름 하나쯤 있어도 좋을듯 한데 아무 표식도 없으니 아쉽기만 하다.
그 바위를 지나니 다시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마하리와 서봉산정상(약수터)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옆에는 현위치 서봉5라는 코팅지가 나무에 부터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그림같은 등로를 타고 호젓하게 자연을 음미하며 걸어 보는 시간이다.
제법 시간이 지난 후 올라서 그런지 낙엽진 등로를 따라 걸어 가는 기분이 어딘지 모르게 낮설게 다가오며 처음 산행에 입문한 초보자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다시 몇개의 바위들이 포개 쌓여 있는 곳을 지나 등로 우측의 잡목 사이로 발안저수지가 내려다 보이지만 조망은 좋지 못하다.
조금 더 오르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 100미터 떨어진 곳에 약수터가 있다는 약수터 갈림 삼거리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직 물 한모금 마시지 않았고 또한 날씨가 추워져 준비한 1리터의 물과 과일 그리고 오이로도 충분 할 것 같아 직진의 서봉산 정상부로 향한다.
아주 가깝게 다 온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서봉산 정상까지는 아직도 1 Km 가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에 체념하고 걸어 보는 시간이다.
등로 좌측으로는 위험하지 않지만 안전 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그 로프를 따라 오르니 정상 직전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난다.
좌측으로 문학1리까지 1.5 Km, 지나온 방향으로는 농산물 센타 2.1 Km 그리고 우측으로 정상(전망대) 0.1 Km란 거리표시와 함께하는 이정표이다.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오르니 바로 눈 앞에 거대한 육각형 정자가 올려 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태극기 2개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서봉산 정상에 도착해 육각정자를 돌아 그 뒤로 가니 태극기가 펄럭이는 깃대 2개가 서 있고 그 옆에 서봉산 쉰길바위 안내판도 보인다.
그 우측 옆으로 조금 더 가니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 전망바위 아래에 또 다른 전망바위가 보여 그곳으로 내려가 많은 사진을 ㅏㅁ고 올라 온다.
그 서봉산 정상에 서 있는 서봉산 쉰길바우ㅣ 전설을 읽어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고 이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이곳 주민들에게는 신성시 해 온 산임에 틀림없는 듯 보였다.
이 산은 옛부터 봉황이 깃드는 산이라 하여 서봉산이라 불러 오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 산을 신성시하여 산 안팎을 중심으로 곳곳에 마을을 형성하여 살고 있고, 또한 젊은이들은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하여 쉰길바위의 암벽을 오르내리며 이 곳에 매달려 턱걸이를 하는 등 심신을 단련하기도 했던 곳이다. 서봉산 중턱에는 옛날부터 작은 암자가 있었는데 젊은 스님과 동자승 한 분만이 살고 있었고 늘 다니던 우물을 찾아갔다. 그 때 물을 긷던 아낙네들은 물동이를 이고 하나 둘씩 마을로 들어가고 있었으며 젊은 스님이 우물 가까이 갔을 때에는 어떤 낭자 혼자만이 남아 물동이에 물을 담고 있었다. 젊은 스님은 낭자를 바라보는 순간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훤칠한 몸매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곱기가 이를데 없어 하늘에서 선녀가 하강하여 노닐고 있는 듯하여 '참 아름답기도 하구나' 하고 속으로 감탄하면서 우물가에 다다랐다. 낭자는 뒤에서 인기척이 나서 돌아보니 젊은 스님이 다가서는 것을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들어 물 긷던 바가지와 물동이도 버려둔채로 마을로 향해 줄달음을 쳤다. 스님은 낭자가 놀라서 뛰어가는 것을 보고는 우두커니 뒷모습만 바라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로 인하여 물동이 마저 놓고 간 낭자에게 미안한 생각과 함께 다시 한 번 보았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에서 물동이에 물을 가득 채워서 나무 밑에 놓고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그 동안 해는 서산에 기울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스님은 피곤한 나머지 물동이 옆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스님이 잠에서 깨어 날 즈음이었다.
이 때 마침 어제 그 낭자가 일찌감치 동이를 찾으러 오다가 물이 가득한 동이 옆에서 스님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스님은 잘못이라도 했다는 듯이 낭자를 바라보며 합장하고 머리 숙여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을 외운 다음 그 곳을 떠나려고 하였다.
그 때 낭자가 어제 있었던 자기의 행동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어 바가지에 물을 떠서 스님에게 권하자 스님은 또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물을 받아마신 다음 아리따운 낭자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암자로 돌아갔다.
한편 암자로 돌아온 스님은 낭자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잠이 오질 않았고 불경을 외우는 것도 마음이 내키질 않았으며 시주걸립도 떠나기가 싫었다.
불도에만 골몰무가해야 할 스님의 처지에서 속세의 낭자가 그리워 번민하고 있는 것은 불제자의 도리가 아닌 줄 알면서도 점점 더 마음이 혼란에 빠져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스님은 모든 것을 잊기로 결심하고 다시 마을로 시주걸립을 떠났다.
한편 낭자네 집에서는 부친이 우연히 병이 나서 눕게 되었다.
그래서 백방으로 약을 구해다 쓰고 용한 의원을 불러 치료해 보았으나 효험이 없었다.
낭자는 부친의 병환이 여의치 않자 근심과 걱정으로 나날이 지내다보니 몸이 수척해지기까지 했다.
그 즈음 스님은 시주걸립을 마치고 지나는 길에 자신도 모르게 우물을 찾았다.
거기서 스님은 낭자를 만나게 되자 반가운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미소를 띄우는 낭자의 얼굴에는 수심이 서려 있어 사연을 물어본즉 부친의 병환 때문인 것을 알았다.
스님은 그 자리에서 약처방을 써주고는 차도가 있은 뒤 자기의 암자에 와서 3일간 불공을 드리라는 말을 남기고 암자로 돌아갔다.
그 후 낭자는 스님의 처방대로 약을 달여 부친에게 드리니 병세는 금방 호전되었다.
그래서 스님 말대로 3일간 불공을 드리기 위해 부친의 승락을 받은 다음 돈과 음식을 장만해 가지고 서봉산 암자에 들어갔다.
스님이 일편단심 낭자의 생각으로 지새던 차에 낭자가 부친의 병환이 좋아져서 약속대로 불공을 드리러 온 것이었다.
낭자가 사흘동안 정성을 다해 부처님께 불공을 드린 다음 스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날 때였다.
즉 낭자를 처음 만날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워하는 마음이 솟구쳐 한시라도 잊을 수가 없으니 낭자와 함께라면 불도수행을 떠나서 환속을 하겠다는 하소연이었다.
낭자는 뜻밖의 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나 스님의 처지를 생각해서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낭자는 부친의 승락을 빙자해서 그 날은 암자를 떠나왔다.
이튿날 낭자는 암자에 가서 스님을 만나 "스님께서 여러 해 동안 불도에 몸 담아 오신 터에 쉽사리 속세로 환속하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스님은 대답하기를 "소승이 불도의 길을 걷고 있음은 지당한 말씀이오나 낭자를 두고는 도저히 마음을 가다듬을 수가 없어 환속하기를 결심한 것이오니 소승의 마음을 헤아려 주십시요." 하고 말했다.
낭자는 또 다시 "그렇다면 스님께서는 환속을 약속한다는 표시로써 저 서봉산 위 쉰길바위에서 턱걸이 백 번을 한다면 기꺼이 응하겠소." 하였다.
젊은 스님은 그 까짓 백 번쯤이야 걱정 없다는 듯 희희락락하며 자신있게 팔을 걷어 부치고 턱걸이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거뜬거뜬 올라 갔으나 횟수가 더해 갈 수록 힘이 들었고 80번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더욱 힘이 들었다.
