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강원도 동해시, 정선군과 삼척시 일대 백두대간 마루금
산행일자 : 2013년 04월 12일과 13일 (무박 2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 종일 태풍같은 강풍으로 새벽엔 추웠으나 아침부터 산행하기 좋았던 날씨
산행온도 : 영하 02도에서 영상 12도
산행인원 : 3450온누리산악회 22명 (40인승 백두대간 전용 버스)
산행거리 : 약 28.60 Km
산행시간 : 총 13시간 45여분(04 : 00분에서 17 : 45분까지)
산행코스 : 백복령-225번 송전탑-이정표(백복령 1.30 Km와 원방재 5.79 Km)-이정표(백복령 2.40 Km와 원방재 4.69 Km)-987.2봉 삼각점-이정표(백복령 3.5 Km와 원방재 3.59 Km)-1022봉 헬기장-늦은 일출-노송지대-전망바위-820봉-원방재-상월산(970.3봉)-헬기장 삼각점-아침식사-이기령-898봉-바위너덜지대-1142.8봉 헬기장-전망바위-갈미봉(1260봉)-암봉-고적대 삼거리-고적대(1353.9봉)-암릉-연칠성령-이정표(연칠성령 0.5 Km와 청옥산 0.8 Km)-청옥산(1403.7봉)-문바위재 이정표(청옥산 1.1 Km와 두타산 2.5 Km)-박달재 이정표(두타산 2.3 Km와 청옥산 1.4 Km 및 무릉계곡관리사무소 5.6 Km)-1156봉 이정표(박달령 0.9 Km와 두타산 1.3 Km)-두타산(1355.2봉)-1243봉-통골재-1024봉 삼각점-명주목이-옛고개길-햇댓등 우회-댓재(424 2차선 지방도로)-산행종료
오랫만에 장거리 산행의 고통과 자연이 주는 희열을 가슴에 담았던 시간들
늘 홀로 기맥과 지맥 산행을 즐기지만 가끔은 함께하는 산친구들이 그리워 그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가져 본다.
마침 백두대간 공지란에 백복령에서 댓재까지의 공지가 올라오고 7년전 백두대간 산행에 처음으로 입문했으며 6년전 백두대간을 리딩하며 폭설속에 정선군 임계면쪽 산판도로를 오판하여 19종주대원들의 목숨을 건 19시간의 대탈출로 생사의 기로에서 벗어났던, 이 산객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구간이기에 다시 백두대간 종주대들을 따라 그 추억을 더듬어 보고자 나서 본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생각지도 못하게 출발하려던 버스에 이상이 생기고 결국 다른 버스로 교체하여 출발하니 그렇잖아도 산행길이가 길어 평소 만나는 시간보다 한시간 앞당겨 밤 10시에 만나 결국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어렵게 출발할 수 있었다.
어렵게 도착한 백복령 고갯마루는 태풍보다도 더 강하고 심하게 불어대는 차가운 밤바람으로 인해 버스 밖으로 나갔다 다시 들어오는 고통을 느낀 후 참으로 어렵게 새벽 4시 정각에 백복령 이정석 건너 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들어가며 길고도 긴 하루를 시작한다.
고적대에서 바라 본 가야 할 청옥산과 두타산 줄기가 아직도 하얀 잔설을 덮고 아름답게 산객을 부르고 있다.
하지만 아름답게 보이는 저 능선을 타고 또 얼마나 큰 고통을 느껴야만 저 멀리 두타산에 올라 이곳을 바라 볼 수 있을지 걱정도 되는 시간이였다.
어렵고 힘들게 도착한 백복령 고갯마루엔 한겨울 삭풍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여름 태풍급 바람이 불어 오랫만에 찾은 산객의 가슴을 더욱 차갑게 만들고 있다.
백복령에 대한 자료를 찾다 보니 참으로 많은 이야기와 유래 그리고 전설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백봉령(780미터)은 삼척에서 소금이 넘어오는 소중한 길목으로 정선 사람들에게는 매우 소중했던 고개다.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형도에는 엎드릴 복자를 써서 백복령(白伏嶺)이라고 되어 있으나 이 이름은 원래 이름이 아니고 일제에 의해 바뀐 이름이라고 한다. 옛 기록을 살펴보면 대동여지도에는 백복령(白福嶺)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택리지에는 백봉령(白鳳嶺)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흰 봉황이라는 뜻이다. 또한 산경표에는 일백 백(百)자를 써서 백복령(百福嶺)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증보문헌비고에는 백복령(百福嶺)과 백복령(百複嶺)을 혼용하면서 희복현(希福峴)이라는 다른 이름도 전하고 있는데 복을 바라는 고개라는 뜻이다.
이렇듯 백봉령은 여러 개의 이름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이름이 상서롭거나 복을 바라는 의미의 이름이지만 현재 공식적으로 쓰고 있는 이름인 백복령(白伏嶺)은 그 뜻이 사뭇 다르다. 백기를 들고 항복하는 고개라는 정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국립지리원이 아직도 이 고개의 이름을 백복령(白伏嶺)으로 쓰고 있다면 마땅히 바로 잡아야 할 일이다. 다만 현지의 이정표에는 모두 옛 이름인 백복령 대신 백봉령으로 쓰여 있는데 백봉령이라는 이름은 하얀 봉황의 고개이니 그렇게 사용되고 좋겠지만 원래의 뜻을 찾아 올바르게 사용되는 지명 이름이였으면 하는 바램이였다.
