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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산행(완료)/낙동정맥(완료)

낙동정맥 제13차 시티재에서 아화고개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1.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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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북 영천시와 경주시의 낙동정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1년 11월 11일과 12일 (무박 2일 토요 산행)

산행날씨 : 새벽엔 짙은 안개와 하루 종일 구름 많은 초가을 날씨

산행온도 : 영상 09도에서 영상 21도

산행인원 : 3450온누리산악회 낙동정맥 종주대 13명과 함께

산행코스 : 시티재(안강휴게소, 28번 지방도로)-318봉(SK 고경청정 기지국)-호국봉(340봉)-382.9봉(삼각점과 돌탑)-292봉 능선 분기점-272봉 국기게양봉-철조망 시작점-경주이씨묘지-야수골 갈림 사거리-능선 분기점-252봉-송전탑(195번)-논슬리 갈림 삼거리-어림산(510.4봉)-묘지봉-바위봉-마치재(927번 지방도로)-밀양박씨묘지-안부 사거리-밭 개간지 임도-철조망-남사봉(470봉)-비포장 임도-황수탕 사거리-310봉-267봉-한무당재(청석골재, 할마당재, 시멘트 포장도로)-경주최씨묘지-316.4봉 우회-못안마을 안부 사거리-276봉-묘지5기-235봉 공터-평해황씨묘지-골안재와 아곡 갈림 사거리-385봉-관산(393.5봉)-937 삼각점-밀양박씨 가족묘지-묘지 군락지-김해김씨 묘지-비포장 임도-294.9봉-양계장-시멘트 임도-능선 들머리-만불산(275봉, 진신사리탑)-주) 대겸 파란지붕 건물-송전탑 2번-4번 지방도로-아화고개(애기지 휴게소)-아화만남휴게소-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4.60 Km (접속구간 00.00 Km)

산행시간 : 사진 찍고 휴식 취하며 꾸준한 속도로 10시간 00분 (04시 30분부터 14시 30분까지)

 

낙동정맥이란 ???

낙동강의 동쪽을 따르는 산줄기로 동해바다를 가르는 한반도 동해안 지방의 담장이다.

백두산에서 남으로 힘차게 뻗어내려 금강산과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내려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천의봉(매봉산,1303봉)으로 솟아 오르기 전 1145봉 직전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하여 태백 백병산(1259봉), 통고산(1067봉), 울진 백암산(1004봉), 청송 주왕산(720봉), 경주 덕석산(829봉), 울산 가지산(1240봉), 신불산(1209봉), 부산 금정산(802봉)을 지나 백양산(642봉)을 넘어 낙동간 하구인 다대포 몰운대에서 끝나는 약 397 Km의 산줄기를 낙동정맥이라 한다.

낙동정맥 중에서 최고봉은 태백의 백병산으로 그 높이는 1259미터이다.

 

 

오랫만에 여유를 가지고 즐기며 걸었던 낙동정맥 마루금에서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3주 전인 10월 말에 이미 끝냈어야 할 산행이 끝질기게 내리는 가을비와 오랫만에 의기 투합한(?) 종주대의 단합으로 인해 죽도지맥으로 빠졌다 다시 돌아 온 시티재이지만 이번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짙은 안개와 겨울로 가는 길목에 불어오는 늦가을 찬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복병을 만나 어렵게 시작하는 새벽 시간이 되였다.

그래도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 함께 같은 목적을 향해 장시간 걸어 갈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또 하루의 짧아진 시간을 긴 여운으로 남기는 순간이다.  

 

 

 

235봉 갈림 공터를 지나 잡목과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많은 평해황씨 가족묘와 일반묘지들이 있는 무명봉에 오르니 가을이 지나는 풍경 저 멀리 그 옛날 사람들이 머리에 썼던 사모관대의 관을 닮은 관산이 아주 가깝게 다가 와 있다.

이곳에서 볼 때에는 그저 그런 높이의 채 400미터도 되지 않는 고도의 산이기에 그저 즐거운 마음만 가득했었는데 그곳의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오르던 시간은 오늘 산행의 백미로 기억되는 순간이였다.

이렇게 또 짧아진 하루해를 만끽하며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된 하루로 기억 될 낙동정맥 산행으로 남겨 본다.

 

 

한 달이 자나고 나서 다시 나서는 낙동정맥 산행길, 이곳 시티재는 벌써 2개월 전 뜨겁게 대지를 달구던 시절에 들려 더위에 몸서리 쳤던 곳이지만 그 추억은 모두 저 멀리 사라지고 이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와 겨울을 재촉하는 차가운 늦가을 밤바람만이 종주대의 얼어 붙은 마음과 몸을 더욱 떨게 만들고 있다.

안강휴게소가 자리하고 있는 시티재는 이미 유령의 고갯마루가 되어 가는 듯 모든 것이 깊은 잠에 빠져 있고 그곳에 내린 소수의 정예 13인의 낙동정맥 종주대만이 분주한 하루를 열고 있다.

경주와 영천을 이어주는 4차선 지방도로 상 시티재는 

식량과 상품을 운반하는 말이나 소의 등에 실린 시티다발에서 유래하였다는데 일제시대의 지도를 보면 검불나무와 같은 잡목이 많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시령현이라 되어 있는 자료도 볼 수 있는 고개이다.요즈음은 그것보다는 6.25 전쟁 당시 격전지에서 산화한 호국 영령들을 위로하는 지역으로 더 알려진 고갯마루는 아닐까 생각해 보는 고갯마루이다.

