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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맥과 중요 지맥 산행(완료)/금북기맥(금북·완)

금북기맥 마지막 제4구간 은골고개에서 용당정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2.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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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남도 서천군의 금북기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2년 09월 29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구름 끼였다 맑고 바람이 간간히 불었던 산행하기 좋았지만 약간 무더웠던 날씨

산행온도 : 영상 12도에서 영상 23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은골고개(4번 지방도로)-비포장 임도-밭-태봉산(76.1봉)-용궁전공과 광산김씨 묘지와 비석-69봉-벌목지대-안부-무명봉(75봉)-김해김공 묘지들-비포장 임도-콘크리트 임도-화성리 서해안고속도로 지하통로-시멘트 임도-좌측 비포장 임도-안부-묘지봉-태봉산(90봉)-잡목지대-사각정자-매실 과수원-구 장항선 철도-밭-벌목지대-오석산 등산로-벤취 쉼터-사각정자와 판교천 4.6 Km 이정표-이정표(화금리 500미터, 레포츠공원 750미터 및 서천여자정보고등학교 800미터)-소나무 군락지-갈림 삼거리-대나무 밭-비포장 임도-콘크리트 임도-클래시움 APT-사곡리 4차선 포장도로-기아자동차 서천점-능선진입-주 등로-통신탑 앞 쉼터-서천읍성-콘크리트 임도-갈림 사거리-비포장 임도-서천성당-세븐일레븐 편의점-선천 문예의전당-서천도서관-군사오거리 도로 표지판-군산 장항방향 2차선 포장도로-맑은 소리숲 쉼터-4번 지방도로 지하통로-611번 지방도로-푸른농원-소문난 국밥 갈림 삼거리-LPG LG 주유소-우측 능선진입-잡목지대-소나무 군락지-벤취 쉼터-나무계단-운동기구 및 이정표(남산길 입구 800미터, 황새마을 300미터 및 남산정산 1.5 Km)-묘지 및 사각정자-묘지지대-이정표(남산길입구 1.3 Km, 남산정상 1.2 Km, 계동리 200미터 및 남산리 200미터)-담양전씨 묘지-벌목지대-LG 텔레콤 통신탑 및 벤취 쉼터-나무계단과 안부-전신주 등로-바위 및 소나무 지대-남산(146.9봉, KBS 방송통신탑과 돌탑)-비포장 임도-전주최공과 배 나주나씨 묘지-이정표(남산정상 200미터, 영운산 1 Km, 봉남리 500미터 및 남산리 500미터)-소무지대-벤취 쉼터-비포장 임도-갈림 삼거리-비포장 임도-나주정공과 광산김씨 묘지-남전리 2차선 지방도로-능선진입-비포장 임도-묘지공터-잡목지대-댕골산(63봉)-서태산 갈림삼거리-묘지지대-비포장임도-대나무밭-봉남리 1차선 지방도로-비포장 임도-밭-용궁전공과 배 제주고씨 묘지-창령성공과 평해구씨 묘지-잡목지대-밭과 닭사육 비닐하우스-잡목지대-어리 1차선 시멘트 임도-묘지지대-어리(흥덕리) 2차선 지방도로-비포장 임도-폐가 2채-시멘트 임도-마서 기지국 통신탑-중태산(100미터) 삼각점-비닐하우스와 콘테이너 박스-밭-비포장 임도-시멘트 임도-옥산육교-임마누엘동산-남원양씨 묘지-장항선 철길-시멘트 임도-송내삼거리-송내교차로-21번 지방도로-4번 지방도로 지하통로-4번지방도로 위-능선진입-밀양박공 묘지-이정표(쉼터 0.2 Km와 빗그매)-벤취 쉼터와 안전 로프지대-나무계단-이정표(쉼터와 도인정사)-체육시설-전망데크-왕개산(97봉) 삼각점-이정표(도인정사와 정상 0.5 Km)-이정표(도인정사와 왕제산 0.5 Km)-이정표(왕제산 0.9 Km)-4번 지방도로 지하통로-능선진입-성주리 마을-능선진입-성주산 갈림 삼거리-보르매산 이정표(성주산 0.18 Km와 왕제산 2.0 Km)와 운동시설-비포장 임도-민가 및 무궁화 임도-원수1리 빗돌-68번 4차선 지방도로-용담체육공원-용당정-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6.00 Km (알바로 약 05.00 Km)

산행시간 : 알바한 구간 복기하며 난해한 등로 찾아 어렵게 진행하여 08시간 40분 (08시 00분부터 16시 40분까지)

교통편 : - 옆지기의 도움으로 애마 이용해 은골고개에 도착해 산행 시작

           - 옆지기 도움으로 용당정에서 애마를 이용해 시골 집으로 복귀

금북기맥이란 ???

박성태님의 산경표에 의하면 백두대간 천왕봉(1508봉)에서 시작하여 말티고개, 선도산(547봉), 상당산성, 좌구산(657봉), 보현산(481봉)을 지나 칠장산(516봉)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과 갈라지면서 한남금북정맥은 끝이 나며 이어서 금북정맥은 칠현산(516봉), 안성 서운산, 천안 흑성산(519봉), 아산 광덕산(699봉), 청양 백월산(560봉), 예산 수덕산(495봉)을 지난다.

산줄기는 예산 가야산(678봉)에서 잠시 주춤거리다 성왕산(252봉), 백화산(284봉)를 거쳐 태안반도로 들어 반도의 끝 안흥진에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산경표에 금북정맥은 금강과 별로 관계가 없는 오서산과 가야산을 경유한다는 논란이 있으며 따라서 금북정맥 백월산에서 내려서다 오서산으로 향하지 않고 직진하여 성태산(624봉), 조공산(399봉), 월하산(423봉),
월명산(544봉), 옥녀봉(380봉), 봉림산(346봉), 오석산(127봉), 남산(147봉), 서대산(104봉), 중대산(102봉)을 지나 장항 앞 바다 금강 하구에서 끝을 맺는 또 하나의 산줄기를 금북기맥이라고 부르는데 이 명칭은 공식명칭이 아니고 그냥 편의상 붙인 이름이다. 다만 박성태님의 신산경표상에는 속리산 천왕봉에서 분기하여 장항 앞바다에 이르는 산줄기를 호서정맥이라 명칭하고 백월산에서 안흥진에 이르는 산줄기를 금북기맥이라 칭하고 있어 원 산경표와는 다른 주장을 하고 있음도 알아야 할 것이다.금북기맥은 청양의 백월산에서 시작해 장항 앞바다인 금강 하구까지 이어지는 69.4 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알바한 구간에 다시 올라 깨끗하게 이어 놓으며 한가위 명절을 이용해 또 하나의 맥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마무리한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지난주 내려 와 마무리를 하고 올라가려 했던 금북기맥 산행을 대형 알바와 잡목으로 인해 끝내지 못하고 올라갔다 한가위 명절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 온 이번 주 지난번 알바로 인해 제대로 된 마루금조차 확인이 안된 구간까지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서해바다에 손을 담그니 개운하면서도 뿌듯한 마음이 추석 보름달 만큼이나 한가득이다.

다만 이곳 금북기맥의 마지막 구간은 많은 부분이 잘리고 파헤쳐져 그 맥을 제대로 잇기가 어려운 실정이라 마음이 아팠으며 또한 많은 산님들이 걸었던 길이 아니기에 잡목과 잡풀이 우거져 한여름철 산행에는 아주 부적절한 맥 임을 확인한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래도 고향 근처에 있는 맥을 이어 걸으며 조금 더 그곳 생활과 삶 그리고 주민들과 문화를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라 좋았고 더욱이 잊혀져 가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남길 수 있어 더욱 뜻깊은 산행이였음을 밝혀 두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이 금북기맥 산행을 위해 다시 내려 올 확률은 낮지만 그 기맥에서 분기한 지맥 산행을 위해서는 다시 더 내려 와 만나야 할 기회도 있을 것임을 약속하며 아쉽지만 시원하게 금북기맥 산행을 4회에 걸쳐 무탈하게 완주함을 자축해 보는 순간으로 남겨 본다.

 

 

금북기맥 산행의 막바지 구간인 왕개산에 도착해 삼각점과 지나 온 마루금을 조망한 후 시원한 식수 한모금으로 목마름을 달랜 후 체육시설이 갖춰진 장소를 지나 나무데크 전망대에 오르니 가슴 시리도록 그리워했던 금강 하구와 서해바다가 바로 발끝자락에 걸쳐있고 그 앞 좌측 저 멀리 아파트 단지 옆에 오늘 마지막 발자국을 찍어야 할 용당정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 온다.

