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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료/완료 여행자료

영월 여행

by 칠갑산 사랑 2008.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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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 : 강원도 영월군 일대

여행날자 : 2008년 11월 22일과 23일 (1박 2일)

여행날씨 : 맑고 좋은 날씨였으나 바람 강하고 약간의 박무 현상

여행온도 : 영상 4도에서 15도 사이

여행인원 : 총2명, 칠갑산과 지기 1명

여행코스 : 서울-영월 잣봉 산행-어라연-장릉-선돌-청령포-한반도 지형(선암마을)-

               봉래산 별마로 천문대(연화산)-주천 다하누 한우촌-수주섬 숙박-요선정-요선암-

               법흥사 및 적멸보궁-구봉대산 산행-서울

 

 

흐르는 동강속에 꿈과 예술이 숨어있는 영월의 비경을 찾아

 

 

그동안 꼭꼭 숨겨 두웠던 영월땅으로 출발하는 날, 새벽같이 일어나 전날 챙겨 둔 배낭과 옷가지들을 애마에 실고 떠난다.

새벽 공기가 폐부 깊숙히 들어오며 추워진 날씨속에 상쾌함을 더한다.

여러 고속도로를 바꿔 타며 치악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해 일출을 맞이하고 아침식사를 한 후 제천을 거쳐 드디어 영월땅으로 들어가는 시간 8시 20여분을 지나고 있다.

영월읍과 거운교를 지나 거운 분교 앞에 애마를 주차 시킨 후 잣봉 산행을 위해 출발한다.

 

영월군 영월읍 거운리에 위치한 잣봉(537봉) 정상석

 

동강을 사이에 두고 완택산과 고고산 그리고 신방산 건너편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잣봉은 동강에서 가장 신비한 비경을 자랑하는 어라연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산으로 절벽에는 수많은 노송들이 동강과 어울려 천혜의 비경을 보여주는 산이다.

 

잣봉에 오르기 전 전망대에서 바라 본 환상의 동강속 어라연과 삼선암이 한폭의 동양화로 되살아 난다

 

들머리로 들어서서 잣봉과 어라연 갈림길에서 잣봉 능선을 타고 마차마을을 지나 만지고개를 넘으니 어라연의 비경이 잡목 사이로 나타나기 시작하고 자꾸만 산객의 발길을 붙잡아 산행 속도를 늦추고 있다

북에서 완만하게 흐르던 동강은 이 어라연을 돌고 돌아 흘러 내려오며 구절양장의 에머랄드 빛 물결을 이루고 곱디 고운 모래톱이 첩첩산중에 생각할 수 없는 드넓은 바닷가를 연상시키며 그 넘어 절벽으로 이루워진 고봉준령이 한폭의 풍경화를 만들어 놓고 있다

 

어라연 사진은 저 능선 끝부분 동강을 넘어 고고산 능선에서 바라본 그림이지만 이곳에서 바라본 어라연의 모습 또한 비경중의 비경이다

 

동강과 어라연 그리고 그 위를 병풍처럼 둘러쌓고 있는 고고산 능선의 조화로운 절경에 취해 내려오니 이제 고기가 비단결 같이 떠오르는 연못이라는 뜻을 가진 어라연을 가까이에서 조망해 보는 시간이다.

사람은 절경에 홀리고 비경에 몸을 던진다고 했던가, 숨겨진 비경이 오랫동안 속세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더욱 그 이름이 빛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남태평양의 맑은 바닷물에서나 느낄 법한 에머랄드빛 물색이 동강을 수놓고 그 속에 점점히 떠 있는 정자암이라고도 불리웠던 삼선암 위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 몇그루가 비경을 절경으로 바꿔 놓고 있다. 

뱀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어라연, 그 아름다움에 비해 암자 하나 없는 것이 이상해 알아보니 예전에 어라사란 절이 있었으나 세월이 흐르며 이제는 그 터만 남아 있다 전해진다.

 

잣봉 산행 후 동강의 어라연으로 내려와 바라본 삼선암쪽 전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잣봉산행과 어라연을 구경한 후 간단히 라면을 끓여 점심을 해결하니 시간은 잘도 흘러 오후 1시를 넘기고 있다.

다른 산 하나를 더 오르기에는 빠듯한 시간이라 이제부터 느긋한 마음으로 영월의 사적지와 명승지를 돌아 보기로 하고 거운리를 출발한다.

영월여행지도를 통해 가장 가까운 장릉을 향해 달려 본다.

 

 

장릉 매표소를 지나 노송 군락지를 따라 등로를 오르면 금새 보이는 단종대왕 능 전경

  

장릉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위치하고 현재는 사적 제196호로 지정되어 있는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의 무덤이다.