 

 

잠시 안강휴게주유소에서 흩어지는 안개속에 사진 몇장 남기고 주유소 진입로를 따라 영천쪽으로 내려가니 영천을 홍보하는 거대한 안내판과 조형물이 보이지만 역시 4차선 지방도로를 만나 높은 중앙분리대로 인해 무단 횡단을 하지 못하고 다시 도로 따라 좌측의 경주쪽으로 발길을 돌려 중앙분리대가 끊어진 곳을 통해 차량 통행이 뜸한 시간에 어렵게 건너 본다.

짙은 안개가 끼어 차량 불빛도 보이지 않는 시간이기에 더욱 위험한 도로를 무탈하게 건너 다시 영천쪽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니 경주 안강읍 도로 이정표가 보이고 그곳 아래에 있는 시멘트 수로를 타고 오르며 또 한 구간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잠시 오르니 시멘트 수로는 좌측으로 올라가고 등로는 우측 잡목 사이로 열려 있다

그 잡목을 뚫고 조금씩 가파라지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많은 낙엽이 깔린 오르막 된비알이 열리고 잠시 후 통천문과 닮아 있는 바위를 지나 진행하게 된다.

 

 

은근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에는 안개에 젖은 낙엽이 깊게 깔려 있어 폭신하고 잡목에 내려 앉아 있던 안개의 물방울이 종주대를 만나 비산하며 온 몸에 물방울을 선사하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오르니 낙엽 떨어진 잡목 사이로 둥근 보름달이 떠 올라 종주대의 앞길을 밝혀주고 있다.

고도를 조금 더 높이니 그토록 한치 앞도 보여주지 않던 안개가 약간 사라지며 헤드렌턴 없이도 산행을 진행 할만큼 밝은 보름달이 길잡이를 해 주는 그런 풍경으로 변하고 있지만 그것도 잠시 아침 일출이 시작되고도 한참이 지난 시간동안 안개는 모든 조망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 버린 산행이 되였다.

 

 

밝은 달빛을 따라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무명봉을 지나 높은 철탑 하나가 희미하게 눈 앞에 보이고 잠시 내려가니 철조망이 쳐져 있는 건물과 높은 통신탑이 낱난다.

그 통신탑을 우측에 두고 좌측 철조망을 따라 진행하니 마지막 철조망에 SK고경청정 기지국이란 안내판이 보인다.

그 통신탑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무명봉을 지나고 340봉인 호국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지도상에서도 찾지 못한 340봉의 호국봉은 6.25 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 전선의 최대 격전지였던 안강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한국 전쟁 초기인 1950년 8월 11일 부터 18일까지 국군 수도 사단이 북한군 12사단을 포위해 격멸한 곳이라 호국봉이란 이름이 붙은 것으로 추측되는 봉우리이다.

호국봉 우측 서쪽 아래의 영천시 고경면 경정리에는 국립묘지와 같은 국립영천호국원이 자리하고 있어 그 옛날 격렬했던 동존상잔의 비애를 알려주고 있는 장소가 되어 있다.

 

                         

제법 고도를 높혀 진행했는데도 이마에 잠시 땀방울이 맺히다 마는 정도로 기온이 많이 내려 가 있음을 실감하며 호국봉에서 사진 몇장 찍다 보니 그 땀방울이 식으며 잠시 한기를 느끼고 있다.

후미와 연락해 무탈하게 뒤따라 오고 있음을 확인하고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다 완만한 오르막 드로를 오르니 무너진 듯한 돌탑 한가운데에 삼각점이 들어 가 있는 382.9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왜 이곳에 이런 돌탑이 쌓여 있고 또 왜 삼각저이 그 돌탑 안에 들어 가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수없이 많이 올라 본 산 중에서 이런 형상을 하고 있는 모습은 처음이라 한참을 바라보고 진행을 이어 가 본다.

 

 

돌탑 삼각봉을 지나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짙은 안개가 밀려온 등로를 걷다 보니 무아지경이 되어 간다.

그저 바로 발 밑에 쌓여 있다 종주대의 발걸음에 놀라 튀어 오르는 물방울만이 이 산객이 살아 있음을 알려 주는 새벽, 잠시 더 오르니 무명봉인 292봉에 올라 직진의 등로를 나뭇가지로 막아 우측으로 진행하도록 유도하는 곳을 넘어 전진해 본다.

다시 계속 진행하니 국기게양대가 있다는 272봉에 오르지만 역시 보이는 것이 없기에 국기게영대가 있는지도 확인하지 못하고 우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하는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갑자기 의미를 모를 다 녹슨 철조망이 나타나고 그 철조망을 타고 진행하여 무명봉을 지나니 다시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꺽여 야수골 갈림 사거리에 도착을 한다.

등로 좌측으로는 경주시 안강읍 강교리가 자리하고 있는데 개척 당시부터 너더리와 양곡등으로 칭하다가 1780년경 권성이란 선비가 주산인 서쪽산이 이끼야자 모양으로 생겼다하여 야일로 칭하다가 섬촌과 계곡마을을 건너다니는 교량을 널빤지로 설치하였다하여 강교라 부르게 되었다는 평지말의 보현사가 있는 마을이고 등로 우측으로는 400여 년 전 처음으로 김녕 김씨가 이 마을에 정착하였고 임진왜란 때 영천 의병장 권정 장군과 김귀희 장군이 이곳에서 거문고와 비파소리로 암호를 정하고 제반 작전을 의논하여 왜군으 크게 무찔렀다하여 이 마을을 논실이라 하였는데 일제 시대 때 강제로 답곡이라 지명을 바꿨던 것을 광복 후 이곳 주민드리 다시 논실동으로 개칭하였다는 설이 전해지는 마을을 이어주는 야수골 안부를 지나지만 사진 한장 남길 수 없을 정도의 짙은 안개속 세상이 야속하기만 한 시간이다다.

