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산행(완료)/낙남정맥(완료)

낙남정맥 제1구간 거림에서 고운동재까지 산행으로 1백두대간 9정맥 산행을 마무리한 산행 후기

칠갑산 사랑 2012. 5. 27.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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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남도 함양군과 산청군 그리고 하동군의 낙남정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2년 05월 27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약간의 구름과 박무가 있었으며 무척 무더웠던 한여름 날씨

산행온도 : 영상 18도에서 영상 29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 거림공원지킴터-지리03=01 이정목-지리03=02 이정목-이정표(거림 1.3 Km 및 세석대피소 4.7 Km)-

               지리 03=03 이정목-긴급통신중계기-지리 03=04 이정목-이정표(거림 2.4 Km 및 세석대피소 3.6 Km)-지리 03=05 이정목-

               천팔교-지리 03=06 이정목-황제펭귄바위-북해도교-이정표(거림 3.2 Km 및 세석대피소 2.8 Km)-지리 03=07 이정목-

               이정표(거림 3.9 Km 및 세석대피소 2.1 Km)-지리 03=08 이정목-남해 삼천포 안내판-지리 03=09 이정목-

               이정표(거림 4.7 Km 및 세석대피소 1.3 Km)-세석교-지리 03=10 이정목-거림삼거리 이정표(의신마을과 청학동 갈림

               이정표)-지리 02=17 이정목-세석천 식수대-세석대피소-세석갈림길-세석자연관찰로-헬기장-영신봉 이정표(낙남정맥

               분기봉)-영신봉 정상-영신봉 이정표-넓은 공터-개코원숭이바위-너럭바위-음양수-이정표(쌍계사 14.8 Km 및

               청학동 8.3 Km)-전망바위-이정표(세석대피소 2.2 Km, 삼신봉 5.3 Km 및 의신마을 6.9 Km)-이정표(쌍계사 13.8 Km 및

               청학동 7.3 Km)-석문-1321봉 전망바위-이정표(쌍계사 13.2 Km 및 청학동 6.7 Km 그리고 세석대피소 3.3 Km))-

               이정표(쌍계사 12.6 Km, 청학동 6.1 Km, 세석대피소 3.9 Km)-1237봉 헬기장 이정표(쌍계사 12.1 Km, 청학동 5.6 Km, 

               세석대피소 4.4 Km))-이정표(청학동 5.2 Km, 세석대피소 4.8 Km)-태양열 발전기 공터-이정표(청학동 4.5 Km, 

               세석대피소 5.5 Km)-1278봉-이정표(청학동 3.8 Km, 세석대피소 6.2 Km)-불난지역-추모비-삼신봉(1284봉)-암봉지대-

               삼신봉 이정표(청학동 2.5 Km, 세석대피소 7.5 Km, 쌍계사 8.9 Km)-청학동 갈림 삼거리 이정표(청학동 마을 2.0 Km, 

               세석대피소 8.0 Km 및 삼신봉 0.5 Km)-출입금지 팻말-두꺼비 바위-외삼신봉(1288.4봉)-암릉로프구간-전망바위-산죽지대-

               묵계치 묵은 헬기장-산죽지대-991봉-이장된 묘지 지대-고운동재-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9.60 Km (접속구간 06.50 Km, 거림공원지킴터에서 영신봉까지)

산행시간 : 꾸준히 그러나 봉우리와 전망바위에서 사진찍고 쉬어가며 여유있게 9시간 55분 (03시 15분 부터 13시 10분까지)

교통편 : 애마 이용해 거림 주차장 도착 (주차장비 5,000.-)

            고운동재에서 거림주차장까지 덕산 택시 이용(30,000.- 원)

            거림주차장에서 애마로 서울 복귀

 

낙남정맥이란?

지리산 세석평전을 품고 있는 영신봉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내려온 마루금이 삼신봉에서 외삼신봉을 지나 묵계치와 고운재를 거쳐 옥산까지의 산줄기는 서쪽 섬진강으로 그 물줄기를 가르고 있으나 이후 산줄기는 인위적으로 잘라 만든 진양호 물이 사천만으로 흘러들게 만든 거대한 가화강을 지나 백운산 대곡산 무량산 여항산 서북산 광려산 대산 무학산 천주산 봉림산 대암산 용제봉 김해의 신어산을 거쳐 낙동강하구인 김해시 매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그 긴 줄기를 낙동강에 묻는 약 224 Km의 산줄기를 낙남정맥이라 한다.

이 산줄기에는 특이하게도 인공 호수와 강줄기가 마루금을 가르고 있기에 피치 못하게 가화강을 건너야 하는 산자분수령과는 다른 산행이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1백두대간 9정맥 완주 일지

백두대간 : 2007년 02월 - 2008년 09월            도상거리 670 Km

한북정맥 : 2008년 10월 - 2012년 05월            도상거리 220 Km (신한북정맥 40 Km 별도)

한남금북 : 2010년 01월 - 2010년 05월            도상거리 152 Km

금남호남 : 2010년 01월 - 2010년 01월            도상거리 64 Km

금남정맥 : 2010년 01월 - 2010년 06월            도상거리 133 Km

금북정맥 : 2010년 06월 - 2010년 12월            도상거리 280 Km

한남정맥 : 2010년 06월 - 2011년 01월            도상거리 190 Km

호남정맥 : 2010년 09월 - 2011년 10월            도상거리 462 Km

낙동정맥 : 2011년 02월 - 2012년 02월            도상거리 397 Km

낙남정맥 : 2011년 11월 - 2012년 05월            도상거리 224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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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두대간과 9정맥 (총 5년 3개월 간)              총 도상거리 2832 Km

 

 

그 어떤 느낌도 없었지만 무탈하게 완주한 1백두대간과 9정맥 산행의 추억을 몸과 마음으로 뒤돌아 본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그토록 중단없이 오르고 오르며 왜 이렇게 올랴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질문을 해 왔지만 아직도 그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모른채 이름도 거창한 1백두대간 9정맥의 마지막 산행을 위해 집을 나서는 시간은 그 어느때보다도 더 차분하게 아무런 느낌도 없이 출발하는 순간이다.

석가탄신일이 묶여 3일 연휴가 시작되는 시기이기에 생각보다 많이 막히는 고속도로에 대한 정보를 들으며 가능하면 늦게 출발하려 애써 보지만 역시나 밤 10시를 넘기고서 부터는 참지 못하고 천천히 산행 준비를 해 본다.

2006년의 가장 무더웠던 날씨였던 8월 5일부터 아무것도 모른채 그저 다른 산친구들이 오른다기에 따라 나섰던 백두대간 댓재에서 이기령구간에서 산행에 대한 새로운 느낌과 우리나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면서부터 맥 잇기 산행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생겼으며 그로부터 빠지기 시작한 산행에서 오늘의 1대간 9정맥 산행을 졸업하는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보내게 되였다.

정식으로 1백두대간 9정맥에 대한 동경은 이 산객이 2007년 2월 9일부터 리딩한 백두대간 산행에서부터 시작되였고 2009년 12월 말부터 이 산객이 주도적으로 만들었던 산악회에 문제가 생기면서부터 홀로 오르며 그 계획된 맥 잇기 산행에 대해 더욱 깊이 빠져 들면서 오늘의 이 영광된 시간도 맞이하게 된 듯 하다.

 

오늘 이 1백두대간과 9정맥 산행을 마무리 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 구간을 산행하며 많은 의미와 많은 생각 그리고 희열에 미친듯 날아갈것 같았던 분위기는 실제적으로 산행을 하면서 많은 반성과 아쉬움으로 고통스런 시간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스스로에게 약속하고 실천하려고 의미를 부여했던 산행을 아무 탈없이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는 감사하고 있지만 이 산행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자랑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실천하려고 몸부림 쳤는지를 생각해보니 괜시리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시간이 되였던 것이다. 

그 누구에게 자랑하고픈 산행이 아닌 내 스스로의 건강과 활력 넘치는 삶을 위해 선택한 수많은 생활중 하나가 전부였던 이 산행의 큰 획을 긋는 시간이지만 가장 소중한 가족을 잃고 또 큰 슬품을 맛본 후 오르는 시간은 역시나 차분하게 나 스스로를 뒤돌아 보는 시간으로 남겨졌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희미한 답을 얻은듯 하여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시간으로 남겨지길 바랄뿐이다.

이제부터 살아가는 시간은 조금 더 자연을 닮아 배려하고 기다리며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서두르지 않는 삶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다짐을 했던 마지막 산행의 시간으로 남겨 본다.

 

어둠속에 들리는 거림계곡의 물소리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이름모를 산새소리들을 들으며 무심으로 걷다보니 바람결에 스치는 산죽잎이 스치며 내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도 머릿결이 솟아오르며 등줄기에는 식은 땀이 흐르는 시간이 지나고 서서히 어둠이 사라지며 여명의 빛이 스며 들기 시작한다.

많은 추억과 이야기를 남겼던 세석대피소에 오르니 지난밤 밤을 지새운 수많은 비박객들이 아직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질 못하고 그 밝아오는 빛에 얼굴을 찌푸리며 지난밤의 고통을 되새기는 듯 하다.

고통의 이유는 모두 다르겠지만 역시나 집을 나오면 개고생이란 단어가 떠오르는 것은 어쩐 일인지.

그렇게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지만 너무나 다른 두 얼굴을 바라보며 1백두대간 9정맥 산행의 마지막 구간인 지리산 영신봉 정상의 암봉에 앉아 밝아 오는 태양을 바라보는 시간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회상과 상념이 머릿속을 헤집으며 잠시 혼란속에 빠져 들지만 금새 대자연의 평화로움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평상심을 되찾는 시간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한 1백두대간과 9정맥 산행을 다시 그 지리산 영신봉에서 마무리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4개월 전 어머님의 병환으로 함께 지내게 된 아버님과 5월 26일 저녁을 먹으며 지리산 거림계곡으로 휴식을 떠나자고 이야기를 꺼내니 너무나 멀어 힘들다며 우리들이나 다녀오라 말씀 하신다.

