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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안면지맥(섬·완)

안면지맥 제1구간 안면대교에서 안면고등학교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20.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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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도의 안면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0년 01월 19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흐렸다 맑았다를 반복하고 강한 찬바람이 불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3도에서 영상 05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연육교삼거리(창기2리 버스정류장, 77번 안면대로 4차선 포장도로)-2차선 포장도로-등마루1길 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능선진입-64.3

               무명봉-66.6 무명봉-66번 송전탑-처진골망산(75.8봉, 신온427 삼각점)-67번 송전탑(77봉)-60.1 무명봉-1차선 포장도로-흑석동길 2차선 포장도로-

               68번 송전탑(52.4봉)-비포장 임도-퇴비 공터(비포장 임도, 밭 경작지)-과수원과 콘테이너 박스-비포장 임도-능선진입-79.5 무명봉-78.2 산행

               띠지봉-비포장 임도-1차선 포장도로-백사장고개(77번 안면대로 4차선 포장도로)-창기삼거리-황도로 2차선 포장도로-창기중학교 진입로-솔안길

               1차선 포장도로-불탄개-77번 안면대로 4차선 포장도로-납작고개(방죽길 갈림삼거리)-능선진입-잡목지대-맨발님 응원판-로프 등로-이정표(국사봉

               정상 700m, 창기6구 회관 500m, 성황당고개 500m)-107.8 고사목봉-국사봉(107.2봉, 시온25 삼각점) 이정표(삼봉해수욕장 3.1 Km, 창기6구

               회관 1.2 Km)-운동기구-84.9 무명고사목봉-77번 안면대로 2차선 포장도로-능쟁이마을 안내판(미포길 시멘트포장도로 갈림삼거리)-능선진입-36.2

               잡목무명봉-미포길 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무명묘지1기-창기4리 무과나무골 갈림삼거리(미포길 갈림삼거리) 이정표(천수만 전망쉼터와 소나무

               숲길 1.95 Km, 예뜰수양관 350m)-산불조심 경고판 이정표(천수만 전망쉼터 1.85 Km, 둘레길 입구 500m)-비포장 임도-63.2 무명봉-59.5 무명봉-

               안면대로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민가1채와 밭 경작지-능선진입-82.6 잡목봉-지독한 잡목등로-64 소나무 무명고사목봉-65.1 밑둥 무명봉-

               여수해길 시멘트 포장도로-민가와 밭 경작지-능선진입-밭 경작지-여수해길 비포장도로(도로 공사중)-민가와 밭 경작지-92.5봉(운동기구)

               이정표(노루샘 공원 600m, 여수해 300m와 안면암입구 1.5 Km)-78.9 무명봉-묵은 밭 경작지-77번 2차선 포장도로(정당리)-밭 경작지-목장지대-

               능선진입-김해김씨 묘지지대-시멘트 포장도로와 비포장 임도-사슴농장-정당2리(잔다리) 버스정류장(회목길 시멘트포장도로)-민가-잡풀지대-분재

               소나무지대-63.6 고사목 무명봉-초원펜션-구령재(77번 안면대로 2차선 포장도로)-절개지-81.8봉(신온311 삼각점)-59.3봉-잡풀지대-밭 경작지-

               독개길 시멘트 포장도로-광지고개(독개길 1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42.2 고사목과 철망 무명봉-밭 경작지-비포장임도-장터로 1차선 포장도로-

               장터로 갈림삼거리-승언로 2차선 포장도로-렉스빌A동 능선진입-무명묘지들-지독한 잡목지대-91.5 무명삼각점봉-LG이동통신탑-77번 안면대로

               2차선 포장도로-철계단-밤나무 과수원-80.9 묘지2기 무명봉-해안관광로 2차선 포장도로-98.1봉-지독한 잡목등로-77번 안면대로 2차선 포장도로)-

               민가-밭 경작지-무명묘지들-비포장임도-6각정자와 해맞이축제기념비 광장-비포장임도-방포로 2차선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승언1리마을회관-안면도

               수협-장터로 2차선 포장도로-킹스마트-안면도서관-천주교 묘지지대-안면중앙교회-장터로 2차선 포장도로-비석골삼거리-비포장임도-민가오 밭

               경작지-능선진입-58.6봉(신온433 삼각점봉)-통나무 계단-벤취쉼터와 이정표(승언1저수지 470m, 쉼터 460m)-61.6봉-비포장임도-벤취쉼터1과

               갈림삼거리 이정표(승언1저수지 310m, 산정부 160m)-밭 경작지-안면고등학교-시멘트 포장도로-안면고등학교 갈림삼거리-지맥산행종료-안면고등

               학교-안면고등학교 주차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총 17.83 Km (안면대교에서 안면고등학교 주차장까지)

               지맥산행 - 약 17.35 Km (안면대교에서 안면고등학교 위 무명안부까지)

               접속구간 - 약 00.48 Km (안면고등학교 위 무명안부에서 주차장까지)

산행트랙 : 20200119 안면지맥1구간 안면대교-안면고등학교.gpx

                최근들어 전파 방해가 있는지 정상 트랙 이외에 직선으로 만들어진 튄 트랙이 발생하여 실제 산행한 트랙과 다르게 표기된 점 참고바람니다. 

산행시간 : 06간 01분 (07시 44분부터 13시 46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4시 00분 기상 후 애마를 몰아 안면고등학교 앞 주차장으로 출발

                                 06시 00분 안면고등학교 아래 주차장에 애마 주차 후 안면버스터미널까지 도보로 이동

                                 06시 55분 안면버스터미널 근처의 식당에서 황태미역국으로 아침 해결 후 안면버스터미널로 이동

                                 07시 25분 안면버스터미널에서 950번 태안행 군배버스에 탑승하여 안면대교까지 이동

                       올때 - 13시 46분 안면고등학교 주차장에서 산행 종료 후 애마 회수

                                 15시 55분 이른 시간이라 별로 막히지 않는 고속도로를 타고 정시간에 귀가

안면지맥이란 ???
안면지맥은 충남 태안군 안면대교에서 시작해 치진골망산(75.8봉), 국사봉(107.2봉), 당산(97봉), 안면읍을 지나
태안군 고남면 영목선착장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3.52 Km에 달하는 섬 산줄기로 동쪽은 천수만, 서쪽은 황해가 된다.
안면도는 본래 곶인 반도로서 육지인 남면과 연육되어 있었는데 삼남지역의 세곡 조운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조선조의 인조 때에 지금의 안면읍 창기리와 남면의 신온리 사이를 절단하므로써 이 때부터 안면곶이 섬이 되어 안면도라 호칭하게 된 것이다.
 

 

 

최근들어 많은 선답자들이 다녀갔는지 생각보다 좋았던 등로를 따라 출장 후 몸에 무리가 되지 않게 안면도에서 가볍게 즐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안면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전충청남도 태안군 안면도와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및 네이버의 지식백과와 다음의 백과사전 그리고 산림청과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원래 계획은 금요일 밤에 출장에서 귀국한 후 토요일 새벽 일찍 안면도로 내려가 이틀간 안면지맥을 마무리하고 여유롭게 일요일 오후에 올라오는 일정이었는데 토요일 새벽에 알람소리에 깨어났지만 긴장을 했었는지 아니면 몸이 예전보다 못한지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고 다시 자리에 누워 일어나니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아침 시간이었다.

