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및 산행 예정일 : 2008년 11월 29일과 30일, 1박 2일
제천 10경
1. 의림지
삼한시대에 축조된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저수지로 본래 "임지"라 하였습니다.
고려 성종 11년(992)에 군현의 명칭을 개정할 때 제천을 '의원현' 또는 '의천'이라 하였는데, 그 후에 제천의 옛 이름인 '의'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축조된 명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구전에는 신라 진흥황 (540~575)때 악성 우륵이 용두산에 서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든 것이 이 못의 시초라고도 하며, 그 후 700년이 지나 현감 "박의림"이 4개 군민을 동원하여 연못 주의를 3층으로 석축을 해서 물이 새는 것을 막는 한편 배수구 밑바닥 수문은 수백관이 넘을 정도의 큰 돌을 네모로 다듬어 여러 층으로 쌓아 올려 수문기둥을 삼았고 돌바닥에는 " 박의림"현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합니다. 호반둘레 약 2km, 호수면 158,677m2, 저수량 6,611,891m3, 수심 8~13m의 대수원지로 몽리면적은 289.4정보이며, 보수 당시 수구를 옹기로 축조한 흔적이 발견되어 삼한시대 농업기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는 수리시설보다는 유원지로서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는데 경승지로 호수 주변에 순조 7년(1807)에 새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 그리고 수백년을 자란 소나무와 수양버들, 30m의 자연폭포 등이 어우러져 풍치를 더하고 있습니다. 특히, 겨울철 및 해빙기에 잡히는 공어(빙어)는 담백한 맛의 회 어로 각광받고 있는 명물이며, 순채는 임금의 수라상에 올릴 만큼 유명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분이며 가야금의 대가인 "우륵"선생이 노후에 여생을 보낸 곳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가야금을 타던 바위 우륵대(일명 제비바위, 연암, 용바위)와 마시던 "우륵정"이 남아 있습니다.
- 의림지 전설
제천시에 북쪽으로 약 10리를 가면 관광지로 유명한 의림지가 나타난다.
옛날 의림지가 생기기 전에 이곳에 부자 집이 있었다. 하루는 이집에 스님이 찾아와 시주할 것을 청하였다.
그런데 이집 주인은 탐욕스러울 뿐 아니라 심술도 또한 사나왔다. 한동안 아무 대꾸도 없으면 스님이 가버리려니 했는데 탁발스님은 가지 않고 목탁만 두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심술이 난 집주인은 거름 두엄에 가서 거름을 한 삽 퍼 다가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은 그것을 바랑에 받아 넣고선 머리를 한 번 조아리더니 발길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집안에서 보고 있던 며느리는 얼른 쌀독에 가서 쌀을 한바가지 퍼 다가 스님을 뒤쫓아 가 스님에게 주며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었다. 스님은 그것을 받더니 며느리에게 이르는 것이었다.
조금 있으면 천둥과 비바람이 칠 터이니 그러면 빨리 산속으로 피하되 절대로 뒤돌아보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 소리를 듣고 며느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집안에서는 집주인이 하인을 불러 놓고 쌀독의 쌀이 독이 났으니 누구의 소행인지 대라고 호통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자기가 스님이 하도 딱해 퍼다 주었다고 아뢰었다. 시아버지는 크게 노하며 며느리를 뒷 광에 가두더니 문에 자물쇠를 채워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해 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번개와 천둥이 울리고 세찬 바람과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광속에서 안절부절 못하는데 더 요란하게 번개가 번쩍하고 천둥이 치더니 잠겼던 광문이 덜컹 열리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탁발승의 말이 생각나 얼른 광속을 빠져나와 동북쪽 산골짜기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얼마쯤 달려가던 며느리는 집에 남아 있는 아이들이 생각이 나서 뒤돌아보지 말라던 스님의 말을 잊고 집이 있는 쪽을 뒤돌아보았다.
그 순간 천지가 무너지는 듯 한 굉음이 울리더니 며느리의 몸은 돌로 변해갔으며 집이 있던 지리는 땅속으로 꺼져서 온통 물이 괴고 말았다. 물이 고인 집터가 의림지이며 며느리가 변해서 돌이 된 바위는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제비바위(연자암)근처 어디엔가 서 있다는 것 이었다
- 의림지 가는 길
① 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 제천I.C -> 제천시내 -> 의림지
② 영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 감곡I.C -> 산척 -> 백운 -> 제천 -> 의림지
③ 청주,조치원방향(38호선국도이용) -> 충주 -> 다릿재 -> 박달재 -> 제천시내 -> 의림지
2. 박달재
박달은 금봉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을 정도로 놀랐고, 금봉은 금봉대로 선비 박달의 의젓함에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그날 밤 삼경이 지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해 밖에 나가 서성이던 박달도 역시 잠을 못 이뤄 밖에 나온 금봉을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선녀와 같아 박달은 스스로의 눈을 몇 번이고 의심하였다. 박달과 금봉은 금 새 가까워 졌고 이튿날이면 곧 떠나려던 박달은 더 묵게 되었다. 밤마다 두 사람은 만났다. 그러면서 박달이 과거에 급제한 후에 함께 살기를 굳게 약속했다. 그리고 박달은 고갯길을 오르며 한양으로 떠났다. 금봉은 박달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사립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서울에 온 박달은 자나 깨나 금봉의 생각으로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금봉을 만나고 싶은 시만을 지었다.
난간을 스치는 봄바람은
이슬을 맺는데
구름을 보면 고운 옷이 보이고
꽃을 보면 아름다운 얼굴이 된다.
만약 천등산 꼭대기서 보지 못하면
달 밝은 밤 평동으로 만나러 간다.
