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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산행(완료)/낙남정맥(완료)

낙남정맥 제3구간 백토재에서 솔티고개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1.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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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남도 사천시와 진주시의 낙남정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1년 11월 19일과 20일 (무박 2일 일요 산행)

산행날씨 : 하루 종일 맑고 화창하였으나 약간 추웠던 날씨

산행온도 : 영상 05도에서 영상 18도

산행인원 : B 산악회 38명 따라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백토재(1005번 지방도로)-247봉-237봉-밤나무 단지-안남골재-237봉-옥정봉(244봉)-

               임도삼거리-155봉-마곡고개(밤재)-밤나무 단지-임도-2번 지방도로-원전고개(경전선)-

               오랑길-밤나무 단지-비포장 임도-245.5봉-쌍묘-송전탑(53번과 52번)-산성산(239봉)-

               245.9봉-사립재(234.9봉)-임도-진주성광교회 사유지-폐가-식물원-비닐하우스와 폐가-

               딱밭골재(18번 지방도로)-감나무 단지-별악산(205봉)-폐가-함안조씨 가족묘-

               시멘트 임도-183.5봉-41번 송전탑-선덜재(1001번 지방도로)-40번 송전탑-임도-

               내동공원 시멘트 임도-내동공원(190.5봉)-158봉-덕천고개(2번 지방도로 위 SK 주유소)-

               솔티고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0.50 Km (접속구간 00.00 Km)

산행시간 : 사진 찍으며 널널하게 쉬며 09시간 00분 (04시 13분부터 13시 13분까지)

 

낙남정맥이란?

지리산 세석평전을 품고 있는 영신봉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내려온 마루금이 삼신봉에서 외삼신봉을 지나 묵계치와 고운재를 거쳐 옥산까지의 산줄기는 서쪽 섬진강으로  그 물줄기를 가르고 있으나 이후 산줄기는 인위적으로 잘라 만든 진양호 물이 사천만으로 흘러들게 만든 거대한 가화강을 지나 백운산 대곡산 무량산 여항산 서북산 광려산 대산 무학산 천주산 봉림산 대암산 용제봉 김해의 신어산을 거쳐 낙동강하구인 김해시 매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그 긴 줄기를 낙동강에 묻는 약 224 Km의 산줄기를 낙남정맥이라 한다.

이 산줄기에는 특이하게도 인공 호수와 강줄기가 마루금을 가르고 있기에 피치 못하게 가화강을 건너야 하는 산자분수령과는 다른 산행이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화창한 가을 날씨에 뒷동산 같은 마루금에 올라 아름다운 조망을 즐긴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계절의 변화는 늘 한결같은데 그 변화하는 계절을 받아 들이는 몸과 마음은 아직 준비가 모자라는 듯 차가운 삭풍이 시작도 하기 전에 몸속으로 파고 들며 자꾸만 작은 산객의 마음을 더욱 작게 만들고 있다.

너무나 바쁜 일상의 연속이였기에 잠시나마 이렇게 그 일상을 벗어나고자 하는 시간이 그립고 기다려졌지만 막상 길을 나서니 생각보다 춥고 차가운 밤바람이 두려움과 걱정을 동반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덕유산휴게소에서 느낀 차가운 밤공기는 온 몸에 소름을 돋게 만들고 가을도 없이 금새 겨울의 차가운 얼음속으로 세상을 끌어 들이려는 듯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려는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오늘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 급하지 않게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돌아 보는 시간이길 바래 본다. 

 

어둠을 헤치고 그저 평이한 마루금을 타고 진행하니 서서히 여명이 밝아 오고 그 여명의 빛을 받아 원전고개를 넘는다.

잠시 오랑길이란 이정표가 붙은 사천시 곤명면 봉계리 마을을 지나면서 많은 사진을 남기다 보니 어느새 제일 후미로 쳐지게 되고 그렇게 진행하니 정상 마루금인 임도 우측 폐축사와 헬기장 그리고 201봉으로 이어진 주능선을 타고 진행해야 되지만 높지도 않고 특별히 이름있는 봉우리도 없기에 그저 밤나무 단지를 지나 나타나는 산판도로를 타고 진행하기로 한다.  

밤나무 단지를 지나며 산판도로가 가까워진 이름없는 묘지에서 뒤돌아 보니 지난 구간에도 보여주지 않던 지리산 천왕봉에 하얀 상고대가 피어 있고 그 주위를 하얀 뭉게 구름들이 감싸며 어머니 품같은 지리산을 더욱 영적인 산으로 만들고 있다.

진행하지 못하고 함께하는 산꾼들과 한동안 머물며 그 환상의 풍경에 취해 본 시간으로 남겨 본다.

 

이번 구간부터 서울에서 밤 11시 30분에 출발하기로 했기에 조금은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출발하지만 금새 피곤한 몸을 의자에 파묻자 마자 꿈나라로 향하고 잠시 정차하는 덕유산휴게소에 내리니 생각보다 더욱 차가운 한겨울 찬바람이 옷속으로 파고들며 온몸을 경직 시키고 있다.

추위에 떨며 간단하게 볼 일만 보고 다시 차안으로 돌아 와 잠을 청하다 보니 새벽 4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드디어 지리산자연요양병원 주차장에 도착하고 산행 준비 후 지난 구간 어렵게 내려왔던 산행 날머리로 가 옥산으로 향하는 이정표를 담아 본다.

내리는 가을비로 인해 보이는 것 하나 없이 어렵게 진행한 낙남정맥 제2구간을 첫구간 삼아 내려왔던 추억에 잠시 젖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직 오르지 못한 낙남정맥 첫 구간은 또 언제나 오를 수 있을지...

 

덕유산휴게소에서 느꼈던 한겨울 삭풍은 사라지고 그저 참을만한 추위에 다행이란 생각으로 어둠속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행 들머리 주위를 어렵게 담아 본다.

1005번 2차선 포장도로인 지방도로 바로 앞에는 고향옥종이란 큰 이정석이 이곳이 옥종면임을 알리고 도로 건너 배수로를 지나면 오늘 산행 들머리에 솔티고개까지 23.53 Km란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를 만나 그곳에서 긴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 산행 들너리인 백토재(해발 180미터)는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과 옥종면을 이어주는 나즈막한 고갯마루로서 동북쪽 아래에 있는 비인치란 마을과 남서쪽 인곡마을에 예로부터 백토 즉 고령토가 많이 출토되어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지는 곳이다.

 

산행 들머리에 서 있는 이정표를 지나 나즈막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생각보다 춥지 않고 산행하기 좋은 온도인 듯 하다.

나즈막한 봉우리 하나를 넘어 오르니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곧이어 임도와 능선 등로가 번갈아 이어지며 진행하게 된다.

처음으로 등로 우측에 밤나무 단지가 나타나더니 그 아래 마을에서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추위에 떨며 외롭게 서 있다.

그곳을 지나 진행하니 금새 228봉을 지나 잡목속으로 이어진 마루금을 타고 이어진다.

 

잡목으로 이루워진 등로를 타고 한동안 진행하니 금새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 이어지고 그곳에는 낙남정맥 솔티고개까지 22.72 Km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산행 들머리에 서 있던 이정표의 거리 표시에는 솔티고개까지 23.53 Km 라 보았기에 산행 시작 후 채 20여분도 지나지 않아 벌써 800미터를 걸어 왔으니 등로의 조건은 상당히 좋았음을 알 수 있는 거리 표시이다.

비포장 임도를 만나 우측으로 조금 진행하다 다시 등로는 우측 능선으로 오르며 이어지고 있다.

 

우측 나즈막한 능선으로 올라 진행하니 방금 전 만났던 시멘트 임도가 좌측 아래로 따라 오고 있다.

한동안 잡목 숲을 헤치고 전진하니 제법 그럴듯한 소나무 군락지들이 펼쳐져 있고 가끔 밤나무들이 보이기도 한다.