토요일 하루는 집에서 마음 놓고 쉬면서 밀린 삲ㅇ후기도 정리하고 출장 다녀 온 자료도 정리하다 보니 또 하루가 지나고 일요일 새벽에 다시 일어나니 옆지기가 걱정을 하면서 하루 더 쉬라고 말리지만 집에서 쉬는 것이 더 어렵고 힘든 시간이 될 것 같아 잠시 머뭇거리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 난 시간이 새벽 3시 40여분을 지나고 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옆지기가 준비해 준 과일과 먹거리를 챙겨 집을 출발하는 시간이 새벽 4시로서 밖으로 나가니 생각보다 춥지 않아 큰 걱정없이 안면도로 출발하는데 섬 특유의 잡목과 가시나무들 때문에 많은 걱정과 고민들이 생겼던 시간이었지만 실제 가 보니 최근들어 많은 선답자들이 다녀갔는지 생각보다 등로가 뚜렷하고 많은 부분은 또 정리까지 되어 있어 이른 시간에 산행을 마무리하고 해가 떠 있는 시간에 귀가를 해 의미있는 일요일이 되었다. 

 

 

 

새벽 일찍 집을 출발하면 늘 아침 먹거리가 고민인데 오늘도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며 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해야 되지만 먹고 싶은 음식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가격도 맛에 비에 터무니 값이 비싸 가능하면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리지 않고 일단 안면도로 가 보기로 한다.

이제 전국적으로 읍과 면 소재지 마을까지 24시 편의점들이 입주해 있어 식당을 찾지 못하면 그 편의점에서 라면과 햇반 그리고 김치 하나면 왠만한 식당에서 제공하는 식사보다 좋아 자주 이용하는 편이라 오늘도 식당을 찾지 못하면 편의점에서 아침을 해결하기로 한다.

오늘 산행 날머리인 안면고등학교 근처로 가 학교 바로 아래 넓은 주차장에 애마를 잘 주차시키고 어둠속에 천천히 걸어 안면버스정류소 방향으로 걸어가니 채 2 Km가 되지 않는 거리에 약 20여분 걸린 듯 하다.

버스 정류소 가기 직전 우측으로 영심이네 만두라는 작은 식당이 보이고 불이 켜져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문 앞에 나와 커피를 마시고 있어 들어가 보니 근처 공사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놓고 식사를 하는 듯 하며 오늘 아침 국은 황태미역국이기에 자리 잡고 아침식사를 즐긴다.

생각보다 맛도 좋고 터미널과 가까워 앞으로 안면도로 가게되면 가끔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본다.

  

든든하게 아침식사 후 안면버스정류소에서 안면대교로 운해되는 첫차가 7시 15분이기에 커피 한잔까지 마시고 느긋하게 걸어 안면버스정류소에 도착을 하니 할아버지 한분이 매표소를 지키고 있어 확인하니 오늘은 일요일이기에 첫차인 7시 15분 차는 운행되지 않아 7시 25분 버스로 가라는 답변이 들린다.

잠시 더 기다렸다 들어 온 950번 태안군내 버스를 이용해 이곳 저곳 마을들을 들려 드디어 안면대교 앞 안면대교 연육교라는 버스정류장에서 도착하여 하차하니 이제 아침 7시 43분을 지나고 있는데 일출은 이미 시작되었을텐데 아직도 어둠이 완전히 벗겨지지 않아 하늘을 올려다 보니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어 금방이라도 비나 눈이 내릴 것 같은 그런 날씨이다.

 

면대교 연육교 버스 정류장 안에서 산행 준비 후 주위 풍경들을 사진에 담아 보는데 제일 먼저 북쪽으로 안면대교를 살펴보고 그 우측 옆으로 손님이 없어 문을 닫은 힐링타운 콘도와 해수탕 및 찜질방 건물이 차가운 겨울 바람보다 더 차가운 모습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안면대교(77번국도)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와 남면 신온리를 연결하는 교량으로 안면도와 육지를 잇는 연륙교이며 지방도 649번 도로상에 있다.

1970년에 완공한 안면교(길이 208.5m)가 노후화하자 1994년에 착공하며 1997년 완공하였으며 길이 300미터에 폭 10.5미터 및 유효 폭 9.5미터 그리고 접속도로 1.3 Km 규모이다.

상부구조는 강 박스거더(steel box girder)에 하부구조는 라멘식으로 되어 있으며 설계등급은 1등급교(DB24)이다.

이 다리의 개통으로 서북부공업단지에서 서산 대산공단, 태안해안국립공원, 안면도관광단지, 보령, 서천으로 이어지는 서해안 산업관광도로 개발이 더욱 활발해졌으로 대교 건설 이후 구 안면교는 16t 이상의 차량과 높이 2.5m 이상의 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이제 남쪽 끝자락에서는 안면도와 보령을 잇는 교량 공사가 진행중이고 올해중에 개통이 되고 나면 이곳 통행량도 상당부분 분산이 되면서 안면도도 조금 더 관광과 개발 붐으로 시끄러운 관광지가 될 듯 싶다.

 

 

이제 남쪽의 진행방향을 살펴보니 신호등이 보이는 갈림사거리 지나 77번 안면대로4차선 포장도로가 잘 뚫려있고 그 좌측 옆으로 지하통로로 지나갈 수 있는 2차선 포장도로도 보이는데 이제부터 그 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다 좌측 능선 방향으로 진행하면 될 듯 싶다.

춥지 않아 귀마개와 장갑은 착용하지 않고 곧바로 그 안면대교 앞 연육교라는 버스 정류장을 나와 안면지맥 산행을 진행하는 시간이 아침 7시 44분을 넘어가고 있다.

77번 안면대로 4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그 좌측으로 분기하는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내려가니 우측 굴다리 밑으로 가기 직전 좌측 전봇대가 서 있는 좌측으로 또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가 갈리는데 이제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도로를 따라 오르니 도로 양 옆으로 밭 경작지가 보이고 이방인의 출현에 민가의 견공들이 격하게 환영해 주는 인사를 받으며 올라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산행을 시작한 안면대교 앞 문을 닫은 힐링타운 건물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그 좌측으로 보여야 할 작고 아름다운 드리니항은 보이지도 않는다.

 

 

짙은 먹구름으로 인해 아직도 어둠속에 거늘듯 그 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밭 경작지가 끝나는 지점부터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비포장 임도로 변하면서 여전히 진행에는 큰 무리가 없이 빠르게 걸어 올라 본다.

임도 좌우측으로는 키 작은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풍경이 보이는데 그 잔가지들마저 임도로 나와있는 부분은 정리가 되어 있어 생각보다 너무 좋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다.

첫번째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는 우측을 선택하고 여전히 고속도로같은 등로를 따르니 임도는 점점 더 그 모습을 잃어가고 주능선 가까이 도착하니 이제 임도는 완전히 사라지고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평이한 등로로 바뀌고 있다.

우측의 나즈막한 무명봉은 키 작은 소나무들로 인해 오르기가 쉽지 않아 포기하고 좌측으로 우회하며 걸어가니 금새 주능선에 도착을 해 좌측으로 진행하니 약간의 잡목 가시나무들의 저항이 있지만 어렵지 않게 헤치며 올라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64.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본다.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잡목이 우거진 64.3 무명봉을 지나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오르니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선답자의 작은 띠지 하나가 다시 걸려있는 66.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인사 나누고 사잔에 담은 후 평이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지만 예상보다는 훨씬 좋은 등로이기에 부담없이 전진한다.

잠시 후 다시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 오르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잠시 후 66번 송전탑을 만나 사진에 담은 후 잠시 소나무 사이를 비집고 오르니 중온427 삼각점과 맨발님이 걸어 놓은 75.8봉이라는 이정판이 보이는 처진골망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하지만 실제 삼각점에는 중온427이 맞는데 삼각점 설명판에는 신온427이란 다른 표기가 보여 헷깔리고 처진골망산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처진이란 단어는 뒤처진이라고 쓸 때 사용되는 의미와 같을 것 같고 골망은 이 산객이 어릴적 살던 고향에서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릴 때 만드는 밭 고랑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에 의미 풀이를 해 보면 처진 도랑(골짜기)에 있거나 처진 고랑이 있는 산이란 의미인데 아마도 이런 의미가 아닌 다른 뜻이 더 있을 듯 보인다.

