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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산행(완료)/금북정맥(완료)

금북정맥 제2구간 이티재에서 경부고속도로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0.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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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기도 안성시와 충청북도 진천군 그리고 충청남도 천안시의 금북정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0년 06월 19일 (토요일)

산행날씨 : 하루 종일 흐리고 안개낀 날씨에 오후 늦게부터 강한 소나기가 내린 날씨

산행온도 : 영상 12도에서 영상 26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이티재(배티고개, 안성과 진천을 연결하는 313번 2차선 지방도로)-무명선교자의 묘 갈림 삼거리-배티성지 추정묘 갈림 삼거리-석남사 갈림 삼거리-좌성사, 청룡사 갈림 삼거리-무인산불감시탑-서운산 정상 갈림 삼거리-서운산(348봉)-서운산 정상 갈림 삼거리-청룡사 갈림 삼거리-엽돈재 5.3 Km 이정표-청룡사 갈림 삼거리-불당가는 갈림 삼거리, 440봉-395.4봉-360봉-엽돈재(천안 진천간 34번 2차선 지방도로)-만뢰지맥 분기점-깊은골(심곡)과 금강 발원지 샘 갈림 삼거리-부소산(495.1봉)-부수문이고개(부소령, 57번 2차선 지방도로)-입장 양대리 갈림 삼거리-위례산 돌탑(475봉)-위례산과 위례산성(524봉)-기로리 갈림 삼거리-군단이 갈림 삼거리-유성농장 갈림 삼거리-성황당 돌탑-송전탑 1-송전탑 2-우물목고개-포장도로-성거산 보라매농장 갈림 삼거리-천주교 대전교구 성거산 성지 갈림길-제1줄무덤-식수 수돗물-제2줄무덤 성지입구-성거산성-성거산 정상(579봉, KT 통신대 및 군부대)-좌측으로 철조망 따라 우회-성거산 정상석(557봉)-성거산 전망바위-성거산-만일고개 (만일사 갈림길 및 돌탑)-국민은행 연수원 갈림 삼거리-삼뱅이(매일골과 만일사) 이정표-상명대학교 갈림 삼거리-좌불상(각원사)과 약수터 이정표-걸마고개-좌불상 갈림길-성불사와 좌불상 갈림 이정표-성불사 이정표-탁배기 장사-태조산 수련장 갈림 삼거리-도라지고개-교보생명 계성원(연수원) 철조망 통과-태조산(422봉)-교보생명 계성원 갈림 삼거리-지경부 교육원 삼거리 이정표-전망 좋은곳 이정표-등산로와 경계로 이정표-흑성산과 유랑동 갈림 이정표-아홉싸리고개-제2포스트와 교육원 이정표-송전탑 1-송전탑 2-유량동과 지산리 이정표-유량리고개(4차선 지방도로 위 동물이동통로)-315봉(구성약수 갈림 삼거리)-10번 송전탑-가스안전교육원 갈림 삼거리-장고개-전망바위-배넘어고개(작은돌탑)-310봉 돌탑-취암산(경암산, 321봉)-안전 철봉 및 로프지대-동우아파트-21번 4차선 지방도로-목천 경부고속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32.00 Km

산행시간 : 꾸준한 속도로 쉬지 않고 걸어 11시간 20여분 (06시 30분부터 17시 50분까지)

 

 

환상의 등로를 타고 원없이 걸었던 하루를 뒤돌아 보며

 

 

개인적으로 1대간 9정맥의 가장 마지막 산행으로 오르려 했던 고향의 산줄기인 금북정맥을 홀로 오르며 정해진 구간으로 나누지 않고 시간과 거리에 구애 받음 없이 그저 무심으로 걷다 힘들면 힘든곳에서 내려와 마무리 할 생각으로 진행하려 한다.

 

 

금북정맥이란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면서 속리산 천황봉(1508봉)에서 한남금북정맥이 분기하여 칠장산(492봉)으로 내려와 이곳에서 다시 금북정맥과 한남정맥이 갈라진다. 금북정맥은 칠장산에서 한남정맥과 헤어진후 남쪽으로 뻗어 내려가면서 칠현산(516봉), 서운산(547봉), 성거산(579봉), 광덕산(699봉)을 거쳐 백월산(565봉)에서 산줄기는 다시 북서진하면서 덕숭산(495봉), 가야산(678봉), 일락산(521봉) 등을 솟구치게 한후 은봉산(283봉)에 이르러 다시 서쪽으로 성왕산(252봉), 백화산(284봉) 등을 거쳐 태안반도로 이어져서 반도의 끝인 안흥진에서 그 맥을 다하고 서해바다로 모습을 감추는 장장 약 280 Km의 산줄기를 말한다.

 

금북정맥 산행 계획 (칠장산에서 시작해 안흥진까지)

금북정맥도 한남정맥과 마찬가지로 칠장산에서 안흥진으로 내려가면서 종주하여 그 맥이 서해바다로 빠지는 모습을 제일 마지막에 보는 것을 원칙으로 진행 할 예정이다.