푹신거리는 좋은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생각보다 날씨가 춥지 않아 산행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인듯 하다.

오랫만에 멋지고 환상적인 일출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진행하니 다시 시멘트 임도로 내려서고 도로 건너에는 과수원이 보이는 안남골재 안부인 시멘트 포장 임도이다.

시멘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측 능선으로 진행하니 다시 밤나무들이 등로 주위에 서 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발밑을 살펴 보지만 밤알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잠시 능선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소나무 단지를 지나 측백나무들이 간간히 보이는 등로도 지나게 된다.

그곳을 지나니 다시 솔잎이 떨어져 푹신거리는 등로를 타고 어둠속을 걸어가는 기분이 참으로 묘하면서 상쾌한 하루를 열어 가는 시간으로 남겨진다.

 

그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다시 시멘트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음료수를 마셔 본다.

시멘트 임도를 타고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다시 능선으로 들어간 뒤 나즈막한 무명봉을 넘어 내려가는 길목에 만들어진지 얼마되지 않은듯 새로운 묘지가 등로 우측으로 나타나고 잠시 살펴보니 전주최씨 묘지이다.

전주최씨 묘지를 지나니 이번에는 등로 좌측으로 영천이씨 묘지가 보이고 쓰레기 투기 금지의 사천시장이 붙여 놓은 안내문도 보인다.

그 임도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매화농장처럼 보이는 나무가 식재된 장소가 나타나더니 금새 대나무 숲 한가운데로 등로가 이어져 있다.

 

대나무 숲을 어렵게 헤치며 지나니 작은 둔덕이 나타나고 그곳을 넘으며 바라보니 등로 우측에 고사목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곳을 넘어 나즈막한 언덕을 넘으니 다시 밤나무 단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등로에는 밤나무 가시가 널려 있다.

그곳을 지나니 다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는데 그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틀어 진행한다.

그런데 그 임도 우측에는 탱자나무가 울타리를 친 듯 심어져 있고 그 탱자나무가 울타리를 진짜 만들고 있는 모습이다.

 

그 탱자나무가 심어져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는 밤나무 단지로 이어지고 넓은 임도 좌측으로 제법 많은 밤나무들이 보인다.

밤나무 사이로 나 있는 넓은 임도같은 마루금을 타고 전진하니 다시 능선으로 마루금이 연결되어 있고 소나무 숲을 지나게 된다.

이제 임도에는 많은 억새가 말라 부는 새벽 찬발람에 서걱거리며 울고 있는 마루금도 지나며 어둠속에 보이지 않는 모습이 아쉬운 시간이다.

그곳을 지나 진행하니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 진행하고 잠시 우측으로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는 우측 능선으로 다시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는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잠시 오르니 어둠속에 넓은 임도처럼 보이는 등로 좌우측에는 새로 식재된 듯한 자작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식재된 나무지대를 지나니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고 그곳에는 멋진 정원수를 연상시키는 소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다.

생각해 보니 정원수나 과실수를 심어 놓은 농원처럼 생각되는 장소이다.

 

이제 그 소나무 단지를 지나 계속 완만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저 멀리 선두들이 시멘트 도로 위에 서서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시멘트 도로로 내려가 한동안 쉬면서 음료수를 마시며 하늘을 올려다 보니 너무나 총총한 밤하늘 별들이 이 산객 머리위로 솟아지고 그 옆에는 초승달이 밝게 웃고 있다.

추운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진행하는 어려움속에 산행의 참 의미를 생각해 본 시간이다.

시멘트 임도 우측으로는 차량 차단막이 쳐져 있는 시멘트 갈림 삼거리가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시멘트 임도에서 쉰 후 다시 배낭 둘러메고 천천히 오르막 시멘트 임도를 타고 오르니 능선으로 이어지고 잠시 더 진행하니 산 정상 한가운데에 삼각점 하나가 박혀 있다.

아무 표식도 없는 그 정상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살펴보니 3000산 오르기 띠지를 붙여 놓은 한현우님의 띠지에 갑티봉 230미터라 적어 놓았다.

준비한 지도를 살펴보니 230봉은 찾을 수 없고 단지 이곳이 237봉인 듯 한 곳이다.

 

237봉을 지나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에 묘지 하나가 보이는데 어둠속에 묘비가 희릿해 잘 알 수 없는 묘지이다.

그 묘지를 지나 계속 전진하니 다시 비포장 임도를 만나 진행하게 된다.

임도를 타고 진행하다 다시 능선으로 오르며 오르니 옥정봉 244봉이란 코팅지 하나가 보인다.

오늘 산행 중 처음 만나는 제대로 된 봉우리이지만 그 높이라고 해 봐야 단지 244봉이니 그저 동네 뒷동네 같은 그런 봉우리같은 느낌이다.

 

옥정봉 정상에서 이제 등로는 남동에서 동쪽 방향으로 바뀌고 잠시 내려오니 밀양손씨 묘지가 나타나는데 이상하게도 봉분에 나무를 올려 놓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멧돼지들의 출현이 잦아 그 피해를 줄이려 고육지책으로 봉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니 웃음이 나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오니 다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타고 진행하며 57번 송전탑을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하고 임도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가축 분뇨들을 임도에 뿌려 놔 제대로 된 마루금을 찾지 못하고 30여분간 알바를 하게 된다.

발목까지 빠지는 가축 분뇨가 뿌려진 임도 삼거리에서는 무조건 좌측의 임도를 타고 계속 진행해야 정상적인 마루금으로 진행하게 되는 곳이기 때문에 알바 주의 구간이다.

 

어렵게 임도 삼거리에서 분뇨가 뿌려진 어려운 등로에서 우측 임도를 좌측에 두고 능선으로 내려가며 어둠속에 약간의 알바는 경험을 했지만 다시 30여분만에 정상 등로로 복귀해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넓은 공터에서 다시 완만한 오르막 능선으로 이어진다.

이제 룰루랄라 어둠속에서도 부드러운 촉감이 살아나는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묘지 몇기를 지났지만 큰 어려움 없이 155봉 정상에 도착하고 한현우님이 달아 놓은 띠지를 보니 이곳이 매봉산이라 되어 있다.

돌아 와 자료를 찾아 보니 이 155봉이 속한 마을 이름이 마곡리인데 마곡의 동명내력은 뒷산이 매봉산이고 응실형국으로써 매실이 마실로 부르게 된 것이라 하고 또한 갈마 음수정이 들 가운데 있었음으로 마곡이라고 하다가 구한말 때 마곡으로 개칭하였다는 자료가 보인다.

제대로된 이름으로 불려지길 바라며 이런 멋진 매봉산이란 이름이 있다면 당연히 붙여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제 매봉산인 155봉을 내려 와 완만하게 진행하니 등로 우측 앞에서 서서히 여명의 빛이 발산되기 시작하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캐논 카메라를 꺼내 어렵게 몇장의 사진으로 담아 본다.

아마도 곤명의 다솔사역과 초량리 그리고 용산리쪽 불빛이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곤명은 조선 세종과 단종태실지와 봉명산 다솔사의 명소가 자리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단일 단지 면적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47.7ha의 다자연 녹차단지가 있는 곳이다.

또한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덕천 강변도로와 산행 후 잠시 들려 샤워를 해야 할 수질이 뛰어난 중탄산나트륨 온천인 진양호캐리비안온천이 있어 웰빙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마을으로 알려진 곳이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올랐다 내려가니 바로 앞에 마곡고개가 보이고 그 고갯마루로 이어지는 58번 지방도로가 흐릿하게 눈에 들어 온다.

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가기 직전 등로 우측 저 멀리 바라보니 다시 원전고개 위로 붉은 태양빛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앞으로 올라야 할 마루금이 희미하게 드러나 있다.

