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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강원도 산

푯대봉과 덕항산 그리고 환선봉 연계 산행 후 환선굴 하산

by 칠갑산 사랑 2008.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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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0온누리 제1기 백두대간 제23차 삼수령(피재)에서 덕항산, 장암재 그리고 환선굴로 탈출한 산행 후기

 

날짜 : 2008년 02월 15부터 16일까지 (무박 2)

날씨 : 맑았으나 너무 춥고 많이 내린 눈으로 산행이 어려워 장암재에서

         환선굴로 탈출

온도 : 새벽 영하 18도에서 낮 최고 영하 06

참가인원 : 3450 온누리 산악회 회원 총 23(존칭생략) 칠갑산, 솜이사하라, 청목, 왕언니, 베짱이, 석불산, 무시로, 산바람,

               이철주, 풀뿌리, 진석이네, 인연, 자우롬, 고산자, 설총, 하이킹, 강태공, 여리, 운산, 피그, 도롱골, 나마스테

산행코스 : 삼수령(백두대간 산행 들머리) - 노루메기 - 한의령(건의령) - 푯대봉 삼거리 - 구부시령 - 새목이 -

           덕항산 - 지각산 환선봉 - 자암재(장암재, 백두대간 산행 날머리) - 환선굴 - 굴피집 - 골말 -

           매표소 - 환선굴 주차장(산행 종료)

산행거리 : 17.40 Km, 접속구간 03.00 km (장암재 - 대이리 환선굴 주차장)

산행시간 : 선두 12 시간 00, 후미 13 시간 00

준비물 : 2.3 리터이온음료 0.6 리터아침 밥, 반찬 3종류, 과일로

      단감. 사과, 복분자 0.5 리터쵸코렛, 수저 및 젓가락,

      1회용 커피 5, 라면 4개, 콩나물, 파 및 청양고추, 코펠,

      버너, 가스통 1개, 겨울 방수방풍의겨울용 모자 2, 땀수건,

      목수건 2 개, 얼굴마개, 겨울 장갑 2족헤드렌턴 및 예비 건전지,

      가위, 칼,  압박붕대에어파스, 구급약디카 및 예비 건전지,

      모발폰 및 예비 건전지무전기 3스틱 2상세 지도 및 

      산행 자료, 휴지 2쓰레기 봉투 1개.

버스에 두고 간 준비물 : 갈아 입을 옷 한 벌겨울 방풍의.

교통수단 : 45인승 버스 1

          신평고속관광 김명주 기사님

상세산행

2월 15일

23:00 서울 사당역 출발

23:20 복정역에서 약 10여분간 정차

2월 16일

00:45 치악 휴게소에서 약 40여분간 새벽 식사 및 휴식 

03:15 삼수령(피재, 산행 들머리)

03:50 팔각정을 우측에 두고 삼수령 탑 뒤쪽 능선으로 대간길 진행

04:02 이정표 (삼수령 400 m, 건의령 6.1 Km)

04:08 이정표 (삼수령 800 m, 건의령 5.7 Km)

04:59 이정표 (삼수령 2.8 Km, 건의령 3.7 Km)

05:06 345KV을태송전선로25호 0.2 Km 갈림길

05:14 이정표 (삼수령 3.5 Km, 건의령 3.0 Km)

06:02 이정표 (삼수령 6.0 Km, 건의령 500 m)

06:09 백두대간 생태복원 이정판, 강원도 삼림개발 연구원

06:20 한의령(건의령)

06:45 건의령 터널에서 약 20분간 알바

07:15 푯대봉 삼거리 (일출 감상)

07:22 푯대봉(1009.2봉, 일출감상)

07:26 푯대봉 삼거리로 뒤돌아 옴

07:30 이정표(한의령 1.2 Km, 구부시령 5.5 Km)

07:52 947봉

08:09 이정표 (한의령 2.8 Km, 구부시령 4.0 Km)

08:14 안부 및 좌측에 식수 조림지역

08:45 980봉

08:46 1012봉

08:52 잡목지대

09:12 997.4봉

09:43 1013봉

10:06 이정표(한의령 4.5 Km, 구부시령 2.3 Km, 후미 조 아침식사)

10:44 오르막 바위 지역

10:55 1055봉 (매봉산 천의봉 조망)

11:18 낙엽송 지대

11:33 구부시령

11:46 갈림길(길주의 - 좌측 예수원 및 외나무골 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11:51 새목이 공터

12:28 덕항산(1072.5봉, 산불 감시 초소)

12:42 갈림길 사거리(길주의 - 좌측 예수원과 외나무골 및 우측 환선굴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길)

12:53 쉼터 이정표

13:16 1050봉(길주의 - 좌측 무사동 하사미교회 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13:49 로프지대(산행주의)

14:00 지각산 환선봉(1081봉)

14:21 우측 사면길 등로 이용

14:50 헬기장

15:15 자암재(장암재, 백두대간 산행 종료 후 중간 탈출)

15:44 제2 전망대

15:53 제1 전망대

15:54 능선 정상 0.8 Km 이정표

16:03 천연동굴 및 이정표(환선굴 500 m, 제1 전망대 200 m)

16:04 철 계단 시작점

16:10 동굴 통과 지점

16:35 환선굴 갈림길

16:36 환선굴 등산 안내판

16:41 계단 끝나는 지점 및 환선굴의 유래와 전설 해설판

16:43 신선교

16:44 굴피집

16:46 통방아

16:50 환선굴 주차장 (산행 종료)

 

 

 

겨울 산행의 모든 어려움과 쉽게 허락하지 않는 백두대간 완주를 다음으로 미루고 아쉬움으로 돌아 온 구간

 

 

에필로그

 

사계절이 두번 바뀐 세월,

아무 지식과 준비도 없이 자신의 과욕으로 선뜻 나섰다가

햇수로 3년이란 긴 세월을 중단없이 이어온 백두대간 산행도

이제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는 시간이다.

