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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경기도 산

감악산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08.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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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지 : 경기도 파주시와 양주시에 걸쳐 있는 감악산 (675봉)

산행날자 : 2008년 4월 6일

날씨 : 맑았으나 구름 낀 봄 날씨

산행인원 : 총2명, 칠갑산과 지기 1명

산행코스 : 설마교 - 거북바위 휴게소 - 범륜사 - 숯가마터 - 화전민터 - 샛골 갈림길 - 큰고개 -

          460봉 (쌍소나무봉) - 까치봉(560봉) - 감악산 정상(675봉) - 얼음골재 - 암봉 - 부도골재 -

          임꺽정굴 - 임꺽정봉(640봉) - 뒷골 갈림길 - 장군봉(540봉) - 460봉 - 개구리바위 - 계곡길 -

          범륜사 - 설마교

산행시간 : 널널하게 쉬면서 5시간 20분

산행길이 : 약 10 Km

 

 

오래된 군 생활의 기억을 뒤살리며 임꺽정과 감악산에서 바위 타고 놀다 온 하루

 

 

연속 2일 산행을 했지만 전날 백두대간 산행이 강릉 괘방산으로 대체되면서 체력적인 여유가 생겼다.

어디를 갈까 고민 끝에 애마를 몰고 파주에 있는 감악산을 오르기로 마음 먹고 준비를 해 본다.

오래전 군 생활을 한 곳이기에 들머리 찾는 것을 큰 걱정하지 않했지만 들머리를 잘못 찾아 돌도 돌아 집에서 두시간이 지난 아침 9시에 영국군 전적비에 도착한다.

 

설마교와 감악산 휴게소에서 적성쪽으로 좀 더 가면 만나는 영국군 전적비

 

26년전 2년이상 군 생활을 하면서 많이도 지났던 342번 지방도로 상에 있던 6.25 참전 영국군의 전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둔 전적비가 반갑다.

사진 몇장 남기고 적성에서 의정부로 통하는 342 지방도로를 타고 조금 남하하자 감악산 휴게소가 나오고 그곳을 지나 설머천을 따라 몇분 더 내려가자 설마교에 닿는다.

 

설마교 옆 범륜사 입구에 서 있는 감악산 등산로 

 

그곳에서 다시 등산로와 몇가지 필요한 사진을 남긴 후 막걸리 한병 사들고 범륜사 입구에서 주차비 2,000원을 지불한 후 범륜사 바로 직전 주차장에 애마를 세워 두고 간단히 등산 준비 후 출발한다.

이 시간 아침 9시 17분.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애마를 몰아 단숨에 범륜사 주차장으로 오르다 보니 그 유명한 거북 바위와 운계폭포를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는 사실이다.

 

하산길에 간신히 찍었지만 거북이 모습은 사라지고 

 

거북바위

버스정류소 역할을 하는 설마교에서 동쪽 계곡 안으로 3 - 4분 들어가면 거북바위휴게소에 닿는다.

휴게소 출입구 앞에 승용차 크기의 납작 엎드려 있는 거북바위가 있다.

튀어나온 부위가 거북이의 머리와 앞발 뒷발을 빼닮았다.

 

매표소를 지나 S자로 굽돌아 오르는 오르막을 올라선 다음 3 - 4분 가면 왼쪽 아래 운계폭포로 가는 갈림길 안내판(운계폭포 0.1km)이 있다.

다음에 다시 오른다면 반드시 이 두곳을 지나쳐 사진이라도 남기려 마음 먹어 본다.

 

운계폭포, 인터넷에서 퍼온 사진 

 

많은 등산객들이 발길을 옮기고 가파른 시멘트 길을 따라 조금 오르자 암벽에 가냘프게 자란 나뭇가지 사이로 환하게 얼굴 내민 진달래 한 그루가 마음을 사로 잡는다.

하지만 이것이 오늘 진달래 구경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란 사실은 내려와서야 알게 되였다.