다시 진행하지 못하고 사진 몇장 더 남긴 후 천천히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마곡고개 즉 밤재로 내려 선다.

 

밤재 일명 마곡고개로 내려서니 2차선 포장도로가 있는 사천시 곤명면 마곡과 봉계간 19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이다.

마곡은 위에서 설명을 하였고 이곳에서는 봉계마을을 소개 하는데 원전과 오저의 두마을 중 오저마을을 소개하고 원전은 다시 원전고개에서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봉계리의 유래는 앞산의 봉알자리와 초량천의 내가 흐르고 있으므로 봉계로 명명된 마을이다.

봉계리는 원전과 오저의 2개 마을로 이뤄져 있고 일명 완사에서 15리의 거리에 있는 원이라 하여 십오리원이라고도 한다.
오저는 초량천을 사이에 두고 오천과 저동의 양 마을을 합한 것이 오저 부락이며 구한말 때 초량면사무소가 소재하고 있었다.

오천은 뒷산이 봉황산이고 봉은 오동나무에 깃든다 하여 산에 오동나무를 심었다 하고 마을앞에 초량천이 흐르고 있으므로 오천이라 하였다고 한다.

저동은 옛날 모시가 많이 생산된 연유에서 나온 말이라 하는데 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는 초입에 솔티고개까지 16.32 Km 남았다는 거리 이정표가 서 있다.

 

마곡고개를 넘어 오르는 등로는 오늘 처음으로 제법 가파른 오르막 마루금으로 이어지고 등줄기에서 땀방울이 생길 정도의 시간이다.

그래도 그 산행 거리가 짧아 금새 능선으로 접어들고 잡목과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알바 주의 구간이 나타난다.

나즈막한 무명봉이 바로 눈 앞에 보이는 9부 능선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급격하게 걲여 내려가며 이어지지만 벌써 몇몇 종주대들은 직진의 좋은 등로를 타고 곤명중고쪽으로 진행하고 있다.

조심하며 정상적인 정맥 마루금을 잘 찾아 내려가니 앞이 트이며 앞으로 올라야 할 마루금 좌측의 송비산쪽 산줄기가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제법 날이 밝아 오며 머리에 메고 진행하던 헤드렌턴의 불빛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세상이 밝아 왔다.

잠시 더 전진하니 노란 나뭇잎들이 등로에 떨어져 나뒹구는 밤나무 단지를 만나 우측 능선을 경계로 진행하다 하늘을 보니 초승달의 달님이 아쉬운 안녕을 고하려 하고 있다.

 

제대로 된 가을 단풍 산행 한번 못하고 지냈는데 이곳 낙남정맥 산행을 하면서 아쉽지만 그런대로 볼만한 밤나무의 노란 단풍을 보니 마음이 즐겁다.

그렇게 잠시 더 즐거운 마음으로 진행하니 밤나무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며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오는 아침이다.

그저 평이한 밤나무 단지 위 능선을 타고 진행하다 보니 등로 좌측 저 앞으로 논과 마을들이 보이는데 그 위로 가라 앉은 아침 안개가 너무나 황홀하게 떠돌고 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송림리쪽 마을이다.

송림리는 송비산 기슭이 되므로 송림이라고도 하고 도선사의 지리비기와 정감록비기에 흑룡은 이여송송이니 병화불침의 십승지처라는 구절의 송자와 당시 정파의 극한의 대립과 잇단 사화로 뜻있는 선비는 한적한 임천을 찾아 은둔하는 시대였음으로 임자를 넣어 송림으로 지칭하였다는 마을이다.

 

그렇게 밤나무 단지 최고봉에 올라 등로 앞 좌측으로 펼쳐진 꿈결같은 풍경에 도취하였다 깨어나 뒤돌아 보니 그곳에도 또 다른 세상이 열려 있다.

방금 전 지나온 마곡고개 지나 알바 주의 봉우리에서 이곳 밤나무 단지로 이어지는 등로와 산줄기에는 이제 가을이 지나가고 있는 남녘임을 이 산객에게 알려주고 있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울긋불긋한 단풍에 바쁜 일정으로 만나지 못했던 단풍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보는 시간이다.

 

이제 그 밤나무 단지의 무명봉 정상을 넘으니 등로는 우측 사면길로 이어지고 갑자기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약간의 등로 찾기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크게 알바 할 구간은 아닌듯 한 그 마루금을 타고 다시 한번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진행하는 시간이다.

잡목과 소나무 군락지로 들어가니 여명의 빛이 사라지고 그 어둠속에 주위 풍경을 담다보니 빛의 예술인 카메라에 흔들림 현상이 발생하고 말았다.

앞서 진행하는 종주대의 모습이 벌써 저 멀리 앞으로 달아나고 있다.

 

다시 계속되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소나무 군락지를 내려가니 제법 하늘을 향해 두손 벌리고 쭉쭉빵빵 잘 자라고 있는 왜송 지대를 지난다.

몇장의 사진으로 남겨 보지만 아직도 약한 빛으로 인해 제대로 된 사진 한장 남기기 어렵다.

그렇게 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갑자기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임도 우측으로는 거대한 건물이 올라가는 공사 현장이 보이고 등로는 임도 좌측을 타고 내려가며 이어지고 있다.

그 임도와 만나는 삼거리에는 이제 솔티고개까지의 거리가 21.22 Km 란 이정표가 서 있어 쓴 웃음을 지어 본다.

거리 표시가 제멋대로 표기되어 있어 산객들에게 더욱 헷깔리는 이정표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임도를 타고 계속 내려가니 넓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공사 자재들이 널부러져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곳에서 우측 2번 4차선 지방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들의 소음이 강렬하게 들리고 잠시 등로 우측 가장자리로 가 보니 2번 지방도로 밑으로 58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풍경이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사천시 곤명마을이 나타나고 그 뒤로 봉명산과 이명산이 올려다 보인다.

저 봉명산에는 그 유명한 다솔사가 자리하고 있어 나즈막한 산이지만 높이에 비해 더욱 유명한 산이 되였다. 

다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로서 503년(신라 지증왕 4) 연기조사가 개창하면서 영악사라 하였다.

636년(선덕여왕 5) 자장이 사우 2동을 짓고 다솔사로 다시 의상이 676년(문무왕 16)에 영봉사로 고친 것을 신라 말기 도선이 불당 4동을 증축하면서 다솔사라 불렀다고 한다.

고려 공민왕 때 나옹이 중건하고 조선에 들어와 사세를 유지하다가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가 숙종 때에 큰 중건불사가 행해졌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된 대양루(1748)를 비롯해 적멸보궁, 응진전, 명부전, 선실 및 요사채가 있는 절이다.

 

계속 비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임도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임도 우측으로 나 있는 2번 지방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들의 소음이 강렬하다.

그 소음을 따라 잠시 올라가 보니 우측 저 멀리 봉계삼거리란 도로 이정표가 보이고 그 아래 곤양 IC 및 순천과 하동이란 글씨가 뚜렷하다.

참으로 많이도 들렸던 아름다운 고장들이지만 이제 또 언제나 들려 볼 수 있을련지...

 

그 2번 지방도로를 지나 계속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임도 좌측으로 송림마을이 보이고 저 멀리 안개가 드리워진 산자락 아래에 삼화레미콘 건물들도 보인다.

마곡고개를 지나 올라온 무명봉에서 직진하여 알바를 한 산우님들이 저 삼화레미콘 건물이 있는 곳을 통해 내려오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밥을 짓기 위해 군불을 때면 연기가 피어 올라 드리워졌던 추억을 떠 올리며 고향 생각에 잠겨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계속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2번 4차선 지방도로 밑으로 거대한 교각이 드러나 있고 우측으로 돌아 가는 길목에 솔티고개까지 14.60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옆에는 낙남정맥 산행 안내도도 서 있다.