스님은 사생결단 있는 힘을 다하여 턱걸이를 했지만 백 번을 채우지 못하고 99번째 가서 기운이 빠지고 의식이 몽롱해지고 손이 풀리면서 급기야는 높이가 쉰길이나 된다는 바위의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낭자는 스님을 부르면서 황급히 절벽 아래로 뛰어 갔으나 스님은 이미 유혈이 낭자한 채 숨을 거둔 후였다.
낭자는 생각하기를 "내가 너무 지나친 요구를 하여 스님이 불의의 변을 당했구나"하고 슬픔을 못이겨 한참을 엎드려 울고 있다가 일어나니 자기 앞에는 난데없이 바위가 하나 우뚝 솟아나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가 스님의 이루지 못한 영혼이 깃들어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다고 하여 '눈물바위'라 불러오게 되었으며 쉰길바위와 함께 지금까지도 스님과 낭자의 한 맺힌 사연이 담겨져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이곳 주변에서는 제법 유명한 산이다 보니 이른 시간인데도 제법 등산객들이 올라 와 있고 부탁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제 주위 조망을 즐기며 아름다운 자연을 담아 보는 시간이다.
북서쪽으로 발안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건너편으로는 건달산이 우뚝 솟아 있다.
그 우측으로는 43번 지방도로를 따라 봉담쪽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고 그 좌측 저 멀리에는 태행지맥의 산줄기 일부가 희미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 봉담 마을 우측으로는 지금까지 이 산객이 걸어 온 서봉지맥 마루금이 보이고 그 끝자락 저 멀리에는 서봉지맥 분기봉 근처의 안양 수리산도 보일듯 말듯 그렇게 애간장을 태우는 시간이다.
참으로 멋진 조망이 아닐 수 없다.
서쪽으로는 발아저수지가 제대로 내려다 보이고 팔탄 신도시의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 철마산과 바로 발 아래 덕리쪽 마을도 한누에 내려다 보인다.
발안저수지 우측 건너에는 여전히 건달산이 올려다 보이고 저 멀리 서해 바다쪽으로는 하늘에 먹구름인지 아니면 안개가 뒤덮어 또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
한동안 그렇게 멋진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정상으로 오르니 더욱 많은 등산객들로 붐비고 잠시 제대로 된 산행 복장을 하고 나침판까지 들여다 보는 이 산객이 이상했던지 이것 저것 많은 질문을 하시기에 서봉지맥에 대해 아니 맥 산행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 북쪽으로는 저 멀리 제1구간부터 오늘 서봉산까지 걸어 내려온 서봉지맥 마루금이 잡목 사이로 펼쳐져 있다.
좌측 봉담마을 위쪽으로 수원의 칠보산이 미끈하게 솟아 있고 그 산을 돌고 돌아 이곳으로 이어지는 풍경도 아름답게 눈에 들어 온다.
그 뒤 저 멀리에는 확실하지 않지만 안양의 수리산이 짙은 구름속에 희미하게 자리한듯 다가온다.
오랫만에 만나는 산그리메를 보내기 아쉬워 한동안 더 정상에 머물며 이곳 저곳 둘러 본 후 육각정자에도 올라 보지만 생각보다 조망이 좋지는 못해 다시 내려 온다.
동쪽으로는 정남쪽 마을과 아기자기한 마을들이 보이지만 그 위에 떠 있는 강렬한 아침 햇살에 모두 숨을 죽이고 숨어 있는듯 하다.
한동안 그 서봉지맥이란 이름을 탄생 시킨 서봉산 정상에서의 추억을 뒤로 하고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다 뒤돌아 보니 육각정자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산객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잠시 더 내려가니 등로 좌측에 큰 바위가 하나 있어 우측으로 돌아가니 그 바위 옆에 텐트를 쳐 놓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산객이 보여 잠시 이야기 나눠보니 이 근처에 사시는 분인데 멀리 갈 시간이 없어 어제 저녁 홀로 올라 와 비박을 하였다는 소식이다.
이 산객만큼이나 산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산객은 아일까 부러워하며 인사 나누고 갈길 바쁜 이 산객이 먼저 자리르 뜬다.
산을 사랑하는 산객과 인사를 나누고 진행하니 배낭도 없이 산에 올랐다 내려가는 등산객 한분이 이 산객 앞에서 진행을 하고 있다.
잠시 안부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금새 218봉에 도착을 해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들을 조망해 본다.
바로 앞에는 골프장이 내려다 보이고 그 저 멀리에는 새로 형성된 향남지구의 거대한 아파트 촌이 조망된다.
몇년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살아가기에 큰 이름도 없었던 이곳 서봉산도 제법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산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남서쪽으로는 제법 신도시의 모습을 갖춰가는 향남지구의 아파트 촌과 주변 풍경들이 조금 더 잘 조망되고 있다.
그저 평범한 농촌마을이 도시화 되면서 거대한 아파트 촌으로 변해가는 풍경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곳이 바로 향남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정말 거대한 아파트 지역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향남의 명칭은 구한말에 수원군 발안면의 발안동, 제암동, 방축동, 상신동, 하길동, 행정리, 도이동, 평촌과 향남면의 관동, 증거동, 길성리, 갈천동, 수직동, 백토동, 송곡동, 동오리, 상두리, 요동, 화리현동, 구문천리가 있었으며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조선총독부에서 부, 군, 면, 리 폐합을 하여 남면, 남곡면, 수직동,
감미면 하두와 공향면 하행정, 상행정, 여촌, 상평촌, 하평촌, 장기촌, 방축동, 도이동, 제암동 및 남양군 분향면을 병합하고 향남면이라 칭한다라는 유래를 찾을 수 있었다.
218봉 전망대에서 향남지구와 골프장을 조망한 후 벤취 쉼터를 출발해 전진하니 다시 호젓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아침 햇살이 잡목을 헤치고 등로를 비추며 따스하게 들어 오는 시간, 낙엽을 모두 떨궈내고 겨울 준비를 하는 나뭇가지의 모습이 마치 이 산객의 마음과 왜 이리 똑같다고 생각이 드는지...
잠시 나즈막한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묘지들이 보이고 등로 좌측으로는 민가인지 연기가 피어 오르고 그곳으로는 출입을 금지하는 철조망이 쳐져 있다.
내려가다 등로 좌측으로 보니 연화사가 내려다 보이고 그곳은 증축을 하고 있는지 한창 공사중이다,
그곳 연화사를 내려다 보며 내려가니 안부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는 현위치 연화사란 이정목이 서 있다.
연화사 안부와 이정목을 ㅣㅈ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이곳에서도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걸어 본다.
원래 계획은 오늘 약 35 Km 되는 서봉지맥 제2구간을 완주하겠다는 생각으로 올랐지만 3주만에 다시 시작하는 산행이다보니 중간에 계획을 수정해 한구간을 짧게 남겨 두고 진행하자 수정하니 한결 여유가 생긴다.
그렇게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묘지가 보이더니 금새 벤취2개가 보이는 쉼터에 도착을 한다.
벤취 쉼터를 지나 다시 낙엽이 쌓여 있는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하가등리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난다.
봉담읍 하가등리 마을을 찾아 보지만 자료가 부실해 찾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곳에서 좌측 도이리 방향으로 진행하며 산행을 이어 가 본다.
천천히 여유롭게 진행을 하였는데 벌써 서봉산 정상에서 1.9 Km를 지난 지점이다.
도이리 방향인 좌측으로 방향을 바꿔 내려가니 안부를 지나고 여전히 낙엽은 등로를 가득 메우고 흙조차 보여주지 않고 있다.
앞서 가는 등산객 한분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전진하니 이제 서봉산 정상에서 2.6 Km 지나 왔고 진행 방향으로는 동오리 마을 이정표가 서 있다.
그곳을 지나 계속 전진하니 이제는 운동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는 139봉 봉우리에 도착을 하고 이곳에서 잠시 등로를 헷깔려 직진 방향인 우측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좌측 등로를 따라 내려갔다 안부에서 곧바로 우측으로 내려가며 짧게 알바를 경험한다.