금북정맥 산행은 애마를 이용해 당일 산행으로 진행하며 새벽에 출발해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으로 진행할 계획이지만 경우에 따라 대중교통을 이용해 여행 가듯 다녀올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고향 뒷산을 오를때에는 고향에 들려도 보고 산행중 필요에 의해 주위 유적지나 관광지에 들려 쉬었다 진행하는 경우도 있으리라 생각하며 급하지 않게 올라 볼 생각이다.

이 금북정맥 산행 또한 나침판과 지도 한장 달랑 들고 오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알바를 할 경우도 있겠지만 가능하면 선답자들의 자료를 잘 챙겨 홀로 독도를 하면서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계획한다.  

 

 

주중에 금남정맥을 시원스레 마무리하고 지난주부터 새로 시작한 금북정맥에 올라 제대로된 땀한번 흘려본 하루이다.

장마시즌이 시작되어서인지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소나기 때문에 오늘도 조금은 늦게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일기예보와는 달리 비는 내리지 않고 약간의 안개만이 시야를 가리고 있다.

재빠르게 산행 준비 후 애마를 이용해 제2구간 산행 들머리인 충북 진천의 중앙CC 앞, 안성과 진천을 이어주는 313번 2차선 지방도로인 이티재에 도착하는 시간 아침 6시 10여분, 재빠르게 산행 준비 후 작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 멀고도 긴 장도에 오르는 시간이 정확히 6시 30여분이다.

조금 더 일찍 서둘렀다면 저녁에 비도 피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편안하게 돌아 왔을 것을 값비싼 산행을 한 하루이기도 하다.

 

 

어젯밤 내린 비와 안개가 잡풀에 모여있다가 산객이 지나는 등산화에 촉촉히 젖어드는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진행하니 금새 나무 목책과 안전로프가 등로를 안내하고 완만한 오르막이 한동안 계속된다.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힐쯤 무명선교자의묘 이정표에 도착하고 계속되는 그림같은 등로를 타고 올라가니 넓은 공터에 배티성지추정묘 이정표도 나타난다.

그러고 보니 이곳 마루금 주변이 한국 천주교에서는 아주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배티성지와 성거산 성지에 가까이 있음을 알게되어 자료를 찾아본다.

무교인 산객인지라 그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천주교 신앙인이라면 한번쯤 들려봐야 할 성지란 생각이다.

 

배티성지(백과사전에서 발췌 후 정리) 

배티는 신유박해(1801년)로부터 병인박해(1866년)까지 이어지는 천주교 박해시대 때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골짜기로서 1830년을 전후로 교우촌(비밀신앙공동체)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1866년 즈음에는 교우촌이 15곳에 이르렀던 곳이다.
또 조선교구 최초의 신학교가 있던 마을이고 한국 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이자 두 번째 사제였던 최양업(토마스 1821~1861) 신부의 사목 중심지로 교리서인 (천주가사)가 탄생되었던 곳이었다.
또 배티와 그 주변으로는 27여 기에 이르는 순교자들의 무덤이 산재해 있다.
1976년 9월 성지로 개발된 배티성지에는 1996년 6월 완공된 성당(최양업 신부 탄생 175주년 기념성당)과 성당에서 야외제대까지 연결된 청동으로 만든 십자가의 길, 야외제대 및 성모상, 최초의 조선교구 신학교와 최양업 신부의 성당 및 사제관으로 사용되던 초가집을 재현한 건물, 양업영성관 및 수련관, 무명순교자 6인 묘역 및 14인 묘역, 최양업 신부 동상 등이 조성되어 있다.

 

 

다시 계속되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계속 전진하니 파아란 초록의 세계에 산객을 위한 갈색의 좁은 등로가 신세계를 열어주듯 그렇게 인도하고 그 아름다운 마루금에 힘든줄도 모르게 발길을 옮기고 있다.

다시 나타나는 목책과 안전로프를 따라 진행하니 어느새 좌측으로 조망이 열리며 서운산에서 흘러 내린, 앞으로 올라야 할 마루금이 시원스레 펼쳐져 있는 등로에 도착해 사진 몇장 담아본다. 

금북정맥 마루금 좌측으로는 440봉에서 양달말로 이어진 산줄기 위에 안개가 피어올라 멋진 아침을 열어주고 있다.

 

 

우측으로 석남사 갈림 이정표를 지나고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계속 오르니 그림같은 마루금이 이어지고 무념으로 잠시 그 아름다움을 감상해 본다.

홀로 오르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아름답고 환상의 등로가 열려져 있다.

다시 조금 더 오르니 좌성사와 청룡사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 삼각점이 있으며 무인산불감시탑이 서 있다.

 

 

무인산불감시탑에서 조금 더 오르니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좌측 좌성사와 청룡사 방향으로 금북정맥 등로가 열려있지만  우측으로 정맥 마루금과 조금 떨어져 있는 서운산 정상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들려본다.

