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자료/완료 여행자료

경남 남해 여행

by 칠갑산 사랑 2008. 5. 15.
728x90

 

서울에서 남해 가는 길

 

자가용을 이용시 

 

경부고속도로 ⇒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 ⇒ 진주 남해 분기점 ⇒ 남해고속도로 ⇒ 진교 남해 I/C

  

 

남해지도

 

 

 

김해 12경

 

1. 금산과 보리암 

683년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초당을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로 산 이름을 보광산, 초당 이름을 보광사라고 했다.

훗날 태조 이성계가 이 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 왕조를 열었다는데, 그 감사의 뜻으로 660년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 이름을 금산, 절 이름을 보리암으로 바꿨다

금산의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보리암은 금산의 온갖 기이한 암석과 푸르른 남해의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절이다.

경내에는 원효대사가 좌선했다는 좌선대 바위가 눈길을 끌며, 부근의 쌍홍문이라는 바위 굴 은 금산 38경 중의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도 낙산사 홍연암, 경기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로 신도들 이 연일 줄지어 찾고 있다.

문화재로는 보리암전 삼층석탑(경남 유형문화재 74호)이 있다 - 신라시대의 석탑과 유사하나 고려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길 찾기 : 남해대교에서 남해읍을 지나 국도19호를 따라 미조방향으로 약40분정도 가면 보리암 도착
              창선ㆍ삼천포대교를 이용할 경우는 국도3호를 따라 미조에서 다시 국도 19호를 따라 상주

              해수욕장을 지나면 보리암에 도착

 

2. 남해대교와 충렬사

1) 남해대교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와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사이를 연결한 다리.

길이 660m, 폭 9.5m, 높이 52m로 국도 19호선상에 있으며, 맬다리 또는 허궁다리라고도 부른다.

1968년 착공하여 1973년 준공된 한국 최초의 현수교이다.

상부구조는 현수교로 된 3경간 연륙교이며, 하부구조는 구주식으로 되어 있다.

교각 밑으로 노량수도가 흘러 수심이 깊고, 조류가 빨라 다리를 놓기에 상당히 힘들었으나, 양쪽 언덕에 강철선 묶음을 단단히 하고 거기에 다리를 매다는 공법으로 시공했다.

다리 양쪽 끝에 버팀목을 세우고 중간중간에 교각을 넣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주탑은 케이블 및 보강형에서의 반력을 지지하는 구조물로 다리 전체의 아름다움을 더해주었다.

다리의 건설로 육지로부터 고립되었던 남해도지역과 부산·여수·마산·하동 등지와의 교통이 편리해졌을 뿐만 아니라 남해도 각지에 산재한 명승고적과 한려해상국립공원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의 유치와 지역사회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2) 충렬사

남해충렬사는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으로 노량충렬사라고도 한다.
통영의 충렬사와 함께 ‘충열’이란 현판을 처음부터 같이 사용해 왔으며 인조 때 지어졌다.

충무공이 전사한 후 그의 시신이 한 때 이곳에 모셔졌는데 인조 10년(1632) 유림들이 옛 터에 작은 집을 짓고 제사를 지냈던 것이 최초의 사당이다.
충무공이 순국한지 60년이 되던 효종 9년(1658)에 좁고 초라한 옛집을 헐고 새집을 지었다.

그 후 현종 4년(1663)에 통영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내려준 현판을 받게 되었다.

이런 사실들을 기록한 충무이공묘비가 사당 곁에 있으며, 비문은 현종 2년(1661)에 송시열이 썼고, 1663년에 박경지 등이 세운 것이다.
옛날에는 이 사당 곁에 호충암이란 암자가 있었는데, 화방사의 승려 10명과 승장 1명이 번갈아 와서 사당을 지켰다고 한다.

또한 공이 죽은 후 자운이란 승려가 공을 사모하여 쌀 수백섬을 싣고 와서 공을 위해서 제사를 지낸 것으로도 유명한데 자운은 원래 충무공의 밑에 있던 승병이었다.

충렬사는 충무공의 노량 앞바다를 지키고 있는 수호신의 사당이라 할 수 있다.
경내에는 비각·내삼문·외삼문·관리사 등이 있고 사당 뒤의 정원에는 충무공의 시신을 임시 묻었던 자리에 묘가 남아 있으며, 1948년 정인보가 쓴 충열사비가 있다.

