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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장암지맥(영산·완)

장암지맥 제1구간 장암산 분기점에서 백두개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20.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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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영광군의 장암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 : 2020년 02월 29일 (토요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오전에는 약간 흐렸다 맑았다를 반복하였으나 오후부터 맑게 개이고 조금은 무더위를 느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4도에서 영상 11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삼학리 내산 버스정류장(밀재로 2차선 포장도로)-시멘트 포장도로-황량로 2차선 포장도로-히치 하이킹(BMW차주의 도움)-덤바위재(사동재,

               영산기맥, 상무대 골프장 입구) 이정표(장암산 1.6 Km와 태청산 5.4 Km, 월암리 사동, 상무골프장)-이동통신탑-목계단-샘터와 장암산 숯가마터-

               장암지맥 분기점(이정판) 샘터삼거리 이정표(장암산 0.2 Km, 작은마치재 2.1 Km와 태청산 4.0 Km, 숯가마샘터 0.1 Km와 월암리 사동 1.4 Km)-

               483.1 안테나봉-장암지맥 분기점과 샘터삼거리 복귀-벤취쉼터와 사각탁자-무명안부-장암산(484.3봉, 정상석, 삼각점, 너럭바위, 팔각정)

               이정표(임도종점 0.3 Km와 석정모정 3.1 Km, 월암리 사동 1.6 Km와 태청산 4.2 Km 및 석정모정 5.1 Km)-목계단-비포장임도(사각정자) 임도종점

               이정표(패러글라이딩 이륙장과 석전모정 2.8 Km, 장암산, 월암과 영양 및 삼효임도)-420.9미터 패러글라이딩 이륙장(박지호 추모비)과 사각정자-

               잡목지대-편백나무 군락지-389.3 무명바위봉-팔각정자-비포장임도-안부 초소-초포재(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 이정표(월암리 반월과 영양리

               묘량면사무소 3.4 Km, 묘량삼호흑석과 대마남산 태청산 방향 2.6 Km, 장암산 2.5 Km와 월암리 사동 2.4 Km)-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

               356.4봉(이정판)-비포장임도-능선진입-331.2 무명봉-오동산(351.1봉, 삼각점, 정상판)-길주의 지점(우측)-편백나무 군락지-검정천막-비포장

               임도(산불감시초소)-콘테이너 박스-283.1봉(이정판)-223.8 무명봉-무명안부-벌목지 조망(좌)-삼각점봉(174.4미터)-우리봉(184.5봉, 이정판)-

               우리치 안부-151.5 무명봉-비포장임도와 시멘트 포장도로 경계-104.9 스틱무명봉-지독한 잡목지대-김해김공묘지-비포장임도-연촌고개(묘량로

               2차선 포장도로)-묘지들-시누대 등로-묘지지대-묘량로2길 1차선 포장도로-비포장임도-묘지지대-120.9봉(이정판)-144.6봉(이정판)-무명안부-

               시누대 등로-가선대부 전주이공묘지-검은산(189.7봉, 이정판)-시누대 군락지-무명안부-신풍재(시멘트 포장도로, 영광1터널)-영성정씨 묘지-

               226.9봉(수태봉, 이정판)-문덕재(비포장임도)-비포장임도 임도삼거리 이정표(물무산 등산로, 질퍽질퍽맨발황톳길, 숲속둘레길, 가족명상원)-

               나무데크 전망대-문명산 갈림삼거리(198.5미터)-문장산(227.2봉)-갈림삼거리 복귀-노인봉(254.9봉, 2층팔각정자)-물무산재(비포장임도, 사각정자,

               벤취쉼터) 안부 이정표-나무계단-물퇴봉(물무산정상석, 259.7봉, 삼각점, 무인산불감시카메라, KBS광주방송송신소)-물무산 행복숲 나무데크-

               비룡노인전문요양원-동물이동통로(물무로 4차선 포장도로 통과)-해룡중고등학교 산책로-학실재(중앙로 2차선 포장도로)-우산근린공원 팔각정자-

               영광공공도서관-천년로13길 2차선 포장도로-숲안애아파트-옥당로 4차선 포장도로-칠거사거리-영광버스터미널 앞 공영주차장(애마회수)-신남로

               4차선 포장도로-영광고추특화시장-신하교차로(북종산 갈림점)-99.5봉-북종산(113.4봉, 삼각점 2개, 사각정자)-북종산 갈림점 복귀-복호산

               갈림점(군서로 2차선 포장도로)-군서면 만곡리 교차로(805번 백수로 2차선 포장도로)-복호산(82.1봉, 삼각점, 이동통신탑)-서금길 2차선 포장도로-

               서금산(95.9봉, 이정판)-서금길 시멘트 포장도로-송신교회-842번 성지로 2차선 포장도로-남계리 표지석-만곡사거리-만년리 버스정류장-청룡동

               버스정류장-백수논산보건진료소-842번 장산로 2차선 포장도로-백수동부교회-시멘트 포장도로-밭 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물 탱크-밭 경작지-

               능선진입-187.1봉(이정판)-165.4 무명봉-시멘트 포장도로-232.1삼각점봉 갈림삼거리-232.1삼각점봉(법성486 삼각점, 이정판)-갈림삼거리 복귀-

               178.7 무명고사목봉-전주이씨 묘지들-백두개재(성지로 2차선 포장도로)-백수논산보건진료소까지 도보 이동-산행종료

산행거리 : 34.38 Km (삼학리 내산 버스정류장에서 장암지맥 분기점과 백두개재 지나 백수논산보건진료소까지)

산행트랙 : 20200229 장암지맥 제1구간 곰바위재-백두개재.gpx

                Oruxmaps 어풀을 바꾼 후 이유없이 튀는 지점이 많이 발생하여 실제 걸은 거리보다 훨씬 길게 나타난 부분들이 있으니 실 사용에 주의 필요  

산행시간 : 11시간 17분 (06시 59분 삼학리 내산 버스정류장에서 18시 18분 백수논산보건지료소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1시 10분 집에서 애마로 영광버스터미널를 향해 출발

                                 05시 15분 영광버스터미널 앞 새로 지은 공용주차장에 주차 후 휴식

                                 06시 35분 발 월암리 행 버스를 기다렸지만 차고지에 출발해 버스터미널은 무정차 했음

                                 06시 45분 광주 행 500번 시내버스에 탑승해 삼학리 내산 버스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 이동

                                 06시 54분 상무대 골프장으로 들어가는 BMW 차주의 배려로 쉽게 산행 들머리인 영산기맥 상 덤바위재(사동재)에서 하차 후 산행

                       올때 - 17시 49분 백두개재(성지로 2차선 포장도로)에서 장암지맥 제1구간 산행 종료

                                 18시 18분 백수논산보건진료소에서 최종 산행 종료 후 애마 회수

                                 19시 05분 영광읍 아이리스 모텔에서 여장 풀고

                                 19시 50분 가까운 나주곰탕에서 맛난 저녁 식사 후 취침  

장암지맥이란 ???

장암지맥은 영산기맥 상 장암산(484)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우리봉(185m), 노인봉(255m),  함평읍, 서금산(90m), 백두기재, 수리봉(354.4m), 갓봉(344m), 봉화령(373.8m)을 지나 전남 영광군 배수읍 대신리에서 돔배섬과 구암천을 바라보며 서해바다에 그 산줄기를 가라 앉히는 길이 36.3 Km되는 산줄기로 와탄천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오래 전 추억을 회상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즐겼던 영광에서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장암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전라남도 영광군과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및 네이버의 지식백과 그리고 다음의 백과사전 및 산림청과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올라야 할 산줄기는 많은데 시간이 없어 고민중인데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이동까지 제한을 받다보니 이번주에도 고민이 길어지지만 주말 내내 집에만 머무를 수 없어 평소와 같이 새벽 일찍 영광으로 내려가 계획된 장암지맥 산행을 계획하는데 다만 하룻밤 숙박은 저렴한 찜질방이 아닌 여관에서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최소화하고 마음 편히 자기로 한다.

영광 버스터미널에서 차고지에서 출발하는 버스 시간표로 인해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다른 차주님의 도움으로 전화위복이 되어 첫날 생각보다 길게 산행을 하게 되었는데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와는 달리 약간의 가시잡목들이 보이지만 대체적으로 고속도로와 같은 등로로 인해 오랫만에 몸에 생채기를 심하게 만들지 않았던 지맥답지 않은 등로로 기억되응 장암지맥이었다.

또한 오래 전 일 때문에 이곳 영광으로 내려 와 1주일 동안 머물렀던 좋은 추억이 있는 고장이기에 이번에는 또 어떤 추억을 만들고 올라 갈 수 있을지 기대가 컸던 시간이기도 하였는데 역병으로 인해 기대만큼 좋은 추억은 만들지 못해 아쉬움도 남겼던 시간이었다.

 

장암산과 장암산 전위봉은 2013년 4월 말에 영산기맥 산행을 위해 들려 붉게 물든 철쭉과 연산홍의 축하를 받으며 오늘 걸어 오르는 등로를 거꾸로 내려오며 통과한 기억이 있는데 7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어 그날의 발자취를 느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좋은 분의 호의로 전화위복이 되어 일찍 상무대골프장 입구인 곰바위재(사동재)에 도착을 해 산행 준비를 하니 생각보다 날씨가 풀렸는지 방풍의를 모두 벗어 배낭에 넣고 한여름 입는 얇은 등산복만 걸친 후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장암지맥 분기점으로 올라 우측으로 보이는 483.1봉으로 진행하니 드높은 안테나가 보이는 장암산 전위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잠시 남쪽을 살펴보니 오래 전 걸었던 영산기맥 마루금이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중간에는 얼마 전 올랐던 모악산에서 시작되는 철성지맥 마루금도 살짝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이름들을 불러보니 바로 앞 능선으로 월암산이 보이고 그 뒤 중앙으로 뾰족한 불갑산이 보이고 그 좌측 뒤 저 멀리 분간조차 하기 어려운 철성산도 보일듯 말듯 펼쳐져 있다.

그 좌측 뒤로는 욱룡지맥과 백룡지맥의 나즈막한 산줄기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영산기맥의 산줄기가 끝도 없는 산그리메를 그리며 산객의 마음을 뒤 흔들고 있다.

 

잠시 후 장암산 전위봉을 지나 분기점을 통과한 후 장암산 정상부로 오르니 7년 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 그 너럭바위 위에 올라 잠시 서쪽을 살펴보니 오늘 걸어 넘어야 할 장암지맥 마루금이 좌측 바위 넘어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사진 중앙부의 앞쪽 산줄기 속으로 서해안고속도로가 뚫려 있고 그 뒤로 수태봉과 매봉산 줄기 바로 뒤로 물퇴봉(물무산)과 노인봉 그리고 문장산 줄기가 선명하고 그 뒤 하늘금과 맞닿아 있는 우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내일 걸어 넘어야 할 수리봉과 갓산 그리고 장암지맥 마루금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구수산 줄기가 이 산객을 부르고 있지만 저곳으로 올라 이곳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내일까지 기다려야 함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 좌측 옆으로는 별도로 떨어져 솟아 있는 듯 보이는 군유산 줄기가 아름답게 보이는데 그 위로 드리워져 있는 구름이 더욱 예술적으로 다가온다.

 

장암산 정상의 너럭바위에서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동쪽을 살펴보니 높은 안테나가 서 있는 483.1봉과 장암지맥 분기점이 바로 눈 앞에 솟아 있고 그 좌측 뒤로 3주 전에 올랐던 태정지맥의 분기점인 태청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으며 그 사이 저 멀리에는 병풍산과 불태산이 솟아 있는 병풍지맥의 산줄기가 엷은 안개를 드리운 채 솟아 있고 분기점 우측 뒤로는 생각지도 못한 광주의 무등산이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더욱 빛나고 있다.

저 병풍지맥 마루금도 올해 안에 걸을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지만 언제나 올라 이곳을 살펴보며 오늘을 추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정이기에 기대감만 커지는 시간이다.

다만 저 병풍지맥 마루금은 주위 호남의 다른 지맥과 달리 산세가 좋고 해발고도가 높아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계절과 관계없이 오를 수 있기에 다른 지맥 산행을 더 진행한 후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본다.

 

새벽 잠도 자지 못하고 영광 버스터미널까지 먼 길을 달려 내려 가 장암산 산행을 위해 들머리로 갈 수 있는 아침 6시 35분 월암리 행 버스를 확인하다 보니 이 첫 버스는 이곳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 차고지에서 손님없이 출발해 월암리에서부터 손님들을 태워 영광으로 나오는 버스라는 소식에 대략 난감하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려고 보니 돈보다는 잠도 자지 못하고 새벽 일찍 내려 온 노력과 시간이 아까워 다른 방법을 확인하니 500번 함평버스가 전라남도 광주시로 아침 6시 45분에 출발하는데 내릴 수 있는 곳이 삼학리로서 원래 생각했던 월암리까지는 추가로 약 3 Km 정도를 더 걸어가야 하기에 시간과 거리에 대한 부담이 느껴지지만 일찍 산행을 끝내도 할 일이 없으니 그 버스를 이용해 진행하기로 한다.

