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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산행(완료)/낙남정맥(완료)

낙남정맥 제4차 솔티고개에서 계리재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1.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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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남도 사천시와 진주시의 낙남정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1년 12월 03일과 04일 (무박 2일 일요 산행)

산행날씨 : 하루 종일 맑고 화창하였으나 새벽엔 약간 추웠던 날씨

산행온도 : 영상 01도에서 영상 12도

산행인원 : B 산악회 36명 따라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덕천고개(2번 지방도로)-연평마을-신흥목장 갈림 삼거리-애향석-진양정씨묘지-

               태봉산(189봉)-디비리산(115봉)-솔티고개(2번 지방도로)-바락지산(128봉)-묘목농장-

               시멘트 임도-2차선 포장도로-유수교(1049번 지방도로)-가화강-민가-대나무밭-

               홍수예경보시설(171봉)-드릅나무밭-밤나무밭-매실과수원-비포장임도-

               이정표(와룡산9.41 Km, 솔티고개6.93 Km)-파란물통-매실과수원-민가-밤나무밭-

               파란물통-비리재(1049번 지방도로)-나무식재지-128봉-감나무밭-아침식사-일출-

               이정표(와룡산7.52 Km, 솔티고개8.82 Km)-다루황토집 찜질방-상탑 햇살농원-

               이정표(와룡산6.79 Km, 솔티고개9.55 Km)-포장도로-경전선 터널-179봉-

               임도삼거리 이정표(내동해돋이쉼터와 심대마을 및 실봉산 0.6 Km)-실봉산(185봉)-드릅밭-내동 해돋이 쉼터-시멘트 임도-

               임도 사거리 이정표(산강마을과 함촌마을 및 실봉산과 화원마을)-비포장 임도-밤나무밭-감나무밭-시멘트 임도-화원삼계탕-

               이정표(실봉산 3.8 Km와 해돋이 쉼터 3.0 Km 및 무선산 11.6 Km)-삼거리 갈림길-지하통로로 남해고속도로 통과-

               지하통로로 고속도로 진출도로 통과-사유지 출입금지 안내판-녹색 철조망 통과-지하통로로 대진간 고속도로 통과-

               화봉산(110봉)-밤나무밭-모산재(2차선 포장도로)-김해허씨묘지-감나무밭-11번 송전탑-시멘트 임도-감나무밭-

               비포장 임도-시멘트 포장 임도-신설도로 절개지-건설중인 신설도로 통과-민가-시멘트 임도-대나무밭-와룡산(94봉)-

               대나무밭-6번 송전탑-과수원-시멘트 임도-과수원-임도 사거리-배나무밭-시멘트 임도-과수원-드릅나무-

               109봉(산불감시초소)-민가-과수원-1차선 포장도로-미종사 입구-민가-두산리 마을-112봉-감나무 밭-2차선 포장도로-

               가족농장 과수원-110봉-173봉-계리재(거리재, 2차선 지방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0.50 Km (접속구간 00.00 Km)

산행시간 : 사진 찍으며 널널하게 쉬며 09시간 20분 (04시 00분부터 13시 20분까지)

 

낙남정맥이란?

지리산 세석평전을 품고 있는 영신봉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내려온 마루금이 삼신봉에서 외삼신봉을 지나 묵계치와 고운재를 거쳐 옥산까지의 산줄기는 서쪽 섬진강으로  그 물줄기를 가르고 있으나 이후 산줄기는 인위적으로 잘라 만든 진양호 물이 사천만으로 흘러들게 만든 거대한 가화강을 지나 백운산 대곡산 무량산 여항산 서북산 광려산 대산 무학산 천주산 봉림산 대암산 용제봉 김해의 신어산을 거쳐 낙동강하구인 김해시 매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그 긴 줄기를 낙동강에 묻는 약 224 Km의 산줄기를 낙남정맥이라 한다.

이 산줄기에는 특이하게도 인공 호수와 강줄기가 마루금을 가르고 있기에 피치 못하게 가화강을 건너야 하는 산자분수령과는 다른 산행이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나즈막한 낙남 마루금을 걸으며 멋진 조망속에 농심을 생각한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늘 바쁜 일상에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삶에 대한 즐거움이 점점 줄어 드는  나이이지만 이렇게 배낭 둘러메고 나서는 시간만큼은 또 다른 삶의 활력을 찾아 떠나는 느낌이기에 날씨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또 가슴이 설레이는 순간이다.    

찬공기가 유입되면서 전국이 영하권으로 떨어진다는 일기예보에 중무장하고 나섰지만 산행 들머리로 가는 길에 잠시 휴식을 취한 휴게소의 밤바람은 예상보다 춥지 않아 조금은 걱정을 덜어 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거리는 점점 멀어지지만 잘 발달된 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보니 산행 날머리 도착 시간은 점점 빨라져 오늘은 새벽 4시부터 어둠의 정적을 깨며 또 한구간 낙남정ㄴ맥 산행을 위해 힘차게 첫발을 내딛는 시간이다.

이렇게 계획된 일정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산행을 하다 그 산행이 마무리되는 순간부터 갑자기 주워지는 너무나 큰 자유로 인해 마음은 더 허해지는 것은 아닌지 조금씩 걱정도 되는 시간이기에 산행 후의 생활이 더욱 조심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새벽 4시부터 어둠을 뚫고 민가들이 들어 선 마을과 나즈막한 뒷산같은 마루금을 타고 진행하니 어느새 비리재 넘어 128봉을 통과하고 있다.

서서히 허기가 지기 시작하고 여명이 밝아 오는 세상에 넓은 감나무 과수원에 앉아 우리들만의 아침식탁을 만들어 허기를 달래는 사이 저 멀리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아침 일출의 눈부심에 정신이 몽롱해지며 무아지경으로 빨려든다.

어느 순간부터 일출 그 자체보다 그 일출을 기다리는 마음과 그 일출이 시작되기 전 변화무쌍해지는 세상의 다른 빛깔을 보며 그것을 더 기다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도 붉고 둥글게 떠 오르는 저 태양을 가슴에 담고 그 용광로의 힘을 받아 또 평범하지만 비범한 하루를 시작해 본다.

 

약간은 차가운 밤바람이 얼굴을 스치지만 생각보다 춥지 않은 2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덕천주유소 앞에 내려 2주전 내려왔던 추억을 떠 올리며 주위 풍경들을 사진에 담아 본다.

원정맥 등로는 이곳 옥녀와 민도령의 애틋한 전설이 남아 있고 완사라는 지명 이름을 남긴 옥녀봉 들머리로 올라야 하지만 이곳에 마을이 생기고 도로가 뚫리면서 곧바로 다시 시멘트 임도와 만나기에 이곳이 아닌 연평마을을 관통하는 시멘트 임도를 타고 진행하기로 한다.

겨울이 되면서 밤의 길이가 길어져 서울에서 출발 시간을 한시간이나 늦췄지만 들머리 도착 시간은 점점 빨라져 오늘도 새벽 4시에 졸린 눈 비비며 먼 길을 떠나는 시간이다.

 

지난 구간 내려왔던 진양캐리비언 온천탕에서 북쪽으로 2번 지방도로를 타고 올라가 도로를 건너면 덕천 SK 주유소가 보이고 그곳 지나 진양호 옛날짜장이란 식당이 서 있다.

그곳을 지나면 2번 지방도로 우측에 직진으로는 순천과 하동 그리고 우측 방향으로 연평가는 화살 표시가 되어 있는 도로 이정표가 보이고 그 아래에 삼성약국 건물이 보이는데 그 건물을 지나자 마자 전봇대 옆에 우측으로 연평마을 이정석이 서 있고 우측 시멘트 도로쪽으로 화살표가 되어 있다.

이곳에서 연평마을로 들어가는 시멘트 임도를 타고 오늘 산행을 시작하지만 원래는 이곳에서 조금 더 2번 지방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오르면 옥녀봉 가는 거리 이정표와 등산안내도가 있는 곳으로 올라 밤나무 밭에서 다시 우측으로 꺽어 시멘트 임도와 만나기에 오늘은 그냥 편하게 처음부터 시멘트 임도를 타고 연평마을로 들어가며 긴 하루를 시작한다.

 

이곳 고개 이름이 분분하여 자료를 찾아 보지만 솔티고개가 맞는지 아니면 덕천고개가 맞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자료도 없고 또 사람마다 다른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어 헷깔린다.

개인적으로는 이곳이 덕천고개가 맞을듯 하며 솔티고개는 태봉산 지나 다시 만나는 2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곳이 맞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판단해 보지만 이것 역시 이 산객의 개인적인 의견이기에 주장에 한계가 있음을 말하고 싶다.

다만 태봉산 아래 유수리에 2번 국도의 중간에 솔티란 마을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두곳 중 한곳이 솔티고개란 지명은 맞을 듯 싶다.

연평마을은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의 마을 이름중 하나로서 당산과 옥녀봉 등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마을 앞으로는 덕천강이 흐른다.