다만 그곳 백복령 고갯마루의 표석은 백복령의 유래를 이렇게 소개한다.
택리지에서 백복령으로 신동국여지승람편에는 다른 한자의 백복령 일명 회복재라 하였으며 현재 사용하는 백복령은 복령이라는 약초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흰 복령이 많이 자생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1961.4.22 건설교통부 고시에 백복령으로 고시하였다.
1937년 42번 국도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영동과 영서를 잇는 교통로로써 옛 조상들의 애환과 숨결이 묻어 있는 길이다.
정선에서 강릉이나 동해로 넘어가는 42번 지방도로에서 우측인 남쪽의 완만한 오르막 경사지를 타고 오르니 금새 225번 송전탑을 통과해 벤취 2개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전망처에 도착을 하지만 강한 바람에 등로 좌측의 동해쪽 야경만 살짝 눈에 들어 올 뿐이다.
강한 바람에 사진을 담을 생각조차 못하고 그곳 정상 전망처를 내려가기 바쁜 새벽인데 조금 더 진행하니 금새 백복령에서 1.3 Km를 진행해 왔다는 이정 안내판이 반긴다.
진행에 큰 어려움은 없지만 강한 바람으로 인해 실제 기온보다 체감온도는 훨씬 더 차갑게 다가오고 간간히 등로에 남아 있는 잔설과 등로 주위에 자생하고 있는 키 작은 산죽이 어둠속에 발길을 옮기는 산객의 친구가 되어 주는 시간이다.
어둠속에 잘 구분되지도 않는 등로를 타고 몇개의 나즈막한 봉우리를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다 보니 다시 백복령에서 2.4 Km 진행되어 왔다는 이정판을 통과해 다시 한동안 걷다보니 금새 987.2 봉의 삼각점과 그 옆 이정판을 만나는데 이제 백복령에서 3.5 Km 지나 왔다는 안내판이다.
한시간 10분만에 3.5 Km를 걸어 왔으니 태풍급 강바람으로 인해 그저 온몸에 땀방울을 만들기 위해 바삐 발걸음만 옮겼음을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춘4월인데 등로엔 아직도 겨울을 보내지 못하고 이렇게 그 끝자락을 붙잡고 늘어진다.
이제 그만 겨울은 보내고 새싹을 반기는 봄을 맞이하는 시간이길 바래 본다.
그렇게 한동안 걷다보니 어느새 1022봉 헬기장에 도착을 하는데 그 가장자리엔 백복령에서 5.0 Km 걸어 왔다는 이정판이 서 있다.
잠시 서성 거리며 쉬어 보지만 강한 바람으로 인해 그 누구도 배낭을 벗으려 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좌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 앞 저 멀리 잡목 사이로 갑자기 늦은 일출이 시작되어 배낭 벗고 DSRL 카메라를 꺼내 몇장 담아 본다.
한동안 그렇게 무너져 내리는 내리막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폭신한 낙엽 등로가 열리고 잠시 사색을 하듯 걷다보니 저 멀리 아름다운 금강송들이 산객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옛날 생각에 사진 한장 담다 보니 이곳이 바로 7년전 처음 백두대간 산행을 하면서 함께 했던 산친구들과 어설픈 영화를 찍었던 장소였다.
그 산친구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며 또 산행은 여전히 즐기고 있는지 궁금해 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멋진 금강송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꺽어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862봉 넘어 등로 좌측 소나무 가지 사이로 상월산이 올려다 보이고 조금 더 진행하니 등로 좌측에 전망바위가 서 있다.
마침 앞서가던 산친구 한분이 그 전망바위에 올랐다 내려오며 조망이 좋다고 자랑을 하시고 올라 상월산을 올려다 보니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 전망바위에서 내려 와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 선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820봉과 810봉을 넘어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소나무 군락지에 잘 벌목된 장소가 나타난다.
평탄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금새 원방재 안부에 도착을 하고 등로 우측 시멘트 임도에서 식사를 하던 추억에 잠시 그 콘크리트 임도로 나가 본다.
원방재는 동해시 관촌 마을에서 정선군 임계면 가옥리를 잇는 고개로서 고개를 사이에 두고 가목리에는 부수베리 계곡이 그리고 관촌마을에는 서학골 계곡이 흐른다. 서학골이라는 이름은 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던 데서 비롯했는데 서학골은 사악골 또는 삿골로도 부른다.
원방재에 대한 유래를 어렵게 찾아보니 원방은먼 지방 또는 먼 곳을 뜻 하는 것으로 보아 먼 거리의 고개를 힘들게 넘나들던 사람들의 애환이 깃든 고개 이름이란 뜻이 보인다.
여기서 부수베리는 부싯돌을 벼리는 곳이라는 말과 뾰족한 부싯돌 마을이라는 이야기가 공존한다고 한다.