 

그 처진골망산을 지나 진행을 이어가니 푹신한 솔갈비가 바닥에 쌓여있는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잠시 더 좌우측으로 이리저리 휘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67번 송전탑이 서 있는 77 무명봉도 지나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60.1 무명봉도 넘는다.

이제부터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등로에 제멋대로 나뒹굴고 있어 진행에 어려움이 있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무명 묘지 한기를 통과하고 곧이어 뚜렷한 잡풀 등로를 만나 좌측으로 사면치기 하듯 내려가니 콘크리트 수로가 보이고 그 수로를 따르니 금새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 내려간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데 지도를 확인해 보니 흑석동길로서 창기리에 있는 도로이다.

 

창기리에 있는 흑석동길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보이는 옾은 콘크리트 옹벽을 넘어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커다란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로 이어지는데 그 등로 위에는 잘려진 작은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는 상당히 불편하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작년에 신산경표상 162 전지맥을 완주하신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닉을 사용하는 이경일님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등로 우측으로 52.4봉이 가깝게 보이는데 대부분의 선답자들은 이곳을 52.4봉이라 칭하고 있다.

 

그 52.4봉이라 불려지는 봉우리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잠시 더 걸어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68번 송전탑이 보이고 사진 한장 남기고 내려가니 등로 양쪽으로 잡목들이 우거져 있는 뚜렷한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만나 편안하게 걸어간다.

잠시 후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둔덕같은 무명봉 지나 넓은 공터 한쪽에 검정 퇴비 무덤같은 것들이 쌓여 있는 비포장 임도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진행방향을 살펴보니 밭 경작지 지나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그 우측 뒤로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78.2봉도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 우측에 그물망이 쳐진 밭 경작지를 두고 잠시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비포장 임도가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그 시멘트 포장도로가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곳 우측으로 또 다른 비포장 임도가 보이는데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역시나 그물망이 쳐져 있어 출입금지를 해 놓은 듯 보인다.

그곳이 마루금이기에 그물망이 다치지 않토록 조심해 통과한 후 좌측에 거대한 비닐하우스를 두고 안으로 들어가니 콘테이너 박스들과 가건물들이 보이고 파란 물통도 보이는데 살펴보니 과수원이다.

이제서야 왜 그물망이 쳐져 있었는지 이해가 되어 강아지 한마리가 지키는 그 콘테이너 박스가 보이는 관리동을 지나 과수원과 밭 경작지를 타고 빠르게 통과한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고 과수원의 나무들을 지나 오르니 또 다시 그물망이 앞을 가로막아 조심하며 통과하니 넓은 비포장 임도가 좌우측으로 등로를 가르며 개설되어 있다.

그 비포장 임도를 건너 다시 가파르게 이어지는 오르막 능선으로 들어가니 솔갈비가 깔려있는 약간의 잡목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79.5 무명봉을 지나 지도 상 78.2봉에 도착을 하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고 그중 한곳에는 유성 펜으로 작어 놓은 78.2봉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78.2봉에서 몇장의 사진들을 남기고 내려가니 금새 드넓응 비포장 임도와 만나 한동안 그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차량들 출입을 금지하는 바리게이트가 설치되어 있는 곳에 도착을 하고 그 좌측으로 충청남도휴양림관리사업소장이 세워둔 안내판이 보이는데 세월이 흘러 칠이 벗겨지며 읽어 볼 수가 없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1차선 포장도로가 새로 개설되어 있고 도로 좌측 위를 보니 커다란 신축 건물이 보이는데 그 용도는 알 수가 없다.

지도를 찾아봐도 나타나지 않는 건물을 살펴보고 우측으로 포장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77번 안면대로 신도로와 구도로가 만나는 백사장고개에 도착을 해 그 도로를 타고 완전히 한바튀 돌아 새로 신설된 77번 안면대로를 따라 남쪽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백사장고개라는 이름이 생소해 찾아보니 이곳 창기리 우측 바닷가에 백사장항이 있으며 백사장항은 충청남도 태안군의 안면읍 창기리에 있는 항구로서 안면도에는 백사장이 서해안을 따라 안면읍에서 고남면에 이르기까지 매우 길게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청구도, 동여도, 대동여지도백사정()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1872년지방지도에는 북서쪽에 백사장()으로 기록되어 있어 이 지도의 지명에서 유래하였음을 알 수 있다라는 자료가 보이는데 이 백사장항에서 유래된 고개이름처럼 보인다.

 

그 백사장고개라는 곳에서 77번 안면대로 4차선 신설도로를 타고 조심하며 산행을 이어가니 나즈막한 둔덕을 넘어 주유소 지나 창기삼거리라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 곳에서 직진의 77번 고남과 안면으로 가는 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황도라고 보이는 방향으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며 창기리 마을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보인다.

창기리는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에 있는 리로서 본래는 태안 안상면의 관할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우포리()와 창기리를 통합하여 안면면에 편입시켜 그대로 창기리가 되었다.

지명은 조선조에 이 지역에 조세창고가 있어 창터말이라고 부르던 것이 후에 지명의 한자표기에 의해 창기리()가 되었다고 하며 서해안의 섬 안면도의 동쪽 내륙에 있다.

경치가 매우 좋아 관광지로서 관광객이 많이 찾아드는 마을이고 자연 마을에는 삼봉이 있는데 삼봉은 바닷가의 바위가 마치 세 개의 산봉우리처럼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국내 최대의 대하 집산지가 있으며 인근에는 삼봉해수욕장이 있다.

 

창기삼거리에서 좌측 황도가는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가니 잠시 후 도롯가에 도로 좌측으로 창기중학교 가는 표지판이 서 있고 그곳을 지나 도로 우측으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잠시 후 다시 만나야 할 77번 안면대로 2차선 포장도로가 길게 뻗어 있고 그 도로 건너 올라야 할 국사봉도 빼꼼히 머리를 내밀고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한다.

바로 발 아래로는 밭 경작지 지나 창기리버스정류장이 있는 작은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민가들과 함께 빤히 내려다 보여 잠시 시골에서 자랄 적 추억을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었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 도로를 따라 진행하는데 2차선 포장도로는 이제 차 한대 겨우 통행하기도 어려운 1차선 포장도로로 바뀌고 있다.

아기자기한 민가들과 상점들을 구경하며 진행하니 이 도로와 골목은 솔안길이란 이름이 붙어 있는 도로로서 잠시 후 낡고 오래된 시골스러운 민가들이 도롯가에 줄지어 나타난다.

그 민가들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드디어 창기삼거리에서 헤어졌던 신설된 77번 안면대로와 다시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진행을 이어간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도로 앞 우측 방향으로 삼봉해수욕장가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고갯마루 정상인 납작고개에 도착을 하고 그곳 납작고개를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커다란 플랭카드와 입간판들이 서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몇발자국 걸어 들어가니 도로 좌측 능선 방향으로 들머리가 이어진다.

 

키가 큰 거대한 참나무와 소나무 사이로 우거져 보이는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능선으로 오르니 보기보다는 뚜렷한 등로가 나 있고 잡목들의 저항도 심하지 않아 생각보다 편안하게 진행된다.

최근들어 많은 선답자들이 다녀갔는지 등로 주위로 보이는 우거진 잡목과는 달리 등로에는 제법 잡목들이 제거되어 있어 진행에 어려움은 없다.

그렇게 잠시 걸어 오르다 경사도가 점점 커지는 곳에서 죽어 껍질이 벗겨지는 소나무 한그루를 만나는데 그곳 위를 처다보니 맨발님의 응원판이 높게 걸려 있어 감사한 인사 한번 드리고 다시 오름짓을 이어간다.

 

계속 이어지는 우거진 잡목 사이로 뚜렷하게 나 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다시 멈췄던 굵은 땀방울이 이마와 등줄기를 타고 흘러 내리기 시작하지만 두 볼에 스치는 강한 바람은 곧 눈이라도 뿌릴 듯 차갑기만 하다.