과장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였던 박달은 결국 낙방을 하고 말았다. 박달은 금봉을 볼 낯이 없어 평동에 가지 않았다. 금봉은 박달을 떠나보내고는 날마다 성황당에서 박달의 장원급제를 빌었으나, 박달은 돌아오지 않았다 .
금봉은 그래도 서낭에게 빌기를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박달이 떠나간 고갯길을 박달을 부르며 오르내리던 금봉은 상사병으로 한을 품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금봉의 장례를 치르고 난 사흘 후에 낙방거자 박달은 풀이 죽어 평동에 돌아와 고개 아래서 금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땅을 치며 목 놓아 울었다. 울다 얼핏 고갯길을 쳐다본 박달은 금봉이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박달은 벌떡 일어나 금봉의 뒤를 쫓아 금봉의 이름을 부르며 뛰었다. 고갯마루에서 겨우 금봉을 잡을 수 있었다. 와락 금봉을 끌어안았으나 박달은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렸다. 이런 일이 있는 뒤부터 사람들은 박달이 죽은 고개를 박달재라 부르게 되었다.
- 박달재 가는 길
① 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 제천I.C -> 충주방향 -> 봉양 -> 박달재
② 영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 감곡I.C -> 산척 -> 백운 -> 박달재
③ 청주, 조치원방향(38호선국도이용) -> 충주 -> 다릿재 -> 박달재
3. 월악산
- 중봉 하봉 두 형제 거느린 영봉 ....
월악산은 네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송계 쪽에서 보면 영봉, 중봉, 하봉으로 이어지는 암봉의 행진이 장엄하다. 맨 오른쪽 영봉은 특히 백여 미터는 족히 될 법한 깎아지른 벼랑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중봉과 하봉, 두 형제를 아우른다. 특히 4월이면 한수면 민박마을에서 바라보는 영봉은 활짝 핀 벚꽃 가로수 위로 떠 있는 한 척의 거대한 범선으로 다가온다.
덕주골로 해서 덕주사와 마애불 거쳐 오른 능선 상에서 만나는 영봉은 또 다른 모습이다.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 봉우리는 사람들을 단번에 압도하는 힘을 뿜어낸다. 헬기장 지나서 능선 안부에 이를 때쯤이면 누구나 영봉을 우러러볼 수밖에 없다. 하늘을 향해 끝없이 수직으로 솟은 듯 한 봉우리, 영봉을 제대로 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수시로 쏟아지는 낙석은 가까이 갔던 이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드니 그만큼 위협적인 봉우리도 드물다.
해질녘 신륵사 길을 벗어나 덕산 쪽에서 느긋하게 만나는 영봉은 전혀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거대한 바위기둥으로 오롯이 솟은 검은 실루엣. 혹자는 발기한 젖꼭지 같다고도 하지만 영봉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표현은 못된다. 그곳에서 영봉은 둥글둥글한 수십 개의 능선을 거느리고 마치 하늘을 향해 마련된 신성한 제단처럼 솟아 있기 때문이다.
- 보는 위치 따라 얼굴도 여럿 ....
월악교 지나 36번 국도로 가다보면 등나무 쉼터가 나온다. 여기서 보는 월악산은 이제 막 먼 바다를 향해 출항하려는 듯 한 거함의 선수(船首)와도 같다. 봄날 저녁 호수는 잔잔하고 수면부터 정직하게 솟아오른 산은 더더욱 높아 보인다. 백두대간 대미산에서부터 서쪽으로 달려온 큰 줄기가 마골 치에서 갈라져 북서쪽 만수 봉으로 그 도도한 정기를 이어갔으니 동달 천과 광천이 합류하여 빚어내는 둥우리막대머리 강가에서 월악은 정녕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그렇게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월악산이라 해도 최소한 제천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가장 정다운 모습으로 다가오곤 한다. 청풍 지나 봉화재 넘을 무렵쯤이면 산 너울 위로 둥두렷이 솟은 자태가 바로 그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이라 곰곰이 생각하니 김포나 일산, 효자리 쪽에서 보는 삼각산과도 흡사하다. 누워 있는 미인의 옆모습처럼 콧날 오뚝하게 솟은 영봉이며, 입술과 턱 선으로 선명한 중봉, 하봉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정다운 마음을 갖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정작 덕산이나 한수 땅에 들어서면 그러한 자취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만다.
- 동서남북 기점 등산로 넷 ....
월악산은 동서남북 네 방향에 산행들머리가 있다. 동쪽으로는 덕산면 월악리 덕산매표소에서 신륵사 거쳐 오르는 길, 서쪽으로는 한수면 소재지 부근 동창교 탐방지원센터에서 오르는 길, 남쪽은 덕주골 덕주사와 마애불 거쳐 오르는 길이다. 이 세 곳은 산불예방 기간 중에도 개방되는 등산로다.
만수휴게소에서 만수 봉에 올랐다가 암릉을 거쳐 월악산 960봉까지 이어지는 길은 대단히 험하나 흡사 설악산 공룡능선의 축소판 같아서 등반의 묘미가 있다. 그러나 장장 7시간 이상 걸리는 힘든 코스라 로프 등 적절한 안전장비를 갖추고 암릉 등반 경험자가 꼭 함께 가야 한다.
월악산 등산로 가운데 가장 쉬운 길은 동창교탐방지원센터에서 능선 안부까지(2시간 40분) 올랐다가 영봉에 오른 후 신륵사로 하산하는 코스다. 동창교∼신륵사 코스는 변화는 별로 없지만 계단이 대부분인데다 급경사를 이룬 덕주사 쪽보다는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어서 좋다.
