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맥산행(완료)/용암지맥(문수.완)

용암지맥 마지막 제2구간 이상리고개에서 송야천 합수점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22. 1. 18.
728x90

산행지 : 경상북도 안동시의 용암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2년 01월 14일 (금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맑았으나 너무나 추웠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16도에서 영하 05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이상리고개(924번 이하오산로 2차선 포장도로)-비포장임도-묘지 조망-85번 송전탑-86번 송전탑-무명묘지들-무명안부-가시잡목등로-87번 송전탑-참나무 무명봉-가시잡목 묘지등로-능선진입-무명안부-제선충 나무더미들-공터무명봉-일출(안동권공 묘지)-무명묘지-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율미골길)-시멘트 포장도로(율미골길)-갈림삼거리(우측)-직원주차장 도로표지판-거대한 양계농장-비포장임도(철판 가림막등로)-밭경작지-묘지지대-웅덩이 무명봉-비포장임도 갈림사거리 안부-벤취쉼터와 거울-무명묘지 길주의(우측)-시멘트 포장도로(덕고개길) 안부-함안조공 묘지들-옥달봉 갈림삼거리-옥달봉(263.7봉 이정판, 306건설부 삼각점, 공터)-갈림삼거리 복귀-비포장임도-밭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사거리(윗지르내길)-비포장임도(그물망 밭경작지)-개활지 등로-비포장임도 절개지 안부(공사중)-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 안부-벌목지 능선등로(우측)-무명안부-산불감시초소 무명봉-벌목 후 소나무 조림등로-한티재(제비원로 2차선 포장도로, 주유소와 기사식당, 휴게소)-교통호 무명봉-비포장임도 안부-그물망 밭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두무티길)-비포장임도-무명묘지2-비포장임도 갈림사거리 성황당 안부-묘지들-길주의 지점(자동화사격훈련장 경고판, 군부대 철조망. 우측능선)-소나무 식재지-비포장임도-사격장 안내도와 경고판-웅덩이 무명봉-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벤취쉼터들과 거울 공터봉-시멘트 포장도로-사곡육교(5번 경북대로 4차선 포장도로 통과)-밭경작지-잡목등로-민가 위 능선등로-공터무명봉-묘지지대-시멘트 포장도로(송현배수지)-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직곡길, 킨포크카페 이정판)-비포장임도(그물망 밭경작지)-전원주택단지 절개지-우회등로-민가통과-시멘트 포장도로-가파른 절개지-비포장임도-189.1봉(준희님 이정판)-절개지 능선등로-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참나무 비포장임도-182.2 삼각점봉(준희님 이정판, 인식불가 삼각점)-타이어 초소봉-철조망 통과-공사장 절개지 능선등로-통나무 벤취쉼터-그리스도의교육 수녀회-그물망 밭경작지-시멘트포장도로(노하길)-송현동고개(노하길 1차선 포장도로)-밭경작지-비포장임도-아파트단지 무명안부-155.2 갈림삼거리(운동기구와 벤취쉼터)-155.2봉(참나무 공터봉)-갈림삼거리 복귀-송현길 4차선 포장도로-송형휴먼시아아파트와 송현이안아파트-경동로 4차선 포장도로-비닐하우스와 밭경작지-비포장임도(우시골길)-그물망 밭경작지-갈림삼거리(우측)-무명묘지2-묘지지대-녹슨철조망 등로-153.8봉(콘크리트말뚝)-절개지 능선-한빛모터스-4차선 포장도로-잡풀과 잡목등로-비포장임도-공터무명봉-관목과 잡목등로-의성김공 묘지-시멘트 포장도로(호암길)-낙동강 뚝방 포장도로-호암제 표지석-낙동강 철로통과-호암2배수지-송야천 합수점-산행종료

산행거리 : 13.33 Km (이상리고개에서 송야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까지)

산행트랙 :

20220114 용암지맥 제2구간 이상리고개-송야천 합수점.gpx
0.16MB

산행시간 : 03시간 49분 (07시 12분부터 11시 02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6시 10분 안동시 꿈의궁전 모텔에서 기상 후 출발

                            06시 40분 모텔 근처 편의점에서 미역국과 햇반 및 김치로 아침 해결 (12,000.-)

                            07시 12분 산행 들머리인 이상리고개에 도착해 여명이 밝기를 기다렸다 산행 시작

                    올때 - 11시 02분 송야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호암2배수지에서 용암지맥 산행 종료

                            14시 30분 옆지기의 도움으로 편안하게 합수점에서 배낭 정리 후 곧바로 귀가

유봉지맥이란 ???

백두대간의 옥석산(1242m)에서 남쪽으로 가지를 친 문수지맥을 따라 내려 온 봉수산(570m)에서 또 하나의 가지를 쳐 용암산(475봉)과 오로산(343.6봉) 및 목성산(240봉)을 거쳐 안동시 운흥동 반변천과 낙동강이 합치는 곳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3.6 Km의 비교적 짧은 지맥으로 안동호 서쪽 분수령이 되는 산줄기이다.

 

 

옆지기의 도움으로 편안한 교통편을 제공받고 비포장임도를 따라 빠르게 진행하여 송야천 합수점에서 용암지맥 산행을 마무리한 후 안동 여행을 즐기려던 계획은 추위로 포기하고 일찍 귀가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용암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경상북도 안동시와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및 네이버의 지식백과,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어제는 오랫만에 옆지기의 도움으로 편안하게 교통편이 해결되고 날씨까지 추워 배낭의 무게가 줄어들고 휴식시간이 짧아져 걱정했던 날머리인 이상리고개까지 긴 산행인데도 예상보다 일찍 도착을 해 어둡기 전에 안동으로 이동을 하고 안동의 유명한 먹거리인 찜닭으로 하루를 마감하다 보니 이 산객의 산행과 옆지기의 여행이란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날이 되었다.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살펴보니 이상리고개에서 송야천 합수점까지는 대략 15 Km 전후로서 6 시간이면 될 듯 싶은데 약간의 거리차이가 있어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 7시를 넘겨 출발하면 오후 1시 전후로 산행이 마무리 될 것 같아 그렇게 예상하고 출발하게 되었는데 등로가 너무 좋아 예상보다도 훨씬 이른 시간에 마무리하고 도로 정체없이 이른 시간에 귀가할 수 있었다.

다만 낮의 길이가 조금 더 긴 계절이었다면 당일 원샷으로 진행해도 무리가 없을만큼 근래들어 가장 좋은 등로를 따라 진행된 산행으로 기록하게 되었다.

 

옆지기의 도움으로 산행 들머리인 이상리고개에 도착을 해 등산화를 갈아 신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바람은 잔잔한데 너무나 추운 기온으로 다시 차량으로 들어 가 온도를 확인하니 영하 16도를 가리키고 있어 오늘 하루 산행이 걱정되는 날씨이자 시간이다.

그래도 진행해야 할 산행이기에 걱정하는 옆지기를 안동으로 먼저 보내고 비포장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오늘 등로는 거의 모두가 고도차이 없이 임도나 시멘트 포장도로 수준이라 거침없이 진행되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하게 되어다.

ㅛ지 위에서 일출을 만나고 대형 축사 주위로 이어지는 비산비야를 따라 빠르게 전진하니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옥달봉 지나 군부대 사격장과 전원주택단지를 어렵게 통과하니 189.1봉 지나 드높은 절개지 상단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인 북서쪽을 살펴보니 좌측의 문수지맥 보문산에서 가장 높게 솟아 있는 학가산 지나 우측 앞으로 상산에서 천등산과 조운산이 겹쳐 보이고 그 우측으로 이름없는 무명봉들이 연달아 솟아 있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한동안 많은 사진에 담고 그 이름들을 불러 준 후 다시 출발한다.