수양대군으로 대변되는 왕실과 김종서가 주축이 된 신하간 권력 갈등의 희생양이 되어 그 꽃을 피우기도 전에 이곳 영월의 청령포로 유배되였다가 승하한 관풍헌과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많은 시를 남겼다는 자규루 그리고 그 작은 몸둥아리 마저 강물에 떠돌다 호장 엄홍도에 의해 간신히 이곳 을지산에 암장되어 현재에 이르는 슬픈 역사를 생각하며 그 어린 단종대오앙의 한과 넋을 느끼는 시간으로 남겨 본다.

 

정조 15년에 건립된 곳으로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위 32인, 조사위 198인, 환관군노위 28인 그리고 여인위 6인을 합해 총 264인의 위패를 모셔 놓고 매년 한식날 단종제향후 제사를 지내는 배식단사이다.

 

장릉에는 정자각, 단종비각, 애식단사, 재실, 홍실문 등이 있으며 죽은 후 한참이 지나서인 1698년 묘호를 단종이라 하고 능을 장릉이라 하였다.

왕명에 따라 간단히 조성된 능의 봉분 앞에는 상석과 4각옥형의 장명등이 있고 망주석 2개와 문석 2개 그리고 석수가 여럿 남아 있다.

다른 왕의 능과 달리 단종에게 충절을 한 여러 신하들을 배향하기 위한 충신단이 설치되어 있고 경내에는 울창한 노송 숲으로 가꿔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공원을 찾듯 찾아오는 것도 특이한 장릉이다.

 

정조때 박팽년의 후손인 영월 부사 박기정이 수축한 우물로 단종제를 올리는 한식때 제정으로 사용하던 영천이다

 

박충원 정려각은 박충원의 충신됨을 후세에 널리 알리기 위하여 1972년에 세운 것이다.

충신 박충원은 중종26년(1531년)문과에 급제하여 문경공이란 시호를 받았다.

영월군수로 부임하여 있을때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있던 단종이 꿈에 현몽하여 묘를 찾아 달라고 하므로 충신 엄흥도의 후손과 함께 중종36년 (1541년)에 암장되었던 묘를 찾아 수축하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장릉을 들어서자 마자 우측으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박충원 장려각 전경, 능은 왼쪽 저 계단을 타고 오르면 된다

 

영조 9년인 1733년네 건립되였으며 단종대왕 제향시 제물을 차리는 곳으로 집의 모양이 한자의 정자와 같다하여 정자각이라 불리우고 있다. 이 정자각 위로 단종대왕 능이 보인다

 

이 단종비각은 숙종 24년인 1698년에 노산묘를 장릉으로 추봉함과 동시에 이 비각을 세웠다. 비각 안에는 조선국 단종대왕 장릉이란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단종대왕의 생애가 기록 보존되어 있다 

 

이제 단종대왕의 한이 서려있는 장릉을 나와 소나기재를 타고 선돌로 향한다.

우측 도로를 타고 오르니 얕으막한 고개가 나타나고 소나기재란 이정표가 눈에 들어 온다.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청령포로 유배가던 중 이곳 고갯마루에서 억수같이 솟아지는 소나기를 만나 그때부터 소나기재란 이름으로 불리워졌다고 전해지는 이곳이기에 더욱 마음이 아려온다

 

애마를 타고 소나기재를 넘으며 찍은 사진

 

잠시 더 애마를 몰아 오르니 좌측으로 선돌 주차장이 보이고 그곳에 주차 시킨 후 나무데크로 이루워진 계단을 타고 오르니 서쪽으로 기울어 가는 저녁 햇살을 받아 더욱 신비스럽게 다가오는 선돌이 서 있다.

커다란 암봉 위에 많은 소나무들이 자라고 낭떨어지를 이뤘다가 다시 하나의 작고 뾰족한 암봉을 치켜 올려 서강을 유유히 바라보고 있는 선돌, 전망시설 아래로 펼쳐진 장엄한 두갈래의 우뚝 솟아있는 바위(높이70M)를 선돌이라 불리어 오고 있으며 서강의 푸른물과 층암절벽이 어우러져 마치 한국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하여 일명 신선암이라 고도 한다.

 

자연이 준 선물중의 선물인 선돌 사이로 서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선돌아래 깊은 소에는 자라바위가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선돌 아래동네 남애마을에 장수가 태어나 적과의 싸움에서 패하자 이곳에서 투신 자라바위가 되었다고 하며 선돌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면 한가지씩 곡 이루워진다는 설화가 전하여 오고 있다.