잠시 후 우거진 잡목 사이로 굵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그 로프지대를 지나 오르니 갑자기 비포장임도같은 넓은 주능선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은 갈림삼거리로서 진행 방향으로 국사봉과 성황당고개 및 우측으로 창기6구 마을회관으로 갈 수 있다는 이정판에 서 있다.

방금 전 77번 안면대로 고갯길에서 생각했던 납작고개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갑자기 성황당고개가 나타나기에 헷깔리는데 자세히 보니 납작고개를 성황당고개로도 부르고 있는 듯 여겨진다.

하지만 도로가 개설되면서 흔적이 사라졌는지 알수는 없지만 납작고개에서도 아무런 성황당이나 서낭당과 관련된 흔적이나 내용들을 보지 못했기에 어느 것이 맞는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갈림삼거리 풍경을 사진에 담소 국사봉 방향으로 빠르게 전진하니 잡목들이 우거지고 고사목들이 제멋대로 나뒹굴고 있는 도상 107.8봉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고 심지어 그 흔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한장 보이지 않는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그 소나무 등로를 따라 무명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오르니 이정표와 신온25라는 이등삼각점이 박혀있는 107.1미터의 국사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하지만 지도에 표기된 내용으로만 보면 방금 전 지났던 107.8봉이 실질적인 국사봉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었다.

이곳 국사당에 관한 자료를 찾아 봤지만 보이지 않아 일반적인 국사당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보인다.

국사봉이나 국수봉은 대개 마을 뒤쪽에 있는 높은 산으로 꼭대기에 마을을 수호하는 국사당이라는 신을 모시는 당이 있던 산을 말하는데 국사()나 국수()는 한자로 취음 표기된 문헌상 기록으로 특별한 뜻이 있지 않으며 어원은 구수봉이다.

구수()는 거북의 머리가 아니라 신()마루를 의미이며 따라서 국사봉과 국수봉은 지상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고 천신이 하강하는 신산()마루라고 할 수 있다.

안면지맥에서 가장 높은 국사봉이지만 대접은 안타까울 정도이기에 추억 한장 남기고 아쉬운 마음으로 그 국사봉을 출발한다.

 

출발하며 주위를 살펴보니 나뭇가지에 막혀 조망은 전혀 없지만 삼각점 넘어 동쪽으로 제법 넓은 경작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한가운데에 섬처럼 떠 있는 작은 원형의 분지를 이루고 있는 풍경이 이채롭다.

잠시 걸어 내려가니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는 좁은 공터에 내려서고 잠시 후 직진의 우측으로 내려가는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잡목 사이로 숨어 있듯 보이는 등로를 찾아 어렵게 내려가니 이제 지독한 잡목들과 널부러진 고사목들이 등로를 막으며 원초적인 지맥 등로가 펼쳐지는데 그것조차도 많은 선답자들이 지나가며 누그러트렸는지 진행에는 견딜만 하다.

잠시 후 지독한 잡목과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고 그 한쪽에는 부러진 소나무 고사목 한그루가 보이는 84.9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전형적인 지맥 마루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조심스럽게 진행하니 그래도 그 등로를 지키며 지나간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대단한 산꾼들의 모습임을 자랑스럽게 펄럭이고 있는 듯 다가온다.

잠시 후 선답자의 띠지가 보이는 66.1 무명봉을 지나 어렵게 가시나무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납작고개에서 헤어졌던 77번 안면대로 2차선 포장도로 위로 떨어진다.

그곳에서 도로를 타고 좌측 고갯마루 방향으로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분기되고 그 앞 우측으로는 태안능쟁이마을 안내판과 많은 식당과 펜션들을 홍보하는 홍보판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 태안능쟁이마을 안내판 좌측 옆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다시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잠시 나타나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지독한 잡목들과 가시나무들로 인해 정상 마루금으로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우측으로 약간 내려가 사면치기하듯 진행하니 견딜만 하다.

그렇게 정상부로 오르니 돌구라는 선답자의 작고 앙증맞은 띠지가 반겨주고 그 정상부 능선을 넘자마자 주 등로는 여전히 잡목들과 가시나무에 뒤덮혀 있어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사몀ㄴ치기는 계속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주 등로에서 우측으로 약간 벗어난 지점으로 시멘트포장도로에 도착을 해 잠시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은 후 도로 건너 솔갈비가 푹신한 소나무 사이로 희미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부드러운 솔갈비 등로를 타고 소나무 사이로 오르니 정상부로 올라갈수록 잡목들의 저항이 심해지고 간벌된 나뭇가지들마저 등로에 널부러져 있어 진행이 어렵기에 우측 사면치기로 진행한다.

잠시 후 솔갈비 이불을 덮고 있는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오르니 정상부에도 잡목들과 가시나무로 인해 접근이 불가능하기에 우측 옆으로 돌아 좌측으로 크게 휘어지며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방금 전 헤어졌던 미포길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지도를 보니 이곳 시멘트 포장도로는 최근에 개설이 되었는지 표기된 지도가 한장도 없고 우측으로는 넓은 밭 경작지 아래 민가가 조용히 아름답게 내려 앉아 있고 좌측으로는 헤어졌던 미포길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날 수 있는 갈림삼거리 옆에 반사경도 보인다.

좌측으로 걸어 올라 삼거리에서 우 측으로 미포길을 걸어가니 또 다시 도로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 하나가 분기되는 분기점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 옆에는 창기4리 무과나무골이라는 이름의 버스정류장에 보인다.

하지만 자료를 찾아보니 무과나무골이라는 마을이 창기리에 속해있다는 사실 이외에는 찾을 수 없어 아름과는 달리 내용을 알 수 없어 답담하기만 하다. 

 

이제부터 그 미포길이라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진행 방향으로는 천수만 전망쉼터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 온다.

별 특징없는 도로를 따르니 승용차 두어대가 지나가는데 모두 고급 승용차들로서 땅 때문에 와 돌아다니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후 도로 우측으로 또 다른 이정표가 서 있고 도유재산을 마을에서 관리한다는 창기4리마을이장의 안내판이 서 있는 곳 우측으로 넓은 비포장 임도가 열려있고 이제부터 도로를 버리고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들어가니 임도 양쪽으로는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들로 인해 진입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는데 이곳 등로만 유독 손질을 했는지 반질거리는 고속도로 수준이다.

잠시 후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전진하고 이제 비포장 임더가 끝이나며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정ㅎ상부로 올라 좌측으로 휘어져 진행하니 커다란 소나무 사이로 잡목들이 보이는 62.3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반가운 선답자인 남양주의 금곡님 띠지가 반겨 준다.

 

금곡님 띠지가 걸려 있던 무명봉을 지나 내려가니 약간의 잡목들의 저항이 심해지고 다시 잡목들이 제거된 뚜렷한 등로를 만나 편안하게 진행하니 빛바랜 준희 선생님의 띠지가 오랜 세월 흐르면서도 후답자들에게 길라잡이로서 역활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게 다가온다.

다시 커다란 소나무들이 펼쳐진 솔갈비 등로를 타고 여유자적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 등로가 앞을 가로막기 시작하고 너무나 힘들게 그 잡목지대를 뚫고 전진하니 바로 눈 앞에 건너야 할 안면대로 시멘트 포장도로와 민가 한채 그리고 그 민가 주위로 보이는 넓은 밭 경작지들 펼쳐진 풍경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잡목과 가시나무들을 헤치고 힘들게 안면대로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가니 강이지 몇마리가 이방인의 출현에 울부짖고 주인장에게 미안해 재빨리 민가 우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님가 뒷쪽의 능선 방향으로 오르니 다시 등로가 사라지고 솔갈비가 푹신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진다.