 

2006년 8월 5일,

찌는듯한 무더위와

온 대지를 불에 달구는 폭염속에

댓재에서 시작한 백두대간 산행이 무모하게 보이고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남한 끝 진부령을 돌아 지리산 천황봉에서

2007년 2월 9일 다시 시작한 장도가

이제 한바퀴를 돌아 처음 출발한

그 장소에 뒤돌아 온것이다.

 

자연의 위대함을 배우고

과욕과 추월을 허용하지 않는 자연의 진리에

순응하는 법을 터득해 가며 한발 두발 걸어 온 수많은 봉우리들과 령들,

이름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그 자리 지키며

차별없는 산객을 맞이해 주던 마루금과의 지나온 사랑이

가슴에 쌓이며 반평생 살아 온 인생의 추억보다

더 진한 감동으로 사나이를 울리고 있다.

 

그리고

아직 마무리 할 수 없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진부령에 재차 인사 드리고 금강산과 백두산에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남아 있는 시간 충실히 몸과 마음 닦으며

변해가는 미래의 칠갑산을

가슴속에 그려본다.

 

산자분수령,

동서로 다른 자연과 삶을 

만들어 내는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생명 탄생에 필수적인 3강 발원지 삼수령에서의 출발은

살을 에이는 듯한 강추위와 어린 시절 꿈을 키워주던

심설속에 순조롭게 진행 되였지만

희미한 선답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새로운 길 만드는 산행의 고통을

몸소 체험한 구간이 되였다.

 

어둠속에 완만한 능선과 임도를 번갈아 타며

사방천지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 힘든 건의령까지의 산행은

차라리 종주대를 시험하기 위한

연습 산행이라고나 할까

 

한 국가가 명멸해 가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나라 잃은 슬품과

군신간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하기 위해 몸부림쳤을

선비들의 한이 맺혀 있는 건의령에서의 휴식은

마루금에 불어오는 칼바람과

허리까지 빠지는 심설을

녹이기에 충분했으리라.

 

심설과 바람이 만들어 놓은

자연의 신비함도 잊은채 이어지다 끊어지기를 반복하는

등로 찾아 이리 저리 헤매이다 푯대봉 정상에서 맞이하는

칠흙같은 어둠을 밝히는 찬란한 일출이

산객을 심오한 철학가와

문필가로 만들고 있다.

 

작은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바라 본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조금씩 사라져 가는 마루금의 벌목지대에서

그 아품 함께하고자 나눠 먹던 아침밥이 채 자연으로 돌아가기도 전에

구전 동화에나 나올법한 구부시령 전설을 읽으며

한 많은 여인의 기구한 삶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중천을 넘어가는 햇살을 받으며

석회암 지대를 상징하듯 보여주는 환상의 환선굴과

대한민국을 동과 서로 뚜렷히 가르는 둔중한 황소 등을 닮아

화전하기 좋은 땅으로 인식되어 온 덕메기산에서

가슴을 열어 젖히고 천지지간 서 있는

나를 발견해 본다.

 

더욱 깊어지는 등로 위 설원을

개구쟁이 어린이가 되어 넘어지고 미끌어지며 힘들게 진행하다

문득 눈을 돌리면 동해 바다가 넘실거리며 대 자연의 넓은 품안이 포근하게 감싸고

부드러운 여인을 닮은 능선을 무심으로 진행하지만

작은 내 자신의 한계를 느끼며 목적지인 댓재를

한참 못간 장암재에서 오늘의 발걸음을 접는다.

 

 

늘 가슴 떨리게 만드는 마루금에서의 일출 장면(푯대봉에서) 

 

산행후기

 

고도차가 심하진 않지만 도상거리가 길고 겨울 심설 산행이라 참여하는 종주대의 인원수가 마음에 걸린다. 

좋은 계절에 산행 할 수 있다면 많은 산우님들과 함께 갈 수 있는 멋진 산행지이지만 늘 가고 싶은 곳만을 �아 갈 수 없는 대간 산행길에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는 구간이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 이제 마음의 부담을 털어낼 시기도 되였건만 회차가 거듭 될수록 더 많은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니 시작에서부터 끝 마무리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멀고도 긴 여정인지를 다시 한번 절감하기도 해 본다.

 

지각산 환선봉 지난 헬기장에서 찍은 단체 사진 

 

일상이 되어버린 매2주 마다의 만남 그리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과 설레임, 개인적으로 백두대간 이어가기의 마지막 구간이란 단어가 가슴에 방망이질 치지만 어짜피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가 계획되어 있고 또 꼭 가야되는 일정이기에 생각보다 평온하게 종주대를 만나 머나먼 길을 나서본다.

 

무시로 친구님의 새로운 산행대장 등업이 새로운 활력이 되고 오랫만에 합산하게 되는 강태공님의 얼굴 보여주심이 반갑고 또한 나와 같이 개인적인 백두대간 완주를 이뤄낼 석불산 대장님의 마지막 투혼이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종주대의 등불이 되어 앞길을 밝혀주고 있다.

 

늘 다른 산우님들을 위해 애쓰시는 나마스테님이 준비해 주신 정성스런 완주 선물이 사나이 가슴을 적시는 동안 어둠에 묻혀 있는 삶의 발원지 삼수령에 도착한다.

 

산행 들머리 삼수령 이정석에서 나마스테님 

 

삼수령(피재)

높이 920m로,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분기점이며 삼강(: 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발원지이다.

이곳에 떨어지는 빗물이 북쪽으로 흘러 한강을 따라 황해로, 동쪽으로 흘러 오십천을 따라 동해로,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흐르는 분수령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하나의 이름이 전하는데, 삼척 지방 백성들이 난리를 피해 최고의 고향으로 알려진 황지로 가기 위해 이곳을 넘었기 때문에 '피해 오는 고개'라는 뜻으로 피재라고도 한다.