 

동네 산책로 같은 넓은 비포장임도와 드넓은 공사장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지는 등로 위에서 안동의 아파트단지들 뒤로 갈라산과 갈라지맥도 확인하면서 배려를 해 준 그리스도의교육 수녀회 건물을 무사히 통과하니 다시 동네 산책로와 아파트 단지들이 나타난다.

이제 이름있는 마지막 153.8봉 넘어 넓은 4차선 포장도로의 솔티고개를 건너 마지막 무명봉을 통과하니 드디어 낙동강 뚝방에 도착을 하고 그 뚝방길을 타고 서쪽으로 한참을 걸어가니 드디어 북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송야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호암2배수문에서 남쪽 저 멀리 낙동강 위에 건설된 서안동대교를 바라보며 이틀간 진행한 용암지맥이란 이름의 산줄기 잇기 산행을 마무리하고 뒤따라 온 옆지기의 도움으로 간단히 등산복을 갈아 입은 후 곧바로 고속도로를 타고 귀가하니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일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어제 옆지기의 도움으로 편안하게 길게 진행을 했기에 오늘은 조금 더 여유롭게 일어나 모텔 근처의 편의점에서 든든하게 아침까지 챙겨 먹고 산행 들머리인 이상리고개 위로 도착을 하니 새벽 6시 50여분이 지나는데 아직도 세상은 어둠속에 잠겨있어 차안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차량의 온도계는 영하 16도를 가리키고 있어 재빨리 날씨 정보를 확인하니 영하 19도까지 떨어져 있어 이게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이다.

이제 7시 10여분이 지나니 여명이 밝아오고 헤드렌턴의 불빛 없이도 산행이 가능할 것 같아 옆지기를 다시 안동으로 돌려 보내고 비포장임도를 타고 산행을 시작하는데 어제보다 기온은 더 떨어졌는데도 바람이 불지 않아 체감온도는 더 높게 느껴지고 있다.

이곳 이상리고개는 이상리에 있는 고개라서 임의로 붙여진 이름으로 이상리는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리로서 중앙선이 마을을 관통하며 여러 개의 못이 위치한다.

자연마을로는 중리, 농막앞들, 도가못, 샘골, 황새골 등이 있는데 중리는 중앙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고 농막앞들은 처음에는광산 김(金)씨가 입주하여 살았으며 이 후 진성 이(李)씨가 입주하여 세거하다가 농막(農幕)으로 주었다 하여 생겨난 지명이다.

도가못은 도가(都家)에서 수리용으로쓰기 위해 조성한 못이 있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고 샘골은 좋은 샘이있어 붙은 이름으로 한샘골이라고도 하였으며 황새골은 옛날 송림(松林)이 울창하고 산세가 아름다워 황새가 많이 깃들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시ㅐㅇ각보다 너무 좋은 넓은 비포장임도의 고도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평지 수눚의 마루금을 따라 몸의 열기를 높히기 위해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몇기의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좌측인 동쪽으로 조망이 열려 살펴보니 이제 막 일출이 시작되려는지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그 아래 이제서야 기지개를 펴기 시작하는 세상이 조금씩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바로 앞으로 와룡면 이상리와 이하리 마을과 무명 산줄기가 아직도 짙은 어둠속에 묻혀있고 그 뒤로 보이지 않지만 낮아진 안동호와 낙동강이 숨어 있으며 그 뒤로 조만간 만나야 할 나즈막한 덕산지맥이 확실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그 뒤 저 멀리 영등지맥의 영등산과 아기산 지나 우측 가장 먼곳으로 낙동정맥의 주왕산 자락이 더욱 붉게 물든 모습으로 이 산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생각보다 너무 아름답고 황홀한 풍경이기에 조금 더 머물며 몇장의 사진에 담는 사이 온 몸이 벌써 얼기 시작하고 얼굴에선 서린 김이 얼면서 금새 고드름이 되어 버려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곧바로 출발하며 얼었던 몸을 데우기 시작한다.

잠시 후 또 다시 무명묘지들이 좌측으로 보이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등로에는 활엽수 낙엽이 깔려있고 잠시 후 완만하게 올라 85번 송전탑을 통과한다.

다시 이어지는 평이한 소나무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이곳 역시 제선충 훈증더미들이 보이고 곧이어 참나무 등로가 이어지더니 86번 송전탑도 통과한다.

그 송전탑을 지나 조금 더 평이하게 걸어 전진하니 등로가 완만하게 내려가기 시작하는 지점부터 등로 방향으로 활엽수 낙엽들이 덮혀 있는 무명묘지들이 줄지어 나타나기 시작한다.

 

울퉁불퉁 무명묘지들을 따라 한동안 완만하게 내려가니 다시 참나무 능선 등로로 바뀌고 무명안부 지나 잠시 더 걸어 오르니 갑자기 말라있는 덩굴 잡풀들이 등로에 보이기 시작하고 그 등로를 지나 오르니 굵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거대한 참나무봉을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다 등로 좌측인 북동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앞쪽으로 방금 전 이상리고개에서 헤어졌던 924번 이하오산로 2차선 포장도로가 와룡면 방향으로 달려가는 모습 뒤로 와룡산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덕산지맥 마루금과 낙동장맥 마루금까지 겹침 산줄기의 모습으로 흐미하게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고 산행을 이어간다.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희미하게 보이는 봉우리 이름들을 확인해 보지만 워낙 거리감이 있고 특이한 모습을 한 봉우리들도 없이 도토리 키재기 하듯 늘어서 있어 그 봉우리들을 분별하기가 어려워 다시 진행을 재촉하니 등로는 이제 남동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그 위에는 지독한 가시잡목이 뒤덮혀 있어 힘들게 헤치며 통과한다.

잠시 더 그 가시잡목들을 어렵게 통과한 후 뒤돌아 보니 다시 아카시아나무들과 키가 크고 말라있는 잡풀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가 보이고 사진에 담고 다시 천천히 전진하니 눈 앞으로는 다시 관목의 참나무 등로에 쓰러진 고사목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독한 가시잡목과 참나무 등로 위 쓰러진 고사목 등로를 지나니 원 마루금은 좌측 능선으로 올랐다 우측 아래로 내려 와야 하지만 특별할 것도 없기에 우측 사면 등로로 우회하는 마루금을 따르니 등로는 이제 동쪽에서 우측인 남서 방향으로 크게 꺽여 완만하게 이어진다.

활엽수 낙엽이 푹신하게 깔려있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87번 송전탑을 통과하고 굵은 참나무가 한그루 보이는 무명봉 넘어 길게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다시 고사목들이 보이더니 무명묘지 지나 우거진 잡목과 잡풀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도 그 우거진 잡목과 잡풀 사이로 이 산객이 지날 수 있는 등로가 열려 손쉽게 통과하니 무명묘지 지나 공터로 이어지고 그 공터를 지나자마자 등로 양쪽으로는 제법 키가 큰 잡목 터널이 열리면서 좌측으로 거대한 축사들이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다 보인다.

약간은 역한 축사 분뇨 냄새를 맡으며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타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는 좌측으로 흐르고 마루금은 우측 활엽수 낙엽들이 쌓여 있는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입구에는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어 길찾기는 어렵지 않다.

능선으로 올라 잠시 더 걸어가니 갑자기 푹 패인 무명안부가 나타나는데 좌측의 와룡면 이하리와 우측의 안동시 이천동의 경계를 이루는 무명안부이다.

 

그 무명안부 지나 참나무 능선으로 오르니 많은 제선충 방지용 훈증더미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좌측 나뭇가지 아래 이하리 방향으로는 거대한 축사들과 민가가 살짝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더 평이한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르니 관목의 참나무가 서 있는 무명공터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남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안동권공 부부묘지 위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서 등로 좌측 앞 이하리 방향 저 멀리 오늘 하루 세상을 밝혀 줄 찬란한 태양이 나뭇가지 사이로 떠 오르기 시작한다.