서운산 정상을 돌아 본 후 다시 이곳으로 돌아 와 이제 내려오는 우측 방향인 좌성사와 청룡사 이정표를 보고 진행하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서운산 정상에 도착하니 큰 빗돌 하나가 서 있어 당연히 서운산 정상석이라 생각했는데 앞면에는 산불조심 산지정화란 엉뚱한 글씨와 뒷면에는 해발 547.4M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곳에서 셀카 사진 한장 남기고 홀로 허기를 달래며 준비한 김밥 한줄로 아침을 먹고 있으니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제법 많은 등산객들이 올라오고 있다.

나무판 위에 서운산 정상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옆에 서운산성 안내판이 서 있는데 삼국시대에 축조되어 임진왜란때 이용되였다는 내용과 성의크기 및 축조 양식이 들어 있다.

 

 

서운산 정상에서 아침까지 해결하고 등산객들과 인사 나눈 후 다시 갈림 삼거리로 내려와 이제는 좌성사와 청룡사 방향 이정표를 보고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오니 금북정맥 갈림길 위에 안성8광님이 다시 정상 등로를 안내하고 있다.

직진하면 정자로 가는 확실한 길이고 금북정맥은 좌측으로 90도로 크게 꺽어 청룡사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는 어려운 곳이지만 이렇게 크게 아크릴판에 자세히 안내하고 있으니 등로 찾기엔 큰 어려움이 없다.

안성8광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이제 금북정맥을 홀로 전세낸듯 아무도 뒤따르지 않는 조용한 등로를 타고 혼자만의 세계를 만들어 본다.

바람결에 후두둑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옷깃을 스치며 정신을 깨우고 이름모를 산새들이 아침을 알리는 합창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홀로 등로를 즐기며 작은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하니 금새 청룡사 갈림 이정표를 지나 나무판에 바우덕이 사당 뒤 청룡사와 불당리 하산 갈림 이정표 앞에 선다.

 

 

다시 440봉 지나 우측으로 불당리 하산 이정표 하나를 지나니 이제부터 특별한 이정표도 없이 부드럽고 아름다운 환상의 마루금에 산객 홀로 온 세상을 가진듯 활보를 해보는 시간이다.

간간히 비취되어 있는 나무 벤취가 자연 친화적인 모습으로 티나지 않게 산객의 쉼터를 마련하고 그렇게 나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속세를 떠나본다.

 

 

봉우리인지 분간하기 힘든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을 수없이 넘으며 한동안 아름다운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갑자기 앞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봉우리에 도착하고 잠시 배낭 내려 지도를 살펴보니 395.4봉이다.

앞으로는 누군가 벌목을 해 놔 시원한 조망이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 청룡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저수지 뒷쪽으로는 입장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마을들도 희미하지만 보인다.

 

 

395.4봉을 내려와 다시 나즈막한 봉우리들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엽돈재를 향한 가벼운 발걸음을 옮겨본다.

생각보다 멋지고 환상적인 등로에 홀로 걸어가는 것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운 시간이다.

이렇게 좋은 등로를 가진 금북정맥이였다는 사실을 진작 알았다면 산우님들과 이곳을 오르고 한남정맥은 홀로 오르는 방법을 선택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오니 포크레인 소음이 들리고 곧이어 엽돈재에 도착해 내려가기 전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진천쪽 갈월리를 담아 본다.

 

 

엽돈재, 천안과 진천을 이어주는 34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충청남도 천안쪽 풍경을 담아 본다.

충절의 고향이라는 빗돌이 인상적이고 4차선으로 늘어난 차선이 또한 이색적이다.

이 도로 우측에서는 포크레인 한대가 돌을 깨며 무척 시끄러운 소음을 발샐시키고 있다.

무슨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인지 ...

 

 

천안쪽 도로로 내려와 진천방향인 좌측으로 돌려 엽돈재를 넘으니 생거진천이란 커다란 빗돌이 맞이해 준다.

이 빗돌 바로 앞에서 정맥 등로는 우측으로 꺽어 들어가 짧은 잡풀지대를 지나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낙엽진 계절엔 띠지도 보이고 등로도 분간하기 쉬울 것 같은데 지금 계절처럼 잡목과 잡풀이 많아지만 정상적인 등로를 찾는데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포크레인 소음과 잠시 얼굴 내민 따가운 햇살을 피해 능선으로 숨어 들어간다.

 

 

다시 절개지 중간까지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좌측 능선으로 진입해 정맥 등로를 이어간다.

등로 우측으로 459.1봉에서 뻗어나온 산줄기들이 천안 방향으로 길게 꼬리를 내리며 아름다운 산하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렇게 잠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제법 큰 산줄기 하나가 흐르고 그 앞에 만뢰지맥이란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 역시 언젠가는 올라야 할 지맥 중 하나이기에 한동안 아쉬운 마음 전해본다.

 

만뢰지맥이란

금북 만뢰지맥이란 백두대간상에 있는 속리산 천황봉에서 북서쪽으로 한남금북정맥이 분기하여 칠장산으로 내려오다가 칠장산에서 다시 금북정맥과 한남정맥이 나누어진다.

금북정맥은 칠장산에서 한남정맥과 헤어진 후 남쪽으로 뻗어 내려가면서 칠현산과 서운산을 거쳐 엽돈재로 고도를 낮추웠다 다시 솟구쳐 남쪽으로 약 200 미터 정도 올라가면 무명봉에 닿는데 여기서 금북정맥은 남서쪽으로 이어지고 또 하나의 산줄기는 남동쪽으로 분기하는데 이 산줄기(도상거리 약 46km)를 금북 만뢰지맥이라 한다.