줄곧 함께 진행하던 등산객의 말을 듣고 뒤따랐지만 지맥 산행과 관계없는 그 등산객의 의견을 반영한 이 산객의 잘못이 가장 클 것이다.
운동시설이 있는 139봉에서 직진의 우측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90도 꺽어 내려가니 다시 안부를 만나 우측 내리막 등로가 이어진다.
그곳으로 따라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와 만나는데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내려 가 다시 만나는 갈림 삼거리 임도를 만나 좌측으로 내려간다.
그 비포장 갈림 삼거리가 바로 우측 운동시설이 있는 139봉에서 내려오면 파란 그물망이 쳐져 있는 골프 연습장을 통해 내려오는 정상 등로와 만나는 지점이다.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퐝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에 동산숲유치원 건물 앞 마당으로 내려가고 이제부터는 포장 도로를 타고 82번 지방도로 쪽으로 걸어 나간다.
동산숲유치원 건물을 뒤에 두고 다시 나타나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을 하니 도로 좌측으로 브라메리타란 커피 전문점이 보이고 다시 계속 앞으로 전진하니 도로 좌측 안으로 동오장이란 큰 식당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니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그 도로 따라 앞으로 진행하니 도로 좌측에 고개마루 식당이 보이고 곧이어 82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도이리고개이다.
도이리는 화성시 봉담읍 도이리로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낫머리, 구억말, 돌모랭이 등의 자연부락을 묶어 일컬은 것인데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가 많다고 해서 도이리라 부르게 되였다고 전해지는 마을이다.
그 82번 4차선 포장도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 도로의 SK 주유소 옆 철계단을 타고 오르며 맥 산행은 이어져 있다.
82번 6차선 도로는 생각보다 많은 통행량은 아니지만 꾸준히 차량들의 통행이 이어져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정상 횡단보도를 통해 건널 수 있었다.
도로를 걸어 건너는데 많은 차량에서 높은 산도 없고 이름난 산도 없는데 제대로 된 등산복에 등산 배낭 그리고 스틱까지 들고 걸어가는 이 산객이 신기했는지 모두 강아지 처더보듯 바라 본다.
한두번 경험한 이 산객이 아니기에 무시하고 건너니 절개지에 철계단이 놓여 있고 그 좌측에는 SK 주유소가 보인다.
가파른 그 철계단을 타고 절개지를 올라 정상 등로로 복귀를 한다.
철계단을 타고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이 산객이 건너 온 82번 지방도로가 바로 발 밑에 내려다 보이고 그 82번 지방도로와 이어진 2차선 포장도로가 보인다.
그 도로 우측에는 고개마루 식당 건물이 보이고 동산숲유치원 건물을 지나면 능선으로 이어져 잠시 등로를 잃었던 녹색 그물망이 높게 치솟아 있는 골프 연습장이 보인다.
그 골프 연습장 위에는 운동시설이 있는 139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곳에서 좌측으로 흐르며 이어지는 서봉지맥이 일목요연하게 보인다.
지나온 마루금을 살펴보면 인간의 두발이 얼마나 위대한지 다시 한번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꽤 긴 철계단을 타고 한발 두발 힘들게 오르니 등로는 다시 우측 아래에서 콘크리트 수로와 이어는 지점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좌측으로 능선을 향해 방향을 바꿔 오른다.
잠시 더 오르니 바로 눈 앞에 거대한 굴뚝봉이 나타나는데 군부대 시설물로서 그 아래에는 알 수 없는 벙커가 있을 법한 그런 풍경이다.
오래 전 군대 생활을 하면서 지독하게 만났던 벙커들, 이제는 먼 옛날의 추억이 되어 버린 어린 시절의 단편 조각들이다.
그곳 굴뚝 봉을 지나 다시 우측으로 꺾어 오른다.
굴뚝봉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금새 산불감시초소가 홀로 정상을 지키는 139봉에 도착을 한다.
어느 지도에는 이곳을 천석산이라고도 하는데 실제로는 아무 표식도 없는 봉우리이다.
하지만 이곳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 조금 더 진행하면 천석바위 설명 안내판이 있는 것으로 봐 이곳이 분명 천석산은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확신은 없다.
다만 방금 전 82번 지방도로까지 함께 내려 온 등산객 한분이 이곳 지리를 잘 아시는듯 한데 이곳을 천석산으로 알려 줬기에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그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139봉을 사진에 담은 후 다시 평이한 낙엽 떨어진 등로를 따라 호젓하게 자연을 즐겨 본다.
생각보다 몸의 상태는 좋지만 오른쪽 다리 무릎 위쪽이 약간 아파오기 시작해 조금은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기도 하다.
심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오랫만에 오르는 산행이기에 온 몸의 근육이 놀라 아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등로 앞에 큰 바위 하나가 서 있고 안내판과 이정표도 보인다.
살펴보니 천석산 유래 설명판이고 그 옆에는 도이리 0.4 Km와 노인복지회관 0.5 Km 및 천석사 0.1 Km 이정표이다.
천석산유래는
하늘이 천명의 주민을 구할 수 있는산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이 산 골짜기에 천명이 앉아 잇을 수 있는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전해지고 있는데 입이 남쪽을 향하고 비구가 북쪽을 향하며 멀리 서해가 바라보이고 사방이 한눈에 보이는 곳으로 하늘과 맞닿은 바위같다하여 천석바위라 부르기도 하고 또 다른 일설에 의하면 부근에는 전혀 다른 바위는 볼 수가 없어 옛날 삼신 할머니가 놓고 간 바위이며 하늘에서 떨어 뜨렸다 하여 천석바위라 불렸다 전해지는 바위라고 적혀 있다.
우측의 천석사 방향의 등로를 버리고 직진 좌측의 도이리 방향이 지맥 등로이다.
그 천석바위와 안내판 그리고 이정표를 지나 다시 호젓한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벤취 2개가 설치된 쉼터를 지난다.
낙엽은 더욱 깊게 등로를 덮어 이제 새벽에 내렸던 서리가 아침에 떠오른 햇살에 마르며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한다.
조금 더 진행하다 등로 우측을 바라보니 잡목 사이로 향남읍의 행정리에 세워진 새로운 실내 체육관처럼 보이는데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갈림 삼거리에 이정표가 서 있는데 천석바위 0.2 Km, 우측으로 노인복지회관 0.3 Km 및 좌측으로 행정리 0.7 Km인데 이곳에서 정상 등로를 찾아 잠시 지도와 나침판을 가지고 정치해 좌측의 행정리 방향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가기로 한다.
내려가다 보니 올바른 선택을 했기에 긴 한숨을 내쉬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갈림 삼거리 이정표에서 좌측의 행정리 방향으로 내려가니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도 정상 등로를 찾는데 애를 먹는다.
아무리 지도를 펴 놓고 나침판으로 정상 방향을 찾아 봐도 알 수가 없어 자세히 살펴보니 등로 앞 저 멀리 희미한 건물이 보이는데 지도를 보니 돌부수는 공장이란 글이 보인다.
아마도 이곳이 101봉 정상으로 그 채석장을 등로 좌측에 두고 우측 등로를 타고 내려가면 될듯 하여 갈림 삼거리에서 우측 등로를 타고 내려간다.
잠시 내려가니 선답자의 띠지가 보이고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계속 내려가니 볼라벤 태풍에 쓰러진 나무와 묘지들을 지나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지도와 자료를 찾아 보니 이곳이 바로 가로고개로서 도로 우측에는 송한맨홀산업이 있고 좌측에는 거대한 채석장이 자리하여 산을 통째로 잘라내는 안타까운 순간이다.
그 채석장을 좌측에 두고 도로를 타고 고갯마루로 오르니 선답자들의 후기에는 화성옛터식당이 있었다고 하였는데 그 식당이 바뀌어 이제는 행복나루 식당으로 간판이 변해 있다.