연평지가 있으며 벼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 마을인데 자연마을로는 연향과 조평 등이 있고 조평은 연평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며 연향은 조평 동쪽에 있는 마을로서 연향과 조평의 이름을 따서 연평리라 하였다.

연향 서쪽의 장군바위에는 큰 바위 위에 작은 바위가 하나 더 있는데 여 장수가 큰 것은 머리에 이고 작은 것은 치마에 싸서 갖다 놓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조평동과 진주군 축곡면의 연향동을 병합하여, 연향과 조평의 이름을 따서 연평리라 하여 사천군 곤명면에 편입되었는데 6.25동란 때는 격전지로서 치열 하였으며 적의 교란술에 빠져 아군이 후퇴함으로써 진주전이 패인이 되였던 곳이기도 하다.

전설 담긴 옥녀봉은 진양호수 위에 우뚝 솟아 경치의 장함이으뜸이고 그 봉의 서쪽에 있는 부처골이 있으며 당산은 연향 동쪽에 있는 산으로 신당이 있어 당산이라 불려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산이다.

시멘트 임도를 타고 잠시 완만한 오르막 오르니 임도 우측으로 송강이란 일식식당이 보이고 고갯마루를 넘으니 임도가 공사중이라 우측 우회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임도 좌측으로 신흥목장 표지석이 서 있는데 그곳으로 오르면 다시 옥녀봉 가는 길이니 직진의 시멘트 임도를 타고 연평마을쪽으로 진행해야 한다.

 

신흥목장 빗돌에서 조금 더 진행하니 임도 좌측에서 내려오는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곳에도 몇개의 띠지들이 나부낀다.

살펴보니 그곳이 옥녀봉쪽으로 올랐다 밤나무밭에서 우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오면 만나는 정상 정맥 마루금이였던 것이다.

그곳을 지나니 임도 좌측으로 밭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민가 한채가 서 있다.

민가를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수몰민들의 애환을 담은 연평마을 애향비가 서 있다.

애향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는데 어둠속이라 전부 다 읽지는 못하고 잠시 둘러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연꽃의 전설을 간직한 연화봉과 우뚝솟은 옥녀봉과 국사봉이 병풍처럼 둘러져 서쪽으론 덕천강이 굽이쳐 흐르는 연평마을은 옛이름 조평과 연향이 통합된 마을로 연향의 연자와 조평의 평자를 따서연평이라 명명되었다.

마을 앞으로 비옥한 전답이 늘어선 살기좋은 본향이였고 600여년전 나주정씨 인동장씨 여산송씨 김해김씨 순으로 마을을 형성하여 살아오던 중 풍천노씨 여양진씨 창원황씨등 여러 성씨들이 함께하여 어언 500여년을 상호부조와 친목으로 한울타리로 어울려 오늘에 이르렀으나 1967년 남강댐의 건설로 인하여 본향이 진양호에 수몰되고 부촌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200여호의 900여 주민이 집과 전답을 진양호에 잠재우고 이향의 아픔을 겪었으며 그 후 1997년 남강댐 보강공사로 마을 전체가 수몰되고 10여호만 이웃마을로 이주하였으니 600여년동안 조상대대로 살아온 유서깊은 고향이 저 아래로 굽이쳐 넘실거리는 호수속에 잠겨있다는 것을 상기코져 그 흔적을 남기기 위하여 돌에 고향잃은 쓰라린 사연을 새긴다.

고향 잃은 실향민들의 애환이 쓸쓸한 밤공기를 가르며 산객의 폐부를 찌르고 있다.

 

애향비가 서 있는 넓은 공터에서 마루금은 좌측으로 꺽어지는 시멘트 임도를 벗어나 우측에 많은 공사 안내판들이 서 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의 능선을 타고 잠시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올라야 한다.

생각보다 춥지 않은 온도에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줄기에선 벌써 땀방울이 스며들기 시작하고 손수건을 동여 맨 이마에서도 땀방울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잠시 오르니 등로 옆에 진양 정씨 묘지가 잘 가꿔진채 산객들을 반기고 조금 더 오르니 다시 몇기의 산소들을 지나  평이한 능선에 도착을 한다.

잠시 밤나무 단지로 들어 밤나무 낙엽을 밟으며 진행하니 몇기의 진주정씨 묘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활엽수 낙엽이 푹신한 등로를 타고 완만한 오르막 마루금을 오르니 옛날 성곽 같은 돌무덤들이 흩어져 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한다.

아마도 옛날 성이 있었던 흔적처럼 보이지만 그곳이 성이였다는 자료는 그 어디에서도 찾지 못한 태봉산 정상인데 파손된 삼각점과 최근에 새로 박아 놓은 듯한 새로운 삼각점이 나란히 보이고 그 옆 나뭇가지엔 종이를 코팅한 코팅지에 태봉산 189봉이라 적혀 있다.

어렵게 진주쪽 자료를 찾아 보니 태봉산을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것을 인용해 보면 옥동 동쪽에 있는 이 산은 세종과 단종의 태를 묻었던 곳인데 뒤에 양주로 옮겨갔다고 하는 산이다란 자료만 있을 뿐이다.

왜 세종과 단종의 태를 이곳에 묻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지만 자료를 찾지 못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잠시 사진 한장씩 남기고 좁은 태봉산 정상을 내려오는데 내려오는 등로에서 흩어진 많은 돌들이 너부러져 있어 그 옛날 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듯 하지만 남아 있는 자료가 없음이 안타까운 시간이다.

잠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오니 비석 하나 없는 묘지가 반기고 다시 만나는 묘지 하나를 지나 억새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마루금을 걷다보니 등로가 우측으로 꺽이는 나즈막한 봉우리 좌측 나뭇가지에 디비리산이란 종이 코팅지가 보인다.

자료를 찾아 보지만 디비리산에 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아쉽지만 이렇게나마 그 이름을 찾을 수 있다면 좋은 소식이라 생각하면서도 검증된 이름이길 바래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디비리산을 지나 완만한 내리막 마루금을 타고 내려가니 등로는 시멘트 임도를 만나 그 임도를 타고 잠시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꾸불꾸불 이어진 내리막 시멘트 임도를 타고 내려가다 보니 임도 좌측으로 알 수 없는 작은 건물도 보이고 곧이어 새로 생긴 4차선 2번 지방도로를 우측 밑으로 건널 수 있는 구 2차선 지방도로와 만나 교각 밑으로 4차선 2번 지방도로를 건넌다.

교각을 벗어나자 마자 마루금은 4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우측 벽을 타고 올라 지방도로 옆에 인공으로 만든 콘크리트 수로를 타고 잠시 진행하며 4차선 도로를 올려다 보니 창원과 진주쪽 도로 이정표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사천과 축동 그리고 정동마을로 갈라지는 마을 표시가 보인다.

인공 콘크리트 수로에는 물이 말라 있지만 날씨가 차가워 얼어 있기에 조심해 진행하며 잠시 후 다시 콘크리트 수로를 우측의 4차선 2번 지방도로와 함께 우측으로 보내고 좌측 능선을 타고 계속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좌측 능선을 타고 잠시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밤나무 밭이 나타나고 사진 한장 남기려 셔터를 누르니 코에서 나오는 입김으로 인해 안개 낀 날씨처럼 뿌옇게 나타난다.

소나무가 자란 등로를 타고 급하지 않은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니 발끝에 전해오는 촉감이 너무나 부드럽고 날씨마저 크게 춥지 않아 산행 조건은 최상인 듯 하다.

그렇게 잠시 오르니 정상 봉우리에 도착을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둘러 보니 3000산 오르기 한현우님이 붙여 놓은 바락지산 128봉이란 띠지와 함께 온라인상에서 알고 지내는 산누름님 띠지가 보인다.

사진 한장 남기고 뒤돌아 내려서기 직전 그 128봉 정상부 모습을 담아 본다.

 

바락지산에 내려 오는 등로 역시 너무나 호젓한 등로처럼 보이지만 그저 마음으로 느낄 뿐 어둠속에 보이는 것은 없다.

이제 솔잎이 떨어진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묘지 한기가 보이고 한동안 더 진행하니 다시 묘지 한기가 더 보인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나즈막한 뒷동산 같은데 지형이 좋은지 수많은 묘지들의 전시장처럼 자주 만나게 되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라면 특징처럼 다가온다.

그렇게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는 분재같은 소나무를 식재한 농원으로 이어지고 잠시 후 T자 시멘트 임도와 만나 그 시멘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올라간다.

좌측에는 묘지들이 즐비하고 우측으로는 공사중인 포크레인 한대와 정문처럼 보이는 철조망이 있고 잠시 더 소나무 식재된 구간을 지나니 능선으로 잠시 진행하며 몇ㄱ의 묘지 구간을 더 지난다.