영봉 오르는 길은 백여 미터 이상 90도로 치솟은 암벽을 한 바퀴 돌아서 오르는 급경사 계단의 연속이다. 영봉 일대의 암벽은 낙석이 잦은 편이므로 주의를 요한다. 안전을 위해 높은 철망을 튼튼하게 둘러놓았지만 암벽 아래를 지나는 길은 가급적 빨리 통과하는 게 좋다.
-월악산 가는 길
① [승용차] 중앙고속도로 남제천I.C -> 82국지도(청풍경유) -> 36번국도(충주방면) ->
한수면 송계리(월악산국립공원) 또는 덕산면 월악리
② 영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 감곡 I.C -> 제천 -> 82국지도(청풍경유) -> 36번국도(충주방면) ->
한수면 송계리(월악산국립공원) 또는 덕산면 월악리
③ [버스]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제천에 하차, 청풍행 시내버스로 덕산면 월악리, 한수면 송계에 하차.
4. 청풍문화재단지와 호반
정부의 4대강유역 종합개발계획으로 충주다목적댐 공사가 1978년 6월부터 시작하여 1985년 10월준공되기까지 수몰지역내의 산재되어 있는 문화유산을 1983년부터 3년여에 걸쳐 1만 6천평의 부지위에 원형대로 이전 복원하여 1985년 12월 23일 개장하였습니다.
청소년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지금은 8만 5천평의 규모로 확대 개발되어 우리시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관광지로 발돋음하고 있습니다. 보물 2점(한벽루, 석조여래입상), 지방유형문화재 9점(팔영루, 금남루, 금병헌, 응청각, 청풍향교, 고가4동), 지석묘, 문인석, 비석등 42점과 생활유물 2천여점이 보관되어 명실상부한 옛 남한강 상류의 화려했던 문화의 산실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 문화재는 직접 생활하거나 사용하던 것으로써 타 지역과 차별화되고 있으며 계속하여 놀거리, 볼거리, 먹거리장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작은 민속촌 청풍문화재단지를 정점으로 해서 주위로 봉황이 호수위를 나르는 형상의 비봉산, 어머니 품속과 같이 편안하고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금수산을 뒷 배경으로 한 청풍호반은 가히 절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2000. 4. 15에 개장된 수경분수(162m)에서 쏘아올리는 시원한 물줄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현재 1개타워에 3종의 시설을 설치하는 번지점프장(번지점프 50m, 자이언트스윙 36m, 번지라이트 36m)및 수상레져시설 등이 완공되면 주위의 국민연금청풍리조트 호텔및 E.S콘도미니엄의 종합휴양시설을 이용한 체류형 관광지로 각광받게 되어 그야말로 청풍호반은 보고, 즐기며, 체험하는 종합적인 국제적 관광명소로 급부상할 것입니다.
-청풍문화단지 가는 길
① 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 남제천I.C -> 82번국지도(금성경유) -> 청풍문화재단지
② 영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 감곡I.C -> 제천 -> 82번국지도(금성경유) -> 청풍문화재단지
③ 청주, 조치원방향(38호선국도이용) -> 충주 -> 제천시내 -> 82번국지도(금성경유) -> 청풍문화재단지
5. 금수산
금수산(錦繡山)1,015.8m의 원래 이름은 백운산이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 단양 군수를 지낸 퇴계(退溪) 이황 (李滉·1501∼1570)이 단풍 든 이 산의 모습을 보고 ‘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며 감탄, 산 이름을 금수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금수산 남쪽 마을 이름이 백운동인 것도 옛 산 이름의 흔적이다.
금수산은 북쪽으로는 제천시내까지, 남쪽으로는 단양군 적성면 말목산(720m)까지 뻗어 내린 제법 긴 산줄기의 주봉이다. 주능선 상에는 작성산(848m), 동산(896.2), 말목산 등 700∼800미터 높이의 산들이 여럿이고, 중간마다 서쪽으로 뻗은 지릉에도 중봉(885.6m), 신선봉(845.3m), 저승봉(596m), 망덕봉(926m) 등 크고 수려한 산들을 거느리고 있다.
남쪽 어댕이골과 정남골이 만나는 계곡에는 금수산의 절경 용담폭포와 선녀탕이 숨어 있다. 용담폭포와 선녀탕은 ‘옛날 주나라 왕이 세수를 하다가 대야에 비친 폭포를 보았다. 주왕은 신하들에게 동쪽으로 가서 이 폭포를 찾아오라 했는데 바로 그 폭포가 선녀탕과 용담폭포였다고 한다. 상탕, 중탕, 하탕으로 불리는 선녀탕에는 금수산을 지키는 청룡이 살았다. 주나라 신하가 금수산이 명산임을 알고 산꼭대기에 묘를 쓰자 청룡이 크게 노하여 바위를 박차고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제천시와 단양군의 경계에 있는 금수산은 대부분 단양군 적성면 상리 상학마을을 들머리로 삼아 오른다. 그러나 이는 오직 교통의 편리함 때문이다. 정상까지 오르는 가장 짧은 등산로지만 단조로운 능선길이 전부다.
그러나 제천 수산면 상천리 백운동에서 오르는 금수산은 그 시작부터 예사로운 풍경이 아니다. 청풍호반을 끼고 들어서는 상천리 백운동 마을은 봄철 산수유로 유명하다. 늙은 산수유 나무가 빼곡한 백운동 마을에서 올려다보는 금수산은 북쪽의 망덕봉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져 능선 끝 지점에 머리를 치켜 든 사자처럼 뾰족하게 치솟았다. 망덕봉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암릉 여기저기에는 푸른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단풍이 들면 그 이름처럼 과연 비단에 수놓은 듯한 경치가 펼쳐진다. 또한, 적성면 상학마을로 오르는 길과 달리 산자락에 시원한 계곡과 폭포를 지니고 있어 여름철 산행지로도 제격이다.