 

3. 상주해수욕장

평균너비가 120m에 이르는 백사장이 반달 모양으로 2㎞에 걸쳐 펼쳐져 있다.

금산이 둘러싸고 있으며, 입구에는 삼서도·목도 등이 파도를 막아주어 해수면이 잔잔하다.

물이 맑고 깨끗할 뿐만 아니라 경사가 완만하고 수온이 20℃ 이상으로 비교적 따뜻하여 해수욕장으로는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남해의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산세가 빼어난 금산과 기암절벽, 바다낚시터로 유명한 세존도와 더불어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어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4. 창선교와 원시어업 죽방렴 

지족해협은 하루 두번씩 밤낮으로 12시를 넘으면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할 때마다 바닷물이 좁은 해역을 빠져나가는 물살이 당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거세다는 이야기다.

창선교는 이같은 지족 해협를 가로질러 창선면 지족리와 삼동면 지족리를 이어준다.

길이 438m, 너비 14.5m의 규모로 95년 12월 20일 개통되었다.

원래 창선교는 1980년 6월 5일 완공되어 사용되어 오다가 1992년 무너져 내려 다시 놓게 된 것이다.

창선교는 교통의 소통 뿐아니라 위에 올라 다리 아래서 진행되는 원시어업 형태의 죽방렴과 일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원시형태의 방법이 그대로 간직된 살아있는 민속문화재인 죽방렴은 길이 10m 정도의 참나무로 된 말목을 개펄에 벌려 주렴처럼 엮어 만든 그물을 조류가 흘러오는 방향을 향해 V자형으로 벌려놓고 물살에 떠내려오는 고기를 잡는 단순한 방법으로 현재 남해군 지족해협에 유일하게 23통이 남아 있어 보존가치가 높은 관광자원으로 관심을 모은다

 

5. 이락사

남해에서 볼 일을 다 보고 남해대교로 돌아나오다 보면 가장 마지막에 맞이하는 관광지다.

이락사(李落祠)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이순신 장군이 떨어진 곳에 지은 사당이다.

사당 안쪽 비각에는 대성운해라고 적힌 현액이 걸려 있다.
“민족의 큰 별이 바다에 떨어졌다”는 뜻으로 안내판은 “65년 박정희 대통령께서 내렸다”고 적어 놓았다.
들머리에는 몸소 앞장서서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을 대승으로 이끌고 왜군이 쏜 유탄에 맞아 숨을 거두며 하신 말씀을 새긴 돌이 있다.

‘전방급 신물언아사’가 바로 그것이다.

“싸움이 급박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실제로 했을 말보다는 실록에나 나옴직한 한자말을 새겨야 권위가 선다고 생각하는가 싶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충무공의 단심을 전해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당시 격전이 벌어졌던 관음포 앞바다를 한 눈에 바라보는 첨망대는 이락사에서 500m쯤 더 가야 나온다.

우러를 첨자를 써서 한껏 존경의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비각만 둘러볼 뿐 정작 예까지 발품을 팔지는 않는다.

앞바다는 이락파, 서 있는 자리는 이락산이다.
여기는 해거름녘 남해 관광을 마치고 나갈 때 들르는 것이 좋다.

기우는 해가 아름답고 장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6. 가천암수바위와 남면해안

암수바위, 다랭이논으로 유명한 남면 가천마을은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양을 한 남해섬의 회음부에 정확하게 위치하고 있다.

새 새명을 탄생시킬 신성한 곳인 셈이다.

일명 삿갓논, 삿갓배미라고도 불리는 다랭이 논은 남해인의 근면성을 보여주듯 층층이 계단을 이루고 있다.

옛날에 어떤 농부가 논을 갈다가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들어보니 그 안에 논이 하나더 있더라는데서 유래된 삿갓논은 짜투리 땅도 소중히 활용한 남해인의 억척스러움을 대변하고 있다.

다랭이 논의 의미를 되새기며 바라보는 가천마을의 풍경은 옛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한 폭의 수채화 같다.