원래 이 산객이 1대간 9정맥을 마치는 날 가족 모두가 함께 내려가 축하해주고 하룻밤 묵어 오기로 했지만 갑작스런 어머님의 병환과 사망으로 인해 4개월 전부터 아버님도 함께 생활하게 돼 계획대로 진행하기 어렵게 되였다.

저녁 식사 후 덕산 택시에 전화를 하니 거리도 짧은데 야간 운행이라며 5천원을 더 요구하고 큰 돈은 아니지만 너무 야박한 상술에 기분이 상해 예약을 포기하고 고속도로가 조금은 한산해진 틈을 타 밤 11시 30여분에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홀로 집에서 출발해 거림으로 향한다.

새벽 3쯤 무탈하게 거림에 도착을 하지만 어둠속에 공사중이라 어딘지 모르게 낯설게만 느껴지고 두어바퀴 돌아 본 후 어렵게 소형차량 주차장에 도착해 산행 준비 후 그 옆에 세워진 지리산 공비토벌루트 안내판을 담아보는 것으로 5년하고도 3개월간 이어져 온 1대간 9정맥의 실질적인 마지막 산행을 시작한다.

 

이곳 거림골과 남부능선은 보이는 아름다움과는 달리 한국전쟁 중 토벌대와 빨치산의 격전지로 분단의 아픈 현실을 간직한 우리 근대사의 비운의 현장이기도 하다.
1952년 1월 토벌대인 수도사단이 빨치산을 대성골에 몰아넣고 10여 일 동안 엄청난 화력공세를 폈음에도 불구하고 망실공비 정순덕이 산비탈을 넘어가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최후의 빨치산으로 남게 된 계기가 된 곳이 거림골이다.

그는 아마도 남부능선을 거쳐 거림골로 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림골은 또 남부군 이태가 잠시 머물렀던 기록도 있다.

또 1951년 이전까지 빨치산들에게 안전지대나 다름없었던 도장골과 자빠진골(일명 엎어진뜰) 또한 모두 거림골에서 가지를 벌린 골짜기들이지만 6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거림골과 남부능선에는 당시의 상흔은 오간 데 없고 신록이 우거진 초록의 자연과 시원한 조망이 산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곳 거림이 있는 지명은 내대리로서 골안이 넓다하여 한찰이라 불리다가 한차리의 안쪽이라 내대라고 전해지는 곳이다.

그 내대리 안쪽에 있는 거림은 이름처럼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하게 계곡을 메우고 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군수용으로 많이 베어졌고 8·15광복 후에는 땔감으로 마구 베어져 한때 벌거숭이 계곡이 되기도 했다.
계곡을 따라 난 등산로는 세석평전으로 가는 가장 가깝고 완만한 길이고 5월 하순부터 6월 초순까지 등산로를 따라 철쭉이 만발한다.

지류인 자빠진골과 도장골의 경관이 빼어나 본류는 상대적으로 한적한 편인 곳이기도 하다.

 

어둠속에 이 세석대피소까지 6.0 Km란 이정표를 찾지 못하고 오래전 담았던 사진을 꺼내 본다.

길상암 역시 오래전 들렸던 곳인데 그 이후로는 들릴 기회가 없었고 또 기회가 있었다 해도 들리지 않았던 사찰이 되어 버린 곳이다.

길상암은 길상사와는 완전히 다른 오래된 사찰로서 그 아래 근래에 세워진 성철스님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길상선사와도 다른 사찰이지만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알게 되였다.

그곳 길상암과 길상선사와는 달리 세석대피소까지 6.0 Km 남아 있다는 거리표시가 이 산객의 가슴속 깊이 파고들며 긴 하루를 열어 주리라 생각했지만 시작도 하기전에 안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넓은 임도를 타고 천천히 오르니 다리 하나가 나타나고 그 다리를 건너니 몇채의 민박집들이 즐비하게 줄지어 있으며 불빛을 밝히고 있다.

그 민박집 가운데 넓은 공터를 지나 오르니 사고위험지구란 안내판과 거림공원지킴터가 텅 빈채 서 있다.

그 공원지킴터 건물 앞을 통과하니 거대한 바위지대가 나타나고 곧이어 확연히 드러나는 넓은 등로를 타고 키 작은 산죽들이 펼쳐져 있다.

거대한 바위들과 산죽들이 등로 주위를 지키고 등롸 옆에서 들려오는 거림계곡의 청정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산객의 귓전을 깨끗히 정화시켜 주는 기분 좋은 새벽이지만 역시나 보이는 것이 없어 조금은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바위와 산죽지대를 타고 걸어가니 청아한 거림계곡 물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고 시원한 바람까지 제공하니 생각보다 산행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다. 

그렇게 진행하니 등로 옆에 지리 03-01이란 현위치 이정목이 서 있고 이 이정목은 세석대피소 근처까지 어둠속에 이 산객과 동행을 하는 착한 친구가 되였다.

다시 지리 03-02 현위치 이정목을 만나고 계산을 해 보니 아마도 500미터에 하나씩 설치된 느낌이다.

어둠속에 다시 거림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걸어 오르니 나무 데크 위에 고무가 깔린 인공 다리를 건너 금새 거림에서 1.3 Km 올라왔고 세석대피소까지 4.7 Km 남아 있다는 최초의 이정표를 만나 반갑게 사진 한장 남겨 본다.

 

현재 시간 새벽 3시 40여분, 거림주차장에서부터 1.3 Km 걸어 올라오는데 25분여 걸렸으니 잘하면 세석대피소 지나 촛대봉에서 일출 보는 것도 가능하리란 생각이다.

다시 산죽나무가 촘촘히 자라는 등로 옆에 거대한 소나무가 자리를 하고 있는 지역을 지나니 지리 03-03 현위치 이정목이 나타나고 이제 거림에서 1.5 Km 올라왔음을 알 수 있게 되였다.

이제 등로 우측으로는 거대한 바위 너덜지대가 널려 있고 안전 로프가 설치된 위에 탐방로 방향 표시가 되어 있고 다시 바위로 된 등로를 타고 걸어 본다.

다시 나타나는 빽빽한 산죽지대를 타고 오르니 작은 공터가 나타나며 긴급통신중계기가 서 있다.

 

긴급통신중계기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금새 지리 03-04 현위치 이정목을 지나고 곧이어 거림에서 2.4 Km 올라 왔고 세석대피소까지 3.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다시 이어지는 바위 너덜지대를 타고 넘어 산죽지대를 지나니 지리 03-05 현위치 이정목이 나타나고 벌써 거림에서 2.5 Km 를 걸어 왔음을 알게 된다.

다시 진행하니 안전로프가 매달려 있는 암릉지대를 오르고 금새 천팔교 다리 앞에 서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렇게 어둠속에 나타난 천팔교, 두어번 지나간 기억이 있지만 왜 천팔교란 이름이 붙어 있을까 궁금해 하면서도 그 뜻을 몰랐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그 이름의 유래나 뜻은 알길이 없다.

아쉬운 마음으로 그 다리를 건너 혹시나 하고 계곡 밑을 바라보지만 어둠으로 인해 보이는 것은 아무것고 없고 청아한 계곡물소리만 들린다.

그 천팔교를 지나니 지리 03-06 현위치 이정목이 나타나고 조금은 빠르게 오르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리 03-06 현위치 이정목을 지나니 철계단이 나타나고 그 철계단을 타고 오르니 묘하게 생긴 바위 사이로 나 있는 등로를 통과한다.

그 바위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니 꼭 황제펭귄 모습을 닮았다고 해 이름을 황제펭귄바위라고 불러 본다.

그곳을 지나 오르니 다시 다리 하나가 나타나는데 이곳 다리 이름은 북해도교이다.

북해도는 일본의 북쪽에 있는 거대한 섬 이름인데 왜 지리산에 순수한 우리나라 이름이 아닌 일본의 북쪽 섬 이름을 붙였을까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북해도교에 대한 의문을 가진 채 다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며 진행을 하니 금새 거림에서 3.2 Km 올라왔고 세석대피소까지는 2.8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난다.

현재 시간 4시 21분, 점점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이제 통나무 계단을 타고 오르니 지리 03-07이란 현위치 이정목을 만나고 계속 이어지는 가파라지는 오르막 된비알에 깔려 있는 통나무 계단을 타고 진행한다.

그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평이한 등로로 바뀌지만 등로 양쪽으로는 키 작은 산죽이 빼곡히 자라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바위로 된 정상부를 지나 나즈막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거림에서 3.9 Km 걸어 왔고 세석대피소까지는 이제 2.1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다시 이어지는 나무 계단을 타고 올라 진행하니 지리 03-08 현위치 이정목을 만나고 이름없는 나무 다리를 만나 건넌다.

다리 밑으로는 계곡물이 말라 건계곡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데 이제 서서히 여명이 밝아 오며 주위 사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나무 다리를 건너니 다시 짧은 철계단이 나타나고 나무다리가 다시 나타나는데 제법 긴 다리이다.

그 다리를 지나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남해 삼천포를 찾아보세요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지만 사진에는 지리의 주능선이 담겨져 있다.

이곳에서 잠시 배낭 내려 놓고 시원한 얼음물로 목을 축인 후 주위 풍경을 살펴 본다.