전날 영광군청 교통과의 담당자와 전화통화까지 했는데 왜 이런 정보는 주지도 않고 기계적으로 6시 35분 버스는 월암리로 운행하고 있더는 잘못된 정보를 주고 있는지 아쉽고 안타까운 탁상행정의 전형이었다.

앞으로 이 월암리 행 아침 6시 35분 버스는 영광 버스터미널이 아닌 차고지에서 월암리로 운행하고 있으니 참고해야 할 것 같다.

 

함평교통 500번이 영광 버스터미널에서 6시 45분에 출발해 광주로 가는 도중 상무대골프장 입구라는 삼학리에서 하차가 가능한다기에 다음지도로 확인해 보니 이곳 삼학리에서 월암리까지 약 3 Km 거리로서 약 40여분 간 더 걸어 진행을 해야 할 것 같아 고민하다 어짜피 운동하러 왔으니 운동을 더 한다는 생각으로 이 버스를 타고 진행하기로 한다.

버스를 타고 약 12분 여 후에 운전기사가 상무대골프장 입구라며 내리라고 알려주지만 지도 상 다음 정류장인 내산 버스정류장이 덤바위재(사동고개)까지 가장 빠른 길이기에 이곳에서 내리니 아침 6시 59분을 막 지나고 있다.

삼학리는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의 지역이 낮은 산지로 되어 있으며 남쪽으로 작은 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왕촌, 내산, 구천, 산포 등이 있는데 왕촌은 마을 뒷산의 지명이 대왕산이라 불리는데 이 산 아래에 마을이 형성되어 대왕리라 불리다가 후에 왕촌이라 개명하였고 내산은 마을의 형태가 산으로 둘러싸여 안으로 들어가 있다 하여 내촌으로 불리다가 행정구역 개편시 내산이라 명명하였으며 구천은 마을 앞으로 내가 흐르고 있는데 마을을 감싸고 흐르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포는 마을 뒷산의 지형이 포구처럼 생겼다 하여 산포라 불린다.

아무튼 월암리로 가는 첫 버스 시간 때문에 어려운 상황도 있었지만 가까운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다른 버스로 삼학리에 내리니 생각보다 춥지 않아 방풍의를 벗어 배낭에 넣고 마을로 들어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멀고도 긴 장암지맥 산행을 시작해 본다.

 

 

삼학리 내산마을로 들어가며 진행하니 아직 완전한 어둠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점점 날이 길어지고 있음을 느끼며 빠르게 걸어가며 지도를 확인해 보니 길게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하는 것보다는 상무대골프장 입구로 갈 수 있는 황량로 2차선 포장도로로 나가 지나가는 차량을 히치하이킹 해 보려고 방향을 바꿔 왕촌마을을 지나자 마자 좌측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간다.

월암리는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에 있는 리로서 북쪽에는 태청산이 있어 산지가 이어지며 대부분의 지역은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남쪽에는 죽림제가 위치한다.

자연마을로는 화림, 청산, 성도, 사동 등이 있는데 화림은 대밭이 많고 뒷산과 마을 모양이 꽃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고 청산은 마을 뒷산이 푸른 산이고 푸른 바위가 있다고 하여 청암이라 칭하였는데 다시 이 마을이 동쪽이라 하여 동산이라 하다가 이것을 합하여 청산이라 이름 붙였다.

성도는 마을이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성인과 도인이 나올 형국이라 하여 성도라 불리고 사동은 대밭과 모래가 많아 사동이라 칭하였다.

아침 7시 8분 드디어 황량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해 우측의 상무대골프장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니 골프장 방향에서 아침 6시 35분 차고지에서 출발한 미니 버스가 손님들을 태우고 나오고 있어 사진에 담으며 씁쓸한 미소를 지너보는 시간이다.

 

미니 버스를 보내고 홀로 터벅터벅 걸어가니 저 멀리 BMW 승용차 한대가 올라와 무조건 손을 흔드니 지나갈려다 세워 줘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탑승하게 되었는데 마침 골프를 치러 간다면서 산악자전거를 즐기고 마라톤도 즐기는 군인이었다.

버스 시간 때문에 어렵게 시작을 했지만 중간에 좋은 군인을 만나 전화위복이 되어 산행 들머리인 영산기맥 상 상무대골프장 입구인 사동고개인 덤바위재에 도착을 하니 이제 아침 7시 21분을 막 넘기고 있어 예상보다 약 1시간 정도 단축시킬 수 있어 다행이었다.

사동재(사동고개, 덤바위재,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 월암리 2차선 포장도로, 상무대 골프장 입구)는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 월암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 곳인 사동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붙은 이름으로 사동은 대밭과 모래가 많아 사동이라 칭하였는데 월암리는 북쪽에는 태청산이 있어 산지가 이어지며 대부분의 지역은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남쪽에는 죽림제가 위치하며 자연마을로는 화림, 청산, 성도, 사동 등이 있다.

차주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고 사각정자에 배낭을 벗어 놓고 산행 준비를 하다 보니 7년 전 기억이 생생하게 떠 오르며 피식 웃어 보는 시간인데 그때는 4월 26일로서 등로에는 붉은 철쭉과 연산홍이 만개하여 반겨주고 조금은 무더위를 느끼며 이곳에서 잠시 쉰 후 대나무 숲을 지나 힘들게 산행을 이어간 곳이었고 산행후기를 정리해 놓다 보니 아직도 그때 그 시간이 엊그제 지난 것처럼 생생하게 떠 올라 스스로도 놀라는 시간이다.

 

사동고개인 곰바위재에서 산행 준비를 하고 있는데 상무대골프장으로 골프를 치기 위해 들어가는 승용차가 제법 많이 보이는데 요즈음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조금은 걱정이 되지만 모두 주의하며 즐길 것이기에 걱정은 버리고 주위 풍경들을 사진에 담은 후 장암산까지 1.6 Km 거리라 되어 있는 비포장 임도가 보이는 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걸어 오르니 등로 양쪽으로 철쭉인지 아니면 연산홍인지 모를 키 작은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데 7년 전 내려오며 붉게 피어난 꽃들을 만났던 기억이 뚜렷하다.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나무계단이 길게 이어지고 등로 우측으로 상무대골프장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여전히 철쭉나무들이 보이고 저 멀리 진행 방향으로 나무계단 옆으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등로가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잠시 조망이 열리고 살펴보니 월암리의 작은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우측으로는 잠시 후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장암지맥의 오동산에서 우리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사면이 보이기 시작하고 남쪽으로는 분성산 방향이 올려다 보이는데 다음지도에는 역암산으로 보여 이름이 바뀌었는지 궁금하다.

그 뒤 저 멀리에는 군유산 자락도 보일듯 말듯 보이기 시작하는데 아직 올라보지 못한 산들이다 보니 그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기도 쉽지 않다.

 

등로 좌측의 월암리 마을과 그 뒤로 나즈막하게 솟아 있는 산들을 살펴보고 다시 철쭉과 연산홍이 심어져 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다 잠시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뒤돌아 보니 곰바위재인 사동고개 넘어 분성산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방금 전 걸어 올라 온 등로 좌측으로 상무대 골프장과 그 뒤로 대도저수지도 보이고 그 ㅈ하측으로 구와산도 펼쳐져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그 뒤 저 멀리에는 함평의 드넓은 들판이 엷은 안개를 머금은 채 펼쳐지고 그 좌측 끝자락에는 광주시 지나 무등산이 우뚝 솟아 있는데 그 앞쪽으로는 어등산 방향의 병풍지맥 산줄기도 나즈막하지만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무등산 우측으로는 호남정맥의 화순쪽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아스라히 펼쳐져 있고 우측 끝자락으로는 국사봉과 활성산 쪽 호남정맥과 백룡 및 옥룡지맥이 황홀하기만 하다.

 

무등산 좌측인 동쪽으로 분적과 장원지맥 산줄기들도 보이고 담양쪽 산줄기 지나 중앙 좌측 뒤로는 조만간 걸어야 할 병풍지맥의 병풍산과 불태산 줄기가 커다란 산군을 이루며 솟아 잇고 바로 앞 좌측 끝으로는 얼마 전 자시 올랐던 태청지맥 분기점인 태청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 산군들 사이로 스며 든 엷은 안개가 끝없이 펼쳐진 산그리메를 더욱 강렬하게 만들고 둬운 구름속에 숨어있는 강렬한 태양은 여전히 붉은 색채를 세상에 뿌리며 또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고 그 그리움이 커지는 풍경과 조망에 쉽게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한동안 더 그 자리에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철쭉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등뒤에서 자꾸만 목덜미를 잡아 끄는 듯한 느낌에 뒤돌아 보며 많은 사진을 더 남기며 오른다.

잠시 후 저 멀리 올라야 할 장암산 전위봉인 483.1봉의 드높은 안테나가 보이기 시작하고 사진에 담고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예전에 무너져 쓰러질 듯 보였던 숯가마터가 보수되어 새롭게 단장하고 산객을 맞이해 준다.

장암산 숯가마터는 1946년 봄부터 삼효리 미산마을의 오재학씨와 영당마을의 이현복씨가 공동으로 숯만들기 사업을 시작하여 50여명의 인부들이 나무를 베어 운반하여 숯을 생산하였으나 6.25 전쟁으로 장암산 일대의 산림이 불태워져 그 이후 폐쇄되었다는 설명판이 보인다.

숯가마터 바로 우측 아래에는 샘터가 보여 내려가 보니 식수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안내판이 서 있어 아쉬움을 남긴.

 

숯가마터와 샘물을 지나 잠시 더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니 빛바랜 억새와 소나무 넘어 저 멀리 분성산과 월암산 지나 가운데 뾰족하게 솟아 있는 상사화로 유명한 불갑산이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 얼마 전 철성지맥 산행을 위해 올랐던 모악산이 붙어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 불갑산 좌측으로는 조만간 걸어 내려가야 할 태청지맥이 나즈막한 산줄기를 이어가며 길게 펼쳐져 있는데 두 구간으로 나눠 진행하기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 낮길이가 길어질 때까지 잠시 더 기다렸다 진행하기로 한다.

그 뒤로는 얼마 전 걸었던 철성지맥의 나즈막한 산줄기도 보일듯 말듯 펼쳐지고 불갑산 우측으로는 건무산과 군유산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영산기맥 산줄기가 펼쳐져 있는 모습도 아름답게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남쪽으로 달려 내려가는 영산기맥 마루금을 확인하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금새 샘터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으로 장암지맥 가는 길목에 분기점 이정판이 걸려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우측의 높은 안테나가 세워져 있는 장암산 전위봉인 483.1봉으로 걸어 오른다.

7년 전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이곳 483.1봉과 안테나에 관한 기억은 나질 않아 잠시 주위 풍경들을 사진에 담고 귀가한 후 확인해 보기로 하고 이제부터 환상적으로 펼쳐진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제일 먼저 남동쪽을 살펴보니 바로 발 아래 갈색으로 변한 상무대골프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바로 뒤로 대도저수지와 구와산이 이어지며 그 뒤로는 장성과 함평 그리고 광주시의 경계를 이루는 드넓은 들판이 엷은 안개를 드리운 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들판 좌측으로 구와산 뒤로는 태청지맥의 태산을 지나는 산줄기 넘어 병풍지맥의 나즈막한 산줄기가 솟아 흐르고 그 뒤 무등산과의 중간에는 또 다른 산줄기인 장원과 분적지맥의 산줄기들도 존재감을 알리며 조만간 조우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그 뒤 제일 끝자락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솟아 있는 무등산이 아름답고 대도저수지 우측 저 멀리 끝자락에는 화순쪽 호남정맥의 나즈막한 산줄기 우측 끝으로 영암쪽 호남정맥과 옥룡과 백룡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들이 이 산객을 부르고 있지만 언제나 오를 수 있을지 기약도 할 수 없으니 아쉬운 시간이다.

 

 

이제 눈을 남서쪽으로 눈을 돌리니 남쪽 방향으로 월암산 지나 불갑산이 군계일학으로 솟아 있고 그 좌측으로는 옥룡과 백룡지맥을 이루는 산줄기들 사이로 나주의 금성산과 태청지맥의 산줄기도 살짝 얼굴을 내민다.

불갑산 우측으로는 철성지맥 분기점인 모악산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건무산과 군유산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산줄기와 그 뒤로 올망졸망 이름도 알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섬에 떠 있는 산봉우리들이 마치 톱날을 보는 듯 하늘금에 자신을 투영하고 있는 모습이 황홀하기만 하다.