가천마을의 또다른 자랑거리는 암수바위. 높이 5.9m의 수바위와 4.9m의 암바위로 이뤄진 암수바위는 발기한 남자의 성기와 애기를 밴 어머니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전국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있다.

조선 영조27년 이 고을의 현령 꿈에 한 노인이 "가천에 묻혀있는 나를 일으켜 달라"고 부탁해 땅을 파보니 암수바위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 바위를 발견한 뒤로 매년 제사를 지내도록 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바라는 제사가 매년 열리고 있다. 다랭이 마을 뒤쪽에 있는 설흘산(488m)은 망산과 인접해 있다.

설흘산에서 내려다 보면 깊숙하게 들어온 앵강만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가 아늑하게 보인다.

설흘산 정상부근에는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있다.

원래 봉수대는 주위를 넓게 관측할 수 있는 곳에 정한다.

설흘산 역시 한려수도와 앵강만, 망망한 남쪽 대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일출의 장관이 유명하다.

남면 홍현의 무지개마을에서 오르면 가장 가깝지만 가천마을에서 북쪽으로 곧바로 오르거나 멀리 임포에서 시작하면 칼바위 등을 지나는 등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7. 노도의 서포김만중선생 유허

현재 16가구 43명이 살고 있는 작은 섬 - 노도.
섬에서 바라보는 금산의 절경과 앵강만의 풍광 못지 않게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작가 서포 김만중이 56세의 일기로 유형의 삶을 마감했던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벽련(碧蓮). 말 그대로 짙고 푸른 연꽃, 3천년만에 핀다는 우담바라의 마을 바로 앞 삿갓처럼 생긴 섬이 바로 노도이다.
서포가 생을 마감한 지 308년이 지난 지금 노도에는 그가 직접 팠다는 샘터와 초옥터, 그리고 허묘가 남아 그의 자리를 쓸쓸히 메우고 있다.
조선 후기 정치가로서, 문신으로서, 효자로서, 소설가로서, 한글애호가로서, 시인으로서, 한시대를 풍미한 대문호 서포의 발자취가 그 고뇌스런 일생과 함께 서려 있는 남해의 작은 섬 노도는 유배문학의 산실이다.
남해는 서포 김만중 외에도 기묘사회로 유배당한 자암 김구 선생이 13년간의 기나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섬으로 들어가는 길이 어렵지만 벽련마을 안에서 어선을 이용하면 쉽게 섬에 갈 수 있다.

 

8. 송정 솔바람해변

상주 은모래 Beach에서 동쪽으로 4km, 미조 초등학교에서 북서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있는 송정 솔바람 해변은 특색있는 남국의 정취, 환경적으로 완벽한 해수욕장의 이미지를 주기에 충분하다. 남해군은 1999년 7월 송정생태주차공원을 개장하고 해수욕장 주변 가로등에 꽃바구니를 설치했다. 해수욕장을 운치 있고 낭만적인 공원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부드럽고 은빛이 나는 백사장과 명경지수(明鏡之水)같은 바닷물이 송림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고,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맑은 바닷물과 송림으로 유명한 이곳은 서남향의 부드럽고 은빛 나는 백사장 앞으로 탁트인 남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찾는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백사장 길이 1,500m, 폭 90m, 면적은 15,120평에 이르며, 수온은 연평균 18℃.
송정의 또 다른 매력은 해수욕장을 조금만 벗어나면 커다란 돌덩이 같은 몽돌과 기암괴석이 뒤섞인 단애의 해안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수욕을 한 뒤, 짠내를 씻어내며 때묻지 않은 자연의 청량감을 느껴볼 수 있는 멋진 해안이다.
송정 솔바람 해변 부근은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관광지 지정을 받았다. 경상남도와 남해군은 송정 솔바람 해변을 비롯하여 부근 25만평 부지를 2011년까지 714억원을 투자하여 공공시설과 숙박시설, 그리고 야영장, 휴양소, 전망대를 만들어 국제적인 해양휴양지로 개발할 계획이다.
송정까지 왔다면 아름다운 항구, 미조항에 반드시 들러 싱싱한 회를 맛보고, 활기차고 부지런한 어민들의 생활상도 한번 체험하는 것이 좋다. 아니면 물미해안도로를 따라 섬을 나가면서 물건방조어부림과 창선교, 죽방렴을 구경하든지...욕심 많은 사람은 둘 다 하든지...