거대한 교각 밑을 통과해 가니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고 그 앞에는 송림 버스 정류장이 보이는데 우측으로는 원전방향으로 좌측으로는 완사가는 표시가 함께 되어 있다.

이곳이 바로 원전고개이다.

원전고개가 있는 봉계리의 유래는 앞산의 봉알자리와 초량천의 내가 흐르고 있으므로 봉계로 명명된 마을로서 원전과 오저의 2개 마을로 이뤄져 있는데 일명 완사에서 15리의 거리에 있는 원이라 하여 십오리원이라고도 부르는 마을이다.
원전마을은 조선조 때 완사역에 딸린 봉계원(여관)이 있었으므로 원골과 봉계원 또는 봉계라 하였는데 일명 완사에서 15리의 거리에 있는 원이라 하여 십오리원이라고도 불리는 마을이다.

충무공의 난중일기에 백의종군으로 삼가에서 노량쪽으로 행여 할 적에 수군패보를 들은 십오리원이란 곳이 오늘의 원전마을로서 그 마을에 있는 고개라 원전고개라 불리웠다는 자료를 찾아 본다.

원전고개는 송림이라 하여 행정구역상으로는 송림리에 속하는 듯 보이는데 원전이란 마을은 송림리가 아닌 봉계리에 속하니 조금은 헛깔리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사천시 곤명면의 봉계리와 송림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이니 함께 두 마을 이름을 혼용하여 사용하는 듯 보이는 곳이다.

송림 정류장을 지나니 남부 경전철 밑으로 지하 통로가 보이고 그곳을 통해 경전절을 지나는데 마침 전철 하나가 지나간다.

언젠가 저 전철을 타고 시간에 구애 받음 없이 한번쯤 남도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잠겨 보는 시간이다.

 

경전선을 지하통로를 타고 건너가면 계속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오량마을로 들어가고 포장도로는 마을로 접어 들면서 시멘트 임도로 바뀌어 있다.

도로 좌측에는 사각 정자도 보이고 틈실한 배추밭도 보이고 마을 민가에서는 키우고 있는 강아지들이 이방인의 출현에 목청껏 짖어대고 있다.

다행히 민가에 주민들이 없는지 아니면 하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무감각해졌는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잠시 오량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도로 좌측에 솔티고개까지 14.41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반겨 준다.

 

그 오량마을의 시멘트 임도를 타고 민가 끝쪽으로 오르니 도로 좌측 전답 넘어 마곡고개 올라 와 이어지는 산줄기가 이곳으로 이어지며 지금 이 산객이 걸어가는 산줄기 보다는 그쪽 산줄기가 더 낙남정맥처럼 다가오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

그렇게 완만한 오르막 임도를 타고 오르니 시멘트 임도는 밤나무 밭으로 이어지며 비포장 임도로 바뀌는데 그 밤나무 밭을 타고 진행하다 만나는 묘지에서 뒤돌아 보니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 피어 난 하얀 상고대와 그 주위에 떠도는 하얀 뭉게구름이 한폭의 그림이 되어 다가온다.

한동안 쉬며 많은 사진 남기고 다시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올라가니 아직 밤나무 밭에는 가을이 남아 있다는 듯 푸른 빛의 밤나무 잎이 헤어지지 못하고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다.

 

밤나무 밭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시멘트로 만들어진 산판도로가 나타나고 잠시 진행하니 원 정맥 등로는 산판도로 우측의 능선으로 나 있지만 올라 가 봐야 헬기장 하나와 아무 표식도 없는 201봉이 전부이기에 그냥 산판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산판도로 좌측으로는 서서히 아침해가 떠 오르며 일출을 보여주지만 도롯가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과 좌측에 서 있는 산줄기로 인해 오늘 일출은 만나지도 못하고 이미 떠 오른 해만 바라본다.

겨울이라 생각했는데 이곳 산판도로를 걸어가는 시간은 한겨울이 아닌 가을에서 겨울로 진입하는 길목의 풍경처럼 다가온다.

 

후미에서 진행하는 7명의 종주대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산판도로를 타고 전진하다 도로 좌측을 바라보니 그곳에 또 다른 환상의 세계가 열려 있다.

좁고 길게 이어진 전답을 넘어 저 멀리 나즈막한 산줄기에 따스한 아침 햇살이 비추고 그 골짜기마다 엷은 안개가 피어 올라 참으로 멋스런 아침을 만들어 주고 있다.

서서히 허기가 지기 시작하는데 아무리 진행을 해도 선두와 중간 그룹은 보이지도 않고 어디쯤 가서 아침 식사를 할 것인지 주름진 뱃가죽을 부여잡고 진행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후미 7명을 제외하고는 산판도로가 아닌 폐축사있는 곳에서 능선을 타고 원 정맥 마루금으로 올라 그곳 헬기장에서 아침식사를 즐기고 있다는 전언에 후미 7명만의 조촐한 아침 식사를 즐기는 시간도 만들어 본다.

 

30여분간 산판도로를 타고 계속 진행하니 정맥 마루금은 이제 산판도로를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오르니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진 245.5봉 갈림 삼거리을 만나 245.5봉 가는 능선을 우측으로 보내고 좌측 산줄기를 타고 다시 내려가 본다.

등로 우측으로는 복천쪽 봉명산과 이명산이 제법 높은 산봉우리 행세를 하면서 높지 않은 봉우리를 고추세우고 있다.

그곳 지나 전진하니 등로 우측 저 멀리 남해바다가 보이고 희미하게 사천대교라 생각되는 다리 하나도 보이며 그 넘어 하얀 연기를 내뿜는 높은 굴뚝이 다가와 있다.

이곳에서 잠시 사천만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본다.

사천만은 남부해안에서 북쪽으로 깊숙이 만입되어 사천시를 동서로 갈라놓았다.

청정수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이곳은 백천과 죽천이 만 안으로 유입되며 이 일대는 선상지로 사면에는 저수지가 축조되고 선정에는 용수원을 따라 취락이 입지한다.

지질은 사천시의 북쪽을 경계로 동쪽은 하양층군, 서쪽은 신동층군이 분포하고 남쪽의 산지는 불국사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을 중심으로 온난습윤한 난대성 기후를 나타내며, 1월평균기온은 5℃ 내외, 8월평균기온은 26℃ 내외로 연교차가 크지 않다.

용현면 선진리 어장을 중심으로 모래무지, 문어, 굴, 전복, 백합, 꼬막, 바지락 등의 어패류가 많이 잡힌다.

만의 동서해안에는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와 고인돌, 석관묘, 선돌 등 청동기시대 유적이 산재해 있다.

예로부터 경상남도 내륙지방을 연결하는 통로 구실을 하여 여러 차례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

거북선이 최초로 실전에 사용되어 왜군을 전멸시킨 전승지로도 유명하다.

1969년 남강 댐이 완공되어 남강방수로가 사천만으로 개통되었다.

 

다시 계속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니 사천만과 사천대교를 좌측에 두고 우측 저 멀리 남해 바다를 가로질러 병풍을 두른 듯 다가와 있는 남해지맥의 산줄기들이 아름답게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다.

몇년전 홀로 내려가 어렵고 고통스런 상황에서도 무탈하게 완주 후 너무나 강렬한 희망을 가지고 올라왔던 남해지맥에 대한 추억을 꺼내 보듬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언젠가 맥 잇기 산행이 끝나면 저 남해로 내려가 산줄기가 아닌 사람들 사는 냄새와 향기를 맡으며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기대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잘 가꿔진 쌍묘가 나타나고 다가 가 살펴 보지만 오래된 비석이라 글씨조차 읽지를 못하는데 그 묘지 앞에는 작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아마도 묘지를 관리하기 위한 연장과 제를 지낼 때 사용하는 물건들을 보과하는 작은 건물은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그곳을 내려가니 다시 비포장 사거리 임도와 만나고 어렵게 선두와 통화를 해 보니 오량마을 위 정맥 마루금 상 헬기장에서 아침 식사를 즐긴다는 소식에 앞서 진행하는 7명의 종주대들고 조금 더 진행하여 평편한 임도 옆에 자리 만들어 맛 난 아침 식사를 즐겨 본다.