 

그렇게 한동안 남쪽을 중심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 펼쳐진 수많은 산줄기와 봉우리들을 확인한 후 483.1봉으로 뒤돌아 올라간 후 이제는 북쪽을 살펴보니 영광대마일반산업단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는데 7년 전 이곳 장암산 정상으로 올랐던 동네 아저씨들의 걱정과는 달리 제법 많은 공장들이 들어 서 있는 듯 보이는데 실제 가동되고 있는 공장들은 얼마나 되는지는 잘 구분하기 어렵다.

그 대마 들판과 산업단지 뒤 우측 멀리에는 두어번 올랐고 다시 경수지맥이란 이름으로 걸어야 할 선운산과 경수산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나즈막한 산줄기가 마치 구름띠를 형성하듯 서해바다를 향해 길게 펼쳐져 있는데 좌측 끝으로는 내일까지 걸어 마무리를 해야 할 장암지맥과 구수산은 아직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 나즈막한 산줄기 뒤 일직선으로 보이는 선이 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서해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날씨가 흐려 정확한 모습은 구분하기 어려워 아쉽기만 하다.

그곳 483.1미터 안테나봉에서 약 5분여 주위 풍경들과 조망을 사진에 담으며 이름들을 불러 준 후 샘터삼거리로 내려가 이정표를 살펴보니 우측 동쪽으로 태청산까지 4 Km 거리이고 이제부터 걸어가야 할 좌측인 서쪽으로는 장암산까지 0.2 Km 거리라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반갑기만 하다.

그 이정표를 지나 직진으로 몇 발자국 더 걸어가니 준희 선생님이 걸어 놓은 장암지맥 분기점이란 이정판이 걸려 있어 추억 몇장 남기고 다시 진행하다 마지막으로 추억 한장 더 남긴 후 본격적인 장암지맥 산행을 시작해 본다.

 

잠시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원형 탁자와 벤취쉼터들이 보이고 곧이어 뚜렷한 등로 양쪽으로 잡목이 담벼락처럼 우거진 풍경을 살펴보며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통과해 오르니 커다란 정상석과 삼각점 및 이정표 그리고 너럭바위와 팔각정이 보이는 장암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장암산(484.3, 정상석, 고창311 삼각점)은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 장성군 삼서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482미터로서 정상 일대가 평평하고 산세가 마치 물위를 떠가는 조각배처럼 생겨 주변의 다른 산들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등산은 보통 석전마을에서 시작하여 전주이씨 묘역, 삼거리, 측백나무숲, 헬기장, 안부 순으로 지나 정상 너럭바위에 오른 뒤 석천 버스 종점으로 내려오게 되는데 산행 시간은 대략 3, 4시간 정도 걸린다.

정상 일대가 넓고 전망이 좋아 등산객 뿐 아니라 행글라이더들이 많이 찾고 북쪽으로 고창군의 곡창지대가 시원하게 펼쳐지며 대마면 오른쪽으로 태청산과 월랑산 및 남쪽으로 불갑산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2013년 4월 26일 철쭉과 연산홍이 붉게 만개한 등로를 타고 홀로 영산기맥 산행을 하면서 잠시 들렸던 장암산이기에 기억이 생생하지만 그때 풍경과는 약간 달라진 듯한 인상도 느낀다.

 

장암산 정상에서 제일 먼저 북동쪽을 살펴보니 7년 전 홀로 걸었던 영산기맥 산줄기와 가까운 곳에 얼마 전 다시 태청지맥 산행을 위해 짧게 만났었던 태청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그 이름들을 불러 본다.

우측으로 태청산이 우뚝 솟아 있고 좌측으로 흐르면 월랑산이 보이고 사진 정중앙 방향으로 고성산과 그 뒤 좌측으로 고산이 차례로 펼쳐져 있어 옛날 홀로 걸으며 고생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 오르고 있다.

 

북서서쪽으로는 묘량과 대마면의 드넓은 들판이 가깝게 펼쳐져 있고 좌측 가장자리 가깝게 펼쳐진 첫번째 산줄기를 살펴보니 그 산줄기 하부를 관통하는 서해안고속도로가 희미하게 보이고 그 위로 영광제1터널 주변으로 오늘 걸어야 할 수태봉과 물퇴봉(물무산) 및 노인봉이 뾰족하게 솟아 있는 좌우측으로 펼쳐져 있고 마루금에서 약간 우측으로 벗어나 있는 매봉산도 보인다.

그 뒤 저 멀리에는 갓봉과 수리봉부터 가장 높은 봉우리가 있는 구수봉에서 우측 저 멀리 경수지맥의 선운산과 경수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또 새로운 풍경으로 이 산객의 마음속으로 파고 들고 있다.

 

북쪽으로 눈을 돌리니 영광대마일반산업단지가 드넓게 자리하고 구 우측 앞으로는 영마제라는 커다란 저수지가 발 아래 빤히 내려다 보인다.

영광대마일반산업단지 좌측으로는 150미터대의 나즈막한 무명산줄기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로는 고창군의 비산비야를 지나 조만간 다시 만나야 할 고창땅의 경수지맥 마루금이 장암지맥의 산줄기와 이어져 있는 듯 하나의 산줄기처럼 길게 이어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 온다.

저 경수지맥 마루금은 언제 다시 오를 수 있을지 기약도 없지만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보니 등로가 좋아 계절과 관계없이 진행 할 수 있을 것 같아 계획없이 내려 와 다시 걷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을 해 본다.

 

한동안 장암산 정상부에서 주위 풍경을 살펴보고 바로 옆 너럭바위에 올라 장암산 정상석을 넣어 북동쪽을 다시 살펴보니 방금 전 올랐다 이곳으로 내려 온 483.1 안테나봉이 지척으로 보이고 그 좌측으로 태청산이 우뚝 솟아 있는데 그 장암지맥 분기점과 태청산 사이 저 멀리에는 병풍지맥의 불태산과 병풍산 줄기가 너무나 환상적인 운해를 주위에 드리운 채 봄으로도 당당하게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태청산 좌측으로는 영산기맥의 월랑산과 고성산 및 고산이 길게 펼쳐지고 그 뒤로 구황산과 축령산 줄기도 보일듯 말듯 이어지고 있어 많은 사진으로 담으며 조금 더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남쪽으로는 월암산 지나 불갑산과 그 우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영산기맥 산줄기를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이름들을 불러 준 후 남서쪽을 살펴보니 죽림제란 저수지를 좌측 끝자락에 두고 우측 앞으로는 이제부터 걸어 넘어야 할 오동산이 솟아 있고 그 우측 우리봉으로 꺽여 이어지는 장암지맥 산줄기가 보이고 오동산 좌측 뒤 죽림제 우측 옆으로는 대왕산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이 아름답다.

그 뒤 저 멀리로는 삼각산과 금산 지나 군유산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산줄기로 이어지는 모습도 보이고 그 좌우측으로는 함평과 무안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산그리메 우측 뒤로 신안쪽 섬에 떠 있는 산봉우리들이 황홀하기만 하다.

갈길이 멀어 빨리 출발을 해야 하지만 너무나 환상적이고 황홀한 풍경과 조망으로 인해 쉽게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고 그 너럭바위 위에서 머물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그 장암산 정상부에서 시간을 보내고 이제 막 출발하려고 진행 방향인 서쪽을 살펴보니 거대한 교량이 남북으로 길게 펼쳐진 듯한 풍경이 눈에 들어 와 그곳에는 그 어떤 고속화도로도 없는데 왠 거대한 교량이 펼쳐져 있을까 궁금해 줌으로 당겨 살펴보니 교량이 아닌 영광백수의 해안도로 근처에 설치된 거대한 풍력발전단지로서 수십개의 풍력발전시설들이 줄지어 늘어 선 모습이다.

내일 산행을 하면서 한동안 좌측으로 내려다 보며 진행을 해야 할 장암지맥 마루금 가까이 존재하기에 많은 사진을 담으며 진행하게 될 곳이기도 하였다.

그 풍력발전시설 뒷쪽으로도 제법 큰 산줄기가 보여 지도로 확인해 보니 바다로서 송이도와 안마도만 섬으로 존재하는데 그곳에 있는 산들의 해발고도가 150미터 대이니 그곳 섬들의 산줄기가 아닐까 상상을 하면서 그 장암산 정상을 출발한다.

 

장암산 정상에서 약 6분여를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아쉬움을 남기고 잡목 사이로 나 있는 넓은 내리막 등로를 따라 장암산 정상을 출발하니 거대한 참나무들이 등로 우측으로 보이고 좌측으로는 푸른 잎들이 피어있는 활엽수 관목들이 이곳이 남녘임을 알려주고 있다.

잠시 후 길게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갑자기 눈 앞에 사각정자가 보이고 그 정자를 지나니 좌측으로 비포장임도가 연결되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그 안부에는 임도종점이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좌측으로는 월암리와 영양리 및 삼효리로 하산할 수 있는 넓은 비포장임도가 개설되어 있어 궁금했는데 잠시 후 그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 비포장임도가 개설된 임도종점 안부를 지나 짧게 걸어 오르니 넓은 헬기장 좌측으로 또 다른 사각정자가 보이고 그 우측 앞으로는 박지호 추모비가 서 있는 420.9봉에 도착을 하고 추모비를 읽어 보니 이곳 활공장을 자주 이용하던 사람이었는데 무슨 잘못된 일이 있었던 듯 싶은 글귀가 적혀 있다.

이곳 활공장 북쪽으로도 멋진 조망과 풍경이 펼쳐져 있어 정상부를 사진에 담고 북쪽 끝자락으로 가 추억 몇장 더 남기고 출발한다.

 

활공장 우측인 북쪽으로 가 살펴보니 우측 저 멀리 태청산 지나 월랑산가 고성 및 고산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마루금이 길게 이어지고 그 좌측 아래로 영마제라는 저수지와 사진 좌측 끝자락으로 영광대마일반산업단지가 조금 더 선명하게 내려다 보이는데 위에서 봤던 모습과는 달리 공장부지가 많이 비어있어 시골에서의 공장 분양이 얼마나 어려운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 보인다.

그 뒤 저 멀리에는 경수지맥의 선운산과 경수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름답고 그 뒤쪽으로는 얼마 전 걸었던 두승지맥과 변산지맥의 산줄기들도 비산비야를 이루며 벌써 추억속에 쌓여 있는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이제 눈을 진행 방향인 서쪽으로 돌리니 묘량쪽 드넓은 들판 넘어 잠시 후 걸어 넘어야 할 서해안고속도로 위 영광1터널 주변 제일 좌측부터 물퇴봉(물무산)과 수태봉 및 노인봉이 보이고 마루금에서 우측으로 약간 떨어져 있는 매봉산이 앞 라인을 이루고 그 뒤 저 멀리 좌우측으로 길게 이어진 산줄기의 좌측 끝자락으로 내일 올라야 할 수리봉과 갓봉 그리고 장암지맥 마루금 우측으로 떨어져 있는 구수산 줄기가 환상이고 그 우측으로 대성산과 초포산 및 삿갓산을 지나 경수지맥의 선운산과 경수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하나의 산줄기가 이어진 듯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그곳 활공장에서도 잠시 더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북서 방향으로 나 있는 뚜렷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다 의미없는 알바를 짧게 하고 다시 올라 사각정자와 추모비 사이로 나 있는 철쭉나무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곳을 통해 어렵게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그 철쭉지대를 지나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길라잡이를 해 주고 잠시 후 잡목이 사라진 소나무 등로를 통과하니 등로 좌측으로 멋진 편백나무 군락지가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잠시 후 잡목들과 바위들이 보이는 389.3 무명봉을 넘어 약간의 잡목들이 발목을 잡믐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바로 눈 앞으로 최근에 설치된 듯한 팔각정자가 나타나고 그 앞으로 벌목 후 개설된 비포장임도가 길게 펼쳐져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새롭게 설치된 팔각정자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니 이제 막 공사가 끝난 듯 사용된 나무들의 나이테가 선명하다.

그곳부터는 넓게 만들어진 비포장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며 지맥 등로가 이렇게 좋아도 되는지 의아한 마음으로 즐겨보는 시간이지만 조만간 다시 나타날 가시잡목 지대를 상상하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시간이기도 하다.

등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편백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고 진행 방향으로는 오늘과 내일 걸어 넘어야 할 장암지맥의 나즈막한 봉우리들과 산줄기 넘어 저 멀리 해안도로 방향으로 거대한 풍력발전시설들이 줄지어 늘어 선 모습도 계속 눈에 들어 온다.

내려가며 주위를 살펴보니 이곳 벌목지에도 역시 어린 편백나무 묘목들이 식재되어 있어 장성의 축령산처럼 편백나무 군락지로 만들 계획처럼 보인다.

잠시 후 우측에서 올라 오는 갈림삼거리 한쪽에 초소가 보이는데 지금은 비어 있어 무슨 용도로 이곳에 초소까지 만들어 감시를 해야 하는지 이해는 하지 못하겠다.