상천리 방면 : 상천리∼용담폭포∼정상∼상학마을
총 산행시간 3시간 20분
구간별 산행시간
상천리 백운동 - (10분) - 보문정사 - (5분) - 삼거리 - (5분) - 용담폭포 - (1시간 40분) - 금수산 - (10분) -
살바위고개 -(1시간10분) - 상학마을삼거리
상천휴게소 옆으로 난 백운동 마을길로 접어들어 밭 샛길을 따라가면 최근 세워진 보문정사다. 보문정사 뒤로 난 밭두렁을 따라가면 용담폭포 안내 석이 서있다. 등산로는 이곳에서 두 갈래로 갈리는데 왼쪽 길은 용담폭포를 지나 망덕 봉을 거쳐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계곡을 따라 정상에 오르는 길이다. 망덕봉구간은 입산통제구간으로 오른쪽 길로만 산행이 가능하다.
용담폭포는 안내 석이 있는 삼거리에서 왼쪽 길을 따라 200미터 거리에 있다. 넓은 암반 위로 30미터의 물줄기가 시원스레 쏟아지는 용담폭포는 금수산 산행의 백미로 손꼽힌다. 이곳에서 식수를 준비하여 폭포 왼쪽 뒤로 이어진 암릉으로 오른다. 제법 가파른 암벽을 오르는 구간도 있다. 급경사 구간에는 로프가 매여 있다. 10분 정도 급경사 바위지대를 오르면 용담폭포를 굽어 볼 수 있는 전망대 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 올라서면 용담폭포와 폭포 위 선녀탕이 보인다.
등산로는 계속 가파른 암릉으로 이어진다. 암릉 곳곳에는 청풍호반과 월악산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바위가 있다. 이 바위 주변으로는 노송들이 자리 잡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망덕 봉에서 흘러내린 능선의 가파른 암벽과 그 사이에 뿌리를 박은 소나무들이 절경을 이루고 그 너머로 청풍호의 모습이 아련하게 펼쳐진다. 이 암릉에는 쪽두리바위와 독수리바위가 있다. 남쪽으로는 월악산 영봉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보인다.
금수산 정상은 비좁은 암봉으로 되어 있어 쇠난 간으로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정상 암봉에는 단양 심지산악회가 세운 정상 표지석이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사방으로 시원스럽다. 북쪽으로는 금수산의 지봉인 신선봉과 동산이 능강계곡과 함께 시야에 들어온다. 지나온 망덕봉 뒤로는 청풍호반이 펼쳐지고, 남쪽으로 월악산과 대미산, 백두대간이 지나는 황정산이 아련하다. 그 아래로 청풍호반에 둘러싸인 청풍문화재 단지와 호반을 가르는 유람선이 보인다. 동쪽으로는 단양의 시멘트 광산과 소백산 연화봉 천문대의 지붕까지 보인다.
철계단이 있는 암봉을 넘어가면 상학마을에서 오르는 등산로와 만나는 살바위고개다. 이 고개를 지나면 정상까지는 날카로운 암봉으로 이어지며, 철계단과 쇠난 간이 설치되어 있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철계단을 따라 조금 내려서면 평평한 너럭바위가 숲 사이에 있어 쉬어 가거나 점심 식사 자리로 안성맞춤이다.
남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10분 내려가면 동쪽 조망이 좋은 무덤이 있다. 등산로는 살바위고개에 오른 후 상천리 백운동으로 돌아가거나 적성면 상리 상학마을로 하산해도 된다.
-금수산 가는 길
① 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 남제천I.C -> 82번국지도(금성경유) -> 청풍대교직전좌회전 -> 금수산
② 영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 감곡I.C -> 제천 -> 82번국지도(금성경유) -> 청풍대교직전좌회전 ->
금수산
③ 청주,조치원방향(38호선국도이용) -> 충주 -> 제천시내 -> 82번국지도(금성경유) -> 청풍대교직전좌회전 ->
금수산
6. 용하구곡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서 신륵사 쪽으로는 월악산 정산을 오르는 길이 있고, 억수리 쪽으로는 두 갈래 골짜기로 갈라져서 용하수 골짜기와 수문동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데 곳곳마다 16km의 계곡에는 원시림과 천하의 절경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용하구곡의 제1경인 수문동 폭포의 장관부터 시작하여 병풍폭포, 수곡용담이 자연의 신비를 연출하고 8km물길의 비경인 관폭대, 청벽대, 선미대, 수룡담, 활래담, 강서대 등과 신륵사 위편의 수렴선대가 비경의 극치를 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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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35m, 길이 100m 가량되는 폭포가 천연동굴 위로 쏟아져내리며, 겨울철에는 물이 얼어 얼음산을 이루고 있어 장관을 연출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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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굽이가 마치 용이 꼬리를 튼 모양을 이루고 있고, 용이 솟았다하여 용초라고도 한다. 가물 때 개를 잡아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개의 생피를 바위에 바르면 비가 왔다고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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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관찰사로 있던 오도일이 암벽에 "관폭대"라 새겨놓았고, 주위에 큰바위가 있는데 치성을 올리던 아들 바위라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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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큰 암석이 층계를 이루고 맑은 물이 소를 이룬 절경인데 구한말 당시 박의당 선생이 제자와 같이 글을 짓던곳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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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곳이며, 산이 깊어 주변 숲속에는 송이 버섯과 독사가 많기로 유명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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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자가 많이 찾아와 몸을 청결히 하던곳이며 이곳에서 산능선으로 약간 올라가면 부처바위가 있는데 산모가 치성을 드리면 득남을 하였다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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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시와 경계가 되는 깊은산 계곡으로 산삼이 많아 예로부터 심마니의 왕래가 잦은 곳이며 원조라는 희귀조가 서식하였다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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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선비들이 글을 읽고 쓰던 유서 깊은곳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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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에서 500m위 넓은 바위위로 흘러내리는 폭포로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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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하구곡 가는 길
① 중앙고속도로 -> 남제천I.C -> 82번국지도(금성,청풍경유) -> 36번국도(충주방면) -> 덕산면 도전리
(월악산국립공원)
② 영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 감곡I.C -> 제천 -> 82번국지도(금성,청풍경유) -> 36번국도(충주방면)
-> 덕산면 도전리(월악산국립공원)
③ 동서울,강남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제천에 하차. 청풍행 시내버스로 덕산면 도전리 하차.