 

아침 식사를 즐긴 후 잠시 쉬고 있으니 추위가 엄습해 오고 다시 선두와 연락 후 천천히 진행하려 하니 함께 진행하자며 기다리라는 전언이다.

잠시 쉬고 있으니 선두 중간이 합류하고 다시 기차 놀이를 하며 한줄로 길게 마루금을 타고 걸어 본다.

한동안 임도를 타고 진행하다 다시 능선으로 접어 들고 53번 송전탑을 지나 안부를 통과하니 다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52번 송전탑을지난다.

마루금은 다시 완만한 오르막 된비알로 이어지고 제법 이마에 땀방울이 솟을 쯤 잠시 등로 좌측 쥐를 바라보니 그곳에 그토록 보고 싶고 그리워했던 지리산 천왕봉이 이제 상고대도 사라지고 하얀 뭉게구름도 떨쳐낸 모습으로 다가와 있다. 

 

이제부터 큰 특징 없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한다.

한동안 진행하니 등로 우측 앞 저 멀리 제법 높아 보이는 산 하나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아무리 봐도 알듯 모를듯 다가와 있는 산을 바라 보며 결국 큰 지도 꺼내 살펴 보니 사천의 진산인 와룡산이 아닐까 생각되는 산이다.

남녘 해안가에 자리잡은 와룡산은 높이에 비해 산세가 굉장히 웅장하다.

능선에는 상사바위봉, 섬바위봉, 기차바위, 형제바위 등 빼어난 암봉이 장관이고 아슬아슬한 암릉길이 있으며 억새 능선길, 남해 푸른 바다의 장쾌한 조망 등 아름다움을 두루 갖춘 명산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높고 낮은 봉우리가 아흔아홉 개로 형성되어 구구연화봉이라 전해지기도 하며 5월에는 철쭉이 만개하면 온 산이 진홍색이로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산의 형상이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누워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하여 와룡산이라 불려졌다고 하며 고려의 현종이 잠룡시(임금이 되기 전의 시절)에 놀던 곳이기 때문에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와룡산 기슭의 백천골은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왜군과 싸운 곳이라는 기록도 있다.

백천골에서 와룡산 등성이를 따라 바닷가로 내려오면 성문등, 파병산, 난곡, 퇴병산 등 임진란과 관련 있는 지명이 산재해 있는 것을 보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해 볼 수가 있다.

언젠가 다시 한번 오르고 싶은 산이기도 하다.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계속 따라오는 이명산과 봉명산이 아름답고 그 좌측 가까이에 있는 무명봉 정상부에는 무슨 목장을 짖고 있는지 거대한 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왜 산자락 하나를 잘라가며 저 높은 곳에 저런 건물을 지어야 하는지 의문이지만 오랫동안 자연 그대로를 살리며 보존 할 수 있는 개발이 필요한 시점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계속 낙엽을 밟으며 진행하니 묘지 하나를 지나고 곧이어 바위들이 너부러져 있는 봉우리를 통과하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지도상 239봉인 산성산이란 봉우리라 여겨지는 곳이다.

성방리 산성이라 전해지기도 하는 이곳은 곤명면 성방리 저전마을 남쪽 산위에 흙과 돌로 쌓은 작은 규모의 테메식 산성인데 전해온 바에 의하면 이 산성은 임진왜란 때 쌓은 것으로 산성산 또는 석장대라 불리기도 하는 산성이다.

산성의 높이는 약 300m에 달하며 사천바다와 멀리는 진주 등지까지도 훤히 바라보이는 요충지이기에 산성을 쌓았다는 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성방리 산성인지 아니면 산성산인지 모를 바위들이 너부러져 있는 239봉을 넘어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거대한 건물 공사가 한창인 무명봉이 잘려 나가는 아타까운 현장이 바로 옆에서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하동의 이명산과 봉명산이 제법 산다운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앞으로 오를 수 있을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가슴 설레이는 남도의 산들이다.

 

잡목 사이로 간간히 드러나는 조망을 즐기며 계속 전진하니 봉우리인지도 모를 나즈막한 무명봉을 넘어 이어지고 다시 안부로 내렸다가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정상부에 거대한 바위 하나가 있는 224봉에 도착한다.

잠시 심호흡 한번 하고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전진하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봉우리 하나가 나타나고 올라 가 보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245.9봉이란 코팅지에 안내판이 하나 붙어 있고 그 정상에는 작은 삼각점 하나가 박혀 있다.

지도를 꺼내 살펴 보지만 전혀 알 수 없는 고도의 봉우리에 삼각점을 만나 잠시 어리둥절 해 본다.

처음에는 이곳이 사립재라 생각을 했는데 조금 더 진행 해 사립재는 별도의 봉우리에서 삼각점과 함께 만난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한동안 콧노래를 부르며 진행을 해 본다.

벌목된 지역이지만 그 아래 새로 태어나 자라고 있는 관목들이 제법 등로를 가로 막고 가지치기가 되어 있는 살아 있는 소나무들은 제법 그 윤곽을 드러내며 곳게 잘 자라고 있는 지대도 통과를 한다.

그렇게 한동안 진행하니 갑자기 사립재란 정상 안내판이 붙어 있고 그 중앙에는 삼각점이 박혀 있는 정상에 올라 잠시 쉬어 간다.

 

사립재에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가을빛이 아직 남아 있는 등로가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내려오니 다시 넓은 임도와 만나고 그 임도 우측으로 환상의 조망이 펼쳐져 있다.

와룡산과 연화산 그리고 여항산과 자굴산 및 한우산까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많은 사진을 남긴 후 이제부터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계속 좌측으로 오르락 내리락하며 딱밭골재까지 이어가야 한다.

중간 중간 터지는 너무나 황홀한 조망에 이제부터 시간이란 개념은 잊어 버리고 그저 나즈막한 산줄기에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을 보내는 순간이다.

 

참으로 조용하고 한적한 그러나 푸근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사천시가 지척에 보이기 시작하고 그 남쪽 방향으로는 와룡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남해에서 불어 오는 바람 막이 구실을 하는 듯 보인다.

수도권에서 너무나 멀리 느껴지는 고장이기에 자주 내려 올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말았던 사천땅에 들어 와 이렇게 그곳 명산들을 둘러 볼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서 있다.

그 와룡산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올라가며 연화산 줄기도 보인다.

 

몇명의 종주대가 합류하여 준비한 과일을 먹고 간다기에 다시 배낭 둘러메고 홀로 천천히 넓은 임도를 타고 오른다.

오르니 우측으로 갈라지는 임도 삼거리를 만나 좌측 주 임도를 타고 오르니 좌측으로 다시 225봉 오름길에 띠지 하나가 붙어 있다.

계속 임도를 타고 진행해도 무방하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올라 가 보니 역시나 조망도 없고 그냥 넓은 임도를 타고 진행하는 편이 나아 보였다.

 

225봉 정상에 오르니 미득골쪽 민가들이 바로 발 밑에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남해와 사천쪽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끝없이 펼쳐져 산그리메를 이루고 있다.

다시 그 225봉 정상을 넘어 내려오니 다시 방금 전 헤어졌던 임도를 만나 계속 좌측으로 이어가고 한동안 내려가니 내려가다 보니 등로는 다시 임도 우측의 능선으로 이어진다.

그 능선으로 들어 가 보지만 역시 곧이어 임도를 만나 진행되고 조금 더 내려가니 임도 우측으로 민가인지 아니면 폐가인지 모를 건물 한채가 보인다.