그리고는 등로 좌측으로 강한 철조망이 쳐진 구간을 지나 시멘트 임도를 다시 만나면 좌측으로 꺽어지는 시멘트 임도를 버리고 직진의 시멘트 임도를 타고 전진하면 과수원을 지나 마을이 나타나고 그 마을 주민들이 가꾸는 마늘이 하얀 성애를 맞아 색다른 모습으로 산객들을 반겨 준다.

 

그 시멘트 임도를 타고 내려오는 도중에 유수리 민가에서 키우는 견공들이 고요한 밤의 정적을 깨며 시끄럽게 울부짖고 괜시리 이 산객들로 인해 잠못 이룰 미을 주민들에게 미안한 시간으로 남기는 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시멘트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그 임도는 2차선 포장도로 만나고 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꺽어 진행하다  직진의 진주시쓰레기 매립장과 좌측으로 1049번 지방도로 표시가 되어 있는 도로 이정표 있는 곳에서 포장도로를 건너면 도로 옆 잔디밭에 국가하천 가화강이란 표시판이 크게 서 있다.

가화강 즉 가화천은 낙동강 권역의 낙동강남해권 수계에 속하며 유로연장이 12.52㎞, 하천연장이 10.38㎞, 유역면적이 29.08㎢이다.

진주시 내동면 유수교 아래, 남강댐에 의해 생긴 진양호의 수문에서 흐르기 시작하여 사천시 곤양면 가화리를 거쳐 사천시 축동면 구호리와 곤양면 중항리의 경계지점까지 흘러간다.

원래 남강댐을 설계할 때는 물이 가화천으로 흐르지 않고 유수교에서 진양호 쪽으로 흐르게 되어 있었지만, 나중에 유수교에서 남쪽으로 10m 떨어진 낙남정맥의 암벽을 잘라내어 진양호의 수문을 열면 인위적으로 물이 남쪽으로 흐르게 바꾸었다.

진양호는 경상남도 유일의 인공호수로서, 물이 맑고 자연경관이 훌륭하여 관광명소가 되었다.

가화천을 따라 공룡화석이 발견되고 있는데,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 가화천 하상에는 약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 고환경과 공룡화석산지 26만 8575㎡ 규모가 천연기념물 제390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고, 최근에는 사천시 곤양면 가화리에서부터 검정리에 이르는 가화천 하상에서도 공룡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

위의 설명과는 달리 정맥 산행을 하는 산객들 입장에서 보면 산자분수령을 인위적으로 깨 버린 유일한 지역이였지만 최근에는 하남정맥의 아라뱃길 사업으로 인해 인공강이 하나 더 생겨 굴포천을 넘어야 하는 장소와 함께 비극의 장소로 남아 있는 곳이 되였다.

 

가화강 안내판을 담은 후 다시 도로를 타고 조금 더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 어둠속에 길게 누워있는 유수교가 보이고 그 아래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지만 어둠이 모든 것을 숨겨 놓고 보여주지 않는다.

헤드렌턴으로 유수교 밑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지만 차라리 어둠속에 숨어 보여주지 않음이 덜 가슴 아픈 시간임을 알기에 무덤덤하게 그 역사의 유수교를 두발로 걸어 건너본다.

유슈교가 있는 유수리는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의 법정 마을로서 유동의 유자와 수거촌의 수자를 따서 유수리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진주군 축곡면 지역이였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축곡면 유동, 수거촌과 곤양군 가리면 가화동 일부를 합쳐 유수리라 하고 내동면에 편입하였으며 1983년에는 사천군 곤양면 가화리 일부가 유수리에 편입되기도 하였다.

남강 연안지역으로 남강의 지류인 유수천이 흐르고 대부분의 지역이 낮고 평탄한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동 소류지 등의 못이 분포해 있는데 자연마을로는 버디골, 새미따골, 쑥골, 웃다리 및 유동이 있으며 새송이버섯과 느타리버섯을 특산품으로 재배하고 있다.

문화재로 도통사(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3호)와 1997년에 발견되어 천연기념물 제390호로 지정된 유수리 백악기고환경 공룡화석지가 있는 제법 알려진 마을이기도 하다.

정맥 산행을 위해 공부했고 또 두발로 걸어가며 그 아픈 역사를 느끼는 시간이기에 밤잠 설치며 댈려 내려온 시간이 아깝지 않은 순간이기도 하다.

 

산자분수령이란 대 전제를 송두리째 잘라버린 가슴 아픈 현장인 가화강을 유수교를 통해 건너며 많은 생각을 해 보지만  어짜피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조금씩 파괴 될 수 밖에 없는 자염임을 알기에 어둠보다도 더 캄캄해져 오는 현실에 가슴 아픈 시간이다.

그 유수교를 건너자 마자 직진의 1049번 지방도로를 보내고 우측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90도 꺽어 들어가니 과실수로 보이는 나무들이 서 있고 곧이어 콘테이너 박스가 서 있다.

이곳 역시 견공들의 울부짖음에 미안한 마음으로 진행하니 민가 한채가 나타나고 그 민가를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도로가 꺽이며 그 도로 좌측으로 그물망이 쳐진 축구장이 보인다.

이곳에서 독도를 해 봤어야 하는데 선두 그룹은 그대로 직진하다 뒤돌아 나오고 이제서야 정독을 해 보니 마루금은 민가를 우측에 두고 좌측 도로가 아닌 우측 도로를 타고 진행해야 맞는 길이다.

약간의 알바가 있었지만 금새 정상 등로를 찾아 대나무 밭으로 이뤄진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땀방울 흘리며 오르니 홍수예경보 시설이 있는 능선에 도착을 해 잠시 물한모금 마시며 쉬어 간다.

 

홍수예경보 시설에서 처음으로 배낭 벗어 놓고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한 후 준비한 음료수 한모금으로 목마름을 달래 본다.

후미까지 도착하고 다시 한기를 느끼는 등짝에 배낭 둘러메고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 본다.

소나무 재선충병 훈증을 위해 덮어 놓은 파란 비닐이 계속 눈에 들어 오고 그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갑자기 억새가 나타나더니 곧이어 가시달린 드릅지대로 들어 선다.

그리고는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이 낙엽과 함께 등로를 덮으며 종주대의 발걸음에 무게를 더해 준다.

그렇게 한동안 땀방울을 흘리니 드디어 171봉 정상으로 향하는 정상 직전에 도착하지만 거칠은 잡목과 말라붙은 잡풀들이 여름날 산행이 얼마나 힘들었나는 이야기 해 주는 듯 하다.

 

잡목과 잡풀 사이로 난 마루금을 타고 171봉 정상에 오르니 시야가 트이면서 등로 좌측으로 유수역쪽 불빛이 들어 오기 시작한다.

잡목지대를 타고 잠시 더 내랴가니 밤나무 밭과 감나무밭이 혼재된 과수원을 지나 안부에 도착하고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이제는 등로 양편에 매실 나무가 심어져 있는 과수원을 타고 과수원 정상부로 향한다.

그 정상부에서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는 선두를 두고 우측 저 멀리 사천시의 불빛을 캐논 카메라에 담다 보니 선두 그룹이 다시 올라오며 등로를 잘못 들었다며 정상부에서 좌측 능선으로 내려간다.

준비한 상세 산행 안내와 지도를 펴 놓고 독도를 해 보니 우측 비포장 임도가 맞으며 계속 내려가면 시멘트 임도를 만나는 사거리에 도착해 낙남정맥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는 글이 보인다.

어렵게 그곳으로 타고 내려가며 급할 것 없기에 계속 여명이 밝아 오는 산줄기를 사진에 담아 보는 시간이다.

 

매실과수원 정상에서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오니 임도 좌측으로는 새로 식재된 작은 묘목들이 보이고 계단식 과수원을 타고 내려오니 우측 사천쪽 불빛과 정면으로 동쪽의 일출이 시작되는 곳에서 하늘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하며 또 하루를 열기 위해 분주한 시간이다.

하루 중 가장 극적이며 가장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시간, 모든 자연이 숨죽여 잠들어 있는 시간이지만 맥을 이으며 국토를 밟아 보려는 투지의 낙남종주대만이 그 어둠과 고요를 뚫고 또 이렇게 산상의 아침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경건한 시간이기도 하다.

계속 내려가니 좌측으로 시멘트 임도가 시작되는 사거리 안부에 도착하고 그곳 정맥 마루금 옆에 오늘 처음으로 솔티고개에서 6.93Km 지나왔으며 와룡산까지 9.41 Km 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나 정상적인 등로임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이곳이 고도표에 나타난 전골갈림길로서 전골이란 마을은 사천시 축동면 반룡리에 속한 부락이다.

반룡리는 본래 진주군 부화곡면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용이 서리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반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촌동과 관동을 병합하여 사천군 축동면에 편입되었다.
신촌, 관동, 반룡 3개 자연마을로 형성되었다.

 

다시 전골갈림 사거리의 이정표를 담은 후 조금은 가파라지는 오르막 된비얼을 타고 오르니 능선 정상부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는 파란 물통 두개가 서 있다.