  

안내판 뒤로 돌아가니 여명이 밝아 오는 새벽 하늘아래 저 멀리 소나무 한그루가 우뚝 솟아 있고 그 뒤로 장쾌하게 남쪽으로 뻗어 있는 오늘 이 산객이 걸어 내려가야 할 낙남정맥 마루금이 펼쳐져 있다.

부드러운듯 이어져 있지만 걷다보면 얼마나 굴곡이 심한지 작은 빨래판처럼 느껴지고 또 왜 그리 산죽은 많은지 얼굴에 많은 상채기를 만든 후에나 고운동재로 내려 설 수 있었다.

남부능선을 타고 내려가면 그 한가운데에 삼신봉이 자리하고 그 우측으로 내삼신봉을 지나 불일폭포와 쌍계사로 이어지고 그 안쪽으로는 청학동이 자리하고 있다.

삼신봉 좌측으로는 오늘 이 산객이 끝까지 타고 내려가야 할 외삼신봉 넘어 고운동재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이제 헤드렌턴과 똑딱이 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DSLR 사진기를 목에 걸고 오르며 조금 더 자연의 풍경을 섬세하게 담아보려 노력해 본다.

 

그 남해 삼천포를 찾아 보세요란 안내판에서 멋진 조망을 즐긴 후 다시 길을 떠나 오르니 금새 지리 03-09 현위치 이정목이 서 있고 이제부터는 짙푸른 초록의 산하가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그곳을 지나니 등로에는 황톳빛 흙이 깔려있고 살펴보니 그 바닥에 바위를 깔기 위한 동사가 진행중이다.

군데 군데 공사중이란 안내판도 보이기 시작하는 여명의 빛이다.

그렇게 조금 더 오르니 등로 우측 저 멀리 공사 인부들이 잠을 청하는지 텐트같은 것이 쳐져 있고 잡다한 도구들도 너부러져 있다.

 

그곳을 지나니 등로 옆에는 거림에서 4.7 Km 올라왔고 세석대피소까지는 1.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곳을 지나자 다시 하나 다리가 나타나는데 이름이 세석교이다.

그 세석교로 오르니 그 다리 밑으로 청아힌 계곡물이 흐르고 그 위 저 숲속에는 부부인듯한 두사람이 새벽 산책을 나왔는지 계곡가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 계곡을 사진에 담지만 역시나 빛이 적어 흐릿하게 나와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밝아 오는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음에 좋은 새벽 시간이다.

 

그 세석교를 지나 부드러운 황토흑ㄹ이 깔린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더욱 선명해진 짙초록 자연이 반겨주고 그 모습에 마음과는 달리 발걸음이 자꾸만 늦어지고 있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지리 03-10 현위치 이정목이 서 있고 다시 키 작은 산죽들이 등로 주위에 널려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 산죽을 바라보며 징그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시간이다.

통나무 계단을 타고 천천히 오르니 등로에 제법 많은 양이 철쭉꽃들이 떨어져 있고 위를 바라보니 제법 예쁜 철쭉꽃이 이제 막 만개를 하면서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오랫만에 만나는 철쭉꽃에 미소가 가시지 않는 얼굴에 몸짓이다.

 

등로 옆에 피어 있는 제법 멋진 철쭉꽃에 빠져 잠시 걸음 멈추고 많은 사진 남기고 진행하다 보니 하나 둘 거림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이 산객을 지나쳐 오르고 그 등산객들에게 길을 내 준채 조금 더 오르니 금새 의신마을과 청학동 갈림 삼거리 이정표에 도착을 한다.

세석대피소를 지나 영신봉에 오른 후 비법정 등산로로 묶여 있는 정상 코스로 진행하지 못하고 다시 뒤돌아 내려와 이곳에서 등로 좌측인 의신마을과 청학동 방향으로 가야 할 갈림 삼거리인 곳이다.

의신마을은 경남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소재 의신마을은 하늘아래 첫 마을로 잘 알려진 곳으로 지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서쪽으로는 남해와 섬진강을 북동쪽으로는 삼남지방을 연결하던 벽소령이 있어 교통의 요충지이다.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산지인 의신사 부도, 서산대사가 득도한 원통암, 그리고 조상의 삶과 슬픔을 고스란히 담은 지리산역사관, 빨치산루트, 의병묘, 제사를 지내며 고유의 전통을 배우는 고로쇠약수제, 당산제 등 의신마을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생생히 살아 숨쉬는 곳이다.

이제 세석대피소까지는 500미터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갑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의신마을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철쭉꽃 터널을 지나다 보니 자연히 발걸음이 늦어지고 많은 사진을 남기며 오르고 있다. 

등로 우측으로는 드높은 촛대봉이 솟아 있고 그 위 하늘을 올려다 보니 시간적으로는 이미 일출이 시작되였을 시간처럼 느껴지는데 해는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오르니 지리 02-17 현위치 이정목이 나타나고 살펴보니 이제 이정목의 방향과 의미도 거림에서 올라오며 만났던 이정목과는 다름을 피부로 느끼는 시간이다.

그림같은 철쭉터널을 지나 나무데크로 된 등로를 따르니 이제 등로 앞 우측으로는 제법 그럴듯한 세석평전이 펼쳐지고 등로 우측으로는 음용식수대가 있기에 들어가 빈 물통을 채우고 나오는데 주위에는 너무나 많은 비박 등산객들로 인해 조금은 복잡하고 시끄러우며 지독한 음식 냄새에 조금은 실망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세석대피소 바로 밑에도 음용식수대가 있지만 가뭄이 들면 물이 나오지 않고 특히나 오늘처럼 너무나 많은 비박 등산객들이 묶는 날이면 식수 한통 받기도 힘이 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이곳에서 식수를 준비한 것은 잘 한 일인듯 하다.

 

다시 식수대를 나와 넓은 임도를 타고 오르니 등로 앞 저 멀리 세석대피소가 올려다 보이고 그 대피소 주위에는 수많은 등산객들이 이제 막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등로를 타고 조금 더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식수대가 보이지만 역시나 너무나 많은 등산객들로 발디딜 틈도 없이 붐비고 식수 한모금 마시기도 힘이 든다.

그곳을 지나 오르며 바라다 보니 등로 우측의 세석평전이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풍경으로 새벽을 열고 있다.

지리산 종주와 백두대간 산행을 하면서 두어번 머물렀던 세석대피소이기에 낯설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현재 지리산 국립공원 대피소는 모두 8개소 인데 그 8개소는 노고단, 피아골, 연하천, 벽소령, 세석, 장터목, 로타리, 치밭목이다.

그 중 95년에 세석대피소, 96년에 장터목대피소, 97년 벽소령대피소가 완성 되었으며 이 세곳은 주 능선상에 있는 최신식 건물이며 크기도 크기에 많은 등산객들로 붐비는 대피소들이다.

이 중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세석 대피소는 통제기간과 맞물려 5월의 진달래와 6월의 철쭉을 보기 위해 탐방객이 가장 많이 모이며 오늘도 역시나 대피소내의 공간도 모자라 바깥까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 그 인기를 실감하는 시간이다.

 

등로를 가득 메운 후 아침 식사하기에 바쁜 비박꾼들 사이를 헤치고 세석대피소쪽으로 오르니 오르는 길목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한 반찬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시간, 어렵게 세석대피소 위로 오르며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세석 평전을 바라보니 진달래꽃은 이미 지고 이제 막 철쭉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며 조금씩 연분홍빛 평원으로 변해가고 있다.

지리산의 심장부 세석평전은 사방으로 길고 웅장한 계곡을 거느리고 있는데 소와 폭포가 연이어진 한신계곡, 빨치산의 아픔이 현대사로 남아 있는 대성골, 이름조차 거창한 거림골, 그리고 인적이 드문 비경의 골짜기 도장골이 모두 세석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들로서 세석으로 가는 최단거리 코스는 거림골이다.
철쭉으로 온통 뒤덮는 세석평전의 드넓은 평원은 5월초부터 6월말까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며 한바탕 흐드러진 잔치가 벌어진다. 
핏빛처럼 선연하거나 처녀의 속살처럼 투명한 분홍빛의 철쭉이 바다처럼 드넓게 펼쳐지는 절정기에는 산악인들의 물결로 세석평전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인데 요즈음이 바로 그 철쭉철이 아닌가 하는 시기이다. 

세석평전은 촛대봉(1704봉)과 연신봉(1652봉) 사이의 30여 만평에 달하는 광활한 고산평원 지대로 5월초에서 6월초까지 약 한달 동안 수만 그루의 진달래와 철쭉이 번갈아 일시에 활짝 피어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아름다움이 깊이 묻어나느 세석평전을 바라보며 진행하는 산행 역시 명품 산행이 아닌가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이제 세석평전 앞 벤취쪽으로 오르니 건물 내 벤취에는 수많은 등산객들로 붐비며 아침 식사와 휴식을 취하고 있지만 대피소 바깥쪽에 준비된 벤취는 출입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어 금줄이 쳐져 있다.

조금은 의아한 생각을 해 보지만 공사중인 모양으로 생각하고 방금 전 올라 온 거림골쪽 조망을 즐겨 본다.

식수대 지나 드넓은 헬기장이 내려다 보이고 방금 전 이 산객이 어렵게 올라온 거림골의 깊은 골짜기가 아스라히 내려다 보이며 그 끝자락엔 삼신봉에서 갈라져 쌍계사쪽으로 흘러 내린 내삼신봉쪽 봉우리가 박무속에 가물 거린다.

언제 올라 만나고 바라봐도 아름답고 환상의 조망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등산객들의 가쁜 숨소리와 반찬들이 뒤섞여 뿜어내는 야릇한 향기로 인해 오랫동안 세석대피소에 머물지 못하고 재빨리 촛대봉 오르는 등로를 타고 빠져 나온다.