잠시 범륜사에 들려 동양최초 백옥석 관음상과 십이지상 그리고 대웅전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석탑을 디카에 남긴 후 넓은 등로를 타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범륜사 오름길 암벽에서 봤던 오늘 유일한 진달래 꽃 

 

범륜사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감악산에 있는 절로서 한국불교태고종에 속한다.

감악산에는 원래 감악사, 운계사, 범륜사, 운림사 등 4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모두 소실되었고, 지금의 절은 1970년에 옛 운계사터에 다시 세운 것이다.

창건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범륜사 대웅전 전경 

 

1481년 성종 12년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절이 존재한다고 기록되어 있고, 1799년 정조 23년에 편찬한 범우고에는 폐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현재 있는 건물은 대웅전과 강원, 요사채 등이고 요사채 옆에는 조선 후기의 기와 조각이 쌓여 있다.

조선시대의 탑재들을 조립하여 근래에 조성한 삼층석탑이 있다.

 

사적비에는 신라 때 의상대사가 운계사라는 이름으로 초창하고, 6·25 이후 잣나무 11만 주에 낙엽수 10만 주를 심은 후, 1973년 금봉 응섭 화상이 새로이 이 절을 중창했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등로 옆에 서 있는 범륜사 석탑 


잠시 오르자 벌써 더워진 날씨에 등줄기와 이마에선 땀방울이 배어 나오고 등로 옆 쉼터에서 자켓을 벗어 가벼운 산행 차림으로 오름짓을 계속 이어가 본다.

동출서류 제1약수란 약수터가 있었지만 이미 말라있어 물한방울 보이지 않고 이제부터 잣나무 숲을 따라 오르며 급할 것 없이 봄이 오는 계절의 변화를 느껴 본다.

 

화전민터 또는 묵밭 삼거리 전경 및 이정표 

 

잣나무와 낙엽송 길을 지나쳐 오르자 숯가마터가 있는 잣나무 쉼터의 벤취가 보이고 다시 진행하자 화전민터(묵밭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난다.

우측 계곡길을 버리고 좌측 나무 계단과 로프를 타고 오르자 샛골 갈림길이 나오고 다시 계속 오름짓을 이어가자 선고개로 이어지는 큰고개에 도착한다.

 

선고개 갈림길 전경과 이정표, 직진이 선고개 가는길이고 좌측이 묵밭 삼거리 하산길 

 

이곳에서 좌측 선고개길을 버리고 우측 까치봉쪽으로 틀어 오르자 서서히 북쪽 들판과 서쪽의 적성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고 조망도 좋아진다.

쌍소나무봉에 올라 벤취에서 잠시 휴식 취한 후 다시 내려 와 오라온 범륜사 하산길과 앞으로 올라야 될 감악산 정상을 조망하며 멋들어진 소나무에 올라 사진도 찍으며 느긋하게 산행을 즐겨 본다.

얼마나 많은 등산객들이 다녀 갔는지 표면이 반들거리는 소나무 옆에서 최고의 포즈로 영화배우가 된양 촬영도 해 보고 전망 좋은 바위에 올라 하늘을 맞닿은 사진으로 나 혼자만의 세상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바위와 소나무의 조화 

 

놀며 쉬며 물 마시고 널널하게 오르다 보니 어느덧 까치봉 바로 아래 쉼터에 다다르고 그곳에서 다시 한숨 돌린 후 가파른 바위를 타고 넘으니 까치봉이다.

아름다운 조망을 감상하고 몇장의 사진을 찍은 후 서서히 산행을 이어가니 나무 계단이 보이고 이제부터 여기가 휴전선과 가깝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많은 참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까치봉과 그 봉우리 정상에 있던 바위 

 

뒤돌아 보며 지나 온 까치봉도 다시 담아보고 가깝게 다가 온 정상도 맛보며 다시 로프와 나무 계단을 타고 오르니 팔각정이 보이고 동쪽 가까이에 통신 설비들이 거대하게 서 있다.

그 위쪽으로 정상부도 보일듯 말듯 가깝게 다가오고 살랑거리는 봄바람의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팔각정에 올라 준비한 막걸리 두어컵 마신 후 잠시 휴식을 취하며 땀을 닦아 본다.