눈물이 고일 정도로 그리움에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서서 금북기맥 마루금이 사라지는 모습을 내려다 보며 그동안 고생하며 걸어 내려 온 기억과 추억을 잠시 더듬어 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무엇이 그리 좋아 이토록 고통을 감내하며 걸어 왔는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지만 가슴으로 느끼고 눈으로 보며 귀로 들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의미를 새기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처음 맞이하는 추석이고 자식들마다 종교가 달라 차례라도 지내고 산소에 가 인사 드리려 했지만 아버님의 완곡한 부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추석날 아침 어머님 산소에 올라 인사만 드리는 것으로 결론이 나니 시골에 내려가도 탁히 할 일이 없다.

금요일 내려가 대충 집안 정리하고 토요일 새벽 같이 일어나 옆지기와 함께 시골집을 나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금북기맥 마지막 구간 산행지인 서천으로 향하는데 새벽 6시 30여분인데도 서천휴게소 부근에서 귀성 정체에 막혀 근 한시간 이상 시간을 허비하면서도 밥 한끼 못먹고 어렵게 아침 8시가 디된 시간에 지난 구간 통과한 4번 국도가 지나는 은골고개에 도착해 옆지기를 보내고 홀로 산행 준비를 해 본다.

산행 준비라고 해 봐야 스틱을 펴는 일 빼고는 아주 간단하다.

배낭속에 물 1리터와 사과 2개 그리고 윈드 자켓과 혹시 모를 비옷이 전부이다.

서해안고속도로를 건너기 전과 후의 두 태봉산에서 지난 구간 너무나 많은 알바와 길찾기로 힘들어 했기에 오늘은 서천읍성까지 그 등로를 복기하며 다시 한번 걸어 보기로 하고 이곳 은골고개부터 시작하는 시간이 되였다.

 

 

4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은골고개에서 좌측에 민가를 두고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곳 능선을 지나 잠시 더 전진하니 지난번 만났던 밭들과 그 밭 가운데에 쓰인 묘지 한기가 어김없이 이 산객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그 밭과 묘지를 지나 저 앞 능선 위에서 펄럭이는 선답자의 띠지 하나를 따라 능선으로 오르며 오늘도 길고 복잡한 등로를 찾아 또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밭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어김없이 벌목된 너부러진 나무토막들과 잡목들이 발목을 잡아 어렵게 오르고 정상 등로에서 우측 등로를 따라 태봉산으로 오른다.

정상 등로에서 약간 떨어진 나무에 붙어 있다는 태봉산 76.1봉 이정표를 찾아 주능선에서 이리왔다 저리갔다 하며 잠시 찾아 보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정상에서 약간 지나친 곳 좌측으로 나 있는 정상 등로를 따라 맥 잇기 산행에 충실해 보는 시간이다.

얼마 전 한번 지나간 곳이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진행은 하지만 찾고자 하는 이정표 하나를 찾지 못하니 아쉬움이 깊게 남겨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태봉산에서 좌측으로 크게 꺽어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다시 약간 벌목된 장소의 등로와 만나 이번에도 역시 좌측으로 꺽어 진행하니 벌목된 나무들이 너부러져 있어 산행에 방해를 주고 있다.

조심하며 그 벌목된 나무들을 헤치며 진행하니 가꾸지 않아 큰 나무들이 봉분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용궁전씨와 배 광산김씨 묘지 한기와 묘비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잠시 후 갈림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90도 꺽어 내려가는 정상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산행을 이어가 본다.

 

 

여전히 등로에 널부러져 있는 벌목된 나무들이 발걸음을 붙잡지만 한번 지났던 등로이기에 쉽게 그곳을 통과해 골짜기 같은 안부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른다.

이제 큰 나무에는 붉은 페인트로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그곳 나즈막한 정상부로 올라 이제 우측으로 크게 꺽어 묘지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니 많은 묘지들이 줄지어 있고 한기의 묘비를 살펴보니 이곳은 김해김공과 배 단양우씨 묘지가 있는 곳이다.

  

 

그 많은 묘지지대를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여전히 묘지들이 연달아 있고 그 묘지 위에서 이제부터 올라야 할 고속도로 지나 태봉산과 금북기맥 마루금을 유심히 살펴 본다.

그 묘지지대를 지나 넓은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밤나무들이 나타나고 떨어진 밤을 주워 까먹으며 걸어 본다.

밤나무를 지나 소나무 단지를 지나니 다시 T자 임도를 만나고 그 임도 우측으로는 파란 지붕을 한 큰 축사 건물도 보인다.

그곳 T자 임도에서 지난번 진행한 좌측으로 가 우측 능선으로 오른다음 서해안고속도로가 보이는 절개지에서 좌측으로 가 지난 구간 진행한 임도와 등로를 내려다 보며 어디에서 어떻게 잘못되였는지를 확인해 보지만 이곳까지는 별로 잘못된 부분이 없는듯 하다.

 

 

지난 구간 진행한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임도 좌측의 능선을 타고 올라 이곳 태월리 방향을 바라본다.

서해안고속도로는 현재 시간 오전 9시를 넘기고 있는데도 꽉 막혀 있고 그 좌측으로 살짝 보이는 시멘트 도로를 타고 진행하면 만나는 삼거리에서 고속도로 아래 지하통로를 통해 서해안 고속도로를 지나 태봉산으로 올라 헤맸던 기억이 또렷하다.

이곳에서 잠시 지난 구간 지나간 발자취를 더듬어 본 후 뒤돌아 내려가 다시 비포장 임도를 만나 이제는 화성리 방향으로 내려가 본다.

 

 

즉 김해김공 묘지들이 있는 곳에서 밤나무와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타고 내려온 비포장 임도에서 우측에 파란 지붕을 한 축사 건물을 보며 만나는 T자 임도에서 이번에는 우측으로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화성리 방향으로 내려가면 된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조금 더 내려가니 임도 우측으로 파란 축사 건물이 확실하게 보이고 이제 비포장 임도는 시멘트 포장 임도로 바뀌고 있다.

그 시멘트 임도를 타고 조금 더 내려가니 임도 좌측으로 바로 서해안고속도로가 보이는데 도로 표지판에는 4번 부여와 서천 1 Km  15번 당진과 춘장대 표시가 되어 있다.

오늘이 추석 명절 바로 전날이라 그런지 이 아침부터 고속도로 하행선은 꽉 막혀 있다.

 

 

그 시멘트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곧이어 좌측으로 서해안고속도로를 건널 수 있는 지하통로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해 고속도로를 건넌 후 다시 나타나는 시멘트 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오른다.

한동안 그 시멘트 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도로는 우측으로 휘어져 오르고 임도 우측에 쓰레기 투기 경고판이 서 있다.

그 경고판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임도 좌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갈리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이곳에서 이제 직진의 시멘트 포장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270도 꺽어 오르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능선쪽으로 진행을 한다.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임도 우측으로 묘지가 나타나고 묘지 우측 저 멀리에는 파란 그물이 쳐진 인도어 골프 연습장이 보인다.

계속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다시 묘지가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지난번 올라 무척 고생하며 왔다리 갔다리 할 때 봤던 그 묘지이다.

그 묘지를 지나 골짜기 같은 안부를 지나니 선답자들이 띠지 두어장이 한들거리고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드디어 잘 벌초된 묘지봉에 도착해 사진 한장 남긴다.

이곳 근방에서 우측 등로를 타고 내려가면 파란사각 정자를 만나는데 잡목과 잡풀이 우거져 찾지 못하고 1시간 30여분 해매였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어 헛 웃음만 나오는 시간이다.

 

 

묘지봉에서 내려 와 잡풀이 우거진 등로를 헤치며 다시 진행하니 홍성의 오서산님이 엊그제 다녀가며 띠지 한장을 달아 놨다.

그곳으로 내려가도 되지만 그곳은 잡목과 잡풀이 우거져 내려가는데 애를 먹을 것 같아 조금 더 진행하면 등로 좌측에 몇그루의 잣나무 식재 구간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우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며 능선으로 내려간다는 생각으로 진행하면 금새 뚜렷한 등로를 만나 진행 할 수 있다.

한번 큰 알바를 했던 곳이라 이렇게 쉽게 다시 찾을 수 있는 곳을 왜 그리 해매였던지...

즉 잘 벌초된 묘지에서 진행 방향으로 조금 더 진행한 다음 등로 좌측의 잣나무 몇그루 있는 곳을 지나 잡풀이 조금 덜한 곳에서 우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능선으로 내려가면 되는 길주의 구간이다.

  

 

그렇게 내려가니 등로 우측 즉 오서산님이 띠지를 붙여 놓은곳으로 내려오면 벌목된 나무들이 이리저리 너부러져 길찾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보며 내려가니 금새 뚜렷한 주 등로와 만나 아주 편안하게 내려간다.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지난 구간 그토록 고생하며 만났던 파란사각정자와 그 좌측에 걸려 있는 그네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어 본다.