이리저리 잡목들이 없는 오르막 등로를 찾아 오르니 드디어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비포장 임도같은 넓고 뚜렷한 솔갈비 등로를 만나 편안하게 전진하니 그 비포장 임도 좌측 바로 옆으로 선답자들의 많은 산행 띠지들이 붙어 있고 그중에는 해발고도를 적어 놓은 띠지들도 보이는 도상 82.6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그 82.6봉으로 들어가 사진 남기고 다시 비포장 임도로 나와 좌측으로 둔덕을 넘으니 묘지2기가 나타나고 그 묘지 위에서 마루금 좌측으로 펼쳐진 산줄기들이 아름답게 이어져 있는데 언듯 보기에는 그곳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안면지맥 산줄기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다시 묘지를 지나 내려가니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들이 기다리며 그동안 편안하게 진행하면서 방심했던 산객을 긴장시키기 시작한다.

너무나 힘들게 그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 지대를 탈출하니 커다란 소나무들이 보이는 완만한 솔갈비 등로로 변하고 소나무가 부러진 고사목이 있는 64 무명봉을 넘어 내려가니 아기자기한 무명봉 두어개를 넘어 드디어 잡목지대를 완전히 벗어 나 밭 경작지로 떨어지는데 진행 방향으로는 민가들과 밭 경작지 넘어 올라야 할 나즈막한 산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 온다.

  

밭 경작지를 지나 내려가니 여수해길 1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강아지들의 격한 환영속에 그 도로를 건너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 좌측 능선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 되지만 큰 의미가 없기에 바로 앞 민가 우측 옆으로 보이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잘 정리된 밭 경작지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니 둔덕 넘어 밀인지 보리를 심어 푸릇하게 싹이 돋아 있는 밭을 가로질러 원 지맥 등로와 만나 곧바로 능선으로 오르는데 오르기 전 지나 온 마루금을 살펴보니 진행할 땐 힘들고 어려웠지만 지나온 마루금을 살펴보는 시간만큼은 너무나 아름답고 환상적인 모습으로 다가 와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사진에 담은 후 출발한다.

능선으로 오르니 별 특징 없는 소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둔덕같은 봉우리를 지나 내려가니 다시 등로는 밭으로 이어지고 눈 앞으로는 정당리쪽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정당리는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에 있는 리로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정기리, 창기리 그리고 장당리의 각각 일부를 병합하여 정당리()가 되었으며 지명은 정기리의 정()자와 장당리의 당()자가 합쳐진 것이다.

서해안 안면도의 동쪽 내륙에 있고 경치가 매우 좋아 관광지로서 관광객이 많이 찾아들며 자연마을에는 닥재가 있는데 닥재는 한 전설과 관련해 정당리, 장당리, 장뗑이, 당말림, 당마을, 당재 등으로 불려왔으나 현재는 닥재라는 변형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정당리 마을을 내려다 보고 밭 우측의 가장자리를 따라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바로 앞에 민가가 내려다 보이고 사진에 담고 조금 더 걸어가니 민가 우측으로 진행해야 할 방향으로 밭 경작지 넘어 92.5봉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이어지는 밭 가장자리를 따라 진행하니 바로 아래로 절개지가 나타나고 그 절개지 아래로는 도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지도를 보니 좁았던 시멘트 포장도로를 조금 더 넓게 재포장하는 공사처럼 보인다.

 

조심하며 그 절개지를 타고 내려가 공사중인 도로로 내려서니 등로는 다시 도로 건너 밭둑으로 이어지고 그 밭으로 올라가니 밭에는 그물망이 쳐져 있다.

잘 관리되는 밭 가장자리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밭 우측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다시 만나고 그곳에서 능선으로 걸어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들이 줄지어 늘어 선 뚜렷한 등로가 열려있다.

그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조금씩 더 가파르게 변하면서 참나무들도 보이고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오르니 이정표가 보이고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는 92.5봉에 도착을 한다.

 

그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는 92.5봉을 지나 진행하니 잡목들이 조금 더 보이기 시작하고 그곳을 지나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갑자기 뚜렷하게 이어지는 직진의 우측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꺽여 잡목이 우거진 방향으로 이어진다.

잠시 내려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지만 거대한 소나무들이 아름다운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편안하게 진행되는 시간이다.

잠시 후 묵은 밭 경작지에 도착을 하니 지난 해 농사를 짓지 않았는지 잡풀들과 칡넝쿨이 우거졌다 말라 있는 묵은 밭에서 등로 좌측을 내려다 보니 정당리쪽 마을들이 다시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묵 밭에서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정당리를 살펴본 후 다시 출발하니 나즈막한 산줄기를 넘어 또 다시 나타나는 약간의 잡목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77번 안면대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원 지맥은 우측 고갯마루로 올라 도로 건너 능선으로 올라야 하지만 지독한 잡목들로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도로 건너 좌측으로 보이는 밭 가장자리를 타고 천천히 올라 가 본다.

 

밭 가장자리의 잡풀지역을 타고 오르니 차가운 바람과는 달리 기온은 올랐는지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진흙이 등산화에 달라 붙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오르다 뒤돌아 보니 77번 도로 건너 지나온 등로 우측으로 전원주택 같은 멋진 주택들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지나 온 마루금이 올려다 보이는데 저 멀리에는 92.5봉도 마리만 보이고 있다.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무명묘지 한기가 나타나고 그 묘지 위로 오르니 약간의 잡목들을 지나 소나무 등로가 열리는데 그 아래 떨어져 흩어져 있는 나뭇가지들로 진행에 어려움도 느낀다.

등로에 떨어진 잔가지들이 왜 그렇게 많이 떨어져 있는지 진행에 방해를 받을 지경이고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갑자기 눈 앞이 열리면서 안부가 나타나는데 넓은 안부에는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그 옆으로는 강아지 두마리가 울부짖고 있다.

 

그 비닐하우스를 우측에 두고 좌측 가장자리를 타고 그 넓은 안부를 통과한 후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나즈막한 소나무 둔덕을 넘어 안부로 내려가는데 눈 앞으로는 김해김씨 가족묘지들이 펼쳐져 있고 그 넘어로는 제법 넓은 사슴농장이 나타난다.

그 농장 건물 울타리에는 커다란 사슴들이 뛰어 다니다 이방인의 출현에 놀랐는지 멀끄러미 처다보고 있다.

잠시 걸어 내려가 김해김씨 가족묘지들을 지나니 또 다시 비포장임도와 시멘트 포장도로가 만나는 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건너 농장 좌우측 중 우측의 철망 옆으로 농장을 통과하기로 한다.

 

너무나 힘들게 그 사슴농장 철망 옆으로 잡목을 뚫고 통과하니 사슴들이 놀랐는지 몰려 다녀 다시 철망에서 우측 아래로 떨어져 사슴들이 보이지 않게 지나니 사슴농장 철망이 이제 끝이나고 무성하게 자랐던 잡풀들이 말라있는 둔덕이 나타난다.

그 둔덕을 지나 전진하니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2기가 나타나고 그 앞으로 보이는 넓은 공터로 나가 짧은 절개지를 내려갈 방법을 찾아 보나 쉽지 않아 무작정 커다란 나무들이 보이는 짧은 절개지를 찾아 어렵게 내려가니 1차선 포장도로 옆으로 정당2리 잔다리라는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 눈 앞에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직진 방향으로 들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멋진 민가 한채가 보이는데 이 산객이 꿈꾸는 집처럼 보여 자세히 살펴보고 그 민가를 지나 돌담을 타고 능선 방향으로 올라 본다.

그 언덕으로 오르니 여름철 지독했던 잡풀들과 칡넝쿨들이 우거졌다 말라 있는 드넓은 갈색의 초원지대가 펼쳐져 있어 그 위를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저 앞으로 작은 통나무 집같은 건물 한채가 나타난다.

그 뒤 저 멀리에는 거대한 분재형 소나무들이 드넓게 이식되어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와 그 방향으로 조심하며 진행해 본다.