만뢰지맥에 있는 산들은 만뢰산(612봉)을 거쳐 장교현으로 내려가다가 다시 솟구쳐 덕유산(412봉), 환희산(403봉), 목령산(취령산, 228봉)을 일구고 목령산(취령산)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상봉산(196봉)과 국사봉(171봉), 응봉산(175봉)을 거친 후 미호천과 병천천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 산줄기를 만뢰지맥이라 부른다.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을 기약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 다시 정맥 마루금을 타고 진행해 간다.

아름답고 멋진 등로를 타고 한동안 진행하니 무명봉에 도착하고 허기를 느끼기에 잠시 배낭 내려놓고 준비한 간식을 먹으며 주위를 살펴보니 이곳이 깊은골(심곡) 하산 갈림길로서 그곳으로 400미터 내려가면 금강발원지 샘이 있다는 이정표가 있다.

금강 발원지는 진안의 금남호남정맥 산행을 하면서 만났던 뜸봉샘이라 알고 있는데 이곳 역시 그 물줄기가 금강으로 흘러 든다니 기회되면 꼭 한번 별도로 들려보고 싶은 곳이 되였다.

이곳에서 또한 백제초도 부소산이 정맥 마루금으로 300미터 진행해 있다는 이정표 또한 기쁨을 주지만 지도상에도 없는 산이기에 어리둥절하다.

 

 

다시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한동안 진행하니 정상이 벌목된 봉우리 하나가 나타나고 올라가 보니 459.1봉 정상이다.

우측으로 가야 할 능선이 잠시 보이더니 그 줄기는 천안쪽으로 흘러 내리고 정맥 등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잠시 지도를 보고 독도를 하면서 헷깔려 머뭇거린다.

지도처럼 남에서 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북에서 남쪽으로 진행하다 보니 지도를 보면서 독도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궁금해 하고 헷깔렸던 것은 이곳 정상 역시 부소산이라는 정상석이 세워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불과 1주일도 안돼 금남정맥 마지막 구간을 다녀오며 백제의 옛도성인 부여에서 부소산을 올랐었고 그곳이 유일한 국내의 부소산이라 생각했는데 백제초도 부소산이 이곳에 또 다시 존재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자료에도 이곳 부소산에 대한 자료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부소산 정상에서 활짝 핀 엉컹퀴와 나리꽃을 담고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오니 등로 좌측에 잘 다듬어진 묘 한기를 지나고 다시 그 잘 다듬어진 묘지와는 비교되는 오랫동안 가꿔지지 않아 다 허물어져 가는 묘지 한기를 다시 지난다.

그리고 곧바로 부수문이고개인 부소령에 도착한다.

천안 성환과 진천의 백곡면을 이어주는 57번 1차선 포장도로로서 이곳에서부터는 천안 성거산 위례성 문화 유적 발굴 조사 안내판이 위례산 정상까지 계속 이어진다.

 

 

부수문이고개부터 위례산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넓은 임도를 타고 진행되며 처음에는 문화재 발굴을 위해 임도를 개설했나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오르다 보니 등로 좌측으로 새로 만들어진 호화묘지 3기가 있고 그곳에서 임도도 끝나면서 다시 정상 등로가 이어진다.

묘지를 만들면서 난 넓은 도로가 임도처럼 남겨진 등로로 생각된다.

호화묘지 저 멀리 군단이 마을을 지나 천안쪽 산줄기가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병풍처럼 둘러쳐진 모습이 들어 온다.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한동안 계속 진행하니 등로 중간중간에 벌목된 나무로 간이 쉼터들을 많이도 만들어 놨다.

아마도 위례산성 발굴을 하면서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로 생각된다.

간혹 벌목된 등로도 만나며 그렇게 진행하니 갑자기 눈 앞에 직진하면 입장으로 갈리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정맥 등로는 좌측으로 90도 꺽어 마지막 된비알로 연결된다.

그 된비알을 타고 계속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돌탑 두개가 서 있는 475봉이다.

 

 

두개의 돌탑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을 타고 오르다 마지막에 잠시 된비알 오르니 금새 위례산 정상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문화재 발굴을 위해 작업중인 현장을 만날 수 있다.

직산위례성과 검은산 또는 신산이라고도 불리는 위례산은 해발 523미터로 차령산군의 연봉을 이루며 북쪽이 급경사를 이루어 천연 성벽 역할을 한다.

산 정상의 위례성터에는 둘레 550미터와 높이 약 3미터의 흙으로 쌓은 산성을 비롯하여 식수로 사용한 듯한 우물 용샘과 문받침돌로 여겨지는 큰돌 반쪽이 남아 있어 문화재 발굴이 한창이다.

이 산성과 마주하여 안성의 서운산성이 남향으로 축조되어 있어 주목되는데 일부 학자가 서운산성은 고구려 장수왕의 남쪽 끝 기지였고 위례성은 백제 문주왕의 북쪽 끝 방어선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 곳으로 문화재 발굴이 끝나면 많은 여행객들이 몰릴 것으로 추정된다.