그 정상부에서 서서히 밝아오는 여명을 담아 보지만 역시 빛이 약해 아직은 검은색 뿐이다.

그래도 하루를 열기 위한 몸부림은 동녘 하늘에서 벌써 시작되어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을 한다.

삼각대가 없기에 최대한 숨을 멈추고 많은 빛을 이용해 담아 보지만 역시 역부족이다.

그저 산행 기록을 위해 사용 할 수준 뿐이지만 소중한 자료로 남겨 본다.

 

커다란 파란 물통 2개가 서 있는 105봉에서 밝아 오는 여명의 빛을 빌려 앞을 바라보니 등로 좌측으로는 계단식 감나무 과수원이 펼쳐져 있고 그 한가운데에 민가 한채가 서 있다.

우측 감나무 과수원 경계를 따라 좌측에 민가를 두고 그 과수원을 통과해 뒤 돌아 보니 지나온 마루금과 감나무 과수원이 한눈에 들어 정도의 빛이 생기고 어렵게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우측으로 유수리와 유수리역쪽 마을로 이어주는 좁은 전답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뜨문 뜨문 들어 서 있는 민가에서 하루를 열기 시작하는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감나무 과수원을 좌측에 두고 나즈막한 안부로 내려갔다 무명봉으로 오르니 그곳에도 역시 커다란 파란 물통 2개가 서 있고 그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하여 잠시 후 감나무 과수원과 헤어져 능선으로 진입을 한다.

이곳에서 지난 호남정맥 후미대장 역활을 맡아 고생했던 종주대 한명이 다리에 이상을 느껴 비리재(일명 유수재)에서 탈출을 한다는 소식에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금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비리재에 도착해 쉬어 간다.

비리재(비리고개)는 갓골 동쪽에 새로 생긴 마을을 부르는 이름이였는데 그 그 마을 뒤 비약산 동쪽에 있는 고개가 바로 비리재이며 1049번 지방도로가 지나며 사천시 축동면과 진주시 내동면을 이어주는 고갯마루이다.

 

잠시 쉬었다 도롯가 언덕을 넘어 오르니 나무를 식재한 밭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능선으로 진입하니 잘 정돈된 쌍묘가 나타난다.

묘지를 지나 계속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감나무 과수원이 나타나고 저 멀리 등로 우측으로 1049번 지방도로와 반룡리 마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완전히 여명이 밝아 와 머리에 찬 헤드렌턴을 접어 배낭에 넣고 진행해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의 아침이 밝아 왔다.

반룡리가 있는 사천시 축동면을 찾아 보니 본래 진주군의 지역으로서 축동면이라 하여 예동, 사다, 하동, 길평, 신기, 양동, 배춘의 7개 동리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군면 통폐합에 따라 축곡면과 가차례면의 하동과 사천군 북면의 토촌 등 일부와 진주군 부화곡면의 가산, 학수, 하구, 반룡, 구호, 성산, 탑동, 신촌, 관동의 9개 동리를 병합하여 다시 축동면이라 하여 사천군에 편입되어 가산, 구호, 탑리, 반룡, 사다, 길평, 배춘의 7개 동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사천 비행장의 확장으로 하동마을은 사남면 유천리에 정착하고 길평마을은 진주와 삼천포 국도변인 배춘리로 이전하였다.

동쪽은 사천읍과 진양군 정촌면, 남쪽은 사천읍과 사남면, 서쪽은 곤양면, 북쪽은 진양군 내동면, 정촌면과 접하고 있다.

내가 살아 보지 못한 생소한 마을에 내려 와 공부하는 시간도 즐거운 순간이다.

 

조금 더 전진해 감나무 과수원을 통해 전진하다 등로 좌측 저 멀리 바라보니 그곳에 그리움으로 남겨진 지리산 천왕봉이 정상부에 하얀 눈을 덮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언제 보고 들어 가도 늘 또 그리움만남기는 지리산, 어느곳에서 봐도 늘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산객들의 어머니같은 산으로 남아 있기에 이렇게 그 모습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이는 시간이다.

그 아래 우측으로는 하얀 안개가 골짜기에 내려 앉아 그 황홀한 풍경에 화룡정점을 찍어 주고 있다.

 

지리산 조망에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밝아지는 세상에 몸을 맡기며 종주대를 따라 천천히 진행하니 아주 부드러운 등로가 새벽의 졸리운 눈을 자극하며 환상의 세계로 인도를 하는 듯 하다.

봉분이 가라 앉은 묘지가 있는 128봉을 넘으니 아침 7시 10여분을 넘기고 혹시 잡목에 가려 일출을 보지 못하면 어떻하나 하는 조바심에 자꾸만 발걸음이 빨라진다.

소나무와 잡목들 그리고 억새가 피어 난 평화로운 등로를 타고 한동안 그렇게 진행하니 다시 묘비석이 없는 묘지 하나를 지나 소나무 군락지를 통과하니 감나무 과수원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아침 상을 펴고 식사를 하며 아침 일출을 만나고 주위에 흩어진 까치밭으로 남긴 감을 따 먹으며 동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맞는다.

 

감나무 과수원 우측의 사천시 축동면 탑리쪽 용두산 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아침 햇살이 온 세상에 퍼지며 따스함을 전해 주는 시간은 언제나 무념으로 또 다른 아침을 맞이하는 시간이다.

산행을 하면서 오르는 고통도 내리막 등로의 안전산행도 그리고 너무나 황홀한 조망에 넋을 잃는 시간도 모두 잊고 그저 이 시간 붉게 떠 오르는 태양에 이 산객의 모든 것을 녹여 무념으로 만드는 순간이다.

어떤 말로도 표현하지 못하고 굳이 표현하려 애쓰지 않아도 모두 느끼는 같은 황홀경이다.

 

아침식사 후에는 다시 감나무에 매달려 있는 맛있게 익은 감을 따 먹으며 후식도 즐겨보는 시간이기에 모두가 함박 웃음으로 시간을 즐긴다.

그러다 모든 식사가 끝나고 추억 하나 만들기 위해 단체 사진을 찍은 후 천천히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 앞으로 진행해야 할 방향의 마루금을 눈으로 짐작하며 선으로 그어 본다.

이 감나무 과수원을 지나면 다루황토집 찜질방이 있다는데 아직은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환상의 아침 햇살이 떠 올랐던 등로 우측의 축동면 사다리 마을엔 엷은 안개가 피어 오르며 또 다른 황홀경을 만들고 있다.

그곳 마을을 찾아 보니 본래 진주군 축곡면의 지역으로서 사다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예동, 하동 일부와 가차례면의 하동 일부를 병합하여 사다리라 해서 사천군 축동면에 편입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감나무 과수원을 내려오니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도로 좌측에는 한우를 키우는  축사가 있다.

그 포장도로 옆에는 솔티고개에서 8.82 Km 지나왔고 와룡산까지는 7.52 Km 남았다는 거리 이정표가 서 있다.

포장도로를 타고 계속 우측으로 전진하니 도로 좌측으로 다루황토집 찜질방 간판이 서 있고 그 아래로는 원형의 황토로 표면을 바른 멋진 찜질방 하나가 보인다.

이런 산골에도 저런 멋진 찜질방이 들어 서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포장도로를 타고 계속 전진하니 도로 우측에 탑리 상탑마을의 햇살농원이란 팻말이 서 있고 그 아래 주인인듯 한 모바일 전화번호가 함께 있다.

그러고 보니 드넓은 이곳 과수원이 모두 햇살농원에서 관리하는 과수원인가 보다.

다시 계속 진행해 오르니 갑자기 강렬한 소음을 내며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경전선이 지나는 지하 터널이 있는 곳이였다.

고갯마루로 올라가는 곳에 깔린 포장도로가 모두 금이가고 뒤틀린 현상이 그 경전선의 소음은 아닐까 걱정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고개ㅔㅅ마루로 오르는 중간에 도로 좌측 능선으로 정맥 주 마루금 표시가 되어 있지만 이 포장도로로 다시 내려와야 하기에 그냥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하기로 한다. 

 

도로를 타고 정상 가까이 진행하다 우측 능선을 타고 봉우리로 오르니 179봉 정상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지나온 마루금을 뒤돌아 보니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지난 구간 지나온 내동공원묘지가 드러나 있고 그 뒤로 지난 2구간부터 밝고 걸어 온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정상에서 등로 우측을 바라보니 축동면 사다리쪽 마을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고 얇게 드리워진 안개가 더욱 깊은 운치를 자아내고 있다.

몇장의 사진을 담은 후 다시 후미로 쳐져 종주대를 뒤따르고 있다.

  

다시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계속 진행하며 등로 우측을 바라보니 사천시쪽 나즈막한 산줄기가 마치 섬어 들어 바다를 바라보듯 그렇게 그리움으로 쌓이고 그 나즈막한 산줄기 끝자락엔 하얀 안개속에 희미한 남해바다가 가슴을 설레이게 만든다.