 

감악산 정상 바로 밑에 있던 팔각정과 통신탑 

 

땀이 마르기 시작하자 봄바람이지만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다시 일어나 정상으로 향한다.

넓은 헬기장 한쪽에 정상석과 그 위에 감악산 신라 고비가 서 있다.

이 시간 아침 11시, 쉬면서 올랐지만 1시간 40여분만에 정상에 오른 것이다.

 

헬리포터로 이뤄진 감악산 정상 모습 

 

감악산

높이 675m이다.

예부터 바위 사이로 검은빛과 푸른빛이 동시에 흘러나온다 하여 감악 즉 감색바위라고 하였다.

이 일대는 광활한 평야지대로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였다.

원래 감악사, 운계사
, 범륜사, 운림사 등의 4개 사찰이 있었다는데 현재는 1970년 옛 운계사 터에 재창건한 범륜사만 남아 있다.

장군봉 아래는 조선 명종 때 의적 임꺽정이 관군의 추적을 피해 숨어 있었다는 임꺽정굴이 있다.

6·25전쟁 때는 격전지로 유명해서 설마리 계곡에 영국군 전적비와 대한의열단 전적비가 남아 있다.

 

감악산 정상석과 신라고비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으며, 의정부
북쪽 회천에서 양주시 남면을 지나 설마리를 거쳐 감악산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높이 20여 미터에 달하는 운계폭포가 나온다.

폭포 뒤로 범륜사가 있고 그뒤로 전형적인 암산의 모습을 띤 감악산이 보인다.

범륜사에서 감악산으로 오르는 길은 오른쪽 능선을 타고 임꺽정봉, 장군봉을 거쳐 정상에 이르는 코스와 남쪽에서 계곡길을 거쳐 올라가는 코스가 있다.

임진강 하류의 넓은 평야지대를 바라보면서 북쪽 능선을 타고 오르는 길도 있다.

맑은 날에는 개성의 송악산과 북한산이 보인다.

 

북쪽 농경지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진강 

 

산 정상에는 흔적도 없이 마모되어 글씨를 찾아 볼 수 없는 감악산비가 석대위에 우뚝이 서있다. 

파주시 향토 유적 제8호인 이 비는 글자가 없다고 하여 몰자비(몰자비), 또는 빗돌대왕비, 설인귀사적비 (설인귀사적비) 등 여러 개의 비 이름과 함께 전설들이 구전되어 오고 있다.

 

북동쪽 빗돌대왕비 뒤로 돌아서면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북동쪽 전곡 넘어 고대산, 금학산, 지장봉, 관인봉이 멀리 복주산과 함께 조망된다.

동으로는 마차산, 소요산, 왕방산과 그 뒤로 화악산, 명지산, 연인산, 매봉 등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이 좋은 조망을 보지 못하고 하산하는 것이 아쉽다. 

 

감악산 신라고비 모습 


감악산 신라고비

빗돌대왕비 또는 설인귀사적비라고도 한다.

1982년 6월 5일 동국대학교 학술조사단이 발견하였다.

학계에서는 비의 양식이나 건립 추정연대, 지형적 조건 등으로 보아 또 하나의 진흥완순수비로 추정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이유로는 비의 형식이 북한산비의 전체적인 외형과 흡사하고, 특히 기단의 경우 자연암반에 축을 형성하여 건립한 양식이 똑같으며, 크기는 감악산비가 높이 170cm, 두께 19cm, 너비 78cm인 데 비해 북한산비는 높이 155cm, 두께 20cm, 너비 71cm로 거의 비슷한 크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감악산 정상석과 신라고비를 배경으로 한컷 


김정호는 대동지지 적성조에서 감악산단을 기술하면서 '상유고비'라 기록하였으며, 조선시대에 발간된 적성군읍지에도 그 소재를 밝히면서 명문의 판독이 불가능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자가 마멸되어 없어졌으므로 고증할 수 없는 몰자비이다.

 

이곳에서 다시 사방팔달 탁트인 조망을 해 보고 북쪽으로 도도히 흐르는 임진강에 그 옛날 어려웠던 시절의 감회도 떠올려 본다.