7. 송계계곡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를 거쳐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까지 이어진 8㎞의 송계계곡은 수안보와 단양의 중간인 제천에 위치해 있으며 깊은 골짜기와 맑고 시원한 물, 월악산 등의 크고 작은 봉우리와 사찰, 절터 등 유물이 산재한 여름 피서지의 보고입니다. 송계계곡은 8개의 계곡으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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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의 최고봉(1094m)으로 기암괴석의 묘가 극치에 달했고 소박하면서도 장엄한 남성적이고 실로 걸작의 예술품이라 할 수 있으며, 영봉, 중봉, 하봉의 삼봉 거암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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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계곡 첫 입구에 소재 한 곳으로 맑은 계곡물과 넓은 암반, 깊은 소가 있어 어디에 못지 않은 경승지 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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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m의 3단폭포, 자연휴식년제로 입산이 금지되어 있고 신라시대에 창건했다는 월광사가 있었는데 임진왜란시 소멸되어 터만 남았고 이곳의 돌 거북과 비석은 경복궁으로 옮겨서 보존되고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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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부터 월악신사를 설치하고 제천하던 곳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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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쌍의 학이 월악산을 오가며 살았다는 곳으로 마애불로 오르는 산행길에 등산객이 쉬어가는 유일한 안식처 이기도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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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산성 남문과 한쪽맥이 이어져 있는곳으로 기암줄바위와 고무서리계곡을 굽이도는 맑은물과 어울린 절벽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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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승천하였다고 하며 수심 5m의 깊은 웅덩이 가까이에 사자빈신사지석탑이 소재하고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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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평의 화강암 반석위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곳으로 옛날 하늘나라 공주가 하강하여 목욕을 했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
- 송계계곡 가는 길
① [승용차] 중앙고속도로 남제천I.C -> 82번국지도(금성,청풍경유) -> 36번국도(충주방면) -> 한수면 송계리
(월악산국립공원)
② 영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 감곡I.C -> 제천 -> 82번국지도(금성,청풍경유) -> 36번국도(충주방면)
-> 한수면 송계리(월악산국립공원)
③ [버스]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제천에 하차, 청풍행 시내버스로 한수면 송계하차.
8. 옥순봉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옥순봉(玉筍峯)은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 있다. 제천 10경 중 8경에 속하는 옥순봉은 지리적인 이유로 구담봉과 함께 단양 8경에 속하기도 한다.
옥순봉은 조선 초 청풍군(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해 있었다. 단양 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 선생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단양 태생의 기녀 두향이 아름다운 옥순봉의 절경을 보고 단양군에 속하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그러나 청풍군수가 이를 허락지 않았다. 그러자 이황 선생이 단애를 이룬 석벽이 마치 대나무 순이 솟아 오른 것과 같다하여 옥순봉(玉筍峰)이라 이름 짓고, 석벽에 <단구동문>이라 새겨 단양의 관문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 외에도 조선시대 문신 탁영 김일손은 <여지승람>에서, 청화자 이중환은 <산수록>에서 옥순봉의 아름다움을 극찬하였다. 또한 구한말 의병장 유인석과 함께 왜군 소탕에 앞장섰던 정운호는 당시 제천 8경을 노래하며 이 곳 옥순봉을 제7경으로 꼽았다.
단원 김홍도는 정조의 초상화를 잘 그린 공로로 충청도 연풍의 현감에 임명되었다. 이 때, 1796년 <옥순봉도(玉筍峯圖)>를 남겼다. 이 그림은 김홍도의 대표작인 <병진년화첩(丙辰年畵帖)> 중의 한 폭으로, 현재 보물 제78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처럼 옥순봉의 산세는 청풍호와 어우러져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해발 283미터의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함마저 느낀다. 확 트인 정상부는 너른 안부와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어 쉬어가기 좋다. 또한 노송이 운치를 더해주니 그 옛날 선계가 부럽지 않을 곳이 바로 이 곳이라 하겠다. 산행과 더불어 유람선을 타고 옥순봉과 구담봉의 멋들어진 석벽을 조망하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옥순봉은 높이가 낮은데다 등산로도 정비가 잘 되어 있어 쉽게 오를 수 있으니 1시간 산행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구담봉을 연결해 산행할 경우에는 약 4시간은 잡아야 한다. 구담봉으로 가려면 옥순봉 정상에서 되내려와 왼쪽으로 난 길로 가야 한다. 정상부까지는 깎아지른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옥순봉-구담봉 산행 중에는 식수를 구할 수 없으므로 산행 시작 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계란재 방면 : 계란재∼정상
총 산행시간 45분
구간별 산행시간
국립공원 탐방지원센터 - (7분) - 두 번째 이정표 - (11분) - 해발 305미터 지점 - (5분) -
해발 367미터 지점 - (3분) - 해발 333미터 지점 - (17분) - 정상
36번 도로를 타고 장회리 계란 재에 닿으면 왼쪽으로 탐방지원센터 매표소가 있다. 이곳이 옥순봉 산행들머리다.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산길 초입에는 등산 안내도가 세워져 있어 쉽게 알 수 있다. 계란 재에서 옥순봉까지는 총 2.3킬로미터 구간으로 이웃한 구담봉을 연결하여 산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구담봉을 둘러오는 코스는 산행거리가 총 5.8킬로미터다. 구담봉과 연결한 옥순봉은 특히나 겨울 산행지로 유명하다.