 

새벽 3시 39분, 해발 920 m의 삼수령 온도계엔 -13도를 가리키고 

 

한강과 낙동강 그리고 오십천이 발원되는 생명의 땅이자 동쪽 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넘어들던 고개란 전설을 간직한 피재에서의 아름다운 마지막 시간을 손 흔들어 이별하고 무릎까지 빠지는 설원으로 자취를 감추는 시간 새벽 3시 55분.

 

강이라는 고유 이름조차 얻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종주대의 가슴 속에 생명의 근원지로서 이름을 남기고 도도히 동해 바다로 흘러드는 오십천이 그리움으로 남겨지길 바라며 날씨와 기후 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생활 양식까지도 변화시키는 전형적인 백두대간 마루금의 위대함을 느끼고 배워보는 첫구간으로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덕항산 지나 우측 동쪽 방향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의 모습 

 

이제부터 백두대간 마루금은 동쪽의 절벽과 바다를 끼고 서쪽으로는 완만한 능선을 벗삼아 저 남한 백두대간 산행지의 끝자락 진부령까지 달려 가는 것이다.

을씨년스럽게 불어주는 겨울 찬바람을 헤치고 등로로 오르자 처음으로 된비알 오름짓 대신 쌓인 눈이 얼어 붙어 울퉁불퉁 계획없이 나 있는 도로 따라 완만한 마루금을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한다.

 

지금은 이 눈이 반갑고 또 즐거운 추억이 되지만 몇시간이 지나면 고통의 장애물이 되어 발목에 천근만근 달아 놓은 쇳덩어리처럼 우리들 종주대 앞길을 가로막고 있을 심설.

지도상으로 또한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글로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머릿속에 입력시켜 왔건만 지척도 분간하기 힘든 심설과 어둠으로 인해 지도상에 표기된 지점조차 찾아 보기 힘든 등로로 변해 있음을 느끼곤  처음으로 겨울 무박 산행의 어려움을 절감도 해 본다.

 

포장도로 따라 진행하다 좌측 능선으로 경사도를 높이는 노루메기 이정표 

 

능선길에서 포장도로를 따랐지만 이곳이 포장도로인지 능선길인지는 다만 눈이 치워져 있는 상태로만 알 수 있을 정도의 많은 눈, 포장도로 따라 진행하다 간신히 노루메기에서 좌측으로 나 있는 등로를 찾아 작은 봉우리를 넘자 삼수령에서 보았던 영하 13도라는 온도계는 그저 따스한 남쪽나라 이야기라는듯 매서운 얼굴을 스치는 겨울 칼바람이 금방이라도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얼리려는듯 매서운 기세로 종주대를 덮치고 있다.

 

이깔나무 지대라는데 정말 이곳이 이깔나무인지 확인할 길 없고 나즈막한 945봉 오르자 사하라 선등 대장님이 잠시 주춤거리며 길찾기 분주하다.

지도를 확인하니 우측 목장지대 철사줄이 있고 그곳을 따르라 적혀 있지만 거세게 불어오는 칼바람이 방금 종주대가 지나친 등로조차도 메워 버리는 악조건속에 알고 있는 등로조차 찾기에 벅찬 시간에 어떻게 그 철조망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960.2봉 전 안부에서 어둠속에 찍은 선두 단체 사진 

 

그저 지니고 있는 지도와 머릿속에 익혀둔 방향 감각에 의존해 간신히 미지의 등로 찾아 다시 평온한 길을 걷지만 옷속을 파고 드는 강추위는 자꾸만 종주대를 더욱 움츠러 들게 만들고 등로에 쌓여 있는 깊은 겨울눈은 먼나 먼 길 떠나는 종주대가 가는길 더디게 만든다.

 

그래도 가야하는 길이기에 열심히 등로 따르다 보니 어느덧 안부에 도착되고 이곳에서 몇갈래의 발자국으로 인해 다시 주춤거리며 길찾기에 어려움을 느낀다.

다만 앞에서 반짝이는 TV 안테나를 이정표 삼아 정신없이 진행하니 어느덧 그 안테나 불빛이 우측 뒷자락에서 깜박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등로에 서 있는 이런 이정표가 종주대에겐 큰 힘이 되고 

 

안테나를 보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쳤는지 아니면 선답자의 발자국이 좀 다른 길을 통해 대간 마루금으로 돌아 왔는지 분간하기 힘들지만 정상적인 등로만은 분명한 것 같아 좀 더 진행하니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표 밑에 새목이라는 작은 글씨가 반갑게 새벽 종주대를 맞이해 준다.

 

어두워 TV 안테나는 구경도 못하고 그저 불빛따라 새목이에 안착 

 

새목이

새밭골에서 철암 피내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산등이 잘록하여 새의 모가지처럼 생겨서 새목이라 한다 고 하며 혹은 철암과 문곡 사이에 있는 고개라서 새[사이]목이라 하기도 한다.

 

어둠과 심설 그리고 소리없이 그들과 친구되어 가는 대간 종주대를 방해하는 겨울 칼바람만이 모두 잠들어 있는 이 강원도 오지 심산을 달구고 있는듯 하다.

가파른 내리막을 브레이크도 없는 발 설매로 조심하며 내려가니 어느덧 한의령 일명 건의령에 도착한다.

이 시간 새벽 6시 20여분.

 

지도상엔 건의령이라 적혀 있고 한시간 정도 다시 진행하면 한의령이 있다는데 이곳이 한의령이라 적혀 있고 건의령이 없어 잠시 헷깔려 했던 한의령, 일명 건의령 이정표 

 

건의령 (巾衣嶺, 蹇衣嶺)

상사미에서 삼척시 도계읍 방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삼척 육백산 기슭 마읍(馬泣)의 궁터에 유배와 있을 때 고려의 충신들이 그를 배알하고 돌아 오면서 이 고갯마루에 이르러 복건과 관복을 벗어 걸어 놓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불사이군(不事二君)하겠다고 하였기에 그들 이 입던 복건과 관복을 벗어 건 고개라 하여 건의령(巾衣嶺)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건의령 아래에는 정승터라고 하여 고려 정승이 살던 터가 있고 건의령 동쪽 산언덕 육백산이 보이는 곳을 향해 아침 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하였다고 한다.