고갯마루 정상으로 오르니 도로 우측에 행복나루 식당이 있는데 아침 10시를 넘기고 있고 서서히 허기가 지기 시작한다.
혹시나 하고 식당 안을 살펴 보지만 혼자 이른 시간에 들어가 식사를 하기에는 어려울듯 하여 그냥 진행 하기로 한다.
그 행복나루 식당을 좌측에 두고 우측 넓은 공터를 가로질러 절개지 위로 오르니 지난 여름 무성하게 자랐다 이제 사라지는 잡풀들이 산객의 바지를 붙잡고 놔주질 않고 있다.
무성한 잡풀이 자라는 여름에는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기도 하다.
절개지를 올라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어렵게 올라온 절개지와 넓은 공터 그리고 그 우측에 행복나루 식당 건물이 내려다 보이고 가루고개 지나 산을 통째로 잘라내고 있는 채석장이 흉물스럽게 보인다.
그 채석장 위로 방금 전 어렵게 정상 등로를 따라 내려온 101봉도 보인다.
그곳을 조망한 후 등로 우측을 보니 그곳에는 향남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새로운 신도시의 모습으로 바뀌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앞으로 좌측에 절개지를 두고 걸어 가야 할 마루금이 조망되고 저 멀리에는 송전탑 하나가 높게 솟아 있는데 그 송전탑을 목표로 걸어가면 될듯 하다.
잠시 진행하니 다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로 내려가 우측으로 조금 걸어가니 좌측 능선으로 등로가 열려 있고 그곳에는 로프가 달려있는 진입로가 보인다.
서봉산을 지나자마자 등로가 다시 희미해지기 시작하고 정상 등로 찾기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시작한다.
비포장 임도에서 로프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이곳은 고도가 낮은지대라 그런지 이제 만추를 지나 겨울 준비를 막 시작한듯 그런 추색이 완연하다.
그렇게 조금 더 오르니 송전탑 하나가 서 있고 다가가 살펴 보니 154kV 오산 T/L No.6 및 154vK 발안 T/L No. 6번이 있는 99봉이다.
그곳 송전탑을 지나 전진하니 인동장공 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 옆에는 콘테이너 박스가 놓여 있는데 아마도 묘지 관리를 위한 연장들이 보관되어 있는 창고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되는 박스이다.
그곳 인동장공 묘지를 지나자 임도같은 넓은 등로가 이어지고 그 등로 주위로는 가을 빛이 만개해 있다.
오랫만에 다시 자연에 동화되며 자연을 만끽해 보지만 문득 생각나는 어머님과 아버님의 모습에 몸서리를 쳐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꽃을 무척이나 좋아하셨던 어머님이셨기에 가을의 단풍만 보고서도 소녀처럼 좋아하셨던 모습에 잠시 진행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멈춘다.
그렇게 진행하니 다시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그 임도를 가로 질러 반대편 능선으로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 가 본다.
임도를 가로 질러 능선으로 오르니 그 능선에도 넓은 임도같은 등로가 열려 있고 그 임도같은 넓은 등로를 타고 완만한 오르막 마루금으로 오르니 다시 나무 사이에 로프가 달려 있는 지역을 오른다.
그곳을 지나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옆 나뭇가지에 약수터 200미터란 나무 이정표가 붙어 있다.
오늘은 식수도 충분하고 날씨가 추워져 식수를 마시는 양도 많지 않아 약수터는 그냥 통과하기로 한다.
약수터 이정표를 지나 전진하니 다시 나뭇가지 사이로 묶어 놓은 로프 구간이 나타나고 그곳을 타고 오르니 추색이 더욱 완연한 등로가 멋있게 다가온다.
여유롭게 천천히 오르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등로 좌측으로 묘지의 봉분은 하나인데 수많은 비석이 함께하는 곳에 도착을 한다.
특이한 묘지를 지나 진행하니 다시 소나무 군락지에 로프가 매달려 있는 구간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오르니 139봉이다.
139봉을 지나 내려가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가운데에는 묘지 하나가 보인다.
잠시 헷깔려 좌우측으로 왔다리 갔다리 등로를 찾아 돌아 다니다 어렵게 좌측의 정상 등로를 찾아 넓은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진행을 이어 간다.
넓은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우측에 묘지를 두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에 하얀 팻말에 향남-6-1-1이란 군 표식 같은 이정표가 서 있고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난다.
그 비포장 임도 아래에는 가족 공원묘지가 보이고 그 묘지 아래에는 작은 창고같은 콘테이너 박스가 보이고 그 우측 저 멀리에는 평택과 안성간 고속도로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데 그 고속도로 위로는 많은 차량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우측의 가족공원묘지 쪽으로 짧은 구간 콘크리트 임도가 나타나더니 다시 그 콘크리트 임도는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있다.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넓은 운동장인지 체육시설이 내려다 보이고 조금 더 내려가니 T자 비포장 임도를 만나 좌측으로 도로 타고 전진한다.
조금 더 진행하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좌 우측 어느쪽으로 진행을 해도 39번 2차선 지방도로와 만나 우측으로 그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43번 지방도로와 만나는 양석골사거리에 도착을 한다.
양석골 사거리로 가니 공사중이고 도로 표지판을 보니 직진은 39번 평택 안중 방향이고 좌측은 43번 양감과 경기도 사격장 그리고 우측으로는 43번 향남(발안)이 적혀 있는데 이곳 양석골 사거리에서 43번 지방도로를 타고 좌측 양감과 경기도 사격장 방향으로 진행한다.
43번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혜준산업과 정우폴리머 입간판이 서 있고 도로 좌측으로는 폐가가 보인다.
계속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최근에 세워진듯한 주)제이에스 이엔지 건물들이 보이고 그 옆에는 화리현1리 양석골이란 빗돌이 서 있다.
계속 그 도로를 타고 진행하니 도로 우측 아래에 뽕나무골 식당이 내려다 보이고 그 식당 좌측 위로는 누에박물관도 보인다.
그 뽕나무골 식당 앞에는 갈림 삼거리 도로가 나타나는데 좌측으로는 상두리 도로 이정표가 보인다.
그 상두리 방향으로 가나안 식당이 보여 허기를 달래려고 들어가니 마침 막 식사 준비를 시작하기 시작하여 어렵게 갈비탕 하나를 시켜 점심을 해결한다.
가격은 8000원으로 조금은 비싸다는 생각이지만 갈비도 많이 들어 있고 맛도 좋으며 특히나 주인 아저씨의 친절함이 더해져 그만한 값어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제 시간은 막 11시를 넘기고 있다.
식사 준비 시간이 보통 낮 12시를 넘겨야 되지만 오늘은 마침 식당 앞 도로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 인부들이 있어 그분들이 식사를 주문했기에 이 산객도 곁들여 맛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맛나게 식사를 끝내고 나오며 식당 앞 건물을 사진에 담아 본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가족들 데리고 와서 식사 한끼 먹어도 좋을만큼 기분 좋게 즐긴 점심식사였다.
가나안 식당을 나와 43번 지방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조금 더 걸어 가니 뽕나무골 식당 입구 지나 나라 환경조경이란 입간판 옆 전봇대를 지나 우측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능선으로 올라 잡시 잡목을 헤치고 오르니 등로 좌측에 큰 공장 건물이 보이고 살펴보니 소문난 삼부자 김 공장이다.
잠시 더 넓은 등로를 타고 오르니 임도같은 등로가 좌측으로 휘어지는 지점의 잣나무가 식재된 지점에서 등로는 우측 능선으로 오르며 이어진다.