 

모바일 폰의 한계를 절감하며 일출 장면을 몇장의 사진에 담은 후 그 묘지를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조금 더 선명한 축사와 논경작지들이 내려다 보이고 등로는 여전히 참나무 아래 활엽수 낙엽 등로가 이어지더니 무명묘지 한기를 통과한다.

묘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와룡면 이하리 율미골길이라는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방금 전 내려 온 능선 방향 우측 뒤로 진행하면서 이하리 방향으로 내려다 봤던 율미골마을의 거대한 축사들과 민가 그리고 논경작지들이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율미골(栗美谷 또는 유을산동猶乙山洞)은 경북 안동시 와룡면 이하리의 자연마을로서 산막골 남쪽에 있는 마을이며 마을길을 따라 논밭이 이어져 있다.

이 마을은 옛날에 밤(栗)이 많이 생산되었던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 율미골 혹은 이명(異名)으로 유을산동이라고도 하는데 지금도 늙은 밤나무가 산기슭 여기저기에 몇 그루가 남아 있고 예전에는 4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독가촌이다.

 

이제 율미골 방향의 축사들을 확인하고 율미골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남쪽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는 그물망이 설치된 작은 밭경작지도 보인다.

그렇게 잠시 더 꼬불꼬불 이어지는 오르막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다시 갈림사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우측 도로를 타고 전진하니 전봇대 아래 직원주차장이란 작은 이정판 지나 진행 방향 좌측으로 가대한 축사 건물들이 나타나고 살펴보니 등로는 그 축사 우측 울타리를 따라 이어지고 있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농장 이름도 표기되지 않는데 주소로 확인해 보니 와룡농장으로 농장에 대한 자료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와룡농장을 살펴보고 그 농장 앞으로 도로 따라 들어가며 조금은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사람을 만나지 않아 무사히 정문을 통과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농장을 살펴 보지만 어느 가축을 기르는지 또는 어떤 이름의 농장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 농장 입구 앞에서 농장입구로 내려가는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 비포장임도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에 와룡농장 철판 가림막을 따라 진행되고 그 끝자락에서 등로는 좌측인 남쪽으로 크게 꺽이는데 잠시 더 그 철판 가림막 등로를 따르니 밭경작지가 나타나는 곳에서 농장 가림막은 좌측으로 흘러 내려가고 등로는 밭경작지를 타고 오르며 이어지고 있다.

밭 경작지를 지나니 무명묘지가 보이는 무명봉을 통과하고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니 진행 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묘지지대가 펼쳐져 있다.

 

잠시 그 묘지들을 따라 통과하고 능선으로 진입해 작은 웅덩이와 굵은 소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으로 오른 뒤 사진을 남기고 지도를 확인해 보니 오늘 새벽부터 걸어 온 이하리와는 헤어지고 안동시 이천동으로 들어가는 경계지점이다.

이하리는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리로서 중앙선이 마을을 통과하며 여러 개의 못이 위치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산매골, 솔골, 역전, 왕상골, 율미골, 아름달 등이 있는데 산매골은 예전에 나무를 베기 위한 산막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솔골은 골이 길고 주위의 산에 우람한 노송(老松)이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역전은 1930년대에 중앙선이 부설되고 이하역(伊下驛)이 생기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왕상골은 신라 시대에 어느 왕이 이곳에 행차하였을 때 주안상을 차려 만찬을 베풀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율미골은 옛날에 밤(栗)이 많이 생산되었던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아름달은 아름달산 밑에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제 이하리 무명봉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활엽수 낙엽을 따라 이천동 방향으로 내려가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반겨주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제선충 예방 훈증더미와 갈림삼거리 비포장임도 안부에 도착을 해 우측을 보니 제법 잘록하게 패인 이천동 안부이다.

 

무명안부 지나 넓은 비포장임도의 뚜렷한 등로를 타고 이제 서쪽 방향으로 진행되고 잠시 편안하게 걸어가니 등로 좌측인 남쪽 방향으로 잠시 조망이 열려 살펴보니 나즈막한 산줄기 중간에 안동시의 아파트 단지들이 살짝 멍리를 내밀기 시작하고 그 뒤로 흐르는 낙동강은 보이지 않는데 그 낙동강 건너 2년 전 걸었던 갈라지맥의 갈라산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그 좌측으로는 갈라지맥 상 기룡산이 솟아 있으며 그 좌우측으로 큰 고도 변화없이 길게 이어지는 산줄기가 시원하게 보인다.

 

생각지도 못한 안동시와 갈라지맥 산줄기와 봉우리들을 확인하고 잠시 더 뚜렷한 낙엽송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좌측인 남서 방향으로 틀어 이어지고 곧이어 벤취쉼터 하나와 커다란 거울이 낙엽송에 부착되어 있는 공터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 좌측인 동쪽에서는 방금 전 떠오른 강렬한 햇살이 따스하게 비추고 있어 이곳에서 방풍의와 조끼를 벗어 배낭에 넣고 물 한모금 마신 후 동쪽 방향으로 펼쳐진 풍경과 조망을 감상하고 진행하기로 한다.

 

등로 좌측인 동쪽으로 방금 전 떠 오른 태양의 강렬한 빛이 차갑게 식어버린 대지를 따스하게 비추지만 워낙 추운 날씨와 낮은 기온에 쉽게 온도가 오를 것 같지 않고 그 강렬함으로 인해 그 아래 펼쳐진 산그리메를 확인하고 사진에 담는 것도 쉽지 않다.

바로 발 아래로 이하리 방향의 농로와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안동호와 낙동간 직전 나즈막하게 솟아 있는 무명산줄기 지나 저 멀리 덕산지맥과 영등지맥 넘어 낙동장맥 마루금이 중첩된 모습으로 길게 펼쳐져 있지만 거리감도 있고 그 위 떠 있는 강렬한 태양빛으로 인해 정확한 이름까지 불러 주기엔 어려움이 있어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몇장의 사진으로 담아 본다.

  

벤취쉼터에서 동쪽과 남동쪽으로 조망을 즐기고 따스한 햇살을 받아 기온을 올리고 다시 출발하니 약간 흘렸던 땀이 식으면서 초반부에는 한기로 인해 진행에 어려움을 느껴 조금 더 발걸음을 빠르게 진행한다.

소나무 등로 지나 무명묘지가 보이는 곳에서 등로는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야 하는데 그 입구에는 친절하게도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조금만 주의를 하면 길잃을 염려는 없다.

이제 등로는 다시 남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고 관목 사이로 뚜렷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금새 비포장임도 지나 덕고개길이란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으로는 깊게 패인 무명안부의 모습도 보인다.

덕고개길이란 도로명이 보여 찾아보니 덕고개는 이천동에 있는 고개 이름인데 어느곳을 말하는지 위치에 관한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덕고개길이란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우측으로 몇발자국 걸어 오르니 깊이 패인 안부가 나타나고 그 안부 직전 좌측으로 묘지들이 올려다 보이는 방향으로 밭경작지 경계를 지나 오르다 좌측을 내려다 보니 민가와 축사들이 내려다 보이고 진행 방향으로는 함안조공 묘지들이 보이는데 등로는 그 묘지 뒤로 이어지고 있다.

묘지들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잠시 잡목들이 막고 그곳을 통과하니 옥달봉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의심할 것 없이 배낭 내리고 잠시 우측인 북쪽으로 옥달산을 다녀오기 위해 무명봉 지나 안부를 통과하니 넓은 공터 한가운데에 306복구 건설부란 오래된 삼각점이 박혀있고 나뭇가지엔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과 263.7미터의 옥달봉이란 종이코팅지가 걸려있어 추억 한장 남겨본다. 

옥달봉(玉達峰, 263.7m)은 경상북도 안동시 이천동에 있는 봉우리로서 그 지명유래나 자료는 전혀 보이지 않는데 다만 이천동 자료에 옥달봉이란 설명이 짧게 나타나는데 이천동에 옥달봉(玉達峰:263m)이 있으며 난강골, 범당골, 왯골 등의 골짜기와 두우티, 매랏골, 미륵당(彌勒堂), 밋두루, 양이골, 양지마, 용당골, 음지마, 제비원 등의 자연마을 및 고개인 덕고개 등이 있다.