 

 

푹 패인 야수골 안부 사거리를 지나 처음으로 코가 땅에 박힐 듯 가파른 된비알을 타고 낙엽 깔린 등로를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오른다.

잠시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쯤 등로 좌측에 무슨 용도의 건물인지 작은 박스형 건물이 눈에 들어 오지만 어둠속에 알 수 없어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전진해 본다.

잠시 더 전진하니 함께 진행하던 녹슨 철조망이 우측 저 멀리 사라지고 경주이씨 묘지를 통과하게 된다.

그 묘지를 지나 다시 잡목과 잡풀이 말라가는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봉분이 관리되지 않은 묘지를 지나 많은 띠지들이 걸려 있는 안부를 지난다.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선두 종주대들이 무명봉에서 잠시 쉬고 있다.

너무나 짙은 안개로 선두를 보내고 후미를 챙겨 진행하다 보니 제일 후미로 쳐져 진행하게 되였는데 그 후미가 걱정이 되어 기다리고 있는 선두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다가 가 잠시 쉬어 간다.

휴식을 취한 후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우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하다 보니 철없는 진달래가 안개속에 화사하게 피어 나 있다.

한 두송이가 아니고 나무 하나가 전부 꽃송이를 피운 진달래 나무에서 어지러운 세상을 반추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철없이 피어난 등로 옆 진달래꽃에 잠시 마음을 남기고 다시 편안한 등로를 따라 진행한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없는 그저 하얀 안개속에 잠겨 있는 시간이다 보니 천천히 여유를 가지려 해도 자꾸만 발걸음이 빨라진다는 생각이 나는 순간이다.

발 바닥에 느끼는 좋은 촉감을 느끼며 다시 무심으로 걷다 보니 어느덧 등로 좌측의 동쪽 하늘에선 잠시 붉은 기운이 감도는 듯 하더니 그것도 잠시 안개가 그 풍경마저 다시 숨겨 버린다.

아침 7시가 가까워 오자 이제사 조금씩 세상이 열리며 참으로 멋진 풍경으로 하루를 열어 주고 있다.

 

 

아침 안개가 등로에 떨어져 쌓여 있는 낙엽 위에 모여 있다 종주대가 지나가며 밟는 발바닥에 분사되어 세상으로 흩어지고 있다.

조금씩 안개가 사라지며 앞으로 올라야 할 어림산의 높은 봉우리가 위압감을 주지만 진행 할수록 그렇게 높지는 않은듯 포근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한동안 진행하니 지도상에 119번이라 나와 있는 송전탑을 지나는데 다가가 살펴보니 송전탑 번호가 119번이 아닌 195번으로 되어 있다.

그 송전탑 밑을 통과해 조금은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어림산 전위봉에 올라 낙엽 깔린 등로를 담아 본다.

 

 

이제부터 떨어진 낙엽이 쌓여 조금씩 물기를 날려버리는 바삭거리는 소리를 귓전에 들으며 자기와의 싸움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힘들어 쉬어 가지만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정상으로 향하는 마루금이며 시간이기에 그 고통을 참으며 천천히 한발 두발 내딛으며 올라 본다.

두 다리에 전해 오는 무거움이 무거워질 쯤 드디어 어림산 정상에 도착해 허기진 뱃가죽을 움켜잡고 우리들만의 만찬장인 아침 식당을 준비해 본다.

어림산이란 정상 이름이 특별하기에 자료를 찾아보니 신라시대 때 임금이 둘러보고 내려간 산이기에 그 이름인 어림산이라 유래되였다는데 멋진 조망하나 없이 잡목으로 둘러 쌓여 올라왔던 임금이 무엇이라 말하고 내려갔을까 갑자기 궁금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는데 이곳 역시 6.25 한국 동란 때 국군가 북한국이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많은 사상자가 났던 곳이기에 마음 한구석에선 위대한 사상자들에게 감사하는 묵념을 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든든하게 아침도 먹고 서서히 짙은 안개도 사라지며 등로 주위에 펼쳐진 풍경이 제법 눈으로 들어 온다.

제일 먼저 반기는 드넓은 낙엽을 배경으로 사진 몇장 담아 보니 올 가을에는 변변한 단풍 산행은 고사하고 낙엽 산행 한번 한 기억이 없어 아쉬웠던 시간들이였음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제 그 바쁜 일들이 마무리되면 마음 놓고 하고 싶은 산행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도 올 것이기에 한줄기 희망을 가져 본다.

 

 

별 특징 없는 낙엽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내려가던 등로가 다시 완만하게 짧은 거리를 올라가고 비석까지 있는 묘지봉을 넘어 다시 내려갔다 오르니 정상부에는 무슨 성터가 있었는지 단처럼 쌓았던 돌들이 보이고 그 중앙에는 제법 큰 돌 몇개가 앉아 있는 바위봉에 도착한다.

그 바위들 위에 낙엽이 쌓여 매우 미끄럽기에 조심하며 내려가니 다시 깊은 낙엽이 쌓여 미끄러운 내리막 등로로 이어져 있다.

 

 

잠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다 보니 등로 좌측 저 멀리 무명봉 두개가 봉끗 올라와 있다.

지도를 찾아 보지만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봉우리 위에 잠시 안개가 머물다 아침 바람에 쓸려 사라지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잡목을 헤치고 몇장의 사진을 담은 후 계속되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저 멀리 차량들이 지나다니는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등로는 제법 키 큰 몇개의 억새와 잡풀들이 회색으로 변해가는 등로로 바뀌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내려가니 잡목 지대를 지나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마치재에 도착해 이곳에서 산행을 마치자고 농담을 주고 받아 본다.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와 영천시 고경면 덕정리를 이어주는 927번 지방도로 위 마치재는 남사고개라고도 불리우는 고개로서 이곳 지형이 말의 이빨을 닮아 붙여졌다는 설이 전해 오는 고갯마루이다.