현재의 38국도가 개통되기 전에는 선돌 밑으로 옛길(신작로)이 있었으며 1905년(고종42)에 목탄차가 다닐수 있도록 석축을 쌓아 확장하였는데 이공사를 기념하기 위해 '광무9년이춘화패로수칙을사2월1일'라고 자연석에 새겨진 비석이 남아 있다.

 

특히 조선시대인 1820년(순조)에 영월부사를 지낸 홍이간과 뛰어난 문장가로서 풍류 생활을 즐기던 오희상 홍직필 등 세사람이 구름에 쌓인 선돌의 경관에 반하여 시를 읊으면서 선돌의 암벽에다[운장벽]이라는 글자를 새겨놓고 붉은주색을 칠한것이 지금도 남아 있다.

 

선돌 위 전망대에서 바라 본 유유히 선돌 밑을 돌아 나가는 서강의 아름다운 모습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한 후 다시 찾은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해 있으며 1971년 강원도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이 어린 나이에 왕실과 신하들간 권력 다툼속에 왕권을 강화하려는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1446년 성삼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복위 움직임이 사전에 적발됨으로써 단종은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중추부사 노득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와 영월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 쌓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유배지였다.

 

단종이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할 당시 묵었던 단종어가


단종은 아무도 들어 올 수 없는 이 적막강산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생활을 하였으며 그 당시 호장 엄흥도가 남몰래 밤마다 이곳을 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한다.
유배 생활을 하던 중 뜻밖의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자 단종은 영월 동헌의 객사로 처소를 옮겼다.

 

단종의 생활 반경을 제한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금표비


지금 청령포에는 단종 유배시에 세운 금표비가 있으며 그 뜻은 청령포에서 동서로는 삼백 척을 남북으로는 사백 구십 척 안에서 금표나 금송에 대한 채취 금지항목으로 일반인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는 의미가 있으며 아마도 단종에게도 이와 같은 제약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또한 영조때 세운 단묘유지비가 있어 그 옛날 아픈 고거를 후세에 전하고 있다.

 

지금도 말없이 흐르는 동강을 바라보며 한양을 향해 그리움을 전하고자 돌 하나 올려 놓고 있을 단종이 보일듯 한 망향탑

 

또한 청령포수림지에 위치하고 있는 단종이 유배 생활 당시 자주 올랐다는 관음송이란 소나무를 돌아 계단을 타고 청령포 뒷산으로 오르면 층암절벽 위에 있는 망향탑을 만나게 되는데 이 망향탑은 단종대왕이 유배생활을 할 때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속에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흘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탑으로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으로 남아 있다.

이밖에 한양을 그리워 했다는 노산대가 있지만 위험지역으로 분류돼 현제는 오를 수 없고 뒷산인 역산과 청령포 수림지가 그때 그 시절의 아품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 자라고 있다.

 

관음송, 이제는 오르지 못할만큼 자라 있지만 단종의 어린시절엔 함께 어린 소나무가 되어 놀아 주웠겠지

 

황포돗배가 동력선으로 바뀌어 있지만 들고 나오는 길에 이용하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제 단종대왕의 아픈 고거를 돌아 봤으니 다시 자연이 만들어 준 신비한 비경을 볼 차례이다.

어디에서 봐야 제대로 된 한반도 지형인지를 몰라 네비게이션에 찍으니 선암마을이 아닌 한반도 지형이 있는 능선의 좁은 시멘트길로 인도하고 그 길을 따라 한동안 들어가니 막다른 골목에 섶다리 하나가 보이면서 저 멀리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는 전망대에 많은 관광버스와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 온다.

재빨리 섶다리 사진 한장 남기고 어두워지기전 도착하기 위해 속도를 올려 본다.

 

전망대가 아닌 한반도 지형 그 능선 끝자락에서 만난 섶다리와 마을 풍경

 

맑고 청명한 서강의 물줄기는 서면 선암마을변에 우리땅을 그대로 복원하듯 한반도 지형을 만들어 놓았다.
마을 사람들이 옛날부터 한반도를 닮았다 하여 찾아간 선암마을의 한반도지형은 삼면이 바다인 우리땅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풍경으로 서강변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었으며 서산으로 기울어 가는 햇살을 받아 더욱 신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서해바다와 남해바다 그리고 동해바다까지 온통 작고 이름없는 아담한 선암마을에 모여든게 신기하다.
중단되지 않은 저 한반도 지형처럼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하나 되어 북쪽 반도까지도 자유롭게 오를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서강이 돌아가는 산줄기가 꼭 한반도 지형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간신히 정상적인 전망대를 찾아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을 사진에 담고 내려오니 벌써 어둠이 내리며 하나 둘 영월 땅에도 야경이 빛나기 시작한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 아닌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나오는 빛인 것이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구름이 두껍게 끼어 별도 달도 보이지 않지만 봉래산 별마로 천문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곳으로 달려 본다.