 

천천히 그 지독하게 우거졌던 잡풀지대를 지나 통나무 건물을 살펴보니 사람이 사는 곳은 아니고 잠시 쉴 수 있도록 휴식 공간으로 준비한 건물처럼 보이는 통나무 목조 집이다.

그 곳을 지나니 다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지나 거대한 분재형 소나무들이 이식되어 주인을 기다리는 능선으로 오르니 생각보다 많은 멋진 분재형 소나무들이 수백 그루 정도 이식되어 있는 듯 보인다.

그 언덕 정상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꺽여 이어지고 잠시 더 전진하니 활엽수 낙엽들이 쌓여 있는 능선이 나타나 그 능선을 타고 올라 약간의 잡목들과 고사목이 쓰러져 있는 63.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무명봉을 지나니 거대한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평이한 등로가 열려있는데 진행되는 등로는 뚜렷하게 나 있다.

그렇게 한동안 평이하게 걸어 전진하니 등로 옆 소나무에 작은 목판이 나타나는데 초원펜션이란 글자가 보이고 등로 우측으로 펜션 건물들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직진의 능선 등로와 우측의 초원펜션 방향으로 이어지는 갈림삼거리인데 직진은 건물들로 막힐 것 같아 우측의 초원펜션으로 내려가니 등로는 펜션 건물 가운데를 지나 마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초원펜션 건물을 지나 비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다 뒤돌아 보니 내려 온 방향의 건물들 뿐만 아니라 우측으로도 똑같은 건물들이 또 다시 나타나는데 경기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오래되어 낡아서 그런지 손님들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그 펜션을 지나 내려가니 차량 통행량이 상당한 77번 안면대로 2차선 포장도로 위 구령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은 지금까지 걸어 온 정당리와 이제부터 걸어야 할 승언리의 경계지점으로서 구령재란 이름은 승언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인 구렁이고개에서 유래되었는데 한 전설에 의하면 구렁이가 강도를 잡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승언리 또한 통일신라 시대에 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장보고 휘하의 승언이란 장군이 안면도를 무대로 활동했던 것을 기리기 위해 붙여졌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구령재에서 77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 내려가 좌측으로 들어가며 산행을 이어가는데 도로 우측 아래로는 정당리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구령재를 지나 능선 방향으로 오르니 절개지가 보이고 그 절개지에는 아카시아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진행에 어려움이 있기에 고민하다 조심해 올라 가 보지만 보이는 능선 등로가 너무 좁아 진행이 불가능하다.

다시 내려 와 바로 앞 절개지를 우측으로 돌아 들어가니 드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 공터에는 키 작은 소나무들이 자라는데 예전에 채석장이 있었는지 상당히 넓은 지역을 파낸 흔적이 있는 곳이다.

그곳으로 들어가 잔디와 키 작은 소나무들이 자라는 꽤 높은 절개지를 타고 능선으로 올라 주등로에 도착을 하고 우측으로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신온311이란 삼각점이 박혀 있는 83.7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삼각점이 박혀 있는 83.7봉을 지나 부드러운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 안부를 지나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약간의 참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을 통과한다.

다시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잡목들이 보이지만 그 사이로 나 있는 등로는 뚜렷하게 뚫려있어 진행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아마도 많은 선답자들이 찾으며 지독했던 잡목 등로가 어지간히 뚫리면서 진행에도 편안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전진하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59.3 잡목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잠시 평이한 잡목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 능선 방향으로 오르니 널부러진 나뭇가지들이 다시 등로를 채우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갑자기 눈 앞이 시원해지며 나무들이 사라지고 이제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저 멀리 송전탑들을 세운 채 조망되기 시작한다.

보이는 저 산줄기를 타고 송전탑까지 진행한 후 좌측으로 돌아가며 안면으을 좌측에 두고 진행하면 조만간 오늘 산행 날머리인 안면고등학교에 도착이 될 것이다.

 

등로 우측으로는 안면초등학교가 있는 승언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 뒤로 이어가야 할 마루금이 올려다 보이는데 약간의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어 아쉬움을 남긴다.

잠시 더 조망을 즐기고 다시 출발하니 넓은 비포장 임도를 지나 밭 경작지가 펼쳐지고 곧이어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으로는 승언리 독개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도로명은 독개길이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광지고개에 도착을 해 도로 옆으로 보이는 멋진 민가를 둘러보는데 그곳에 있는 강아지 한마리가 이방인의 출현에 울부짖고 있어 집 구경하기도 어렵기에 곧바로 좌측 능선을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광지(光地)마을은 안면읍 승언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안면초등학교에서 동북쪽으로 고개 하나 넘어가면 나오는 동네이며 승언2호 저수지의 맨북쪽에 접한 마을이다.

고려시대의 행정구역에 안면도에 안면소(安眠所)와 광지향(光地鄕)등이 보이는 것을 보면 광지는 안면도에서 상당이 이른시기에 마을이 형성된 곳임을 짐작케한다.

고려시대에는 지방관이 파견되는 군현(郡縣)밑에 하부 행정단위로 향(鄕), 소(所), 부곡(部曲) 등을 두어 농경에 종사하며 국가에 대해서는 세금을 납부하고 국역(國役)을 부담하였다 한다.

아무튼 광지는 과거 승언2리에 속했으나 분구되어 현재는 승언7리로 되어 있으며 마을이름에서 보듯이 햇볕이 잘드는 동네로 안면도의 빛고을이라  할 수 있다.

 

광지고개의 1차선 포장도로인 독개길을 건너 잡목이 보이는 능선으로 오르니 아카시아 가시나무들이 등로를 막아 조심스럽게 오르고 잠시 후 고사목과 버려진 철망들이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잠시 등로가 사라져 길찾기에 주의가 필요하고 어렵게 방향만 잡고 진행하니 드디어 넓은 밭 경작지에 그물망이 쳐져 있는 곳으로 내려 가 그 그물망 좌측 밭 가장자리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등로 우측 밭 경작지 넘어로는 안면초등학교와 교회 건물들 그리고 민가들이 보이는 승언리 마을이 펼쳐지고 그 뒤 저 멀리 두여전망대와 서해바다도 보이는데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어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잠시 더 그 밭 가장자리를 타고 진행하다 밭 경작지가 끝나가는 지점에서 시원하게 펼쳐진 승언리 마을과 그 뒤로 보이는 서해바다를 잠시 바라보며 사진에 담아 본다.

승언리는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에 있는 리로서 본래 태안군 안상면의 관할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창기리와 정당리 각각의 일부를 병합하여 안면면에 편입시켜 승언리가 되었으며 지명은 통일신라 시대에 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장보고 휘하의 승언()이란 장군이 안면도를 무대로 활동했던 것을 기리기 위해 붙여졌다.

서해안의 바닷가 마을이고 바닷가에는 밧개해수욕장이 있으며 바다에 가까워서 고도가 낮고 평평하다.

자연마을에는 팔학골, 구렁이고개, 두여가 있는데 팔학골은 마을을 8개의 야산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쳐 있으며 이곳에 많은 학들이 무리를 지어 지내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구렁이고개는 한 전설에 의하면 구렁이가 강도를 잡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두여는 과거에 도인들이 도를 닦던 마을이라 하여 도여라고 불렀으나 현재는 두여로 바뀌어 불리고 있다.