잠시 사진을 찍으며 후미를 기다리니 잠시 후 따라  온다며 먼저 진행하라 무전 소리가 들려 온다.

기다리는 동안 통행하는 차량 하나 만나지 못하였으니 넘나드는 차량의 수는 많지 않은듯 하다. 

 

 

 

영천시 고경면이란 도로 표지판 있는 곳으로 내려 와 927번 2차선 지방도로를 건너 경주시 현곡면이란 도로 표지판 있는 곳으로 다시 들어가며 정맥 산행을 이어 가 본다.

약간의 넓은 공터가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대나무가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 우측으로 크게 꺽어 올라가니 밀양박씨 쌍묘가 보이고 그 위로 올라 능선을 타고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현곡면 구미산이라 생각되는 산줄기가 하늘거리는 안개를 드리운 채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처음 마치재를 내려 오기 전에 저 산줄기를 타고 정맥 산행을 진행해야 할 것이라 잠시 착각했던 곳이기에 한참을 올려다 보고 전진한다. 

 

 

조금 더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봉분의 잔디가 사라진 묘지 한기가 나타나고 그 묘지를 지나 내려다 보니 묘지 넘어 저 멀리 남사리와 남사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다시 낙엽이 푹신하게 깔린 등로를 타고 완만한 오르막 마루금을 따라 오르니 약간 벌목된 능선이 나타나고 그곳을 타고 전진하니 벌목된 나무가 안부를 가로막아 우측으로 우회해 진행하니 등로를 깊게 덮고 있는 낙엽속에 안부가 나타난다.

이제부터 제법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비지땀을 흘려보는 시간이다.

 

 

안부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오르기 시작하니 제법 등줄기에선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고 가끔 멈춰서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내려 온 어림산 정상부가 안개속에 파묻혀 있다.

이제 그 안개가 서서히 걷히려는지 그 어림산 정상부 위로 하늘이 열리기 시작하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한 듯 사라지는 안개의 속도가 더디기만 하다.

그래도 이제 조금씩 안개가 사라지며 아름다운 자연과 풍경들을 보여주기 시작하니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앞에 보이는 무명봉으로 오르니 등로 좌측에 남사리와 남사저수지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고 잘 식재된 떡갈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갑자기 눈 앞에 벌목된 임도가 나타나고 저 위로 계단식 밭도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그 임도를 타고 천천히 오르며 주위 풍경들을 사진에 담아 보는 여유를 가져 본다.

 

 

그 벌목된 임도를 타고 계속 오르니 파란 하늘이 열리고 그 하늘 위에 하얀 뭉게 구름이 걸려 환상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조금 더 진행하다 임도 우측으로 보니 돌아 올라야 할 남사봉이 제법 높게 올려다 보인다.

보기에는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았던 남사봉 정상 오르는 길이 낙엽으로 왜 그리 미끄럽게 가파르게 느껴지던지...

임도를 타고 오르니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휘여 전진하도록 나 있다.

 

 

이도가 끝나는 지점으로 가니 임도 우측으로 민가가 보이고 바로 능선으로 진입하는 곳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다.

그 철조망을 넘어 오르니 낙엽이 푹신하게 깔리 등로가 열려 있고 서서히 가파른 된비알로 변해 가고 있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더딘 발걸음을 하다 올려다 보니 어렵게 올라가는 등로와는 달리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한폭의 그림이 되어 있다.

 

 

등로 좌측에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가 자리하고 있는데 가마들에 잔디가 많았고 마을이 남향을 향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이곳 남사봉도 남사마을에서 유래한 듯한 봉우리 이름이다.

북동쪽으로는 방금 지나온 어림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인내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아늑하고 산세가 수려하여 세거지세의 명소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특히 이곳 남사저수지 아래 가정리에서 출생한 동학교주인 최재우 선생으로 인해 더욱 유명한 고장이기도 하다. 

 

 

남사봉에서 한참을 쉰 다음 선두를 보내고 다시 천천히 마루금을 타고 전진해 본다.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잡목 사이로 제법 높은 봉우리가 눈앞 아니 등로 좌측에 나타난다.

처음에는 내려갔다 저 산줄기를 타고 진행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였는데 지도를 살펴 보니 인내산으로 이 산객은 오늘 저 인내산은 오르지 않고 우측 능선을 타고 진행을 해야 한다.

 

 

한참을 다시 가파르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 우측에 넓은 진디밭이 나타난다.

잔디밭 저 멀리 끝자락엔 민가인지 건물들도 보이고 차량들도 보인다.

아마도 골프장인지 모를 그런 진디밭인데 확실하지는 않다.

그것 보다는 저 잔디밭 넘어 방금 전 지나온 정맥 마루금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사진 몇장 남기고 내려가니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가로질러 다시 능선으로 마루금이 연결되어 있다.

등로 우측 즉 잔디밭 좌측 아래로는 선암사와 약수탕인 황수탕이 있는 덕정리가 있다.

덕정리는 전해오는 이야기로 신라시대에 송씨가 황수탕을 발견하게 되어 이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해지며 한 때는 이 부근 산에서 많은 황을 캐었으며 이로인하여 이 일대는 모기를 찾아볼 수 없는 마을이었다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오랫만에 만나는 멋진 조망과 지나온 마루금이 인상적인 시간이다.

 

 

키 큰 나뭇가지에는 낙엽진쓸쓸함이 묻어 나지만 그 아래 이 산객이 지나는 등로에는 아직 파란 빛이 남아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는 등로를 타고 한동안 진행해 본다.