군에서 제대할 때 군 생활을 한 이곳 북쪽을 향해서는 소변도 안보겠다고 약속한 것이 벌써 26년전, 하지만 세월의 변화만큼이나 많이 변한 산하를 다시 돌아와 바라보는 옛전우의 가슴엔 지난날의 어려움이나 고통보다는 그 때의 전우들이 생각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감악산 정상에서 임꺽정봉 쪽으로 내려오는 하산 목 계단 

 

10여분 휴식 취한 후 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오다 고릴라 바위란 이정표를 보고 그 바위를 찾아 보지만 비슷한 모습조차 보지 못하고 마구 보이는 바위를 찍어 본다.

그 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오니 부도골과 정상 그리고 임꺽정봉을 오르는 삼거리 안부에 도착하고 좌측 임꺽정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아마 이곳이 어름골재인 모양이지만 지자체에서 만들어 세워 놓은 이정표와 오래전 불리워지던 지명 이름이 다르니 헷갈릴 수 밖에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임꺽정국 또는 설인귀굴 설명판 

 

이곳에서 조금 오르자 다시 좌측 암봉 아래로 절벽이 보이고 그 한가운데에 임꺽정굴이 자리잡고 있다.

천길 낭떨어지 바로 앞에 바위로 이뤄진 작은 입구가 임꺽정굴 또는 당나라 장군인 설인귀 굴이라니 믿기지는 않지만 안내판에 그렇게 설명되어 있으니 안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임꺽정 (설인귀) 굴

조선지리 1918년판에는 봉암사를 소개하면서 '이 절이 바위로 이뤄진 굴속에 있는데 설인귀가 혈거한 곳으로 전해진다'고 기록하고 있다.


굴 상단부 입구는 어른 몸통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다.

발부터 집어넣게 되는 구멍에서 6 - 7m 깊이에 매어진 밧줄을 잡고 내려가면 3 - 4평 넓이 굴속이다.

남동쪽 해뜨는 방향으로 굴이 휑하니 뚫려 있다.

 

임꺽정 또는 설인귀 굴 입구 모습 

 

이 굴 안쪽으로 다섯 걸음을 들어가면 구덩이가 나오는데 깊이와 넓이를 추측할 수 없다고 한다.

이 굴은 적성현지(1842년판과 1871년판)에 등장하는데, 일설에서는 고려 말 충신 남을진 선생이 은거했던 남선굴이 바로 이 굴이라고도 한다.    

 

만약 이곳이 진짜 임꺽정이나 설인귀가 숨어 지내던 굴이라면 최고의 장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바라만 봐도 아찔한 낭떨어지 바로 전에 천혜의 이런 굴이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해진다.

암봉 절벽에 매달려 생명을 이어가는 푸른 소나무 한그루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며 가파른 봉우리 오르자 전망이 탁 트이며 다시 임꺽정봉(매봉재 또는 응암봉) 바로 직전 암봉에 도착한다.

 

임꺽정봉에서 바라본 장군봉과 460봉 그리고 그 능선상의 암봉들 

 

임꺽정봉 전망

삼각점(문산 22)이 있는 봉우리에서는 북서쪽 아래로 640m봉 암릉과 설마치계곡이 파주시내와 임진강과 함께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 방향 멀리로는 개성 송악산도 눈에 들어온다.

박무로 인해 보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 난다

 

신암저수지와 신암리 마을 


잠시 사방을 둘러보며 조망한 후 잠깐 매봉재에 들려 사진 한장 남긴 후 절벽 위 전망 좋은 바위 쉼터에서 준비한 점심을 펴 놓고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만찬을 즐겨 본다.

남쪽으로 신암저수지가 보이고 그 좌측으로 원당 저수지와 봉암(황방)저수지의 모습도 보인다.

또한 서쪽 하산길에 있는 장군봉(540봉)이 그림처럼 솟아 있고 그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절벽이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으로 가슴에 남겨진다.