능선으로 오르니 천막이 찟어진 군막사같은 건물이 보이고 그 뒤로는 거대한 비닐 하우스 2동이 보인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 비닐하우스 앞 공터가 108.2봉이고 삼각점이 있다고 알고 올랐는데 아무리 찾아도 삼각점은 보이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으로 그 군막사와 비닐하우스를 우측에 두고 좌측 잡목 사이를 헤치고 진행하니 그 옆에 노란 물통이 하나 보이고 계속 전진하니 단풍나무 지나 하얀색 콘테이너 박스가 널부러져 있다.
그 콘테이너 박스를 지나 가시잡목을 헤치고 둔덕을 오르니 비닐하우스쪽 절개지 위에 위험하게 삼각점 하나가 박혀 있다.
하지만 너무 낡아 표식은 전혀 알아 볼 수가 없을 지경이다.
삼각점을 사진에 담고 그 봉우리를 내려오니 등로는 좌측으로 꺾여 진행되고 그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절개지 앞에 넓은 공터가 내려다 보인다.
어렵게 그 절개지를 타고 내려가 공터를 가로 질러 다시 나타나는 오르막 절개지로 오르니 잡목과 잡풀 그리고 가시나무들이 발목을 잡는다.
어렵게 그 가시나무를 헤치고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절개지가 이어지고 그 절개지 밑으로는 거대한 창고형 건물들이 즐비하게 줄지어 서 있다.
조심조심 좌측 절개지를 타고 걸어가니 짧은 거리 그 절개지가 끝이나고 곧이어 비포장 임도가 나타난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공장인지 아니면 민가 한채가 나타나고 그 옆을 통해 걸어가니 비포장 임도는 다시 좁은 정상 등로로 걸어 가게 된다.
잠시 능선으로 들어가니 추색이 반기고 잠시 더 자연을 음미하며 긴 숨을 들이 쉬며 쉬어 간다.
더 걸어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105봉에 도착해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우측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한다.
계속 멋진 등로를 타고 가을을 느끼며 여유롭게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포도밭과 민가들 그리고 드넓게 펼쳐진 경작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혹시나 하고 포도밭으로 내려가 보지만 이 산객이 따 먹을만한 포도 송이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 정상 지맥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잠시 더 진행하니 너무나 아름다운 가을 단풍이 나무와 헤어지기 아쉬운듯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가을 단풍이다.
이런 풍경은 전혀 예상도 못하고 그저 낙엽진 황량한 등로만 생각하고 올랐는데 이렇게 너무나 소중한 선물을 주니 자연이 더욱 가슴에 남겨지는 시간이다.
왜 이리 어려운 산행을 특히나 맥 잇기 산행을 하는지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듯 하다.
그저 홀로 오르는 시간이지만 피식 웃음이 나는 이유는 또 무엇인지...
아버님과 어머님 일 때문에 웃음을 잊고 상지가 꽤 지났는데 오랫만에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웃음을 웃어 보는 시간이다.
그 아름다운 단풍터널을 지나니 등로 우측으로 잡목 구간이 나타나고 약간은 민둥의 봉우리가 보인다.
혹시나 하고 올라가 보지만 아무 표식도 없고 삼각점도 없어 그냥 그 봉우리를 내려와 정상 등로를 타고 멋지게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러다 보니 등로 우측 저 멀리 송전탑 하나가 보이고 잠시 발품을 팔아 그곳으로 가 보니 송전탑 No. 6번이다.
사진 한장 담고 나오는데 전에 봤던 송전탑과 번호가 똑같아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그곳을 나와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드넓은 공터와 경작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잡목지대를 지나며 생각을 해 보니 여름 잡목이 무성한 시절에는 진행하기 어려운 지점이란 생각 뿐이다.
그 지독한 잡목과 잡풀지대를 지나니 노란색 콘크리트 말뚝에 삼각점의 십자가가 새겨져 있고 옆면에는 124란 숫자가 적혀 있는데 이것 역시 군부대에서 사용하고 있는 표식은 아닌가 생각되는 말뚝이다.
등로 좌측으로는 곡식을 수확한 후 잘 정리된 드넓은 경작지가 펼쳐져 있고 그 밭 위에 민가 한채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 좌측으로 벌목된 구간을 타고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아무 표식도 없이 잡목만 무성한 봉우리에 도착을 하고 이곳 정상에서 정상 등로를 찾아 잠시 헤매였다.
할 수 없이 직진해 잠시 더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 앞에 절벽같은 절개지가 나타나고 그 앞에는 온 산을 깎아 버린 거대한 채석장이 눈에 들어 온다.
다시 지도와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살펴보니 이곳 정상이 127봉으로 원래 직진이 지맥 등로이지만 채석장으로 인해 좌측으로 우회해 진행하다 채석장 안으로 진입해 정문으로 나가며 진행하였다는 후기가 생각 난다.
마침 오늘이 일요일이라 작업을 쉬고 있기에 무지막지한 돌깨는 소음은 들리지 않지만 절개지 위에서 내려다 보는 모습은 처참한 모습 그대로 이다.
늘 안타까운 마음은 이렇게 돈벌이를 위해 산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리고 난 후 전혀 복구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선진국일수록 채석한 후 그 자리를 잘 관리해 그곳이 진짜 채석장인지 모르게 복구를 시킨 다는데 우리나라는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그런 곳에는 눈길한번 주지 않는듯 하다.
살펴보니 채석장 우측의 칼날 능선을 타고 진행하는 것이 조금 더 빠른 지름길처럼 보이지만 너무 위험해 보이기에 다른 선답자들처럼 뒤돌아 127봉으로 오른 후 이제 우측 등로를 타고 채석장 좌측 능선으로 우회해 통과하기로 한다.
채석장을 우측에 두고 좌측 등로를 타고 잠시 내려가니 안부를 지나 직진의 방향으로 양호한 등로가 열려 있어 잠시 타고 내려가다 지도를 살펴보니 남쪽으로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자꾸만 동쪽으로 향한다는 기분이 들어 지도를 확인한 후 뒤돌아 올라오니 안부에서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중앙레미콘 공장 방향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잠시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는 중앙레미콘 공장 내 콘크리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중앙레미콘 공장 정문 방향으로 걸어가며 진행을 한다.
일요일이라 제지하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지만 직원이 통행을 막으면 아주 곤란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중앙레미콘 정문을 빠져 나와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는 강원폐차산업 공장이 보이고 곧이어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사양이(대양이)고개에 도착을 한다.
대양이고개 즉 사양이고개에서 선답자들은 대덕산업과 한식뷔페 가이로 들어가 한식뷔페 뒷쪽으로 진행하면 좋다고 쓰여 있지만 아무리 찾아 봐도 그쪽으로는 뒷산 능선으로 접근할 방법이 없다.
한동안 이리 저리 둘러보고 살펴 보지만 찾을 수 없어 한식뷔페 건물 우측으로 올라가니 창고형 건물 몇동이 최근에 지어진듯 깨끗하게 들어서 있고 그 건물들 앞 시멘트 포장 마당과 도로를 따라 오르니 그 건물을 지나 저 멀리 능선쪽으로 포장도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 도로를 따라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는 콘크리트 옹병이 ㅆ고 좌측으로는 이리저리 등로 찾아 헤매였던 대덕산업과 한식뷔페 식당 건물들이 보인다.
능선으로 오르니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오르니 전주 이씨의 공원 묘지들이 등로 우측으로 보이는데 오늘 새로운 사람이 입주를 하였는지 많은 가족들이 제를 올리고 있다.
묘지 공원이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나 있는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며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햔남과 발안쪽 고층 빌딩들과 신시가지들이 빤히 내려다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콘크리트 도로를 타고 걸어 진행하니 콘크리트 도로가 좌측으로 꺾여 내려가는 지점 우측으로 나즈막한 봉우리 하나가 보이는데 그곳으로 비포장 임도가 나 있다.