구전에 따르면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에 피란온 공민왕을 위하여 옥달봉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잠시 배낭을 벗어 놨다고 등줄기의 땀도 식으면서 한기를 느끼기에 재빨리 옥달봉을 되돌아 니ㅐ려 와 갈림삼거리에서 벗어 놓은 배낭을 찾아 어께에 둘러메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방금 전 다녀 온 옥달봉과 관련하여 옥달봉 북쪽의 이천동 양의골 또는 양의곡이란 마을 자료에 왕달봉이란 자료가 보이고 확인하다 보니 이곳 옥달봉에서 하산할 수 있는 등로까지 있어 혹시 옥달봉을 말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 같이 올려 본다.

왕달봉은 경북 안동시 이천동 양이골 또는 양의곡 마을 뒷산을 말하는데 조선시대에 봉화대가 있었던 높은 산을 말하며 양이골 또는 양의곡은 왕달봉 밑에 있는 마을로 지방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을 봉화대를 통하여 임금님께 소상히 알리는 어진 백성이 살고 있다 하여 양의골이라 하였다.

두 개의 작은 마을이 있는데 골짜기 남쪽 양지 쪽에 있는 것을 양지마을이라 하고 음지 쪽에 있는 것을 음지마을이라 한다.

갈림삼거리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그물망이 설치된 밭경작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는데 등로를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좌측 아래로 보내고 우측으로 보이는 또 다른 그물망이 설치된 밭경작지 좌측으로 보이는 비포장임도로 이어지고 있다.

 

다시 나타나는 갈림삼거리에서 덕고개길이란 시멘트 포장도로를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 그물망이 설치된 밭경작지 좌측의 비포장임도를 따라 걸어 전진하니 밭경작지가 끝이나고 말라있는 잡풀들이 보이는 넓은 비포장임도 등로로 이어진다.

그곳에서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바로 아래 축사가 내려다 보이고 그 축사 우측 앞 저 멀리 안동시 이천동 미두루 마을의 넓은 밭경작지와 비포장임도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제법 웅장한 산봉우리가 보이는데 살펴보니 아마도 덕산지맥 넘어 영등지맥 산 아기산이 아닐까 생각되는 봉우리이다.

밋두리 또는 미두루(며두동)는 경북 안동시 이천동 한티재 남쪽 밑에 있는 자연마을로서 옛날에 이곳에서 콩과 팥을 많이 재배하였다고 해서 며두동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울바위골은 밋두루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이곳에 두 개의 바위가 있었는데 제비원 미륵불을 만들 때 다른 한 바위가 먼저 가서 미륵으로 만들어지자 남은 한 바위가 원통해 울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등로 좌측인 남동 방향으로 축사와 이천동 들판 그리고 그 뒤 저 멀리 덕산지맥과 영등지맥 상 아기산을 살펴보고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잡풀들이 말라있는 넓은 초지등로가 나타나고 좌측 바로 아래로는 축사와 민가가 빤히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 말라있는 잡풀 등로를 따라 조금 더 전진하니 갑자기 등로가 드넓게 잘려있어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좌측 축사가 보이는 방향으로 황토흙 절개지를 조심해 내려가 우측으로 내려가니 우측 마루금은 사진처럼 완전히 잘려져 있는데 도로를 내기 위해 공사를 진행중인 것처럼 보인다.

 

공사중인 황토흙 절개지 안부를 지나 다시 반대쪽 가시잡풀들을 잡고 능선으로 힘들게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는 문수지맥의 학가산과 보문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고 둔덕 넘어 내려가니 우측에서 오는 뚜렷한 등로가 나타난다.

그 등로를 타고 좌측으로 편안하게 진행하니 다시 평이한 굵은 소나무와 활엽수 참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은 비포장임도 갈림사거리를 통과한다.

갈림사거리 지나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벌목지가 나타나고 그 벌목지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발 아래로 안동시 이천동 윗지르내 마을과 그 넘어 저 멀리 문수지맥 상 학가산과 그 우측으로 천등산과 조운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윗지르내(지르내, 이천, 도천)는 경북 안동시 이천동의 자연마을로서 원래 안동부 부내면의 지역으로 왕달봉에서 발원한 하천이 남서쪽으로 흘러 마을 앞을 가로지르고 꺾어서 북서쪽으로 흐른다고 하여 지르내라 하였다.

하천 윗쪽을 웃지르내라 하고 아랫쪽을 아랫지르내라 하며 또 이 마을에는 진흙이 많고 그 질이 좋아서 도기(陶器)를 만들었다고 하여 도천이라 하다가 이천으로 변경되었다고도 한다.

 

등로 우측의 발목지 넘어 안동시 이천동 윗지르내 마을 뒤로 문수지맥이자 안동의 진산인 학가산과 그 우측의 산줄기들을 확인하고 활엽수 낙엽이 깔려있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무명안부 지나 등로는 이제 서쪽 방향으로 향하고 이제부터 굵은 소나무와 키 작은 참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갑자기 눈 앞으로 산불감시초소가 나타나는데 지도를 확인해 봐도 아무 표식도 없고 봉우리도 아닌 무명 지점이다.

그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벌목 후 소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등로가 사라진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는 길주의 지점도 통과한다.

 

벌목지에 소나무가 식재되어 있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조심하며 내려가니 우측으로 이천동 윗지르내마을 뒤 저 멀리 학가산 줄기가 여전히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으며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금새 제비원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한티재에 도착을 하는데 실질적인 지명은 한티재보다는 제비원재가 더 맞을 듯 싶다.

좌측으로는 기사식당과 주유소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이천동 윗지르내마을의 민가들이 보이는 고갯마루이다.

한티재 또는 제비원(2차선도로, 지비골, 연미원)는 조선시대에 출장가는 관리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연미원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고 또 미륵당(彌勒堂)의 미륵을 덮는 난간 집이 있었는데 도대목(都大木)이 한 절(법룡사 法龍寺)을 짓고 그 제자가 이 난간 집을 지었다 한다.

도대목이 한 절을 다 짓고 오니 아직까지 그 제자는 평고자(平高子)를 박고 있어 화가 난 도대목이 난간 집을 차 버렸더니 그 제자는 떨어지면서 제비가 되어 날아가서 제비원이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며 또 난간 집이 무너질 때 그 소리는 30리까지 울렸다고 한다.

이여송(李如松)이 이 앞을 지날 때 말발굽이 떨어지지 않아 그 까닭을 알아보니 미륵불이 있어 그렇다고 해서 미륵불에 올라가 단칼에 목을 쳤는데 그 때 미륵의 목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고 하며 그 피자국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그곳 제비원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 주유소 방향으로 짧게 걸어가 우측의 GS칼텍스라는 입간판 우측 능선으로 진입하니 지독한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져 힘들게 정상으로 오르는데 정상은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교통호가 만들어져 있는데 그곳에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니 좌측 주유소 뒷쪽에서 올라오는 넓은 비포장임도가 보여 허탈하기만 하다.

살펴보니 도로에서 주유소 방향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이곳 으로 진행되는 등로가 열리는 듯 보이는데 생고생하며 괜시리 나즈막한 교통호 정상을 다녀오느라 체력만 소모한 시간이다.

안부 지나 우측으로 그물망이 설치된 밭경작지를 두고 능선으로 오르니 넓은 비포장임도로 이어지고 무명봉 넘어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또 다른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두우티길이란 도로이다.

두우티(두르골, 두우치 또는 두우현동)은 경북 안동시 이천동에 있는 자연마을로서 두우티 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고 주로 안동권씨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특히 두우티고개는 두우티 마을 위쪽에 있는 고개이고 지형이 소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며 밋두르 서쪽에 해당된다.