인터넷으로 찾아 보니 이곳에서의 조망이 정말 좋다는데 박무로 인해 보지 못하고 하산한 것이 무척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임꺽정봉 정상, 오래된 사진을 인터넷에서 퍼와 안내판이 새것처럼 보임 

 

이곳에서의 조망은 북으로는 안골 건너 까치봉 능선, 그 오른쪽으로 감악산 정상이 마주보인다.

동으로는 거대한 암봉을 이룬 임꺽정봉 옆으로 동두천시가 시야에 와닿고, 그 오른쪽으로는 칠보산, 또 그 오른쪽으로는 불곡산 뒤로 수락산이 보인다.

남으로는 한북정맥과 함께 도봉산, 북한산 백운대와 인수봉 등이 그 오른쪽 한강봉과 함께 시원하게 펼쳐진다.

 

암봉과 소나무, 부조화속의 조화 


또한 지자체에서 오래전 정리해 놓은 등로의 명칭과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나와 있는 등로 이름과 봉우리 이름이 달라 헷갈리며 하루 빨리 확실한 고증을 통해 하나로 통일되기를 바래 본다.

중간에 독야청청 푸름을 간직한 채 버티고 당당히 서 있는 소나무의 기개에 사나이 가슴이 불타 오름을 느끼기도 해 본다.

 

많은 시간 머물며 막거리 두어잔까지 마신 후 다시 임꺽정봉으로 뒤돌아 가 로프를 타고 하산길로 접어 든다.

부도골과 봉암사 길을 버리고 범륜사길을 택해 암릉 능선길을 타고 넘으니 뒷골 하산 갈림길이 나오고 그 길을 버리고 장군봉(540봉)에 안착한다.

이제보니 이곳이 저 임꺽정봉에서 봤을 때 병풍처럼 생긴 병풍 바위가 아닐까 생각되지만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안타까움이 배어 나온다.

 

장군봉에서 바라 본 임꺽정봉 

 

각 인터넷 싸이트와 지자체마다 그리고 선답자마다 모두 다른 지명 이름과 봉우리 높이를 사용하고 있으니 어떤 것이 정답인지 이글을 정리하는 자신조차도 헷갈려 온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정리하다 보니 나중에 혹시 수정해야 될지도 모를일이지만 일단은 이렇게라도 후기글로 남겨 본다.

 

아마 이 봉우리 좌측으로 내려가면 얼굴바위와 신암사 터를 통해 신암 저수지로 하산하는 하산길이 된다.

여기에서 하늘에 맞닿아 있는 멋진 사진 몇장 남기고 그 암봉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바위틈에 생명을 이어가며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 유혹하는 소나무에 발길이 머문다.

그 소나무도 디카에 몇장 담아 두고 조심스럽게 암봉을 따라 내려가니 더욱 기묘하게 생긴 소나무 한그루에 많은 등산객이 머물며 사진 찍기에 바쁘다.

 

암봉속 소나무 2 

 

잠시 기다려 그곳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사진 작가가 되어 작품 사진 만들어 보기 여념이 없다.

뒤돌아 보니 저 멀리 하산한 감악산 정상이 아스라히 멀어지고 다시 희미한 저수지들을 사진으로 남긴 후 암봉을 타고 안부로 내려 온다.

이곳에 이정표가 서 있고 살펴 보니 다시 부도골 갈림길이다.

 

이것이 멧돼지 바위 ??? 

 

이곳에서 범륜사쪽으로 방향을 틀어 작은 암봉을 타고 오르자 다시 하늘이 열리면서 환상의 조망이 펼쳐진다.

기기묘묘한 암봉 한쪽 자리에 편안한 휴식처를 만들어 점심을 들고 있는 등산객도 보이고 정상에서 전망 구경에 여념이 없는 등산객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아마도 이곳이 460봉이 아닐까 생각된다.

희미한 등산 안내도가 서 있지만 보이지 않고 암봉으로 이뤄진 정상 바로 밑에는 큰바위가 덮혀 있어 통과굴 같은 형상의 바위들도 보인다.

 

멧돼지봉에 있던 굴 형상의 바위 

 

다시 뒤돌아 올라가 살펴보니 이곳이 돼지바위봉이라는데 돼지 형상의 바위는 보이지 않고 요상하게 생긴 많은 바위들이 널려 있다.