이기령에서 부터 부수베리 마을까지는 약 9km의 임도로 이어진다고 한다.
잠시 원방재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진행하지만 오늘 이 산객에게는 맥 잇기 산행보다는 옛날 추억을 찾아 그저 장거리 산행을 즐긴다는 표현이 맞는 시간일 것이다.
자주 홀로 산행을 즐기다 함께하는 산행을 하다 보니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걸음 두걸음 오르다 보니 등로 좌측으로 안전목책이 서 있는 전망지대에 도착을 하고 잠시 지나온 백두대간 마루금을 뒤돌아 보니 환상적이다.
원방재를 지나 810봉과 820봉이 길게 올려다 보이고 전망바위도 보이는데 그곳을 타고 오르면 좌측으로 꺽어 저 멀리 1022봉의 헬기장까지 시원하게 조망되고 있다.
계속 등로 좌측에 낭떨어지 위 안전 목책을 타고 천천히 오르니 아름다운 지나온 대간 마루금이 이 산객을 뒤따라 오고 있다.
그렇게 약간의 땀방울을 흘리며 오르지만 너무나 강렬한 태풍급 바람으로 인해 많은 땀방울은 흐르지 않는다.
잠시 더 오르니 평이한 등로가 열리더니 다시 가파라지고 곧이어 벤취와 고사목이 있는 상월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이곳 상월산 정상 이정판이 있는 곳은 백두대간 종주대들이 알고 있는 정상으로 지도 상 상월산 정상은 안부 하나를 내려갔다 올라 만나는 헬기장이 정상이다.
하지만 상월산에 대한 자료를 찾지 못해 아쉬운 시간이다.
이제 상월산도 다섯번째 오르는 시간이니 생각보다 많이 올랐다고 생각되지만 다시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예전 함께 산하를 누볐던 산친구들을 잠시 생각하고 다시 우측으로 크게 꺽여 안전목책과 로프가 달려 있는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멋지게 솟아 있는 암봉이 나타나고 그 정상에서 키도 크지 못하면서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작은 소나무 한그루가 눈에 들어 와 잠시 바라보고 진행을 한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벤취 하나가 보이는 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그 등로를 타고 힘들게 오르니 넓은 헬기장이 보이고 그 좌측 진행 방향으로 임계 423이란 삼각점과 상월산 970봉이란 정상 이정판이 다시 서 있다.
이제 진행 방향으로 이기령이 1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갑기만 한 시간이다.
이곳이 지도상 나타나 있는 실질적인 상월산 정상이다.
다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바람이 잦아진 넓은 공터에 앞서 진행한 선두팀이 아침상을 차리고 기다리고 있고 그곳에 합류해 준비한 도시락으로 맛난 아침식사를 즐겨 본다.
후미까지 모두 도착해 40여분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배낭 둘러메고 출발을 하니 아기자기한 등로엔 붉은 적송 소나무들이 빼곡히 자라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렇게 진행하니 금새 이기령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도 옛날 추억을 더듬으며 잠시 쉬어 가 본다.
처음 백두대간 산행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삼복 더위에 댓재에서 이곳 이기령까지 따라 나섰다가 그 백두대간 마루금에 반하고 또 함께 산행을 하면서 배려와 느림의 미학을 체험한 이후로 장거리 산행에 빠져 지금까지 올랐던 추억을 담아 보는 시간이다.
해발고도 810미터인 이기령은 동기의 순수 우리말로 구리터가 있던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구리터의 중간 자음인 ㄹ이 탈락되어 구이터가 되고 구이가 귀로 축약되어 귀이로 표기하였다고 전해진다.
동해시 관로동과 정선 부수베리를 잇는 고갯마루로서 진행 방향 좌측으로는 석연암이 있는 동해시 이기동 마을이 있는데 이 구간이 너무 길어 잘라 진행을 할 때 산행 들머리나 날머리로 이용되기도 하는 마을이다.
이기령을 지나 계속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등로 주변에 자생하고 있는 멋진 소나무들이 산객의 피로를 풀어 주고 계속 앞으로 걸어가니 이기령에서 1.1 Km 진행해 왔고 고적대까지 5.5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반겨 준다.
나무 벤취 2개가 있는 갈림 삼거리에서 좌측 직진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돌로 등로를 만들어 놓은 지대도 지나 서서히 낙엽진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그렇게 한동안 오르니 자작나무를 식재한 장소에 도착을 한다.
진행해야 할 1142.8봉이 자작나무 가지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다시 계속 오름짓을 이어가다 뒤돌아 보니 지나온 상월산과 1022봉 전망대쪽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다시 계속 이어지는 식재된 나무 지대를 타고 오르니 1142.8봉 오르막 등로엔 아직 쌓인 눈이 녹지 않아 한겨울 눈 산행을 연상시키고 그 1142.8봉을 좌측에 두고 우측 사면 등로로 우회를 하고 있다.
1142.8봉을 들리지 못해 아쉽지만 눈이 많이 쌓여 오르고 싶어도 오르지 못함을 핑계 삼아 진행하니 이제 바위 너덜구간이 나타나는데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고 있다.