 

초소를 지나 여전히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전진하니 나즈막한 안부 지나 완만하게 오르고 좌측으로 정상 마루금ㅇ 이어지지만 잡목능선으로 진행할 의미가 없어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금새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초포재에 도착을 한다.

초포재는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는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좌측의 월암리 사동마을과 우측의 삼효리 흑석마을을 이어주는 고갯마루처럼 보이는데 좌우측 마을에도 없는 초포재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하기만 한데 다음지도를 봐도 아무 표식도 없어 자료를 찾다보니 묘량면 월암리의 옛 지명이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초포리란 이름이 보이고 읽어 보니 지금은 월암리에 포함되어 사용되지 않는 지명이름이 된 듯 싶다.

초포(草浦초포리)마을은 현재 월암리 반월 동북쪽의 개울가에 있는 마을을 말하며 월암리는 본래 영광군 황량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초포리, 반월리, 칠곡리, 하월리, 죽림리, 동산리, 청암리, 이문리, 성도리, 죽동, 화촌, 문예리, 왕촌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하월과 정암의 이름을 따서 월암리라 해서 묘량면에 편입된 마을을 말한다란 자료가 보인다.

 

초포재 안부를 지나 묘량면사무소 방향인 직진 방향의 넓은 공터 방향으로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공터와 비포장임도를 지나 벌목된 능선으로 이어지고 곧이어 거대한 바위암봉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 바위암봉을 우측으로 우회해 통과하니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가 U자 형태로 이어지는 곳으로 이어지고 잠시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 위로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 위로 가시잡목 사이로 봉우리가 올려다 보여 지도를 보니 356.4봉이기에 편안한 시멘트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가시능선으로 오르니 산죽지대를 지나 커다란 참나무 위에 준희 선생님이 걸어 놓은 장암지맥 356.4봉 이정판이 보이고 그 주위에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도 걸려 있어 추억 한장 남기고 곧바로 방금 전 헤어진 시멘트 포장도로 방향으로 내려간다.

 

약간의 바위와 가시잡목들이 보이는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잠시 후 벌목된 등로 우측으로 편백나무 군락지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다시 방금 전 헤어진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데 도로는 이제 임도로 바뀌어 있다.

이제 그 비포장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한동안 걸어가며 산행을 이어가는데 등로 주변으로는 제법 굵은 편백나무 군락지들이 보여 이곳도 조만간 편백나무 군락지로 조성되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전진하니 임도는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도로가 우측으로 크게 휘어져 내려가는 좌측 앞으로 산나물 채취금지라는 경고판이 서 있는 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초반부에는 활엽수 낙엽이 깔려 있는 평이한 등로로 이어지더니 점점 험악한 남도의 전형적인 지맥 마루금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곧이어 여름철이면 진행이 불가능해 보이는 지독한 잡목 덩굴지대도 어렵게 통과한다.

잠시 후 거대한 바위가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을 넘으니 지독한 잡목들이 등로를 가득 메우고 힘들게 무명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337.4 무명봉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우측 능선으로 걸어 전진하니 금새 삼각점이 박혀 있는 351.1미터의 오동산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이곳 오동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서도 보이질 않아 아쉽기만 하고 위치도 다음과 네이버에 따라 다르게 표시되어 있어 더욱 안타까운 시간이었는데 네이버에는 묘량면 운암리로 다음지도에는 묘량면 월암리로 표기되어 있다.

   

오동산을 지나 커다란 참나무 아래 잡목이 우거진 내리막 등로를 타고 무명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곳에서 등로는 희미한 우측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주의 지점에 도착을 해 세심하게 살피며 진행하니 선답자들도 한 곳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제각각 내려갔는지 등로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지독한 잡목들을 헤치며 어렵게 내려가니 잠시 후 잡목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멋진 편백나무 군락지를 만나 편안하게 내려가니 그 군락지 한가운데에 무명묘지 한기가 보이는데 명당처럼 보이면서도 왠지 모르게 하필 왜 이런곳에 묘지를 썼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이다.

묘지를 지나 다시 빼곡하게 자라는 커다란 편백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다시 잡목들이 보이면서 검정 차단막이 길게 설치되어 있는 곳에 도착을 하는데 그 천막은 이미 기능을 상실한 채 쓰러져 방치되어 있다.

그 검정천막을 따라 다시 계속 이어지는 편백나무 군락지를 타고 내려가니 갑자기 눈 앞에 넓은 비포장 임도가 보이고 그 임도로 내려가 도착을 한다.

 

임도 우측으로는 용도가 불분명한 산불감시초소가 방치되어 있고 그 비포장임도를 건너 콘테이너 박스가 보이는 쪽으로 나 있는 짧은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능선으로 진입한 후 무명묘지 2기를 통과한다.

묘지 2기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다시 잡목들이 발목을 잡지만 호남지방 특유의 가시잡목 등로보다는 진행이 가능해 어렵지 않게 283.1봉에 도착을 하니 이곳 역시 준희 선생님이 걸어 놓은 이정판이 걸려 있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그 283.1봉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남도 특유의 지독한 잡목지대가 펼쳐지고 얼굴이 다치지 않토록 조심하며 잡목들을 헤치며 전진하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며 거대한 참나무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데 다행스럽게도 가시와 청다래 가시덩굴들이 보이지 않아 그나마 다행스럽다.

그렇게 한동안 완만하게 이어지는 지독한 잡목을 헤치며 내려가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오르니 잡목이 줄어들고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223.8 무명잡목봉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고 다시 진행을 이어간다.

 

잡목 무명봉을 지나서도 여전히 등로에는 지독한 잡목들이 우거져 있는데 다만 참나무 등로가 소나무 등로로 바뀌어 있음이 달라져 있을 뿐이다.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잡목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잡목들이 사라지며 거대한 소나무 한그루와 박달나무가 보이는 183.5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우측에 편백나무 군락지를 두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무명안부에 도착을 한다.

안부를 지나 무명바위가 보이는 봉우리에 오르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벌목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살펴보니 작은 신정저수지가 바로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그림처럼 펼쳐진 신천리 마을이 아름답고 좌측 저 멀리로는 대왕산 넘어 얼마 전 철성지맥 산행을 위해 올랐던 모악산과 불갑산 봉우리가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 뒤 저 멀리에는 목포를 향해 달려 내려가고 있는 나즈막한 영산기맥 마루금이 눈길을 잡으며 옛 추억을 되살려 준다.

 

조망을 즐기고 전진하니 뚜렷한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잠시 후 의미를 알 수 없는 삼각점 하나가 보이는데 다가가 살펴보니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인데 왜 이런 곳에 동떨어져 박혀 있는지 존재 이유를 모르겠다.

사진에 담고 다시 약간의 잡목터널이 보이는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짧게 완만하게 올라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고 두개의 이정판이 걸려 있는 184.5미터의 우리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우리봉(184.5묘량면 영양리)에 관한 자료 역시 찾을 수 없어 이 우리봉이 있는 영양리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니영양리는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에 있는 리로서 묘량면의 중앙에 위치하여 대부분의 지역은 낮은 산지와 평지로 되어 있으며 논과 들이 분포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영촌, 장동, 당산 등이 있는데 영촌은 이곳의 재를 넘어 영광읍을 오고 갔기 때문에 잿마을이란 이름으로 불리다가 영촌이라 개칭되었고 장동은 마을터에 가문절(감춘다는 뜻)이라는 절이 있는데 그 절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가문절(藏寺)이라 부르다가 행정구역 개편시 기재착오로 장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당산은 옛 고향 당산동을 그리워 하는 뜻으로 이효상씨가 당산이라 했다는 설과 당산나무가 많이 있어 당산이라 했다는 설도 있으며 문화재로는  영광이규헌가옥(전남민속자료 22)과 영광영양리 고인돌군이 있다.

산행을 하기 전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이곳 영광에는 수많은 나즈막한 봉우리마다 각기 다른 이름들을 가지고 있는데 각 봉우리에 관한 자료들은 보이지 않아 아쉬움으로 남겨지는 시간이었다.

 

우리봉을 지나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드릅나무들이 등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을 우리치라 불리는 안부이다.

우이치 안부 역시 우리봉처럼 자료를 찾을 수 없는데 우이치는 방금 전 넘어 온 우리봉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다만 우리봉과 우이치의 마을 이름이 달라 약간 헷깔리시간이기도 하였다.

신천리는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에 있는 리로서 서쪽으로 불갑저수지가 있고 남쪽으로 작은 하천이 흐르며 대부분의 지역이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신흥, 용정, 연촌 등이 있다. 신흥은 고려말기 이흥사가 있어서 이흥이라 불리다가 절이 소각된 후 마을 아래로 집결된 새로운 마을이 형성 되면서 신흥이라 불린다. 용정은 백호형상이고 남동방향으로 황룡형상이라 하여 용호동이라 불리다가 이웃 석정 마을과 합하여 용정이라 칭하였다. 연촌은 마을 주변의 지세가 솔개형을 이루고 있다는 전설에 의해 솔개 연자를 써서 연촌이라 불린다. 문화재로는 영광신천리 3층석탑(보물 504)이 있다.

 

드릅가시나무가 빼곡한 우이치 안부를 조심스럽게 넘어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금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151.5 무명봉을 넘고 한동안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잡목등로를 따르니 또 다른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보이는 149.2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다시 보이는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곳에 도착을 하니 등로는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흐릿한 우측의 사면 등로로 내려가야 할 길주의 지점에 도착을 하지만 내려가야 할 방향으로는 전혀 등로가 보이지 않는다.

힘들게 사라진 등로를 따라 방향만 보고 내려가니 잠시 후 지독한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고 힘들게 그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니 비포장임도와 시멘트 포장도로의 경계를 이루는 도로에 도착을 해 깊은 한숨을 내쉬어 본다.

지도를 보니 좌측의 신천리와 우측의 영양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영양리 방향으로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완만하게 내려가는데 좌측의 신천리 방향으로는 비포장 임도가 열려 있는 곳이다.

 

신천리와 영양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고갯마루를 건너 다시 잡목들이 보이는 능선으로 오르니 소나무와 잘려진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 104.9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계속 이어지는 잡목 등로 사이로 노란 띠지들이 붙어 있는 방향을 보고 전진하니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 무명묘지들을 만난다.

정상 등로는 묘지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지만 우거진 잡목들로 인해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좌측 묘지지대로 내려가 사면으로 진행하다 묘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 주능선 방향으로 어렵게 오르니 지독한 잡목들이 빼곡하게 등로를 메우고 있어 너무나 힘들게 그 잡목지대를 빠져 나가니 다시 많은 묘지들이 눈 앞에 펼쳐지고 간벌된 편백나무 지대를 지나 내려가니 김해김공 묘지들을 지나 비포장임도와 이어지는 등로를 따른다.

그렇게 잠시 더 비포장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묘량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연촌재 일명 연촌고개에 도착을 한다.

연촌(62.3미터, 6번 묘량로 2차선 포장도로, 통합기준점)는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 영양리와 신천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고개로서 묘량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데 이름은 신천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 곳인 연촌마을에서 유래된 듯 보인다.

연촌은 마을 주변의 지세가 솔개형을 이루고 있다는 전설에 의해 솔개 연자를 써서 연촌이라 불리며 연촌재 또는 연촌고개는 바로 이 연촌마을에서 유래된 듯 보인다.

 

연촌고개의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우측으로 몇 발자국 걸어가니 좌측 능선 방향으로 묘지로 올라가는 넓은 비포장 임도가 보이고 그곳으로 올라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 마당에 앉아 준비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물 한모금 마시며 쉬어 간다.

휴식 후 묘지 뒤 능선으로 오르니 키 큰 시누대 군락지가 나타나고 빼곡한 그 시누대 군락지를 어렵게 뚫고 오르니 다시 무명묘지들이 몇기 길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 묘지들을 지나 내려가니 몇개의 편백나무들이 보이는 등로를 지나 좌측 신흥마을로 이어지는 1차선 묘량로2길이 지나는 신흥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이 신흥고개(신흥마을과 신흥리 3층석탑)는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 신흥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인 신흥마을에서 유래된 듯 보이고 그 신흥을 찾아보니 신흥은 고려말기 이흥사가 있어서 이흥이라 불리다가 절이 소각된 후 마을 아래로 집결된 새로운 마을이 형성 되면서 신흥이라 불린다는 설명이 보인다.

 

신흥고개의 1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비포장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임도 좌측 아래 펼쳐진 밭 경작지에는 아직도 푸릇한 봄동과 상추들이 살아 있어 서울에서 내려 온 이 산객의 눈에는 신기하게 보인다.

한동안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그 묘지들을 지나 우측 능선으로 오르는데 그 묘지 경계에 심어진 동백나무에는 너무나 예쁜 동백꽃이 붉게 피어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사진에 담고 능선으로 오른다.