 

무우티길 시멘트 포장도로 건너 보이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활엽수 낙엽들이 수북히 깔려있는 등로인데 사람이 오르는 가운데만 누군가 치워 둔 것처럼 깨끗하게 낙엽들이 치워져 있어 편안하게 오른다.

능선으로 오르니 진행 방향 우측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2기가 나타나고 그 묘지 뒤로 걸어 전진하니 등로 우측 묘지 넘어 안동시 이천동 무우티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그 마을 뒤 저 멀리 문수지맥의 학가산과 그 좌측 보문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름다워 몇장의 사진에 담고 그 묘지지대를 통과하니 다시 돌무덤이 보이는 비포장임도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한다.

혹시 굿을 한 흔적이 있을까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도 흔적이 보이지 않아 이제는 미신이라든가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굿은 이런 시골 지방에서도 하는 경우가 상당이 드문데 이 산객이 어릴적만 해도 1년에 몇번씩 목격하던 흔한 일이었다.

 

그 갈림사거리 안부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는 여전히 넓은 비포장임도로 이어져 너무나 편안하게 진행되고 그렇게 한동안 고도차이를 잔혀 느끼지 못하는 직선의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 아래로 많은 묘지들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여전히 학가산 줄기가 나무가지 사이로 보인다.

묘지지대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키 작은 소나무들이 보이는 곳 우측으로 녹슨 철조망과 키가 큰 콘크리트 말뚝이 보이는데 그 우측 옆으로 쓰러진 이정판이 보여 살펴보니 군부대자동화사격장으로 무단침입 금지를 알리는 경고판이다.

그곳에서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 깃대가 세워지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잡목 등로 방향으로 크게 꺽어 진행을 해야 하는 길주의 지점이다.

 

우측 잡목 등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키 작은 소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사면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좌측에서 오는 뚜렷한 비포장임도와 만나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편안하게 걸어간다.

잠시 더 그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임도 좌측으로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 지나 또 다시 임도 좌측 옆으로 사격장안내도와 군부대장이 세워 둔 자동화사격훈련장 무단진입을 금지하는 경고판이 서 있는데 안내도를 살펴보니 임도 좌측이 전부 군부대 사격장인 듯 보인다.

 

군부대 자동화사격훈련장을 좌측에 두고 경고판과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이제 북쪽 방향으로 방향을 바꿔 여전히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굵은 소나무 등로에서 관목의 참나무 등로로 바뀌고 곧이어 등로 좌측인 서쪽 방향으로 제한된 조망이 열려 잠시 사진에 담으며 확인해 보니 경북대로 지나 송하동의 전원주택단지 좌측 위로 이어지는 용암지맥 마루금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이전한 경북도청 뒷산인 문수지맥 상 검무산이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운 조망에 잠시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에 담으며 지도를 사용해 다시 한번 더 확인해 봐도 역시 처음 예상이 맞는 듯 보인다.

 

잠시 후 진행해야 할 마루금과 문수지맥 상 검무산 방향을 살펴보고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환상적인 참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다시 그 끝자락에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다 좌측을 보니 경북대로 지나 송하동의 전원주택단지 좌측으로 송전탑이 서 있는 용암지맥 마루금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와 있다.

잠시 후 웅덩이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좌측인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니 다시 갈림삼거리를 만나 살짝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다 서쪽으로 걸어가니 더욱 넓어진 임도 좌우측으로 굵은 낙엽송 등로가 이어진다.

그렇게 무심으로 걸어가니 다시 언덕으로 오르고 좌측으로 벤취쉼터들과 거울 및 시계가 보이는 공터에 도착을 하는데 동네 주민 한분이 운동을 하고 있어 조용히 사진에 담고 다시 출발한다.

 

벤취쉼터들이 설치된 무명공터봉을 지나 여전히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어느 순간 비포장임도가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그 도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눈 앞으로 잠시 후 건너야 할 5번 경북대로를 통과할 수 있는 사곡육교가 우측 앞으로 보이고 그 우측 뒤로 평탄 작업이 끝난 드넓은 주택단지 지나 진행해야 할 등로가 정중앙 뒤로 보이고 좌측으로는 송현동 사곡마을이 빤히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사곡(물개골 또는 모래골)은 경북 안동시 송현동에 있는 자연마을이고 무나무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빈수골과 쏙은빈수골, 독집골로 나뉘어지며 후삼국시대 견훤군과 고려 태조가 싸울 때 견훤 군사가 이 개펄 모래 위에서 몰살했다고 해서 몰개골이라고 하고 또 이 일대가 모래로 되어 있어 모래골 또는 몰개골이라고도 한다.

 

사곡육교와 진행 방향의 용암지맥 마루금 그리고 좌측으로 송현동 사곡마을을 확인하고 걸어 내려가니 금새 5번 경북대로를 건널 수 있는 사곡육교에 도착을 하고 그 사곡육교 중앙부에서 우측인 북쪽을 보니 5번 경북대로 4차선 포장도로가 마치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뻗어 있고 그 중간에 매화골교차로 지나 저 멀리 학가산에서 천등산과 조운산 넘어 북동 방향으로 흐르는 문수지맥 마루금이 산세를 낮추며 이어지는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고 그 사곡육교를 통과한다.

 

사곡육교를 통과 해 평탄 작업이 끝난 드넓은 주택단지를 타고 능선 위로 지어진 민가가 올려다 보이는 방향으로 진행을 하는데 민가 우측 능선 방향을 살펴보니 그곳으로 오르면 될 듯 싶은데 경사도가 가파르고 잡목들과 고사목들로 인해 진행이 쉽지 않아 보인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확인해 보니 평탄작업을 한 우측 가장자리를 타고 진행을 했는데 그곳으로는 이제 집을 짓기 위해 설치된 가파른 절개지로 인해 진행이 불가능해 보이기에 그냥 눈 앞에 보이는 가파른 오르막 잡목 등로를 타고 민가 옆으로 오르기로 한다.

힘들게 오르니 좌측으로 민가가 나타나고 그 울타리를 타고 능선으로 걸어가니 녹색 철망속에 강아지 몇마리가 울부짖고 있어 달래며 어렵게 진행을 이어간다.

 

그 개집을 지나니 거꾸로 세워 둔 옹기들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 능선으로 걸어가며 좌측을 살펴보니 잠시 후 너무나 힘들게 통과하게 될 송현동과 노하동의 전원주택지가 드넓게 내려다 보이고 그 주택단지 뒤로 송전탑이 서 있는 나즈막한 189.1봉이 지척으로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곳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사라져 어렵게 진행하는 시간이다.

능선으로 올라 활엽수가 수북히 쌓여 있는 무명봉 지나 내려가니 묘지들이 나타나고 조심하며 그 묘지등로를 내려가니 지도에도 표기되지 않은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좌측으로 표기가 있어 잠시 올라가 보니 최근에 설치된 듯한 송현배수지이고 사진에 담고 다시 뒤돌아 내려 와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옆으로는 지나 온 방향으로 킨포크 카페 이정판이 서 있다.

 

그 갈림삼거리에서 좌측 직골길이란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갔으면 조금은 편안하게 진행이 되었을 것을 마루금을 조금이라도 더 타고 진행한다고 우측 언덕으로 올라 다시 도로 좌측의 비포장임도를 타고 오르니 우측으로는 그물망이 설치된 밭경작지가 펼쳐지고 좌측으로는 송현동과 노하동의 전원주택단지가 펼쳐져 있는데 잠시 후 좌측으로 내려가려고 하니 높은 절개지라서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다.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아쉬운 듯 살펴보니 송현동 전원주택단지 지나 진행해야 할 절개지 위에 서 있는 송전탑과 그 우측 뒤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이 산객을 부르는데 한동안 우회하며 진행해야 되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좌측의 전원주택단지와 우측의 그물망이 설치된 밭경작지 사이로 나 있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걸어가다 원 마루금 방향인 좌측 전원주택단지 방향으로 내려가려고 확인해 보니 가파른 절개지가 높아 도저히 내려갈 수 없어 계속 그 비포장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길게 우회하여 진행하기로 한다.