그 한가운데에는 남해고속도로의 다리가 높은 교각위로 내려다 보이고 좌측으로 돌아가며 사천의 진산인 와룡산을 향해 고도를 높이는 산세가 다음을 약속하고 있다.

저 남해바다 끝자락엔 몇년전 홀로 오르며 수많은 추억과 발자취를 남겼던 남해지맥이 박무속에 가물거리고 있다.

 

그렇게 가슴에 묻어 뒀던 추억을 꺼내 회상하며 낙엽 깔린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금새 등로 좌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안부에 도착을 하고 곧이어 비포장 임도를 좌측으로 흘려 보낸 뒤 우측 능선을 타고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 본다.

잠시 오르다 능선에 도착해 등로 좌측을 바라보니 산행 종료 후 가 목욕을 하고 늦은 점심을 먹어야 할 경상대학교 부근의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시원스레 조망되고 그 앞에는 작은 저수지도 내려다 보인다.

혹시나 하고 올라야 할 마루금을 찾아 보지만 지금부터 올라야 할 등로는 앞의 나즈막한 봉우리에 막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부드럽게 열려있는 마루금을 타고 뒷동산에 올라 도심을 내려다 보며 걸어가듯 여유를 가지고 걷다 보니 어느새 제일 후미로 쳐지게 되어 조금은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본다.

소나무와 잡목들 그리고 억새가 적당히 어우러진 등로를 타고 나즈막한 봉우리에 올랐다 내려가는 등로 우측에 철모르는 진달래 나무 한그루가 모든 꽃을 피워 마치 봄에 진달래 꽃 산행을 하는 기분을 만들어 준다.

한 두송이가 아닌 진달래 나무 한 그루 전체가 모두 꽃을 피우고 있으니 세상이 어찌되려고 그러는지...

 

철없는 진달래 꽃을 담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계속 경상대학교 쪽의 고층 아파트들이 나타나고 지도를 살펴보니 신율리와 가좌동 지역이다.

한동안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저 멀리 앞서 진행하던 종주대들이 모여 겉 옷인 자켓을 벗으며 잠시 쉬고 있다.

내려가 보니 임도삼거리로서 우측으로 심대마을 그리고 좌측으로는 내동 해돋이 쉼터 이정표가 있고 임도를 가로질러 가는 방향에는 실봉산 0.6 Km 이정표가 서 있다.

심대마을은 옛날 심판사 세력하에 있다가 서울로 떠난후 구암 이정선생의 입산을 계기로하여 포구정이라 칭하였다 한다.

구암선생의 묘소는 대축리 한골이라 하였는데 왜정말기에 심대라 개칭하였다.

 

임도삼거리의 이정표만 사진에 담고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먼저 올라 간다.

멋진 소나무들이 반기고 가끔 소나무 표피에 파란색 페인트로 화살표 방향을 표시해 등산로를 알리는 듯 하여 어렵지 않게 진행 할 수 있다.

참으로 꿈결같은 등로를 타고 잠시 무아지경으로 걷다보니 등로 옆에 장흥고씨 묘지가 보이고 약간의 잡목이 우거진 마루금을 따라 오르니 지적측량기준점이 되는 삼각점과 안내판 그리고 실봉산이란 스테인레스 스틸판에 정상 표시 안내판이 걸려 있다.  

고도 185미터인 실봉산은 심대마을 뒤산으로서 전설에 의하면 천지가 개벽할 때 산봉우리가 떡시루 정도 남고 물에 잠겼다하여 실이바위, 집화바위, 할머니바위, 미륵바위 등의 이름이 전해지는 산이다.

 

실봉산 정상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삼각점까지 담은 후 다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금새 봉분만 있는 두기의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진입한다.

능선으로 진입해 진행하다 등로 좌측을 보니 다시 지리산 천왕봉이 가깝게 조망되고 그 정상부엔 여전히 하얀 눈이 덮혀 있고 그 좌우로 지리연봉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곳을 지나 능선을 빠져 나오니 갑자기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드릅나무를 식재한 장소에 도착해 탁트인 풍경과 조망을 바라보며 지역과 산 이름을 맞혀 본다.

북동쪽으로 진주 시내가 보이고 그 시내에서 뿜어져 올라오는 하얀 연기가 하늘로 사라지며 그 넘어 희미한 박무띠를 지나 저 멀리 우뚝 솟은 봄철 철쭉으로 유명한 의령의 한우산과 자굴산이 우뚝 솟아 보인다.

 

한우산과 자굴산을 바라본 후 눈을 남동쪽으로 내려다 보니 저 멀리 사천시를 앞에 두고 798미터의 고도를 자랑하는 와룡산이 길게 뻗어 사천시를 감싸고 있다.

그 우측으로는 가물거리는 창선 및 삼천포대교와 남해바다 넘어 우측으로 남해의 산줄기들도 가물거린다.

너무나 아름다운 남해지맥을 떠 올리며 몇년전 추억에 미소를 띠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선두 중간 그룹이 해돋이 쉼터 정자에서 쉬고 있다 후미조가 도착을 하니 자리를 내주며 다시 앞으로 도망가듯 진행을 한다.

 

이제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드릅나무 식재된 곳을 출발해 억새가 갈색으로 변해 버린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한 오르막 임도를 따르니 해돋이 쉼터가 바로 코앞인 넓은 공터에 도착을 해 다시 한번 주위 풍경을 둘러 보며 조망을 즐겨 본다.

북서쪽 저 멀리 주 능선에 하얀 눈을 덮고 힘찬 기상으로 뻗어 내린 지리연봉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그 우측 저 멀리 북쪽으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덕유산을 찾아 보지만 역시 높은 지리연봉에 막혀 전혀 보여주질 못하고 있어 조금은 아쉬운 시간이다.

 

지나 온 드룹나무가 식재된 벌목지도 구경하고 지리연봉을 둘러 본 후 그 우측 능선을 타고 눈을 돌려 북쪽을 바라보니 다시 진주의 아파트 단지들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지리 서부의 고봉들이 보이는 듯 하더니 그 우측 중앙으로 희미하게 합천의 황매산 자락도 가물 거린다.

나즈막한 뒷산에 올라 지리산과 황매산 그리고 그 우측으로 한우산과 자굴산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만큼 멋진 조망을 즐기는 시간이다.

조망과 보이는 풍경만 놓고 보면 강원도 어느 고봉 못지 않은 아름다운 조망처이기도 하다.

 

이제 선두와 중간 그룹이 떠난 해돋이 쉼터에 들려 잠시 배낭 내려 놓고 사방 팔방 툭 터진 조망과 풍경을 마음 놓고 담으며 즐겨 보는 시간이다.

북서쪽의 지리산과 북쪽의 황매산 그리고 북동쪽의 한우산과 자굴산을 지나 진주 시내를 구경하고 남동쪽으로 돌리니 사천의 진산인 와룡산이 우뚝 하다.

그 우측인 남쪽으로 눈을 더 돌리니 이제 해가 중천에 떠 올라 있고 그 강렬한 태양빛을 받아 반사하는 곳에 남해지맥의 산줄기들이 잔잔한 높이를 수없이 하늘을 향해 뻗으며 산객의 마음을 설레이게 만들고 있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너무나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 아닐 수 없다.

 

한동안 마지막 까지 남아 해돋이 쉼터에서 수많은 조망과 풍경을 사진에 담은 후 이름 맞추는 퍼즐도 끝내고 천천히 들어갔던 문을 통해 나와 파란 물통과 이정표를 찍는다.

그리고 주위 풍경을 다시 한번 사진으로 찍은 후 좌측으로 크게 휘어지며 해돋이 쉼터 밑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임도를 타고 종주대의 꽁무니를 따라가 본다.

이곳에서 지도 한번 살피고 준비한 상세 산행 안내도 한번 읽어 보고 진행했으면 조금 더 수월하게 마루금을 찾아 진행했을 것을 그렇지 못해 잠시 약간의 알바 및 허둥지둥 대는 시간을 가져 본다.

 

계속 시멘트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임도 좌측으로는 계단식 밭이 조성되어 있고 그곳에는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다.

한동안 내려가니 임도 사거리를 만나는데 그곳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임도 우측으로는 함촌마을로 좌측으로는 산강마을로 그리고 직진의 낙남정맥 마루금을 타고 진행하면 화원마을로 갈 수 있다는 이정표로 당연히 지금 막 이 산객이 내려 온 곳은 낙남정맥 실봉산이라 적혀 있다.

함촌마을은 전설에 의하면 함안고을 원이 살았다 하여 함안촌이라 하였는데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진양지에 의하면 옛 지명에 함안촌이 있었다.
약400여년 전 의령군 가례면 부근에서 밀양박씨가 피난을 와 정착하면서 신안주씨와 의형제를 맺고 살았는데 그 후손들과 서씨, 황씨 등이 살고 있는 마을이 되였다.

화원마을은 1996년 4월 1일 화동마을에서 분리된 마을이며 1980년도와 1992년도에 취락구조로 형성된 마을이란 자료를 찾아 보지만 삼계리에 있는 산강마을은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올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간이다.