 

공양왕 사후 불사이군을 외치던 선비들의 한이 서려 있던 건의령의 전설 

 

선두와 중간이 함께 모여 후미 기다리며 곱아오는 손길 호호 불며 사진 몇장 남기고 쉬는 동안 저 능선 위에서 후미의 반짝이는 불빛이 보이고 그 마지막을 확인하자 마자 다시 가파른 등로를 타고 선두는 손살같이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다만 이곳에서 지도를 꺼내 확인해 보니 분명 지도상에는 건의령이라 적혀 있고 한의령은 한시간 이상 지나야 다시 나타난다고 적혀 있으나 등로를 따라 오르자 곧바로 건의령 700 미터로 적혀 있는 작은 이정표가 나무에 매달려 나풀거리고 있다.

 

푯대봉 갈림길 오르막에 맞이한 일출 

 

이곳에서 잠시 헷갈려 하며 무엇이 진짜 정답인지 골돌히 생각하는 사이 다시 선두와 중간이 건의령 터널을 따라 북쪽 입구까지 알바를 하고 그 사이 후미가 선두되어 정상적인 대간길로 진행하고 있다는 무전이 계속 이어진다.

 

아마도 건의령 터널에서 대간을 시작하는 산우님들 발자국 따라 무심코 따랐던 것이 알바의 원인으로 어둠속에 눈 쌓인 등로를 찾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일깨워 주는 듯 하다.

그래도 재빨리 정상적인 등로 찾아 푯대봉 갈림길을 향해 전진해 간다.

 

푯대봉 삼거리 이정표, 막 솟아난 햇살이 반짝이고 있다 

 

잘 생긴 적송을 바라보며 선두와 후미가 뒤바뀌어 제일 후미에서 오시는 사하라 선등대장님을 기다리며 천천히 진행하자 우측 동녘 하늘에선 이미 새로운 세상이 밝아오는 용트림이 이어지고 곧바로 너무나 황홀하고 장엄한 일출의 산고를 시작한다.

 

잡목 사이라도 좋고 넓게 시야가 트인 곳이라도 좋은 일출 감상, 늘상 보아오는 일출이면서도 유독 산상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왠지 모르게 다른 세계에서 바라보는 다른 해맞이로 다가오는 것은 모든 종주대의 느낌으로 그것이 바로 산에 들어오는 이유이며 기쁨은 아닐련지 생각에 잠겨 본다.

 

아무 발자국도 없는 푯대봉 정상석 직전에 바라본 푯대봉 정상 부근 

 

너무나 추운 날씨에 디카 밧데리가 계속 말썽을 부리고 그래도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단 한번 뿐인 그 장엄함을 남기기 위해 얼어오는 손끝을 불어가며 간신히 몇장의 사진을 남겨 본다.

드디어 푯대봉 갈림길, 이곳에서 대간 등로는 잠시 우측으로 나 있는 내리막 동쪽으로 향하다 다시 계속해 북쪽을 따를 것이지만 100미터 지근거리에 있는 푯대봉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아무도 가지 않은 그 길을 허리까지 빠지는 설원을 헤쳐 접근해 본다.

 

허우적 거리며 간신히 푯대봉 정상부에 도착하자 좌측에 철조망으로 보호되고 있는 산불 감시 카메라가 세워져 있고 그 우측으로 적당한 크기의 푯대봉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 정상석도 2007년 가을에 세워 놓았다 하니 그전에 다녀간 선답자들은 이 정상석을 보지 못하고 뒤돌아 갔을 것이다. 

 

2007년 가을 새로 세워진 푯대봉 정상석 

 

혼자만이 즐기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장쾌하고 아름다운 마루금이 하얀 설원 위에 펼쳐져 있고 걸리는 것이 없는 황홀하고 신비스럽기까지 한 일출이 작은 산객의 마음을 뒤흔들며 무아의 세상을 만들어 주고 있다.

 

가야 될 마루금도 잠시 버리고 넋을 잃고 바라보다 정신 차리니 움직이는 자신만이 홀로 심산속 심설에 놓여 있음을 깨닿고 고독한 푯대봉 이정석에 아쉬운 입맞춤으로 이별을 고한 뒤 재빠르게 남긴 발자국 따라 갈림길로 뒤돌아 내려와 외롭게 갈림길 지키고 있는 배낭을 둘러메고 가파른 하산길을 내려가 본다.

 

푯대봉 지나 벌목 지대로 보이는 설원 

 

지도를 확인해 보며 이제부터 완만한 고도차를 나타내는 능선을 따라 진행하기에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어디 백두대간 길이 편히 넘겨준 적이 있었던가.

947봉을 힘들게 오르자 좌측으로 벌목하여 하얀 눈이 쌓여 평원 같은 지대가 나타나고 피그 후미대장님이 후미를 이끌고 힘찬 추임새를 붙이며 독려하고 계신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잡목 사이로 보이는 지나온 푯대봉 원경 

 

그 안부에서 후미대장님 사진 한장 남겨 드리고 눈 앞에 보이는 951봉과 980 그리고 1012봉을 힘겹게 넘어 지나온 대간길을 바라보니 설원의 대간길이 너무나 아름답게 누워 있고 각 봉우리마다 하늘을 향해 힘찬 날개짓으로 커가다 홀로된 아품에 뒤틀리고 구부정한 수목들이 얼마나 삶의 고달프고 힘겨운지 대변해 주는 듯 하다.