잠시 더 우측으로 우회하며 전진하니 묘지 지나 새로 공사중인 현장이 나타나고 더 이상 비포장임도를 타고 진행하면 너무 멀어질 것 같아 좌측의 잡목 등로를 따라 조심해 내려가니 민가 주택 안으로 이어지는데 마침 부부가 밖으로 나오며 이 산객을 보고 깜짝 놀라 미안해하며 사정 이야기를 하니 이해가 된다며 정문으로 나가라고 이해를 해 준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만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안동시 노하동 직곡마을로사 고등골이라고도 하는 직곡마을은 노하리 북동쪽에 위치하며 산등이 곧고 또한 골짜기가 곧아 고등골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하는 마을이다.

 

직곡길이라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우측인 남쪽으로 걸어가니 드디어 진행 방향으로 갈림사거리 지나 건물들 사이로 올라야 할 높은 절개지 위로 송전탑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갈림사거리 지나 공장 건물 뒤로 들어가니 말라있는 초지 절개지가 높게 올려다 보이고 힘들게 오르니 고압선 접근금지란 경고판이 보이고 우측으로 도깨비 가시풀 열매가 산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고 있어 그곳에서 잠시 우측을 살펴보니 방금 전 너무 힘들게 우회하며 좌측으로 돌아 내려 온 송현동과 노하동 전원주택단지 우측 뒤로 송현배수지와 민가 그리고 그 우측 뒤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용암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스틱으로 도깨비가시풀 열매를 제거하며 힘들게 말라있는 초지 절개지 사면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좌측에 길라잡이 노릇을 하던 번호 인식이 불가능한 송전탑을 두고 우측의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거대한 참나무가 나타나고 이제부터 편안한 마음으로 넓고 뚜렷한 비포장임도를 따라 빠르게 진행을 이어간다.

그렇게 잠시 더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의 나뭇가지에 법광님이 189.1봉임을 알리는 띠지 한장 걸어 놨는데 지도를 보니 실제 189.1봉 정상은 조금 더 진행을 해야 나타나기에 사진만 남기고 오르니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189.1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등로 우측으로는 새로 조성된 주택단지인지 까마득히 깊은 낭떨어지 절개지가 이어지고 그 아래로는 이제 막 들어서기 시작하는 주택들이 드문드문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더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다 등로 우측을 보니 바로 아래 낭떨어지 절개지 아래 민가들과 신축된 건물들이 보이고 그 뒤로 나즈막한 산줄기 지나 저 멀리 좌측의 문수지맥 상 보문산에서 문수지맥 마루금을 타고 정중앙부의 가장 높은 안동의 진산인 학가산이 솟아 있고 그 우측 앞으로 상산과 천등산이 보이는데 조운산은 천등산 뒤로 숨어 버렸다.

 

등로 우측으로 문수지맥의 보문산에서 학가산과 조운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확인하고 그 앞으로 보였던 상산과 천등산도 사진에 담고 우측으로 절개지를 두고 능선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굵은 리끼다 소나무가 눈길을 잡는다.

잠시 후 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이제 등로 좌측으로 굵은 참나무들이 줄지어 늘어 선 뚜렷한 비포장임도로 이어지고 있다.

등로 우측으로는 몇기의 묘지들이 나타나고 다시 등로 좌우측으로 벌거벗은 굵은 참나무들이 터널을 만든 편안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 옆 굵은 참나무에 준희님이 걸어 둔 이정판이 보이는 182.2 삼각점봉에 도착을 하는데 432재설 건설부라는 오래된 삼각점은 이정판 지나 몇발자국 떨어진 언덕 위에 박혀 있어 잠시 둘러보며 찾아 본다.

 

그 삼각점이 박혀있는 182.2삼각점봉을 지나 뚜렷한 참나무 등로를 따라 큰 고도차이 없이 전진하니 타이어들로 ㅏㅎ아 둔 초소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참나무 등로가 다시 열리는데 녹슨 철조망과 철막대가 나타나고 곧이어 또 다시 출구 방향으로 녹슨 철조망과 철막대가 다시 보인다.

그곳을 지나자마자 이제 등로 좌측으로 제법 높은 절개지 넘어 거대한 작업장이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이곳 역시 공장이나 주택단지 개발을 위한 공사장처럼 보인다.

그곳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진행방향 좌측인 남동쪽을 살펴보니 드넓은 공사장 지나 안동시 송현동과 태화동 방향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갈라지맥의 기룡산과 갈라산 그리고 그 좌우측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들이 눈에 들어 오며 2년 전 만들었던 고운 추억들을 되새겨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등로 좌측으로 평탄 작업중인 공사장 뒤로 안동시의 아파트 단지들과 갈라지맥 그리고 좌측 옆으로 구암지맥 산줄기를 살짝 살펴보고 계속 이어지는 절개지 경계의 뚜렷한 비포장임도를 따라 빠르게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굵은 참나무 사이로 그네와 그 좌측 옆으로 통나무 벤취가 보이는 공터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 가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오르니 눈 앞으로 제법 높은 벽돌벽이 나타나고 등로는 그 벽의 경계로 이어지는데 우측으로는 잡목과 잡풀들로 인해 진행이 어려워 보이는데 좌측 벽돌벽 가운데 쇠문이 보여 살짝 열어 보니 마침 문이 열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고속도로가 열려있고 그 좌측 한쪽에는 작은 십자가가 보여 종교와 관련된 시설임을 직감해 인터넷으로 찾아 보니 그리스도의교육수녀회란 건물이다.

그 십자가 넘어 남동 방향을 살펴보니 여전히 안동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과 그 뒤로 갈라지맥의 마루금과 그 좌측 뒤 저 멀리 구암지맥의 산줄기들도 존재감을 알려오지만 거리감이 있어 봉우리의 이름까지는 불러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간이다.

 

우측에 벽돌을 쌓은 벽을 두고 고속도로 같은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굵은 잣나무들이 나타나고 좌측으로 수녀회의 붉은 뱍돌 건물 지나 우측으로 또 다시 쪽문이 보여 열어보니 이곳 역시 열려있어 조용히 통과한 후 문을 닫고 살펴보니 좌측으로 그물망이 설치된 밭경작지가 길게 이어져 있다.

그 밭경작지를 지나 내려가니 송현동 노하길이란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우측으로 대풍가든과 안동소망교회란 입간판이 서 있고 좌측으로는 제일씽크라는 건물이 보이는 노하길 1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송현동은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동으로 조선 후기 안동부 부내면(府內面)에 속하여 솔티 또는 송티(松峙)라 불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호암리(虎岩里), 옥리(玉里), 서선면(西先面) 막곡리(幕谷里) 등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송현동이 되었다.

1963년 안동읍이 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송현동이 되었는데 송현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옥동(玉洞)과 송하동(松下洞)관할하에 있다.

송현이란 지명은 솔티고개가 있다는 데 연유하는데 송현천(松峴川)이 발원하는 지역이며 몰래골, 무나무골 등의 골짜기, 말구리재, 솔티 등의 고개, 방골, 합전다리, 호암동 등의 자연마을, 바위인 호골방우 등이 있다.

직곡(고등골)은 경북 안동시 노하동(노하리) 북동쪽에 위치하며 산등이 곧고 또한 골짜기가 곧아 고등골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노하길 1차선 포장도로 건너 절개지를 타고 올라 밭경작지를 건너 능선으로 올라야 하지만 직접 오르기가 쉽지 않아 보여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조금 더 걸어가며 우측 밭 경작지 방향을 관찰하니 제일씽크 직전 우측 밭경작지 가장자리로 등로가 열려있어 들어가니 그 끝자락으로 또 다시 능선을 개간한 밭경작지들이 길게 펼쳐져 있어 농사철이 아니기에 편안하게 타고 올라 금새 넓은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굵은 참나무들이 비포장임도에 자라고 있어 동네 주민들이 산책로로 많이 이용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는 등로이다.