 

 

승언리마을과 서해바다를 살펴보고 조금 더 전진하니 밭 경작지가 끝이나며 그물망도 사라진다.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니 소나무와 관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가 열리는데 등로 역시 뚜렷하게 나 있어 진행에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잠시 더 평이한 활엽수 낙엽을 밟으며 전진하니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진행하니 좌측으로 갈림 삼거리를 지나 건물들이 나타나고 진행 방향으로 91.5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 승언리 장문고개 위 언덕에 도착을 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내려가니 장터로와 승언로로 갈리는 갈림삼거리로서 이곳이 바로 장문고개인데 안면읍 승언리 장문마을에서 유래된 이름이며 이 지역의 형세가 장군이 칼을 차고 있는 듯 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장문고개를 지나 승언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잠시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렉스빌A동이라는 빌라 건물이 서 있고 그 건물을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오를 수 있는 시멘트 계단이 보여 그곳을 통해 오르니 무명묘지 몇기가 줄지어 보이고 바로 옆으로는 민가가 붙어 있다.

그곳에서 잠시 등로 좌측을 내려다 보니 안면읍 승언리 마을의 제법 도시화된 풍경들이 펼쳐지고 다시 묘지지대를 지나 오르니 잠시 지독한 잡목지대가 길을 막지만 가시나무들이 없으니 오를만하다.

관목의 참나무들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도상 91.5봉에 도착을 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정상에는 표기가 되지 않은 삼각점만 둥그런히 박혀있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만 걸려있을 뿐 다른 아무런 표식도 보이지 않는다.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사라진 등로를 찾아 어렵게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녹슨 철망들이 보이는데 그 용도를 알수가 없고 좌측으로 휘어져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높은 LG이동통신탑이 자리를 하고 있다.

오늘 산행을 진행하면서 이정표 구실을 했던 이통탑이기에 사진 두어장 남기고 다시 전진하니 지독한 잡목지대가 앞을 가로막고 너무나 힘들게 그 가시잡목들을 뚫고 진행하니 77번 안면대로 2차선 포장도로 위 절개지에 도착을 해 발 아래 펼쳐진 77번 도로를 살펴본다.

조심하며 그 절개지를 타고 내려가니 오늘 하루 종일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했던 77번 도로에 도착을 하고 차량 통행이 없는 틈을 이용해 그 도로를 건너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안면대로인 77번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조금 좌측으로 걸어가니 능선으로 오를 수 있는 긴 철 계단이 보이고 그 계단을 타고 한동안 걸어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걸어 진행한 안면대로 건너 LG이동통신탑과 91.5봉이 지척으로 보인다.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밤나무과수원이 펼쳐지고 그 과수원을 지나 오르니 무명묘지 2기가 보이는 80.9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배낭 내려 준비한 빵과 음료수로 허기를 달래고 쉬었다 가기로 한다.

시간을 보니 이제 12시 18분을 넘기고 있어 여명이 밝아오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하면 하루에 완주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해 보지만 어짜피 두 구간으로 나눠 여유롭게 진행하기로 했으니 욕심을 버리고 충분히 쉬었다 가기로 한다.

 

쌍묘가 있는 80.9 무명봉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먹거리로 허기까지 달래고 나니 강하게 불던 바람도 잠시 잠잠해져 진행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지만 미세먼지로 인한 조망이 없어 아쉬운 시간이다.

방향을 좌측으로 돌려 사면치기 하듯 오르니 등러ㅗ에는 가지치기 후 정리되지 않은 나뭇가지들이 제멋대로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한동안 애를 먹는다.

그렇게 주 등로를 만나 좌측으로 잠시 걸어 전진하니 등로는 다시 둔덕 넘어 내려가고 곧이어 해안관광로 2차선 포장도로에 내려서게 되는데 도로 좌측으로는 승언리 초막수골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을 느르재고개라고도 불리는 모양인데 느르재라는 지명에 대한 자료는 전혀 찾을 수 없고 초막수골이라는 마을이 보여 찾아보니 승언1구에 속한 마을로서 일제강점기 일본의 민간종교인 신도사원을 곳곳에 세우고 조선인으로 하여금 강제로 신사참배를 시키기 위해 터를 닦았으나 해방이 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자료와 함께 느르재고개 위 옆산에 6.25 때 인민군초소가 운영되었다는 자료도 눈에 띈다.

 

그 느르재고개라는 해안관광로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우측 고갯마루로 진행하다 도로 좌측의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솔갈비가 푹신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는데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지만 큰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잠시 후 오르막 등로가 쉬어가는 평이한 등로를 만나 여유롭게 전진하니 제법 큰 자갈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녹슨 철조망이 붙어있는 콘크리트 말뚝이 서 있는데 예전에 군사시설이 있었는지 아니면 민가가 있었던 곳처럼 보인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수렛길 같은 주능선에 도착을 해 좌측으로 걸어가니 널판지가 펼쳐져 있는 98.9 무명봉을 지나 빛바랜 선답자의 띠지가 걸려있는 98.1봉에 도착을 해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을 확인해 보는 시간도 가져본다.

 

잡목들이 우거진 98.1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생각보다 지독한 가시잡목들이 시간만 지체시키고 그렇게 조심하며 어렵게 내려가니 갑자기 콘크리트 수로가 나타난다.

스 수로를 따라 내려가니 펜션 해들녘이라는 입간판이 서 있는 77번 안면대로 2차선 포장도로에 다시 내려서는데 도로 건너 진행 방향으로는 안면게이트볼링장과 우측으로 조각공원도 보이기 시작한다.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끝나는 도로 좌측으로 방금 전 77번 도롯가에서 봤던 해질녘이라는 민박집을 지나 우측으로 전진하니 금새 다시 밭 경작지가 펼쳐진다.

그 밭 경작지 사이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오르니 좌측으로는 콘테이너 박스가 보이고 등로 우측으로는 무명묘지 3기가 나타난다.

 

능선으로 오르기 직전 묘지 3기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뒤돌아 보니 밭 경작지 지나 해질녘 민박집이 가운데로 보이고 그 좌측 아래로는 안면게이트볼장의 파란 지붕도 내려다 보인다.

그 뒤로 보여야 할 77번 도로는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고 그 넘어 끝자락에는 98.1봉이 둥그런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모습으로 이별의 인사를 건네고 있다.

생각보다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더 머물고 묘지지대를 지나 능선 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능선으로 오르니 넓은 비포장 임도가 펼쳐지고 그 임도를 따라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갈림삼거리도 통과한다.

흰 띠지가 걸려있는 70.8 무명봉을 지나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앞 해맞이동산과 6각 정자가 서 있는 광장 지나 마루금 우측으로 이어지는 방포저수지와 꽃지 해수욕장 방향으로 솟아 있는 산줄기가 아름답지만 오늘은 그곳으로 가지 않기에 사진으로만 남기고 산행을 이어간다.

길게 이어지는 통나무 계단을 지나 내려가 무명안부를 지나고 다시 둔덕을 넘어 전진하니 드넓은 광장이 나타나고 일각정이라는 육각정자와 운동기구들 그리고 한쪽에는 해맞이축제 기념비가 보이는 곳에 도착을 한다.

 

그곳 공원광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진행을 하는데 원 등로는 직진을 해 좌측으로 휘어지며 진행이 되는데 많은 선답자들이 공원 중간의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크게 꺽어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따라 내려가며 진행을 했기에 편안하게 그 제도권 등로를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안면버스터미널 570미터라 적혀있는 이정표의 방향으로 통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도시화된 승언리 마을이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와 있고 그 뒤로 이어지는 진행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앞 나뭇가지에 가려 진행 방향은 정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다시 나타나는 통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승언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눈 앞에 보이는 대화빌라 건물을 좌측에 두고 우측 방포로 2차선 포장도로로 내려가는데 그곳 삼거리 한쪽에는 도로명주소 안내판이 서 있어 살펴보니 승언1리마을회관이고 도로명은 방포로인데 왜 아름답고 멋진 옛이름을 이렇게 잘 사용도 하지 않는 도로명 주소로 바꿔 혼란만 초래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 방포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안면도수협 건물이 보이는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조금 걸어가니 첫번째 만나는 갈림사거리 도로에서 좌측 킹스마트가 보이는 건물 방향으로 오르며 드디어 우회했던 정상 마루금을 만나 어렵게 산행을 이어간다.