그 정자 지나 바라 본 들녘은 이제 완연한 황금 들녘으로 변해가고 곧 추수의 계절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 파란 사각 정자를 지나 우측에 철조망을 두고 내려가니 철조망이 우측으로 90도 꺽어 달아나고 등로는 다시 직진으로 이어지다가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지난번에는 직진을 고집해 옛 장항선 철길로 내려가는데 얼마나 어려웠던지 이번에는 두눈 꼭 감고 무조건 좌측 등로를 타고 우회하며 철길로 내려간다.

좌측으로 꺽어 잠시 더 전진하니 우측으로 매실농장이 나타나고 그 매실과수원 우측 가장자리를 타고 내려가는데 부부 농부가 농약을 뿌리고 잡목과 잡풀을 제거하고 있다.

인사 드리고 다시 조금 더 내려가니 우측으로 키 큰 조릿대가 나타나고 곧이어 찟어진 비닐하우스와 밭이 보이더니 옛 장항선 철길 위에 도착을 한다.

쇠로 된 철로는 사라지고 돌만 남아 있는 철길 위엔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이제 이곳에 장항선 철로였는지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 철길을 가로 질러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다시 밭이 나타나고 그 밭 가장자리를 타고 우측으로 오르니 묘지가 나타난다. 

묘지를 지나 오르니 고구마 밭이 나타나고 그 밭 가장자리를 타고 올라 능선으로 진입하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곳 역시나 벌목되어 시야는 좋아 보이지만 그 벌목된 나뭇가지들을 치우지 않아 가파른 오르막 경사면을 타고 올라야 하는 이 산객에게는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서서히 허기가 지기 시작하여 잠시 배낭 내려 놓고 음료수 한모금 마신 후 사과 하나를 꺼내 먹고 오른다.

 

 

한동안 땀방울 흘리며 오르니 뚜렷한 넓은 등로와 만나고 이곳에서 등로를 타고 좌측으로 진행한다.

참으로 멋진 등로가 이어지지만 잠시 더 전진한 곳에서 지난 태풍 때 부러진 몇그루의 소나무를 만나면서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끼기도 한다.

몇명의 산책하는 사람들을 만나 인사 나누고 진행하니 나무 벤취가 준비된 장소에 도착 해 다시 시원한 물한모금 마신 후 전진한다.

 

 

그곳 벤취 쉼터를 지나 진행하니 이제 등로 좌측으로는 시야가 트이기 시작하고 제법 드넓은 들판이 눈에 들어 오는데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풍경이 풍년을 노래하는듯 하다.

서천 들판 우측 저 멀리에는 오늘 이 산객이 걸어 내려가며 마무리해야 할 금북기맥 마루금도 보일듯 말듯 그렇게 이 산객을 애태우고 있다.

몇일 사이에 이렇게도 많이 변해 버린 추색으로 인해 또 다른 등로를 타고 걸어가는 느낌으로 걸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등로 좌측으로는 황금 들녘을 내려다 보고 바로 옆으로는 추석 명절을 맞아 잘 벌초된 묘지들을 지나며 걷다보니 마루금 역시 편안하고 뚜렷한 길이 되어 버렸다.

크게 높은 산도 없이 이제 그 맥을 다하며 서해바다로 빠지려고 준비하는 그런 단계의 산줄기처럼 생각되는 곳이다.

그렇게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사각정자가 보이고 조금 더 진행하니 나뭇가지에 판교천까지 4.6 Km란 이정판이 보이고 그 옆에 이정표가 서 있다.

지나온 방향으로 화금리 500미터 및 직진으로 레포츠공원 750미터 그리고 좌측으로 서천여자정보고등학교 800미터란 이정표에서 좌측 서천여자정보고등학교 방향이 기맥 등로이다.

 

 

갈림 삼거리에서 좌측 서천여자정보고등학교 방향으로 90도 꺽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많은 묘지들이 산재되어 있다.

그 묘지들을 지나 내려가니 등로는 이제 아름다운 소나무 군락지로 변하고 아리미 제1길이란 띠지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부드럽고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바위지대들이 나타나고 그 바위지대를 지나 계속 전진한다.

조금 더 내려가니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좌측 대나무 밭이 있는 등로를 버리고 우측 소나무 군락지가 보이는 등로를 타고 계속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렇게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내려가니 다시 대나무 지대를 지나 밭 가장자리로 내려간다

밭으로 내려가니 저 앞으로 황토빛 찜질방 건물이 보이고 그 건물 좌측으로 높은 아파트 단지들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넓은 등로를 타고 아파트 있는 방향으로 내려가니 다시 몇기의 묘지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아파트 건물 좌측 도로쪽으로 내려가며 진행한다.

  

 

시멘트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클래시움 105동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는 파란색 지붕을 한 민가 한채가 보이는 가운데 포장도로로 내려가 4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사곡리도로와 만난다.

원 기맥 등로는 사곡리 도로를 건너 절개지를 타고 올라 진행해야 되지만 오를 수 없기에 금향식당 입간판이 있는 사곡리도로 입구에서 좌측으로 사곡리도로를 타고 진행하면 최근에 개점한듯한 기아자동차 정비수리점이 크게 보이고 그 앞에서 사곡리도로를 건넌다.

 

 

도로를 건너 도로 옹벽이 낮은 곳을 통해 오르니 우측 능선과 좌측 수레길이 갈리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어느길로 올라도 정상 등로와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좌측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그곳은 묘지로 통하는 임도였다.

즉 사곡리도로를 건너 올라 우측 좁고 희미한 능선 등로를 타고 주능선으로 올라 좌측으로 진행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다.

묘지를 지나 우측으로 오르니 잡목이 우거지고 벌목된 나무들이 너부러져 오르기 힘들지만 그래도 헤치고 오르니 뚜렷한 멋진 등로와 만나고 그곳에서 등로를 타고 좌측으로 진행한다.

 

 

뚜렷하고 멋진 등로를 만나 좌측으로 진행하니 등로 우측 아래로 건물이 보이고 무슨 건물일까 궁금해하며 진행하다 보니 바로 그 건물이 방금 전 만났던 이정표에서 봤던 서천여자정보고등학교였다.

한동안 이 서천여자정보고등학교 건물을 등로 우측에 두고 180도 돌아가는 그런 형국으로 산행은 진행되고 있다.

그림같은 등로를 타고 안부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오르니 저 멀리 통신탑이 보이고 바로 앞 등로에는 벤취 2개와 가운데에 굴뚝처럼 보이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는 곳에서 기맥 마루금은 우측으로 90도 꺽어 내리막 길로 이어지고 있다.

 

 

잘 닦여진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는 체육시설들이 잘 갖춰진 길이 보이고 그 뒤로 서천여자정보고등학교 건물이 보인다.

그렇게 조금 더 내려가니 이제 우측으로 보이던 서천여자정보고등학교 건물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눈 앞으로 서천읍성과 관련된 경고문을 지나 좌측 콘크리트 포장도로로 내려 선다.

그 콘크리트 포장도로로 내려서서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진행하자마자 우측으로 서천읍성 이정석과 안내판이 보이고 임도 좌측으로는 민가들이 보인다.

서천읍성은 높이 3미터이고 길이는 1068미터의 석성으로 서해안으로 침투해 오는 왜구들로부터 양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세종 년간(1418-1450년)에 쌓은 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현제는 성문과 석축 일부만 남아 있다.
기록으로는 조선시대 영조 27년(1751)에 쌓은 성으로 되어 있으나 오래전부터 토성의 축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 그 훨씬 이전부터 왜구의 침범이 잦았던 지역으로 특히 고려시대말기에는 대대적인 왜구의 침범이 있을 때에도 양민이 봉기해서 적을 무찔렀다는 구전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서천포성지와 함께 오랜 성지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성지가 있는 남산에는 부여의 유왕산놀이 같은 남산놀이가 민속놀이로 최근까지 전해오는 성지다.

각 지역마다 마을과 지역을 지키기 위해 쌓은 성들이 많은데 그런 성들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보는 곳이다.

 

 

그 서천읍성을 읽어 보고 몇장의 사진을 남긴 후 콘크리트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사거리 갈림길이 나타나고 이곳에서 우측 시멘트 도로를 타고 내려가 지난 구간 산행을 마쳤던 곳이다.

이곳에서 아무 생각없이 지난 구간 내려갔던 우측 시멘트 도로를 타고 내려가며 서천시내를 가깝게 사진에 담다 보니 어딘지 이상하고 서천성당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무엇인가 잘못되였음을 깨닭고 다시 갈림 사거리로 뒤돌아 올라 온다.

이곳에서는 알바 후 올라온 방향에서는 우측의 비포장 임도로, 원 기맥 산행을 한다면 서천읍성에서 콘크리트 도로를 타고 내려 와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며 내려가는 길이 기맥 등로이다.