그 들머리 초입에는 가축 분뇨를 쌓아둔 무덤같은 퇴비가 보이고 비포장 임도에도 가축 분뇨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조심하며 오르니 다시 전주유씨 가족 공원 묘지들이 줄지어 서 있고 시멘트 도로가 다시 시작되는데 그 도로 시작되는 지점 좌측으로는 콘테이너 박스 하나가 서 있다.
그 콘테이너 박스 옆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 도로를 타고 계속 진행해 본다.
잠시 시멘트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는 다시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조금 더 넓어진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김해김공 합장묘지가 나타난다.
그 묘지를 지나 다시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호젓한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다시 비포장 임도를 만나 그 임도를 따르고 한동안 그렇게 진행하니 눈 앞에 비포장 임도 갈림 삼거리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오르니 묘지 하나가 서 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묘지 정상에서도 정상 등로를 찾지 못해 다시 전주유씨 가족 묘지까지 뒤돌아 갔다 온다.
오는 도중에 등로 앞 저 멀리 바라보니 아스라히 멀어진 평택의 비산비야를 지나 거대한 서해안고속도로의 서해대교가 보인다.
서봉지맥 마지막 지점과 인접해 있는 서해대교가 드디어 눈 앞에 펼쳐져 있고 이제부터는 더욱 급하지 않게 다음에 다시 한구간 더 만들어 오르고자 마음 먹고 진행하기로 한다.
정상적으로 잘 찾아 왔지만 확신이 없었기에 전주유씨 가족묘지까지 뒤돌아 갔다가 김해김공과 배단양장씨 묘지가 정상을 지키는 무명 묘지봉으로 뒤돌아 오느라고 20여분 허비하고 말았다.
그곳에서도 한동안 정상 등로를 찾지 못해 헤매다가 직진으로 내려가 보니 이곳 역시 갑자기 절벽같은 절개지가 나타나는데 그 아래에는 수십길 낭떠러지 아래 거대한 채석장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원 서봉지맥 마루금은 저 채석장 위 능선을 지나 306번 지방도로로 이어져야 하지만 채석장이 길을 막아 좌측으로 우회하며 진행하여야 할 것처럼 보인다.
절개지 위에서 채석장을 내려다 본 후 김해김공 묘지봉으로 다시 뒤돌아 올라가 이번에는 우측 능선을 타고 걸어가며 진행을 해 본다.
묘지를 지나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 공터에서 지맥 마루금은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가며 진행을 한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임도는 사라지고 좁은 등로가 나타나며 그 등로 우측으로는 동양레미콘에서 운영하는 채석장 출입금지를 시키기 위해 녹슨 함석판으로 담장이 쳐져 있다.
그 담장을 따라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눈 앞에 논이 펼쳐지고 그 논 지나 저 멀리 이제부터 올라야 할 306번 지방도로와 그 뒤로 109봉의 주산봉이 올려다 보인다.
논둑을 따라 내려서서 잠시 뒤돌아 보니 그곳에 거대한 동양레미콘에서 운영하는 거대한 채석장이 그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며 드넓은 지역을 집어 삼키고 있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벌어진 입을 담을 수 없을 지경이다.
그 채석장 뒤로는 근근히 남아 있는 나즈막한 산줄기가 이곳이 서봉지맥 마루금임을 알려주고 있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접근이 차단되어 금단의 산줄기가 되어 버렸다.
논을 타고 어렵게 그 난해한 채석장을 빠져 나오니 최근에 새로 지은듯 새로운 포장도로가 생겨나 있고 그 도로 우측으로는 (주)엠티케이란 간판이 달려있는 신축된 공장 건물이 서 있다.
그곳 사장님과 잠시 인사나누고 산행 이야기를 한 후 다시 돌아서서 진행을 하니 바로 코 앞에 306번 지방도로와 도로 건너 통나무집 식당과 대신에이티 사이로 나 있는 도로가 보이는데 그 도로를 타고 조금 들어가면 대신자동차정비 입간판과 건물들이 보인다.
저 두 건물 사이를 통해 능선으로 접어 들며 산행은 이어질 것이다.
통나무집 식당 건물을 좌측에 두고 포장도로를 타고 들어가니 바로 대신자동차 건물이 나타나는데 그 좌측으로 작은 텃밭이 보이고 그 텃밭을 통해 능선쪽으로 들어가니 가축을 키웠는지 녹색 그물망이 쳐져 있다.
그 녹색 그물망을 돌아 낙엽이 푹푹 빠지는 등로를 타고 주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를 따라 오르니 정상에 잘라진 통나무로 만든 많은 벤취들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주산봉으로서 해발고도는 109미터이고 삼각점이 있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삼각점은 찾지 못했다.
정상에는 많은 수의 통나무 벤취가 세워져 있어 잠시 물한모금 마시며 쉬어 가기로 한다.
109봉인 주산봉 정상에서 물 한모금 마시며 지도를 살펴보니 원 지맥 등로는통나무집에서 도로를 타고 대신자동차정비 방향으로 더 들어갔다 좌측 능선을 타고 오르면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주산봉을 올라야 하지만 개발이 더 심해지면서 그 주능선으로 오를 수 없어 통나무집 식당 뒷편의 능선을 통해 오르니 동쪽에서 서쪽으로 주산봉을 넘어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통나무 벤취에서 쉰 후 배낭 둘러메고 다시 서쪽 방향으로 조금 내려갔다 좌측 내리막 길 등로로 가니 잡목 사이로 마루금이 열려있고 조금 더 내려가니 눈에 익은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붙어 있다.
그 희미한 등로를 타고 계속 내려가니 눈에 잘 보이지도 않게 갈림 삼거리 하나가 다시 나타나는데 이곳에서는 우측의 뚜렷한 직진 방향의 등로를 버리고 잡목 사이로 숨어 있는 좌측 등로를 타고 진행해야 한다.
어렵게 정상 등로를 찾아 희미한 능선으로 들어가니 잘 알고 지내는 고산마루 다올님의 띠지가 반갑게 맞이해 주고 이제사 정상적인 등로를 찾았다는 안도감에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그렇게 희미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갑자기 눈 앞에 검정 가림막이 쳐진 둥근 원형의 구조물이 나타나는데 그 주위에는 온통 철조망이 쳐져 접근이 불가능 하도록 만들어 놨다.
다가가 확인해 보니 양감면 요당1리 상수원 시설로서 그 상수도를 보호하기 위해 접근을 금지 시켰던 것이다.
상수도 보호 시설을 좌측에 두고 우측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철조망 넘어 인삼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잠시 편안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금새 요당리 마을이 있는 1차선 지방도로 위에 도착을 한다.
도로 건너편에는 전주 유씨 영모제 건물이 서 있고 그 영모제 건물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고갯마루로 오르니 도로 우측에 거대한 축사 건물이 서 있다.
이곳에서 정상 등로로 진행하지 못하고 도로를 따라 우회하며 축사와 민가를 돌아 마을 도로로 진행하게 된다.
축사를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직진의 도로를 버리고 우측 도로를 따라 전진하면 도로 좌측에 거대한 보호수와 운동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장소를 지난다.
이제 도로 양쪽에 민가들이 차지한 마을 길을 따라 진행하니 다시 넓은 인삼밭이 나타나고 곧이어 민가들을 지나 요당정이란 팔각정과 요당못이 나타난다.
등로가 헷깔려 앞으로 올라야 할 덕지산을 마을 주민들에게 물어 보니 친절하게 알려주면서 그 덕지산으로 올라가는 등로까지 알려 주신다.
요당못을 지나 계속 마을 도로를 따라 전진하니 도로 우측에 폼텍이란 큰 공장 건물이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해 걸어가면 갈림 삼거리 도로와 만난다.
그 삼거리 앞에는 습지체험장 밑에 논 미꾸라지 체험이란 간판이 보이고 그곳에서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도로 좌측에는 식당 건물이 보이고 조금 더 지나 창해금속 건물이 나타난 후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그 삼거리 입구에는 지나온 방향으로 요당리성지란 입간판 아래 700미터란 거리 표시가 함께 되어 있다.