 

9. 망운산과 화방사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사에 몸과 마음이 지쳐 그냥 편안히 쉬고 싶은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우리에게 산사(山寺)는 삶의 고향이고 위안이기 때문이다. 여초 김응현 선생의 일필휘지가 오직 한마음, 일심으로 정진하라는 일주문을 가로지르고 있는 망운산 화방사는 채진루의 이름이 그렇듯이 삶의 진실을 캐는 이들의 땅이다. 1981년 화재로 소실된 이충무공 목판 묘비가 복원되어 있는 화방사는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임진왜란때 순국한 장병들의 영혼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호국사찰이다. 법전사물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화방사 주변에는 천연기념물인 산닥나무 자생지가 있어 교육의 장이 된다. 화방사에서 망운암으로 오르는 아침 숲길 등반은 산사체험을 곁들인 멋진 산책 코스로도 유명하다. 망운암은 정상 가까이에 있는 조그만 암자이다. 그냥 아무렇게나 세운 듯한 돌일주문을 무심으로 지나면 중병을 낫게 한다는 영험의 기도도량 망운암이 나온다.
남해바다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망운산(786m). 이 산을 오르는 사람은 이곳이 알려지길 두려워한다. 화방사의 정적을 뒤로 하고 산길을 올라 정상에 오르면 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들과 강진만, 청정해역의 서상 앞바다, 지리산, 여천공단, 여수, 사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기우제를 지낸 흔적이 남아있으며 옆에는 제관이 앉을 수 있도록 돌로 된 의자가 놓여있다. 남해에 비가 오지 않으면 가장 먼저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그래도 비가 오지 않으면 상주 앞바다의 세존도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정상 반대편 연대봉에는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있다. 5월에는 철쭉군락지의 꽃들이 만개해 붉게 타오르는 화려한 면모를 선보이며, 등산객을 현혹한다. 최근에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도 인기를 얻고 있어 전국 동호인들이 줄을 잇는다. 화방사에 차를 세우고 정상까지 등반할 수 있으며, 망운암과 정상까지 갈 수 있는 임도가 있어 차를 타고도 갈 수 있다.

 

10. 물건방조어부림과 물미해안

물건방조어부림은 태풍과 염해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고 고기를 모이게 하는 어부림으로 길이 1.5km, 너비 30m의 반달형으로 팽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푸조나무인 낙엽수와 상록수인 후박나무 등 300년 된 40여종류의 수종이 숲을 이루고 있어 천연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마을 뒤편에는 50년대 광부와 간호사로 머나먼 이국땅 독일로 건너가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조국근대화의 가장 큰 주역이었던 우리 동포들에게 고국에서 노년을 보내고 정착할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고 있는 독일마을이 위치해 있는데 건축방식에서부터 생활여건이 독일식으로 꾸며저 있어 이국적인 풍경을 접할수 있다. 그리고 물미해안도로는 물건과 미조를 잇는 해안도로를 부르는 이름이다. 미조항에서 싱싱한 회 한접시를 먹고 출발해 꾸불꾸불한 해안도로의 경치를 만끽하면 "이런 곳이 있었구나"하는 신선한 충격을 느낄 것이다. 초전-항도-가인포-노구-대지포-은점-물건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지나는 마을마다 빼어난 경치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내항도, 외항도의 쌍둥이 섬을 가진 항도마을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사량도, 두미도, 욕지도는 물론 가까이에 마안도, 콩섬, 팥섬 등 남해바다의 온갖 섬들을 바라보며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어짐을 더한다"는 포구, 가인포는 중국사람이 지나가다 밥 한 상을 대접받고 지어주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노구에서 대지포까지는 아홉 등 아홉 구비로 일컬어지는 수많은 고개가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를 제공하고 있다.