예전에 몇번인가 지나면서 바위 너덜구간은 기억이 나지만 이렇게 길게 이어지고 있음에 잠시 놀랐던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 바위너덜 구간을 지나 오르니 계단으로 만들어진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는데 이제 등로 좌측 저 멀리 두타산이 조금씩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청옥산과 고적대가 보이지 않으니 아직은 정확한 등로를 머릿속에 그릴 수 없음이 아쉬운 시간이다.
힘들게 그 나무 계단을 타고 오르니 능선에는 아직도 무릎까지 빠지는 눈이 쌓여 있고 조심해 우회하며 그 눈 쌓인 곳을 통과하니 등로 우측으로 바위 전망대가 다시 나타나고 그 옛날 산친구들과 즐겼던 추억을 되새기며 앞으로 올라야 할 영원히 잊지 못한 갈미봉 정상부를 담아 본다.
그 전망바위를 내려 와 다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는 우측 사면길로 이어지고 그곳엔 아직도 한겨울 정취 그대로이다.
깊은 눈을 헤치며 선두에서 러쎌을 해 주고 그 발자국만 뒤따라 가는 산친구님들의 모습이 아름다워 한장 담아 본다.
햇볕이 따스하게 스며드는 양지쪽엔 제비꽃이 환하게 웃고 있는데 이렇듯 북사면은 아직도 봄이 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듯 보인다.
언제나 따스한 봄날은 올 수 있을지...
그 쌓여 있는 눈을 헤치며 앞으로 전진하니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엔 나무 계단이 나타나고 힘들게 그 오르막 등로를 타고 한발 두발 오르니 드디어 갈미봉 정상이다.
등로 우측으로는 괘병산(수병산)가는 방향 이정표가 서 있다.
5년전 백두대간 종주대를 이끌고 1미터 이상 쌓여 있는 등로를 타고 어렵게 러쎌을 하며 댓재에서 이곳 갈미봉까지 진행한 후 버스 기사와 통화에서 잘못된 정보를 전달 받아 등로 우측인 수병산 방향인 임계의 산판도로로 내려갔다 약 8시간을 헤맨 후 총 산행시간 19시간을 채운 후 어렵게 임계의 소방대원과 경찰들까지 동원되고서야 무탈하게 날머리로 탈출했던 말 그대로 생사를 넘나들던 곳이기에 아마도 이 산객 평생에 잊지 못할 한곳으로 남아 있는 봉우리가 되였다.
옛날 생각에 잠기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물 한모금으로 목마름을 달랜 후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갈미봉(葛味峰 1260미터)은 전국적으로 같은 이름이 많이 있는 산으로 모두 같은 어원으로 쓰인 것으로 보이며 갈자는 나누다와 미자는 산을 뜻하니 두 개의 봉우리를 말한다.
갈미봉이란 순수한 우리말로서 봉우리가 두 개로 갈라져 있는 산이라고 하는데 높은 봉우리에 갈미봉이라 붙였고 수병산과 함께 두 개의 봉우리를 이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수병산(괘병산) 이정표도 있어 잠시 수병산까지 다녀올가 생각해 보지만 눈이 깊게 쌓여 있어 오늘은 옛날 추억을 더듬은 것으로 만족하는 시간이다.
갈미봉을 지나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이곳은 아직도 한겨울 심설산행을 방불케 한다.
조심하며 등로 좌측의 암릉과 절벽을 내려다 보며 진행을 하니 잠시 잡목들이 사라지며 저 멀리 이제부터 올라야 할 청옥산과 두타산이 아주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
부드럽게 펼쳐진 두 봉우리가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오는 시간이지만 그곳을 넘어 댓재로 내려가는 등로는 또 얼마나 길고 먼지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하고 있는듯 하다.
그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 찾아 떠나는 여행같은 기분이라고나 할련지.
다시 암봉을 지나니 등로는 우측 사면 우회 등로로 이어지는데 그곳에도 발목까지 빠지는 눈이 덮혀 있다.
산우님들과 즐겁게 담소 나누며 천천히 통과하니 사람 얼굴을 닮은듯한 바위가 나타나고 잠시 후 바위와 침엽수가 너무나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절벽을 이루고 있는 장소에 도착해 잠시 사진 몇장 남겨 본다.
늘 이 구간을 지나며 많은 사진을 남겼던 곳인데 오늘도 역시 많은 사진으로 셔터 누르기 바쁜 순간이 되였다.
그렇게 즐기며 천천히 많은 사진을 담다 보니 어느새 고적대삼거리 이정표에 도착을 한다.
등로 좌측으로 무릉계곡관리사무소까지 6.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와 거리 표시가 먼 옛날 고통속에 눈을 헤치며 내려갔던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눈 덮힌 무릉계곡이 왜 그리 머릿속에 맴돌며 그곳으로 인도를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흠뻑 젖을 정도로 힘들었던 추억이였다.
고적대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진행하니 등로 좌측에 조망처가 보이는데 잡목들로 인해 들어가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잡목을 헤치며 들어가 보니 진행해야 할 고적대 오르막 등로와 그 끝자락에 두리뭉실한 고적대가 바로 코 앞이다.