산불방지를 위해 봄에는 3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가을에는 11월 15일부터 12월 15일까지 통제하고 있다.
탐방지원센터에서 100여 미터 위에는 간이화장실이 있으며 길이 오른쪽으로 휘어 들어간다. ‘옥순봉 2.3km, 구담봉 2.0km' 이정표가 있으며 차 한대 지나갈 너비의 길이 나 있다. 화장실 옆으로 난 길에는 <등산로 아님>이라 적힌 안내판이 걸려 있다. 이곳은 예전에 폐광지였다고 한다. 이어 콘크리트 포장길이 이어진다. 100여 미터 오르면 평평한 돌길이 나온다. 대체로 완만하던 길은 곧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들머리에서 9분 거리에 ‘탐방지원센터 0.5km, 옥순봉 1.8km, 구담봉 1.5km'라 적힌 두 번째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2분을 더 가면 오른쪽에 옥수수 밭이 나온다. 이내 오르막길로 이어지며 표지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외길로 난 길을 따라 5분을 가면 세 번째 이정표 ‘탐방지원센터 1.0km, 구담봉 1.0km, 옥순봉 1.3km'가 나온다. 오른쪽으로는 폐가가 일부 부서져 있다. 국립공원 내 건물들을 모두 철거하기 위해서라지만 완전 철거되지 않은 상태라 등산하는 이들의 미간을 찌푸리게 한다.
곧이어 나무계단이 나온다. 4분을 가면 해발 305미터 지점에 닿는다. ‘등산로 아님, 옥순봉 1.2km, 구담봉 0.9km' 이정표를 따라 옥순봉 방향으로 향한다. 이때부터 얼핏 나무들 사이로 청풍 호와 옥순대교가 보이기 시작한다. 2분 뒤에 나타난 두 번째 나무계단을 3분 오르면 해발 367미터 지점(‘옥순봉0.9km, 구담봉 0.6km, 계란재 1.4km'- 네 번째 이정표)에 닿는다. 너른 터를 이루고 있는 이곳은 마치 쉬고 가라는 듯, 나무가 뉘어져 있어 앉아 쉬어가기 좋다.
넓게 펼쳐진 청풍호는 물론 북쪽으로 둥지봉과 그 뒤로 가은산, 금수산을 조망할 수 있다. 오른쪽으로 구담봉(330m)이 보인다. 바위들로만 이루어진 이 산은 기암절벽이 마치 거북이를 닮아 구담봉이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내리막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옥순봉 방향으로 향한다. 3분 뒤에 나오는 다섯 번째 이정표(매표소 1.6km, 옥순봉 0.7km)는 해발 333미터에 세워져 있다. 완만한 내리막길을 따라 7분을 가면 주변을 다 조망할 수 있는 너른 안부가 나온다.
2001년 10월에 개통한 옥순대교 아래를 지나는 유람선들의 여유로운 광경 또한 옥순봉 산행에 재미를 더해준다. 계속된 내리막길을 따라가면 암릉으로 이루어진 안부와‘매표소 2.1km, 옥순봉 0.2km' 이정표가 나온다. 사방으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암릉길을 따라 왼쪽으로 향한다. 7분을 더 가면 너른 옥순봉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청풍호는 삼면에서 흘러들어와 하나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쪽으로 말목 산이, 북쪽으로는 망덕 봉을 조망할 수 있다. 왼쪽에 있는 표지기를 따라 서쪽으로 더 들어가면 옥순대교를 더 가까이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
하산은 크게 두 코스로 할 수 있다. 구담봉을 들렀다가 내려가거나 다시 올라온 길을 따라 되내려가면 된다. 어느 코스든 산행날머리는 들머리와 같다.
- 옥순봉 가는 길
① 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 남제천I.C -> 82번국지도(금성경유) -> 청풍나루(유람선관광)
② 영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 감곡I.C -> 제천 -> 82번국지도(금성경유) -> 청풍나루(유람선관광)
③ 청주, 조치원방향(36번국도이용) -> 충주 -> 3번국도이용(18km지점 좌회전) -> 36번국도이용 -> 수산 ->
청풍나루(유람선관광)
9. 탁사정
조선 선조 19년(1568) 제주 수사로 있던 임응룡이 고향에 돌아올 때 해송 여덟 그루를 가져와 심고 이곳을 팔송이라 명명하였고, 그 뒤 정자를 짓고 팔송정이라 하였습니다.
허물어진 팔송정을 후손 윤근이 다시 세웠고 원규상이 탁사정이라 하였으며, 팔송은 모두 죽고 지금은 한 그루도 남아있지 않으나 1999년도 10월에 팔송마을 및 제방 둑에 20그루의 해송을 마을에서 심어 앞으로 해송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제천 10경의 "탁사정"은 정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자 주위의 절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한말 정운호(유인석 의병장과 함께 적의토벌 지휘에 맹활약)가 제천의 절경 8곳을 노래한 곳 중 제8경 "대암"이 이곳입니다.