 

 

위례산과 위례산성을 돌아보고 몇장의 사진을 찍은 후 진행하다 좌측 끝자락의 전망대에 들려 살펴보지만 박무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다.

그래도 발 아래 펼쳐진 장생이 마을과 운용리를 타고 넘어가는 산줄기를 어렵게 담아 본다.

따가운 햇살이 없어 좋기는 하지만 그렇기에 이런 박무로 인해 조망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는 산행이다.

 

 

위례산 정상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기로리가는 이정표를 마지막으로 담은 후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230미터 내려와 금단이 하산 갈림길에 도착해 이정표를 담아본다.

다시 예쁜 등로를 타고 완만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좌측으로 유성농장가는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에서 정맥 등로는 우측으로 90도 꺽어 내려가야 한다. 

 

 

계속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오니 좌측 저 뒤로 방금전 올랐던 위례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더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넓은 임도와 만난다.

아마도 송전탑 설치를 위해 개설되였던 길을 그대로 방치해 임도처럼 생겨난 등로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동안 그 넓은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니 큰 나무에 꼬깔옷을 입고 그 앞에 돌무덤이 있는 성황당이라 생각되는 지점도 통과한다.

그곳에서 등로는 다시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 이어지고 있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첫번째 송전탑이 나타나고 잠시 조망이 되는 장소에 올라 뒤돌아 바라보니 방금전 올랐던 463봉과 위례산 정상이 박무속에도 뚜렷히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생각보다 많이 그리고 멀리 내려왔음을 알려주는 시간이다.

이제 조금씩 욕심도 부려보는 시간으로 이런 속도라면 경부고속도로까지 진행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다.

 

 

다시 민둥의 무명봉을 넘자 두번째 송전탑이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하자 우측으로 375봉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의 뾰족봉들이 잠시 그 위용을 드러내며 멋들어지게 다가온다.

제각각 이름이 있을법 한데 자료를 찾아봐도 알 수 없으니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그렇게 진행하여 내려오니 금새 우물목고개에 도착하여 1차선 포장도로를 만난다.

 

 

우물목고개에서 성거산 정상까지는 KT와 군부대로 오르는 1차선 포장도로가 개설되어 그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잠시 포장도로 우측 능선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375봉을 올라 보지만 특별한 것이 없이 다시 포장도로로 내려온다.

도로를 타고 진행하며 지도를 보니 정상 정맥 등로는 이 포장도로 우측의 나즈막한 능선을 타다가 도로로 내려오기를 반복하고 그 지도처럼 몇군데 우측 능선으로 올라보지만 잡풀들과 잡목들로 인해 진행하지 못하고 도로로 다시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그러고 보니 그냥 우물목고개부터 성거산 정상부까지는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한다.

이곳에서 산보님의 띠지들 몇개를 주워 나뭇가지에 걸며 잠시 생각해 본다.

오늘 산행하면서 몇개의 산보님 띠지를 만났기에 혹시 바로 앞서 진행하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지만 역시 엽돈재에서 시작했다면 만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다.

이제 이곳부터는 다시 천주교와 인연 깊은 성거산 천주교 교우촌터 및 줄무덤 그리고 박해받던 시절의 어려움을 간직한 곳이다.

 

 

한동안 포장도로를 타고 지루하게 진행하니 도로 옆에 천주교대전교구 성거산성지 입간판이 계속 보이고 도로 좌측으로 작은 주차장 지나 진입부가 열려있다.

선답자의 후기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다는 글을 읽었기에 망설이고 있는데 천주교 교우촌을 관리 하시는 분이 있어 물어 보니 100미터 내려가면 수돗꼭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곳으로 내려가는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다 길 좌측으로 있는 제1줄무덤을 잠시 둘러본다.

천주교가 박해를 받던 시절 이곳으로 비밀리에 숨어 들어 그 종교를 지키고자 목숨까지 받쳤던 분들의 묘지라 하니 천주교를 믿는다면 한번쯤 들려봐야 할 성지였던 것이다.

 

 

물 2리터에 음료수 500미리리터를 준비했기에 충분하리라 생각했는데 습도가 높아 생각보다 꽤 많은 물을 마셨나 보다.

벌써 물 1리터 이상 마셨기에 이곳에 들려 마음 놓고 물을 마신 후 빈 물통을 모두 채워 부자된 마음으로 다시 포장도로로 올라온다.

올라오며 제2줄무덤도 들려볼까 했지만 천주교신자도 아닌 무교이기에 큰 감흥도 없고 의미도 없어 포기하고 제1줄무덤 본 것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한북화학지맥 산행 시 응봉 오름길과 유사한 성거산 오름 포장도로가 끝날쯤 도로 좌측에 성거산성 안내판이 서 있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263호로 지정된 성거산성은 성거산(579봉) 정상에 있으며 지금은 군사기지가 들어서 있어 들어가 볼 수는 없는 곳이 되였다.