저 청옥산에서 오를 땐 늘 뾰족하게 암봉으로만 기억하였는데 오늘 이곳 갈미봉쪽에서 진행하며 올려다 본 고적대는 일반 육산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여 신기하게 올려다 본다.
잠시 더 내려가니 안부를 지나 이제부터 고적대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오르다 바위 위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온 마루금이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등로 좌측으로는 절벽단애가 많은 암릉들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칼날 능선처럼 보이는 마루금 곳곳엔 아직도 하얀 잔설이 남아 이곳 백두대간 마루금엔 봄이 올려면 시간이 더 필요함을 알려주고 있다.
등로 좌측으로는 무릉계곡과 그 끝자락에 동해바다가 보이지만 박무로 인해 동해바다는 사진으로 담기지 않는다.
다시 많은 눈이 쌓여 있는 등로를 타고 어렵게 오르니 드디어 고적대 정상에 올라서지만 갑자기 불어대는 강풍으로 인해 몸조차 가누기가 벅차다.
한동안 바람과 시름하며 멋진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본다.
고적대(高積臺)는 정선군과 삼척시 그리고 동해시의 분수령을 이루는 산으로 기암절벽이 대를 이루어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수행하였다고 전해지는 봉우리로서 동쪽으로 아름답게 이어진 청옥산과 두타산이 아울러 해동삼봉이라 일컬어지며 신선이 산다는 무릉계곡의 시발점이 되는 명산으로 높고 험준하여 넘나드는 사람들의 많은 애환이 서린 곳이다.
동쪽으로 흐르는 수계는 전천으로 흘러 들고 북쪽으로 흐르는 수계는 임계천으로 흘러가며 남서쪽으로 흐르는 수계는 골지천으로 각각 흐르는데 동쪽 비탈면은 급경사를 이루나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무릉계곡으로 이어져 경관이 수려하고 서쪽 비탈면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동고서저의 전형적인 지형을 이루고 있다.
고적대 정상에서 남서쪽을 바라보니 정선군 임계면과 하장면의 경계를 이루는 중봉산 줄기를 타고 당곡천이 흐르는 골짜기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청옥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 저 멀리 망지봉이 우뚝하고 그 넘어 혹시나 하고 찾아 보지만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35번 지방도로는 산줄기에 막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멋진 조망을 기대해 보지만 역시나 기온이 오르면서 박무로 인해 생각보다 조망은 좋지 못하고 제한된 시계만 보여주고 있어 조금은 아쉬운 시간이다.
남동 방향으로는 이제 타고 내려가야 할 청옥산과 저 멀리 두타산이 아스라히 펼쳐져 있고 손에 잡힐듯 다가와 있지만 그곳까지 가 이곳을 바라볼 수 있으려면 또 얼마나 많은 땀방울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가슴만 답답해져 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렇게 바라보며 옛 추억에 젖어들고 아름다운 산그리메를 가슴에 담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몇번이나 더 이곳에 올라야 그 그리움이 채워질 수 있을지...
너무나 강하게 불어 오는 태풍급 바람으로 인해 고적대에서 충분히 즐기지도 못하고 내려가니 다시 이어지는 암봉이 앞길을 가로막고 몸도 가누지 못하는 강풍속에 조심 또 조심하녀 게걸음으로 내려가 본다.
한동안 암릉을 타고 내려가니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엔 안전목책과 로프가 달려있고 그 로프에 의지하며 내려가니 드디어 평범한 등로에 도착을 한다.
잠시 내려온 가파른 등로를 올려다 보니 아찔할 정도로 경사도가 심하고 바위들이 많이 산재되어 있다.
이제 간간히 낙엽이 깔려있기도 하고 잔설이 남아 있다 녹으며 질척ㅇ기도 하는 등로를 타고 무심으로 걸어 보는 시간이다.
등로 좌측으로는 계속해서 무릉계곡이 웃으며 들려달라 애원하고 그 끝자락 저 멀리 푸른 동해바다가 보이지만 박무로 인해 사진에 담기에는 역부족이다.
다만 그 북사면에는 아직도 무릎까지 빠지는 눈이 쌓여 있어 바람과 눈과 온도가 만들어 준 자연의 고귀한 선물을 마음껏 즐겨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걷다 보니 산림욕 안내판도 지나고 고적대와 연칠성령을 각각 0.5 Km 지나왔고 남겨 뒀다는 이정표를 지나 오르다 바위에서 뒤돌아 보니 잡목 사이 저 멀리 고적대가 멀어지고 있다.
다시 그림같은 낙엽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마루금을 걸어가니 다시 백두대간 등산로 안내판이 서 있고 언덕 하나를 넘어가니 이곳은 지금까지의 눈밭과는 완전히 다른 낙엽 세상이 열리고 있다.
가을 낙엽 산행을 연상시키는 그 폭신한 등로를 타고 잠시 더 걸어가니 작은 돌탑 하나가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조선조 인조 원년인 1623년 택당 이직이 백두대간 마루금 우측의 중봉산 단교암에서 은퇴하였을 때 이곳에 올라 한양의 임금을 사모하며 바라 본 곳이라 하여 망군대라고 부르게 되였다는 곳이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선두 중간 모두 잠시 쉬며 사진을 찍고 있는 연칠성령에 도착해 한숨 크게 쉬어 본다.