처음에는 영신봉쪽으로 곧바로 올라가 보랴고 하였지만 아직도 올라오지 않은 일출에 대한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촛대봉쪽으로 바져 나온 것이다.

하지만 금새 일출은 포기해야 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은 후 천천히 진행하며 지나온 세석대피소와 거림골쪽 풍경을 바라보니 바로 앞 진달래 나무에 남아 있는 몇송이의 진홍빛 진달래꽃이 이 산객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장터목대피소까지 3.4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오르니 다시 하얀 산철쭉이 곱게 피어 산객의 발길을 가볍게 만들어 준다.

 

이제 세석갈림 이정표에 도착해 직진의 백무동 방향과 우측으로 장터목대피소를 버리고 좌측의 영신봉쪽으로 방향을 돌려 진행한다.

제법 무성한 산죽밭을 타고 그 가운데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다시 진행방향 반대쪽으로 아름답게 펼쳐진 세석평전이 아쉬움을 달래고 그 우측 아래로 서 있는 세석대피소가 다음을 기약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주위 조망을 하면서 조금 더 진행해 오르니 등로 좌측 아래로 방금 전 들렸다 올라온 세석대피소의 지붕이 내려다 보이고 그곳을 막 지난 전망바위에서 조금은 늦은 찬란한 아침 일출을 맞이한다. 

늘 만나는 일출이지만 오늘은 특별한 의미와 기분으로 맞이하는 일출로 기억되는 시간이다.

 

촛대봉을 우측에 두고 마루금 좌측으로 떠 오른 일출이 이 산객의 가슴으로 파고 들며 그동안 새벽에 만났던 일출들과 오버랩 되며 새로운 태양으로 남겨진다.

늘 하루에 한번씩 만나는 일출이며 태양이건만 왜 그리 산상에서 만나는 태양은 특별한 의미로 가슴에 남겨지는지...

계속 이어지는 촛대봉 아래의 세석평전을 바라보고 우측으로 세석대피소와 거림골 그리고 저 멀리 낙남정맥의 삼신봉 방향으로 이어진 남부 능선을 바라보니 환상 그자체이다.

이제 영신봉쪽으로 오르니 저 멀리 바위 위에 인공안테나가 서 있고 그 좌측 아래로는 풍력발전기가 쉴새없이 돌아가고 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산죽밭을 지나 세석자연관찰로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좌측의 세석대피소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등로를 타고 오르니 곧바로 헬기장이 나타나는데 그곳에도 역시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등산객들이 자리 정리를 하면서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분주하다.

그 헬기장 위로 올려다 보이는 암봉의 영신봉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뜻 깊은 산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는 듯 하다.

 

그 헬기장을 넘어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곱게 피어난 분홍빛 철쭉이 다시 산객의 발길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눠준다.

그 철쭉꽃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오르니 전망 바위가 보이고 그곳에 올라 지나온 세석대피소와 그 건너 세석평전 위로 솟아 있는 암봉의 촛대봉을 올려다 보니 그 좌측 능선에서 막 올라온 찬란한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시루봉에서 왼편으로 보면 세석고원의 광활함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붉게 물든 철쭉을 보면 촛대봉에 이를 수 있다.

촛대봉에서 보이는 세석의 묘미는 시의 신비가 느껴지는 듯 하는데 촛대봉은 고산대 특유의 황량함이 감도는 곳으로 불그스름한 철쭉봉오리들이  철쭉의 향연임을 암시한다.

일명 세석골로도 구분되어져 불리는 골을 따라 시루봉, 촛대봉, 세석코스를 등반하는 묘미는 색다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촛대봉 시루봉 구간에서 보는 천왕봉의 웅장함과 발아래 도장골의 아름다움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으로 많은 추억과 발자취를 남겼던 촛대봉을 들리지 못하고 떠나는 마음이 아쉽기만 하다.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계속 나타나는 전망바위에서 뒤돌아 보며 촛대봉과 그 좌측 능선으로 떠 오른 일출을 감상해 본다.

조금 늦으면 어떻고 또 쉬어가면 어떨것인가 그저 마음이 닿는대로 발길이 움직이는 대로 걸어가면 될 것을...

이제 등로 좌측으로는 뚜렷하게 남부능선을 타고 이제부터 걸어가야 할 저 멀리 삼신봉과 외삼신봉 마루금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그렇게 주위 풍경을 조망하며 천천히 오르니 금새 영신봉 정상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 도착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낙남정맥의 분기봉이며 청학동과 남부능선으로 내려가는 시발점인 영신봉에 서서 1백두대간 9정맥을 마무리한다는 사실에 믿기지 않는 설레임이 다가온다.

  

영신봉 이정표에 서서 제일 먼저 내려가야 할 남부능선을 타고 저 아래 삼신봉과 외삼신봉 그리고 우측으로 꺽여 흘러가는 내삼신봉을 바라보니 가까운듯 하지만 왜 그리 멀게 느껴지던지 아직도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히는듯 하다.

늘 이른봄과 눈 쌓인 겨울에 올라 황량함을 맛보곤 하였는데 오늘은 짙푸른 초록의 산하위에 생명이 활력을 느끼며 푸르게 푸르게 변해가는 풍경에 이 산객의 마음까지 푸르게 변해가고 있다.

등로 우측의 영신봉 암봉쪽으로는 자유인에서 붙여 놓은 백두대간 영신봉 1691.9봉이란 이정표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이곳에서 잠시 망설이지만 역시나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우측으로 쳐진 금줄을 넘어 푸른 초원의 풀빛을 걸어 영신봉 정상의 암봉으로 오른다.

 

그 영신봉 정상의 암봉으로 오르니 이곳에도 역시 많은 등산객들이 밤을 지샜는지 여기저기 잠자리가 보이고 이제사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풍경이 그리 반갑지는 않는 이유는 무엇이였는지...

그곳 영신봉 정상의 제일 높은 암봉에 올라 방금 전 떠오른 태양이 이글거리는 동쪽을 바라보니 그 태양 아래 지리산 천왕봉이 우뚝 하늘을 향애 솟아 있고 그 좌측 저 멀리 중봉이 그 옛추억을 더듬으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그 우측으로는 지리 주능선을 타고 내려오며 백두대간 마루금을 형성하고 그 마루금을 타고 출렁이는 파도처럼 이 산객의 가슴을 채우고 있지만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남아 있다.

 

바로 앞에 솟아 있는 암봉 지나 서쪽으로는 덕평봉과 명성봉 지나 저 멀리 사람 엉덩이 모양을 하고 있는 반야봉이 또 다음을 약속하며 그리움을 배가 시키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자주 오르며 환상의 풍경과 조망에 감탄했던 반야봉, 이제 9정맥까지 마무리하고 나면 유유자적하며 저곳에 올라 일몰을 바라보며 독주 한잔 마실 수 있기를 바래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좌측으로는 희미하게 노고단이 가물거리며 다시 한번의 재회를 속삭이고 있다.

비박 배낭을 짊어지고 오르며 서산으로 지는 해를 등지고 바라보는 영신봉의 모습은 또 어떨까 갑자기 궁금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영신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북쪽의 풍경 역시 환상이다.

가까이에 있는 창암산과 금대산 지나 삼봉산과 법화산이 가물거리고 그 넘어 함양의 진산들인 황석산이 몇년전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

추운 겨울날 홀로 내려가 거망 금원 기백 그리고 황석산을 돌아 내려오며 입안에 단내가 나도록 걸었던 시간이 벌써 저 멀리 깊은 과거가 되어 버렸다.

가을날 고운 단풍이지면 계관산에 올라 함양의 공원에 들렸다 올 수 있기를 바래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저 출렁이는 산그리메가 가슴에 와 닿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아침으로 남겨질 것이다.

 

많은 시간 영신봉 정상의 암봉에서 주위 조망을 마치고 그 암봉 정상에서 셀카 놀이로 증명 사진 몇장 남긴 후 고운 철쭉꽃이 만발한 등로를 타고 조심스레 정상 등로 옆 영신봉 정상 이정표로 내려 온다.

그곳에서 다시 금줄이 쳐진 진행 방향을 내려다 보며 사진 몇장 남기니 이제 이곳 등로를 타고 지나다니는 등산객이 없는 틈을 타 조심스레 금줄을 넘어 남부 능선을 따라 내려가니 넓은 공터에 이제 막 식재된 키 작은 나무들이 보인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해도 들어가면 안되는 금줄의 영역을 넘어 진행하기에 등줄기에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조금은 빠른 걸음걸이로 내려가 본다.

저 멀리 앞으로 여전히 삼신봉과 외삼신봉 그리고 내삼신봉이 아련히 가물거린다.

 

금줄을 넘고 나무가 식재된 공터를 지나 내려가다 뒤돌아 보니 정상 등로로 이어지는 등로에 큰 바위들이 너부러진 형태로 널려 있다.

다시 남쪽으로는 진행해야 할 남부 능선의 끝자락에 삼신봉과 좌우측으로 외삼신봉 그리고 내삼신봉이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아 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암봉과 그 암봉 넘어 봉우리 하나를 넣어 담아 보는 풍경도 생각보다 멋지고 탄성이 절로 나오는 시간이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넓은 너럭바위가 나타나고 그 너럭바위 우측 끝자락에 큰 바위 하나가 서 있다.

그 서 있는 바위와 너럭바위 사이의 공간으로 저 멀리 서쪽으로 지리산 주능선과 그끝자락에 반야봉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아침부터 그저 탄성만 지르고 있다.

 

그 너럭바위에서 또 잠시 시간을 지체한 후 내려가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온 바위가 코주부를 닮았는지 아니면 개코 원숭이의 옆 얼굴을 닮은듯 보이는 미묘한 순간이다.