그곳 갈림 삼거리에서 이제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틀어 한동안 그 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도로 따라 진행하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이 산객이 지나온 요당1리 마을과 건물들 그리고 그 마을 뒤로 주산봉이 올려다 보인다.
계속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좌측에 만도신소재 입간판이 서 있고 조금 더 진행하니 BK 메디텍이란 입간판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 더 진행하니 한비엠티와 다원전자등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갈림 도로가 분기되고 그곳을 지나쳐 계속 2차선 도로를 따라 걸어가면 태화산업 입간판이 서 있다.
그 태화산업 입간판을 지나 조금 더 전진하면 도로 좌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분기되고 곧이어 넓은 공터같은 잡풀지대가 나타난다.
그 비포장 임도로 틀어 좌측으로 들어가 죽어가는 잡풀지대를 헤치며 오르니 공사중인 절개지쪽으로 등로는 이어지고 있다.
그 절개지 공사장을 타고 좌측 능선으로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걸어 지나온 2차선 포장도로와 공사장이 보이고 그곳 넘어 넓은 요당리 마을과 들판이 내려다 보인다.
저 멀리 사진 좌측으로 회색 빌딩들이 가득한 향남제약공업단지와 발안지방산업단지가 아스라히 멀어지고 있다.
그렇게 공사중인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다시 평이한 등로가 열리고 그 등로를 타고 천천히 걸어 오른다.
낙엽이 더욱 깊게 등로를 채우고 이제 바스락 거리는 낙엽의 운치있는 소리를 귓전에 들으며 걸어 오르니 나뭇가지에 남아 있는 단풍이 바람결에 흔들린다.
그렇게 조금 더 오르니 운동기구가 있고 사각정자도 보이며 정상석 및 삼각점이 있는 덕지산 일명명봉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배낭 내려 놓고 준비한 간식을 먹으며 셀카 놀이를 하면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잠시 간식을 먹으며 남서쪽을 바라보니 강렬한 햇살 아래 저 멀리 서해안고속도로의 서해대교가 아스라히 보인다.
참으로 많이도 지나 다녔던 서해대교인데 이렇게 멀리 마루금에서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평택시의 안중읍과 포승읍이 또 다른 풍경으로 이 산객의 가슴에 남겨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적 시골을 내려가고 오르며 얼마나 많은 시간 저 곳을 통해 다녔는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추억을 남긴 곳이지만 직접 내려 만든 추억이 아니니 가물 거림도 이해가 되는 부분일 것이다.
명봉산 남쪽으로는 청북면 들판과 민가들이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 좌측으로 무성산이 들판 위에 그나마 봉우리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 무성산 좌측으로는 서봉지맥 마루금 좌측으로 오봉산이 보이지만 사진으로는 담아 내질 못하였다.
그 무성산 넘어 저 멀리에는 안중읍쪽 마루금이 비산비야를 이루며 이어져 가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지평선 저 멀리에는 안개가 피어 올라 하늘로 떠 오르고 그만큼 조망도 제한을 받고 있다.
명봉산(덕지산)에서 한동안 간식을 먹고 쉬고 있으니 마을 주민 한분이 올라 오시고 함께 간식을 청하지만 고사한 후 곧바로 떠나 가신다.
조금 더 쉬면서 주위 풍경을 살펴 본 후 덕지산 즉 명봉산에 대한 글을 떠 올려 본다.
덕지산은 화성시 요당마을과 경계를 이루며 청북면 고렴리와 어소리로 길게 이어지는데 정상부로 오르는 등산로는 가파르나 정상에서 바라보는 서해대교와 평택항을 바라다 보면 흐르는 땀방울이 씻기어 진다.
정상에서 내리막 길을 따라 어소리와 광승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완만한 숲길을 즐길 수 있고 정상 주변에는 많은 예비군 참호들이 있어 입구가 등산로 처럼 보이기도 하여 초행 등산객들의 헛걸음을 유도하게 하여 쓴웃음을 짓게한다.
1613년(광해군 5) 큰 스님 신지가 절터를 찾아다니다 보니 보살이 봉황을 타고 이(덕지산)산에 내려앉는 꿈을 꾸고는 이 곳에 절을 중창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이산의 이름을 명봉산이라고도 불리어 진다.
그곳 명봉산 정상에서 배낭 둘러메고 이제는 광승 1.22 Km 방향의 동쪽으로 내려가니 금새 운동시설이 있는 장소에 도착을 한다.
그곳 운동시설을 지나 진행하니 다시 호젓한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사각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다시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광승 1.0 Km, 정상 0.22 Km, 덕지사 0.28 Km란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하고 잠시 생ㄱ가하다 직진으로 걷다보니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느낌이 들고 다시 뒤돌아 와 이정표 있는 곳에서 지도를 살펴보니 등로는 광승 1.0 Km 방향인 좌측으로 꺽어 내려가야 하는 것이였다.
긴 한숨을 내쉬고 정상 등로를 찾아 어렵게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 등로를 타고 이제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가을의 마지막 정취를 느껴 본다.
그렇게 오르니 등로는 소나무 군락지로 변하고 묘지 한기를 지나 평이한 등로를 따라 진행한다.
다시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잘 정돈된 밭이 나타나며 다시 소나무 군락지를 통해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묘지지대가 나타난다.
그 묘지지대에서 바라보는 평택시의 풍경이 아스라히 다가온다.
잠시 더 주위 조망을 즐긴 후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오르니 이정표 하나와 벤취 하나가 눈에 들어 오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 정상이 바로 110봉이다.
올라 살펴보니 덕소사 방향에서 올라 왔고 우측으로는 광승 방향이 그리고 직진의 방향으로는 어소리 방향이란 방향 표시만 되어 있다.
이곳에서 직진의 어소리 방향으로 진행하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곳 110봉 정상을 지나 전진하니 금새 다시 내리막 통나무 계단이 나타나고 그곳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많은 가족 공원 묘지가 나타나고 그 좌측 아래에는 이곳에도 역시 콘테이너 박스 하나가 서 있다.
그곳에서 묘지 지나 내려다 보니 평택과 안성간 고속도로가 빤히 내려다 보인다.
조만간 저 고속도로를 건너 진행하면 오늘 산행 날머리도 곧 나타날 것이다.
그 가족 공원 묘지는 바로 고령신공 가족 묘지처럼 보인다.
그 묘지 지대를 지나 걸어가니 금새 다시 운동시설이 갖춰져 있는 장소에 도착을 하고 잠시 살펴 보니 등로 우측으로는 무명봉 하나가 올려다 보이는데 그 무명봉을 좌측으로 우회해 진행하고 있다.
이곳 운동시설이 있는 곳에서 우측 무명봉으로 오르는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간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우마차들이 지나다녔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고 그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금새 절개지의 넓은 공터가 나타난다.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원주택용 인지 아니면 공장 부지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도로 공사인지도 모르겠다.
그 넓은 동터를 지나 벌목된 민둥의 정상으로 올라가 보지만 특별한 것이 없기에 다시 우측 하산 등로를 타고 계속 진행해 걸어간다.
민둥의 벌목봉에서 남쪽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내려가 만나야 할 거대한 신생 건물과 그 아래 아스라히 펼쳐진 서봉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조망되고 있다.
그렇게 조망을 즐긴 후 다시 벌목 민둥 봉우리를 지나 우측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니 솔잎이 양탄자처럼 깔린 부드러운 등로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해 걸어가니 눈 앞에 갑자기 넓은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 앞에는 녹색 철조망이 쳐져 있으며 그 철조망 넘어 근래에 신축된 듯한 새로운 거대 건물 한채가 앞으로 보인다.