이곳 연칠성령은 백봉령과 댓재의 한중간에 위치한 고개로서 청옥산과 두타산 산행 후 하산을 시작하는 기점으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이다.
연칠성령은 빼어난 여러 봉우리인 일곱개의 별들을 연결하는 고ㄱ라는 뜻이다.
동해시 삼화동의 무릉계곡에서 문간재를 넘어 호계를 지나 막다른 골짜기에 들어서면 하늘로 올라갈 듯한 가파른 산길이 있어 삼척시 하장면 중봉리 당골로 넘어가는 산마루가 바로 연칠성령이다.
예전에 이 고개를 넘나들기가 너무나 험난하여 난출령이라고 불려졌다고도 한다.
이곳에서 잠시 쉬며 처음으로 단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연칠성령에서 쉰 다음 출발하면서 잠시 등로 좌측으로 가 보니 우측 저 멀리 갈미봉에서 고적대쪽으로 이어진 칼날 등로가 너무나 아름답게 하늘자락에 걸려 있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해 연칠성령에서 0.5 Km 지나 왔다는 이정표를 지나 등로 좌측을 바라보니 무릉계곡 지나 저 멀리 동해시의 쌍용양회공업 시멘트 공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곳 지나 희미하게 동해바다가 눈에 들어 온다.
동해 바다에는 몇척의 배가 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오지만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고 그렇게 즐기며 쉬며 진행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살아천년 죽어천년이라는 주목 한그루가 너무나 도도하게 눈속에 푸르름을 유지하며 서 있다.
그 고귀한 생명력에 감탄하며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제부터 가파라지기 시작하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주목 두그루가 형제처럼 붙어 모진 풍파 헤치며 푸르게 자라고 있고 그 아름다운 모습을 눈에 넣는 것과는 달리 입속에선 헉럭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토해지고 있다.
그렇게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를쯤 드디어 청옥산 정상에 도착해 많이도 변해버린 정상의 이곳 저곳을 사진에 담아 본다.
청옥산dms 해발고도 1403미터로서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등을 빚으며 동해안을 따라 남동쪽으로 내려 가다가 동해지방 해안가에 이르러 솟아오른 명산이다.
두타산과 함께 사방에 드리운 능선과 고개를 끼고 있으며 짙푸른 동해를 손아래로 굽어보고 있다.
이 산은 여러 등산로와 유적지가 있어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하는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두타산과의 거리는 약 4 Km정도여서 일찍 서두른다면 두타산과 청옥산을 함께 오를수도 있다.
두타산 북릉에는 두타산성이 있고 바위가 좋아서 오르기엔 안성마춤인 코스이다.
상대적으로 두타산에서 청옥산에 이르는 코스는 부드럽고 완만하여 하산로로 이용하는것이 좋다.
청옥산까지 종주한후 연칠성령이나 학등을 이용하여 하산할경우 거리도 약 20 Km나 되고 소요시간도 대략 9시간정도가 소요될걸로 생각된다.
산이 워낙 크고 깊기 때문에 눈이나 비가 많이 올때는 삼가하는 편이 좋다.
한동안 청옥산 정상에 머물며 남아 있는 간식도 나눠 먹고 많은 사진도 담은 후 이제 진행 방향으로 헬기장 좌측으로 나 있는 두타산을 향해 청옥산과는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눈다.
청옥산을 지나자 마자 곧바로 학등 이정표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이제부터 안전목책과 로프가 달려있는 길고도 긴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한다.
맥 잇기 산행을 하다 가끔 만났던 태백과 신선님이 붙여 놓은 응원 이정판을 지나고 고적대에서 3.1 Km 진행했다는 이정목을 만나 전진하니 문처럼 생긴 바위라해서 붙여졌다는 문바위재를 지난다.
문바위재를 사진에 담고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연칠성령에서 2.5 Km 지나 왔다는 이정목이 반기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박달재 이정표가 나타난다.
지도에는 박달령인데 이곳 이정표에는 박달재라 적혀있어 잠시 헷깔리지만 같은 지명 이름인 것을 알기에 그 유래를 잠시 더듬어 본다.
박달재 또는 박달령은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과 동해시 삼화동을 넘나 들던 고개이다.
박달은 밝달에서 온 말로 밝은 광명을 비추는 높고 큰 산을 의미하고 달은 산과 들을 뜻하는 말로 청옥산과 두타산을 합하여 광명을주는 맑고 큰 산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청옥산과 두타산 두 산을 연결하는 안부를 박달령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박달재를 지나 이제 키 작은 산죽이 반겨주는 부드러운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잠시 잡목이 사라진 틈을 타 지나온 청옥산을 올려다 본다.
벌써 청옥산은 저 멀리 멀어지고 이제 오늘 산행도 얼마남지 않았음을 직감적으로 느끼지만 앞에 거대하게 버티고 서 있는 두타산 오름길이 쉽지 않기에 약간의 걱정도 생기는 시간이다.
키 작은 산죽이 등로 양쪽에 자라고 그 위로는 낙엽진 잡목이 앙상한 가지를 그대로 드러낸채 서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등로를 타고 걸어가는 시간은 그저 시간이 이대로 멈춰주길 바랬던 시간이기도 하다.