진행하다 잠시 뒤돌아 보면 방금 전 지나온 마치재 넘어 어림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열려 있어 오랫만에 멋진 조망을 즐감해 본다.

다시 멋진 능선 마루금을 타고 진행하다 등로 우측을 보니 지나온 등로 저 멀리 지난 구간 올랐던 삼성산쪽 봉우리도 다가 와 있다.

지나고 보면 모두 멋진 추억이 되는 풍경인 것을 오르면서는 왜 그리 힘들고 고통스러웠던지...

 

 

한동안 별 특징없는 그저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다 310봉을 올랐다 내려가며 등로 좌측을 바라보니 그곳에 이제부터 올라야 할 관산이 제법 그 모습을 간직한채 당당하게 서 있다. 

보기에느 그렇게 먼 곳에 위치한 관산이 아니지만 등로가 우측으로 돌고 돌아 이어지다 보니 보는 거리보다 훨씬 멀리 있다는 느낌이다.

파란 소나무를 제외하면 모두 가을을 지나 겨울로 들어서며 또 한 해를 보내는 채비를 하는듯 하다. 

 

 

고도차도 심하지 않은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는 개척 당시 심곡이라 하였고 1914년 부군폐합시 도리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도리리 지나 개척 당시 심실이라 하였고 임진왜란을 피해온 진주하씨 경현이란 선비가 골자기가 깊다하여 심곡이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는 심곡리와 심곡저수지가 내려다 보이지만 잡목이 방해해 사진으로 남기지는 못하였다.

등로 우측으로는 신라시대에 송씨가 황수탕을 발견하게 되어 이 마을을 개척하였다는 경주시 고경면의 덕정리 마을과 저수지가 잡목 사이로 내려다 보이고 그 마을 우측 위로는 지나온 정맥 마루금이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별 특징없는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갑자기 묘지 몇기가 나타나고 한무당재 넘어 올라야 할 3216.4봉으로 이어지는 무명봉이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다.

그 묘지를 지나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시멘트 계단이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의 한무당재에 도착해 잠시 선두와 조우를 해 본다.

경주시 서면 도리리와 영천시 고경면 덕정리를 이어주는 한무당재는 중국의 한신장군을 모시는 사당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지도 상에는 청석골재 또는 할마당재라 불리우는 고갯마루인데 시멘트 포장도로 치고는 제법 많은 차량들이 지나다니는 번잡한 고갯마루처럼 보인다.

근처 골짜기에 청석이 많이 나는 청석골이 있어 산적들이 많이 출몰하여 청석골재라 불려지기도 했다느 설이 전해오는 고갯마루에서 먼저 서울로 복귀해야 할 종주대 명과 선두 한명을 먼저 보내고 여유롭게 진행해 본다.

 

 

10여분 한무당재에서 휴식을 취한 후 후미를 기다렸다 다시 시멘트 계단을 타고 오르며 산행을 이어 간다.

짧은 계단을 오르니 경주최씨 묘지가 보이고 곧이어 몇기의 묘지들이 줄지어 늘어 서 있다.

그 묘지 옆 등로를 타고 올라 뒤돌아 보니 지나온 남사봉 우측의 인내산이 멋진 봉우리를 하늘을 향해 솟아 올리며 바겨 준다.

처음에는 저 산봉우리들을 넘어 진행한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정맥 마루금과는 전혀 무관한 봉우리들이다.

 

 

묘지를 지나 등로를 타고 계속 전진하니 잡목 구간이 소나무 군락지로 변하면서 부드럽게 이어지고 있다.

조금 더 진행하니 잡목 사이로 올라야 할 관산 전이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곳을 향해 발길을 옮기니 바로 눈 앞에 316.4봉이 올려다 보이지만 조망도 없기에 경주 최씨 묘지를 지난 지점에서 좌측으로 나 있는 우회 등로를 타고 진행하다.

낙엽 떨어진 산하와 낙엽이 뒹구는 등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앞서가던 종주대가 진행하지 못하고 사진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사면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이곳에도 철없는 많은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어 나 계절을 잊은 듯 하다.

 

 

316.4봉을 우회해 진행하니 낮막한 무명봉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다시 안부를 통과한다.

다시 부드러운 능선으로 올라 평이하게 진행하니 등로 좌측에 경주시 서면 도리리와 심곡리 지나 저 멀리 다음구간 넘어야 할 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열려 있다.

오랫만에 만나는 아름다운 조망에 잠시 가던 길 멈추고 마음을 달래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더 진행하니 앞으로 올라야 할 관산 저위봉이 점점 더 가깝게 다가와 있고 바삭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못안마을 사거리를 통과하지만 별 특징이 없어 안부 사거리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못안마을은 영천시 고경면 칠전리에 있는 마을로서 칠전리는 신라시대에 개척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나라에서 옻을 이용하고자 옻나무를 심도록 권장하여 마을주변이 온통 옻나무 밭이였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못안마을 또는 지내마을은 신라때 만든 못인 칠전지 안 서편 양지바른 곳에 위치한 마을로서 매년 한재없이 넉넉한 살림을 해온 농가들이 있는 마을이다.

못안마을 사거리를 지나 계속 진행하니 다시 묘지 몇기들이 늘어 서 있는 276봉을 통과하게 된다.

 

 

묘지 지대를 지나 잠시 간식을 먹고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고경면 삼귀리 마을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삼귀리는 300여년전 월성이씨가 정착해 살기 시작한 마을인데 마을 입구에 거북을닮아 있는 바위가 세개 있어 삼귀라하였다는 설이 전해 오는 마을이다.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갑자기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잠ㅅ 발걸음 멈춰 지도를 살펴 보니 이곳이 235봉 갈림 삼거리 공터임을 알게 된다.