 

눈과 바람이 만들어 놓은 자연의 신비 

 

너무나 힘든 고통을 안겨주는 심설이지만 북쪽 능선에 쌓여 있는 눈들을 강한 바람이 몰고 와 남쪽 사면에 퇴적 시키며 만들어 놓은 자연의 신비함에 그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눈과 바람이 빗어 놓은 자연의 신비, 어찌 보면 사막의 모랫 톱 처럼 인간이 도저히 범접하지 못할 대자연이 그려 놓은 그 그림을 볼 수 있음에 행운아를 되뉘어 보기도 한다.

 

이제 서서히 배가 고파오고 선두 사하라 리딩 대장님께 부탁하여 아침상 차리자 부탁하지만 종주대가 느끼는 체감온도가 영하 30도 이하로 내려간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 대니 장소 찾기에 큰 어려움을 느끼는 듯 하다. 

 

후미가 늦은 아침 식사를 즐긴 구부시령 2.3 Km 전 바람부는 안부 모습 

 

아마도 오랫만에 서로 떨어져 아침 식사를 해야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은 잠시 후 현실로 나타나고 꽁꽁 얼어 붙는 발과 손을 호호 불어가며 그래도 먹어야 간다는 평범한 진리 속에 후미들만의 조촐한 아니 진수성찬을 펼쳐 본다.

 

구부시령 2.3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 도착하자 몇몇 중간 종주대가 간식으로 배고품 달랜 후 곧바로 사라지며 중간은 출발한다는 소식만 짧게 전해 준다.

이제 남아 있는 후미는 총 6명, 청목님, 왕언니님, 자우롬님, 도롱골님, 피그 후미대장님과 이 칠갑산.

두개의 버너에 콩나물과 파 그리고 청양고추와 계란을 풀어 끓인 라면이 천상의 일품 요리로 등장하지만 폐속까지 파고드는 추위가 입맛과 밥맛까지 날려 버리고 단지 무슨 맛인지도 모르게 먹어야 간다는 진리 하나만으로 꾸역꾸역 뱃속을 채우고 있다.

 

낙엽송 지대에도 무릎 위까지 빠지는 눈의 세상은 이어지고 

 

심설에 금방 추위를 느끼는 산우님들도 하나 둘 출발하여 모두 떠나고 다시 홀로 남겨진 안부에서 마지막 정리하고 길 재촉하니 시간은 잘도 흘러 10시를 넘기고 있다.

이곳에서 부터 서서히 이번 구간 완주에 대한 회의가 들면서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겨울 심설 산행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해 본다.

 

더욱이 하나 둘 고통을 호소하는 산우님들과 탈출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종주대가 늘어감에 따라 어떤식으로든 결론을 내려야 하는 시기가 다가옴을 직감적으로 감지한다.

다만 버스에서 중간 탈출을 이야기 하였던 나마스테님만은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선두에서 잘도 진행하고 계시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어 본다.

 

구부시령 부근에도 자연이 빚어준 신비한 세상을 구경하며 

 

다시 어렵게 출발하여 1055봉을 넘자 지금까지 보다 더욱 많아진 심설이 발걸음 옮기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고 걱정이 되어 선두에 연락하니 예상대로 다닌 선답자의 발자국이 거의 없어 럿쎌에 가까운 어려운 산행의 연속이란 답변이 들려 온다.

 

보고 또 보고 언제 봐도 이국적인 모습의 매봉산 천의봉과 풍력 발전기들 그리고 고랭지 채소밭 원경 

 

그래도 다행인 것은 천상의 풍경화를 불려 놓은 눈과 바람의 조화가 눈을 즐겁게 만들고 지난 회차 올랐던 매봉산 천의봉과 풍력 발전기가 저멀리 가물거리는 모습으로 잡목 사이를 메우고 있는 풍경에서 빈곤속의 풍요를 생각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언제 보아도 멋들어지고 이국적인 모습에 잠시 배낭 내려 쉬며 줌으로 당겨 몇장 남겨 본다.

구부시령 가는 길, 이정표에 0.7 Km 남았다는 거리 표시가 나타나며 이곳에서 부터는 더욱 많은 심설에 다닌 흔적도 희미하여 어떤 곳에서는 허리춤 위에까지 올라오는 눈을 헤치며 낙엽송 따라 진행하니 어렵게 구부시령에 도착한다.

 

구부시령에 얽힌 전설을 적어 놓은 해설 판 

 

간신히 구부시령에 도착하여 함께가는 후미조 사진 남겨 드리고 좁은 설원에 펼쳐진 또 다른 신비스런 풍경화에 잠시 눈길 보내며 아름다운 산하에 고마움을 전해 본다. 

물 한모금 마시고 돌아 서는데 저 멀리 덕항산 자락에서 온누리를 부르는 정겨운 목소리가 들려 온다.

소리쳐 불러보니 중간 팀이 모여 이제사 아침밥 먹으며 잠시 휴식중이란다.

 

이제 댓재까지 진행해야 될 거리의 반만 진행했는데 시간은 벌써 

 

구부시령(九夫侍嶺·960m).

한자 이름 그대로, 만나면 죽고 만나면 죽고 해서 아홉 남편을 모셨다는 여인이 이 고개의 동쪽 삼척시 도계읍 한내리에 살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 한다.

실제로 그런 여인이 있었건 없었건, 따비밭에 목숨을 의탁해야 했던 강원도 산골 마을의 신산한 삶이 투영된 이름으로 들린다.

 

지금은 통행로로서 구실을 잃은 고개지만, 옛날에는 태백시 하사미동 외나무골과 삼척시 도계읍 한내리를 이어주던 고개였다 한다(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고개 이름이 구부대령(九夫待嶺)으로 되어 있다.

오식으로 보인다.

지리정보원이 지도제작과정에서 잘못한 것도 지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하나).

옛날 대기리에서 주막을 하던 여인이 지아비들이 계속 요절하는 바람에 지아비 아홉 명을 모시고 살았다
하여 이곳을 인생의 어려운 삶으로 표현하여 구부시령이라 부른다 한다.