성곽은 많이 파괴되어 옛 모습을 찾아 보기가 어려워 아쉬움이 남으며 삼국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으로 생각된다.

 

 

이제 포장도로가 끝이나고 군부대 정문에 서서 좌측으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지만 박무로 인해 보이지 않기에 초병에게 등로를 확인해 본다.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젊은 초병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군부대를 우측에 두고 철조망을 타고 군부대 내에 있는 성거산 정상을 대신해 무명봉에 정상석을 세워둔 실질적인 성거산 정상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곳에서 7부 바지를 입고 온 댓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다.

 

 

한동안 군부대 철조망을 타고 그 철조망이 우측으로 꺽이기 얼마전 등로는 철조망과 헤어져 좌측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숲속으로 들어가 된비알 오르니 그곳에 성거산 정상석이 서 있다.

성거산 정상석을 보니 이곳 천안의 독특한 정상석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다른 지역과 달리 큰 정상석도 없고 일반 정상석도 꼭 위 사진처럼 45도 기울어 땅에 묻혀있는 똑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알수 없으나 정상석 모습만 봐도 천안임을 알려주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성거산 정상에서 허기를 느껴 삼각점과 바위가 있는 곳을 넘어 한적한 곳에서 준비한 점심을 먹고 조금 더 내려가 태조산과 그곳으로 가는 마루금이 시원하게 조망되는 전망바위에 오르지만 오늘은 박무로 인해 태조산은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어렵게 그 태조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만 살짝 사진에 담는 것으로 만족하는 시간이다.

주민 두분이 권하는 술잔을 마다하고 안전 산행을 빌어 드린 후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태조산으로 향한다.

 

 

한동안 정신없이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오니 안내판과 이정표 그리고 돌탑이 서 있는 만일고개에 도착한다.

잠시 이정표를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 송전리 그리고 우측으로 만일사 갈림 사거리 안내판이다.

다만 누가 저토록 정성을 들여 돌탑을 쌓았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이제 다시 완만한 등로를 타고 오르막을 올라본다.

 

 

짧은 구간 오르니 다시 등로는 평이한 등로로 바뀌고 이곳이 천안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산책로임을 알려주듯 넓은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부터 꽤 많은 등산객들도 만나 인사 나누며 외롭지 않은 마루금이 되어 간다.

굴곡진 등로도 지나고 고속도로같은 길도 지나며 좌불상과 만일사 그리고 우측으로 국민은행연수원 이정표를 지나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성거산 정상과 그 좌측으로 군부대 인공탑도 보인다.

 

 

아름다운 등로이기에 걷기에는 최고인듯한 마루금을 타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한다.

정신없이 걷다보니 계성군의묘와 숙의하씨의묘 이정표가 있는 걸마고개에 도착한다.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계성군은 성종의 2남이며 연산군의 아우로서 어머니가 숙의하씨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특하였으나 26세로 조졸하여 월산대군의 손자 계림군 이류를 계자로 삼아 후손들을 남겼다는 자료를 찾는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372봉에 도착하고 좌측으로 송전리 가는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한다.

수많은 등산객들이 밟고 지났기에 반질거리는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멋진 잣나무 군락지도 지난다.

우측으로 상명대학교 하산 갈림 이정표도 만나고 좌측으로 유왕골 마을도 담으며 좌불상(각원사)와 약수터 갈림 이정표를 지나니 유왕골고개에 도착해 사각정에서 쉬고 있는 등산객들과 인사 나누고 사랑의 쉼터 안내석을 담은 후 계속 진행한다.

  

 

나즈막한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꿈결같은 등로가 열려있다.

제멋대로 자란듯 보이는 소나무들이 빼곡히 자라고 그 사이로 나 있는 등로가 참으로 인상적이며 멋을 풍기고 있다.

장거리 산행에서 오는 지루함과 고통을 잊게해주는 청량제 같은 등로를 타고 다시 나타나는 사각정과 좌불상 0.6 Km 남았다는 이정표도 지난다.

 

 

그렇게 359.6봉 지나 계속 진행하니 우측으로 성불사 가는 갈림길이 있고 사각정자도 서 있는 성불사 갈림 쉼터에 안착한다.

벤취와 운동시설이 구비된 이곳에 많은 등산객들이 쉬고 있고 한쪽에선 막걸리를 팔고 있다.

그곳에서 단숨에 두대접의 막걸리를 마시고 몇분의 등산객들과 담소를 나누며 20여분 쉬어간다.

그저 만나면 모두 산친구가 되는 시간, 아무 셈이나 이해관계가 없기에 더욱 살갑게 이야기를 나누는지도 모를 일이다.

 

 

약간의 배가 불러오고 취기가 돌며 기분이 좋아지는 시간이다.

등로 우측으로 태조산 수령원 1.1 Km 및 태조산 0.6 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난다.

그리고 다시 숲길을 따라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니 철조망이 가로막고 등로만 열려있다.

 

 

이 철조망을 지나 우측에 안내판이 있어 살펴보니 이곳은 교보생명 계성원(연수원)이니 등산객들은 등산로를 이용하라는 안내판이다.