그곳 바위지대를 지나니 다시 등로 주위에 너무나 청아하게 피어 있는 분홍빛 철쭉꽃이 너무나 깨끗하고 순수하게 피어 바쁜 이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아무리 바빠도 오랫만에 만나는 아름다운 철쭉꽃을 외면 할 수 없어 몇장의 사진으로 남긴 후 내려가니 이제 이 산객의 키만큼 자라난 산죽지대가 나타나며 조금씩 산행 속도를 줄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산죽에 대한 별 반응 없이 그저 즐기는 시간이다.

 

깊은 러프처럼 아니 그 러프보다 더 징그러운 키 큰 산죽지대를 통과하는데 제법 따갑게 살갗을 파고 든다.

조심하며 진행을 하지만 결국 뾰족한 나뭇가지에 머리를 햟퀴고 난 후에야 어렵게 나즈막한 무명봉 하나를 넘어 진행을 한다.

그곳을 지나 전진하니 등로 우측에 바위지대가 나타나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우측 그 바위 위로 오르니 이곳 역시 너럭바위에 거대한 바위 하나가 올라 앉아 있는 형상이다.

따스한 햇살이 들고 앞으로 내려다 보이는 전망바위와 바위틈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 그리고 그 넘어 길게 뻗어 있는 낙남정맥 마루금이 너무나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길래 이곳에 앉아 허기를 달래며 준비한 아침 식사를 즐겨 본다.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낙남종주를 하는 한무리의 종주대를 내려다 보는데 바로 앞 바위 전망대에서 추억을 만드는 모습이고 한동안 앞서거니 뒷서거니 진행하다 외삼신봉에서 인사를 나누니 좋은사람들에서 온 낙남정맥 종주대들 중 선두 그룹이였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바위에 앉아 오랫만에 여유로운 아침식사를 즐기고 물 한모금까지 마신 후 다시 올랐던 길로 뒤돌아 내려 와 잡목 터널속을 따라 걸어 내려가니 방금전 많은 종주대들이 조망을 즐겼던 조망바위가 등로 우측에 나타나고 그곳으로 들어가 잠시 지리의 풍경을 즐겨 본다.

방금 전 이 산객이 머물며 맛난 아침 식사를 즐겼던 너럭바위 위에 앉아 있는 거대한 바위가 눈길을 사로잡고 그 바위 좌측 위로도 몇개의 큰 바위가 더 보여 조금은 놀라운 풍경을 만난다.

그곳에 앉아 있을 땐 몰랐는데 멀리 떨어져 살펴보니 숲이 보이는 이치는 아닐련지...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우리의 산하이며 지리산이 아닐 수 없는 아침이다.

 

그 너럭바위 좌측으로는 뾰족한 암봉들 사이로 어렵게 무거운 삶을 이어가는 소나무 몇그루가 다시 이 산객의 눈길을 붙잡고 그 바위와 소나무 저 멀리 고고함을 자랑하는 반야봉이 다시 산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지리 주능선을 타고 서쪽으로 줄달음치던 마루금이 그 북쪽 옆으로 거대하지만 부드러운 봉우리를 밀어 올려 빚어낸 반야봉에 대한 추억을 꺼내 되새겨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언제나 저곳에 올라 서쪽 산그리메 넘어로 넘어가는 멋진 노을과 일몰을 만날 수 있을련지 기약없는 시간만 흐르고 있기도 하다.

 

많은 사진을 남긴 후 다시 그 전망바위를 나와 정상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등로 앞으로 잠시 잡목이 사라지며 등로 우측으로 나즈막한 무명봉이 보이고 그 좌측 저 멀리 남부 능선을 타고 삼신봉과 내삼신봉 그리고 외삼신봉이 다시 그림처럼 펼쳐진 풍경이 산객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다.

가끔 등로 옆에 피어 있는 분홍빛 철쭉꽃과 그 아래 푸르게 푸르게 대지를 수놓는 한해살이 식물이 너무나 아름다운 등로를 만들어 산객이 지나며 밟는 것조차 미안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나즈막한 봉우리를 좌측으로 우회하듯 통과해 진행하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너럭바위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내려다 보는 남부능선과 낙남정맥 마루금이 다시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그냥 진행하지 못하고 그 너럭바위 위로 올라 다시 잠시 발걸음 멈추고 그 아름다운 풍경을 가슴에 담아 간다.

 

중앙에 남부능선의 낙남정맥 마루금을 두고 좌측으로는 거림골이 깊게 자리하고 우측으로는 대성골이 어서오라 손짓을 하고 있다.

자주는 오르지 못했지만 그래도 지리의 속살을 만나고자 올라 봤던 기억을 더듬으며 저 보이지 않는 지리의 속살을 더듬으며 또 이렇게 그리움 한켭을 더 만들고 내려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푸르름이 짙어가는 그림같은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에 작은 도랑이 보이고 얕으막한 물이 고여 있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키 작은 산죽들이 다시 나타나고 제법 잘 발달된 등로가 보이면서 금새 너럭바위 위에 나즈막한 돌탑이 서 있는 곳을 지난다.

 

그 너럭바위 위에 보이는 바위를 지나 진행을 하니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곧이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음식 냄새를 풍기며 아침식사를 즐기는 음양수 앞에 도착을 한다.

혹시나 하고 물 한모금 마셔보려 들려 보지만 주위에 있는 등산객들이 사용했는지 마실 수 없을 정도로 흙탕물이 되어 있어 도저히 마실수 없는 석간수가 되어 있다.

이 음양수는 지리 주능선에 자리한 선비샘과 함께 아이를 점지해 준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샘터이기도 하다. 

남부능선과 주능선이 만나는 지점에 음양수 샘터가 있는데 세석산장이 확장 건립된 이후로 수량이 줄고 마르는 날이 많아졌지만 음양수 샘은 그 신비함에 예부터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물로 인식되어져 왔던 샘이다.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음양의 조화로 흘러내리는 이 물을 마시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소문 때문에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음양샘 주위에 몰려들어 기도를 드리곤 했다고 한다.
옛날 대성골에 호야와 연진이라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자유롭고 평화스럽게 한 가정을 꾸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아무 부러울 것이 없는 이들에게 오직 자식이 없다는 한 가지 걱정이 있었는데 어느 날 곰이 찾아와 연진여인에게 세석고원에 음양수 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이 물을 마시며 산신령께 기도하면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일러 주었다.
연진여인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홀로 이 샘터에 와서 물을 실컷 마셨는데 호랑이의 밀고로 노한 산신령이 음양수 샘의 신비를 인간에게 알려준 곰을 토굴 속에 가두고 연진여인에게는 세석 돌밭에서 평생 철쭉을 가꿔야 하는 가혹한 형벌을 내리게 되었다.
그 후 연진여인은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 산신령을 향하여 속죄를 빌다가 돌로 굳어져 버렸고 아내를 찾아 헤매던 호야는 칠선봉에서 세석으로 달려가다 산신령의 저지로 만날 수 없게 되자 가파른 절벽 위의 바위에서 목메어 연진여인을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세석고원의 철쭉은 연진의 애처로운 모습처럼 애련한 꽃을 피운다고 하며 촛대봉의 바위는 바로 연진이 굳어진 모습이라고 한다.

이런 전설이 사실이던 아니던 그만큼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장소였기에 이런 전설도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또한 그 음양수 위 바위의 옆모습은 사람 얼굴을 닮아 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을 찾지 못하고 사람들의 소음에 떠밀리다시피 떠나야 하는 시간이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음양수를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그 바로 옆에 이점옥이 서 있고 이제 세석대피소에서 1.2 Km 지나 왔다는 거리표시가 보인다.

다시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등로 옆에 시멘트로 만든 물 웅덩이가 나타나 바라보지만 그 용도를 알 수가 없고 계속 마루금을 타고 내려가니 고정조사구 대성골-12란 팻말과 함께 출입금지 안내판이 보인다.

다시 조금 더 내려가니 세석대피소에서 1.7 Km 내려왔고 청학동까지 8.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등로 좌측에 보이는 전망바위에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온 영신봉 정상의 암봉이 좌측에 멋진 봉우리로 남아 있고 우측의 안부로 내려오면 세석대피소가 보이고 다시 우측 봉우리로 오르면 촛대봉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이 한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참으로 아름다운 조망이 아닐 수 없다.

영신봉 좌측으로 펼쳐진 지리 주능선을 타고 저 멀리 반야봉은 여전히 그 고고함을 드러내며 서부쪽 맹주임을 자청하고 있다.

그렇게 잠시 그 전망바위에 올라 새로운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 후 다시 정상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등로 옆에 거대 바위 하나가 눈길을 사로 잡고 사진에 담은 후 진행하니 다시 전망바위가 나타난다.

그곳에 올라 앞을 바라보니 석문 지나 바로 앞에 나타난 1321봉이 바위를 안고 우뚝 솟아 있고 그 넘어 푸르른 산하를 타고 삼신봉과 내삼신봉 그리고 외삼신봉이 삼각편대를 이루며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낙남정맥 마루금 좌측으로는 오늘 새벽 이 산객이 오르기 시작한 거림골이 바로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 시천며느오 이어지는 골짜기엔 아침 박무가 내려 앉아 뿌옇게 숨어 있고 그 우측 능선을 타고 오르면 오늘 이 산객이 두발로 걸어 1백두대간 9정맥을 마무리 해야 할 고운동재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춤을 추고 있다.

거림계곡은 지리산 10경중 네 번째인 철쭉으로 유명한 세석평전에서 시작되는 거림골을 본류로 지리산 주능선상에 위치한 연하봉과 촛대봉에서 비롯 되는 도장골, 세석평원에서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에 있는 한벗샘에서 발원한 자빠진 골 등의 지류가  모여 커다란 계곡을 이룬다.
계곡의 본류만도 60여리에 이르는 거림골은  철쭉이 꽃을 피우는 봄이면,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묻힐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 
이 곳에 가려면 산청군 시천면 덕산에서 중산리 방면으로 가다 곡점마을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된다.