235봉은 이 공터에서 우측으로 조금 더 진행해야 되고 정맥 마루금은 좌측 등로를 타고 진행하면 되는 곳이다. 

 

 

235봉 삼거리 공터를 지나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등로 우측 옆에 잘 가꿔진 묘지 두기가 있어 들려 보니 평해황씨 묘지이다.

다시 소나무 군락지와 잡목지역 그리고 낙엽이 깔린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좌측 저 앞으로 조금씩 다시 관산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곳을 지나 좌측으로 나 있는 사면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몇기의 묘지들이 줄지어 있는 지역을 지나 관산이 바로 코 앞에 바로 보이는 많은 묘지들이 있는 봉우리에 도착해 많은 사진을 담아 본다.

사진을 담은 후 다시 묘지를 좌측 아래에 두고 우측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골안재와 아곡 갈림 사거리 안부를 통과한다.

이곳 우측은 영천시 북안면 관리 골안재로 내려 갈 수 있는 등로가 열려 있고 좌측으로는 경주시 서면 아곡으로 내려 갈 수 있는 안부 사거리인데 조금 지나자 마자 이렇게 성황당처럼 생긴 돌 무더들이 잔재해 있다.

 

 

골안재와 아곡 사거리 안부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며 진행한 길게 고터가 나타나고 그곳에는 예쁜 억새 몇개가 활짝 피어 산객을 반긴다.

그곳 저 멀리 사모간대를 닮아 있는 관산이 이제 바로 눈 앞에 서 있다.

하지만 보는 것과 달리 나즈막한 관산 오르막 등로가 어찌나 가파르던지 제법 굵은 땀방울을 흘려야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이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관산으로 향한다.

여전히 푹신한 낙엽 등로는 다리의 피로를 풀어주고 잠시 더 전진하니 소나무 군락지와 잡목지대가 번갈아 나타나더니 약간의 칼바위처럼 생긴 날등을 타고 진행하니 급격히 등로가 가파라지기 시작하고 제법 고통을 수반한다.

잠시 오르다 가쁜 숨을 들이 쉬며 뒤돌아 보니 그곳에 환상의 정맥 마루금이 펼쳐져 있다.

남사봉에서 한무당재를 지나 이곳까지 이 산객이 걸어 온 낙동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조금 더 이마에 땀방울 흘리며 오르니 저 멀리 지난 구간 지났던 도덕산과 삼성산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오고 우측 가장자리에 오늘 오른 어림산이 우뚝하다.

그 어림산 좌측 능선을 타고 남사봉이 우뚝하고 좌측으로 돌고 돌아 이곳으로 연결되는 마루금이 산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다시 코가 땅에 닿을 듯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생각보다 힘든 산행을 이어가고 있지만 오늘 등로가 편안했던지 견딜만 하다.

 

 

종주대 몇명과 고통을 잊으려 농담과 걸죽한 입담을 자랑하다 보니 어느새 그 가파른 된비알을 타고 넘어 385봉에 도착한다.

여전한 낙엽이 산객의 가슴속으로 날아 들며 고통을 잠재우고 우측으로 갈라진 등로를 버리고 좌측 칼등 능선을 타고 진행하며 관산 정상부로 향한다.

아직도 걸어가야 할 마루금이 제법 남아 있지만 오늘 산행의 난코스를 넘어서인지 이제 발걸음이 가볍다.

 

 

가깝게 보이는 듯 하던 관산은 아직도 멀었는지 걸어도 보이지 않는다.

제법 뾰족한 칼등 능선을 타고 한참을 걸어서야 드디어 묘지가 한가운데 버티고 서 있는 관산 정상에 도착한다.

그 정중앙에 있는 묘지도 요상하지만 그 묘지 한쪽 안에 삼각점이 박혀 있는 모습 또한 신기하다.

 

 

배낭 내려 놓고 제일 먼저 묘지 좌측의 동쪽으로 가 지나온 마루금을 살펴 본다.

경주시 서면 도리리 마을이 바로 발 밑에 펼쳐져 있고 그 좁지만 긴 평야를 타고 저 멀리 내려다 보니 그곳에 방금 전 이 산객이 발자취 남기며 걸었던 낙동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우측의 남사봉 지나 한무당재에서 가라 앉았던 마루금이 서서히 고도를 높혀 이곳 관산으로 이어진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도리리 마을 우측으로는 어림산이 우뚝하고 그 좌측 저 멀리 희미하게 2개월전 어렵게 넘었던 도덕산과 삼성산의 끝자락도 가물거린다.

그 힘들고 고통스러었던 시간을 참고 견디며 걸었던 것은 바로 이렇게 탁 트인 조망을 보면서 그 길을 바라 볼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한동안 멋진 조망을 담다 보니 벌써 산우님들은 자리를 펴고 남아 있는 독주와 간식으로 꿈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속에 들어 후미가 올 때까지 쉬어 가기로 한다.

 

 

경주시 서면과 영천시 북안면의 경게를 이루며 서 있는 관산은 사모관대의 관을 닮아 그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이곳 정상을 올라오며 봤던 모습은 정말 관의 형상 그대로였다.

한동안 간식을 먹고 쉬면서 휨를 기다렸다 모두 도착한 후 모두 함께 진행해 본다.

이제 올라 왔으니 올라온 만큼 내려가야 하는 것인 세상사 이치임을 알기에 천천히 진행한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잠시 조시하며 내려오니 등로 앞 저 멀리 이제부터 올라야 할 294.9봉의 양계장이 보이고 그 능선에는 유난히도 송전탑이 많다는 생각이다.