한동안 무심으로 걷다보니 등로 옆에 청옥산에서 벌써 2.2 Km 내려 왔다는 이정목이 서 있고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발달골로 이어지는 골짜기에 수많은 암봉들이 아름다운 산세를 이루며 무릉계곡으로 흘러 내리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기에 잠시 발걸음 멈추고 쉬어 간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천천히 홀로 자연을 음미하며 걷다 보니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 박달령에서 0.9 Km 진행해 왔고 이제 두타산 정상까지는 1.3 Km 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 하나가 보인다.
사진 한장 남기고 내려가니 잡목 사이로 이제 마지막으로 올라야 할 거대한 두타산 정상이 힘들지만 어서 오라 손짓하고 있다.
잡목으로 가려져 있지만 그 위용만은 대단함을 가슴으로 느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니 이제부터 등로 좌측으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안부를 지나 본격적인 두타산 오르막 등로가 시작되고 있다.
이제 마지막 봉우리란 희망과 그 희망을 만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오르막이 교차하며 홀로 천천히 오르는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서서히 피로도가 쌓이기 시작하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쳐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참을만 하다.
오랜만에 장거리 산행을 즐기며 고통을 느끼기 위해 달려왔던 시간이기에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 되어 버렸다.
한동안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작은 공터가 보이고 그곳에 들어가 쉬고 있는 사이 후미조가 모두 도착을 해 마지막 간식을 나눠 먹고 ㅊㄹ발하기로 한다.
여전히 좌측 아래로는 무릉계곡이 반겨주지만 오늘은 그곳이 목적지가 아니기에 그저 가슴으로 담아 보는 풍경이다.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발길 돌려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박달령에서 1.6 Km 올라 왔고 두타산 정상까지는 이제 0.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희망과 절망감을 동시에 안겨 준다.
두 다리에 전해 오는 묵직함을 느끼며 그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올라서니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는 청옥산과 고적대가 아련히 멀어져 간다.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햇살을 받아 더욱 고혹스럽게 다가오는 마루금이 환상으로 남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휴식도 끝내고 다시 남아 있는 깔딱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드넓은 공터로 이뤄진 두타산 정상에 올라 마음속으로 야호를 외쳐 본다.
이제 네번째 오르는 두타산, 한여름 폭염과 눈이 1.5미터 이상 쌓여 저 두타산 정상석의 2/3가 눈속에 파묻혀 있던 시절 올랐던 추억이 아련히 떠 오르며 함께 산행을 즐겼던 산친구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이곳 저곳 다니며 몇장의 사진을 담은 후 잠시 두타산에 대해 생각해 본다.
두타산은 부처가 누워있는 형상으로 박달령을 사이에 두고 청옥산과 마주하고 서 있는데 울창한 수림과 기암절벽에 노송이 뿌리를 내려 산세가 수려한 두타산은 강원도 국민관광지 1호로 지정돼 있다.
두타산의 두타란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를 닦는 수행을 말하며 이는 두타산이 불교와 인연이 깊은 불교의 도량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삼화사, 관음암, 천은사가 남아 있지만 10여개의 사찰이 있다는 옛기록으로 보아 무릉계는 불교가 크게 번성했던 두타의 도량이었던 같다.
또한 동해시 삼화동에서 서남쪽으로 약 10.2 Km 떨어진 두타산은 높이는 해발 1353미터로 북쪽으로 무릉계곡, 동쪽으로 고천계곡, 남쪽으로는 태백산군, 서쪽으로는 중봉산 12당골을 품은 산이다.
이 두타산은 많은 전설과 역사를 간직한 유서깊은 산이며 두타산에서 삼화사에 이르는 3.1 Km의 계곡에는 무릉계곡을 비롯하여 두타산성, 금란정, 용추폭포, 쌍폭포와 삼척쪽으로 오십천, 천은사 등의 수많은 관광명소가 있어 등산객의 발길을 쉬어 가게 한다.
시간이 지체되어 잠시 옛 추억을 더듬고 사진 몇장 남긴 후 곧바로 고속도로처럼 뚫린 등로를 타고 댓재로 향한다.
두타산 정상을 지나 고속도로 같은 넓은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곧이어 나무계단이 간간히 박혀 있는 등로로 바뀐다.
그곳에서 등로 우측 뒤를 바라보니 저 멀리 청옥산과 고적대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등로가 머리와 가슴에 남아 추억으로 쌓인다.
앞으로는 진행해야 할 1243봉 아래 댓재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련히 다가와 있다.
그렇게 진행하니 두타산에서 1.3 Km 내려 왔고 통골까지 0.9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다시 계속되는 안전목책과 로프를 타고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내려가니 잠시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며 평이한 등로로 바뀐다.
그렇게 잡목과 소나무를 번갈아 타고 내려가니 안부에 통골재란 안내판이 서 있고 그 아래 댓재까지 3.9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눈에 들어 온다.
통골재는 목통령이라고도 부르는 안부로서 두타산에서 댓재로 내려가다 보면 만나는 잘룩한 안부 노루목이다.