산꾼들은  마을 뒷산처럼 밋밋한 거림골 보다는 남부능선으로 오르는 자빠진골이나 촛대봉으로 오르는 도장골을 찾는다.

자빠진 골 혹은 엎어진 뜰로 부르는 남부능선상의 계곡은 이름 그대로 산이 자빠진 듯 엎어진듯 완만한 경사를 보여준다.

그러나 계곡의 수려함은 어느 골짜기 못지않다.

골짜기가 자빠지고 엎어지면서 엉겹결에 파인 듯 원시성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그 이름도 참으로 아름답다 생각했는데 설명 역시 아름답기 그지없는 거림골이다.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낙남정맥 마루금과 좌우측으로 깊게 만들어진 거림골 그리고 도장골이 한폭의 그림으로 남겨진 그곳에서 한동안 머물며 준비한 캔 맥주 하나로 목마름을 달랜 후 다시 밀려 드는 등산객들로 인해 천천히 출발한다.

조금 전진하니 다시 큰 바위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고 그 바위를 통과하니 등로 우측으로 의신마을 하산 이정표가 보이는데 이제 세석대피소에서 2.2 Km 그리고 삼신봉까지는 5.3 Km 남아 있다는 거리표시가 보인다.

그곳을 지나 오르니 앞으로 진행해야 할 마루금 우측 저 멀리 멋진 암봉 두개가 다시 눈길을 사로잡고 줌으로 당겨 사진으로 남겨 본다.

 

멋진 조망을 즐기며 계속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니 금새 세석대피소에서 2.7 Km 지나 왔고 청학동까지 7.3 Km 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그 이정표를 지나자 마자 곧이어 석문이 나타나는데 사진 한장 남겨줄 등산객이 없어 사진 몇장 남기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운 순간이기만 하다.

지리산에는 석문이나 통천문으로 불리우는 바위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석문이 바로 이곳의 석문이다.

바위와 바위가 얼키고 설켜 만들어진 좁은 통로를 지나면서도 수많은 전설과 의미를 생각해 내는 것은 또 무슨 연유인지 모를 일이다.

 

석문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꿈결같은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다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 위에서 뒤돌아 보니 푸르게 변해가는 나뭇잎 사이 저 멀리 영신봉과 세석대피소가 멀어지고 있다.

방금 전 잠시 머물며 시원한 캔맥주 한잔 마시던 전망바위도 올려다 보이는 곳에서 다시 많은 추억 만들고 이제 내려가야 앟 삼신봉쪽 낙남정맥 마루금을 올려다 보니 그곳에도 역시 환상의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다.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 온 삼신봉과 내삼신봉 그리고 외삼신봉의 마루금이 산객의 마음을 뒤흔들며 그렇게 무심하게 흘러가는 구름같이 느껴지는 시간이다.

 

거림마을이 바로 등로 좌측으로 다가와 있고 그 거림으로 통하는 길고도 깊은 골짜기가 강렬한 햇살을 받아 하얂게 변해가고 있다.

다시 내려다 보는 낙남정맥 삼신봉 방향의 마루금이 환상을 노래하고 그렇게 그 바위봉에 앉아 세월을 낚다 보니 어느새 뒤따라 오던 종주대가 도착을 해 방을 빼 준 후 다시 천천히 꿈결같은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 본다.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금새 그 종주대들이 이 산객을 앞서 내달리고 잠시 뒤 바위 위에 몸을 맡긴 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어렵게 세상을 살아가는 소나무 한그루를 바라보며 이 세상의 불평등함과 편견이 사라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또 무엇인지...

 

그렇게 가슴 아픈 소나무 한그루를 지나 계속 좌측에 봉우리를 두고 우측 사면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세석대피소에서 3.3 Km 지나 왔고 이제 청학동까지는 6.7 Km 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제 제법 큰 바위들이 등로 옆을 가로막고 큰 활엽수가 등로 주위를 채울쯤 나즈막한 고갯마루에 올라 불어 오는 맞바람에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식혀 보는 시간이다.

저 앞으로는 앞서가는 종주대들이 꼬랑지를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그 종주대를 뒤따라 가듯 그렇게 급하지 않는 산행을 이어가고 있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금새 세석대피소에서 3.9 Km 지나 왔고 청학동까지는 6.1 Km 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 한숨 쉬어 본다.

산죽밭 사이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좁은 공터 위 정상이 나타나지만 특별한 표식도 없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한다.

키 작은 산죽밭을 통해 전진하니 다시 세석대피소에서 4.4 Km 지나왔고 청학동까지는 5.6 Km 그리고 쌍계사까지는 아직도 12.1 Km 가 남아 잇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묵은 헬기장에 도착해 태양열 발전기와 함께 그 모습을 사진에 남겨 본다.

지도상 1237 미터 봉의 헬기장이 바로 이곳처럼 보이는 곳이다.

 

헬기장을 지나니 다시 산죽밭이 나타나고 그 산죽밭을 따라 전진하니 다시 꿈결같은 환상의 등로가 열려 있다.

참으로 너무나 환상의 등로를 타고 잠시 무념으로 걸어가니 다시 산죽밭이 나타나고 곧이어 세석대피소에서 4.8 Km 지나왔고 청학동까지 5.2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반겨 준다.

그 이정표를 지나니 무성한 산죽밭에 태양열 발전기가 나타나고 약간의 공터가 보인다.

태양빛도 잘 들어 오지 못할 이런 곳에 태양열 발전기를 세웠을까 궁금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태양열 발전기를 지나 우거진 산죽밭을 타고 진행을 하니 지나는 산객의 옷깃에 산죽이 스치며 사각거리는 소리가 크게 귓전을 때린다.

저 앞에 걷고 있는 좋은 사람들의 종주대 뒷모습이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다시 산죽이 사라지며 너무나 아름다운 초록의 등로가 열리는가 싶더니 또 다시 키 작은 산죽길이 나타나며 서서히 산죽과의 악연을 만들어 가고 있다.

다시 조금 더 진행을 하니 세석대피소에서 5.5 Km 를 지나 왔고 청학동까지는 4.5 Km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그 이정표를 지나니 아직은 반갑게 만날 수 있는 키 작은 산죽밭이 펼쳐지며 이 산객의 마음을 닮아 가는 사각거림을 들어 본다.

 

계속 이어지는 산죽밭을 따라 걸어가니 넓은 나뭇잎이 등로를 가리며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등로가 나타나고 그 비단같은 마루금을 타고 진행을 하니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며 다시 산죽밭이 펼쳐진다.

잠시 산죽과 키 작은 활엽 관목이 섞여 있는 곳을 지나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큰 바위 하나가 나타나는데 그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많은 식물들이 인간의 삶을 뒤돌아 보게 만들고 있다.

그 바위를 지나자마자 이제 세석대피소에서 6.2 Km를 지나왔고 청학동까지는 3.8 Km 및 쌍계사까지 10.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 잠시 쉬어 간다.

 

그 곳 이정표를 지나 계속 전진하니 좁은 공터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1278봉을 우측에 두고 좌측 사면 등로를 타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조금 더 전진하니 저 앞 좌측으로 높은 봉우리 하나가 나타나는데 처음에는 저 봉우리가 혹시 삼신봉이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금새 저 봉우리는 외삼신봉임을 알게 된다.

계속 좌측 저 앞으로 보이는 외삼신봉을 바라보며 걸어가니 등로 좌측 아래 저 멀리 구곡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등로 좌측 저 앞으로 외삼신봉을 조망하며 좌측 사면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더욱 강렬해진 태양열이 머리 위로 솟아져 내린다.

그늘을 따라 잠시 진행하니 금새 키 작은 관목지대가 나타나더니 오래 전 산불이 나 다 타버리고 고사목만 벌거숭이가 되어 남아 있는 지대로 들어 간다.

바람 한점 불어 오지 않는 등로를 타고 키 작은 관목지대를 지나는 시간은 생각보다 힘이 들고 고통이 밀려 오는 시간이다.

그래도 힘을 내 한발 두발 걸어가니 잡목이 우거져 있지만 간간히 그늘막이 쳐져 있는 등로를 타고 멀지 않은 삼신봉으로 향한다.

 

하지만 다시 나타나는 산죽과 잡목이 우거진 등로가 앞을 가로막고 천천히 진행하며 온몸을 햟퀴는 생채기를 피하며 오르니 더욱 많아진 고사목 지대를 넘어 저 앞으로 삼신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 안부에 도착을 해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하지만 그곳을 지나자 마자 등로에 추모비 하나가 박혀 있고 살펴보니 20여년전 산꾼을 잃은 슬품을 노래한 비이다.

이 산객도 자주 홀로 오르다 보니 늘 안전에 대한 주의를 하며 진행을 하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그 옛날이야 오죽했을까 생각을 해 본다.

 

추모비를 지나 삼신봉으로 오르며 잠시 뒤돌아 보니 이제사 제법 그 옛날 산불이 나 사라졌던 산림에 뼈대만 남아 있는 고사목 지대가 제대로 내려다 보인다.

그 풍경을 바라 본 후 다시 가파라지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드디어 삼신봉 정상에 도착을 하고 젊은 친구 몇명이 그 삼신봉 정상에서 쉬고 있기에 부탁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삼신봉(1284봉)은 청학동에서 볼 때 서쪽의 내삼신봉(1354봉)과 중앙의 삼신봉그리고 동쪽의 외삼신봉(1288봉)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지리산 주능선의 전망대 구실을 하여 악양으로 흘러내린 성제봉(일명 형제봉) 능선과 멀리 탁 트인 남해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삼신봉 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 천왕봉(1915봉)에서 반야봉(1732봉)과 노고단(1507봉)을 잇는 지리산 주능선이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진다.