 

11. 호구산과 용문사

용문사는 미륵이 탄생하여 맨처음 몸을 씻었다는 용소마을 위쪽의 호구산 계곡에 호젓하게 자리잡고 있다.신라시대 원효대사가 금산에 보광사를 짓고, 뒤에 호구산에 첨성각을 세우고 금산에 있던 보광사를 옮겼다고 한다.전국 3대 지장도량의 하나로 불리는 용문사의 독특함은 천왕각의 사천왕이 짓밟고 있는 양반과 탐관오리이다.그런 모습에서 우리는 권력을 탐하지 않고 오직 민초들의 곁에 있고자 했던 용문사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용문사는 남해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절이다.

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수많은 용조각이 새겨진 대웅전, 용화전에 모셔진 화강암으로 된 고려시대의 용문사석불, 조선 인조때의 시인 촌은 유희경선생의 촌은집책판 52권을 비롯하여 문화재자료 천왕각, 명부전이 있다. 또한 문화재로는 지정되지 않았지만 임진왜란때 승병들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총구가 세 개인 삼혈포와 용문사가 호국사찰임을 표시하기 위해 숙종이 하사한 수국사금패, 궁중매듭 번 등이 용문사가 자랑하는 문화재이다.용문사의 산내 암자로 백련암과 염불암이 있다.특히 백련암은 수행처로 이름나,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용성스님,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석우스님, 성철스님이 머문 곳으로 유명하다.
 
12. 창선의 삼천포대교
총연장 3.4km에 이르는 5개의 창선·삼천포대교
세계에서 보기드문 다리의 향연
지난 2003년 4월 28일 성웅이충무공의 탄신일을 기하여 1973년 남해대교가 개통된지 30년만에 창선·삼천포대교를 개통하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명물로 탄생한 창선·삼천포대교. 길이 3.4km의 창선·삼천포대교는 삼천포와 창선도 사이 3개의 섬을 연결하는 5개의 교량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해상국도(국도3호)로 남아있는 세계적으로 보기드문 관광명소이다. 남해의 새로운 관문으로 탄생한 이 다리는 창선도의 육상교량으로 150m길이의 PC빔교인 단항교, 창선과 사천 늑도를 잇는 340m의 하로식아치교인 창선대교, 사천시의 늑도와 초량을 잇는 340m 길이의 PC BOX인 늑도대교, 초양섬과 모개섬을 잇는 202m의 종로식 아치교인 초양대교, 모개섬과 사천시를 연결하는 436m의 콘크리트 사장교인 삼천포대교라는 다섯개의 교량이 다리박물관을 방불케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1995년 2월 착공하여 2003년 4월 개통된 창선·삼천포대교는 전체공사비가 1,830여억원으로 한국 최초로 섬과 섬을 연결하는 교량으로 교량 자체가 국제적인 관광지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남해군 또한 주변 개발을 통해 명실상부한 한려수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제 곧 창선·삼천포대교 주변에 전망타워, 콘도, 호텔, 유람선이 투자유치되고, 해양레포츠 시설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남해군 창선면 북쪽 끝 단항의 해발 150m 높이에 있는 전망타워에서 바라본 섬과 다리들의 장관을 상상해보라.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남해의 동북 끝, 바다에는 어선들이 하얀 물살을 일으키며 조업에 한창이고, 다리를 질주하는 차량의 불빛이 꼬리를 문다.

 
남해의 산들
 
1. 금산
남해대교를 지나 남해읍 우회도로까지 오면 삼거리에서 금산을 안내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20km쯤 달리다 상주해수욕장 조금 못 미쳐 좌회전해서 들어가면 남해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금산에 다다른다. 요즘은 창선ㆍ삼천포대교가 개통되어 미조항과 상주해수욕장으로 오는 방법도 있으나 해안의 절경을 같이 즐기려면 남해대교방면으로 오는 길이 좋다. 비록 해발 681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기암괴석이 산 전체를 둘러싸고 있어 아름다운 해안과 맞물려 절경을 이루고 있다. 기암절벽과 해안의 절경이 어우러져 아름답기로 유명한 금산은 바다와 가장 잘 어울리는 명산이다.
금산의 원래 산 이름은 보광산이었다.원효스님이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이 산에 보광사를 창건하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금산이란 이름은 조선 건국 이전에 이성계가 조선의 개국을 앞두고 보광산에서 1백일간 기도를 올렸는데,조선이 자신의 뜻대로 개국되자 그 보답으로 산을 온통 비단으로 덮겠다고 한것에서 유래한다.
이름이야 어찌되었던 금산은 아름다운 산이다.마치 고운 비단 치마를 입고 있는 것처럼 산이 수려하고 눈부시게 하는 비경이 곳곳에 숨어있다.금산의 제1경인 쌍홍문을 비롯,무려 38경이 해발 681m의 조그마한 산에 자리하고 있다.
상주면에서 등산로를 이용하면 온갖 기암괴석들로 뒤덮인 금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금산의 등산길은 사방으로 여러 개의 길이 있으나 그 정문은 쌍홍문(雙虹門)이다. 두 개의 큰 굴이 웅장한 바위에 뚫려있다. 이 문을 들어서면 바로 바위 전시장이다. 굴속은 여름에도 서늘한 바람이 분다.
 