능선으로 오르니 시누대가 잠시 보이고 주능선에 도착을 해 좌측으로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벗나무에 준희 선생님이 이정판을 걸어 놓은 120.9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출발한다.

 

그 120.9봉으로 오르니 따뜻했던 날씨가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불어 한기를 느끼기 시작하고 배낭에 넣었던 방풍의를 입고 진행하게 되었는데 오르막 등로에서는 땀이 흐를 정도의 무더위를 느끼다가 내리막 등로에서는 땀이 마르며 한기를 느끼는 복잡한 산행 날씨로 변하고 있다.

별 특징없는 활엽수 낙엽이 푹신한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등로를 따르니 금새 144.6봉에 도착을 하고 이곳 정상에서도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을 배경으로 사진과 추억을 남긴 후 곧바로 출발한다.

 

그 144.6봉에서 등로는 조측으로 90도 꺽어 진행이 되고 가끔 보이는 편백나무들을 살펴보며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무명안부도 통과한다.

무명안부를 지나 오르니 다시 시누대 군락지가 나타나고 잠시 후 잘 관리되고 있는 가선대부전주이공 묘지를 지나 좌측의 시누대 군락지를 피해 우측 사면 등로를 타고 오르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와 이정판이 걸려 있는 189.7미터의 검은산에 도착을 해 추억과 사진을 남겨 본다.

검은산(190, 좌측 아래에 보물 504호인 신흥리 3층석탑)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하고 다만 이 검은산이 있는 영양리를 찾아보니 영양리는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에 있는 리로서 묘량면의 중앙에 위치하여 대부분의 지역은 낮은 산지와 평지로 되어 있으며 논과 들이 분포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영촌, 장동, 당산 등이 있는데 영촌은 이곳의 재를 넘어 영광읍을 오고 갔기 때문에 잿마을이란 이름으로 불리다가 영촌이라 개칭되었고 장동은 마을터에 가문절(감춘다는 뜻)이라는 절이 있는데 그 절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가문절(장사)이라 부르다가 행정구역 개편시 기재착오로 장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당산은 옛 고향 당산동을 그리워 하는 뜻으로 이효상씨가 당산이라 했다는 설과 당산나무가 많이 있어 당산이라 했다는 설도 있으며 문화재로는  영광이규헌가옥(전남민속자료 22)과 영광영양리 고인돌군이 있다.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검은산이지만 정상에는 특별할 것 없는 띠지들과 이정판 하나가 전부이나 아쉽기만 한데 자료까지 찾을 수 없어 더욱 안타까운 시간이었다.

그 검은산을 지나 약간 거추장스러운 잡목들을 헤치며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무명안부 지나 시누대 군락지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로 이어진다.

그렇게 한동안 시누대 군락지를 좌우측에 두고 오르니 정상부에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벗나무 하나가 서 있는 158.9 무명봉을 지나 이제부터 빼곡하게 우거진 시누대 군락지를 따라 어렵게 산행을 이어간다.

한동안 우거진 시누대 군락지를 빠져 나가니 다시 약간의 잡목지대가 나타나고 무명안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 오늘 아침에 장암지맥이란 이름으로 산행을 시작한 장암산과 그 좌측으로 태청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는 모습이 보여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사진에 담아 본다.

 

장암지맥의 분기점인 장암산과 태청지맥의 분기점인 태청산을 살펴보고 다시 산행을 이어가니 잡목들은 사라졌지만 쓰러진 고사목들이 앞길을 막고 잠시 후 하늘색 무명띠지가 걸려있는 141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 나뭇가지에는 파란 나뭇잎이 벌써 자연의 색감을 바꾸기 시작하여 잠시 살펴보고 진행을 이어간다.

계속 이어지는 약간의 잡목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좌측 한쪽에는 벤취쉼터 하나가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신풍재로서 영광1터널 위이고 이 아래로는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나는 곳이다.

 

신풍재라는 영광1터널 위에서 정상 마루금은 짧은 절개지를 올라 묘지지대로 진행을 해야 되지만 잠시 후 곧바로 좌측의 비포장임도로 내려와야 되기에 그냥 마음 편히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진행한다.

우측 위로는 묘지가 올려다 보이는 임도를 따르니 금새 그 우측 등로와 만나는 곳에서부터 임도는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도로가 좌측으로 휘어져 오르는 곳 우측으로 묘지가 보이는 곳에서 그 묘지 방향의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영공정공 묘지를 지나 오르며 뒤돌아 보니 장암산과 태청산이 잠시 보이고 이제부터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굵은 땀방울을 등로에 뿌리며 힘들게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와 참나무가 보이는 무명봉 넘어 등로 옆으로 노란 생강꽃이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노란 생강꽃을 사진에 담고 계속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226.9봉에 도착을 하는데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 옆으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에 이곳을 수태봉이란 이름이 보여 다음지도를 찾아 보니 수태봉이 맞다.

수태봉(227봉, 마루금에서 좌측으로 야ㅐㄱ간 떨어져 있는 봉우리)에 관한 자료는 찾지 못해 이곳 지명인 학정리를 찾아 보니 학정리는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 평지에 위치하며 주위에 영광저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학곡, 세월, 남부, 대천, 강변, 두림마을 등이 있는데 학곡마을은 지형이 학()의 무릎과 같다하여 학슬(鶴膝)이라 하다가 행정구역 개편 시 학곡이라 하였고 세월마을은 당초에는 모세촌(細河)이라 하였고 행정구역 개편 시 세월(細月)이라 하기로 했다.

남부마을은 골남부 원남부 대남부라 하였다가 행정구역 재편 시 남부라 했고 대천마을은 마을 앞에 큰 내가 있어 대천동(大川洞)이라 했으며 불갑저수지 준설로 내가 불갑저수지로 합류되었다.

강변마을은 소금나들이라 불리다가 강 옆의 마을이라 하여 강변이라 했고 두림마을은 나무가 무성하여 두목(杜木)이라 하였다.

 

수태봉에서 추억을 남기고 다시 짧게 뒤돌아 내려 와 이제는 좌측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고 잠시 커다란 소나무 사이로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지만 뚜렷하게 보이는 편안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한다.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문덕재라는 고갯마루로서 좌측의 영광읍 학정리와 우측의 묘량면 영양리를 이어주는 고개인데 양쪽 어느 마을에서도 이 문덕재와 관련있는 이름을 찾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비포장임도의 문덕재 안부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이장된 듯한 묘지위에 빛바랜 억새들이 보이고 곧이어 우거진 잡목지대를 뚫고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가 보이는 190.3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무명봉을 지나 잡목들이 보이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넓은 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한쪽에는 임도삼거리라는 이정표가 서 있고 내려 온 마루금 좌측 위로는 숲속둘레길이라는 플랭카드가 걸려있다.

이제 좌측의 영광읍 학정리와 우측의 묘량면 득흥리를 이어주는 고개인데 숲속둘레길과 가족명상원이란 단어들이 보여 명상원이 있는 장소처럼 보인다.

 

그 임도삼거리 이정표를 살펴보고 우측 임도를 따라 조금 걸어 들어가니 나무로 된 전망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가 보니 우측인 북쪽으로 묘량면 덕흥리의 흥국저수지와 마을 그리고 들판이 안개속에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그 우측 위로는 매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사면으로만 보이고 있다.

덕흥리는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화평들과 함께 들이 분포해 있으며 묘량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개리, 고교, 흥곡, 장등 등이 있는데 개리는 옹기그릇을 구워 생활해 온 사람들이 이 마을에 고령토가 풍부하여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고 지형이 개()의 형국으로 되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고교는 마을 앞 덕흥천에 장성과 대마 등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나무다리가 세워졌는데 그 다리가 높다고 고교라 불린다.

흥곡은 마을 서북방면에 계곡이 있는데 농사에 도움을 주어 인근 마을까지 번창하게 하였다고 하여 흥곡이라 칭하였고 장등은 지형이 서북쪽으로 긴 등선을 이루고 있으며 이 등선 마지막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여 긴등이라 불리다가 한자로 장등이라 바뀌었다.

잠시 전망데크에서 덕흥리 방면을 살펴보고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완만한 오르막 등로 끝자락에 편백나무 군락지들이 보이는 문장산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문장산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약 300여미터 떨어져 있는 문장산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배낭 벗어 놓고 잠시 다녀 오기로 한다.

등로 양쪽으로 멋진 편백나무 군락지를 살펴보며 빠르게 내려가니 리끼다 소나무와 활엽수가 자리하고 있는 무명안부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오르니 등로에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등로로 바뀌고 있다.

그 오르막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오르니 참나무와 벗나무 그리고 잡목들이 보이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만 걸려있는 227.2봉에 도착을 하는데 띠지에는 이곳이 문장산임을 알리는 글씨들이 보인다.

문장산(226.3m) 역시 자료가 없어 덕흥리를 찾아보니 덕흥리는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화평들과 함께 들이 분포해 있으며 묘량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개리, 고교, 흥곡, 장등 등이 있는데 개리는 옹기그릇을 구워 생활해 온 사람들이 이 마을에 고령토가 풍부하여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고 지형이 개()의 형국으로 되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고교는 마을 앞 덕흥천에 장성과 대마 등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나무다리가 세워졌는데 그 다리가 높다고 고교라 불린다.

흥곡은 마을 서북방면에 계곡이 있는데 농사에 도움을 주어 인근 마을까지 번창하게 하였다고 하여 흥곡이라 칭하였고 장등은 지형이 서북쪽으로 긴 등선을 이루고 있으며 이 등선 마지막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여 긴등이라 불리다가 한자로 장등이라 바뀌었다.

방금 전 지나 온 임도삼거리부터 이곳으로 이어지는 지역 모두가 묘량면의 덕흥리 마을이다.

 

문장산이라는 227.2미터봉에서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올라갔던 등로를 타고 뒤돌아 내려 와 다시 문장산 갈림삼거리로 복귀한 후 벗어 놓은 배낭을 회수 해 착용하고 이제 직진 방향의 편백나무 등로를 타고 오르니 물무정이라는 하얀색 2층 팔각정자가 서 있는 254.9미터의 노인봉에 도착을 하는데 왜 팔각정자의 이름이 물무정일까 궁금하기만 하다.

노인봉(255m, 2층정자에서 영광읍과 서해바다 일몰 및 장암지맥 끝자락과 경수지맥, 영산기맥 조망)에 관한 자료 역시 찾을 수 없어 이곳 지명인 교촌리를 찾아 보니 교촌리는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에 있는 리로서 구릉성 평지지역에 자리한 마을이고 시가화가 진행중이며 향교가 있으므로 교촌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교촌, 가운데동네, 묘량새터마을 등이 있는데 교촌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교촌리의 그것과 같으며 향굣말이라고도 불린다.

가운데동네마을은 교촌리 복판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자라처럼 생겼다 하여 자래몰이라고도 하고 묘량새터마을은 교촌의 남쪽에 있는 마을로 묘량면과 경계가 된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라 한다.

 

노인봉 정상에서의 조망과 풍경이 아름다워 이곳에서도 잠시 배낭 벗어 놓고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데 제일 먼저 북쪽을 살펴보니 방금 전 다녀 온 문장산이 바로 앞에 보이고 그 좌측으로 이어지는 무명 산줄기가 끝자락의 관현산을 지나 영광읍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고 그 뒤로 대산쪽 비산비야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그곳을 지나면 저 멀리 끝자락에 톱날처럼 솟아 있는 경수지맥의 선운산과 경수산 쪽 산줄기가 여전히 이 산객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는데 저곳은 또 언제 올라 이곳을 살펴보며 오늘을 추억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북서쪽으로는 영광읍이 생각보다 크고 넓게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오늘 오후와 내일까지 걸어가야 할 장암지맥 마루금 상 갓봉과 수리봉 그리고 마루금에서 떨어져 있는 구수산이 조금 더 가깝게 보이기 시작하고 우측 저 멀리로는 장암지맥 마지막 봉우리가 있을 모래미 방면의 나즈막한 산줄기도 보이기 시작한다.

영광읍은 전라남도 영광군의 북부 중앙에 위치한 읍으로 동으로 묘량과 대마 및 고창 대산면을 접하고 남으로 군서면과 서로는 백수면과 북쪽으로 법성면을 접하고 있다.

물퇴봉(259m) 일대와 노인봉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150미터 이하의 기복을 가진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노인봉(255m), 관현산(150m), 성산(148m) 등으로 둘러싸인 작은 분지골이며 영광천과 와탄천 및 묘량천 등의 소하천 연안에 작은 규모의 평야가 나타난다.

22번과 23번 국도와 서해안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읍 소재지인 무령리를 비롯하여 백학리와 연성리 등 19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조선 시대 영광현의 읍치가 있던 곳으로 광여도(영광)와 지승에는 영광읍이 동부면과 서부면이 읍성을 중심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읍치는 영광읍 무령리 일대였다.