 

덕항산 오르막 직전 넓은 공터를 지나는 산우님들의 뒷모습이 정겹다 

 

미끄러지듯 가파른 내리막을 엎어지고 구르며 타고 내려가자 넓은 공터 위에 하얀 설탕을 뿌려 놓은듯 햇살에 반짝이는 눈만이 그 넓은 공터를 채우고 있다.

이곳에서 다시 도롱골님이 중간 탈출을 이야기하고 지도를 보니 어짜피 덕항산까지 올라야 되는 길이기에 간신히 용기 드리며 덕항산을 향해 가파른 오름짓을 시작해 본다.

 

덕항산 오르기 직전 이제사 이침 식사를 끝내고 쉬고 있던 대여섯명의 중간 종주대와 반갑게 조우하고 잠시 쉬며 이슬이 한잔으로 차가워진 뱃속 달래며 힘들게 덕항산 정상에 도착한다.

이미 선두는 지각산 오름길에 있는듯 하며 구부시령 전에 먹었던 간식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아직 식사도 못한 눈치이다.

시간을 보니 12시를 넘긴 덕항산 정상.

 

덕항산 이정석은 눈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고 해설판만이 지키고 있다 

 

정상석은 너무 많이 내린 눈에 덮혀 보이지 않고 단지 덕항산 이정표만이 차가운 겨울바람 맞으며 외롭게 그곳을 지키고 있다.

 

덕항산(1072.5봉)

등성마루와 서쪽 기슭은 전체적으로 황소 등처럼 둔중하다. 산의 이름도 이런 산세에서 비롯됐다. 옛날 삼척 사람들이 이 산만 넘으면 화전(火田)을 할 수 있는 땅이 많아 ‘덕메기산’이라 하였으나 한자로 표기하면서 ‘덕항산(德項山)’이 되었다 한다.

덕항산(1,071m)은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와 하장면 하사미리의 경계선상에 위치하여 백두대간의 분수령을 이루는 산이다.

 

덕항산에서 바라 본 동해 바닷가쪽 전경 


덕항산에는 동양 최대의 동굴인 환선굴이 자리잡고 있어 삼척시에서 군립공원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가는 길은  영동고속도로 - 강릉시 - 동해고속도로 - 동해시 - 도계방향 35번 국도 - 신기 입구에서 우회전함으로서 산행들머리인 대이리에 도착하게  된다.
봉우리마다 독특한 멋을 한껏 뽐내며 산세가 아늑하기는 “여인의 품” 과 같아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산이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병풍암이  동남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산으로 주변에는 너와집, 굴피집, 통방아 등 많은 민속유물이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저 줄기를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다 보면 낙동정맥이 있을 터인데 

 

이곳에서 바라보니 남동쪽으로 낙동정맥 줄기가 흐미하게 가물거리고 동해쪽 구름 밑으로 파도가 넘실거리듯 착각을 일으킨다.

산불 감시 초소와 이정표 그리고 산우님들 디카에 담아 드리고 지도를 확인해 보니 댓재까지는 아직도 약 12 Km의 도상거리가 남아 있고 사하라 선등대장님과 연락 취해보니 갈수록 선답자가 없어 무릎, 아니 허리까지 빠지는 등로에 길을 내며 전진하는 것이 무척 고통스럽게 다가온다는 전언이기에 이곳에서 최종 결단을 내린다.

 

덕항산과 환본봉 사이의 이 쉼터에서 환선굴이 있는 골말로 하산이 가능하다 

 

나 자신의 완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온누리 종주대 모두의 안전이 우선이기에 장암재에서 환선굴쪽으로의 탈출할 것이라 전해 드리고 햇살이 드는 따뜻한 곳에서 잠시 휴식하며 기다려 주실 것을 부탁 드려 본다.

 

무척 춥고 배고픈 시간, 내가 아닌 우리들이 함께하는 종주대의 팀웍을 생각해 주며 기다려 주는 선두에게 무척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전하면서 좀 더 힘내 서두르니 우측으로 환선굴 하산 갈림길이 나오고 샘터라는 이정표가 반긴다.

 

환선굴로 이어지는 지방도로 및 주차장 그리고 저 멀리 동해 바다가 보인다 

 

다른 산악회 산우님들은 이곳에서 일부는 환선굴로 하산하였지만 나머지 일부는 장암재까지 우리들과 합류하여 하산하는 모습이 보인다.

같은 팀원이며 다음에 다시 와야 될 이 구간을 저렇게 달리 하산해도 되는지 으구심이 들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원칙과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뿐이다.

빠르게 그곳 쉼터를 통과하여 진행하니 다시 가파른 1050봉이 앞을 가로 막는다.

 

우측 동해 바다쪽으로 절벽이 좌측 서해쪽으로는 완만한 능선이 펼쳐져 백두대간 특유의 지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제 다른 산악회 회원들과 하나되어 앞서거니 뒷서거니 전진하며 물어 보니 그팀도 지난 회차 눈이 너무 내려 건의령으로 탈출하고 오늘 당일 산행으로 건의령에서 댓재까지 예정되어 있으나 우리와 같이 장암재에서 환선굴쪽으로 탈출해야 된다면서 많은 아쉬움을 나타낸다. 

그도 그럴것이 평소 같으면 한번에 종주했을 구간을 세번에 나눠 가야 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면서 백두대간 산행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나눠 본다.

 

앞으로 올라야 할 개간지 모습도 들어 오고 

 

더욱 힘들어 하시는 후미 산우님들 격려하며 마지막 힘 짜내 된비알 오르며 오른쪽 절벽을 바라보니 고통스런 산행을 달래주려는듯 로프 절벽 저 멀리 그림같은 골말과 덕말로 이어지는 환선굴 도로와 주차장이 펼쳐져 있고 그 넘어 동해 바다가 구름 밑에 숨어 푸르디 푸른 빛깔로 온통 하얗게 물들여 놓은 눈의 세상을 푸름으로 바꿔 놓고 있다.