제법 멀게 느껴지는 거리이지만 큰 고도차가 없으니 또 금새 저곳에 도착 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을 내 모두 함께 발걸음을 맞추니 생각보다 진행이 아주 순조롭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와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전진해 본다.

잠시 진행하다 보니 평이한 등로 한가운데에 삼각점이 박혀 있는데 그 삼각형의 모습이 이상하다.

한가운데에 십자가가 ㄱ려져 있고 다지 그 아래에 NO 937번만 적혀 있다.

무슨 연유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하지만 이 또한 중요한 삼각점일 것이니 잘 보관이 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제 고도 300여미터를 두고 오르락 내리락하며 진행된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해 관산 지나 처음 만나는 무명봉을 넘으니 다시 안불 ㄴ려서고 또 산객의 앞을 가로막는 무명봉에 오르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온 무명봉 저 멀리 관산이 뾰족하게 보인다.

관산을 오르면서 봤던 관의 모양은 사라지고 그저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뾰족봉만 남아 있는 형상이다.

 

 

특별한 봉우리도 없고 안부도 없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소나무 군락지와 잡목지역이 번갈아 나타나고 모두 함께 걷다보니 금새 등로 우측에 밀양박씨 가족묘가 있는 곳에 도착을 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넓은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다시 밀양박씨 묘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니 임도같은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난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고도도 높지 않은데 수많은 묘지들이 들어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지세가 좋은 지역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소나무와 잡목이 함께하는 곳을 지나 계속 넓은 임도 같은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밀양박씨와 다른 묘지들이 함께 줄지어 있는 몇기의 묘지 지대를 지난다.

다시 능선으로 접어 드는가 싶던 등로는 김해김씨 묘지를 필두로 몇기의 묘지가 나무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연이어 이어진다.

이제부터는 마차도 지나 다닐 정도의 임도를 따라 계속 전진하니 오랫만에 등로 좌측으로 묘지 넘어 시원한 조망이 펼쳐져 있다.

경주시 서면쪽 산줄기들이 가을빛을 지나 겨울로 향하고 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멋진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진행하니 금새 넓은 임도가 나타나고 임도 좌측으로는 푸른 보리밭이 그리고 등로 우측으로는 거대한 양계장이 나타난다.

제법 시골 냄새가 나는 임도를 타고 양계장을 우측에 두고 진행하니 저 앞으로 294.9봉으로 향하는 선두조가 보인다.

겨울철 조류독감이라도 발생하면 이곳 정맥 산행도 하기 힘들게 생긴 모습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계속 진행하니 비포장 임도가 시ㅔㅁㄴ트 임도로 변하면서 등로 좌측의 보리밭이 드넓은 초원을 연상시킨다.

그렇게 잠시 더 진행하니 양계장이 등로 우측으로 계속 이어지고 잠시 멈춰 뒤돌아 보니 파란 보리밭 넘어 저 멀리 방금 전 지나온 관산이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다.

그 관산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등로에는 이제 완연한 가을을 지나 겨울의 빛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다.

 

 

그렇게 좌측에는 파란 보리밭을 두고 우측에는 계속 이어지는 양계장을 따라 시멘트 도로를 걸어 올라가니 정상부에서 시멘트 임도는 우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고 곧이어 가건물을 지나 정맥 마루금은 이어지고 있다.

허름한 가건물을 지나자마자 강아지 몇마리가 따라오며 울부짖는데 가관이 아니다.

선답자들이 남겼던 후기가 생각나는 곳이기도 하다. 

 

 

묶어 놓은 강아지 두마리 역시 강하게 울부짖지만 묶이지 않은 작은 강아지 두마리는 지겹도록 따라오며 짖고 있다.

시끄러운 강아지들의 울부짖음을 피해 재빨리 시멘트 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임도 우측에는 사료를 저장하는 곳인지 거대한 사일로도 보인다.

이제 다시 내리막 시멘트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저 앞쪽으로 만불사 불상이 보인다.

제법 먼 거리인데도 이토록 선명하게 보이는 것으로 봐 제법 큰 불상이라 생각된다.

 

 

다시 시멘트 임도를 타고 계속 내려가니 임도 좌측으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해야 할 아화리쪽 마을들이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다음 구간 올라야 할 정맥 마루금도 선명히 드러나 있다.

잠시 멈춰 주위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종주대 뒤를 따라 계속 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다시 종주대들과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진행하니 시멘트 임도가 갈리는 삼거리에 도착하고 어짜피 어느 길로 가도 다시 만나는 길이지만 우측 도로를 타고 내려가는 편이 조금은 지름길임을 알기에 웇그 시멘트 임도를 타고 내려가 본다.

다시 우측으로 내려갔던 종주대들을 만나 함께 진행하는 시간이 되였다.

 

 

가운데 조그만 산봉우리를 두고 좌우로 갈라졌던 시멘트 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다시 우측에서 합류하는 시멘트 도로와 만나는 삼거리에 내려서고 그곳에는 이 산객이 지나온 방향으로 영축산 500미터란 이정표가 서 있다.

삼거리 시멘트 도로에서 좌측으로 5미터쯤 진행하면 전봇대 하나가 서 있고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능선으로 올라 완만한 등로를 타고 낙엽을 밟으며 8분여 올라가니 등로 좌측으로 만불산 진신사리탑과 석상이 서 있다.

나뭇가지 한쪽에는 만불산이란 정상 이정표가 붙어 있고 제법 넓은 공터에는 잔디가 깔려 있다.