이 고을의 진산은 영광군의 서쪽 25리에 있는 오산()이고 지도에 보이는 읍성은 1452년(문종 2)에 돌로 쌓았는데 기록에 따르면 둘레가 1,469척에 높이가 6척이며 지도에는 읍성의 객사와 관아, 창고 및 향교, 백산서원이 묘사되어 있다.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도내면의 고성과 송정 및 계동 등 일부와 묘장면의 흥곡과 장등의 각 일부, 진량면의 서당촌 일부, 서부면의 무곡 및 옹점, 대신, 궁산의 각 일부, 전라북도 무장군 외공면 지음리 일부를 병합하여 영광면이라 하였다.

그 후 무령, 백학, 남천, 도동, 교촌 등 15개 리로 개편되었다가  1955년에 읍으로 승격하였으며 한편 와룡리 와진 마을은 200여 년 전 서해 부근에서 왜적과 싸우던 병정들이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용이 누워있는 형국이라 와룡이라고 하였고 배가 드나들었던 진 터이다.

 

영광읍 좌측 끝자락으로는 영광읍 지나 올라야 할 북종산과 복호산 그리고 서금산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가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모습도 눈으로 확인하며 아쉬운 마음을 두고 그 노인봉을 출발한다.

잠시 내려가니 무명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를 지나니 등로 좌우측으로는 멋진 편백나무 군락지들이 펼쳐져 있다.

통나무 계단을 타고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이정표와 사각정자 및 벤취쉼터들과 운동기구들이 보이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상에는 물문산재라 되어 있는 고갯마루로서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도동리에 있으며 물무산 아래에 있어 붙여진 이름처럼 보이기는 한데 왜 물무산재가 아닌 물문산재가 되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사각정자 옆 벤취쉼터에는 영광읍에서 올라 온 듯한 부부가 간식을 먹으며 편하게 쉬고 있는 듯 보여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물퇴봉을 향해 오르막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물문산재라는 안부를 지나 길게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타고 걸어 오르니 높은 무인산불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오르고 사진에 담고 다시 뚜렷한 등로 양쪽으로 멋진 소나무가 보이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올라 KBS광주방송국과 그 우측으로 해발 256미터 물무산이라는 정상석이 서 있다.

지도에는 물퇴봉이라 되어 있는 이곳이 왜 물무산이 되었는지 궁금한데 그 어디에서도 자료를 찾을 수 없으니 아쉽기만 하고 그 정상석 옆 흙속에 숨어 있는 삼각점을 파내 사진에 담아 보지만 인식은 불가능하다.

 

물무산이라는 정상석이 서 있는 곳에서 추억과 사진을 남기고 KBS 방송국 건물을 좌측으로 돌아가니 이정표가 서 있는데 그곳에는 물퇴봉이란 현위치 표시가 되어 있다.

물퇴봉(257.4m, 고창25 삼각점, KBS중계탑과 산불초소)은 전라남도 영광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259미터이며 영광읍의 남동부 학정리에 인접한 산지로 노인봉과 함께 남동부의 장벽을 이룬다. 수원이 풍부하여 영광 저수지를 이루고 이 물은 남서류하여 불갑천으로 흘러들어가 서해로 유입되고 서해안고속도로가 영광1터널로 지나간다.

대동지지에 수퇴산(水退山)이 동쪽 3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고 영광속수여지승에 수퇴산(水退山)은 동쪽 2리에 있고 마점산(磨岾山)의 서쪽 산록에 있다 라고 수록되어 있는데 이들 지명은 모두 물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1872년지방지도(영광)에도 읍성 가까이 수퇴산이 묘사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영광)에는 묘장면(猫長面, 현 묘량면)의 영촌 좌측에 산이 있다고 하였으며 현 읍내인 동부면 교촌 뒤에 물무산과 수퇴봉(水退峰)이 기재되어 있다.

물퇴봉이라는 이정표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남쪽을 살펴보니 저 멀리 불갑저수지 지나 영산기맥 상 불갑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 철성지맥 분기점인 모악산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로는 청성산으로 이어지는 철성지맥 마루금이 나즈막하게 이어지는 풍경들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남쪽의 영산기맥 마루금과 얼마 전 걸었던 철성지맥 마루금을 찾아 보고 다시 그 물퇴봉을 지나 내려가니 거대한 바위암릉이 앞을 가로막아 좌측으로 우회하며 돌아 내려가니 그 바위암릉 앞으로 진행되고 있다.

약간의 대나무와 참나무가 보이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하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지만 그런대로 진행에 어려움이 없고 잠시 후 편백나무들이 식재된 곳을 지나 물퇴봉 산책로와 만나는데 그 앞에는 나무전망데크가 설치되어 있으나 앞의 소나무들로 인해 조망은 별로 없어 아쉽기만 하다.

 

그 나무전망데크 좌측 옆으로 통해 내려가니 드디어 영광읍의 도동휴먼시아아파트들이 시야에 들어 오기 시작하고 그 뒤 영광읍 지나 성산도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에 담으며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갈대모직포가 깔려 있는 푹신한 등로를 만나 좌측으로 편안하게 진행한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비룡노인전문요양원 거눌이 보이고 직진으로는 이제부터 진행해야 할 북종산과 복호산 및 서금산 뒤로 내일 걸어야 할 수리봉과 갓봉 그리고 구수산 능선이 시원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진행 방향을 살펴보며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비룡노인전문요양원 정문을 지나 묘지와 우산공원 가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아파트 옆 비포장임도같은 등로를 따르니 또 다시 묘지지대를 통과한 후 물무로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널 수 있는 이동동물생태통로를 통과한다.

이제 본격적인 영광읍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처럼 보이는데 작은 읍이라 생각했던 영광읍은 예상보다 훨씬 넓고 커 조금은 당황했던 시간이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며 진행해 보기로 한다.

 

동물이동통로를 통해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넌 후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 해룡중고등학교를 두고 좌측 산책로로 등로는 이어지고 있다.

중고등학교 건물 옆 등로를 지나니 벤취쉼터들이 보이는 편백나무 식재지가 나타나고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전진하니 바로 앞에 중앙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학실재에 도착을 해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저 멀리 우산근린공원의 팔각정자 옆 태극기가 펄럭이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학실재(2차선 포장도로)는 녹사리에 있는 고개로서 녹사리는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논밭이 펼쳐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녹사, 양마, 조정, 대장, 월곡마을 등이 있는데 녹사마을은 조선시대에 녹사역이 있었던 마을로 푸른 모래가 매장된데 연유하여 녹사라 했고 양마마을은 1910년경 창영조씨가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 하며 조정마을은 지형이 새의 다리와 같이 가늘다 하여 조정(鳥停)이라 했다가 행정구역 개편 시 조정(稠丁)이라 하였다.

대장마을은 1910년경 전주이씨가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산의 형국이 장수(將帥)와 같다 하여 대장마을이라 했고 월곡마을은 조선조에 조련장이 터로 밀양박씨들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마을 지형이 반달형국이라 하여 월곡이라 했다.

 

학실재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시멘트 포장도로로 이어지는 골목 등로를 따르니 민가를 지나 매화 과수언 우측 가장자리로 등로가 이어지는데 그곳으로 오르니 이곳 매화나무에는 하얀 매화가 화사하게 피어나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매화 과수원을 지나니 밭 경작지가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적상추와 마늘이 심어져 있고 그곳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는데 능선으로 오르자마자 등로는 돌이 깔려 있는 뚜렷한 등로와 만나 좌측으로 올라 간다.

지도를 보니 이곳은 우산근린공원으로 이제부터 올라가야 할 팔각정이 저 멀리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쉼터와 이정표를 지나 등로 우측을 보니 영광읍 녹사리 지나 아파트 단지와 방금 전 내려 온 등로 뒤 저 멀리 물퇴봉아ㅣ 정상에 인공구조물을 이고 높게 솟아 있고 좌측으로는 노인봉이 또 다른 봉우리를 이루며 헤어지는 아쉬운 손을 흔들어 주고 있다.

 

멋진 조망을 살펴보며 넓은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많은 주민들이 모두 마스키를 쓰고 이곳 근린공원으로 올라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약간의 바람이 불며 힘들어 하는 주민들도 보인다.

그렇게 오르니 바로 눈 앞으로 우산근린공원의 최고봉에 설치된 팔각정이 보이는데 그 팔각정은 공사중이라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그 2층 정상으로 올라 주위 풍경과 조망을 상세히 살펴보지 못하고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하다.

 

우산근린공원 정상에 있는 팔각정인 우산정을 들리지 못하고 내려가야 하는 시간이 아쉽기는 하지만 공사중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사진에 담고 다시 산행을 이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영광예술의전당이 보이고 도로 좌측으로는 영광공공도서관 건물이 보인다.

우산근린공원 종합안내도를 살펴보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천년로13길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며 산행을 이어간다.

 

숲안애라는 아파트를 지나 남천삼거리로 내려가고 그곳에서 천년로 4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잠시 후 칠거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 중앙에는 인공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칠거사거리는 신하리에 있는 사거리도로로서 신하리는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에 있는 리이며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신기, 하라, 신평, 터미널마을 등이 있는데 신기마을은 평산갑씨가 산당을 세우면서 정착 마을을 형성한 후 샛터 신기(新基)라 했고 1982년 취락 구조 개선하면서 꽃동네라고도 했으며 하라마을은 임군수가 수중 기우제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에 벼락을 맞았다 하여 벼락셋터라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하라(河羅)라 했다.

신평마을은 한말 창녕조씨, 경주김씨, 이천서씨가 의형제를 맺고 이곳에 정착 하면서 형성되었으며 터미널마을은 1984년 영광군의 계획에 의해 도동리에서 이곳으로 공용터미널을 이전한 후 상가가 형성되었다.

 

칠거사거리를 지나 계속 직진으로 진행하면 도로 좌측으로 세븐일레븐이라는 편의점이 있는 좌측 도로인 대하길2길을 타고 진행을 해야 하지만 영광 버스터미널 건너편 공용주차장에 애마를 주차시켜 놨기에 고민을 하다 애마를 끌고 백수논산보건진료소까지 진행을 하기로 한다.

조금 더 진진으로 걸어가니 터미널 사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우측으로 중앙로 도로를 건너 신남로 4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우측으로 영광 버스터미널이 보이고 그곳 앞 신남로 건너에 영광농협터미널지점 우측에 있는 공영주차장으로 가 새벽에 주차시킨 애마를 회수 해 산행을 이어간다.

 

원래 애마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진행을 해야 하지만 이제부터 백수논산보건진료소까지는 대부분 도로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애마를 이용했지만 마무리가 되고나면 늘 아쉬움이 남아 다음부터는 다른 이동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두 다리만으로 진행하리라 다짐을 하지만 그게 쉽지 않기에 그냥 진행한다.

신남로3길과 옥당로를 지나 중앙로를 타고 터미널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신남로 4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 영광고추특화시장이 보이는데 영광고추가 유명한지는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계속 이어지는 신남로 4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달려가니 신하고가교가 눈 앞에 나타나는데 그 고가를 타고 건넜으면 좋았는데 그 아래 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22번 영광로 4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잠시 더 진행하다 U턴하여 뒤돌아 와 신하고가교를 건너 U턴 한 후 고물상 앞 도로가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남쪽으로 있는 복종산 상행을 하기 위해 출발한다.

이곳 신하고가교가 있는 이곳을 벼락재(신하교차로)라 하였는데 자료가 없어 찾지 못하고 신하리에 대한 자료만 인용을 해 본다.

신하리는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신기, 하라, 신평, 터미널마을 등이 있는데 신기마을은 평산갑씨가 산당을 세우면서 정착 마을을 형성한 후 샛터 신기(新基)라 했고 1982년 취락 구조 개선하면서 꽃동네라고도 했으며 하라마을은 임군수가 수중 기우제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에 벼락을 맞았다 하여 벼락셋터라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하라(河羅)라 했다.

신평마을은 한말 창녕조씨, 경주김씨, 이천서씨가 의형제를 맺고 이곳에 정착 하면서 형성되었으며 터미널마을은 1984년 영광군의 계획에 의해 도동리에서 이곳으로 공용터미널을 이전한 후 상가가 형성되었다.

 

신하고가교 지나자 마자 좌측 도롯가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물 한통과 스틱만 가지고 우측에 폐기물 처리장을 두고 좌측으로 빙돌아 걸어가니 넓은 공터 우측으로 비포장임도가 능선 방향으로 나 있고 그 임도를 따라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 바로 아래로는 방금 전 좌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한 폐기물 처리시설이 있는 곳이다.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따르니 뚜렷한 소나무 등로가 아름답게 열려 있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벌목 후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곳으로 오르는데 등로는 생각보다 뚜렷하게 잘 나 있어 잡목 걱정없이 빠르게 올라간다.