 

봉래산 정상 별마로천문대 건물 앞에 서 있던 이정석

 

 

별과 정상을 뜻하는 마루 그리고 고요하다는 로가 합쳐져 별을 보는 고요한 정상이란 뜻으로 다시 태어난 별마로 천문대, 영월 별마로 천문대는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해발 799.8m인 영월읍 봉래산 정상에 세워져 2001년 10월 13일 개관하였으며 군민들을 위한 국내 최대 규모의 천문대로 자리 잡았다.


이 천문대에는 국내 최대규모인 직경 80cm 주망원경을 비롯하여 보조망원경 10대등 총 11대가 설치되고 내부에는 천문전시실과 시청각교재실, 주관측실 및 보조관측실들이 들어서 신비로운 우주 세계를 보여준다.
영월에 천문대 건립이 추진된데는 강원중부내륙 산간지역에 위치해 산림지역으로 오염원이 없고 연간 천체를 관측할 수 있는 맑은 날이 일년중 192일로 50%를 넘는 천혜의 천체 관측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한국천문연구원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추진된 것이다.

 

봉래산 정상석이 서 있는 곳에서 바라 본 영월읍 야경이 한폭의 그림이 되어 되살아 나고

 

이제 길었던 하루가 저물어 가고 허기가 밀려오는 시간, 이곳 영월의 명물로 다시 태어난 주천의 다하누촌을 찾아 우리의 맛 한우를 먹기 위해 떠난다.

작은 면사무소 소재지에 주수섬이란 약간은 다하누촌과 떨어진 숙소에 자리잡고 인심 좋은 주인장의 픽업 써비스로 행복 다하누 점에 들려 하루의 피곤함을 풀어 본다.

정읍의 산외마을 한우보다는 좀 비싼 가격이지만 그래도 우리네 소시민들이 자주 먹을 수 있는 소고기가 아니기에 마음껏 맛을 음미한 후 곤한 잠자리에 든다

 

주천면에 있는 한우 전문 거리 다하누촌의 전경

 

너무나 맛있게 그리고 많은 양의 소고기로 배를 채운 탓인지 아니면 이슬이 몇잔에 취한 탓인지 새벽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가 힘에 부친다.

다행이 요선정과 요선암 근처의 숙소에서 잠을 청했기에 마음만은 느긋하다.

특히 주인 아저씨의 친절함과 깨끗한 숙소 라면을 끓여주는 센스까지 무엇 하나 나무랄 것이 없는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한다.

 

어젯밤 다하누촌의 가장 써비스가 좋다는 행복점에서 얻어 온 밥 두덩이와 이곳 주수섬 여관에서 끓여 준 라면 두개가 성찬으로 다가온다.

아직까지 따뜻한 숙소를 이리 저리 뒹굴다 나서는 시간 7시, 잠시 애마를 몰아 진행하니 금새 미타사 입구쪽 요선정에 도착한다.

 

요선정 전경

 

요선정은 수주면 무릉리에 위치하고 있는 정자로서 앞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주천강 계곡이 있고 조선 중기 풍류가인 봉래 양사언이 이곳 경치에 반해 선녀탕 바위에 요선암이라는 글자를 새긴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 지방에 살고 있는 원씨, 곽씨, 이씨 등 주민들이 힘을 모아 조선조 숙종, 영조, 정조가 편액, 하사한 임금이 정한 시를 봉안하기 위하여 1913년 정자를 짓고 요선정이라 불렀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집이다.

 

전면 오른쪽에는 이응호가 쓴 요선정이 왼쪽에는 모성헌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그밖에 홍상한의 청허루 중건기와 요선정기, 중수기가 걸려 있다.

정각 건립 당시 주천 청허루에 보관했던 숙종의 어제시를 이곳으로 옮겨 봉안했다.

요선정 앞에 서 있는 마애여래좌상 전경이며 이곳에서 바라 보는 요선암이 멋들어 진다

 

지금의 요선정 터는 신라 불교 전성기에 징효가 열반했을 때 1천 개의 사리가 나왔다는 암자터 이야기도 전한다.

정각의 주위에는 기묘한 형상의 화강암벽과 수려한 자연이 어우러져 있다.

요선정 옆에는 영월 무릉리 마애여래좌상(강원유형문화재 74)이 있다.