2. 망운산
786m, 남해 최고높이를 자랑하는 망운산,
그러나 남해안 제1의 명산인 금산에 가려 진가가 꼭꼭 숨겨진 곳이다.
그리고 망운산을 오르는 사람은 이곳이 알려지길 두려워한다. 깨끗한 풍모, 드넓은 기상, 아는 자만 오르리라. 금산이 남해를 찾는 손님들의 산이라면, 망운산은 남해인들이 가장 아끼는 늠름한 기상이다.
고현면 대곡마을에 있는 화방사에서 조용한 산사의 정적을 뒤로 하며 산길을 올라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서 보는 주변 바다 위에 점점이 떠있는 자그마한 섬들과 강진만, 연죽저수지, 청정해역의 서상 앞바다, 멀리 지리산, 여천공단, 여수, 삼천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기우제를 지냈던 흔적인 듯, 평평하게 북쪽을 향하도록 되어 있고, 옆에는 제관이 앉을 수 있도록 돌로 된 의자가 놓여있다.
남해에 비가 오지 않을 경우 제일 먼저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그래도 비가 오지 않을 경우 상주리 앞바다 세존도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정상 반대편에 있는 연대봉에는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5월에는 철쭉군락지의 꽃들이 만개해 가족단위나 친목회등의 모임에서 많이 찾아오며, 정상까지는 1시간 30분정도 소요된다. 남해읍에서 관광안내판을 따라 남해대교 방향으로 3분 정도 가면 고현면 이어마을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좌회전하여 5분 정도 가면 화방사 입구 이정표가 있어 찾기 쉽다. 화방사 그늘에 차를 세워두고, 망운산 등산로로 들어선다. 길이 험난하지 않으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등반을 할 수 있다.

 

3. 설흘산

남면 홍현마을에 있는 설흘산(488m)은 망산(406m)과 인접해 있다.
설흘산에서 내려다 보면 깊숙하게 들어온 앵강만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가 아늑하게 내려다 보인다. 인접하고 있는 전남 해안지역 뿐만아니라 한려수도의 아기자기한 작은 섬들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설흘산 정상 부근에는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원래 봉수대는 주위를 넓게 관측할 수 있는 곳에 정한다. 설흘산 역시 한려수도와 앵강만 그리고 망망한 남쪽 대해를 관측할 수 있는 곳이다. 남면 구미지역과 응봉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망망대해와 기암괴석 그리고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다랭이마을의 풍경을 같이 즐길수 있는 산행코스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4. 호구산

산에 미친 사람들이라면 분명 남해에서 금산부터 탐낼 것이 틀림없다. 그 다음으로 남해 최고봉인 망운산에 눈을 돌린 후, 돌아가는 시간에 쫓겨 황급히 섬을 떠난다. 이 때문에 남해의 잘록한 허리춤에 자리한 호구산(627m)은 그냥 스쳐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하지만 남해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호구산의 거친 산세에 눈길을 빼앗기게 된다. 지형도에는 산이름이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송등산, 괴음산 등 산군을 엮어 호구산으로 대표되는 "호구산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남해군의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은 그만큼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보존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말이다. 호구산은 호랑이 형상을 닮았다는 유래가 있고, 옛날 호랑이가 지리산에서 건너와 이 산에 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광양, 여수, 하동, 통영이 모두 보이며 잔잔히 펼쳐진 바다가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