편안하고 빠르게 걸어 오르니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 좌측을 보니 영광읍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그 뒤를 병풍처럼 둘러친 나즈막한 산줄기들의 물퇴봉과 노인봉 그리고 좌측 끝자락의 관현산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을 살펴보고 많은 사진을 남긴 후 계속 이어지는 벌목 후 자라나고 있는 잡목지대를 좌우측에 두고 뚜렷하게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 남쪽 방향으로는 불갑산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산줄기도 또 다른 추억을 만들며 달려 내려가고 있다.

오르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걸어 오르니 커다란 밤나무가 보이는 둔덕으로 오르게 되는데 지도에는 99.5미터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는 봉우리이다.

 

그 봉우리를 지나 평이한 관목들과 소나무가 보이는 뚜렷한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가파르게 올라 밀성박공 묘지가 보이는 113.4미터의 삼각점이 2개가 박혀 있는 북종산에 도착을 하는데 삼각점 2개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만 걸려 있고 이정판 하나 보이지 않는 봉우리이다.

그곳 북종산 정상에서 사진 한장과 추억을 남기고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니 북종산 정상이라는 이정표와 사각정이 보이는 비포장임도로 내려서고 그곳에서 좌측으로 가는 임도를 버리고 우측 아래로 내려가는 임도를 따라 올라 왔던 등로를 타고 북종산 갈림삼거리가 있는 신하고가교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 내려간다.

 

빠르게 걸어 내려가 99.5미터의 밤나무봉을 지나 내려가니 벌목 후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등로 우측으로 병마산 뒤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영산기맥 상 불갑산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모악산은 바로 앞 능선에 가려 숨어 있고 그 좌측으로 빙돌아가며 뒷 라인으로 오늘 이 산객이 걸었던 검은산과 우리봉 지나 오동산이 보이고 그 뒤 좌측으로는 장암산이 살짝 얼굴만 보인다.

사진 좌측 끝자락으로는 영광읍으로 내려 오기 직전 올랐던 물퇴봉이 정상에 인공구조물을 이고 서 있는 모습도 그리움을 만들고 있다.

바로 앞으로는 22번 영광로 4차선 포장도로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옆으로는 영광기독신하병원 건물도 내려다 보인다.

 

남동쪽을 살펴보고 계속 걸어 내려가며 이제는 진행 방향인 북서쪽을 살펴보니 방금 전 걸어 올라 온 마루금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잠시 후 올라야 할 복호산 지나 오늘 오후와 내일 걸어 올라야 할 장암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 장암지맥 우측 뒤로는 마루금 우측으로 떨어져 있지만 제법 많이 알려진 구수산 줄기도 보이는데 저 구수산 줄기는 내일 산행하는 내내 만나게 될 것이다.

 

북종산으로 올라갔던 등로를 타고 내려 오며 멋진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보고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빠르게 내려가니 넓은 공터를 지나 폐기물 처리 시설 정문으로 가 애마를 회수하여 다시 신하고가교 앞에서 U턴하여 신남로 2차선 포장도로를 달리니 얼마 가지 않아 사동교차로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군서로 2차로를 달린다.

 

군서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달리니 좌측으로 서해안산업환경이란 공장이 나타나고 잠시 후 우측으로는 중앙산업 공장들도 보인다.

다시 영광축산을 지나 조금 더 달려가니 군서면만곡리 교차로에 도착을 하는데 좌우측으로는 백수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도로로서 내일 산행 완주 후 이 도로를 타고 영광IC로 가 서울로 복귀해야 하는 도로인다.

이곳 주변에 애마를 잘 주차시키고 빈몸으로 복호산 방향으로 걸어 오르며 잠시 복호산 정상을 다녀 오기로 한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커다란 창고형 건물이 나타나고 그 건물 뒤쪽으로 돌아 진행하니 드넓은 파란 보리밭이 펼쳐지고 그 밭 경작지 우측 가장자리를 타고 걸어가니 곧이어 능선으로 이어진다.

이리저리 잡목들을 헤치며 잠시 걸어 오르니 금새 이동통신탑이 서 있고 그 한쪽 아래에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 있는 82.1미터의 복호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복호산(82.1m)에 관한 자료도 찾을 수 없었는데 이곳 지명이 만곡리이기에 만곡리를 찾아보니 만곡리는 전라남도 영광군 군서면에 있는 리로서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부분의 야산이 개발되어 논과 밭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점토가 풍부하다.

자연마을로는 만곡, 만성, 갈마 마을 등이 있는데 만곡마을은 마을 앞산의 형국이 넌출처럼 생겼다하여 넌추실이라 부르다 만곡(晩谷)으로 불리게 되었고 갈마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칡덩굴같이 엉켜 있는 형국이라 하여 칡 갈()자를 써서 갈산(葛山)이라 불리다 말이 변해서 갈마(葛馬)라 불린다.

만성마을은 1961년 정부의 도시 이주민 정착사업으로 20여세대가 서울에서 이주하여 산다 하여 서울경()자와 시골에 산다는 뜻으로 시골향()자를 써서 경향(京鄕)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마을이 늦게 형성되었다하여 만성(晩城)이라고도 불린다.

 

특별할 것도 없는 복호산 정상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올랐던 등로를 타고 뒤돌아 내려오니 다시 드넓은 파란색 보리밭이 펼쳐지고 그 건너 우측 앞으로는 영광군서농공단지의 많은 공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인다.

그 좌측 뒤 저 멀리에는 잠시 후 올라야 할 서금산이 올려다 보이는데 바로 앞 농공단지의 공장 건물들로 인해 정상부 이오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창고형 건물 뒤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805번 백수로 2차선 포장도로로 내려 가 애마를 회수한 후 다시 사동사거리 방향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애마를 몰고 군서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했던 도로를 뒤돌아 나와 만곡리 사거리에서 우측의 서금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들어가니 도로 좌측 옆으로 묵은 밭 경작지 넘어 나즈막하게 이어지는 원 마루금이 올려다 보이는데 애마를 몰고 진행하게 되어 아쉽기만 하다.

나즈막한 둔덕을 넘어 도로 좌측으로 비포장임도가 나 있는 서금산으로 오르는 가장 빠른 등로가 보이는 곳 만곡리에서 애마를 주차시키고 빈몸으로 서금산을 향해 오른다.

 

잠시 오르니 묵은 밭 경작지 지나 드넓은 보리밭에 도착을 하는데 보리밭에는 푸른 싹을 틔운 보리들이 자라면서 색다른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그 밭 경작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좌측에서 올라오는 뚜렷한 등로가 보이고 그 등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금새 백두사랑산악회에서 이정판을 걸어 놓은 95.9미터의 서금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서금산(95.9m) 역시 자료를 찾지 못해 산이 속해 있는 만금리를 찾아보니 만금리는 전라남도 영광군 군서면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 해발고도 50m 이하의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대부분의 야산이 개발되어 논과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고삼마을, 호암마을, 장동마을 등이 있는데 고삼마을은 1480년경 고씨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는데 참봉벼슬을 한 사람이 있어 고삼(古參)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호암마을은 여우 바위가 있다하여 호암(狐岩)이라 불리다 호랑이 호()자를 써서 호암(虎岩)이라고 고쳐 불리고 있다.

장동마을의 본래 이름은 청()과 지산(芝山)이었으나 옛날 어떤 지관이 이곳을 지나며 이름을 장동(壯洞)이라고 부르게 되면 사람이 장수한다고 하여 개칭되어 불리고 있다.

 

서금산에서 소중한 추억과 사진을 남기고 올랐던 등로를 타고 뒤돌아 내려오니 다시 드넓은 파란 보리밭을 지나 비포장임도와 묵은 밭을 통해 내려가며 진행해 온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발 아래에 방금 전 애마를 몰아 달려 온 서금로 2차선 포장도로 하녹에 애마가 주차되어 있고 우측 뒤 저 멀리 영광군서농공단지 지나 복호산이 보이고 우측으로 북종산을 찾아 보지만 우측 앞으로 보이는 서금산 가는 등로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사진 좌측 끝자락에는 내일 걸어 올라야 할 수리봉과 갓봉쪽 산줄기가 살짝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우측 옆으로는 232.1삼각점봉으로 이어지는 잠시 후 걸어 올라야 할 산줄기도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한동안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고 다시 서금길 2차선 포장도로로 복귀를 해 주차시킨 애마를 회수 해 그 서금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달리니 만금리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 만성마을 근처의 갈림삼거리에서 직진의 2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을 이어간다.

만성마을은 전라남도 영광군 군서면 만곡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1961년 정부의 도시 이주민 정착사업으로 20여세대가 서울에서 이주하여 산다 하여 서울경()자와 시골에 산다는 뜻으로 시골향()자를 써서 경향(京鄕)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마을이 늦게 형성되었다하여 만성(晩城)이라고도 불린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계속 달려 오르니 민가를 지나 도로 좌측을 보니 방금 전 올라 온 갈림삼거리 근처로 거대한 축사 건물들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에는 영산기맥의 불갑산 줄기와 그 우측 가까운 곳으로 삼각산과 금산이 보이고 우측의 가까운 곳으로는 덕산산과 방마산이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주위 풍경을 살펴보며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 축사 건물들이 보이고 곧이어 거대한 비닐하우스와 드넓은 밭 경작지를 지나 송산교회에 도착을 하는데 걸어서 진행하면 이 송산교회에서 좌측 밭과 논 경작지 둑을 통해 진행이 가능하겠지만 애마를 타고는 진행이 불가능 하기에 올랐던 도로를 뒤돌아 내려 와 우측에 축사를 두고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어렵게 산행을 이어간다.

 

송산교회에서 잠시 뒤돌아 나가 나타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도로를 타고 진행하고 다시 조금 더 달려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는 또 다시 우측으로 꺽이는 도로를 타고 어렵게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더 달려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는 이제 좌측 도로를 타고 짧게 달려 나가니 842 성지로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달리니 도로 좌측으로는 거대한 인삼포가 펼쳐져 있는데 산행을 하다보니 이제 인삼포는 전국적인 재배지로 변해 있는 듯 보인다.

 

그 842 성지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천천히 달리다 보니 도로 우측으로 많은 묘지들과 밭 경작지 지나 파란 보리밭이 아름다운 밭 경작지 지나 송산교회가 보이고 그 우측으로 거대한 축사 건물들을 지나 우측 뒤로는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서금산이 올려다 보인다.

파란 하늘에 저 멀리 떠 있는 하얀 구름이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잠시 더 그 자리에 머물며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산행을 이어간다.

 

도로 우측으로 지나 온 마루금과 저 멀리 영산기맥의 불갑산 주변의 산줄기들을 살펴보고 842번 성지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천천히 달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평화목장도 보이고 좌측으로도 거대한 목장 건물이 보이는 곳 좌측으로 남계리 이정석도 보인다.

남계리는 전라남도 영광군 군서면에 있는 리로서 해발고도 50미터 이하의 구릉지로서 대부분의 야산이 개발되어 논과 밭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점토가 풍부하다.

자연마을로는 황곡, 중촌, 학동마을 등이 있는데 황곡마을은 마을 앞산에 누런 황토가 옛날부터 많이 있다 하여 누를황()자를 써서 황곡()이라고 불렸으며 앞산의 형국이 참외 덩굴처럼 생기여 참외의 노란 꽃이 피어있는 모습이라 하여 황곡()이라 불린다.

신석기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지석묘4기가 마을 뒷산 입구 금바위 등에 있고 중촌마을은 동네와 동네중간에 마을이 있다 하여 중촌()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학동마을은 마을의 형국이 학()의 꼬리 부분에 해당되는 마을이라 하여 학동()이라고 불린다.

다시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계속 진행하니 만곡사거리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기고 직진의 도로를 타고 계속 산행을 이어간다.

 

 

만곡사거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842번 성지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천천히 달려가니 도로 우측 앞으로 잠시 후 올라 넘어야 할 187.1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사진에 담고 조금 더 가니 도로 좌측으로 만년표지석 지나자마자 만년리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만년마을은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논산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마을 뒷산이 마치 만월()형이고 마을 지형이 둥근 모양을 한 지형이라고 하여 만년동()으로 불린다.

도로 좌측으로는 인삼포가 다시 드넓게 펼쳐져 있고 도로 좌측으로는 내일 올라야 할 수리봉과 갓산이 보이고 도로 끝 저 멀리에는 장암지맥 마루금에서 우측으로 약간 벗어 나 있는 구수산 자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진행 방향으로 조망들을 살펴보고 산 이름들을 불러 준 후 다시 천천히 달리니 도로 좌측으로는 파란 밭 경작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는데 아마도 밀이나 가축 먹이용 사료처럼 보인다.

도로 좌우측으로는 이어지는 장암지맥 마루금과 구수산을 살펴보며 계속 진행하니 청룡동 버스정류장이 나타나는데 청룡마을 역시 논산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청용마을은 술왕골로 불리다 1900년대에 청용마을로 개칭된 마을이다.