방금 전 지나 온 좌측 마을이 합전인데 합전은 안동시 송현동에 있는 마을로서 견훤군과 고려 태조가 거느리는 군사가 회전(會戰)한 곳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는데 고려 태조는 병산(甁山)에 진을 치고 후백제 견훤은 석산(石山)에 진을 쳐서 격전 끝에 고려 태조가 이곳에서 견훤을 파하고 고창군(古昌郡)을 평정하였다고 한다.

 

동네 산책로로 조성된 듯한 참나무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비실이부부님 띠지가 걸려있는 곳에서 등로는 북서에서 남서 방향으로 바뀌고 조금 더 걸어가며 등로 좌측인 남동 방향을 살펴보니 밭경작지와 안동시의 아파트 단지들이 펼쳐져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등로 좌측으로 텃밭을 가꾸던 풍경 같은 밭경작지들이 나타나고 사진에 담으며 조금 더 걸어 둔덕을 오르니 좌측으로 은하수빌라 건물이 등로 바로 옆으로 다가와 있고 그 뒤 능선을 따라 걸어가니 빌라가 끝나는 지점으로 무명안부도 통과하는데 진행 방향 좌측 앞으로는 사다리차량들도 보인다.

 

송현동과 노하동 경계를 타고 이어지는 비포장임도 같은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참나무와 소나무 등로가 반질거리게 나타나고 미끄러지지 않토록 조심하며 오르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지도를 보니 우측으로 가까운 곳에 155.2봉이 보여 잠시 다냐오기로 하고 우측인 북쪽으로 여전히 반질거리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금새 좁은 공터 중앙부에 관목의 참나무들이 보이는 도상 155.2봉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을 알리는 그 어떤 이정판이나 심지어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한장 보이지 않아 정상부만 사진에 담고 뒤돌아 나온다.

 

도상 155.2봉을 찍고 돌아 나오니 다시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진행 방향 좌측으로 철봉과 벤취쉼터들이 보이는 공터이고 그곳을 지나 걸어가니 계단이 설치된 내리막 등로를 따라 둙은 참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 선 무명안부를 통과한다.

갈림삼거리 안부에서 좌측 아파트가 보이는 뒷편으로 완만하게 오르니 둔덕봉 넘어 도로 양쪽으로 아파트 단지들이 올려다 보이는 송현길 4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해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눈 앞 저 멀리 경도로 앞 신호등이 보인다.

 

송현길 4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송현휴먼시아2010 아파트 입구 지나 드디어 경동로 6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솔티고개에 도착을 한다.

솔티고개(솔티 또는 송현)는 경북 안동시 송현동 솔티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본래 안동부 부내면 지역으로서 솔티고개가 있으므로 솔티라 했으며 느티나무골과 수고내미골로 나뉘어지는데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이 송자(松字)가 든 곳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이 마을은 안전했다고 하며 현재 이곳에는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서 거대한 아파트촌이 되었다.

 

도로 건너 밭경작지를 넘어 보이는 능선으로 올라야 하지만 진행이 쉽지 않아 좌측으로 조금 걸어가다 등로를 찾아 보니 주유소 직전 비닐하우스 옆으로 보이는 밭경작지 가장자리를 타고 진행하면 될 것 같아 조금이라도 마루금과 가깝게 진행을 해 본다.

그 비닐하우스 옆 밭경작지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가니 나무더미로 막아 놓은 텃밭 같은 밭이 이어지고 생각보다 편안하게 그 밭경작지를 타고 오르니 그 밭경작지 정상부에 나무더미로 막아 놓은 곳이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하니 도상 우시골길이라는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인 서쪽으로 걸어가니 등로는 좌측으로 휘어져 남쪽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도로 좌우측으로는 안동시의 풍경들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우시골길이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며 우측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솔티고개 방향으로 거대한 아파트들이 보여 사진에 담으며 진행하니 이곳 역시 도로 좌측으로는 텃 밭 같은 밭경작지들이 사면으로 펼쳐져 있다.

그물망이 설치된 밭경작지를 확인하며 조금 더 전진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이제 좌측으로 흐르는 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서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이제 도로를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비포장임도로 변하고 도로 우측 바로 옆으로 무명묘지 2기를 통과하니 둔덕봉이 나타나는데 우측 뒤인 북서 방향으로 여전히 학가산 방향의 문수지맥 산줄기가 보이고 있다.

그 둔덕봉을 내려 와 조금 더 전진하니 비포장임도는 이제 소로의 뚜렷한 등로로 바뀌더니 진행 방향으로 묘지들이 나타나는데 그 묘지들을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녹슨 철조망이 이어진 콘크리트 말뚝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무명묘지 옆으로 마지막 콘크리트 말뚝을 지나자마자 급경사 절개지가 내려다 보이는 도상 153.8봉인데 실제 153.8봉은 상가 조성과 도로를 내면서 사라진 듯 보인다.

 

도상 공식적인 마지막 봉우리인 153.8봉 정상의 녹슨 철조망이 설치된 콘크리트 말뚝을 사진에 담고 남서 방향을 살펴보니 이름없는 4차선 포장도로 건너 실질적인 용암지맥 마지막 둔덕봉 넘어 낙동강 위에 설치된 영동선 철로가 지나는 다리와 아치가 보이고 그 뒤로 송야천 뒤로 솟아 있는 풍산읍 막곡리의 나즈막한 무명산줄기의 무명봉이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해 잠시 더 머물며 몇장의 사진을 더 남겨 본다.

 

송야천 합수지점 방향을 확인하고 이제는 절개지 아래 새로 조성된 상가지역과 그 뒤로 남쪽과 남서방향을 살펴보니 이름없이 새로 조성된 4차선 포장도로 우측으로 낙동강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안동시의 이름없는 무명산줄기가 펼쳐져 있는데 상가 좌측 뒤로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 뒤 저 멀리 갈라지맥의 갈라산과 기룡산으로 이어지는 갈라지맥 산줄기가 좌우측으로 흐르는 모습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제 저 상가 방향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내려 갈 방법이 없어 높은 황토흙 절개지를 타고 조심하며 내려가며 어렵게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산행하기 전까지는 오늘 산행거리가 약 16 Km 남짓에 6시간 정도를 예상했었는데 실제 산행을 진행하다 보니 생각보다 산행거리도 짧고 등로도 좋아 평균속도가 빨라 계획보다 많이 단축되고 있어 절개지를 내려 와 옆지기에게 조금 일찍 합수점 방향으로 와 달라고 부탁하고 내려가니 콘테이너 박스에 태현이란 이정판이 붙어 있고 그 옆으로 금강윤활유란 공장 그리고 그 좌측 옆 저 멀리 한빛모터스와 한길상사란 회사 이정판들도 보이는데 그 앞 주차장에는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풍경들도 눈에 들어 온다.

사진에 담고 이름없는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남쪽으로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높은 콘크리트 옹벽이 나타나고 그 옹벽이 사라진 우측 능선 방향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무명의 4차선 포장도로 우측으로 높은 콘크리트 옹벽이 사라진 곳으로 오르니 잡목들과 잡풀들이 우거져 있어 초반 진행이 어렵지만 그곳을 지나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묵었지만 넓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난다.

살펴보니 우거졌던 잡풀들이 말라있는 비포장임도로서 좌측에서 올라 와 우측으로 길게 이어지고 그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양쪽 모두 뚜렷하고 그곳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활엽수 낙엽들이 푹신하게 깔려있는 안부 지나 잘려진 고사목과 한쪽으로 폐비닐이 걸려있는 마지막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본다.