멋진 조망과 풍경에 취해 이곳 삼신봉에서도 많은 시간 배낭 벗어 놓고 쉬어 가기로 한다.

 

삼신봉 정상에서 사진을 남기고 배낭 벗어 놓은 다음 천천히 사진기 하나 들고 주위 조망에 나서 본다.

먼저 방금전 지나 온 낙남마루금을 뒤돌아 보니 바로 앞에 불난지역의 뼈대만 남아 있는 고사목들이 즐비하게 서 있고 그 뒤 능선을 타고 저 멀리 좌측의 영신봉으로 이어진 마루금이 우측 지리 주 능선을 타고 촛대봉 넘어 지리산 천왕봉으로 이어지고 있다.

언제 어디에서 바라봐도 아름답고 멋진 명풍의 지리산 주능선이지만 이렇게 뜻깊은 산행을 하면서 가깝게 올려다 보는 시간 역시 환상 그자체이다.

 

등로 우측의 서쪽으로는 바위 넘어 저 위로 뾰족한 내삼신봉이 우뚝하고 저 봉우리 넘어 진행하면 상불재 지나 불일폭포를 만나고 봄 벗꽃으로 유명한 쌍계사로 내려 갈 수 있을 것이지만 오늘은 그곳이 아니기에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만 본다.

오래전 이곳 삼신봉을 지나 내삼신봉을 거쳐 쌍계사로 내려갔던 추억을 꺼내 함께했던 산친구들을 생각해 보지만 이제 만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친구들이 되어 있다.

 

다시 중앙으로 돌아 와 중앙 옆에 세워둔 안내판을 두고 저 멀리 반야봉을 담아 본다.

반야봉을 중심으로 지리 주능선이 좌우로 길게 뻗어 나간 풍경 역시 환상이다.

그 가운데 골짜기에는 대성리의 의신마을이 자리하고 있는데 대성리라는 명칭은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때 생긴 이름으로 관내의 자연마을이었던 (원)대성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대성마을은 마을에 터가 있던 대승암에서 비롯한 이름으로 여겨진다.

화개천 골짜기 상류에 펼쳐진 산간 분지 지형으로 화개천이 남서 방향으로 흐르고 지리산의 영신봉과 삼신봉 줄기 서쪽 비탈면 산기슭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대성계곡, 선유동계곡, 단천계곡 및 의신계곡 등이 있어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의산은 서산대사가 거처했던 곳으로 조선 초기까지 있었다는 의신사의 사하촌으로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마을에는 의신사 외에도 대승암, 고대승, 상대승 및 동암 등의 절이 있었다.

또한 청학동 승지로 알려지면서 가구 수가 크게 늘어났으며 18세기 무렵에 정씨가 함양에서 옮겨 온 이래 세거하여 일제 강점기에는 120여 가구가 넘었다.

의신 주변은 빨치산 최후의 격전지로 1천여명이 넘는 빨치산이 몰살된 비극의 현장으로서 지리산 역사관이 있어 당시의 아픔을 관람객들에게 증언하고 있다.

의신에서는 매년 정월 초하루 당산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을 빌고 있다.

단천은 박달내의 한자 표기로 마을 아래 시내 복판에 고운 최치원의 득선처가 있었다고 전해 올 만큼 유서 깊은 마을이다.

단천 역시 매년 정월 대보름날이면 당산제를 지내며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고 있다.

지금은 없어진 덕평은 일제 강점기까지 10여 가구가 있었으며 도참설 등을 신봉하는 무리들이 거주하였다고 한다.

참으로 많은 공부를 다시 해 보는 시간이다.

 

동쪽으로는 좌측에 천왕봉을 두고 우측 아래로 시천면 내대리의 거림과 내대마을이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 산줄기인 낙남정맥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지형이다.

그 좌측 저 멀리로는 늘 어둠속에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자주 들렸던 중산리가 보이는듯 하다.

시천면 내대리는 산신봉에 위치하여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대천이 흐른다.

대차례의 안쪽이 되므로 내대라 하였는데 자연마을로는 거림, 남포, 큰골, 중촌, 판기 등이 있다.

거림은 판기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갈림길 옆이 된다 하여 거리미 또는 거림이라 하였다.

남포는 내대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남포라 한다.

큰골은 미리감재 서쪽에 있는 마을로 큰 골짜기에 있다 하여 큰골 또는 대곡이라 한다.

중촌은 내대 복판에 있다 하여 중촌이라 하였으며 판기는 거림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장이 섰었다 하여 장판터라 하다가 판기라 하였다.

몇번 들렸던 마을이지만 이렇게 또 공부를 하며 자세히 알아 가는 즐거움을 맛보는 시간이다.

 

 

이제 남동쪽으로는 이 산객이 마지막 낙남정맥과 함께 1백두데간 9정맥을 마무리하기 위해 걸어 넘어야 할 외삼신봉이 부드럽게 펼쳐져 있다.

조금 내려가다 보면 움푹 들어간 안부에서 우측으로 가면 그 유명한 청학동 마을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청학동 갈림 안부에서부터는 다시 고운동재까지 비법정 등로이기에 조심하며 올라야 할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바라보는 외삼신봉은 부드럽고 완만한 봉우리이지만 오르다 보면 많은 땀방울고 고통을 이겨야만 그 정상에 도착 할 수 있는 곳일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삼신봉 정상에 머물며 많은 사진을 남기며 수많은 추억을 만들어 본다.

젊은 산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쉬어가니 늘 앞서거니 뒷서거니 함께 진행해 오던 좋은사람들 종주대가 도착을 하고 이제 삼신봉 정상은 그 종주대에게 넘기고 하산길을 찾아 보지만 그것이 쉽지가 않다.

한동안 삼신봉 정상에서 왔다리 갔다리하면서 어렵게 하산 등로를 찾는데 살펴보니 우측의 서쪽인 내삼신봉쪽으로 내려가 빙 돌고 돌아 외삼신봉쪽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잠시 내려선 길목에 삼신봉 이정표가 서 있고 외삼신봉 방향으로 청학동이 내삼신봉 방향으로는 쌍계사 화살표 방향이 보인다.

이곳에서 정맥 마루금은 좌측의 청학동 방향의 내리막 등로이다.

 

삼신봉 정상에서 어렵게 하산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키 작은 산죽과 활엽수가 섞여 잇고 그 끝자락에 우측으로 청학동 내려가는 갈림 삼거리 안부에 도착을 한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청학동이 있고 직진하면 외삼신봉으로 가는 등로 이지만 나뭇가지로 막아 출입금지 표시가 되어 있지만 범법자가 되면서도 가야하는 길이기에 미안한 마음을 두고 금줄을 넘는다.

청학동은 인구가 100명인 마을로서 도인촌이라고도 한다.

지리산 삼신봉(1284봉)의 동쪽 기슭 해발고도 800미터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은 예로부터 천석이 아름답고 청학이 서식하는 승경의 하나로 꼽혀왔으며 주민 전체가 갱정유도를 신봉한다.
일명 일심교라고도 하는 이 신흥종교의 정식 이름은 시운기화유불선동서학합일대도대명 다경대길유도갱정교화일심이다.

집단생활을 하는 이들의 가옥은 한국 전래의 초가집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의생활도 전통적인 한복차림을 고수하고 있다.

미성년 남녀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길게 땋아 늘어뜨리며 성인 남자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는다.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마을 서당에 보내는 것도 특이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농업 외에 약초와 산나물 채취와 양봉 및 가축 사육 등으로 생계를 꾸려 가는 마을이다.   

 

금줄을 넘어 올라가니 다시 키 작은 산죽길이 등로를 채우고 그 서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많은 땀방울을 흘리니 등로 좌측으로 큰 바위 하나가 보인다.

그 바위를 돌아 오르니 그 바위 위에 또 다른 작은 바위 하나가 올려져 있고 그 모습을 바라보니 두꺼비가 돌아 앉아 있는 듯한 묘한 형상을 하고 있다.

신기한 모습에 사진 한장 남기고 올라가 본다.

 

그 두꺼비 바위를 지나니 잡목과 키가 큰 산죽이 혼합되어 진행에 방해를 주는 등로로 바뀌면서 산행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다.

이제 손등과 얼굴을 햟퀴고 지나는 날카로운 산죽잎이 자꾸만 신경을 건드리고 그곳에 신경을 쓰며 진행을 하니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리 더욱 빽빽하게 등로 주위를 채우고 서 있는 조릿대가 자꾸만 산객의 몸을 붙잡고 이곳 저곳에 생채기가 나기 시작한다.

특히나 얼굴을 때리며 입술에 생채기를 내는 산죽에 조금씩 짜증이 가중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발 두발 다시 조심하며 걸어 오르니 드디어 외삼신봉 정상에 도착을 하지만 한분의 등산객이 배낭을 정상석에 내려 놓고 그 옆에서 쉬고 있어 사진 한장 남기기도 힘이 든다.

햇볕이 강하게 내려쬐고 있기에 다시 올라왔던 안부쪽으로 약간 내려가 그늘진 바위에서 남아 있는 빵과 과일 그리고 캔 맥주 하나로 목마름을 달래며 허기를 채운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영신봉 아래에서 만났던 좋은친구들 종주대를 다시 만나 정상석에서 사진 한장 남기며 첫 인사를 나눈다.

 

외삼신봉 정상에서 북서쪽을 바라보니 거대한 암봉 넘어 저 멀리 방금 전 많은 추억을 남기고 떠나온 삼신봉이 시원하게 조망되고 그 좌측 능선을 타고 내삼신봉이 또한 당당하게 다가온다.