 

 

갈림 사거리를 지나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전진하니 넓고 뚜렷한 등로가 열려있고 잠시 후 큰 거목들이 사라지며 키 작은 풀들만이 등로를 지키고 있다.

그 호젓한 길을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 앞으로 큰 건물 하나가 보이고 그 앞 저 멀리에는 서천시내의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잠시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넓은 포장공터가 나타나고 그 좌측으로 서천성당이 보인다.

추석 연휴가 시작된 날이라서 그런지 성당에는 보이는 사람 하나 없이 고요한 정적만이 흐르고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정문을 통해 빠져 나간다.

 

 

포장도로를 따라 서천성당을 내려오니 도로 좌측에는 공사중인지 가림막이 쳐져 있고 도로가 나타나더니 찾고 있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삼거리 골목에 보인다.

그 편의점으로 들어가 라면에 밥이라도 먹을까 생각하다가 다시 식당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지나쳤는데 결국 그것이 마지막 찬스였음을 서천 시내를 빠져 나가며 알게 되어 하루 종일 밥 한끼 먹지 못하고 과일로 허기를 때우는 하루가 되였다.

편의점을 우측에 두고 좌측의 직진 도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직진으로 내려가니 금새 도로 좌측으로 서천문예의전당이란 건물이 보이고 조금 더 내려가니 또 좌측으로 서천도서관 입간판도 보인다.

계속 직진 방향으로 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우측에서 합류하는 삼거리 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그 도로를 타고 걸어 간다.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오거리가 나타나는데 선답자들은 군사오거리라 했지만 최신지도를 찾아보니 서천오거리로 나타나 있는 곳이다.

이곳 서천오거리 로타리 교차로에서 거의 직진 방향인 장항 군산 방향의 도로가 기맥 등로이다.

 

 

제법 많은 차량들이 통행하고 있는 오거리이기에 조심하며 도로를 건너 왕복 2차선인 도로를 타고 장항 군산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진행하다 잠시 뒤돌아 서서 지나온 마루금을 살펴보니 서천읍성쪽에서 이곳으로 내려온 복잡한 시내구간이 한눈에 들어 오는데 이곳이 진짜 기맥 등로가 맞는지 난해한 구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도로 우측으로 작은 공원같은 것이 보이고 도로를 벗어나 그 공원쪽으로 발길을 돌려 진행한다.

 

 

도로를 좌측으로 두고 작은 공원같은 곳으로 들어 가 진행하니 그곳은 맑은 소리숲 쉼터이고 큰 이정판이 세워져 있다.

바로 앞 우측으로는 4번 4차선 고속도로화 되어 있는 도로가 지나는 풍경도 눈에 들어오고 제법 넓게 펼쳐진 들녘엔 이제 황금빛이 감돌기 시작하고 있다.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조국의 미래 청년의 책임이란 글귀가 보이고 이제부터는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다.

그 공원길을 타고 걸어가니 다시 방금 전 헤어졌던 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진행하고 결국 앞에 보이는 4차선 도로를 통과하는 지하통로 도로처럼 되어 있는 곳을 통해 머리 위를 통과하는 4번 지방도로를 건넌다.

 

 

도로를 건너 걸어가니 다시 갈림 삼거리 도로가 나타나는데 좌측도로는 장항과 군산가는 도로로서 그곳으로 가면 방금전 지하통로 도로를 통해 건넜던 4번 지방도로로 올라 달리게 되어 있는 접속도로이고 직진으로는 611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마서가는 도로이다.

이곳에서 기맥 등로는 마서방향의 611번 지방도로를 타고 계속 직진하며 진행하면 된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면 도로 좌측으로 푸른농원이 보이고 그곳 지나 우측으로 소문난국밥 식당 입간판을 통과하면 저 멀리 도로 좌측으로 LIG LPG 주유소와 세차 건물들이 보인다.

  

 

그 LIG LPG 주유소를 바라보고 진행하면 611번 지방도로가 우측으로 휘여 진행하고 그 휘어지는 도로 바로 우측 옆에는 허름한 민가 한채가 서 있고 도로 표지판에는 장서로란 글씨와 함께 군사2교차로란 도로 표지판도 보인다.

그곳에서 민가를 지나기 직전 도로 우측으로 오래된 키 작은 전봇대가 서 있는 곳을 통해 우측 능선으로 오르며 기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능선으로 오르니 추석 직전이라 그런지 잘 벌초된 몇기의 묘지들을 지나 잡목으로 흐릿한 등로를 찾아 오르면 금새 뚜렷한 등로와 만나 진행하게 된다.

잠시 뚜렷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다 등로 좌측을 내려다 보니 마서쪽 마을 풍경이 그대로 그곳에 남아 있다.

마서면은 서천군의 군청소재지인 서천읍 남서쪽에 위치해서 서쪽으로는 서해와 접하고 장항읍과 접하고 있는 면이다.

원래 서천군 마길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마동과 서남의 이름을 따서 마서면이라 하였다.
마서면내에는 500여년간을 뿌리하고 사는 100여호의 큰 성이 4성이나 있을 정도로 전통성이 강한 지역이다.

집성부락의 양상은 다양하나 나주나씨가 300여호, 평해구씨 280여호, 금녕김씨 200여호, 파평윤씨 120여호가 집성촌을 이루고 그 외에도 광산김씨 70여호 남포백씨 60여호 전주최씨 50여호 등이 있으며 집성촌은 각양각색이다.

자료를 살펴보니 이 산객의 직접 선조들도 많이 살고 있는 마을임을 알게 돼 왜 그리 이곳에 조상묘지들이 많았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였다.

  

 

 

그렇게 주위 풍경을 구경하며 오르니 이제부터 꿈결같은 소나무 길이 열리는데 저 멀리 겉에서 봤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마루금이 열리고 있다.

잡목 하나 없이 순전히 소나무들로만 가득 채워진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락 내리막 걸어가는 길은 등산이라기 보다는 산책한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아름다운 길로 기억되는 곳이다.

제법 길게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콧노래를 불러 보는 시간이다.

아마도 서천시민들의 대단히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산책로가 아닐까 생각되는 등로이기도 하다.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를 타고 한동안 아무 생각없이 홀로 즐겨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즐기다 보니 나즈막한 봉우리에 오르고 그곳에는 벤취 쉼터가 준비되어 있으며 다시 이어지는 소나무 길이 더욱 운치있게 이 외로운 산객을 맞이해 준다.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내려가니 운동기구와 육각정자 그리고 한쪽에는 황새마을 하산 갈림 이정표가 서 있다.

남산길 입구에서 800미터 올라 왔고 남산정상까지는 1.5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이정표 이기도 하다.

서천황새마을의 본래 이름은 충남 서천군 마서면 계동1리 동죽마을이다.

동죽마을은 금강변의 너른 옥토와 청정 서해안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농촌마을로 큰 마을의 동쪽에 위치하며

대밭이 많아 동죽이라 불리운다.

최근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면서 황새마을로 탈바꿈한 이유는 예부터 마을들판 이름이 황새들로 불리울 만큼 황새들이 많이 서식했기 때문이다.

황새는 맑고 깨끗한 곳에서 살기 때문에 환경과 생명존중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한다.

서천황새마을은 훈훈한 인심은 물론 옛 성터와 석탑, 당산나무, 전통우물 등 예스러움이 잘 보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농촌과 환경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재미있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이제는 이 산객도 어릴적 자주 만났던 황새보기가 어렵울 정도로 삭막하고 오염된 자연임을 생각하니 씁쓸한 기분도 드는 시간이다.

 

 

황새마을 갈림 이정표를 사진에 담은 후 다시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잘 정돈된 묘지들이 보이고 그 넘어에는 사각정자도 보인다.

그 묘지 위에 올라 등로 우측을 보니 잡목 사이로 서천시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대나무 길도 잠시 만나고 많은 묘지들을 지나 무명봉으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서천읍내와 지나온 기맥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온다.

무명봉을 올랐다 안부로 내려가니 우측으로 남산리와 좌측으로 계동리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 사거리가 나타난다.

 

 

이제 남산 정상까지는 1.2 Km가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를 보고 다시 천천히 발길을 돌리니 서서히 등로 우측으로 황금들녘과 서천읍내 그리고 그 뒤 저 멀리 봉림산과 천방산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고속도로같은 등로를 타고 계속 완만하게 오르니 담양전씨 가족묘지를 만나고 등로 우측으로 조망이 터지는 장소에서 잠시 머물며 서천읍내와 그 좌측으로 병풍처럼 둘러쌓고 있는 희리산을 바라본다.

서천 쭈꾸미 축제기간과 봄 동백꽃을 보기 위해 내려왔다 몇번 들렸던 곳이기에 그때의 추억을 더듬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잡목 사이로 보이는 등로 우측의 서천으내와 희리산 그리고 저 멀리 봉림산과 천방산을 바라보며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저 앞으로 높은 통신탑 하나가 보인다.