이곳에서 등로는 다시 넓은 임도로 바뀌고 좌측으로 90도 꺽어 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평행하게 올라간다.

잠시 땀방울 흘리니 그곳에 태조산 정상석이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박혀있어 천안의 산임을 알려주고 있다.

 

 

셀카를 이용해 어렵게 사진 한장 남긴다.

태조봉이라고도 불리는 태조산은 421미터의 높이로서 천안의 진산으로 대접 받으며 산 이름의 유래는 고려 태조가 이곳에서 군사를 양병했다는 설에서 유래하였다.

미호천의 원류인 유량천과 산방천의 분수계를 이룬다.

인근에 경주 불국사 이래 대사찰이라는 각원사가 있고 그밖에 많은 사찰들이 있으며 가족단위 여행객이나 등산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산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 넓은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올라온만큼 내려가 본다.

내려가는 등로에 까투리 한마리가 먹이를 찾다가 산객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는다.

혹시나 하고 사진기를 드니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빠른 걸음걸이로 숲속으로 사라진다.

건강해진 자연을 느끼며 교보생명 계성원 갈림길을 통과하니 지경부 교육원 삼거리 이정표에서 등로는 다시 철조망을 넘어 멀어지게 되어 있다.

 

 

철조망과 헤어져 짧은 오르막 치고 오르니 전망좋은 장소에 도착해 허기를 느끼며 잠시 쉬어 간다.

천안의 유량동 마을이 가깝게 내려다 보이지만 아직도 박무로 인해 깨끗한 조망은 쉽지 않다.

사진 몇장 남기고 앉아 남아 있는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 본다.

 

 

이제 다시 아름다운 등로를 타고 평이한 정맥 산행을 이어가니 뜻모를 등산로와 경계로 이정표를 지나고 흑성산과 유량동 갈림 이정표와 오늘 마지막으로 오를지도 모를 취암산 이정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홉싸리고개와 교육원 갈림 이정표를 지나니 두개의 송전탑을 차례로 지난다.

다시 전진하니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터널 위 동물이동통로인 유랑리 고개에 도착해 유량리와 지산리 하산 갈림 이정표를 만나 잠시 고민해 본다.

이곳에서 마칠 것인지 아니면 처음 계획대로 경부고속도로까지 갈 것인지, 하지만 고민도 잠시 오후 4시도 안된 시간을 보고는 곧바로 더 진행하기로 한다.

 

 

이제 우측에서 들려오는 경부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소리와 좌측 지산리 공장에서 들려오는 기계 소음이 정적을 깨고 산객의 산친구를 자청하며 계속 뒤따르고 있다.

그러다 잠시 송전탑 지나 벌목된 장소로 내려가 살펴보니 거대 공장지대가 등로 바로 옆에 붙어 있고 그 건물들 뒤로 오늘 산객이 걸어 온 정맥 마루금도 보인다.

 

 

이제부터 등로 좌측 저 멀리 흑성산이 외롭게 홀로가는 산객의 안내를 자청하고 있다.

천안 목천에 있는 차령산군의 구릉성 산으로 산의 본래 이름은 검은성이였던 해발 519미터의 산이다.

북쪽으로는 태조봉이 남쪽으로 백운산과 취암산 등이 그리고 서쪽은 아홉싸리고개와 유랑리고개 및 장고개 등이 있으며 이들 고개와 산 서쪽 기슭의 승척골은 매우 아늑하여 전쟁 때에는 피난처가 되었으며 승천사터가 남아 있다.
흑성산성은 천안시 안의 고대산성 중 기록에 남아 있는 유일한 산성으로서 옛 기록에 의하면 이 산성은 목천현의 서쪽 11리, 험하고 가파른 흑성산 위에 있는 석축산성으로 북동쪽으로 산맥이 계속 이어져 성거산성 및 의례산성과 이어지고 남쪽으로 남화리토성과 세성산성으로 연계된다.

 

 

다시 정상 정맥 등로로 복귀해 진행하니 가스안전교육원 이정표가 보이고 우측으로 꺽어 내려가니 장고개 넘어 멋진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 전망바위도 도착한다.

전망바위에 올라 앞으로 올라야 할 310봉 돌탑봉과 취암산 능선을 바라보니 어느 고산 못지 않은 아름다운 마루금을 보여주고 있다.

잠시 쉬며 물한모금 마시고 다시 갈길 바쁜 정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한동안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계속 흑성산과 그 아래 마을들이 뒤따라 오고 그러는 사이 작은 돌탑을 만나 처음에는 310봉 돌탑이라 생각했는데 이곳 돌탑은 230봉쯤이라 생각되는 곳이다.

사진 한장 남기고 배넘이고개 넘어 다시 가파라지는 된비알 타고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취암산 전위봉인 돌탑을 향한다.

  

 

어렵고 힘들게 도착한 310봉 돌탑에 안착해 배낭 벗어 던지고 주위 조망을 해 본다.

이제 마지막 취암산만 넘으면 오늘 산행도 마무리가 될 것이기에 많은 걱정이 사라지는 시간이다.

생각보다 무릎과 몸 컨디션도 좋은 느낌이다.