그곳을 지나 도로 좌측으로 건설회사의 건물들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바로 앞에 갈림사거리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곧이어 도로 우측으로 백수논산보건진료소가 보이는 갈림사거리 앞에 도착을 해 그 백수논산보건진료소 앞 공터에 애마를 주차 시키고 시간을 보니 이제 오후 4시 15분을 넘기고 있어 배낭을 정리 해 다시 백두개재까지 산행을 이어간 후 도보를 이용해 이곳 백수논산보건진료소로 복귀해 애마를 회수하기로 한다.

무리를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내일은 날씨가 흐리고 오후 늦게 비나 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 조금 이른 시간에 산행을 마무리하고 일찍 귀가하기 위해 오늘 조금 무리를 하도라도 조금 더 걸어 진행하기로 하는데 내일 아침 모래미 마을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바로 백두개재에서도 하차 가능하기에 오늘 그곳까지 진행하기로 했다.

 

백수논산보건진료소에 애마를 잘 주차시키고 갈림사거리에서 이제 직진의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나 있는 842번 장산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백수동부교회가 보이고 사진에 담고 계속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농기구들과 자재들이 널부러져 있고 그 바로 뒷쪽으로 창고같은 커다란 건물이 보이는 방향으로 갈리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그 건물를 지나 밭 경작지 가장자리를 타고 논산리 마을의 시멘트 포장도로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른다.

논산리는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만년, 청용, 금정, 용, 월산마을 등이 있다.

만년마을은 마을 뒷산이 마치 만월()형이고 마을 지형이 둥근 모양을 한 지형이라고 하여 만년동()으로 불리고 청용마을은 술왕골로 불리다 1900년대에 청용마을로 개칭되었으며 금정마을은 이곳의 들샘물이 좋다 하여 쇠금()자와 샘정()자를 따서 금정()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용마을은 마을뒷산이 용체형이고 마을앞산이 체형이라 용이라 하였다고 하며 월산마을은 전에는 영마면에 속했는데 1914년 5개면이 통합되면서 백수읍 논산리 월산마을이 되었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민가인지 축사인지 모를 건물들이 보이고 그 건물을 좌측에 두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눈 앞으로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그 뒤로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187.1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올려다 보인다.

좌측인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햇살이 길게 누어있는지 조금은 쓸쓸함이 남아 있는 풍경이고 구름 한점 없이 푸르게 빛나는 겨울 하늘이 그 쓸쓸함을 더하는 시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비닐하우스를 지나 오르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끝이나고 좌측으로 밭 가장자리 옆으로 비포장임도가 열리는데 그 임도를 타고 오르니 커다란 상수도 물통이 보이고 그 물통 앞에서 등로는 좌측 밭 가장자리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밭 경작지를 좌측에 두고 그 가장자리를 타고 오르다 등로 뒤를 돌아 보니 좌측 저 멀리 장암산에서부터 이곳까지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장암지맥 마루금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조망을 살펴보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매화가 활짝 핀 과수원을 지나 능선으로 이어지고 무명묘지 두어기를 지나 약간의 잡목들을 헤치고 가파르게 오르니 커다란 바위들도 지나 또 다시 무명묘지를 넘는다.

그 무명뵤지를 지나니 빼곡하게 자라난 잡목 사이로 몸 하나 빠듯이 지나갈 수 있는 뚜렷한 등로가 열리고 그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오르니 백두사랑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이정판이 걸려 있는 187.1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긴다.

 

봉우리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사진에 담은 후 다시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며 진행하니 186.3 무명바위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을 지나 여전히 우거진 잡목들 사이로 나 있는 좁은 등로를 따르니 165.7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대한산경표의 산으로님은 이곳을 와탄남지맥이라 이름 붙였다.

여전히 잡목들이 우거져 보이지만 그 사이로 뚜렷한 등로도 계속 열려있어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편안하게 진행을 하니 무명묘지가 좌측으로 보이고 그곳에서 묘지 넘어 살펴보니 내일 걸어야 할 수리봉과 갓봉쪽 봉우리가 봉긋 솟아 있어 사진에 담고 계속되는 잡목들을 헤치며 전진한다.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165.4 무명봉을 넘어 잡목을 헤치며 전진하니 서서히 잡목들이 줄어 들기 시작하고 곧이어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도로 위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하고 잡목들이 우거진 능선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조금 더 거칠어지는 오르막 잡목 등로를 타고 힘들게 오르니 가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용기를 주고 그 띠지들을 찾아 조심하며 오르니 경사도가 완만해지기 시작하더니 등로에는 잘려진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다.

그 등로를 지나 이리저리 널부러진 고사목들을 피해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와 바위들 위에 솔갈비가 두껍게 갈려 있는 194.4봉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이 바로 우측 위로 보이는 232.1삼각점봉으로 오를 수 있는 갈림삼거리이다.

시간도 충분하기에 이곳에 배낭을 벗어 놓고 스틱만 들고 무조건 우측의 삼각점봉을 잠시 다녀오기로 한다.

 

빈몸으로 빠르게 걸어 오르니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계속 이어지고 잠시 후 비석과 잘 조성된 묘지이지만 오랜시간 관리가 되지 않아 잡풀들이 무성한 묘지를 지나 쓰러진 고사목들이 등로를 막고 있는 마루금을 타고 어렵게 오르니 등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와탄천이 살짝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사진에 담고 오르니 금새 법성 436이란 삼각점이 박혀 있는 232.1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에 오른 시간을 자축해 본다.

우거진 잡목들과 잡풀들이 보이는 232.1삼각점봉에서 어렵게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올라 온 등로를 타고 배낭을 벗어 놓은 갈림삼거리로 곧바로 내려가 배낭을 회수하고 보이지 않는 등로를 찾아 어렵게 마지막까지 정상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232.1삼각점봉으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로 복귀를 해 벗어 놓은 배낭을 회수해 어께에 둘러메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찾아보지만 산행 들머리가 전혀 보이지 않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도 걸려 있지 않아 정상 등로를 찾아 잠시 와다리 갔다리 하다 보니 저 아래 커다란 바위 아래 흔들리는 노란색 띠지 한장이 보이고 그곳으로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니 희미한 등로가 열리고 무조건 방향만 잡고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지독한 잡목지대를 지나 커다란 바위들이 보이는 170.2 무명바위봉에 도착을 한다.

바위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고사목이 서 있는 178.7 무명고사목봉에 도착을 해 사진에 남긴 후 마지막 힘을 내 차량들이 통행하는 소음이 들리는 백두개재 방향으로 내려가 본다.

 

노란 생강꽃이 꽃망을 터트리는 모습을 다시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잡목들이 자라는 무명묘지를 지나 잡목들이 발목을 잡는 내리막 마루금을 타고 조심하며 마지막 발걸음을 옮기니 등로 우측 앞으로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무조건 그 묘지지대로 내려가니 전주이공 묘지들인데 진행 방향으로는 민가가 내려다 보이고 그 앞으로 성지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백두개재가 지척으로 다가와 있고 저 멀리에는 내일 아침에 올라야 할 286.4봉과 우측으로 수리봉이 드높게 올려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진행 방향을 확인하고 묘지지대를 타고 편안하게 내려가다 이제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저녁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구수산과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불게 반짝이고 있고 그 아래 앞쪽으로는 길용리 마을이 밀려오는 어둠속에 조용하지만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길용리는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에 있는 리로서 수리봉에서 이어지는 산지들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형태를 이루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영촌, 구호, 범현, 용암, 문암, 입석마을이 있는데 영촌마을은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이 태어난 생가가 있으며 산신()을 만나기 위해 5년간 기도를 한 넓은 바위인 삼밭재 마당바위가 있고 구호마을은 동네를 둘러싸고 있는 아홉 봉우리의 산의 형상이 호랑이 아홉 마리가 노는 형상이라 하여 구호동()이라 하였으며 범현마을에는 원불교 영산성지()가 있다.

용암마을은 바위의 모양이 마치 용과 같다하여 용암()이라 하였고 문암마을은 바위의 형상이 많은 문인을 배출하리라 하여 문암()이라 칭하였다고 하며 입석마을은 마을 뒷산에 바위가 서있어 입석()이라 칭하였고 백제시대에 지은 수두암()절터가 있다.

 



이제 묘지지대를 지나 내려가니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밭을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서서 그 도로를 타고 내려가는데 도로 좌측 위로는 매화 과수원이 올려다 보이는데 매화나무에는 하얀 매화꽃이 만발해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그렇게 매화꽃을 살펴보며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전주이씨세장산이 서 있고 그 옆으로는 민가가 보이는데 그곳에 있는 개 한마리가 이방인의 출현에 울부짖고 있어 어렵게 달랜 후 내려가니 성지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백두개재에 도착을 해 내일 아침에 진행 해야 할 마루금을 확인하며 길고도 멀었던 장암지맥 제1구간 산행을 마무리 한다.

백두개재(성지로 2차선 포장도로, 전주이씨세장비)에 관한 자료 역시 찾지 못해 이곳 지명인 천정리를 찾아보니천정리는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에 있는 리로서 수리봉을 중심으로 대부분이 산지를 이루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천기, 대흥, 평지, 금계마을 등이 있는데 천기마을은 마을 서쪽에 있는 산의 형체를 따라 선녀가 내려와 베짜는 형국을 이루었다고 하여 하늘천()자와 터기()를 써 천기라 칭하였으며 대흥마을은 뒷산에 대흥사(大興寺)라는 절이 있어 대흥이라 하였다.

평지마을은 약 400여 년 전 임진왜란 당시 김해김씨가 임시 난을 피해 이곳에 정착했다가 터를 잡고 살아왔다고 하고 금계마을은 뒷산에 바위가 많고 그 중 하나가 새벽녘에 닭이 우는 형상이 있어 김계(金鷄)라 하였다. 천정저수지가 있다.

 

묘지지대에서 백두개재 방향으로 내려오는 중간에 군내버스가 내려오고 있어 달려 내려가 성지로 2차선 포장도로에 막 도착을 해 손을 흔들어 보지만 버스정류장이 아니라서 그런지 아니면 운전기사가 보지를 못했는지 그냥 쌩하고 달려 가 어짜피 버스를 기다리는 어려울 것 같아 천천히 성지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 백수논산보건지료소까지 이동하기로 한다.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창암김학병쉼터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고 곧이어 대흥 버스정류장이 나타나는데 내일 아침 버스를 타고 이곳으로 올 때 대흥에서 하차를 해야 될 것 같다.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니 다시 천기동 버스정류장을 지나 평지마을도 통과하니 도로 좌측 위로 방금 전 걸어 올랐던 마루금 위 저 멀리 187.1봉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방금 전 걸어 올라간 마루금을 확인하며 계속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백수초등학교와 백수동분교장 건물들이 보이고 논산리 마을의 민가들을 지나 백수논산보건진료소 앞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한다.

그 도로를 건너 드디어 애마를 주차시켜 놓은 백수논산보건진료소에 도착을 해 배낭 정리하고 애마를 몰아 잠시 고민하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찜질방을 포기하고 마음 편히 영광읍으로 돌아 가 여관을 잡아 마음 편히 쉬려고 하는데 손님으로부터 전화가 와 일거리를 만들어 줘 더욱이 여관에서 자야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고 있다.

 

영광읍으로 뒤돌아 나와 조금은 싼 가격으로 흥정해 여관을 잡아 샤워하고 환복한 후 주인이 추천한 나주곰탕집으로 가 곰탕 정식을 시키니 푸짐한 곰탕 한그릇에 스지 무침이 나왔는데 부추에 무친 스지가 너무나 맛 있어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며 맛 난 저녁으로 허기를 면한다.

식사 후 맥주 한변 구매 해 다시 여관방으로 돌아 가 컴퓨터로 일을 마치고 나니 밤 10시를 넘기고 사진을 정리하고 배낭까지 정리하고 나니 피곤이 밀려 온다.

 

 

 

생각보다 편안한 등로를 타고 조금은 길게 진행을 하였지만 무탈하게 마무리를 해 다행이지만 일부 구간을 애마로 진행하다 보니 아쉬움도 남긴 장암지맥 첫 구간 산행이 되었다.

모든 자료들을 정리하고 구매한 맥주 하나를 마시며 TV 시청을 하다 보니 하루 해가 바뀌는 시간이 지나고 새벽 5시 30분에 기상 알람을 알리고 깊은 잠에 빠지며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 한다.

 

내일 새벽 일찍 일어나 따뜻하 밥 한그룻 먹을 수 있기를 바라며 해안도로 지맥 마지막 날머리에 애마를 주차시킨 후 모래미마을까지 이동한 후 7시에 출발하는 첫 미니버스를 타고 무탈하게 백두개재로 와 정상적인 산행을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200229 장암지맥 제1구간 곰바위재-백두개재.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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