 

킹스마트 건물을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도로 우측으로 안면도서관 건물을 지나고 유진빌라 건물이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곳에서 좌측 직진의 넓은 비포장 도로를 버리고 그 도로 좌측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작은 공동묘지지대처럼 많은 묘지들이 보이고 그곳에서 잠시 안면읍 방향을 살펴본다.

안면읍은 충청남도 태안군의 남쪽에 위치한 읍으로 동쪽은 천수만이고 서쪽의 열려진 바다는 태안해안국립공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쪽 해안에는 백사장해수욕장, 삼봉해수욕장, 꽃지해수욕장이 있고 남쪽에는 안면도자연휴양림이 있는 현재 6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안면()이라는 지명은 세종실록지리지에 망안면소성일()이라는 기록에서 처음 볼 수 있고 조선지도에도 안면곶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지금의 읍 중 북서쪽의 창기리 일대를 제외한 남쪽의 넓은 지역은 서산군 땅이었으며 북동쪽 일부는 홍주의 월경지였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지도, 청구도, 대동여지도 등의 여러 고지도에서 잘 볼 수 있고 여지도서에는 남안면면()으로 호구총수에는 안면면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조선 시대 후기에는 안상면과 안하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안면면()으로 통합되어 서산군에 속해 있었으며 1980년 읍으로 승격하였다.

지금의 동리 지명은 대부분 1914년에 만들어졌는데 그중 승언리는 통일신라 장보고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승언()이라는 장군이 안면도에 상주하면서 해상활동을 전개하여 안면도를 수호하였고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지명에 그 사람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여지도서(서산)에 승언리는 거리 80리, 편호 130호, 남자 196명, 여자 167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관련 지명으로 승언저수지가 있다.

창기리()는 조선 시대 때 이곳에 조세창고가 있었으므로 창터말이라 불리고 있었는데 그것이 뒤에 한자로 표기된 것이고 관련 지명으로 창기저수지가 있으며 이것은 창기리에서 규모가 제일 큰 저수지이다.

중장리()는 안면도의 중앙부에 자리하여 있는 지리적 위치에서 명명되었는데 여지도서거리 90리, 편호 55호, 남자 170명, 여자 94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야리()는 동남쪽에 간석지 개간으로 새로운 들판이 많이 조성되었을 때 이것을 새들이라 하였고 이것이 한자로 표기하여 신야()가 되었다.

황도리()는 섬 자체가 하나의 행정구역인데 여름철이 되면 온 섬이 누런 물결의 보리밭이 펼쳐지므로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잠시 더 안면읍 방향과 지나 온 마루금을 살펴보고 다시 그 작은 공동묘지지대 위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타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렇게 안면읍 방향을 살펴보고 진행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묘지지대 위에서 살펴보니 58.6봉과 62봉이 차례로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는데 그 언저리 어디쯤 오늘 산행 날머리인 안면고등학교가 있을 것인데 아직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시간을 보니 이제 오후 1시 12분을 지나고 있어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하고 귀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안면읍 방향이 펼쳐지는데 미세먼지와 박무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고 있고 등로 우측으로는 긍언리 마을이 가깝게 내려다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묘지지대를 따라 진행하니 천주교 신자들의 묘지들이 나타나고 능선으로 들어가니 굵은 편백나무들이 보이는 지대를 지나 다시 민가들과 도로가 보이는 승언리 마을로 내려서게 된다.

등로 좌측으로는 안면중앙교회가 서 있고 교회를 바라보며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장터로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비석골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좌측으로는 대성식관이라는 식당도 보인다.

 

비석골삼거리 가기 직전 우측으로 보이는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들어가니 금새 비포장임도로 변하고 그 임도를 따르니 좌측으로는 밭 경작지가 펼쳐지고 우측으로는 능선이 자리하고 있다.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임도 좌측으로 예쁜 집 한채가 보이고 지도를 보니 등로는 그 민가 좌측 능선으로 오르게 되어 있는데 들머리나 잘 찾을 수 있을지 약간 걱정도 되었던 시간이었다.

 

그 민가 앞 마당까지 걸어 들어가 좌측 능선 방향으로 들머리를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해 공터 좌측 도랑같은 곳을 넘으려고 하니 바로 앞 둔덕 위로 작은 다리가 눈에 보이고 그 다리가 있는 곳으로 가 보니 개울 건너 묘지로 통하는 등로가 열려있어 생각보다 잘 다리를 건너 묘지 2기 지나 능선으로 오를 수 있었다.

생각보다 가파른 소나무와 활엽수가 혼재되어 있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등줄기에 땀방울이 흐르도록 오르니 넓은 수렛길 같은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그 등로를 타고 좌측으로 몇발자국 걸어가니 신온433 삼각점이 박혀 있는 58.6봉에 도착을 해 사진들과 추억을 남겨 본다.

 

잠시 더 58.6봉에서 추억을 남기고 출발하니 태안절경천샘백리라는 이정목이 보이고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휘어져 내려가며 이어진다.

길게 이어지는 통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벤취쉼터 한개와 동물서식처 비오돕 설명판을 지나고 다시 부드러운 솔갈비가 쌓여 있는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멋진 소나무 등로 지나 벤취쉼터 1개와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서 넓은 비포장 임도는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 직진 방향의 마루금을 타고 진행한다.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완마ㅣㄴ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나풀거리는 61.6봉에 도착을 해 정상부 사진을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그 잡목봉을 지나니 그림같은 소나무 등로가 활짝 열리고 무심으로 그 푹신한 솔갈비 등로를 따르니 다시 벤취쉼터 하나와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그 갈림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휘어져 가는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나 있는 소로를 타고 걸어가니 약간의 잡목지대를 지나 둔덕 정상부에 도착을 하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눈 앞에 비닐이 씌여져 있는 넓은 밭 경작지가 펴쳐진다.

원 지맥 등로는 저 밭 가장자리를 타고 끝까지 진행한 후 만나는 갈림사거리 안부에서 마무리하면 되는데 기온이 오르면서 밭 가장자리 흙들이 녹아 질척이기에 우측 안면고등학교를 통해 진행하게 된다.

 

밭 우측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 진행하다 우측 안면고등학교 방향으로 내려가니 드디어 안면고등학교 교정을 통해 정문으로 나가 좌측 조은막터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드디어 안부 사거리에 도착을 해 다음 구간 들머리를 사진에 담고 오늘 지맥 산행을 마무리 한다.

다음 산행 들머리 방향으로 많은 플랭카드가 부착되어 있고 뚜렷한 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길찾기에는 걱정이 없어 보인다.

 

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다시 뒤돌아 내려오니 안면고등학교 정문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저 멀리 오늘 새벽에 주차시킨 애마가 보이고 곧이어 주차장에 도착을 해 애마를 회수한

생각보다 잡목들도 덜하고 난이도도 평이해 일찍 마무리가 되어 샤워도 없이 곧바로 귀경하기로 한다. 

 

 

 

 

계획대로 어제 내려 와 오늘까지 안면지맥 산행을 완주한 후 올라갈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함이 못내 아쉽고 서운하기만 하나 남아 있는 구간 역시 일찍 마무리가 가능 할 것 같아 조만간 다시 내려 와 짧게 마무리하고 기분 좋게 귀가해 다음부터는 호남지방에 산재되어 있는 지맥 산행에 올인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뻥 뚤린 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돌아 오니 아직 오후 4시도 되지 않고 자료 정리하다 보니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나가며 또 일주일이 저물어 간다.

다음 주에는 구정 연휴가 있어 산이라도 오르고 싶었는데 연휴 내내 비가 내린다는 소식에 약간은 아쉬움이 있지만 구라청이니 비나 눈이 내리지 않으면 가까운 봉화지맥 한구간이라도 다녀올 수 있기를 바래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200119 안면지맥1구간 안면대교-안면고등학교.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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