경기는 나쁘다고 하는데도 새로운 공장은 자꾸만 늘어나며 마루금이 사라지는 현장이 안타까운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동안 임도 우측에 녹색 철망을 두고 새로 신축된 빌딩을 바라보며 걸어가니 녹색 철망이 우측으로 사라지고 시멘트 임도를 만나 내려가니 좌측에 원어소 마을을 이어주는 2차선 지방도로 위로 내려 선다.
어소리는 오래전에 큰 연못이 있어 양어를 하였다는 연유로 불린 지명으로 원어소리와 구억, 설창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렴리는 덕지산을 중심으로 3개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곳 2차선 포장도로를 가로질러 건넌 후 완만한 오르막 능선을 타고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어소리 2차선 지방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는 이곳 역시 거대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살펴 보니 모두 공장지대이다.
그렇게 오르니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우측 절개지 밑으로는 거대한 공장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 차 있다.
칼등 능선을 타고 조심스럽게 진행하니 우측 절개지 아래 공장 지대에서 강아지 한마리가 끈질기게 따라오며 시끄럽게 짖어대고 있다.
그 절개지 지대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니 잠시 오르막 등로를 올라 바위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바위봉에 도착을 한다.
그 바위봉을 지나 내려가니 바로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그곳 지나 우측으로 재활용 처리장이 보이고 그 안에는 많은 재활용 용품들이 빼곡히 쌓여 있다.
그냥 진행 할 수 없어 그 재활용 처리장을 우측에 두고 좌측 밭으로 우회하니 다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올라 재활용 처리장 철문 앞으로 오른다.
그 철문 앞에서 다시 좌측 능선으로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능선으로 오르며 잠시 뒤돌아 보니 이곳 역시 거대한 공장형 건물들이 새로 빼곡하게 들어서기 시작하거 그 거대한 지역의 산들이 무참히 잘려나가고 파헤쳐져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 공장지대 우측으로는 방금 전 이 산객이 지나온 바위봉이 올려다 보이고 저 멀리 명봉산쪽 산줄기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다시 잡목을 헤치고 오르니 작은 바위가 정상을 지키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작은 바위가 있는 무명봉을 지나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벌목된 나뭇가지들이 등로 위에 나뒹굴고 어렵게 그 잡목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등로 좌측 저 앞으로 공장 건물 하나가 보이는데 살펴보니 우경테크라는 간판이 보인다.
등로는 그 우경테크 뒷편 잡목과 잡풀지대 능선으로 이어지고 잠시 후 시멘트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한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 시멘트 임도를 건너 나즈막한 잡목 능선으로 올랐다 우측 민가쪽으로 내려가야 되지만 별 의미도 없고 또 잡목이 우거져 오르기도 힘들어 그냥 이곳의 시멘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기로 한다.
시멘트 포장 임도 양쪽으로 펼쳐진 밭을 지나 도로 좌측에 나타나는 첫번째 민가를 지나자마자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처음에는 우측 민가로 들어가 길을 물으니 뒤돌아 내려가 삼거리에서 우측 도로를 타고 진행하면 금새 육교를 만날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 준다.
갈림 삼거리를 지나 내려가니 다시 갈림 삼거리 포장 도로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우측으로 도로 따라 걸어가니 금새 평택과 안성간 고속도로를 건널 수 있는 토진2교 육교가 나타난다.
그 육교 한가운데로 올라 잠시 그 아래로 지나는 고속도로 풍경을 담아 본다.
그 토진2육교를 건너자마자 좌측 밭 넘어 거대한 공장 건물 하나가 보이고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우측 포장도로를 따라 계속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하니 좌측으로 휀스가 쳐진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따른다.
그렇게 계속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전봇대가 서 있는 곳에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으로는 비포장 임도로 청북중학교로 가는 임도이지만 큰 의미가 없어 그냥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의 직진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계속 도로를 따라 진행하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의 도로를 버리고 직진의 좌측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그 도로 우측에는 거대한 공장형 건물이 서 있다.
그곳을 지나 다시 나타나는 갈림 삼거리에서는 이제 직진의 우측 도로를 버리고 좌측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는 드넓은 밭이 펼쳐져 있고 좌측으로는 담장으로 심어 놓은 나뭇가지 사이로 청북중학교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 청북중학교 정문이 보이고 곧이어 그 정문 앞으로 2차선 포장도로가 보인다.
그 도로 건너편에는 한북중학교 버스 정류장이 보이고 그곳에서 도로를 좌측으로 따라 걸어가며 서봉지맥 산행을 이어 간다.
계속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거대한 서보레미콘 공장이 나타나고 그 앞을 지나 계속 도로를 따라 걸어 가니 302번 4차선 포장도로와 만난다.
그 만나는 삼거리 우측에는 한옥집 식당과 우리부동산 입간판이 서 있다.
그곳에서 302번 지방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올라가니 도로 옆에 다시 버스 정류장이 서 있다.
계속 302번 4차선 지방도로를 타고 오르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삼거리 위에는 도로 표지판이 서 있다.
직진으로 가면 302번 지방도로를 타고 고잔과 청북 IC 방향으로 갈 수 있고 좌측으로는 오성산업단지와 현곡산업단지로 들어가는 포장도로이며 이곳 삼거리에서 약간 더 직진하면 우측으로 청북중학교로 갈 수 있다는 도로 표지판이다.
이곳 갈림 삼거리에서 도로를 건너 좌측의 오성산업단지와 현곡산업단지 쪽으로 90도 꺽어 들어가며 진행을 한다.
그 도로를 타고 계속 걸어가니 도로 양쪽은 완전 산업단지이다.
도로 건너편에는 한국알박주식회사 공장이 보이고 조금 더 진행하니 도로 좌측에는 TKD 공장도 보인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도로 좌측에 아반스트레이트코리아 공장이 보이고 그곳을 넘자 저 멀리 직선으로 뻗어 있는 4차선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그 도로를 타고 계속 걸어가니 오성산업단지 버스 정류장을 지나고 도로 우측으로 현성 MTS 와 좌측으로 토진리와 양교리 그리고 직진으로는 39번 안중과 40번 북 IC방면으로 출입금지 도로 표지판이 걸려 있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 옆에 송전탑 한가 서 있는데 다가가 살펴보니 지도에도 나와 있는 40번 송전탑이다.
그곳을 지나 조금더 걸어가니 사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다시 만나는 사거리 위에 도로 표지판이 붙어 있다.
직진으로는 청북지구가 그리고 좌측으로는 39번 지방도로를 통해 아산과 안중으로 갈 수 있고 우측으로는 39번 도로를 타고 수원과 화성 그리고 40번 도로를 타고 청북 IC로 갈 수 있다는 표시가 되어 있다.
그곳 도로사거리에서 좌측으로 틀어 39번 지방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에 오뚜기 식품 공장이 서 있다.
이곳에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하고 남아 있는 구간은 짧기 때문에 옆지기와 함께 내려 와 산행 후 이곳 평택호 주변에서 해물 칼국수 하나 먹고 올라가기로 한다.
배낭 정리하고 옷도 갈아입지 못한채 스틱을 접어 넣으니 마침 버스 한대가 오고 신호등에 걸려 정차해 있어 다가가 물어 보니 평택역까지 간다며 타라고 한다.
아주 편안하게 홀로 그 버스에 올라 번호를 확인하니 평택버스 320번이다.
시골마을을 돌고 돌아 어렵게 50여분을 걸려 평택역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6시가 다 된 시간이다.
평택역으로 가 잠시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지하철에 올라 수원역을 거쳐 관악역에 도착을 하니 오후 7시가 넘어가고 있다.
그렇게 또 서봉지맥 한구간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집에 복귀하니 아팠던 오른쪽 다리가 조금은 편안해지고 생각보다 빨리 깊은 잠에 빠져 든다.
이제 남아 있는 구간은 3시간이나 4시간이면 완주할 것이다.
언제 다시 오를 수 있을지 기약은 없지만 그래도 조만간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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