그 능선을 타고 내려가면 불일폭포 지나 쌍계사로 이어질 것이다.

그 내삼신봉 능선 넘어 저 멀리에는 아직도 희미하지만 그 존재감을 알리는 지리 주능선과 반야봉이 가물거리고 있다.

 

남동쪽으로는 이제 마지막 마루금을 타고 내려가냐 할 낙남정맥 고운동재 방향이 시원하게 조망되지만 역시나 햇살로 인해 저 멀리에는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박무이다.

이렇게 보이는 능선으로는 부드럽게 조금은 빨리 진행될 것 같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산죽과 빨래판 같은 마루금을 만나 예상했던 시간을 모두 소진하고서야 어렵게 고운동재에 내려 설 수 있었다.

구비쳐 흐르는 저 낙남정맥 마루금을 타고 돌고 돌아 결국 그 시발점을 걸어가는 마음이 이제서야 9정맥도 완주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날 뿐이다.

 

남동쪽으로는 하동군의 묵계리쪽 청학동이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 묵계제도 보인다.

지나가는 차량을 이용해 몇번인가 들렸던 곳이지만 속살을 만져 보지 못한 곳이기에 조만간 다시 내려가 그 속살을 만져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 곳이기도 하다.

청학동이 있는 묵계리는 지리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촌 마을이다.

마을 북쪽에서 학동천이 유입해 들어오고 있으며 이것이 횡천이 되면서 마을 동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묵계, 가는골, 고운 마을 등이 있다.

묵계 마을은 지리산 속에 위치하여 산과 물이 많으므로 메끼라고 불리다가 후에 묵계 마을이라 개칭되었다.

가는골 마을은 학동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며 고운 마을은 고운 최치원이 머물렀다 해서 고운 마을이라 불린다. 

그냥 지나치며 보냈던 마을들도 이렇게 그 유래를 찾아 알고보면 새롭게 다가오는 국토이자 자연사랑이다.

 

 

그렇게 많은 시간 외삼신봉에 머물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는데 좋은사람들에서 온 종주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이후로는 조금 더 마음 가볍게 함께 걸어 본다.

정상에서 내려가니 로프가 달린 암벽이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해 진행하는데 많은 시간이 지체되지만 다른 종주대가 없으니 급할 것이 없다.

그 암벽을 지나니 다시 나타나는 두번째 암벽에서도 제법 시간이 지체되고 그곳을 타고 내려가니 등로 주위에 큰 바위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이제 서서히 산죽밭이 시작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참을만한 수준이다.

그렇게 전진하니 바위 사이로 나 있는 좁은 등로 위에 나무들이 자라며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게 평이한듯한 등로를 타고 산죽밭이 시작되는 지점을 걸어 본다.

잡목과 산죽이 어우러져 있는 등로를 지나니 작은 너럭바위도 통과하고 그렇게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멋진 전망바위가 나타난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곳에 올라 뒤돌아 바라보니 천왕봉과 촛대봉 그리고 낙남정맥 분기봉인 영신봉이 시원하게 올려다 보인다.

이제 저 아름다운 조망을 언제나 다시 가슴에 담으며 오늘을 추억해 볼 수 있을지 안타까운 시간만 흐르고 있다.

 

방금 전 지나온 낙남 마루금도 올려다 보이는 그 전망바위에서 잠시 더 추억을 만든 후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산죽지대가 나타나는데 아직까지는 참을만한 수준이다.

다시 나타나는 나즈막한 전망바위에 올라 지나온 마루금을 조망하고 등로 우측의 내삼신봉 능선을 타고 불일폭포쪽으로 내려가는 산줄기도 조망해 본다.

청학동과 삼성궁 그리고 묵계제의 풍경도 줌으로 담아 보며 여유롭게 걸어가니 방금 전 지나 온 전망바위가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그곳을 지나 바위지대를 넘으니 서서히 키 큰 산죽지대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점점 깊어지며 그 산죽속으로 들어가면 어둠이 찾아 온듯 어둠침침한 등로를 만들고 있다.

 

이제부터 징그러운 산죽밭을 타고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들어 보는 시간이다.

빽빽하게 들어 찬 산죽지대를 타고 그 중앙에 나 있는 좁은 마루금을 지나는 모습은 홀로 생각해도 참으로 우수광스런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정상부로 올랐다 급경사 내리막 등로르 타고 내려가는 하산기 역시 너무나 고통스런 산죽밭이 발길을 붙잡으며 참으로 어려운 산행을 이어간다.

그렇게 온 몸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조심하며 내려가니 저 멀리 산죽이 잠시 사라지며 묵은 헬기장이 보이는 묵계치에 도착을 한다.

이 묵계치 밑으로는 1047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터널 위 묵은 헬기장이 바로 묵계치이다.

 

다시 묵계치를 지나 서서히 가파라지는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산죽밭을 통해 올라 본다.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는 고통의 산죽길이 연속으로 이어지고 주위 조망은 전혀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이다.

오르다 잠시 쉬며 물한모금 마시며 다시 오르지만 정상인듯하여 바라보면 다시 나타나는 봉우리가 몇개를 넘어서야 그 징그러운 산죽밭을 조금은 벗어 난 듯 하다.

 

그렇게 오르며 이제 정상이가 생각되어 바라보면 산죽만 조금 적어졌을 뿐 저 앞에 다시 올라야 할 마루금의 무명봉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그래도 통과하기 조차 힘든 산죽이 사라지고 조금은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키 작은 산죽밭이 보이는 곳에서는 한숨을 몰아쉬며 쉬어 가는 시간도 가져 본다.

산죽을 참으로 좋아했었는데 이번 구간 지나며 그 산죽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 구간으로 남겨진다.

그래도 이제 막바지 구간이니 그 힘으로 참고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다시 한발 두발 걸어 오르니 마지막 봉우리인 980봉 근처에 도착을 하고 그 막바지 봉우리에서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산죽지대를 기어 걸어가듯 통과해 본다.

땀방울이 등줄기와 이마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듯 등로를 적시고 그렇게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들며 어렵게 오르니 드디어 980봉 정상부에 올라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이제 마지막 봉우리까지 올랐으니 조금만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면 마무리가 될 것이다.

 

980봉쯤 되는 마지막 봉우리를 넘으니 이제 산죽은 사라지고 나뭇잎이 넓은 활엽수가 등로를 차지하고 잠시 그림같은 등로를 열어 준다.

그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이제 정말 마지막 완주라는 생각에 잠시 지난 1백두대간과 9정맥 산행에 대한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쉬어 본다.

잠시 쉬며 덕산 택시에 전화를 해 고운동재에서 만나기로 하고 다시 남아 있는 커피를 마신 후 내려가니 조금은 힘이 나는듯 하다.

 

조금은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내려가니 금새 저 아래 고운동재가 보이고 제법 떠들썩한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는데 알고 보니 이 작은 계곡으로도 가족들이 피서를 와 맛있는 것을 먹으며 놀고 있는 모습이다.

다행이 굳게 닫혀있던 철문은 열려져 있어 쉽게 그곳을 빠져 나와 2차선 지방도로 옆 그늘에서 배낭 정리하며 좋은사람들 종주대와 이야기를 나눠 본다.

잠시 후 덕산 택시가 도착을 하고 그 택시로 거림 주차장으로 돌아가 택시비 30,000.-원과 주차지 5,000.-원을 지불한 후 어둠속에 올라간 그곳 주차장 주위를 사진에 담으려고 사진기를 찾아 보니 사진기는 고운동재의 도로 변 수풀속에 놓고 그냥 왔다는 생각에 미친다.

다시 애마를 몰아 그곳 고운동재로 뒤돌아 가 무탈하게 카메라를 회수한 후 곧바로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복귀하지만 이른 시간인데도 막히기 시작하고 어렵게 오후 7시 조금 못돼 집으로 복귀한다.

옆지기가 준비한 삼겹살에 소맥으로 1백두대간 9정맥 완주를 자축하니 몸이 피곤해지며 깊은 잠속으로 빠져 든다.

 

참으로 열정적으로 올랐던 산행들이 머릿속을 스치며 길었던 5년하고도 3개월을 회상해 본다.

한여름 아무것도 모르고 올랐던 백두대간 댓재에서 이기령까지 아름다운 대자연을 배웠고 또한 산친구들과의 배려와 봉사를 몸에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종주대와 종주 산행에 빠져 들고 말았다.

너무나 열정적인 모습에 2007년 2월 9일부터 백두대간 산행의 리딩 대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산행에 입문을 하였으며 그것이 계기가 되어 아렇게 스스로에게 약속한 산행을 실천할 수 있어 스스로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한동안 무엇을 해야 하나 조금은 답답한 시간이 흐를수도 있겠지만 금새 또 남아 있는 기맥과 지맥 그리고 하고 싶었던 비박 산행에 자주 들리지 않을가 생각해 본다.

또한 옆지기와도 조금씩 발을 맞추며 함께 즐기는 시간이 더 많아지길 바라며 그동안 산행중 만났던 수많은 등산객들과 종주대들 그리고 산짐승과 이름모를 식물들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 본다.

또한 불쑥 찾아 들어 시원한 식수 한잔 얻어 마시고 밥까지 얻어 먹었던 많은 민가들과 주민들에게 감사 드리며 지저분한 몰골로 손을 흔들면 아무 조건없이 태워주신 운전사 여러분들에게도 감사한다.

 

마지막으로 1백두대간 산행과 9정맥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 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옆지기와 아이들에게 감사한 마음 전하며 성원해주고 격려해 주신 모든 불방 산친구님들에게도 무한한 감사를 드림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