 

다시 임도 사거리를 지나 이제 비포장 임도를 타고 계속 진행하니 나즈막한 오르막 임도로 이어져 있다.

저 멀리 고갯마루 정상에서 선두와 중간 그룹이 길찾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몇명의 종주대들이 지도를 보며 정상 등로를 찾아 분주하다.

그 정상으로 올라 이 산객도 준비한 지도와 상세 산행 안내를 정독하니 임도를 타고 고갯마루까지 오르기 전 우측으로 나 있는 정상 등로를 타고 우측으로 꺽어 들어 갔어야 했는데 고갯마루 정상으로 올라가 우측 능선으로 내려가려니 등로도 없이 아카시아 가시나무만 무성해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도 그곳에서 우측 잡목을 뚫고 내려가니 우측에서 오는 정상 등로를 만나 편안하게 진행하지만 반 정도의 종주대는 고갯마루 넘어 정상 등로의 좌측 산줄기를 타고 한동안 알바 후 다시 조우하게 되는 해프닝이 벌어 졌다.

사진의 저 오르막 임도 시작되는 지점의 우측 능선으로 들어가 진행해야 할 알바 주의 구간이다.  

 

그렇게 선두와 헤어져 한동안 편안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남해고속도로 교각이 보이고 그 넘어 진주시가지가 드러나며 그 뒤로 사천의 와룡산이 조금 더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몇기의 산소를 지나 나즈막한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진행하니 등로 좌측 골짜기에서 알바하고 정맥 마루금으로 복귀하는 종주대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행이 멀리 벗어나지 않고 다시 정맥 마루금으로 복귀해 함께 진행하니 그마나 다행인 시간이다.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나즈막한 봉우리 하나를 넘으니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등로 우측으로는 시멘트 임도가 따라오는 그림이다.

 

시멘트 임도를 우측에 두고 능선으로 계속 진행하니 등로 우측 능선에는 나무를 식재한 듯 보호하기 위한 노력들이 보이고 왕겨와 퇴비가 뿌려져 있어 어렵게 살아가는 산촌 사람들의 마음을 엿보는 시간을 가져 보기도 한다.

그 우측 능선 밑으로는 사천시 축동면 대축리의 심대마을이 고즈넉하게 내려다 보인다.

높지 않은 나즈막한 산줄기가 끊어질 듯 이어져 가는 모습에 강인한 생명력도 느껴보는 시간이다. 

 

계속 능선을 타고 진행하니 시멘트 임도와 만나고 그 임도를 만나자마자 비포장 임도로 변하며 잠시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한다.

조금 더 진행하니 억새가 한가득 피어난 멋진 등로도 지나며 계속 전진하니 그 비포장 임도를 우측으로 보내고 등로는 좌측 능선으로 방향을 돌려 진행 된다.

능선으로 들어 진행하니 고갯마루 하나를 넘어 과수원이 내려다 보이고 그곳을 통과하자 시멘트 임도와 만나 내려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서 많이 봤던 화원삼계탕 식당 건물이 보인다.

 

그 화원삼계탕 식당 건물을 우측에 두고 내려가니 시멘트 임도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에 낙남정맥 실봉산 3.8 Km/해돋이 쉼터 3.0 Km 및 낙남정맥 무선산 11.6 Km란 이정표가 서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시멘트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진행하니 우측에 작은 연못이 보이고 조금 더 진행하니 넓은 공터가 나타나며 그 좌측에 실봉산과 무선산 등산 안내도가 서 있다.

공터가 있는 곳에 다시 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으로 돌아 걸어가니 도로 우측에 정자 쉼터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배낭 내려 간식을 먹으며 후미를 기다려 본다.  

 

후미가 도착하고 다시 배낭 메고 정자 쉼터를 출발 해 첫번째 지하통로를 통해 남해고속도로를 통과한다.

지하통로를 통과한 후 도로 좌측을 보니 대진고속도로가 지나고 도로 이정표엔 서진주와 연화산/통영 출구 표시가 보인다.

다시 두번째 높은 교각 밑을 통해 삼양곰탕 입구 표시가 되어 있는 식당 간판을 우측에 두고 대진고속도로를 건너자 마자 좌측 방향으로 크게 꺽어 대진고속도로와 일직선 방향인 대전 방향으로 올라가면 대진고속도로가 도로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고 그 4차선 도로를 우측으로 건너 진행하면 화원마을 이정표와 중앙펜스철물 간판을 우측에 두고 진행한다.

다시 만나는 삼거리에서 뜻밖에 온라인 산친구인 이곳 진주가 고향이신 하마박사님을 만나 짧은 인사를 나누게 된다.

서로가 바빠 길게 이야기 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아쉬움이 큰 시간이지만 이렇게나마 얼굴 확인하고 인사라도 나눌 수 있어 정말 반가웠던 시간이다.

다만 그 하마박사님 사진이라도 한장 남기고 돌아 왔으면 좋았을 것을 그것이 안타깝고 아쉬운 시간이였다.

언젠가는 다시 만나 탁배기 한사발 가운데 두고 끝없는 산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마박사님과의 만남이 반갑지만 아쉬운 짧은 시간을 뒤로 하고 다시 우측으로 돌려 지하통로를 타고 지방도로를 건너 계속되는 포장 이면도로를 타고 진행한다.

이면도로를 타고 조금 더 진행하니 도로 좌측에 포장도로가 지나는 삼거리를 만나 살펴보니 개인사유지이며 등산로가 아니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하지만 꼭 그곳으로 들어가며 진행해야 하는 맥 잇기 산행이니 어쩔 수 없이 좌측에 고속도로를 두고 개인 사유지로 들어가 녹색 철조망 문을 통해 사유지 안으로 들어 간다.

잠기 완만한 오르막 임도를 타고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콘테이너 박스 하나가 놓여 있고 그곳을 통해 우측으로 꺽어 진행하니 다시 우측 아래로 내려가는 사면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콘크리트 포장 임도를 만나 진행한다.

 

좌측에 나무가 식재 밭을 두고 내려가니 시멘트 임도 삼거리를 만나 좌측으로 올라가니 다시 지하통로를 통해 마지막 대진고속도로를 건너도록 되어 있다.

지하통로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민가가 있고 민가를 우측 아래쪽에 두고 좌측 오르막 시멘트 임도를 타고 오르니 도로 우측에 작은 대나무 밭도 보인다.

지하통로를 통해 도로를 건너 오르니 다시 등로는 우측 공터로 이어지고 짧은 공터를 지나니 지난 여름 무척이나 많이 자랐던 잡목과 잡풀이 죽으며 좁은 등로를 열어 주고 있다.

 

다시 공터를 지나 능선으로 붙어 오르며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진행한다.

잠시 올라 가쁜 숨 몰아 쉬며 뒤돌아 보니 멋진 풍경과 지나온 마루금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진주 분기점이 바로 발 아래로 보이고 그 고속도로 사이의 한가운데를 통해 지나온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최고 고도가 190미터 뿐인 맥 잇기 마루금을 걸으며 이토록 아름답고 멋진 조망을 즐기리라도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기에 그 기쁨이 훨씬 크게 다가오는 가 보다.

 

그렇게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며 가끔 뒤돌아 보니 고속도로가 점점 멀어져 가고 그 대신 등로 우측 저 아래로 펼쳐진 사천시 정촌면 화개리와 예하리 마을이 너무나 환상의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많은 사진 남기며 마을 이름에 관한 공부를 해 본다.

저 멀리 예하리 마을에 저수지 하나가 보이는데 이름은 강주연못이다.

강주연못은 본시 강주의 영터라고 전하며 고려말 우왕5년(1379년)에 배극렴이 진을 치고 있던 영터였다는 것이 하륜(1347에서 1416년)의 촉석성 성문기편에 기록되어 있다.

강주못은 언제 축조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못 뚝에는 수령 5∼6백년 정도의 고목이 우거져 있고 또 그 곳에 있는 이팝나무는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말이 전하는 것 등으로 보아 이 강주 못 일대는 진주·진양의 역사상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조선조 말엽 남호 강영지 선생이 마을 입구 도저봉(산) 밑에 일호정을 건축하여 영남석학들이 매년 음3월13일에 학문연구와 회의장소로 사용하였고 남호선생의 아들 강현수는 일제치하 때 주위 사람들을 모아 글을 가르치는 서당으로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못뚝에는 오래된 고목이 무성하여 경치가 좋아 봄, 여름, 가을 할 것 없이 연중 유람객이 많고 진주시내 학생들의 소풍놀이 장소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오르니 봉우리 같지 않은 봉우리에 110미터 봉우리의 화봉산이란 종이 코팅지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이곳 화봉산은 지리산의 주령으로 정촌면의 주된 산이다.