나중에 사진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는 희망으로 무조건 많은 사진을 남기고 건너편 바위를 바라보니 그곳에도 거대한 암벽 사이로 두그루의 소나무가 살아온 삶만큼이나 굴곡진 모습으로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고 그 소나무 그늘에 등산객이 몸을 피해 음식을 먹으며 휴식하는 모습도 보인다.

 

암벽에 매달려 푸르름을 지키는 소나무 두그루와 등산객들 

 

절벽에 피어난 푸른 소나무 꽃, 생각만으로도 즐겁고 보는 재미가 너무나 신이 나기에 그 모습도 남기고 완만하게 이어진 등로를 타고 그 마지막 봉우리로 오른다.

완전 암봉으로 이뤄진 봉우리로 로프는 없지만 크게 위험하거니 어려운 구간은 아니다.

 

다시 이곳에서 멈춰 휴식 취하며 정상에서부터 이어져온 능선과 그림처럼 펼쳐진 들판과 저수지를 찍으며 물한모금으로 목을 축여 본다.

저 멀리 파주와 적성 마을도 보이고 남으로 저수지들도 보이는 최고의 조망, 그래도 무한정 머무를 수 없는 시간이기에 다시 조심하며 암봉을 내려 오니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 당도한다.

임꺽정봉과 숯가마터 그리고 범륜사로 갈라지는 갈림길이기에 범륜사쪽으로 방향을 틀어 하산하기로 한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범륜사 

 

소나무 가지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골자기의 범륜사를 사진으로 남기고 우측 숯가마터 길을 버리고 그 암봉을 우회하듯 좌측 로프를 타고 내려간다.

무척 가파르고 미끄러운 하산로이기에 조심하며 내려가다 지도를 펴 보니 이곳에 개구리 바위가 있다는 글이 눈에 들어오고 낙엽 덮힌 등로 우측을 바라보니 어떻게 보면 개구리 모습으로도 보이고 또 어떻게 보면 그저 그런 평범한 바위로 보이는 바위가 서 있다.

 

개구리 바위 같기도 하고 아닌것도 같고 

 

잠시 배낭 내려 놓고 달려 올라가 여러 각도에서 사진으로 남겨 보지만 그 바위가 진짜 개구리 바위인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이제 마지막 남아 있는 병풍암을 찾아 낙엽으로 인해 희미해진 등로를 이리 저리 헤매이다 보니 어느덧 타고자 했던 능선을 우측으로 벗어나 물이 흐르는 계곡쪽으로 하산해 버렸다.

지도를 꺼내 확인해 보니 마지막 안부 갈림길에서 대부분 우측 숯가마터로 하산하고 이곳으로는 등산객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등로인듯 하다.

 

병풍암은 포기하고 숯가마터와 범륜사 중간의 넓은 등로로 이뤄진 계곡에서 잠시 멈춰 휴식 취하며 남아 있던 막걸리와 과일로 허기 달랜 후 어름장처럼 차가운 계곡물에 탁족으로 피로를 푸니 이곳이 또한 무릉도원이 되어 한참을 주저 앉아 버린다.

 

범륜사로 하산하면서 봤던 잣나무와 낙엽송 

 

이제 하산 지점이 눈에 보이기에 한참을 탁족도 하고 머리도 감으며 시간 보내고 넓은 등로로 올라 와 조금 더 하산하니 잣나무와 낙엽송이 반기고 오전 중 다녀간 범륜사가 산행 종료를 알려 주는 듯 하다.

가파른 시멘트 길을 따라 내려 와 애마가 기다리는 주차장에서 배낭 정리하고 좁은 길을 따라 342 지방 도로를 타고 피곤하지만 뿌듯한 하루를 마감하는 의식에 들어 간다.

 

하산 후 바라본 감악산 통신탑과 임꺽정봉 

 

박무로 인해 북쪽 송악산과 서울의 진산인 삼각산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생각보다 화창한 봄 날씨에 안전하게 즐긴 하루에 감사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