 

추운 날씨에 후미 기다리며 벌벌 떨었을 선두팀의 환선봉 단체 사진 

 

또한 가야 할 대간 마루금 저 멀리에선 고랭지 채소밭이 설원으로 변해 또 다른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그 아름다움에 취해 비틀거리며 오르자 이내 지각산 환선봉이다.

이곳에서 선두와 연락하니 앞에 버티고 서 있는 무명봉을 우측으로 우회하여 허리까지 빠지는 눈속을 럿쎌로 헤치며 어렵게 진행한다면서 헬리포터에서 쉬면서 기다려 주신다는 연락이다.

 

심설 백두대간 산행인지 눈썰매 타는 기획 테마 산행인지 분간하기 힘들만큼 많이 내려 쌓인 눈속을 헤치고 진행하는 선두 사하라 대장님과 그 뒤를 따르는 선두팀 

 

이곳에서 부터 선두와 중간 후미를 서로 연락하며 간신히 선두에서 닦아 놓은 우회길 따라 내려가니 다른 팀들이 온누리 종주대를 따라 길 찾아줌에 고마움을 전한다.

선두는 이미 헬리포터에 도착하여 큰소리로 후미에게 길잃지 않도록 길잡이 및 힘을 북돋아 주고 후미는 최선을 다해 선두의 배려에 보답하는 모습에서 비록 중간 탈출은 하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 종주대의 저력임을 다시 한번 실감해 본다.

모두에게 고맙고 소중한 시간임을 배워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힘은 들지만 어린시절 개구쟁이도 되어 보는 즐거움이 있고  

 

너무 깊은 눈속에 허우적 거려도 보고 굴러보기도 하며 더디지만 남아 있는 힘짜내 진행하니 다시 짧게 반원형을 그리며 헬기장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마지막으로 자우롬님 모시고 짧은 구간 러쎌의 묘미를 전해 드린다.

 

이제 격려의 박수를 받으며 헬리포터에 도착하지만 후미 선두였던 하이킹님과 설총님 그리고 여리님이 무심코 다른 산악회를 따라 그 무명봉에 올랐다 내려오느라 제일 후미를 자처하고 있다.

그 헬리포터에 모두 모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힘들게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 완만한 능선을 따라 장암재에 발도장 찍은 후 큰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에 아쉬운 작별을 고한 뒤 우측 환선굴쪽으로 방향을 틀어 전진해 나아간다.

 

오늘의 탈출로 장암재 

 

환선굴
신기면 대이리 덕항산 자락의 석회암 동굴인 환선굴(幻仙窟)은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지정 되어 있다.
대이리 동굴 지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동굴로서 입구는 15m 폭 20m에 이른다. 굴속에는 장님굴새우 등의 희귀동식물과 아름다운 석순과 종유석 그리고 오래 전 수도승이 기거하던 온돌터와 아궁이가 남아 신비로움을 더한다.

환선굴 입구 전경 

 


지난 1998년 동굴 중 일부(총연장 6.5km 가운데 1.6km)가 개방됐다.
관람요금은 어른 4,3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2,100원.
주차료 1일 기준 소형 1,000원.

개방시간은 동절기(11월1일~이듬해 2월 말)는 08:30 ~ 16:00, 하절기(3월1일~10월31일)는 08:00 ~ 17:00. 소요시간은 매표소에서 동굴 입구까지 30분 소요, 내부 관람 1시간 합쳐서 총 1시간30분쯤 걸린다.

 

환선굴로 내려오며 바라본 우측 마루금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환선굴과 그 굴과 연결된 도로와 주차장과는 달리 수없이 놓여 있는 철계단을 큰 고통으로 타고 오르니 조망만큼은 최고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보기에는 얼마 남지 않은 환선굴 주차장, 하지만 경사가 너무나 심해 갈지자로 나 있는 등로에 로프까지 매달아 하산길은 생각보다 많이 걸릴듯 하다.

 

계단을 올라 이 동굴 터널을 넘어도 가파른 내리막 하산길은 끝이 보이지 않고 

 

다시 천연동굴로 이뤄진 터널을 올라 잠시 오르막 올랐다 로프에 몸 기대며 하산길 따라 내려오니 백두대간 산행중 가장 힘들고 고통이 수반되는 최고의 난이도에 고개를 떨구고 있다.

지루하고 지긋지긋한 그 하산길을 따라 내려오니 제2 전망대와 제1전망대를 지나고 능선정상 0.8 Km란 이정표를 통과하니 다시 천연동굴이 나타나고 환선굴 갈림길 계단을 내려오니 두번 다시 생각하기 조차 싫은 그 길도 끝이 보이고 드디어 아이젠을 벗어 버리니 이제사 조금의 숨통이 열리며 하루의 햇살도 힘없이 마루금에 걸려 그 빛을 잃어 가고 있다.

 

환선굴 갈림길 

 

근 한시간 반동안 어떻게 내려왔는지도 모르게 꿈속에서 헤매듯이 발길 닿는대로 내려와 배낭 정리하고 임도 따라 내려가니 아치형 신선교가 보이고 그 밑으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시원한 계곡물이 여름에 만나자 속삭이는 듯 하다.

 

다시 발걸음 재촉하니 골말 굴피집이 눈에 들어오고 잠시 서성이며 천년의 세월을 이어간다는 굴피의 생명력에 감탄해 본다.

 

대이리 굴피집  
굴피집이란 지붕에 굴참나무 껍질인 굴피를 덮은 집을 말한다. 대이리 골말에 있는 굴피집 (중요민속자료 제223호)은 300여 년 전 위쪽의 대이리 너와집에서 분가해서 건립된 것이라 한다.
이 굴피집은 처음엔 너와를 이었으나 1930년경 너와를 채취하는 데 어려움이 많이 따르자 너와 대신 굴피로 지붕을 덮게 됐다.