예로부터 당개라 불렀다고 하는 이 산은 자생하고 있는 진달래, 연지, 들란초, 복숭아꽃, 살구꽃, 백일홍 등 이 만발하였던 곳이라 하여 마을이름을 꽃골이라 부르게 되었고 화동은 이에 연유하여 부르는 말이다.

 

화봉산을 뒤로 하고 내려가니 봉분이 없는 묘지 뒤편에 비석만 있는 곳을 지나 밤나무 과수원으로 들어 간다.

밤나무 과수원이 끝나는 지점에 우측으로 넓은 공터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비포장 임도가 나타난다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모산재인데 사천의 정촌과 진주의 문산을 이어주는 고갯마루이다.

도로를 건너 시멘트 계단을 타고 능선으로 진입하며 계속 마루금을 이어가 본다.

 

모산재에서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된비알 치고 오르니 비석이 서 있는 묘지를 지나 우측에 고추밭을 두고 가장자리를 통해 나즈막한 마루금이 이어진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김해허씨 묘지를 지나 우측에 감나무 밭에 들어 잘 익은 작은 감 몇개 따 먹고 전진한다.

잠시 더 전진하니 파란 물통 두개가 서 있고 그 바로 뒤에는 11번 송전탑이 서 있다.

약간의 잡목과 잡풀을 헤치고 비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시멘트 도로와 이어지고 민가를 만나 우측으로 휘어지며 내려가니 등산길 아닙니다란 안내판이 서 있는 원두막이 보이는 과수원으로 들어간다.

원 정맥 마루금은 그 과수원 가장자리를 타고 나즈막한 봉우리로 올라 진행해야 하지만 신설도로가 생기면서 절개지를 이루기 때문에 다시 좌측 능선을 타고 내려 와 그 신설도로를 건너야 한다.

 

그래서 그 농장주인의 안내판처럼 등산길이 아닌 과수원을 지나 만나는 비포장 임도에서 그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진행해 다시 만나는 시멘트 임도를 만나 우측으로 진행하면 절개지 상단에서 내려오는 중간지점에서 아래 신설되는 도로와 절개지를 바라보며 내려간다.

신설도로를 만드는 절개지를 타고 좌측의 임도로 내려가 공사중인 신설도로를 가로질러 반대편 절개지를 타고 올라 맥 잇기 산행을 계속 이어가 본다.

잘리고 깨지며 또 상처투성이인 이런 맥 산행에 가슴이 아파오지만 그렇기에 더욱 그 산하를 돌아 보며 자연 사랑을 배우는 시간으로 남겨 본다.

 

그 신설도로를 만들기 위해 잘려진 절개지를 타고 올라 다시 정상 등로로 복귀하니 등로 좌측으로는 계속해서 진주시 정촌과 가좌동쪽 아파트와 경상대학교가 눈에 들어 오고 그 좌측으로 나뭇가지에 가려진 지나온 마루금이 펼쳐져 있다.

밭을 통해 진행하며 맥 잇기 산행의 어려움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으니 앞으로 살아가며 자연 보존에 조금이나마 일조하며 살아갈 수 있으리란 믿음도 남겨 보는 시간이다.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되던 마루금은 이제 잡목으로 조망이 사라진 등로를 타고 등로 좌측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 울타리를 두고 진행하게 된다.

한동안 더 전진하니 직사각형 나무 판자에 파란색 페인트로 낙남정맥이란 글자를 만들어 등로 옆에 달아 놓은 색다른 이정목을 만나며 진행된다.

이제 등로 좌측으로는 정촌과 신율리 그리고 가좌동의 아파트 단지와 경상대학교가 바로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위치에 까지 다가온 듯 하다.

다시 나즈막한 봉우리 하나를 넘으니 모두 휴식을 취하고 이곳에서 준비한 복분자 한잔에 과일을 먹으며 잠시 환담을 나눈다.

다시 배낭 둘러메고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오는데 등로 옆 모과나무에서 틈실한 모과들이 등로에 나뒹굴고 두어개 주워 배낭에 넣고 내려가니 시멘트 임도를 만나고 곧이어 민가도 만난다.

 

민가 앞에는 개인 승용차를 세워두고 세차를 하는 주인장이 계시기에 잠시 인사 드리고 종주대들 때문에 신경 쓰실 것 같다고 전하니 처음에는 신경이 쓰였는데 이제는 자주 만나다 보니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조금이라도 농부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도 전한다.

이제 시멘트 임도를 타고 진행해 안부를 넘으니 도로 좌측에 다시 가건물 하나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자 마자 시멘트 임도는 우측으로 크게 휘어져 이어지고 있다.

시멘트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비포장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정맥 등로는 우측으로 진행하면 된다.

몇기의 묘지를 등로 좌측에 두고 진행하다 뒤돌아 보니 지나온 마을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넓은 임도를 타고 계속 진행하니 도로 좌측의 전봇대에 삼각점이란 검정 글씨가 보이고 바로 지나자마자 우측 대나무 밭 속으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계속 직진하면 그 임도를 타고 우측에 있는 와룡산을 들리지 않고 계속 정맥 마루금을 타고 진행하게 된다.

우측 대나무 밭으로 들어가니 철거된 송전탑 자리가 보이고 우측으로 난 대나무 숲을 통해 나즈막한 봉우리로 오르니 그곳에 94미터의 고도를 가진 와룡산 정상 코팅지가 붙어 있다.

이곳 와룡산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하였는데 분명한 것은 사천시의 진산인 와룡산과는 완전히 다른 작은 이름도 없는 와룡산임을 밝혀 둔다.

 

와룡산 정상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그 대나무 밭을 빠져 나오니 대나무 밭 한가운데에 넓은 임도가 열려 있고 한동안 그 임도를 타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이 대나무 밭 우측으로 화개리 죽봉동이 자리하고 있는데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있다.

이곳 진주시 정촌면 화개리 죽봉동은 대나무가 많은 마을로서 시초에는 죽방이라고 불렸는데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대밭에 봉이 왔다 하여 마을이름을 죽봉이라 하였다 한다.

진삼선 철도가 마을 중심을 통과하고 북쪽에 죽봉터널이 있으며 아래쪽에는 죽봉저수지가 있으며 마을 앞에 있는 느티나무는 500년 전에 심은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담양의 대나무 밭을 몇번 들린적이 있었는데 그곳은 인공적으로 키운 냄새가 난다면 이곳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더욱 정감있게 느껴지는 대나무 밭이다.

 

한동안 대나무 밭 속 대나무 터널을 타고 진행하는 낙남정맥 산행은 또 다른 재미를 불러 일으키고 그렇게 진행하니 많은 묘지들이 잘 정돈된 지역을 지나 다시 대나무 밭으로 이어지고 등로 옆 6번 송전탑도 지난다.

그렇게 진행되던 정맥 마루금은 대나무 밭이 거의 끝나는 지점에 도착해서 삼거리를 만나 좌측으로 진행하도록 나 있고 잠시 더 진행하니 과수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좌측에 과수원을 두고 우측에는 잡목을 둔 경계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시멘트 임도길과 만나고 곧이어 오거리 갈림길도 만나 거ㅢ 직진같은 임도를 타고 진행한다.

 

조금 더 진행하니 가운데에 전봇대가 서 있는 삼거리 갈림 임도를 만나 이번에는 우측 임도를 타고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 간다.

우측으로 과수원이 보이고 그 과수원 한가운데에 간이 과수 저장 건물도 보인다.

잠시 뒤돌아 보니 저 아래 처음 만나 임도 오거리와 임도 삼거리의 전봇대가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 능선을 타고 이 산객이 방금 전 진행해온 마루금도 보인다.

 

등로 우측 저 멀리 능선 위에는 방금 전 지나온 대나무 밭의 6번 송전탑도 높게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또한 지나온 임도 방향으로는 진주 정촌의 아파트와 경상대학교 건물들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기도 한다.

조금 더 진행하니 이제 과수원이 등로 좌측에 펼쳐져 있고 우측으로는 산과의 경계를 이루는 등로를 타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등로 좌측 앞으로는 진주 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많은 아파트 단지들과 민가들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계속 더 진행하니 좌측 과수원에 과일 저장을 위한 간이 건물이 보이고 곧이어 시멘트 임도를 타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는데 첫번째 만나는 삼거리 임도에서 좌측 시멘트 임도를 타고 전진한다.

 

다시 시멘트 임도를 타고 진행하며 등로 좌측을 보니 드릅남가 식재되어 있고 그 넘어 저 멀리 진주 시내가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다.

정상부에서 내려 가기 전 앞으로 진행해야 할 109봉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건너편을 바라보니 그곳 역시 드넓은 과수원이 자리하고 그 정상부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형국이다.