이곳에 올라 처음으로 오늘 이곳까지 온것을 행복해 하는 시간을 가져 본다.

 

 

돌탑에서 뒤돌아 보니 희미한 박무속에서도 지나온 태조산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다만 우측으로 흑성산과 태조산 넘어 저 멀리 보여야 할 성거산의 잔영을 찾을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도 성거산에서 바라볼 때보다는 생각보다 잘 보이는 조망에 만족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등로 우측으로는 목천의 경부고속도로와 삼룡동쪽 마을들이 보이고 아파트 단지들도 눈에 들어 온다.

이제 마을들이 보이고 종착지인 경부고속도로가 보이니 많은 시간은 걸리지 않을 것이지만 체력적으로 바닥난 상태에서 급경사 내리막 길이 걱정이 된다.

이제 마지막 힘을 내 물 한모금 마신 후 취암산으로 향한다.

 

 

특별한 것이 없는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니 금새 취암산 정상 이정표에 도착한다.

정상석도 없는 정상에는 조망조차 없어 답답하여 사진 한장 남기고 그냥 출발한다.

하지만 낮고 볼품없는 산치고는 그 유래나 전설은 거창하다.

금강의 지류인 병천천이 시작되며 곡교천과 분수계를 이루는 취암산은 높이가 321미터의 산으로 두 개의 바위봉우리가 마치 수리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으로 경암 또는 취엄산이라고도 불리며 두 봉우리가 이 빠진 것처럼 생겼다 하여 이빠진산이라고도 부른다.

산 이름과 관련된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는 이곳이 바다여서 사기를 가득 실은 배가 넘어가다가 산꼭대기 바위에 부딪쳐 배에 실었던 사기그릇이 깨지는 바람에 지금도 사기조각이 뒹굴고 있다 하여 배너머산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취암산에서 내려오니 삼각점이 있고 그곳을 통과하니 나무벤취와 운동시설이 갖춰진 넓은 공터도 지난다.

앞으로 내려오니 일망무제 시원한 조망이 그려지지만 박무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어 있다.

그저 가슴으로만 그 희미한 조망을 담아두고 바로 앞에 솟아 있는 암봉인 182봉을 담아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래도 지나기 전 등로 우측으로 안전봉과 로프 사이로 드넓게 펼쳐진 경부고속도로와 아파트 그리고 마을들을 담아본다.

박무속에서도 마지막 모습이라 그런지 오랫동안 기억될 사진으로 남는다.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감이 이제 정말 오늘 산행도 종착지가 다가옴을 느끼는 시간이다.

 

 

다시 조심하며 암봉으로 이루워진 182 봉을 우회해 빠르게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오니 저 멀리 동우아파트가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동우아파트 바로 뒤쪽으로 내려오는 시간, 갑자기 폭우성 소나기가 솟아지고 생쥐 신세가 되어 마지막 등로를 내려간다.

하기사 오늘 점심때부터 가끔 소나기가 솟아진다고 하였는데 이제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내리기 시작하니 그것만으로도 그저 고마운 마음이리라.

 

 

더위에 비옷까지 입고 진행하니 더욱 많은 땀방울이 흐르고 그 흐르는 땀방울은 빗물과 섞여 어느것이 빗물인지 또 어느것이 땀방울인지 분간조차 힘들다.

동우아파트를 좌측에 두고 한동안 아파트 뒷동산을 산보하듯 걸어가니 어느순간 등로는 아파트와 멀어지며 우측 숲으로 들어간다.

잠시 뒤 등로는 숲에서 빠져 나오며 21번 4차선 지방도로 앞으로 연결된 철계단을 타고 내려와 장도를 마무리 한다.

 

 

아직도 많이 내리는 빗줄기로 인해 21번 지방도로로 내려와 우측으로 돌아 경부고속도로 지하차도를 건너 오늘 산행을 마무리하려 했으나 그쪽으로 가지 못하고 좌측 동우 아파트 입구쪽으로 가 차량을 알아본다.

마침 택시 하나가 손님을 태우고 지나다 말을 걸어오고 대중버스를 이용하려던 처음 계획을 바꿔 비에 젖은 생쥐 모양으로 손님의 양해를 구해 택시로 이티재까지 이동한다.

 

 

이로서 오늘 하루 정말 먼 거리를 걸어 무사히 내려와 또 한구간 마무리를 해 본다.

지난 첫구간 함께한 금비령 아우가 몸 컨디션이 좋았다면 아마도 엽돈재까지 진행하였고 오늘 하루 종일 산보님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때로는 함께하는 산행으로 걸었을 것을...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같은 정맥길을 걸으니 언젠가는 만나 탁배기 한사발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시간으로 무사 완주를 자축해 본다.

 

아마도 다음 구간은 이번 토요일과 일요일에 오랫만에 초등 친구들을 만나 부산으로 내려가 마음 편안한 시간을 보내야 되기에 호젓하게 평일날 대중교통을 이용해 내려와 탁배기 하나 사들고 오를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가져 본다.

다음 구간도 멋진 종주를 꿈꾸며 홀로 화이팅을 외쳐 본다.

화이팅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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