처음에는 저 통신탑이 있는곳이 남산 정상이라 착각하고 너무나 빨리 올랐다며 느긋하게 진행을 하였지만 막상 그곳에 올라 보니 남산 정상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거리이다.

 

 

이제 통신탑 앞에 도착을 해 등로 우측인 북쪽을 조망해 보니 보고 싶은 그림은 모두 그곳에 들어 있었다.

가까운 발 밑으로는 서천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그 넘어 서천읍내가 빤히 내려다 보이며 그 서천을 둘러싸고 있는 좌측의 희리산이 바로 지척이고 우측 저 멀리에는 백월산과 성주지맥 그리고 봉림산과 천방산 줄기가 줄지어 서 있다.

돌고 돌아 까마득하게 보이지도 않던 이곳까지 내려 와 올려다 보는 금북기맥 마루금이 그리움으로 남겨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제 북서쪽 저 앞으로는 희리산 좌측으로 서해바다의 갯벌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무더운 계절에 잡목을 헤치며 어렵게 진행해 온 금북기맥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길 떠나기 아쉬워 물한모금 더 마시며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은 후 그 통신탑을 지나 진행하니 LG 텔레콤 통신탑이다.

좌측으로 내려가는 등로를 버리고 통신탑을 직진으로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둔덕으로 오르니 또 다른 안부 삼거리를 지나 직진으로 진행을 한다.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는데 등로를 따라 전봇대도 함께 오르고 있다.

등로 주위에는 잡목들이 자라고 어느 등로와 큰 차이가 없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고도가 높아지며 지나온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지기 시작을 한다.

그렇게 한발자국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길 몇번 다시 평이한 등로가 열리고 그 마루금을 따라 걸어 오르니 바위지대를 넘어 소나무 군락지를 만나고 곧이어 남산 정상부가 빤히 보이는 곳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남서쪽을 바라보니 이제 걸어 통과해야 할 댕골산 지난 서태산과 마루금이 내려다 보이고 마서면 들녘과 마을을 지나 저 멀리 서해바다가 가물거린다.

 

 

서쪽으로는 서해바다가 손에 잡힐듯 가깝게 다가와 있고 그렇게 주위 풍경을 즐기며 조금 더 오르니 돌탑이 있고 높은 통신탑이 있는 남산 정상에 도착해 셀카를 작동 시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서천에 있는 남산 자료를 찾다가 충청투데이에 실렸던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기에 옮겨 보기로 한다.

서천은 충남의 서남단에 위치해 남으로는 금강, 서로는 서해, 동으로는 부여, 북으로는 보령시와 접하고 있다.
백제시대 공주와 부여 입장에서 본 서천의 위치는 금강의 입구로 오늘날 고속도로의 톨게이트와 같은 역할을 담당한 지역이다.
금강은 당시 모든 인적과 물적 자원을 운반하기 위한 최적의 입지로 지금의 고속도로와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금강 입구 톨게이트의 수문장이 거주하던 산, 서천읍에서 남으로 보이는 산이 바로 남산이다.

남산에 오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마서면 봉남리 석탑을 보고 등산로를 따라 등산하는 방법과 남산조개무지를 지나 남산회관 앞으로 산을 오르는 방법이 있다.
먼저 남산 자락에 있는 봉남리 석탑은 서남초등학교 후문을 빠져나와 봉남리 교회를 지나 한적골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옹달샘 좌측으로 대나무 숲에 가려져 있다.
봉남리 석탑은 순간적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솟구치게 하는 석탑이다.
본래 이 탑은 5층이었던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4∼5층 탑신석과 옥개석이 분실된 상태로 있기 때문이고 안내판조차 봉남리 3층 석탑이라고 하여 더욱 아쉬움을 남게 한다.
서천군지(1929)에 의하면 봉남리 석탑은 1914년 탑 아래쪽에 살던 사람이 군산에 사는 일본인에게 팔려고 해체하였는데 당시 서남면장과 군의 경찰에 의하여 옛터에 복원되었다.

탑 속에 있던 보물의 향방은 미상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난 93년에는 탑신과 옥개석이 옥북리 역멀에 묻혀 있다는 마을 사람들의 제보를 받고 서천군이 중장비를 동원해 발굴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이 같은 사연을 간직한 봉남리 석탑을 뒤로하고 남산에 오르면 조선 세종 이전에 옛 서천 관아가 있었던 곳을 상징하는 듯 지금도 석축산성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그 석축산성의 양식은 삼국시대의 석축법으로 조선시대 이전 이미 백제시대에도 산성이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남산에 올라가면 동으로는 서천쌀이 생산되는 서천평야가 전개되고 서쪽으로는 멀리 서천 화력발전소까지 펼쳐진 서해바다가 넘실거린다.

남으로는 장항제련소(현 LG금속) 굴뚝과 금강이 보이고 북으로는 천방산, 희리산이 보이며 그 아래에 오석산이 있고 그 오석산의 그늘에 서천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입지 덕으로 남산은 서천의 중심산성으로 송내리산성, 중태산성, 서태산성, 한성리산성, 둔덕리산성, 봉남리산성 등 주변 산성들을 거느리며 금강의 포구를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해 왔다.
남산산성은 서해의 움직임이 보이고 금강을 드나드는 배를 관측할 수 있어 예하산성을 통제할 수 있는 좋은 입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산에 있는 방송 중계탑에서 서쪽으로 내려와 다시 북쪽 방면으로 평평한 면을 150m 정도 따라가면 경사진 성벽이 있는데 이곳에서 7m 정도 밑으로 내려가면 남산산성이 있다.
성벽은 잘 보존되어 있는데 성벽은 경사 10도 정도를 이루며 성돌은 30∼40㎝ 크기의 돌을 다듬어 보기 좋게 쌓여 있다.

군은 2001년 8월부터 남산산성에 대한 본격 적인 발굴에 나섰으며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계획이다.
남산은 서천 여인들이 음력 8월 17일에 오르는 산이기도 하다.

남산에 오르는 것을 '산에 간다', '남산 간다' 등으로 부르다가 후에 이름 붙이길 남산놀이라 하였다.

음력 8월 15일까지는 남정네를 위한 뒷바라지를 하고 옷가지 등을 준비해 8월 17일이면 막연히 산에 오르던 놀이다.
이 남산놀이에 얽힌 이야기는 백제가 망하여 당나라로 끌려가는 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하여 한이 맺힌 여인들이 남산에 모인 것이 그 연원이 되어 6·25 전까지 이어지다 단절된 놀이로 부여 양화의 유왕산놀이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산에 오르는 놀이는 조선시대 세시풍속의 하나로 일명 '반보기'라고 하는 것이 와전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한데 이 놀이는 기산의 숭정산, 화양의 와초 무제봉에도 이 놀이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남산에서 서쪽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봉남리 한적굴로 넘어가는 성황당 고개를 지나 200m 쯤 능선을 따라 가면 운은산 봉수대를 볼 수 있는데 20여년생 소나무가 즐비하게 서 있다.
운은산 봉수대는 현재 숲으로 덮여 돌무더기만 보이기 때문에 그 흔적의 확인이 곤란하다.

이 돌무더기를 잘 살펴보면 가운데를 중심으로 돌이 흩어져 있고 그 아래로 홈이 파진 담장 같은 언덕을 볼 수 있다.
봉수대는 지금 붕괴되어 볼 수 없지만 가운데 볼록한 부분이 있었으며 가장자리의 담장은 봉수대를 지키기 위한 방호벽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가뭄이 심하면 장 내세우기라고 하여 남산에 장을 세우게 하여 비를 기원했던 풍속도 있었다.
이와 함께 남산은 영취산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데 이는 불교와 관련된 지명으로 고대 인도 석가모니의 설법장소가 됐던 곳으로 우리 나라에 영취산은 8곳이 있다.
서천의 남산인 영취산 역시 주변에 운은사지, 봉남리사지와 운갑사지가 있고 봉남리 석탑이 남산의 운치를 더욱 깊게 하고 있다.

나즈막한 산이지만 많은 역사적인 사실이 담겨져 있고 애환이 남겨져 있는 남산이기에 더욱 서천군민들이 애착을 가지고 찾는 산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남산 정상에 서 있는 통신탑은 KBS 서천 방송 중계소란 이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약간의 잡목으로 가려 있는 남산 정상에서의 조망을 즐긴 후 통신탑 지나 좌측의 무성한 잡풀이 자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가을 억새가 탐스럽게 피어나 그동안 잊고 지내던 억새 산행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내려가며 등로 우측과 앞을 보니 이제 서해바다가 바로 코 앞으로 다가 와 있다.