내려가 살펴보니 임도 우측으로 그 건물을 향해 임도 하나가 더 개설되어 있고 그곳에는 진주성광교회 사유지란 팻말 하나가 세워져 있다.

그저 눈 길 한번 주고 계속 직진으로 나 있는 임도를 타고 내려 가 본다.

 

그 진주성광교회 사유지 건물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내려가도록 되어 있다.

의심을 하면서도 내려가 보니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듯 사라져 가는 폐임도 하나가 나타나고 이제 그 폐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도록 되어 있다.

그 폐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안부에서 방금 전 헤어졌던 넓은 임도와 다시 만나 그 임도를 타고 나즈막한 오르막으로 오른다.

 

주위 풍경을 바라보며 조금 더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정면으로 과수원의 원두막을 닮아 있는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오고 바로 임도 우측으로는 가옥 한채가 서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가옥쪽을 기웃거려 보지만 이미 폐가가 되어 있는지 기척도 없고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도 오래전 일인듯 거미줄이 쳐져 있다.

주위 조망 한번 즐긴 후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넓은 임도를 타고 우측에는 식재된 나무들이 있는 정원을 두고 좌측에는 산줄기 능선을 두고 진행하니 임도 우측에 큰 파란 물통 하나를 지나 비닐하우스에 도착한다.

 

그렇게 그 넓은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펼쳐진 사천쪽 산줄기를 바라보며 걸어가다 보니 오늘 산행은 생각보다 일찍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한동안 단풍이 들어 떨어진 그리고 떨어지려는 풍경을 담으며 걸어가니 드디어 등로가 좌측으로 크게 꺽이는 비닐 하우스가 눈에 들어 오고 비닐하우스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다시 넓은 임도 하나가 개설되어 있고 그 앞에는 전봇대 하나가 서 있다.

좌측 넓은 임도를 타고 들어가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딱밭골재 직전의 비닐하우스라 적혀 있는 곳이다.

먼저 도착한 종주대 몇명이 간식을 펴놓고 쉬어 가기에 합류해 준비한 주류 몇잔 마시고 휴식을 취한다.

 

검정 그늘막으로 만들어진 하우스와 두어동의 건물이 있는 임도 공터에서 한동안 쉬면서 후미조를 만나 함께 그곳을 떠난다.

출발하자마자 좁은 능선 등로가 열리는가 싶더니 금새 식재된 단풍나무 지대를 지나는데 이곳은 아직도 고운 단풍이 만개해 제대로 된 늦가을 경치를 간직하고 있다.

함께한 종주대들과 단풍을 즐기며 몇장의 사진으로 추억을 만들어 본다.

늘 멋진 단풍 산행을 즐겼었는데 올해에는 바쁜 일정으로 그 고운 단풍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보낸 시간을 이곳에서 벌충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제 그 식재된 나무들이 즐비한 농원을 지나 좁은 능선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금새 딱밭골재 건너 올라야 할 시멘트 임도와 감나무 과수원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조망을 즐기고 내려가니 이곳 역시 감나무 밭들과 연결되고 몇개 남겨 놓은 감을 만져 보지만 왠일인지 익지도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익은 감 하나를 맛 보고 그 감나무 밭을 내려가니 짧은 절개지를 타고 시멘트 도로에 내려서는데 그 앞에는 민가 한채가 서 있고 그곳에서 주민 3명이 무엇을 자르는지 전기톱날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인사를 하였지만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답변만 듣고 곧바로 이어진 시멘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딱밭골재에 안착한다.

이 딱밭골재는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 딱발골마을과 곤명면 작팔리 작팔마을을 잇는 고개마루로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곳이다.

 

곤양면 흥사리 방향에서 내려 와 딱밭골재 고갯마루인 곤명면 작팔리쪽으로 걸어 올라가 도로를 건넌 후 좌측 민가쪽으로 나 있는 시멘트 도로를 타고 올라가 그 민가 옆을 지나 감나무 밭으로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은 이어진다.

이곳에서 곤양면 흥사리의 자료를 찾아 본다.

흥사리는 곤양군 가리면에 속해 있다가 1914년 갑사동과 흥속동 및 묵곡동 일부를 병합하여 흥속의 흥자와 갑사의 사자를 글자를 따서 흥사라 하여 사천군 곤양면에 편입되었으며 흥사라는 말은 이름 그대로 선비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흥사리는 면의 동쪽 9km지점이며 남쪽은 검정리, 동은 탑동, 서는 묵곡리와 북은 곤명면 신흥리와 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마을 중앙에 천길봉이 솟아 있고 북쪽에는 신선들이 글을 읽었다는 선들재와 명당인 곽가등이 솟아있어 곤명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문둘방으로 문달사라는 고찰이 있었으나 지금은 절은 간곳이 없고 절터와 주춧돌들이 대밭 속에 남아 있다.

예전에는 이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하며 구강언을 막기 전 까지는 회관이 있는 앞 들까지 배들이 들어와서 염전용 화목과 기타 화물을 실어 날랐다 한다.

 

딱밭골재에서 시멘트 도로를 타고 민가쪽으로 오르니 민가에 살고 있는 아저씨 한분이 계시고 감나무에 달려 있는 감을 따 먹어도 되느냐 물으니 주인이 아니라서 모른다는 대답이다.

민가를 우측에 두고 좌측 길을 타고 오르니 이제부터 감나무 밭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감나무 밭을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편백나무 숲을 지나 나무들이 식재된 잡풀지대를 통과하는데 그 나무 하나에 별악산이란 코팅지 하나가 붙어 있다.

지도상 나와 있는 205봉이지만 그 어느곳에서도 별악산이란 이름을 듣지 못했기에 의구심이 드는 산 이름이다.

 

봉우리 같지도 않은 그 별악산을 넘어 계속 잡풀들이 우거진 나무 식재된 장소를 지나니 다시 등로는 억새가 피었다 사라지는 임도같은 등로로 이어지고 조금 더 내려가니 저 앞으로 그동안 낙남정맥 산꾼들에게 악명 높은 농장주란 닉네임이 붙은 하얀 민가 한채가 나타난다.

그 앞에는 파란 밀을 심어 초록의 들판이 펼쳐진 보기에는 너무나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그곳으로 조심스레 내려가 보니 민가는 이미 폐가가 된지 오래인듯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악명 높은 집 주인과 만나지 않아 좋기는 하지만 왜 이 좋은 집과 농장을 버리고 주인이 어디로 언제 사라졌는지 마음이 아파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폐가를 좌측에 두고 반바퀴 돌아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니 사면 등로가 이어져 있고 그곳을 통과하니 등로 좌측으로 시야가 트이면서 너무나 멋진 산줄기가 펼쳐져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도를 펴 놓고 살펴보니 오늘 종주대가 내려가야 할 솔티고개쪽과 다음구간 올라야 할 정맥 마루금이라 생각되는 산줄기가 펼쳐져 있다.

잠시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에 젖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이어가던 맥 잇기 산행을 진행하니 저 앞에서 산행대장님이 기다리며 인사를 건네기에 의아한 생각으로 물어 보니 평이한 이곳에서 알바를 했다며 후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펴보니 정상 등로는 이곳 좁은 공터에서 우측으로 90도 꺽어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지만 잘 보이지 않고 직진의 등로가 너무나 뚜렷하게 나 있기에 그곳으로 잠시 진행하다 뒤돌아 왔다는 전언이다.

산행대장님의 안내로 무탈하게 우측으로 90도 꺽어 무명봉을 넘어 내려가니 고려시대에 장군을 지냈다는 함안조씨 가족묘들이 줄지어 있고 그곳에서 후미까지 모두 모여 마지막 남은 간식을 먹으며 쉬어 간다.

 

그곳 함안조씨 묘지에서 후미대장과 닮아 있는 종주대 한분이 있어 함께 사진 한장 남기니 어찌그리 닮아 있는지...