이제 그 마지막 무명봉에서 우측인 남서 방향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며 용암지맥 산줄기의 마지막 능선을 타고 진행하는 마음이 가볍지만 아쉬움을 남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마지막 무명봉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관목 등로를 타고 활엽수 낙엽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나뭇가지 사이로 낙동강과 그 위에 설치된 철로가 보이고 사진에 담으며 조금 더 내려가니 의성김공 묘지 지나 마지막 능선은 우거진 잡목으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우측으로 휘어져 걸어가니 민가가 보이는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하고 낙동강 방향으로 보이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걸어가며 살펴보니 저 멀리 낙동강 위에 설치된 철로가 지나는 아치가 아름다운 다리가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그 비포장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드디어 낙동강 변 포장도로와 만나 우측으로 걸어가니 저 멀리 영동선 철로와 아치다리가 보이고 그 뒤로 송양천 합수점도 보이는 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용암지맥 마지막 능선과 그 좌측으로 송현동 마을 그리고 그 마을 뒷쪽으로 임천서원도 보이는데 산행 후 들려보지만 잠겨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임천서원은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조선후기 김성일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자 교육시설이고 문화재자료로서 1607년(선조 4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성일(金誠一)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18년(광해군 10)에 臨川이라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으나 1620년(광해군 12) 유림의 공론에 따라 이황(李滉)을 모시는 여강서원(廬江書院)으로 김성일의 위패를 옮기게 되었다.

그 후 오랫동안 복구하지 못하다가 1847년(헌종 13)에 중건하고 다시 위패를 모셨으나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08년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숭정사(崇正祠), 15칸의 홍교당(弘敎堂),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신문(神門), 4칸의 전사청(典祀廳) 등이 있다.

사우(祠宇)인 숭정사에는 김성일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강당인 홍교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강론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이 기거하면서 공부하는 곳이고 주소는 서원을 관리하는 고자(庫子)가 사용하고 있으며 이 서원의 강당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다.

매년 3월 초정(初丁: 첫번째 丁日)과 9월 초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籩) 4두(豆)이며 재산으로는 전답 2,000평 등이 있다.

 

계속 이어지는 낙동강변 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걸어가니 낙동간하구둑부터 340 Km란 이정목이 서 있고 곧이어 우측 송현동 방향으로 거대한 비닐하우스 단지들도 구경하며 걷다보니 호암제란 표지석 지나 영동선 철로가 지나는 낙동강 위 다리도 통과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드디어 우측의 송야천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합수점이 지척으로 다가오고 그곳에서 도로 좌측 앞을 보니 합수점 뒤 저 멀리 낙동강이 되어 도도히 흐르는 모습이 아름다워 추억 한장 남긴다.

낙동강은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긴 강이며, 길이 513.5㎞, 유역면적은 2만 3,860㎢이다. 

강원도 태백시 화전동 천의봉(1,442m) 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경상북도 봉화군과 안동시, 예천군, 상주시, 구미시, 칠곡군, 고령군 그리고 경상남도 밀양시와 김해시 등을 지난다.

김해시 남동쪽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서 서쪽은 서낙동강이 되고 본류는 낙동강 하구둑 갑문을 지나서 남해로 흘러든다.

이 강에 합류하는 지류는 반변천과 내성천, ·금호강, 밀양강 등 742개에 이르고 주요평야로는 상류부의 안동분지, 중류부의 대구분지, 하류부의 경남평야 등이 있다.

강 유역은 전체적으로 내륙분지형 기후의 특성을 나타내고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는 철새도래지(천연기념물 제179호)로 유명하다.
삼국시대에는 황산하나 황산강 또는 황산진으로 불렸고 고려·조선시대에 와서 낙동강과 낙수, 가야진 등으로 불렸다.

본래 낙동이란 가락국의 땅이었던 상주의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란 뜻에서 유래되었으며 또한 낙동강은 영남지방의 대동맥으로서 삼한시대부터 이 지역의 문화를 발달시킨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낙동강과 송야천이 합류한 후 흐르는 낙동강의 풍경을 사진에 담고 조금 더 전진하니 좌측으로 드디어 호암2배수문이 나타나고 그곳으로 들어 남쪽을 보니 우측의 송야천이 좌측에서 흘러오는 낙동강과 만나는 합수점이 지척으로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낙동강 위 저 멀리로는 서안동대교도 아름다운 아치를 그리며 보이기 시작한다.

우측에서 흘러 내려오는 송야천은 경상북도 안동시의 북후면과 서후면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영주시 평은면 오운리 봉수산 서남쪽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북후면을 거쳐 서후면 남동쪽 끝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조선지지자료의 서후면 경광리(지금의 교리)에 순 우리말로 솟밤거렁이라는 하천 기록이 나오는데 거렁은 시내를 나타내는 방언이며 솟밤은 솔밤이란 방언을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

교리 앞 하천변 들을 솔밤들이라 하는데 이 솔밤을 한자로 표기하면 솔 송(松)과 밤 야(夜)의 송야(松夜)가 된다.

조선지형도에 낙동강과 송야천이 만나는 지점에 송야천(松夜川)이 표시되어 있다.

이로써 이틀에 걸쳐 용암지맥이란 이름으로 걸었던 산줄기 잇기 산행을 마무리하고 옆지기를 기다리는데 길을 잘못 들어 헤매고 있는 듯 하여 기다리기 너무 추워 천천히 걸어 왔던 낙동강변을 따라 송현동 마을 방향으로 되돌아 간다.

 

낙동강변을 따라 송현동 방향으로 되돌아가며 주위를 살펴보니 철로가 있는 곳 좌측으로 거대한 비닐하우스 단지가 보이고 그뒤 저 멀리 북쪽 방향으로 안동시 넘어 어제부터 계속 등로 옆으로 보였던 문수지맥의 학가산과 그 우측으로 천등산이 보이는데 그 뒤로 보여야 할 조운산은 천등산에 가려 보이지 않고 그 우측으로 어제 산행을 시작한 봉수산 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문수지맥 마루금이 또 다른 고운 추억을 만들어 주며 아쉬운 이별의 손을 흔들고 있다.

 

철로를 건너 호암제라는 표지석이 보이는 곳에서 드디어 옆지기가 애마를 몰고 올라 와 반가운 조우를 하고 배낭 정리하고 등산복을 갈아 입은 후 곧바로 애마를 몰아 송현동 마을에 있는 임천서원으로 가 보니 문이 잠겨있어 뒤돌아 나와 하회마을이라도 들리려고 했더니 날씨가 너무 추워 옆지기는 도로가 막히기 전 귀가했으면 하는 의견이기에 주저없이 애마를 몰아 귀경길에 오르는데 안동시를 지나면서 서의문이란 관문도 통과하게 돼 자료를 찾아보니 세계역사도시 안동의 관문을 상징하는 서의문은 전통목조 다포식 한식기와 양식으로 길이 40m, 높이 13m 규모로 국도관리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관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안동의 서쪽 진입로인 송야교 부근에 들어섰으며 안동에서 도산서원 원장을 지낸 조순 박사가 현판을 섰다는 자료가 보인다.

 

오랫만에 옆지기의 도움으로 교통편을 해결하고 코로나19 사태로 답답했던 옆지기의 기분도 풀어주는 일석이조의 산행겸 여행을 마무리하는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고 감사하기만 하다.

생각보다 날씨가 나무 추워 옆지기가 좋아하는 볼링과 안동시내 구경이 전부였지만 저녁에 안동의 대표음식인 찜닭으로 소맥 한잔 기울였던 시간 역시 오랫동안 추억으로 남을 듯 싶다.

첫날을 이상리고개까지 길게 진행하고 나니 다음날은 오전중에 산행이 마무리되고 일찍 귀가하면서 조만간 바닷가가 보이는 곳으로 다시 산행 겸 여행을 떠나기로 하니 어느 산행이 될지 이 산객도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