시멘트 임도 좌측으로는 고추밭과 과수원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산과의 경계를 타고 도로가 만들어져 있으며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안부로 내려가니 시멘트 임도는 과수원 중앙으로 관통해 나 있고 조금 더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많은 묘지들을 지나 이제 그 시멘트 임도는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그 시멘트 임도를 타고 우측에 과수원을 바라보며 109봉 쪽으로 오르니 정상부에서 다시 등로 양쪽으로 과수원이 펼쳐지고 곧이어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아저씨 한분이 근무를 하고 있어 잠시 인사 나누고 다시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그곳 109봉 정상의 산불감시초소 있는 곳에서 뒤돌아 보며 지나온 마루금을 바라보니 한폭의 그림이 그곳에 놓여 있는 듯 아름답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109봉를 지나 갓 밭 두렁을 타고 진행하니 등로 좌측에 과수원과 민가 한채가 보이고 등로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 내려가며 묵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한다.

잡목과 잡풀이 우거진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에 남아있는 채소밭이 눈길을 잡고 잠시 그 묵은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다시 과수원이 앞을 가로 막는다.

잠시 더 내려가니 등로는 이제 과수원의 중앙을 통해 과수나무 사이로 나 있지만 농사철에는 아주 조심해야 할 구간인 듯 보인다.

 

그 과수원 중앙을 통해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잡목과 잡풀이 무성한 능선으로 이어지고 전봇대도 등로 옆에 서 있다.

그곳을 내려가니 금새 시멘트 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지도를 살펴보니 정촌과 문산을 이어주는 이름없는 고갯마루이다.

이곳에서 시멘트 임도 타고 좌측으로 5미터쯤 내려가면 우측에 등산로 입구와 미종사란 간판이 전봇대에 붙어 있고 그 바로 앞에는 우측으로 갈라지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우측 시멘트 임도를 타고 90도 꺽어 진행하면 된다.

 

시멘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꺽어 들어가니 우측에는 드릅나무가 좌측에는 과수원이 있는 가운데에 임도가 개설되어 있다.

임도 좌측으로는 진주시 문산읍 넘어 진주의 월아산이 빤히 보인다.

첫번째 만나는 갈림 삼거리에서 좌측 시멘트 임도를 타고 진행하면 다시 앞에 소나무가 보이는 사거리 갈림길에 도착을 하는데 정맥 등로는 직진의 길을 따라 능선으로 진행된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잠시 능선으로 들어가면 다시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 비포장임도를 타고 진행하면 된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면 우측에는 다시 과수원이 좌측에는 잡목이 자라는 야산의 모습이 보인다.

우측의 과수원쪽으로는 과수를 보관 할 수 있는 창고 건물들이 보이고 앞으로 올라야 할 나즈막한 마루금이 낮은 봉우리를 타고 이어지는 모습도 한눈에 들어 온다.

이제 외딴집을 지나 마을로 들었다 봉우리를 넘으면 오늘 산행 날머리도 거의 도착을 할 것이다.

 

다시 등로는 시멘트 임도로 바뀌고 그 임도를 타고 계속 전진 한다.

나즈막한 둔덕을 오르니 우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나 있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 시멘트 임도를 타고 계속 직진을 한다.

잠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네려가니 시멘트 임도 좌측으로 벌통이 놓여 있지만 벌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 벌통을 지나 계속 전진하니 우측에 큰 파란색 물통과 비닐하우스의 철 구조물이 드러나 있고 조금 더 전진하니 우측으로 과수원 지나 민가가 보이고 좌측에는 비닐하우스가 존재한다.

이곳이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읽다보면 견공들이 무척 시끄럽게 울부짖는다고 되어 있는데 오늘은 참을만한 수준이다.

 

그 민가를 지나 내려가니 민가 축사에서 일을 마치고 새동네로 내려가는 주민 두분이 있어 마을을 물어 보니 진주시 문산읍 두산리라 전해 주며 어디를 가느냐 물어 본다.

계리재를 간다고 하니 좌측 마을을 통해 가면 빨리 갈 수 있는데 왜 우측의 산으로 들어가 구불 구불 돌아 그곳을 가느냐며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한다.

잠시 설명 드리고 만나는 시멘트 임도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꺽어 진행하면 다시 좌측 능선쪽으로 나 있는 비포장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좌측 능선을 타고 오르면서 가파른 된비알이 짧게 이어진다.

이곳 두산리 마을을 찾아 보니 1914년 진주군 정촌면 동물곡동, 처음동, 이곡면 어수동, 송곡면 정자동 각 일부로서 동물리라 하고 정촌면에 속했다가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1973. 3. 12공포)에 의하여 문산면으로 편입된 마을이다.

 

능선으로 들어 진행하니 파란 철그물이 쳐져 있어 의아한 생각이 들었는데 동물들이 내려와 농사일에 주는 피해를 막기 위한 그물망이라면 좋겠지만 겨울철 파충류를 잡기 위한 도구라면 앞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112봉 정상에 도착을 하니 평편한 부위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선두와 중간 그룹이 모두 쉬고 있는 과수원 초입부에 도착해 잠시 쉬어 간다.

이제 마지막 봉우리와 바로 앞에 펼쳐진 과수원 그리고 가족농장의 감나무 과수원이 드넓게 펼쳐진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제 후미 소식을 듣고 다시 좌측에 과수원을 두고 우측에 나무들을 두고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잘 가꿔진 몇기의 산소들을 지나 잡목지대를 지나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웅골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건너에는 가족농장 간판이 서 있다.

이곳을 웅골도로라 하는데 도로 우측인 남쪽 소곡리에 웅골마을이 있고 그 웅골마을의 유래는 정확지 않으니 산세나 골짜기의 형상이 곰과 관련된 곳으로 추측만 할 수 있는 곳일 것 같다.

웅골이 있는 소곡리는 1930년경에는 180여호가 거주하였으나 진주시와 사천시의 경계인 두량저수지가 축조됨으로써 생활터전인 농토를 잃고 진주와 부산 등지로 일부농가가 이주하였다.

남은 농가는 경지면적이 적어 영세성을 면치못하고 어려운 여건속에서 생활을 하는 마을이었으나 1970년대 이후 과수원을 개간하여 단감의 주산지로 변모한 개척정신이 강한 농촌으로 탈바꿈하였기 때문에 아직도 이곳에는 감나무 과수원이 많은 이유가 되였다.

정촌면과 문산읍을 이어주는 웅골 2차선 도로를 건너 가족농장 안으로 진입하면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이제 마지막 남은 웅골 2차선 지방도로를 건너 가족농장 입구로 들어가니 그곳 역시 천지가 모두 감나무 밭이다.

감나무 과수원 중앙을 관통하는 등로를 타고 진행하다 보니 까치밭으로 남겨 둔 감들이 익으면서 산객들을 유혹하고 남아 있는 감을 따 맛을 보니 달콤한 것이 그만이다.

그렇게 한동안 오르니 감나무 한그루 전체에 감이 그대로 남아 있어 다가가 먹어 보니 이것 역시 달콤하다.

기온이 영상과 영하를 넘나들며 자연상태에서 익다 보니 그 맛이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특별한 달콤함으로 전해지는 감 과일이다.

 

그 감나무 밭이 넓게 펼쳐진 가족농장을 빠져 나와 능선으로 들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두산리 마을과 작은 저수지들이 보이고 저 멀리 문산쪽 아파트 단지들이 눈에 들어 온다.

다시 능선을 넘으니 등로 좌측으로 과수원이 펼쳐져 있고 우측으로는 야산의 나무들이 자라는 경계를 타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지도에 나타난 110봉을 지나 이제부터 소나무가 빽빽히 자라고 있는 주능선으로 들어가 한동안 완만한 오르막 마루금을 걷다보니 173봉의 마지막 봉우리에 도착을 하지만 아무 표식도 없어 이제 다시 마지막 계리재로 내려가 본다.

 

한동안 내려가니 가파른 내리막 등로가 부드럽게 변하면서 차량들이 통행하는 소음이 가깝게 들려온다.

금새 금곡과 정촌을 이어주는 2차선 도로가 지나는 계리재에 도착해 또 한구간 무탈한 완주를 자축하며 남아 있는 곡주를 마시며 후미를 기다려 본다.

이곳 계리재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옛날부터 풍수설에 의하여 전해진 말에 의하면 닭과 삵쾡이가 이쪽 저쪽에 있다고 해서 계리재라 하였다고 전해지는 고갯마루이다.

다음 산행 들머리인 나무계단을 사진에 담고 배낭 정리를 하는 동안 후미까지 도착해 버스를 타고 가회동(가좌동)의 경상대학교 정문 앞 목욕탕에서 샤워한 후 할매보쌈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니 또 하루가 지나고 있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나즈막한 뒷동산 같은 낙남정맥 마루금을 걸으며 만났던 너무나 황홀하고 환상이였던 조망과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짧지만 편안한 단잠을 자고 일어나니 벌써 하루해가 서산으로 떨어지고 어둠이 찾아 들고 있다.

 

산행후기에 인용된 자료들은 모두 사천시와 진주시 자료를 찾아 정리한 것으로 저작권과 관련된 자료가 있어 연락 주면 즉시 처리 하겠다는 글로 마무리 한다.

 

모두들 고생 많이 하였고 다음구간에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