많이 만났지만 아직도 얼굴과 닉을 매치하지 못하고 헷깔릴만한 그런 닮음에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다시 대리석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측백나무 숲을 지나 곧바로 시멘트 임도와 만나는데 처음에는 내동공원인가 착각을 할 정도로 묘지가 산재한 곳이였다.

시멘트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계속 이어가니 우측에 밭이 있는 안부에서 시멘트 임도를 좌측으로 보내고 등로는 직진의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벌목되어 과수 나무를 식재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작팔리 마을이 진양호를 북동쪽에 두고 너무나 평화롭게 놓여 있다.

잠시 등로를 벗어 나 그 아름다운 풍경을 담으며 작팔리에 대한 자료를 생각해 본다.

작문팔수의 문장으로 병풍형의 산으로 둘러쌓인 마을이라 작팔이란 이름이 붙은 마을이다.

또는 선인이 독서하였다는 자리가 흡사 상을 놓고 공부하는 형국이고 골짜기의 이름이 형국에 맞추어 붙여졌으니 즉 신선이 강림 하였다는 강선 배움터가 있었다는 원학당골, 벼루의 연석골, 벼루의 연수골, 붓골, 먹골, 장지골, 글을 읽은 독골 등 8골이 있으니 혹설은 작팔 동명이 여기에 연유라고도 한다.

작팔과 구몰 2개 마을로 형성되었다.

구몰 유래는 비리고개에서 뻗은 산이 거북형이고 이 거북이 앞 시내를 보고 들어가려는 몰의 형용이라 하여 구몰이라 한다.

 

그 작팔리 마을을 두고 우측 북으로 눈길을 주면 너무나 푸르디 푸른 진양호가 자리하며 산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진양호는 남강댐으로 더 잘 알려진 호수이다.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을 가로질러 1970년 7월에 완공한 낙동강 수계 최초의 다목적 댐으로서 길이 975m, 높이 21m, 부피 82만 5,000㎥의 중심코어형 필 댐이다.

댐마루와 만수위의 높이가 각각 42m와 39.5m로 2.5m의 여유고가 있다.

댐의 주요시설물은 본 댐을 제외한 초당 1만 570㎥의 계획홍수량을 조절 및방류할 수 있는 여수로시설과 발전용량 1만 2,600kW의 남강 수력발전소 및 11㎞에 이르는 인공방수로 등이 있다.

또한 발전소에는 유효낙차 15m로서 수차발전기 2대가 설치되어 있다.

최근 댐 규모를 확대해 홍수조절 효과를 높이기 위한 계획을 추진중이다.

1920~30년대에 실시된 낙동강 개수계획의 일환으로, 남강 홍수량을 사천만으로 방류하기 위한 홍수조절 목적으로 1939년에 시공하였으나 중단되었다가 1949년에 재착공하여 댐코어를 시공하는 도중 다시 중단되었다.

그뒤 1962년에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일환으로 홍수조절 외에 관개용수, 상수도용수 공급 및 발전을 포함하는 다목적 댐으로 건설되었다.

본 댐의 건설로 남강 하류에 있는 농경지 500㎢에 홍수피해를 줄이며, 남강 하류와 낙동강 하류에 있는 농경지 98㎢에는 연간 6,000만㎥의 관개용수를 공급한다.

진주시와 사천시 일대에는 하루에 약 10만㎥씩 상수도용수를 공급하며, 경상남도 일대에 연간 4,300만kWh의 전력을 공급한다.

댐에 의해 생긴 진양호는 만수면적 29.4㎢, 총저수용량 1억 3,630만㎥로 진주시를 비롯하여 경상남도 내 3개군 9개면에 걸쳐 있다.

주변일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관광지로 활용된다.

 

그렇게 조망을 즐기며 걷다 보니 다시 제일 후미쪽으로 처지고 천천히 나즈막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183.5봉이 저만치 위에 보인다.

함안조씨와 김해김씨 합장묘를 지나니 등로 우측으로 사천의 흥사리 넘어 저 멀리 와룡산 자락도 가깝게 다가와 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듯 그렇게 모여 있는 평화로운 민가들을 내려다 보고 있으니 불현듯 이 산객이 나고 자란 고향이 오버랩되며 어린시절로 여행을 떠나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곤양군 가리면에 속해 있다가 1914년 갑사동과 흥속동 및 묵곡동 일부를 병합하여 흥속의 흥자와 갑사의 사자를 글자를 따서 흥사라 하여 사천군 곤양면에 편입되었으며, 흥사라는 말은 이름 그대로 선비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이름만큼 선비들이 많이 났는지는 알 수 없다.

 

흥사리와 사천 그리고 와룡산쪽 조망을 즐기며 진행하니 금새 183.5봉에 올라 잠시 쉬어 간다.

코팅지에 이곳이 183.5봉임을 알리는 안내판 하나가 걸려 있고 그 옆에는 이름 모를 묘지 하나가 보인다.

다시 별 특징 없는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좌측의 진양호를 내려다 보며 걷지만 잡목으로 인해 사진 한장 건지기가 힘이 든다.

 

그저 기억에 조차 남지 않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41번 송전탑이 보이고 계속 이어지는 잡목과 소나무가 혼재된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1001번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선덜재에 도착해 도로 옆에 세워진 이정표를 담아 본다.

선덜재는 사천시 곤명면 신흥리 만지마을과 곤양면 흥사리 갑사를 잇는 고갯마루로서 해발고도는 약 90인 곳이다

도로로 내려서니 1001번 지방도로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산판도로 같은 도로이다.

내려서서 우측 고갯마루로 조금 올라 가 도로를 건너면 좌측 능선으로 다시 맥 마루금이 이어져 있다.

신흥리 만지마을은 면소재지에서 동향 5km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선이 글 읽었다는 선들재를 경계를 두어 곤양면 흥사리와 접하고 있으며 원만지, 못안골, 공전골, 갈밭 등 여러 땀으로 산재되어 있는 마을이다.

만지라는 이름의 유래는 못안의 소류지가 축조년대를 모을 정도 오래된 못으로 이 못물로 영농을 하여 생활하기 때문에 언제나 못에 물이 가득 차 있기를 염원하는 심정으로 동네 이름도 만지로 부르게 됨이 그대로 이어졌다 한다.

수도작 일변도인 이 부락이 1967년 남강 댐 건설로 완사천을 끼고 있는 만지들이 거의 댐 구역으로 편입되어 일부 산간경지를 제외하고는 수몰 지대인 국유지를 경농하여 살고 있는 저소득 마을이다.

대봉산 옆에 역마등이 있는데 완사역의 역마 방목장이었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신선밭골에 신선이 강림할 적에 하늘에서 역마를 타고 내려 왔다하여 이름 되었다고도 한다.

신선으로부터 득도코자 이 바위를 이고와 서 좌선 하였다 한다. 머리에 바위를 이고 온 흔적이 호박(절구통)처럼 되어 있다.

완사천에 오래전부터 만지보, 신흥보 등을 설치하여 수도작 관개에 큰 몫을 하여 오다가 기사년(1929) 홍수에 신흥보 밑에 200m의 잠관수로를 개설하여 관개케 함이 오늘까지 이용되고 있다.

 

솔티고개까지 4.5 Km 남았다는 거리 이정표가 이제 산행 날머리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지만 체력적인 부담이 있는 마지막 구간이니 조심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조금은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는 발길에 힘이 들어 가고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힐쯤 기독집사 김차봉의 묘란 쌍봉을 지나 40번 송전탑을 통과하니 넓은 공터인지 아니면 폐헬기장이 나타나고 그곳에는 하얀 억새가 한가득 피어 있다.

 

그 무명봉에서 우측 철탑이 있는 등로를 버리고 좌측 내동공원쪽으로 나 있는 넓은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드디어 드넓은 내동공원묘지들이 펼쳐져 있다.