굴피집 지붕과 처마 모습 

 


이 집은 온돌방, 도장방(창고), 외양간 봉당(마루 앞 토방) 등이 한 지붕 아래 외벽으로 감싸져 있어 겨울 추위를 덜게 하고 산짐승 피해를 방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집안에는 고쿨(벽난로) 화티(불씨를 모아 두는 곳) 두둥불(호롱불을 설치하는 곳)들이 원형대로 잘 남아 있다.
골말엔 20여 채의 굴피집이 남아 있었으나 근대화에 밀려 점차 감소 지금은 이 집과 통방앗간만 있다.
마당에 평상을 깔고 식당을 열었으며 민박을 치기도 한다. 
 

허물어질 듯 쓰러져 가는 모습이지만 자연과 가장 동화되어 인간의 삶을 지탱해 주는 모습에서 자연과의 동화가 무엇인지를 배워보는 기회도 되어 본다.

 

대이리 너와집
너와집이란 지붕에 기와나 이엉 대신 얇은 나무판이나 돌판을 덮는 것인데 이 집은 나무판을 덮었다.
나무 너와는 질이 좋은 소나무를 길이 60~70cm 너비 30cm 두께 3~5cm 정도로 쪼개서 만든다.

목재라서 뒤틀리고 사이가 떠서 빗물이 샐 것 같지만 목재가 습기를 받으면 차분하게 가라앉는 성질이 있어 빗물이 새지 않는다.

대이리 너와집 


대이리 너와집(중요민속자료 제221호)은 지금의 집주인인 이종옥씨의 11대 선조가 350여 년 전 병자호란 때 경기도 포천에서 이곳으로 피난해 와서 짓고 정착한 것이라고 전한다.
민박을 치지 않고 노인만 사는 집이기 때문에 둘러볼 때 조심스럽다.
얼마간의 성의를 보여주면 방안의 코쿨 등을 찍게 해준다.

 

다시 조금 더 내려오니 대이리 너와집과 통방아가 보이고 그곳에서 팔고 있는 동동주 한잔 마시고픈 생각 간절했지만 기다리는 산우님들 생각에 다음에 다시 들려 꼭 한번 마시리라 다짐하며 그냥 지나친다.

이제 버스가 보이고 매표소를 지나 주차장에 들어서니 산행 후 처음으로 두 다리에 느껴지는 근육통에 아연 긴장감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대이리 통방아 
대이리 골말에 자리한 통방아(중요민속자료 제222호)는 100여 년 전 대이리 마을의 방앗간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일명 물방아 또는 벼락방아라고 한다.
이 통방아의 공이 위에는 원추형으로 굴피를 덮은 덧집을 만들어 놓았다.

대이리 통방아 


곡식을 찧는 틀인 방아는 디딜방아 물레방아 연자방아 물방아 등이 있는데 대이리 골말의 통방아는 물방아라 물이 흐르는 개울 옆에 설치한다.
물방아는 확(곡식을 넣는 돌통) 공이(찧는 틀), 수대로 구성된다.
물통에 물이 담기면 그 무게로 공이가 올라가고 그 물이 쏟아지면서 공이가 떨어져 방아를 찧게 된다.
사람이 발로 힘을 써서 디디는 디딜방아보다 힘도 세고 수월해 편리하지만 육중한 몸체 때문에 무척 느린 것이 흠이다.
하루에 벼 2가마를 찧을 수 있다 한다. 

 

환선굴 주차장에서 만난 등산 안내도 


 

부디 큰 부상이나 고통이 아니길 바라며 오랫만에 산행 후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갈무리 하니 너무나 힘들고 어려웠던 구간을 무사히 끝마침에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스스로에게 감사하는 기도를 올려 본다.

오후 4시 50여분.

 

장장 13시간 동안 눈과의 싸움을 무사히 잘 넘기고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는 종주대 여러분들께 감사 드리며 솜이 총무님이 백두대간을 완주하는 이 칠갑산과 석불산대장님을 축하해 주기 위해 준비한 케익을 앞에 두고 대간 사랑을 덕담으로 나누며 그렇게 하루의 마무리를 해 본다.

 

백두대간 산행 완주를 축하해 주기 위해 솜이 총무님이 준비한 케익과 촛불을 끄고 있는 칠갑산과 석불산 대장님  

 

오늘도 선두에서 없는 길 찾아 고생하신 사하라 리딩 대장님과 살갓을 파고드는 그 강추위 속에 후미를 배려해 주며 기다려 주신 선두팀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림니다.

 

또한 자신을 희생하며 늘 후미에서 안전 산행 돌봐주시는 피그대장님, 언제나 미안한 마음과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 전해 드리며 안 살림 맡아 늘 노심초사 수고해 주시는 솜이 총무님께도 고마운 마음 전해 드림니다.

 

항상 떠오르는 이 태양과 함께 마루금에 서 있기를 기도해 보며 

 

햇수로 3년 이어가기로 약 1년 6개월을 한번의 빠짐도 없이 그 긴 장도를 무탈하게 완주하신 석불산 대장님의 투혼에 큰 박수 보내 드리며 앞으로도 늘 온누리 대간팀과 함께하는 자랑스런 당신이길 바래 봅니다.

축하 드리며 그 동안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처음으로 완주하지 못하고 중간 탈출한 구간, 이것이 바로 백두대간 산행의 진정한 어려움이며 힘듦을 아려 주는 것 같아 내심 반가운 마음도 들었던 구간으로 기억 합니다.

남아 있는 구간은 조만간 날씨가 풀리면 당일 산행으로 마무리 하고 동해 바닷가로 나가 회와 이슬이를 친구 삼아 다녀오도록 진행하는 구간으로 남겨 놔 봅니다.

 

장암재에서 앞으로 가야 할 백두대간 마루금 

 

종주대 여러분, 다시 한번 감사 드리며 몸 관리 잘하시고 다음 회차에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반갑게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두대간 산행대장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