- 탁사정 가는 길
① 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 제천I.C(충주방면) -> 5번국도 -> 봉양읍 구학리(탁사정,배론성지)
② 영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 감곡I.C -> 백운 -> 봉양 -> 5번국도 -> 봉양읍 구학리(탁사정,배론성지)
③ 청주, 조치원방향(38호선국도이용) -> 충주 -> 다릿재 -> 박달재터널 -> 봉양읍소재지(좌회전) -> 5번국도 -> 봉양읍
구학리(탁사정,배론성지)
10. 배론성지
근대에 이르러 1958년 원주교구에 속하여 원주교구장이 개발 착수하여 진입로를 비롯한 성지일원을 말끔히 정리하고 단장하였다.
* 배론 이란? - 배론 이란 지명은 골짜기가 배 밑 바닥 같다 고하여 한자 새김으로 주론(舟論) 또는 음대로 배론(排論)이라고도 합니다.
* 백서 - 가로 62cm, 세로 38cm되는 흰 명주 비단에 한줄에 110자씩 122행 13,384자로 작성되었으며 원본은 로마교황청 문서보관소에 보관중입니다.
-배론성지 가는 길
① 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 제천I.C(충주방면) -> 5번국도 -> 봉양읍 구학리(탁사정,배론성지)
② 영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 감곡I.C -> 백운 -> 봉양 -> 5번국도 -> 봉양읍 구학리(탁사정,배론성지)
③ 청주, 조치원방향(38호선국도이용) -> 충주 -> 다릿재 -> 박달재터널 -> 봉양읍소재지(좌회전) -> 5번국도 -> 봉양읍 구학리(탁사정,배론성지)
제천의 산들
제천의 계곡들
1. 노목계곡
옥전리 마을에서부터 서쪽으로 길게 패어진 골짜기로 원주시 신림면과 경계에 서있는 구학산에서 발원하는 시원한 계류의 계곡으로 양편으로 수림이 빼곡히 차 있는 계곡에는 널따란 평석의 바위와 작은 폭포가 여름철이면 인근의 피서객들을 유혹하는 시원한 여름 피서지이다.
- 노목계곡 가는 길 : 제천→원주방면(5번국도)→봉양→탁사정→옥전리에서 좌회전→노목계곡
2. 관폭대
억수리산 계곡, 큰 산이 지켜주는 아늑한 골짜기엔 맑디맑은 물이 고여 깊은 정적에 싸여 흐르고 하얗게 닦여진 바위가 들마루처럼 깔려있다.
조선시대 충주관찰사로 있던 오도일이 암벽에 "관폭대"라 새겨놓았고, 주위에 큰바위가 있는데 치성을 올리던 아들 바위하였는데 그 오랜 풍상에도 선명히 나타나 보인다
-관폭대 가는 길 :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I.C-금성방향-82번청풍경유-36번충주방면-덕산면 억수리
3. 능강계곡
계곡 양쪽에 그림같은 병풍을 이룬 곳이 있는가 하면 꿈속에 노닐던 도화원 같은 곳이 있고, 물이 고여 학을 이루고 폭포 쏟아지는 곳에서는 흰 구름이 내려앉은 듯 계곡을 감추었다가 절경을 살며시 드러내는 신비감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 능강계곡 가는길 : 경부신갈IC-영동남원주IC-중앙고속도로-남제천IC-청풍방면82번-청풍대교전좌회전-능강리
4. 덕동계곡
백운면 덕동리 5km의 계곡으로 흐르는 맑은물과 아름다운 형상의 바위, 녹음 짙은 나무숲으로 인해 여름철 전국각지에서 피서객이 많이 찾고 있는 자연발생유원지이다. 또한 구수애에 위치하는 울 한 복판에는 커다랗게 세워져 있는 바위가 있는데 그 모양이 특이하게 생겨 예로부터 마을 젊은이들이 길가에서 그 바위를 향해 돌을 던져 바위 위에 잘 얹어지는 사람은 결혼을 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유래를 가지고 있는 아들바위라는 이름의 바위가 있어 계곡의 경관과 어우러져 해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다.
- 가는 길 :
5. 수경대
삼공마을에 있는 다리위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북편으로 우뚝한 기암절벽이 빽빽한 수림에 둘러싸여 있고 그 아래 계곡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은 거울이 되고 그 속에 담긴 산은 선경을 이룬다. 병풍처럼 둘러친 암벽 아래로, 비단결 같은 암반위를 미끄러져 내린 물이 거울같이 맑은 담을 이룬다.
신라시대부터 월악신사를 설치하고 제천(祭天)하던 곳으로 난이 일어나면 월악신사의 영험으로 스스로 평정되었다는데 그래서인지 산봉의 노송들도 수경대를 향하여 굽어보고 있는 듯 하다.
- 가는 길 : 제천에서 82번국지도로 청풍면과 한수면사무소를 지나 3km 직진후 자연대 앞에서 좌회전하여 위치
6. 수렴선대
월악산을 오르는 부푼 가슴으로 어디를 보아도 풍성한 경관에 들뜨는 걸음으로 신륵사를 지나 500m오르면 길 좌측 숲 우거진 골짜기에 넓은 바위위로 물이 흘러 까마득한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멋진 폭포를 이룬 곳이다. 신륵사에서 도를 닦던 큰 스님들이 참선을 하였다고 한다.
- 가는 길 : 제천시 →82번국지도 →수산 →36번 국도 →덕산 →월악리, 충주, 단양 →36번 국도 →덕산 →월악리
7. 수문동 폭포
수곡용담을 지나 깊은 골짜기로 접어들면 높이 35m, 길이 100m가량되는 폭포가 깊은 산의 정적을 뒤흔들어 놓으며 천연동굴위로 쏟아져내린다.