이제 사천시에서 진주시로 넘어오며 만나는 내동면 유수리 공원묘지로서 내동공원과 나동공원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지만 내동면의 명칭이 능금나무 내에서 오기되어 어찌 내 또는 어찌 나로 기록된 것이라 생각되기에 내동공원이 맞을 듯 싶다

또한 내동면 유수리에 존재하기에 유수리를 찾아보니 유동의 유자와 수거촌의 수자를 따서 유수리라 하였다는 자료가 있다.

생각보다 드넓은 공원묘지에 올라움을 금치 못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내동공원묘지를 우측에 두고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능선으로 오른 후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온 철탑 밑 넓은 폐헬기장에서 이곳으로 진행되어 온 마루금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내동공원묘지 조성으로 인해 원 정맥 마루금이 약간 변형되어 있지만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으로 걸어가고 있는 순간이다.

잠들어 있는 영혼들 위에 피어난 하얀 억새가 오늘따라 더욱 새롭게 다가오며 처량함을 더해 준다.

 

계속 시멘트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저 멀리 공원정상 한가운데에 마리아 상이 보이고 저 멀리 190.5봉에는 봉화대를 닮은 둥근 돌탑이 올려다 보인다.

그곳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남해의 남해지맥에서 부터 사천의 와룡산 그리고 연화산을 넘어 북으로 둘러쳐진 끝없는 산그리메들을 즐겨 본다.

결코 높지 않은 산줄기들이지만 주위 산군들이 높지 않으니 그것만으로도 강원도 어느 산골짜기의 산그리메 못지 않은 멋진 풍경으로 남겨지는 시간이다.

 

눈을 조금 더 동쪽으로 올리니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낙남정맥 마루금이 작은 키를 맞추며 끝어질듯 이어져 가고 있다.

수없이 많은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골짜기에선 말이 없는데 그 가장자리를 뚫고 나 있는 2번 지방도로를 지나는 차량들의 소음소리는 그렇게 먼 거리에서도 종주대의 귓전을 때리며 잠들어 있는 영혼을 깨우고 있다.

보이는 산 모두를 다 오르지 못한다고 한들 누구 하나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않을 것을 왜 그리 욕심을 부리며 조바심을 내고 있는지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동공원묘지 정가운데 정상부로 오르니 시멘트 임도 좌측에 하얀 마리아상이 서 있고 잠시 묵념올린 후 계속 이어가니 190.5봉을 넘는다.

잠시 더 진행하니 시멘트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새로 조성하는 넓은 잔디밭이 나타나고 그 잔디밭을 가로 질러 능선 내리막에 맥 산행 마루금이 연결되어 있다.

내동공원묘지로 인해 약간 마루금이 제모습을 찾지 못하고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한동안 사면 등로를 타고 다시 내동공원묘지를 벗어나 능선 잡목숲으로 들어 가 진행하니 140봉 안부 지나 187봉 정상에 도착하고 처음에는 이곳이 158봉이라 생각을 했지만 158봉은 마지막 오르고 나서야 알게 되였다.

그곳 187봉에서 내려다 본 경전선 철교와 2번 국도가 아름답고 그 위로 이어진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마루금이 벌써 어서오라 손짓을 하고 있다.

 

한동안 187봉에서 내려서며 참으로 고운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진행해 본다.

187봉을 158봉이라 착각을 하고 룰라랄라 걸어가는데 아무리 걸어가도 솔티고개에 있는 SK 주유소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동안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마루금은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잠시 배낭 내려 지도를 살펴보니 이제사 안부를 내려갔다 158봉 오르막 등로 상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참으로 멋스런 등로를 타고 걸어가는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다.

 

그렇게 다시 이마에 땀방울을 흘리고 나서야 드디어 158봉에 도착을 하지만 그 158봉 정상부에 오르기 직전 우측으로 크게 꺽어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158봉 직전 우측으로 크게 꺽이는 등로에서 쓴 웃음만 흘러 나온다.

해발고도라고 해 봐야 단지 158봉인데 그 봉우리를 오르면서 그토록 악따구니를 썼다는 사실에 실소를 금치 못한 것이다.

역시 산행은 해발고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산에 들어 있는 산객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달은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제 날머리가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발걸음도 빠르게 진행하니 2번 지방도로 상을 지나는 차량 소음이 강하게 들리는가 싶더니 바로 발 밑에 다음 구간 올라야 할 옥녀봉쪽 풍경이 다가온다.

 

계속해서 완만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드디어 우측으로 2번 지방도로가 보이고 시멘트 수로가 나타난다.

그 수로를 타고 내려가니 그토록 기다렸던 덕천고개의 SK 주유소가 내려다 보이고 그 주유소 지나 다음 구간 산행 들머리인 솔티고개가 내려다 보인다.

그 솔티고개에서 이어진 마루금도 옥녀봉을 좌측에 두고 시원스레 내려다 보이는 시간이다.

 

드디어 덕천고개에 도착해 좌측에는 진양호캐리비안온천을 두고 우측으로 내려가니 2번 지방도로 옆 가장자리에 솔티고개 0.25 Km 이정표가 서 있다.

진주시 내동면과 사천시 곤양면을 이어주는 2번 지방도로 상 고갯마루인 솔티고개, 다음 구간 어둠속에 들려 사진 한장 남기고 떠나면 그것으로 또 솔티고개와의 인연은 사라질 것이지만 머릿속에 남아 있는 잔영은 오랫동안 기억될 곳이리라. 

사진에 담은 후 주위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다음 구간 산행 들머리인 솔티고개 들머리를 담으려 했지만 후미쪽으로 내려왔기에 포기하고 그냥 다시 진양호캐리비안온천으로 올라 가 흘린 땀 씻어내고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니 이세상 모두가 내것이 되었다.

이렇게 한발 두발 내딛고 걸어 간 거리가 벌써 3구간을 마무리한 시간이니 인간의 의지와 발걸음이 정말로 대단하고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2번 지방도로에서 시멘트 도로를 타고 올랐으면 좋았을 것을 작동하지 않는 분수대의 큰 바위를 타고 직선으로 오르다 보니 수많은 식물의 씨들이 달라붙어 종족보존에 얼마나 열심인지를 여실히 깨달은 시간이다.

잠시 더 오르니 드디어 진양호캐리비안온천 건물과 그 앞에 정차된 버스를 바라보니 오늘 하루도 정말 마무리가 되어 가는 기분이다.

지하 800미터 암반에서 용출되는 중탄산 함유량을 자랑하는 온천수로서 주변환경이 좋고 교통이 편리하며 가족 휴양시설이 있어 유용하게 이용 할 수 있는 온천처럼 보였다.

 

그렇게 예정된 시간보다 한시간 일찍 하산 완료 해 진양호캐리비안 온천에서 목욕 한 후 완사역 근처의 옛날 피순대 전문점에 들어 가 맛난 순대국으로 허기를 달래며 이슬이 한잔 나누니 또 하루 해가 짧아진 느낌이다.

특히나 부부가 함께 낙남정맥에 들면서 이렇게 많은 인원을 위해 점심까지 보시를 해 주셨다니 그저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 뿐이다.

늘 건강한 모습으로 어랫동안 산에 드는 금술좋은 부부로 살아 가길 빌어 드린다.

 

그렇게 또 하루를 비운 후 채우고 서울로 복귀하는 길은 역시 김장철과 맞물려 제법 시간이 걸렸고 그래도 무탈하게 사당에 도착해 집으로 복귀하니 멀고도 길었던 하루해가 지나가고 있다.

 

늘 노심초사 고생하는 산행대장님과 총무님 그리고 후미대장님께 감사인사 드리며 함께한 종주대 여러분들에게도 고마운 인사 드리며 산행 후기를 마무리 해 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