임도 좌측으로 3개의 간이 화장실을 지나 전주최공 묘지를 지나니 안부가 나타나는데 우측으로는 남산리 그리고 좌측으로는 봉남리 하산 등로가 있는 갈림 사거리 이정표가 서 있고 이곳에서는 직진의 영운사 1 Km 방향이 기맥 등로이다.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올라 다시 평이하게 걸어가니 이곳 역시 소나무들이 도열하듯 이 산객을 맞이해 주고 있다.

한동안 진행하니 봉분이 낮은 묘지를 지나 다시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우측에 벤취 쉼터 하나가 보이는 곳을 지나자 마자 좌측으로 마차인지 경운기가 올라다닌 자국이 있는 비포장 임도가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뚜렷한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90도 꺽어 진행해야 한다.

이곳에서 잠시 헷깔려 직진과 좌측 임도를 번갈아 왔다리 갔다리하며 약간의 시간을 허비했지만 금새 좌측으로 정상 등로를 잘 찾아 진행한다.

 

 

어렵게 좌측으로 크게 꺽이는 정상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초입에서의 희미했던 등로와는 달리 뚜렷한 등로가 열리고 바로 소나무 숲 위로는 드넓은 서해바다와 갯벌이 내려다 보인다.

오래 전 일 때문에 참으로 자주 내려왔던 장항이였고 만났던 서해바다였는데 이렇게 맥 잇기 산행을 하면서 만나고 바라보는 같은 지역이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엇인지...

 

 

최근에 길을 넓혔는지 아니면 다른 목적으로 마차가 올라왔었는지 모르겠지만 등로 주변의 소나무들이 상처가 난 모습과 등로엔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다.

그곳을 지나 진행하니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따라 편안하게 산행을 진행해 본다.

한동안 그렇게 진행하니 갑자기 넓은 공터가 타나나고 그 앞에는 묘비가 서 있는 묘지 한기가 보인다.

최근에 만들어진 묘지처럼 보이는 주인은 나주정공과 광산김씨 묘지이고 공터 우측으로는 철조망이 쳐져 있는 목장지대이고 기맥 등로는 공터를 지나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이제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계속 내려가 본다.

그렇게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가 보이고 지도를 보니 4번 지방도로로 나와 있다.

그 도로로 내려가는 입구에는 신창교회묘지공원 입구라는 표지석이 서 있고 그 옆에는 나주나공연안군제단이란 표지석이 서 있다.

도로표지판에는 마서로 334번길이란 글씨가 눈에 들어 온다.

도로 건너에는 무슨 공장인지 큰 건물이 보이는데 그 주위에는 함석판으로 가로막아 내부를 잘 볼 수 없게 만들어 놨다.

그 공장 건물을 좌측에 두고 도로 건너 우측 능선으로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4번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넓은 등로가 뚜렷하게 나 있고 그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밤나무들이 보이는 잡풀과 잡목이 우거진 등로로 변한다.

잠시 그 복잡한 등로를 타고 잡풀을 헤치며 오르니 등로 주위에 소나무들이 자라고 묘지들을 지나 앞으로 묘지들을 안치하려고 만든 3단 공터를 통과한다.

이제 등로 좌측 등뒤로는 방금 전 지나온 남산과 그 아래 통신탑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아래에 펼쳐진 계동리가 한눈에 들어 온다.

다시 잡목으로 채워진 등로를 타고 어렵게 진행하니 나무들을 식재한듯한 반듯한 지역을 지나 잡목을 헤치고 댕골산 정상으로 오르는데 이곳에서 잠시 등로가 사라져 이리저리 등로 찾아 돌아다니다 어렵게 정상 등로를 찾아 진행한다.

 

 

이곳이 해발 63미터인 댕골산 정상이라 생각되는 곳의 풍경이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묘지지대를 지나 어렵게 올라온 곳으로 정상에는 부러져 떨어진 나뭇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간간히 보이던 붉은 노끈도 사라져 길찾기에 여간 어려운 곳이 아니였다.

그래도 직진 방향으로 잘 찾아 보니 희미하게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길은 점점 뚜렷해 진다.

이제 그 희미한 등로를 타고 완만한 내리막 등로롤 내려가며 진행한다.

 

 

잔잡목들이 우거진 등로를 뚫고 어렵게 내려가니 잘 가꿔진 묘지들이 나타나고 직진의 앞에는 제법 높아 보이는 서태산이 올려다 보인다.

등로 좌측 뒷편으로는 지나온 남산쪽 마루금이 시원하게 조망되고 앞으로 진행해야 할 금북기맥 마루금 방향으로는 계속 이어지는 묘지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그렇게 가야할 마루금과 지나온 등로를 조망하고 혹시나 몰라 다시 한번 서태산을 나침판과 지도로 정독한 뒤 정상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해 본다.

 

 

이제 서태산을 등로 우측에 두고 내려가니 묘지들이 연달아 보이고 그 묘지들을 지나 걸어 내려가면 대나무 숲이 나타난다.

실질적으로는 대나무라기 보다는 조릿대인데 키가 무척 큰 조릿대가 더 맞는 이름인듯 하다.

그 조릿대 구간을 지나니 실질적인 대나무 밭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계속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남전리 마을의 민가들이 보이고 등로 좌측으로는 이제 남산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다시 한번 정독을 하면서 한번 더 위로 올라 조망으로 정상 마루금을 확인하고 그 진행하던 등로를 타고 내려간다.

이곳에서 남전리에 살고 계신 아저씨 한분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 출발한다.

 

 

그렇게 동네 뒷산같은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소나무 군락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등로 우측으로 남전리 마을이 더욱 또렷하게 눈에 들어 오고 등로 좌측으로는 남산 주위의 마루금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잠시 더 그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1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그저 평범한 남전리 포장도로이다.

그 도로 옆 폐가에 익어가는 감 하나를 따 입에 넣고 1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우측에 드넓은 고구마 밭을 두고 능선으로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은 이어진다.

 

 

우측에 고구마 밭을 두고 좌측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다시 들깨 밭이 나타나고 그 들깨밭 가장자리를 타고 어렵게 통과해 내려가니 다시 눈 앞에 넓은 밭들이 펼쳐져 있다.

밭 사이로 나 있는 도랑을 타고 내려가 임도를 만나고 그 임도를 타고 저 능선쪽으로 나 있는 묘지를 향해 올라 본다.

 

 

등로 좌측으로는 계속해서 남산과 그 주위의 금북기맥 마루금이 조망되고 밭 가장자리를 타고 내려가 안부를 지난 후 다시 능선쪽으로 오르기 위해 밭 가장자리로 나 있는 임도를 타고 오르니 용궁전공 묘지가 나타난다.

묘지를 지나 밭과 그 밭사이에 자라고 있는 감나무에서 익은 감 하나를 따 입에 물고 능선쪽으로 걸어 올라가니 창녕성공과 평해구씨 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며 맥 산행은 이어진다.

약간은 가파른 오르막 경사면을 오르니 잡풀이 우거진 비포장 임도를 만나고 그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대나무가 울창한 곳을 지나 밭 사이에 비닐하우스를 지어 놓고 토종닭을 키우는 미니 양계장을 지난다.

 

 

그 비닐 하우스 양계장을 우측에 두고 밭 가장자리를 통해 진행하다 다시 능선으로 들어 진행하니 빛이 바랜 잡풀이 우거진 공터를 지나 대나무 밭을 지난다.

다시 우거진 잡목과 잡풀을 헤치고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논과 밭이 보이고 곧이어 시멘트 포장임도로 내려 선다.

지도를 살펴보니 봉남리 도로로서 봉남리는 서천군 서부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봉하와 남산의 이름을 다서 봉남리라 하였다.

전주최씨 50여호가 집성촌을 이루었던 마을이다.

그 도로를 건너 다시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진행하니 앞으로 높은무인산불감시탑이 보이고 우측으로 옥복리 마을을 조망하며 걸어 본다.

갑자기 드넓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잡풀이 무성하게 자랐던 곳을 예초기로 잘 깍아 놓은듯한 그런 풍경이다.

단풍나무들이 식재된 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탐스럽게 피어난 억새가 바람에 산들거리며 이 산객을 맞이해 준다.

그곳을 지나자 마자 등로 우측으로 콘테이너 박스와 물통이 보이고 그 앞 저 멀리에는 봉남리 마을 민가들이 내려다 보인다.

 

 

콘테이너와 마을 민가를 타고 내려가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무인산불감시탑과 마루금이 조망되고 다시 잡목으로 어지러운 등로를 찾아 어렵게 내려가 본다.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사라진 등로를 찾아 무명봉으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몇기의 묘지들이 잘 가꿔진 상태로 놓여 있고 그곳 정상에서 등로를 찾아 잠시 해매다 어렵게 그 묘지 뒤로 나 있는 등로를 찾아 진행한다.