만불산은 역사적으로도 유서 깊은 산으로 삼국유사 탑상 편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 조에 보면 만불산에 대한 기사가 나오는데 그 자료를 찾아 본다.  
신라 경덕왕은 당 대종이 불교를 숭상한다는 말을 듣고 크게는 사방 한 치, 작게는 8 - 9푼에 불과한 만 분의 부처님을 모신 1장(약 3 미터) 높이의 가산을 만들어 보냈다. 이 만불산은 바위와 동굴로 각 구역을 나누고 각 구역 안에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노는 모습과 온갖 나라의 산천을 조성했다고 한다. 또 누각과 전각 및 종각 등을 조성해 놓았는데 바람이 불면 종이 울리고 1000여 명의 스님상이 모두 엎드려 절하도록 장치했다 고 한다. 만불산을 전해 받은 당 대종은 그 정교함에 놀라 신라의 교묘한 기술은 하늘이 만든 것이지 사람의 기술이 아니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대종은 만불산을 내도량에서 봉안한 뒤 스님들에게 예배토록 했다고 한다. 이처럼 만불산은 신라 불교문화의 우수성과 깊은 신앙심을 상징하는 산이었다. 경덕왕이 당 대종에게 보낸 만불산’에 1만 부처님이 모셔진 것과 같이 영천 만불산에는 20만 분 이상의 부처님이 봉안돼 불 자들의 찬탄과 예배, 신행의 대상이 되고 있다. 


참으로 대단한 절이라 생각되지만 지금은 너무나 인공적인 풍경이라 진정 이 산객이 알고 있는 절과는 차이가 있는 곳이란 생각도 드는 곳이다.

 

만불산에서 잠시 쉰 다음 넓은 공터를 가로 질러 다시 능선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금새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가을을 지나며 죽어가는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조금 더 내려가니 다시 묘지 3기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전진하니 임도와 만나 좌측으로 진행한다.

등로 우측에는 탱자나무가 심어져 있고 그곳을 지나니 다시 등로 좌측은 벌목되어 잡풀들이 자라고 우측으로는 제법 큰 나무들이 자라는 사이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이제 아화고개가 거의 다 온 듯 제법 시끄러운 차량 소음들이 들리기 시작하고 등로에는 말라가는 아카시아 나무 군락지를 지나 사라지는 임도를 타고 진행한다.

등로 우측에는 거대한 건물이 보이고 다시 넓은 임도를 타고 계속 내려가니 다시 등로는 우측 건물 절개지 있는 쪽으로 가다 우측에 건물을 두고 좌측으로 진행된다.

주식회사 대겸의 거대한 파란 건물 지붕이 인상적이고 그 앞에 지어진 작은 건물들의 모습이 또한 인상적이며 그 넘어 저 멀리 만불사에 세워진 아미타의 모습이 또한 절묘하다.

 

 

그곳 건물 위쪽 능선을 타고 계속 진행하니 갑자기 송전탑 하나가 나타나고 다가가 살펴보니 2번 철탑이다.

이곳에서 띠지가 철탑 좌우측 모두에 걸려 있어 조금은 헷깔렸지만 좀 더 많은 띠지가 붙어 있는 우측 등로를 타고 내려갔지만 역시 직선 코스는 철탑에서 좌측에 걸려 있던 그곳이 직선 등로였던 것 같다.

계속 내려가니 드디어 4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2번 도로를 만나 그 도로를 우측 아래에 두고 좌측 능선을 타고 한동안 진행하게 되는데 2번 차도와 가까워지는 곳에 아까 철탑에서 봤던 좌측 띠지를 타고 내려오면 만날 수 있는 등로가 보인다.

2번 지방도로 건너 저 멀리 파란 지붕의 창고건물 옆으로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마루금이 열려 있다.

 

 

드디어 경주와 영천을 이어주는 2번 4차선 지방도로에 내려서서 도로를 타고 경주쪽으로 조금 걸어 가면 도로 좌측으로 지하통로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해 2번 4차선 도로를 건너 좌측으로 구 2차선 지방도로를 타고 진행하면 오늘 산행 날머리인 아화고개 애기지휴게소에 도착을 한다.

아화고개는 이 지역이 물이 부족하여 늘 농사를 짓지 못하였으며 하절기에는 초목이 고사될 정도로 피해가 심해 불을 한번 지르면 꺼지지 않고 계속 타다고 해서 아화고개란 이름이 붙었다는데 살펴보니 주위에 크고 작은 저수지가 유난히 많음을 알 수 있는 풍경이다.

 

 

아화고개란 안내판과 함께한 애기지휴게소 전경이다.

처음에는 이곳에서 식사를 하려고 했지만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읽어 봐도 식사한 팀이 없어 불안하기에 구 2차선 도로에서 좌측 4차선 도로 위로 올라가 주유소를 지난 아화만남휴게소에서 식사를 즐기가로 한다.

 

 

술이 없기에 먼저 내려온 종주대에게 부탁해 주류를 준비하고 식사를 알아보니 다양한 메뉴가 있어 예약없이 쉬어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화장실로 가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니 생각보다 차갑지 않아 깨끗하게 닦고 나니 살 것 같다는 생각이다.

또한 이곳에서 먹은 굴국밥은 환상이였고 고추장 불고기 및 낚지 볶음 역시 생각보다 맛이 일품이였다.

경상도에 있는 산에 오르며 오랫만에 입맛에 맞는 맛난 식사를 즐긴 시간이였지만 그것보다는 이곳 주인장의 친절과 푸짐한 인심이 오랫공안 기억에 남을 산행으로 추억 될 시간이다.

 

많은 종주대들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불참하면서 조금은 한산한 분위기이지만 그래도 하고자 하는 열망이 높은 종주대들의 산행 참여로 멋진 마무리를 하고 다음 구간을 기다려 보는 시간이다.

 

몸 잘 관리하고 이제부터는 추위에 대비한 산행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읽어 부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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