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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및 종주산행/산행 완료종주

백암사에서 내장산까지 예정 종주 산행

by 칠갑산 사랑 2008.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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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다녀 와야 될 백암산에서 내장산까지의 연계 종주 산행 자료를 정리해 본다

 

산행코스 : 백양사-0.9km-약사암-영천굴-0.9km-백학봉-2.4km-백암산(상왕봉)-2.2km-순창새재-

                소등근재-2.8km-까치봉-0.9km-연지봉-0.7km-망해봉-1.5km-불출봉-1.0km-원적암 -

                1.2km-내장사-3.2km-집단시설지구 

산행거리 : 약 18 Km

산행시간 : 약 8 - 9 시간 (사진 찍는 시간이 많으면 1시간 정도 늘어날 수 있음)

 

산행 지도 및 코스

 

 

볼거리 및 정보

 

백양산 (백암산, 741봉)

백암산이라고도 한다.

높이 741m로 최고봉인 백학봉을 비롯하여 가인봉(677봉), 옥녀봉(470봉), 상왕봉(741봉), 사자봉(723봉)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질은 산성화산암이며 대한 8경의 하나로 꼽혀 왔다.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는 약수천은 장성호로 흘러들며, 가인봉과 백학봉 사이의 계곡에는 백양사가 있다.

백양사 근처의 비자나무숲과 굴거리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또 백양산은 내장산, 입암산과 함께 내장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백양사

처음에는 백암사라고 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이다.

631년(무왕 32) 승려 여환이 창건하고, 고려에 들어 1034년(덕종 3) 중연이 중창한 후 정토사라 개칭하였다.

1574년(선조 7) 환양이 백양사라 이름하였다.

건물로는 환양이 세웠다는 극락전(지방유형문화재 32)이 가장 오래되었고, 대웅전(지방유형문화재 43)은 1917년 백양사 중건 때 지은 것으로, 석가모니불, 보살입상, 16나한상이 봉안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 건립한 사천왕문(지방유형문화재 44)과 1896년경에 세운 명부전이 있다.

이 밖에 백양사 재건에 힘쓴 소요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소요대사 부도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는 9층탑이 있다.

 

내장산(763봉)

영은산이라고도 한다. 높이 763m이고 노령산맥의 중간 부분에 있으며 신선봉(763봉)을 중심으로 연지봉(720봉)·까치봉(680m), 장군봉(670봉), 연자봉(660봉), 망해봉(640봉), 불출봉(610봉), 서래봉(580봉), 월령봉(420봉) 등이 동쪽으로 열린 말발굽 모양으로 둘러서 있다.

주요 지질은 백악기 말의 화산암류이고 주요 암석은 안산암으로 절리가 나타나 산꼭대기에는 가파른 절벽, 산 경사면에는 애추가 발달되어 있다.

식물은 참나무류, 단풍나무류, 층층나무류 등의 낙엽활엽수림이 주종을 이루고 능선에는 비자나무 등의 침엽수림이 나타난다. 

신선봉, 장군봉 등에 있는 굴거리나무 군락은 천연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되었다.

가을철 단풍이 아름다워 옛날부터 조선 8경의 하나로 꼽혔다.

백제 때 영은조사가 세운 내장사와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쌓았다는 동구리 골짜기의 내장산성이 있으며 금선폭포, 용수폭포, 신선문, 기름바위 등도 잘 알려져 있다.

등산로는 능선 일주 코스와 백양사까지의 도보 코스가 주로 이용된다. 

1971년 서쪽의 입암산(654봉)과 남쪽 백양사 지구를 합한 총면적 75.8㎢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보호, 관리하고 있다.

 

내장사

1895년(고종 32)에 내장원으로 명명된 관청으로 왕실의 보물, 세전, 장원 등의 재산을 관리하였다.

경, 보물사장, 장원사장 각 1명과 주사 9명을 두었으나 같은해 내장사로 바꾸면서 장 1명, 주사 5명으로 축소되었다.

1899년에 다시 내장원으로 이름이 환원되면서 경, 장원과장, 종목과장, 삼정과장, 수륜과장 각 1명과 주사 11명을 두었다.

1900년 공세과장, 기록과장 각 1명과 주사 1명을 두고 새로이 봉세관 13명을 두었는데, 이들의 전국적인 수세활동 중에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여 제주민란과 같은 대규모 민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1902년에 공세과를 공업과로 바꾸고 기사 3명, 전생과장 1명을 증원하고 1903년 감독 3명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