겨울에 수문동폭포에 눈이 덮히면 천연동굴로 떨어지는 물이 얼어 얼음산이 높이 솟는데 이것은 수문동폭포만의 독특한 멋이다.
- 가는 길 : 제천시 →82번국지도 →수산 →36번 국도 →덕산 →월악리 충주, 단양 →36번 국도 →덕산 →월악리
8. 억수계곡
월악산 동남쪽 기슭에 흐르는 용하9곡은 용하(用夏)라는 이름이 말하듯 여름을 위한 계곡 이다. 용하9곡은 상류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다.
문경과 경계인 대미산에서 발원한 용하수는 강서대 활래담, 수용담, 선미대, 청벽대를 이루고 만수봉에서 시작되는 계류는 수문동폭포, 병풍폭포, 수곡용담등 즐비하다. 이끼가 끼지 않은 맑은물과 바위가 천연림과 더불어 시원함이 뼈속까지 스미는 아직까지 천연의 상태를 잘 간직하고 있는 꼭 추천해 주고싶은 계곡이다.
- 가는 길 : 중앙 남제천 I.C-금성방향-82번국지도(청풍경유)-36번국도(충주방면)-덕산면 억수리
9. 와룡대
물이 너무나 맑고 깨끗하여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며 수심 5m의 깊은 웅덩이가 맑은 물 때문에 속을 환히 내보이는 자연적인 수영장으로 여름철피서지로 최적지이다.
- 가는 길 : 중앙고속도로-남제천I.C-82번청풍방면-수산삼거리-36번충주방면-덕산면 월악리(월악산국립공원)
10. 월광폭포
송계계곡을 따라가다가 월악산 계곡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타나는 월광폭포는 3단폭포로서, 검은 암벽에 두 개의 물줄기는 30여m가량 된다.
신라시대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월광사가 있었는데 임진왜란시 소멸되어 터만 남았고 이곳의 돌거북은 현재 서울 경복궁으로 옮겨가 보존되고 있다.
현재 자연 휴식년제로 입산이 금지되어 있고 신라시대에 창건했다는 월광사가 있었는데 임진왜란시 소멸되어 터만 남아 있고 이곳의 돌거북과 비석은 경복궁으로 옮겨가 보존되고 있다.
- 가는 길 : 중앙고속도로-남제천I.C-82번청풍방면-수산삼거리-36번충주방면-한수면 송계리(월악산국립공원)
11. 자연대
자연그대로가 아름다운 자연대는 송계계곡입구에 있어서 송계팔경을 찾는 사람이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곳이다.
미륵리에서 흐르는 맑은 계곡에 넓은 암반과 깊은 소(沼)가 있어 어디에 못지 않은 경승지이며 도로변에 위치하면서도 길에서는 보이지 않게 무성한 숲에 가려져 있다.
- 가는 길 : 중앙고속도로-남제천I.C-82번청풍방면-수산삼거리-36번충주방면-한수면 송계리(월악산국립공원)
12. 청벽대
5개의 큰 암석이 층을 이루고 맑은 물이 굽이 돌아 소를 이룬 절경인데 구한말 당시 박의당선생이 제자와 같이 글을 짓던 곳이다.
둘러보면 첩첩이 산이고 빠끔히 하늘만 열렸는데 차도변이면서도 세상과는 단절된 느낌이 든다.
- 가는 길 : 제천시 →82번국지도 →수산 →36번 국도 →덕산 →월악리, 충주, 단양 →36번 국도 →덕산 →월악리
13. 탁사정
강원도 원주에서 제천을 들어오는 국도 5호선변에 자리하고 있는 제천근교의 유일한 유원지이며 여름 피서철 많은 인파가 모이는 곳입니다.
조선 선조 19년(1568) 제주 수사로 있던 임응룡이 고향에 돌아올때 해송 여덟그루를 가져와 심고 이곳을 팔송이라 명명하였고, 그뒤 그의 아들 희운이 정자를 짓고 팔송정이라 하였습니다.
허물어진 팔송정을 후손 윤근이 다시 세웠고 원규상이 탁사정이라 하였으며, 팔송은 모두 죽고 지금은 한 그루도 남아있지 않으나 1999년도 10월에 팔송마을 및 제방둑에 20그루의 해송을 마을에서 심어 앞으로 해송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제천 10경의 "탁사정"은 정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자 주위의 절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한말 정운호(유인석 의병장과 함께 적의토벌 지휘에 맹활약)가 제천의 절경 8곳을 노래한 곳 중 제8경 "대암"이 이곳입니다.
*주변의 명소 : 배론성지, 감악산 백련사, 의림지
- 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 제천IC(충주방면) ∼ 5호선국도 ∼ 원주방면 ~ 봉양읍구학리(탁사정)
14. 팔랑소
용추골에서 골짜기의 갖가지 화초와 높푸른 잡목 숲에 경관을 감상하며 오르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200여평의 넓은 반석이 펑퍼짐하게 깔려있고 바위주변에는 물줄기가 거세게 감돌아 흐르고 있다.
15. 학현계곡
금수산 자락인 신선봉에서 발원하는 학현계곡은 맑고 깨끗한 계곡물과 주변에 신선봉, 미인동, 작은동산 등 아기자기한 산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가을철에는 마을주민들이 채취하는 송이버섯을 즉석에서 구입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함
16. 활래담
문경군과 경계가 되는 깊은산 계곡으로 큰 폭포가 하늘에 매달린 듯 세찬기세로 떨어지고, 그 아래 떨어진 물은 소를 이루어 주위의 바위들과 조화되어 일대경관을 이룬다.
주변에는 산삼이 많아 예로부터 심마니의 왕래가 잦은 곳이며 원조(元鳥)라는 희귀조가 서식하는 곳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