 

 

그 묘지지대 뒤 능선을 타고 진행하니 다시 광산김공 묘지가 나타나고 금새 2차선 포장도로인 봉남리의 흥덕리 도로를 만난다.

그 포장도로를 건너 다시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등로 앞 좌측 저 멀리 중태산 통신탑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그 통신탑을 보며 걸어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옥수수 밭이 나타나고 그 밭을 지나 폐가가 된 서천목장 건물들이 나타난다.

그 건물 사이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폐가가 된 서천목장 건물 사이로 나 있는 임도를 타고 전진하니 비포장 임도가 시멘트 임도로 변해 있다.

그 시멘트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드디어 높은 마서기지국이 눈앞에 보이고 철조망 울타리엔 이정표가 붙어 있다.

몇장의 사진을 담은 후 몇발자국 뒤돌아 내려와 등로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좌측 즉 마서 기지국 있는 방향으로 해발고도 100미터인 중태산 삼각점이 박혀있다.

 

 

중태산 삼각점을 사진으로 남긴 후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평해구공 배 평산신씨 묘지가 보이고 능선을 타고 무명봉을 넘으니 파란 물통과 비닐하우스가 내려다 보인다.

조금 더 내려가니 그 비닐하우스 아래에는 콘테이너 박스가 보이고 그 넘어 우측으로 흐르는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데 그곳으로 가는 등로가 다시 희미해지며 잡목이 우거져 있다.

 

 

임도를 타고 내려가 절개지를 타고 올라 희미하게 열려 있는 능선으로 이어가며 걸어보니 잡목이 우거져 있어 진행에 방해를 받지만 큰 어려움은 아니다.

무명봉을 지나 걸어가니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가 열려있고 그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묘지가 나타나고 그 아래로 옥산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앞으로는 이제부터 걸어 넘어야 할 마루금이 나즈막한 밭 사이로 이어져 있고 비산비야로 보이고 있다.

산행 자체는 어려움이 없지만 희미하고 사라져 가는 등로를 찾아 진행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은 시간이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우측으로는 밭이 이어지고 좌측으로는 야산이 보이지만 그 야산도 금새 사라지고 밭둑 사이의 등로를 타고 잡풀을 헤치며 어렵게 진행을 한다.

잠시 더 내려가니 고구마 밭에서 몇개의 고구마를 캐 손자손녀들에게 건네주는 아주머니를 만나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농촌생활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절감하는 시간이다.

건강을 빌어 드리고 다시 그 고구마 밭을 지나 넓은 임도를 타고 걸어가며 진행한다.

 

 

고구마 밭을 지나 잠시 뒤돌아 보니 지나온 마루금과 송전탑 그리고 통신탑이 올려다 보인다.

다시 가던길 이어가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장항산단 4차선 포장도로 위 옥산육교가 나타난다.

그 육교를 건너며 좌측 송내리쪽 도로를 살펴보고 계속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옥산 육교를 지나 계속 콘크리트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T자 갈림 삼거리를 만나고 그 도로 건너편에 장항교회 임마누엘동산이라 큰 이정석과 그 옆에 안내판이 서 있다.

그 임마누엘동사 우측 공동묘지에는 한사람이 벌초하기 바쁘고 이곳 갈림 삼거리에서 시멘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계속 이어간다.

 

 

공동묘지를 지나 포장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곳 좌측의 전봇대가 서 있는 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오르며 진행하니 저 멀리 뒷편으로 지나온 마루금이 환상으로 펼쳐져 있다.

봉림산과 천방산이 지척으로 보이고 그 뒤 좌측으로 오르며 지나온 마루금이 벌써 옛 추억이 되어 간다며 속삭이고 있다.

조금 더 오르니 넓은 묘지터가 나타나교 몇기의 가족묘지들이 누워 있다.

이곳에서 등로를 찾지 못해 조금 헤매면서 묘지를 우측에 두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 무명봉에 오르지만 정상 등로임을 찾지 못해 다시 묘지로 내려와 이번에는 묘지를 좌측에 두고 직진의 방향으로 내려가니 그곳에 정상 등로가 열려 있다.

그곳으로 내려가며 진행하니 구절마을이 나타나고 마을 시멘트포장도로를 타고 진행해 나타나는 철길을 건넌다.

 

 

철길을 건너 계속 이어지는 ㅣ멘트 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좌측 임도를 타고 논 사이로 전진한다.

임도를 걸어가며 임도 좌측을 올려다 보니 방금 전 진행해온 마루금을 보니 그 위로 파란 하늘이 열려 있고 하얀 뭉게구름이 걸려 있어 환상의 풍경을 선사한다.

계속 걸어가니 임도 좌측으로 농촌지도소 건물이 나타나고 곧이어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도로 건너편엔 장항대리운전 입간판이 도로가에 서 있다.

 

 

그곳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올라가면 도로 우측에 Gy 부동산 입간판이 보이고 그 앞을 지나 오르면 송내 삼거리 갈림길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직진의 군산가는 도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휘어지는 도로를 타고 걸어가면 송내교차로란 도로표지판이 보이고 그 아래 현재 이 산객이 걸어가고 있는 21번 도로번호와 저 앞에 보이는 고가 위 도로가 4번 지방도로임을 알리는 도로 표지판이다.

이 도로 즉 21번 도로를 타고 직진으로 걸어 들어가 21번 도로 위로 지나는 4번 도로를 건너자마자 우측 포장도로를 따라 4번 지방도로쪽으로 걸어 오르며 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4번 지방도로를 지하 21번 도로를 타고 걸어 건넌 후 곧바로 우측으로 나 있는 차량진입금지 도로 표지판을 보고 오르면 바로 4차선 고속화도로가 지나는 4번 지방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 위로 오른다.

도로 좌측의 가드레일을 넘어 능선으로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게 된다.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잠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올라 무명봉을 넘는다.

 

 

무명봉을 넘어 다시 내려가니 밀양박공 묘지가 나타나고 그 아래 미니 공동묘지 같이 많은 묘지들이 줄지어 들어 서 있다.

우측으로는 4번 지방도로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직진의 남쪽 방향으로는 왕개산 정상부로 이어지는 마루금과 그 정상이 올려다 보인다.

이제 금북기맥 산행도 막바지 구간임을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묘지를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4번 지방도로를 건널 수 있는 지하통로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왕개산 방향으로 진행을 하니 안부 지나 능선으로 다시 접어 든다.

능선을 타고 오르니 오랫만에 만나는 이정표가 보이는데 글씨가 참으로 아름답다.

우측으로 빗그매그리고 직진의 방향으로는 쉼터 0.2 Km란 거리표시가 보이는데 이곳까지도 쉼터가 어느 쉼터인지를 분간하지 못하였다.

소나무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왕개산 북사면의 채석장 절개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안전목책과 로프 그리고 계단이 깔린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다시 땀방울 흘리며 오르니 우측으로 이제 도인정사가 나타나고 쉼터는 여전히 직진 방향이다.

운동기구가 설치된 왕개산 정상에 도착해 나무데크를 사진에 담고 직진으로 조금 더 걸어 올라 드디어 해발고도 97미터인 왕개산 정상에 도착해 삼각점을 사진에 담아 본다.

 

 

왕개산 정상에서 삼각점을 사진에 담은 후 추락주의란 경고판이 붙어 있는 북쪽을 바라보니 황금들녘의 송내리 지나 저 멀리 봉림산과 천방산이 그대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그 위에 떠 있는 파란 하늘의 하얀 구름이 또한 황홀하다.

봉림산 좌측 더 멀리에는 지나온 월명산이 가물거리며 파란 하늘의 하얀 구름과 맞닿아 있다.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풍경이 아닐 수 없는 시간이다.

 

 

잠시 왕개산 삼각점 옆에 주저 앉아 물 한모금 마신 후 체육시설을 지나 나무데크 전망대에서 이제 금북기맥 마지막 용당정을 바라보니 아파트 옆에 당당하게 서 있고 그 뒤에는 금강과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며 그 바다 건너 군산도 가깝게 눈에 들어 온다.

많은 시간 보내며 쉬었다 이제 산책 나온 주민과 한동안 이야기까지 나누니 갈길이 바빠진다.

나무데크 옆 내리막 등로를 타고 다시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니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데 정상까지는 0.5 Km와 우측으로는 도인정사 표시가 되어 있다.

우측의 도인정사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내리막 등로를 타고 계속 내려가 본다.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갑자기 키 큰 나무들이 사라지며 등로 앞 우측으로 성주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바로 발 아래에는 잣나무인지 소나무를 식재해 놓은 모습도 보이고 그 마을 뒷편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또한 아름답다.