 

요선정 앞 마애여래좌상 뒷편에서 내려다 본 주천강 속의 요선암이 너무 멋들어진다

 

요선정 앞에는 치악산에서 흐른 물이 옛 흥녕선원지 앞을 지나는 법흥천과 합류하여 맑은 계곡을 형성하고 깊은 물이 흐르는 강바닥에는 물에 씻긴 큰 바위들이 넓게 깔려있어 아름다운 계곡을 이루고 있다.
강기슭 반석 위에는 요선암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어 이곳을 요선암이라 부르고 있다.
이 글씨는 조선시대 시인이며 서예가인 양봉래가 평창군수 시절 선녀들과 함께 이곳에와 일대의 경관을 즐기다가 새겨놓은 글씨라 전해오기도 하고 양사언이 선녀암에 요선암이라 새겨 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요선이라 쓴 글씨의 뜻은 신선을 맞이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요선암 모습

 

요선정과 요선암을 구경한 후 애마를 몰아 법흥계곡을 따라 아무도 없는 조용한 지방도로를 달려 본다.

말라가는 계곡에 그래도 가끔 나타나는 물가엔 새벽 안개가 피어오르고 그 아름다움에 또 지체하는 시간을 가져 본다.

이제 법흥사를 구경하고 구봉대산을 산행하면 이틀간의 영월 여행도 마무리 되는가 보다

 

사자산 법흥사 일주문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인 월정사의 말사란 설명이 눈에 들어 온다.

자장이 643년(선덕여왕 12년) 당나라에서 돌아와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영축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등에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마지막으로 이 법흥사를 창건하여 역시 진신사리를 봉안했으며 처음에는 흥녕사라고 이름 붙였다.

헌강왕 때 절중이 중창하여 선문구산 중 사자산문의 중심 도량으로 삼았으며 891년(진성여왕 5년)에 불에 탄 후 944년(혜종 1년)에 중건 되였다.

그뒤 다시 불에 타서 천년 가까이 작은 절로 명맥만 이어오다가 1902년 비구니 대원각이 중건하고 법흥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912년 또다시 불에 탄 뒤 1930년에 중건했으며 1931년 산사태로 옛 절터의 일부와 석탑이 유실되었다.

법흥사 적멸보궁과 그 뒤로 보이는 사자산 연화봉

 

한국의 대표적인 불교 성지인 이 법흥사의 문화재로는 한국 5대 적멸보궁에 속하는 법흥사 적멸보궁, 진신사리를 봉안했다는 부도(강원유형문화재 73), 당나라에서 사리를 넣어 사자 등에 싣고 왔다는 석분(강원유형문화재 109)이 있다.

이밖에 영월 징효국사부도(강원유형문화재 72), 영월 흥녕사 징효대사탑비(보물 612) 그리고 흥녕 선원지(강원기념물 6)가 있다

 

법흥사 경내에서 바라 본 구봉대산 원경 

 

 

구봉대산의 높이는 870m이며 이름이 말해주듯 아홉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다.

백덕산과 사자산 능선의 연장선상에 있는 지능선으로 법흥리의 적멸보궁과 법흥사를 싸안으며 계속 뻗어나가 한 줄기는 주천강을 향해 가고 한 줄기는 법흥리의 버스 주차장 남쪽으로 뻗어 있다.

이 산은 각 봉우리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을 봉우리 명칭으로 사용하여 이색적인 감흥을 주고 있다.

 

구봉대산에서 바라 본 좌측의 사자산과 백덕산 원경 그 아래 법흥사가 자리한다

 

클라이밍이 필요한 봉우리도 있어 모두 오르기는 어렵다.

위험한 코스일 경우 길이 바위 아래로 나 있어 별 어려움은 없다.

코스를 따라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암봉들은 테라스 형이고 연화봉, 백덕산 쪽은 단애를 이루고 있어 전망이 좋다.

산행은 법흥사에서 출발 계곡을 따라 산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법흥사로 내려오는 코스와 법흥사에서 시작 정상에 올랐다가 계곡을 따라 하산하는 방법이 있으며 약 4시간이 걸린다

 

인생의 축소판을 이 구봉에 의미를 담아 본 구봉대산

 

이제 정상에서 법흥사로 내려가 정리한 다음 길었지만 뜻깊은 이틀간의 영월 여행을 마친다.

조만간 다시 한번 들려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구봉대산 제일 마지막 봉인 9봉에 위치한 정상석과 윤회봉 이정표

 

무성했던 잎이 지고 이렇게 낙엽이 쌓이면 다시 눈녹는 봄이 오겠지

 

조금은 밀리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를 이용해 집에 돌아오니 저녁 시간을 넘기고 피곤함도 잊은 채 영월에서의 달콤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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