거무소계곡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있는 통골하산길이 표시되어 있지만 삼척시 ㅁ로면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은 없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지형을 살펴보면 동서로 연결되는 고갯마루가 아닌 그저 산세가 낮아진 안부라고 하는 편이 맞을듯 싶은 곳이다.
이곳에서 배낭 풀어 남아 있는 간식을 모두 비우고 출발한다.
다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멋진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아름다운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댓재까지 3.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이제 댓재까지 2.8 Km 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1016봉에 올라 삼각점과 지나온 1243봉 및 두타산을 조망해 본다.
잡목으로 답답하게 내려오던 시간이 한순간 시원하게 뚫리며 가슴까지 뻥 뚫리는 기분이다.
등로 좌측으로는 삼척시 미로면쪽 풍경이 한눈에 들어 오지만 역시나 박무로 인해 그 아름다운 동해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좁은 골짜기마다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산행의 묘미를 다시 한번 느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후미까지 모두 출발했기에 사진 찍기도 접고 산우님들 따라 바쁘게 발걸음을 옮겨 보는 시간이다.
다시 거대한 소나무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는 등로를 타고 빠르게 진행하니 무명봉 넘어 댓재까지 2.2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고 다시 나즈막한 무명봉과 안부를 두어번 올랐다 내려가기를 반복하다 보니 등로 좌측 저 앞으로 오늘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햇댓등이 아스라히 다가온다.
평소같으면 웃으면서 넘던 햇댓등이지만 오늘은 70리 길을 걸어 온 이후이다 보니 저 나즈막한 햇댓등마저 가슴을 짓누르는 높이가 되어 버렸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걷다보니 이제 댓재까지 1.4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반갑고 낙엽진 사면 등로를 타고 전진하는 산우님들의 뒷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겨울과 봄 산행에서 이제 다시 가을 낙엽 산행을 연상시키는 등로를 바라보며 자연의 위대함과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이 산객만의 생각일련지...
계속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다시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자 마자 댓재까지 1.0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그런데 이곳 이정표 있는 곳에서 등로는 삼거리 갈래길로 나눠지고 살펴보니 직진은 햇댓등으로 오르는 등로인데 우측으로 90도 꺽어 낙엽송 군락지 방향으로도 몇개의 띠지가 붙어 있고 등로가 잘 나 있다.
이제서야 최근 산행 후기에서 봤던 글들이 생각나며 고민할 것도 없이 우측 90도로 꺽어 햇댓등을 우회하는 낙엽송 군락지 등로로 내려간다.
앞서 가던 몇명의 산우들도 햇댓등으로 오르다 뒤돌아 내려 와 이 낙엽송 등로를 타고 내려 왔음을 완주 후에 듣게 되였다.
댓재에서 시작할 땐 처음이기에 햇댓등으로 진행하지만 백복령에서 시작한 산객들은 거의 전부 이 낙엽송 등로를 타고 진행하고 있음을 최근 산행 후기를 통해 알게 되였다.
드디어 무탈하게 댓재에 도착해 예전에 보지 못했던 거대한 이정석 앞에서 산행 완주 기념으로 포즈를 취해 본다.
다음 산행 들머리를 확인해 보지만 올 기회가 없기에 그저 추억속으로 쌓아두는 편지와 같은 신세가 되어 버렸다.
오랫만에 당일 산행으로 28.6 Km를 걷고 나니 뿌듯해지며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새털같은 기분으로 하루를 마감해 본다.
댓재는 두타산과 덕항산을 잇는 백두대간 마루금에 있는 고갯마루로서 삼척시 미로면과 하장면을 연결하는 예로부터 삼척지방에서 하장,정선을 거쳐 서울로 가는 주요 고갯길이었다.
꼬불 꼬불 급경사의 15 Km에 이르는 도로를 차로 오르는데도 현기증이 날만큼 위험한 해발 820 미터의 고갯길이다.
대나무가 많다는 뜻에서 유래된 댓재는 일명 죽현, 죽치령이라고도 한다는데 오늘날은 4,5 Km에 이르는 댓재 옛길이 복원되어 또다른 산행길의 멋을 더해준다.
424지방도가 지나는 댓재에는 고갯마루에 넓은 공간에 휴게시설이 돼 있고 댓재의 유래를 적어 놓은 유래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댓재,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일명 죽현, 죽치령이라고 불리며 1984년 10월 지금의 도로가 개통되기까지는 영동과 영서를 넘나들던 옛 고갯길로써 보행자들의 수 많은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해발 810미터 길 옆 산신각 현판에는 두타산 산신각이라 적혀 있고 이곳 등로가 산행 들머리 및 날머리로 이용되는 길이였지만 지금은 우회 등로를 더 많이 이용하는 것 같다.
산행 후 버스를 타고 태백으로 내려가 묵은지에 늦은 저녁밥과 이슬이 몇잔 나누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고 서울로 돌아 오니 막 11시를 알리고 있다.
멀고도 힘든 시간이였지만 함께한 산친구들이 있었기에 또 이렇게 무탈하게 완주 후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이다.
다음에 다시 만나 더 멋진 산행을 꿈꾸며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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