앞에 보이는 마루금을 타고 진행하면 다시 4번 지방도로를 지하통로를 통해 건너며 진행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동네 어르신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물 한모금 얻어 마시고 과일까지 먹다보니 그곳 마루금을 놓치고 마을로 내려가 한구간 먼저 지하통로를 통해 4번 지방도로를 건너게 된다.

등산로 안내판과 왕재산까지 0.9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눈길을 사로 잡는 시간이다.

그리 높지도 않는데 앞에 보이는 마루금을 놓치고 한블록 먼저 지하통로를 통해 4번 지방도로를 건너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도로를 건너 가능하면 다시 기맥 등로에 가깝게 진행하기로 하고 그냥 전진을 한다.

 

 

4번 지방도로를 지하통로를 통해 건넌 후 등로 좌측의 능선 진입로에 있는 안내판과 플랭카드가 있는 곳을 통해 능선으로 오른다.

잠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무명봉에 오르고 그곳 정상에서 바라보는 금강아파트와 칠선리쪽 마을이 아름답다.

민가 옆을 통해 마을 한가운데로 나 있는 시멘트 임도를 타고 반대쪽 마을로 걸어가니 다시 능선으로 오르는 진입로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해 다시 원기맥 등로로 복귀한다.

 

 

원기맥길에 복귀한 뒤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우측 비닐하우스 뒷편으로 소나무 군락지가 보이고 그 옆으로 기맥 계단이 보인다.

그곳 계단을 타고 내려 와 지나는 4번 지방도로를 건너는 지하통로도 보이는 시간이기에 그곳을 타고 진행하지 못한 아쉬움이 묻어 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나고 나면 늘 이렇게 아쉽고 안타까운 시간인 것을 ...

아쉬움을 뒤로 남기고 이제부터 다시 정상 등로를 찾아 용당정까지 무탈하게 진행할 것을 다짐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옆지기에게 전화를 하니 애마를 몰고 달려와 준다는 소식에 조금은 힘을 얻어 본다.

 

 

마을을 지나 주능선에 오르니 다시 오르지 못했던 마루금이 부르고 더 진행하지 못하고 뒤돌아 본다.

이 산객이 걸어 진행한 시멘트 포장도로가 좌측에 선명하게 자리하고 그 도로 양쪽으로는 황금 들판으로 변해가는 풍경도 이색적으로 들어 온다.

그 우측으로 나즈막한 산줄기가 보이는데 그 산줄기가 바로 기맥 마루금인데 그 마루금을 약 1 Km 정도 놓치고 말았다.

우측 능선을 통해 걸어 진행하면 이곳으로 올 것이다.

 

 

다시 아쉬움을 달래고 계속 앞으로 걸어 진행하니 넓고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어느 방향인지 헷깔려 하다가 금새 좌측 등로를 타고 정상적으로 잘 진행을 한다.

하지만 우측에 있는 성주산을 잠시 들렸다 왔으면 좋으련만 그때엔 그것을 생각지도 못하고 내려 와서야 아쉬움이 짙게 남아 있는 시간이 되였다.

넓은 임도를 타고 오르니 체육시설들이 갖춰진 정상에 도착을 하고 한쪽에 서 있는 이정표를 만난다.

성주산까지 0.18 Km 그리고 왕제산까지는 2.0 Km란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인데 혹시 이곳이 보르메산은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지도상으로는 아닌듯 하다.

 

 

학생 한명이 운동을 하고 있는 그 정상에서 주위 풍경을 잠시 둘러 본 후 다시 마지막 산줄기를 확인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산에서 많은 밤을 줍고 내려가는 아낙네를 만나 인사 나누고 내려가니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 산객은 좌측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한다.

하지만 금새 우측 임도와 다시 만나는데 살펴보니 같은 임도처럼 보였다.

바로 등로 좌측에 민가 한채를 두고 육교같은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예쁜 꽃이 피어 있는 선인장 밭이 나타나는데 자주 볼 수 없는 모습에 잠시 들여다 보고 출발한다.

 

 

그 선인장 밭을 지나 계속 전진하니 밭과 무궁화 꽃길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니 넓은 공터에 잡풀만 가득 자란 무심한 장소도 나타난다.

어렵게 그 잡풀들을 헤치고 계속 진행하다 잠시 뒤돌아 보니 비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온 마루금과 민가 그리고 밭들이 한눈에 들어 온다.

이제 이 금북기맥도 그 산줄기를 다하고 서해바다로 빠질 시간이 다 되어 가니 급격히 산세를 낮추고 인간 세상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는가 보다.

 

 

계속 전진하니 잡풀이 무성한 공터 끝자락은 절개지로 이뤄져 더 이상 진행 할 수가 없어 다시 뒤돌아 나와 이제는 좌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 보니 그곳도 정상 등로가 아닌듯 잡목과 잡풀만이 가득 자라 이 산객을 맞이해 준다.

어렵게 그 잡풀 구간을 빠져 나가 도로로 내려가니 커다란 원수1리 이정석이 서 있다.

원수리는 원래 물가의 동쪽에 있으므로 수동이라 부르던 지역인데 1947년 동명 변경에 따라 원모와 수여의 이름을 따서 원수동이라 하였다.

온양방씨가 집성촌을 이루던 마을이다.

그리고 밀양박씨가 개척한 지역이다.

이렇게 또한 알지 못했던 마을을 알게 되는 시간이다.

 

 

그곳 원수리 이정석을 지나 몇발자국 걸어가니 4차선 도로가 나타나고 조심하며 건너기 직전 좌측을 바라보니 용당정 뒷편에 보이던 LH 아파트들이 보인다.

다시 도로를 건너 골목을 통해 진행하니 이제 용당정으로 통하는 용당체육공원 앞 2차선 도로에 도착을 한다.

이제 정말 마지막 발걸음만 남겨 둔 시간이기에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2차선 지방도로에서 금새 용당체육공원이라 적혀 있는 안내판을 만나 그곳 문을 통해 마지막 의식을 치르기 위해 통과해 본다.

많은 산행을 하였지만 오늘 따라 가슴속 깊이 울려 나오는 떨림은 왜 이리 강렬한지 모르겠다.

아마도 너무나 어렵게 진행한 마루금 걷기이기에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용당체육공원 간판을 통해 들어가니 계단이 이어지고 그 계단을 타고 끝까지 오르니 드디어 그토록 그리움으로 만나보고 싶었던 6각정자의 용당정을 만난다.

뜨거워진 가슴으로 사진에 담은 후 주위를 돌아가며 둘러 본 후 다시 계단ㅇ늘 타고 마지막 발걸음을 그 용당정 정자 위로 옮겨 본다.

두어명의 여행객이 있었지만 느끼지도 못하고 만세를 부르며 즐거워 하니 몰골도 이상한 사람이 산도 없는 곳에서 등산복 차림으로 만세를 부르니 이상한 듯 바라 본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분위기를 느끼지만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제 금북기맥 마지막 8각정에 올라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빠져 버린 바다와 그 바다 건너 다시 올라야 할 금남기맥 마지막 봉우리를 살펴 본다.

요즈음 가장 자주 들리는 군산 그리고 또 올라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자주 올려다 보는 금남기맥 마루금이기에 감회가 남다르다.

저곳에 올라 오늘을 추억하는 시간은 또 어떤 느낌과 감회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인지...

가장 무더운 날씨에 웃자란 잡목을 헤치고 어렵게 도착한 용당정이기에 더욱 그 의미가 있는 시간으로 남겨 본다.

 

 

이제 서해바다쪽을 돌아 본 후 장항 남쪽의 금강 및 서해바다와 맞닿아 있는 풍경을 돌아 본다.

장항항과 등대 그리고 바다와 면해 있는 풍경이 아름답기만 하다.

내일이 풍성한 추석 명절이기에 더욱 아름답고 황홀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그 아쉬움을 뒤로 하고 금북기맥 마지막을 마무리 한다.

 

 

배낭 정리 후 셀카를 작동시켜 마지막으로 증명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때마침 옆지기가 도착했다고 연락이 오고 그렇게 또 하나의 맥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함을 자축해 본다.

용담체육공원 입구로 내려가 옆지기를 만나 장항읍내에서 작은 목용탕을 발견하여 몸을 닦은 후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대천으로 올라가 잠시 손님을 만난 뒤 가족들을 위한 회를 준비해 시골집으로 복귀한 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건강하시던 아버님이 쓰러져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고 그 슬품에 언제 다시 산으로 오를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이 되였다.

5개월 전 고통속에 보내 드렸던 어머님에 대한 슬품이 끝나기도 전에 아버님마저 이렇게 누워 계시니 많은 불효를 저지른 것은 아닌지 큰 반성과 자책으로 지새우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작은 희망마저 사라지고 그저 편안하게 보내 드려야 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니 차라리 마음의 평온이 찾아 오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저 고통 없는 세상에서 어머님과 함께 영면하시길 빌어 드릴 뿐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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